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 말세에 기억할 것 7가지 - 출간본

2007.08.1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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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말세에 기억할 것 7가지 - 출간본
선지자선교회
1. 첫째 - 노아 홍수 때와 같이 멸망(마24:37-39)

노아 홍수 때에 모든 사람들이 패역하고 강퍅하고 어리석은 미혹에 들어서 공연히 경쟁하지 아니할 것을 경쟁하고, 영광되지 않은 것을 영광으로 삼고, 가치 없는 것을 가치로 삼아서 분망 하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홍수로 다 멸망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예수님께서 불심판으로 멸망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등한히 여기고 노아 때와 같이 세상의 상업, 공업, 자기의 처소, 자기 가정, 이런 것에 가치를 삼아서 경쟁 할 줄은 알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다 불살라 절단 날 여기에 대해서는 관심 없기를 노아 홍수 때에 관심 없이 지내다가 멸망한 것과 같이 되리라 하는 말씀을 우리가 첫째로 기억을 해야 합니다.

2. 둘째 - 하늘과 땅은 불살라 없앰 (벧후3:7상반절)

둘째로 기억할 것은 하늘도 땅도 그대로 있고 홍수로만 침몰해서 멸망시켰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경건치 아니한 자 곧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땅의 것만 보고 사는 자들이 판정될 그 때까지 하늘과 땅을 보존해 두셨다가 판정이 나면 하나님께서 다 불살라 없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든든하다고 어떤 구변가가 말하고, 어떤 과학자가 말하고, 어떤 위대한 정치가가 말하고, 어떤 도덕가가 말한다 할지라도 하늘과 땅은 의인과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기까지 보존해 두셨다가 마지막에는 불로 다 소멸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셋째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벧후3:8)

셋째로 기억할 것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하셨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심정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의롭게 살려고 고난을 받은 성도 또 의롭게 살려고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영생과 영광의 존영을 어서 누리도록 주님께서 의인을 대우하시는 이 일을 생각하면 하루가 천년같이 길게 여겨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는 것을 볼 때에는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월은 자꾸 지나가는데 강퍅을 그대로 부리고 있고, 세월은 자꾸 지나가는데 엉뚱한 땅의 것만 보고 어리석게 살고 있으니 언제 깨어날 것인가 하는 회개치 아니한 죄인들을 향해서는 천년이 하루같이 빨리 지나가고, 의인들의 곤욕을 생각할 때에는 하루가 천년같이 지루한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러한 긍휼과 자비로써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니 우리는 담대히 안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4. 넷째 -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옴 (벧후3:10상반절)

넷째로 기억할 것은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도적이 오면 자기의 것을 다 빼앗기는 것과 같이 주님의 날이 임하면 인간들의 것은 다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눅21:34에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새나 물고기가 자유 하지만 덫 곧 그물에 걸리면 그때 생명과 자유를 함께 뺏깁니다.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주장대로, 자기 인기대로 언행심사를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물같이 갑자기, 뜻 밖에, 의외에, 재림해 오실 때는 인간들의 자유는 다 속박됩니다. 자유는 다 구금됩니다. 자유가 빼앗겨지는 동시에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주님의 법칙에 준하지 안한 것들은 다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5. 다섯째 -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모든 일이 드러남 (벧후3:10하반절)

다섯째로 기억할 것은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10절에 말씀을 하셨고, 12절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질 때 그때에 나는 소리를 가리켜서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진다' 하는 말씀은 지구 외에도 우주의 하늘은 다 불덩어리가 될 것을 말씀합니다.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 수많은 지구덩어리와 같은 달들, 해들, 태양계의 모든 항성계와 모든 위성들, 모든 유성들이 다 불에 타서 풀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0절에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풀어진다'는 것은 지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각각 여러 모양으로 형체와 색깔들과 종류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것이 다 불에 타 녹아져서 원소화 됩니다. 체질이 풀어진다는 것은 모든 형체가 없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물체들이 뜨거운 불에 녹아져서 원소로 화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일차 창조한 것들이 근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때 불이 타서 모든 것이 다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 그때에 땅위에 인간들이 행동한 그 모든 행동은 낱낱이 다 드러납니다. 모든 일이 다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드러나느냐 하면 둘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모든 불의 불법한 것들이 드러납니다. 또 불의 불법한 것들에게 이용된 것도 다 드러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신론 정치 아래에 머물고 있는 모든 무신론 국가의 모든 국토들도 모든 산천들도 불의에 속한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또 의로운 것과 의에 관련되어서 의에게 이용된 것들은 의로운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실 때는 불의한 만물이라 또 의로운 만물이라 하는 이 두 가지로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다섯째로 기억할 것은 하늘도 불에 타고 땅도 불에 타고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다 불에 타고 다만 의냐? 죄냐? 하는 것으로 드러나서 죄에 속한 것은 그때 불탈 것이요, 의에 속한 것은 불타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노아 때에 강퍅한 멸망할 백성들이 믿지 않는 것과 같이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말씀대로 불에 타 풀어질 것인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언제인지 모릅니다.

살전5:3에는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아이를 배었으면 반드시 해산되는 것 같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악이 관영 했으니 그 관영한 그대로 반드시 다 나타나고야 말 것이고, 또 하나님 말씀에 준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한 사람들의 생애도 반드시 그대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실 때는 인간들의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난다 하셨습니다.

6. 여섯째 - 의로운 것만 불타지 않음 (벧후3:13)

이래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하셨습니다.

그때에 죄는 물질이든지 산천이든지 무엇이든지 불의 한 것은 불에 다 녹아지고 의로운 것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여섯째로 기억할 것은 죄에 속한 것은 그때 다 불탈 것이요, 의에 속한 것은 불타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소망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의로운 것은 다 남는다고 하셨으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그의 몸과 그의 마음과 그의 영이 다 의로운 것으로서 불에 멸망 받지 않고 새 나라를 바라보고 새 나라에 가서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나라에 갈 때 그때를 가리켜서 부활이라고 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부활할 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영도 그때에 더욱 자유하고, 마음도 그때에 다 자유하고 변화되고, 몸도 다 변화되어 사람들이 변화를 받습니다. 그때 변화 받을 때에 예수님의 공로를 일반적으로 꼭 같이 입은 것은 영은 꼭 같이 입었기 때문에 영의 구원은 꼭 같을 것이고 또 몸의 구원도 다 같을 것이나 다만 다를 것은 마음과 몸의 기능이 다릅니다.  

지금 오늘에 살아난 심신의 기능이 부활할 그때에 의의 나라에 거하게 되고, 지금 살아나지 못한 심신의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사망하게 됩니다.

중생 된 영도 오늘에 그의 실력을 갖추어서 자기의 심신을 구출해서 심신을 통치, 지배, 화평을 이룬 그 영은 그 심신의 기능으로 부강한 것을 가졌지만, 오늘에 심신의 기능을 구출하지 못하면 마음과 몸은 신령한 것으로 변화는 받았지만 그 기능은 다 멸망 받고 말았기 때문에 기능 없는 심신의 부활로 아무런 이용할 소유가 없는 영으로서 새로운 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불탈 때도 불타지 않는 실력으로 마련해야 됩니다. 이것을 계시기관으로 보여주셨으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갔으나 불이 해하지를 못하였고 그들은 승리하였습니다.

7. 일곱째 -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벧후3:11상반절)

일곱째로는 벧후3:11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하는 말씀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하는 것은 어떠한 생활을 해야 마땅하뇨? 어떠한 행동을 해야 마땅하뇨? 어떠한 일을 해야 마땅하뇨?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절단 나는데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하시고 그 다음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과 경건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늘 매일의 생활에서 기억할 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입니다.

○ 거룩한 행실(벧후3:11하반절)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거룩한 행실이라 것은 진가를 구별해서 옳은 것을 잡은 행실을 가리켜서 거룩한 행실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현실을 만나서 한 행동 한 행동하는 것은 돈보고 행동하고, 일 보고 행동하고, 만물보고 행동하고, 사람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행동 한 행동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하냐?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라 하셨느냐? 하지 말라 하셨느냐? 이것을 구별해서 하지 말라는 일은 안 하고 하라는 일은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일이 거룩한 일이 되겠습니다.

언행심사를 하는 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의 내 중심의 언행심사냐?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대속 공로를 받는데 합당한 언행심사냐? 이것을 구별해서 아닌 것은 버리고 합당한 것을 취하는 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하나 하나에 '이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다!' 반드시 한 행동이라도 구별해서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하나는 하나님 뜻에 합당하다고 해서 그만 구별하는 것을 버려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 하는 구별성을 꼭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아니다! 맞다! 해서 옳다 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또한 옳다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옳지 않다 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언행심사의 행동에서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취해라' 하는 이것이 거룩한 행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옳은 것만 주어서 옳은 것만 취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버리고 취해라'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우리의 언행심사의 움직임은 이것은 아니다 버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 취합니다. 그러므로 버리고 취하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거룩한 행실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 바쁜 사람입니다. 우리는 거저 밥만 먹고, 옷만 입고,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하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 불탈라나? 내일 불탈라나? 오늘 죽을라나? 내일 죽을라나?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제일 중대한 관심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는데 이것은 틀리냐? 옳으냐? 구별해서 이것은 틀렸다! 이것은 옳다! 하여 틀렸다 하는 것은 먼저 버리고 그 다음에 옳다 하는 것을 취하는 범사에 틀렸느냐? 옳으냐? 이것은 죄냐? 의냐? 하나님의 뜻에 거리끼느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냐? 이렇게 거리끼는 것부터 먼저 찾아서 거리끼는 것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찾아서 가지는 거룩한 행실을 해야 되는 것이 우리들이니 우리는 참 바쁜 사람들입니다.

○ 경건함으로 (벧후3:11하반절)

또 경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것도 바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경건을 평생 생각지 않는데 우리는 밤낮으로 마음이 무겁게 눌리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옳게 바르게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 구원을 위해서 살고, 자기의 하늘나라 영광을 위해서 살기 쉽습니다. 그것은 경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의로운 행위는 될지라도 경건은 되지를 못합니다. 영감행위는 될 지라도 경건은 되지 못합니다.

경건은 주님을 위한 영감 행위와 주님을 위한 진리 행위를 가리켜서 경건이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건을 늘 생각해서 경건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3:12하반절)

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셨는데 이것도 안 믿는 사람들은 다 버렸기 때문에 살도 찌고 잠도 잘 오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참 번민이요 고민이요 쉴 사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하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님의 재림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이 되기까지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모든 계명을 지켜서 살려고 할 때 세상에서 계명 지키는 생활은 너무도 괴롭고, 유지하기가 괴롭고, 보존하기가 괴롭고, 계속하기가 괴롭기 때문에 회개하지 아니한 형제를 생각할 때는 주님의 재림이 아직 와서는 안 되겠다 하는 이런 마음이고, 그것만 생각지 않으면 어서 주님께서 재림했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심정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볼 때는 '주님의 재림이 좀 더디 왔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지만, 자기의 모든 형편을 생각할 때는 '어서 재림하셨으면 좋겠다' 이럴 수 있는 데까지 우리는 준비를 해야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하는 말씀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을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을 소망한다는 것은 그 날에 나타날 것 외에는 다 필요 없고, 그 날에 나타나지 안 할 걱정은 그까짓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그 날에 나타날 걱정 그것이 내 걱정이고, 그 날에 나타날 담력도 그것이 내 담력이고, 그 날에 나타날 두려움도 그것이 내 두려움이고, 그 날에 나타날 영광도 그것이 내 영광이고, 그 날에 나타날 수치도 그것이 내 수치이고, 그 날에 나타날 후회도 그 후회가 내 후회이지 땅 위의 것은 다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 날에 어찌 되느냐? 그 날의 것만이 내 소망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 날을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그 날의 것이 영원입니다. 좋은 것도 그 날의 것이 영원이요, 나쁜 것도 그 날의 것이 영원이기 때문에 그 날에 나쁜 것을 오늘에 회개하고, 그 날에 부끄러울 것을 오늘에 회개하고, 그 날에 후회되는 것을 오늘에 후회하고, 그 날에 필요한 것을 오늘에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날의 해독이 영원한 해독이요, 그 날의 가치가 영원한 가치요, 그 날의 수치가 영원한 수치요, 그 날의 기쁨이 영원한 기쁨이요, 그 날의 영광이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에 그 날의 것만을 가치로 둡니다. 그러면 그 날의 것만 가치로 둔 그것을 오늘 네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네가 이루도록 하라! 네가 현실 생활에서 현실만 보고 살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은 그 날에 어찌 되느냐? 그 날을 생각하면서 현실 생활을 살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라' 이것이 일곱 번째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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