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야 할 말씀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6일 토새

 

본문 : 계 3:7-13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이 교훈 중에 제일 중요한 교훈이  무엇이며 우리가 또, 주력하여야 할 주력이 어디 있는가? 곧 이제 봉독 한  1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하는 이 말씀을 지킨 데 대해서 우리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과거에 내가 지킨 그것을 지킨 것으로 계산을 하는 이런 유혹  받기 쉽습니다. 과거에 지켰다 할지라도 현재 안 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마귀의 유혹으로 내가 전 시간까지 말씀을 지키지 못 했다. 지키지 못한  것이 뭐 이 시간에 지킨다고 뭐 되겠느냐? 전 시간까지 지키지 못한 그것을 또,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도 다 마귀의 유혹입니다. 또, 미래에 대해서도  내가 앞으로는 어떻게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무슨 어려움을 당하고 내게 있는  어떤 것이 다 절단난다 할지라도 이제는 나는 말씀을 지키겠다 하는 그것도 다  헛된 생각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도 나는 말씀을 지키겠다 하는 그것도  헛된 생각입니다. 또, 앞으로 내게 닥친 이런 이런 큰 일이 닥쳐 올 터이니까  내가 그때야 어떻게 지키겠느냐 하는 앞으로 말씀을 지키지 못할 만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도 다 마귀의 유혹이요 헛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과거에 대한 것도 다 생각할 만한 그런 생각 하면  좋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를 그렇게 생각해서 과거 미래를  가지고 어떻게 할 만한 그렇게 할 자격 없습니다. 그저 만일 과거를 생각한다고  하면은 과거에 지키지 못한 그것도 과거에 이랬으니 내가 현재에, 과거에 이렇게  못 했으니 현재에. 앞으로 이렇게 해야 될 것이니 현재에, 앞으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니 현재에 그런 것을 다만 현재에 주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이  일을 돕는 일로는 가질 수 있지마는서도 이 일을 허는 일로는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현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이 일에 도움이 되는 이것은  가지나 가지는 그것은 뭐 이냐? 현재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노력이요 지키는  그 주력입니다. 그러나 그 현재에 하나님 말씀대로 지키는 그 일에 도움이 되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 생각은 다 마귀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연약한 것이  나 있는 힘을 전부 다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뭐 다음 시간이야 내가 어찌  되든지 그거 생각할 것 없고 그저 이 시간 내가 말씀대로 살겠다 하는 그게만  주력을 해 가지고 이 시간만 내가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서 이 시간만 말씀대로  살았으면 됐습니다. 그 외에 딴것은 우리가 할 힘도 없고 또, 할 필요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것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사는데는 거기에 어떤 어떤 것을 구비해 가지고 있어야  말씀대로 살지 구비해 있지 안하면 말씀대로 못 산다. 현재에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구비해야 갖추어야 할 그 조건들을 몇 가지 말씀해 놨습니다.

 그 첫째는 언제나 거룩, 진실을 가져야 된다. 거룩하지 않는다 말은 뭣 이든지  이 세상에는 옳고 그른 것이 뭐 천도 만도 넘습니다. 참 옳은 것은 하나 뿐이요  참 틀린 것도 하나뿐인데 옳지 안한 것이 옳은 것으로 가장 해 가지고 나타난  것들이 심히 많고 또, 틀린 것도 하나 뿐인데 그 틀린 것도 수많은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복잡한 미혹이 많은  사이비한 같은 것 같으나 아닌 사이비한 세상에 살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첫째로  구별하는 거 이거냐 저거냐 우리의 지능의 그 범위대로 따지는 거, 따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요 현재에 주의 말씀을 지킬 수 있지 따지는 거 없으면  지키지 못합니다. 따져 들어가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정도대로 요거다 하는 옳은  것을 알게 됩니다.

 옳은 것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 동등 실력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금을 찾았으나 이십 사 금을 찾았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십 팔 금을  찾았고 어떤 사람은 순금을 찾았고, 그러면 금이라도 그것이 잡것이 많이 섞인  것도 금뭉텅이는 금뭉텅이요 하나도 안 섞인 잡것이 안 섞인 것도 금뭉텅이는  금뭉텅이인데 그거와 마찬가지로 자기대로는 요게 옳다 마음의 양심으로나  자기의 지능을 다 가지고 생각할 때에 요게 옳다 하는 고런 것이 자기에게는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벌써 되라고 했기 때문에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니 자기가 구별만 하면 됩니다. 구별해서 거룩이라 말은 어느 것이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 하는 것을 구별해서 자기 정도대로의 아. 요거라 하는  고것을 명중되는데 까지 구별해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별하고 그러면 나중에 진실이 나온다. 참이 나온다. 참도 요거 꼭 같은 거  아닙니다. 이 사람의 참은 그 사람의 참은 참 뭐 참이라고 해도 그것이 흙덩이  같은 참도 있고 돌덩이 같은 참도 있고 쇠덩이 같은 참도 있고 은덩이 같은 참도  있고 금덩이 같은 참도 있고 그 참이라고 해도 그 사람 정도의 참이지 완전한  참이라고는 보지 못하지마는 그 사람의 정도로서는 그것이 바로 참을 찾았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별해 가지고 네 대로는 그 이상 찾을 수 없는 참을  찾는 이 일을 노력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하고 참된 이것을 가져야  되는 이것을 여게 구비시켜 놨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둘째로는 네가 무엇을 알고 있어야 되느냐? 갖추어야  되느냐? 둘째로 갖출 것은 주님이 우리의 신앙의 앞길을 형통하도록 해 주시면  아무도 방해 하지 못한다. 주님이 신앙 걸음을 형통하게 해 주시며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하는 요것을 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현재를 지킬 수 있지 그래  안 하면 지키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별별 형편 사정 처지가 있는데, 악령은 와 가지고 그저 꼬울 만한  꼬울 만한 꼬우면 넘어갈 만한 고런 중요하고 요긴한 조건들을 가져 와서 우리를  꼬우기 때문에 우리가 넘어집니다. 내가 이런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이렇게 저렇게 이런 어려움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태산같이 어려움들이  쌓여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뭐 하겠느냐? 아주 과거를 가지고서 내가 이러니까  형통할 수 없다. 또, 과거에 이런 좋은 조건들이 있으니까 나는 형통할 수 있다.

과거를 믿어서 형통하리라. 과거에 자기의 행위를 믿어서 형통하리라. 또,  과거에 자기 행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절대 형통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거 전부 다 자기 주관이요 다 악령의 유혹인 것입니다.

 어쨌건 주님이 내 앞길을 형통케 하시면 형통할 수 있다. 뭐 과거가 어떤  억만의 대적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형통케 하시면 형통할 수 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성자와 성녀의 그런 공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거 소용없다. 그저  주님이 날 형통케 하시면 형통할 수 있다. 주님이 자기를 형통케 하시면 형통할  수 있다는 요것을 믿는 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요 열린 문을 두노니,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닫을  사람 없다. 아무도 방해할 사람 없다. 이 주님이 내 앞에 열린 문 형통을 주시면  형통이지 그 뭐 과거에 내 어떤 잘못이 들어서 형통을 방해 할 자 없고 또,  주님이 주시면 형통하지 내가 과거에 어떤 그 성자 성녀의 그런 아름다운 공적이  있다고 해 가지고서 그거 가지고서 내가 형통하리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잘한 것, 잘못한 것 그런 것 가지고서 현재에 형통할 것의 근거를 삼아서 그게  있으니까 형통하리라 그 근거를 삼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그런 거 다 버리고, 그저 주님이 여기 현제도 내가  과거에 억만을 가지고 엉망진창 같은 과거를 가졌다 할지라도 주님이 이 시간  나를 형통케 하시면 형통할 수 있다. 과거에 내가 어떤 그 성자 성녀의 걸음을  걸어왔다 할 지라도 이 시간 주님이 나를 형통케 안 하시면 안 된다 요렇게 믿는  요것이 있어야 현재를 지키지 그리 안하면 현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또, 그대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과거가 좋은 사람은 과거의 자기를 믿음으로.

자기의 과거를 믿음으로 망하게 만들고, 또, 마귀는 과거가 허무한 사람은  과거의 허무를 가지고서 허무를 자기가 인정함으로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떤 좋은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현재 형통 하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 가지고 형통하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어떻게 나쁜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현재가 불통 하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저  과거에 그런 좋은 것이 있으니 주님이 나에게 형통을 주시리라 그렇게 믿는 것도  헛일이오. 또, 과거에 나쁜 것이니 형통을 주지 아니하시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도 다 마귀의 유혹입니다. 과거에 어찌 됐든지 이 시간 주님이 나에게 헝통  주시면 형통할 수 있고 이 시간 형통 안 주시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난지  이후로 계속 형통을 주다 할지라도 이 시간 형통을 안 주실는지 모른다. 내가  이제까지 출생 한 이후로 전 시간까지 형통을 나에게는 주셨다. 그러니까 나에게  현재에 형통을 주시리라. 모릅니다. 현재의 형통을 주실는지 안 주실는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전부 내게 대해서는 다 불통만 계속됐는데 현재도 불통일  것이다. 그것도 마귀의 유혹입니다. 과거에 불통했지마는서도 현재에는 형통을  주실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통을 주고 안 주는 것은 주님에게  달렸고 현재에 형통을 받고 안 받는 거기에서 내 일은 형통하고 불통한 것이지  아무것도 그게 근거될 것은 없다' 하는 요것을 단단히 가져야 되는 것을 여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 형통을 주님이 주시는데에는 어떻게 주시나? 주시는 것은 조건이  있어야 주십니다. 조건은 무슨 조건이냐? 조건은 연약한 적은 능력을 가지고  아주 연약한 힘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과 말씀을 지키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 지킨다는 요것도 과거에 내가 지켰으니, 여기 능력으로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면 지키며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요것을 아니하였도다 요 말이 있으니까 요거 과거사로 떼 붙이면 실패합니다.

지키며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아니하였도다. 아니하도다 했으면 좋습니다.

아니하도다 해야 요 참말로 속의 뜻이 맞을 것인데. 요 번역에는 분명히 '내  말을 지키며' 지키며 요거는 현재사입니다. '내 말을 지키며' 현재 지키고 있다  말이오.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 배반치 아니하도다 요렇게  했으면 요 번역이 됐으면 요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요 자꾸 번역하는 사람이  요렇게 저렇게 말하는데 어쨌든지 말씀을 지키는 거 주님의 이름을 내가 배반치  안하고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고 있는 거 이것은 요 현재사로  해야 될 터인데 요런 그 번역문에서 사람들이 유혹을 받게 됩니다. 요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런 과거에 배반치 아니한 그것이 현재에 효력이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현재에 내가 입고 있어야 되지 과거에  계속해서 어떻게 입었다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과거에 입은 게 소용없고  현재에 입고 있어야 됩니다. 현재에 입고 있어야 되고 현재에 말씀을 지키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요것도 내가 현재에 말씀을 요 현재사로 말씀을 지키고 이름을  배반치 안하고 이름을 영접하고 있는 요것을 다 현재사로 삼아야 됩니다.

현재사로 삼으면 열린 문도 현재사가 됩니다. 열린문을 주는 것도 현재사가  됩니다. 그러면, 거룩과 진실도 현재사가 됩니다. 거룩은 과거에 내가 거룩을  가졌다, 진실을 가졌다 과거에는 내가 세밀히 구별했었다. 과거에 구별한 게  필요 없다. 이 시간 구별해야 된다. 이 시간 구별해야 되고 이 시간 네가 참을  찾아야 된다. 이 시간 주님이 너에게 열린문을 주심을 열린 문 주심을 이 시간  지금 받아야 합니다. 받아야 하는데 이 시간 네가 말씀 지켜야 되고 이 시간  주님의 공로를 입고 있어야 한다. 요거 다 현재사라야 되지 과거사로 두는 것은  이것은 과거는 어쨌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 현재가 요것이 중요하지  과거 그것은 과거에 무슨 성자 노릇 했다 고 해 가지고서 현재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고 과거에 어떻게 승리했다고 해 가지고서 현재 승리하는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과거는 내버려두고 전부 현재사로만 가져야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하는 요것도 요 과거사가 돼 가지고 있는데 요  과거사가 과거사가 요 실상은 아닙니다. 과거사로 보이기 때문에 요거는  사람들이 고거는 깊은 뜻을 모르기 때문에 과거사로 번역은 됐습니다. 요거는  조건부가 이 말입니다. 네가 지켰으니 과거에 지켰으니 내가 현재 내 주겠다. 그  말 아니오, 네 가 현재에 이 말씀을 지켰으니 내가 너에게 지금 너를 지킨다.

그러면 지킨다는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는 것이나 내가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나  요것이 전부 현재입니다. 내가 지키면 하나님의 지켜 주심을 받습니다. 지키는  고게에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과거에 지켰고 주님은  현재에 나를 지켜 준다는 고게 아니고 지키는 거기에 당신이 나를 지켜  주십니다. 지키는 거기에. 요것도 현재사라만 되는 것입니다.

 그라면서 네가 요것을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면류관을 뺏기지 말고 굳게  잡아라 잡고 있으라 하는 요것도 그러면 요 현재사입니다. 요 말씀을 요거 하나  통해서 보면은 과거에 지켰든지 무슨 필요 있느냐? 현재에 굳게 잡고 있으라  말은 현재에 지키고 있으라 그 말입니다. 현재에 지키고 있으라. 현재에  구별하고 있으라. 현재에 참을 찾고 있으라. 참을 가지고 있으라. 현재 네가  열린 문을 받고 있으라. 굳게 잡아라 말은 요 현실을 놓지 말고 있으라 그  말이지 과거를 잡고 있으라 말이 아니고. 굳게 잡으 라는 것은 현재에 잡으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 전부는 다 똑똑히 알고 보면은 전부 현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짜든지 여게는 현실을 말씀하신 것인데 현실을 빼앗기면 다  실패입니다. 현실에다가 우리는 현실에 하나님 말씀 지키는 요 게다가 자기의  힘이 많든지 적든지 자기의 그 실력이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이 주신 분량이  많든지 적든지 그거는 원망하지 말고, 적으면 하나님께서 적은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을 주시고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은 힘을 가지고라야 감당할 수 있도록  주시는 것이니까 그 주신 바의 은혜가 네가 가진 은혜가 많다 적다 거게  대해서는 아무런 구애 받을 것이 없다. 많이 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이  받으신다. 많이 거두신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받는다.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받는다. 두 냥중 준 자에게는 두 냥중 가지고 넉 냥중만 가져와 넉 냥중만  되면 합격이다. 닷냥중 준 자에게 열 냥중을 가져 와야 된다. 이렇게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받는다 하는 말씀을 성경 말씀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자기의 현재에 어떤 그 은혜의 실력이든지 많고 적은 것은 상관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늘 말하는 것이 자기의 실력은 많으나 적으나 상관없고  자기 현실은 나쁘나 좋으나 한가지다. 이용 가치는 꼭 같다 하는 그 말이 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게다가 전 힘을 다 기울이라.

 그러면 그 자기 현실만을 고만 그러기 때문에 여게 말씀에는 네 전부를 현실에  기울이라. 다른 데다 나누지 말고 나누지 말고 네 전심전력 네게 가지고 있는  실력은 현실에다 다 기울이라. 요 시간 다 기울여 요 시간에 다 기울여라.

마귀란 놈은 이 시간에 다 기울이면 다음 시간에 네가 어떻게 할 것이냐? 또,  네가 뭐 과거에 이랬는데 뭐뭐 현재에 뭐 그런 소리를 가지고 있느냐? 네가  과거는 네 과거 아니가? 또, 그런 미래 할 것도 좀 생각해야지 미래에다가  나누고 과거에다가 나누고 이래 가지고서 분산시키려는 것이 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언제든지 요걸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집합시킬라고 모든 것을  집합시킬라고 할 때는 자꾸 나누는 역사를 합니다. 나누는 역사 자꾸 이래  분산시키는, 우리가 집합할 라 할 때는 마귀는 분산시키는 일을 애를 쓰고,  우리가 하나에다가 집중 할라 할 때에는 둘이나 서이나 생각하게 할라 합니다.

우리는 하나만 생각하고 하나에 기울여야 됩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넓게 넓게  모든 면을 생각해서 넓게 봐야 될 때는 마귀란 놈은 자꾸 조불트립니다.

조불트려 자꾸 좁히고 좁히고 좁혀서 아주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 괴상스러운  것 고 게다가 딱 좁혀서 붙여 버립니다. 에덴동산에 수많은 과실이 있는데 뭣  때문에 하필 먹지 말라는 선악과 한 개다가 집중할 필요가 뭐 있오? 그 해와가  선악과만 보지 딴거는 하나도 보이지 안 했습니다. 이 선악과 옆에 좋은 과실도  많이 있는데 그거나 그거나 워 그거나 그거나 꼭 같은데 뭣 때문에 고게 참  먹음직도 하고 자꾸 보니까 그거 미혹에서 자기 속에 주관의 미혹에서 자꾸  생겨졌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마귀는 이렇게 우리를 유혹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다가 전부를 다 기울여서 주력해라. 현실 외에는  네 시간은 없는 줄 알아라. 과거에 어쨌든가 과거에 어깼든가 네가 그 가롯  유다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뭣 이 잘못됐으니까 이 일을 인해서 네 가 가슴을  치면서 원통히 여겨서 그 뭐 창자가 나와도 소용없고, 얼마나 과거가  원통스러워서 마음에 후회를 해서 창자가 나을 만치 자살할 만치 후회해 봐도  소용없다. 자살할 만치 후회해 봐도 소용없다 미래에 대해서 네 생명을 다 바칠  어떤 각오해도 아무 소용없다. 각오도 소용없고 뭐 각오도 소용없고 과거에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무 소용없다. 후회도 집어 치워 버리고 미래도 과거도 치워  버리고 이 시간 나는 이 시간 말씀대로 살겠다. 요게만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주력해라 요것을 요게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여게 요 번역이 과거 말같이 자꾸 된 것은 이것은 어학을 많이 한  사람들이 믿음이 모지란다 그 말이오. 어학 많이 한 사람들이 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많은 것을 번역할라 하니까 그렇게 충분히 생각지를  못하게 되니 번역된 것이 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 많이 있어. 또, 원어는  요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그 범위가 넓어서 그 원어 하지마는 원어는 그것은  참 둔한 말입니다. 미개한 말이오. 새들은 새는 뭐 말하는 거 보면은 짹 하는  그거 하나 뿐이라. 뭐 짹짹짹짹, 아래도 짹짹짹짹 저래도 짹짹짹. 좋아도  짹짹짹, 나빠도 짹짹짹, 먹는 것도 짹짹짹, 아, 위험하다 하는 것도 짹짹짹,  주의하라 하는 것도 짹짹짹, 모이라 하는 것도 짹짹짹 짹짹 하나 가지고도 그래.

이거 마찬 가지고 고전어라 하는 것은 고 한 마 디 고 한 마디속에는 수많은  범위가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전어를 가지고서 뭐 이렇게 진리를 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고전어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거게는 이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쪽 구석으로도 번역할 수도 있고 이쪽 구석으로도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번역들이 다 정반대 번역들이 돼 가지고 있는 일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많이 읽고 실행하고, 읽는 것은 읽는 것은 논리 연구요  논리 연구요, 실행하는 것은 실험 연구기 때문에 논리 연구에다가 실험, 자꾸  실행하는 연구를 가해 버리면 거게 대해서 구비한 것이 다 나옵니다. 왜? 실행은  그 실제에 구비치 안하면 헛일이기 때문에 할라 하면 구비가 나온다 그거요.

 그런데, 현실에다가 우리의 전심전력을 기울이는데 뭐 할 것 뭐 어디다가  기울이겠느냐? 현실에 주의 말씀 지키는 요게 그만 전심전력 기울이면 됩니다.

기울이면 밥 먹는 거는 어짜고 가정은 어짜고. 사건은 어짜고?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고 요 현재에 주님의 말씀만 지키는 요게만 전력을 기울이면  됩니다. 전력 기울이면 고 현재에 당신이 성경 말씀을 가리켜 주시는데 고 성경  말씀을 가리켜 주는 고 성경 말씀에는 밥먹는 것도 들어 있고 일하는 것도 들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지키는 것도 들어 있고 다 들어 있습니다. 고보다도  더 세밀한 것은 고 말씀을 지키면 성신의 감화를 따라서 성신 감화에 순종하는  일이 고 속에 들어 있기에 성신 감화에 순종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도하시는 그 인도인데, 인도는 전지자의 인도기 때문에 내가 전지자같이 내게  대한 일을 전지자의 지혜를 가지고서 내 일을 감당하는데 내 일에 대해서 흠이나  점이나 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은 네가 자꾸 말씀만 지킨다고 이렇게 말하는데 먹을 거는  어짜고. 회사 직분은 어짜고? 뭐 어짜고? 그런 거 다 치우고 다 치우고 나는 요  시간 그저 주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신 요 성경 말씀대로만 행하겠습니다. 요  시간에 해당된 말씀만 행하겠습니다. 요 시간에 해당된 말씀만 행하는데 전력  기울입니다. 그러면 요 시간에 해당된 말씀을 지키는데에 전력 기울이는 고 전력  기울이는 고 행동 속에 성신의 감화가 비추어 가지고서 이제 성신의 감화가 더  지킬 것을 더 세밀히 지킬 것을 말해 주고 더 정확히 지킬 것을 말씀해 주기  때문에 결국은 나중에 뭐이 되느냐? 나에게 말씀해 주신 이 문서 계시의 말씀을  현실에서 지키는 것과 현실에서 지키는 가운데서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나에게 지킬 것을 말 해주는 요것과, 그러면 진리와 영감을 현실에서 지키는 거  그거 외에는 딴거 할 거 없습니다. 그것만 지키면 다 됐습니다. 그것만 지키면,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그것만 지키면 내가 생각할 것도 다 빠짐없이 생각하게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말할 것도 빠짐없이 말할 것은 가르쳐 주시고 내가 움직일 것도 빠짐없이 움직일  것을 다 가르치고 내가 해서는 안 될 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르치고 다  가르치기 때문에 고대로만 하면 됩니다. 고대로만 하면 고것이 우리의 완성이요  고대로 만 하면 어찌 되느냐? 그러면 하나님에게 순전히 피동으로만 하게 된다.

피동으로 하게 되면 어찌 되나? 피동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다.

믿음으로 하지 안한 것은 다 죄다. 이 말은 믿음으로. 한 것은 다 의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진리와 영감이 나에게 시키시는 대로 고대로 하지 안한 것은  삐뚤어진 것이요 고대로 한 것은 다 옳고 발라서 흠이 없는 완전한 것이다.

이러니까 자기의 생각이 완전하고 말이 완전하고 행동이 완전하고 다 완전히  했으면 그뭐 실패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게다가 전주력을 해야 되는데 그러면 현재에 말씀을  지키는데에 주력을 해야 되는데에 말씀 가운데는 계시 말씀 가운데는 고 어느  시간이든지 계속할 거 있습니다. 항상 그 믿음에 굳게 서라. 그러면 언제든지  믿으라 하는 것도 믿으라는 것도 요것도 계속입니다. 그 뭐 요런 형편에서 믿고  조런 형편에서는 안 믿고 그런 거 아니라 요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데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해 주시는 분이시요 어떻게 약속한 분이시라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은 나의 구주신 것과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신 것을 믿는 요 믿음은 언제나 믿어야 됩니다. 요거는 요거는 뭐 변동치  않는 믿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요 언제든지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언제든지 계속해야 되고 하나님을 또, 바라보는 것도 또, 언제든지  계속해야 됩니다. 언제든지 이 시간도 바라봐야 됩니다. 또,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도 계속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계속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라면서 하나님에게 순종할라고 하는 것도 계속해야 됩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 하는 요것도 내가 계속돼야 됩니다.

 계속돼야 되는데. 자기에게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을 때는 벌써 뭐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 났으면 고장 난 그것을 자기가 찾으려고 하는데 찾으려고 하는데  그 찾으려고 하다 보면은 실수하기 쉽습니다. 기뻐하라 그 기쁨이 없으면 와  기쁨이 없느냐? 자꾸 기뻐하려고, 이 시간 내가 기뻐하려고 하면 그만 기뻐하면  됩니다. 뭣 때문에 기뻐하지 못하는 것, 뭐 그거 찾아서 이놈 때문에 기뻐하지,  그 찾을 필요가 없어. 고만 기뻐하면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했으니 내가  기뻐해야 되겠다. 또, 강하게 담대하라 했으니 이 시간 내가 뭐 두려워 떨지  못하면 그거 다 냅두고 그만 담대하면 됩니다. 담대하면 됩니다. 담대하면 되고,  또, 언제든지 믿으며 바라보며 맡기며 의지하며 또, 순종하고 담대하고 항상  평안을 가지라. 또, 사랑 요것도 오늘 요 시간에는 사랑 가져야 되고 요 시간은  사랑 안 가지고 그 사랑도 항상 계속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재 요 현실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영감을  지킨다는 것이 요것이 현재에 지킬 말씀도 있고 현재에 지키지 안할 말씀도  있습니다. 고런 거는 몇 가지 안 됩니다. 고런 거는 몇 가지 안 되고 그저  현재에 계속 지켜야 할 고것이 많고, 고 현재에 지킬 것도 있고 안 지킬 것도  있는 그런 것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것이 한테, 가 가지고서 네가. 지금  지금 네가 아무것이 한테 가서 이 말을 해라. 또, 아무것 이에게 가 가지고서  이것을 지도를 해라. 아무 것이 한테 가서 사과를 해라. 이것을 네가 갖다 줘라  주지 말라. 그런 것은 항상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현실마다 계속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있는 현실도 있고 없는 그 현실도 있습니까? 어찌 됩니까? 예? 저 O  조사님, 있는 현실도 있고 없는 현실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성경 말씀  가운데에는 내가 이 현실마다 계속 해서 쭉 어떤 현실이든지 요거는 변동 없이  현실마다 계속할 요 말씀도 있고 또, 그 현실에는 그것은 지킬 필요가 없이 그  현실에는 지킬 필요가 없는 말씀도 있고 이러니까 계속 지킬 말씀도 있고 또,  며칠 만에 한 번 지 킬 말씀도 있고 또, 어떨 때는 한 두 번 지킬 말씀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지킬 말씀도 있고, 이렇게 그 지킬 것이 계속 지킬 말씀도 있고  그저 가끔 가다가 지킬 말씀도 있고 뜻밖에 지킬 말씀도 있고 일 년 내내 가도  한 번도 지킬 일이 없을 때도 있고 뭐 십 년 가도 지키지 안할 말씀도 있고 십  년 만에 한 번 지켜야 될 고 말씀도 있고 계속 지킬 말씀도 있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구별해서 그저 이거는 계속 지킬 말씀, 계속 지킬 말씀 그  말씀을 지키면 계속 지킬 말씀을 지킬 때에 자기에게 가끔 가다가 요긴하게 와서  지켜야 될 고 말씀이 올 때에는 고것은 틀림없이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재에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되는데, 현재에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되는 요것을 계속 지키는 거. 계속 지켜야 되는 요것을 간추려 가지고서 계속  지켜야 되는 요 말씀을 지켜야 되겠다.

 그러면 물어 봅시다. 그 진실하라. 진실하라, 진실하라는 고 진실은 며칠 만에  한 번씩 지키면 됩니까?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며칠만에? 큰 소리 해 봐.

매일? 진실을 매일 매일 지켜야 돼? 매일 매일 지켜야 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지켜야 돼. 또, 요게는? 매일 매일 지켜야 돼? 여기 와도 말을 못 하는  벙어리들이구만. 또, 매일 매일 지켜야 돼? 달마다 지키지. 달마다만 지킬 거  아니라? 매일 매일이 틀렸어. 계속 지켜야 돼 계속. 요거 알아야 돼. 계속.

진실은 계속 지켜야 돼. 언제든지, 그러면 그 진실을 계속 진실할라고 이라니까  이러다 보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안 되면 안 돼. 진실 안 돼져.

 그러면. 고 사람이 거짓말 하지 말아라 하는 네가 거짓 증거하지 말아라 하는  요 말씀은 어떻게 지켜야 됩니까? 계속 지켜야 됩니까, 요것은 지킬 때가  있습니까? 예? 어때요? 계속 지켜야 돼요 지킬 때가 따로 있어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 거짓말 하지 말라는 거. 계속 지켜야 돼 요? 이거 그만 현실이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에 이 범벅 타령이 되고 만다 말이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뭐 현실 이 시간에 백지 거짓말 할 것도 없는데 뭐 거짓말 자꾸 혼자 거짓말  하고 있어?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씀은 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고 말씀을 지켜야  할 때가 하루 종일 와도 하루 종일 하루 종일 한 번도 안 올 때 있습니다. 또,  올 때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와야 거짓말 그때 안 할 수가 있고  하는 것이지 뭐 자기 혼자 있는데 무슨 거짓말 하겠소? 자기 혼자. 자기 혼자  지금 하루 종일 사무 보고 앉았습니다. 사무 보고 앉아 자기 혼자 무슨 성경  보고 앉았어. 그러면 거기서 무슨 거짓말을 하겠어?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무슨 거짓말 하겠소? 거짓말 하는 것은 남하고 둘이 상대하는 그 인인  관계를 가지는 이 사회성에 속했기 때문에 인인 관계를 가진 거기에서 지금  거짓말 하는 것이지 저 혼자 무슨 거짓말 하겠소? 이것은 항상 지킬 말이 아니라  그 말이오.

 또, 담대하라는 이 말씀은 항상 지킬 말씀이요, 이 말씀은 가끔 지켜야 할 때  지켜야 할 말씀이요? 어때? 어떻게 해요? 계속 지켜야 돼? 담대 하는 것은  담대하는 것은 계속 지킬 필요가 없어. 어데 다 담대해? 백지 혼자 있으며 음.

내가 남자다, 음, 이래야 될 거야. 미친 사람이야 그 사람. 꼭 두려워 떨어야 될  고 자리에서 담대해야 된다 그 말이오. 그렇지 안 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성경 가운데에 계속 지킬 말씀이 있고, 요 현실을 줄 때에 지킬  말씀이 있고 조 현실 줄 때에 지킬 말씀이 있고, 요 현실에 공연히 어떤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 사람에게 그 참 아주 불쌍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때는 우리가 뭣을 가져야 돼요? 불쌍한 사람 만났을 때에 어떻게  뭘 가져야 돼요? 그때 기쁨 가져야, 기쁨도 가져야 되고 기쁨도 가져야 되고  하나님 은혜를 믿는 것도 소망하는 것도 가져야 되지요. 그러나 그때 불쌍했으면  자기가 긍휼히 여기는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나도 이 형제를 위해서  내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은 그 마음을 가져야 되지요. 그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때 담대한 마음이  필요 있어요 없어요? 불쌍한 사람을 내가 지금 현재에 만났는데 거게 담대한 그  마음이 필요 있어요 없어요? 필요 없어. 그때 뭐 간을 부풀어서 크게 담대할  필요가 없어. 두려워 공포와 비겁을 가질 공포와 비겁의 현실이 와서 그때에  이때가 내가 담대함을 가질 때다. 그때에 담대함을 가져야 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실 때에 현실마다 계속될 말씀과  영감이 있고 또, 현실에 따라서 지킬 필요가 없는 말씀도 지키지 안 해야 될  말씀도 있고, 또, 지켜야 될 말씀도 있고 이러니까 현실마다 변하는 그 명령도  있고 변하는 영감도 있고 바꾸어 갈아서 이렇게 우리에게 닥쳐지는 말씀도 있고  이는 뭐 어떤 현실이든지 계속 하는 거, 계속하는 거.

 그러면 불쌍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때에 우리의 기쁨은 계속해야 돼요 아 해야  돼요? 기쁨은 계속해야 돼요. 그 사람 만날 때 주님 나는 이런데 나에게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있는데 나에게 대속의 은혜를 주었다.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에게 대한 그  은혜는 하나님의 불변자의 은혜기 때문에 그 은혜는 항상 기뻐하면서 주님의  구속을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그 사람에게 그 기쁨도 넘겨주고 또, 자비도 하고  긍휼도 가져야 되지 그거 버려 버리면 안 돼요.

 요거 여러분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마다 계속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죽음 죽는 날까지 계속해야 될 말씀이 있다. 또, 계속되는 영감이 있다.

계속 되지 않고 현실 현실마다 그때 그때에 바꾸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명령이  있다. 그러면 바꾸어지는 말씀도 있고 계속되는 말씀도 있다. 바꾸어지는 영감도  있고 계속되는 영감도 있다 요것을 구별하며 계속되는 숫자가 많고 바꾸어지는  숫자는 별로이 많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계속되는 것만 계속하면 바꾸어지는  것은 그것은 저절로 지키게 돼져 버려요 이런데 잘못하면 우리가 현실마다  바꾸어지니 현실이 바꾸어지니까 고만 바꾸어 질 때에 고것만 지킬라고만  생각하다 보면은 계속된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뿌리가 부러져 버렸어. 뿌리가  끊겼으니까 그만 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해야만 할 말씀과 계속되는 영감과 또, 그때 그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말씀과 영감이 있으니까 요 둘을 계속할 거, 그때 그때에  우리에게 명령하는 말씀 요 두 가지로 구별을 하면은 우리의 그 신앙 걸음이  평안하게 수월하게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속할 것을 계속하지 못했으면 그  시간에 분명히 요 말씀대로 해야 된다 하는 고 시간에 특별히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고 명령을 절대 지키지 못합니다. 요 계속하는 것을 지키는 가운데서  그때 그때에 변동되는 말씀도 지킬 수가 있다. 그 계속하는 말씀을 먼저  지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 변동되는 말씀을 지키면 된다 하는  요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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