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평가의 차이

 

1987. 1. 7. 밤(수)

 

본문:디모데후서 3장 10절∼15절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광고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기도록에 등록한 분들은 매일 삼십 분 기도를 자기와 자기와의 관련된 모든 미래를 위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를 계속합시다. 큰 환난을 면하고 평안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라고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계속 하도록 힘을 씁니다.

그러고, 주일학교에서 이제부터는 분반하는 그 반은 분반을 할 때에 분반되는 그 학생 수는 자기 구역의 기본수로 남겨 두고 분반합니다. 만일 열 명을 분반하면 열 명 그 수를 자기 반에다 두고 분반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보고할 때 언제든지 그 열 명도 보고에 함께 보고 숫자에 보고합니다. 그러면 고 기본수는 뒤에 총계를 맞출 때에 그것을 감하고 하니까 숫자 계산에는 상관없고 다만 자기가 힘써서 기른 그 사람에 대한 그 공로가 어떠한가 하는 그런 것을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아서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계산댈 때에 다 알지마는 미리 알아서 자기를 단속도 하고 또 미리 알기도 하기 위해서 기본수를 남겨 둡니다.

여권찰 형편에서는 오늘까지 늘 그와같이 수십 년을 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랬는데 남 구역장과 반사에 대해서는 금년부터 시작입니다.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또, 전 주일날 성경 공부에 대해서 우리가 모두 작정도 하고 또 하나님 앞에 권면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오늘 새벽에 알아보니까 월요일 화요일 이틀 사이인데 입학한 숫자가 한 사백여 명이 된다고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어짜든지 열심히 성경 공부를 시작해서 이 더군다나 더 이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자기에게 속한 학생은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이 성경 공부를 시작해서 그 동안에 좀 성경 공부를 충분히 하도록 그래 놓으면 개학을 한 뒤에라도 그 학생이 성경 공부하는 걸 잃지 안하고 계속하면 지혜도 총명도 하나님께 받을 것이고 또 모든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셋째로는 종전 중간반 일이부 학생은 사층에서 예배 보든지 이층에서 예배 보든지 그대로 두고 요동치를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이리 저리 자리를 옮기면 그 학생들의 마음이 흔들리겠으니까 사층에든지 이층에든지 종전에 예배 본 그대로 그 장소에서 예배 보도록 하고 보고 수는 종전과 같이 그렇게 보고하시면 됩니다.

또 넷째로 금년 졸업생은 자동적으로 다 보조반사가 됩니다. 그러고 한 사람이 부득이 네 가지 직책을 겸하여 가질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직, 또 중간반 일부 반사직, 이부 반사직, 또 장년반 권찰직 이 네 가지 직을 가지고 네 가지 직책을 감당하도록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됐습니다. 그런데 단 권찰의 경우에는 자기가 전도해서 자기의 믿음의 자녀가 있을 때에는 권찰이 되지마는 아무리 오래 돼도 자기가 믿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가 없을 때에는 권찰직은 못 가집니다. 그것만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했습니다.

10절에 있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방방 곡곡에서 전할 때에 가는 곳마다 많은 핍박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뭐 핍박은 참 수많은 종류들이 있습니다. 악령이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못 하게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핍박하는 일은 세상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종류의 일은 다 있습니다. 그런 종류들을 다 가해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만한 범위에서 한 교회만 본다고 해도 지금은 우리 교회에 주일학교 학생들 수도 주일날 나오는 것이 한 구천 거의 나오는데 그 학생 한 학생 한 학생이 제대로는 신앙 생활을 시작하고 또 계속할라 할 때에 제 정도로서는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지 안한 그런 학생이 없습니다.

또 수많은 가정들이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들을 보면 가정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도를 받아 가지고 구원을 이룰라고 할 때에 핍박 없는 그런 사람이 없었고 여러가지로 애로를 겪지 안한 그런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도가 그렇게 됨으로 인해서 제재를 받은 일은 없고 또 손해본 일은 없었습니다. 참 사람이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악령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 생명의 도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 가운데도 뭐 태반이나 된다고 할 만치 많습니다. 또 안 믿는 사람들은 뭐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생명의 도를 방해하는 사람들만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이러니까 하나님의 도는 유지되지 안할 것이고 또 이렇게 번져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의 도는 이 모든 핍박이라는 그 어려움을 오히려 배가 물결을 타고 항해하는 것처럼 이 모든 핍박들이 있으나 이 핍박을 예수교는 타고 점점 선전해서 반드시 그 지역에 큰 핍박이 있었으면 그 지역에는 복음으로 크게 전성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역사에서 꼭 같은 그런 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게도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핍박과 고난과 애로를 당한 것을 너희들이 보기도 했고 또 소문도 들었지마는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 주님이 나를 건지셔서 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남음이 있었다 하는 것을 지금 여게 기록한 - 그런고로, 우리는 진리대로 경건한 생활을 할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핍박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경건한 생활이라 하면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위주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을 할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데 여게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데에 이렇게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까?’ 이렇게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마귀의 올무에 빠져서 승리하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이랬습니다.

왜 핍박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이 하나님의 인도의 길,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 성경 교훈대로 법도대로 이렇게 사는 것은 다 이것은 생명의 역사요, 또 영생하는 역사요, 완전한 역사요, 또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영광의 나라의 모든 시민권을 마련하는 그 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전부가 다 사망의 역사요, 죄악의 역사요, 또 멸망할 역사요, 다 거짓된 역사요, 없어질 역사기 때문에 정반대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요 세상은 없어질 것들이요, 성경대로 사는 것은 다 생명이요 세상은 사망이요, 성경대로 사는 것은 진리요 세상으로 사는 것은 다 인본의 모든 인간 중심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과 본성이 정반대되어 있고 또 방편이 반대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지 안했다.

불목을 주러 왔다. 부모와 자녀가 불목되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불목되고, 친구와 친구가 불목되고 이 불목을 일으키러 왔다. 내가 오기 전에 이 볼목의 불이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참된 생명의 도를 가지고 오니 악령과 죄악으로 가득 찬 그 사람들과 모든 제도와 단체와 조직들과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이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도가 왔기 때문에 그것은 대립이 될 수밖에 없고 서로 충돌이 될 수밖에 없고 배치와 반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려고 주님이 오셨다 이랬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에 이런 일들이 시작이 됐으면 좋을 뻔했다” 그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살라고 할 때에 자연히 자기의 부부끼리 의사가 맞지 안하고, 또 가족끼리 의사가 맞지 안하고, 또 동역자끼리 의사가 맞지 안하고, 같은 직원끼리, 같은 그 모든 운동하는 그 모든 여러 기관의 사람들이 이렇게 그 질이 다르고 본질과 본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찰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마찰과 애로를 당치 않기 위해서 타협을 해 가지고 바른 것을 바른 것으로 세우지 못하고 옳은 것을 옳은 거로 세우지 못하고 그만 어짜든지 서로 타협해서 무사주의로 화합주의로만 이렇게 하는 그런 사람은 그 가정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 기독교는 다 큰 박해를 통해 가지고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지옥을 향하여서 홍수처럼 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회 온갖 기관들의 조류, 조류에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올라가는 그 생명체는 흘러 내려가는 그 홍수와 마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데 위로 올라가는 것은 거게 마찰이 되고 거슬려지는 것은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마치 위로 거슬려서 올라가는 역류하는 그 형체가 작으면 마찰이 적고 크면 마찰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작은 형체의 역류는 그 핍박이 적고 큰 신앙, 든든한 여문 신앙, 가치 있는 고귀한 신앙을 가지고 걷는 사람에게는 마찰되는 그 물결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신앙의 도가 크면 클수록 세상에서 핍박이 많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는 필연한 일인 것을 알아야 되지 이상한 일로 그렇게 보면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라고 할 때에 이 세상 주인이 되어 있는, 아담 하와를 미혹시켜서 정복한 그 세상 임금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악령은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려고 이 생명의 도를 가지고 왔을 때에 그때에 정반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과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대립이 되어서 그 십자가의 죽으시는 그 어려움을 겪지 안했으면 우리 구원은 되지 안합니다.

예수님이 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이 두 가지 죽으심과 또 인간으로 부활하신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우리의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개인의 구원이든지, 가정 구원이든지, 민족 구원이든지, 국가 구원이든지 이 구원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그 모든 국가나, 개인이나, 사회나, 단체나, 민족이나 이것을 구원할라고 할 때는 반드시 핍박이 있는데 그 핍박을 두려워해서 그 핍박 고난당하는 것을 피할라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을 구원하지를 못했습니다. 다 구원하고자 한 사람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이 희생이 돼도 그 도를 끝까지 전할 때에 구원이 됐지 그렇지 안하고는 구원된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대로 사는, 옳고 바르게 참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데 이렇게 살려고 할 때에 여러가지 핍박 오는 그 핍박을 무서워서 핍박 없이 고난 없이 예수 믿을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 개인 구원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멸망 가운데 있는 가족들이라든지, 멸망 중에 있는 민족이라든지, 국가라든지, 사회라든지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여러가지 어려움의 박해를 당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고난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말씀하신 것은 자기 십자가가 뭐인가?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아서 자기 구원할라고 할 때에 오는 어려움을 십자가라, 또 자기가 자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에 여러가지 박해 오는 것이 그것이 가족을 위한 십자가라, 또 자기가 어느 민족이든지 국가든지 그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고 증거하고 이럴 때에 여러가지 핍박이 올 때에 그 핍박을 가리켜서 십자가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질 십자가, 자기가 이 생명의 도를 전해 줘야 상대방이 생명의 도를 받아 가지고 구원을 얻게 되는 그 계통이 있어서 자기가 전해야 될 자기 책임된 그 구원 역사를 자기가 할라고 할 때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오는 것을 가리켜서 자기 십자가라 말한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지 안한 사람은 자기 구원도 되지 않는다는 걸 가리켜서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거짓된 모든 사망과 마귀와 죄의 역사를 깨뜨리고 진리와 생명과 사랑으로 구원할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마찰이 온다. 필연적으로 마찰이 온다. 마찰이 오나 필연적으로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된다.

마치 어두움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빛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이 진리대로 하는 일은 처음에는 약한 것 같지마는 그거는 진리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국 개인대 국가 상대라도 결국은 국가가 깨지고 개인이 전하는 그 전도는 승리하게 된다 하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서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말한 것은 빛은 어두움을 필연적으로 정복하게 된다.

아무리 큰 어두움이라도 조그만한 빛이라도 빛은 그에게 조그마치라도 제재받지 안하고 자유한다. 빛의 힘이 있는 것만치 어두움은 다 소멸되고야 만다 하는 것으로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은 반드시 핍박이 있고 핍박이 있으나 잠시 잠깐 후면은 반드시 승리를 가지고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자기가 먼저 어려움을 당하고야 구원하지 어려움을 당하지 안하고는 구원할 수 없는데 어려움을 당하면서 구원하면은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자기가 손해가는 게 아니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도리어 크게 승리와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까 그때에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모르고 뭐 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모든 사람들은 볼 때 한 저주받은 죽음같이 보였지마는 그는 죄가 없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대속하는 그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정복해서 우주와 영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서 영원히 그리스도의 왕국이 돼 가지고 그리스도가 왕노릇 할 것이요 그와 꼭 같은 하나님의 형상화된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통치하고 만물들을 다 봉사할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세력 있는 것이 약한 것을 정복하고 이용하지마는 하늘나라는 세력 있는 것이 약한 것을 도와서 봉사하기 때문에 그 나라는 사랑이요 영생이요 아무 불만이나 불평이나 원망이나 시비나 그런 모든 불공평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지공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 오늘 밤에 말씀하는 것은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은 여러가지 필연적으로 애로와 마찰이 있고 고난이 있다. 그러나 잠시 잠깐 후면은 그 고난을 통해서 마귀와 죄와 사망은 깨지고 생명의 그 구원이 그곳에 이루어지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토마스 목사가 복음 전할 때에 그는 와 가지고서 죽었습니다. 그 불쌍하게 죽은 것 같지마는 그 한 사람은 죽었으나 그로 통해서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이만큼 큰 기독교가 이렇게 퍼져서 많은 마귀와 죄와 사망의 역사가 깨어지고 생명의 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자기가 예수 믿으면서 그 가정을 구원할라고 하니까 말씀대로 자기가 살고 전해야 되는데 말씀대로 살고 전할라고 할 때에 여러가지 핍박이 옵니다. 핍박이 오는 그 핍박을 당하지 안할라고, 안일주의로 핍박을 당하지 안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안할라고 하는 그런 사람은 그 가정을 멸망시키고 말지 구원하지는 절대 못 합니다. 그 가정을 구원한 사람들은 다 어떤 모양의 핍박이라도 고난이라도 당했습니다.

안 되면, 하다 못해 안 되면 기도함으로써 남 모르는 그 참 많은 눈물의 고난을 당했든지, 자지 못하는 고난이든지, 추운데 떨면서 기도했다든지, 그 여러가지 핍박을 당할 때 참고 견뎠다든지, 어떻게 하든지 그 십자가를 진 그로 인해서 구원이 됐지 십자가 없이는 구원되는 일이 없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13절에 말씀하시기를 “악한 사람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그 길이 하나 있고 또 악으로 사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악으로 산다 말은 세상이 말하기를 그 사람 나쁜 사람이라 하면 그런 걸로 사는 길이라 말이 아닙니다.

여게 악이라고 성경에 말하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말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인류가 있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사는 이 두 가지로서 인생길은 갈라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길은 생명의 길이요 자기 중심 위주로 사는 것은 다 멸망의 길입니다. ‘내 민족이니 내 민족 위주 내 민족 중심, 내 국가니, 내 가정이니, 내니.’ 그거는 크고 작은 것뿐이지 전부 그 원인의 종자는 자기 중심인 악인 것입니다.

이 두 길이 되어 있는데 경건으로 사는 그 길은 처음에는 좋지 못한 것 같으나 마지막에는 승리해서 구원을 이루게 되고 악으로 사는 길은 결국은 다 속이는 길이 되고 만다. 속는 길이 되고 만다 그렇게 여게 말씀했습니다. 거게 대해서 잠깐만 말하고 시간 지나갔으니까 그만 두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데에는 분류할라면 얼마든지 분류할 수 있지마는 커단하게 말해서 이 다섯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로.

하나는 물질, 물질 이해, 물질이 유익하다 해된다. 물질 성패. 물질 이해 물질 성패가 하나 있고, 그 다음에는 모든 그 사건 이해 성패가 있습니다. 그 일이 유익되고 해되고 성공되고 실패되고 하는 일이 그 다음에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행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행위에 유익을 봤다 행위에 손해를 봤다, 행위가 성공했다 행위가 실패했다. 행위의 성패, 행위의 이해 그것이 있고, 그라면 몇 가지가 했습니까? 세 가지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 성패, 사람 이해, 사람의 이해. 사람 유익을 봤다 사람 손해를 봤다, 사람 성공을 했다 사람 실패를 했다 하는 그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한 가지는 뭐 있는고 하니 그 영에 대해서, 영의 성공이라 실패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의 성공 영의 실패, 영의 유익 영의 손해, 이래서, 제일 밑에 말단이 뭐이냐 하면은 물질, 물질. 물질의 이해 성패, 제일 이게 초계단입니다. 초계단.

그위의 계단에는 모든 사건의 성패 이해, 자기 하는 그 일에 해가 된다 유익이 된다, 그 일에 성공이 된다 실패가 된다 하는, 자기의 모든 그 사건이라는 그 일이 그 위에 이호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위에 삼호는 뭐이 삼호 되는고 하니 그 위에 삼호는 행동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에 성공이라 실패라, 유익이라 손해라 있고, 그 다음에는 뭐이 있는고 하니, 뭐입니까, 넷째로는? 사람, 사람의 성공과 실패, 사람의 유익과 해 요것이 그 위에 있습니다.

그 위에는 뭐이 있는고 하니 이제 최종에 가 가지고서는 영입니다. 영의 실패 성공, 영의 실패 성공, 영의 유익 손해 그것이 있어서 이 다섯 계단을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상대해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벌로 보면 모르지마는 아는 사람들은 보면은 ‘저 사람은 지금 최저 일호에서 지금 일호에 속해 가지고 살고 있다, 이호에 속해 가지고 살고 있다, 저 사람은 삼호에 속해 가지고 살고 있다, 저 사람은 사호까지를 보고 사호에 지금 더듬고 살고 사호에서 지금 살고 있다, 저 사람은 아, 오호에 살고 있다.’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평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깐 하고 뒤에 시간이 있으면 좀 자세히 말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위에 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 계시고 악령이 있습니다. 위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고 악령이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 뭐입니까? 그 다음에는 사람인데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습니다.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뭐입니까? 녜, 행위가 있는데 행위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믿음의 행위가 있고 또 세상에 속한 그 인본의 행위, 신본의 행위 인본 행위라고 나눌 수 있는 그 행위가 있고, 또 그 밑에는 뭐입니까? 사건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일 저런 일 모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물질입니다.

이런데, 제일 밑에 그러면 자, 시작한 데부터 제일 낮은 자리가 물질, 또? 일, 또 그 다음에? 행위, 그 다음에? 사람, 그 다음에 영. 그런데 요것을 잘 비판해 가지고 우리가 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위에, 악령에 속한 악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신 성령의 인도 그 둘 다 악령의 인도도 물질하고 일하고 행동하고 이 세 가지는, 이 세 가지는 마귀에게 속해도 이 세 가지가 성공될 때 있고 또 하나님에게 속해도 성공될 때 있고, 마귀에게 속해도 실패될 때 있고 하나님께 속해도 실패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밑에 이 세 가지, 물질, 일, 행동 이 세 가지는 그것은 위에 두 가지에 속해 있습니다, 두 가지. 영과 그 사람에게 속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밑에 세 가지는 여게 속해도 그게 잘될 때 있고 저게 속해도 잘될 때 있고 그것은 다 그거 보고는 사람들이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왼편 마귀에게 속해도 이 세 가지가 잘될 때 있고 하나님께 속해도 세 가지가 잘될 때 있고, 또 하나님께 속해도 세 가지가 안될 때 있고 마귀에게 속해도 이 세 가지가 안될 때도 있고 이 세 가지는 여게 속해도 저게 속해도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습니다. 그거 가지고는 잘 구별을 못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두 가지는 그 두 가지는 이래도 잘되고 저래도 잘되는 게 아니라.

그거는 고정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이 돼 가지고 그거는 변동을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 때에 가치를 어데다가 두느냐? 가치를 어데다가 두느냐? 만일 그 사람이 밑에 세 가지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이라 살아 있으나 그까짓 거는 언제 죽을란지 모릅니다.

언제 망할란지 모릅니다.

밑에 세 가지에다가 가치를 두고 그것을 자기는 상대해서 그 세 가지에다가 가치를 두고 ‘어짜든지 이 세 가지가 잘되도록 해야 되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벌써 마귀의 것이 되어 있고 마귀에게 얼마든지 삼켜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가치로 삼지 안하고 그 세 가지 위에 두 가지에다가 가치를 사고 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이 사망과 죄와 마귀가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자기가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그 현실을 당할 때에 가치를 ‘내가 이 현실 당했을 때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 이거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네게 해되는 걸랑 피해 버리고 유익된 걸 취해야 되지 않느냐? 실패는 피하고 성공을 취해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할 때에 자기가 그 현실에서 밑에 일호 이호 삼호까지의 성패 이해 여게다가 성패 이해를 두고서 현실을 판단하는 사람은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다 그 사람은 실패하고 맙니다. 요것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다 실패하고 맙니다.

뭐 훌륭한 목사도 모르고, 박사도 모르고, 학자들도 모르고, 위대한 정치가들도 모르고, 요거 아는 사람들은 참 신불신자간에 드뭅니다.

이러기에 자기 현실에서 가치를, 자기가 가치 표준하기를 일이삼에다가 가치를 두고 일이삼이 요래 하면 유익이 되겠느냐 조래야 유익이 되겠느냐, 요래야 성공이 되겠느냐 조래야 실패가 되겠느냐? 이 일이삼에다가 가치를 두고서 일이삼의 성패만 상대하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벌써 눈이 어둡기 때문에 마귀에게 삼켜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있으면은 요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가르치겠는데, 지금도 알아들은 사람은 다 알아들을 것이오.

거게다 두지 안하고 자기는 사오, 사오에다가 가치를 둡니다. 사오에다가 가치를 둬서 사오가 실패하면, 사오가 실패하면 일이삼이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까짓 거 하루 아침에 박살이 돼 버리고 말고 또 사오가 성공 됐다면은 일이삼이 박살됐다 할지라도 사오만 성공됐으면 눈 깜짝시 그게 태산같이 성공으로 올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이삼이라는 것은 사오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사오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사오가 성공되면은 일이삼은 실패됐든지 말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오가 실패했으면 일이삼은 암만 성공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나의 영원이나 금생이나, 영이나 육이나, 모든 성공과 실패, 또 유익과 손해 이것은 어데 달렸느냐? 사오에 달렸다.

사오가 성공되면 눈 앞에 있는 아무리 일이삼이 실패해도 좋다. 사오만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그거는 물이 있으면 고기 생기는 것이고 숲이 있으면 짐승 생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 사오만 되면은 필연적으로 그거는 일이삼은 성공하기 마련이고 사오가 실패되면은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까짓 거는 필연적으로 일이삼은 다 패망이 되고야 만다.’ 요것을 확정짓고 자기의 일생 생애의 요렇게 평가해서 나가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믿는 사람은 영원을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그 사람이 롯하고 시비할 때에 사오를 성공할라고 하니까, 사오를 실패하지 않고 사오를 성공할라고 하니까 일이삼은 박살이 났습니다. 롯은 일이삼을 성공하기 위해서 사오를 돌보지 안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때에 롯은 성공했고 아브라함은 실패했지마는 잠시 후에 아브라함은 대성공자가 되었고 롯은 대대로 대실패자의 아주 전멸된 자가 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이냐, 또 일이냐, 행동이냐, 사람이냐, 그 다음에 하나님이냐 악령이냐? 이 일이삼사오를 모든 사람은 상대하고 이 세상 살이를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일이삼만 보고 상대해서 일이삼이 뭐, 사오야 깨졌든지 말았든지 일이삼만 됐으면 성공이다 그라고 뭐 아주 그렇게 만세를 부르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일이삼이 암만 성공된다 할지라도 사오호가 깨지면 깨지기 때문에 사와 오호의 성공을 보고 일이삼이 깨져도 그 사람은 웃으면서 ‘조만간에 빨리 일이삼은 마련된다’ 하는 것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시간이 없어서, 벌써 종이 울었는데 간단하게 했으나 여러분들이 내일 새벽에 나오면은 요것을 계속해서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뭐 세상에 지혜 있는 사람 있고 대정치가, 대학자, 대과학자, 문화 모두 그래 쌓지마는 요것을 판단 못 하고 그저 그대로 살기 때문에 다 자살 행위 하고 있습니다. 일이삼을 가치로 두고 사는 사람은 다 자살 행위입니다.

사오, 사람이 어찌 되느냐? 또 하나님이 어찌 되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요게다 가치를 두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금생과 내세 모든 것은 그 사람의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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