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에 대해서 금물

 

1988. 9. 23. 금밤.

 

본문: 야고보서 1장 26절∼27절.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음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경건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을 말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베드로후서 3장에도 '만물이 불타고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의 오시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마지막 불심판에  멸망받지 않고 구원얻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디모데전서 4장 6장에는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에 약속 있는  축복이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유익이 약간 있지마는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세 영원토록 우리에게 유익된다고 성경이 증거했습니다. 지금  88올림픽이라고 하고 있는 이런 것은 다 육체 연습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경건, 이  경건은 일조 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고 이 경건은 많은 연습을 거쳐서 경건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경건에 대해서 더러움이 없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건에는 부정한 경건이 있고 더러운 경건이 있는 것을 여게 말씀을  했습니다. 부정한 경건, 더러운 경건, 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또 참된  경건, '헛것이니라' 헛된 경건, 헛된 경건도 있고 더러운 경건도 있고 또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는 그런 보배로운 경건도 있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경건은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 생활,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의 신앙 행위 이런 것이 다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이 선포한 법칙대로 사는 이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 이것이 경건입니다.

 그런데, 경건에 대해서 제일 금물이 뭐이 금물이냐? 경건에 대해서 제일 금하는  금물이 뭐인가? 그것이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제일 금물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 섬기는 신앙 생활인데 이 경건에 대해서 제일  금물이 뭣이 금물인고 하니, 경건하다 인정하실 이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경건하냐 불경건하냐, 더러운 경건이냐 깨끗한 경건이냐 경건에 대한 평가도  하나님이 하시고 거게 대한 보응도 하나님이 하시는데 이 경건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자기가 이 경건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제일 위험하고 제일 해독이 많고  불행스러운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누구든지, 이거는 뭐 목사나 장로나 평신도나 사도나 선지나 할 것 없이 어떤  사람이든 막론하고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면 이것은 큰 화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줄로 아는 이것이 제일  불행이요 자기에게 화가 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경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 경건에 대해서 항상  경건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 경건에 미달, 경건이 아닌 이 점으로 늘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항상 고통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이나 자기가 신앙 행위하는 이런 것을 혹,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이  바울은 했다고 했습니다.

 이래도 하나님 섬기는 이 일에 대해서는 섬겨 갈수록 하나님이 어떻게 크신  분이시며 높은 분이시며 거룩한 분이시며 또 존귀한 분이신데 이분을 아무리  두려워해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지를 못했고, 아무리 높여도 높여야 할 대로  높이지를 못했고, 아무리 그분을 섬겨도 섬길 대로 섬기지를 못했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할 대로 사랑하지를 못했고, 참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도 믿는다고 해도 너무 허무하고 바라본다고 해도 너무 허무하고  의지한다 해도 너무 허무하고,  그분이 완전자시며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상대한 그 생애가 항상  마음에 그저 할 때는 떨면서 하고 하고 나서 생각하면 또 너무 버르징이  없이했고 너무 망령되게 허고 너무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심없이 한 이것이 이  경건에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경건의 실패 중에 제일 잘못된 실패가 뭐인고 하니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되는  요것이 제일 그 사람에게 해독이요 망령이요 참람이요 가질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금물이, 첫째 금물이, 금할 것이 뭐인고 하니 자기는 죽는 날까지 이  경건에 미비점과 부족점과 불경건되어 있는 이것만 죽는 날까지 찾다가 가야  되는 이것이 바로 깨달은 사람인데 이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나님  섬기는 일에 됐다고 바로 섬겼다고 하는 것이 단 한 토막이라도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망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역부러 하나님 섬기고, '항상 부족한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을 섬겼다  해도 항상 부족하다' 하는 그런 것이 다 입술로 암만 말해도 그것이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어느 모로라도 섬기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고 보면 또 너무 하나님 앞에 망령됐고 참람했고 너무 가증스럽고 거짓돼서 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 격으로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행했다는 요 심정이, 그 심정이 자기에게 계속 있는 그것이  경건을 준비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게 표시했습니다.

 요것이 없는 것이 자기가 어데까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는 신앙  생활했다 할지라도 요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불경건의 패역과 배은과  망령이라는 이 점을 자기가 찾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그것이 경건 준비에는  제일 불행스러운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우주가 다 불 타 없어지는데 불 타 없어질 때에  그때에 그 모든 불심판을 면하는 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 요 두 가지로만  거게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성질을 가진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이 첫째로 우리에게는 금해야 될 일이니까 항상 이것을 우리가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것도 경건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연습해야 됩니다.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뭐 참 목숨 바치는 그런 일도 자주 할 수 있고 자기의  전부를 다 바친 생활을 하는 그런 일도 우리가 때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형편을  주셔서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럴 때라도 자기는 하나님 앞에 경건치 못한  그점으로 인한 자기에게 그 고통이 없으면 고통이 없으면 그 사람의 경건은  껍데기 경건입니다. '헛되다' '헛된 경건이라' '더러운 경건이라' '깨끗지 못한  경건이라' 이는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의 대속도 모르기 때문에 어데까지  했을지라도 자기에게는 그런 마음 자세가 생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가장  교만이요 망령이요 패역이요 그것은 참 정신이상의 비정상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것 요것을 우리가 어쩌든지 연습으로 뽑아  버려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되는 그것을 또 새로 생각하게 되면  자꾸 자기 한 경건은 너무 껍데기고 허무하고 너무도 거짓되고 참되고 참되고  완전하신 그분을 대접하고 그분을 상대하는 데는 너무도 거리 멀고 거리 멀고  얼토당토 않은 그런 행위인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연구하고 또 새로 해 보고 난 다음에 또 나서 뒤에 살펴보면 또 틀렸고 또  틀렸고 이렇게 수없이 연습을 해서 이 경건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경건은 연습으로 된다 이렇게 디모데전서 4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또, 둘째 금물은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그러면 경건은 자기 혀를  단속하는 그것이 경건 연습입니다. 재갈 먹인다는 것은 큰 말을 제어할 때에 그  말을 사람이 이기지 못하니까 그 말을 주인이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서 말  입에다가 재갈을 먹입니다. 재갈은 쇠로 가지고 동글동글한 쇠고리로 가지고  이어서 그 재갈해 놓은 것도 있고 또 쇠줄을 이렇게 동가리동가리 이래 이어서  이래 가지고 굵은 쇠를 가지고 이어서 그걸로 가지고 말 입에다 꽉 물려 버리면  이 말이 아프니까 혀로 밀어내려고 암만하고 암만 씹어 봤자 그 쇠가 끊기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 탁 홀치면 말 앞니만 있고 어금니가 없습니다. 어금니 없고  앞니 있는 그 사이에 이 쇠사슬이 딱 들어가 가지고 뽈끈 이래 조아 버리면  아무리 큰 말이라도 꼼짝 못 하고 사람이 이끄는 대로 그는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재갈 먹인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혀를 자기가 말을 재갈먹이는 거와같이 자기 혀가 자기 마음대로  자기 혀가 제 마음대로 날뛰어서 나는 그말 안 하려, 했는데 그말 해지고 나는  하나님으로만 인해서만 말하려고 했는데 언제 그것이 말을 했는지 그만  하나님으로 인한 말도 아니고 자기가 조심해 가지고 무슨 앞뒤를 생각하면서 한  말도 아니고 불쑥불쑥 이 말이 자꾸 나옵니다. 자기 말이 자기 양심에 복종하고  성령에 복종하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이런 혀가 되어서 이 말에 흠과 점이 없는,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할 터인데 이 혀가 제 마음대로 놀려서 말이 실수되는  그면을 생각해서 자기가 혀를 단속하지 못해서 그 혀로 말미암아 뭐 하루도 몇  차례나 안 할 말, 또 잘못된 말, 하나님으로 동하지 않고 이 혀가 제 단독으로  동하는 이런 일을 한 그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이며 하나님 섬기는 일이  아닌데 자기 혀를 재갈 먹여서 자기 혀를 자기 자유대로 해서 자기 허락이  없이는 그 혀가 날뛰지 않고 영감 없이는 날뛰지 아니하고 주님으로 인하지  않으면 그 혀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혀를  단속하는 이 일이 없으면 그 사람의 경건은 다 헛것이요 거짓부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생활을 한다고 이렇게 하는 신앙 생 활하는 사람  가운데에 제가 신앙,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제일 큰  화근이요 죄요, 둘째는 자기 혀를 아직까지 자기가 재갈먹이는 이 일을 힘쓰지  않고, 자기 혀를 자기가 재갈먹여서 혀 제 마음대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자기  속에 신앙 양심대로 그 혀가 움직이고 진리대로 영감대로 움직이고 주님으로  인하여만 움직이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 혀를 단속하는 그것이  경건에 둘째로 중요하다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자기 혀가 제 마음대로 놀리는데 하루 동안 오늘은 혀 이놈이 제 마음대로  날뛰었다, 내 지도를 받지 않고 내 지배를 받지 않고 내 안에 계시는 영감에게도  진리에게도 주님에게도 지도받지 않고 이 혀가 제 마음대로 날뛰었다는 요것이  한 차례 두 차례 몇 차례 있었다 하는 이것을 찾아 가지고 혀를 이걸 말을  재갈먹이듯이 이것을 단속해서 꼼짝을 못 하도록 혀를 단속해 가지고 혀로  실수함이 없도록 이렇게 자기 혀를 단속하는 이 일이 없는 사람은 그 경건  준비한다 하는 것이 다 헛것이라, 헛된 경건이라 말씀을 한 것입니다.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러면 자기 마음을 속인다는 것은  자기 마음으로 이것을 해야 된다. 마음이 해야 된다 하는데 마음은 해야 된다  하는데 행동하지 않은 것은 그 행동이 마음을 속였습니다. 또 마음으로 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행동은 엉뚱한 행동이 됐습니다. 그것도 마음을 속인 것입니다.

마음을 속인 것은 행동이 마음을 속입니다.

 또 자기는 사람들의 이목도 알고 모든 사람의 그 모든 평가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주 그 행동은 좋은 행동, 아름다운 행동, 사랑의 행동, 친절의 행동  봉사의 행동, 참 이 진실하고 경건한 행동은 하는데 그 행동과 마음이 다른  그것이 또 그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게 하려고 이것을 위해서 계속 투쟁의 노력이  없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경건 생활한다는 것이 다 껍데기요  거짓부리요 다 더러운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경건 생활하는 데에는 셋째로 중요한 것은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게 하려는 이 일을 어떻게 하든지 연습하고 또 하루 연습하고 일 년 연습하고  십 년 연습해서 이제는 마음과 행동이 둘로 될 수 없고 마음과 행동이  하나되도록, 마음에 해야 되는 것이면 행동도 해야 되고 마음에 하고 싶으면  행동도 하고 싶고 또 행동에 한 것이면 마음도 같이 했고, 이렇게 마음과 자기  행동이 함께 동하고 정하지 아니하는 것, 둘이 서로 다른 것 이것을 가리켜서  마음을 속인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단속해 고쳐서 어쩌든지 자기 신앙 양심에 해야 되는 것은  아무리 육체가 여러 가지 환경에 어려움이 있어서 할 수 없는 그 난처한 일이  있어도 기어코라도 마음에 하기로 작정한 것 해야 되는 것, 또 해야 할 것 이렇게  마음에 판정하고 원하는 것이면 그 몸도 함께 따라서 같이 해야 되는데 마음과  행동이,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않는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그 싸움, 거게 대해서  느끼는 고통, 거게 대해서 쉬지 않고 계속 노력해서 단속하는 그 단속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의 경건은 다 헛것입니다. 다 헛된 경건입니다.

 더러운 경건은 어떤 게 더러운 경건인고 하니 디모데전서에 보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일을 한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이 일을 자기 유익  자기 중심 자기를 위해서, 자기 속에는 자기를 위주로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좋게 하기 위해서 이 경건 행위를 하려고 애쓰는  그것이 다 더러운 경건입니다. 더러운 경건. 경건은 크나 작으나 그 행동이  하나님을 위한 참 거룩하고 깨끗한 경건 생활인데 이 경건을 더러운 이익을  소망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가증된 행위를 하면 요것은 더러운 경건입니다.

경건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경건은 더러운 경건입니다.

 자기는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야 손해가 가든지 절단이  나든지 박살이 나든지 주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이 아니면 경건의 성질이  아닙니다. 경건의 종류가 아닙니다.

 이래서 자기 마음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이렇게 마음과 몸의 행위가  일치되도록 하는 요 일을 또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하다 보면 행동은  했는데 마음은 따로 있어요. 사람은 어쩌든지 외식이 여기 꽉 배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 보이게 행동하는 것은 백점이라면 그 속에 마음은 십점도  안 됩니다.

 자기 마음과 행동이 하나 되어서 행동으로 사랑하면 마음도 사랑하고 또  마음으로 원하면 행동으로도 그 원하는 행동을 하고 이렇게 해서 마음과 몸이  함께 동하고 정하고 이것이 동하고 정하되 제대로가 아니고 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고, 그 기름 부음 영감으로 동하고 정하고, 진리로 동하고 정해서 이 마음과  몸이 일치되기를 연습하고 일치되어서 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이게 되도록  이 면을 단속해서 날마다 싸우니까 싸워보니 그 싸움을 안 할 때에는 자기는  의인인 줄 알았는데 그 싸움을 하고 보니까 하루도 실수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자기가 거짓 된지.

 이래서, 루터도 자기가 너무 더러워서 이 자기가 그만 사형을 시키고 지옥을  보내야 되고 이거는 어떻게 자기를 모질맞게 형을 해야 될 것인지 자기에 대해서  그렇게 미워서 단속해도 안 되고 단속해도 안 되고 그런 고통을 느꼈다는, 루터만  아니라 그런 고통 느끼는 사람 이 순서가 없이는 경건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심신 일치, 또 그 혀를 재갈을 먹여서 그 혀를 꼼짝 못하게 단속해서  혀가 절대 자유하지 못하고 그 영 양심 신앙에게 꼼짝 못 하고 다스림을 받고 제  마음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이 일을 하려고 하면 힘이 들고 이 일은 당장에 안  되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을 통해서 하는 것이 이것이 경건을 준비하는 하나  준비의 과정입니다. 이래서 경건을 마련하는 데에 세 가지를 지금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마음을 속이는 것은 헛  경건이라, 자기가 지금도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이 돼지면 이것도 다 헛 경건이라.

이 세 가지 있는 것은 다 헛 경건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세 가지를 있는 것을 없애고 참된 그 세 가지로 혀를 재갈  먹이고 마음을 속이지 않도록, 마음과 몸이 일치가 되도록, 항상 자기의 불경건의  그 요소만을 발견해서, 이러니까 자꾸 불경건의 요소만 발견하니까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하는 것은 자기에 대해서 발견하는 눈이 밝으니까 자꾸  자기가 죄인면이 많고 눈이 어두워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된 자는 자기에게  흠점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 갈 때에 경건한 줄 알면 벌써 그것이 뭐이냐?  불경건이오. 의로운 줄 알면 벌써 그것이 죄인이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줄 알  때에는 믿지 않는 자요. 자기는 믿지 않는 그점으로 울고 탄식할 그때가 실은  믿음이 좀 있는 때입니다.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이제 하나님  앞에서 참 깨끗한 경건은 어떤 것이 깨끗한 경건이냐? 경건은 하나님을 위한  깨끗한 생활이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깨끗한 생활이 경건인데, 하나님 섬기는  이 섬김이 더러움이 없고 정결한 경건이라 그말은 하나님 섬김이 더럽게 섬기지  않고 깨끗하게 섬기는 것, 하나님을 참 깨끗하게 섬기는 그 섬김은 그말입니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그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섬김에 참 깨끗하게  정상인 그 섬김을 가진 그 섬김은 하는 말입니다.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고아는 아이 중에는 제일  천한 아이요 과부는 여인 중에는 제일 천하고 무가치한 인간입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해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는 사람을  사랑치 않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보는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이래서, 하나님의 소원이, 당신을 우리가 직접 섬기려 해도 암만 해도 안 되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당신을 섬기기 위한 그 섬김을 사람에게 대해서 하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사람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고 사람에게  행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한 행동이 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경건은, 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그분의 소원이 소자 하나에게, 또 이웃 사랑 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이것이 사랑이라. 당신이 이렇게 요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그 표는, 요 몇 가지 한 가지를 들어 표시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표시는 자기가 자기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라도 혹은 아름다운 사람, 위대한  사람, 자기와 관련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의례히 사랑할 것이고 제일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제일 사랑하고 싶음이 없는  사람, 제일 인간 중에 더럽고 추접하고 불쌍하고 가련하고 천해서 아무런 거게  대해서는 사랑이나 동정이나 봉사나 그런 것을 베풀 마음이 없는 그것을  표시해서 고아와 과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난 중에 돌아보고 하는 것은 자기가 평안하고 여유 있을 때야 그런 것을  돌아볼 수가 있지마는 언제 자기도 자기가 단속하지 못하겠고 자기가 자기도  보호하지 못할 수 있는 그때가 환난입니다. 자기가 자기도 돌아보지 못하고  자기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도 위할 수 없는, 자기가 인간으로서 가장 무슨 일을  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때, 가장 어려운 때 그때에 하나님 생각하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그것이 옳은 경건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연습해서 자꾸 하는 그것이 참 하나님 섬기는 일이라. 자기도  돌아보지 못할 그럴 수 있는 그 역경에 주님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돌아보고 봉사하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그 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지중해에서 십 사 일간을 풍랑에 시달려 모든  선원들이나 승객들은 다 죽은 자와같이 되어졌는데 그때 언제 자기도 단속을  못하고 이런데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이웃을 위하여 이웃을 돌아보는  그 일을, 자기도 자기를 돌아보지 못할 그럴 수 있는 그때에 이웃을 돌아보는 그  일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시고 기뻐하셔서 천사를 보내서 '바울아, 이  배 안에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고 다 구원하리라.' 이래서, 이  사람을 내가 너에게 주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데에는 하나님 당신은 직접 어떻게 섬길래도  섬길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형제를 사랑하는 그것을 당신이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환난 중에 가장  돌보기 힘들고 무시해 버리기 쉬운 고아와 과부를 평소도 아니고 환난 가운데에  주를 생각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요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며 주님을 위한  경건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그저 말로만 하라가 아니고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 어떻게 하면  기뻐하실까? 당신이 좋아하실까? 당신을 기쁘시게 하고 좋게 하기 위해서, 참  자기는 그런 뭐 여유있는, 여유있는 때가 아니고 여유가 전연히 없는 그런 급박한  시기에 주를 생각하고, 가장 사람들이 관심이나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그런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그것이 경건 준비다, 하나님 섬기는 경건 준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를 단속해 가지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는 참 있는  나머지 조금 남은, 자기도 자기를 단속할 수 없는, 자기 위해서 자기 돌보는  데에도 모자라는, 모자라는 그 남은 힘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그만했으면 만족할 터인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그 말은, 세속이라 말은 주위 환경을 가리켜  말합니다. 주위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세속입니다. 주위 환경에 따라가는 것, 주위  환경에 피동되는 것이 세속이오. 속화되는 것, 이 세상이 이렇게 하니까 따라  움직이는 것.

 요렇게 있는 전력을 기울여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혹  주님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혹은 이 피조물 세상에게 피동되어서 주님에게  정조를 지키지 못한 창기 같은 그건 음행하는 그런 일을 할까 해서 자기를  지켜서 피조물이나 세상에게 피동되지 않고 주님에게 피동되고 세상에게  피동될까 두려워해서 피동되지 아니하도록 자기를 단속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참  섬기는 정상적인 경건 준비의 방편이라. 이래서 경건 준비의 방편을 다섯 가지로  여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러기에, 이것은 당장에 될 수는 없고 그저 백 번 연습했으면 그만치 그 사람은  여게 경건이 좀 더 이루어졌을 것이고 천 번 연습했으면 그만치 이루어질 것이고  경건 연습한 그 숫자에 따라서 경건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연습으로 되는 것입니다. 연습으로 된다 말은 자기가 경건에 오점, 불경건이  있다는 불경건을 발견하는 이것도 발견하고 나서 보면 또 나중에 가서 자기도  모르게 경건으로 인정하고 자기는 그만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 공경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버렸고 또 헛일했고 또 헛일했고 헛일을 많이 한 것을 깨달아서  다시 고치고 고침이 많은 이 연습으로 되어지고,  혀를 재갈먹이는 것도 이것은 뭐 얼마든지, 뻐뜩하면 실수해 버리기 때문에  이것도 수많은 연습으로써 이 일이 이루어지고, 또 자기 마음과 몸이 일치한  행동을 하는 이것도 이것이 어떻게 둘이 각분으로서 다른 행동, 각각 다른 행동,  마음은 마음대로 몸은 몸대로 이 둘이 일치되지 않고 제각각 움직이는 일을  단속하고도 또 금방 보면 또 제각각 움직이고 움직이고 한 이것을 많이 단속해서  실수한 것을 많이 발견하고 많이 회개하고 많이 연습하고 하는 거기에서만 이  경건이 되어진다 하는 것을 말했고,  자기가 다른 사람을, 주를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 주님의  원하시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위하는 것으로써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이 일이 안 되는 것이니까 또 하고 나서 보면 그만 자기를 앞세웠고 이웃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지를 못했고, 이래서 이것도 자꾸 실수가 많은 것을 발견해서  '아, 내가 또 실수했다.' 실수를 천 번 실수를 발견해서 천 번 고치려고 노력했으면  그만치 경건은 이루어졌고, 자기가 그 실수한 걸 한 번도 발견 못 했으면  경건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이것은 연습으로 된다 그말은  잘못된 것을 많이 발견한 사람이, 또 많이 새로 고치기를 많이 고친 사람이  경건에 성공을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래서 평소에 보다, 평소에는 자기가 이웃을 돌보는 일을 잘했는데 그만  어려우면 안 됩니다. 몸이 피곤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참 우리를  이복순 집사님이 말한 거와같이 칠보단장시키기 위해서 이런다 하면서 속으로  기뻐 좋아하면서 속웃음 웃으면서 하던 그걸 제가 봤는데.

 이렇게 우리를 깨끗하게 경건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웃을 돌아보면  자꾸 돌아보기 쉬운 그런 형편을 주시지 않습니다. 돌아보기 자꾸 어려운 형편을  줍니다. 돌아보기 자꾸 어려운 형편, 돌아볼 수 없는 형편 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야 하나님께서 뭐 그거는 할 수 없고 버려두지마는 자꾸 돌아볼수록  갈수록 점점 돌아보기 어려운 형편 또 아주 실수하기 쉬운 급한 형편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 흠과 점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는 모든 것에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이 경건을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 당하는 것은  요면으로 경건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건 게 있으니까 또 거게서 실패하고 또  울며불며 노력해 가지고 또 경건을 이루고 나니까 또 다른 면으로 또 경건을  실패하도록 하게 해서, 이렇게 해서 여러 가지, 이 경건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이 모든 여러 가지 방해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흠과 점이 없는,  그면에 부족한 것을 그면을 시험해서 그면을 채우고 그면이 모자란 것을  시험해서 또 그면을 채우고 그면을 모르는 면을 또 시험해서 깨달아 알게 하고,  이래 가지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자 되게 하려고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단속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모든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패해도 기쁘게 여기고, 실패했으니까  실패라고 우리가 절망이 아니고 실패했으면 또 앞으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고쳐서 성공의 희망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하는 이 일 하다 보면, 이렇게 남을 돌봐서 나보다 낫게 생각하는  이것 하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주위 환경에 피동돼 가지고 세속에  속화되기 쉽다 말이오. 이런데도 또 자기를 새로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 참된 경건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우리가 더러운 경건, 헛된 경건, 그것은 경건한 줄, 자기가  자기에게 불경건의 발견으로써 그면이 없으면 다 헛된 경건이오. 더러운  경건이오. 자기가 아직까지 이 혀로 더불어 싸우는 이 일이 지금 싸워서 날마다  패전뿐인 이것을 자기가 이 전투가 지금 고민이 없으면 그것도 헛된 경건이요, 또  자기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아니한 이 면에 대해서 싸우는 이 싸움이 없는 것도  경건이, 경건 준비가 안 되는 것이요, 이웃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런 것은  경건에는 정반대입니다. 이웃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고 제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이웃을 자기보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하는 것이 그것이 빌립보  2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을 대번 되는 게 아니라 또 하다 보면 또 안 되고 이거는  전부 연습으로만 되기 때문에 경건을 연습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요새 우리는 이 세속에 물드는 것,  세상 이 모든 세상 움직임에 내가 따라서 움직이는 이 일을 우리가 아주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세상 따라서 잘 움직이면 그게 성공인 줄  알고 무슨 말하면 '세상에 이런데' 세상이 표본입니다. 세상이 표본으로서 세상을  따라서 많이 하면 그것이 승리인 줄 알고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다는 이 말은 너무도 들은지도 오래 되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속화라 하는 것은, 교회가 속화라 하는 것은 말도 없어집니다.

 이래서, 88올림픽에, 이것도 세속인에 이 세속에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굉장히  물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물이 들었어요. 이런데도 세상 사람들도 이 일을 그래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그런 사람들은 여게 대해서 그렇게  분투 노력을 해야 된다는 그 가치를 여게다가 두지 않고 그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그렇게 헐하게 보고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거게서 잠깐 봐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마지막에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이거는  뭐이요? 이게 음행입니다.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 따라가며 듣기를 좋아합니다. 세상 따라가고, 세상 아닌 것 같은 세상, 인간  대가리에서 나온 인간 대가리에서 인간들이 알아주는 교리 신조 이것이라야 되지  성경 말씀에는 암만 말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리 신조적으로 속화되지 않아야 되겠고, 모든 행위적으로  속화되지 않아야 되겠고, 모든 가치로 아는 이 가치의 평가적으로 비판적으로  속화되지 앓아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이것이 우리의 경건 준비의 방편이니까 이 면을 우리가  나벼가면서, 이것은 단번에 되지 앉으나 열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연습해서  되는 것으로써 주님이 이해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열심히 우리는 연습해서 이  경건을 단속해서 주님이 오실 때에 온 세계가 다 불로 화해져도 노아가 홍수  심판에 존영하게 구원 얻은 것처럼 이 불로 심판해도 우리는 그 불에 해를 받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이 경건 준비를 우리가  오늘에 해야 할 것입니다.

 중간반 새벽기도에 대해서 광고합니다. 부모님들이 새벽에 나올 때에 아이를  같이 데리고 나와서 장년반에 예배에 참석시켜서 하는 것이 제일 좋고, 아이들이  뭐 아이들이 못 알아 듣지 않아요. 노인이 못 알아 듣고 박사가 못 알아 듣지  아이들은 잘 알아 듣습니다. 제일 하나님 말씀을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박사요.

알겠습니까? 내 말이 아니라.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누구입니까? 학박사 아니오?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다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부모님들이 새벽기도 나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같이 부모  예배볼 때에 같이 예배보면 학생 새벽예배에 다시 가서 재차 예배볼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아이가 잠을 좀 더 자도록, 조금 자도록 기다리고 자는 것을 또  재우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얼른 와서 예배보고 다섯시 되면 딱 마치고, 마치기  전이라도 다섯시 되면 가십시오. 다섯시 되면 가 가지고 아이에게 가서 안마도 해  주고 달래기도 하고 또 장점을 칭찬도 해 주고, 자꾸 단점 말하면 안 돼요. 장점을  칭찬해 주기를 여덟 번 하고 단점 책망해 주기를 두 번 해야 된다고 그렇게  교육학자들이 통계를 맞춰서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가 가지고 안마도 하고  주물러 주고 이래 가지고 그래 일으켜서 그러면 '또 어머니 나 새벽기도 가라고  이러지요' 이러며 녜, 가겠습니다.

 이래서, 어쩌든지 그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사기를 죽이지 말고  사기를 돋궈서 이렇게 해서 나쁜 것은 없애고 좋은 것을 자꾸 길러, 좋은 것을  기르기를 더 힘쓰고 나쁜 거 치료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힘을 써서 이래서  새벽기도 자기 자녀들이 다 나올 수 있도록 이렇게 하십시오. 자기도 안 나오고  자녀도 안 나오면 그거 망합니다. 그 가정이, 가정이나 개인이나 망해 버려요.

예수님도 다 새벽기도 했는데 우리가 뉘 본뜰랍니까, 새벽기도 안 나오고?  새벽기도 못 나온 사람 손 한번 들어 볼까요? 들라 하면 죄지을 거라.

부끄러우니까 안 들 거라 말이오. 안 들면 죄짓지. 나오지도 않는 것이 나오는 척  하고 제가 손 안 들면 죄짓지. 그래 그런 손은 들라 소리도 못 해요,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나올 사람들 나온다 해도 못 나오거든 내일 아침만 굶어요.

그러면 그거 저 거짓말 한 거 안 돼요. 새벽. 기도 못 나오거든 내일 아침 굶을  요량하고. 새벽. 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분은 못 나오는가 안  드네. 그래 들었어요. 인제 내일 아침에 못 나오면 굶어야 돼요. 자, 여게도 한번  들어 봐요.

 예, 이래 가지고 우리가 어쩌든지 스스로 자기가 단속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자꾸 단속해서 얽끌어 매야 돼요. 진리에 매야 되고 영감에 매야 되고,  단속을 해야 되지 자기를 단속치 않고 내 놓으면 그만 헛일입니다. 마음 이놈도  단속해야 되고 혀도 단속해야 되고, 몸뚱이 이것도 단속해야 되고, 정신도  단속해야 되고 전부 단속을 해서 하나님 말씀에 막 결박을 시켜 놔야 돼요.

그래야 나중에 가면 후회가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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