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안에 거하는 결과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8일 월새

 

본문 : 시편 23장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우리를 양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를 양으로 표현하고  주님은 목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여기에 초장을 말합니다. 초장은 풀밭을  말하는데,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좋은 풀밭에 실컷 먹고 거기에 쉬기도 하고  또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양으로 비하기 때문에 이랍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여기에 영혼이라고 말한 것은 몸은 들지 안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되 중생된 영에게 연결되어 있는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그렇게  말 합니다. 영혼, 영은 아닙니다. 영혼은 영은 아니고, 또 혼이되 영에게 연결이  바로 되어 있어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가 이 말씀에서 좀 깨닫고 갈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 말하기를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켜야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켜야 된다.'  이것은 껍데기로. 겉에서 볼 때에는 대를 위하여 소가 희생 되는 것이 그것이  수지 계산에서 맞는 게 아니라 그게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이래서, 소가 대를  위하여 희생하는 그것이 소가 사는 것입니다. 왜? 소는 대로. 큰 것으로 인하여  살기 때문에 작은 것이 큰 것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면 큰 것의 모든 것이 저희  작은 것 저희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것이 작은 것대로 독립성을  가지고 개성을. 개별성을 가지고 고 개체로 움직이면 그는 개체로 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예를 들면 그 가정도 다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는 것인데, 그  가정에 말단의 작은 것은 그 가정에 제일 큰 것을 위해서 그를 위해서 있을 때에  그 큰 것은 작은 것을 위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되어집니다. 그러나 작은 것이 큰  것을 배반하고 제 단독이 하면 큰 것으로 인해서 멸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관련되어 있는  첫째는 하나님이 크시고, 그 다음에는 진리가 크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영이  크고, 또 그 다음에는 마음이 , 그 다음에는 몸이 크고. 그 다음에는 우리밖에  있는 모든 사건들이 그 다음에는 물질이 크고 이렇게 큼의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밑에서 위의 것을 위하는 것이 밑의 것의 생의  원칙이요 이것이 본칙입니다. 밑의 것이 위의 것을 위하는 것이 그것이 밑의  것의 자의 생의 원칙이요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밑의 것이 위의 것을 위하면  위하는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밑의 것이 위의 것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위의 것에게 밑의 것이 위함을 받는 길입니다.

 이래서, 모든 물질은 인간이 활동하는 그 모든 움직이는 일을 위해서 희생돼야  되고. 일은, 움직이는 그 움직임은 몸을 위해서 희생이 돼야 되고 또 몸은  마음을 위하여 희생이 돼야 되고, 마음은 영을 위해서 희생이 돼야 되고. 영운  진리를 위하여 희생이 돼야 되고, 진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 되어지는 요것이  영생 법입니다. 그것이 외부에서 보면 밑의 것이 위의 것을 위하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게 실상은 위의 것에게 그 위함을 받는 유일한 방편인 것입니다.

요것을 이해를 못 하면 안 됩니다.

 악령들은 이렇게 사들을 가르치지 안하고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저희의  본분이기 때문에 꺼꾸로 가르칩니다. 꺼꾸로 가르치는 그것을 성경은 바로  가르치고 악령은 꺼꾸로 가르치니까 그 정반대이니 근시자로,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자는, 또 넓게 광대하게 보지 못하는 그 시야가 좁은 자 좁은 자는 이는  마귀의 말이 맞고, 조금만 깊이 넓게 길게 각하면 마귀의 한 말 세상 인간의  지식은 다 그것이 자멸하는 지식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혹 내가 방송에 들으면 철학가들이 그 철학을 가지고 서로 이래 잠깐  대화하면서 강론하는 것을 종종 들어봤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가 뭐인지를  모릅니다. 인생이 뭐인지를 모르고 창조로 말미암아 된 피조자를 모르기 때문에  말하자면 모든 지식에는 대가리를 끊어버렸습니다. 모가지를 끊겨 머리가 없는  지식이요. 머리가 없는 지식이기 때문에 횡설수설 암만 해도 그것을 종합해서  마지막에 결론으로 말하면 그는 자멸, 자살하는 그 사상이요 지식이요 철학이라.

그래 철학은 자멸하는 철학이요, 자살하는 철학이요, 모든 인간 지식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존재의 머리는, 존재의 머리는 창조자가 존재의 창조가 존재의  머리요 창조를 모르면 존재에 대해서, 제가 모든 존재에 대해서 각각의 모든  박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저는 대가리 끊긴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이 지식은  저도 죽고 남도 죽이고 아무리 해 봤자 그거는 결말이 안 나는 것입니다. 끝에서  끝을 물고 그거는 인간이 논리하는 것은 얼마든지 거짓부리로 논리 할 수가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옳은 논리는 하나뿐 이지 둘은 없습니다. 삐뚤어진  논리는 억억억억만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불쌍하고  가련하고, 그 모든 세상 지식들이 불쌍하고, 조금만 따져서, 옆에 앉았으면 '너  이 면을 좀 생각해 봐라.' 하면 그들은 부인하겠지요. 부인하지만, 그 하나님의  지식에서 그것을 정죄하는 것을 저희들은 성경을 부인하니까.

 그러기에, 모든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반대하나 그 인간 지식의 지식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그거는 시간적으로는 그 앞에 있는 한 찰나도 모릅니다.

시간적으로는 자기가 현재라는 그 시간만 알지고 앞에 있는 몇 시간 후 몇 분 후  몇 십 분 후 그것도 저는 모릅니다. 절대 모릅니다. 모른 다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이 "봐라" 하고 모른다는 것을 다 인식시키게 하려면 인생을 다 죽여야  되니까, 인생을 다 죽여야 될 터이니까 죽이면 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억만에 하나씩을 보여서 인식을 시키면 그 하나로써 모든 것을 미루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시간적으로 보는 것이 바로 고 시간 그것밖에는 모르지, 고 미래라는  것은 전연히 모르지. 또 공간적으로도 저 있는 고 면적만 알지 고 밖에는 모른다  그말이오. 저희들이 알기야 주장을 하지만 그대로 안 된다 이거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것은 바로 아는 게 아니라. 요리되면 다, 그들이 추측하고 추론할 수  있지만 그 추측 추론이 사실에 있어 서 맞느냐 하면 안 맞는다 말이오. 안 맞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줍니다. 또 그들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성경을 보면  정확합니다. 또 종류적으로도 그래요. 종류적으로도 제가 관련하기를 '아, 이런  종류 저런 종류가 있으니까 이것을 다 종합해 가지고 계산을 내서 모두 다  계획을 세워야 되겠다.' 하지만 그 종류가,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그 뜻밖에  어떤 종류가 나타날런지 모른다 말이오. 어떤 종류가 나타날런지 모르지 또 어떤  종류가 없어질런지도 오릅니다. 종류에 대해서도 전혀 무식합니다.

 이러니까, 그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  지식에 반대되어 있기 때문에 밑에 작은, 하나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가 돈을 가지고 양을 사서 양을 잡아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니까, 오늘은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으니까. 하나님을 대접했으니 마음이  평안하다. 하나님이 오늘은 대접을 받으셨다 이랬으나 실은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독생자를,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 주셔야 된다는 이것을 저들은 지금  모르고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인 줄 알지만 하나님께 받는 것이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모든 우리가 연보하는 것이나 몸을 바치는 것이나 바치는 그것이 내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바칩니다. 그분을 위해서 그분에게 바쳐서 나는 희생되고  그분은 부요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바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하나님에게  영원한 것을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드려서 받는 것 없고  모두가 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고 방편을 씀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저희 것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이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일은 우리의 이 물질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활동을 희생시키지를 안하고, 또 자기의 활동을 위하여 몸을 희생시키지를  안하고. 몸을 위하여 마음을 희생시키지 안하고, 또 마음을 위하여 영을  희생시키지 안하고, 또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희생시키지 않고 전부 위를  위하도록 그래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소(小) 가 대(大)에게 소속하여 대가  저희 것이 되고. 소가 대에게 소속하는 것이요 소속 하면 소가 대가 되고 소가  대가 되니까 대의 혜택을 입고 그것이 커지는 것이요 그것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에 양은 푸른  초장에 가면 얼마든지 배부르게 먹고 마음대로 뛰놀고 좋을 수 있지 많습니까?  이런데, 좋을 수 있는 이것이 고깃덩어리 표준으로 하지 아하고, 우리의  어리석은 움직임의 표준으로 하지 안하고, 그보다도 더 어리석은 우리의 물질  표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질 표준으로 하는 자에게는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거 저주 주시고 못할 일을 하게 하신다.' 또 자기의 활동  표준으로 하지 안하시니까 그 표준으로 계산을 대는 사람은 '이거 하나님이 내게  해를 끼치고 저주를 준다.' 이럴 것이오. 그러나 여기서 말하기를 영혼을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보자. 이라면 내 사건은, 내 사욕대로 내 주관대로의 이  사건은 이것이 막혀진다.' 막혀 져서 담으로 막고 가시로 막기까지 하신다  말이오. '막혀진다. 또 내가 물질 표준으로 해도 안 맞는다. 내 육체의 표준으로  해도 안 맞는다.' 자기가 그 마음 표준으로만 하면. 마음 표준으로 하면 '아,  마음에는 유익이 있다. 이럼으로써 마음은 살찌고 마음은 깨달아지고 마음은  밝아지고 마음은 겸손해지고 마음은 곧고 옳고 바르게 된다.'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영혼이기 때문에, 혼은 우리 마음을 말하고 영은 영을 말하는 건데 영에게  속한 마음, 영에게 속한 마을. '아. 이라면 내 마음이 마음이 영에게는 단단히  속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 현실을 부딪히게 해 준 이 현실이 내 마음이  어떻게 하면 영에게 소속하고 영과 결합이 되겠느냐? 이것은 내 마음에는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이러나, 내 마음에는 이러나 이 내 마음이 영과 연합되는  데는 유익이 된다? 거기에를 표준해 가지고 계산을 대면 맞는다 그말이오.

그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하는 이것을 그 가운데 한마디 넣어 가지고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이 말은, 물가으로 인도한다 말은 참 인생이 인생이  목마름을 면할 수 있는, 인생이 참 만족할 수 있는 이 영감에 가까운 영감에  가까운,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  영감 받기에 적합하고 영감 받기에 좋고 성신의 감동 받기에 좋고, 영감이라면  진리인데, 진리도 한 가지인데, 진리를 깨닫는 데에 좋아져. 벌로 남 임시 안면  박하게 못 해서 쓸데없는 보증을 서 놨다가 나중에 뒤에 낭파되면. 지금 죄는  무슨 죄를 짓느냐? 처음에는 보증 선 죄를 짓고 또 지금 '아, 내가 보증을  안서야 되는데 보증을 섰던 그 사람이 그랬다.' 원망하는 죄를 회개하면 이제  푸른 초장이 되고 잔잔한 물가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때 안  섰으면 되는데 내가 정신 차려 깨어 있지 안했다.' 이러다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 가운데 던지지 안하면 내가 영감 받을 수  없고 진리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로구나.

감사하다. 이것을 깨달아 보면 그것이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셔.

 보니까 물이 있어. 거기에 물이 가까워. 아마 전에 보지 못하는 영감의 사람이  됐을 것이요 진리의 사람이 됐을 것이요 그 마음이 강퍅해서 마음이 혼자 살던  막음이 이제는 주격인 그 영에게 연합할 수 있는 그런 연합이 가까워지는 그런  일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로 하여금 어디서 지금  쉬고 있는가? 333장에 그 찬송이 있지요.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내 마음에, 영에게 연결된 마음이 더 연결이 더 돼서, 연결이  손가락 만침 연결이 돼 있는데 그 마음이 이제는 영에게 연결된 마음이 주먹덩이  만큼 연결이 됩니다. 다 시 말하면 내 마음이 영에게 조금 더 사로잡히고 조금  더 사로잡히고, 그 마음이 요 부분으로 요 범위로 사로잡혔는데 좀 범위 넓게  사로잡히고 더 깊이 사로잡히고 더 견고히 사로잡히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자꾸  마음은 영에게 사로잡혀야 살고. 영은 진리에 사로 잡혀야 살고, 진리는  하나님과 하나인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자기  이름을 위한다 말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이 공로. 또 하나님이, 하나님의  행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궁로가 있기 전 영원 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성공하는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한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신 것이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이나 부활하심이  하나님의 목적의 그 당신의 뜻을 완성 하는 완성 뭉텅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의의 길로 인도한다.' 그 말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대로의 사람이 목적대로의 실력을 갖추는 데에는 거기에 대해서 구비 한  설계가 있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의 뜻인데,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인 데 그  뜻을 이루는 길로 인도하신다.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래서 사람들 이  생각하기를 '옳은 길로' 인간이 옳은, 인간에게 옳은 게 어디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대한 내 진리, 내가 걸어가야 될 내 궤도의 길을  걸어가도록 해 주신다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문을 열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를 인하여 너로 통해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를 힘입어서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이 뭐인데? 진리인데. '네 진리를 네가 이루고' 그말입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러기 때문에 의의 길 의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 달성이 십자가의 대속이요 곧 그 의의 근본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  자기 혼자만 계셨을 때 자가에게서 발생된 이거 하나가, 목적 하나가 전부인데,  이 목적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도성인신도 하셨고 대속도 하셨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의 목적과 모든 행사, 이름은 행사를 말합니다. 그 사람 이름이  커졌다. 그 사람 이름이, 행사가 커졌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이름이 아무것도  없어졌다, 그 사람의 행사가 다 파묻혀 버리고 없다.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영하신 그 당신의 역사를 위하여 내 의의 길로 인도한다. 당신의 영영하신  단일 역사, 단일 목적 이 역사를 위하여, 이 역사에 합치되고 이 역사가 우리의,  분자적으로, 이 역사에 분자적으로, 이 역사에 세포적으로 우리 각자들에게  해당된 그것이 다 이루어져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 통일 역사에 딱 맞게 인도하신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모른다 그말이오. 어떻게 당신의  영영하신 단일 역사에 내가 일치가 되고 안 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것이며  그 일치될 것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 가지고 찾을 것이며 우리가 계획하고 원할  것입니까? 모릅니다. 그저 여호와가 나의 목자된 이 목자만 내가 배반치  아니하면 그분이 이렇게 해 주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이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당신의 그  이름이라면 당신의 역사를 말하는데, 역사는 당신 혼자 존재하시고 첫 역사가  목적이요, 둘째 역사가 예정이요. 셋째 역사가 창조. 이렇게 섭리인데, 당신의  이 역사를. 위하여, 그 역사에게 모순되면 다 망하고 죽는 것인데, 그 역사에 딱  들어맞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거 내가 알지도 못 하는데, 그분이, 여호와 나의  목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 계약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 이러기 때문에, 그 계약을 내가 배반치 안하는 것이 그  목자를 배반치 안하는 것이요 배반치 안하면 계약의 하나님은 내게 목자가 된다.

목자가 돼서 무슨 일 해 주느냐? 이 밑에 해석하는 이런 일을 해 주신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성공이 어디 있느냐? 믿음에 있다 말합니다. 믿음에  있다 말은 그분을 따라 간다 말이요 그분을 좇는다 말이요 그분을 본받는다  말이오. 믿음이라는 것은 그분이 이 계약을 선포해 놓고 '이와 같이 네가 이  계약을 지키라. 지키면 이 여호와 하나님이 너에게 목자가 되어 있는 이미 되어  있는 목자의 역사의 혜택을 네가 다 입을 수 있다.' 하는 말이겠습니다.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인도 되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하는 것은 인간이 보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지 실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이라 말이오. 사랑의 품속이기 때문에 해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내 의가  이루어지고 내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외에  딴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가 이것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다만 타락이,  여기서 배반한 것이 천사장이 배반해서, 천사장이 배반해 가지고 악령이 된  이것이 배반해서 이질적이고, 그로 미혹 받아 가지고 미혹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질적이지,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인간 외에는 모든 존재가 하나님과 이질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다 동질입니다.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거는 우리를,  양으로 비유했기 때문에, 주의 지팡이를 가지고 모두 맹수를 다 물리 치고 주의  막대기로 또 맹수를 물리쳐서. 막대기로 맹수를 물리치고 또 지팡이로 맹수를  물리치고,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양들을 지휘한다 그 말이오. 지팡이를  가지고 양들을 이래 이쪽으로 갈 때에는 이래 이래 하면 양이 이리 가고, 또  여기서 갈 때 이리 이리 하면 또 이리 가고 이래 가지고 양에게는 인도가 되고,  양에게는 인도가 되어지고 보호가 되어지고, 원수에게는 다 이거 방어가  되어진다. 당신의 섭리는 다 이렇다 말이오. 당신의 섭리는 우리의 구원에는  유익이 되도록 하시고, 당신의 섭리는 모든 우리 구원을 해하는 원수에게는 다  방어가 되고 이렇게 물리침이 된다 말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이러니까, 원수가 뭐이냐? 이  껍데기로 볼 때에는 이 구원을 대적하는, 대적하는 그 모든 대적이. 결과적으로  보니까 그 대적이 전부 나 위해서 있다 그말이오. 그 대적이 나 위해서.

이러니까, 대적하는 것은 수치를 당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이와같이  성공을 함으로써, 우리가 그 무엇 때문에 그래 하느냐? 그런고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서 하나님을 따라 복종하는 믿음 지키는 자는 믿음을 방해하는  자를 다 이용하는 것이 돼 가지고 믿음을 방해하는 자는 믿음을 지키는 자의  밥이 된다 이랬소. 밥이 된다.

 밥이 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또 믿는 자에게도 '아, 결과적으로 이게  날 위해서 이용이 되고 말았구나.' 이렇게 할 때에 그때 우리가 시험에 드는  것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그걸 멸시하지요. 멸시하나 그와 나와 똑  같은데, 언제돈지 저와 나와 똑 같은 것인데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 기시니까  내가 나 됐지. '내가 나 된 것이 내가 나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 되게 하셔서  나 되었으니' 요것을 잊어 버려서 낮은 자, 저와 같지 못하고 저보다도 훨씬  불행스럽고 모두 어리석고 모든 것이 더럽고 추접고 잘못되어 있는 그것을 볼  때마다 나도 그와 같은 자라는 그 근본을 잊어버리지 안해야 뿌리가 안  썩습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뿌리가 썩어버려요. 뿌리가 썩어 버리면 위에 가지가  말라 죽는 것입니다.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 그라고  보니까. 그라고 보니까 제사장이 됐소. 그라고 보니까 여기서 제사장이 더 됐고,  제사장 실력이 갖추어졌고, 선지자 실력이 갖추어졌고, 왕의 실력이 갖추어졌고,  자꾸 이래 실력이 갖추어진다. 아 보니까, 자기가 안다 말이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친다.'  예수님이 마신 그 잔이 보기에는 쓴 잔이지만 그것이 참 아버지가 주님을  대접하는 큰 대접이요 아주 값 비싼 대접울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잔을 마실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러니까, 인본의 해석 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아. 주님이  얼마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가 고난이 어렵기에 각오하시고 난 다음에도 왜 날  이랍니까' 그러면 그거 원망인데, 그라면 하나님의 지공법에 벌써 정죄 다 돼  버렸소 '날 버리십니까 어떻게 나로 하여금 만물을 위해서, 모든 존재를 위해서  영원히 희생할 수 있고, 영원히 희생함으로 그들이 다 구원이 되고, 그들이 나  아니면 안 되고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나는 영원히 모든 존재를  이렇게 섬겨서 살게 하고 구원 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직책을  나에게 줬습니까?'  이 도둑의 마음은, 도적질하는 도적의 마음은 그것이 정반대이지만. 인간도  자기 범위대로에 좀 깨달은 사람들은 그것을 대우를 하고 기뻐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루 종일 가운데에 무엇인가, 무엇인가 남을 복되게  하려는, 남을 복되게 하려는 남을 위한 마음을 나 혼자 가졌어도 보람을  느낍니다. 또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어떤 언덕 밑에서나 어디서 참 다른 사람을  행복되게 하려는, 살게 하려는 그 마음만 가져도 보람을 느끼고, 내가 기도 한  마더만 해도 마음에 기쁨이 오고 또 무슨 움직임을 할 때에는 더 기쁨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의 기쁨이 주님이 원하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여기서 기쁨을 누리고 여기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 뭐이냐?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에 속한 것이요, 이거는 평범하고, 자기가 어떤  역경을 통해 가지고 되어지는 것.

 그러기에, 이 세상의 좋은 순경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는 줄 알고 역경에는  수입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기에는. 그게  좋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니. 좋으나 그 좋은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시험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어떻게 평가하며 여기에 대해서 네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래서, 좋은 것이 왔을 때에는 그 좋은 것은 주를 위해서  바치든지 주를 위해서 포기해서 버릴 때에 그것이 살아지고 그것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진리를 바로 알아야 되지, 사람들은 주님이 좋은 것  주시니까 좋은 것 쥐고는 '이거는 놓을 수 없다.' 주면 놓지 않습니다. 주면  놓지 안하니까 '불의의 재물로 충성치 아니하면 너에게 누가 참된 것을  주겠느냐' 했다 말이오. 너무 사람은 마귀가 우리를 어둡게 해서 시야가 좁고  자기의 견해가 좁고 이래서 자꾸 그만 자기가 자기를 돌돌 말아 가지고 볼끈  묶어서 결박해서 꼼짝을 못 하게 감옥 가운데 가둔다 그거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거기에 가자. 걸어가자. 한 거는 시간이  제한이 없소. 아무것이라도 좋아봤자. 그러기에, 그런 것 더러 명상해요. '자,  의지할 것 봐라. 이것도 의지할 만하고 이것도 바라볼만 하다.' 의지하고 바라볼  만한 그것이 너무도 수명이 좁아. 수명이 짧아. 그 의지 할 것이 영원무궁토록  의지할 만한 것이 되면 하지만 그 의지 하는 그것이 의지를 딱 했다 하니까 바짝  부러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니까 낭파만 당한다 말이오. 그러기에, 주님 외에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은 전부 결과적으로 우리를 낭파시키는 것,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 우리를 죽게 만드는 것 이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주 밖에  사모할 이가 누가 있으며 주 밖에 의지할 이가 누가 있으며 바라볼 이가 뭐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 그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계약의 하나님은 나에게 목자가 되어 있는데 이분을 버리지 안하면 그  결과 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그 목자가 우리에게 해 주신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지혜는 어디 있느냐? 계약의 하나님은 내 목자이시니  내가 계약의 하나님 목자시니 계약을 버리지 안한 것이 목자를 버리자 안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을 버리지 말자는 것을 오늘 아침에 지금 재 강조하는  것입니다. 계약을 버리지 말자. 이 계약은 내 목자다. 이 목자인데 내가 이해 못  하는 내 이해를 내 지식을 초월해서 나에게 영원에 유익되도록 이렇게 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무지한 지식에는 모순되 나마 염려하지 말고, 이분은 창조주시요  지존자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분이 좋아하면 그까짓 거야  모든 피조물은 다 그에게 복종하고, 당신이 모든 걸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분의 능력을 믿으라 말이오. 이분의 능력을 믿고 이분의 신실하심을 믿으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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