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면서 살자


선지자선교회 1980년 9월 24일 수새 

 

본문: 시편 1편 1∼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어제 아침 우리가 성경을 어제는 특별히 좀 사람들로서 분주하고 또 명절이기  때문에 각양 인인 관계로 인해서 분주하고 복잡할 때라. 이러니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날로 보내고자 그런 약속을 우리가 했습니다. 어제 아침에 우리가 이  팔월 명절이라. 서로 인인 관계로서 많이 복잡해질 터이니까 그 복잡함에 묻히지  말고 성경말씀 읽고 묵상하는 이 날로 한번 지내보자 그렇게 우리가 약속을  했습니다.

 또, 묘지에 간 분들은 묘지에 가 가지고라도 거기서 그 틈을 내서 그 산에서 좀  성경보고 기도하는 그런 일을 하고 오도록 하자 이랬는데 어제 묘지에 간 사람이  몇이나 됩디까? 이 장로님 예? 성묘 간 사람들은 적고. 예 그 가는 것이  옳습니다. 가서 한번씩 가서 묘가 어찌되는고 그렇게 한번씩 가서 돌아보는 것이  자손으로서 마땅히 할 일입니다.

어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로 그렇게 약속 했는 데에 어제 하루아침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렇게 많이 했던 적게 했던 우리가 아침에 새벽에  그렇게 생각 한 것을 한번 이행하는 점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한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어제 성경 읽고 묵상한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예. 아주  극소수입니다.

이 생활하는 것을 시간표를 정해놓고 하는 그 생활이 이상적은 아닙니다.

시간표를 정해놓고 몇 시에는 뭐하고 몇 시에는 무엇하고 몇 시에는 무엇하고  그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그대로 하루 생활을 일 메꾸어 나아가는 그것이 아주  이상적인 좋은 생활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꼭 그렇게만  인도할리가 없다 그것이요. 우리 환경이 변해지는데 꼭 그렇게만 살아서 맞는  것은 아니라 이렇지만 그저 영감에 맞추어서 그 생활을 못할진대 차라리 그  시간표를 정해놓고 그렇게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수입이 낫다 그렇게  말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시간표를 정해놓고 자기가 하루 생활에 어떤 그어  주장에게 그것이 피동돼 가지고 사는 생활 그러면 자기가 성경보고 신앙 양심을  가지고 시간표를 정해놓고 그것이 맞추어 나가는 것이니까 그것이 아무나 따나  세상 악에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해도 일시가도 성경대로 작정한 양심대로 작정한  그 생활인데 그 생활이 어느 정도 맞추어 실행이 돼 나가느냐, 얼마나 허무하냐  하는 그것을 좀 보기 위함이요 또 그것이 표시가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시간표를 정해놓고 살아보면 얼마나 거짓되고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말 뿐이요, 생각 뿐이요 실행하는 그 양은 심히 허무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 읽은 사람도 복이 있겠고 못 읽은 사람은 그 복은 없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우리가 그만 허무하게 하기로 작정해 놓은 이것도 하지 못하고 자꾸  허무하게 지나가니 우리 일생이라 하는 것이 참 날라 가듯이 이렇게 허무하게  고만 지내가 버리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를 단속해서  또 좀 조절하고 또 자기를 늘 바로 정평정가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루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밤에 잘 때는 그것을 한번 계산을 해보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전 생활 가운데에서 얼만 몇 프로는 내가 어디서 살았다 어데  살았다 그것을 처음에 한달 두 달이래 가지고 자꾸 계산을 통계를 맞추어 보면  자기 생활이 어떤 데에 치우쳐 있다는 것 또 어떤 데에서 손해를 제일 많이 보고  있다는 것 이런 것이 계산이 나와서 자기에게 대한 한 지혜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루 사는 그 시간이 어디다가 시간을 얼마를 보내는 가 하는  그것을 계산을 맞춰보면 자기는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는  물질을 위한 사람이라, 자기는 혹은 권세를 위한 사람이라, 혹은 어떤 사람을  위한 사람이라, 향락을 위한 사람이라, 노는 사람이라, 방종한 사람이라. 자기는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를 자꾸 조절해서 나쁜 것은 고치고 이래 나가야 되고 또  가계부를 하는 그것이 좋다 하는 그것도 그 살림을 살지 아니하는 그 남자들도  자기를 고쳐 나가는 데에는 자기 돈 쓰는 그런 계산을 얼마동안 하는 것은 그래  가지고 통계를 맞춰보면 자기는 어떤 면에다가 돈을 얼마 썼나, 돈 쓰는 줄  모르는 그 면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왜나 쓸라 하는 면에는 적게 들어가고  이래서 돈 잘못 쓰면 돈을 잘못 쓰면 사람 또 배립니다. 자기가 시간을 잘못  보내면 사람을 배립니다. 시간을 바로 보내고 또 돈을 바로 쓰고 또 하는 일이  바로 하고 이런 가운데에서 자기라는 사람은 이래 점점 새로워지고 고쳐져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단계 가면 자기는 순전히 자기대로 살지를 못하고 주와 남을  위해서 사는 주와 남을 위해서 사는 그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생활이 다 주를 위한 생활과 남을 위한 생활, 복음을 위한 생활  외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됐을 때에는 자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그 일을  자꾸 기록을 하는 그런 일을 안 합니다. 하면 안돼요. 하면은 교만해집니다.

오늘 저렇게 빈틈없이 전부 주를 위하고 이웃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았다는  그것이 통계가 나올 수록이 자기가 교만해지기 쉽다 말이요. 오만해지기 쉬워.

그러니까 그 때는 계산을 안 합니다. 안 하면 하루종일 분주해서 못 견딜 만큼  죽을 만큼 분주하기는 분주한데 한 일은 하나도 없어. 한 일은 하나도 없으니까  자기 생각에는 하루종일 아무 것 한 것 없이 놀기 밖에는 한 것이 없다. 이러면  교만 나올 수 없고 항상 자기는 일하지 안하고 노는 사람이라, 게으른 사람이라,  주님 앞에 나갈 때는 참 아무 것도 안한 이 놀기만 한 불충한 자라. 이렇게 인제  하나님에게 고하고 자기가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이 됐을 때에 그 때에  자기에게는 겸손이 지나가고 나면은 낙망이 나오게 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너무 허무한 감이 생겨져서 낙망이 나옵니다. 낙망이 나오게 될 때에는 그 때는  다시 아침 첫 시간부터 이제는 한 일을 꼬박꼬박 기록을 합니다. 기록하면 그  다음에 자기에게 낙망했던 것이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그래도 값 있는 산 생활을  한 것이 나타날 때 그 양이 나타날 때에 그 때 안심이 됩니다.

그러기에 요런 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계산해서 살아야 되고 그 다음 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계산해서 살아서 어쨌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계산이 빨라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뭐 공부하는 데에 수학 그거 쓸데없는 수학만  잘 했다, 다른 공부는 뒤떨어지고 수학은 잘 했다. 수학은 필요 없다고 그 뭐  쓰여지도 안 하는 것 이렇게 말하는 데 수학이 아주 필요합니다. 수학이 둘째로  필요합니다. 첫째는 뭐인고 하니 자기가 그 옳은 것 바른 것 하려는 그 양심,  양심 그것이 일반인으로서는 첫째로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수학입니다. 무엇이  계산하는 데 그러기에 모세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로 하여금 그 날수를  계산하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계산이 우리가 있어야 돼. 아무리 서로 아주  친한 그런 자리라도 친한 부부끼리 생활하는 데도 계산이 있어야 됩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계산이 있어야 되고 정은 정대로 계산이 있어야  되고, 봉사는 봉사대로 계산이 있어야 되고, 인내는 인내대로 계산이 있어야  되고, 침략은 침략대로 계산이 있어야 되고, 계산이 있어야 그 계산하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 그 말이요. 사람을 사귀고 얼마 사귀고 보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그 사람 계산이 나와요. 일도 계산하고 사람도  계산하고 계산하면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 알 수 있고.

그러면 그것이 대해서 자기는 또 다시 조절을 해서 자기도 조절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도 조절해야 되겠고 상대방도 조절, 자기도 조절해서 그 계산해 가지고 바로  조절해서 살아야 결과가 맺아지고 그렇지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사람으로서는 계산이라는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이는 말하기를 그 사람은 언제든지 말하기를 그 과학적 영도라, 과학적  영도라. 그 과학적 영도라는 말은 그 물리적인 영도라는 말인데 그것이 세상  사람으로서는 제일 되는 영도입니다. 그 잡았소. 그보다 나은 것은 그 양심  생활하라는 그것인데 양심 생활하라는 그 말은 그 소용없습니다. 불신자로서는  양심 생활하라는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필요 없고 믿는 사람으로서 신앙양심  생활해라. 믿는 사람은 신앙양심 생활입니다. 신앙양심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신구약 성경말씀을 알고 있는데 이 말씀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그것이 신앙양심 생활입니다.

왜? 말씀에 맞추어 살려고 그래? 말씀에 맞추어 사는 것은 인간보다 무한히  탁월하신 그분의 혜택을 입어야 되겠고 그분과 인연이 맺어져야 되겠고 그분이  돌봐줘야 되겠는데 그분의 돌봐주신 돌아봐 주신 그분이 나를 인정해주신 책임져  주신 이것을 받아야 되지 그것 아니면 뭐 안 된다 이것이요. 인간보다 모든  피조물보다 환경보다 시대보다 이 크신 분이 그분이기 때문에 제일 큰 분  그분에게 가서 붙어야 되겠고 그분으로 돌아가야 되겠고 그분에게 대립이 안  되어야 되겠고 그분이 인정을 해야 되겠고 그분의 돌봐주심을 받아야 되겠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그분에게 그 권고하심을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너희들을 권고하는  자심이라. 그의 돌아봐 주심을 믿는 데에는 신앙양심 생활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양심생활이 열쇠입니다. 그럴 때에 당신은 돌아봐 주시고 그것을 버리면  주님을 버린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신앙양심 생활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그 이하에는 과학생활, 계산 생활하는 계산생활 이것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해 가지고 자기를 고쳐 나가 그 계산을 해서 그 계산을  통과해 가지고 그 다음에 이제 그 신앙양심, 신앙양심 불교양심이 아니고 양심  외에는 불교양심도 있고 깡패양심도 있습니다. 도적들도 저거대로 양심이 있소.

신앙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준해 가지고 그것이  맞도록 할라고 하는 것이 신앙양심입니다. 신앙양심대로 사는 생활을 해야  그래야 그 다음에 영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과학생활 이 물리생활  이 세상 이제까지 나가는 그 합리생활, 이 생활에서 대충 맞추고 그 다음에  그보담 더 세밀한 신앙양심 생활에 맞추고 그러면 그 다음에 이제 영감이  도달해서 영감접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제 아침에 말하기를 어제 하루는 성경 읽고 묵상하는 날로  지내자 이랬는데 자 어제 그렇게 지냈나 안 지냈나 이 계산, 우리가 됨으로  정리될 것이 많고 우리가 바른 지식을 가질 것이 많다 이것이요. 또 이 사람은  이 사람은 내가 대할 때에 언제든지 어떤 말이 나오나 그 사람은 내게 대 할  때에 하는 말을 그것을 계산을 댄다 말이요. 계산을 얼마동안 이 사람의 말을  계산해보자.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데 계산해보면 아이구 이 사람은 만낼  사람이 못되는 구나. 이 사람은 허무하구나.

또 이 사람이 나한테 만날 때에는 그어 말보다도 그 향방이 어디이며 목표가  어디이며 만내니까 만낸 길과 결과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 가 보자 그렇게  계산한단 말이요. 계산하면 만냄으로서 점점 하늘에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고  새로워지는 사람도 있고 그 행동 속에 더 중요한 말이 있고 말속에 중심이 있고  중심 속에 그 신앙이라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사람을 접해 보면 그것을 계산하면 그만 이것은 아주 내게 백해무익인  사람 있고 또 이것은 그 이해가 반반인 사람 있고 이 사람은 해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유익된 것뿐이다. 이렇게 사람도 계산해야 되겠고 말도 계산해봐야  되겠고 주장도 계산해봐야 되겠고 또 그 서로 관계로 계산해야 되겠고 이 계산이  정확하게 빠르고 이래 가지고 일차적으로 정리를 해야 되지 아무 뭍아 놓고 이  북(北)에 있는 사람들은 말이요. 석 달 만이면 해방된다 합니다. 이때까지 그리  나온 기요. 석 달이면 된다. 자 석 달 동안 준비하자, 석 달 동안 준비하자. 석  달이면 된다. 그 석 달 동안 힘써 준비하노라고 그것을 소망을 가지고 지낸다  말이요. 그것이 또 안됐다 말이요. 안 됐으면 또 석 달 이것을 계산하면은 석  달로 어찌 된다고 이걸로 환하게 알 터인데 그것을 몰라.

그러면 이것도 계산하고 저것도 계산하면은 이것은 순전히 자기를 우상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꾀쟁이다, 이것은 아주 참 말할 수 없는 강제자요, 아주 사욕  자요, 주관자다. 이런 것은 계산이 나오는데 그 계산을 몰라. 이러기 때문에  계산을 안 대기 때문에 사람이 멀리할 사람을 멀리하지 못하고 가까이 할 사람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내가 그에게 복종할 사람에게 복종하지 못하고 반항할  사람에게 반항하지 못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면 제일 처음에 일차적인 생활이 시간표 생활해 가지고 고 시간표  생활이 이제 달성이 되거들랑 그 다음에는 계산생활을 하고 계산생활을 하여서  그것이 그것이 유익을 보고 그것이 이제 숙달되면 그 다음에는다 계산할라 카면  안 되니까 이제 계산 중에 간추려서 계산해야 되니까 양심계산을 해야 된다  말이요.

오늘은 자 양심에 그 생애는 얼마나 되느냐? 양심계산만 해도 이제 계산할 것이  많은데 쓸데없는 그런 것은 계산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이요.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것을 계산 다 해야 됩니다. 계산 다 해서 그 계산에 이제 초월하게 되면은  그 다음에는 양심계산 만하고 양심계산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양심대로 살았지만  신앙이 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다 말이요.

그러니까 이제 신앙계산을 해. 오늘은 참 하나님에게 복종한 것이 하나님으로  동행한 것이 얼마나 되나 안 되나 이제 그 신앙계산을 해 신앙계산을 하고 난  다음에는 거의 다 신앙이니까 거의 다 뭐 신앙이요 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전부이니까 그것만 계산해 가지고는 복잡하고 유익이 없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내가 어느 시간에는 영감이 있었고 영감 없었나 이제  영감계산.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면은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계산이 된다  그 말이요. 욕심계산 내가 오늘 무슨 욕심으로 얼마 몇 프로는 무슨 욕심으로  살았고 몇 프로는 무슨 욕심으로 살았고 몇 프로는 무슨 욕심으로 살았다 이것을  계산하면은 또 그것이 수정이 된다 이것이요. 수정이 되면은 그 다음에는 이제  영감계산으로 이렇게 해서 자꾸 우리는 뭐이냐 하면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하는 그 묵상 속에 이런 것이 들었다  이것이요.

성경은 어떤 것이 성경인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필요하도록 우리를 위해서  창조한 것이지만 우리가 필요한 것인 줄 알아야 될 것도 있고 몰라도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은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이  속에 우리 구원이 있다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모든 존재는 우리 구원에 필요한 것이지만 필요한 것 중에  알아야 될 것도 있고 몰라도 될 것이 있다 이 말입니다. 알아야 될 것에 숫자는  적고 몰라야 될 것에 숫자는 많습니다.

 그러면 알아야 될 것 그 숫자 중에는 또 알아도 똑똑히 알아야 될 것 있고  아름풋이 알아야 될 것 있고 조금만 알아도 될게 있고 가끔 가다가 알면 될 것이  있고 이것을 우리는 모르지만 당신은 다 아신다 그 말이요.

그러면 우리가 알아야 될 그것을 적당하게 알아야 될 것을 하나도 빠짐이 없이  알되 지나치게 알아야 될 것이 하나도 없이 이것을 종류나 그 양이나 종류와 그  양을 정확하게 해놓은 것이 성경이라. 그러기에 성경에서는 무엇 무엇이 있나  이제 종류를 우리가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경에 종류는 우리가 필요한  종류라 말이요.

성경에 당나귀가 발람 선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  것은 많이 기록돼 있지를 안 해. 많이 기록 돼 있지를 아니하고 또 뱀이 사람을  꾀었다 하는 그것도 많이 기록돼 있지 안 해.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안 하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원죄를 주었다 말이요, 원죄. 그것이 뭐이냐? 사람들이 자기가  빠지는 것 중에는 제일 뭐이냐? 움직이는 그어 육체 움직이는 육체, 사람도  하나의 고급 동물이라 이랍니다. 육체라, 움직이는 육체 그것에게 우리가 꼬임  받는 것이 제일 많다. 이것은 무엇을 이래 존재의 목적을 무슨 존재로 목적을  인류를 존재케 했는가? 그러면 그런 것을 기록한 그것을 전부 봐서 이런 것들이  있다. 인제 이런 것들이 있다, 이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학자가 돼 가지고 과학만능이라 과학을 연구를 열심히 하지만  저는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을 일생동안 머리 썩쿠는 그러한 것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아서 필요 없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없다 이것이요.

이것이 좋소. 우리가 알아서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진 기 없기 때문에 좋다  그것이요. 또 우리가 알아서 필요하지만 그 양이 지나치면 손해라, 밥도 좋은  것이지만 밥 속에 파묻히면 죽습니다. 부자들 아들이 망하는 이유가 그것이요.

이것을 많고 작은 그 양을 바로 조절해서 기록해 준 것이 성경이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성경에서 모든 존재의 종류를 알아, 양을 알아 그러면 이것들 사이에  내가 살고 있으니까 이것들 사이에 살고 있으니까 이것들과 나와의 어떤 그  관계에 조절이 있어야 되느냐? 어떤 관계가 또 관계가 있어야 될 것도 성경이  바로 가르쳐놨다 이것이요. 이것에 대해서는 네가 요런 관계가 있어야 되고 요런  관계 있으면 살고, 요런 관계가 있으면 죽는다. 성경에 있는 그 모든 종류와  나와의 성경에 기록한 관련 없는 것이 하나도 없어.

우리에게도 당나귀가 말을 한다, 그 자기가 이런 동물 저런 동물 이런 생물 저런  생물 이런 육체 저런 육체를 접촉을 할 때에 그 때에 그 뱀처럼 말은 안 하지만  접촉할 때 그 때에 자기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 말이요. 영감이 와 가지고  자기에게 깨닫게 해 주신 그 깨달음이 꼭 뱀이 말하는 것도 있고 당나귀가  말하는 것도 있고 당나귀가 말하는 것을 발람에게 옳은 말해 주었다 말이요 꼭  옳은 말 해주었어. 이라고 뱀이 말한 것은 그 하와를 죽이는 말했다 이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자 돈에 대해서는 내가 어떤 관계를 가지며 권세에 대해서는  어떤 관계를 가지며 세상 영광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가지며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 가 사람에게 대해서는 무엇 무엇이 필요하냐? 조심은 어떻게  하며 위험성 방지는 어떻게 하며 또 주의 할 것은 어떻게 하며 그것을 세밀히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라 그 말이요. 자 그러면 모든 존재의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사람은 어떤 분이며 하는 그것을 또 정확하게 가르쳐 놨다 말이요.

가르쳐 놨어.

그러니까 참 이는 내가 그 앞에 벌벌 떨어야 될 분도 있고 그까짓 거 발을 쑥  밟아야 될 것도 있는데 이것을 몰라 놓으면 발로 밟아야 될 것은 자기의 신처럼  모시고 아주 그 앞에는 영원히 떨어도 모자라는 그런 분은 자기가 멸시하면 자기  절단 난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전체가 깜깜해 모도 가다 무식이라 깜깜한데 이제  성경이 이것을 바로 가르치고 있고 이런 존재가 있다.

예를 들면 비유컨대 존재가 백가지가 있다 아이구 이렇츰 이런 기 있구나. 나  이것을 몰랐는데 백가지가 있다. 그러면 이 백가지 속에서 내가 살아야 되는 데  이 백가지 속에 저거하고는 어찌해야 되지. 그것에 대해서는 이런 면을 주의하고  이런 면을 네가 해야 되고 이런 면은 안 해야 된다. 거기서 안 해야 될 것도  가르쳐 놨고, 해야 될 것도 가르쳐 놨고, 주의할 것도 가르쳐놨고 정확히  가르쳐놨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거 마구 생명이라, 영생이라. 이래서 주님은 이 말씀을 영생인 것을  알았습니다. 영생인 걸로 알았어, 영생. 주님은 영생이라 알았소. 아버지 말씀은  영생인 것을 내가 아노라. 영생이라는 말은 영원히 죽지 안하고 영원히 넘어지지  안하고 영원히 실족하지 안 하는 영원히 실패되지 안하고 영원히 해보지 안하고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이런 가치 있는 이런 길을 그어 걸어야 된다 하는  그것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은 영생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가  새김질한다 이기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생각하는 것은 내나 계산한다는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요기는 이렇게 내가 이렇게 했더니만 요런 좋지 못한 결과가  있다, 이렇게 했더니 요런 좋은 결과가 왔다. 이러니까 자기를 계산하니 자기를  계산해보니까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는 전부 교만할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죄인이고 자기를 계산하고 보니 사람의 그 어떤 처지  사람이 돼 가지고 있어도 자기 할 일은 관용할 것뿐이고 이해할 것뿐이고 용납할  것뿐이고 주의할 것뿐이고 건설할 것뿐이지 정죄해서 이것은 못쓰겠다 버릴 것은  하나도 없어.

 말씀의 잣대를 가지고 묵상함으로 그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요 면을 생각해  가지고 차차 알고 보니 맛이 꿀보다 더 달고 또 요 말씀을 다져 가지고 요  말씀에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요 말씀에 잣대를 가지고 이것도 말씀대로  계산해보고 저것도 말씀대로 계산해보고 계산해보니까 또 그것이 영생이 나오고  영원한 사망이 우리에게 알려진다 이것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안 하는 이것이 점점 강해지고 죄인의  길에서지 안 하는 것이 점점 강해지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 하는 것이  점점 강해지고 커진다 그것이요. 이러니까 이 사람은 점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해진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이것도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요, 묵상하는 것이요,  생각하는 것이요. 생각해 가지고 성경에 이런데 나는 이렇게 했다 하는 그건  자복 해야 돼요. 성경에 이랬는데 나는 그렇게 못한다 하는 것은 주님에게  간구해야 됩니다. 간구할 것, 자복할 것, 이것이 자기에게 또 이것이 없으니  마련해야 될 것이 기도 아닙니까?  아, 이런데 나는 이랬으니 이거 자복 해야겠다. 이런데 이것을 못했기 때문에  이제 그 하나님에게 간구보다 힘을 써야 되겠다. 자 그러면 차차 내가 정리가  되지만 하나님은 주시기를 언제든지 주실려고 알려 주시고 이루어주시고 첫째  처음에는 알게 해 주시고 이것을 소망하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 이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도록 성취가 되도록 해 주시고 이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렇게 말하지 아니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안 읽는 이것이 참 마귀의 대 성공이요, 대 유혹을 받은  것이요. 또 성경을 읽되 생각하지 안 하는 것, 계산하지 안 하는 것이 이것이 참  이거 어리석어 죽는 일입니다. 성경 읽고 생각하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만 하면 이 사람에게는 그만 그 생겨 나오는 것은 다  영생이라. 회개도 영생이요, 옳은 소망도 영생이요, 행동도 다 영생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이 돌아가입시다.

 계산을 하면서 살자 또 오늘도 바쁜 날입니다. 오늘 다 왔다 갔다 모든 사람을  만내는데 이제 마음놓고 있다 보면 어느 구덩이에 빠져 죽었는지 모른다  그것이요. 살림살이도 말이요, 살림살이도 자기가 가계부를 해 가지고 계산을 딱  대 가지고 올해는 고 무슨 표준을 해 가지고 그것이 맞추어서 살려고 애를 쓰면  내나 그 달에도 밥 먹었고 그 달에도 못 입었고 살았는데, 살았는데 얼마동안  여유가 있어서 빚을 갚을 수가 있어 그래 보십시요. 빚을 갚을 수가 있소. 빚을  갚아주고 그만 이것 생각 안하고 뭐 내가 꼭 쓸 돈만 쓰지 안 쓸 돈은 안 쓰고  쓸 돈만 쓰지 이래 놨는데 쓸 돈만 쓰지 하는 그것이 틀렸다 이것이요. 쓸 돈을  자기 분수에 맞춰 써야지, 쓸 돈이라고 다 쓰는 것이 아니라 이는 그 생각 없이  내가 뭐 조절해서 쓸 돈은 쓰고 안 쓸 돈은 안 쓰면 되지 않는 가? 이래  살았는데 이래 가지고 계산 없이 두서없이 한달 두 달, 한두 달 살았으면 두 달  살면 그 벌써 자기의 총 생활비에서 한달 생활비에 두 달 살았으면 암만  정확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한달 생활비의 1/4, 1/5은 빚이 졌습니다. 두 달을  살았으면 벌써 갔다 가서 1/3이 빚이 졌습니다. 가속도로 내려가요. 이래 가지고  정신없이 그만 일년 살았으면 제가 벗어 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벌써  빚쟁이가 키위에 올라갔습니다. 내나 그 수입 그것인데 또 계산을 해 가지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살아도 그래도 그 뭐 밥 먹고 지내가는 지냈는데 계산해  살아보니까 나중에 일년 살면서 키위에 올라간 빚을 3년을 그래 살면은 그 빚을  갚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계산 없이 사는 인간은 성공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대접도 다  계산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이 만큼은 다 하고 있소. 말도 다 계산하요.

대접도 다 계산하요. 평소에 그 사람이 말한 것 그 잊지 않습니다. 자기가  계산에 필요한 말은 자기 계산에 필요 있는 말은 잊어버리지 안 해요. 이러기에  서로 대접하는 것도 말없는 가운데에 계산이 있어야 돼. 이 교역자들도 대접하는  대접을 도무지 계산을 모르고 주면 좋아하는 이런 사람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발람이 돼버리고 삯꾼이 돼버리고 몹쓸 사람이 된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좌우돼, 하나님에게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고 뇌물에  좌우되는 교역자가 되고 보니까 자꾸 이것은 교회는 망치지지 인본이 되어지니까  잘 믿는 사람하고는 적이 되지, 인본주의 그것들하고는 한 덩어리가 되어지지.

이러니까 교회가 성장이 안된다 이것이요. 어제 내가 말했더니만 어제 떡이 많이  들어왔어 들어왔는 데에게 들어온 떡 하나만 용납하고 나머지기는 다 물리쳐  보내 버렸어. 왜?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만하면 먹지 그 이상은 못 먹을  거기 때문에게 우리가 무엇이든지 이기 박한 것 같지만 그거 없으면 죽습니다.

이 나라에게 세상정치도 지금 그렇소. 그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이 되면은 여기도  한번 가고 저기도 한번 가고 하는 그것만 가지고 돌아 댕기면 안됩니다.

계산해야 돼.

그러면 국내 댕기는 그것도 계산을 하면 계산하면 그것이 환하게 다 드러나.

인물도 드러나고 다 드러나. 밑에 있는 자기의 쓰는 사람들도 다 드러나고  지방도 다 드러나고 업체도 다 드러나고 정확한 답안이 나와. 답안 그대로 자꾸  맞춰 나가면 된다 이것이요, 이런데 이것이 인간철학인데 이것이 인간과학인데  인간과학이 인간철학인데 이것이 인간과학 인데 인간과학이 인간철학인데 이것을  잘 몰라. 한국에는 경영학과가 있습니다. 경영학이라는 것이 들어온 지가 얼마  안됐어. 경영학이라는 것이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 데 한국에 있는 경영학이라는  것은 물질 경영학입니다. 물질에 대한 경영학이라.

그러면 물질 면에 사람 계산도 들었지요. 그러나, 이제 인간경영학이란  인간과학은 안들어 왔다, 이것은 성경이라.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탁월합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은 인간과학이라는 말 내가 여러 수십  년 전부터 자꾸 이래 말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이것이요 .

그러기에 우리가 이것이 뭐이냐 깨어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이 돌아가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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