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가라지 비유

 

1980. 2. 3. 주전

 

본문: 마태복음 13: 24-30 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 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 에  넣으라 하리라

 

그 밑에 36절 이하에 보면 이 말씀의 해석을 주님이 간단하게 제자들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에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면 이를 갈며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게 해석입니다.

언제나 실상을 말할 때에 실상을 말할 때에 깨닫지 못하는 점을 깨닫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비슷한 비유를 들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는 실상과  같이 정확치를 아니합니다. 비유보다 실상은 더욱 더 정확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비유로 그 실상인 도를 연구해야 합니다.

주인이 밭에다가 곡식 씨를 심었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몹쓸 가라지 씨를  뿌려서 이 농사를 폐농 되도록 한 것입니다. 잘 때에 원수가 와서 뿌렸기 때문에  뿌리는 것도 몰랐고 그것이 차차차차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 가까이 오게 될 때에  비로소 가라지라는 것이 확실히 판명됐습니다. 일꾼들이 와서 곡식 씨를 심었는데  이 가라지가 어떻게 나 가지고 곡식을 해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그렇게 뿌린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뽑으리까' '뽑다가 도리어 곡식이 손해 갈까 하니 그것을  뽑으므로, 뽑으므로 곡식이 도리어 손해 갈 때에는 안 뽑는 기 나으니까 안 뽑는  기 나으니까 뽑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추수 때에 일꾼들을 보내서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에 던져 사르고 곡식은 모아서 곡간에 넣겠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쳤습니다.

그 밑에 해석에 밭은 세상이요 좋은 종자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마귀라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들이라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할 일꾼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라. 이와 같이 세상 마지막에도  하늘나라와 땅에 속한 것들을 분별해서 하나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넣어  사르고 의인들은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이렇게 해석을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이치를 가라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는  그 이치를 가라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참된 이치기 때문에 이 이치는 어떤  한 사실 한 존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것들에게 이 이치는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넓은 범위에서 이 세상 전부에게 해당이 되는 참된 이치요 그보다 좁은 범위에서는  세계의 한국의 모든 교회 교계들에게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더 좁은 데에 해당되는  이치는 예수 믿는 개인 개인에게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우리는 아주 넓은 그 전체의 범위라고 하는 세상에서도 이것을 이 두 가지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해야 하겠고 또 믿는다고 하는 천하에 있는 교회에서도 이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해야 하겠고 또 보다 자기, 자기 개인에게 있어서 혹은 자기 가정에  있어서 자기 교회에 있어서도 이 곡식과 가라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초절적으로 온 교회 안에 있는 교계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초절적으로 온 교회 안에 있는 교계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전에 자기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먼저 구별하고 난 뒤에 개교회와  교파들과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하겠고 교회안 에서  구별한 다음에 넓은 전 세상에서 구별하여야 이 순위가 바로 되는 것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거슬려서 자기보다 교회, 교회보다 교계, 교계보다 세상 이렇게 구별하면  그는 외식이라 스스로 속은 일이 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첫째로 우리가 구별하여야 할 자기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해서 여기 대한 이 교훈대로 올바른 이 관계를 가지는 것이 먼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각자의 개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종자에 대한 구별해서 여기 대한 이  교훈대로 올바른 이 관계를 가지는 것이 먼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각자의  개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종자에 대한 구별을 증거할려고 합니다.

가라지는 천국을 해하는 세상을, 영을 해하는 심신의 육을, 구주의 하나님을  해하는 자기를, 진리를 해하는 모든 인간 지식, 하늘나라의 빈부를 무시하고 보다  크게 여기는 세상 빈부를, 하늘 나라의 존비귀천보다 세상이 존비귀천을 크게  여기는 이런 것들을 비유해서 가라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좋은 종자 곡식은 세상보다 천국을, 자기보다 하나님을, 인간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식을, 세상의 모든 존비귀천보다 무궁세계의 존비귀천을, 세상의 빈부귀천보다  무궁 세계의 빈부귀천을, 더욱 크게 여겨 여기에 준하여 사는 그 모든 것을  비유해서 곡식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우리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모든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말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직장이나 지위나 권세나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다 가라지에  속한 것이요  하늘나라에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을  위주로 유익 되게 이것에게 속해서 이를 위하여 있는 그 모든 것을 좋은 씨 곡식  씨에 속한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전체 범위 중간 범위 좁은 범위를 각각 다 구별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비유에 있어서 첫째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원수가 잘 때에 이 가라지 씨를  와서 뿌렸습니다. 자지 안하고 지켰다면 뿌리지 못합니다. 잘 때에 뿌렸으니  우리가 첫째로 주의 할 일은 자지 아니하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잔다는 말은 육이 몸이 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심령이 자는 것을  말합니다. 심령은 무엇으로 자게 되느냐 한말로 말하면 심령은 세상으로 잠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피곤하고 세상으로 잠듭니다. 세상으로 인하여 인간의  심령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이 깨어 밝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과 무궁세계의 우리가 갈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심판과 부활 죽음 무궁을 준비하기 위해서 잠깐 동안 머무는  나그네 세상 이런 것을 마음 가운데에 가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또 깊이 깊이 여기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이 양심이라고 하고 이렇게 이것을 생각할 때에 거기 충격  받아 거기 관련된 그대로의 사상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그대로의 충격 받아  거기 관련된 그대로의 사상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그대로의 충격 받은 충격  받은 감화의 사람으로 있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있을 때에 우리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어떤 유혹도 아름다움의 영광에  평강에 좋은 것들도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깨어 있어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과 '여기 잔다'는 말씀이 같은 말씀입니다. .

깨어있는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과 '여기  잔다'는 말씀이 같은 말씀입니다. 깨어있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에 칭찬과 상을  받았고 자면서 주객으로 더불어 술을 먹고 취하는 사람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취하고 잔다는 말은 세상으로 인하여서 잠들었습니다. 세상 부귀 영광으로 인해서  무궁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자는 자입니다. 돈으로 돈 잠든  사람, 권세 잠든 사람, 명예 잠든 사람, 행락 잠든 사람, 존영의 명예에 잠든  사람, 인정에 잠든 사람, 가정에 잠든 사람, 모두 다 어쨌든 영감의 이 심령인  정상의 심령을 무엇으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다 잠든 것입니다.

이럴 때에 악령은 그 기회 기회를 노려 그 사람이 돈을 보고 있으면 돈을 통하여서  미혹하고, 권세를 보고 있으면 권세를 통하여 미혹하고, 감정을 보고 있으면  감정을 통하면 미혹하고, 원수의 복수심을 가졌으면 그것을 통하여 그에게 멸망의  것을 넣어 줍니다. 그것을 잘 때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교훈에서 제일 주의할 것은 자지 안하고 깨어 있을 수  있었으면 깨어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둘째로 자기가 잠깐 곤해서 잠이 든  사이라도 원수가 와서 내 마음에 내 지식에 내 생각에 내 소원에 내 성질에 내  욕망에 내 사업에 내 방편에 분명히 멸망할 씨를 심으고 간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멸망에 원인이, 실패할 생애의 원인이, 자타를 해칠 수 있는 그  생애의 원인이, 인질 인성의 원인이 이것이 와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자리잡고 발생될 수 있고 이것이 발생될 수 있고 이것이 차차차차 세력을 얻어  커지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 대해서 다시 주님은 긍휼로 방편을 가르쳤습니다. 네가 깨어있는 것 외에는  씨를 뿌릴 때에 밭은 토지라는 것은 받을 것뿐이지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우리  심령이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악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어떤 것이라도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힘이 없습니다. 일단 들어와서 있으면 아무리  흙을 나벼 봐도 모르니 농부는 삼가 가라지와 곡식이 움틀 때에는 여간한 농부가  모릅니다. 어수히 이만치 자라서도 모릅니다. 꼭 같이 대궁이 붉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푸른 것도 있고 잎사귀가 꼭 같습니다. 암만 봐도 모릅니다.

 어떤 식물학자는 이 곡식과 같은 가라지 이 곡식에는 꼭 그와 같은 가라지 저  곡식에는 꼭 그와 같은 가라지이기 때문에 이 곡식이 땅에 떨어져 묻혀 변질된 고  변질되어서 많은 변질로 생겨진 것이라 그렇게 까지 말을 합니다. 모릅니다. 저도  곡식 농사를 지어 봤는데 가라지라는 것은 우리 밭에는 가래초라 그렇게 제  지방에서는 말합니다. 어릴 때는 봐야 모릅니다. 나서 요만할 때에 곡식 밭은  제초해서 내야 되는 데 다른 풀은 다 알겠는데 가라지는 몰라요. 이러니까 부득이  그때는 가라지를 알려고 해도 그기 눈에 보이지 안하고 자세히 봐도 잘 몰라.

이러니까 그대로 둬 두나 이것이 차차 자라면 알게 됩니다. 누가 봐도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차가지로 자기 속에 멸망의 원인, 멸망의 생애를 일으키는 원인, 잘못된  사상, 잘못된 교훈, 잘못 가르침을 받은 잘못된 교리, 잘못된 신조, 잘못된 설교,  잘못된 주석, 잘못된 해석, 잘못된 말, 잘못된 그 모든 견해,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심기워져 있는데 이것을 그 당시는 모르지마는 차차차차 자라는 데에 농부가  마치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으니 어떤 것이든지 이것을 한시라도 일찍 제거해야  손해가 적을 터이니까 보자 하고 자라는 데에 눈을 두고 그것을 자라감에 따라서  알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가래초를, 가라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이 교훈을 받고 보니까 내 생애가 차차차차 속화가 되다가 내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점점 패역하고 강퍅하게 된다, 이 사람을 접하니,  이 사상을 접하니, 이 설교를 들으니, 이 교훈을 받으니, 이 교회에 다니는 성경도  여러 수백 종류의 성경이 그러한 잡된 성경이 나왔는데 참 성경은 하나 뿐이지만  이 성경을 보니 차차 살아가는 이 생애가 어떻게 되나 내가 하나님과 하늘나라로  기울어지는지, 피조물과 세상으로 기울어지는지, 이것을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분명히 아니라고 하는 현실을 당했을 때에 아닌 줄 알고 이것을 이기는 힘이  약해지는지 강해지는지 옳은 것인 줄 알지마는 이것을 단행하는 그 결단이나  인내력이 강해지는지 약해지는지 자기 생활이 하루 이틀 자라 가는 것을 보면 결실  할 때는 더 알 수 있는 거와 같이 이런 사건 저런 사건이 그 결말 지워지는 그  신앙의 결과가 나타나는 그 결과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로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자기에게 와서 심어진 씨가 인본인지 신본인지, 마귀적인지  성령적인지, 세상적인지 천국적인지, 불의적인지 의적인지, 구원적인지  멸망적인지, 이것을 자기가 두고 보면 압니다. 두고 보면 압니다. 그 결과를 보면  압니다.

일정 때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 복음의 씨가 심어졌는데 크게 곡식이냐 가라지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신사참배 때에 맺어지는 그 피는 이삭 맺어지는 그 결실로  거짓인지 참된 것인지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일차적으로 그 수십 년 동안 교회의  성장이 신사 참배라는 그 시기에 그 맺어지는 이삭으로 인해서 확실히  판정됐습니다.

국부적이지마는 해방 이후에도 육 이오 라는 이 한 큰 시험을 통하여 교회의  전성시기라고 통행금지에도 성경만 들고 가면 그는 무조건 용납하는 교회의  전성시기 교회의 전능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를 통과한 이후 6.25라는 이  시험을 통해서 내가 예수를 바로 믿었느냐 잘못 믿었느냐 올바른 복음을 받았느냐  잘못된 복음을 받았느냐 네 신앙이 인본이냐 신본이냐 세상적이냐 천국적이냐 내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정말로 네가 십자가의 군병으로 주의 도를 인해서 너와  네 몸과 생명을 바치느냐. 예수와 복음을 너를 위해서 이용하고 있었느냐 판정  났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가져야 합니다.

가라지가 난 것은 모르고 하루 이틀 자라갈수록 더 나타납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환하게 나타납니다. 마지막에 이삭이 필 때에는 더 확실합니다.

왜? 가라지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천사가 다 태워 버린다 무궁 세계에 가서 있지를  않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모든 것이 구비했지마는 그것은 세상이라는 관문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궁세계는 물 한 방울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영원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하루 밤의 고생보다 다  영원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하루 밤의 고생보다 영원한  고생 하루 밤의 존귀 보다 영원한 존귀 이것이 우리 앞에 문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에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제초할 때에는 어리석은 농부라도 거의 다 압니다. 다른 것 몰라도  가라지는 곡식보다 무성하게 자랍니다. 같이 어린 아이들과 밭을 매면 아버지 이것  가라지 입니까 뽑으랍니까 무엇보고 아노? 원체 이 만 있거라 보자 아 이것은  가라지가 아닌데 밑에 거름이 어찌 많으니까 이기 무성해졌지 가라지는 아니다.

아, 이것은 가라지다 같은 토질이면 반드시 가라지는 무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외식자가 한 토막 세상에서는 세력을 부리는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세력을  부립니다. 예수교 안에서 세본주의가 세상의 세력을 부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되지 아니했을 때에 무슨 가치  있습니까.

이러기에 우리는 항상 이 농부처럼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구별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에게 있어서 내 맘을 주장하고 내 성질을 주장하고 내 생애를 주장하고 나를  주장하는 이것이 과연 멸망을 결실 할 것들인지 영생을 결실 할 것들인지 이것을  살피는 눈이 계속 있어야 하겠습니다. 일시형통을 볼 기 아니라 우리는 신앙의  감화를 받았고 성경진리를 배웠고 신앙적 양심이 있습니다.

일시 무성하고 흥왕하고 세력 있는 걸 볼 기 아니라 이것이 과연 멸망을 결실  하느냐 구원을 결실 하느냐 이것이 무엇이냐 자기에게 심어져 있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인간성 모든 지식 지혜 방편 관계를 맺고 있는 자기 사회 자기 동류 자기  직장 자기 위치 과연 이 점점 어떤 것을 성장케 하고 있느냐? 이것을 계속  주시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계속 주시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나  따나 얼렁뚱땅으로 이렇게 그날 그날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다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을 향하는 원인으로 지금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 한 사건 한  사건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면 참 무궁 세계에 놀랠 만한 큰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지극히 존귀한 줄 알았는데 허무하고 아무도 몰랐는데 존귀한 것이  나타나서 지극히 존귀한 줄 알았는데 허무하고 아무도 몰랐는데 존귀한 것이  나타나서 그것이 영원 무궁 계속을 영원무궁의 미래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막살이로 살수가 없습니다.

임시 먹고 굶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안 받는 이것도  크지마는 이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논단을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여기고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마는 이것도 허무한 줄 안다.

왜? 나보다 능하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 가지고 내가 심판을 받을  터인데 터이기 때문에 그분 같이 알아서 그분 같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오늘에 수정했으면 하는 여기 대해서 마음이 눌리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이 가라지는 몰랐습니다. 자라 가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삭이 필 무렵에 많은 성장을 보아 알았습니다. 많은 성장을 보아 알았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생애를 보아 이것을 판단할려고 자기를 심사할려고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예비심판입니다.

 나그네 세상에서도 모든 것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도 자기를 자기가  어짜든지 스스로 자신해서 스스로 심판해서 이 가라지 곡식이 잘못된 이것을 자기  생애를 봐서 아 이 말은 나에게 손해를 보였다 이 지식은 나에게 육 이오를 줬다.

6.25 때에 그 공산주의자들에게 많은 박해를 당하고 또 그 다음에 그들에게 접해서  공산주의 이 빨갱이인가 해서 또 우리나라에서 박해를 당하고 할 때에 그때에  자기가 예사롭게 들었던 하나님의 그 가르쳐 주신 말씀이 어떤 사람이 설교 받은  그 설교 받을 때에 가르침 받은 그 말씀이 그때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모든  것을 해결 해주고 모든 갈 길을 환하게 보여 줘서 순전히 그 말씀으로 평강을  누렸고 말씀으로 승리했고 자기는 그로 인해서 구원 이루었다는 그것을 어떤  사람이 어떤 설교를 듣고 그랬다고 많은 간증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가라지와 곡식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환란이 오니 자기에게 당면한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 추수기가 오니 자기에게 예사롭게 여겼던 사람이 미혹하는 한  속화의 교훈을 열어 준 그것이 한 사상 그것이 그때 나와 가지고 이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해서 일편단심으로 나가는 그 신앙걸음을 딱 돌려서 왼쪽으로 삐뚤뜨려서  실패케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성공한 것도 하나님에게 받은 영감도리로 인해서  성공했고 모두 다 후회하는 그런 실패를 모를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 속에  심어져 있는 가라지 잘못된 교리와 신조 잘못된 깨달음 잘못된 가르침 받은 것이  이것이 들어서 실패케 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것은 가라지의 씨가 심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일 지혜롭고  다음에는 이것이 자랄 대로 다 자라 땅을 허비하고 결실 할 때에 그때에 알고  제거할려는 것보다 일찍 발견하는 것이 어짜든지 유리합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살펴서 자기를 냉정스럽게 살펴서 아 이런 자로구나 내개는 이  요소가 있구나 아 말은 이렇구나 원수의 말도 이 말은 과연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자기 수하든지 수상이든지 친근한 자든지  원수든지 어디로 와도 자기 속에 심어진 이것을 살펴서 살아가면서 두고 보아서  옳고 그른 것을 날마다 수정해 가지고 제게 있는 것이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너무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걸 주장해서 세계를  점령하면 어쩔 것이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그러므로  가라지는 자라 갈수록 더 알기 쉽고 열매 맺을 때는 더 알기 쉽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라는 인질이 자기라는 인품이 자기의 지식이 자기의 사상이 자기의  모든 속성이 자기의 주장이 자기의 없이 자기의 처세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기  가정 자기 사회가 자기로 더불어 살아 나가는 데에 이것이 살아나가고 겪어보고  두고 보고 지내보니 이것이 과연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이것이 하늘나라에 속한  영생을 이루게 하는 것인지 영벌을 이루게 하는 것인지 이것이 무엇인지 하는  이것을 살펴서 자기 생애에서 자기를 살피고 자기의 생애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살펴서 스스로 심판하여 이것을 제거하는 이 일이 계속해야 되는 것을 여기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를 냉정스럽게 판정해서 멸망이 오기 전에 이것을 예비  심사해서 예비 심판해서 정리할 기회를 지내지 아니하고 정리하여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는 "이걸 뽑으리이까" 뽑는 데는 뽑는 것이 도리어 곡식이  손해가면 안 된다 뽑는 것이 곡식에 손해가면 안 된다 곡식에 유익을 위해서 그걸  제할라 하는 것이지 곡식 손해보고 되겠느냐 뽑는 것이 곡식에 손해가 되겠는지 안  되겠는지 그것을 살펴서 뽑아라 간단하게 기록했지마는 만일 그 주인의 일꾼이  말하기를 이 가라지는 곡식을 멀리 떠나서 있으니까 이걸 뽑아도 곡식에는 손해  없겠습니다. 염려는 없겠습니다. 뽑아라 이 가라지는 뽑으면 이것은 오히려 둬  두는 것보다 곡식에 손해가 가겠습니다. 뽑지 말아라 이것을 뽑으면 손해지마는  이것을 중디를 뿌르든지 이렇게 하면은 괜찮겠다 아 그리해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멸망의 요소라는 것을 죄라는 것을 자기 안에서나 자기 밖에서나 이것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교회 안에 이것이 섞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권징 도리를  우리가 여기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가라지 같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아니한 잘못된 것이 자기 안에 있든지 자기 밖에 있든지 교회  안에 있든지 가정 안에 있든지 이것을 처리하는 데에는 반드시 구원의 이해를  계산해 가지고 구원에 유익 되게 이것을 제거해야 되지 구원에 손해가게 이것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자기 안에 있는 것도 구원에 손해가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은 네가 똑똑히 지식하고 있어야 된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다 발견하고 알지마는 오히려 이것을  이렇게 처리하면 그것은 야나지게 뽑히지마는 이로 인해서 많은 의로운 것이  손상될 때에는 알고도 그것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손해가지 아니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손해가지 아니할 한도에서 그것을 차차 제거하고 이렇게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지혜롭게 하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방편입니다. 아닌  거라고 해서 아닌 것 그것을 둬 둬서 손해 가는 것보다도 그것을 뽑음으로 신앙에  구원에 손해 갈 수 있는 그런 그 처리는 하지 말라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얼마나 우리를 아껴서 지혜롭게 말씀해 주십니까?

다음으로 넷째는 아, 이거는 뽑지 아니하고 뽑으면 이거 하나 처리하면 많은  구원이 절단 난다. 이 한 사건을 처리하면 많은 구원이 절단 난다. 이러니까  부득이 손해 되지 않는 방편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처리하도록  하나님에게 맡기고 기도하고 세월에게 맡기고 기도하고 윤회하는 모든 자연  법칙에게 맡겨서 도와 기도하여 그것이 하나님과 세월과 자연으로 인해서 처리되어  구원에 손해가지 않게 하지마는 농부가 똑똑히 판명하여 있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나 자기 밖에 있는 것이나 이것은 멸망할 요소라 이것은  심판에서 멸망 받을 것들이라 이것은 구원이 될 것들이라 이거는 의에 속한 것이라  이거는 죄에 속한 것이라 이거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  이는 나를 유익 되게 하는 것이라 이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 자기 안에 있는  것도 자기 가정 안에 있는 것도 자기 사회 안에 있는 것도 자기 국가 안에 있는  것도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있는 것도 그것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은 확실히  판정하고 살아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확실히 판정하고 이것을 판정하지 아니하고 나쁜 것도 그대로 둬 두고 요거는 망할  것이다 요거는 죽이는 것이다 요거는 살리는 것이다 요거는 해친다 유익 준다  요거는 의다 요것은 불의다 요거는 하나님도 자기 사회 안에 것도 국가 안에 것도  민족 안에 것도 세계 안에 것도 인류 안에 것도 교회 안에 것도 요것을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그것의 결과 우리가 접하고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것의 결과  처리하는 것은 삼가 이해를 따져서 처리하지마는 그것이 결과가 어떻다는 것과 그  자체가 어떻다는 요것은 확실히 판정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기 기독자의  생애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이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첫째 중요가 깨어 심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요 심어진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것을 자기가 하루 이틀 살아가서 경험해 보면서 체험해  보면서 두고 가 보면서 이것을 살펴서 스스로 심사하여 뽑을 것과 둬 둘 것 곡식과  가라지를 확실히 판정해야 되고 셋째로는 판정했으나 제거하는 데에는 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하고 구원에 손해 되게 하지 안 할 것 넷째로는 여기 대해서 확실히  그 결과가 멸망한 것이라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확정을 지우고 살 것 그러면  차차 녹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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