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배우고 공경하고 가르침

 

1987. 3. 14. 새벽 <토>

 

본문:에베소서 6장 1절∼4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게 첫 계명이라, 첫 계명이라 하는 것은 인인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오계명이기 때문에 첫 계명이라 말은 인인 관계로서의 첫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첫 계명이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 부모를 봉사하는 것, 부모를 섬기는 것 이것이 인인 관계에서 제일 첫째되는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우리는 개인이 있고, 그 다음에는 가정이 있고,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전인류가 있는 것인데 첫 계명이라 말은 자기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사회든지, 국가든지, 전인류든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잘 되고 못 되는 거, 잘 되고 못 되는 거, 또 오래 유지되고 또 그것이 절단나는 거, 잘 되고 못 되는 거 유지되고 절단나는 거 그 모든 것의 씨종자가 가정이다 하는 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인데 여게서 모두가 다 시발되고 또 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되면 다 잘못된다. 가정에서는 뭐 하는 것인고 하니 제일 중요한 것이 순종이요, 제일 중요한 것이 순종이요 또 가르치는 것이라.

그러면 가정이라 하는 것은 세 가지 하는 것이 가정인데 배우고 또 가르치는 것이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요, 또 한가지는 공경하는 것이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그러면 배우고 가르치고 또 기르고 하는 그것이 다 가정이 시발이다. 또 공경하는 것도 가정이 시발이다.

그러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은필연적으로 부모에게 배우고, 부모에게 또 따르고, 또 부모를 본받고, 부모를 닮아가고, 부모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제도요 그것이 다 절대성이라. 그러기 때문에 외형만이 아니고 속에 내부까지 다, 그 새끼는 어미 닮는 것이, 어미와 아비 닮는 것이 다 필연성이요 유전성이요 그런 것이 그 원리성이라.

그것을 절대성이라고는 붙일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없는 데에서 창조하시는 창조성이 있기 때문에 꼭 그대로 유전성 그런 것을 절대성이라고는 붙일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게 이 유전성이나 또 모든 양육성이나 그런 것보다도 더 탁월한 창조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성은 붙이지 못하지마는 그것이 다 원리성이요 하나님이 내신 또 모든 제도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 그게 필연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어데보다도 제일 부모와 자녀 사이가 제일 중요하고, 또 제일 첫째고, 또 제일 그 효과가 그대로의 결과가 제일 많이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을 하고 여게 대해서 제일 중요하게 힘써야 된다.

그러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은 가르치는 것보다도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인인 관계에 첫째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가 배운다는 것은 부모에게 제일 먼저 배우고 또 많이 배우고 거기에서 배우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제도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일을 주의해서 해야 된다.

네가 부모에게 배우는 그것이 틀렸으면 너는 사회에서 배우는 것도 필연적으로 틀리게 되고, 국가에서 배우는 것도 필연적으로 틀리게 되고, 인류 전체에게 대한 그 배움도 틀리게 된다. 이것이 움싹이다. “첫 계명이니” 하는 것, “첫 계명이라” 하는 데 대해서 중요성을 말씀해 주신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배우는 것을 제일 주의해야 된다. 그러면 그 계란이 먼저 났나 병아리가 먼저 났나 닭이 먼저 났나 이라는 데에는 이거는 저것보다 저게 먼저 났고 뺑뺑 돌아가니까 어느 게 처음에 났는지 사람들은 그것은 전혀 뭐이 났는지 그거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성에서 닭이 먼저 났다. 그라고 난 다음에 계란 났고 계란에 닭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의무로서는 제일 중요한 의무인데 그라면 그 원인은 뭐인가? 사람이 그라면 배우면 가르치는 거 없이 배우는 것이 어데 있는가? 가르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가르치시지, 그러기에 사람은 시발은 배우는 데서 시발된다.

그 모든, 자기가 존재한 후에 그의 모든 자기가 되어지는 그것이나 또 자기의 모든 따른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그런 것은 다 자기에게서부터 시작되는데 자기에게 시작되면 어데 시작되느냐?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에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말은,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네가 배우는 데에는 주님 안에서 배우는 이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 주님 안이라 말은 우리는 처음에 난 것이 아담 하와에게 난 이 이것이 우리의 처음입니다. 우리가 시발은 아담 하와에게서 나왔고 아담 하와에서 나온 그것이 죽었는데 그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온 것은 둘째 아담으로 된 것입니다.

이래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말은 그 첫째 아담으로, 아담에게 속한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네가 배우지 말고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배워라. 그러면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요 그거는 다 패망케 한 것뿐이니까 둘째 아담의, 둘째 아담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워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도 속한 자가 있고 둘째 아담에게도 속한 자가 있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둘로 나눠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물들은 그 염색된 그 감염된 것은 다 탈색을 해 버리고, 우리 사람은 영육으로 되어 있는, 영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인데 이 영육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감염돼 가지고 악령 악성적의 그 모든 제 이차의 것을, 영육은 아담 하와에게 받았고, 부모에게 배웠고, 아담 하와에게 받았고, 아담 하와에게 받은 이것을 배암이 와서 꼬와서 거게 미혹받아 가지고 악령으로 물이 들었고 또 악령으로 물들고 난 다음에는 인간이 하나님 위주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이 된 요걸 가리켜서 악성이라 이래 말합니다.

요 악성은 뭐인고 하니 요거는 원죄입니다. 선악과 먹기 전부터 벌써 선악과를 그렇게 먹고 싶은 그것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였을 때에는 그거는 하나님 배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주 못쓸 일이지마는 배암의 유혹을 착 받고 나니까, 유혹을 착 받고 나니까 이제는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제일 지혜로운 일이라 이렇게 해서 선악과가 그렇게 탐스러웠고 먹었습니다. 그래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말합니다, 원죄.

그러기 때문에 영육은 악령으로 물들었고 또 유혹받아 가지고 악성으로, 악성은, 악은 자기 중심 위주가 악인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 인간성으로 본성으로 그만 감염이 돼 버렸다.

악습이라 하는 것은 본죄인데 그 둘로 말미암아 행동한 그 행동이 하루 이틀 한 번 두 번 자꾸 해 모이게 되니까 그것이 자기 중심의 습관이 됐고 습성이 돼 버렸다 그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그 악령 악성 악습으로 물든 것을, 그것으로 물든 것을 이제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 당신이 모든 악으로 감염된, 악령 악성 악습으로 감염된 그것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 멸망을 대신 주님이 멸망을 하시고 거게서 구출하셔서 이제는 우리를 악령 대신 하나님으로 물을 들였고, 악성 대신 하나님 중심 위주로 이제는 바꾸었고, 악습을 탈색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과 진리로 영생하는 이 선습을 우리에게 물을 들였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영육이라는 그 자체는 멸하는 게 아니고 영육이란 자체는 그것은 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첫째 아담에게 받은 영육의 그 자체에다가 잘못 물들여서, 마치 베쪼가리에 물들인 거와 마찬가지로 악령 악성 악습으로 감염해 놓은 이것을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탈색하는 거와 같이 완전히 화친과 칭의와 사죄로써 완전히 이거 물을 빼 버리고 온전한, 하나님과 화친으로 이제는 우리 영육을 변화시켰고 또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의로 변화시켰고 죄없는 그 자유로 변화를 시켜서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거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에게 대한 교훈은 아닙니다.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이 교훈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중생된 이후의 사람들에게 이 교훈을 교훈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아” 이것은 자녀들아 그말은 중생된 사람들에게 대해서 말씀합니다.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말은 네가 이제 너는 죽었고, 너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인격성과, 영육만 남아 있지 그 인격성은 다 죽었기 때문에 너는 죽었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움을 받은 네니까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렇게 배우는 데에는, 네가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한데, 배우는 게 중요한데 순종하라 말은 배우라 말입니다. 순종하라 말은 배우라 말인데 순종이 제일 중요한데 네가 순종하되 예수님의 이 열한 가지 이 구속을, 열한 가지 구속을 너는 과거에 몰랐던 자지마는 이제 열한 가지 구속으로 너는 다시 살아났고 이 소망을 입었고 또 이자가 됐다. 이자가 됐기 때문에 열한 가지 구속을 입은 자다, 네가. 입은 자기 때문에 입은 자로서 네가 순종해라. 입은 자로서 순종해라.

그말은 이 부모는 뭐 안 믿는 부모도 있고 믿는 부모도 있고 다 부모도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네가 가르침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 너는 중요한 것은 이것은 왜 중요하냐? 중요한 것은 이것은 필연적으로 거게 가르치고 배움 받는다 말이오.

필연적으로 가르침을 배우고 거게서 배우기 때문에 이거는 필연성이라.

필연성이기 때문에 거게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돼 가지고 있는 그런 부모도 있고 또 중생된 참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죄 칭의 화친으로서 이렇게 새로워진 그런 부모도 있으니 그 부모가 뭐 사죄 칭의 화친으로써 이 자녀를 양육한다면 다행이지마는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 때도 있고 옛사람으로 살 때도 있고 이것이 자꾸 교체되어서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너는 배우는 네가 주의해 가지고 아주 새사람으로 되어 있는 그 가르침을 네가 받아야 되기 때문에 위에 가르치는 것보다도, 위에 가르치는 것은 다 완전해지지를 못했기 때문에 배우는 네가 주의해서 이걸 배워야 된다 하는 것으로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배워라.

너는 열한 가지 구속을 받은 자기 때문에 구속 안에 있는 자로서 네가 배워서 그 가르치고 모두 지도하는 것이 이 구속을 받은 자를 죽이는 일이 되면 너는 받지 말고 이 구속받은 자를 돕는 일이 되면은 그 가르침과 지도를 받아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주 안에 순종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저 간단하게 말하니까 좀 하지마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니까 옳다 말은 벌써 거게 상대방은 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옳으니라 말은 틀린 거 있고 옳은 거 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네가 필연적으로 부모에게 배우는 것은 필연성인데 필연성인 이 배움을 피할 수는 없다. 필연성인 배움을 이걸 벗어날 수 없고 피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 배움에는 너는 행할 일은 잘 선택해서 바로 배우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되지 바로 배우도록 노력하지 안하면 이거 틀려진다.

그러면 바로 배우는 건 뭐냐 하면은 “주 안에서” 하는 것은, 주라 말은 예수님의 구주 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주 안에서 네가 배워라” 그러면 주 안에 있는 네게 효력 있는 것이면 배우고 주 안에 있는 너를 죽이는 것이면 배우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자꾸 내가 지금 하고 있느냐 하면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주 안에서 순종하는 이것을 사람들이 껍데기만 가지고 간단하게 이렇게 해서 주 안이라는 이것을 그러면 그 신구약 성경 이거 무슨 이런 교훈 안에서 배워라 그렇게 말을 하고 다 그렇게 나가는 것이 사람들이 백 명 있으면 구십구 명이 ‘그말이 옳다’ 이렇게 나갈 것이고, 주 안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구속함을 받았으니까 네가 구속함을 열한 가지를 받았으니, 택함에서부터 제사장 선지 왕되는 그 삼직까지를 다 합하면 열한 가지입니다. 이것을 네가 받았으니 이 받은 너로서의 네게 너 죽이는 일이 아닌 그런 걸 받아들여라. 네게 유익된 걸 받아들여라.

이제 배우는 네가 조심해 가지고 잘 받아들이도록 옳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되지 잘못 받아들이면 너 이거, 부모에게 배우는 이것이 제일 처음에 배우는 것인데 이거 잘못 배우면 너는 네 자체와, 네 가정과, 네 사회와, 네 국가와, 네 모든 인류라는 그것은 다, 일류에 대한 것은 다 깨지고 만다.

너는 그라면 인류에 대해서 인류에 대한 그 모든 것도 실패, 또 국가에 대해 실패, 민족에 대해 실패, 또 사회에 대해 실패, 가정에 대해 실패, 네 자체에 대해 실패다. 모든 실패의 원인이 여게 있다. 이것이 첫 계명이라, 이것이 제일 시발이요 움싹이다, 이게 종자다 그런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라면 어린 것은, 어린 것이 지금 배우는데 어린 것이 자녀라면 부모가 있는데 자녀가 뭣을 알아서 그것을 선택해서 배울 수가 있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아이가 아니고, 그 아이가 아니고 이제 예수님의 구속으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새사람을 가리켜, 중생된 새사람이니 중생된 새사람 네가 돼 가지고 중생된 새사람 네게 유익된 것은 배우고 유익되지 안한 것은 배우지 말아라.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속했으면 부모와 자녀라는 그것은 부모가 물론 다 성장하고 자녀는 어리다 볼 수 있지마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이 주 안에서라 말은 둘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이거는 꼭 부모가 장성하고 자녀는 어리고 그렇습니까, 자녀가 장성하고 부모가 어리고 그렇습니까, 자녀가 장성한 사람들도 있고 부모가 장성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습니까? 그거는 어찌 돼 가지고 있습니까? 그거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장로 아들? 녜, 고거는 부모가 장성한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장성한 사람도 있어요. 제 아버지는 제게 대해서 오면은 자꾸 존경하는 말해요. 그때 내가 조사도 아닌데 ‘집사님 내려왔습니까?’ 이렇게 말해요. 아버님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이라라 하니까 ‘내가 육신으로는 내가 부모지마는 영적으로 말하면 집사님이 내 부모고 나는 집사님이 나를 낳았는데 어데 그럴 수가 있는가?’ 그래 한다 그말이오. 꼭 평생 늘 존경하는 말을 해요, 저한테. 그래 그 참 잘 깨닫고 많이 깨달은 그런 거야.

그러니까, 부모가 거석한 것도 있기 때문에, 부모가 어리고 자녀가 어리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장성했으면 거기 무조건 따르면 되지마는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하라” 순종하라 말은 배워라 그말입니다. 순종하라 말 시키는 대로 해라 그말은 이거 널리 말하면 배우라 말입니다. 순종하라 말은 배우라 그말이오.

그러면 말도 배우고 행동도 배우고 모든 것 다 배워라. 배우는 데는 그건 잘못, “옳으니라” 하는 건 삐뚤어진 가르침도 있기 때문에 너는 배우는 네가 주체가 돼 가지고, 네가 주체가 돼 가지고 거게서 배울 거는 배우고, 배우지 못할 거는 배우지 말고 그렇게 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그것을 배울 만한 것인지 못 배울 만한 것인지 그렇게 구별할 수 있느냐? 그것은 네가 “주 안에서” ‘주 안에서’ `주 밖에서’ 거게서 구별할 수 있다. “주 안에서” 주 안에서라면은 그거는 열한 가지 구속을 받은 내니까 “주 안에서” 열한 가지 구속 안에서 거게서 배울 것을 배우고 받을 것을 받고 그렇게 해라.

열한 가지 구속받은 네 새사람으로 배워야 되지 새사람으로 배울 거 있으면 배우고 새사람으로 배울 거 없으면 배우지 말고 이래야 되지 네가 너를 네가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네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면 배우는 데에는, 배우는 것은 뭐 부모라면은 자기를 낳은 자를 말하는 것인데 사회적으로 말하면 이 모든 인류 역사가 자기 부모가 되겠고, 또 혈육적으로 말하면 자기 친부모가 되겠고, 모두 자기 앞에 있는 모든 선배 앞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다 자기에게 말하자면 부모가 되겠습니다. 그 사회에서 내가 사회인으로 나왔고, 국가에서 국민으로 나왔고, 인류에서 인류로 나왔고 하기 때문에 그 범위가 넓다 말이오.

그게 또 직접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가르치고 있는데 부모에게 배워라. 배우되 주 안에서 배워라. 그러면 부모는 넓은 범위에서 말하면 전인류라고 볼 수가 있다 그말이요, 전인류. 이게 이해가 됩니까? 저 ○교수 이해 됩니까? 저 교수라. 법학 박사라. 이런데 이걸 이래도 모를 수가 많다 그말이오.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에게 배우라 말인데, 부모에게 배우라는 걸 좁은 범위로 자기 아버지 어머니 그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넓은 범위의, 대범위의 대부모, 소부모가 아니라 대부모로 말하면은 자기 사회도 다 대부모요, 자기 국가 국민도 대부모요, 전인류가 대부모라 말이오. 그럴 수, 다 그렇고 또 실상은 그렇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도 조그만한 자기 있고, 큰 자기 있고, 사회적인 자기 있고, 국민적인 자기 있고, 인류적인 자기가 있기 때문에 이제 그 배울 때에는 이런 거 저런 거 막 옳은 거 삐뚤어진 거 꽉 찼기 때문에 네가 거게서 무조건 배워서는 안 되고 또 안 배워도 안 되고 무조건 배워도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배워라 그말이오. 주 안에서 배워라.

네가 이제 구속받은 자이니 구속받은 자가 네가 돼 가지고 구속받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다 배우고 지도받고 가르침받고 이와같이 배우고 주 안에 있는 새사람에게 필요 없는 죽이는 그런 것은 다 네가 물리쳐라 그런 것을 가리켜서 여기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씨종자기 때문에 그게 바로 돼야 되지 그것이 바로 안 되면 안 된다. 또,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다. 옳다, 옳으니라 하는 것은, 네가 순종한다 하는 것은 간단하게 해서 순종이라, 시키는 대로 한다 하는 거 시키는 대로 한다는 그말이 내나 배우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 순종하라 말이 배우라 말 하는 그 말이 맞는 말입니까 틀리는 말입니까? 어째요? 이해가 돼요 안 돼요? 이분 이해가 돼 안 돼? 이해가 돼요? 그런데 이러니까 가르치는 게 잘못 가르치는 게 많기 때문에 네가 옳은 가르침을 배워야 되지 옳은 가르침 배우는 데는 주 안이라 하는 그걸 기억하면서, 주 안이라 말은 곧 너를 구속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라면은, ‘부모에게 공경하면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을 요 마귀란 놈이 ‘부모가, 자녀라 하면 부모는 나이가 많고 성숙하고 자녀는 어린 것인데 뭐 제가 들어서 그렇게 구별해 가지고 배우는 제가 조심해 가지고 배워야 된다 이런 말 하느냐?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 그만 그 마귀란 놈이 옛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은 ‘그 말이 옳다’ 하기 때문에 오늘 해석이 다 그대로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 해석이 다 그래 가지고 돼 가지고 있어 그저 뭐 ‘주 안에라 하는 것은 이거 뭐 신구약 성경 교훈 있어 그 교훈 안에서 순종하라’ 교훈 안에 교훈대로 해도 그 속에 망할 것이 꽉 들어찼습니다.

이래서,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것이 네가 잘 된다” 그러면 여게 요 공경하라 말은 섬기라 말이요, 섬기라 말이요 받들라 말인데, 공경이라 하는 것은 거게서 모두 다 가르침 받은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첫째는 가르침 받은 그것을 존중히 하고 가르침 받은 것을 귀중히 여길 때에 가르친 자를 귀중히 여기니까 가르침 받은 것을 제가 잘 보존하는 것이 그것이 공경하는 것이요, 또 자기에게 있는 거게서 양육받은 힘이니까, 거게서 양육받은 모든 심신이요 또 거게서 양육받은 모든 이 경제요 모든 자기의 그 실력이니까 거게서 양육받은 그걸 가지고 이제 양육해라, 받들어 섬기라.

그러면, 이것을 가르침 받은 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서 잘 보관하고 또 거게 대해서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을, 사은성을 가지고 이제 봉양해라, 공경해라, 이렇게 받들어 섬기고 이렇게 도와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게 첫째라” 첫째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인 관계에는, 인인 관계는 네가 둘째로 중요한 것은 네가 사람을 받들어 섬기고 이제, 사람에게 배운 그런 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런 것을 신중히 여겨서 귀중히 여겨서 잘 강직하고 또 은혜받은 그것을 잘 자기가 활용하고 길러 가지고 그 힘으로써 자기의 부모를 공경하는, 자기 위에 있는 선배를 공경하는 거, 자기 선조를 공경하는 거, 자기보다 모든 앞서 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경하는 그 일을 해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다.

그말은 너는 둘째로 중요한 것은, 배운 걸 첫째는 조심해서 옳게 배우도록 노력하고 옳게 배우고 난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것은 네가 섬기는 것이 중요한 건데 배운 것을 잘 강직해서 배웠고 받았고 했기 때문에 배운 것을 잘 강직하고 또 받은 것을 잘 그걸 길러 가지고 네가 이제 받았기 때문에 네가 도로 도와라.

다시 말하면 참 네가, 부모가, 부모가 늙어서 모든 생활력이 없으면 네가 생활을 네가 도와서, 거게서 받았기 때문에 도와라. 또 모든 이런 저런 박력이 빈약하니까 네가 거게서 받았기 때문에 네가 네게 있는 박력을 가지고 도와라. 이런 모든 것을 다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범위가 넓은데 둘째로 중요한 것은 네가 잘 배운 그것을 잘 강직하고 또 네가 받은 것을 잘 써서 길러 가지고 그 혜택으로 네가 잘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네게 있는 걸 가지고 섬기는 일을 해라.

이것이 네가 말하자면 부모 섬기는 것이 사회 섬기는 움싹이요 국가 섬기는 움싹이요 인류 섬기는 움싹이기 때문에 여게서 이 일을 못 하면 다른 거 못 한다.

이리 되면은 네가 잘 된다.

이거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는 그말은 이렇게 네가 이 공경하는 거, 공경이라 하는 건 두 가지 뜻을 말하는 것인데 가르침 받은 것을 잘 보존하고 잘 활용하고 또 거게서 도움받은 모든 것을 그것을 잘 보존하고 활용하고, 이러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자기의 몸이나 이 모든 심지어 터러기까지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소중하게 강직해야 되지 이것은 벌로 하면 안 된다.’ 그래 가지고 유교에서는 이 손톱을 안 깎아요, 부모에게 받은 거라고. 손톱을 안 깎고, 그 사람들은 머리를 길렀어요.

이래 가지고, 다른 때는 못 하지만 삼 년 동안 부모에게 그 은혜를 사은하는 뜻으로서 시무한다 하는 것은, 그 묘에 가 가지고 시무한다는 것은 무덤에 가 가지고, 무덤에 묻어 놓고 시무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부모가 죽으면은 땅속에 묻지 안하고, 그뭐 그 이름이 뭐인고? 나무에다 걸쳐 가지고 이 공기 가운데 이래 거석해 놓고 이래 덮어 놓고 이래 삼 년을 지내. 그러면 송장 물이 설설설 삼 년이면 썩어 내려요.

나는 그건 똑똑히 모르는데 저 중국은 시체를 묻으면 썩지 안한답니다. 썩지 안하고, 여기서는 잘 썩지마는. 이러기 때문에 양지에다 두고 이래, 그러기에 거게서는 사람이 죽으면은, 그거 내가 그걸 봐 보지를 못했어. 사람이 죽으면은 땅속에 묻어서 토장하지 안하고 이걸 이 덕다리, 덕다리라. 덕다리라 하는 것인데 나무로 걸쳐 놓고 시체를 얹어놓고 그래 다 썩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묻는데 그 삼 년 시무한다 하면은 그 자손이 부모에게 효성한다고, 이제 그 삼 년 시무할 때는 이가 떨어지면 이를 잡아 머리에다 얹지 이를 죽이지를 안해요. 밥도 안 먹고 미음만 먹고 삼 년 동안 그렇게 송장 내음새 나는 그 앞에서 시무하고 나면은 그 다음에 그거는 효자라 이래 가지고 그거 하면은 다른 사람이 잘 했으면 효자문이 서요, 효자라고. 그러면 효자문이 서면은 효자라 하는 그걸 그 명예를 많이 팔아먹어요. 이래 가지고, 그런 것 보면 옛날 다 썩은 것이지마는 하나의 좋은 뜻이 치우쳐 가지고 그렇게 됐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너는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이것이 중요한데 공경하는 게 중요한데 이 공경이 어데서부터 움싹트느냐 하면은 가정에서부터 움싹튼다. 네가 부모 공경하는 그것이 움싹인데 거게서 움싹이 터 가지고 잘 되면 네가 땅에서 잘 된다. 네가 잘 된다. 네 사회도 잘 되고, 국가도 잘 되고, 민족도 잘 되고, 인류도 잘 되고, 네것은 다 잘 된다.

이러기 때문에 첫째 인류가 배우는, 바로 옳게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둘째로는 이 받들어 섬기는 것이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받들어 섬기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어데냐 하면은 가정에 대한 그게 첫째다. 거게서 발달해서 이게 제일 중요하다. 배우는 것도 가정에서 그게 첫째 가는 것이고 제일호고 제일 가정이 제일 중요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도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 셋째로는 네가 또 가르치고 기르는 것도, 가르치고 기르는 그것도 가정에서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래서, “애비들아” 애비들아 하는 건 어머니까지 다 합한 것인데, “부모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게 하지 말고 이말은 그것을 꺾지 말고 그말이요, 꺾지 말고. 그러면 그게 틀렸다 이와 같이, 요것은 시종을 다 가리켜서 말한 것인데 시작으로 말하면 그 아이가 틀린 거 말했으면 틀린 것을 꺾는 일, 틀렸다고, 그 지금 아무것도 자랄라 하기 때문에 틀린 것을 꺾지 말고, 꺾지 말고 그것을 바로 인도해라. 그걸 꺾지 말고 바로 인도해라.

그러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길러라” 양육해라, 길러라.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틀렸다!’ 이랄 게 아니고, `틀렸다!' 그럴 게 아니라 그거 지금 아직까지 뭣이 감염들어 되지 안하기 때문에 있으면 그것을 주의 교양으로, “주의 교양으로” 그말은 주님이 너를 가르치신 대로, 주님이 너를 말로 가르쳤고, 행동으로 가르쳤고, 또 자체로 가르쳤고 이 세 가지로 가르쳤기 때문에 네가 이 세 가지로 가르침 받은 그것 가지고 네가 가르치면 그러면 그를, 그것을 뭣이든지 있는 자기에게 있는 요소를 아직까지 그거 더러워진 것 아니기 때문에 고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꺾어 버릴 게 아니라 꺾지 말고 그것을 바로 이것을 교양해서 길러라.

기르는 데에는 네가, 그거는 필연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뭐 ‘나 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해라. 따라 해라.’ 할 것이 없이 너만 주의 교양으로 네가 양육을 받았고 또 주님의 그 훈계에서 네가 훈계를 받아서 자랐으면 그거는 필연적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이 위에서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이건 필연성이요 절대성이요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뭣을 꺾을라고 하지 말고, 대립, 노엽게 말라 말은 대립되지 말아라, 꺾지 말아라, “노엽게 하지 마라” 대립되지 말고, 대립되지 말고 이렇게 너만 이렇게 이끌면 그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끌어서 해서, 결과가, 조만간에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결과가 나타나면 그것을 다 평가하게 되기 때문에 네가 평가적으로 그때 멸시를 당하지 말도록, 평가적으로 네가 대립이 되지 않도록, 평가적으로 네가 원망과 불평과 ‘이게 내 원인이 여게서 이래 돼졌다’ 그렇게 네가, 그거 그냥 하고 지내가는 게 아니라 반드시 네가 부모가 됐으면 그는 네게 배운 그대로 됐기 때문에 뒤에 가서 언젠가 ‘이거 배운 게 잘못 됐다.’ 그런 원망 불평하는 그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감탄하는 결과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네가 그 가르치고 기르는 것에 주의해야 된다.

가르치고 기르는 것은 어떻게? 가르치고 기르는 것은 이 세상에는 전부 틀린 것뿐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가르침받은 그대로 네가 가르침 받은, 가르침 받은 그 사람으로 네가 살고, 주님에게 행동 배운 그 행동대로 살고, 주님에게 가르침 받은 사람 그대로 살면 그대로 그게 되어지기 때문에 교양으로써 그를 길러라.

주의 교양이라 말은 주님에게 내가 가르침 받아 가지고 내가 자란 그거 가지고 가르쳐야 되지 내 말로만 가르치면 안 돼. 주님에게 내가, 주님에게 말을 배워 가지고 말로 나는 길러 자라졌고 또 내 행위가 자라졌고, 길러졌다 말이오.

길러졌고 사람이 길러졌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네가 교양하고, 훈계라 말은 이제 네가 가르치고 난 다음에 그대로 되나 안 되나 그것을 챙겨 봐라. 챙겨 봐서 네가 주님의 걸, 다시 말하면 주님을 네가 닮은 그대로 닮아가고 있느냐 그것을 한번 살펴서 챙겨 봐라. 챙겨 봐서 잘못된 게 있으면 그걸 또 수정해서 그것을 책망과 경계로써 그렇게 해 나가라. 그렇게 길러 나가라.

이러기 때문에, 가르침 받는 것도, 가르침 받는 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르침 받아야 되고, 가르치는 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르쳐야 되고, 또 네가 섬기는 것도 주님에게 배운 그대로 공경해야 된다, 배운 그대로 섬겨야 된다 해서 이 세 가지를 가르쳐 말합니다.

인간은 모든 전인류가 있지마는 네가 제일 주장이다. 네가 주체다. 네가 주체기 때문에 네가 옳게 배워야 되고, 옳게 배워야 되고, 옳게 배운 대로 너는 옳게 섬기는 자가 돼야 되고, 옳게 섬기는 자가 돼야 되는 동시는 너는 또 옳게 가르쳐서 기르는 자가 돼야 된다. 요 세 가지 삼각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전도사 인허 이 명과, ○○○집사님은 나는 생각하기를 그분이 앞으로 장로로 이렇게 성장돼 나갈 분이 아닌가 이래 생각하는데 혹 그분이 목회자로서 성장할 그런 소망을 가진다면은 지금 전도사 자격이 있습니다. 있는데 장로로 성장될 사람이면 지금 그런 길을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래서 권사 한 분, 이랬는데 어떤 이는 말해서 이 권사를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잔치를 해야 되느냐? 그런 걱정을 하는데 그런 걱정하는 거 우리 교회서는 그런 일을 용납지를 않습니다. 이뭐 장로님들 목사님 돼도 장립 받아도 아무 그런 것이 없고 그런 폐되는 일이 없고 어짜든지 주님 보실 때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 앞에 감사하고 충성하고 하면 그것으로써 다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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