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1987. 6. 11. 새벽 <목>

 

 본문: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하는 말씀은 이 세상의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해서 가르치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권찰님들이나 또 반사 선생님들이나 뭐 공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는 일이든지, 사적으로 가르치는 일이든지 여게는 성경 이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방 사람들도 가르치는 것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성경 도리 가르치는 데 한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나 크게 주의해야 될 것 있는 것은 무엇이냐? 여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그러면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두 사람을 다 여게 말합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은 뭣을 말하는가? 이것은 성경대로 믿는 도리 가르치는 걸 가리켜서 모든 좋은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뭐 세상 그런 걸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대개는 이 성경을 떠나서 가르치는 그것은 사람을 멸망케 하는 해독이 있는 그런 가르침이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참된 유익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 동안에는 그런 것이 있다 할지라도 죽었다가 부활해서 심판받아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갈 때까지를 범위를 잡아 가지고서 계산하면 다 무익한 말입니다. 좋은 말이 아닙니다.

모든 좋은 것이라 말은 그 가르친 그것을 가리켜서 모든 좋은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는데 가르친 것으로 좋은 것은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으로 주신 이 믿는 도리, 어떻게 우리가 믿어야 되느냐 하는 믿는 도리를 가르쳐 주신 이 도리는 모두 다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 좋은 것인데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말은 함께 행하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자도 자기가 행함을 떼놓고 가르치지 말고 또 가르침을 받는 자도 가르침 받은 대로 행하면서 가르침을 받아라. 가르치는 자도 행하면서 가르치고 행한 걸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자도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하면서 가르침을 받아라 이것을 말씀합니다.

물론 교훈이라 하는 것은 교훈받고 난 다음에 그 교훈대로 행해야 유익이 있고 행하지 안하면 유익이 없고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도리는 가르치는 자가 행하지 아니하면서 가르치는 것이나 또 가르침을 받는 자가 행하지 아니하면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크게 불행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무슨 불행스러운 일이 있는가? 그다음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다른 사람이 너를 속일 것이 아니라 네가 너를 속이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네가 너를 속이지 말아라. 자기는 자기대로 자기를 유익되게 하려는 것이 이것이 생의 본능입니다. 어짜든지 모든 사람은 그래도 자기대로는 심신을 다 기울여 가지고서 자기 유익되게 복되게 하려는 그것은 생의 본능이요 공통입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다.

가르치는 자가 행하면서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과 또 가르침을 받는 자가 행하지 아니하면서 가르침을 받으면 크게 위험한 일이 있다. 멸망하는 일이 있다.

뭐이냐?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게 된다.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게 된다.

스스로 속인다는 그 말은 자기가, 그다음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은 두 길뿐인데 육신으로 살든지, 육신의 생각으로 살든지 영의 생각으로 살든지, 영의 생각이라 말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의 생각으로 살든지 육신의 생각으로 살든지,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은 부패성으로 산다는 말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은 영육으로 된 것이 사람인데 영은 벌써 중생돼서 성령으로 더불어 나뉘지 못하고 언제든지 함께 동하고 정하고 같이 있기 때문에 나뉘지 안하고 언제든지 함께 이렇게 있고 행동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사는 것은 곧 중생된 영으로 사는 것이요 중생된 영으로 사는 거는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으로 사는 생활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심신이 주장해 가지고 자기를 사는 생활이든지, 영은 주격이요 심신의 그 영의 소유격인데 이 꺼꾸로 돼서, 주격인 영이 성령으로 더불어 함께 해 가지고 자기의 모든 행동을 주장해서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이 심신 이것이 주장이 돼 가지고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안 믿을 때나, 또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나, 또 믿는다고 하는 믿는 사람 가운데도 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면 육으로 사는 사람, 육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면 영으로 사는 사람, 이 둘이 있는데 영으로 사는 것은 일시는 볼 때에 그것이 이해 못 해서 손해가는 것 같다 할지라도 점점 시일이 갈수록 그것이 생명이 되고 평강이 되고 성공이 되고 영광이 되어지지마는 이 육신이라는 이거는 소경 한가지입니다.

육신이라 하는 것은 그 육신의 총명이 있고 지혜가 있고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다 하지마는 이 육신 이것은 최고가 양심이요 그다음에는 이성인데, 이성과 양심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좁은 범위인 인간 범위만 제가 알고 인간의 행동 범위만 알지 인간을 초월한 영원이나 무궁이나 또 모든 존재의 전체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릅니다. 거기 대해서는 깜깜한 소경들입니다. 완전한 소경이라.

소경인데 이 두 길 중에 한 길이 우리들이 걸어가는 길인데 육으로 안 살면 영으로 살고, 영으로 안 살면 육으로 사는데 네가 가르치는 사람이 행하지 안하고 가르치면 육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또 네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가르침은 받으면서 행하지 안하면 너는 육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거는 필연적입니다.

이거는 안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말은 네가 육으로 살지 말아라 그말이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말은 네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워 가지고 배운 대로 지켜 행하는 데서 깨달아지고 자꾸 더 믿음이 생겨지지 배운 대로 행하지 안하면은 가르치는 것이 너에게는 오랑캐가 되고 가르치는 것이 너에게는 대적이 되어지기 때문에 가르침의 반대가 네가 된다.

반대가 되어지고, 가르치는 너도 행하지 안하고 가르치면 가르치는 교훈과 네가 반대의 사람이 점점 되어지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암만 성경을 가르침을 받았다 할지라도 행하지 아니하면 너는 가르친 이 하나님의 도리의 반대 사람이 된다. 이거 기이한 것이 하나님이 이래 기이하게 해 놨기 때문에 이렇게 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가 자기가 행하지 않으면서 가르치면 가르친 그것의 결과로써 자기가 자기 속이는 그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의 주권자의 그 불변자의 여호와의 계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도 그 사람이 아무리 바로 가르치고 잘 가르친다 할지라도 행하지 아니하면서 가르치면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너는 육으로 돌아가서 결국은 네가 멸망을 받게 된다.

또 가르침을 받는 자도 가르침을 받는 그것을 받은 그것을 아무리 자기가 똑똑히 기억하고 단단히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할지라도 그대로 네가 실행하지 안하면 그 가운데에 진리는 네 구원이 되는 진리는 모르게 된다. 권능이 되는 진리는 모르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육체로 돌아가서 네가 너 속인 사람 되고 만다 요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동시에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서부교회 목사는 서부교회 교인들에게 뭐 가르치는 입장에만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말에서도 가르침을 받고, 또 참 정신 없는 그 미친자와 같은 그자의 말에서도 가르침을 받고, 또 성경을 읽는 데서 가르침을 받고, 자기가 또 설교를 하면서도 실은 속으로 한편은 하나님에게 붙들려서 가르치고 자기도 거게서 모든 청중과 같이 가르침을 받는 그런 경험을 우리가 잘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쨌든지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주의할 것은 행하면서 가르치고 행한 것 가르치고, 행한 것 가르치고 행하면서 가르치고 행할 것 가르치고. 제가 행한 것 좋고, 또 행하면서 그다음으로 좋고, 앞으로 행할 각오를 가지고서 행할 것을 가르치고 이래야 자기도 구원하고 다른 사람도 구원하게 되지 이것이 없이 가르치는 자는 결국은 영의 생활 아니면 육의 생활이기 때문에 육체의 생활로 돌아간다. 다시 말하면 자기 주관 생활로 돌아간다.

자기 주관 생활로 돌아가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가 자기 망치는 일 되지 다른 사람 해치지 못하고 자기 해한 일이 된다. 자기 속이는 일이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것을 기억하면서 다음으로 또 내일 아침에 이 말씀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가서 읽어보고 거기 대한 뜻이 무엇인가 이래 생각하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배운 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 도리는 전부 무슨 도리냐? 이 도리는, 옳은 도리는 영이 주격되고 육은 영의 소유격으로서 육은 영에게 순종하고 또 영은 성령에게 순종해서 이렇게 살도록 이래 하는 것인데, 이러니까 영은 옳은 것은 살리고 삐뚤어지는 것은 죽이는 것이 이 교훈이기 때문에 안 행하면 옳은 것을 교훈하는 교훈의 대립이 되어지는 그 일이 되니, 다시 말하면 살릴라 하는 그 살림에 대립이 되니까 죽는 일이 되어지기 때문에 자기는 모르지마는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가 맺고야 만다 하는 것을 거기다 말씀해 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제가 이번에 공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지난 공과를 그것을 물론 외우고 있지마는 또 더 외우면서 명상하고 기도하면 자기가 곧 행하지 못했으면 행할 그 회개, 후회가 돼서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또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될 것이고 점점 이래 되니까 그래 가지고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자기도 살고 학생들도 살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공과를 잘 숙달시키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삼십 분 기도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이대로 이걸 빼지 말고 꼭 자기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의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큰 환난과 위험을 위해서 하루에 삼십 분 기도 이것을 꼭 하도록 하십시오.

이것도 어짜든지 뭐 삼십 분 기도하니까 거게서 반동해 가지고 ‘나는 이십 분 기도하기로 한다. 그뭐 십오 분 기도하기로 하겠다.’ 한 그것도 어쨌든지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게 일치가 되지 안하면은 거기에 위험성이 많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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