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1979. 7. 17. 화새 

 

본문: 야고보서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네 아침에 그 기도하는데 예수님을 부르면 누구를 부르는 것이지요. 호일씨.

예수님을 부르는데 주님 예수님 주님 해도되고 예수님 해도 되고 같은 말인데  예수님과 하나님과 어떻게 다르지요. 예 알기는 바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혹  처음 오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부르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 하면 예수 님의 신성을  부르는 것이고 성령님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부르는 것이고 주님하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이고 예수님 해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성을  신성과 인성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입니다. 이단이 이단이 이 역사에 제일 많이  나온 것은 에수님의 신성과 인성과 신인양성일위 이 셋을 근거해서 이단이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이 셋이 이것이 바로 되지 안하면 모든 것이 절단납니다. 신성은  하나님이시고 인성은 또 사람이고 신성과 인성이 합해서 하나가 된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아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잘 구별해야 되지 그것이 혼돈돼서 예수님의 신성은 신성대로  따로 떨어져 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야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은  인성대로 아무리 합하여 있긴 있지마는 인성은 인성대로 따로 한테 합해서 있기는  있지마는 아무리 콩하고 팥하고 이렇게 섞어도 두 가지를 아무리 한테다 여  가지고서 이렇게 많이 흔들어대도 그 팥은 팥대로 콩은 콩대로 한 그릇 안에  들기만 들었지 각각 그딴 것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또  신성과 인성이 둘이 한테 타서 이는 신성도 아니요 인성도 아니라. 고만 붉은 물  노란 물 둘을 한테 이래 타 가지고서 많이 흔들어 노니까 매타보니까 이거는 붉은  물도 아니고 누른 물도 아니고 고만 아주 혼합이 된 것이라 하는 것처럼 신성과  인성이 이렇게 혼합됐다 이라는 것이 이단입니다. 이것이 세계역사에 두번재 회의  서텀 나왔습니다.

 제일 처음 회의는 예루살렘에서 사모들이 모여 가지고 구약에 있는 그 모든  제도와 신약에서 구약 제도를 그대로 지켜 나올 것과 이것을 판별하는 회의가  예루살렘에서 사도시대에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으로 있습니다.

 그 후 회의는 옛님의 이 신성 인성에 관한 이단들 때문에 회의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그 회의에서 아주 열렬하게 주장했던 그 신학자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그 회의에서 아주 열렬하게 주장했던 그 신학자가  예수님의 인성 부인하는 그 다음 회의 때에는 적극성있게 이단편에 서가지고서  일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무리 열심있고 뭐 강하게 주장하고 일을 많이 한다고 그것이  가치있는 것 아닙니다. 모든 아는 지식이 발라야 되고 그것이 발라야 되는 것이지  666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 666이 있는데 666이라고 하는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것이요. 교회 안엔느 그러기 때문에 지식도 제일 높으고 지혜도 제일  높으고 일도 제일 많이 하고 또 아주 강하고 이런데도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최고지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기요.

 그러기에 이 믿는 도리가 성경대로 안되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믿는 도리가 많은 그 면이 있으니가 자기가 바로 깨달은 고면 또 고것을  자기가 바로 행한 고 부분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한 고 부분만 고것이 성화가 된  것이지 그렇다고 해가지고 바로 깨닫지 못한 그 부분이 별 것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야 됩니다. 앎이 자라가야 되고 행함이  자라가야 되고 함께 자라가야 되지 그것이 함께 자라가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기도한다는 것을 자꾸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이라고 기도한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칭호를 하고 그저  부를 때에는 주님이라고 이래 부르기 때문에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것이 없을  때에 다른 사람이 좀 의문을 가지기 쉽더라 이기요. 주님 앞에 우리가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즌 경건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경건이라 말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자기가 말씀대로 사는 그 행위를 가리켜서 경건 이라 그랍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 그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잡것이 없는 경건입니다. 잡것이 없는 경건 참 깨긋한 경건 하나님 중심이라고  하나님 위 주라고 이렇게 하지마는 겉만 그렇고 속은 안 그럴 수가 있고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지마는 고것이 인간이 만들어서 자기가 지금 그것을 자꾸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인본으로 고렇게 한 것이지 저 깊은 속에는 하나님이 주장이  되지 안하고서 인간이 주장되는 인간이 근본이 되는 것을 가리켜서 인본주의라  이랍니다. 하나님이 근본되는 것을 가리켜서 신본주의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  속이 참으로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의 그 행위인지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 이기요. 그 속이 그런지 안 그런지 우리가 속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속을 모르 는데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 알지니라. 우리가 볼수 없는 그 이  면의 근본을 우리가 모르거든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면은 알 수가 있다. 이래 놓고 그 결과가 무이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더러움이  없고 정결한 그 경건은 무슨 징 표가 나타나느냐 외부에 어떻게 나타나느냐 외부에  나타나는 것은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여 고아와 과부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린 것과 불쌍한 그 종류에 속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고아는 부모 없는  아이가 고아요. 과부는 무의 무탁의 인간의 과부입니다. 물론 육적으로 고아와  과부도 과부이지마는 인간이 사죄와 관계가 없는 칭의와 관계사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그것이 참 고아입니다. 그것이 참 고아요. 그것이 참  과부입니다. 물론 육체의 그런 것도 하지마는 인간이 제일 희망이 없고 자기를  보호할 보호자가 없고 자기를 보호할 보호자가 없고 자기를 길러줄 자가 없는 그런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어떤 자냐 사죄와 관계가 없는 사죄에 관계가 끊쳐져 있는  자 사죄의 관계가 끊침 자 인간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은 사죄로 양육해야  됩니다. 사죄 죄를 없는 것으로 뭐 고기 덩어리를 양육하는 거 암만 커봤자  어짜든지 그 사람에 게 죄 없는 면이 자라야 됩니다. 과거에는 죄가 삐뚤어진 것이  100가지 있드니마는서도 이제는 삐뚤어진 것이 90가지 됐다. 그라면 삐뚤어진 거는  줄어지고 삐뚤어진 것이 없는 것은 이제 자라지는 것이 돼집니다. 그래서 점점  자라서 이제는 삐둘어지지 그 아니한 것은 삐뚤어진 면은 차차 줄어져 서러  없어지고 삐뚤어짐이 없는 그 면이 점점 자라가는 그것이 이제 자라가는 것입니다.

또 의와 관계가 끊어져 있는 거 의가 그에게 자라지 안해. 또 하나님과 함께하면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 했고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하나님과 같이 있 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하고 화합이 돼 가지고서 있는  이것이 없는 그것이 참 고아요 과부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라는 것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는 이 말씀은 그 사람에게 신령한 것 신령한 것  신령한 면이라 하면 별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신성을 닮는 그 인격성을  가리켜서 신령한 면이라 합니다. 그 사람이 신령 한 면이 장성하다 그 말은 그  세상이 말하는 인격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격을 닮은 인격 곧 하나님의 형상이  장성하다 그말이요. 이렇게 더러움이 없고 정결한 그 경건은 그 사람에게 무슨 그  열매가 맺어져 있느냐 하면 죄를 제거하는 죄를 멸하는 이 운동이 그이에게서  나타난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죄를 멸하는 그 운동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 겉 사람이 그란게 아니고 자기 속 사람으로서 그게 나와서 그 어데를 가도  그만 죄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죄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재미있게 여기는  그게 아니고 자기는 몰라서 죄인줄 몰라서 그걸 죄를 옳다고 바르다고 해 가지고  환영을 했어도 어짠지 자기 속에서 그 삐뚤어졌다 하는 그 하나님과의 삐뚤어진 그  삐뚤어지 것은 자기가 그것이 자기 비유에 맞지 안해서 대적하는 그 운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죄를 이렇게 죄로 더불어 싸우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멸하는  이런 무슨 운동이 그에게 있느냐 많든지 적든지 장성하든지 어리든지 그것이  있으면 그것이 뭐이냐 그 정결한 경건이 있는 증거입니다. 경건이 있는 증거. 죄를  멸하는 운동 의를 좋아하고 의를 좋아단 말을 하나님의 듯을 행하는 것은 제가  행했든지 남이 행했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의 듯을  원수가 말해도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는 듣기 좋고 기쁘고 즐거운 의를 좋아하고  의는 하나님이 뜻대로 행동한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해서 그  결실이 되면 그게 의입니다. 그 의를 좋아하고 의를 건설하고 의를 운동하는 의의  운동이 그에게 있습니다. 사죄의 운동이 그에게 있고 칭의의 운동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제가 위대하다고 해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에게  죄를 멸하는 운동이 없고 죄를 환영하고 좋아하는 죄를 흥미있고 취미 있게 여기고  죄를 환영하고 좋아하는 그 그 사람뿐이라면 그것은 중생이 됐는지 안됐는지 그  사람은 택함을 입은 사람인지 안 입은 사람인지 우리가 그저 판정을 못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붙쳐 버리야 됩니다. 그 사람이 교회  나온다고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그렇게 택한 사람이라 중생된 사람이라 그렇게  (여기지 못)여기지 못합니다.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그 사람은 그에게 제 대로는 죄를 멸하는 그  운동이 그에게 나타납니다. 그 생활에 보면 죄를 멸하는 운동이 있고 또 의를  건설하는 운동이 있고 의를 건설하는 의의 운동 의를 건설하는 운동이 있고 이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찾는 운동이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라하는 운동이 있고.

또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해서 그 하나님과 이렇게 멀어지는 그 운동을 싫어하고  그 하 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운동이 그에게 있는  것이 그것이 경건 노릇하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뭐 언제 자기에게 여유 있을 때가 아니고  언제든지 그거는 계속됩니다. 사람들이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아주 의도  칭어리가 있지 않소. 의도 아주 이 저급이 있고 좀 그보다 높은 게 있고 높은 거  높은 거 높은 거 있고 이런데 이제 그 사람은 죄도 그렇소.

죄도 아주 어리고 장성하고 이리 강한 이 칭어리가 많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의에  보니까 의에 보니까 아주 1학년 의에도 그 사람이 의에 동참을 하고 6학년 의에도  그 사람이 또 6학년 의인으로 동참을 하고 또 그 사람이 뭐 이 아주 최고의 학부에  그 학부와 같은 그런 고급 의에도 동참을 합니다. 그 그거 만큼은 모릅니다.

모르는데 그 사람이 죄도 보니까 환경이 바꿔져서 바꿔져 가지고서 그 1학년 죄가  있으니까 또 그게 동참해서 뭐라고 1학년 죄 (이래요) 또 아주 최고의 고급의 차  전ㄹ적 죄라도 주홍같고 진홍같은 그런 죄의 운동이라도 환경이 전부 그런 죄의  운동이니까 또 아무 거리낌 없이 죄의 운동자로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소. 이것이 실수가 많지마는 실수가 많지마는 그 의의 운동의  갈대는 보니가 어떻게 빈약한지 1학년 의에만 동참하지 2학년 의에도 툭툭  떨어져서 그만 그기서 의를 이루지 못하고 건설하지 못한 빈약한 자지마는 이자가  그 죄의 운동 에 가니까 1학년 죄의 운동에 가니까 제 비유에 맞지 안해 마찰이  되고 점점 세대가 어두워져 가지고서 6학년 죄의 세대가 되니까 그만 그게 더 강한  죄니까 더 강한 죄의 것이 돼 가지고서 한 덩어리 될터인데 거기 마찰이 더  됩니다. 6학년 죄의 운동에는 마찰이 더 되요.

또 최고 학부와 같은 그런 강한 죄 온셰계가 아가서에 말한 대로 해가 기울고 그림  자가 갔다. 해가 있을 때에 그림자가 있지 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지요. 물론  등불 켜 놓으면 있지마는 이제 해가 있으면 빛이 있으면 그 빛이 가리워졌다.

그렇지마는 빛이 없으면 그림자인지 뭐 밝은 것인지 어두운 것인지 전부 먹장같이  새까만 것밖에 더 있겠소.

 이렇게 세상이 검어지고 어두워 질 수록 온 세상이 다 깜깜한 밤중 같이 이렇게  최고 학부의 죄악이 강한 세력인데 그 속에 있으면 뭐 다 그 러니가 아무 것이  없을 것 같은 데 이기 1학년의와 의 밖에는 감당 못하 던 것이고 이러니까 아주 그  약한 의지마는 죄악이 강해지고 장성해 질 수록 이에게 대립은 더 많습니다.

대립은 더 많소. 그 속에 생겨진 종자가 있기 때문데 마치 불빛이 요 아주 반듯  반듯 하이 아주 극히 미약한 등불이 있다 합시다. 자 이등불은 어떻습니까  이등불에 표시가 밝아야 표시가 많이 납니까 이거 안들으면 몰라. 내가 엊데  아침에도 그걸 말했는데 인본으로 제가 암만 예수 잘 믿어도 그거는 소용없는  깁니다. 그거는 모르는 사라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요. 세상에 안믿는 사람 그  사람도 이 믿는 사람보다 사리 판단이라 모든 게 훨씬 뛰어 났습니다. 그렇지마는  보면 이거는 미중생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요. 빛이 아주 작은 등불인데  이 등불이 어찌 됩니까? 어둠 침침 할 때에 마찰이 많습니까. 어두움이 짙어 갈  수록 마찰이 많습니까. 어찌 되지요. 남반에 저 뭐꼬 김 김뭐긴 뭐라하노 뭐라샀노  아 홍가가 나는 김재금 아들인가 김재금씨 아들인가 그 내 아는데 홍성표씨  아들이가 홍 그래 그래 어두움이 짙어 갈수록 어두움이 짙어 갈 수록 고 빛의  마찰은 더 심해지는 거 아닙니까 심해지는 것이요. 그렇지 안하고 보니까 아주  대낮에는 보니까 그 빛이 환합니다. 대낮에는 빛이 환하드니마는 차차차차  어두워지니까 빛이 적이 지디마는 캄캄하니까 하나도 빛이 없애 버립니다. 그 빛은  무슨 빛이지요 그 빛은 제가 빛을 가지고 있지 안하고 빛을 반사하는 이 큰 거울을  들고서 이라며은 아주 한 낮에는 참 했빛 같소 한 낮에는 만일 그 거울가지고 이래  빛을 반사하면 캄칸한 그 굴속에 비치면 굴속이 환합니다.

 이러니까 아 저건 참 큰 빛이다 이렇지마는 이제 차차차차 해가 기울 으니까 그  빛이 없어집니다. 저렇츰 밝은 빛이니까 아매 밤중에는 대단히 우리에게는  필요할끼다 했지마는 밤중에 거기에서 빛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조 현욱씨 안  나옵니다. 그 자체에 빛이 없습니다. 아 보니까 낮에 보니까 보이지도 아니하는 똑  그 벼룩만 그 벼룩보다 큰데 그 말하기를 아주 낙은 불갔다 벼룩만 하다고 벼룩  말하는데 그 벼룩불 그만 낮에는 보니까 그까짓 거 저까짓 게 무슨 밤에 도우이 되  이랬지마는 아니 어두워 갈 수록이 그게 빛이 뚜렷합니다. 최고로 어두우니까 그  빛인 아주 작지마는 거기에서 거리 먼데서도 보니까 그것이 환하게 보여집니다.

이와 마찬가지요. 그거는 하나라 그 이자체가 빛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사람에게 하나님으로 인한 그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의 그 씨가 심어져 가지고서  있는 그자와 그것이 없이 순전히 이 세상 것 가지고 의에 갈때는 아주 대의인도  되고 죄의 갈때는 대죄인이라 아무 그게 없어 이런 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경건이 잡것이라 그 말이요. 그거 잡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게 아니고  인간으로 인하여 된 것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택함을 입고 중생은 받고 그 사람에게 벌써 영생이  역사하는 그것으로서 경건의 행위가 나오는 사람은 이 사람은 그에게 죄를 멸하는  운동 의를 그 이루는 운동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운동이 본능적으로 그 속에서  나옵니다. 이 운동이 있소.

 이래서 어떤 사람은 죄에 가면 완전히 죄의 것이 되고 의에 가면 의의 것이  됩니다. 이러니까 아주 의로운 세대는 그 교회가 왕성되고 복음이 힘을 얻는  복음이 왕성하는 그 시대는 아주 복음적으로 앞서요. 총회장도 하고 노회장도 보고  시찰장도 하고 아주 예수 잘 믿소. 그러나 어두움이 오면은 깜깜한 어두움이  오면은 하나도 없소. 완전히 어두움의 인간이 돼 가지고서 어두움으로 하나  돼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자기 안에서 싸우고 있소. 자기 안에 싸움이 있고 자기  밖에 싸움이 있소. 이것이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세상을 접하는데  세상을 접해서 이렇게 접할 때에 세상을 접할 때에 세상에 있는 공자의 도덕 뭐  석가모니의 종교고만 세상에 좋은 것 그게 다 세상인데 기독교 외에는 전체가  세상입니다. 세상인데 세상을 접할 대에 이렇게 세상을 접촉할 대에 접촉할 때  아이구야 이렇게 좋구나. 이렇게 개끗하구나 이렇게 되지 안하고 어떤 좋은  아름다운 깨끗한 세상을 만나도 그 세상보다 깨끗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된 사람이요. 자기는 비록 행위를 얄긋게 하지마는 세상이 모두다  이거는 참 아름답다고 막 이렇게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는데 그거를  볼때에 자기 속에 저 면이 틀렸다. 자기가 평소에는 그걸 몰랐는데 세상이  깨끗다고 말하는 그것을 보니까 그거보다 깨끗한 것이 자기 안에 있어서 아 저기  이면이 저기 안됐는데 자기보담 그 보담 더 좋은 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비로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좋은 것으로 인하여 자기 속에 좋은 것이  그보다 좋은 것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 바르고 곧은  그것을 접할 대에 그것보다 더 바르고 곧은 것이 자기 안에 있었다는 걸 자기 안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이 작용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세상을 접할 수록이 세상에 물들어 가지를 아니하고 세상을 접할 수록이  세상을 그것을 이해서 자기 속에 그 보다 깨끗한 그것이니까 그리 딸더라  그말이요. 그리 딸으니까 어떤 세상을 접해도 세상에 물이 들지아니하고 세상 좋은  것을 인해서 그것보다 자기 속에 더 좋은 게 있는 걸 몰랐는데 그거보다 더 옳고  바르고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찾아 가지고서 그게 속하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악령이 세상에 발 아래 이 곧은 것이 이 보다 더 곧은 게 있느냐?  세상에서 최고로 곧은 것을 가지고서 이래 주니까 모든 사 람 (아이구 이게  최고로구나 이보다 더이상 곧으게) 이 이상 더 곧은게 있는데 중생된 자는 어떤 대우가 있느냐하면은 세상에서 그 사람은 말이지 그 곧은데 근방  가지도 못한 사람이죠 이렇지만 세상에 곧은 것을 보이니까 그 곧은 것을 보이니  주니 이 곧은 것을 인해서 야 이 곧다 그 곧은 거 인해서 그만 그 곧은 것이 속해  질긴데 속해야 될긴데 안속하고 곧은 것을 보아니까 아! 이 보다 곧은 것이 내  안에 있구나 자기 속에 영감과 지리로 이제 중생 돼 있는 거기에서 그것보다 더  곧은 것이 비치이어 나오기 때문에 아 보다 이거로구나. 이러니까 이 세상에 굽은  것을 말이죠. 곧은 것을 조금 곧은 거 좀 더 곧은 거 많이 곧은 거 이 곧은 걸 줄  수록이 중생된 자들에게는 이 곧은 것이 환영을 받습니까? 이 곧은 것이 환영을  받습니까? 모를 대는 그걸 배척하니 곧은 것을 배척을 안했는데 이 곧은 것을  보일때에 이 곧은 것이 그 사람에게서 환영을 받습니까? 배척을 받습니가? 여  여반에 나 인숙씨 예 네 곧은 것이 환영을 받는단 말이지요. 또 이제는 저 발토  홍군? 그래 어때 배척 받아 환영 받고 배척받고 나 집사님은 환영을 받는다고 하고  여서는 배척을 받는다 하고. 세상이 아주 이 사람을 미혹시킬라고 이 사람을 에수  믿는 걸 미혹시킬라고 아주 예수교는 뭐이냐 예수교는 깨끗한 교인데 곧은 교요  정결한 교요. 의로운 교요. 이러니까 이놈을 미혹을 시키는데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저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기독교만 있는게 아니라 이방인 종교에도  있다는 것을 이에게 보여 줘야 되겠고 제가 보니까 아주 곧은 것을 들이데면  이놈이 이쪽으로 끌려오지 않겠느냐 해서 이제 들이대 준다 말이요. 들이대 주는  데 이제는 거석할라고 제가 곧은 것보다 더 위에 어른 돼 있는 중간 곧은 것을 떡  갖다가 대면서 봐라 네 곧은 거는 지금 이래 일학년 이 곧은 거는 지금 중학  중학생이냐 중학이 아니냐 봐라 이라니까 요기 처음에는 볼때 아이쿠 그게 참  곧구나 이랬는데 자기 속에서 작용해 가지고서 그것보다 더 곧은 것이 고보다 조금  더 곧은 것이 자기 속에 보니까 있습니다. 아! 그 곧은 거 그 안됐는데 요 면이  보니가 틀렸는데 중간 중등 곧은 걸 갖다 주니까 중등 곧은 것을 정죄해 버리고  중등 곧은 거보다 더 곧은 것이 자기 속에 발견돼 나오더라 기요. 이러니까 그만  헛일 했소. 이놈은 이제 세상에서 최고로 곧고 깨끗한 것을 들이 대봐야 되겠다.

그러면 제가 선생으로 모시겠지. 최고의 곧고 개끗한 것을 드이대 버렸소.

들이데니까 봐라 이제 내가 믿는 도보다 이 도가 낫지 않느냐 들이대는데.

이러니까 거는 뭐 평소에 꿈도 못 꿨던 것이 이런데 최고로 곧고 깨끗하고 곧다  이랬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 속에서 작용이 나와 가지고서 무엇이 나오는데  뭐이 나오요. 성경을 생각하는 것이 나오고 그로 인해서 영감이 나오는데 보니까  아 그것이 이런 면 저런 면이 깨끗해서 그게 또 정죄를 받아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이 좋은 것을 줄 수록 기독자는 자기 속에 하나님 으로 인하여  좋은 것이 더 발겨돼 나오고 세상에서 곧고 아름다운 것을 접할 수록 자기 속에  하나님이 나오는 더보다 더보다 더 난게 나오기 때문에 세상드링 좋은 걸 줘도  정죄 받고 저는 저대로 자유고 세상에 나쁜 것을 들어대면 이때까지 세상은 나쁜  것을 들이대도 요게 죽었으면 죽었지 고것이 평소에는 그렇지만 나쁜 것이 들어  와가지고 나쁜 것이 와서러 나쁜 것이 물을 들일라고 하니까 요기 또 (똘깍  밝아지고) 이놈 이거는 뭐 그 벼룩만한 불빛이니까 요 까짓걸 큰 요동이 삼키면  삼켜지지 하고서 캄캄한데 대밤중을 들이 대니가 대밤중을 들이대니가 아 요기  반항이 더 크고 요기 빛이 더 드러납니다. 아 그게 어둠 침침할 때는 그게 있는지  없는지 몰랏는데 그걸 멸할라고 어두움이 대 밤중이 돼서 온 밤중이 캄 캄해지니까  아 벼룩불 벼룩불 만한 벼룩만한 그 빛이 말이요 이기 온 골짝에 꽉 찹니다.

어둡지마는 저 만당에 가서도 보니까 저 아래에 빨닥빨닥 빛이 있는기 환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까지 비추고 있다 말이요. 이것이 기독자 입니다.

 기독자는 하늘에서 부터 내려오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인데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은 기독자들이 이 세상 외부를 따라서 움직인은 그런 자는 자기속에 이 생명과  사죄와 칭의의 씨가 심어져ㅅ는데 그걸 기르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버릇을 들이고 길을 들이고 연습을 하기를 자기 밖에서 오는 옳은  것이나 곧은 것이나 무엇이나 자기 밖에서 나오는 그것을 받아서 자기 밖의 것에게  피동되는 그런 일을 돌아서야 됩니다. 자기 밖의 것에 오는 것에 피동되는 그것을  돌아서야 되고 자기 안에서 나오는 거기에 피동되는 연습을 하는 그것이 자기가  사죄 칭의 새생명을 받아 중생된 그 자를 기르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경에 물들지 않는 것 세속에 물들지 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속에 이 생명이 있는 자는 그게 물들지를 안해.

 어떤 자들은 보면 고만 그런 연습을 하지 안하고 그래 자란 자드른 이 것이 뭐  느구러운 가운데 가서는 대 의인이요 성자요 성녀요 성자요 성녀요. 또 죄악에  가면은 최고 최고가 최 일선 대장을 또 취해요. 그렇게 자기 밖에 피동 돼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옛사람만 기루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피동되는 거기에 피동이  되는 고 사람으로 연습을 하고 자라가는 고것을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외부에 피동되지 말고 내부에 피동되요 되야되요.

 그러기에 사람이 말이요 그 여러분들이 이 말을 해야 무슨 물인지를 모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은 세상이 다 좋다고 하면 그만 거기 따라서 이렇게 가는데 중생된  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크고 작고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이 많고  딸고 적게 따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해도  거기에 끌리지 안하고 그보다 자기 속에 더 좋은 것이 나오게 됩니다. 고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것이라면 작든지 적든지 누구에게 있든지 자기에게  비유가 맞소. 마치 지남철을 가지고서 이렇게 둘리면 은도 있고 금도 있고 뭐 흙도  있고 돌도 있고 쇠도 있는데 쇠만 거기에 그 연결된 질이기 때문에 고것이  지남철에 들어 붙은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난 거는 전체가 아니요.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지지 안한 그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대립이 되어지는  그작용이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고것을 가리켜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하는 것입니다. 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기독자는 자기 속사람을 기를 줄 알아야 되요. 자기 속사람을 기를 줄 알아서  자기 속에 있는 가람이 자라가는 그게 있어야 되지 그게 없어 환경에 피동된  것이면 그것이 생명없는 증거입니다. 환경에 아무리 하나님으로 인하여 온거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피동되지 않소. 하나님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접하는 가운데에 접해 보면은 자기 속이 그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 그와  같은 거 있기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그것으로 인해 가지고서 그것을 동질이기  때문에 그거는 횡적으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걸 좋아합니다. 왜 자기와  같거든 자기 속에도 그게 있거든  이러니가 그걸 좋아하는 거는 자기 속에 그게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ㅇ 것이요.

그러면 좋아하던 자기 밖에 있는 그걸 다 좋게 평가해 좋아하지 마는 그 사람이  움직일 때는 어떻게 움직이느냐? 자기 밖에 있는 좋은 것에 움직이지 안하고 자기  속에 있는 좋은 것에 내나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은 양심을 안 쓰면 헛일입니다. 양심을 안 쓰면 그 구원은  헛일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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