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설교준비

 

1984. 9. 18. 화새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그동안 내가 빠지고 설교한 분이 열 한 분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고 정해  놓은 분 중에 다섯 분이 남아 있고, 내 속으로 정한 사람 중에 하나 더 있는  것은 ○○○집사가 여기에 표시는 안 됐는데 저로서는 정해 놨었습니다.

 교역자들은 언제든지 설교를 맡길 때에 대개는 한 반 시간 전 그리 안 하면 한  이십 분 전, 또 어떤 사람은 한 십 분 전 그래 맡깁니다. 그것은 내 형편도 또  그래 있지마는 내 형편보다도 언제든지 내가 말하기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이랬기 때문에 언제든지 맡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돼야 되는데 그만 갑자기 맡겨  놓으면 엉뚱한 소리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기는 가운데에 ○○○목사는  언제든지 준비를 해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간에 맡겨도 의례히 다 준비해  가지고, 설교를 준비한 거보다도 마음을 준비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시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인도도, 기도 인도도 저는 시킬 때에, 별로 안 시키고 시키면  갑자기 다 순서를 해 놓고 기도할 때에 '아무것이 기도 하십시오.' 그렇게  시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미리 기도 인도하라 하면은 좀 마음  준비를 할 터인데 갑자기 기도 인도하라 하니까 안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바로 깨달은 사람들은 벌써 미리 기도 인도하라 하면은 그  사람이 다 마음은 엉뚱한 데 다 쓰여져서 벌써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 없고 이러기 때문에 인도할 때에 그때 시키는  것입니다.

 시키는 것은, 그것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입을 열면 기도 되고, 입을 열면  기도 되고 또 설교를 맡은 사람은 입을 열면 설교하고 이래야 되기 때문에  평상시 언제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서 제가  그렇게 시킵니다. 또 교역자들에게 선포도 그렇게 했습니다. 교역자들에게는  언제든지 기도 인도는 할 때 그때 할 터이니까 누구를 시킬지 모르니까 자기가  준비해야 되고, 누구를 시킬지 모른다는 것보다도 항상 주님과 교제하니까  교제하는 그것이 소리만 내면 대중 기도 인도가고 또 소리 안 내고 속으로 하면  자기 혼자 묵상 기도가 되는 것이고 이래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라 내가  그것을 말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 이래 된 것은 제가 두 가지를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하나는  아마도 좀 그때 조금만 지나가면 내가 오래 동안 참 좀 드러누워야 되겠다 해서  그 예방으로 미리 좀 방비를 했습니다. 요번에 ○○○ 권사님이 그리 돤  거기에서 제가 더 깨닫고 그리 예방을 했었습니다. 그 ○○ 권사님 아픈 것과 저  아픈 것이 꼭 같습니다. 아픈 데가 꼭 같습니다. 또 순서가 아픈 순서가  돌아가는 것이 꼭 같습니다. 그랬는데, 조금만 더 늦게 했더라면 저도 좀 몇 달  누워 있었지 안했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참 연구 중에 자기에게 대한 연구하는 것이 그것이  중요한데. 자기의 모든 면을 자기가 연구해서 자기의 모든 면을 자기가 알고  예방하고 단속하고 또 자기를 알고 경영하고 하는 것이 그것이 대단히 필요 있다  하는 것을 또 느꼈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경영은 결국 그 경영이 과대, 과소, 또  치우침, 모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르고 하는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거는 혹 세상에 이런 저런 물질적인 그런 거는 들어맞을 수가 있어도 우리의  믿음은 들어맞지 않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궁중에다가  할을 쏘아 놓고 잉어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나 자기가 아무런 준비 없이 해  가지고서 인생의 행위가 무엇이 좋은 결과가 맺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오히려 그것이 더 어렵다고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이번에 거석한 것은 좀 어떻게 하나 내가 있는 동안에 좀 고쳐 줄 것을  고쳐 줘야 되고, 또 이렇게 너무 설교를 시키지 안하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은  얼마든지 학생들에게 가 가지고서 뭐 수는 많으나 적으나 그것은 좀 차이는  있기는 있지마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만 명을 놓고 설교하나 단 하나를 놓고  설교하나 실은 성질은 같고 책임도 같고 또 결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은혜 받아 가지고서 여러 만 사람이 은혜 받은 것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들은 항상 설교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에 뭐 자기가 하루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학생 가서  만나 가지고서 또 이렇게 권면하고, 무슨 요식을 똑 대중 설교하듯이 그렇게 안  해도 그 사람에게 개적으로 하나님과 진리와의 잘 연결을 시키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설교입니다. 또 남권찰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장로님들은 정치, 정치 장로 교훈 장로 두 종류가  있다 이래 나누어 가지고서 보는 것이 일반 교회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  벌써 교리같이 되어 있지마는 저는 그것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박 윤선 목사님이  그때 고신의 교장으로 있을 때에 저하고 그 일 때문에 한 두 시간 서로 신강을  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합의를 봤습니다.

 성경에 보면 장로 중에 잘 다스리는 자를 귀중히 여기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또 잘 가르치는 자는 더욱 귀중히 여기라 또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것을 다스리는 자는 정치 장로요 또 잘 가르치는 자는  교훈 장로 라 이래 가지고 둘로 분리를 하지마는 이것은 잘못 깨달음이다.

처음에 장로를 선출할 때에는 그 자격이 꼭 같아서 다 가르칠 수 있는 실력도  있고, 지도할 수 있는 실력도 있고, 사람에게 대해서 대우하는 실력도 있고 모두  다 장로나 목사나 다 사람들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까와지도록 하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 같은 자격으로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다. 선출할 때에는 다 같은 자격으로 말씀해 놨는데 이미 선출된 장로 중에는  다스림을 잘하는 장로는 다스림 못 하는 그런 장로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또  다스림까지는 잘하지마는 교훈 못 하는 그런 장로보다 다스리고 교훈도 잘하고  하는 그런 장로는 더욱 귀하게 여기라 하는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실력에  대해서 대우하라는 것이지 선출할 때에 벌써 교훈 장로 정치 장로로 그렇게  구별해서 선택하는 거는 아니다. 그래 가지고서 과연 그게 성경적이라고 일치를  봤습니다. 선출할 때에는 다 잘하는 사람을 선출하는데 선출해 놓고 나서 보면  거기에서 교훈도 못 하고 정치도 못 하는 그런 장로님, 자기의 그저 단독 행위  같은 거나 조심해서 이래 할 수 있는 그런 분 또 경제 같은 거나 담당하는 그런  분, 그 중에도 정치와 교훈을 잘하는 그런 분들이 있으니까 그대로 대접해라  하는 그런 것을 말씀한 것이라.

 그랬기 때문에 저는 어떤 장로든지 장로로 세울 때에는 반드시 교훈할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자꾸 줘서 교훈을 해야 거기에서 반성도 하고 회개도 하고  또 하나님에게 가까이 달라붙게도 하고 이렇게 해서 그사람이 탈선되지 안 하게  된다. 타락하지 안하게 된다. 만일 정치만 말하면 정치라 하는 것은 권리를 쓰는  것이고 또 그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는 권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꾸 그것만 심하게 하다 보면 반성과 회개할 그런 기회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만 보는 하나의 심판자가 되고 말고 자기에 대해서는  깨끗한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를 세우면 반드시 교훈할  수 있는 그런 책임을 맡기고 기회를 줘야 된다 하는 그것을 제가, 지금은 그리  주장을 안 합니다. 마는 처음에 여기에서도 와 가지고는 주장을 했는데, 많이  주장했는데 지금은 다 그리 알고 있지 해서 그렇고 또 그렇게 제가 하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로 된 분들에게 교훈을 어떻게 시키느냐? 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이  대예배 때나 이런 대 강단에서 증거하는 것은 절 증거하라고 하나님이 해 주셨고  또 다른 교인들도 그러하고, 또 저도 할 수 있는 대로는 저에게 있는 이  증거하는 이 권세를 빼앗기지 안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죽는 날까지도 증거하는  권세를 빼앗기지 안하려고 하는 고 성령의 욕심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벌써 그것을 얼마 나이가 되면, 벌써 제 연령이 되면 벌써 다른  사람들이 다 그리하고 일주일에 대예배 오전 설교나 이렇게 하고 말지마는 저는  대예배 네 번, 또 새벽기도의 설교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 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장로님들이나 앞으로 목회자 될 분들에게 이 설교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하게 된다 하는 그 면을 생각해서 그래 그 몇을 제가  발견한 것이 모두 다 장로님들은 전부 이 주일학교 반사가 돼야 되겠다 또  앞으로 계획은 그러합니다. 다 남권찰이 돼야 되겠다. 남구역장 남구역장이 돼야  되겠다, 이러면 자기가 설교할 수 있는 그 무대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이  모자라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그거 되기 전에는 반사라도 해야 된다.

반사를 하면 벌써 자기가 개적 구원을 염려를 하고 개적 신앙을 염려해서 자기  맡은 학생의 신앙을 염려를 하고 또 그 신앙을 바로 잡을라고 애를 쓰고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고 또 잘 가르치고 타일러서 신앙으로 바로 되도록 이렇게 길러  가는 요 개인 교훈 지도 요것이 제일 어렵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만  해서 개인 전도하고 개인 교훈 하고 지도하고 또 개인에 대해서 책임지고 뭐  이것만 하면, 이거 하는 사람이. 이것만 잘 해 놓으면 하나 책임지다가 둘  책임지고 둘 책임지다가 백 명 뭐 천 명 이렇게 차차 차차 그라면 고 하나를 꼭  책임지는 거와 같은 고 힘을 가지고서 책임을 지는데 이제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책임지는 힘은 사람들이 유한하고 일거리 양은 많아지니까 자연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조절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다 필연성 있게 그 모든 것이 잘 정연하게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면 목회자로서 설교할 자격은 있다  그것을 저는 생각하고 있고, 또 자기가 자기 개인 생활을 신앙생활을, 평신도로  있으면서 개인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 그것을 성공 한 사람이라면  목회자로서 행정은 할 수 있다. 왜? 자기 성공한 그대로 모든 교인들도 그대로  개인 신앙생활을 성공하도록만 가르치면 된다. 그러기 때문에, 행정에 대해서나  교훈에 대해서나 이 두 가지로 표준을 잡고서 저는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벌써 자기 개인 신앙생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교역자 자격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한 사람 두 사람을 가르치는 그런 자격이 없으면 설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자나 목회자로 등용할 때에는 어떤 자를 등용하느냐? 무슨 설교  잘하는 그런 사람을 등용하는 것보다도 첫째는 그 사람이 자기 개인 신앙생활이  어찌 되느냐, 개인 신앙생활을 성공을 한 사람이냐, 개인 신앙생활을 졸업을  했느냐 말하자면 성공을 했느냐? 뭐 졸업했다는 말은 끝났다 말이 아니고 졸업을  했느냐. 성공을 했느냐? 그러면, 성공한 사람이라면 목회자로 나와 가지고서  모든 개인 개인을 자기와 같이 성공하게 하는 그 사람 만들면 그게 일등  목회자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의 자격이 있다 그렇게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서부 교회는 다른 교회와 아주 좀 다릅니다. 행정이  달라서 '이게 틀렸다' 이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네들은 틀렸다 해도 내게는  확신이 있습니다. 틀렸다 하는 그게 다 인본이고 제 사욕에서 나온 말이고  참으로 양심 써서 정신 차리면 그런 소리 다 회개할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그런데  대해서 뭐 요동을 하지를 않습니다.

 이래서, 장로님들은 장로님들이 좀 장성해지면 주일학교 반사를 할 것이다.

그러면, 반사들이 다 장로님보다 낫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 직이 다르기 때문에,  장로님들은 자기가 참 신앙이 바로 되면 내가 이 어른들, 장년반을 이래 전도  해도. 우리 사명은 증거하는 것인데,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기 직전에 유언으로 말씀하신 것인데, 이것이 우리의  사명인데, 장년반을 전도하든지 전도하는 게 사명인데 이 전도하는데에는  장년반도 하고 유년반도 하고 이럴 때에 아무래도 자기가 유년반을 시작해  가지고서 어릴 때부터, 버리기 전에, 세상 모든 것으로 못 쓰게 버리기 전에  이것을 다 단속해서 기르면 좋겠다 하는 그런 깨달음을 가질 것이고, 깨달음  가졌으면, 나도 지금 주일학교 반사해야 되겠다 하는 그 깨달음을 가지고  반사하는 사람이 되면 그 장로님이 많이 신앙이 장성해졌다 나는 그렇게 보고,  그래서 장로님으로서 주일학교 반사를 하고 또 반사하다가 남권찰을 하고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뭐 지위가 어디 갔다가 참 어디까지 됐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나는 사람을 가르쳐서 예수님을 다 영접하게 하는 이런 증인이 돼야  되겠다 해서 마지막에는 목회자로 나가도록, 유급의 목회자가 되든지 무보수의  목회자가 되든지 목회자로 돼지는 것이 그 신앙이 바로 자라가는 것이지, 나중에  그래 가지고서 무슨 정치나 하고서 에헴 해 가지고서 무슨 교인들에 대해서 무슨  교회의 권리나 가지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다 실패합니다.

 교회마다 가 보면 그 장로들이 다 모두 목사하고 삐뜩거리고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자기권리 안 준다고, 권리 안 준다고 이라고 권리 때문에, 권리  다툼이요, 또 장로와 장로가 이렇게 합하는 것도 권리 다툼에서 저희들이  단합하는 것이고 권리 다툼에서 이분 삼분으로 이렇게 나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자기에게 백해무익의 것인데 그런데다가 안 떨  눈을 뜨고 보지 못할 걸 봤고 생각지 안할 것을 생각해 가지고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들을 하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고 이렇게 이번에 죽 이렇게 할 때에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고, 또  어제부터 ○○○장로님은 오전에 시켰고 또 ○장로님은 오후에 시켰고 이러다가  오후에 하라고 했습니다. 오후에 하라 이러다가 또 오후 놔 두고 내일 아침에  하라 또 이래 했습니다. 또 이제 ○장로님은 오후에 하라고 했는데 주일날  오후에 하라고 했는데 내일 아침에 하라, 또 그다음에 모레 아침에 하라, 또  그다음에는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한 그것은 그럼으로써 나는 뭘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증거하는 것을 평생 직책으로 증거하고는 있기는 있지마는 그래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셔서 대중 예배에 증거하는 것은 그거는 참 중요한 일이요  무거운 일인데, 그 일에 대해서 중요하고 아주 무겁다는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준비를 하는데에 하루 준비, 준비 시간을 하루 주는 것보다도 이틀  주면은 더 마음이 눌려서 이틀 동안에는 꼼짝을 못 하고 자기가 거기에 눌려  가지고서 자유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 주님과 진리에게 붙들린 사람이 될 것이고  또 사흘이 되면 사흘 동안은 그렇게 꼼짝 못 하는 감옥 생활 하게 될 것이고, 한  달이면 한 달 꼼짝 못하고 감옥 생활 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시쁘게  보는 사람은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리 안 하면 십 분이면 십 분 딱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십 분 준비할 기간을 줬다가 좀 늦어져서 한 두 시간  준비할 시간 줬으면 십 분 준비할 시간에 다 준비했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준비할  것이 없다, 그러면은 그다음 것은 이제 한 시간 더 있는 그거는 준비 안 하니까  더 타락이 되고 그만 방종해질 것입니다. 이래서, 방종해지는 사람은 점점  방종해 지고 참 어려워 준비하는 사람은 전부 준비를 점점 더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거기에 대해서 자꾸 변동되는데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제일 염려를 많이 하느냐 하면 구역장들이 제일 염려를 많이  합니다. 뭐라고 염려하느냐? 그렇게 자꾸 변동되면 이다음에도 '아 그렇게  변동되니 말씀에 대해서 권위가 없어 가지고서. 또 시켜도 이번에도 뭐 그럴지  모르니까 방심을 해서 힘을 안 들일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다 구역장들의 견해입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괜찮아, 그런 거는 관계  없어. 다 그렇게 사람들 그렇게만 비판하지 말아.' 자기네들이 준비하라 했는데  준비가 오늘, 오늘 이 시간인데 이 시간이 지나갔으니까 '아따, 이다음에는  없다' 하면 하지마는 지나갔으니까 이제는 됐다' 하고서 안심하는 사람, 이제  시간이 닥치니까 인제 그때까지 준비를 했었는데 다시 또 연기가 되니까 이제는  그만 짐을 짊어졌다가 이 짐을 그만 이 시간에 턱 털어 놓고 짐을 벗어 놓을 수  있었는데 또 오리만 지고 가자 해서 오리 지고 갔더니 '이제 됐다' 휘떡 벗어  놓을라 하니까 '아니. 아직까지 오리 더 가야 돼.' 오리 또 더 짊어지고 갈라  하니까 고통입니다. 또 십리 가고 나니까 '안 돼 아직까지 십리 더 가야 돼.'  그러니까, 마음이 더 눌리고 더 고통스러워지고 더 염려스럽고 더 자유하지  못하겠고 그것 때문에 다른 것도 못 하겠고, 그거 맡기 전에는 이런 거 저런 거  좀 할 일이 더러 있었는데 그거 맡고 나니까 고만 그것 때문에 제재 받아서 이래  좀 못 하는 사람. 이래 더 눌리는 사람.

 이래서, 제가 이번에 깨달은, 이렇게 시키기 전에 깨달은 것은 이거 이런 게  아니라 이거 도무지 마음을 모두 다 방심하고 있으니까 설교할 만한  사람들에게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너는 아무 때 요렇게, 처음에는 어릴 때는  날짜를 정해 가지고서 딱 그래 시키면서 '네가 준비해라' 요렇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는 언제 어느 때에 너를 설교를 시킬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해 놓고  있거라' 그런 것은 내가 몇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항상 준비해 놓고 있거라'  이랬는데, 그렇게 해서 사람이 좀 준비하는 그 마음을 가지는 그 때에 좀 구원이  이루어지겠다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과거에 남반들이 없어서 여권찰님들이 이 지방 교회에 한 번씩 순회를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 달에는 이 권찰님이 가면은 모든 교회에 가  가지고서 그 날밤 설교, 그 이튿날 새벽 설교, 또 거석한 자리는 교회 가까운  데로 그다음이 가까우면 또 오전 설교 이렇게 세 번씩 설교를 하면서 쭉  돌아오고 또 그다음에는 다른 권찰님이 가서 쭉 돌아오고 그때 그렇게 할 때에는  아주 이 진영 교회가 잘 됐습니다. 잘 되고, 다른 잡탱이 없고 잘 됐는데  그다음에는 그만 그것을 그만 뒀습니다. 그만 뒀는데, 그만두고 난 다음에  지금은 그 교회가 상상도 못 하게, 가보면 이거는 참 닭이다 생각했는데  가보니까 완전히 오리 새끼입니다. 아주. 아주 판이하게 다른 그런 교회들이  많이 있다 말이오. 그래 그것 때문에 이번에도 신강을 많이 했고 많은 물의가  있어 있었습니다. 교역자회 때.

 그때에 그만 자기가 갈 그런 순서가 되어지면 그 권찰님들이 한 달 동안은,  그러면 '넉 달 됐으니까 요번에는 내다' 하는, 그 맡은 한 달 동안은 꼼짝을 못  해, 보니까 한 달 동안은 주님에게 붙들리 고 진리에 붙들리고 영감에 붙들리고  붙들려서 자유 행동을 하지 못하고 붙들려 꼼짝 못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보니까 끄떡하면 그만, 어짜면 그만, 찾으면 없으면 산에  갔고 그리 안 하면 기도하고 뭐 참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한 달 동안 잘  준비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가서 순회할 때에 아주 은혜를 끼치고, 자기도 생각  못 할 만침 그렇게 아주 신령한 깨달음을 가지고 자기도 회개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회개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고 이러는데, 딱 증거하고 와서 그 이튿날부터  허리끈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 그 이튿날부터 고만 마음 풀어 놓고 이제  '아이구. 후유.' 큰 짐 짊어지고 갔다가 나중에 다 져다 놓고 나면 '아이구,  후유' 하는 거 모양으로 그렇게 해 가지고서 그다음에 마음이 풀어지고 식어져서  신앙이 흐려져 가지고 실수는 그때 실수하고, 준비할 때에는 다 회개하고 다  증거하고 난 다음에는 실수하고 그런 것을 사람 사람 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게 준비가 필요 있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집니다.

 이러니까, 이제 말한 분들은 언제 지금, 인제 준비 시켜 놨으니까 언제  시킬런지 모릅니다. 반드시 시킬 때가, 내가 시킬 때는 이상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형편에 꼭 설교하지 못할 때 시킬 것입니다. 또 자기 가정에서 반드시  사건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 못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목사에게는 보면  토요일날 꼭 마귀가 활동합니다. 토요일날 마귀 활동하는 것은 대개 가족이  활동합니다. 마귀, 토요일날 마귀 활동, 또 수요일날 오후에 마귀 활동, 또  금요일날 오후에 마귀 활동 이것은 뭐 이거는 변함이 없습니다. 누가 해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 생활표에다가 적어 놓기는 그것을 벌써부터 적어 놓고  내가 선포를 못 합니다. 수요일날 오후, 금요일날 오후, 토요일날 오후는 면접이  다 안 되는 것이니까 그때는 면접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기록은 해 놓고  이걸 선포 하나 안 하나 늘 그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데에서 자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설교를  준비했는데 준비해 가지고 하고 나니까 '후유' 하고 쉬운 사람은 그 설교를 바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이전보다 주님을 더 깨달아졌으면,  깨달아졌으면 자기는 허리가 동여지고 다 자기는 더 준비되어지고 또 설교를  했으면 하고 난 다음에는 잘못한 것이 반드시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고 나면 또 잘못해서 또 빠졌기 때문에 또 해야 되겠다 또  하고 나서 보니까 또 빠진 것이 있으니까 또 해야 되겠다 또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한 설교를 또 해야 되겠고 또 해야 되고 자꾸 할수록 또 해야 되고 또  해야 되겠고 빠진 게 있으니까, 미진한 것이 있으니까 이것이 있어야 되는 건데,  하고 나니까 다 됐다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은 헛된 모든 허영으로  허욕으로 허영으로 하는 것이지 그게 참 자기가 진실한 설교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속에는 허영이 있으니까 나중에 분석하면은, 그런 요소를 다 분류해서  제거해 버리면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이 퉁 비기 쉽다 그거요.

 그러고, 이번에 설교한 데 대해서 제가, 모두 설교 잘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또 소망을 가진 것이 '야, 지금 내가 죽어도 저희들이 다 나가서 증거할 수  있겠다.' 목사들로서 뭐 모자라지 않는 그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번에는 다 잘해요. 미리부터 준비를 시켜 놔 그런지 아주 설교를  잘했습니다. 잘해서 제가 점수를 매겼는데 구십 오 점이 제일 많고, 구십 삼 점,  구십 이 점, 구십 점, 팔십 점, 칠십 점 이렇게 됐는데, 칠십 점짜리도 생각에는  그 가치도 안 되리라 생각했는데 칠십 점이 됐으니까 합격은 합격입니다.

 이랬는데, 설교를 할 때에 하나 권면할라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반드시 그  설교 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잡아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첫째 중요한 것이 있고 둘째 중요한 것이 있고 셋째 중요한  것, 중요한 것도 순서가 있는 것인데 그만 끄트머리 마지막에 중요한 그것을  너무 강하게 크게 해 버리고 제일 중요한 것을 적게 해 버렸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면은 그 설교는 기형적인 설교가 됩니다. 기형적인 설교라 말은  귀는 귀만치 요만치 커야 되는데 귀는 커서 아주 커단하게 행이짝만하고 낯은  조그만하면은 그게 병신입니다. 기형입니다. 낯이 작으면 또 귀도 좀 작고 또  낯이 작으면 코도 작고 또 키가 작으면 그 사람의 모가지도 좀 짧고 이래야 되지  키는 한 석자 되는 사람이 목은 한 자나 되면 그것도 병신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좀 체계적인 면을 생각지 못하는 점이 있다 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달게 받아야 되지 달게 받지 안하면 손해 갑니다.

달게 받지 안하는 사람은 고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라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 소망을 두고 푯대를 향해서 달아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자기 이미 있는 것 자랑할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그 사람은  합당치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하는 가운데에 달게 받는 사람 중에 하나, 여기 ○○○씨 왔습니까? 손  들어 봐요. ○○○씨, 안 왔네. 요 꾀쟁이로구나. ○○○씨에 대해서 내가 두  가지를 고쳐 줬는데 고거 달게 받아서 고대로 하고 있습니다. 또 어제 아침에도  지금 이 주일학교 새벽기도 인도하고 있는 그 반사 선생에 대해서 내가 말을  했습니다. 잘못된 거 '네가 기도하지 안했다. 기도하지 안하고 지금 준비하지  안하고 지금 벌소리를 하고 있다.' 아주 잘 했습니다. 아주 참 유력한 일군이  앞으로 될 사람인데, 보니까 어제 아침에는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 ○○○  권찰님 구역 식구인데 아주 설교 잘 했습니다. 뭐 여기에 유력한 분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랬는데 어제 아침에는 보니까 마구 죽을 쓰고 엉뚱한 소리를 자꾸  해 가지고서 소리만 꽥꽥 질르고 있다 말이오. 그랬더니마는 자기도 그걸  시인했는데 잘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대로 잘 했습니다.

 했는데 ○목사님이 마태복음 25장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아주 잘 했습니다. 잘  했는데, 이런 것이 오든지 저런 것이 오든지 참고 견뎌라, 무엇이든지 참고  견디라는 고 면은 대단히 강조를 했는데 거기에 영감과 진리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안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그 기름 준비에는 영감 준비요 진리  준비입니다. 그 영감과 진리에 대해서 자꾸 많이 말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잘못하면, 이런 역경에도 참고 저런 모든 환경에서도 어떤 환경이든지  그저 참고 견뎌라 하는 것만 이래 돼 버리고 말면 그 사람이 나중에 보면 일종의  고행주의가 되고 그만 무엇이든지 인내주의만 되고 그저 참고 견디면, 계속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인데 계속 암만 해 봤자 그저 영감 안 되면 안됩니다. 영감  말은 하기는 했지마는 영감을 강조해야 됩니다. 거기에서는 자꾸 기름 준비하는  것은 이것이 영감 준비다 이것이 진리 준비다 이게 영감과 진리가 결합되는  것이다. 영감과 진리 결합되는 요것을 강조해서 조것이 자꾸 근본이 돼져야  되지, 그래야 대가리가 클 때는 대가리가 크고 또 작은 거는 작고 이래 돼지지  그것이 그 인내를, 뭐이든지 계속 인내라 하는 그것이 더 커져 가지고서 나중에  그리 되면 그만 신앙들의 줄기를 사람들이 잡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 그저  무엇이든지 뿍 계속만 하는 사람 되고 말지 계속해서 그 진리와 영감을 찾아서  갈라고 하는 그것이 빈약해지기 때문에 그러면 나중에 가서 얼마 가면 뒤에  탈선돼 버리고 힘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라고. ○○○집사님은 아가서를 말했는데, 아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 아가서  설교에 거기에서 제일 요지는 뭐 이 요지냐? 요지는 주님을 찾아서 갈급한  그것이 요지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자꾸 이리 저리 늘어놓기만 늘어  놔 가지고서, 그거는 다 배우는 대로 그저 거의 다 하고 이래 했는데 고  설교하는 가운데서. 설교하는 가운데서 그 술람미 여인이 주님에게 대해서 갈증,  주님에게 대해서 갈증, 고 전부 주님에게 대한 갈증 때문에 그 행동이 나왔고  그것이 주님을 대한 갈증이고, 그 중심이 주님에게 대해서 갈증되는 그것이 제일  중심인데 그것은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그저 이렇게 행동한다 이렇게 행동한, 다  이게 좋다 이렇다 이렇다 그 말만 했지, 그것이 갈증 때문에 그런 것이지 갈증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갈증되는. 중심되는 그걸 뺏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그리 돼지면은 뭐이 되느냐? 하나의 말쟁이만 되고 말고 하나  아름다워 참 보기 좋고 아주 빛 좋은 개살구만 돼 버렸지 속에 뭐이 역사가 없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그것이, 자기가 몰약산에 가는 것이나 유황의 작은 산에  가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요 주님을 찾아 갈증, 주님을 찾는 갈급, 주님을  찾아서 갈급하는 요자가, 갈급한 자야 주를 만날라면 요런 때는 여기에 가서  만나라, 주를 찾아 갈급하는 자야 요럴 때는 여기에서 만나라, 주를 찾아  갈급한다는 그것이 중심이 돼야 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 고쳐야 될 것입니다.

 또 그라고 ○○○집사도 잘 했습니다. 잘 했는데 ○○○집사님 설교 하는데에는  하나 빠진 것이 있는데 뭐이냐 하면은 모든 것이 합해 가지고서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이랬는데, 싸우는 그런 얘기만 했지 모든 것이 합해질 때에 그  합해진 것의 그것의 두려움이 얼마나 두려움이냐? 그 합해진 그것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거는 생각을 하지 안하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일 요지입니다. 어린 양과 거기에 진실한 자 외에는 전체가 이  세계가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대항하는 게 나와 대항할 터이니까 그 상대방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강한지 그것부터 생겨져야 됩니다. 두려움부터 생겨져야  거기에 대해서 대비가 돼지는 것이지 그것을 설교를 하지마는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모든 것이 하나 된다 해도 하나 되면 그게 하나 되면 내게 뭐  얼마나 보기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느냐, 무슨, 무슨 웃음거리가 되겠느냐 하는데  대한, 그 하나 되는데 대해서 두려운 대적이라, 이 두려운. 이 대적이, 참  두려운 대적이 생겨진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다른 설교는 못 해도 이렇게 하나  될때에 얼마나 두렵겠느냐? 고 두려움을 느끼는 그게 자기에게 있어 가지고 해야  되는데 그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도 없어서 설교는 잘 했는데 칠십  점입니다. 그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우리가 이래 볼 때에 이웃의 몇 사람만  하나가 돼 가지고 우리에게 대항해도 얼마나 두렵습니까? 자, 우리 한국에 있는  뭐 다른 거 내두고 부산에 있는 시청, 경찰서, 이 모든 동회 이 사람들이 다  뚤뚤 뭉쳐 가지고 우리 신앙생활을 반대해도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왜정 말년에  일본 나라 그 세력이 하나 뚤뚤 뭉쳐 가지고서 신앙생활 반대해도 두려웠습니다.

이랬는데 세계가 하나가 돼 놓으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말이오, 두렵기를. 이렇게  합세 됐을 때에 그 대적이 얼마나 두려우냐, 그 두려울 때 내가 어찌 되느냐,  거기에 대해서 아무 느낌이 없이 설교했기 때문에, 그것이 아닙니다. 그라면 안  됩니다.

 또 그라고 ○○○ 조사님은 설교를 바로 했습니다. 제일 나았습니다. 구 십 오  점입니다. 거기에는 흠점이 없고 바로 자기가 깨닫고 느끼고 했습니다.

 그라고 그다음에는 ○○○목사님. 아주 설교를 잘 했습니다. 가정에 대해서  설교, 그래서 목회자가 되면 모든 교인들의 가정이 잘 되도록 이렇게 잘 돌봐야  되는데, 아주 그거 잘했습니다. 잘 했는데 제일 요긴한 것을 하나 뺐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거 말은 하기는 했지마는 이 부부라는 것은 이거 교회를  하나 나타낸 것이고 이것이 개인 교회, 가정 교회 사회 교회 이 교회인데,  교회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 가정이 이리 이리 해서 서로 이래야 복을 받고  이래야 화목이 되고 이래 인내해야 되고 다 참 전부 다 뚤뚤 뭉치게 되면 좋다  하는 여기에만 강조를 했는데. 요러면 복을 받는다 요렇게만 강조를 했는데,  잘된 가정 좋습니다. 좋은데, 거기에 뭐이냐 하면은,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그 사람들과 합해지는 것, 요 셋이 합해지는 요것이 중요합니다. 요것이  없으면 얼마든지 가정은 다 화합해서 잘할 수 있습니다. 잘할 수 있지마는 제일  사고가 어디서 나느냐 하면은 진리하고 합하려고 하니까 가정이 깨지고 영감과  합할라 하니까 가정이 깨지고 이러니까 어쩌든지 영감과 진리와 합한 고 가정이  돼야 된다는 요것이 그 핵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설교할 때에는 반드시 양면을 생각하십시오. 양면은  하나는 버려야 되고 하나는 취해야 되고 양쪽이 다 있어야 됩니다. 취해야 될  것만 있으면 그 설교는 인본주의 설교라서 나중에 둘둘 뭉쳐 가지고 아무 마찰  없이, 핍박 없는, 마찰 없는, 전투 없는 그런 신앙이 돼 버리고 말고, 또 버리는  것만 자꾸 이렇게 하고 취하는 것이 없어지면은 그거는 하나 고행주의같이 그만  틀려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가정은 참 하나가 돼야 되는데, 하나가 돼야 되는데는 꼭 진리하고  하나 돼야 되고 영감하고 하나 돼야 되지, 영감하고 하나 되고 그 영감과 진리와  하나 될라 하면 인간과 합해지지 안하고,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 가정이  노아의 가정과 아브라함의 가정이 달랐다 그 말이오. 노아의 가정은 다 그들이  모든 거 다 구비해서 참 잘 됐습니다. 잘 돼서 이래지 냈지마는 뭐이냐? 하나가  빠졌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 그것이 빠졌기 때문에 그 가정이 나중에 파괴되고  말았다 말이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진리와 영감하고 합할라 하니까  그때에 얼마나 분쟁이 일어나고 얼마나 신강이 있고 뭐 불만 불평이  많았겠습니까? 이렇지마는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고 책임을 졌다 그거요. 그래서  아주 요긴한 설교였는데 그 설교 할 때에는 반드시 영감하고 우리가 하나 된  가정이 돼야 되고 진리와 하나 된 가정이 되고, 영감과 진리는 하나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해 가지고서 거기에 맞추어서 돼야 되지 그걸 맞추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많이 강조해서 해야 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인화적인 가정이 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합되는 신화적인 가정이 되지 않기 쉽습니다.

 또 ○선생 ○선생은, ○선생 왔습니까? 네, 아 거기 말고. 이부 부장, 이부의  부장 안 왔네. ○선생은. 해석은 잘 했습니다. 해석은 잘 했는데 그 해석의 제일  요긴한 것이 자기 읽은 본문으로 말하면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 결단코  애통함에 이르지 않는다' 그기 제일 요지입니다. 그러므로 망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해석을 안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좀 강조하는 힘이 조금  빈약했습니다.

 또 그러고 ○○○ 목사님은 창세기 13장의 설교를 잘 했습니다. 여기에는 복을  강조했는데, 고 설교가 l3장만 했으면 잘 됐습니다. l3장만 했으면 잘 됐을  터인데 l2장을 끌어다가 고만 좀 낭패를 지워 버렸습니다. 12장도 다 주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도 복받는 거라 그랬는데 12 장에는 '네 본토 친척 애비 집을  떠나라' 요것 때문에 마찰이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본토로 말한 것은  사람들이 땅에 속했고 친척이라 말한 것은 인류에게 속했고 그다음에는 자기  혈통에 속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좁게 말하면 지방 정실이요  동류 정실이요 혈통 정실 그것을 떠나야 되니까 그것이 근본 기초 회개입니다.

기본 회개. 땅에 속한 것이 완전히 자리를 옮겨서 지금 하나님에게 박아라는  것인데 그렇게 그것을 안 했으면 좋은데 고만 12장 해석을 이렇게 주를 위함.

물론 주를 위함이야 주를 위함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위함이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 이랬는데 거기에 제일 지금 뚜렷이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제일 싫어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땅을 네가 버리라, 땅을 버리고 하늘을  취해라, 네가 인류를 버리고 하나님을 취해라, 너를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을  취해라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본토 친척 애비 집을 떠나라 하는 이거  중요한 건데, 그 중요한 거 지금, 그것 때문에 여기에서 ○○○목사님도 맞지  안해 가지고서 떠났고, 모든 사람들이 정치가 맞지 않다는 그것은 그 아브라함의  처음에 기본 회개. 거기에 속한 그 소속을 네가 옮기라, 거기에 뿌리박았던 것을  그것을 옮기라 이걸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인데, 그건데 그만 그걸 하나님을  위한 것에, 하나님을 위했다는 것은 너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벙벙해서, 이것도  하나님이 위한 거, 하나님 위하는 것 중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위한다는 것보다도 고걸 좁게 해야 되는데 l2장에서 가르친  그걸 범벅을 시켜서 안 됐습니다. 그러니까, 고 범벅시키는 그런 것을 하지  않도록 언제든지 요 성구는 무엇이 중심 되는가 그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 해도 '본토 친척 애비 집을 떠나라.' 이거는 근거를 옮겨야 된다,  소속을 옮겨야 된다. 이 뿌럭지를 달리 박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처음에 자기가 이제까지 이 세상  땅에 속한 그 모든 것을 이제 다 하늘에 속한 것으로 옮겨야 되고, 또 모든  인류에게 소속한 그것도 다 주님에게 속한 것으로 옮겨야 되고, 자기 또 혈육에  속한 것도 주님에게 소속한 것으로 옮겨져야 됩니다. 요것이 안 되기 때문에  교회들이 지금 아무리 믿는다고 하지마는 본토에 붙어살고 있고 또 친척에  붙어살고 있고 혈통에 붙어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뿌럭지가 옮겨지지 안했으니까 신앙생활하는 것 같지마는 실은 거기에 소속해서  하고 있다 그거요. 그래서 그것을 안 했더라면 좋을 뻔 했습니다.

 고 샘물 구멍을 좀 뚫긴 뚫었습니다. 뚫어서 고 연구하는 그 연구가 지금 이제  눈이 뜨이기는 뜨였는데, 뜨일 때에 반드시 아무나 따나 그만 거 다 대고 주  붙여 가지고서 이래 하지 말고 제일 거기에서 요긴한 거, 설교를 할 때에는  까끌까끌, 쉽게 말하면 까끌까끌한 설교를 하려고 애를 쓰십시오. 까끌까끌한,  까다로운 설교를 하려고 애를 쓰고. 반드시 설교할 때에는 거기에는 마찰이  있어서 요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수수하게 다 듣기를 좋아하지 안하고 요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걸리고 저것 때문에 걸리고. 걸리는 그것이 치료하는 것이오.

그것이 없는 것은 그만 두루 뭉실로 슬슬 그만 이렇게 되면 사람들 그런 설교  얼마 안 해서 사람들은 좋아 하지마는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 목사님이 그전에 내가 비판도 하기를 너는 설교하는 데에 보면 그 설교가  다 외부적이고 이거 모두 아무 속에 내적이나 외적이나 투쟁 없는 그런 설교를  하니까 교인들은 좋아할 거다마는 나중에 끝은 없어진다. 그런 거 알아야  됩니다.

 또 ○○○집사는 그냥 괜찮게 했습니다. 점수는 구십 이 점이지마는 아무  책잡을 것이 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또 ○○○ 장로님은 설교하는 데에 거기에 17절에 있는 말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모든 것을 후히 줘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 하는 여기에 대해서는 복을 말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고 설교 중에는 제일 기초가 뭐이  기초냐 하면은, 기초가 뭐이냐 하면은 '이 세상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네게 어떤 자연 은총의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네가  가치로 삼지 말아라 그것을 가치로 삼지 말고. 그것은 버려야 될 것인지도  모르고 오늘 가지고 있어야 될 것인지도 모르고 네게 지금 현재 그게 이  시간까지는 필요했지마는 요다음 시간은 그것이 네게 화가 될 것이라 버려야 될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에게 가치를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신다 말은 있는  것을 없이 하는 것도 후히 주시는 것이 되고 또 없는 걸 있게 하는 것도 후히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 한 분에게 소망 두고서 그런 것에게 소망 두지 마라,  요것이 제일 기초되는 것인데 요것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터 없는 위에다가 집을  짓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설교만 자꾸 해 버리고 말면 결국 사람은 복 받을라 하는 사람 모두 세상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설교요. 다 좋아 하는 설교인데, 뭐이 치료되는 것이냐?  '이 세상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하는 요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을 끼우면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고 다음 거는 뭐  하나님에게 소망 두라. 모든 거 다 이래라. 선을 해라, 선한 일에 부요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 되게 하라 이렇게 하는 이런 것은 다 도덕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 좋아합니다. 다 좋아하는데 '이 세상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왜 높이지 않느냐? 그게 다 정함이 없는 것들이다. 그게  오늘 변동될지 내일 변동될지도 모르고 그 자체가 유무도 변동되고, 있다가 없게  되는 유무도 변동되고 가치도 변동되고 내게 이용될 이용면도 변동된다,  이용면도 변동된다는 말이오. 그게 필요 하다가 필요 없을 때 있다 말이오. 그래  변동되니까 그걸 따라가다가는 낭파 되니까 그걸 따라가지 말고 그저 모든 것을  적당하게 다 줘 가지고 후히 주시는 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는 거기에서 부터는 잘 했습니다. 잘 했는데, 여기에 처음에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요 기초적인 여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그것이 좀 재미없었습니다.

 또 ○○○ 장로님은 잘 했습니다. 잘 했는데, 본문 낭독에. 나도 그런 실수  많이 하는데, 본문 낭독에 여러 번 실수가 있었습니다. 있고. 다른 면은 다 잘  했습니다. 그건 아마 자기가 평소에, 사는 생활을 그 면을 제일 마음에 늘 많이  가책하고 많이 느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설교에는, 설교에는 끊어라 이어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는 끊고 이거는 이어라 그 둘이 있습니다. 이거는 버리고 이거는 취해라  이거는 죽이고 이거는 살려라 하는 양면이 있는데, 살리는 면 만 말하면 나중에  가서는 뭐이 되느냐? 그 결과 사는 것이 되지 안하고 세상 것이 되고 맙니다.

살리는 것만 말하면 세상 것 되고 말이요. 또 죽이는 것만 말하면 나중에 가서  보면 염세주의 되고 말이요. 그러니까, 죽이는 거 살리는 거 들어 가지고서  반드시 죽이는 걸 말할 때는 살리는 것이 있고 살리는 걸 말할 때는 반드시  죽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죽이고 요걸 살려야 되지 죽이지 안하고  살리기만 하면 그것이 내나 세상 것이 돼 버리고 말고 하늘나라의 것이 안 되고  만다 그거요. 그러고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아주 뭐 나는 설교를 그런 흠점 없이 하는 사람이라 그러냐? 그건 아닙니다.

나도 흠점이 있는 사람이지마는 내게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고쳐줄 것을 고쳐 줄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 말하는 것을 간단한 시간에 말했지마는 자기가 잘 가서 생각  해 가지고서 그것을 바로 깨달아져야만 할 것입니다. 외나 강조해야 될 것을  강조하지 안하고, 그러니까, 강조할 그런 것은 그걸 강조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듣기 싫어할 것인데 그것 빼 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그러고, 오늘 아침에 시간이 너무 많이 가서 그만 설교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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