공감, 동감, 찬동, 찬성 - 보완

2012.04.21 00:47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공감, 동감, 찬동, 찬성
선지자선교회
어느 개혁주의적 신학교의 ‘신학교육의 역사와 방향’에 대한 글을 읽어보고, 글 제목대로 공감, 동감, 찬동, 찬성하는 대목들이 있었다. 그 대목들을 부분 발췌하고 그 아래에 그 이유를 첨부해본다.

1. 공감

(신학교): 신학생들의 교회 배경이 각기 다른 데다 노회적인 지지가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목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00 목사는 모범적인 교회가 선 후에야 신학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교회다운 교회를 주께서 세워 주시기를 바라면서 1974년부터 00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가르치는 일에 진력(盡力)하였다.

(공감 이유): 이곳 선교지에서도 여러 지역 여러 목회자를 접촉하고 성경적 교리신조를 가르쳐 보았지만 그들이 배운 것을 참고 내지 활용은 하지만 그 교리 신조의 사람은 되기까지가 어려운 것을 직접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 즉 종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목회자 분들 중에서 특별한 분들도 계셔서 성경적 교리 신조의 사람이 되는데 주력하는 분들도 계셔서 감사와 위로를 받는다.  

2. 동감

(신학교): 최00 목사는 1993년 8월 30일부터 정00, 김00에게 신학 수업을 시켰고, 곧 00신학교에서 신학 훈련을 받은 김00도 가담하여서 매주 혹은 격주로 함께 모여 신학 전반을 공부하였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목사로 임직된 후에도 중요한 책을 함께 읽고, 또한 준비한 강설을 동료 목사들 앞에서 읽고 서로 격려하면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동감 이유): 이곳 선교지 현지 목회자께 들은 말이 있다. 그분이 말씀하기를 목회자들이 예전에는 성경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었는데 목사가 되고부터는 성경공부를 잘 안하려고 한다면서 말하기를 ‘개뿔도 모르면서!’ 하셨다. 그 소리에 ‘하하’ 짧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는 끝이 없다. 경험컨대 최고로 깨달았다 싶은데 육 개월 주기로 이전 깨달음은 미약이며 미달이었다. 성경은 진리적으로 연구하여야 하고 또 신학은 신학적으로 견학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목사가 된 목회자는 이제 성경 연구하는데 입문했고 신학을 감별하는데 입문한 것이다. 목사 안수는 마치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이나 같은 수준이다. 이제부터 연구와 공부를 깊이 시작해야 하는데도 두 눈 감고 두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이 앞에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위의 글에 전적 동감이다. 연구하고 공부하여 깨달고 배운 것을 서로 나누자.

3. 찬동

(신학교): 미국 교회사에서 통나무 대학(Log College)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통나무로 가로 세로가 각각 6미터 정도 되는 집을 짓고, 거기에서 신학 수업을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726-45년까지 약 2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였는데, 이 대학을 졸업한 목사들이 프린스턴 대학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746년). 이것은 1993년 8월부터 시작한 공부 모임이 2010년에 시작하는 신학교의 모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00교회 치리회실에서 공부하다가 날씨가 좋으면 과천의 서울대공원 옆에 파라솔을 펴놓고 공부하였고, 2000년 12월에는 아파트를 세내어서 공부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2006년부터는 00교회 별관에서 모이고 있다.

(찬동 이유):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는데 장소가 문제인가? 인원이 문제인가? 아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스승과 제자만 있으면 된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스승도 한 분이지만 제자도 하나였다. 이래도 그 시대를 감당 하였다. 하나님 앞에 숫자와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갔다. 이것이 성경공부 즉 신학 하는 실상의 장소성이다. 세상적 학교와 같이 큰 건물에서 행정적 조직을 가지고 외견적 학벌을 인정받아야 영감의 갑절이 있는가? 아니지 않는가? 영감의 갑절이 중요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위의 글에 찬동을 한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귀국하면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등에서 성경연구 세미나를 한 번씩 가지기도 한다. 그러려면 미리 대관을 위해 예약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선교지에 있는 형편상 미리 준비하기가 싶지 않다. 그렇기에 좀 한적한 지하철역에서 시간을 정해 얼마라도 모이면 서서라도 한두 시간 연구한 것을 발표하면 모이기도 싶고 좋지 않을까 하고 좀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장소는 하나 예를 들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한다면 교회 예배당에서 매주 하루 날짜를 잡아서 성경연구 세미나를 개최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강사는 성경연구에 깊이가 있는 목회자, 교회사에 신앙적 관점으로 정통한 목회자, 신앙적 목회에 충성하는 목회자, 이단 사이비 배격에 권위 있는 목회자, 등을 초청해서 누구든지 시간이 되면 하루 와서 연구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계획을 세워본다.      

4. 찬성

(신학교): 신학 교육이 교회의 진행과 사명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그 교육은 ‘학교’의 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교에서 가르칠 사람을 전문적인 신학 수업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실하게 목회를 한 목사들 가운데서 찾았다.

(찬성 이유): 언젠가 신학공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해야 신학이 되며 또 신학대학원을 졸업해야만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성경적 자격이 되는가? 물론 공부 과정이나 인격 연성에서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개교회 담임 목사는 본 교회에서 자란 청년들의 성경과 신학과 목회에 대한 공부를 신학교에 전적 일임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신학교에는 그 진영에 최고의 학과 담당 교수를 세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담임 목회자가 과목을 지도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전공이 안 되는 것을 신학교에 일부 맡긴다는 자세로 신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글에 찬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