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체험의 신앙

   선지자선교회

1986. 7. 5. 토새

 

본문베드로전서 137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그러면 우리가 기업을 이루기 전에 벌써 하늘에 다 그것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그러면 이 우리 구원도 하나님이 벌써 예비해 놓은 구원인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하심을 입었나니이것도 우리의 주관 행위가 근거가 돼 가지고서 오는 게 아니고 주관 행위 있기 전에 다 이와같이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게,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이 믿음은 믿음의 종자를 말하고,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하는 이 믿음은 우리의 행위 믿음을 가리켜 말합니다. 위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말하고 너희 믿음의 시련이하는 요 믿음은 우리 주관 행위로서 믿는 믿음을 기리켜서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하는 요것은 벌써 과거사로 요렇게 기록돼 가지고 있는데 요 믿음도 과거요 능력도 과거입니다.

 

그러면, 이 능력은 무슨 능력인고 하니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그 택하심의 혜택의 능력이요, 택하심의 은택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예정하신 그 예정하심의 혜택의 능력이요, 예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로 받는 능력이요, 또 하나님이 우리 자체도 창조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들을 다 창조했습니다. 우리 구원 위해서 영원 전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태초에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한 것의 모든 혜택의 은혜, 또 그다음에는 대속 구원인데 예수님이 대형하신 사죄의 혜택, 또 그 대행하신 칭의의 혜택, 또 대신 화친하신 그 화친의 혜택.

 

, 우리가 중생됐는데 중생된 것은, 성경에는 기록하기를 성령과 진리, , 피를 뒤에 말했지마는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피가 아니면 성령은 우리에게 오지를 못합니다. 피가 우리에 중보입니다. 그러나, 또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효력 있도록 역사하신 것은 뭐이냐? 또 성령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이 먼저냐 예수님의 피가 먼저냐 하는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알기 쉽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의 혜택, 또 그다음에는 성령의 혜택, 그다음에는 진리의 혜택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지마는서도 실은 이 셋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피 흘리실 때에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대속을 이루셨고, 진리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대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 셋은 하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능력, 또 우리를, 마지막에는 성화 구원인데 우리의 성화 구원은 영에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실은 우리가 실행할라고 따지면 우리의 중생된 영은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유약한 중생된 영이 장성해지는 것이 우리 성화요, 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영의 통치를 받는 그것이 우리 성화요, 이것이 우리의 성화구원인데 우리 심신이 중생된 영의 통치를 받고, 중생된 영은 피와 성령과 진리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그 통치 받은 영에게 우리가 또 통치 받는 것이 곧 피와 성령과 진리에게 통치를 받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 심신이 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에게 통치 받는 것이 우리 육의 성화, 건설구원 곧 성화구원이요, 이럴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인 모든 존재, 내 현실인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통치 받는 심신의 기능에게 이 모든 것들이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성화구원 이루는 것은 이것은 한량 없는 무한하신 그 능력의 보호의 혜택을 입어 가지고, 입어 가지고 또 우리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하나님 자체의 그 모든, 뭐 하나 둘로 말할 수 없는 무한한 그 충만한, 하나님의 그 속성으로,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속성의 은혜로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이 속성이 창조한 영계와 물질계 이 우주,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존재의 그 선물이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현재라는 것은, 우리 현재라는 것은 과거 영원 전까지에 과거 이 무한한 모든 것의 혜택을 우리가 입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혜택을 우리 주관이 앎으로 있게 됐느냐, 또 우리가 믿음으로 입게 됐느냐, 앎으로 입게 된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입게 된 것도 아닌 것을 똑똑히 밝히기 위해서 에베소 27절로부터 8절까지에 보면은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에베소 117절 이하에도 보면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인해서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하냐하는 이 믿는 우리에게하는 그 믿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존재하고 난 다음에 그 믿음 생겨진 것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믿음이 벌써 하나님 앞에 작정되어 있는 그 믿음이 우리가 생길 때에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그 믿음을 가진 자로서 우리가 되어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를 우리가 받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요걸 구별하지 못하면 안 되요. 믿음이, 요거 구별하지 못하면 안 돼. 이거 여러분들이 지금 뭐 아는 사람은 그만 알 거야.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내라는 자체 이전에 있는 것이 있고 내라는 존재가 생겨지고 난 후에 있는 믿음이 있고, 있는 것이니까 이 이전 것을, 이전 것의 그 믿음도, 이전 것의 모든 혜택도, 이전 것의 모든 존재도, 우리의 구원도 그거는 순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됐지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있기도 전에 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이제 이 은혜를 내가 힘입어 가지고서 내가 존재한 이후 영원까지에 받아서 입는 그 혜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것을 잘 둘을 구별하고, 그러면 우리가 있기도 전에 하나님의 그 모든 혜택 그것이 세 가지 구원은 완전히 그래 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성화구원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시작한 그것이 벌써 우리가 있기 전에, 또 쉽게 말할라고 하면은 우리는 나기 전에 벌써 근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때에 우리는 나지도 안했는데 우리가 나 가지고서 죄 지을 그 죄를 예수님에게 다 부담을 시켜 가지고 예수님은 다 정죄를 받아 가지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형벌까지 받아 가지고 다 우리에게 대형의 사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 내가 나기 전에 예수님의 피의 혜택을 우리가 입은 자로 났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자기를 단위로 삼아 가지고, 내라는 것을 단위를 삼아 가지고 내가 있기 전 모든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내가 있은 지 후 하나님의 모든 구원이 있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구별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암만 믿는다고 열심히 믿어도 하나님의 이 창조구원, 대속구원, 중생구원 이것을 조리 있게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창조구원 보다도 예정구원, 예정구원보다도 예택구원, 예택구원, 예정구원, 창조구원 이 구원을 모르는 사람의 그 구원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기 때문에 어떤 때를 만나면 다 말라 버리고 없습니다.

 

말라지고 없는데 이제 예택에서부터 자기 구원이 시작된 것을 확실히 이제 깨닫고 믿는 사람은 그의 행위에 있어서 어떤 그 환경을 닥치고 변동을 만나도 그의 신앙이 흔들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단위를 어디다가 두느냐 하면은 내라는 존재가 있은 지, 있어진 지, 나를 단위로 해 가지고서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 내게 구원이 이루어져 가지고 있으니 그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구원인데 그 구원을 내가 존재하고 난 다음에 그 구원을 내게 입히는 역사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지음 받아서 출생한 그때부터 내가 존재하기 전에 있어졌던 그 구원을 존재한 그때부터 내게 입히기를 하나님이 시작하셨는데 그 입히는 역사를 책임을 누가 졌느냐 하면은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느니라성령이 그것을 책임을 졌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구원 벌써 이미 이루어져 가지고 있고, 이제 그것이 또 중생은 된 지가 얼마 안 됐지마는서도 중생 구원도 이미 이루어져 가지고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이 중생된 지 오래 후에, 혹 중생된 바로 직후에 그렇게 믿는 일이 있으나 중생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리가 잘못돼 가지고서 어떤 교파들에서는 중생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한번 큰 뜨거운 은혜를 받으면 그때 중생된다 이렇게 믿는 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신앙은 고 신조와 교리를 바로 고치기 전에는 아무리 믿는다 해도 그 믿음이 무슨 환난이나 그런 걸 승리하지 못합니다. 못 하고 가다가는 그만 넘어져 버립니다. ○○교도 그런 교파요, ○○교도 그런 교파요, 장로교는 그렇지 않지만 장로교에서도 지금 변질이 돼 가지고서 별별 거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생까지는 우리가 우리 주관이 알기 전에 있었고, 또 예수님의 대속까지는 내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고, 대속까지의 모든 은혜는 내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고 또 중생은 내가 존재한 후에 있기는 있으나 내 주관이 이해하기 전에, 내 주관이 알기 전에 있었고 이래 가지고 중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은 이제 내 주관이 활동해 가지고서 이루는 구원이 있고 내 주관이 하나도 상관없이 이루어진 구원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다 기본구원에 속한 것들이라 이래 말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 한다고서 한창 바짝 떠들어 가지고서 뭐 때문에 백 목사는 자꾸 쪼개느냐, 그 쪼개지 말고 좀 한통으로 말하라. 왜 쪼개느냐? 자꾸 쪼갠다고 지금 말합니다.

 

쪼갤 필요가 없는 것을 쪼개면은 백 목사는 하나님 앞에 큰 저주를 받고 징계를 받습니다. 그 필요 없는 일 하기 때문에. 만일 쪼개지 안하면 안 되는데 세상이 모두 다 쪼개지 안해 가지고서 지금 마귀의 이 미혹에 도매금으로 자꾸 넘어가고 하는 이런 그 손해 방지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쪼갰다고 하면은 백 목사 상급이 지극히 클 것입니다. 아무나따나 자꾸 사람에게 일시 인기를 끌기 위해 가지고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래서, 우리 구원은 내가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 놓은 구원이 있고 내 주관이 이해하기 전에, 알기 전에, 내 주관의 활동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중생 이전 구원이 있고 중생 이후 구원이 있다.

 

그러면 중생까지의 구원은 나는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서 단독이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구원이고, 또 중생 뒤부터는 하나님께서 중생까지의, 중생 이전 선택에부터 거게서부터 시작되어 내 중생까지의 이루어져 있는 그 구원, 그 구원 그것이 기본구원인데 그 구원의 돕는 혜택을 입어 가지고 이제 내 주관이 예수 믿기 시작한 후의 모든 구원을 이루니 그것이 무슨 구원이냐? 그것이 건설구원이요 성화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이루는 것은 무슨 힘으로 이루게 되느냐? 내가 중생하기 이전, 내가 중생하기 이전, 이걸 못 알아 들으면 안 돼. 못 알아 들으면 더버기 믿음이기 때문에 환난이 오면은 무엇인가 구별을 못 하기 때문에 몰라서, 자기에게 믿는 마음은 있는데 몰라서 패전하는 일이 많다 그말이오.

 

그러면,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인데, 믿음은 하나님을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따라가는 것인데 믿음이라는 그 역사의 제일호가 뭐입니까? 믿음은 우리 주관의 행위인데,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인데 내 주관을 통해 가지고 행동되는 것이 믿음인데 그러면 믿음에 우리 주관 믿음, 내가 믿는 믿음, 믿음의 씨 선물의 믿음 이것은 내가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선물로 나를 믿는 자 되도록 그 믿음을 함부레 예정해 가지고서 되어진 그 믿음은 믿음의 씨요, 그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믿음이라 말이오. 내가 알기도 전에 하나님이 믿는 자로 우리에게 믿음을 정해 줬고 믿음이 있게 하셨다 그말이오. 그러면 날 때부터, 지을 때부터 믿는 자로 지었어요. 알겠습니까? 믿는 자로.

 

이랬는데, 그러면 이전에 있는 모든 구원 이 구원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하는 것인데 이 기본구원의 혜택을 입지 안하면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기본구원을 여러분들이 자꾸 연구를 해야 됩니다. 기본구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하나님의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 영원히 이루실 모든 것 그 전부를 다, 그 전부를 다 가지고 나를 구원하신 그구원이 기본구원인데, 내 기본구원에는 하나님의 전능도 들었고, 전지도 들었고, 완전도 들었고, 하나님의 본체도 들었고, 하나님의 역사도 들었고, 하나님의 소원도 들었고, 하나님의 은혜도 들었고 모든 게 다, 다 뭉쳐서 내 구원이 되어진 것이 그것이 기본구원입니다. 아주 범위가 넓습니다.

 

이 기본구원인데, 건설구원을 이룰 때는 이 기본구원의 혜택을 입어 가지고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이 건설구원과 기본구원은, 기본구원은 원형이요 건설구원은 이 모형이라. 기본구원과 꼭 같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건설구원이라.

 

그러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까요? 기본구원은 어떤 물건의, 예를 들면은 이 종이라는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을 어떤 시진판에 촬영하면은 요 종과 꼭 같은 것이 촬영돼 나오겠고, 또 요것을 요것 보고 만든다면은 요거는 아니지마는서도 요거와 꼭 같은 것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만들어지면은, 만든 데에 원형은 이 종이 원형이요 이 원형을 보고서 그와같이 똑 만들어 놓은 것은 이 원형과 꼭 같은 모형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건설구원이라는 거는 어떤 게 건설구원인고 하니 이 기본구원,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또 모든 소유와 하나님이 지금 베푸시는 모든 것 그 전부가 다 똘똘 뭉쳐 가지고서 우리에 기본구원이 된 것입니다. 기본구원이 된 것.

 

이런 것, 이거 아주 큰데 이런 걸 지금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꾸 지금 미혹을 받는데 이것이 교계에 나가면은 교계는 왕창 떠들고 깜짝 놀래서 뭐인지도 모르고 지금 마구 이단이라고 주 몰기를 뭐 이거는 어북 한 해 두 해가 아니라 몇 해 몇십 년 몰아야 저희들이 깨닫지 그리 안 하면 깨닫지 못할 만치 그만치 넓은 거라 말이오.

 

이 전체가 우리의 기본구원이 되어 있는데 요 기본구원과 꼭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이요 성화 구원이요 모형 구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했다이랬습니다.

 

그래서, 도성 인신하신 신인 양성 일위는 볼 수 없는 존재이신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모형.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자체이지마는서도 인성을 입어서 신인 양성 일위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형이 아니고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모형이라.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모형으로 되는 이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이라.

 

그러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은 그 원형대로 우리가 모형되어지는 것이 우리 건설구원 이루는 이 건설구원인데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어데서 나오는가?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어데서 나오는가? 이 요소가 어데서 나옵니까?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고” “거룩하심같이 거룩하고”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같이 깨끗하라이렇게 했는데, 그러면 이렇게 되어지는 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의 이 재료가 어데서 나오는가? 이 재료가 기본구원에서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이 재료가 기본구원에서 나옵니다.

 

이 재료가 기본구원에서 나오는데, 그러면 기본구원에서 나오는 것을 우리가 그 구원을 받는 것은 어떻게 받는가?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다니? 믿음으로 받는다는 말은, 믿음이라 말은 순종이라 말이요 딿는다는 말입니다. 딿는다는 말인데 뭐 어떻게 따라 가지고 받는가?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이 기본구원 이 네 가지 구원 이 사실을, 이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알려 주셔, 가르쳐 주시요, 우리에게 이 기본구원 이 네 가지 구원 얻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가르쳐 주심을 내가 받아 가지고서 아멘하고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 그렇습니까? 내가 이제는 그대로 알겠습니다. 변동 없이, 요동 없이 내가 고대로 알겠습니다.’ 고 지식이 이제 하나님께서 이 신구약 성경과 영감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이 가르쳐 주신 이 지식을 내가 확실히 인정합니다. 이 지식을 확실히 그대로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참되다 인정하는 고것이 우리의 지식 믿음입니다. 참되다 인정하는 것이 지식으로 믿는 믿음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또 이 신구약 성경과 영감 계시대로 요렇게 되어진 우리의 구원, 창조구원, 대속구원, 중생구원, 성화구원 요 구원을 성경에 말한 요거는 하나도 거짓이 섞여 있지 않다 이는 털끝만한 것도 거짓이 섞여 있지 안하고 다 참되고 온전한 고 실상을 우리에게 말씀해 놓은 것인데 이 실상은 천지는 변동시켜도 획 하나도 변동시키지 못하게 이렇게 된 구원이다.

 

그러면 이 구원이, 실상의 이 구원이 우리가 알기 쉽게 우리에게 나타나 가지고 있는 구원의 본체는 뭐인가? 구원의 본제는 뭐인가? 구원의 본체는 곧 영감이다.

 

그러면 또 영감은 우리와 거리 멀어서 알기 어려운데 그 알기 어려운 영감인, 예수님의 구원의 실상이요 본체인 그 영감, 영감은 본체입니다. 가르쳐 주는 것만 아니오. 그 안에 실상이 들어 있소.’ 이 구원인데, 이 구원이 우리에게 알기 쉽게 가깝게 좀 알기 쉽도록 우리에게 온 구원이 무엇이냐? 그 구원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입니다.

 

그러면 말씀인데 이 구원이 우리에게 더 알기 쉽게 온 것이 뭐이냐?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제 성경, 문서로 기록된, 문서로 기록된 데서부터는 이제, 무한함이 아니고 완전함이 아니고 이제 문서로 기록된 데부터는 다 유한성을 가졌고 제한성을 가져 가지고서 이 피조물적으로 됐습니다.

 

이 성경에 기록된 데까지는 피조물적으로 됐고, 성경에 기록하기 이전, 말씀, 말씀은 곧 진리인데 진리, 영감, 거게는 그것이 피조물 요소로 된 것입니까 자존자의 요소로 된 것입니까? 뭐입니까? 자존자의 요소로 됐어, 피조물 요소로 된 게 아니고.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돼요. 이제 성경에 기록한 데부터는 피조물의 요소를 가지고서 우리가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이렇게 돼졌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에게 뭐할라고 주셨는가? 볼 수 없는 하나님, 우리가 볼 수 없는 구원, 우리가 겨우 영감 받아 가지고 느낄 수 있는 구원, 또 우리가 은혜 받아 가지고서 말씀으로 나타난 진리를 내가 깨달아 접할 수 있는 그 구원, 이제 이래 가지고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 성경에 나타난 이 구원, 이 구원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받아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이 받는 방편이 뭐이냐? 받는 방편은 뭐이라고 했습니까? 받는 방편은 믿음입니다. 믿음인데, 그 믿음은 몇 가지가 있느냐 하면은 내 마음으로, 다시 말하면 내 이성 주관 감각, 내 마음으로 순종하는 순종이 있으니까 이것이, 이것이 행함이 아닌 믿음입니다. 행함이 아닌 믿음.

 

행함이 있기 전에 있는 믿음이라 말이오. 행함이 있기 전에 있는 믿음이라.

 

이래서 야고보서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여 온전한 믿음이 된다이랬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는, 행함이 있기 전에 있는 믿음이 이 믿음이 행함을 일으켜 가지고서 그 믿음대로 행하고 나면은 그다음에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 된다, 온전한 순종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어져요? 이해가 돼요? 이거 각도, 그 모때기가 있는데 이 모때기 각도를 잘 구별하지 안하면 안 돼요.

 

그래서, 이 두 가지 믿음, 마음으로 믿는 믿음 몸으로 순종하는 믿음,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 몸으로 순종하는 믿음,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이 문서 계시에 나타내 주셨고, 그보다 한층더 깊이 들어가면 영감 계시로 영감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그 사실을 내 이 마음에, 영이 아니고. 영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이 감각이나 이성이나 모든 감정이나 또 지각이나 이 모든 마음의 온갖 요소가 그 사실을 참되다알고, 참되다 알고 참되다 인정하는 것, 알고 참되다 인정하는 그것이 뭐냐 하면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

 

고 믿음 가지고는 온전하지 안해.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내 몸이 따라서 고대로 순종하면 고것이 행동인데, 행동하면 이제 그것이 마음으로 믿지 몸으로 믿지, 그러니까 마음으로 순종했지 몸으로 순종했으니까 순종이 온전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순종 그것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하는데 고 믿음을 가지고 이 기본구원에 수많은 내 구원이 되어 있는 이 구원을 내 심신의 구원으로 받아서 내것을 삼는 그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믿음은 두 가지 순종하면 바라는 것들이 내게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바라는 것들은 어떤 것이 바라는 것들인가? 신구약 성경에 다 약속되어 있는 것들인데 그게 뭐인가? 그게 뭐인가? 창조 구원, 대속 구원, 중생 구원,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 그 전부 똘똘 뭉친 그것이 내 소망이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것이 우리 소망이라.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말은 그게 소망이라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 소망이라.

 

그래서, 이제 우리가 내라는 존재가 있기 전에 내 구원이 돼 가지고 있는 것 있고, 내라는 주관이 이해하기 전에 있는 구원이 있고 이런 것을, 내라는 것이 존재됐기 때문에 이제 내라는 존재가 그 구원을 다 내것을 만들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지금 성화구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요 또 성령이 책임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 왔는데 이 구원은 언제 이루느냐? 이 구원은 현실에 이룹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살도록 내비둔 것은 우리 현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현실인데 이 현실은 하나님께서 그라면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있는가, 또 이 세상에 제일 부자되기 위해서, 뭐 제가 좋은 것, 권세로 제일 좋은 것, 돈으로 제일 많은 것, 영광으로 제일 많은 것, 또 기쁨으로 쾌락으로 제일 크고 좋은 것 제일, 그만 일등합시다. 일등 그거 위해서 우리에게 이 현실을 줬는가? 아닙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찌끼라.

 

, 따라합시다.찌끼! 배설물! 그런 것들은 다 배설물! 여러분들이 깨를 가지고서 기름을 짜면 배설물은 뭐이 배설물이며 거게 알맹이는 뭐이 알맹이입니까? 깻묵은 배설물이요 또 기름은 알맹이지요. 그 깻묵은 저거는 그 참깨 짜면은 깻묵은 저게 거름통에 갖다 넣어서 썩혀 가지고서 버립니다, 그거.

 

거름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배설물이 있어야 속에 알맹이가 나오지. 우리 몸에 영양되는 영양과 이거 음식 먹으면은 배설물은 똥 오줌으로 나오는 게 배설물이 아니요? 똥 오줌으로 나오는 그게 있어야 그 속에 영양을 취해 가지고서 몸에 유익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예를 들면은 어떤 세상에 정권으로써나 재벌로써나 또 영광으로써나 명예로써나 쾌락으로써나 제일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은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이 그러면 알맹이입니까 그것이 배설물인 찌끼입니까? 뭐요?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여러분들 지금 막 그게 좋다고 해 가지고 밤낮으로 눈이 거게 호똑거려 가지고서 그게 있으면 좋다, 성공이라, 영광이라 이라는데 뭐이 알맹이야, 그래? 여러분들이 알맹이를 뭘로 알맹이로 알고 있느냐 말이요? 그게 알맹이입니까 그게 알맹이 빼고 난 다음에 찌꺼기입니까 그거 알맹이입니까? 그것을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찌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찌꺼기라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 순 거짓말쟁이들. 여러분들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을 면해야 마귀를 벗어납니다.

 

왜 거짓말쟁이라? 실상 그것을 알맹이인 줄 알고 그거 하면 좋다 성공하고 자랑하고 이러니까 자랑하고 이거 뭐 그것이 깨어지고 실상을 얻는 것은 실패했다 망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여러분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줄 알고 고쳐야 될 터인데 회개 안 하고 뻔뻔스럽게 자꾸 이와같이 지금 알맹이가 뭐야?’ ‘이게 알맹이라 이거는 찌꺼기라' 이렇게 말하니 여러분들이 앞으로 속을 날짜가 많다, 그거요.

 

참 나는 이걸 어리석게 그렇구나. 나는 참말로 알맹이는 내가 배운 대로의 지식적으로는 알맹이가 그게 알맹이인데 내라는 이 주관 감정이 있기 전 되어 있는 그 구원을 내가 내 감정 이후부터 내가 실상으로 만드는 이것이 내 구원이니까 실상으로 만드는 이게 알맹이오.

 

이걸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대통령 지위에서 그걸 만들고 어떤 사람은 부자에서 만들고 어떤 사람은 뚜드려 맞는 데서, 감옥에서 만들고, 어떤 사람은 뭐 이렇게 추켜들면, 이 추켜 드는 데서 만드는 것은 뭐야? 이렇게 추켜 드는 데에 올라가면 떨어져 버렸어.

 

추켜 들기를 암만 추켜 들어도 나는 그게 내 소망 아니다. 아무리 나를 밟아 차 넣어도 그게 내 실패 아니다.’ 요것이 그거는 알맹이에 소망만 가지고 있지 껍데기에 소망 가지지 않고 있다 말이오. 다만 그런 가운데서 내 알맹이만 이루어져.

 

고난에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기쁨에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쑥 올라가는 데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내려가는 데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성공에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실패에서 알맹이가 이루어지지, 이러니까 사람들이 보고 알고 하는 그런 것은 다 알맹이를 만드는, 내 주관이 있기 전에 내 구원으로 되어 있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부 그것이 내 구원되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것 만드는, 내것 만드는 요 현실을 만든 데에 현실의 모든 요소들이요 만든 그 현실을 통해서 영원 전에 이루어 놓은 그 구원이 내 구원의 실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루게 하는 껍데기 그것 배설물이요 그 속에서 알맹이 구원만 이룬다 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전에 모두 다 귀중하게 여기고 학벌, 문벌, 뭐 영광, 지위 그 모든 것을 이전에는 귀하게 여기고 그게 알맹이인 줄 알고 했는데 그게 알맹이가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배설물로 똑똑히 구별했고, 이제는 알맹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얻어지는 그것이 알맹이라.” 요렇게 똑똑이 빌립보 3장에 말씀을 해 놨다 그말이오. 예수를 바로 믿어야 돼요.

 

이러니까, 이 알맹이 쭉정이 이것만 해도 가치를 가진 것이 어떤 자는 알맹이를 알고 알맹이에 소망을 두고서 이 대통령이란 껍데기 오면은 대통령 껍데기 그게 내것 아니라 대통령 껍데기가 오면 대통령 껍데기 속에서 내가 영원한 구원을 이루겠다, 내가 지금 고문과 고형을 당하니까 고문과 고형이 내것이 아니라 이거는 지나갈 것인데 고문과 고형 속에서 내 알맹이 구원을 이루겠다, 거게 소망 둔 사람이 이것이 알맹이인 줄 알고 여게 소망을 가진 사람이지, 지금 전부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망을 항상 세상에 봐 가지고 세상 찌꺼기가 이루어지면 , 축복받았습니다.’ 찌꺼기가 이루어지면 거기 소망만 가지고, 찌꺼기 보면 찌꺼기 보고 소망하고 찌꺼기 보고 좋아하고 찌꺼기 보고 울고 이래 가지고 순전히 찌꺼기만 상대하는 자가 되어져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자를 알지 못하고 알맹이를 상대하고 있느냐 알맹이를 소망하고 있느냐, 찌꺼기를 상대하고 찌꺼기를 소망하고 있느냐?’ 이라면 알맹이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손 드니까 거짓부리니까, 이렇게 거짓부리 하니 언제 찌꺼기와 알맹이 구별해 가지고서 껍데기 속에서 알맹이는 뽑아서 제가 차지하고 찌꺼기는 버리는, 현실에서 알맹이인 이 구원은 자기가 얻고 찌꺼기 껍데기 그거는 지나가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우리의 현실의 가치가 같다 했어요 다르다 했어요? 같다 했지. 현실의 가치에, 이용 가치 말이요. 이용 가치와 이용의 결과가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이용하는 것은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요 이용하고 나면은 집어 던지고 우리가 갈 것들이요, 이거는 찌끼라 하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될 터인데 구별한다고 입술로만 알아 가지고서 이제 구별하는 것이 이게 틀린 걸 틀린 줄도 모르다 그말이오.

 

사람들이 말이요, 정신이 없는 사람은 제가 거짓말로 꾸며서 말해 놓고도 그 말을 한번 두번 하고 한달 두달, 일년 이태 삼년 하면은 그만 제가 이 머리가 그만 그대로 그만 돼져 버려서 그게 실상이고 사실이요 그게 실상인 줄 압니다. 제가 만들어 냈지만 실상으로 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사람들이 그렇게 자꾸, 틀린 것을 하는 사람은 지금은 알고 틀린 것을 하니까 틀렸다, 옳다, 이게 틀린 것은 말하기는 내가 이걸 하나의 운동하기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틀린 것 말하지 실상은 이거 틀린 것을 내가 옳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라지마는서도 나중에 몇 번 하고 나면은 틀린 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 행위로 인해서 행위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게서 거짓말 하는 사람은 나중에는 거짓말 하는 그것이 참말인 줄 알기 때문에 속아도 속는 줄 모르고 망해도 망한 줄 모르고 그래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거 뭐 인간 이치라는 건 얼마나 넓은지 모르요.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하면 안 돼.

 

 

이제 우리의 구원의 요소는 이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의 혜택으로만 이루어지는데 그 건설구원의 요소는 기본구원에서 빼 나와야 됩니다. 그 기본구원에서 빼 나와야 되는데 기본구원을 고대로 알고 인정하고 자기가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고 기본구원에 알고 인정한 그것을 알고 인정하나 안 하나 보자.

 

현실에서 보니까 네가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믿나 안 믿나 보자하고서 현실을 딱 만들어 주니까 현실에 전능의 능력보다 못한 것이피조물은 전능의 능력보다 못한 것이지 그보다 큰 게 어데 있습니까?전능의 능력만 못한 이 피조물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막 위협을 하고, 위협을 하니까 보자, 전능을 믿나 안 믿나 한번 시험해 보자이라니까 이제 안 믿는 사람은 아이쿠고만 이 능력이 제일 크니까, 이제 이 전능의 능력을 제가 알고 믿고 이래 했지마는 이거는 다 부인해 버리고 이 능력이 크니까 여게 속해 버리고, 이 능력을 큰 것을 아는 사람은 이 모든 피조물 제일 큰 능력이 와 가지고 협박을 하니까 웃습니다, 웃어. 네게 어짜나?’ `네게 권리 없어. 네게 권리 없어. 뭐 불이 날 태울 줄 아느냐? 태우지 못해. 불에 타는 것도 주님이 타게 하셔야 되지 타게 안 하면 안 돼. 주권은 주님에게 있지 불에 있지 안해. 주권은 주님에게 있지 사자에게 있지 안해. 주권은 주님에게 있지 공산주의 독침에 있지 안해. 독약에 있지 안해.’ 이제 이 믿나 안 믿나 하는 걸 시험해 보니까, 가치 시험, 또 능력 시험, 능력 시험에는 복종하는 것이고 가치 시험에는 제 욕심이 끌려가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 두 가지 시험이라.

 

이래 보니까 현실에서 보니 믿는 자 안 믿는 자 이래 가지고, 믿으면 그 능력이 믿으면 제것 돼 버려요. 믿으면 제것 되는데 암만 제것이 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안 믿으니까 이 능력을 안 할랍니다하고서 부인해 버려 버리니까 그거 안 할라고 부인했는데, 내 던졌는데 하나님이 주신다면은 이거는 강제입니까 순리입니까? 강제라. 강제면 하나님이 죄짓는 것이지. 하나님은 강제하지 안해.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지극히 큰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함을 입었는데 이 보호를, 보호함을 입었다는 이 보호는 무슨 보호요? 이제 우리 네 가지 구원의 보호라 말이오. 이 한없는 보호라, 이 보호. 이것 해석할라 하면 그 해석을 다 쓸라 하면은 온 세상에 둬도 다 못 써.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데 이 보호를 현실에서 네가 믿나 안 믿나, 그 능력을 믿나 안 믿나, 그 가치를 믿나 안 믿나 요래 딱 댈 때에, 이 가치를 믿나 안 믿나 하지마는서도 내가 그렇게 알기는 평상시에는 그렇게 알았지마는서도 이 모두 환경에서 막 위협을 하고 아니라고 자꾸만 네가 속는다, 속는다 자꾸 이래 쌓고 아니라고 위협도 하고 자꾸 속는다고 이래 쌓으니까 내 마음이 슬그머니 변동된다 그말이오.

 

변동돼. 현실이면 변동돼.인제 뭐 여러분들 따라오는 사람들은 따라오고 내가 뻐뜩하고 말 거라변동되는데 그러면 고렇게 한쪽에서 네가 이 변함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보호를 네가 알았고 또 인정하니까 요대로 믿어라. 요 사실은 틀림없다, 능력의 보호는 네게 대해 틀림없으니까 믿으라 믿으라.’ 자꾸 이렇게 하고, 믿으라 믿으라 하는 거는 누가 믿으라 믿으라 합니까? 누가 믿으라 믿으라 하지요? 믿으라 믿으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또 내게 성화된 것이 있으면 성화된 요소, 성화라 말은 심신의 기능이 성화된 것 있다 말이오. 성화된 것. 요것은 합작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다,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암만 그까짓 것 피조물이 그래 쌓아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만 못하다, 이는 무한한 능력이고 그까짓 거야 싹 뭉케 버리면 없어지는 것인데 무슨 힘이 있느냐 이렇게 자꾸 이 능력의 보호를 믿고 그 옆에서 유혹시키는 것을 무시하라고 자꾸 그라는데, , 옆에서는 아니다, 아니다. 네가 이라다가는 죽는다, 네가 이거 백지 공연히 하나님의 능력, 어데 능력 보이노? 네가 공연히 지금 인간이 써 놓고 그런 말 보고 자꾸 네가 그렇게 하고 있나? 그거 네가 미혹받는다. 안 된다.’ 안 된다고, 믿음을 지켜서 무한하신 기본구원의 혜택을 입을라고, 입고 살라고 하니까 입으면 안돼. 그거 입으면 네가 죽는다. 망한다.’ 요렇게 유혹하고, 네가 망하고 죽을 뿐 아니라 그걸 입으면 내가 막 죽여 버린다.’ 이 무력을 가지고 죽여 버린다고 강제로 협박을 놓고 또 입으면 안 된다고 유혹을 주고 하는데 그 유혹 주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유혹 주는 자는 누구지요? 그 이름 알아봐요.

 

악령, 악성, 악습, ? 없습니까? ? 아직까지 성화되지 안하고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있는 우리 심신의 기능. 알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심신의 기능은 두 쪼가리입니다. 우리 심신의 기능은 하나는 이래 됐고 하나는 이래 됐으니까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하나는 하자, 우리 마음 속에는 하자’ `하지 말자' `하자' `하지 말자' `구원을 이루자' `아이구, 구원 이룰라 하다 망한다, 벗자.’ 하자, 벗자 자꾸 이렇게 말합니다. 이래 가지고 이 두 틈바귀 속에 있는 걸 가리켜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 두 사이에 끼어서 내가 곤고한 사람이라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이 둘이 싸운다 그말이오.

 

싸우는데, 이러니까 이 사람이 믿음을 지킬라고 하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는 것은 왜 있습니까? 이제 믿음 지킬라는 믿음 지키도록 권장하는 것이 없으면은 그만 일방적이면 뒤에 망할지라도 고통 없이 그만 믿음 버려 버리고 그만 해 버리면 되는데 믿음을 버리자니 한 쪽으로 또 권면하지, 또 믿음을 가지자니 한쪽에서 협박도 하고 위협도 하고 그라지, 위협하고 협박하는 거는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있는 온 세상 전부라 그말이오. 알겠소?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협박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 내 속에 성화되지 안한 심신의 기능, 또 악령과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있는 이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

 

그러면 세상은 누구 것이라요? 세상이 누구 것입니까? 세상의 왕이 누구입니까? 세상의 왕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세상의 임금을 누구를 임금이라 했습니까? 마귀를 임금이라 했다 말이오. 이 아담 해와가 졌기 때문에 세상은 마귀의 것이 돼 버렸어요. 알겠습니까? 마귀의 것이 돼 버렸어. 이 전체가 막 뭉쳐 가지고 이랍니다. 역사의 뭉치, 이 역사에 있는 박사들이 다 뭉쳐 가지고 이랍니다.

 

역사에 있는 학자들이 다 뭉쳐 가지고 이랍니다. 정치가들이, 도덕가들이, 종교가들이 전부가 다 똘똘 뭉쳐 가지고서 하나가 돼 가지고서 내 현실에서 믿음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니까, 천하에 있는 말이 다 합하요, 지식이 다 합하요, 인간이 다 합하요, 권세가 다 합하요, 통계가 다 합하요, 전부가 다 합해 가지고 아라니까 내가 이기기가 힘든다 말이오. 이러니까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근심한다 말이오.

 

근심을 하지마는, 하지마는, 근심하다가 아이구 암만 해도 안 되겠다.’ 믿음 팔아 버리고 나가 버리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는 그 요소는, 그 해당된 심신은 죽었고 나머지기 나머지 심신은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민을 당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죄 짓고 난 다음에는 마음에 기쁘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안 지으면 안 되고 죄를 짓고 싶어 짓고 죄 짓는 것이 좋아서 짓지마는 탁 짓고 난 다음에는 후회가 되고서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요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으니 문제가 뭐꼬? 믿으면 된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아무리 피조물이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내가 믿을 때는 그에게 피해를 하나도 보지 안하고 내가 믿기만 믿으면 모든 피조물은 내게 이용물이 되어지고 만다.’ 이용물이 돼. 요걸 알아야 돼. 이용물이 돼.

 

마귀도 내 이용물이 되었고, 마귀가 방해했는데 이용물 돼? 방해를 했는데 내가 방해를 받지 안했으니 그게 내게 이용물이 됐지. 그 방해를 이렇게 방해했는데 방해를 받지 안하고 승리했으니까 그 승리가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되지.

 

마귀도 내 이용물, 또 악성 원죄도 내 이용물, 악습 본죄도 내 이용물, 하늘의 것도 땅의 것 모두 전부 다 내 이용물이라. 다 이용물이 다 돼 버렸어. 이용물이 다 돼 버리고, 또 이제 나보다 위에 있는 거는 전부 나를 돕는 자가 다 돼 버렸고, 이래 가지고서 고 현실을 믿음으로 딱 통과하고 보니까, 통과하고 보니까 크게 기뻐하도다」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크게 기뻐해.

 

크게 기뻐하는 것은 누가 크게 기뻐합니까? 크게 기뻐하는 것은 누가 크게 기뻐하는고 하니 우리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 크게 기뻐하지요. 또 이미 여게 대해서 조언을 하고 있는, 도와서 협조하고 조언하고 있던 이미 성화된 기능이 기뻐하지요. 또 영감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요. 진리가 기쁘게 하지요. 또 기쁘게 하는 것, 다 그라면 이제, 크게 기뻐하는 것, 나를 돕던 이미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 기쁠 것이요, 또 영이 기뻐할 것이요, 또 진리가 기뻐할 것이요, 영감이 기뻐할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요, 피가 기뻐할 것이요 다 기뻐하는데, 기뻐하는데 고 기뻐하는 것 하나 빠졌습니다. 고 기뻐하는 것 하나 빠졌는데 고거는? 뭐인지? 고것만 여러분들이 알면 요 말귀를 알아 들었다 내가 안심을 하고 그만 중단하겠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 하나 빠졌는데, 하나 빠졌는데 내가 이와같이 믿음을 현실에 지킬라고 할 때에 나를 협조하던 이미 성화된 심신의 기능, 또 진리, 영감, 내 중생된 영, 예수님의 피, 기본구원의 이제 이 모든 구원의 그 역사들 이게 다 기뻐하는데 고 기뻐하는 가운데에 하나가 빠졌습니다. 하나가 기뻐하는 것은 빠졌는데 하나 뭐이 기뻐할까요? 하나 뭐이 기뻐합니까?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조사, 만물이 기뻐한다, ? 만물이 기뻐한다, ? 현실에 살아난 뭐? 현실에 살아난 심신의 기능, 요게서 백 점 말했어. 요게 같이 들어도 안다 말이오. 백 점 말했어. 현실에 살아난 심신의 기능.

 

이 심신의 기능이 이놈이 지금 마귀, 악령, 악성, 악습 이 세상에게 붙들려 가지고 미혹을 받고 협박을 당해 가지고서 이라니까 우리 마음 가운데에 이 몸 가운데도 심신 가운데 둘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이리 해라 하고 하나는 이리 해라 하고 이라는데 이리 하자 하는 이놈이 이제 여게 권면받아 가지고서 이것이 , 뭐 죽으면 죽고 한번 해 보자.’ 하고서 이제 이 오른편에 이 구원 이루는 요 기능에게 복종을 척 하고 보니까, 하고 보니까, 이놈이 악령의 종이 되었고, 악성의 종이 되었고, 악습의 종이 되었고, 모든 세상의 종이 되고 협박받고 이랬는데 한번 해 보자.’ 하도 그리 쌓으니까 한번 해 보자 하고서 턱 하고 나니까 뭐이 벗겨져 버렸어? 악령이 이놈이 간 곳이 없습니다. 악성이 간 곳이 없습니다. 악습이 간 곳이 없습니다. 모든 세상의 권세가 발 아래 딱 밟혀 버렸습니다.

 

이라니까 그때에 고 현실에서 이제 성화구원 받은 고 심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이미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는 이미 있는 것이 다 기뻐하고 즐거워했고, 그때 하나 빠진 것은 뭐이냐? 고 현실을 통해서 처음으로 살아난 그 기능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러면, 또 우리에게 심신의 기능 중에 다 살아났습니까? 안 살아나는 게 있어.

 

안 살아나는 거는 요 다음 현실에 살아날 것 있고 고다음 현실에 살아날 것 있고 고다음 현실에 살아날 것 있고 이러니까 현실에 살아날 때마다 요 시비가 있는 것입니다. 요 시비가 있는 것을 알고, 그러니까, 요 악에게 붙들려 가지고 미혹받고 협박받고 있는 고 심신의 기능을 우리가 용감스럽게 그까짓 것 배반해 버려라. 용감스럽게 그걸 배반해라.

 

용감스럽게 배반을 하라. 배반하고 이쪽에 속해 가지고 이대로 해 봐라.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게 그렇게만 하면 되는데, 뭐이 힘들어?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데, 문제도 없어.

 

그렇게만 하면 그만 이겨 버리는데 그거는 만전 만승으로 뭐, 그라기만 하면 다 이기지 못 이기는 것 하나도 없고 이 큰 능력이 지금 이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걸 비교할 것도 없는 것인데, 이기는데, 그게 인정이 안 되니까, 이 심신의 기능이 인정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안하니까 못 한다 말이오.

 

못 하니까 이놈에게 인정을 시켜야 되겠고 설득을 시켜야 되겠고 이해를 시켜야 되겠고 이 알도록 그렇게 해야 되겠는데 그렇게 하는 방법이 뭐입니까? 요거 모르면 안 돼.

 

그 방법이 뭐 무슨 방법 가지고서 그만 현실을 척 닥쳤을 때에 아직까지 악령, 악성, 악습, 세상에게 붙들려 있는 그 기능이 현실을 턱 닥쳤을 때에 내가 말하니까, 영이 말하고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 말하고 진리가 말하고 성령이 말하고 피가 말하면서 , 현실에, 요 현실에 우리 따라오고 우리에게 속해야 영생하지 그놈 악령, 악성, 악습, 세상에게 속하면 너는 둘째 사망으로 멸망받는다.

 

이리 따라오너라.’ 할 때 그렇습니까?’ 쑥 따라 오도록, 따라오도록 하면 성공이라. 따라오도록 하면 성공이라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영의 장성, 영의 유약이 있는 것이고, 심신의 지금 기능이 역사가 산 역사가 크고 작다 하는 그말이오.

 

그러면, 고걸 따라오도록 하는 데에는 잘 쫄쫄 따라오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고거 알아아 돼요, 고거. 잘 따라오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될란지, 잘 따라오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될란지 요거 알기 어렵다.

 

○○○목사님 알까 몰라. 요걸 따라오도록 할라면 어떻게 하면 되겠지? 요거 따라오도록 할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 뭐라 합니까? 아니 고거 따라나오도록, 이 지금 성화 안 된 심신의 기능이 이제 성화된 심신의 기능과 모든 그 배경 전체가 말할 때에 그렇습니까이해를 하고 척 따라와야 되겠는데 이 따라오도록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이오.

 

이 어리석어서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꼬였다. 꼬였다.’ 해도 이 말이 옳다하고서 그 꼬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협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협박에서 벗어나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할라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이오. 그게 우리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거라.

 

어떻게 하면 되요? ○○○조사님, 믿음의 경험과 체험이 중요하지. 그거 중요하지. 믿음의 경험과 체험이 있는 사람은 봐라. 과거에 이렇지 않더냐? 과거에 이렇지 않더냐?’ 자꾸 인제 그게 있으면 된다 말이오. 그거 좋은 거 말했어.

 

좋은 거 말했는데 믿음의 경험과 체험, ‘봐라. 너 과거에 이럴 때 있었지? 과거에 이런 때 있었는데 그때 아니라 이랬지마는서도 그대로 실행하니까 되지 안했느냐? 봐라. 다니엘이 그렇게 뭐 세상이 다 죽는다 했지, 하지마는서도 이제 그 순종하니까 사자굴에서 살아나오지 안했느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살아나지 안했느냐?’ 이게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소개한 것,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소개한다 말이오.

 

그러면 자기 경험과 체험이라 하는 거는 더 유익합니다. 자기의 경험과 체험 이것을 자꾸 들어댑니다. 그거 자꾸 들어대야 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에 신앙 생활한 것을, 과거에 내가 이럴 때 이래 보니까 이래 됐고 이래 보니까 이래 됐고 쭈욱 열거를 해서 과거에 자기가 신앙으로 승리한 것을 쫙 열거를 해 가지고서 말을 하니까 이 심신 이놈도, 심신의 기능,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한 심신의 기능이 마귀와 이 세상 온갖 악령과 세상의 유혹을 받고 협박을 받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자꾸 과거를 보니 이렇고 이렇고 이렇지 않더냐?’ 하니까 그래. 그럴 것 같다. 참 과거에 그렇기는 그랬어과거를 제가 아니까.

 

과거에 그렇기는 그랬어' 이런데, 과거를 자꾸 들어댑니다. 과거를 들어대는데 이것도 좋습니다마는 이것만 가지고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것만 가지고, 이것도 좋은데 이제 자꾸 성경 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이 경험을 말하고 경험보다 나은 것은 설교 재독을 자꾸 들어요. 알겠습니까? 설교 재독을 자꾸 들어요. 이것보다 나은 것은 설교 재독이라. 과거에 경험 체험이 이렇지 않느냐 이래 말하는 거와 그보다 나은 거는 설교 재독이야. 자꾸 들으니까 재독의 설교에, 설교에 또 이렇다 이렇다 이렇다 자꾸,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갈 나무가 없다고.

 

이제, 요새 돈벌이 하는 모든 다 보험이나, 보험에서도 말이지 봐라. 한번 말해서 안 듣는다. 안 들으나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고 어째 일 년만 가서 해라.

 

일 년만 계속 해 하면 넘어간다.’ 이렇게 말하는데 돈벌이 하는 고런 데는 잘 쓰는데 예수 믿는 데는 그걸 못한다 그말이오.

 

재독을 자꾸 들어. 재독을 들으니까 설교에 자꾸 들으니까, 설교에 듣기는 네가 그럴 때에는, 그럴 때는 영에 복종해라, 또 피에 복종해라, 진리에 복종해라, 말씀에 복종해라, 영감에 복종해라, 복종하면 승리한다, 복종하면 승리한다를 자꾸 설교가 말하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재독을 들으니까 자꾸 믿음이 생겨져. 그 재독을 많이 들은 사람은 자꾸 믿음이 생겨지고, , 재독보다 더 나은 게 뭐입니까? 재독보다 더 나은 거는 자꾸 이제 성경을 읽는다 말이오. 성경을 자꾸 읽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읽으면 또 눈감고 명상해서, 성경을 읽고 눈을 감고 명상해 생각하니까 눈을 감고 이래 있다가 그라면 뭐 절로 난다 말이오. 아멘! 이란다 말이요, 그만. 이라고 혼자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뭐 이래 가지고 이 생각해 보니까 아멘! 옳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저 혼자 백지 하는 거라. ? 확신이 들어오거든.

 

자꾸 평소에 이래 놓으니까 이 심신의 기능 이놈이 지금 자꾸 듣고 자꾸 설화를 시키고 타이르고 자꾸 성경을 자꾸 읽어 주고, 이제 재독을 자꾸 읽어 듣기고, 또 자꾸 명상해 기도를 해서 자꾸 이래 명상해 가지고 알고 이라니까 이게 지금 벌써, 이 악령, 악성에게 붙들려 있지마는서도, 거게 속해 있지마는 벌써 마음은 이리 다 왔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심신의 기능이 그 쪽에 속한 것보다 이쪽에 속한 것이 중량이 무겁다 그말이오.

 

무거운데 그 현실을 척 만났을 때에 무거우니까 저쪽에 속한 것이 적지 이쪽의 거석이 무거우니까 옆에서 안 된다 이럴 때, 이라면 네가 영원히 살고 이라면 네가 영원히 죽는다 이라니까 그만 쉽게, 쉽게 현실에서 이미 얻어져 가지고 있는 그 구원을 따라서 자기가 승리하게 된다 말이오.

 

승리를 척 하고 나니까, 승리하고 나니까, 처음에는 근심했더니마는 나중에는 크게 기뻐한다. 기뻐한다. “크게 기뻐하도다크게 기뻐한다는 자는 어떤 자가 크게 기뻐합니까? 크게 기뻐하는 자는 어떤 자지요? 우리 장로님, 처음에는 근심했는데 나중에는 크게 기뻐했다. 근심하지 안할 수 없었으나 뒤에서는 크게 기뻐했다. 크게 기뻐하는 자는 누군가? 처음에 근심하던 그 자가 크게 기뻐하지.

 

근심하던 자는 누구며 크게 기뻐하는 자는 누군가? ○○○목사님, 뭐이 크게 기뻐하지? 뭐이 처음에 걱정하고 나중에 크게 기뻐하지? 그러면 고 현실을 당할 때에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한 심신의 기능이 이제 이 할라 하니까 이래도 못 하고 저래도 못 하고 크게 근심합니다. 그게 성화되지 못한 기능이 이게 자꾸 성령을 따라 할라 하니 죽겠다 싶은데 근심하고, 또 이미 성화된 것은 이게 말을 안 들으니 지금 기가 차서 근심하고 근심이 둘이 합니다.

 

하나는 이미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 말을 안 들으니 근심하고, 하나는 지금 제가 당면했는데 이렇게 걸어갈라 하니 큰 문제고 이래 근심하고 둘이 근심합니다.

 

둘이 근심하다가 척 한번 순종하고 보니까 그까짓 것 문제도 없이 설렁 이겨 버렸거든. 이기고 보니까 저는 해방이 됐다 말이오.

 

해방된 심신의 기능이 크게 기뻐하고, 이 승리를 협조하던 이 모든 존재가 크게 기뻐하고, 이제 자기 주관이 기뻐하고, 모든 객관의 역사들도 기뻐하고 큰 기쁨이 있습니다. 잠시 근심하는 거 요런 게 뭐인지 똑똑히 알아야 돼.

 

그러는데, 그러니까 너희 믿음의 연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금은 이래 불에 구으면 잡철은 타고서 이거 순금만 남습니다. 잡철은 타고 순금만 남소. 순금만 남는데 이 잡철이 타고 순금만 남는 것보다 더 하다 그 말은 뭐이 탔다 말이요? 뭣이 탔다 말이지요? 뭣이 타고 순금이 됐다 말이지? 잡철이 탔다 말이지. 잡철이 타면 순금되지. 잡철이 뭐인데? 잡철이 뭐인데? 자기 심신을 붙들고 있는 악령, 악성, 악습, 이 모든 세상에 있는 전부, 인간들의 말, 그 전부가 뭉쳐 가지고서 그것으로 예수 믿는 척 하고서 악령 악성 그놈이 들어서 예수 믿으라 하며 자꾸 예수 믿으라 하고 믿는 줄 알았는데 요 현실을 딱 당해 가지고서 비로소 잡철인 인적의 요소 이 모든 이 세상 요소 가지고서 믿는, 세상 요소 가지고 믿는 그런 것이 다 불타 버리고, 이제 순전히 이거는 위에서 내려온 그로만 믿고, 그로만 믿고, 이 세상과 모든 악령 악성 악습을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이 모든 그런 것을 부인해 버려 잡철이 타 버렸고 또 이 뭐 세상을 부인해 버려 잡철이 타 버렸고, 자기를 부인해 버리고 세상을 부인해 버려서 잡철은 타 버렸고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요걸 또 여러분들이 여기서는 알쏭알쏭하지마는 잊어버려. 자꾸, 기도는 뭐이 기도인가? 이것을 혼자 돌아가서 자꾸 명상하고 명상하고 이래 가지고서 하루고 이틀이고 밥 먹을 여가 없이 자꾸 깨달아 명상하면 아멘, 아멘, 자꾸 아멘이 돼.

 

그러면 뭐이냐 하면은 이제 미성화의 심신의 기능이 자꾸 변화가 된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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