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해석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29일 화새

 

본문 :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루가 천년 같다 또 천년이 하루 같다 주의 심정에는 이렇게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시는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이 재림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벌써 세월이 많이 지나갔고, 또  개인적으로 너희 생명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1년  살아도 죽지 않고 10년 살아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게 되니까 사람들은 '너희  생명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오늘이 마지막인지 모른다.' 이렇게 하신 이  말씀을 말씀만 그래 했지마는 정말로 내 생명이 오늘이 끝이라, 또 내일이  끝일지 모른다, 또 예수님의 재림이 뜻밖에 갑자기 닥치니 오늘 재림하실런지  내일 재림하실런지 모른다 하는 이 말씀을 공연히 그렇게 사람에게 조급하게  말씀하신 것이지 언제 될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개인의 종말 시간과 이 우주의 종말 시간을 매우  시급히 말씀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 많이 에누리를 하는 이 강팍한 마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여기 말쓸하시기를, 더딘 것이 아니다. 오래 참으셔서 다문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해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그  심정에서 참으시는 것이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허무하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생각 대로 '얼마든지 그 시간은 넉넉한 것인데 그렇게 촉박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이렇게 주님의 심정은 이런 것이니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이 말씀은 사람들이 멸망하는 그 일을 자꾸 자기가  자취하고 있는데, 멸망을 자취하고 있는 그, 멸망을 자취하는 그 멸망을 주님이  보실 때에는 하루가 천년 같이 그렇게 길고 안타까운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있다  또 '천년이 하루 같다.' 그 말은 자기가 자기 구원을 이루려고 그 구원을 이루는  이면으로 주님이 보실 때에는 어떻게 세월이 빠른지 천년이 마치 하루 지나가는  것과 같이 이렇게 세월이 빠르다. 그 주님의 사랑의 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개명 있을 때에 그 아이들의 죽는 것을 많이 참가했는데, 부모네들은  데리고 고생을 하다가 너무 지치니까 그만 아이는 지금 죽으려고 숨을 모두고  깔닥깔닥하고 있지마는 그만 잠이 오니까 피곤해서 쓰러집니다. 제가 저거  아버지 어머니는 다 그만 쓰러지는데 옆에 남아 있으면서 이래 보면, 그 인간의  죽음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그 힘드는 것인지 그 어린아이도 하나 생명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참 고통이 심합니다.

 고통 심한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을 때에 이미 살지는 못하고 희망은 없는  아이니 그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 볼 때에 어떻게 마음에 안타까운지 시간은 얼마  안 지나가는데도 그 고통하는 걸 보니까 시간이 심히 많이 지나간 것같이 그렇게  짧은 시간이 참 긴 시간으로, 일각이 여삼추라 말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되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그 병든 그런 사람들을 같이 이렇게 간호할 때에 밤이면 그 병이 심하고  낮이면 조금 수월합니다. 요새는 진통제니 마취제 그런 것이 있으니까 안되면  그만 그런 것을 먹여 놓으면 좀 낫지마는 그때는 뭐 그런 것이 없으니까 밤이  되면 그만 걱정이 되어서, 또 밤이 닥쳤으니 이 고통을 심하게 할 터인데 '이  밤이 어서 가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음이 들 때에 자꾸 밤이 되니까  병으로 심한 고통을 통증을 느끼고 이러니 '어서 밤이 지나가고 날이 샛으면  좋겠다' 싶은데, 하문 '열 한 시나 안 됐겠나?' 하고 보면 찍해야, 한 시간  지나갔지 싶어서 보고 나면 그저 한 10분 지나갔고, 또 이제는 두 시간 지나갔을  것이다 하고 보면 그저 한 20분이나 이래 지나가고, 아주 고통스러운 그것을 볼  때에 그 고통스러운 고통스러워하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아주, 실상보다 그  시간이 자꾸 긴 것만같이 그렇게 여겨지는 그 안타까운 그런 것을 여러번  겪어봤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인간이 참 자기는 몰라도 멸망하는 그 멸망을 마련하고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자꾸 저질러서 멸망이 자꾸 쌓여 나가고 멸망이 커져  나가고, 또 이모 저모로 골고루 멸망을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자처하는 이런  멸망하는 행위를 대할 때에 주님의 마음은 그 하루가 천년같이 마음에 애타지고  안타까워지는, '어서 이 시간이 지나서 그만 저, 저 시간이 없으면‥‥ 저  멸망한다. 또 저 짓을 한다. 또 저 멸망을 또 취한다. 또 저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 하는 그 멸망하는 그 시간을 자처하는 그것을 보실 때에  그 시간이 심히 지루한 그것을 생각하시는 그 심정을 말씀하는 것이고,  또 '천년이 하루 같다' 하는 그 말씀은 어쨌든지 생명과 신령과 평강에 속한 이  거룩한 행실 곧 경건을 사람들이 마련하려고 애를 쓰기는 쓰는데, 그만 또  넘어지고 또 새로 시작해 가지고는 또 넘어지고, 어떻게 하든지 이 일이 완성이  돼야 될 터인데, 작정했다가 넘어지고 시작했다 넘어지고. 이러니까 마음에  안타까워서, 성령님도 도우시고 모든 피조물도 다 돕고 또 하나님이 구속한  성도들도 돕고 중생된 영도 돕고 이래 가지고 거룩한 행실, 경건을 마련하고  죄를 회개해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데, 애는 쓰는데 또 닥치니까 또 넘어지고  넘어지니 마음에 안타까워서 한번 또 더해서 그것을 이기고 남은 그 지저분한  것을 회개를 하고 이렇게 자꾸 하기를 주님이 기다리시고, 이러니까 이 성도들도  애를 써서 이 일을 벗어나려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거룩에 속한 것과  경건에 속한 것을 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 자꾸 시간이 지나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시간이 어떻게 마음 조급히 지나가는지 천년이 하루 같이 그렇게  지나가는 그런 주님에 그 사랑의 심정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뭐 부모네들 보니까, 요새는 그렇게 좀 입학 시험이니 하는 그런 것이 그렇게  경쟁이 많지를 못한 것 같은데 그 ○정권 말년에는 그 때는 전적 인문 그게  주장했기 때문에 아주 시험 그런 것이 좀 심했습니다. 시험준비를 하는데, 벌써  시험 칠 날짜는 차차 차차 닥쳐오고 준비는 안되고 공부 준비는 시키려고  이러니까 그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아이구! 얼마밖에 안 남았다. 벌써  이렇게 지나가고 찍해야 한달밖에 안 남았다.' 또 그렇게 그 시간이  안타까워하더니마는 '아이구! 열흘밖에 안 남았다.' 그 아주 시간 지나가는 것이  자기 욕망을 달성하려고 하는데, 그 달성하는데는 시간이 있어야 되는데 일은  되지 않고 자꾸 지나가니까 그 시간이 지나가는데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런 것을 많이 구경했습니다.

 그뿐 아니고 하루 일을 해도 품을 드는 사람들은 '해가 왜 이리 긴고?' 하고  해가 긴 그런 것을 느끼지마는 주인은 그 할일은 많은데 일은 안되고 이러니까  '아이구! 벌써 점심 때가 됐네. 벌써 이 새참 때가 됐네.' 마치 지나가는 그  해를 붙들어 매면 싶을만치 마음에 안타까워서 '벌써 하루 해가 다 갔다 이제는  뭐 일 할래야 일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시간 지나가는데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해서 그 시간이 아주 짧게 그렇게 생각돼지는 그런 것을 우리가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이 천년이 하루같이, 우리의 이 구원에 대하여는 천년이  하루같이 생각해지는 그 주님이 사랑의 심정을 너희들이 알아라 멸망하는 그  멸망을 대해볼 때는 하루가 천년같이 지루한 안타까운 이 주님의 이 사랑을 네가  너희들이 알아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라.' 잊지 말라는 말은 주님이 우리의 멸망과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견딜 수 없는 이런 안타까운 사랑의 심정과 긍휼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 이것을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고 깨달아야  주님에게 대한 우리의 확신과 또 만유주가 우리를 돕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없는,  참 소망에 대해서 강하고 담대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주님의 그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의 현실에서 신앙으로 용감하지를 못하고 다  약해지는 것을 안타까워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그  무심하게 이래 가지고 예수님이 계시면서 재림 재림하더니마는 아직까지 재림이  안된다.' 그렇게 이 시간이 지나가는 일에 하나 하나에 대해서 주님이  무관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고 하루가 지루하기를 천년같이 지루하고 또 천년이  하루와 같이 빨라서 안타까워 견디지 못하는 이런 주님에 사랑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을 향한 이 소망과 의지하는 것과 또 주님의 그 도우심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어제 아침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우리는 자기에게 닥쳐진  그 현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닥쳐진 그 현실을 제일 먼저 생각해서 '이 현실을  내가 어떻게 할꼬?' 이렇게 착수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닥칠 때에 자기에게 닥친 그 현실,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또  일이든지 무슨 급한 일, 큰 일, 무서운 일, 큰 손해가 되는 일, 큰 유익이 되는  일, 또 거기에 짐승 물건 사람 또 이 자연,-비가 오든지 춥다든지 눈이 온다든지  이런 거-또 자기가 지금 감옥에 들어 있으면 감옥 그런 것이 다 모두 합해서  자기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 합해서 자기 현실이 되겠습니다.

 현실은 그게 현실이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현실의 형편이 자기  현실입니다. 현실을 만날 때에 그 현실을 자기가 첫째로 생각하는 그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걸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자율이요 주관이요 자기의  정이요 자기의 모든 사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그 현실을 닥쳤을 때에 현실이라는 그 감옥 속에 갇히지 말고,  현실이라는 그 감옥 속에 갇히지 말고 현실이라는 감옥을 문을 열어 놓고 자기  마음대로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그 사람은 옥사장입니다. 감옥에 감독하는 그  옥사장은 옥을 맡은 그 책임자는 옥문을 열고 닫고, 들어가고 나가고  자유합니다. 그러나 옥에 갇혀 가지고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그런 사람은 벌써  옥에 갇힌 죄수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현실이라는 이 현실 속에 갇혀서 자유하지 못하는 그  사람은 현실 속에 갇혀있는 벌써 죄수입니다. 거기에 갇혀있는 자는 마지막에는  사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현실,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자기의 닥쳐있는  자기의 현실로 만들어져 있는 현실 이것만 생각하고 이 껍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 사람은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 들어있는 죄 수요.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현실을 벗어나서 현실을 생각지 말고, 현실을 생각지 말고 현실에서 벗어나서  거리가 먼 거리가 제일 먼 이 현실에서 제일 거리 먼 거기에도 제가 자유로  왕래를 합니다. 현실에서 제일 거리 먼 곳을 자기가 자유로 왕래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현실에서 제일 먼 그 현실이 어디입니까? 예? 그날!  그날입니다. 네, 자기의 현실에서 제일 거리가 먼 그 현실이 어딘고 하니 자기에  마지막 죽는 그 현실이오. 또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우주에 종말이 되는 그  현실이 자기 현실에서 거리가 제일 먼 곳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파묻혀 있지 않고 현실에서 옥문을 열고 현실에서 나와 가지고  그 현실에 제일 먼 자기의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거기를 자기가 자유로 가서  종말 시간과 우주의 종말 시간 현실 이 폭넓은 거리를 자기가 자유로 왕래하면서  거기에서 자기는 사고할 수가 있고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는, 사고할 수가 있고,  또 이 거리를 자유로 왕래하면서 대비대책을 할 수가 있고, 또 이 거리를 자유로  왕래하면서 모든 정리 정비 정돈을 할 수 있는 이 자유를 가진 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현실을 닥친 이 현실과 내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시간 그 거리를  자유로 왕래할 때에 그날에는 어찌 되느냐? 모든 만물이 다 불에 타서  불덩어리가 된다. 모두가 다 녹아져서 원소가 되어진다.

 또 그때는 인간들의 그 행한 행위를 다 드러난다 그말은 다 이제는 다시 변동할  수 없이 결재가 된다 그 말이오. 결재가 되고 발표가 된다. 자기가 그 행동한  것이 그날에 어떻게 참 자기에게 수치가 되고 멸망이 되는 그런 무서운  행동이라도 그날이 닥치기 전에는 얼마든지 변동할 수가 있다. 얼마든지 변동할  수가 있다.

 그 수치스러운 것도 영광으로 변동될 수가 있다. 성경에 유명한 마리아가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유명한 마리아 중에 한 사람은 음행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

'음행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는데, 이 여인을 선생님 어째야 되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비추면 이는 돌로 쳐서 죽여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주님은  땅에다 글을 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둘로 이 여인을  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손으로 글을 쓰시니까 글쓰는 그것은 먼저  용감스럽게 나서 가지고 돌로 칠려 하는 그자의 그 죄목을 거기에서 주님이  기록했는지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그 글 쓰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여인에 대하여 돌을  치지 않고 다 물러가 버렸다 이랬습니다. 물러갔는데, 그렇게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그런 여인이 그날을 당하기 전에 그날이 오기 전에 회개를 하니까 오히려  주님에게 대해서 참 열심있는 충성한 그런 사람이 됐다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날에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 드러나면 다시는 그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인간에 모든 생애가 잘된 것이나 못된 것이 다 결재가 되어진다. 완전히 다시는  불변적으로 결정이 된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에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잘된 일이라도 큰소리  못한다. 그것이 그날이 올 때에 어떻게 변해질지 모른다.

 롯이 참 의인 중에 한 사람인데 그가 그만 소돔 고모라성 불에 타져  죽었더라면, 또 아브라함과 같이 다니면서 따라다니면서 따라 다닐 때에 동행할  때 그때 끝을 마쳤으면 의인이 될 터인데 그가 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소돔  고모라성에 그런 멸망을 받은 것이 나타나고, 또 그때 유황불 위에 죽었더라면  괜찮은데 죽지 않고 소알성으로 피난해 갔기 때문에 역사에 아비와 자녀의 그  부녀에 대해서 있을 수 없는 그런 아주 천추만대에 수치스러운 그 일을 맺어왔다  그거요.

 이러니까 의로운 것도 그것이 나중에 불의의 원인이 되는 수도 있고, 또 아주  참 말할 수 없는 그런 불의한 것도 의로운 것의 원인이 되어서 도리어 그것이  칭찬과 자랑거리가 될 수가 있는 것이 우리가 생존한 기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현실에서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다시는 변동할 수 없도록  고정되고 영원히 고정 고정되어서 그대로 영존하게 되는 것인데, 악도 영원히  심판받아 영존하게 되고 의도 영존하게 되어지는 이 일이 그날에 결정된다.

 그러면 그날에 이렇게 되니 그것을 생각할 때에 그날이 닥치기 전에 오늘에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또 의로운 것도 그날이 되어야 큰소리 되지 그날이 아직  되기 전에는 이 의로운 것이 어떻게 악하게 변하게 될런지 모른다 하는 그날에  드러날 그 일을, 제일 거리 먼 그날에 그날을 생각하면서 그날에 드러날 그 일을  내 현실에서 생각하면서 현실과 그날과 그 거리가 얼마나 긴지 짧은지  모르지마는 이 사이를 어떻게 활용을 하느냐? 또 그때에 모든 것 중에 인간들이  아무리 단단히 간수를 해 왔다 할지라도 다 도적을 맞는데, 노아 홍수 때에 많은  사람들이 별별 것으로 준비했지 마는 홍수에 다 뺏겨버리고 말아버렸습니다.

 홍수에 뺏겨버리고 말은 거와 마찬가지로 지금 사람들은 잘나나 못나나 자기  지능을 다 가지고 행복을 도모하고 쾌락을 도모하려고 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그날에는 그 모든 것이 전부 도적맞아 다 뺏겨지게 뺏기게 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지금 이 감옥에 갇혀서 이 현실에 현실이 닥치니 이거 취하느냐  버리느냐? 먹느냐 어떻게 하느냐? 요 현실이라는 그것만 생각하고 현실만  접촉하고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의 공로를 입어서 진리를  받았고 주님의 3대 대속을 받았고 성신의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이 감옥에  갇히지 않고 감옥을 척 열고 제 자유로 감옥에서 제일 거리 먼 데에 자유로  돌아다닌다 말이오 감옥에서 10리를 돌아다니면서 자유하는 사람 백리를  돌아다니며 자유하는 사람, 감옥에서 열흘을 자유하는 사람 또 그 사람이 지금  죽을 날이 한 50년 남았으면 이 현실에서 50년 거리 먼 그 자리를 다니면서  마지막 그날에 드러날 일. 또 그날에 도적맞을 거 그날에 남아 있을 거룩과 경건  이것을 그날을 생각하면서 이 현실을 생각 해서, 그날에 모든 것은 이 현실에서  이것을 다 작용할 수가 있고 그날에 부끄러운 것을 현실에 이것을 변화시켜서  면제할 수가 있고,  또 그날에 영광스러울 것도 이 현실에서 마련할 수가 있고, 그날에 도적맞을  것도 지금 내가 처리해 도적맞지 아니할 것으로 바꿀 수 있고, 그 썩은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바꿀 수도 있고, 또 없앨 수도 있고, 그날에  가서 그것이 드러나면 기가 찰 터인데 그것을 지금 까뭉켜 버리면 까뭉켜 버리면  그만 뭉켜버리면 된다 말이오.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눈과 같이 희게 된다' 고 했으니까 해결지우면 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날에,  그날에 다시는 변동 못할 결정되어지는 그날의 일, 그날에 도적맞을 거, 또  그날에 영광과 존귀로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 그것을 가서  구경하면서 그걸 보고 현실에 와 가지고 그것을 마련하고 이래 하는데 이 일에  대해서 이것을 모르고 자꾸 그 멸망을 채워서, 자꾸 멸망과 수치스러운 것이 이  봉우리가 주님이 피로 구속하셨기 때문에 구속한 자의 이 멸망이 자꾸 심판이  마련돼 가는 이것을 볼 때에 안타깝고 또 자기에게 주님이 구속해 주신 이  구원을 자꾸 팔아 먹는다 말이오. 팔아 먹는 이 일에 대해서 볼 때에 안타깝고,  안타깝기를 얼마나 안타까우냐? 하루가 천년같이 지루해.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싶으며 지루하다 말이오. 또 이것을 지금 고쳐보려고, 보니까  부지런히 더 쉽니다. 자기 현실 닥칠 때에 '아이구 현실에 지금 내게 아주 그  은공인 아주 은혜를 끼친 은인이 내게 오니까 그 그만 은인만 은인에게 붙들려서  은인을 생각해서 은인에게 붙들려, 은혜 중에는 제일 큰 은혜가 어떤 게 제일 큰  은혜인고 하니 유교에서는 임금에 은혜가 제일 크다. 그 다음에는 스승의 은혜가  둘째로 크다. 부모의 은혜가 세째로 크다 이랬는데 이 기독교에서는 부모의  은혜가 제일 크다고 말했습니다.

 부모의 은혜가 그런데 부모 은혜가 제일 큰데,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 니가  살아있으면 뒤에 그 은혜를 감사할 수도 있고 은혜를 갚을 수도 있지마는 부모가  죽었으니까 죽었으니까 이 부모에 은혜를 갚을려 해도 지금은 갚을 시간이  없는데, 갚는다면 죽은 부모를 장례지내는 거 이것으로 끝나버리고 마는데,  그 은혜 중에는 제일 큰 은혜로서 그 은혜와 나와의 관련은 장례 지내는  요것밖에는 없는 요 마지막을 닥쳤는데 이렇게 은혜 중에 제일 큰 은혜인데 이  은혜에 대해서 사은할 일이 마지막으로 장례 지내는 요것밖에는 남지 않았으니까  '내가 장례를 지내고 와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허락지  않았다 말이오. '죽은 자는 저희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에 나라를  전파해라.' 허락하지 않았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그에게 대한 현실입니다. 그 현실에 사은에 대해서 제일  중요한 거, 또 현실에 대해서 책임이 제일 중한 것은 뭐 국가에 책임도 있고 또  사회에 책임도 있고 있지마는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는 가정 책임이 제일  무겁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가정 책임이 제일 무겁다 이러니까 '내 가족을 작별하게 해 주옵소서'  이랬습니다. '가족을 작별하게 해주옵소서.' 자기 현실의 책임 중에는 제일 큰  책임 '가족을 작별하게 해주옵소서.'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기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네 현실에 어떤 중대한 책임의  종말이라도, 네 사은에 대해서 제일 큰 사은에 대한 종말이라도 너는 거기에  속할 수가 없고 너는 관련을 가질 수가 없다.' 이렇게 금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 현실에 그만 죽음이 닥쳤으면 '지금 이 시간에 내가  공산주의를 만나 붙들려 죽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내가 벗어나게 되느냐? 내가  죽는다.' 이 급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음만을 생각하고 그 죽음의  두려움에만 생각하면 그 사람은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요  자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오. 그럴 때도 거기에서  옥문을 척 열고 자유로 출입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내가 지금 이 공산주의에  붙들리는데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이 장소에 있지 않고 내가 여서 만일  놓여 가지고 나가면 어찌 되겠느냐? 또 다음날에는 어찌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면 자기가 공산주의에게 붙들려 가지고 감옥에 갇혀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여기에서 이런 말을 하면 감옥 밖에 나가면 어찌 되느냐?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감옥 밖에 나가면 무슨 수치가 되겠느냐?' 감옥 밖에 것을  생각하면서 생각하면 그 감옥 안에서 자기의 할 말에 대해서 좀 지혜가 생기고  재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저 어쨌든지 '예수님을 팔고라도 지금 살기는 살아야 되겠다.' 이러지마는 이  시간에 예수님을 팔고 나면 이 감옥에 나가서 한번 생각해 본다 그 말이오. 또  자기가 모든 성도들을 대할 때 생각해 본다 말이오. 주님을 대할 때 생각한다  말이오. 하면 감옥 안에서 그말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성경에는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라' 네가 현실에서 주의 날, 네 마지막 날, 우주의 종말 시간 거기를 네가  생각하라 그말은 네 생각이 거기에 자유로 왕래 하라. 여기에 갇혀있지 말고  거기에 왕래하라. 왕래하면서 그날을, 그날에 있을 일, 그날에 드러날 일,  그날에 드러날 일 그날에 고정될 일, 네 고정될 일 그 일을 네가 현실에  생각해서 이 현실은 그날에 고정될 그 일을 인하여 이 현실을 사용을 해라. 또  그날에 도적맞을 그 일을 생각하면서 도적맞지 아니할 일을 이 현실에서 네가  생각하라. 그날에 대주재가 칭찬하고 만물이 다 존대하고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되어지는, 그날에 있을 영광스럽고 존귀할 것 거룩한 행실 경건 이것을 네가 이  현실에서 마련하라.

 그러기 때문에 네가 첫째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현실에서든지 현실이라는 그  감옥 속에 들지 말고 현실에서 첫째 생각할 것이 그날을 생각하라, 그날을  생각하고, 그날에 도적맞을 것, 그날에 드러날 일, 그날에 영광스러울 거룩과  경건 이것을 네가 생각해라. 그날에 드러날 일과 그날에 도적맞을 이것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네가 그날에 영광스러운 일, 둘째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네가 생각을 해라 그래 가지고 거룩과 경건을 이 시간에 만들려고 하면  셋째로 네 원수가 나타날 것이다, 네 원수 네 욕심 그놈이 네 원수라는 것을  네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욕심 중에 한 생의 욕심이면 그러면 그날을 생각할려 해도 어쨌든지 자기가  죽게 되니까 '아무래도 살아야 되겠다.' 살고 싶은, 죽지 아니하고 살아나고  싶은 생의 애착, 또 그 물욕, 또 정욕, 명예욕, 어쨌든지 평안해 보자는 것  안일욕 별별 욕심이 있는데 그 욕심 그놈이 들어서, 그 욕심 그놈만 없애버리면,  살고 싶은 것, 살고 싶은 욕심 그놈 만 없으면 그날에 고정될 일, 그날에 드러날  일, 그날에 수치스러운 일, 그날에 영광될 일, 그날에 영광될 일도 내가 알겠고  그날에 수치스러운 일도 아는데, 그 수치스러운 일은 이것은 면하고 영광된 일을  마련하겠는데, 공산주의에 붙들려서 변판원씨 모양으로 '너- 성구를  대면서-이래도 믿나?' '나는 믿습니다.' 칼로 푹 찌르니까 여기에 배를 푹  찌르고, 또 성경을 찾아 가지고 '너 이놈아 이래도 예수를 믿을래?' '믿습니다.'  또 푹 찌르고 이래 가지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날에 참 영광될 일이요 그날에 존귀한 일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위협을 주니까, 그날에 영광될 일도 알고 수치스러운 일도  알지마는, 그날에 영광된 일을 하고 수치된 일을 면하려고 하니까 이 욕심이란  놈이 와 가지고 지금 자꾸 꼬아대고 이렇게 내게 와 가지고 자꾸 유혹을 시켜서  욕심 그놈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그날에 영광된 일을 마련하지 못하겠고, 그날에  수치스러운 그런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하도록 하게 되고 자꾸 그렇게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자기를 제일 괴롭혀서 마련하지 못하고 수치를 마련하게 하는  그자가 누구입니까? 그자가 누구겠소? 네? 네? 옛사람 그자가 누구겠소? 그자가  누구겠습니까? ○○○씨, 그자가 그 나라에 제일 영광스러운 일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안 하려 하는데 하도록 자꾸 강권하는 그놈이  누구입니까? 뭐입니까? 그 욕심이 무슨 욕심인데? 그놈이 생의 애착욕이오. 네,  살고 싶은 욕심 알겠어. 생의 애착욕, 생의 애착욕 그놈이 들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때에 그때에 비로소 '아, 이 시간에 내가 영광을 마련치 못하고, 저  마지막 날에 영광을 마련치 못하고 이 수치스러운 일을 마련하게 하는 내 일대  원수가 생의 애착욕, 살고 싶은 욕심 죽기 싫은 욕심, 살고 싶은 욕심 요놈이 내  원수로구나,' 그때에 그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욕심 그놈이 내 원수라  하는 것을 그때 발견하게 된다 말이오. 이거는 참 마지막을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모든 우리 현실에서 이 죽음이라는 그놈이 닥치지 않고 그저 보통  돈이나 무슨 사업이나 이런 것 뭐 평범한 이런 것이 닥치는 그 현실에도 고만  우리는 현실이라는 그 감옥에 파묻히기 쉽다 말이오. 감옥에 갇히기 쉬워. 그  자기 현실만 생각해서 자기 현실에 피동된 사람, 현실에서 피동된 사람,  현실대로의 사람, 그 사람이면 그 사람은 감옥에 든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을 이용해야 된다 말이오. 이용해야 된다 말이오. 이 현실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이 현실에 참 주님을 영접하느냐 마귀를  영접하느냐? 현실에 이 하늘나라를 자기가 영접하느냐 지옥을 영접하느냐?'  이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작은 현실 이 평범한  현실에서, 이거 중요한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이 평범한 현실, 평범한 현실에는 뭐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건데 이 평범한 현실에서 이 현실을 생각지 아니하고 현실을 탈피해  가지고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자기의 개인의 종말 그 종말을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현실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 현실에서 개인 종말  자기의 종말 우주의 종말 이 종말을 이 현실을 초월해서 현실 이 감옥에 이  현실이 쌓였는데 이 현실 감옥에 문을 열고 확 나가 가지고 자유해서 그 종말  시간 자기의 거리 먼 제일 자기가 거리가 제일 먼 곳이 종말 시간입니다.

 그 종말 거기에 왕래하면서 거기에 대한 일 드러날 일, 또 그때에 모든 것이  불타질 때에 자기의 것이 불타질 것 또 그때에 다 빼앗길 것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걸 연습을 해서 마지막에는 죽음이라는 그  최고의 강한 현실이 강한 현실이라는 강한 현실이라는 아주 제일 견고한  현실이라는 이 감옥이 자기를 둘러싸도 자기는 그 감옥문을 확 열고 자유해  가지고 종말 시간에 자유를 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 현실에  연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현실에서 종말 시간 그날 하나님의 날,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르는 날, 또 이 우주가 끝나는 날 그날을 간절히 사모해라. 그날을  사모해라. 제일 첫째가 그날 사모하는 것.

 그러면 그날을 사모하면서 거기에 속한 두 가지, 모든 드러날 일, 도적맞을 일  그 불타니까 불타는 게 중한 문제가 아니라 도적맞는 것과 그날에 드러나는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걸 생각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이 현실에 여기에 싸잡히지 않고 또 자유롭게  자기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 '아, 그날에는 제일 영광 스러운 것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것 두 가지다. 이것을 지금 마련해야 되겠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  마련하는 것은 현실에서 밖에는 마련할 수가 없으니까 현실에 이거 마련해야  되겠다. 변동시킬 이런, 현재 이걸 변경을 시켜야 되지 기간이 지나면 안된다.

이 철재라는 이 현재 이 시기를 변동을 시키야 되겠다. 모든 그날에 수치스럽고  그날에 후회될 것은 전부 이 시간에 그만 뜯어 고쳐서 변동을 시켜버리자 여기  문서가 있으니까 뜯어 고쳐라. 변동시키자.

 또 그날에 도적맞을 것은 빨리 바꾸어라.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바꾸어라. 또 욕된 것은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꾸어라. 이래 저래 바꾸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하고, 그럴려고 하면 뭐이냐? 이 정과 욕 이놈이 들어서  방해하는 것을 네가 알게 되리라.

 3장 3절에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먼저 이것을 알아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3장 3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뭘 알아?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이 기롱하는 자들이라 말은 인간의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시간 도적맞을  것 그날에 모든 일이 드러나는 것, 또 거룩과 경건 이 중요한 것 이것이  인간에게 최대 문제이고 중요한 문제인데, 최대의 중요한 문제인데 이 문제를  아주 비웃는 다고. '시시한 소리 말아라 저 정신 병자라 뭐 그런 허무한 소리를  하는가?' 이렇게 기롱한다 그 말이오. 아주 조롱을 해 비운는다 그 말이오.

이렇게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전부 다 이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와서 이런 자들이 네게 대해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고' 그 자들은 다 정과  욕으로 사는 자인데, 정과 욕으로 사는 자들인데,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데 있느뇨?' 마지막 시간을 자꾸 부인하게 합니다.

마지막 시간을 부인하도록 이렇게 만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정과 욕으로, 욕 이놈이 들어서 에덴동산에서도 아담 해와도  죽였고 오늘도 인간을 죽이는데, 나를 내 속에 있는 정과 욕 이놈이 들어서 내가  지금 오늘에 해결해야 될 이 중대한 일, 마련해야 될 중대한 일, 오늘에  바꾸어야 될 것, 이 도적맞을 것을 여기서 바꾸지 않으면, 바꾸지 않으면 지금  지금 그거 놔 놓으면 도적 맞는데, 저는 우리 나라에서 그 화폐 개혁을 한번  참여했습니다. 아마 얼추 다 참여했을 것입니다. 화폐 개혁을 참여했는데 그 돈  바꾸러, 이러니 돈 바꾸는 기간이 떡 되어서, 그 기간이 지나가면 그만 돈 못  바꿔. 다시는 못씁니다.

 이러니까 그때 뭐 돈 바꾸려고 사람들이 굉장히, 밤낮 은행의 사무원들이 쉬지  않고 밤낮 사무를 봤어. 어떻게 사람들이 밀려오는지? 그 기한이 되면 그만 아주  못 써 버리고 하니까, 그 안에 바꾸면 하지만 안 바꾸면 못 쓴다.

 이러니까 그 바꾸려고 애를 썼는데, 그 못 바꾸면 못 쓸 줄 아니까 급해서  바꾸려 고 밤잠을 안 자고 날뛰었다 그 말이오. 이런데 도적맞을 걸 지금  바러버리면 돼 버려, 그만. 썩을 것 썩지 않을 것으로 바꿔버리면. 얼마나  급급하겠습니까? 이런데 이 일을 방해하여 못하게 하는 놈이 내 속에 들어  있어서 이놈도 문제인데 이놈만 문제가 아니라 밖에 있는 인간들이 다 그런  인간들이라.

 그런데 그 인간들이 와 가지고 '네가 정과 욕으로 살아라. 저 어리석게 한다.'  정과 욕으로 살지 않는다고 조롱을 하고 기롱을 하고 어리석다 하면서 마구  울럭거리니까 나도 거기에 따라서 그 사람 되기 쉽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어쨌든지 우리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말 것. 갇히면 두말할 것 없이 정과 욕  그놈대로 현실은 다 사용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첫째 생각하는 것이 그날 그날을 생각하되 그날 생각하는데 다  기울여. 간절히 사모하라 그말은 여유가 없이 네 생각을 거기에 다 기울여라.

그날에 기울여서 뭐하려고? 그날에 모든 일이 고정된다. 고정되니까 고정되기  전에 네가 고칠 것 고치라. 시험지를 내면 헛일이다. 시험지를 내면 헛일입니다.

시험지를 내면 그 다음에는 고정이다.

 다시는 변동 못한다. 시험지를 곧 내야 될 시간이 됐으니까 시험지 내기 전에  네가 고칠 것 있으면 고쳐라. 고치면 그거는 고친 것은 안 고치는 건 못하지만  고친 것 또 틀렸다 소리는 안 한다.

 그날에 이제 고정될 일 드러날 일, 그날에 드러날 일, 그날에 도적맞을 것,  그날에 불탈 것, 또 그날에 남아 있는 것 거룩한 행실 경건, 남아 있는 것  이것을 둘째로 하려고 마련하면 네 원수가 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네 원수가 네 안에만 있을 뿐 아니라 네 밖에 있는 모든 사람 이거와 다  너를 대적해서 너를 넘어지게 하고 너를 멸망하게 하는 그런 것들이 네 주위  환경에 가득찼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모두가 다 자기 중심의  세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네가 빠져서 안 죽을 수가 없다 말씀한 것같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에 말한 것은 다른 것은 다 해석을 해서  힘드는데 제일 먼저 이 감옥에 갇히지 말고 어쨌든지 현실에서 그날과, 그날에  네 생각을 다 기울여라.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 네 현실에서 그날을 간절히 사모한다는 이것이 쉬운 게  아니라. 이게 생명 내놓기보다도 어렵습니다. 생명 내놓기보다 어려 워요. 이게  어려워요. 이러니까 아주 쉬운 데서 연습을 해 가지고 최고의 어려운 데에 도,  이 감옥에만 갇히지 않고 자유하면 인간 성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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