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7. ■ 교회의 찬송 - 출간본

2007.08.0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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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 교회의 찬송 - 출간본
선지자선교회
■ 찬송에 관한 교훈

(출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서론>

찬송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세상에는 노래가 있고 또 찬양과 찬송이 있습니다. 다른 이종교에서도 찬송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다 노래입니다. 노래와 찬송의 구별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찬송함이 찬송이 되고 그 외에 자기를 기쁘게 하는 그런 것은 전부 노래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찬양 찬송은 하나 뿐이요 그 외의 것은 다 노래들입니다.

다른 이종교에서 자기 교주를 찬양한다 찬송한다 이렇게 말들은 하지만 우리가 찬양하는 찬송과 구별하는 것은 자존자 조물주 주재자 되신 그분을 찬송함이 있고, 그 외에는 석가모니를 찬송 찬양하든지, 마호메트를 하든지, 공자 맹자를 찬양하든지, 그 무엇을 찬양하든지 간에 그것은 피조물을 찬양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밀히 말하면 자기를 찬송하는 것이요 자기 주관을 칭송하고 또 찬송하는 일들입니다.

<본론>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 할 것 다섯 가지

①하나님의 크심을 찬송

첫째는 하나님의 크심을 내가가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성이든지, 영원성이든지, 불변성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이든지, 이렇게 하나님의 크심을 우러러보면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인간들 기쁘게 하는 것 아닙니다. 찬송이 노래가 되면 마귀 역사가 되고 맙니다.

②하나님의 긍휼을 찬송

둘째는 그 크신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그 면을 내가 감사하면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크심의 은혜로 나를 만들어 주심을 찬송

셋째는 그분의 크심이 내게 와서 모든 것을 은혜로 베풀어주실 뿐만 아니라 직접 오셔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어지도록 나를 만들어 주시는 그 은혜에 대해서 당신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④만들어진 자기를 보고 찬송

넷째는 나를 보고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죄, 칭의, 화친을 주셔서, 아주 못 쓸 더러운 자를 흠과 점이 없는 하나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들어 놓으신 그 자기를 보고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⑤예정 창조 섭리에 대해 찬송

다섯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이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이것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결론>

찬송은 하나님의 온전으로 내가 온전해지는 것

하나님 그분을 높이는 그 높임의 은택으로서 내가 존귀해지고, 하나님의 온전으로 내가 온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편에 '나는 흠과 점이 없습니다 당신이 살펴보십시오 조금만큼이라도 부족함이 있는가!' 당신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으로 우리 영이 완전해진 것입니다. 영이 흠과 점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찬송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자기가 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과 또 당신이 나를 위해서 모든 예정과 창조와 보존과 섭리를 찬양하는 것과 또 하나님의 크심과 긍휼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첨부>

■ 찬송과 찬양

(창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 찬송(讚頌)

찬송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이라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될 때에 찬송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한 찬송은 찬송이 아니라 노래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20)'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그 찬양이 진정한 찬송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을 힘입어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 이기지 못했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입으로 찬송가를 불러도 하나님께 진정한 찬송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데도 예배 시간에 찬양대가 찬송의 대상이 누구인 것과 또 찬송하는 그 찬송성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찬송가를 부릅니다. 그런 중에 더 염려스러운 것은 찬송성이 있는 가사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음악성 위주가 되는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은 찬송과 찬송관에 대한 속화입니다.  

2. 찬양(讚揚)

(삼하18: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찬양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찬송 자체를 가리켜서 찬양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조심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다 할지라도 그 찬송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면 찬송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우리 인간들끼리의 찬양은 찬송이 아니라 노래가 될 뿐입니다.

3. 찬송과 찬양의 차이점

찬송은 하나님께 찬송이 된 면을 말하고,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면을 말합니다.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찬송이요,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영화로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찬송 자체가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우리가 찬양하므로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찬송이요,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찬양하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자체가 찬양입니다. 아래의 성구를 상고해 보면 찬송과 찬양의 성격을 구별 할 수 있습니다.

(시66:2)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시101:1)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시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면이 되겠고, 찬양은 우리의 면이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찬송은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 면을 말한 것이 되겠고,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면을 말한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과 찬양이라는 것은 그 내용은 같은 것이나 나타내는 면에서 둘로 나누어 표현한 것인데 곧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과 찬송을 하는 우리와의 관계에서 각각 별도로 초점 한 면을 찬송과 찬양으로 구분을 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 아멘

1. 아멘

아멘은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와 또 기도 할 때에 응답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민5: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신27: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2. '아멘으로 응답' 성구

원합니다.

(왕상1:3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찬양합니다

(대상16: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느5:13)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느8: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시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

이루어지이다

(렘11: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이같이 하옵소서

(렘28: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이 영원히 있사옵니다.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고전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러합니다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렇게 하시옵소서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셀라

(삼상23:28)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1. 셀라하마느곳

'셀라하마느곳'은 '구원의 반열이 되는 자에게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반열이 되는 다윗을 사울 왕에게서 구원시키시고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했습니다.  

2. 셀라

'셀라'를 성경적으로 해석하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곧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시71:3) 주는 나의 무시로 피하여 거할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산성이심이니이다

3. 하마느곳

'하마느곳'은 '구원의 반열'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구원의 반열입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셀라하마느곳'이라는 말은 '셀라'와 '하마느곳' 두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셀라'에 '하마느곳'이 있고 '하마느곳'에 '셀라'가 함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 섰을 때에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구원의 반열 되는 자'에게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알리는 이름이 '셀라하마느곳' 입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자에게 여호와는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이 '셀라하마느곳'입니다.

4. 시편의 '셀라'

시편에 보면 찬송한 후에 '셀라'라고 화답하고 있습니다. 이 '셀라' 역시 삼상23:28 '셀라하마느곳'이라고 칭한 이름 중 '셀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곧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니, 피난처 되시고 구원의 하나님이심이 '맞습니다!'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루어지이다!' 라고 화답하는 말이 '셀라'입니다.

그렇기에 '셀라'는 '아멘'과 같은 성격의 뜻으로 쓰인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은 말씀과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는 것이요, 셀라는 찬송에 대하여 화답하는 것입니다.

5. '셀라' 성구

(시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32: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셀라)

(시46: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시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48: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 (셀라)

(시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

(시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시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66: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6. 원어 참고

'셀라하마느곳' 곧 '셀라함마흐레코트'는 '셀라'와 '마할로케트'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5555 셀라함마흐레코트) 분리하는 험한 바위
(5553 셀라) 바위, 절벽
(4256 마할로케트) 분배, 구분, 반열

7. 성경적 해석

1차로 삼상23:28 말씀을 성경적으로 해석, 2차로 삼상23:28 전후 말씀으로 보조 해석, 3차로 성경 전체 말씀에 연결시켜 해석하여 신구약 육십육권 전체 말씀에 상치가 되지 않도록 해석, 4차로 성경 원어는 성경 진리를 나타내기 위한 문자임으로 문자적 범위 내에서만 참고했습니다.

■ 복음성가

1. 복음성가는 찬송성이 부족

공회 신앙노선 곧 초대교회 신앙노선을 가진 교회는 복음성가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성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성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찬송성이 충만한 찬송가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2. 一級水 같은 찬송가를 보수

예를 들어 一級水 물이 보존되어야 그 아래 二級水 물이 보존되고, 二級水 물이 보존되어야 그 아래 三級水 물이 보존됩니다. 역설하면 一級水 물이 흐려지면 二級水 물은 더 흐려져서 三級水로 전락이 되고, 그로 인해 三級水 물은 더 흐려져서 먹지 못하는 四級水 물이 되어 공업용수가 되어버립니다.

이와 같이 공회 신앙노선 곧 초대교회 신앙노선을 가진 교회가 찬송성이 흐려지면 일반 진영은 더 흐려지고, 일반 진영이 더 흐려지면 더 흐려진 진영은 더욱더 흐려져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교회 전체가 찬송성이 흐려져서 속화 타락의 길로 걸어가게 되기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 곧 초대교회 신앙노선을 걷는 교회는 복음성가를 배제하고 一級水 같은 찬송가를 보수해야 합니다.

공회 신앙노선 곧 초대교회 신앙노선의 교회는 교리신조와 행정이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신앙노선이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찬송가 면에서도 하나님중심 성경중심의 一級水 다섯 달란트를 주님께로부터 받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 곧 초대교회 신앙노선의 교회는 찬송가에 있어서 복음성가를 배제해야 합니다.

3. 순생순교의 신앙노선 달란트

공회 신앙노선이 혹 복음성가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주님께 다섯 달란트를 받아 놓고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의 이를 남기려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를 대단히 경계하기 위해서 복음성가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성가를 부르는 교리신조의 신앙으로는 순생 순교의 신앙걸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가인의 제사와 복음성가

(창4: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안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가인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 없이 제사를 드린 것 아닙니다. 제물을 드렸으나 그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 제 중심으로 제사를 드렸고 또 제 중심의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을 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찬송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열심 없이 드리는 것 아닙니다. 열심히 드렸으나 그 찬송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찬송과 열심을 받지 않으시는 것은 찬송이 아니라서 안 받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아니라서 안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제 중심으로 찬송을 드렸고 또 인간 제 중심의 열심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 뜻대로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송을 받지 않으시는 이유는 주님의 대속을 입고 찬송을 드려야 하는데 대속을 벗고 찬송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활 대속을 입고 살려면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교회가 전투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성가를 들고 전투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복음성가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와 싸우는 전투교회라면 복음성가를 부를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터의 군인과 산보 가는 풍류객이 부르는 노래의 성격은 노래는 다 같은 노래이나 그 성격이 실로 다른 것입니다. 하나는 풍류이고 하나는 생사를 걸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유치신앙이 많다보니 그 유치의 다수 목소리가 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투교회의 장성한 신앙이 많지를 못합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성가를 열납 받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찬송은 찬송이나 대부분 인간중심의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第二의 일제 신사참배나 6,25와 같은 환란이 오면 복음성가를 들고 그 환란을 이길 수 있겠는지 자문자답을 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나 오늘이나 산보 신앙은 흥을 거리는 복음성가를 애창하다가 환란을 만날 것이요, 전투신앙은 찬송가를 애창하면서 환란을 예비할 것입니다.

복음성가를 선호하고 또 복음성가를 불러도 은혜가 넘친다고 말하는 신앙은 자칭 산보 가는 신앙이라고 자신의 가슴에 그 이름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또 이름표 밑에 코 수건을 하나 더 붙인 것이나 같겠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책 받고 벌받은 것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되 바로 섬기지 않았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았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책 받고 징벌받은 것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징책 받고 벌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바로 드리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받은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책 받고 징벌 받은 것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은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바로 지키지 않았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은 것입니다.

신약 성도 우리들이 주님께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은 주님을 섬기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되 바로 섬기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입니다.

신약 성도 우리들이 주님께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되 바로 드리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입니다.

신약 성도 우리들이 주님께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은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벌받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날 주일을 지키되 바로 지키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입니다.

신약 성도 우리들이 주님께 징책 받고 징벌 받은 것은 찬송을 드리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드리되 바로 드리지 않는다고 징책 받고 징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았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벨의 제사를 드리고 싶지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싶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와 아벨의 제사
복음성가와 가인의 제사

너무 과하게 연관을 시켰다고 여기시는지요?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 춤(율동)

(출15: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1. 춤의 성경적 정의

성경에서의 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몸으로 찬양하는 것을 춤이라 하셨습니다.

2. 찬송과 춤의 차이

우리가 보통적 표현으로 '찬송'이라 할 때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입'으로 찬송하는 것을 말하고, '춤'이라 할 때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몸'으로 찬양하는 것을 춤이라 합니다.

3. 다윗의 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 왕에게 말하기를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6:20)'했습니다.

(삼하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은 미갈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했습니다.

(삼하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또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삼하6;22)'했습니다.

(삼하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다윗이 한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천하게 보인 것이지 사람들 앞에 천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천하게 보이는 것 곧 겸손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겸손한 자를 사람들 앞에서 높이시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4. 사울 왕의 교만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높이려 하기 때문에 천해지고 망해지는 것입니다. 사울 왕 같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와 싸워 승리한 것은 전적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돌렸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하나님께 배척을 받아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5. 다윗의 겸손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올 때 사울 왕과 달리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것을 입으로 외치고 또 몸으로 외쳤습니다.

그렇기에 '입'으로 외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찬송'이 되겠고, '몸'으로 외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춤춘 이유를 말한 것이 삼하6;21이 되겠습니다.

(삼하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6. 오늘 교계의 율동 춤

오늘 이 시대의 교계가 가지는 대개의 율동 춤은 몸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춤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천하게 곧 겸손하게 여기는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그 감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찬송성을 가진 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율동은 인간 저들을 높이기 위해서 단합하는 바벨 성격적 춤이거나 아니면 인간 저들끼리 즐기기 위한 오락적 춤입니다. 그러므로 율동은 춤은 춤이나 그 춤은 속화된 인간중심의 율동 춤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에서 계시하는 성경적 춤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게 되면 오늘 율동이라는 것은 대개가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 춤을 추는 춤이 아니라, 인간 저들끼리 노는 신명풀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7. 성경적 춤

성경적 춤이라면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그 찬송하는 그 모습이 바로 춤이겠고, 또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신앙생활 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앞에 올리는 춤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춤이라는 것은 한 면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고, 또 한 면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를 천하게 겸손하게 여기는 것이 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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