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1984. 12. 13. 목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7절∼19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님이 보신 것과 자신들이 자신을 본 거와  이렇게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다  이래 말씀했습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다. 또 눈멀었다. 이런데,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어 있으나 자신들은 자신을 보고 모든 면이  풍족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이렇게 부요하다고 봤는지 그것은 우리가 모르나 통털어  말하면 주님이 가치로 여기지 않는 그런 것을 가지고 부요해졌다 하는 그런 것은  우리가 판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은 홍포 입은 부자는 참 모든 것이 부요하고,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었지마는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나 죽었을 때에는 물 한 방울의 소유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 죽으며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죽고 난 다음에 영과 마음은 믿는 사람은 낙원에 가 있을 것이고 불택자는  음부에 가서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사람들이 먼저 살아나고 그  다음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 하고 또 안 믿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은 둘째 부활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제가 가치로 여겨서  '난 이것이, 이 가치 있는 것이 있으니, 이런 편리한 것이 있으니. 이렇게  풍부한 것이 있으니, 이런 면이 다른 사람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족하다 부요하다' 이렇게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치로  삼아서 부요하다고 했으면 세상을 딱 떠날 때 그때는 물 한 방울의 소유도  가지지 못한 참 가난하고 가련하고 곤고한 사람이요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한 눈먼 사람이겠습니다.

 이렇게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불택자라서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택자로서도 뭐 이것이 뭐 있는 줄 알고 이것이 뭐 가치인 줄 알고 이런 것을  가지고 교만하고 배짱 내고 마음이 강퍅해서 불량하고 그저 겁없이 벌로 말을  퍽퍽 해 재끼는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홍포 입은 부자가 이렇게 부자 된 그 부자는 일단 생명이  딱 떠나고 난 다음에는 하나도 가져지지 않는 그런 거, 그런 걸 가지고서 부라고  생각을 하고. 가난하다는 사람이 돈이 좀 있으면 돈 이면 뭐이든지 다 될 줄  알고 그만 돈이 있으면 교만합니다. 아무리 봐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뭣을  낫다 할 것이 없는데 돈이 좀 있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돈 버는 기술이  있습니다. 또 직장이 좋은 직장을 가졌습니다. 또 무슨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어떤 기능의 장기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그게 다 얻는 것은 없어질 거, 썩어진  거. 세상 떠날 때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할 그런 거 마련하는 것들인데.

아무것도 다른 사람못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교만이나 낫고 또 강팍이나  낫고 불량이나 낫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간 크게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그런 일이나 낫고, 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런 걸 잊어버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지 못하는 그 어두움의 강퍅이나 낫고, 또 그거 믿고 의지해서 안심해서  자기는 헛된 거 의지하는 그런 거나 낫지 하나도 나은게 없는데, 다만 돈, 기술.

권세 뭐 좋은 직장 또 자기 무슨 배경의 아주 좋은 그런 배경의 무슨 권세 가진  자, 아무 참 의지할 것이 되지 못하고 오늘이라도 세상 딱 떠나면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고 하나도 효력 없는 그런 것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이렇게 부요하게  여기는 그런 믿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게서 공연히 제가 '나는 저 사람보다는 실력이 있다 난 저  사람보다는 힘이 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크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조금 높은  사람이다' 이렇게 자기가 생각할 때에 정말로 높을 만한 것과 또 큰 것과 강한  것과 또 자기가 참 가져서 부요한 것을 가지고 그런지, 그렇지 않고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면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아무것도 없을 그런 것들을 가지고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여게서 이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내가 무엇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서 안심을 하고 위로를  하고 그렇게 있는지 그걸 좀 정평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을 똑똑히 바로 알아야 하겠고,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러면 세상에 없어질 거, 아, 그거야 내가 없어질 거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질 수도 있고 자꾸 이렇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내가 의지하지 안해. 나는 믿음을 나는 믿음을 가지고서  나는 믿음으로 부요한 거, 또 내가 횐 옷을 입어서, 내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부요하고, 믿음으로 부요하고, 진리의 이 눈을 가지고서 내가 부요한 걸 말하지  그런 거 뭐 없어질 것 그런 거, 세상에 있다가 떠날 때 없어질 거 그런 거  가지고 내가 가치로 여기고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잘하는 것인데,  그것도 우리가 살펴봐야 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거, 있는 줄 아는데  실은 없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 위에 보면은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더웁지도 안하고 차지도 안하고 미직지근하다' 그 말은 무슨말 인고 하니  더웁지 안한 것이 '나는 차다' 하면 될 터인데. 찬 것이. 실상은 찬 것이 차지  안한 줄 알기 때문에 그게 미직지근하고. 또 뜨거움이 없는 것이 뜨거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직지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말로 말하면 없는  것이 있는 줄 아는 걸 말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 아는 것을 말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이렇게 네가 실상 참 있고 있는 줄  알아야 되는데 없으면서 있는 줄 알면은 너는 언제든지 예수님의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생명 세계와 진리 세계에서 네가 쫓겨  나가게 된다. 뭐 예수님이 쫓아내는 건 아니지마는서도 세상이 쫓아낸다  그말이오. 세상이 쫓아내니까 세상에게 밀려서. 믿음 있다 하지마는서도 세상이  밀어 닥치니까,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밀어 닥칠란지 모르는데

 여게 보니까 불로 연단한 금이라 말했는데, 금은 불을 이깁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주먹덩이만한 금이라야 불을 이기는 것 아닙니다. 쌀내끼 쌀내끼  그저 몇분지 일 고런 것도 이깁니다.

 제가 그전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 교인이 하나 금 뭐 비녀를 땄다고  이라면서 가져 왔기 때문에 그라면 그 금을 보자 하고서 이걸 깨 가지고 갈았다  말입니다. 가니까 다른 것은 다 그만 갈려서 부서지는데 금 그거는 작아도 아주  납작하게 밀려나가지 그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놈을 이래 불에 태워 봐도 안  태워져. 작아도 불에 안 타는 것이 금입니다. 큰 덩어리만 불에 안 타는게  아니라 작으면 작은 대로 금이라는 것은 절대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 뭉텅이라고 보면은, 제가 그때 광산 옆에 있었는데 금 뭉텅이라고 그  뭉텅이로 사고 팔고 하는 걸 보면은 뭘 누루팅팅하이 그런데 주먹덩이만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거는 뭐 요만한 것도 있고 그런 거 모두 이래 가지고서 파는데.

'이거 왜 금이 이러냐' 이라니까 '여게는 아직까지 은도 들어 있고 구리쇠도  들어 있고 납도 들어 있고 또 쇠도 들어 있고 이런 모든 신주도 들어 있고 이  모두 잡철들이 모두 들어 있어 가지고 이렇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금이 많은지  적은지 어째 알것이고?' '예, 이렇게 금이 많으면 사 가지고 유익을 보는 거고  잡쇠가 많고 금이 적으면 손해갑니다.' '그래 이걸 어째 아느냐?' '그걸  소산수에 담아 가지고선, 그래 가지고 열도가 심한 그런 은이 탈 만한 그런데  넣어 놓으면 은까지 다 타 버리고 금만 남습니다.' 이렇게 말합디다.

 이러니까, 여게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안할 금이라고 불로 연단하는 불이라  하는 거는 뭣을 가르치겠습니까? 불은 뭣을 가르치겠지요? 그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불에 구워도 타지 아니할 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불이 뭐인가? 불은  어려움을 말합니다. 어려움. 환난을 말합니다. 내 생명을 끊을 환난이라든지, 또  내 몸뚱이를 절단내는 고문과 고형의 환난이라든지, 또 내 재산이 다 없어지는  가난의 환난이마든지 내가 무슨 질고가, 질병이 들어서 곤고할 그런  환난이라든지 어짜든지 환난은 환난입니다. 여기 불이라는 것은 환난입니다.

 이러니까, 작든지 크든지, 예를 들면은 작은 환난은 그렇게 안 뜨거운. 안  뜨거운 환난이 있고, 작은 불은 안 뜨거운 환난이겠고 약한 불은 안 뜨거운  환난이겠습니다. 이러니까, 불도 열의 도수가 그것이 한 백도 되는 것도 있고  이백도 되는 것도 있고 삼백도 되는 것도 있고, 열도 요새는 뭐 강해서 몇백도  되는 그렇게 뜨거움도 있습니다. 암만 뜨거워 봤자 금은 안 녹습니다. 안 녹는데  우리가 조그만한 환난에서는, 금이라는 건 믿음을 가리켜 말하는데 믿음,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 하나님의 그 크심을 믿는 크다면은 지혜나 능력이나  사랑이나 모두 하나님의 크심을 믿는 거, 하나님의 또 광대하심을 믿는 거  하나님의 지혜를 믿는 거 뭐 어찌 됐든지 하나님이 크시고 참 위대하심을 믿는  거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위대하심이 그 크심이 전적 나를 보호하고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그것을 믿는게 믿음인데. 우리가 사소한 일이 있을 때에는 그  믿음을 가지지마는서도 그 믿음을 가졌다가 조금만 더 어렵고 더 큰 일이 오면  그만 우리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우리가 잘 봅니다. 아주 참 극히 어려움을  당하면 내 믿음이 어찌 되겠느냐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했으니까 그 금이 만일 백 도의 불에  구울 때에, 백도 불에 구울 때에 그 금이 타지 안했다고 해 가지고 그게 다 금  아닙니다. 아마 백도 가지고는, 백도 가지고는 구리쇠도 안 탈 것이고 신주도 안  탈 것이고 쇠도 안 탈 것이고, 납은 녹아내릴 것입니다. 다른 거는 안 탈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쨌든지 최고의 도수, 최고의 그 어려움, 최고의 환난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믿음이지, 남아 있는 것이 믿음이지 우선 조그만한 환난 때에 남아  있는 그것은 불로 연단한 믿음은 아니라 그거요. 처음에는 거석하면 이런 거  납이 녹아서 없어져 버리고 그 다음에는 쇠가 타고 그 다음에는 이제 구리쇠가  타고 그 다음에는 신주가 타고 그 다음에는 은이 타고 그 다음에는 금 탈  순서인데 금은 타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믿음을 가져도 이런 아주 보통 사소한 그런 환난을 당해도  우리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것으로써 된 것 아닙니다. 그것이 다 검사 맡은 것  아니고. 금을 검사 맡은 것 아니고, 그때에도 우리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네  믿음이 요만한 조그만한 요런 환난에도 네 믿음이 흔들리니까. 지금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믿음, 불로 연단한 금은. 정금 같은 믿음은, 그것만이 하늘나라  가는데 그 믿음은 네가 지금 받은 이 환난의 몇 배 몇십 배 그 환난이 뜨거움이  이제 와도 그때에 견디는 그 믿음이어야 되는데 네가 시작도 안해서 요만한  어려움만 있어도 네 믿는다는 게, 하나님 믿는다는 것이 의심이 나 가지고  흔들리니,  전능자가 아버지요 만유의 대주재가 아버지니까 가난해도 그게 다 내 것이요,  전능자가 날 보호하니까 세상이 날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것을 참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전능하신, 전지하신, 창조주이신,  주재이신, 주권자이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은 내 앞에 독침이 온다 할지라도  이것도 주권적으로 주님이 작고 큰 것을 다 홀로 섭리하시니까 주권 섭리  하시니까 이 독침이 내게 어찌왔느냐, 이것은 주님이 섭리하셔서 내게 왔지,  주님이 주권으로 섭리해 왔지 주님의 주권을 벗어나서 온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섭리하지 안해서 온 것은 아니라 그거요. 그래 내가 그것을 보고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으로 알아 내미는 것이라면 기뻐 즐거워서 '아,  내가 뭐인데 이렇츰 날 손을 내밀어서 나를 영접해 주시고 나를 품어 주십니까'  이렇게 기뻐할 터인데 주님의 손이 그렇게 오면 기뻐할 터인데 주님의 섭리의  손으로써 독침이라는 그 독침을 가지고 주님의 손이 오니까 우리가 놀래서  기절하고 견디지를 못하는 그런 일 하는 것이 그게 믿음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하는 요 말씀에서, 아주 뜨겁지  안한 불 그 불이 아니고 최고의 불이라 하는 불을 전부를 다 이렇게 말한  것이니까 어떤 불이 와도 내가 타지 안해야 되지, 요만한 불 요만한  어려움에서는 타지 안하면 되는 거 아니라. 고만한 어려움에서 타지 안한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우리에게 위로를 줘서 네가 요만한 어려움을 이겼으니까 요대로  공을 들이면 더 큰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다 하는 그것이지, 최고의 어려움이  아니라면 내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때에 가져가지 못할 껍데기 외식의  거짓부리의 믿음 그런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 그걸 시험해 봐야 됩니다, 자,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 그러면, 요런 일이 있으면 내가 이 믿음을  유지하겠느냐? 저런 일이 있으면 내 믿음을 유지하겠느냐? 자기가 자꾸 혼자서  자문자답으로 말로 가지고 그런 어려움을 만들어 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어찌  되느냐 저런 어려움에도 어찌 되느냐? 그러면 거게서 자기가 '아, 이런 어려움이  닥치면 내가 흔들리겠다. 내가 이러 어려움이 아니라도 조금만 내가' 그렇게  자기 잘못 알고 공연히 위로를 받고 이라면은 주님이 그걸 시험해 주십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 믿음이 흔들려 버리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럴  때에 '아, 나는 이렇게 믿음이 실상 참 허무하구나' 하는 걸 알아서 어쨌든지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이 금은 어떤 금이냐? 세상이 내 믿음을 없앨라고 하는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서 내 믿음을 없앨라고 해도,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의 처지  저런 사람의 당한 것 저런 완난 저런 어려움 저런 참 고통스러운 뭐 어떤  어려움이든지 세상의 어려움이라는 어려움은 다 그 어려움이 나를 믿음을  없앨라고 해도 없애지지 안한 그 믿음이 그것이 불로 연단한 금이라 그거요.

불로는 어떤 불로 구워도 남아 있는 것이라야 되고 어떤 청강수로 구워도 남아  있는 것이라야 되지 이 불에는 남아 있지만 저 불에는 남아 있지 안하면 그거는  못 쓸 금이라 말이오.

 그러기에 금도 이는 뭐 이십 사 금이니 뭐 십 팔 금이니 뭐 십 이 금이니 하는  그거는 다 진짜가 아니라 그 프로 수로 말해서 이십 사 프로가 남았다. 백 프로  중에 이십 사 프로 남았으니까 그거 허무한 거 아닙니까? 이러나, 이제 정금은  이거는 아무 불에 구워도 이거는 백 프로 금이다 이거는 순금이다, 이거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땅위에서 어떤 그 환난이 와도 그 환난으로 인해서 내가  없어지지 안할 믿음, 요동치 안할 믿음, 소망도 없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없어지지 안하고 또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믿음이니까 내가 복종하는  것도 없어지지 안하고, 뭐 어떻게 한다 해도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내가  그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맡겨 놓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 바라보는 거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 의지하는 거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 믿는 거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 요동치 않는 것이라야 그것이라야 불로  연단한 금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내가, 그런 참 정금 같은 그 믿음 그것이 세상을 떠날 때에 가지고 갈  것이고 무궁세계에 그 믿음으로 살 터인데 그 믿음이 내게는 얼마나 있느냐  그것을 우리가 자꾸 스스로 시험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시험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 생활 가운데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마는서도 자기는, 자기 마음을 알 수가  있고 자기 성품을 알 수가 있고 자기 뜻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뭣을 우리가,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말로 믿음이 흔들리는 말을 하는 거  아니오. 말을 안 해도. 말을 안 해도 생각만 될 때 있고 생각도 안 하지만  그렇게 뭐, 생각을. 믿음 없는 생각을 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은연중 '이게 어찌  되나' 가만히 살펴 볼 때에 '내 기분이 어떠나' 무슨 이성 비판으로써는 그게  나쁘다 좋다 하지 못하는데 우리의 기분이 이거 이상합니다. 몸의 신경이라 하는  거 이거, 기분이라 하는 이것이 아주 예민합니다. 예민해서, 우리가 혹 원수에게  대해서도 그 사람이 나를 대항하고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이니까 원수를 우리가  위해서 기도할 줄 알고 복을 빌 줄 압니다. 그래야 또 우리가 복될 줄 압니다.

이러면서 원수에게 불행스러운 일 있을 때에 '아, 그거 안 됐습니다. 주님이여'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기도를 하면서도 그 원수에게 불행스럽게  불행이 왔다고 그와 같이 소문을 듣든지 그럴 때에, 그 원수에게 행복이 왔다는  것과 불행이 왔다는 것과 할 때에 행복이 왔다는 것보다도 불행이 왔다는 거게  대해서 은연중 자기는 마음도 먹지 못하고 그렇게 뭐 생각도 안 가지지마는서도  은연중 자기도 모르게 자기 기분이 조금 불행이 닥쳤을 때에 그것을 좋아하고,  행복이 닥쳤을 때에 좋아하는 기분과 또 불행이 닥쳤을 때에 좋아하는 기분과  말로는 뭐 불행이 닥쳤으니까 안 됐다 하고서 행복이 닥쳤으니까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내 속에 말보다 이성 판단보다 더 예민한 기분이 조금 거게  약간 끼어 있는게 있더라 말이오,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으로써 자기를 시험하고 판단하고 자꾸 매일 매일 우리가 듣는 일에서  자기의 믿음을 시험하고, 또 보는 일에서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닥치는 일에서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닥치는 형편에서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닥치는 그  현실에서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몸에 닥치는 거, 자기 경제에 닥치는 거. 자기  활동에 닥쳐지는 일, 자기의 뭐 계획하는 일에 닥쳐지는 일, 자기의 목적에  닥쳐지는 일, 자기의 모든 기분에 닥쳐지는 일 감정에 닥쳐지는 이것이 다  현실에 이런게 딱쳐지고 저런게 닥쳐지고 자꾸 바꾸어 닥쳐지는데. 이런 것이  닥쳐질 때에, 그런 것이 변동될 때에 내 믿음이 요동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것으로써 '자기가 자기를 시험할 수 있다 말이오. 그것으로 시험할 수 있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로 시험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스스로  시험을 해서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확정을 지워 판정을 해라 그말  했어.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는 보면은 그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불로 연단한 금을 장만해야 될 터인데 이래도 요동. 이래도  요동 요동하면은 '아이구 이거 안 됐다. 이거는 잡금이다.' 그래 기도 많이하고  또 열심히 해서 '이래도 나는 요동 안 하겠다.' 이래도 요동 안한다 저래도 요동  안 한다, 자기의 생활에 이런 저런 어떤 일이 와도 요동되지 않는 고 믿음이라야  되는데, 아직까지 그 믿음이라 해 봤자 뭐 대번에 사형 오는 믿음이라든지 뭐  공산주의 독침을 맞는 믿음이라든지 자기의 몸이 무슨 어떤 참 중대한 병이 든  그런 환난이든지 그런 환난이 아니라 말이오. 그 새끼 환난에서도 흔들리는 거  보면은 아주 왕 환난, 대왕의 환난이 올 때에는 어떨 거냐 말이오. 대왕의  환난에도 남아 있는 믿음이 그것이 불로 연단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대왕의 환난은 냅 두고 환난의 새끼, 환난의 쩌꺼레기 이것만 와도  흔들리니까 이 환난 큰 환난 대환난, 대왕의 큰 왕의 환난 이 환난이 오면 어찌  될 건가 말이오. 이래도 없어지지 일는 그런 믿음이라야, 불로 연단하여  없어지지 안할 것,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안할 그 금. 어떤 대환난, 최고의  환난, 뭐 사망의 환난 고문과 고형의 환난 어떤 위협의 환난 어떤 최고의 어떤  환난이 와도 없어지지 안할고 믿음이라야 이제 불로 연단한 믿음이오.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안할 믿음이니까 이 믿음이 내게 있나 없나 이것을 지금  생각해 가지고 자꾸 이걸 조심해서 자꾸 갈아서 가져야 되겠다 말이오. 이걸  준비를 해야 되겠다 말이오,  이런데, 우리는 이거 참, 그저 하나님께서 처음에 어리니까 등 따시고 배  부르고 모든 것이 제 마음대로 형통해지고 이러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이런 믿음 가지고서 있으면서, 이것이 뭐이냐? 이런 믿음은 다 불 탈  믿음이요 없어질 믿음인데 이런 믿음 가지고서 제가 기뻐하고 '나는 이 믿음  있으니까 문제가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어리석은 자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나는 만일 이런 환난이 오면 어찌 되겠느냐' 자꾸 이렇게 비교해  보고 자기를 비판해 보고 또 그 환난과 자기 믿음을 비교도 해 보고, 혼자  앉아서, 책상 앞에서, 그리 안 하면 눈 감고 엎드려 앉아 가지고 이런 환난도  비교해 보고. 환난 닥쳐 봅니다. '그때 내가 견디겠나?' 그러면 '아, 견디겠다.

그때는, 그까짓 거야 문제가 없다. 견디겠다' 이랬는데 막상 그라다가 무슨 일이  갑자기 탁 들이 닥칠 때에 깜짝 놀래 가지고서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우리가  본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알아 가지고 자꾸  준비해서 불로 연단한 금을 가져야 될 터인데, 내 믿음이 어느 온도에 타지 안할  금인지, 어느 열도 어느 열도까지는 견딜 수 있는 믿음인지 그것을 정확하게  판단해 가지고, 없으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 있는 것으로 알아야 될 터인데  우리는 너무 어리석습니다. 뭐 참 믿음 믿는다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도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지마는서도 신사 참배 오니까 다  떨어져 버리고 남은 사람 얼마 안 남았었소. 남은 사람 참 얼마 남지  안했습니다.

 여게서 신사 참배 왔을 때에 신사 참배 신사 참배 했든지 안 했든지 신사 참배  할 때 그때 예수 믿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신사 참배 할 그때에 그때에  예수 믿었던 사람, 예수 믿은 사람, 몇 사람 안 되네. 봐. 손 드는 거. 뒤로  보시오, 몇 사람 되는가. 몇 사람 안 돼. 다 그 후에 믿었기 때문에 새끼  믿음이라. 하루살이 믿음이야 하루살이 믿음. 새끼 믿음이라.

 이러니까 이 믿음이 새끼 믿음에도 참 장성한 믿음. 정금 같은 믿음이 있겠고  아직까지 그런 일 하나도 보지 못하고 이랬기 때문에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그런  환난 오면은, 왜정 말년에 뭐 선천 고을에서는 그때 말 내가 듣기는 네 집이 안  믿는다 했는데 전부 다 믿었답니다. 안 믿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랬는데 신사 참배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교회는 사 오십 명 믿었는데 사 오십 명 믿은 사람이 신사 참배 하나도 안  한 교회가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어찌됩니까? 그러면 어찌 되느냐 말이오.

그런 말 들어도 예사라. '뭐 그게' 예사라. 그게 하나님이 보호하는 것과 얼마나  참 무시무시한 큰 차이라는 그거 아무 생각 안 해, 아무 생각. 그거 아무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도 안 가지니까, 이 금이 불로 연단할  그런 거는 불로 구울 것도 생각지 안하고, 이제 검사할 때에는 불로 구워  가지고서 정금이니 뭐 이거는 이십 사 금이니 판정할 터인데 불에 구울 것도  생각도 안 하고 뚤뚤 뭉쳐 가지고서 금이라고 말만 하면 된다 이랬는데 이거 전  대 버리면 화르르 타 버리고 없다 그말이오 이거 가지고서 하기 때문에 풀과  짚과 나무로 지은 집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은  타지 안해  그런고로,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이 한 가지도 우리가 가지고서 묵상을 하면서  '아, 불은, 불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믿음을 박살내는 것이 불이다.

그러면 불도 그 도수가 아주 참 그 도수가 여러층이다 천층 안층이다.' 불도  천층 만층입니다. 불도 한 일 도도 안 되는 것 있어. 뻐뜩 지나가 버리면 일도  안 되지요. 그렇지 안해요? 암만 붙이지마는서도 여기 불 그거 뭐 손 하나도 안  뜨겁습니다. 이라면. 하나도 뜨겁습니까? 암만 이래 불에 이래도 안 뜨겁다  그말이오. 그거는 퍼뜩 지나가니까 도수가 낮다 그말이오. 또 아주 참 몇백도  되는 그런 것도 있다 그말이오. 언제 내가, 나는 과학을 공부 안해서 잘  모르는데 언제 내가 신문에 보니까 뭐 몇 도라 하더라? 그것도, 뭐 삼천 도인가  얼마인가, 얼마인가 아주 참 놀랠 만한 그런 높은 열도가 있습니다. 그런 열도가  있는데 거게 뭣이, 그것은 거게 녹지 않는다는 뭐이라 하는데 내가 이름을 잊어  버렸어.

 이러니까, 불로 연단한 금이라. 그 불로 연단한 금은 아주 열이 없는 퍼뜩  지나가도 안 타는 그거 아니오. 이제 불에 구워도 아주 최고의 도수로도 안 타는  금이라야 그게 정금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나는 금 덩이라 하는, 금 덩이라  하는, 나는 믿음이라 하는 것이 어떤 믿음이냐 믿음이냐? 퍼뜩 말로만 '아, 이제  6·25처럼 전쟁난다' 말로만 들어도 그만 깜짝 하는데, 말로만 들어도 깜짝  하는데 말로 들어 가지고는 또 꿈쩍 안 한다 그말이오. 자꾸 연단이 됐으니까.

여게서는 뭐 그런 소리 들어도 조금 거석하지마는서도 어떤 교회에 와 가지고서  만일 갑자기 '야 삼팔선이 터져서 지금 전쟁 났단다' 하면은 고만 교인들이  주일날 전쟁 났다 했으면은 얼굴이 새파라이 질려 가지고서 전부 정상이 아니고  이럴 교인들이 많을 것이라 말이오. 우리 교회도 그럴런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그렇게 허무할런지도 몰라.

 '6·25와 같이 지금 이런 전쟁 났단다. 지금 삼팔선에 전쟁이 났단다' 이라면은  그것이 예사로 들리고, '의례히 평소에 많이 생각했으니까 그러면, 이제는  전도는 다 했구만. 그러면 전도 부지런히 해야 되겠다. 저도 부지런히 해야  되겠다. 또 누구하고 무슨 여수 있는 거 계산이니 그런 거 계산 청산을 빨리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뭐 또 거리끼는 게 없나? 그때 그런 거 없나?'  자꾸 그거 정리하고 지금, 그거 정리하고 지금 순교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제 뭐 당황해 가지고서 '어디로 피난 갈까' 이래 가지고서 또 그렇게 당황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니까, 내가 정말로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아니할 금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 어떤 환난에서라도 요동치 아니할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 진리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 진리를 복종하는 진리에 대한 믿음. 진리는  진리대로 내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내가 그렇게 확실히  인정하는게 믿음이라 말이오. 하나님에게 인정하는 것이나 복종하는 이 믿음이  요동치 안할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걸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둘 남았습니다.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아니할 금 사서 부요하게  하고, 또 흰 옷 사서. 사 가지고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면케 하고, 보이지  않게 하고. 또 안약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면 산다는 말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산다는 말은 내게 있는 것 주고 그거 산다 말이오. 내게 있는 것  주고 산다는 거. 내게 있는게 뭐입니까? 내게 있는 것이 재산 있지 않소? 모든  형통 있지 않소? 재미 있지 않소? 재미 있고 재산 있고 또 형통 있고 또 지위  있고 명예 있고 권세 있고 몸 있고 생명 있고 이게 내게 있는 것 내게 있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 믿음을 가지고 놓지 안할라 하면은 이걸 내 놔야  된다 그말이오. 이걸 내놔야, 그러면 내게 있는 모든 걸 다 내놔도 요동치 안할  건가? 요동치 안할 건가?  내 요새 어떤 사람 하나 봤는데, 나는 그분이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어려움의 뭐이 하나 닥치니가 눈이 캄캄하다 하고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뒤뚱  뒤뚱 하는데 그거 뭐 그까짓 거, 암만 해도 그까짓 거 소용 없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 말이오. 모가지 끊길데 비하면 까짓 거 보스러기도 안 돼요. 지금 아주  초벌도 아닌 그건데 절절 매는 거 보니까 환난 오면 저 어찌 될 건가. 그까짓  경제 문제 그까짓 거야 암만 해도 뭐 경제 문제나 명예 문제나 그런게 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놀랠 만한 일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자꾸 단속해서 참말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때라도  요동치 않는 믿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내가  인정하는 거, 하나님이 첫째는 사랑이 날 놓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이 날 놓지  않는다, 하나님의 보호가 날 놓지 않는다. 내게 오는 모든 전부는 다 우리  사랑하시는 나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해 주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끝까지  사랑하시는, 영원히 사랑하실 주님이 하신다. 땅위에 보이는 모든 것도  아무거라도 그것이 내 구원 위해서 만들었고, 땅위에 일어나는 모든 순서 예정  그거는 다 하나님께서 내 구원 위해서 예정했고. 하나님이 내 구원 위해서 예정  했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거, 하나님이 나 위해서 창조했다는 걸 확실히 믿는  거, 하나님이 나 위해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거, 확실히 이 세  가지만 믿어도 요동하지 안해요. 이 세 가지 믿는 믿음이 정말로 어떤 변동이  와도 요동치 안할 믿음을 가졌느냐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지금 믿음 준비할 때입니다. 이 믿음을 준비해야 평안하지요 왜  다니엘은 사자 구덩이에 있어도 평안하고 즐겁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을  벌거이 달궈 놓고서 그 안에 집어서 던진다고 해도, 그 안에 집어던진다고 해도  평안했고, 뚤뚤 뭉쳐 가지고 던질라고 이래 들어 가도 이래 평안했고. 그러니까,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안하고 있으니까, 불 가운데 들어갔지마는서도 그 믿음이  요동치 안하니까 그 믿음을 태우지 못했으니 그 믿음의 주인이신 주님이, 너이  같이 있다 말이오. 서이 들어갔는데 너이 같이 되지 안했소?  그거는, 그 불귀신을 뭘로 이겼습니까? 불귀신을, 불 세력을 이긴 것을  히브리서 11장에 보면은 믿음으로 그거 이겼다 말이오. 믿음이 그걸 불이 뚫고  들어오지 못했어. 이럴 수 있는 믿음이 우리가 있어야 되니까 이 믿음을 지금  준비해야 되니까 이런 중요한 보배를 준비할 일이지 이거는 준비하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 가면서 자꾸 돈이나 마련하면 된다, 뭐 사업이면 된다  이렇게 어리석고 미친 노릇을 우리가 안 해야 됩니다. 이건 참 미친 노릇입니다.

어리석은 노릇이 아니라 이건 아주, 이거는 뭐 어리석다고 그래 말할게 아니라  이거 참 미친 노릇이지 이거는 어리석은 노릇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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