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의 계통

2012.05.19 14:33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신앙과 교리의 계통
선지자선교회
(서론)

신앙에는 계통이 있고 교리에도 계통이 있다.
계통이 없는 신앙과 계통이 없는 교리는 정통이 아니다.
정통이라 할 수 없다.

(본론)

신앙과 교리에 대한 계통성의 말씀이 있다.
마1:1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이다.
구약의 계통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신약에도 계통이 있다.
한국교회를 중심해서 아주 간략하게 표시해 보았다.

사도> 속사도> 교부> 루터> 칼빈> 개혁주의(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청교도> 구 프린스톤신학교> 평양신학교(진주성경학교)> 고려파(신사참배 이김)> 공회(백영희신앙노선)

신앙적 계통과 교리적 계통이 반드시 있다.
계통이 없으면 정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런다고 계통을 역류해서 들어가면 안 된다.
계통을 근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론)

교회는 단일성이다.
이 단일성에 벗어나면 교회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통적 계통과 연결성을 가져야 한다.
현재 정통이라면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연결성이 있어야 한다.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연결성을 가진 신앙과 교리여야 한다.
교회는 한 몸의 지체이다.

역사적 개혁주의로 역류하지는 말이 아니다.
현재 속화된 개혁주의와 하나 되자는 말은 아니다.
이 시대를 감당하는 개혁주의가 되자는 말이다.  

(첨부)

구 프린스톤 신학(Old Princeton Seminary)과 한국장로교의 연관성    
글:김용원목사

개혁주의 신학은 크게 존 칼빈에 의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되어 화란에서 꽃을 피운 화란개혁주의와 영미 장로교회의 장로교 신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k)에 의해 그 신학적 절정이 이루어졌고, 이들의 신학적 전통은 이후 화란계통의 이민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미국 칼빈 신학교에 신학적 유산이 전달되었다. 후자는 존 낙스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지방으로 퍼져나간 개혁주의 신학의 산실로서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앙 고백서를 표준으로 구현된 신학으로서 영미장로교 정치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 장로교 신학은 미국 이민자 가운데 스코틀랜드계-아일랜드 장로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전역으로 퍼져갔으며 이들 신학의 토대는 단연코 미국 장로교 소속의 프린스톤 신학교가 그 중심에 서있다. 1812년에 개교된 프린스톤 신학교의 영향은 신학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도 지대하였다. 마크 놀(Mark A. Nol)은 프린스톤 신학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논함에 있어서 19세기 미국 문화 형성에 프린스톤 신학자들의 공헌도가 너무나 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프린스톤 신학은 개교 이래로 아치발드 알렉산더, 찰스 하지, 워필드, 메이첸에 의해 1세기가 넘도록 변함없이 개혁주의 신학을 공식적인 신학 체계로 삼아 단일성을 유지하여 왔다.

프린스톤 신학사상은 한국장로교회와도 관계가 깊다. 한국 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교되어 왔기 때문에 미국 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성장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학적으로도 미국 신학의 이식성(移植性)을 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 장로교 신학은 미국 장로교 신학의 주류를 이룬 프린스톤 신학을 수용 발전하여 왔다.

한국선교 초기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 상당수가 장로교 선교사였고, 그 중에서도 프린스톤 신학교에 수학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이들은 한국교계에 보수주의 정통신학을 확고하게 전수해 주었다.  

1992년에 미국 장로교 한국 선교부에서 발간된 연례 보고서에 의하면 선교 초기에 사역했던 40명의 선교사들 가운데 무려 16명의 사람들이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들이었다. 이 숫자는 한국의 장로교회가 타 신학대학들보다 프린스톤 출신의 선교사들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들에 의해 전해진 프린스톤 신학 사상은 초기 한국 장로교회를 주도하였고, 개혁주의 신학, 칼빈주의 신학을 이땅에 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메시지와 방법론에서 한국장로교회에 복음주의적 사고 방식, 보수주의적 사고 방식을 배양시켜 주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은 사무엘 마펫 선교사의 집에서 시작된 평양신학교를 그 시초로 두고 있다. 1901년 대한예수교공의회가 목회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동년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인 사무엘 마펫과 그래함 리(Graham Lee, 이길함) 등 2명의 교수진과 김종섭과 방기창 2명의 학생으로 시작된 평양신학교는 목회자 양성의 산실이 되었다.

평양신학교(장로회신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던 여러 명의 교수들이 미국 북장로회 소속,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더구나 평양신학교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기초를 놓은 박형룡 박사가 바로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미국장로교회와 한국장로교회와의 연계성을 더욱 높게 한다. 총신대학교는 지난 100년 동안 고수해 온 프린스톤 신학을 통해 한국교회에 바른 신학, 보수주의 정통신학의 정초를 낳았다 말할 수 있다.

구프린스톤 신학은 시기적으로는 1812년의 프린스톤 신학교 개교부터,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찰스 하지(Charls Hodge), 워필드(B. B. Warfield), 메이첸(J. Gresham Machen)의 시대까지를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프린스톤 신학교 설립 시기부터 구프린스톤 신학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메이첸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한 시기 그리고 교단 내의 자유주의자들과의 마지막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 해외선교부까지의 약 120여 년간의 시기를 다룬다.

구 프린스톤 신학이란 이 학교가 설립 이래로 표방해온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포기하고, 그 당대의 사상적 흐름이었던 종교다원주의를 신학교의 나아갈 방향으로 정한 1929년 이전까지의 동 신학교에 주장되고 교수된 신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