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게 살고자 할때에 오는 핍박

 

1986. 3. 7. 새벽

 

본문:디모데후서 3장 12절∼17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 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자기가 참으로 제사장, 선지, 이 왕직 안에서 이 왕직으로, 자기가 참으로 이 피조물과 창조주 그 사이를 조화를 잘 이루고, 또 하나님의 그 충만한 축복을 은혜로 받는 데에는 그분의 뜻을 깨달아 그분의 뜻대로 하는 고것만이 은혜를 받는 길인데, 하나님의 충만을 인간들에게 갖다 줄라고 하든지 하나님의 충만을 자기 가족들에게 갖다 줄라 하든지 하나님의 충만을 자기 부부에게 갖다 줄라고 하든지 어쨌든지 선지자노릇을, 그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할라고, 또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그 조화가 바로 되도록 할려고, 또 그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서 움직이는 자가 되도록 할려고 그라는 데에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대속을 입도록 할려고, 이렇게 할려고 하는 요 생활은, 요게 목적이 그건데, 요 목적이 그리스도 예수를 그에게 전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그 은혜를 입도록 할려고 하는 요 생활을 하면,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진리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마찰을 받는다.

요 간단하지마는 「무릇」 어떤 사람이든지 말입니다. 「무릇」 어떤 사람이든지 그리스도 밖에서 살고 예수 밖에서 살아 예수님의 공로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세 가지 이 직책에 상관없이 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경건하게 살라고 해도 핍박이 없다. 또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경건하게 살지 안하면 핍박이 없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이며 또 경건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요렇게 참되고 바르게 요렇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온다.

왜 핍박이 오는가? 세상은 악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악에 대해서 오늘까지 정의가 바로 되지를 안했습니다. 오늘까지 이 악에 대한 해석이 세상적 악으로 세상에 말하는 악을 말했지 성경에 말하는 악을 말하지 안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성경은 전부 다 모래 구멍같이 탈선의 구멍이 열려서 다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에 성경은 아무 힘 없이 됐습니다.

요 악은 피조물 중심이 악입니다. 선은 창조주 자존자 한 분이신 그분 중심 그분 위주 그것이 선이고 악은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이나 다 그것이 다 악입니다.

세상은 전부 악이요, 악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소. 이러니까 그 결과적으로 자타를 속이는 것이 됩니다. 자타를 속이는 것.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가 자꾸 새겨서 자꾸 새겨야 힘이 나오고 맛이 나오고 뜻을 알지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자기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자가 어떤 자인가? 자기 속이고 다른 사람 속이는 자는,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이나 그 중심으로 사는 것은 전부이 자타 속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요것도 느껴야 됩니다. 그래,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나 국가 중심으로, 민족 중심으로, 인류 중심으로, 뭐 문화 중심으로 어쨌든지 하나님 중심 외의 거는 전부 그건 악이라. 요걸 우리가 딱 정의를 내려야 됩니다.

그것은 자타를 속이는 것이 된다 할 때 그것이 쉽게 알아집니까? 물론 많이 연습을 해서 아주 숙달되고 깊이 아는 사람은 뭐 자기 중심은 그거는 두말 할 것이 없이 다 자타를 망치는 것이 된다 알지마는서도 그게 쉽게 알아지는 게 아니라 말이오. 그러면 그걸 새기고 새기고 새겨서 하나 요거 또 보니까 요것도 고만 ‘그 사람은 민족 중심으로 살았는데 어찌 됐느냐?’ 그 사람 일생 동안 자기 속이고 남 속였다. 아주 이것이 옳다고 선인 줄 알고 모든 사람을 따르라 이랬지마는 그게 전부 인간을 망치고 민족을 망치고 말았다. 국가 중심도 다 그렇다. 그러면 돈 중심이나 국가 중심이나 민족 중심이나 문화 중심이나 자기의 어떤 돈 중심이나 그리 안하면 자기의 무슨 행락 중심이나 음욕 중심이나 전부 꼭 같은 겁니다. 고만 피조물 중심을 어떤 중심이든지 꼭 같은 종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다 자기를 속이고 남 속이고 마는 것이라 그말이오.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자기 중심은 자타를 속이고 망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은 어찌 되느냐, 하나님 중심은 세상이 마다고, 싫다고 욕을 하고 핍박을 하고 대항을 하지마는서도 네가 하나님 중심으로 언행 심사를 했으면 하나님 중심으로 한 것은 그것은 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밑으로 피조물에게 대해서 너도 유익하게 했고 다른 사람도 유익되게 했고 원수도 유익되게 했고 모든 피조물을 전부 유익되게 했다. 요것을 자꾸 따져보고 따져보고 과연 옳다, 옳다, 옳다, 이것을 깊이 느껴서 옳다, 옳다 해서 자기에게는 확고한 지식이 돼 가지고 있어야 되지 그저 눈먼 망아지 원앙 소리 듣고서 따라가듯이 이렇게 강단에서 말하니까 그렇다 해서 외워 가지고 암만 외워 봤자 소용이 없어. 자기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만드는 것은 아는 것을 만든다. 아는 것을 키운다. 아는 것을 키운다. 아는 것을 만든다. 양적으로 아는 것을 만드는 것은 뭐이며 질적으로 아는 것을 만드는 것은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양적으로 아는 것을 키운다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을 양적으로는 아는 것을 키운다 만든다 이렇겠습니까? 뭐이지요? 하나 알던 게 둘 알고, 둘 알던 게 셋 알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양적으로 알아 가는 것이고, 질적으로 또 더 알아 가고 더 키워가고 더 견고해 가는 것은 질적으로는 고 아는 고것을 거게 대해서 깨닫고 또 더 깨닫고 또 더 깨닫고 더 깨닫고, 깨닫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가 아는 이것이 하나 고것만 알았는데 아는 고것을 좀 더 생각해 보니까, 요만한 범위로 생각하니까 ‘그거 맞다’ 또 넓히니까 `더 맞다' 넓히니까 `더 맞다' 이래서 모든 피조물 전부를 다 망라해도 ‘요거는 맞다’ 하는 고 아는 것이 확고하게 되어지는 고것이 아는 것이 자라가는 것이요 아는 것이 그것이 점점 견고하게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도는 한정 없는데 이걸 우리가 자꾸 마음을 쓰고 명상을 하고 이렇게 하면은 고만 다 되는데, 알면 다 되고 우리 변화되면 뭐 그분 한 분이면 다 돼.

이번에도 ○○○권사님 구역에 스물 세 명이 그 양산동 기도산에 가 가지고서 밤새껏 뭐 사흘밤인가 얼마인가 거기서 하면서 그랬는데, 거게 간 사람은 전부이 병 다 나았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다 안다 말이오. 간 사람 병 다 나았어.

뭐 속에 그 관절이 쑤셔서 못 견디던 병도, 허리 아픈 병도 그 전부 또 속에 힘이 없어서 자꾸 소변이 졸졸 나와 쌓는 그 병도 전부 그만 이런 병 저런 병 할 것 없이 다 나아 버렸어. 하나님만 만나면.

또, 내가 어제 오다 말 들었는데 지난 그 성찬 먹을 때에 ‘오늘 이 성찬 먹는 데에서 병 낫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했는데 그 속으로 낫고 난 다음에 말 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내가 저런 병이 있었던 갑다’ 그 부끄러워서 그런 병 있다는 그런 걸, 혈루증을 앓는 데도 ‘나는 혈루증이 있었는데 나았다.

혈루증이 있었는데 나았다.’뭐 자궁암이라 하면 추접한 소리 아니오. ‘나는 자궁암이 낫았다. 자궁암이 낫았다. 나는 자궁에 암이 있어 낫았다. 자궁암이 나았다.’ 자꾸 자랑한다 그말이오. 그게 왜 그러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그분 하신 이것을 자랑한다 그말이오.

○○○권사님은 이번에 앓고 드러누워 가지고서 그게 회복이 되지 안하고 암만 해도 그 회복이 안 되고 참 이랬었는데, 그래 그날 성찬 먹을 때에 그때 싹 다 나아 버렸어. ‘이래 가지고서 내가 그 이후로 돌아다니는 걸, 오늘도 돌아다닌 걸 말하면 그전에 건강할 때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끈 많이 돌아다니는데 기운이 펄펄합니다. 하나도 피곤치 않습니다. 이분을 만나면 다 되는데, 이분 만나면 다 되는데 이분을 만나지 안하고 이분에게 속한 자들이 이 마귀에게 속해 가니까 그놈이 자꾸 애를 먹이고 만다 그거요.

우리는 경건과 악이 정 대적이라는 것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게 그냥 알아지는 게 아니라 사무쳐야 돼.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망한다. 권찰도 돌아다니며 사람을 이래 가서 보면은 그 사람이 전부 망하는 것은 자기 중심에서 망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러면 사욕으로 망하고, 주관으로 망하고, 자기 위주로 망하고, 자기 감정으로 망하고, 자기 기분으로 망하고, 자기 성질로 망하고, 자기 뜻으로 망하고 자기 생각으로 망하고 전부이 자기 중심이라는 그거 가지고 인간이 다 망합니다. 왜? 뭣 때문에 사자구덩이에서 그와같이 사자 같은 그런 데에서 우리가 구출받지 못하느냐? 자기 중심 그놈이 들어서 그놈은 마귀하고 한덩어리기 때문에, 마귀 편이기 때문에 마귀에게 들어붙어 봤자 그놈이 해나 하지 뭐 구출할 것이 뭐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업을 하든지 어떤 직장을 가졌든지 어떤 대통령을 하든지, 나는 그랬어. 언제 말했는데, 그 사람을 내가 한번 만나면 말이지. 한번 만나면 ‘이거 대통령되는 일은 뭐’ 목사되기가 힘이 들지. 참 목사, 하나님이 동행하는 목사되기가 힘들지 대통령하기는 힘든 게 아닙니다. 그거는 힘든 게 아니라. 그 차원을 말하면 거게 여러 수 억억만 배 밑에 내려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게 어려워. 이게 제일 어렵지 그 외에는 뭐 어려울 게 없어.

그런 거 하는 것도, 뭐이냐? ‘네가 그거 할라고 인본주의로 이 사람 저 사람 교제하고 뭐 돈 들이고 뭐 들이고 소용없다. 그저 그걸 할라면, 그거 어떤 사람이 될 사람이냐? 주여, 내가 당신이 이것으로서 나를 직책을 맡겼으면 내가 이 일을 할 때에는 당신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당신 중심으로, 흥해도 당신 중심으로 온 민족이 막 데모가 다 일어나도 당신 중심으로, 어쨌든지 당신 중심으로 내 언행 심사를 하고, 모든 일을 계획도 하고 처리도 하고 경영도 하고 다 하겠습니다.’ 요라는 사람 있으면 당신이 뻐뜩 들어서 당장 오늘이라도 세운다 말이오. 오늘이라도 세우면 세웠지 어떤 자가 반대할 자가 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천하를 통치한 대왕이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당장에 짐승되게 하니까 짐승됐습니다. 그만 당장에 짐승이 됐어. 왕궁에서, 용상에서, 그 보좌에서 제 발로 실실 걸어나가 가지고서 고만, 정신 병자가 돼 가지고서 짐승이 돼 가지고 칠 년 동안 풀을 먹고 살았다 그거요. 이라다가 나중에 그것이 회개를 하고 ‘내가 왜 이래 천하게 됐느냐?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안하고 내 중심으로 한 연고다.’ 고걸 딱 회개하니까 그만 들어다가서, 당장 회개하자마자 들어다가서 용상에 앉혀서 느부갓네살 왕이 됐다 말이오. 그래도 그 비어도 다른 사람은 아무도 차지도 못했어. ‘왕이 어디 갔는고?’ 왕만 찾고 있지.

우리가 망하고 흥하는 것은 전부 자기 중심 가지고 다 망합니다. 이거 교역자들도 보면 왜 교역자가 뭐 때문에 그렇게 목회할 때에 자꾸, 뭐 환난을 안 당할 수는 없지만 환난을 당하는데 왜 환난에 꺾어지느냐? 자기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됐으면 겉어머리 몸은 약해도 강해집니다. 그 주장은 요동치 않습니다. 그 주장이 더 자꾸 강해집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냐 자기 중심이냐 요것을 깨닫고 하나라도 자기 중심은 자타를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인 경건은 금생과 내세에 유익이 있다.

금생에도 복, 내세에도 복, 경건보다도 더 복된 것이 없다. 요것 하나만 꼭 가지고 요동치 안해도 그 사람의 살아나가는 그 길에 등불이 됩니다. 요거 하나만 견고히 잡아도 그 사람이 살아나갈 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그 방향을 잘 정해 가지고서 바로 갈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나 이것 없으면 지침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를 몰라. 남쪽이 어딘 줄 압니까? 나침반이 있으면 남쪽이 어데인 줄을 알 수가 있지.

그러니까 ‘악한 자들은 점점 악하여지고’ 자기 중심의 사람은 점점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점점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된다. 왜? 자기 중심의 사람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남을 속이고 보니까 ‘내가 요렇게 안 했더라면 내가 그 사람을 속이지 못했지.’ 남 속이고 자기 속인 것 그것으로서 전부가 다 다행이다. 요행이다. ‘그 수단과 지혜를 안 부렸더라면 큰일났다. 다른 사람을 꺾어서 내려앉히지 안했더라면 내가 올라가지 못했다. 그 사람 그 사업을 내가 가로 뺏들지 안했으면 내가 안 됐다.’ 자기 꾀로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는 점점 그자가 됩니다.

속이는 자는 점점 속이는 자 되고 남을 꾀우는 자는 점점 꾀우는 자 되고 도적질하는 자는 점점 도적질하는 사람이 되고, 점점 하나님 중심으로 남을 주고 살고, 돕고 살고, 위하고 사는 그 사람은, 도우는 게 얼마나 좋소? 도와도 복되고 줘도 복되고 다른 사람을 높여도 복되고 자꾸 복되니까 이거 그라니까 자꾸 복받거든. 옳게 해서 복받는 사람은 자꾸 옳게 하는 사람이 돼지고, 죄를 지어서 무엇을 성공하는 사람은 자꾸 죄를 짓게 되고, 그러면 죄 지어서 성공하는 그게 성공이 되겠습니까?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렇게 세상이 몰라 가지고 이렇기 때문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누구한테 배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뉘게서 배운 것은 그말은 네가 신구약 성경 보고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서 이라라 했다, 저라라 했다.’ 성경 보고 배우는 것은 뉘한테 배운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 앞에 직접 네가 배운 것이다.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네가 성경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성경 보고 성경에서 배우는 것은 막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배우는 것인 것을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네가 이 성경에서 배워 가지고 배운 것을 믿기만 하면, 배운 것을 믿고 고대로 행하기만 하면 말이오. 믿기만 하면. 믿는다 말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는 것 아닙니까? 믿기만 하면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헤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이면 하나님이 말한 것이오. 하나님은 말할 때에 감동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일할 때에 감동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신데 그분이 움직일 때는 감동으로만 움직이지 딴걸로 움직이지 않소. 감동으로만 움직이지. 그러면 이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해 가지고 기록했다 그말이오. 사람을 써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네가 성경 보고 배우는 것은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니 그분은 전지 전능자요 완전자요 책임을 지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해서 내가 배워 가지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거 다 책임지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 받는 줄 알아야 됩니다.

핍박 받는 데 어떤 사람이 시 지은 걸 내가 보니까 이래 지어 놨어. 첫째가 ‘폭풍아 불어라 노암은 웃는다’ `폭풍아 불어라 늙은 바위는 웃는다’ 그 바위가 바람이 암만 폭풍이 불어도 그 늙은 바위야 그까짓 것 와 부딪혀 봐야 상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핍박과 반대가 많지마는서도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그 폭풍 부는 것이 저 산만당에 늙은 바위, 여러 수천 년 된 그 늙은 바위가 폭풍 불어 봤자 불거나 말거나 그거 분다고 막 불어 재끼니까 ‘노암은 웃는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신앙의 경험 있는 사람은 핍박과 조롱이 올수록이 웃는다. 그것 가지고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말이오.

또, 둘째로는 ‘폭우야 부어라 대해는 굶었다’ 막 폭우가 들이 쏟아져서 막 들이 쏟아지니까, 폭우가 쏟아지니까 이거 폭우 제가 오만 것 다 할 줄 알고 세게 했지만, 이거 다 핍박을 하나 상징한 것이라 말이오.’ ‘폭우야 막 들이 부어라 대해는 굶었다’ 암만 부어 봤자 큰 바다는 지금 굶으니까 네가 얼마든지 부어도 그 바다는 차지 않는다 굶어 가지고 있다.

이렇게 경건 생활한다고 이렇게 핍박을 하는데 핍박을 할수록, 핍박을 할수록 자기는 마치 배 고플 때 밥 먹으면 좋은 거와 마찬가지로 핍박을 할수록 그 경건은 점점 커집니다. 경건 생활하는데 핍박이 없으면 경건 생활해도 고것뿐이지마는 이 경건 생활을 이렇게 지금, 하나님에게서 세상을 이래 밀고 나가는데, 밀고 나가는데 뒤에 밀고 나가는데 거기서 못 밀고 나가도록 이렇게 대항을 할수록이 이 경건의 힘이 더해집니까 약해집니까? 더 강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핍박이 있을수록이, 핍박이 있을수록이 하나님과 나와 결합은 더 되고, 하나님은 나를 더 돕고, 하나님은 나를 더 힘 주고, 이라니까 ‘폭우야 부어라 대해는 굶었다’ 얼마든지 부어도 자꾸 지금 오히려 차지 못해 자꾸 갈급하다.

‘흑암아 외쳐라’ 이 흑암이 들어서 이거 막 모든 걸 삼킬 줄로 알지마는서도, 흑암이 이래 가지고 흑암이 세력이 제일로 알지마는서도 ‘흑암아 외쳐라’ 흑암아 호령을 쳐라. ‘반딧불은 춤춘다.' `반디불은 춤춘다.' 반딧불 조그만한, 요 반딧불 조그만한 불 그거는 이 흑암이 막 골짝에 한 흑암이 꽉 찬 흑암이 달라드니까 이 반디불이 놀랄 줄 알아도 반딧불은 더 춤을 춘다. 그럴수록이 제가 더 가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요걸 잊어버리지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요 연결을 가지면, 이 피조물들이 반대를 하면은 나는 창조주에게 붙었고 그 피조물은 반대 되었으니까 내가 창조주와 하나됐다는 그 인식을 가지게 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또 이랬었는데 피조물이 할수록이 더 내게 도움은 더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모세가 홍해 바다 앞에서 백성들은 떨고 있는데 모세는 좋아서 춤을 췄습니다. 왜? 두려위하지 말아라. 이들이 와 가지고 지금 뒤에서 밀어 붙이는데 앞에서 홍해가 있지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을 하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인도해서 요리 가라 해서 왔는데, 이러니까 여게서 이제 신기한 하나님의 솜씨를 한번 구경하겠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의 솜씨를 구경하자. 웃고 기뻐한다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된 이걸 자꾸 새겨야 됩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이 세상에 핍박이 올수록 그것이 우리 축복 아닌 축복입니다.

너 이놈, 예수 믿는 이놈 죽인다, 죽인다 할수록이 죽인다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뭐입니까? 죽인다, 죽인다, 내가 대번 죽인다 할수록이 그것이 하나님 듣겠지요. ‘하나님 저 뭐라 합니까? 하나님 공경한다고 나 죽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꾸 죽인다고 하니 하나님은 보시니까 하나님의 응원이 더 강해지겠소 겁이 나서 하나님 응원이 도망을 치겠소? 강해지지.

그러기 때문에, 이제 너 예수 믿는다고 너 어떻게 한다 하는 그 강한 핍박이 올수록이, 올수록이 속으로는 좋다 말이오. 왜 좋습니까? 왜 좋습니까? 왜 좋소? 하나님을 보거든. 이래 보며, 핍박을 받으면서 하나님 눈꼴을 보니까, 하나님 눈꼴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핍박을 한 번 하니까 ‘음’ 두 번 하니까 ‘그래’ 또 세 번 하니까 `그래. 해 봐. 해 봐.' 자꾸 하니까 여게 핍박을 해서 자꾸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고 이라니까 하나님이 ‘해 봐’ 하는 자꾸 그렇게 할수록이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대한 옹호와 동행이 더 강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할수록이 좋거든. 이러니까 그것이 기도 아닌 기도라. 알겠습니까? 이 모든 악의 세력들이 이 경건을 대적할수록이 그것이 옹호 아니면서 옹호입니다. 진정 옹호입니다. 축복 아니면서 축복이오. 그게 뭐이냐? 자꾸 하나님 축복하라고 약을 올린다 그말이오. 하나님 축복하라고 약을 올리거든. 약을 올리니까 그걸 자꾸 그랄수록이 하나님이 자꾸 축복 더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겁이 나는 게 아니라 자꾸 더 해라, 더 해라. 속으로, 말은 안 하지만 더 해라, 더 해라. 나중에 욕을 해서 ‘하나님이 어디 있노? 하나님 대포로 놔 죽일 버릴 거다.’ 그라면 ‘됐다. 또 더 욕 해라, 더 욕 해라.' 이랄수록이 하나님을 약을 올릴수록이 하나님이 더 그래. ‘그래. 그래. 보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럴 때에 그런 데에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더 속이 견고해집니다.

여게서 지은 것이 그거라 말이오. 속이 더 여물어. 속에 배짱이 있다 그말이오.

배짱. ‘폭풍아 불어라 노암은 웃는다. 폭우야 부어라 대해는 굶었다. 흑암아 외쳐라 반딧불은 춤춘다.’ 반딧불은 뭐 흑암 그까짓 게 암만 들어 있다 할수록이, 이 흑암이 더 짙을수록이 반딧불 조그만한 불이라도 빛이라 하는 거는 더 들나기만 들나지, 흑암이 이 방 안에 꽉 찼을 때에 성냥개비 그리고 난 다음에 반딧불 조그만한 것 안 있습니까? 불똥 조그만 것. 이래 보십시오. 이래. 이라면 이라면 이래 끊기고, 저라면 저래 끊기고 이라는 대로 흑암 그까짓 거는 싹싹싹싹 끊겨 버리고 말지 하나도 해하지 못합니다. 빛이라 하는 거는 이런 겁니다.

너희들은 세상 빛이라. 이것은 아무도 세상이 피조물이 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믿어야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래서, 어짜든지 자기 중심은 망하는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중심에는 절대 손해 없습니다. 그분이 감각 없는 분이 아니오.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다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만 바로 믿는 사람은 다 돼. 이런데, 뭐, 하나님 말씀 안 듣고 천만금을 얻으면 뭣해? 말씀 들으면 하나님 얻는데. 하나님보다 나은 게 있는가? 하나님을 얻어 놓으면 죽는 것도 좋고 사는 것도 좋고 다 좋아.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놓으면 산 것도 죽은 것만 못 하고 얻은 것도 잃은 것만 못 하고 다 나빠. 요걸 우리가 꼭 잡아야 됩니다. 신앙은 믿어야 돼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되는 것도 고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되는데. 암병 그거 수술한다고 다 낫습니까? 요새 통계가 나왔습니다, 인제. 통계가 나왔어. 암병 수술은 안 해야 된다. 한 번 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라면 더 하지 말고, 고만 그걸 자꾸 지금 암병은 뭘 먹지 말라 하는데 자꾸 먹어서 영양을 도와서 자꾸 고름 한 되 나오면 두 되만 하면은 한 되 채인다. 그건 자꾸 는 거라. 뭐 다른 수가 없어. 또 두 번 수술하면 그거는 돈만 들이고 빨리 죽는다 이라는데, 믿는 걸로 가지고서 암병이 자꾸 낫고 자꾸 낫는데.

○○○권사님 저 먼저 그거 간암이라. 간암. 며칠 전에도 간암이 또 새로 도졌어.

막 이런데 소삭소삭한 그게 암이라. 간암. 간암. 의사들이 나중에 진단해 보니까 간암이라. 이런데 하룻밤만 예수 잘 믿고 나면 고만 선뜩 나아 버리는데 이런 복들배기, 부자 방망이가 있는데 안 하고 있어? 제가 하나님 배반하고 암만 애 먹어봤자 골만 빠지지 소용없습니다. 어짜든지 우리는 이런 보배로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할라고 해야 합니다.

○○○권사님, 한번 일어서 봐. 정말이야? 영 막 생생해져 버려. 어데도 막 돌아다녀. 내가 성할 때 좀 젊고 성할 때도 오늘같이 돌아다니면 내가 거석했을 터인데 성찬 그날, 그만 여기서 성찬식 할 때에 그때 하나님하고 만났다 말이오.

만나니까 그만 딱 돼 버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다.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체험과 경험의 증거가 있어야 돼요. 그러면 예수 외에 딴것을 구할 것이 없소. 예수님 한 분으로 다 되는데 참 우리가 못났습니다. 똑똑히 회개하고 바로 믿읍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21 경건연습/ 디모데전서 4장 6절-10절/ 860209주후 선지자 2015.10.24
520 경건연습 일곱 가지/ 디모데전서 4장 7절-8절/ 820802월새 선지자 2015.10.24
519 경건을 연습하자/ 디모데전서 4장 6절-11절/ 880826금새 선지자 2015.10.24
518 경건의 가치/ 사도행전 10장 1절-48절/ 800305수야 선지자 2015.10.24
517 경건의 대립은 악이다/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860308토새 선지자 2015.10.24
516 경건의 성취/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210월새 선지자 2015.10.24
515 경건준비-세가지/ 야고보서 1장 26절-27절/ 881017월새 선지자 2015.10.24
514 경건준비에 금물/ 야고보서 1장 25절-27절/ 881005수야 선지자 2015.10.24
513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세상과 마찰/ 디모데후서 3장 12절-17절/ 831014금새 선지자 2015.10.24
» 경건하게 살고자 할때에 오는 핍박/ 디모데후서 3장 12절-17절/ 860307금새 선지자 2015.10.24
511 경(견)고한 성읍/ 이사야 26장 1절-2절/ 800107월새 선지자 2015.10.24
510 경제면/ 누가복음 16장 9절-11절/ 85030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4
509 경험과 체험에서 자라야/ 요한복음 14장 14절-31절/ 850624월새 선지자 2015.10.24
508 경험과 체험의 신앙/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60705토새 선지자 2015.10.24
507 계명지키는 생활/ 빌립보서 3장 4절-14절/ 820731토새 선지자 2015.10.24
506 계명이 열어 주는 길/ 요한복음 14장 21절-23절/ 810406월새 선지자 2015.10.24
505 계명-일반적인 계명/ 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850317주전 선지자 2015.10.24
504 계명-일반적인 계명/ 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1985. 3. 17. 주후 선지자 2015.10.24
503 계명지키는 것은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5절/ 840415주새 선지자 2015.10.24
502 계명지키는 동기,목적,방편/ 출애굽기 20장 1절-3절/ 881129화새 선지자 201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