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대접 - 말세준비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8일 수전집회

 

본문 : 계 17장 12절∼14절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광고하나 하는데 공회 소속 각 교회의 교역자는 교인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구원 도리를 다시한번 새김질 해 주시도록 해 달라는 그런 광고가  있습니다.

 아마 이거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밤에 몇 군데 돌아봤는데 어떤  데서는 자기 교인들을 모아 놓고 이제 배운 말씀을 그들의 정도에 따라서  알리도록 그렇게 애를 써서 새김질 해 주는 그런 교회들이 있었고 또 어떤  교회는 그저 장터에 온 거 모양으로 뭐 놀기나 힘쓰고 그렇게 하는 그런  교회들도 있습디다.

 교역자들이 교인들을 여기에 인도해 다 놓고, 이제 왔으면 됐다 하고서 자기는  자기대로 좋은 그런 참 쉬는 기회를 가졌다 생각을 하고 설교할 것도 없고  앉아서 듣기만 하고 또 전에 다 들은 말씀이 많기 때문에 예사로 듣고 평안하게  앉아서 힘쓰지 안하는 그런 교역자는 그거는 마귀법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법은 어떤게 마귀의 법인고 하니 처음에는 수월하고 좋고 평안하고 뒤에  결말은 고통스러운 것이 마귀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법은 처음에는 힘들고  괴롭고 어려움을 겪으고 나중에 결과는 평안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올라가면서 떨어지는 것이 마귀의 법이요 올라갔다 뚝  떨어지고, 열 발 올라갔다가 스무 발 떨어지고 또 열 발 올라갔다가 스무 발  떨어지고 자꾸 그래 가지고 지옥 밑창까지 떨어져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법이요.

 성령의 법은 자기는 그 열 자를 나는 거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열자를 더  내려가서 좀 평안한 거 보다도 나는 이 평안을 가질 수 없다, 좀 덜 평안한 거,  또 조그만한 고통보다 나는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될 자라, 이래 가지고서  징계를 받을 때에는 '나에게는 이 징계가 너무 가볍습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는  '이 징계는 내게 너무 좀 경합니다.' 또 수고로운 일을 할 때에는 '나는 아,  이렇게 이보다 더 내가 수고를 해야 될 자지 나는 이런 자격이 없습니다.' 영광  받을 때에도 또 내려가고 내려가면서 저는 자 주 기어 내려가는데 하나님이 자꾸  치켜올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법이요,  마귀는 제가 올라 갈라고 하는데 이제 잔치의 상좌에 앉았다가 너 저 하 좌로  가거라 해서 쫓겨 내려가는 그것이 마귀법입니다.

 이러니까, 여기에서 새김질해서 어쩌든지 교인들 데리고 왔으히 이 교인들이  은혜를 여기서 폭 받아야 되겠다. 이 내가 설교해 가지고서 은혜를 끼치는  것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설교를 해 주니까 나는 여기에서 보조 역할을 해  가지고 어쩌든지 여기에서 은혜를 담뿍 받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그 면을  가지고 힘을 쓰면 여기에서 은혜를 받았다 말이오.

 은혜를 받았으니까 이 다음에 집회 올 때에 오도록 그렇게 권유를 할 때에 아주  수월할 것이고, 또 자기가 교회 가서 목회 할 때에 아주 수월할 것입니다.

그러면 뭐 다른 말 할 것 없이 잘못할 때에는 '너 그때 배울 때 어떻게 배웠지?'  하면은 그만 벌써 그거 가지고 알아채서 회개하기 때문에 자꾸 끝이 좋아지고  수월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역자들이 아주 게을박고 어떤 교역자는 그런 교역자도 있습니다.

야, 내가 우리 교인에게는 내가 제일 천하제일로 이래 알고 있어야 될 터인데 이  집회 데리고 가 놓으면 거기에 가서 설교하고 은혜 받는 것보다 '그만 우리 교회  교역자는 천상천하의 제일인 줄 알았는데 그거 아니로구먼' 이라면서 제 교역자  가치가 떨어질까 봐서 그렇게 교인들은 안가자 할 수는 없고 가자 하기는  하지마는 그저 속으로는 덜 왔으면 좋겠다. 싶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교역자들을  데리고 오는 그런 심보를 가진 그런 교역자들이 제가 처음에 서울에 다닐 때부터  그런 교역자 있었습니다.

 그런 심보를 가진 교역자들은 지금 그 목회를 바로 못 하고 있습니다. 그저 이  한국에 있어도 그렇고 외국에 가도 그렇고 항상 고생입니다.

 또, 어떤 교역자는 내가 먹이지 못하니까 이 밥을 얻어 먹여라도 이걸 좀  영양을 채워줘서 길러야 되겠다. 자기에게 젖이 없으니까 덜 나니까 모지라니까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고 굽신하면서 '아이구 우리 애기 젖 한번 먹여 주이소.'  오만 심부름 다하고 오만 말 다하니까 다른 어머니들이 있다가서 '아따 아이 젖  좀 또 빨려 달라 하는구만 벌써 보니까, 아나 한 통 먹어라' 그래 인제 한 통  이리저리 젖을 얻어 먹이면서 그 아이에게 영양 보충을 해서 그래 기르는 그런  어머니도 있다 그거요.

 이런 말이 요새는 뭐 우유가 짜다라 꽉 찼으니까 해당이 안 되지만은 이치는 꼭  해당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그 영양 채워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든지 은혜를 받도록 이래 해서 교인들을 바로 자라도록 관심을 가지고  애를 써야 되지 세상에서 제일 제일 자유 있는 자유 있는 직업이 교역자  직업입니다. 제일 자유 있는 직업이 교역자 직업이요.

 그 자유라 말은 의로운 자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악의 자유를 말합니다. 아주  뭐 암만 해봤자 누가 뭐라 합니까? 아무 일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 말해  보면 만날 누워 잠이나 자고 이렇다고.

 또, 되기로 말하면 교역자직이 제일 되고 상전 많기로 말하면 교역자고, 자유  많기로 하면 교역자입니다. 그러나 자유에는 반드시 거기에 뒤에 가서 책임이  있고 책임이 있는 그것은 뒤에 가서 그 검사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가 게을을 부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게을을 부려요, 또  교역자가 아주 된 사람은 되요. 파송을 해 보면 교역자로 파송돼 가지고서 고만  뭐 건강하던 사람들이 바짝 마릅니다. 병이 들어서 그만 바짝 말라요. 이런 것은  그래도 고 양심을 버리지 안하면 뒤에 가서 목회 할 수 있는데 이게 교역자 나가  놓으니까 고만 비쩍 말랐던 것이 그만 돼지 모양으로 살이 뚱뚱하이 쪄 가지고서  만고에 편하게 논다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은 교역자 성공을 못  해요.

 이러니까 여기에서도 자기가. 교인들을 될 수 있는 대로 교역자라면 남반들도  이라고, 또 돌아다니면서 여반들도 어디다 앉힐고, 빨리 동원해 가지고 한군데  앉아라 한자리에 앉도록 자꾸 앉혀 놓고 옆의 사람 돌봐요. 자기 교회의 여반은  여반대로 돌려 앉혀 놓고. 또 남반은 남반대로 돌려 앉히고, 눈이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저 조나 안 조나 이래 자꾸 살펴보면서 자꾸 이래 시선이 가 가지고  뭐 조는 상 바라면 그 뒤에 또 거석 해 가지고 안 되면 애가 터져서 옆에다가  서로 연락을 해 가지고 뭣을 사탕을 한 개 주든지 눈치를 채서 이라면 채서 안다  말이오.

 그라면 손가락으로 이래 표시하든지 요래 표시하든지 여래 표시하든지 이래  가지고서 그 조니까 '그 사탕 줘라' 이라면 사탕 갖다 이래 주고 이러면 이렇게  애를 써서 그 어머니가 아이를 갓 낳아 놓고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잘 보호를 하면서 길러야 되지 낳아 놓고는 뭐 집어 던져 버리고 젖먹을  때가 되든지 말든지 먹든지 말든지 이래 내 던져 놓은 것은 안 됩니다. 안돼요.

 여기 찬송 인도하는 거, 그 마이크가 저음이 높구로 하고 고음은 죽이고 저음은  높게 좀 웅장하게 하십시오. 여기 찬송 인도하는 분. 그라고 여기 ○○○목사  혼자 해요. 저 ○목사님 인도하지 말고. ○목사님 인도하니까 품군이 돼서 안  됐어. 내가 보니까, 저 우리 집에서는 들으면 알아요. 이래 푹 이래 또 한번  자랑 한번 나 음성이 좋소. 곡을 잘 맞춰요 음을 잘 맞춰요. 턱 이래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툭 끊어지고 도무지 저 비위가 상해서 안 됐어. 충성이  없다고,  또, 여기에는 또 얄궂게 마이크가 뭐 어째 깽깽깽 그래 놓으니까 본야 깽깽깽  거리게 해 놓으니까 이거 처음에는 에이 그거 아마 그거 느꼈으리라.

욕욕스러워. 내가 하자 내놓으니 깽깽 깽깽 하니 또 듣는 사람이 안 듣지 그래  놓으니까 양쪽에 아무 말 없는 암투가 있다 말이오. 그 느낀 사람 있어요 없지?  느낀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봐요. 못 느껴? 그러면 나만 오해했는가  모르겠다.

 그래 가지고 그저 ○○○목사님 말이요 찬송 인도할 때에 그 성(聲)이 소리는  껍데기 중의 껍데기요. 또 그 곡도 껍데기 중의 껍데기요, 그 안에 가사는  알맹이요 가사 속에는 자기가 참 이 집회에서 은혜를 어떻게 받도록 이 무리들이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은혜 받는 것보다도 주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되겠다.

요기 속에 골자지 그것만 있으면 돼요. 그것 때문에 택정해 세웠는데 이 훅  나서서 해 볼라 하다 보니까 소리가 깽깽거리지 또 할 수 없어 뒤로 물러가고  그런 거 보이는데 그래 하지 말아요.

 나는 찬송할 줄 모릅니다. 그 찬송 인도하는 그 지혜를 배웠습니다. 내가  그전에 언제 또 한번 말했는데. 예를 들어서 '저 높은 곳을' 이래 떡이라면  '여기 몇 장 합시다' 이래 놓고 곡이 되어 나오면 '저' 이라면 '저' 이라면 우  따라하지 안 해요? 그라고 나는 살짝 그 다음에 가만히 숨었어. 가만히  숨어보면은 서로 노래 부르는데 찬송하는데 그 제일 좋은 게 있거든 좋은데 그만  내가 거기에 따라간다 말이오. 거기에 따라가 가지고 그만 일체가 되게 해  버리면 고만 되는 거라. 그래 놓으니까 모두 말하기를 '목사님이 음은 참 잘  잡는다고서' 옳은 무슨 음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서 하도록 하고 어데 있어. ○○○목사님, 용기를 내요. 소리를 내보니  너무 허무하니까 가라 앉아버려. 이걸로 했습니까? 예? 장, 저걸로 했어? 그  저음을 높이고 웅장하게. 웅장하게 할 수 있지 않아? 웅장하게 해서 이렇게 좀  웅장하도록.

 우리가 지금은 고치는, 고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거 뭐 그  사람의 그 사람의 눈치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어찌 되고 하는 그런 것은 서로  대립되는 서먹서먹한데 흉금을 안 열어 놓은 그런 데서 하는 거고 여기서 이라기  때문에 (흉금을 열어 놓고 이라기 때문에 여기에서 안고 치면 안 고쳐지요.

이러니까 와 그게 낫나요 저게 나을 건데 잘 들립니까? 저, 저 들리소? 저 뒤에  들리면 손을 들어 봐요, 아! 잘 들리네 와 그라면 못 쓸 거 갔다 놨노 이거 앰프  기사가 강사를 병신 만들면 병신 만들고 그래 마음대로 한다고. 와 그러냐면은  이거 마이크에 따라서 말이요 깽깽깽깽 거리고 얄궂게도 되고 또 참 아름답게도  되고. 그래요.) 인제 ○○○목사님 한분 말하는데 다른 분이 다 따라서 거기에서  회개를 하고 고쳐야 돼요. ○목사님은 인제 내가 하도 흉금을 열고 이래  놓으니까 뭐 말해 약발이 안 받아서 약발이 없어 또 안 됐어. 그래도 삐꾸지  안하고 뭐 감사하는 건 좋은데 그래 봐야 효력이 적어. 약발을 안 받아. 약발 잘  받는 데는 삐꿔 탈이고 약발이 안 맞는데는 효력이 적어 탈이고 그래.

 성경에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영생을 이루어야합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미워하는 것은 누가 뭐 착실히 미워하는 게 있겠습니까마는 성경은  해석하기를 사랑치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라 그렇게 딱 해석을 붙여 놨습니다.

사랑치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그 속에 영생이 없다 그 말은 영생은 생명이 아닌데 그 영생이 되는 승리  생활을 못 하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승리 생활을 못  한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제가 이기선 목사님에게 '그러면 그래 따라 다니면서 이 목사님이 공산 주의 그  치하에 있었는데, 공산주의로 더불어 싸우는 그런 전투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더냐? 그 비결을 김 목사님이 좀 말 좀 해라.' 그래 내가 하룻밤에 우의동  산비탈에 둘이 누워서 얘기를 했습니다.

 했는데, 이기선 목사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그렇게 가르쳐 주시더라고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진리 사랑하는 것과 이 세 가지  사랑을 놓지 안해야 된다.' 이 셋은 하나로 역사하는 것인데 사람이 잘못하면  공산주의자들에게 자꾸 박해를 당하고 이렇게 되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만 그  사람이 대적이 돼 가지고서 그 사람을 사랑치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 되게 된다.

그 사람을 미워했는데 조금 있다가 보면 진리도 미워지고 만다. 조금 있다 보면  주님도 미워지고 만다. 이러니까 영생을 못 이룬다. 어쩌든지 공산주의를  사랑하는 고것을 요동치 말아라. 맞아도 그를 사랑하고 고문과 고행을  당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라. 그 사랑이 변동되지 안하면 진리와 하나님은  변동되지 안해서 네가 승리를 거두리라, 그렇게 그 전법을 그렇게 가르쳐  주더라. 내가 그 소리를 듣고서 참 이기선 목사님은 귀한 종입니다.

 월남할 만한 그런 기회가 많이 있지마는 월남을 기어코 안하고 그 자리에서  순교를 하셨는지 뭐 그대로 계시다가 그만 늙어서 세상을 떴는지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남북통일이 되기를 얼마 전까지 제가 소망한 것은 그 다른 이도  좋지마는 통일이 되면 이기선 목사님을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늘 소망 가운데서 있었는데 저는 평생에 못 봤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지금까지 아마 살아 계시지 않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그 영생이 언제 되는고 하니 그 현실 생활에 흠이 없는 그  생애가 이루어졌으면 그것은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생명과 다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돼 가지고 있는 것이 생명이요 연결돼서 하나님의  그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자기에게 연결돼서 자기에게 건너와 가지고 (와 이래요?  내가 소리가 적어서 그렇나? 어? 그래, 그런가? 그래 안들리면 안들린다  하이소.) 그 생명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모든 은혜가 자기에게 전해 오도록 연결되어  있는 그 연결이 생명입니다.

 또, 영생은 그 연결되어 있는 그 생명으로 인해서 자기 현실에서 연결된 그  생활을 할 때에 그것이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토막 토막으로  지나가고 생명은 영원히 같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승리 생활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준다 이랬습니다.

 생명의 면류관 준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이 승리하는 승리를 너에게  주겠다.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이 승리하니까 그 모든 행동이  하나님에게 연결되어서 거기에서 피동되는 그 생활이 이루어졌다 하는 그  말입니다.

 '살인하는 자는 미워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  이러니까 모든 사람을 자기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과의 연결된 연결이 자기의  생애에 건너와 가지고 역사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 것이  그것이 거기에는 조건으로 둬서 말씀한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의 현 생활에 건너와 가지고서 자기를 도와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이것도 쉬운 거  아닙니다. 아주 조건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말씀했고, 사데 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살았다는 이름만 있지 실상은  죽은 자로다' 그 말은 기본적인 생명은 가지고 있지마는 네 활동적인 현실  현실의 생명에는 네가 죽은 생활하고 있다. 하나도 영생을 이루지 못했다 그  말입니다. 영생을 이루지 못했다. 왜 이루지 못했느냐? 이루지 못한 이유의  원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생을 이루지 못한 원인은 '네 행위의 온전함을  네가 찾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생애의 온전함이 이루어져야  영생이 되는 것인데 온전함이 이루어지지 안했으니까 영생이 안 됐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누가복음에는 보면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 다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사랑하고 이렇게 이 전부를 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 이 삼각  사랑에다가 있는 것을 다 기울여야 영생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이 일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면 영생 이것이 우리의 건설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 성화 구원을 이루려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무슨 기본구원을 이루려고 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기본구원은 벌써  얻었습니다.

 언제 며칠 몇 시간 전엔가 어제인가 언제인가 어떤 사람이 묻기 때문에 '그 뭐  그라면 우리 한국에는 예수교가 건너오기 전에는 사람들은 어찌 됐습니까? 그  모든 유교니 다른 불교니 그렇게 믿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어찌 됩니까?' '아,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고  안 믿었으면 구원이 없지' 이러니까 '아, 그때 예수교 가 없었으니까 믿지를  못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안 믿었으니까 구원 없지.

 그라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도가 건너오지 안 해 가지고서 주님을 믿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택이 됐으면 어떻게 됐느냐?' 이렇게 물으면 '선택 됐으면 구원 얻지' 그렇게  답할 수 있다 하는 그걸 간단하게 내가 말해 줬습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우리가 나기 전에 벌써 창조될 때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창조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그때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이가 그만 나와 가지고서 빠닥빠닥하다가 세상을 떴는데 그 아이의  구원이 어찌 됩니까?' 어떤 사람은 '부모가 믿으니까 그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

그렇게도 답을 하는데 그 답은 애매한 답입니다.

 '그 아이가 뱃속에서 배어 가지고 있다가서 유산을 시켜서 아이가 낙태가  됐는데 어찌 됐느냐?' 그것도 좀 애매하지마는 그만 그것으로 말하면 성경대로  입니다. '택함을 받았으면 낙태된 사람이라도 구원 얻고 택함 받지 안했으면  오랫동안 백 살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또 아무리 예수를 믿어서 그 성직까지  가지고 했다 할지라도 택하지 안한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배신을 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을 받는다. 그런고로 구원 얻고 못 얻는 것은 선택의  거기에다가 근거를 둬야 된다.' 하는 그것이 제일 성경 적이고 바로 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성화구원 이 성화구원이 건설구원이요, 또 이걸 다른 말로 말하면  영광구원이라 그렇게도 말을 하는데 우리가 모두 성화구원을 이루려고 지금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화구원을 이루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이 성화 구원 이룰려고  애쓰는 것이 저 기본구원을 우리가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성화구원을 이루려고 애를 쓴다고 하면 성화구원의 그 표준이 표준이  어디까지인지 어느 정도라면 성화구원이 될 것인지 하는 표준을 바로 정해야 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예를 들면은 백점이 돼야 성화구원이 된다  이렇게 말했는데 오늘 우리 교인들은 생각하기를 한 점이라 한 점만 돼도 구원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놨으니 거리가 많기 때문에 그 성화구원이 너무 허무하다  말이오.

 성경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그 속에 영생이 없다' 이랬으니까 그것도  사람을 그 모든 사람 원수까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사랑하되 자기 어데까지나  주관적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객관인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정할 수 있는  데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되어져야 이제 그 영생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거기에는 그렇게 어렵게 말해 놨고, 또 사데 교회에 말씀하시기는 행위의  온전함을 보지 못했다. 행위의 온전히 이루어 져야 행위의 온전 거기에서 비로소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행위의 온전에 미달되면 영생이 안 이루어진다, 또  그렇게 말씀했지요.

 또, 자기에게 있는 마음, 목숨, 힘, 그 성품, 뜻, 이 모든 것을 다 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이렇게 사랑하는 옛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된 새사람을 귀하게 여겨 사랑하게  됩니다.

 왜?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힘들여 구속해놨기 때문에 사랑해야 되겠고 또  그거는 만인간을 구원하는데에 도움이 되고 전 교회가 억억억 얼마가 되든지  모든 사람에게 소속한 한 분자이기 때문에 그 분자가 잘못되면 전 교회에게  해독의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님과 이웃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도  아껴서 잘 기르는 것이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번에 ○○○목사님이 부산에 와 가지고서 설교를 하는데 그 목사님이 그래 그  I.C.C에서 박사 학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이래 박사 학위를 받아서  '오늘 가운을 입고 나갈까요' 이러기 때문에 '이미 받았으니 입고 나오십시오.'  이랬더니만 뻐얼건 그 박사 옷을 가운을 입고서 나와서 그 날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그래요. '아, 여기에 와서 서부교회에서 설교하려고, 우리 아들이  말하기를 자기 아들도 목사인데 -말하기를 아이구 아버지 여기 기도원에서  설교하듯이 그 식 가지고서 서부교회 가면 안 됩니다. 내가 고려신학교에 다녀서  서부 교회를 잘 아는데 거기에서는 아주 조심 있게 해야 될 겁니다.' 이래서  조심 있게 하려고 사흘을 연구를 해 가지고서 설교 준비를 했는데 와 놓으니까  고만 그 설교는 못 하겠어 안돼서 다시 저 대신공원에 가 가지고 하룻밤 산에가  자고 왔다고 하룻밤 산에가 자면서 거기에 가서 그렇게 준비했다 하는데 그 날  참 은혜 있는 설교를 했어요.

 했는데, 그분 가운데에서 하나 내가 좋은 걸 하나 받은 것은 그분이 말 하기를  '이 서부 교회 설교를 하려고 내가 참 조심을 많이 했습니다. 나를 많이  아꼈습니다. 이 서부교회 한번 설교하려고 많이 아끼고 조심하고 날 아주 단속을  해서 아주 많이 아끼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지장 없도록  하려고 나를 얼마나 아껴서 애를 썼습니다.' 고 말을 들을 때에 내게 대해서 좀  가슴이 콕 찔려졌습니다.

 찔리는 것은, 이런데 나는 서부교회 이 설교하는데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크신 분의 일을 수종드는 데에, 내가 그 수종드는 데에 이 천한게  수종드니까 얼마나 조심하고 얼마나 빚고 닦고 깎고 이래 충성해 가지고서  그분이 쓰시는 데에 털끝만치도 지장이 없어야 될 터인데 맨 날 이거 하시는  일을 가로막으면서 이거 도무지 예사롭게 생각하니 이거 참 죄인이다. 참 이  ○○○목사님은 이 서부 교회 와서 설교하는 것도 이렇게 조심하는데 주님에  대한 그 수종을 드는 그 수종이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주님의 수종을 드니 조심해서 새가 만일 그 수종들다가 수종드는데 흠이나  점이나 있고 잘못될까 해서 자기를 깨끗게 한다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제가  다시 회개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모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거룩하게 했다'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때문에 당신을 거룩하게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도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이 큰 일을 맡으시는 당신을 그렇게  깨끗하게 거룩하게 준비했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생명의 수종을 들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만 이 수종들면서 어떤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조그만한  교회를 맡아 이래 가지고 제가 오히려 맞는데 너무 지나치게 너무 과분하게  거기에다가 투자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보면 목회에 대해서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래요.

 이렇게 우리는 이 구원 이루는 이 영생이 이루어지는 그 도수가 어디까지인지  영생을 이루는 그 행위의, 행위의 그 질이나 양이나 그 도수가 어디까지인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지 안하고 고만 뭐 아무나 따나 살아도 일 년에  한번만 주일 지켜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인들은 나는 가보지 안했지마는 거기에서는 일 년 내내 한번도  안하고 크리스마스 한번 오는 그것 가지고 자기는 교인으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  그렇게 인정을 한다고. 그것이 잘못 인식입니다.

 또 집에서 예배보고 그 방송을 듣고 예배보고 이래하는 그것으로서 족한 줄  아는 그것도 뭐 다른 은혜 받는 면은 더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의 재림이 가까와 올수록 그때 모이는 것을 더 힘써서  모이는 그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격발케 해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자기  집안에 앉아서 예배보고 이러니까 그만 그것이 모본이 돼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일을 꼭 지켜야 된다는 그런 그 격발심을 그런 용기를 열심을 깎아  버렸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라디오 방송 듣고 구원 이루어 봤자 다른 사람  손해 보인 그 손해 배상을 물고 나면 하늘나라 가서 자기 모가치 별로 있을게  없을 것이라 그거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그러합니다. 처음에 그 선교 백주년이라고 금년에 지금 그  기념 축하를 한다고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처음에 교회가 와 가지고 할  새에는 그 뭐 선교사들은 좀 신앙이 그랬어요. 그래도 선교사들도 그 신앙이 그  오면서 본토에서는 신앙생활을 아무나 따나 했지마는 선교사로 탁 오고 난  다음에는 그래도 자기네들대로는 제일 이상적인 신앙생활, 흠 없는 완전한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보이겠다고 힘을 썼기 때문에 그때 선교사들이 온 선교사의  신앙보다는 여기에 전도를 받은 신앙들이 훨씬 깨끗해졌습니다.

 또 그래 가지고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참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떻게 신앙이 깨끗했는지 그만 신앙생활하는 그때부터  의례히 새벽 기도는 새벽 예배는 보고 새벽 기도는 할 줄 알았고 이래서 예수  믿으면 새벽 예배. 주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또 수요일 예배 이렇게 대예배  세 번 또 새벽 기도와 이 네 가지 종류의 예배는 의례히 드린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 그렇게 드리고, 또 집이 멀어서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 집가의 산에 가서라도  기어코 새벽에는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뭐 지금은 자꾸 흐려져 가지고 이제 의례히 그 좀 큰 사람 대인들, 아주 좀  높은 사람 고런 사람들은 그만 새벽 기도는 거의 안 나옵니다. 우리 서부 교회도  장로님들은 새벽 기도 안 나옵니다. 그거 암만 무슨 조건 말하지마는 새벽 기도  안 나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일인 줄 알아야합니다.

 왜? 주님도 하루 새벽도 빼지 안하고 꼭 하나님 앞에 새벽 예배를 드리고 새벽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러니 이 장로님들도 어려운 가운데에서 어려운 가운데에서  새벽 기도 나오는 거 그것은 어려움 가운데 나오니까 다른 사람에게 주는 그  양식이 더 많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이들이 아이구 저런 이도 그런데 열두  시까지 사무보고 열두 시까지 일 보고 저런 뭐 집에서 얼마나 높고 일을 얼마나  복잡하고 이런 데도 이 새벽 기도 나오니까 이거 나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양식을 많이 주는데,  이제 그만 새벽 기도 안 나오니까 그런 분들이 안 나오는데 우리가 나가는 것은  천한 장로가 아니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만 천한 장로는 새벽 기도 나오고 귀중한  장로는 새벽 기도 안 나옵니다. 이렇게 잘못된 관념들을 벌써 가지게까지  되어지는 것 같애요.

 그래, 내 어떤 사람 새벽으로 일찍 일어나고 이러니까 떡 말하기를 '부자는  모두 늦게 일어난대요' 부자는 늦게. 늦게 일어나야 부자가 되지 늦게 일어나야  부자가 되지 일찍 일어나면 부자가 안 된대요. 그러니까 모두 사장들 그런  분들은 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에 아홉 시나 여덟 시나 돼야 일어난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이래 가지고 잠만 새벽에 늦게 누워 자면 부자 될 줄 알고 사장될 줄  알고 이래 여덟 시나 아홉 시나 그래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장도 새벽으로 아침으로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그 회사가 좀 있으면  절단이 납니다. 암만 그래도. 물론 그 큰 회사를 경영한다든지 자기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밑에 있는 다스릴 그런 것을 모두 다 내일 할 일을 오늘 전부  다 간추려서 다 뭉텅거려 놓고 사람들에게 분배해 줘서 사람들이 하기만 하는  것이지 속으로는 그 사람 혼자 다 하는 것이라. 혼자 일을 다하고 그 하는 그걸  여러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기만 내야 그것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하는데 자기는 자리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불완전해서 잘못돼서  안 되고 고장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열 두 시까지 모든 경영을 다 하고 이래 놓고 자, 누으니 부득히  아무래도 잠은 자야 또 일을 해야 할 터이니까 모두 다 직공들 출근이 여덟 시  반이나 아홉 시 이러니까 그때까지는 잠을 자야 되겠다. 이래서 잠을 자고  이라는데, 사정상 일하기 위해서 그라는 건데 그 본을 뜨고 고만 늦게 누워 자면  사장되고 부자되는 줄 알고 이래 가지고서 그래 늦게 누워 자는 그런 사람들 다  회개해요. 우리 교회 젊은 청년들도 교만쟁이 그런 청년들 많아. 그거 잘못된  짓이오.

 그런 사람들은 사장이 자기 회사에 들어가면,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인데 특출한  사람이 있는 줄 압니까? 좀 특별히 유별하게 좀 선천적이나 후천적이나 좀  남보다 앞선 사람이 있기는 있지마는 다 대동 소이입니다. 대동소이라 말은 다  많은 것은 꼭 같고 다른 것은 조금만 다른 것이 있어요, 사람이.

 이런데, 밑에 있는 부하에게 그 모든 것을 일을 시키려고 하면은 벌써 나는  차기 전에 밤에 앉아서 해 보고 요래 보고 저래 보고 여러 번 연습한 것인데  연습을 했는데 자기가 다 연습했는데 죽 가서 보니까 그 하는 일이 모두 자기가  밤새도록 연구해 가지고 해 보고 누워서 눈감고 몇 번 복습 해 본 일인데, 그  복습해 본 일이 와 보니까 하는 일들이 잘못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잘못 됐다, 이거 뭐 틀렸다 저거 틀렸다 자꾸 챙기고 또 이거  어짤라고? 그거 이래라 저래라, 아 묻는 대로 물으니까 척척 바로 가르쳐 주고  이렇게 바로 지도를 하고 틀린 것을 척척 지적하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별스러우면 그런 줄 압니까? 그 사람이 정신을 많이 써 가지고 미리 눈감고  집에서 다 그걸 연구해 가지고서 아무것이는 무슨 일 됐고, 시험이 이를 것이고  고 사람은 요런 시험에 들 것이고 요런 꾀를 팔 것이고 요런 부정을 할 것이고  요걸 다 알고 겪어 가지고서 그래 가 가지고 연구 해 가 가지고 그걸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치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지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도 참말로 옳게 하려고 하면은 자기에게 해당된 그런 일을 그저 저녁으로는  늦어도 아홉시면 자도록 그 안에 아홉시면 자도록 하고 그 아홉 시 안에 그런 일  다하도록, 그리 안하면 낮에 어느 틈을 타 가지고도 해서 밤에 잠은, 제가 자  보니까 이래요. 아홉 시 자 가지고서 네 시간 자는 것과 열두 시 지나고 난  다음에 네 시간 자는 거와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까 아홉시나 돼서 여덟시에는 못 자고, 내가 정하기는 여덟시에 잔다  이랬는데 그 수면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게 죄인이라. 수면에 자유가 없는 것은  모두 얽혀 있어 그렇거든. 그 여덟시에 딱 자려고 하기는 했는데 못 했어.

아홉시에 두 번 자 봤어.

 아홉시에 두 번 자 봤는데 아홉시에 자니까 얼마냐 아홉시 열시 열 한 시 열  두시 한시 두시 다섯 시간 아닙니까? 뭐 다섯 시간 다섯 시에 다섯 시간 자고  깨고 나니까 이거는 뭐 어떻게 힘이 있고 기운이 있고 뭐 피곤이 다 풀리고  어떻게 새로와지는지 이래서 열두 시에 자는 잠과 열한 시에 자는 잠과 열한  시에 자는 잠과 열시에 자는 잠과 열시에 자는 잠과 아홉시에 자는 잠과  아홉시에 자는 잠과 여섯시에 자는 잠이 아주 그 효력에 큰 차이 있다는 것을  체험을 하고도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그 위인이 한 분 왔다 갔는데 김현봉목사님이라 하는 그 목사님은 참  생애에는 위인입니다. 그 목사님은 여섯시에 자요. 여섯시에 자. 여섯시에  자는데 와 여섯시에 자느냐? 사람들이 보면 다섯 시까지는 저거 볼 일 다 보고  여섯시 저거 볼 일 다 보고 저거 인제 시간 있을 때 와 가지고서 목사한테 자꾸  괴롭히고 자꾸 이래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는 아무 할 일 없어 노는 사간인데 자꾸 와 가지고서 자꾸 이래  괴롭히고 이러니까 딱 정하기를 보자 모든 교인들 제일 목사한테 제일 오기  어려운 시간, 제일 어려운 시간고 시간을 면접시간으로 딱 정해 놨어. 제일  어려운 시간 면접.

 그러니까 자기도 자기 귀중한 일을 다 제쳐놓고 와서 문의할 만한 그런 중대한  것이라야 오지 놀고 노는 시간에 오는 그런 걸 막아 버렸어. 그러니까 또 그  교인들이 제일 노는 시간 공간 시간 그런 시간에 오니까 그 시간은 딱 막아서  여섯시에 자고 난 다음에는 문 닫아 놓으면 아무래도 안 꺼내 줘요.

 내 한번 가봤어요. 그때 인제 김현봉목사님을 처음으로 한번 만났는데 한동안은  오래 됐습니다. 제가 그 목사님을 이래 소문을 들어서 안지는 한 사오 년 됐는데  만나기는 사오 년 후에 가서 만났는데 영익목사님을 데리고 가 가지고서  아현교회라고 인제 소문을 들어 가지고 가서 만났다 말이오. 문을 암만 두드려도  안 열어 줘요. 그때 여섯시인데 암만 두드려도 문 안 열어 줘. 뭐 아무리 힘이  심히 때려 봐도 꼼짝도 안 해요. 안 열어 줘. 참 위대한 일입니다.

 이러니까, 제가 이렇게 경험하는 대로는 우리는 먹는 일 있어야 되고 자는 자  있어야 되고 쉬는 일 있어야 되고 일하는 게 있어야 되고 이 네 가지를 우리가  하고 있는데 사 등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사 등분 먹는 거 또 자는 거 쉬는  거 일하는 거 이 사 등분으로 나누는데 이 사 등분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이  무슨 시간입니까? 예? 무슨 시간이요? 자는 시간 허! 참! 네, 자는 시간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뭐라고 해도 몸에 건강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건강이 없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일 못 해요. 산 사람이 일하지. 산 사람이 일 한다 그  말은 힘이 있는 사람이 이 힘이 없는 사람은 일 믓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일하는 거 중요한 거 같아도 일하는 그거는 문제가 없어.

 자는 게 제일 중요하고 자는 게 제일 중요하고, 고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둘째로 중요해요. 먹는 거. 자는 거. 먹는 거 그러면 셋째로 중요한  거는 뭐입니까? 예, 노는 거 셋째로 중요한 거는 노는 거요. 이 거 밥 빌어먹을  소리 아니겠소? 자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노는 게 중요하다. 이 세 가지 논다 말은 조절해서 좀 심신의 모든  것을 쉬어 가지고서 준비를 딱 하는 거라, 그래 그 세 가지만 해 놓으면 일, 이  그 사람이 발동이 나요. 안 하고는 못 견뎌 이 세 가지면 일은 저절로 해져요.

 이러니까 아. 먼저 내 아파봤는데 먼저 아파 가지고 안 죽었지마는 죽었다  살아나는 광경을 봤어요. 아파서 뭐 힘이 없어 놓으니까 그만 교인들 나 죽고 난  다음에 어찌 되겠다. 하는 것을 다 봤어. 거의 다 봤어. 그때 그 마다 죽어가고  희망이 없다 그만 이래 보니까 이거 뭐 저들대로 날뛰고 이라는데 내가 죽으면  꼭 그 광경이 될 건데 죽기 전에 그런 광경을 봤다 그 말이오.

 힘이 없으니까 모두 다 진리와 영감에 붙들렸다, 하나님에게 붙들렸다 참 뽀얀  거짓말이요. 이렇게 허무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백목사 죽고 난 다음에  영감에 붙들린 거 다른 게 뭐 변하겠소 . 백목사 죽고 난 다음에 영감이 무슨  상관이 있고 진리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진리와 영감에 붙들지 않는 그거  아니라 이제 현재 이 세상과 같이 격투하는 이 힘에 붙들려 가지고 있어. 힘에  붙들려 가지고 있어. 힘에 붙들려 가지고 있으니까 이 얼마나 거짓부리입니까?  이라다가 힘이 보스락 보스락 살아나니까 모든 게 달라져. 지금 힘이 나서,  지금은 뭐 힘이 없어도 뭐 밤새껏 안 되면 갑론을박으로 꼭 대화를 해 가지고  싸울려면 싸울 것이고 뭐 기어코라도 이래 좀 힘이 나니까 그 모든 게 그만  스르르 다 돌아가 버리고 아무일도 없어.

 그러니까, 서부교회, 교회 문제가 하나도 없는데, 교회에 하나도 문제없지.

교회는 부흥되지. 그만 병이 들어 드러누우니까 뭐 이 문제 저 문제 어떻게  복잡하게 이거는 순 지옥같은 뭉텅이, 지옥의 단체가 돼 버려요. 이러니까  힘없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젊은 분들은 힘을 남용해 가지고서 탈을 내고, 또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힘이 없어서 헛일이고, 그래서 어제 제가 광고를 그래 했지 요 여기에  와 가지고 이제 깨닫고 참 깨닫고 인간다운 옳은 생활을 하고 싶기는 하고  싶은데 주 뜻대로 하고 싶기는 하고 싶은데 그만 힘이 없어서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까 헛일이라 그거요.

 어제도 저 건너 어떤 권사님 한 분 뭐 아파서 꼼짝 못하고 이래 드러누웠어.

그래 내가 가니까 첫 말에 하는 말이 '목사님 시키는 대로 안 하다가  이랬습니다.' 꼼짝 못 하고 드러누웠기 때문에 '이제 압니까?' 자기 딴에는  허리가 아파서 그렇다는데 허리 그게 병인 줄 알지만 허리 그게 병이 아니라  전체가 병이 들었어. 전체가 병이 들었기 때문에 허리 요걸 하나 딱 거석해서,  꼼짝도 못 해 가지고 요래도 아! 이라고, 아! 이래 뭐 그 허리 안 아파  봤습니까? 그 연골이 빠져 나왔으니까 견디겠소? 이라는데 고걸 이래 가지고  누웠어야 돼요. 지금 나서면 안돼.

 가만히 누워서 이래 가지고서 그 죄를 깨닫고 누워서 일하고 앉아 일하고  머리로 일하고 전화로 일하고 생각으로 일하고 기도로 일하고 이라지 돌아다니는  걸 제일 초급의 일 그런 거 하지말고 이제는 좀 능하게 일을 하라 이랬는데,  자꾸 뽈뽈 다니요. 여기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오고, 나중에는 내가 가는 걸  야단을 쳐서 못 오도록 했는데 꼭 안 오면 안 되겠다. 싶으니까 나 모르게 한번  왔어 그때 와 가지고서 뭐 푹 자빠졌는데 어제 와 보니까 여기 와서는  하나님께서 아무래도 이래 놔두면 안 되겠다. 싶은 가 여기에 올 때 못 와서  리어카에 타고 왔는데 리어카에 타고 오는데 하나님께서 달캉달캉 해 가지고서  그만 그 허리가 딱 거석해 가지고 누워 가지고 꼼짝을 못 해요.

 꼼짝을 못하매 내가 거기에 가기 전에 여기 기도할 때 그랬어 '집사님이 이제는  남은 힘 조금 있는 것 지능은 많고 육체의 힘이 좀 모지래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이거는 참 아껴 쩌야 되지 이거 아껴 안 쓰면 이제 이 힘 한 가닥으로 젊을 때에  백 가닥보다도 더 효력이 있게 쓸 수 있는 중한 힘인 데 이 힘을 벌로 남용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 힘을 남용한 것을 내가 가서 말을 하겠습니다. 남용한 그  죄를 회개하시오 말하겠습니다.'  '그라고 조절해서 아주 이제 지능으로만 지혜와 머리로만 그 모든 것을 일을  하고 육체의 활동이라 하는 것은 아껴서 하라고 내가 말할 터이니까 이번에 가  드러누웠는데 하나님의 말씀 듣는 데에 누워서 들어도 잘 듣고 은혜를 받도록  그래하고, 또 일어나 가지고 활동은 하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래 나 그래 기도를 하고 왔어. 그래 기도를 하고 가  가지고 또 내가 그 말을 하고 이래 누웠어야 돼요. 안 누웠으면 안 됩니다.

 갈 때 이래 가지고 어짭니까? 갈 때는 뭐 갈 때는 하나님이 또. 가게 해  주시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누웠어라 했는데 누웠는지 왔는지  모르겠어  이 육체에 힘이 없으면 의욕이고 뭐이고 모든 것이 다 바꾸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의 힘을 이것을 기르는 것이 주를 위해서 이것을 아끼고  기르는 것은 주님의 성전을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이 육체의 힘을 잘 가꾸어서  단속하는 것은 주의 성전을 깨끗게 하는 것이요.

 깨끗하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깨끗하다는 것을 어떤게 깨끗하다고  보느냐? 이 때나 묻고 무슨 검정이나 묻고 흙이나 묻으면 더러워지고 그거  없으면 깨끗한 줄 이래 아는데 깨끗도 여럿입니다. 깨끗이라 말은 어떤 것이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지어 놓으신 고것이 본질 본성 본질 본성에 딴것이 섞여  있으면 그게 더러운 것이요, 고때로 되어 있으면 그게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면  숯은 새까매야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을 이렇게 준비해서 잠자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떡 저거는 놀대로  놀고 돌아다니며 저거 일할 대로 놀대로 볼 일 다 보고 난 다음에 이제  마지막으로 오는 것은 아홉시나 열시나 열 한시나 열 두시나 되면 저 볼 일  볼대로 다 보고 놀대로 다 놀고 할 일 다 하고 이래놓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는  이 교역자한테 옵니다.

 교역자에게 와 가지고서 자, 이렇게 말하니까 그 조그마한 교회서나, 이 개척  교회는 이 교인 하나 얻을라 하면 참 불면 날라 갈까 그만 쥐면 오그라져 터져  버릴까 이거 영 참 얼마나 살얼음 디디듯이 이걸 아껴서 이래 하는데 이거  조그매도 내색을 해도 안 될 것이고 얼마든지 좋도록 이래 하려고 하면 그만  죽는 것이라.

 이러니까, 차차 차차 개척 교회 보면 병이 들어 이래 가지고 싱싱한 사람이  병이 들어. 이래 가지고 ○○○조사님은 싱싱한 사람이 들어가 가지고서 고만  병이 들어서 그래 가지고 안 죽었습니까? 그래 보니까 교역자 쳐놓고 교인들의  비위 다 맞춰 줄라고 해서 그 비위 맞춰 주니까 교인들이 다 좋아해요. 밤중에  한시고 두시고 앉아 놀자 하면 다 얼마든지 그거 다 얘기하고 다 앉아 놀고  이렇게 한 사람들은 그 몸이 병들어 가지고서 안 돼요.

 이러니까, 오늘 이 시간 나왔는데 각 교회의 장로님들, 또 장로님이 없는 데는  권사님들, 권사님들 없는 데는 그 집사님들 그렇게 좀 믿음 있는 사람들은  교역자의 그 건강을 잘 돌봐야 됩니다. 교역자의 건강을 잘 돌보고 교역자의  건강을 좀 먹는 것은 그것은 바로 교회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걸 다  조심해서 다 조절해야 됩니다. 교역자의 건강을 잘 돌봐 주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설교할 때에 은혜 없는 설교하거들랑 그만 구불라 버려요,  그만. 은혜 없는 설교하거들랑 막 구불며 이래 가지고는 못 살겠다. 이래  가지고는 못 살겠다고서 '주여 못 살겠습니다.' 고함을 질러. 교역자가 화가  나거나 말거나 고함을 지르면 교역자가 화끈 화끈거려서 그래요.

 저도 그런 거 봤어요. 이 설교를 하고 은혜가 없으면 은혜가 없어 놓으면 이  팔도 이래도 돌리지도 못하겠고, 은혜 있을 때는 이래도 놀리고 저래도 놀리고  괜찮았는데 은혜 없을 때는 팔을 이래도 못 할 것이요, 이래도 못 하고 이래  얹어 볼까 뭐 뭐 이래 볼까 어째 볼까 하고서 어데 구멍을 파면 들어가면 파고  들어가서 숨을까 싶어 그리 되면 이제 그 다음에는 참 고양 진미가 나옵니다.

은혜가 나와요.

 이러니까, 그저 뭐 우리가 대접이 이런데 대접이 이런데 뭐 좋은 설교를 기다릴  것이 뭐 있느냐? 그러니까 그저 앉아 놀기나 창기 데리고 놀듯이 창기 데리고  놀듯이 아무 집사가 목사님 반시간 데리고 놀았으니 나도 반시간 데리고  놀아야지. 그 집사님만 데리고 놀아나도 거기에 가 가지고 반시간 데리고  놀아야지. 반시간 동안 가 가지고 이런 말 저런 말 또 이러니까 그 비유 다  맞추어야 되지 그러니 어. 나는 또 열한 시 반 되면 또 갑니다. 또 그 사람 오면  또 열두 시 나는, 또 옵니다.

 이래 가지고서 이 교역자라 하는 사람이 온 교인들의 그 마귀인데 순전히  마귀인데 마귀의 비유 맞추어 주느라고 이라고 저라고 시간 다 보내고 잠 잘  시간 없어졌지 쉴 시간 없지 빼짝 말라 가지고 그 뭐이 나오겠어? 아무것도 안  나온다 그거요.

 오늘 배웠지요? 어쩌든지 잘 먹여요. 만일 교역자 잠자는데 방해하는 거 있으면  막 교인들이 데모를 해 데모해 가지고 '아무것이 너 잠 못 자게 하는 것인데 너  안 된다, 우리 모듬 불지른다' 이래 가지고서 못 건드리게 침범 못 하게 하고,  어쩌든지 딱 막아서 왕봉이 하나 잘 돼야 벌통이 잘 됩니다. 왕봉 잘 안 되면  벌통 안돼요. 이러니까 잠을 실컷 자도록 이래 해서 하도록 건강하도록 해놓고  난 다음에는 이제 요구가 있다 말이오  그 다음에는 거기에서 젖과 꿀이 안 나오면 그만 이리라. 그라면 내가 대접도  못 했는데 뭐 좋은 걸 원하겠느냐? 이러니까 대접 못 하는 이 처지에 또 설교 못  하는 거 이해해야지. 그러면 자꾸 나쁜 거만 서로 이해하니까 피차에 자꾸  타락만 돼지는 것이라 그거요. 내 할 일 하고, 또 요구 할 것 요구하라 그거요.

이래 가지고 뭐 은혜 없으면 그래요. 고만 대번에 '목사님 도무지 은혜가 안돼  안 되겠습니다. 또 설교 할 때 뒤죽박죽하면 그 뭐입니까? 뒤죽박죽이거 모두  염불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타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뭘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쏴대요. '목사님이 교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뭐 바보로  보고 있습니까? 목사님 뭐하려고 모시고 있습니까?' 마구 박하게 해 대요.

박하게 해 대서 그라면 목사가 거석하도록.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은혜 있는 설교를 하면은 금방 딱 함부래 준비해 놔요.

은혜 받아서 막 좋아서 그만 '아이구! 목사님 오늘 수고했습니다. 또 이 사쓰도  갈아주고, 아이구 이거 좀 갈아 입으이소. 내의도 갈아 입으이소. 또 이 주스도  좀 잡수이소. 이거 불고기도 잡수이소.' 자꾸 이래 대접을 하고 그만 은혜가  없으면 막 그라고, 그래야 지금 우리가 생명 운동을 하겠다. 그거요. 자. 이렇게  하고 싶은 교인들 이렇게 하고 싶은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 또 권찰님들.

반사 선생님들 다 이렇게 교역자에게 이렇게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하,  참 나도 그거 원합니다.

 그래 차지고 또 만일 은혜가 없으면 구불라 버려요. 막 엉엉 울어요. 가만히  엎드려 가지고서. '아이구 주여 이래 가지고 못 살겠습니다. 주여 못  살겠습니다.' 막 엉파대기 울어요. 울면 목사의 그 띵띵한 목사라도 가슴에 못이  박힙니다. 찔려집니다. 이라면 은혜가 와요. 그라면 목사 잘되고 자기 잘되고.

다 잘됩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대접도 잘해서 그 교역자가 건강해야 돼요 건강하고 또 그  연구 시간 있어야 되고, 그라고 어쩌든지 설교한 설교에 값을 매기면은 십  원짜리도 있고 억만 원짜리도 있고 몇 억억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  말씀에 죽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 설교가 인간이 아니요. 그 설교에 하나님과 진리와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면 그 가치가 억억만 원입니까? 억억만이 아니라 우주를 몇 개를  만든다 말이오. 이렇게 능력이 있고, 또 하나님과 연결이 없고 마귀와 연결이 돼  가지고 와 가지고서 마귀말 중얼중얼하면은 그 가치가 얼마나 해독이 있는  것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것도 우리에게 참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나 이것도 생각도 안 했는데 이게 떡 갑자기 이 말이 나왔구만요.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자, 제일 중요한 것이 잠자는 것, 잠자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저는 그전에 자는 것을 하루 네 시간 잤는데 나이가 많아 가니까 어린 아이가  되는가 많이 자요. 내 가만히 보니까 자는데 여덟시에 자면은 아홉시 열시 열  한시 열 두시 한시 두시 세시 그라면 일곱 시간 아닙니까? 세시에 일어나요  세시에 일어나 가지고서 그라고 나서 인제 세시에 일어나서 내가 시간표는 그래  정해 놔. 세시에 일어나 가지고 잠깐 기도하고 이제 설교 준비, 새벽에 설교  준비하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다 그래놓고 한 시간에 그래 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풍욕이라고 있어. 풍욕(風浴), 내가 배웠는데 풍욕  이거 뭐 이불 덮어썼다가 또 벗었다가 풍욕하는 건데 풍욕하려면 꼭 삼십 분  걸려요. 풍욕 삼십 분하고 또 이 기계 운동 기계 운동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사다 줬는데 기계 운동하는 거 또 십오 분 해요. 십오 분, 사십오 분 아닙니까?  사십 오 분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래 가서 준비해 가지고 나가면 뭐 새벽 기도  나가도 피곤치도 안하고 은혜도 있고 그만 서먹서먹하지 안하고 뚝 설교할 것을  하고 이라는데 그만 와 가지고 이래 떠 저래 떡 해 가지고 열 두시나 한시나  자고 나면은 그때 네시나 깨어 가지고 가면은 약 먹은 고기 모양으로 뭐 아무  은혜를 끼치지 못해요.

 이러니까, 그거 좋을는지 안 좋을는지 올라도 저는 그렇게 시간표를 정해 놓고  있어요. 잘 되지는 안해요. 그래서 하루 성경은 네 시간 읽고, 기도는 세  시간하고, 또 설교는 두 시간 설교, 두 시간은 이 설교하는 것도 있고 개인으로  설교하는 것도 있고 이렇게 하고 그라면 몇 시간입니까? 몇 시지요? 아홉  시간이지요. 아홉 시간인데, 거기에다가 자는 것을 여덟 시간 잡아요, 여덟  시간. 많이 자지요. 많이 자야 돼. 여덟 시간 자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세  시간 밥 먹고 또 한 시간 목욕하고, 또 사십오 분 풍욕하고 기계 운동하고  그러면 나머지기 두 시간 반 남습니까? 어? 두 시간 십오 분 남지. 두 시간 십오  분은 또 놀러 다녀요. 네, 두 시간 십 오 분은 돌아다니면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그래 제가 정원수를 심어 놨어. 딴 데 돌아다닐라 하니까 힘도 없지 이래서 오  층에다 정원수를 심어서 심어 가지고서 나무가 어북 큰 게 많은데 소나무가 이런  소나무가 많습니다. 그래 놓고 이것도 보고 들여다보고 저것도 보고 들여다보고  그라면서 그거 나는 해석을 그래 해요. 여기에서 좀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깨끗이  하고 좀 피곤도 풀고 이렇게 좀 모아 가지고서 주님을 섬기는 준비로 한다 내가  이러니까 아무 가책이 없어. 실상 주님을 섬기는 준비를 해요.

 이래 되기 그랄 때는 그만 사람들이 와 가지고 되기 피곤할 때에는 누웠어도  잠이 안 와요. 암만 누웠어도 안 오고 이랄 때는 그때는 가 가지고서 뭣을  보고서 나무를 보고 감상을 하든지 또 그 오 층에 고기가 있어요. 고기가 있는데  고기 보고 또 그것도 보고 그만 그렇게 조금 재미있는 시간 한 삼십 분 지나면  그만 피곤이 확 풀려요. 그라고 나면은 가서 잠이 온다 그거요. 그래서 그거  주를 위함이라. 나는 시간표를 그래 정해 놓고서 지금 합니다.

 그라면, 목사님은 만날 놀기만 하고 그라네 이래도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성경 네 시간 보지, 또 기도 세 시간, 얼마입니까? 또 두 시간  설교하지, 그러면 몇 시간이요? 아, 아홉 시간 노동하면 됐지 그만하면 돼요. 못  한게 아니요 그거 많이 한 거라. 실은 그래 하면은 많이 해요. 많이 하는데 그게  안 되고 백지 이 사람 만나고 이럭저럭 만나 가지고 그러면 그게 백지 소용없는  쓸데없는 얘기, 이래 가지고 헛일로써 그 시간을 많이 보내.

 그래 ○○○목사님이 처음에 ○○○교회로 목회를 보낼 때에 '네가  가거들랑걸랑 ○○○교회는 그 교회가 그저 교인들이 자꾸 교역자 만나 가지고서  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자꾸 데리고 놀기를 힘쓰는 그 교회이니까 아예 그  버릇을 고쳐라. 교회 가거들랑걸랑 사택에는 남자고 여자고 아무도 못  들어오구로 해라. 출입을 아무도 못 들어오구로 해라. 그라고 뭐 대접하는 거 뭐  대접한다는 거 그런 거 예물 하나도 용납시키지 말라. 말고 네가 사례만 받아  살고 용납하지 말라. 그 둘을 금해라. 그라면 만나러 오는 사람은 어짜라고?  '오는 사람은 예배당에 가서 얘기하고 들어오지 말게 해라.'  이래 놨더니마는 그래 그 뒤 가보자 어떤고 보자 하고 뒤에 소문 들으니까  교인들이 엄격하고 그러니까 그게 참 좋다고, 인제 좋다 하는 소리는 좋다는  소리는 많고 사택에 많이 출입하는 자꾸 목사 방해하는 사람은 숫자가 적고 안  하는 사람은 많거든,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은 많고 싫어하는 사람 몇 밖에 안  된다 말이오. 싫어하는 사람은 명밖에 안 되지마는 인제 그대로 따르라니 어쩔  수 없이  이러니까 그때에 ○○○목사님이 ○○○교회 있을 때에 ○○○교회가 제일  부흥이 됐습니다. 제일 부흥이 됐어요. 그런 것도 어느 정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교회 갈 때에는 권찰들하고 권찰들하고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  가지고 삼 년을 금족령을 내렸어요. 삼 년을 금족령을 내려서 권찰과 권찰이  서로 만나지를 못하구로 해 버렸어요. 왜? 만나면 그 권찰들이 다 자기에게 속한  믿음의 식구들을 만나면 전부 성자의 말을 하고 성녀의 말을 하고 그리스도의  종의 말을 해 가지고 모두 다 살리는데, 권찰 저거끼리 만나 놓으면 동등이라  조심하지 안하고 마귀 놀음만 실컷 해 가지고서 그래 놓고서 맨날 쑥덕쑥덕 누구  이래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마귀 놀음만 해요. 그래서 권찰들끼리 집사들끼리는  못 만나게 했습니다.

 못 만나게 해 가지고서 나중에 그 버릇을 고쳐서 잘 돼 갔는데 그만 언 간히 그  ○○○교회가 잘되게 돼서 이 ○○○교회는 아무래도 괜찮다 할 만치 튼튼하게  됐었습니다. 아무 괜찮으니까 아무 교역자를 보내도 괜찮다 이래 가지고  교역자를 이 교역자를 보내면 인제 얼마 동안 연습하고서 될 만하면 딴 데  보내고 그러니까 그만 ○○○교회가 교역자 양성소가 돼 버렸어. 몇 해하고  나니까 그만 그 교회 ○○○교회가 팍 짜쁘라져 가지고 아주 형편없이 됐어.

 얼마 전에는 또 그거는 안돼서 ○○교회를 교역자 양성소로 만들어 놨어.

○○교회는 뭐 튼튼하니까 그러자. 이 교역자 양성소로, 그때 ○○교회 간  교역자들은 전부 병신이라. 거기에 나와서 모두 자라왔어. 거기에서 자라 가지고  보내면 병신 노릇해. 뭐 ○○○ 목사님 또 누구 갔노? ○○○ 목사님 그런 분들  거기에 가 가지고서 그 뭐. 교역자는 무슨 교역자, 거기에 가서 갔다 오면  자기네들은 다 좋아해. 참 거기에가 좋다고. 은혜 있고 좋다고 하더니만  교인들은 죽을 지경이라. 이렇게 교역자 양성원을 했더니만 그만 ○○교회가  아무것도 없이 팍 짜그라졌어.

 요번에 ○○○집사를 비로소 처음으로 교역자를 하면서 그리 파송을 했는데  '네가 가서 진상을 좀 찾아 봐라' 그래 갔다 오는데 그 교역자 진상을 말하는데  그 교회가 그만 허무해서 자립을 못 해요. 자립 못 할 만치 그렇츰 그런 교회가  돼 버렸어요. '아, 그렇게 허무하나?' 알아보니까 그렇츰 허무해.

 이랬는데 그래 ○○○조사가 가 가지고서 ○○교회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일으켜 세워서 회복을 했습니다. 회복을 해서 이랬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지? 예?  아무도 없지요. 이런데 너무 교역자 양성소로 보내니까 안됐어. 그래서  교역자들이 교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버릇은 꼭 고쳐야 됩니다.

 ○○○, ○○○목사님을, 김 현봉 목사님에게 내가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목사님이 김 현봉 목사님의 수제자로 그랬는데 아무도 안수해 줄 사람이 없어.

안수는 안 해 줄라고 해요. 모두 안수 안해 주고, 고 심보 참 좋지 못합니다.

안수를 안 해 줘. 분명히 목사 자격이 있는데 안수를 안 해 줄라 한다 말이오.

이래서 김 현봉 목사님에게 내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조사님을 초대해  가지고 안수를 시켰습니다. 지금 인제 하는데 목회를 썩 잘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은 목회하는 법이 그거 하나 있어. 교인 들이 오면 '뭐 어쨌습니까?'  대답을 절대 안 해. 절대로 한마디도 안 해. 안하고 아무 말도 안하고 '그러면  얘기하십시오' 이라면 얘기를 다 이래 한 시간 하든지 반시간 하든지 답도 없고  예, 예, 소리 아무 말도 안하고 눈감고 앉아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앉았다  말이요. 마지막 결론이 그거라. '양심을 쓰십시오.' 그 말 한 마디면 끝나  버려요. 그것도 좋은 방편입니다. 양심 쓰면 다 돼.

 그래서 어쩌든지 교역자 건강을 여러분들이 잘 돌봐야 되고 또 교역자에게  어쩌든지 자유시간을 줘야 됩니다. 자유시간을 많이 줘야 됩니다. 안 주면 안돼.

 저도 낮으로는 밥해 주는 분들이 있다가서 여섯시에 들어와서 여섯시에 나가  버려요. 여섯시에 나가면 열두 시 아닙니까? 열 두 시간은 아무도 없어. 혼자  있는 시간이라. 혼자 있는 시간 혼자 돌아다니면서 오만 거 다 그 아이들 놀음도  하고, 그 토끼 놀음도 뛰어도 보고, 오만 춤도 추고 오 만 거 다해. 그 좀  자유가 있어야 사람이 좀 거석하지요  그래 실컷 그라면 또 성경 연구도 하고, 이제 그걸 가지고 유지하는데, 만일 뭐  이 손자들이 몇 거리로 쭉 와 가지고서 그거 오면 그래도 또 감동을 줘야 될  것이고 봉사할라 하니까 그라면 늘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해. 늘어져서.

 이 교인 하나 오면 안 그렇소? 어린 교인 하나 오면 그래도 감화를 줘 야 되지,  무식해 놓으니까 아, 교역자도 사람인데 꼭 교역자는 무릎을 딱 꿇고 앉아야  되는 줄 알지, 또 양반 다리하고, 앉아야 되든지 딱 요래 기대도 안 되지, 앉는  것은 또 이래 앉아야 되지 그 사람 보기에 무식한 그 사람 보기에 감화를 달라  하니까 사람 골이 빠진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런 뜸질을 시키지 말아요.

알겠습니까? 교인이 교역자를 그런 뜸질을 시키지 말라고.

 그래 시간을 자유시간을 줘요. 많이 줘요. 또 그라고 잠을 많이 자도록 하고 뭘  잘 먹여요. 그래 살을 찌워 놓고 요구는 그거야. 우리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 와  가지고, 진리를 잘 들으면 그 진리 들어 가지고 고대로 실행하면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하나가 되는데 모든 것이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부자도 거기에  있고 영광도 있고 성공도 거기에 있고 능력도 거기에 있고 다 있는 것이라  말이오. 있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를 참 주님과 천사같이 이렇게 대접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참 복이 움텄다, 너희들이 나를 주와 처사와  같이 대접을 하고 눈이라도 빼 달라면 빼 줄 만한 그런 그 복된 것인데 지금은  너희 없는데 새로 거의 움이 터서 새로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돼야 돼요.

 그렇게 하고 어쩌든지 설교를 은혜 있는 설교를 원해요. 그라고 교역자가 벌써  소용없는 이런 다방에나 돌아다니고 교제하러나 돌아다니고 이렇게 세상 무슨 이  사회 운동이나 하러 돌아다니고 이라거들랑 아야 그거나 하도록 보내 버려요.

 목회자는 정치와는 분리입니다. 정치와 분리야, 목회자는 주님하고 사귀는  제사장 옛날 제사장을 찾아봐 가지고 제사장이 목사요. 또 선지자가 목사요 또  이스라엘 왕 그 왕이 목사요, 그러니까 사사보다 뛰어난 것이 오늘날  목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사 할 일은 그게 목사 할 일인데 목사가 벌써 여기에 저게  다니면서 다방이나 잘 다니고, 운동이나 하고 이런 거 저런 거 뭐 세상  운영하려면 그거하고 그만 내버려두지, 그러면 은혜가 올 리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부득이 저거 좋도록 육덩이 좋도록 하니까 모두 좋아해요. 이러니까  교회는 자꾸 침체하게 되고 자꾸 타락하게 되고 속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 말씀 가운데에 이 짐승과 일곱 뿔과 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하나가  되는데 어린 양만 뺑뺑 돌려 놓고 어린 양만 뽑아 놓고 어린 양만 제외하고  나머지기는 전체가 하나가 됩니다. 전체가 하나가 돼. 하나가 되는데 그 하나가  돼 가지고서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웁니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무슨 싸움인고 하니, 싸움은 어린양은 이 세 가지  종류가 똘똘 뭉쳐서 하나 되어 있는 거기에 삼키워 있는 그 하나님의 양떼를  건져서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린 양에게 붙이기 위해서, 그걸 표시하려면  하나는 인본주의 하나는 신본주의라 할 수 있지. 하나는 인본주의 하나는  신본주의라 어린 양에게 속한 것은 신본주의고 또 짐승에게 속한 것은  인본주의요. 그 인본주의는 신본주의를 끌어다가 저거 편만 들라고 애를 쓰고  신본주의는 인본주의를 끌어다가 저거 편 만들라고 애를 쓰고 그 싸움입니다.

 서로 서로 자기의 그 부하를 점령할라 하는 그 싸움이요. 다른 싸움이 아니고.

싸움인데 이 인본주의는 그 방편을 쓰는 것이 거짓말하는 유혹이요 거짓말하는  유혹과 또 그 협박 위협과 또 이 무력, 무력 박해와 이런 것을 가지고서 어린  양에게 속한 사람을 이 짐승떼에 소속하도록 돌아오라고 이래합니다.

 안 돌아오면 13장 이하에 보면 안 돌아오는 사람은 몇이든지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어디 있지요? 13장 15절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거에게 소속하지 않으면  몇이든지 죽이게 한다. 이런 일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거 다 예수 믿는 단체요, 예수 믿는 단체요, 다 화평 단체요, 사랑 단체요,  관용 단체요, 이해 단체요, 다 포부가 대단히 참 관대한 단체들입니다. 뭐  번들번들하게 얼마나 번들번들했느냐 하기를 새끼 양같이 번들번들 하게. 새끼양  이래 가지고서 거기에 속하지 안하면 나중에는 저거 독선주의라, 저거는 못된  것이라. 이래 욕을 자꾸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고것만 고독하게 자꾸 돌려  가지고서 이래서 모든 생활까지도 다 그것을 조직해 가지고서 못 살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게 뜨문뜨문 여기에 저게 싹수가 있어요.

 일본에 있다가서 나온 재일 교포 가운데에 목사님 아들이요 집사님인데,  거기에서 말을 들어 보니까 조총련이라고 하는 그 단체에서 지하 운동을 하는데  그 지경에서 그 지경에 있는 사람은 만일 조총련으로 돌아와 가지고 공산 사상에  가담치 아니하면 상점 못 해요. 가담치 안하면 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 그  사람들은 뭐 그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살면 되지 먹고살면 되지 딴걸 바라지  안해요. 저축하려고 생각하지 안해요. 그저 현재 먹고살면 되고, 먹고살면 되고,  남한에 있는 재산 저거는 뺏들면 우리 것인데 이제 그것보고 살지 자기 모을라고  살지 안해요.

 이러니까 지금 이 전투의 사람, 전시의 체제를 가지고서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뭐 이 돈벌이하자는 그거 없고 그것을 벗어났기 때문에 용감해요. 이래  가지고 운동을 해서 자기네들에게 가담하지 안한 사람이라면 그 상점에 물건을  하나라도 안 사 줘요 물건 하나도 안 사 물건 안 사 주니까 그 사람이 거기에  가담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딴데로 상점을 옮겨야 되지 거기에 있으면서는  가담 안 하고는 안돼.

 물건을 안 사 주다가 나중에 가서는 모든, 일을 서로 인인성사인데, 사람은  사람으로 더불어 관계를 맺어 가지고 성사인데 인인성사를 전혀 안 해 줘요. 그  사교를 전혀 안 해 줘요. 이러니까 이거는 어찌 할 수 없이 그만 밀쳐 나오고  그래도 어떤 사람은 고집으로 '네까짓 놈이 하거나 말거나 여기에서 내가 버터  본다' 이래 가지고서 뭐 약해도 거기에서 물건도 싸게 해 가지고 딴 데 손님이  와서 사도록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재산이 얼마든지 있습니까? 나중에  재산이 모자라니까 할 수 없이 그만 머리를 숙이고 거기에서 할 수 없어 피해  가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안 들으면 그래도 안 들으면 누가 죽였는지 몰라요.

누가 죽였는지 몰라요. 암살해 버려요.

 이러니까 교인들이 거기에서 견디지를 못 해 자꾸 지하 운동으로 한 집, 두 집,  이래 가지고서 그 운동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그 안에는 서지를 못  한답니다. 일본에 있는 교회는 한국에 있는 교회보다도 아주 참 박해를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 공산주의와 직접 대결을 해서 암살당하는 일도 있고 또  거기에서 별별 지하 운동으로 이렇게 자꾸 그 누에가 뽕 먹듯이 먹어  들어간대요. 이래 자꾸 먹어 들어가. 그게 뭐 끝까지 성공할라는 가는 몰라도.

그런 일을 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이 뭐이냐? 앞으로 이 짐승 세 가지 종류가 똘똘  뭉쳐서 하나 돼 가지고서 어린 양으로 싸울 때에는 그 이상을 싸울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그 이상으로 싸우기 때문에 성경에 미리 말하기를 매매들을 못하게  한다 그랬어. 거기에 가담하지 안하면 매매들을 못 하게 한다. 이 실감을 좀  느껴요. 그런 게 오면 어떻게 되는가 한번 느껴봐요. 매매들을 못 하게 해요.

 매매들을 못 하게 한다 말은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생활을 못 하게 한다 그  말입니다. 사람은 사고파는 것으로 사는 건데 그거 아니면 못 살아요. 이 사람에  필요한 거 저 사람에게 주고 저 사람에게 있는 거 사지 꼭 자기 하나 나는 거  고것만 가지고 어떻게 살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사람 생활의 필수 가운데에 열 가지라 하면은 한 가지만 하면은 다른  아홉 가지는 그 한 가지 가지고 이래 바꾸고 이래 가지고 이래야 사람이 사는  건데 물물 교환하는 것인데, 매매를 못 하게 한다 그 말은 그것이 생활을 못  하게 지금 이렇게 압축을 한다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그렇지 안 되면 죽이지.

 이러니까 그렇게 온 세상이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예수 믿는다고  이렇게 할 때에 그 싸움에 내가 대결해서 그것을 대항하고 거기에 끌려가지  안하고 머리 숙이지 안하고 지킬 수 있는 그걸 생각해 보느냐 그 말이오.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깨달음이 있을 건데 거기에서 예사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 어제인가 아레도 그 말했지마는 창기성, 기생, 기생 잡 거 말이오. 창기는  여기에 저게 남자를 찾아야 되지 하나 만나면 세월 나고 둘 만나면 세월 나는데  그런 창기야 그런 도시가 있다 하면은 '햐, 나 세월 날 곳이 있다 한번 가 보자'  이렇지마는 정절부인은 그 소리를 들으면 기가 막혀서 가기는 그 도시를  통과하기는 통과해야 되는데 통과할라 하면 이 정절을 뺏겨야 되겠고 안 뺏길라  하면 목숨을 뺏겨야 되고 이 어쩌나? 근심이 되지마는 창기는 세월났다 싶을  거라 그 말이오.

 여기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뭐 그러면 공산주의 되지 또 안 믿는 다 하고,  또 그 뒤에 믿지 뭐 그라고 또 믿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아무 두려움이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왜정 말년에 선천 지방에 선천 고을에서 그렇게 한 사람도 없이 다  믿는다 하지마는 신사 참배해서 그 신앙 정절을 지킨 사람이 하나도 없소. 우리  한국 교회 조선 교회 지킨 사람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없어요. 그 셋 종류  있었는데, 하나는 외국으로 피해서 망명 가 가지고서 신사 참배 안 한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는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갇혀 가지고 맞으며 안 한 사람도 있었고,  또 한 종류는 돌아다니면서 자유하면서도 이제 그들에게 굴하지 안하고 안 한  사람 한 종류 있고, 그런데 마지막에 말한 종류가 제일 숫자가 적고 고 다음에  둘째로 감옥에 간 숫자가 적고, 많은 거는 망명해서 숨어서 이긴 사람 숫자가  제일 많습니다. 그 나머지기는 전부 다 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말을, 뭐 별로 해석 없어요. 해석 없는데 자, 지금 가정에서 뭐  야단지기고 이래 하는데 보면 직해야 가정에서 한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해도 죽을 지경이라고 야단을 하는데, 한 사람이 반대하는 것이 쉽겠소 열  사람 반대하는 것이 쉽겠소? 어느 것이 쉽겠소? 어? 한 사람 반대하는 것이  수월하지. 뭐 한 사람 그까짓 거. 그러면 한 나라에서 반대하는 것이 낫겠소,  세계 전체가 반대하는 것이 쉽겠소 ? 한 나라 반대하는 것이 쉬워.

 이제까지는 핍박이 다 국부적으로 지역적으로 이렇게 토막 토막 이래 있었지  이제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온 세계가 어린 양 말고는 똘똘 뭉쳐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터이니까 너희 이리 안 오면  죽인다 이리 안 오면 생활 못 하게 한다. 이래 안 하면 상점을 못 보게 한다,  장사를 못 하게 해.

 뭐 이렇게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신앙을 지켜야 되겠는데  그때 신앙 지킬 각오를 가지면은 뭘 내놔야 됩니까? 이제 활동하는 그 친구가  없어져요. 외로와지고, 그 다음에는 생활에 곤난을 당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무언중에 자꾸 고독해지고, 여러 가지로 좀 어려워지고 핍박이 심해지고  마지막에는 그만 자기의 자유를 다 빼앗기게 되지 또 자기의 재산을 다 뺏기게  되지 그 다음에는 신체의 건강을 뺏기게 돼. 오만 고문과 고행을 당하지.

마지막에는 죽이는 생명을 빼앗기게 되지.

 그렇게 되면 이기는 데는 성경에 뭐라고 했어요 이기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이긴다 했습니까? 어?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랬는데 다른 데는 뭐라고  했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했어?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말했어요. 너희들이 망대를 지을 때에 그 공사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 준공을 못하면 수치를 당하기 때문에 망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앉아서. 예산을 해라. 그라고 예산하라 해 놓고서 고 끄터머리에다  말하기를 뭐라 했냐 하면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고게 예산이라. 고게 결산이라.

 우리가 어린 양에게 속한 이 신앙을 지켜서 참 주님을 내 주로 모시고 주님을  위하고 주님 위하는 거,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 주만 바라보는 이  신앙생활하는 이것을 하려고 하면 그때는 있는 것 다 내놔야 이 신앙생활하지  있는 것 다 내놓지 않으면 신앙생활 못 한다.

 그저 뭐 굶어 죽어도 나는 신앙은 양보 못 한다. 감옥에 갇혀도 신앙은 양보 못  한다. 가죽을 뺏겨도 신앙은 양보 못 한다, 죽어도 신앙은 양보 못 한다, 모든  걸 다 뺏기고 다 뺏길지라도 신앙만은 내가 뺏기지 않겠다. 이 사람이 아니면  지키지 못 한다고 하는데, 이 얼마나 지금 어려운 싸움, 이 싸움은 인간 힘으로  될 수 없는 이 참 힘드는 어렵고 무서운 싸움  무서운 싸움 있는 동시에 이 싸움에 이긴 자는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돼. 그 나라에는 모든 정권을 다 잡습니다. 그것을 유업으로 얻어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바울과 게바와  아볼로와 이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이 어려움을 말을 해도 아무 감각이 없지  이러니까 이 어려움 말하면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서 '어 저 목사 저거 월급  낮추어라' '아, 그 어려움 온다 아, 나 십일조 안 낸다' 야 이래 놓으니까  곤란하니까 부득이 이 장로들 돈 많은 장로들 살살 달래서 돈이나 많이 내도록  해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바른 설교를 하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여기에서 지금 자꾸 내놔라. 죽어라, 그래야 예수 믿는다 하니까,  자, 요번에 와서 이 설교 듣기 싫은 사람 손들어 봐요? 이 뭐 많을 건데, 저  어떤 데는 한쪽 구석에는 그라더라던데, '고만, 고만, 고만해' 이라다가 내가  지침을 캑 하니까 '꼬시다' 이라더라고 얼마나 밉든지 자꾸 이래 하니까 내가  지침을 꽉 하니까 꼬시다 이라는데, 꼬시다. 그런 줄 알아야 돼. 그 의례히  옛사람 그게 그런 거 아닙니까? 뭐 소리 없는 종이 나왔으면 총 탁 놔서 그만  없애 버리면 싶은 사람도 있다 말이오. 이 안에 들어와 가지고 억지로 끌려와  가지고서 부인이 왔으니까 어쩔 수 없이 와 가지고서 '아이구 듣기 싫다' 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하는 그것을 해석을 할라 하다가 지금 이렇게 다른  서론이 자꾸 이라고 말았는데 진실한 자가 이기는 것은 진실은 성경 말씀대로의  지식과 행위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곧 성경 말씀은 성경 말씀 단독이 아니고 그 속에 영감이  같이 있습니다. 말씀과 영감이 같이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 성경 말씀 말하는  것은 영감 말씀, 성령과 진리와 둘의, 둘의 말이 되고, 둘의 행위가 되고 둘의  사람이 돼야 된다는 것이니까 그 말에나 행위에나 사람에게 그 알맹이는 그게  들었고 껍데기는, 껍데기는 이거는 아무것이라. 껍데기는 그 김목사라 껍데기는  김목사지마는 껍데기를 활딱 벗겨보니까 그 속에는 하나님, 진리 하나님, 진리,  어린 양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 껍데기는 그 뿐이라. 이 자루로 싸 놓으니까  그거는 김목사이지만 김목사를 홀딱 해부를 해 가지고 껍데기를 뒤져보니까  속에는 세 가지 들어 있어요. 뭐이 들었어요? 속에 세 가지 뭣 들었어요?  하나님, 또 진리, 또 피 예수님의 피 이 세 가지가 들었어. 이 세 가지가 들었고  껍데기는 김목사라 껍데기는 김목사지만 속에는 세 가지라. 그러니까 자, 그  속에 우주 만물을 창조주가 거기에 들었오, 안 들었소? 창조주가 들었어. 그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심으로서 그를 이기실 터이요 하는 이 말의  뜻을 언제 말했는데 그걸 잘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뭉텅뭉텅이 돼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고  하는 이런 것이 다 누구의 솜씨요. 누구의 경영이냐 하면은 그것의 경영자가  어린 양이요, 그 경영자가 어린 양이요, 그의 주권자가 어린 양이요, 그 어린  양이 하는 거 근본 본부이기 때문에 그거는 그 다음에 의례히 이긴다, 예수교가  이긴다 그 말이오.

 만왕의 왕이시라 그 말은 창조하신 그분이요 모든 예정하신 분이신데 이 모든  이런 놀음 생기는 이 놀음이 뭐이냐 하면은 그분이 한 놀음이기 때문에 놀음을  시작하는 그분이 여기에 질 택이 있나 말이오. 그거는 서이 있지마는. 이제  봉착은 뭐이냐 하면은 성도들에게 당하는 것인데 서이가 없으면 안 된다. 서이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 진실이 뭐이냐? 진실은 믿음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제  믿음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이 껍데기는, 껍데기는 ○○○목사님, 껍데기는  ○○○목사님, 또 껍데기는 ○○○목사, 껍데기는 ○○○목사 그런데 껍데기를  휘떡 벗겨보니까 속에 세 개가 들었습니다. 세 가지가 들었습니다. 뭐 들었어?  네, 성령님과 진리와 어린 양의 피 이 셋이 속에 가득이 들었다 말이오. 가득이  들었으니까 겉은 그렇지마는 이 세 개가 들었으니까 암만 능력이 와 가지고 해  봤자 그만 그것들이 이기지를 못해요. 자연히.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지금 나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을 쓰는 자는 칼에 상하리라.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에 있다  이랬습니다.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에 있다, 성도의 믿음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다 하나도, 하나도 쥘라(잡으려) 하면 못 가는데 생명 하나도 가지고 갈라  하면 못 간다. 자기가 세상에 무엇이든지 가지고 갈라 하면 못 간다, 소유와  생명과 모든 거 다 줘도 주님과 진리, 요 구원 하나만 가지고 하겠다. 하는  사람이라야 최종까지 견디고 가지고 갈 수 있지 못 가지고 간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번에 와 가지고서 한번도 시원한 꼴도 못 보고 재미있는 꼴도 못  보고 무슨 웃을 꼴도 못 보고 이런데 이렇게 자꾸 죽으라고 하지 또 무섭다고  무서운 것만 자꾸 말해서 협박하지, 자, 이러니까 왔다가서 아마 기막히는  사람도 혹 있을는지 모를 거라.

 있는 걸 다 내놔라, 다 내놔야 이제 산다 천국은 마치 보화를 발견한 자가  자기가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사는 거와 같다 진주를 발견하는  자가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산 거와 같다, 자기 것을 다 투자 해야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이 말을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 말을 지금 자꾸  죽어라, 내놔라, 이게 제일이다, 자꾸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지 말아라,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지 말아라, 자꾸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라, 자꾸 이렇게 말하고  하니까 그만 여기에서 뭐입니까? 여기에서 땅에 속한 자가 죽습니까, 삽니까?  땅에 속한 자가 죽소, 살았소? 땅에 소망을 가진 자가 지금 죽습니까, 날개를  떨고 일어납니까?  어? 이 백목사를 하나님이 보내실 때에 기도 제목이 그거야. 뭐이냐? 이번에는  가서 이 땅에 속한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서 다 장사 지내고 거기에서 완전히  죽여 버리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주님의 피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  새사람으로서 부활하신 주님에게 연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다시는 죽지  안 할 사람으로서 이제 강건해 가 가지고서 그래 다 돌아와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성공하게 해 주옵소서. 그게 소원이라. 그게 기도이니까 고  옛사람 죽이는 것이 우리 모인 목적입니다.

 이러니까, 이 옛사람 죽이는 일을 많이 말하고 이러니까 아마 여기에 재미가  있는지? 자, 이번에 이거 십자가의 도를 말하는데 이 죽는 거 이 버리는 거 땅에  있는 음녀를 다 이별하는 거 또 간부를 이별하는 거 이거 다 설교했는데 이 설교  듣고 재미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아이구 참말로 그럴까? 예, 할렐루야 자,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이깁시다. 이기면 됩니다.

 자, 이제 그만 더우니까 그만 하고 오후에 이제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하는데  대해서 증거하겠습니다.

 한번 기도하고 마칩시다.

 주님 이제 주님 영감과 진리의 말씀이 증거하는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저희들  속에 확실히 나타나고 학실히 굳게 서서 이제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어린 양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모시고 앞에 있는 이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생명이요 영생의 면류관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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