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목회충성

 

1989. 7. 26. 수저녁

 

본문: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상반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지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묵상 기도>  이 시간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밤도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한번  더 주님 앞에 은총을 입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구속 받은  성도들 남녀 노소의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이 간섭해 주시고 성령님으로  감동시켜 주의 대속의 공로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 견고한 소망을 주시고 좌우에  이한 날선 검이신 진리의 말씀으로 세밀히 구별하여 저들의 걷는 걸음이 다  온전하며 주님의 약속하신 모든 은혜와 축복을 온전히 받기에 능한 은혜를  주시옵소서. 정확히 확실히 깨닫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대로 단행할 수  있는 소망의 견고함을 주사 본능적으로 전심 전력을 기울여 실행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깨달음과 소망의 영감으로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겸손에 대해서 요즘에도 몇 번 해석을 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여게 젊은 자들이라는 말씀은, 젊은 사람도 장로가 있고 또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도 젊은 축에 들어가는 사람 있습니다.

 여게 젊은 자들이라는 것은 신앙적으로 젊은 자들이요 또 경험과 체험적으로  젊은 자들입니다. 신앙 수양을 받은 깃이, 연조가 그렇게 깊지를 않는 그런  사람들을 다 가리켜서 젊은 자들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젊은 자들아' 그러면 신앙이 아직까지 어린 사람 신앙 생활 얼마 하지 못한  사람, 또 초새 신앙 생활을 해도 신앙이 아무 경험과 체험이 없는 그런 어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말해서 젊은 사람들이라, 신앙에 지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다 합해서 젊은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여게 장로들은 내나 장로님들과  목사님, 성직자들을 가리켜서 장로들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신앙에  어리고 젊은 사람들은 신앙에 많은 경험과 체험과 연단을 받아서 장성한 그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고 순종해라. 순종하고 복종해라.

 그 이유는. 장로들이라고 젊은 뭐 신앙 어린 사람들이라 해서 무조건 복종하고  무조건 또 지도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은 안 됩니다. 여게 장로니 젊은  사람이니 하는 것은 신앙에 어린 분들을 젊은이들이라 말했고 장로들이라 말한  것은 다 신앙에 장성한 분들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장성한 분들은 장로가  아닐지라도 내나 여기 장로 축에 든 계산이 됩니다.

 이래서.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자기가 신앙 걸음을 걸어갈 때에 혹은 교회서  단체로나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어데 있는지 그것을 바로 찾아서  알기가 어렵고, 신앙에 장성한 분들은 그래도 젊은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가 쉽기 때문에. 너보다 신앙에 많은 경험과 체현이 있고 신앙에 장성한  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네가 범사에 교회에 무슨  단체 일을 하든지 서로 관련성 있는 그런 일을 할 때에 젊은 네가 자꾸 주장을  해 가지고 날뛰고 그렇게 하지말고 신앙 선배들에게 네가 순종하고 복종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장로라고 해서 그렇다는 것보다도 나이가 적으니까  나이 많은 분에게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런 것을 여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신앙에 장성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가 능하고 또 신앙에 어리고  젊은 사람들은 경험도 없고 체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가  어려우니 바로 잘 찾는 그런 신앙 선배들에게 네가 순복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게서 딴데로 탈선되면 안 됩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자기가 신앙에 어떤 지도 위치에 있다고, 또 신앙 연조가  깊다고, 또 그 교회에 와서 신앙 생활 한 세월이 많다고 그런 것을 상대하지 말고  다만 장로 젊은 사람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장로라 하는 것은 신앙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 신앙으로 장성한 사람들이 잘 찾기 때문에 신앙으로 장성한 그 사람들의  찾아서 인도하는 것을 따라서 순복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개인 생활도 신앙 선배에게 지도를 받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그 개인  생활보다도 교회 무슨 단체 생활, 교회 무슨 단체 생활 할 때에 꼭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너희들이 되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잘못하면 교회라 하는 것도 인간 모인 것이 되기 때문에 인간 수가 많으면, 요새  민주주의라고서 모두 이라고 있는데 숫자가 많으면 세력을 가지고서 숫자 많은  데를 따라서 움직이기 쉽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뭐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고 찬성하는 표수가 앞서면 그것이 권리입니다.

 요새 지금 뭐 대통령도 대통령 권리를 부리는 것은 표를 제일 많이 얻었기  때문에, 또 둘째로는 OOO씨가 표를 둘째로 많이 얻었기 때문에 둘째로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셋째로는 OOO씨가 표를 그 다음에 셋째로 많이 얻었기 때문에  그렇고 넷째로는 또 OOO씨가 넷째로 표를 많이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세도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찬성하는 숫자가 많은 데 따라서 힘을 삼아 가지고 하는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민주주의로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이오.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의견을 모아서 제일 많은 사람의 의견을 따라서 그것을 가치로 삼아서  가지고 그렇게 가지 말아라.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신앙의 장성한 자들에게 순복하라.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많은 신앙 경험과 체험이 있고 또 성경도 잘 알고 또 신앙 생활 한 지가 오래  되고 이랬으니까 그분들에게 순복하라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인 진리와  영감에 순복하라 하는 말입니다. 요걸 꼭 잡아야 됩니다.

 이것을 바로 잡지 안하기 때문에 장로들은 밑에 교인들에게 장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또 젊은 사람들은 '장로면 뭐 제일 이냐?' 하면서 반박하고  장로들 말을 잘 듣지 안하고 그렇게 하는 그런 폐단이 있어서 참 교회들이 점점  부패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래서, 장로돤 사람들은, 신앙의 선배된 사람들은 말이오. 장로된 사람들은,  신앙의 선배된 사람들은 신앙에 아직까지 어리고 후배되는 그런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찾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장을 하고 또 인도를  하고 지도를 해야 되지,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신앙 생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많이 순종해 봤고 경험해 봤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능숙하니까  그러니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 찾기에 능숙한 신앙 선배들, 신앙에 장성한  장로들에게, 목사들에게 순북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만일 여기 장로라 하면 목사들도 장로요 장로도 장로요 장로나 목사나 성경에는  같은 것으로 그렇게 말씀을 해 놨는데 장로 목사가 성령하는 것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되느냐 하는 요것은 절대 아닙니다. 무조건 순종하면 안 됩니다. 장로  목사들이 말하는 것이 진리에 틀렸다고 그렇게 생각이 될 때에는 당장에 그것을  말을 해 가지고서 틀린 것을 성경을 가지고 말을 해서 그걸 고쳐야 하고  말하다가 틀리지 안했으면 제가 다시 복종해야 됩니다.

 장로들과 신앙 선배들이 말하는 것이 성경과 일치되고 성경에 삐뚤어지지  안했을 때에는 그 인도를 하나님의 인도인 것을 알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듯이  그렇게 복종해야 됩니다. 자기 신앙 선배가 자기를 인도할 때에 그게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거역하면 막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인 것을 자기가 알고 '신앙 선배가 나에게 지도하는 지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다. 내가 들어보고 내가 생각해 보니까 맞다 이러면 하나님이 그  장로를 통해서 나에게 지도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나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 순종하고 이 순종에서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나는 순종해야 되겠다.' 하는  요런 생각을 가지고서 순종해야 합니다.

 장로라는 사람이 새운 명의와 또 간판 이런 지위 이것에게 복종하라 말이  아니고 장로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능숙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 너거는 잘 오르니까 거기 따라서 순종해라.

 그러면, 순종하면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다인데 만일 장로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하고 잘못 깨달아서 지도했다고 하면은 그 벌은 큽니다.

야고보서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많이 스승되기를 원치 말아라. 스승된 자들은  받을 심판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든지 신앙의 선배들은, 여기 구역장들도 신앙의 선배들이요,  권찰들은 '또 이제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신앙의 선배들이요, 반사들도 학생애게  대해서는 선배들이요 장로의 위치에 있는 것이요 장로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들은 그 학생들에게 어짜든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야 가지고 그대로 지 도해야 되지 제가 반사이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지도해도  된다고 생각하다가는 큰 화를 만나게 됩니다.

 보면 교회에서도 청년회, 또 뭐 남녀 전도회, 또 학생회 이런 거 많이 있어  가지고서 그런 것으로 자기는 신앙 지도하는 위치를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지도하는 것은 제 욕심대로 지도를 합니다.

 제 욕심대로 지도해 가지고 오히려 그래 가지고, 지도해서 인도해 가지고 저  은밀한 아주 한적한 산골로 데리고 가 가지고서 실컷 죄만 짓는 것들 이런 것들  많기 때문에 우리 교회서는 학생회를 제가 숭상을 안 했습니다.

 제가 학생회 말라 소리도 안 했습니다. 안 하고, 학생회들의 행위에 따라서만  말하고 자꾸 진리 옳은 것만 말하니까 저희들이 모이는 것이 요렇게 성경대로  옳게만 할라 하니까 학생회 모여봤자 아무 재미가 없으니까 저절로 없어졌습니다.

 서부교회 학생회가 부산 시내에서는 제일 학생회가 숫자가 많고 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없애라 하지 안했는데도 자꾸 '너희들이 옳은 것. 나가서  모이면 안 된다. 이런 일 하면 저런 일 하면 안 된다' 나쁜 것만 자꾸 그런 것  하지말고 바른 신앙 생활 하라 하니까 그뭐 그렇게 모여봤자 죄짓기 위해서  모이는 재미인데 죄를 짓지 마라 하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학생회는 다 없어지고  말았어.

 이것도 어떤 부모네들은, 아이들이 학생회를 가면은 아이를 완전히 버려서 참  구원을 절단내는 것인데 이 부모네들은 그것을 모르고 아이들 좋아하도록만 하기  위해서 '우리 서부교회는 학생회가 없으니까 학생회 있는 교회로 갈라고 하니까  부득이 아이들 있는 데로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이라니까, 권찰님들이 '이러니까  학생회를 하면 좋지 않습니까?'  또 학생들을 가진 부모네들은 다 모두 장로 집사 모두 권위 있는 분들이니까,  아버지 우리 교회는 왜 그렇습니까' 자꾸 이라니까 그 세력이 상당히 셌습니다.

세서 이 서부교회도 학생회를 두자고 하는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나쁜 짓 이런 짓 하지말고 옳게만 해라. 그라면 학생회 할 수  있다.' 이라니까 실실 다 무너져 버려서 서부교회는 학생회가 없어졌는데 그런  일을 용납하고 학생회를 두자 하는 것을 제가, 나는 뭐 서부교회 쫓겨나가도  이거는 안 된다' 이래 가지고서 해서 학생회가 없습니다.

 고신에 있을 때에 전국 학생 신앙 운동에는 제가 제일 우두머리였습니다. 제  말을 다 순종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국 학생 신앙 운동이라고 하는 집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새벽예배 인도는 제가 도맡아 놓고 계속해서 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게서 말을 해도 차차차 보니까 탈선돼 나가기 때문에 학생회라 하는  것을, 학생회로 가지고 '간부 모인다' 간부회라 해 가지고서 '오늘은 간부회기  때문에 누구 집에서 모이니까' 하고서 그 집에 가서 한턱 얻어먹고, 또 '오늘은  지금 간부 회의를 하는데 아무데가 경치 좋은 어데 가서 뭐 강변에 산속에 이래  가자' 해 가지고서 이거는 만고에 죄지으러 돌아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꾸 말하니까 이제 그런 재미가 없으니까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남녀 전도회, 유치반, 중간반, 장닌반 이 외에는  회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도 실은 이렇게 다른 회가 없이 나가는 것은 그 목사가 생명 내놓고 밥통도  내놓고 밥통 떨어지면 굶을 요량하고 이라기 때문에 하지 그런 것 다 생각하면  밀고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하니까 이 장로들은 제가 진리를 좀 더 먼저  잘 알고 하나님 뜻을 많이 순종해 봐서 경험과 체험이 있기 때문에 가장 옳은  지도를 하기 때문에 순복하라 하는 것인데 이거 장로 으시대고서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했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되지' 이래 가지고서 장로  아들이 학생이 되든지 장로 아들이 청년회에 무슨 간부가 되든지 하면은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꾸 이래 간청해 가지고서 이라면 그만 장로가 그 아들편이  돼 가지고 한덩어리 되니까 학생회 말 안 들을라 하면 장로하고 대립이 되기  때문에 그만 쫓겨나가게 됩니다. 청년회 말 안 들으면 쫓겨 나가게 돼요.

이러니까, 전부 학생회 청년회가 그 교회에 주동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서  청년회 학생회 이 세도가 그 교회에 제일 주최가 되는 그런 세력을 가진 교회가  아마 백에 구십은 될 겁니다.

 세상이 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이라니까  이 성구를 가지고서 으래히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되는 줄 알고 그만 장로들은 또  뭐 저거 아들 소원이라도, 하나님의 소원을 주장해야 되지 저거 아들 소원을  장로라고서 이렇게 순종하라 한다고 순종이 되겠습니까? 이래 되는 이런 폐단이  많습니다.

 이래서, 여게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하는 것은 장로는 신앙의 연조가 높고 또  경험과 체험이 많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장성하기 때문에 어린 네가 찾는  것보다 하나님 뜻을 잘 찾으니까 바로 찾은 그들에게 순종하라 하는 이 말이지  장로라는 직책에게 순종하라 말이 아니고 나이 많은 자에게 순종하라 말이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닌 줄 알고 순종하는 것은 그 장로 따라 하나님 배반하기  때문에 장로도 역적이요 또 순종하는 그 사람도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장로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찾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라 하는 그말이지 그저 명의 장로, 또 연령 많은 장로, 예수  오래 믿은 신앙 연조가 높은 거 그런 데에게 따라라 말 아닙니다. 요거 똑똑히  구별해야 돼요. 그런 데 따르라는 말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따르라  말이오.

 '순복하고' 요것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볼끈 잡고 놓지 안하면 이거 생명이 되는데  이걸 놓기 때문에 교인들이 문제가 납니다. 교회마다 뭐 전부 문제 시비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부 '나는 장로이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서 말하니까 백 명이면 백 가지 주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요것을  주장하고 한다면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뭐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그 순종은 하나에게 순종하는 것이요 찾는 건 하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어지러워지지 안하고 그렇게 쪼갱이가 나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요거 하나만 굳게 잡아도 여러분들이 벌써, 진리면 어린 아이가 말해도 순종해야  돼요. 아무리 백 목사가 말해도 진리가 아니면 딱 거절해 버려야 됩니다. 뭐 백  목사가 하나님입니까? 아니오. 하나님의 뜻이면 그거 아이라도 그렇게 딱  순종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 내가 요번에 신고함 열어 보니까 '목사님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육체의 생명도 생명이라 하니까 이해가 잘 안 되고 좀  혼돈이 됩니다. 그렇게 말해 놨어. 그래 내가 그거 고마와요. 고마와서 전화가  있으면 내가 당장 전화해 줄 터인데 전화가 없어서 보니까 누구 구역이라 해서  구역장에게 전화를 해 가지고서 그래 그래 해서 연락을 하라 해 연락을 했는지  모르겠어.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는 그 생명은 죽을 생명을 말한 것입니다. 죽을 생명.

우리의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도 생명이요 또 바로 죽어가는 생명도 생명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은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요 영생하는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인데 그거는 연결돼서 끊어지지 않는 생명이요 죽어가는  생명은 하나님과 끊겨져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좀 있으면 없어집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여게 아마 와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전에 말하기를  죽어가는 생명 또 영생하는 생명 그것을 말했는데 그것을 자세히 듣지 안하고  그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라 그래만 들었으니까 그걸 잘 들어서,  대단히 고마운 생각인데 그것을 잘 들어 깨달아서 그렇게 밝히고 따져  들어가면은 삽니다.

 이래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이는 하나님의 진리에  순복하고 하는 것이지 나이 많다고 순복하고 장로라는 명의에 순복하고 하라  말이 아니오.

 이러니까 여기 책임에는 무슨 책임이 쥐느냐? 장로에게 대해서 '너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똑 바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네가  지도해야 되지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의 역적이다. 사람을  멸망케 하는 하나님의 적이요 적기독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꼭  바로 찾아 가지고 그대로 지도해야 된다' '바로 지도하는 장로들에게 너거는  순종해야 된다. 왜? 너거보다 잘 바로 찾기 때문에.' 그말입니다.

 '다 저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 겸손하다는 것을 해석을 했는데 이 겸손을 꼭  교리 신조대로 우리는 뭐 깨달아야 되겠고 행동을 해야 되지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 신조대로 하지 안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 지식대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이라니까 겸손이라 하면 그저 어떤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에게 옳은 것도  양보하고 무엇이든지 뭐 틀린 것도 '그것 틀렸습니다.' 하면 제게 십자가의 마찰이  올 터이니까 그 소리 안 하고서 '예 예' 그만 설설 웃으며 설설 덖어서 이와 같이  지금 하고 어데든지 머리만 숙여서 굽신거리고 하면 소거 겸손인 줄 압니다.

그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 중에  악이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고급 교만이라, 고급 교만이라. 이해가 됩니까? 이거  이해가 돼요, 고급 교만이라는 것? 자꾸 머리 숙이고 친절히 하고 어짜고 하는  그게 겸손이 아니라. 그거는 아주 겸손이라는 방편을 써서 자기를 유익되게  높이고 인정받게 이래 할라 하기 때문에 그거는 아주 고급 교만 아주 악과 독이  많은 그런 교만입니다.

 여기 겸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뭣을 말하는 것이냐?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고 다른 사람을 바로 알고, 또 일을  바로 알고, 물건을 바로 알고, 모든 것을 바로 알고 자기가 자기대로 날뛰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교만한 자는 물리친다 말은 망한다 그말입니다. 자기를 바로 모르면 다  실패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질도 있고 양도 있고, 질도 있고 양도 있고  강도도 있고 또 광채도 있고 각각 다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어떤 지금  넘어가는 뭣을 불들어 맬라고 작지를, 하는데 작지, 이 작대기 말이오. 작대기로  고울라 하는 데에 이거는 꼭 열 자 작대기라야 되는데, 열 자 작대기라야 되는데  그러니까 열 자 작대기를 씁니다.

 보니까 아홉 자작대기를 거머쥐고 고울라고 했다가 안 되니까 획 던져 버리고  또 열 자를 찾습니다. 이러니까 아홉 자 짜리는 있다가 말하기를 '나를 처음에는  등용할라고 하더니마는 나는 등용하지 안하고 아무것이를 등용을 한다' 해 가지고  삐꿉니다. 제가 말을 할 것 같으면 말이지요, '요거 열 자가 딱 돼야 되겠는데 열  자가 어데 있노?' 하며 열 자 찾아 가지고 저를 거머쥐고 열 자 찾아갈라 하면  '아닙니다. 나는 아홉 자입니다. 나는 아홉 자이기 때문에 열 자 고우는 데는 내가  고여 놓으면 고여지지 못하고 헛일되고 맙니다. 나는 아홉 자입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우리가 그걸 모른다 그 말이오.

 모르니까, 가져가다 '이거 안됐다. 이거 짤라 못 쓰겠다.' 던져 버리면은 '왜 나를  등용할라다가 나를 등용 안 하고 이와 같이 버립니까?' 불만 불평을 품으면은  그게 교만한 것이 되고 만다 말이오.

 또 이걸 고울라고 이라는데 보니까 '열 자다' 열 자를 고울라고 이래 가져와  보니까 열 자인데 이거 이만한 굵은 거라야 되는데 잇순각꾸 그거 한치각 그래  해 놓으니까 똑 뿔라지니까 되겠습니까? '이거는 길이는 맞다마는 둥치가 약해서  안 됐다.' 이거 또 이것을 그라면 내놓고 딴 거 한다 말이오. '왜 나는 안 하는가?  나를 안 써 주는가?' . 저를 쓰면 어찌 됩니까? 거기 쓰면 똑 뿔라져서 그만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안 쓰는 거라 그 말이오.

 우리 하나님이 요렇게 아셔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적당한 곳에다가 이래 등용을  하시고 이래 하는 것이니까 범사에 감사하면서 이래 가야 되고 그저 하나님에게  그저 복종해서 나갈 요걸 생각해야 되지,  또 어떤 것은 이것은 '나를 이거 쓰지 안하고서' 저는 뮐로 돼 가지고 있느냐  하면 저는 쇠로 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쇠로 돼 가지고 있는데 거게는 불에  들어가저 아주 많은 열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쇠 같은 거는 들어가면 타 버리고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쇠는 타니까 뭘로 해야 되겠소? 금으로 해야 된다  말이오. 금으로 해야 되니까 금으로 해야 금으로 그 부속품을 만들어야 되지 쇠로  만들면 타 버려. 이런데 이걸 만들라 하다가 '이거는 안 된다, 이거.' 내놔 버리고  이제 금을 찾고 있으니까 '왜 나를 쓰다가 안 쓰는고?' 너는 쓰면 바짝 타서  없어져 버려. 그러기 때문에 또 안 탈 금을 가지고 해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조물주가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이리 여러가지로 만들어 놓은 이것이  적당하게 다 그 자리 찾아서 딱딱 쓰기 때문에 나무로 해야 될 데는 나무로 해야  되지 쇠 가지고 안 되고, 또 금으로 해야 될 데는 금으로 해야 되지 쇠 가지고 안  외고, 또 쇠 가지고 해야 될 데는 쇠 가지고 해야되지 나무 가지고 해서는 안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적재 적소에 쓰시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겸손이라 하는 것은 뭐이 겸손이냐? 자기를 바로 알고 '나는 열  자밖에 안 됩니다.' '이거 금이 없나 이거? 금을 써야 되겠는데. 금 아니가?'  '아이고 나는 아닙니다. 나는 지금 금이 아니고 나는 은이기 때문에 거기 들어가면  탑니다.'   이래서, 자기를 바로 알면 바로 알고 또 자기 가치를 바로 알고 자기 힘도 바로  알아야 된다 그거요. 힘이 이만한 들보를 해 가지고 집을 지어야 되는데 조그만한  나무 이게 저를 자꾸 상량으로 얹으라 하니까 저를 봇짱으로 얹을라 하니까,  봇짱으로 얹어 놓으면 뭐 집 다 뿌숴지고 헛일 될 것 아니요? '너는 가늘어 안  됐다. 굵은 거라야 된다? 이런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허리 동이라 말은 힘쓰라 그 말이오. 힘쓰라. 그러면 자기를 바로 아는  데에 힘을 쓰고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는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적소에 쓰시는  것이니까 자기는 적소에 쓰이기를 힘을 써라.

 자기에게는 감당하도록 자기에게 적당하도록 하나님에게 쓰여지도록 쓰여지기를  힘쓰고 적당하게 쓸 때에 자기는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힘을 다해서  충성하도록 그렇게 해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바로 아는 사람은, 자기를 바로 아는  사람은 실패가 없고 또 자기를 바로 아는 사람은 항상 만족합니다. 만족해.

 자기는 예를 들어서 백 원짜리가 만 원짜리인 줄 알면 자기는 백 원짜리인데 백  원짜리로 쓰일라고만 애를 써야 되지 백 원짜리가 만 원짜리로 안 써 준다고  야단을 지기면 어찌 됩니까? 그거 누가 어데 써줍니까?  그러기 때문에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는 말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과 자기 입장과 처지와 분수를 바로  알아서 자기로서의 자기에게 해당되고 분담된 그 일에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두 다 너무 자기를 과대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또 과소 평가하고, 과소  평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 할 일을 못 하게 되고 또 과대 평가하는, 사람은  실패되고, 과소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 할 일을 못하게 되고 지내치게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가 실패를 보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자기를  바로 깨닫고 자기를 지내치게 생각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은 것을 자기가 전심  전력 기울여서 감당하도록 힘써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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