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1981. 11. 14. 새벽 (토)

 

본문 : 디몬데전서 4장 7절 - 9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망령된 말은 경건이 아닌 모든 말 가리켜서 말령된 말이라 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이 가진 모든 지식이 다 망령된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 지식을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지배를 받아야 가치가 있는 것인 것을 알고 이대로 할  때에 이 망령된 말은 구출이 됩니다.

또 허탄한 말은 어떤 것이 허탄한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나 우리들이 하나님으로  인한 그 지식이 아니 그것은 전부가 헛 말하는 것 헛 말 아무 쓸데 없는 말  이십세기의 과학이 만능이라고 하는 그 실상이 있는 것같지마는 과학 만능을  해도 그것이 그 사람에게 헛됩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 수고 하는 것이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한가" 세계에 제일 되는 과학자라  할지라도 그 과학이 자기를 속인 것이 그것이 자기에게 허탄한 말이요. 허탄한  지식입니다.

또 신화를 버리고 신화는 옛날 무슨 실상 없는 걸 사람들이 만들어 가지고  말하는 그런 것을 신화라 하고 일반 세상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것만이 아니고  안되는 모든 참람된 지식 가증한 지식 그것이 전부 신화입니다. 된다고 저희들은  말하지마는 실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그것으로 사람을 꼬우고  자기를 꼬우는 것 뿐이지 그것이 죽음 넘어 실상을 가지는 영원한 실상을 가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전부 그것으로 사람을 꼬우고 자기를 꼬우는 것  뿐이지 그것이 죽음 넘어 실상을 가지는 영원한 실상을 가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하나님보다 오히려 권위있고 큰 위치에서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가증하다. 가증한 지식이다. 망령된 지식이다. 허탄한 지식이다.

참람된 지식이다. 그것을 여 한말로 말해서 신화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잘못하면 세상적으로 해석하는데 망령된 지식 허탄한 지식 신화의 지식 이것을  버리라.

그러면 반지식주의가 지식을 반대하는 주의가 반지식주의가 구지식주의가 지식을  구하는 지식을 구원하는 주의 하나님이 여기에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식이 머리가 되가지고 있어야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을  주고 다소라도 효력을 나타내지 이것이 꺼꾸로 되서 그게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보다 위에 있고 하면 그것이 다 망령이요. 공연히 헛빗장단  헛풋장단 헛풋장단 그게 내나 신화입니다. 그 밑에 이제 해석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망령되고 허탄하고 신화의 많은 그 지식이 그것이 한 말로 말해서  무엇인가? 육체연습니다. 육체연습 그것이 육체요, 육체의 지식이요, 육체의  연습입니다. 육체연습의 반대는 뭐인가? 경건연습입니다. 너희들이 육체연습  이것을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하라. 육체연습은 경건연습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자연계시입니다.

일반계시 육체연습하니까 되어지지 않느냐? 다같이 어머니 한 어머니 배속에서  나온 꼭같은 사람이지마는 꼭같은 남자라 여자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 세상  육체연습 글을 배우는 것도 그것이 연습 연습이라 말은 배우고 익혀서 숙달되면  그 사람이 모든 지식이 다 육체연습이요. 또 모든 세상 기능이 다 육체연습이요.

이제 모든 실력이 육체연습입니다. 다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의 가치가 뭣 가지고  다르냐? 연습을 많이 했다. 적게 했다. 연습을 여러가지 했다. 또 몇가지만  했다. 연습을 하되 알기만 알고만 있다. 또 인정만 인식만 하고 있다. 실상 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볼 때에 키는 꼭 같이 크고 몸집도 꼭같이 같은 몸집 가졌지마는  연습 많이 해서 하나는 그 대가리 속에 세계 과학이 들어 있다. 세계 과학이  들어 있다. 세계 제일 일류의 지식이 들어 있다 하나는 그 속에 연습 안해서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배고프면 밥먹고 그저 잠오면 자고 하는 그거 외에는 그  머리에 없어. 그 연습으로 속에 넣었고 연습이 없어. 그랬 됐습니다. 또 다 같은  보기에는 꼭같은 손이지마는 그 손은 괭장한 걸 연습했어. 이 악기를 대면 이  사람은 뭐 이래 땡땡이라 하는 그 악기를 가지면 그 사람 괭장한 속에  연습을해서 속에 기능이 들었습니다.

또 그 사람이 세계에서 지금 참 부러워하는 괭장한 과학을 실험해서 자기 손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일국의 과학자입니다. 소련이 뭣  때문에 자랑하느냐? 이 육체 연습한 사람들이 미국보다 더 위에 있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불황을 지깁니다. 그 다음에 미국은 뭐 돈 많아. 그런게 아니라.

육체연습한 그것이 이등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일본은 삼등이요. 중공은  사등이요. 이렇게 되는 것이 육체연습 그것이 어찌됐느냐? 연습을 해서  되졌습니다. 끄트머리는 보이지 안하지마는 연습이 되어서 그 몸 속에 되어있고  뇌 속에 되있고 다 되있는 그것이 인간의 인간의 실력이요 가치요. 권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약간 유익이 있다. 시간적으로 몇해동안 있다. 또 그것이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있다. 그러나 좀 있으면 시간적으로  없어진다. 또 해봐도 내나 노아 홍수의 멸망받을 그와 같은 그런거 하지 멸망을  초월하는걸 못한다. 사망을 초월하는걸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해봤자 약간 유익있다. 세계에 일등된 이 연습 자야 네까짓게  암만 해봐도 약간 유익 뿐이다. 오늘 너 죽으면 그만이라. 또 주님오시면 이  세상 다 물 속에 불 속에 다 들어 갈 것인데 소용없어.

그러나 경건연습은 금생과 내세에 유익이 크니라. 경건연습 이것은 끝이 없어.

육체연습을 하니까? 다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골 속에 들어 있는게 괭장해.

사람보기는 뭐 저기나 내나 이같다 했지마는 그 사람은 내나 체중도 달고 뭐 다  같지마는 저 사람은 연습을 많이 해서 그 대가리 하나를 살라고 만일 한국에 그  대가리오면 한국 재산 반을 줘도 그 대가리를 살라 할 것입니다. 왜? 그런 자  하나만 오면 그 자가 모든 나라에 앞서 가지고 하는데 그 자 하고 가 가지고 그  자가 가서 꼼작 꼼작하면 세계가 그 앞에 벌벌 떨어야 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보기는 꼭 같지마는 연습하는데 따라서 그의 실력이 차이있다.

그것모양으로 경건연습 연습한 자나 안한 자나 보기에 같고 경건연습 한 자나  안한 자나 부활할 때에 뚱뚱하게 부활하기는 다 같고 그때 우리 다 압니다. 그때  우리 얼굴을 다 아요. 지금보다 더 똑똑히 압니다. 모르는 것 아니라. 꼭 같은데  이제 하늘나라는 경건만 있는 나라기 때문에 경건연습을 해서 얼마를 해서 그  속에 그 육체 부활한 그 속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어떤 사람 많이 들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안해요. 그것 모양으로 육체연습 그것을 보아  경건연습을하라. 경건연습은 금생에도 유익하고 내세에도 유익하고 영원히  유익합니다. 이것은 자기만 유익한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다 유익하다. 자기만  좋은게 아니라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 경건을 연습하라. 그러면 이것  경건을 연습하는데는 배워서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꾸 익혀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기 몸에 배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가 돼야 됩니다. 알고  연습하면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면 그것이 자기의 본성이 되어지고 자기의  주관이 되어집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경건은 어떤게  경건이냐? 경건은 그 행동하는 기능을 말한 것인데 기능을 말하는 것 기능을  말하는 것인데 경건은 하나님 세 가지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이 어떻게 크시냐?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크심을 알고 인정하고 그 실상 크심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그것이 경건입니다. 아무기라도 모든 피조물 이는걸 봐도 이것은 다 원인이  있다. 이것은 원인 있지마는 이것이 원인이 뭐인가? 원인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원인이 없어. 근본이라 근본이심을 자기가 아는 것이 이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사람이요.

또 주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근원이시다. 잡고 입으로 익히고 입으로  연습을 하고 자기 또 마음으로 연습을하고 행동으로 연습을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제일 크시다.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주재자시다. 주권자시다.

통치자시다.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 이렇게 자기가 알고 아는 지식이  어데까지 가든지 안다고 하지마는 세상 마귀의 이 육체경건 육체연습이 와  가지고 요리 요리 하면 그만 없어집니다. 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미국가니까 다  변해져버려. 그게 뭐이냐? 경건연습이 그것이 시원찮아서 연습하는데 조금  어려움 닥치니까. 콱 자잡아졌버려. 얼음타는 스케이트를 연습했는데 아무도  타는 것 같지마는 그만 얼음이 내리바탕얼음이 되어놓으니까 그만 그 구부러져  버립니다. 또 타는 줄 알았는데 옆에 사람이 와가지고 탁 부딪히니까? 그만 저  뚝 구부러져 가지고 달아나버립니다. 하나님이 크시다 크시다 해도 미국을  가보니까 미국이 크고 그게 다 커버리고 이 과학을 공부하니까? 이거 뭐  경건연습했지마는 국민학교에서는 그렇던 것이 중학교 들어가니까 중학교 지식이  이 경건연습, 육체연습 이 육체연습이 와서 탁 부딪히니까 뭐 주일학교 때에  하나님이 크시다 하는 것을 자기가 배워서 인식했지마는 싹 뭉캐져 버렸어. 이  연습이 잘되. 그런것이요.

예를 들면 그런것입니다. 어떤 큰 것이 옵니다. 모든 사람이 그만 두려워서 그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주님이 지으신 것이로구나 그걸 볼 때에 주님이 이걸  지으셨다. 주님이 지으셨다. 이것을 지으신 주님이 내 주님이시오니 이것을  지으신 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그의 것 그는 나의 것 나의 주가 되셨으니 이  큰 것보면 더 좋을 것인데 경건연습을 잘못해 놓으니까 변동된다 그말이오.

이래서 하나님께서 자 우리의 구속 주 되신 이 주님이 얼마나 크시냐? 크다 한  말로 크다 말합니다. 한 말로 크다 말하요. 자존자라 말 크다 말 자존자이기  때문에 크지 다음으로 그로 다 인해서 창조되어 있는 것인데 그분만 자존해  그분만이 크지 두려운 것도 많지마는 그분이 제일 두렵지 두려우매 제일 크지  권세에 제일 크지 지능에 제일 크지 제일 주인이시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지  이면에 저면에 모든 면에 크다. 그러면 우리가 지식으로 가졌습니다. 또 자기가  인정을 합니다. 이제는 인정합니다. 믿사옵나이다. 그래 어떤 이 현실을 턱  부딪히니까 주님 두려운 것은 간 곳이 없고 그보다 더 두려운게 있습니다. 적게  두렵고 많이 두렵고 작게 작게 두렵고 크게 두려우면 큰 것 크게 두려운 것 앞에  복종 됩니까? 작게 두려운 것 앞에 복종하게 됩니까? 저 ○조사님 말해봐! 예 예  큰 두려움에 이러니까 이거보다 어느거냐 그말이오.

보다 우리에게 현실주는 것은 전체가 이거 연습시키기 위해서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거 연습시키기 위해서 보자 네가 하나님을 이면으로 크다 저면으로  크다 다 말할 수가 없어. 이면으로 크다, 두려움으로 크다, 권능으로 크다,  지혜로 크다, 존재로 크다, 권세로 크다, 지혜로 크다, 지식으로 크다, 통치로  크다, 나를 사랑함에 크다, 진실함에 크다 진실도 뭐 이것도 진실 있지만 다  진실 새끼라 그 진실에 제일 어머니 아주 근원이 그분이시라. 이래서 큰 면  하나님의 큰 면 그것을 자기가 알고 연습시키고 익히고 또 실상으로 또  연습해보고 이래 가지고 숙달되서 그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크심을  자기가 얼마나 인정하고 있느냐 하는 그것이 경건의 뭉텅이입니다. 경건의  실력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요것 보담은 하나님이 크시지마는 저것보다는 이게 작다.

그러면 하나님보다 그 사람의 큰 것이 있으면은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에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크심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믿어질 뿐만 아니라. 실상 그렇게 크심을 자기가 알고 그 크심 앞에서 크심  그분을 모시고 삽니다.

이러기에 경건을 연습해 가지고 경건에 이르도록 경건에 이르도록 경건에  가다마는 사람, 또 둘째는 뭐이냐? 그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것  이것이 경건에 또 삼분지 일 요소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있고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존귀케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지식합니다. 지식을 하니까?  네가 알고 있느냐? 뭘 갖다 불이니까 육체연습이 와 가지고 흔들 때에 아 이거는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 이것은 변동없다.

그러면 그러냐? 어떤 현실 턱 닥쳤든지 고만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딴게 나와  버렸습니다. 녜, 하나님 위해 살지 안하고 자기를 위해서 뭐 가정을 위해서,  자기 감정을 위해서, 자기 오기를 위해서, 자기 기분을 위해서, 자기 자존심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 그만 주를 위하는 그것이  보스라기도 없습니다. 다 부셔졌습니다. 이것은 경건이 부셔졌습니다. 주를 위한  이것을 해서 어떤 데서도 어데서라도 어떤 데서라도 어데서라도 또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주를 위해서 있는 것 이것이 자기에게 연습이 되어서 어느 정도  숙달이 됐느냐? 어느 정도 이것이 되가지고 있느냐? 이제 이것 둘 되면 그  다음에 셋째 것 하나 남았습니다.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 자기가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요.

하나님 은혜 받는 것, 권위를 받는 것, 지혜를 받는 것, 능력을 받는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는 것, 받는 연습인데 어느 정도 받아 가지고 있느냐?  네가 지식은 어느 정도 받았으며, 지혜는 어느 정도 받았으며, 능력은 어느 정도  받았으며, 지혜는 어느 정도 받았으며, 권위는 어느 정도 받았느냐? 그의 영광은  어느 정도 받았느냐? 다니엘도 그 사람 사는 것이 이 경건 연습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크심을  그걸다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 하는 그 연습입니다. 그 연습에서 연습을 잘 훈련  잘 받았습니다. 또 하나는 다니엘이 그 사건에서 하나님을 어느 정도 위하느냐?  어느 정도 위하느냐? 위하는 연습을 잘 받아서 그 숙달됐습니다.

또 그러면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느 정도 썼느냐? 갖다 썼느냐? 갖다 쓴  것도 성공했습니다. 이래서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냈어. 하나님의  권위로 모든 그 나라에 있는 사람이 깜작 놀라면서 그 앞에 굴복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만 하나님보다 높은게 많아서 큰게 많아서 자기가 커 또 하나님  위하는게 아니라. 저 위하는 것 되고 말았어. 하나님의 이 사자 입을 막고 모든  나라로 다 머리를 숙이고 복종시키 이 권능이 하나도 없어. 네,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연습하는 이것을 지금 연습시키서 어떨 때는 요런 현실을 닥치면 조그매  요런 현실 줘 가지고 자기에게 보스래기 이 경건 보스라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보스라기가 부서지지 안할 정도로 현실을 줘 가지고 고 가진 경건이  부서지느냐? 유지가 되느냐? 부셔지느냐 하는 있는 힘을 다 쓰는 고것이 유지가  됐으면 이제 고만 한데에서는 유지가 되고 고만한데는 유지 됐습니다.

그러면 고 다음에는 다른 현실을 줘 가지고 다른 현실을 줘 가지고 먼저 그런  것을 깨지게 만든다 그말이오. 먼저 그런 것 놔 두면 경건이 견디지 못해. 좀 더  큰 것 주니까? 큰 현실에서 먼저 경건 그런 걸 깰만한 육체의 연습이 온다  그말이오. 육체의 것이 와 육체연습한 것은 세상이 온다 말입니다. 세상 것이 와  가지고 요것이 먼저 그는 이겼는데 요번에는 와서 깨졌다 말이오. 깨지니까 이  사람이 깨진 줄 알고 자기에게는 경건이 이렇큼 빈약해서 부딪히니까 깨졌다  말이오. 깨지니까? 고요한 시간에서 연습을 다시합니다.

연습을 다시 해 가지고 먼저 고만한 걸 가지고 깨진걸 생각하면 고럴 때  안깨지겠다 안깨지겠다 해가지고서 안깨질 연습하니까 고 다음에 하나님이 또  과거 깨질 때와 같은 그런 현실을 또 부딪혀 줍니다. 주니까?요번에는 싸워  가지고 안깨지고 이거 이기면 차차차 그래 가지고 현실을 자꾸 바꿔서 모든  현실은 하나님 크심과 하나님 위함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아 쓰는 것 이것을  연습해서 차차차 이것으로 자라가도록 하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크심이 실상으로 자기에게  인식되고 실상으로 자기에게 이 사람이 되어 있는 것 자기가 되어 있는 지식이  되어 있고 인정이 되어 있고 실상 자기가 되버렸어. 그것이 실력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크심이 자기가 데서 하나님이 크심으로 인정하고  크심이 자기가 되가지고 있고 그 사람은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크심의 크심의  사람으로 되있다 그거요. 모든 피조물 보다도 하나님이 크심에 사람으로 되어  있어. 이러니까 어떤 이게 크다 해도 아니다. 하나님이 크다. 아무리 큰 보이도  하나님이 크십니다. 큰 걸 보면 하나님이 더 커 위함 하나님을 내가 쓰는 것  이것은 육체의 것이 백의 구십구인데 하나님의 것은 일인데 이 사람이 자기가 그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현실을 주시가지고 구십구가지고는 세상이 구십구고  하나님이 일가지고는 그걸 통과하지 못하게 될 때에 자기는 통과를 못합니다.

못하니까 자기를 약한 걸 압니다. 패전 자라는 걸 압니다. 자기를 아요. 자기의  허무하다는 걸 압니다. 이것이 패전이요.

그러기에 자기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럴 때에 이러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가 계시니까 이것은 허무하니 새로 실력을 마련해야 되겠다. 실력을  마련할라고 하면 고 다음에는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 가지고 백의 이가 있습니다.

구십팔이 세상이 됐고 백의 이가 됐습니다. 백의 이가 되서면 과거같은 고런  현실을 만날 때에는 고것을 승리로 통과하게 됩니다.

이래가지고 하나님이 차차 차차 길러서 마지막에는 백의 그 백의 백의 세상이 다  와도 이 사람은 백의 백이 다 하나님의 크심이 되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능가하게 됩니다. 이것을 연습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갈려고 하면 마찰이 적던 것이 차차 차차  커집니다. 거기에서 자기를 알고 다시 준비케 하는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 승리를 했으면 다 된 줄 압니까? 아니요. 주님이 현실을  주실 때에 조금만 마찰되도록 대립이 되도록 고런 현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고기 이기면 고 다음에는 더 대립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더 마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최종 온 세계 역사에 지나간 사건은 지나간 일들은 어떤 것이든지  이제 까지 역사에 한번도 없었던 새것이 와도 부딪히도 자기는 그로 인해서 이  세 가지가 변동되지 안할 수 있는 이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것은 자꾸 경건 연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 주이에 배운 것 많게 할려면 이 지장물을 두고도 하고 이런 연습 자꾸  연습을 시키고 연습을 시키면 그게 이제는 지식이 되고 난 다음에는 자기 몸에  배다 모아가지고 그만 숙달돼 꼭 그와 같이 이 세상에서 경건을 연습해서 자기  속에 뱁니다. 이 자기가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연습이 지식 되어지고 습관되고  습관되면 그것이 자연히 습관지 천성이라 하는 말 같이 습관은 이제 자기 되는  것입니다.

경건 연습인데 이걸 집에 가서 얼마든지 연구를 하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경건연습이라. 경건연습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두 가지가  있어야 됩니다. 주의 것된 이게 있어야 됩니다. 주의 것 지난번에 주의 것  말하니까? 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할수 있어. 듣는 사람이 없어. 여러분들  주의 것 지식으로 주의 것이 되고 인정으로 주의 것이 되고 실상으로 주의  것인데 주의 것이 되었을때만 주의 것이 되었을 때만 사죄가 있습니다. 죄없는  것이 되 있습니다. 주의 것이 된 것은 죄가 없습니다. 주의 것이 된 거는  의롭습니다. 주의 것이 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해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주의 것으로 나는 주의 것이다. 주의 것이다. 지식할 때에 그  사람의 지식으로서는 죄없는 자요. 인정으로 하면 인정으로 죄없는 자요.

실상으로 주의 것으로 실상으로 행동 했으면 그 사람은 그 실상이 죄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과 화친된 자입니다. 이러다가 주의 것이 됐다가 주의 것이  아닌 이제는 자기가 자기 것이 되든지 가정의 것이 되든지 사회 것이 되든지  국가의 것이 되든지 돈의 것이 되든지 권세의 것이 어떤 것이 되든지 이제 이  소유주가 바뀔 때에 이 소유주가바뀔 때에 그때에 이 사죄는 없어집니다. 칭의도  없어집니다. 그때에 하나님과 화친도 없어집니다. 요 소유주가 바뀔 때에  없어진다는 요것을 강하게 잡아야 됩니다.

이것을 말을 해야 안들려 미끌어져 나가 안들려, 왜 주의 피로 값주고 샀기  때문에 주의 값에 팔린 자 소유권이 주님에게 있어야 사죄가 그게 있지 당신이  산 거는 사죄의 산거요. 당신이 산 것은 사죄로 샀소 칭의로 샀소. 하나님과  화친으로 샀어. 그런데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은 불의의 뭉텅이입니다.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과 원수의 뭉텅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식으로 가지고 있고 인정으로 가지고 있고 실상으로 가지는  실상으로 가지면 실상은 그것이 이 세 가지 구속을 받은 것이요. 실상으로  가지지 안하면 실상으로서는 그 사람은 죄 뭉텅이입니다. 요것이 변동이 없어야  됩니다. 변동 요것이 변동이 없어야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존재가 돼요.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주의 것이 아닐 때에는 그는 경건 연습할  재료는 아닙니다. 육체연습할 재료입니다. 주의 것이 된 고때는 경건을 연습할  재료가 되겠고 변해져버렸습니다. 이것은 찬라에 변합니다. 찬라에 변하요.

시간으로 변하요.

자기가 주의 것이 되었을 때에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재료가 되어  있습니다.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재료가 뭐인데, 그것은 죄없는것 그거는  의로운 것 그것은 하나님과 이 결합이 되어 있는 것 그기라야 경건연습할 수  있어. 주의 것이 떠나면 마귀 것이야. 마귀 것이기 때문에 당장 내가 나는 주의  것이라 할 때에는 마귀는 손을 못데, 이러나 이렇게 있다가 고 시간에 나와 내  소유에 주인이 바꾸어지면은 즉시 마귀의 것입니다. 마귀의 것이요. 세상  것이요. 그는 육체의 연습할 재료로 바꾸어졌습니다. 요것이 아주 중요한데  엊저녁에 요걸 말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어. 여러분들 지금 못 알아 듣고  있습니다. 못 알아 듣고 있어. 가서 깊히 기도해요. 기도하면 알아져 지금  몰라도 못 알아 듣고 있어. 지난번에 이걸 말하니까 통성으로 기도를 하니까  못알아 들으니 기도가 어떻게 나옵니까? 요거 중요합니다.

주의 소유가 되어 있을 때에 주의 소유가 되어 있을 때에 이 세 가지 구속받은  것이요. 이 소유권이 바꾸어질 때에는 이 세 가지 구속은 없어집니다. 내나  마귀의것이 됩니다. 내가 이 시간까지 주의 것인 줄 알았는데 만일 자기가  가지가 그 현실 행동에서 자기는 자기 것이라고 인정했으면은 그때부터 주의  구속과는 상관이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것이라고 인정했을 때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어떤 인간의 것이 사회의 것이나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의 구속과는 상관없습니다.

일본에 있는 기독교는 먼저 국가의 것이 되고 국가의 것이 된 안에서 주의 것이  있다는 그것이 일본 교단에서 그 외정 말년에 큰 시험이 들어 왔습니다.

일본교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식으로 이것은 내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라 주의 것이라 이거는 내것이라 인식이 내 것이라 인식이 그만 그리  되버렸어. 내것이라 어떨 때는 이 가정의 것이라. 아내의 것이라. 남편의  것이라. 이 국가의 것이라 사회의 것이라. 인류의 것이라. 무엇이든지 주인이  바뀔 때에 즉시 주의 구속은 다 상관없고 마귀의 것이 되고 만다. 이 소유가  바뀔 때에 소유가 바뀔 때에는 그 자체가 바뀌어집니다. 그 자체가 바뀌져  요것이 인식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것이 아무래도 느껴지지 안해요. 도가 너무  낮아 그래 너무 낮아서.

지난밤에 큰 걸 말했는데 인식이 안돼. 주의 것 입술로는 자기가 주의 것이라고  주의 것이라 하지마는 실상이 주의 것이 되어 있는 실상이 주의 것이 되어  있으면 사죄 칭의 하나님과 결합된 것입니다. 마귀는 손 못됩니다.

그러나 입술로는 주의 것이라고 이성으로는 말하지마는 실상은 그것이 주의 것이  되지 못하고 그것의 소유권이 따로있어. 이 소유권이 변동되 갈 때에는 마귀는  침노 못합니다. 이 소유권 변동 안되면 이것을 우리가 가지야 됩니다. 이것이  가질 때에 이 자체를 마귀나 사망이나 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주의 것으로  깨졌으면 주의 것으로 죽어졌으면 주의 것으로 없어졌으면 이것은 영원히  살았습니다. 주의 것이란? 이 소유권이 변동되고 난 만큼 사망입니다.

패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경건연습 하는데에는 온갖 순위를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이면에서 연습시키고 저면에서 연습시키는데 연습하는데에 그 자보이 뭐이냐?  주의 것인 요것이 변동이 안돼야 경건연습이 되지지 주의것인 요것이 변동되면  경건 연습은 안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별로이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전부 일생동안 자기가 가진 것이  내것이 내것이지 자기와 자기 소유가 자기의 것 어떤 자는 남편의것 어떤 자는  아내의 것 어떤 자는 가정의 것 부모의 것 어떤 자는 사회의 것 어떤 자는  국가의 것 어던 자는 돈의 것 어떤 자는 권세의 것 어떤 자는 직장의 것, 이거  요게서 고것이 깨끗고 더럽고 살았고 죽은 것이 요게서 그 자체는 결정됩니다.

죄를 범하면 마귀의 자식이요. 의를 행하면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의 자녀  됐다가 마귀 자녀 됐다가 하나님의 자녀 됐다가 마귀 자녀 됐다가 하나님의 자녀  됐다가 금방 하나님의 자녀가 금방 마귀 자식 됩니다. 그게 뭐냐? 요게서  되는것이요.

또 그의 움직임에 있어서는 움직임에 있어서는 주님이 주인이 되면 그 움직임은  다 영생이요. 주님이 주인되지 못하고 다른 것이 주인되어 움직임은 전부다가  사망입니다. 요 둘이 밑천이요. 이 둘이 되고 난 다음에 경건이 있습니다.

지난밤에 요 둘을 말했고 경건을 마지막에는 시간없어 간단하게 경건은 주님의  크심을 주님을 위하심을 이것이 주의 것을 받는 것 이 세 가지 주의 크심 연습  주의 크심을 주님이 커십니다.

그 다음에 다른 현실 주니까? 주님의 크심이 바싹 깨져버렸습니다. 없어. 어떤  현실로 바꿔줘도 주님의 크시미 요동치 안해. 어떤 현실로 바꾸어줘도 주님을  위하는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 주님을 위하는 것이 변동될 수 없어. 어떤  현실에서도 주의 것을 냈으면 다 해결이라. 이 세 가지가 경견연습인데, 이  경건을 무엇인지 이렇게 아는 것이 성경 한군데 두군데 봐 가지고 알아지는게  아닌데, 여러분 이걸 듣고 경건이란 마를 성경에서 가 찾아 볼 때에 보면 여기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이것이 경건이라 이것이 참된 경건이라 말했지마는 그것만  가지고는 몰라 보면 어떤데 말한 것은 주의 크심을 어떤 데는 또 주를 위하심을  어떤 데는 주의 것을 받는 것을 말해서 이걸 경건이라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부분적으로 해석해논 것입니다. 참된 경건은 과부와 고아를 환란 중에 돌보고  스스로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하는 그것이 내나 이 속에서  나왔습니다.

경건을 우리가 연습해서 경건이 숙달되서 어떤 데서라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어떤 데서라도 먹히지 않는 것은 어떤 데서라도 깨어지지 않는 이 경건을  숙달해서 경건의 실력을 갖추고 하늘나라는 경건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전체가 하나님만이 제일 높음으로 되어있는 자들만 있고 또 나라입니다.

또 하나님을 위하는 그것만 그 나라에는 있습니다. 떤거 없습니다. 전부가  하나님의 것도 좀 있고 딴것도 뭐 딴 것도 있는게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을  순전히 하나님에게서만 받아 가지고 영원히 삽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늘나라요. 이것을 세사에서 연습해 가지고 경건으로 사는 것은  하늘나라 가서 삽니다.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 지혜 지식도  하나님의 지식 그러니까 그 지혜가 전지요. 그 능력이 전능입니다.

그러니까 좋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꿀밤만침이라도 덩치가 있으면서 자기에게  전지 전능이 있으면은 그 꿀밤만한 그 덩치가 있으면서 자기에게 전지 전능이  있으면은 그 꿀밤만한 그 덩치 그것 때문에 좀 마치고 뭉치고 마치고 좀  안됐지마는 이분은 먼지만한 덩치도 없으면서 내 속에 전지 전능으로 계십니다.

그러니까 좋지요. 네,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 우리가 땅 위에 지금 공부하는  것이고 숙달시키서 그게 몸에 배가지고 고만 경건의 사람이 됩니다. 경건의 지식  경건의 행위에서 숙달되 경건의 사람이 되버려 경건의 사람되는 이것이 경건이라  하면은 어제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아, 술상에 주례를 하는데 뭐 아주 새까만  막 그런 옷입고 앞에는 금으로 뜨고 앞에는 무엇이 주렁 주렁 달리고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아주 경건하더라고서 경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 경건은 그게 아니라. 쭈그러지고 이래도 상관없어. 이래도  상관없어. 하나님을 제일 커 어떤게 와 가지고 이게 크다 해도 아이구 하나님이  크셔 하나님이 크심을 크심으로 아는 지식이 변동 안돼. 인정이 변동 안돼.

하나님의 크심에 사람이 변동 안돼. 그 사람 한없이 커짐으로 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것만 써 하나님의 것만 갖다 써서 연습을 해 놓으니까 하나님만  하나님의 것만 갖다 써 믿음의 사람들은 다, 서기관은 하나님의 곡간에 옛것과  새것을 내어다 쓰는 것이니라 하나님 무진장의 것이 무진장의 것인데 선교는  뭐이요.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이라. 하나님 말씀 전하는 그것이 무진장의  하나님의 곡간에 모든 것이다 말씀이 나올 때 그것이 실상입니다. 받아가지면  되는거라. 이것이경건인데 이래서 세상에 점잔하면 그게 경건인줄 압니다.

점잔하면, 응? 세상은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옷을 크게 입고 옷단을 넓다랗게 붙여 가지고  도복 모양으로 이래 가지고 이래 이래 걸으니까 외식하는 자야 화 있을진저.

그거는 천주교가 제일입니다. 그런거는 그래 경건을 연습해서 경건의 지식으로  경건의 인식으로 경건의 사람이 되어 그 경건이 아무데가도 깨지지 안해.

변동되지 안해. 아 어떤 운동이 빌리그레함 운동이 오니까 아이구 크다 그보다  산꼴작에서 참 주를 바로 찾는게 높히는게 커 주님보다 큰게 세상에 모든 내세나  금생에 주님보다 큰 것이 없는 그 사람이 경건에 도달했습니다.

또 주님 외에 위할 것이 없어. 가정에도 주님 위해서 가정 자식도 주님 위해서  주님 위해서 남편 공경하고 주님 위해서 아내 사랑하고 주님 위해서 직장에서 일  잘하고 모두가 다 이것 저것 하지만 촐촐 추려보니까 전부는 주님 위하는  그것뿐이야? 이게 경건에 도달한거라. 어떤 것 바뿔 때도 주님 위하는 것 사형  앞에서도 주님 위하는 것 불미 속에서도 주님 위하는 것 사자 앞에서도 주님  위하는 것 많은 돈 앞에서도 주님 위하는 것 주님 위하는 것 변동없어. 주님  위하는 것을 변동하지 안해. 어떤게 와도 이거 흔들어 없애지 안해. 그 경건에  도달합니다. 어데서든지 낙망이 없어. 주님이면 돼. 주의 것을 써 주님의 것을  갖다 써 못할 것 없어.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하는 것 그분은 경건의 삼분의  일이 된 것을 발표한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써 주님의 것이면 다 돼 아무 것도  없어도 주님의 것이면 다 돼. 주님의 것만 바라봐 이러는데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재료는 뭐이냐?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재료는 뭐이요. 재료. ○○○목사님  주의 것 주의 것이 변동되면 경건연습할 자격이 없어. 주의 것 나와 내 자체와  내 소유, 내 마음, 내 성질, 모든 내 마음, 내 몸, 나 내 소유, 요것으로 다  주의 필요가 없어 주의 것입니다. 주의 것이 되었을 때만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있고 또 주의 것을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힘은 어데서 나옵니까?  움직임은 어데서 나옵니까? 그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힘은 어데서 나옵니까?  힘은 어데서 나오요. 뭐라고 주의 움직임인데, 무엇이 나오지 또 둘 말했는데  지난 밤에 내내 몇번이나 말했는데 주님이 주님이 주님이 주인이라야 돼. 주님이  주인이라야 돼 주님이 주인이라야 거기에서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힘이나옵니다. 예, 주님이 주인이 됐는데 주님이 내 주인이 됐을 때에 내 주인은  주님이라 나는 주의 소유라 주님이 내 주인인 것이 자기에게 인정될 때에 그때에  경건연습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연습한 힘.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가지고 싸워야 됩니다. 자기 주인이 자기가 되든지  행동할 때에 자 지금 내 주인이 뭐이냐? 내 주인이 누구로서 나를 누가 주관하고  있느냐? 나를 누가 주관해 나를 지금 누구의 소유냐? 나를 주관하는 자는  누구냐? 이 둘만이 한 마디라 내가 주의 것이라면 주님이 내 주인이라 주님이 내  주인 주님이 내 주인이 되는 사람인 자를 붙이는 것은 알아 듣기 쉽게 하는  말인데 주님이 내 주라. 내 주인이라. 주님이 내 주인인 이 사실을 변동되지  아니할 그때만 생명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때만 산 요소가 나옵니다. 주님이  주인되지 안해서 자기 주인이 되지 안해서 자기의 주인이 되지 안해서 자기  우리가 지금 구원을 이루는 것은 이것은 주관 문제인데 주관 문제가 아니라.

객관 문제가 아니라. 객관 문제는 당신이 하지마는 주관 문제입니다. 주관  문제를 이걸 만들어야 우리가 천국을 만들지 천국을 만들어 가지 주관 문제를  변동시키는 것이 문제라.

이러기 때문에 객관으로 시작한 구원이 주관으로 이루는데 객관으로 시작한 이  객관에 연결받은 이 주관이 이 지금 연결된 객관을 힘 입어서 주관 행동입니다.

이것이 성화요.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래서 소유권이 바로 소유가 바로 되어 있을 때에 자료가 되고 주인이 바로  되어 있을 때에 움직임이 삶의 움직임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가 되어  있어야 이 경건연습이 되지 이 두 가지가 두 가지가 깨져버리면 기초가  깨져버렸어 안돼. 그래 자기가 주님의 크심을 주님의 크심을 또 주를 위하여  있는 주를 위함을 또 주의 은혜를 이 세 가지를다 자기가 연습을 할라 해도 이  두 가지가 기초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두 가지가 뭐입니까? 이 두 가지가 합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요걸 대답을  하면 요걸 말귀를 알아 듣는 긴데 요 두 가지를 합해서 뭐이라고요. 주님이 주인  주의 것 두 가지를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뭐입니까? 구속 요게 구속입니다.

요게 구속이요.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 구속입니다. 구속의 근원이 있어야  경건이 연습이 되지 구속 자료가 없으면 구속 근원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구속은 뭐입니까? 주님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구속을 입고 있으면 죄없지 의롭지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지 주의 구속을 입고  있으면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입니까?  요거 말하면 하나만 더 말할 것이라.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은 어떻게 됐을  때 주의 구속을 입고 있습니까?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은 어떻게 됐을 때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이지요. ○○○목사 조사님 어떻게 됐을 때가 주의  구속을 입고 있는 것이지요. 주의 구속 밖에 주의 구속에서 키워 나간 것은 어떤  것입니까? 주의 구속을 키워나간 것은 어떤 것입니까? 네, 주의 구속 밖에 간  것은 어던 것이 주의 구속 밖에 간 것입니까? ○○○목사님 주의 구속 밖에 나간  것은 뭐이지? ○○○조사님 또 그것 뿐이요. 한마디로 말해 가지고서는 안돼.

실지로 살라 할 때에는 주인 바꾸는 것 또 하나는 뭐이냐? 내나 같은 말이지마는  하나 뭐이요. 주의 것 주의 것 주의 것으로 되어 있을 때에 주님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있을 때에 고때만 주의 구속은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법적 구속은 객관 역사요. 객관면에서는 언제든지 그대로 변동없지마는 자기  주관면에는 자기가 지식해야 되고 자기가 지식해야 되고 지식을 해도 인정을  안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해야 되고 인정해야 되고 또 실상이 되어져야 되고  그러면 지식하는 것 인정하는 것 실상 되어지는 것 이것이 객관입니까  주관입니까? 네, 주관이지요. 주관 아닙니까? 객관문제를 다루는게 아니라. 지금  우리 구원은 주관문제를 다루고 있는 거라. 하나님이 객관은 주면 제것으로  누리지 못하는데 어짤거라. 비유컨데 어떤 백만 장자가 그 수많은 재산이 다 제  것이지마는 제가 제것으로 인정하지 안해. 백만 그 부자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안해. 제 재산으로 인정을 안해. 제가 인정은 돈 한푼 없는 거지로만 인정하고  있어.

그러면 그걸 제게 누리지를 못합니다. 그 권위를 쓰지 못합니다. 그 우리에게  지금 인정해 주님이 다해 놓으신 것을 인정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이 일을  성령이 맡았어. 이 일을 성령과 진리가 맡았어. 맡았는데 이것을 본인이 인정  안하면 안돼. 아무리 그 사람이 주의 택함을 입어서 구속을 입었지마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치 안하고 거기에 대해서 실상으로 자기가 그것을  누리지 안하는 것은 신앙 생활 못합니다. 신앙 생활이 없어.

주의 구속은 구속이 법적으로는 변동이 없지마는 내 주관적으로는 금방  인정됐다가 금방 수정 됐다가 있다가 없다가 이렇게 자꾸 변동됩니다. 있다가  없다가 변동이 되는데 주의 구속이 내 주관면으로 내게 있을 때에는 어떤  때입니까? 주님이 내 주인이라.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 로마인서 14장에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나는 피에 팔린 주의 것이 되어  있을 때에 이것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되어 있을 때에 주님의  구속받은 자기입니다. 구속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주의 것이 안되고 주인이  바꿔졌을 때에 주인이 바꿔졌을 때에 구속은 즉시 없어졌습니다. 법적으로는  객관적으로는 객관면에 없어졌습니까 주관면에 없어졌습니까? 주관면에 없어졌다  말이오. 요것이 지금 강한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느끼지 안해. 또  소유권이 바꿔졌을 때에 지식으로는 나는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입니다.

이렇게 소유권 자기 주님이시라. 주의 소유라고 지식하고 인식하고 있지마는  실상은 주의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서 다른것이 다른  것의 것으로 사용하고 있어. 그러면 그때는 주의 구속을 벗었습니다. 주의  구속은 주인이 주님이시고 또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소유고 주인도  주님이시고 이 소유도 주님의 소유라. 요 두 가지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요것이  변동 안될 때에 주의 구속이 주관적으로 변동이 안되고 요게 변동될 때에는 주의  구속이 주관적으로 변동되고 요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에는 자기 주관적으로는  주의 구속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 지식이 됐습니다. 내나  죄인이요.

이래 가지고 몰라서 할려는 것은 우리가 경건을 연습할 때에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이 공로 이 세 가지 성령과 물과 피니라. 증거하는 이는 성령과 물과 피  증거한다 말은 증거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모든걸 주실 때에는  증거로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권능도 그러고 생명들도 그렇고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해 줄 때에 그 말씀을 받아 가지고 실행하면은 그대로 실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주는 방편을 증거라 그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자기가 어려움을 당할때 이 세 가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그러면  어려움을 당하면 세 가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자기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어려움을 당합니까? 세상에게  어려움을 당합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 때문에 주님의 법칙인 이 진리 때문에 또  주님이 구속해 주신 이 세 가지 구속 때문에 자기가 세상에게 핍박을 당합니다.

매를 맞습니다. 갇힙니다. 그것은 자기 미워 그럽니까? 자기를 때리는 것입니까?  자기를 가두는 것입니까? 자기를 가두는 것입니까? 진리를 가두는 것입니까?  구속을 가두는것입니까? 하나님을 가두는 것입니까?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진리 구속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자기 미워합니까? 이 세 가지 성령 물  피 이 세 가지를 그들이 미워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뭘  미워하는 것입니까? 요것도 그냥 말로만 될 게 아니라. 확실히 진실 가지고  대답해요. 어느 걸 미워하는 것입니까? 자기 미워합니까? 지금 이 세 가지 자기  아닌 것을 가지고 구속은 자기 아니지 않소. 진리도자기 아니지 않소. 하나님도  자기 아니지 않소. 자기 아닌 세 가지 이 세 가지를 미워하는 것이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자기를 잡아다가 가두고 두드리고 할 때에는 뭘 미워합니까? 똑똑히  판정을 하도록 해요. 그냥 말로만 할게 아니라. 요것이 확정이 안되 가지고  있소. 확정이 안되 가지고 있는 이러기 때문에 당하면 넘어갑니다. 환란 당하면  넘어가 환란 당하면 지난 밤에는 그러면 전부다 넘어갈 사람들이라 다 넘어갈  사람 이길 사람이 내 눈에 하나도 안보여. 그러면 요것을 판정해서 이 세 가지를  미워하는 것인지 나를 미워하는 것인지 그걸 알라면 이 세 가지를 떼 놓으면  어쩌지요. 떼 놓으면 미워해요. 미워해요. 좋아해요.

요한복음 15장 요거 지금 내가 하나만 말해 주고는 이제 끝입니다. 18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는 줄을 알라" 알라 이거 아라야  됩니다.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지의 것을 사라알 터이나 네가  세상을 그러면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러면 누를  미워합니까? 나를 미워합니까? 이 세 가지를 미워합니까? 세 가지를 미워합니다.

세 가지를 미워해서 세 가지를 미워해서 미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거는 나 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미워해서 세 가지와 나와 떨어지지 아니하고 세  가지와 나와 하나되 있다고 나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이것은 하나되어  있다는 것이요. 미워함으로 미움을 당하면서 하나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움을  당해서 없어지면 없어지면 진리와 나와 같이 없어졌습니다.

이러기에 지난 밤에도 주와 함께 미움 받으면 이다음에는 주와 함께 환영  받습니다. 주와 함께 곤욕 당하면 주와 함께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쫓겨나면 주님과 함께 영접을 받습니다. 주님과 함께 천해지면 주와 함께  영광받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삽니다. 주님은 죽지 안해 없어지지  안해요.

이러기 때문에 세상이 그와 같이 주님을 지금 박해한 것은 박해하는 그것이  주님이 죽습니까? 저희가 죽었어. 저희가 죽었어.저희가 죽었습니다. 저희가  절단 났소. 주님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그것은 주님을 미워하니까 주님이 미움을  당했습니까? 주님 미워하는 그것이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소. 생명은  위에 있으니까 죽어야지 생명은 위에 있으니까 죽어야지 생명은 위에 있으니까  죽어야지 요 이치를 세상이 모르니까 요 이치를 알아야 돼 그러면 껍데기 그러기  때문에 삶으로 죽는 삶이 있고 삶으로 죽는 삶이 있고 죽음으로 사는 죽음이  있습니다.

세상은 본디오 빌라도는 삶으로 죽는 그 삶을 취했고 예수님은 죽음으로 사는 그  죽음을 택했어. 우리가 요 세 가지 알아야 되 먼저 밑천 주인이 주님이시라 주의  소유라 이것이 밑천 이거 가지고 경건연습을 해 경건연습이 뭐이요. 그를 위하는  것이, 그의 것으로만 사는 것, 경건연습을 해 경건연습할 때에 세상이  박해오면은 너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싸고 있는  네가 진리 안에 들었기 때문에 구속 안에 들었지 하나님 안에 들었기 때문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를 두드리면 네가 맞아서 죽었고 네가 골병이 들었다. 그는  때리도 상하지 안하니까 상하지 안하니까 네가 그 안에서 골병된 것은 그의 것이  된 것이고 그 안에서 있어. 세상이 너를 해할 수 없는 것으로 끝나버렸어.

끝나버렸으면 세상을 완전히 이겼고 세상은 다시 할 수 없는 것 되어졌고 완전히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되 가지고 이제 세상은 이기되 세상은 너희것 됐다. 세상이  자기 것 된 기라. 요거 환란 각도의 요것을 알아야 그때 능력있지, 이기지, 이거  없으면 헛 일입니다. 이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느끼지 못했어.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고히 깨달아서 그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 독침 앞에서 공산주의  앞에 환란 앞에 죽음 앞에서 닥쳤을 때에 요 세 가지를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나는 뭐이냐? 나는 누구의 소유냐? 나의 주인은 누구냐? 이거 벗으면 주의  구속과 나는 상관이 없다. 법적으로는 있으니까 심판은 면했지마는 하늘나라  가서 아무 것도 없어.

이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연습해 경건연습하는 것이라. 여기에서는 하나님  크심이 흐려져 하나님 것임에 변동되 하나님 것임에 변동되지 않는다. 주를  위함이 변동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아 주님의 것만 갔다. 쓸란다. 주님의  은혜 주님의 지혜 주님의 지혜를 가지고 말합니다. 주님의 지식가지고 말합니다.

주님의 권능만 씁니다. 주님의 보호만 써 네가 다리오왕이 네가 너를 보호하면  안 죽을 터이니까 네 보호를 받아라. 보호 변동않습니다. 주의 보호만 받습니다.

고기 주의 보호에 변동안했어. 주의 보호만 받았어. 그 경건이라. 이러다가  박해를 당할 때에는 너를 때리냐? 진리 때리냐? 진리를 때리는데 너는 상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네가 상했지 고 다음에 네가 보면 "너를 미워하는 것은 먼저  나를 미워함이니 나 때문에 미워하는거라 나를 미워하는 거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이러니까 내가 진리 안에 있으니까 두드려패니까? 진리야 상합니까? 진리가 안  상하니까 내가 상하지 내가 상하는 것은 뭐입니까? 상하는 거는 뭐입니까?  세상이 상울 때에 상해질 수 있는 그것이 상해지는 것입니다. 상해질 수 있는  그것은 여기에서 상하면 상하면 진리 안의 것으로 진리 안의 것으로 진리 안의  것이 세상이 상할 수 없는 것인데 진리의 것이 되버리는데 지금 이렇게 안되면  이다음에는 진리 안의 것이 세상에게 상할 세상이 상할 수 없는 것으로 진리  안의 것이 되지 못하고 요 기회를 놓히면 요 기회 놓히면은 진리 안의 것이  세상이 상할 수 있는 세상이 상해할 수 있는 그것으로서 끝나버리고 말았지 요말  알아 들립니까?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를거라. 세상이 상할 수 있는 것으로 끝난  것은 자연히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그것은 그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그것은  어찌됩니까?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그것은 세상이 상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이  상우니까 상해진 것입니까? 죽일 때 죽는 것은 세상이 상우니까 상해진  것입니까? 저절로 상해진 것입니까? 죄가 죽이는 것입니다. 죄의 주인이  세상이요. 세상에게 상해질 수 있는 세상 것으로 끝났습니다. 세상 것으로  끝났소. 그러나 거기에서 없어진 것은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늙어 죽어도 세상이 상할 것으로서 끝나지 아니하는 것 있는 것을 저  지난 번에 많이 말했는데 고것은 사선 넘어서 완전히 이제 세상은 죽일라고  달라들고 이래 했는데 죽을 각오 가지고 죽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고 진리와  함께 없어지기를 죽게 하지 안하시니까 남아 있습니다. 그 본인은 벌써 죽기를  원했고 죽었고 죽었고 또 세상도 죽였는데 하나님이 살려서 남아 뒀습니다.

고것이 뭐이냐? 살아 있는 성화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고것이 살아 믿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이 와야 괴롭지 안해. 세상이 오면 어서 가고 싶으니까 기쁘고  즐거워. 주남선 목사님은 어서 가고 싶으니까 6. 25때 행여나 순교를 할까 싶어  찾아 돌아다니면서 자꾸 인민군 밉상만 지깁니다. 이 황충이떼들이 왔으니까  조심해야 된다. 이러니까 잡아다 가두니까 두 사람은 덜었고 한 사람은 기뻐  즐거워했습니다. 기뻐 즐거워하니까 그들이 고통스럽게 하는 고통을 주지를  못했고 해를 주지를 못했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움을 줬으니까 고게 뭐입니까?  고게 뭐이요. 살아 믿는 자 살아 믿는 자 고것은 인격은 살아 믿는 인격이  되버렸어. 그 감정도 살아 믿는 감정이 되버렸어. 감정 죽지 안해. 세상이  해하지 못해. 겉사람은 부패하나 고기덩어리 껍데기 그거는 늙어서 죽지 껍데기  그거는 껍데기 그것은 주님이 부활할 때에 다 부활시킵니다. 부활시키요. 주님이  부활시키지 지금 부활 시키지 안해요.

이러니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져 이거 참 꼭 여러분들이 지금  환란을 만나지 안해도 환란 중에 들어가야 이 도를 배웁니다. 환란을 거석하고  지금 강하게 자기에게 느끼져서 자기가 아직까지 아니라는 것 아직까지 예수님의  구속 밖에 있다는 것 이것을 자기가 찾지 못하면 요 다음에 될 때에는 못  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것은 녹음을 들을 때에 녹음기 가지고 녹음만 들어 가지고 되는것 아닙니다.

녹음은 말이 전해갑니다. 권능이 가야 돼, 권능이 내가 믿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가야 되 내가 믿어지는게 여러분들에게 가야돼. 말만 가 소용없어. 또 변화가  돼야 됩니다. 지난 밤에도 보니까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요.

오늘 아침에는 지금 여서는 듣는 것 같지마는 이 자리 떠나면 아무 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어.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담아 가지고 이  자리에서 좀 자체가 변화되가지고 계속 변화되가지고 가야 됩니다. 놓으면 헛  일입니다. 처음에 세 가지 두 가지 기초 자본 두 가지 그 다음에 중간에 우리의  연습 세 가지 그 다음에 한 가지 세상이 우리 미워하는 것 아니야. 요걸 알아야  돼. 우리 미워하는 것 아니라는 것이 것을 발견해야 되요. 나 미워하는 것  아니라. 나 미워하는 게 아니고 이 세 가지를 미워해 세 가지 미워서 두드리는데  이 세 가지는 암만 때리봤자 기쁘고 즐겁고 영광만 되지고 권위만 있어지는데  나는 이 세 가지와 합했지마는 성화되지 못해서 지금 상해질 것이 있다  그말이오.

상해질 것은 여기에서 이 세 가지로 상해진 거는 완전히 이 화됐는데 상해지지  안한 것은 이다음에 죄악인 법칙인 자연의 법칙으로 없어지고 맙니다. 기회  놓히면 그대로 없어지고 말아.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기도에 나와서 배워야 될건데, 서부교회 교인은 새벽기도 나오지 않는 그  사람은 진리 모릅니다. 얼마나 걸리면 껍데기에서 되어지는데 뭐이 됩니까?  되기를 모르는데 무슨 구원을 이루겠소?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1 겸손-목회충성/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90726수야 선지자 2015.10.24
540 겸손한 사람/ 베드로전서 5장 7절/ 840919수새 선지자 2015.10.24
539 경건/ 디모데전서 4장 6절-10절/ 811111수야 선지자 2015.10.24
538 경건/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11209수야 선지자 2015.10.24
537 경건/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11209수새 선지자 2015.10.24
536 경건/ 야고보서 1장 26절-27절/ 820120수새 선지자 2015.10.24
535 경건/ 디모데전서장 6절-10절/ 800810주후 선지자 2015.10.24
» 경건/ 디몬데전서 4장 7절-9절/ 811114토새 선지자 2015.10.24
533 경건/ 디모데전서 4장 7절-10절/ 811113금야 선지자 2015.10.24
532 경건/ 베드로후서 3장 8절-13절/ 811211금야 선지자 2015.10.24
531 경건/ 디모데전서 4장 8절/ 811112목새 선지자 2015.10.24
530 경건/ 야고보서 1장 26절-27절/ 790716월새 선지자 2015.10.24
529 경건/ 야고보서 1장 27절/ 790717화새 선지자 2015.10.24
528 경건 준비와 방편/ 마가복음 9장 16절-29절/ 880928수야 선지자 2015.10.24
527 경건 준비와 방편/ 디모데후서 4장 6절-8절/ 880905하관예배. 선지자 2015.10.24
526 경건에 대해서 금물/ 야고보서 1장 26절-27절/ 880923금야 선지자 2015.10.24
525 경건연습/ 디모데전서 4장 1절-10절/ 820324수새 선지자 2015.10.24
524 경건연습/ 디모데전서 4장 6절-9절/ 820801주후 선지자 2015.10.24
523 경건연습/ 디모데전서 4장 1절-16절/ 860209주전 선지자 2015.10.24
522 경건연습/ 디모데전서 4장 6절-16절/ 860208토새 선지자 201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