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간부


1984년 8월 7일 화새집회

 

본문 : 계 17장 1절-3절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기에는 이 세상 아름다운 문화 모든 신자들의 그 모든 마음을 미혹시켜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 면을 가리켜서 음녀라 그렇게 상징했습니다.

 또, 이 세상 이 문화의 모든 매력이 하나님의 신부를 유혹할 때에 가리켜서  간부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부라고 그렇게 표시하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 기독자들이 한 부부가 되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 부부관계인 그런  특별한 관계점을 미혹으로 파괴시키는 그 면을 가리켜서 간부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과는 부부의 원형이요 부부의  원형이요 부부의 그 원형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모형적  부부를 우리에게 소개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은 본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되어 있고, 또 이 세상은 간부로 우리에게 유혹 줄 수 있는 그런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사람들의 아주 상관없는 타인 남이 부부가  되어지는 이것이 원형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인인 남녀 부부와 같은 그런 관계를 가진다 하는 것으로, 이래서 세상에  사람들끼리 부부된 것은 이것은 원형이고 하나님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관계를 가진 이 부부 관계 가지라고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그와 비슷한 것으로  이렇게 모형으로 생각하는 이런 생각을 다 가지고 있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영원 전부터 당신의 계획에서 부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부부 관계로 되어 있고. 또 이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그 면으로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이 세상 남녀 부부의 이 제도를  하나님께서 내셔 가지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부부 관계인 그런 관계를  말씀하신 것은 그것은 특별 계시고, 또 사람 남녀 부부로서 부부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 일반 계시로 그렇게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에베소서 5장에 보면 특별히 우리 인간 부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두 사람이 두 몸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사람이 두 사람이 두 몸이 되어  이렇게 모든 신앙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가지고서 한  구원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둘이 합하여 한 육체가 된 것을 알라 한 그 말씀은 두 사람이 부부 관계를  가진고로 둘이 합해서 한 육체를 가진 한 사람을 출생하게 된다 하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자손이 나는 그것을 가리켜서 한 육체가 이루어졌다고  그렇게 말함이 아니고 남녀 두 사람이 합해서 부부가 된 그것은 그 두 사람이 두  육체지마는 한 육체라 하는 그 말은 과거에 결혼하기 전에는 두 사람이 각각  자유성을 가지고 있지마는 이제는 각각 자유성을 가지지 못하고 두 사람이  합하여서 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그 권리는 아내에게 있고,  아내의 권리는 남편에게 있어서 남편은 남편 자기를 이제는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하도록 돼 가지고 있고. 아내는 아내 자체가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하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주장하게 되는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특별 계시의 말씀 곧 진리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칙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그 법을 따라서 그 법을 근거하고 그 법을 준해 가지고 그렇게 두 육체가 한  육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남녀 결혼하는 두 사람의 그 부부는 두 육체가 아니라 한 육체가 된  그것은 하나님의 그 뜻 하나님의 법칙을 근거해 가지고서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서 남자는 아내를 따르고 아내는 남자를 따른다는 그것은  위법적이기 때문에 다 거기에서 해제가 돼 버리고 맙니다. 다만 하나님의 법을  근거해서 그 법을 준수하는 거기에서 남녀는 각각 자기를 주관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주관하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특별 계시의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내라 신부라 이렇게 표시해 놓으신 그 면을  성경에는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대속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도들에게 있는 것. 성도들에게 있는 것 그 전부는 그리스도인 됨으로  말미암아 다 그것은 주님의 것이 됩니다. 성도의 것은 다 주님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로 시작되는 것은 벌써 알기 전 중생으로 죽었던 영이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 셋으로 인해서 살아나고 그 영이 살아난지 오랜  후에 혹은 어떤 사람은 즉시 이렇게 어쨌든지 순서적으로 영이 중생 된 그 후에  신앙생활은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 될 때에 벌써 아내의 것  전부는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것 전부는 아내의 것이 되어서 아내는 남편을  총 책임 지는 그것이 부부의 제도요 또 아내의 것은 남편이 총책임 지는 것이 그  제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못 쓸 거, 더러운 거, 잘못된 거, 우리가  또 잘못 저질러 놓은 모든 것 우리가 악령에게 크게 패전을 해서 악령에게 크게  지금 큰 댓가에게 팔린 것이 되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법에 갚으시고 우리가 그 죄 빚진 것을 대신 갚으시고, 또 마귀에게  우리가 패전한 그것을 주님이 우리 대신 다시한번 도전하셔 가지고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우리를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의 문제를 다 형으로  대신하시고, 또 악령으로는 전투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제 승리하심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목적의 그 자체로 창조함을 받은  본 위치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이 다 당신의 것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담당하신 것이 그것이 대속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우리의 사망은  당신의 사망이 됐고, 우리의 죄는 당신의 죄가 됐고, 우리의 모든 저주는 당신의  저주가 됐고, 우리의 그 낮고 천한 것은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것이 된 이것은 당신이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좀 잘못 들으면  오해하기 쉬운데 자꾸 좁은 범위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 갈  그런 아무 권리가 없지마는 우리를 대신해서 안 끌려가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외부적으로는 악령에게 끌려가고 악령의 권세 아래에 속해서 그 악령에게  다스림을 받는 그런 일을 하지 안 할 수 없는 그게 우리의 입장을 예수님이 대신  가지시고 그 입장에서 역사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고  어기는 일은 한번도 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런고로, 악령이 주님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은 모두가 다 사망과 저주의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외부적으로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모든  잘못된 거 더러운 거 그런 것을 외모로 받으면서도 그 내용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일을 놓지 안했기 때문에 주님은 이중의 역사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그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근거해서 우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서 저주와 정죄와  사망을 받게 되었고, 또 악령에게 그렇게 저의 것으로서 짓밟는 그런 일을  주님이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로는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을 담당하심으로 잘못된 자로,  잘못된 자로 잘못된 자의 그 처리를 받았고, 잘못된 자에 대한 책임을 받았고,  잘못된 자에 대한 멸시와 천대와 저주와 사망을 받았으나 실상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조금도 이탈되지 아니하고 고대로 이행했기 때문에 겉은  사망이요 속은 생명이요. 겉은 그들의 종이요, 속은 그들로 더불어 전투해서  승리하는 일을 해 나갔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그 사망과 음부의 세력에게 그 해를 받는 그들이  그들에게 복종하는 그런 일을 껍데기는 하고 속은 주님에게 복종하는 이 일을  계속해서 이중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 53장에  말씀하시기를 '그 육체로서 우리의 모든 사망을 담당해서 그 영과 몸이 다  죽는데 이르렀지마는, 영혼과 몸이 죽는데 이르렀지마는, 그 영과 또 예수님의  신성은 계속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 구속을 위해서  노력하고 계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구속을 위해서 간구했다 그랬습니다.

구속을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겉은 죽고 속은 살아서 죽음으로  죽음을 완전히 해결을 지웠습니다.

 죽음으로 외부의 그 죽는 죽음을 죽으시면서 속에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연결을 끊지 안했기 때문에 그 연결은 전투 속에 승리한 최종까지의 승리한  연결이기 때문에 그 연결의 생명은 사망을 이긴 생명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1장에 사망을 이겼다고 이랬습니다. 사망을 이겨서  다시는 사망을 이겨서 사망에게 주관 받지 안하고 사망을 주관하게 됐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도는 예수님의 아내요, 또 예수님은 성도의 남편이라. 예수님이라고  말하면 신성과 인성을 다 합해 가지고서 이리 된 면을 들어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남편이요, 또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의 남편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신성만을 가리켜서 그 신성만이가 또 교회의 남편이라. 그래서 신성  인성 신인양성일위 이게 다 교회의 남편이요 교회는 그의 신부가 되었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에는 세상은 간부라고 거기에 말씀했고, 또 하나님은 본부(本父)라고  말씀했고, 우리는 그 아내라고 여인으로 그렇게 신부로 상징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음녀로 되어 있는 이 세상 음녀로 되어 있는 이 세상에게  우리가 미혹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권세 하나님의 아들의, 아들의  그 권세를 다 박탈하게 돼 버립니다. 이 세상을,  이거 조금 알아듣기가 재미가 없고. 이걸 알아들어야 도인이 되지 이걸  알아들어야 도인이 돼지고 구원이 돼지지 뭐 이 세상에서 도덕면 그러면  도둑질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도 좋지마는 그것은 실은 기독교의 강령을 들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수를 들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따른 하나의  피부의 이 살과 같고 지금 말하는 것은 사람을 육체로 말하면 안에 있는 그  근육과 뼈 그 정력 호르몬 그 속에 있는 모든 정기 정신 그런 것을 들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알아야 기독교의 그 도의 힘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아는 것은 힘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아는 것은 힘이라 말한  것은 알면 그 사람이 힘있게 할 수 있다 그런 말은 외부고, 내부에는 그 아는  대로 사람은 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아는 대로 하게 된다. 지식은 그 사람을  끌고 가게 된다. 그 사람의 지식대로 그 사람의 생각은 따라가고 그 사람의  지식대로 그 사람의 욕심도 따라가고 또 그 사람의 모든 경영도 그 지식을  따라간다. 지식은 그 사람을 끄는 힘이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진리를 깨닫지마는 그 진리를 깨달은  지식도 천층만층입니다. 또 천종도 만종도 넘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종류로  수많은 층어리로 깨닫고 있는데 자기의 깨달은 것 그 이상의 삐뚤어진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그것은 다 이 층층 층어리가 있어서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의  층어리도 이렇게 층어리가 있고, 또 세상 인간 지식의 층어리도 이 층어리가  있습니다. 있어서 자기의 진리를 깨달은 층어리가 이 인간의 지식 배암의 지식,  타락 후의 인간들이 가진 지식 그 지식의 층어리보다 낮으면 결국은 자기 이상에  있는 그 층어리에게 인간은 끌려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지식이 이 악령이 발생시킨 타락 후의 악령의 그  권세 아래 주권 아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 지식, 그 지식 최고봉보다 그  무한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확실히 잡은 사람은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뭐 어떤 그 지식이 이렇게 저렇게 그 모양을 변해 가지고  이런 모양을 가지고 나오고. 마치 인형으로 텔레비전의 인형을 보면 이런 거  쓰고 나오고 저런 거 쓰고 나오고 여러 가지 그 모양을 쓰고 나오는 것처럼 이  세상 인간들의 지식이 별별 탈을 쓰고 나와도 그것을 발로 짓밟고 그런 거에게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지식보다 밑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위의 사람의 지식이  말을 할 때에 그 지식에게 설득을 안 당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는 틀렸는데  틀렸기 때문에 나는 그 지식에는 나는 미혹받지 않겠다. 이렇게 말을 해도  자기는 그 이상의 논리가 없고 인간의 지식은 그 이상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논리, 내가 그 대항할 수 없는 그 논리, 그 논리가 위에 있으면 그  논리에게 저는 반대를 해도 반대를 해도 벌써 끌려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독교의 진수인 이 근거를 우리가 알면 그런데 빠져 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많은 지식을 못 가져도 우리 주님이 요한복음 1장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 주님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오 한 분만 되신  하나님이시라. 영원 자존자이시오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이분이 모든 것을 다  아무것도 없는 그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라. 이 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이분은 창조주시요 또 이분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는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라. 주재시라, 대 주재시라, 또 그분은  주권자시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시라. 모든 역사에 이루어져 가고 있는  모든 순위는 이분이 영원전 예정하신 예정대로 모든 순서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 지식의 그 지식의 단계를 무한히 초월해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지식은 그 밑의 그 지식 저 발 아래 거기에서 호부작거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사람이 무식해도 그 자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그분이  모든 것을 예정하신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지금 소유하고 계시는  주재이신 하나님, 그 모든 것을 다 주권의 능력으로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관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또 알파와 오메가가 돼서 영원무궁 모든  처음도 그분이요 시작도 그분이요 끝도 그분이라. 이 큰 근본되는 그 지식  근본되는 이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그 철학의  지식을 대할 때에 요것을 확고히 믿는 사람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지식을 듣고서  웃습니다. 네가 아직까지 철이 없는 그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이 네가 모르는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렇게 웃고 그 지식에게 그 억압을 당하지  아니합니다. 다른 면을 몰라도.

 이것을 알고 있으면 모든 세상의 지식은 무슨 이런 사상 저런 사상 공산  사상이나 민주주의 사상이나 또 이 모든 철학들이나 또 과학들이나 과학을 암만  꺼내 가지고서 여기에서 이 별에서 저 별에 그 거리가 뭐 몇 십 몇 백 광년  광선의 그 속도로 가도 그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계산이 넓다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서 막 떠들고 이래 해도 한말로 아, 주님이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이 그러하니 그분이 하는 역사는 얼마나 크냐 할 때 그들은 그 아래 벌써 밟혀  가지고 그 위에 올라오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제일 처음에 예수 믿고, 믿기로 작정하고 첫 주일을 나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 마음에 아무래도 이 세상은 다 허무하고 무슨 일로서 끝이  나버릴는지 모르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자꾸 생겨져서 내 아내를 먼저 나가라  하고서 내가고 다음 주일에 나가겠다. 그 먼저 첫 주일에 나가라 하고, 고 다음  주일에 제가 나가고 주일에 나간지 고 사흘만에 술도 끊고 그 모든 것도 다  직업도 다 완전히 다 변동시켜 버렸고 이랬는데.

 첫 시간에 제가 가서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황 보기 장로님이라 하는 장로님이  창세기 1장을 가지고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그 말씀을  설교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듣고 난 다음에 그만 거기에서 저는 완전히  제가 아는 대로의 세상은 다 부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늘 의문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말해도 근본이 있지 자연히 우연히 생겼다고 해도 자꾸  수수께기만 됐고 사람에게 번민과 고민만 나왔는데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그 창조를 증거할 때에 그때에 모든 인생의 의문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또 영원 자존하신 분을 말할 때에 모든 소망이 생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첫 주일에 그라고 난 다음에 와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당장 다  정리하고서 그때부터 성경 보기를 시작해 가지고서 얼마 동안 계속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는 읽으면서 얼마나 읽었든지 앉아서 읽으니까 궁둥이가 터져서  물이 나고 제가 또 그러다가 말라서 또 나아서 마르고 자꾸 이래 몇 번  거듭하면서까지 성경을 읽었는데, 지금은 성경 읽을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암만  성경 읽으려고 해도 읽으려고 해도 이제 다른 것이 와 가지고서 말하니까  하나님이 내게 그걸 사명을 맡겼으니까 그 맡긴 사명이니 내가 지금 성경 읽어야  하겠다고. 또 반대하고 그럴 수 없어서 할 수 없어 성경을 중단하고 읽는 걸  중단하고 또 그 일을 이 복음 역사의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은 성령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시기에 성경을 읽지 언제든지  목회자로 나가면 자유롭게 성경 많이 읽을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 가지면 안  됩니다. 그때는 자유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말씀한 거와 같이  젊어서는 네가 임의로 띠를 띠고 네 마음대로 네가 주관해서 네 마음대로  하지마는 이제는 너는 네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너를 다른 사람 제  마음대로 하고. 또 주님이 당신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너는 완전히 자유라는  것이 주관이라는 것이 다 박탈돼 버리고 없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죽는  것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네가 죽기 싫은 죽음을 죽게 되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지금 읽을 수 있을 때에 성경을 읽어야  되지 이런 기회를 놓치면 읽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에 신부와 신랑에 대해서 말씀하는 가운데 있는데 이것은 이제 말한  근본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이 자존. 또 그 전지전능. 모든 예정, 목적  예정, 창조, 보존, 섭리, 관리, 주재권, 주권권, 주권 역사 이런 것은 다 모든  존재와 모든 역사의 뿌럭지 근원을 들어서 지금 말씀 한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신랑이시요 우리는 신부라는 것은 이 근원이신 그분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졌다 하는 그분과 우리와의 관계 맺어진 이 관계를  들어서 말하는 것을 지금 신부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근본된 이 지식을 가지면 무신론의 지식, 모든 세상에서  모르고 한울이니 한얼이니 또 그 참 어중 주신이니 일본사람들은 천의 어중  주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아마노 미나가노 누시노 가미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주신이라 이렇게 뭐 저희들이 조작배기로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이 근본이기 때문에 모든 지식을 들면 다 거기에 그 위에 얹혀 가지고 있는  것이요 기초가 그 밑에 얼마나 든든하게 저 밑에 기초가 있는데 기초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건설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인간들의 모든 유혹을 벗어나는 그 방편은 자존자이신  그분의 신성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데에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또 신성을 알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인 그 계시성  계시성에 대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맺는 이 계시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들을 구출할 수가 있고 그들에게 꼬임을 받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예수를 믿고 아무리 주 예수를  믿어도 자기가 모르는 그 이상의 세상 논리를 가지고 말할 때에 사람이라는 것은  생애 애착심이 있고 또 사람이라는 것은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모든 시비 판단을 가지는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이성이 있고, 생애  애착심이 있고, 또 그 사람들이 자꾸 기억하는 기억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모르는 그런 자기 논리 이상의  논리를 가진 그 논리가 있을 때에는 그 논리를 맹목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아무리  대항해 봤자 대항을 하면은 대항을 한 것만치 자기 속에는 의문이 커지고 의심이  커지고 자기에게는 힘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이상의 지식을 가진 자에게는 자기는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으면서 이 세상 이십  세기의 과학이 이런 거 저런 거에게 자꾸 끌려가고 있는 그런 것은 그 근본이신  그 지식의 근본이신, 지식의 제일 근본은 뭐이 지식의 제일 근본인고 하니  아무것도 없는 영원 자존하신 영원 자존하신 그분으로 계신 시간. 시작한 시간이  없는 영원전 자존하신 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자존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지식이 지식이 제일 근본이오. 피조물들이 가진 그 지식 중에 제일 근본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해서 모든 존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둘째 지식의 근원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신다 주권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  가지 모순이 생겨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나타내 거석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같이 자꾸 모순된 모순이 가득 찼습니다. 모순을, 모순을 하나님의 그  주권에다가 근거를 붙여 가지고서 이렇게 하면은 오랫동안 번민 고통을 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서 참을 찾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아는 것이나 이것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나 모든  것을 정복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 자존,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주재, 하나님의 주권 이 근본되는 이 강령적 지식을 자기가  믿으면 강령의 지식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해 놓은 그 모든 지식적으로 어지럽혀 놓은 것이 뭐 칡 얽히듯이 다  얽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리 얽고 저리 얽고 모두 다 이리 얽어서 뭐 그 얽은 고도 많고  어떻게 꼬불탱이가 많은지 사람들은 그 꼬불탱이로 들어갈라고서 그 꼬불탱이를  들어가 봄으로써 해결을 지울라고 하는 자은 거기에는 다 어떤 세계인고 하니 다  거기에는 미혹 세계요 미혹 세계요 또 허허 벌판인 허무 세계입니다. 또  거기에는 아주 열대 지방에 그 밀림과 같은 거기에서 무저갱 지식 무저갱의 그  세계입니다. 무저갱 끝이 없는 무저갱에서 자꾸 거기에서 자꾸 빠져 들어가게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탄의 깊은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은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이제까지 지고 있는 그 짐만 지고  가면 된다, 그렇게 사탄의 그 깊은 곳이라 말한 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 무저갱을  말한 것인데 이 세상 지식을 그 지식에서 무엇을 얻겠다. 그 지식으로 타고  들어가 가지고서 삶을 받겠다. 그 지식에서 하나님에게만 소망해야 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되고 하나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그것을 이 모든  피조물에게서 받을 수 있다고 벌써 그렇게 그 사람이 정신이 착각돼 가지고  그렇게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 사람이 들어가는 그 모든 것은 무저갱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 또 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지식 또  모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되는 이 지식 또 나와 피조물에게 관계되는 이 모든  지식, 그러면 하나님. 나. 모든 피조물 이 셋이 이 삼각을 발견하고 이 삼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

 그러면 하나가 되는 그것은 한계가 있다. 하나가 되는 그것은 한계가 있어서  무한적으로 다 완전 하나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그분은 자존자시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아서 존재하는 내라 하는 요것을 생각하고 고것만 잡아서.

그러면 그분이 자존하신 분인데 모든 만물과 나와 그분과의 하나 되는데 하나  되는 것은 이것은 그분은 자존자시요 나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거는  본체적으로는 하나가 안 됩니다. 본체적으로는 하나가 안 되고, 다만 그  역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렇게 움직이는 이 역사적으로, 또 희로애락을 누리는  그 희로애락을 모든 누리는 면으로 이렇게 하나가 된다 하는 고것만 구별을  하면은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기독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그 유력한 철학자가 그 철학을  말한다 해도 그것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 말하는 거 단번에 한 마디로 딱  정죄해서 '너는 소경이다' 그 다음이 뭐이냐 물으면 그 다음을 모릅니다.

 지금 세상을 떠났는데, ○○○집사님 오빠가 있었는데 그분이 이제 세상을  떴습니다. 그분이 평양에서 제일 갑부인데 갑부의 아들인데 내가 말 들으니까  평양 그 자기 집 있는 데서 삼십 리까지는 둘레로 뺑돌아서 삼십 리까지는 다른  사람 땅이 하나도 없어. 자기 땅을 삼십 리까지는 꼭 자기 땅만 밟아 가지고서  이래 갈 수 있는 그런 그 부자인데 굉장히 부자였던 모양이라. 그 부자가 그만  그런 유산 그거 필요 없다 하고서 그걸 싹 버리고 절로 들어가 가지고서 중이  됐는데. 참신 중이라, 참신 중인데 참신 중은 특별히 자기네들이 말하는 최고의  신으로 더불어 이렇게 밀접한 그 영교를 하는 그 길이 참신 그 길인데, 그  사람이 제일 불교에서는 높은 진리를 깨닫고 명상하고 있다 하는 그분인데  그분하고 좀 얘기를 했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하면은 그분이 그 얘기하다가서 그 얘기 실컷 이래 하는데 그  소경이 더듬는 것이라 내가 있다가서 문을 열어 보이면서 네가 이 방 안에  있는데 문을 열어 봐라. 이 문을 열면 이 문밖에 방밖에 큰 세계가 있다 문을  열어 주면 그 사람이 그만 말 못 해오. 기껏 자기는 여기 크고 뭐 이랬는데  그런게 아니라 여기에서 요 문을 하나 열어 봐라. 요 문을 하나 열면 고 밖의  세계가 있느니라. 고 문을 하나 딱 열어 주면 그분의 있는 걸 말 한 마디만 하면  그만 팍 꺾어지요. 이래 하다가는 그만 말하다가는 그만 중단해 버려요. 아이구  그만 그만 하자고서. 또 사이에도 또 뭐고 이래 했는데 그래도 그 도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마지막에 죽을 때에는 자기의 생질 집에 와 가지고서 세상을  떠나면서, 아주 유명한 중입니다. 이러니까 어떤 절이든지 가면은 거기서 이렇게  대접을 하고 어디든지 또 여비 주고 다 돌아다니면서 그저 그 참신해 주고  이렇게 하는 중인데 마지막에는 예수를 믿고 그라면서 아무 데도 그 절에나  그런데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오면 지금 큰 일이 일어 날 터이니까 소식을  전하지 말고 나를 믿는 법으로 장례해 달라고 믿는 묘지에 장례 해 달라 해서 그  서부교회 교회묘지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또 어느 무슨 불교 대학인데 무슨 ○○대학도 아니고 무슨  대학인데 그 대학에 총장이고 그분이 박사가, 박사 학위가 서른 두 개 입디다.

박사 학위가 서른 두 개고, 또 그 논문 박사가 열 몇 개고 그런데 박사 학위  숫자를 가진 것으로서는 제일 많이 가졌다 그렇게 하는데. 그 뭐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다른 거는 생각하지 안하지마는 그것을 볼 때에 나는 내대로의 그  사람은 어떤 데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속고 있다. 또 그 사람이 말해 놓은 것은  모두 다 그 주고 받고 하는 사람들이 이 기독교를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원자존자 또 창조주 주재자 전지전능자 이분 그만 영원 자존자 창조주 이분을  갔다 붙이면 그의 논리는 다 바싹 깨집니다. 다 바싹 깨지고 맙니다. 바싹  깨지고 마는데 그분은 최고로 그 좀 정직해 존경하기는 석가모니를 신을 삼아  가지고서 석가모니를 그렇게 존경 하고 있습니다.

 그 석가모니는 지음을 받은 사람인데 이 가운데 사람은 석가모니만 못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사람이오. 석가모니는 지음을  받은 것이로되 다만 하나님에게 택한 자들을 위해서 이용물로 지음받았지 택한  자의 동등 그런 수준에서 지음 받은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지식이  이 세상 어떤 지식보다 그 위에 있어야 되고 또 근본적이라야 되고 이제 뭐  세상에 또 근본 철학이라는 근본주의 근본철학이라 하는 또 철학이 있습니다.

그런 것 그래도 근본을 저희들이 잡지를 안해. 근본철학을 가질려면 그 자존하신  하나님께 나가기 때문에 성경을 가져야 되는데 성경을 대항하기 때문에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참된 지식이라는 그 지식세계에 들어오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오늘 아침에 지난밤에는 이 음녀 음녀는 어떤 면을 말한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속해 있어야 될터인데 탕자비유에 탕자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속해있지 안하고 아버지를 그 음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떠났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유업받을 것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  아버지의 유업은 우리가 받을 때에 단번에 받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영은 아버지의 유업을 단번에 다 받았습니다.

 단번에 다 받았지마는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되어있는 육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유업을 받는 것이 그것이 점차적으로 받고 중복적으로 받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살고 있는 그 기간은 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는 기간입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는 기간이요 또 그 기간은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기간입니다. 아들이 되면 유업을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지고 있는 가진 그 만나는 현실이라는 현실은 아버지의 아들의  권세를 받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지는, 이 심신이 말이요 심신이 우리는  법적으로는 되어 있지마는 실상으로는 되어 있지 않다 그 말이오. 실상을 받기를  언제 받느냐 하면은 현실에서 받는데 현실은 아버지의 아들의 권세를 우리가  받는 현실이요 또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만치 아버지의 모든 유업을 상속받는  현실인데 이 음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서 현실이라는 이 시간과 또 장소와  거기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이것을 그만 음녀에게 다 뺏겼다 말이오.

 음녀에게 다 팔아먹었다 음녀에게 뺏겼어. 음녀에게 뺏기다니 음녀에게 뺏긴  것은 그 음녀가 미혹을 주니까 전부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를 받을 거 유업을  받을 거 이거 받을 수 있는고 현실에 자기라는 모든 것을 다 음녀에게 뺏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질 그 권세 가질 권세를 그거에게 뺏겼고, 또  하나님에게 유업 받을 그것을 그거에게 뺏겼다 말이오.

 뺏겼다 말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준 것이 아니라 받으면 그거는 주지 못 해요.

받으면 가지고 있는데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에 받지 못하고 그 유혹을 받아  이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 그런 아들의 권세를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데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 이랬는데 권세를 받을  수 있고, 또 그 유업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유업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와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마귀에게 다 뺏겼다 그 말이오. 마귀에게 다  뺏긴 그것을 가리켜서, 그 음녀에게 다 음행했다. 그러니까 음녀로 더불어  하나되는, 그 재미에서 음녀로 더불어 하나되는 그 재미에서 그만 이렇게 큰  권세도 실력도 유업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라는 것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심신의 기능이 이것이  다 영생하는 완전자로서 이게 고정되는데 이 심신의 기능이 완전자로서 고정이  되는데 이 심신의 기능을 그만 그것에게 뺏겨 가지고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사망하게 된다 그거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는 완전 기능으로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영원한 사망 영원한 사망으로 사망되기도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이라는 현실에서는 그 영생 그 기능 영생도 되고  기능 영멸도 됩니다. 또 이 현실에서 그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을 다  자기의 것으로 지금 상속을 받는 그 상속을 받는 현실도 되고 그것을 영원히  다시 법적으로 상속을 받아 가지고 있던 것을 다 그 음녀에게 미혹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상속받은 것이 다 시기가 지나서 다 자기에게 있어서는 다 포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그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다시 두번 도로 찾을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포기되면 다시는 못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 이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현실에서, 현실이라는 것은 어떤 걸 상대하느냐?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해 가지고 하나님 편에 붙어서 이 현실이라는 이 세상을  상대합니다. 이 세상,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 화려한 문화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그것이 음녀도 되고, 이 세상은 음녀도 되고 이 화려한 문화는 음녀도  되고 하나님의 선물도 되고 또 이 세상은 죄뭉텅이도 되고, 또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아름다운 세상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아주 하나님에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그렇게 유업으로  받은 세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이 세상을 아주 그 음녀로 받아  가지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을 다 그 음녀라, 세상을 음녀라, 또 세상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렇게 둘로 이렇게 우리가 그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를 따라서  그것이 달라집니다. 그 상대방은 꼭 같지마는 우리에게 우리에게 그 가해지는  것은 다 같지마는 내 주관에 따라서 그것이 달라집니다.

 마치 비유컨대 보름달이 떴는데 어떤 사람 자기 그 주관이 아주 슬픔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 보름달은 전부 자기의 슬픔에 일치돼 가지고서 자기의 슬픈 그  마음을 자꾸 슬프게 만들고, 또 자기 주관이 기쁘게 되어 있는 사람은 그 아주  명랑한 달빛이 자기를 더 기쁘게 하는 그 달빛이 되어지는 내나 달은 같은  달이지마는 자기 주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와 같이 우리가 우리 주관에 따라서  이 세상은 나에게 음녀가 되어 가지고서 나의 구원을 절단내는 그 세상도 될  수가 있고. 또 내 주관의 믿음에 따라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그것이 내  구원에 필요 있게 이용하는 그 보배로운 선물도 될 수가 있는 것이 그게 우리  주관에 그 신앙 여하에 따라서 그것이 결과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피가수의 자요 세상은 다 가수의 것인데 가수의 것은  꼭 같습니다. 꼭 같은데 다만 피가수 될 내가 틀렸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  세상이 이런 세상이 돼 가지고 있고 이 사람에게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그 모든 것을 나 아닌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관계를 가지게 될 터인데 관계를 가지게 될 때에 내가 어떤 것을 관계를 가지게  되느냐? 우리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서 진공이 되어지고 완전히 부인해서  진공이 되어지고 자존자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하게 되는 요 피가수가 되어지면  모든 피조물은 다 거기에 그 하나의 선물이 되어지지 피해 줄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 따라서 우주는 그렇게 변해지니 우주  자체가 만물 자체가 변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관에 따라서 자기와의  관계가 다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돼서 예수님의 구속받은 이 중생된 자  자체가 되어지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했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대속을 벗지  안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으면 이  대속을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만 있으면 이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자기의 것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돼서 결과적으로는 자기의 것이 돼서 그가 나를 칼로 찌른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 찔렀고 그가 날 해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 합력해서 결국은  나를 해할 자는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나를 위하는 그 결과만 맺어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 오묘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뭐이냐 하면은 믿음의 권세를 가진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그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줬다 그  말은 믿음은 어떤 권세를 가진 것이냐?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것이다 그 말입니다. 자녀의 권세를 가졌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존재는 믿음 가진 그 자의 것이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뭐 좀 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그 말을 자꾸 좀  깡깡깡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나도 또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믿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이지마는 그것을 다 논리적으로 이렇게 이 말을 할려고 하니까  그렇게 좔좔좔 대통에 물 쏟듯이 그렇게 쏟을 수가 없고 순서를 생각하며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돼지고, 또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그만 쭉 해 버리면 다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름답고 편리한 모든 보배로운 이 세상 또 이십 세기의 문화도  아주 보배입니다. 이십 세기의 문화의 보배성만을 자기가 상관해 가지고  가치성만을 상관해 가지고서 그것을 자기 구원에 유익되도록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은 아버지의 선물이 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선물이 된  사람입니다.

 선물이 된 사람이요 아름답고 좋고 참 필요 있고 요긴한 그 편리한 이 십  세기의 모든 문화 이 아주 보배롭고 아름다운 거 그 아름다운 그것으로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아름다운 그것을 하나님 대신으로 삼아서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 맺을 그것을 거기에서 하나님과 관계 맺을 그것을 자기가  거두어서 이 세상과 관계 맺은 그것이 그 음녀에게 미혹 받아서 그 음녀에게  음행하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것이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다같이 아름답고 다 보배 있고 필요  있는 이십 세기의 문화인데 그게 나쁜 것이 아니고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하나님에게만 상대해서 하나님에게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소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이 해 주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내가 대접 할 수 있는  하나님에게만 내가 그 대우는 하나님에게만 대우할 수 있는 그 대우를 이  세상에게 대우하면 그것이 벌써 음녀에게 빠진 사람이요 하나님만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그것을 하나님만 바라보지 안하고서 이 세상이 그걸 해 주리라고  바라보는 그것이 벌써 음녀에게 접해서 음행하게 된 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은 꼭 같이 아름다움이지마는 아름다움이지마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음녀도 될 수가 있고 그것이 선물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염세주의로 이 세상을 필요 없다는 그 말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상을 버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버릴 때가 있는 것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거는 어디 있나? 그 좋은 거는 주님에게 있지 딴 데 있는 거는 아닙니다.

 또, 그것을 버리는 것은 당신이 버리라고 할 때에는 그것에게 내 소망이 있지  않기 때문에 있는 세상을 다 버리라 해도 아깝지 안하고 단번에 척 버려 버릴  수가 있는 그것은 이제 내 속에 지식의 평가되어 있는 그것은 어느 정도의  평가가 되어 있고 하나님은 무한하신 그 평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과 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비교가 되지 않는데 가끔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선물로 주시고, 이  선물로 가져서 필요 있게 우리가 쓰면서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주여  감사합니다.' 선물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을  하는데 사용해 보니까 참 재미가 있고 맛이 있습니다.

 맛이 있으니까 자꾸 그 가치성을 느끼고 매력성을 느끼고 그리 마음이 기울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그럴 때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당신에게만 향하여야  되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아들로 살아야 될 하나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자가 하나님 아들로 살지 안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그 지위나 권세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지 안하고 내나 첫째 아담 옛사람으로 산다.

첫째 아담 그 혈육의 사람으로서 옛 사람으로 살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잘 선물로 이용해서 보배롭게 그 선물로 사용해 가지고 보배로운 구원을  이루던 자가 망령되게 그만 하나님의 아들의 이 모든 본질과 본성을 다 떠나서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본질과 본성으로 사는 그것을 가리켜서 육체를 따라서  산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육체를 따라서 산다.

 그렇게 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다지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다지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 뭐이냐 하면은 그 시험입니다. 그 어려움입니다.

다지기 위해서 하실 때에는 어떻게 하게 하느냐?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버리도록 능동적으로 버리도록 (요걸 잘 안들으면 안됩니다.)  능동적으로 버리도록 그 주위와 환경 그 모든 형편을 당신이 쏵 바꿔 가지고서  내가 고것을 가지려고 하면은 뚜렷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야 되고. 그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안하려면 그것을 포기해야 되고 하는 고런 외통목으로  딱 몰아 가지고서 고런 일이 되도록 딱 만들어 버린다 말이오. 만들 때에 그때  하나님의 시험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럴 때에 두말 할 것이 없이 그걸 어찌 해야 됩니까? 어찌해야 그것을 다시  선물로 하나님 앞에 되받아 가지고 가기가 필요 있게 이용을 해서 구원을 잘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선물을 자기가 가질 수 있고, 또 그 선물을 그만 뺏길  수 있고, 그 선물을 아주 뺏겨서 없어질 수 있고, 선물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대구 집회 때에 가르친 말씀인데, 그러면 그 선물을 하나님이 시험할 때에 주신  그 보배로 사용했지마는 그게 차차 차차 음녀가 되어 간다 말이오. 차차 차차  음녀가 돼 가.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하나님이 주신 건 줄 알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을 구원 이루는 데에 잘 이용을 하던 자가 그만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거기에 매력을 느껴 가지고서 음녀가 자꾸 되어 간다 말이오. 음녀가  돼 가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시험하십니다.

 시험하시는데 어떻게 시험하시는고 하니 우리의 그 현실이라는 자기 현실이라는  환경을 하나님이 만드실 때에 뭐라고 만드는가? 어떻게 만드는가? 우리 현실이  우리 환경을 만드실 때에 어떻게 만드시느냐?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시험하시느냐 하면은 자기가 받은 그 하나님의 선물이 선물되지 안하고 음녀로  변해져 가면 그게 변동됩니다. 음녀로 변해져 가지 안하면은 그게 변동되지  안합니다. 음녀로 되지 안하고 선물로 되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변동시키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환경을 당신이 요렇게 만들어 가지고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버리지 안하려고 하면 하나님께 내가 속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게 내  생활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해서 그분의 모든 것에게 연결되어서 마치 태 안에  있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그 탯줄에 연결이 돼 가지고서 어머니의 것을 다  흡수하면서 이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의 모든 그  본체적 요소가 아니고 그분의 창조적 요소, 창조적 요소, 모든 시은적 요소를  젖줄기에 연결돼 가지고 그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움직임으로서 이 세상에 그것이 소화가 되어지고 이것이 건강으로서  되어지는 이런 역사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차차 차차 선물이 음녀로  바꾸어지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시험하려고 환경을 이래 만들기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은 내 모든 자본이요. 자본이요, 하나님의 명령은 내가  자유할 수 있는 자유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의 법칙이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내가 받는 그 자본을 받는 말하자면 뭐라고 말할까? 보급선이라. 그렇게 보급해  주는 보급선이라고도 그렇게 표시를 할 수가 있겠고 또 어머니의 그 전체 몸에  있는 그 요소를 젖줄기 그 탯줄을 통해서 어머니의 요소를 다 빨아 당겨  가지고서 아이가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탯줄과 같은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내가 복종하는 것은 내가 성장돼서 성장 활동을 할  때에 그 올바른 발육이 되어 가도록 이 발육이 되어 가도록 활동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런 것인데 이것인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주위와 환경을 변화를  시켜 가지고서 변화시킬 때에는 그 나와의 관련된 사람도 마음이 변해지고,  사람의 마음도 변해지고, 말도 변해지고, 행동도 변해지고 이 모든 것이 다  인간들이 변해지는 것이니까, 이 만물은 변하지 않소. 이 모두 물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물질은 심판을 받지 않는데 물질을  관리하고 있는 물질을 관리하는  (이것을 들어서 자기가 깨달으면 되는데 모르면 헛일이오. 몰라도 달라  들어서야. 몰라도 달라 들어 가지고서 알라고 애를 쓰면 됩니다. 여러분 이거  알면 세상 미혹에 들지 않습니다. 이거 알면 이 세상에 이런 뭐 교파 저런 교파,  이런 진리 저런 진리. 이런 신학 저런 신학 이런 교리 저런 교리, 이런 조직  저런 조직에게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근본에 뚝 들어가 가지고서 그 밑에  근본을 잡았는데 유혹 받을 데가 있습니까? 암만 말해 봤자 따져 들어가면 그  밖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데 이걸 못 알아들으며 헛일이라. 나중에 미혹에 들어서  뭐이 될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렇게 모든 인간의 심리를 하나님께서 변화시킵니다. 인간의 심리를  변화시켜서 이러니까 내 현실의 모든 현실이 바꿔진다 말이오. 현실이  바꿔지니까 어찌 바꾸어지는 줄도 모르는데 바꾸어지니까 바꾸어지는 거기에  자기가 자기 주관에 맞지 안하니까 뭐 상대방을 원망합니다. '내 주일을 못  지키게 만드네, 또 이게 어떻게 하네.' 주일을 못 지키게 만들든지 지키게  만들든지 자기를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게 하든지 그 전부가 다 주님이  주권적으로 섭리해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현실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예수를 못 믿도록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탄압하고  그것도 못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산주의를 누가 만들었으며 공산주의의  역사를 생각 하나 또 마음 하나 활동 하나 그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그  움직임을 뉘가 총 주권해 가지고 하시느냐? 주님이 혼자 주권하셔 가지고 주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고 있는 것은 뭐이냐?  당신의 구속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지 성취의 뜻을 파괴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이런데, 우리는 이 근본에서 떨어져 버리면 그만 사람에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꾸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그 사람이 내가 뭐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한 것처럼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이  날 구원하기 위해서 크게 사랑의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서  믿음만 가지면 모든 게 잘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럴 때에 '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내가 떠나지 않으려고  하면은 내가 이렇게 매력이 있고 편리하고 좋은 거 이 세상 문화 모든 세상  이것을 내놔야 되겠고, 이것을 내놔야 되겠고, 또 이것을 취하려면 하나님과  진리를 내놔야 되겠고 둘을 내놔야 될 때에 그때에 우리가 그것을 영원히 내  것을 삼는 방편도 있고 아름답고 필요 있는 그 모든 세상 문화를 그것을 영원히  내 것을 삼을 수도 있고, 또 그것을 임시 다시 내 것을 삼을 수가 있는데, 임시  내 것을 삼을 수 있는 법칙이 무엇입니까? 임시 내 것을 삼을 수 있는 그 법칙이  무엇입니까? (○○○ 목사님. 되나 안 되나 어디든지 진리와 영감만 자꾸 붙이면  되는가, 안돼. 틀렸어. 그거는 빵점이라 영점이라. 안돼. 그거는. 그 묻는데  답이 정 꺼꾸로의 답이 됐어)  그럴 때에 자기가 임시로 그것을 다시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임시로 받을 수도  있고 영원히 받을 수도 있는데 영원히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사 한번  답해 봐요. ○○조사 아멘, 따라해.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알아야 되지  모르면 뭐합니까? 진리와 영감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을 내가,  영감은 주님이시요 주님을 모시고 내가 진리를 이래 가질라 하니까 그거  포기하게 될 때에 그때에 이제 여러분들이 포기합니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포기하는 것이 승리요, 포기가 십자가의 죽으심이요, 십자가요,  포기하는 것은 승리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의 신앙을 연구해 보면 아브라함은 전부 큰 획기적인 그  시기마다 포기로 승리했고 포기로 수입했지 포기 외에는 수입하는 길이  없었습니다. 포기로 수입했어. 그러다가 나는 주님을 잡고 진리를 잡아서 그  둘을 붙들기 위해서 그 둘 중에 하나라 할 때에 이것을 포기하고 주님과 진리를  받고 나니까 그것이 이제 그로 인해서 없어 버렸습니다. 없어졌으면 영원히 자기  것이 된 것입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된 것입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된 것이요,  영원히 자기 것이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된 것이요.

 그것을 또 지키니까 없어 질 것 없어질 줄 알았는데. 주님을 버리지 안하고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그대로 했는데 그것이 없어지는 것 같더니만 없어지지  안하고 다시 자기 것으로 있다고 하면은 그것은 어떻게 받은 것입니까 어떻게  받은 것입니까? 임시로 받은 거 임시로 받았기 때문에 그것은 앞으로 시험물이  됩니다. 임시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앞으로 선물로 계속할 수도 있고  음녀도 될 수가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제는 음녀로 삼았던 것을 다져서 음녀성을 완전히, 선물을 음녀로 자기가  착각하는 요런 음녀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다시 수술하기 위해서 그런 한  단계를 주시기 때문에, 그때에 이를 잡고 그를 포기할 때에, 그때 이를 잡고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 이를 잡고 포기할 때에 마음은 시름이 있고  고민이 있고 그 사람의 신앙으로서는 최고 절정을 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포기할 수 없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든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그럴 때 이래 단속하다가 이제 주님과 진리를 잡고 그것을  포기하는 거기에서 음녀성은 완전히 수술이 돼서 음녀성은 완전히 변동돼 가지고  하나님의 선물성으로 완전히 바꾸어지고 마는 것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셔 가지고 세밀히 간섭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폭 넓은 사랑 이 참 완전한 사랑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선물도 되고 음녀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음녀라고 말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그 모든 편리함에 그 편리함에,  아름다움 그 모든 가치성 말이오. 이십 세기 문화의 가치, 또 그 아름다움 그  편리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그 보배성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주관이 내 주관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영원한 내 구원을  이루라고 영원을 이루는 이 준비 기간에 이 준비하는데 편리하게 쓰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는 요것을 깨닫고 고걸 사용하되 나는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사용하는 지시를 주시는 대로 '주님이여  나에게 이렇게 선물을 주셨는데 나를 당장에 이런 높은 자리에 쑥 올렸으니까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장에 많은 재벌 받았으니까 또 선물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할 수 있는 그 높은 자리를 다 받았으니까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이 받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사용하는데 하나 하나 좀 힘이 들고 수고롭지마는 하나 하나 이것을 사용하는  데에 철두철미하게 지도를 해 주십시오. 내게 주신 것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  남용할지 이거 썩혀서 내버릴지 그걸 내가 모르기 때문에 이걸 바로 사용하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하고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용하게 하는  대로 당신의 뜻을 따라서 지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용하면 그 선물성이 변해지지  않습니다.

 선물성이 변해지지 않는데, 그 선물성이 음녀성으로 선물성이 이 창기성으로 이  음녀성으로 변해지는 것은 변해지는 것은 그것들에게 있는 것입니까, 내 주관에  있는 것입니까? 자, 그것들이 그것들의 그 변해지는 것은 그것들이 변해지는  것이니 변해지는 것이 그것들에게 있어서 음녀성 음녀도 되고 선물도 되고  그것들이 변해 그런 것인지 내 주관이 변해 그래 된 것인지 만일 그것들이  변해서 그렇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것들은 변하지 않는데 내 주관이 변해서 그것이 변해졌다, 내 주관이라는  것은 내 신앙이라 말입니다. 내 신앙이 변해서 변해졌다 그렇게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저 뒤에는 손 안드는 데요. 안 믿습니까? 여러분들 그래 믿지  않소. 안 믿을려면 안 믿으십시오. 안 믿을려면 믿지 마. 그렇게 몰라 뭐. 왜  하나님 앞에 그 귀중한 이를 온 세상을 이기는 것 인데 손 한번 들면 가치가  없어? 손을 천번 만번을 들고도 남아. 손을 놓으십시오.) 요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고 편리성 매력성 고 가치성 고 필요성 요것에 현혹되어서 요것에 미혹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할 것,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그것도 할 수 가 있다,  하나님만이 그것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거 그것도 주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주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갖다 주는 거 저 사람에게 주권이 있다,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는 게 아니라, 이라기 때문에 성도들이 신앙을 못 지킨다 그 말이오.

 뭐 지금 평안 무사시에 뭣 때문에 신앙을 못 지킵니까? 못 지키기를 평안  무사시에 뭐 어려움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어 봤자 제가 직장 떨어지면 다 못  먹겠소 . 직장 떨어지면 소고기 먹던 사람이 나물 먹고 살지 나물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다니엘은 나물만 먹어도 아주 그 사람은 윤택하고서 그 사람  아름다웠다 그 말이오, 뭣에 매여 가지고서 종노릇을 할 것이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것이 하나님에게 그 주권성을 그에게 돌리는 그것이 벌써 음녀요  음녀화 됐다 말이오. 음녀가 되고 선물이 되지 안했어. 그거 선물이면 내가 가진  소유 아닙니까? 어쩌든지 이 세상은 무슨 '바울도 게바도 아볼로도' 하는 그말은  그 바울 게바 아볼로로 말하면 그분들은 다 사도들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이라.

그분들도 내가 관계됐을 때에는 가서 그분을 내가 내게 구원에 필요 있게  이용한다 그 말이오. 백목사도 여러분들이 이용을 하라 그 말이오. 이용하지  나에게 이용을 당하지 말라 그 말이오. 이용 하라 그 말이오.

 또 피차 그 종노릇하라 그말은 피차에 사용되라 그 말이오. 나는 저 사람  구원에 사용되고 저 사람은 내 구원에 사용되라는 그말이 그거 종되라 말  아닙니다. 사용되는 그 봉사성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그거는 그 신앙의 생명의  본질성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그 매력되는 그것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  좋아하는 것을 그만 그것을 옮겨서 좋아하고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그만 그걸  바라보고 또 하나님에게 그 감사성을 느끼는 것은 하, 이거 참 나에게 필요하고  아주 요긴하다, 그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 숭배성 감사성 또 가치성 의존성 또  복종성 또 모든 소망성 애착성 필요성 이것을 다 옮겨서 이것들에게 옮겨  붙이니까 이것이 그의 하나님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게 뭣 됩니까? 그  뭐입니까? 우상. 우상됐다 말이오. 우상.

 또 그렇게 그걸 거기에 막 발려서 이렇게 하지는 안해도 고 매력에, 제가  소유하면서고 매력에 끌려 가지고서 거기에 애정과 모든 욕망을 정성을 그리  쏟아 붙인 고것은 뭐입니까? 음녀.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에 그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그 음녀가  어떤 심판을 받았느냐 하면 그 음녀가 여기에 보면 열 뿔과, 짐승이 열 뿔과  짐승이 열 뿔과, 짐승이라 말은 짐승은 마귀가 이용하고 있는 마귀가 주권하고  있는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 열 뿔은 세상에 있는 힘을 다 가리켜 말합니다. 열 뿔은  세상에 있는 힘을 다 가리켜 말해요. 무슨 힘이든지 무슨 힘이든지 뭐 한 사람  힘이나 두 사람 힘이나 단체 힘이나 나라 힘이나 사회 힘이나 국가 힘이나 모든  과학의 힘이나 문화의 힘이나 모든 전인류의 힘이나 모든 물질의 힘이나 전 힘을  가리켜서 열 뿔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은 그 전부 총칭을 말해 표시해서  열이라 말했습니다.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이러니까 음녀는 망한다 그말이요.

음녀의 받을 심판이 뭐이냐? 망한다 그 말이오. 아무리 매력을 지겨도 그것  따라서 그것 따라서 이것만 하면 살겠다. 야. 이 아주 부강한 강대국 이거.

강대국에 이것만 하면 살겠다. 강대국 그것도 망한다. 이렇게 세계의 문화적으로  제 일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위 차지한 그것도 망한다 요 음녀의 받을 심판이  뭐이냐? 망한다는 것 요것이 첫째로 망한다 이렇게 말했어. 망한다 요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아무리 좋아도 망한다 음녀는 망한다.

 네가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삼아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는데에 이용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뒀다 그게 없어지지 안해. 다니엘이 그 높은 지위를 가졌던  그 지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지위는 하늘나라의 영원에 가 가지고도 그대로  있습니다. 고 선물은 망하지 않습니다. 왜 망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사용하고 음녀로 사용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선물로 가졌는데 왜 그 선물이 아무 죄를 짓지 안하고 저주받지 않는데 와  망했습니까? 망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틀렸어. 하나님의 심판은 그걸 망칠 권리가  없어요. 보호하면 했지. 망하게 하고.

 그런고로, 우리가 이 가정에 가 가지고 와서 보니까 아주 좋은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이렇게 갖다 주셨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이 선물을 주셨습니다. 해도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의 그 사모와 애정과 애착을 그것에 뺏겨 버리고 하나님은  지금 뺏기고 난 다음에, 마치 말하면 아내 뺏긴 본 남편이 띵 해 가지고 뿡 해  가지고 지금 막 화가 돋은 것처럼 이렇게 뺏기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식 잃은  자식 잃은 부모처럼 이렇게 그저 뿡 해 가지고서 섭섭해 가지고 있는 것인지, 고  선물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 것인지 권찰들이면 그런 눈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눈이 있어야 돼요. 교역자라면 그런 눈이 있어야 돼요.

보면 봅니다. 환하게 보입니다.

 '이걸 줘서 주님이여 그 선물 하나 줘서 그들이 참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그걸 하나님 섬기는데 아주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무것이는 보니까 그게  거기에 미혹을 받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보면 잘 볼 수 있어 그 텔레비전을 떡  열어 보면 사람들 보면 그 텔레비전  참 묘하게 났습니다. 텔레비전이 묘하게  놨는데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 음녀의 미혹에 들지 안하고 그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물을 이용한다면 상당히 신앙이 높은 사람입니다. 상당히 신앙이  높은 사람이오. 그 텔레비전에서 아주 은혜를 많이 받고 텔레비전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많이 있어요. 감사할 일 이 많이 생겨 나와요.

 텔레비전 볼 때에, 그 텔레비전 볼 때에 모두 다 한 말로 사망의 수평선 아래  사망의 수평선 아래에서 이렇게 장난하고 있을 때에 마음에 참 처음에는 불 때에  우습게 보이지만 좀 있다 보면 장 보니까 애처롭고 마음에 분개한 마음이 난다  그 말이오. 이 사람들이 요렇게 사람을 미혹해 가지고 미혹에 빠지는구나 요  하나님이 주신 다 선물은 선물인데 하나님이 인간의 머리를 발달시켜 가지고서  고걸 다 연구한 것도 하나님이 연구하고 혼자 연구해 모든 발명가는 혼자요.

 여러분들 주님 혼자가 발명가지 아무 발명가 하나도 없소. 발명가는 그 분 혼자  발명가라. 발명가는 그분이 감추어 놨던 것을 보여 주는 계시라 그 말이오.

그것이 다 자연 계시입니다. 없는 걸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던  것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둘씩 내 보여 주는 것이라 보여 주는 것.

 요새 뭐 위성 시대니 뭐이니 하는 것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지은 것을 하나씩  둘씩 내 보여 주면 하나 보여 주면 막 야단을 지기는데, 그 야단을 지기면  신앙은 있다가서 '어, 그래 기뻐해라 귀하지 않나 선물이 귀하지 않나? 그거  아버지가 주신 것을 알아야 된다 그것이 장차 영원히 네 것 된다. 그게 또  내것이다.' 그만 거기에 가서는 뚝 떨어집니다. 못 따라가 그만 거기에 가서는  아버지의 선물이다, 아버지가 주신 것이다, 그거 뭐하라고 주신 것이냐 하면  거기에서 모든 것을 알라고.

 텔레비전에 있는 것같이 그렇게 거기에 없는 것을 저게까지 끌어오는데 그  하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모든 만 인간에게 들지 못했느냐? 요새 미국  어디에선가 로스엔젤레스라 하든가 올림픽하는데 그게 여기 텔레비전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있는 그 비밀을 광고를 못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말하기를 간단하게 말해서 모든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다 드러난다 이렇게  말했어요.

 거기에서 아, 이러니 이거 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만든 것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인데 그분이 한 사람 머리에 뭐 컴퓨터를 천억을 만들었던가 한 사람에게  천억이 들어 있대요. 그렇게 아마 천억이 들었다는 거 그거 나도 이해가 돼.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천억도 더 기억할는지 몰라.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만도, 이 도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적어요. 도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적은 것이 책 그거 하나에 말하려고 하면은 복숭아 하나를 말할라  하면 책이 적어도 얼마나 해서 복숭 박사도 있을 것이라, 사과 박사도 있을  것이고, 거기에 대한 책이 얼마나 됩니까? 그만 시골서는 척 보면 사과보고  복숭아보고 다 봤어. 이러니까 그 삼라만상에 나 굉장히 많은 것이 그것 다  머리에 다 기억돼 있어  그러니까, 그거 다 기억했으니까 그거 그 뭐 억만 가지고 있다면 억이 넘으면  그 컴퓨터가 억이 있으면 그 기억을 못 할거라. 그 천억 가지를 기억할라 하면은  천억 컴퓨터가 있어야 될 것이라 그 말이오.

 이렇게 모든 이것을 내가 어떻게 하면 음녀가 되며 어떻게 하면 선물이  되어지는가 요래서 요걸 기억해서 그것을 음녀로 바꾸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뭐 필요해서 달라고 하는 것은 참 별로  없어요. 주시는 것은 나도 모르게 그것이 와 버렸어. 뜻대로 사는데 그게 와졌다  말이오. 와졌으니까 언제든지 성도들은 그것에게 미혹받지 안하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나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을 노엽게 하지 안하고 나에게  필요있게 쓰라고 필요있게 쓰라고 일꾼 하나 보냈더니마는 필요 있게 쓰라고  필요하거든 심방하는 데도 타고 가고 이렇게 하라고서 그 차를 한 데 사줬다가서  또 너무 피곤하다고 운전기사를 하나 대 줬다 말이오.

 운전기사 하나를 대 줘 가지고 필요해서 거석했더니 아 필요 있으라고  운전기사를 대 주니까 그 아내가 기사가 운전기사가 운전해 가지고 가니까 뒤에  타고 가면서 자기 남편에게 아이구 지금 이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모든 것을  구비하게 선물을 주니까 이거 남편에게 나는 할 일이 뭐인가? 내가 남편에 대한  뭐이든지 도움이 돼야 될 터인데 이분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데 나는 도움이 될  거 뭐인가? 이래 가지고서 그 운전기사를 주기 전보다 운전기사 하나 대  주더니마는 그 다음에 아내가 남편에게 대해서 안 하던 일을 하나 한다 그  말이오.

 안 하던 일을 하니까 가만히 보니 안 하던 일을 하니 '여보, 당신이 지금 내게  그 전에 이런 일은 안했는데 이런 수고를 안 했는데 뭐 이런 수고를 합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미안합니다. 아, 당신은 내게 대해서, 내가 오늘 차를 타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게 필요하는 것은 운전기사도 대가지고 나를 돕는다고  이렇는데 나는 당신에게 돕는 일을 별로 하지 못해서 마음에 가책이 돼서 지금  내가 지금까지 하지 못하던 거 하나 깨달아 가지고서 지금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 남편이 속으로 좋다 말이오. 하, 이거 운전기사를 하나 대  줬더니마는 나를 섬기는 일이 점점 성장 되고 점점 확대해 나가는구나 이러면 그  운전기사에게 월급을 예를 들어 만원 주던 것을 만 천 원이 나 이래 주면서 '이  천 원 더 주는 것은 사모님이 뭐이든지 말하는 것을 어쨌든지 그저 도와서  뭐이든지 예예 충성을 하고서 그래 어쩌든지 편리하도록 조금도 불편 없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예, 만 원 더 주니까 이거 일 군이 좋아서 천 원을 하나 천  원을 하나 월급을 더 주니까 좋아서 굽신거려 더 한다 말이오. 또 그 뒤에  보니까 더 잘하거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운전기사가 자기 아내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 좀 그렇게  성심성의가 없다 말이오. 그러면 또 이래 돈을 좀 더 준다 말이오. 더 주니까 또  더 하거든. 나중에 자꾸 더 줘도 더 하거든. 아, 이 운전기사 갈아야 되겠다. 안  됐지 갈아야 되지. 예, 아마 재미가 없으니 갈아야 되겠어. 그만 갈아 버립니다.

갈라 하니까 또 막 떨어질까 싶어서 이래 자꾸 그라면 더 줄 줄 알았는데 이것  보니까 이제는 줄 때까지 줬다가 안 되니까 막 운전기사 면직이 되겠다. 말이오.

면직이 될 판이니까 죽자살자하고 막 아내에게 달라붙어  아, 이랬는데 이 아내에게 이걸 줬더니마는 이 아내가. 가만히 보니까 남편이  가만히 보니 남편에게 대한 관심이 차차 차차 좀 박약해집니다. 남편에게 관심이  좀 흐려져요. 남편에게 대해 관심이 흐려져. 저 사람이 그렇다고는 내가 생각  안하는데 저 관심이 어디로 갈고 이래 가만히 보니까 운전기사에게 관심이 간다  그 말이오. 운전기사에게 관심이 가. 보니 관심이 가서 어북 관심이 가고 보니까  서로 뭐 선은 안 넘었지마는 정이통하고 이래 있으니까 그 남편이 어떻겠습니까?  남편이 운전기사를 그대로 두겠소, 없애겠소? 자, 가만히 있어. 여기 여반에  한번 물어 봅시다. 여반에 누구한테 물어 볼까 누구한테 물어 볼까. 누구든지 자  이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 봐야지. (한번 대답해봐 요 사람 앞에 있는 사람 대답  해 봐. 요 앞에 요 사람 요거 요거 요 사람 말이요. 자기 자기 대답해 봐 그래.)  없애겠어? 와 없애? 자꾸 더 잘하라고 내버려 두지 그 운전기사가 없앨 것  아닙니까? 없애요.

 이래 가지고 기독자들이 다 뺏기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뺏기는 것이 달리  뺏기는 것. 아니라 이래 하다가 뺏기오. 하나님이 선물로 줬는데 그것 이 간부가  되면 어찌 되겠소 ? 어? 하나님이 선물로 줬는데 그게 그 아들에게 그 유업으로  줬는데 창기가 되면 어찌 됩니까? 음녀가 되면 어찌 됩니까?  저는 열 세 살부터 거기에 대해서 아주 깊이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 그  백씨가 여기에서는 유력하고 좀 그런 사람인데 나중에는 회개하고 했지마는,  처음에 젊을 때에 내 열 세 살 먹을 때에 기생에게 꼬여 가지고서 꼬여 가지고서  뭐 그라는데 그 부모들이 고통하는 걸 봤어요. 그래 그 아들이니까 다른 돈 많은  사람한테 가 가지고 돈을 한번 보니까 궤짝에 돈이 이만치 수북해요. 이런데  그걸 그 돈을 그걸 보고서 내가 아버지에게 가서 부모에게 가서 말을 하니까  '내버려 둬라,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둬 두라.' 가만히 둬 두고 말로 타이르기만  해요. 타이르기만 하고 가만히 둬 두고 이래 해도 그저 회개하도록만 하고  나무래는 꼴 못 봤어. 나무래는 꼴 못 보고, 또 그라고 기생에게 가 가지고 빚진  걸 아버지가 다니면서 갚아 줘요.

 갚아 주면서 갚아 주는데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

그랬는데 와서 노래 부르기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 세상은 부모도 쓸 데 없고  지금 그런 노래 있는가 몰라-부모도 쓸데없고, 뭣도 쓸데없고 그 애인밖에  없다는 기생밖에 없다는 그 노래를 불러요. 기생한테 배워 가지고 그 노래를  불러요. 그 미혹이 되면 그래요. 그 사람이 그만 끌리게 되면 그래요.

 그래서 이 창기에게 끌리면 참 이것은 인간이 완전히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열세 살 먹어서 그 빚을 갚으러 내가 다녔고, 거기에 가서 한  푼이라도 빚을 갚으면 날 보내요.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가서 그 빚을 갚아라.'  거기에 갈 때에 부애가 나 가지고 안 갚을라고 이래도 꼭 갚으래서 갚고  그랬는데 그래서 그만 열여섯 살 먹어서 여기 떠나서 일본으로 가 버렸어요. 뭐  살림은 다 그래 패가가 다 되고 하니까  이 음녀가 선물이 음녀가 되고 음녀가 선물되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요 말 알  것입니다. 요 음녀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에게 할 일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께 할고 정성과 고 마음과 고 시간과 고 힘 고것을 요 음녀의  매력에 미혹돼 가지고서 기울이면 고것이 음녀가 돼지고 맙니다. 또 고것이  음녀만 될 뿐만 아니라 그게 또 간부도 됩니다. 요 하나님에게 향해서 아내가  하나님에게 할 수 있는 이것을 요걸 요 세상의 요 매력에 유리한 문화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붙여 버리면 고것이 간부가 됩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간부도 되고 음녀도 되고, 또 하나님의 선물도 된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세상을 간부라, 하나님을 남편이라 그렇게 말한 것은 첫째가  첫째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본체적으로는 일체가 안 됩니다. 본체적으로는 일체가  안 되지마는 그 부부라는 젓은 첫째가 뭐이냐 하면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일반적 그 부부의 제도를 우리에게 소개해서 가르쳐 주시기를 한 몸이라.

에베소서 5장 30절에 우리는 그의 몸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우리는 그의  지체임이니라 그의 지체라 말은 '그의' 하는 누구를 말합니까? 어? 예수님의  지체라 말입니다. 예수님의 지체라 말은 예수님의 한 몸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고다음에 부부에 대해서 하기를 '이 비밀이 크도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해석을 해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한 육체가  된다는 말은 이것은 둘이 합해서 한 사람을 낳는다 그말 아닙니다. 그말이  아니오. 그 말이 아니고 두 사람은 이제 한 육체의 구원을 이룬다 그 말이오. 한  육체의 구원 두 사람이 한 구원 이룬다. 이 가정 구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구원 이룬다 자기가 암만 구원을 잘 이루어도 그 한 사람이 이루지  못하면 그 구원은 헛일입니다. 그만치 반쪼가리 구원이오.

 그러기 때문에, 부부는 두 사람이 한 육체가 된다, 한 육체가 된다 말은 뭐  부부 동침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 앞에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둘이 아니라 하나라 둘이 아니라 하나라.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인 무슨 그  동침이나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렇게 한 몸이라 그  말이오. 그걸 지금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한 육체라는 것은 이 부부가 되면 한  구원이라. 그러기 때문에 가정 구원은 한 구원입니다. 우리가 개인 구원을  가졌다가 또 가정 구원을 가졌다가 사회 구원을 가지고 이랍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은 개인 구원도 있고 가정 구원도 있고 사회 구원도 있기  때문에 그 개인 구원은 잘 이루었지마는 그 사람이 사회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있고,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잘 이루었지마는 가정 구원은 또  하나도 못 이루는 사람이 있다 말이오.

 어쨌든지 우리는 이런 지혜를 쓰든지 저런 지혜를 쓰든지 어쨌든지 그 개인  구원이 잘 이루어져야 되고 가정 구원이 잘 이루어져서 가정 구원이 잘  이루어져서 자기의 가족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죽든지 살든지 뭐라고 뭐 착각을  하든지 오해를 하든지 어떻게 했든지 주님과 주의 복음을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 기울일 수 있는 고 사람을 만들면 지혜입니다. 만들면, 그것이  가정 구원이 바로 된 것입니다. 나중에 가 보니까 가보니까 딱 들어붙어 잘  됐더라 그거요.

 그래서 우리의 인간 남여 부부의 이 비밀은 이 모형적 부부요 모형적 비밀이요.

또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이 모형으로 된 그 원형 그 원형적 부부요 원형적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하나 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첫째는 하나 되는 것  우리가 본체적으로는 하나 되지 안하지마는 우리의 활동적으로 하나입니다. 또  희로애락적으로 하나입니다. 모든 소유권적으로 하나입니다. 모든 책임적으로  하나입니다. 모든 부강적으로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여인이 이제 아주 그 회사가 여러 천 명이 있는 직공이 있는  그 회사인데 회사의 제일 밑의 말단에 있는 이거 직공인데 그 회사 사장이  아직까지 미혼 총각이라, 총각인데 떡, 말단 직공으로 있는 그 처녀를 보고서 이  처녀가 제일 쓸 만 하고 아무래도 내 아내를 삼아야 되겠다. 하고서 떡 청혼해  결혼을 떡 했다. 결혼식 떡 하고 나서 그 이튿날 떡 오더니마는 아, 이 여자가  이 건방지게 오더마는 그만 이 모든 몇 천 명 되는 직원들을 자기 밑에 있는  직원으로 생각하고서 이거 저것 이거 보고서 '이거 이라면 안돼, 이래라  저래라.' 아주 이러니까 금방 밑에 종지 종질하던 직원이 그렇게 당장에 사장이  되어 날뛰니까 눈어리 시다 말이요. 눈어리 셔 가지고서 삐쭉거리니까 아, 그만  당장 그 이튿날부터 너는 그만 둬라. 그만 쫓아 보내 버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당장에 그 사장의 권리와 꼭 같은 동등 권리 꼭 같은 권리 한 권리라. 이러기  때문에 한 몸이기 때문에 이것이 부부 유별이라.

 인간이 아무리 친밀해도 부부의 가진 그 밀접이란 그것은 특별히 유별하기  때문에 인인 관계에서 가지지 못하는 그런 유별이 있다 하는 것을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을 간부로 하고 주님을 본부로 이렇게 말씀한 것은 이제 그것이  성경에서는 보면 전부 주님과 우리와의 어떤 부부인가? 한 몸이라. 그분은  머리고 우리는 그의 몸이라, 그의 지체라, 또 그러면 하나라 하나라는 것 그분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간부된다는 말은 이 세상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주님과  나와의 하나 되는, 이 작용이 하나 되는, 이 구원 역사가 이 세상에서 한 현실도  다 소용 없는 현실이 없고 전부 현실 현실 이걸 다 만들어 가지고서 이제 주님과  나와의 일체가 되는 부부 일체가 되는 일체인 이것을 만들은 이 일을 다 손해  본다. 그 면을 가리켜서 이제 간부라, 본부라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첫째는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 되는 것, 주님과 우리악의 하나 되는 것 그 하나  되는 것도 그러면 주님의 지식과 내 지식이 하나 되고 주님의 지혜와 내 지혜가  하나되고 주님의 모든 사랑과 내 사랑이 하나 되고 주님의 성품과 내 성품이  하나 되고 본체만 하나 안 되지 본체만 하나가 안 되지 본체 외에 활동적인  작용적인 것은 전부 피조물로서 내가 하나 될 수 있는 거는 전부 하나 다 된다  말이오.

 피조물로서 하나 될 수 있는 면은 다 돼. 피조물로서 하나 되는 그 피조물로서  하나 될 수 없는 고차원의 그거는 내가 하나 될래야 하나 될 수 없는 것이지마는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다 하나 된다. 이 면을 가리켜서 부부로 말한 것입니다.

그 원형이요 우리 세상 부부는 그걸 알리기 위해서 하나 자연 계시로 부부  제도를 하나님께서 알리신 것은 그 하나님과 우리와의 부부된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자연 계시로 부부 제도를 하나님께서 내셨다 그거요. 그러면 이거는  원형을 나타내는 모형이라.

 저도 차차 차차 처음에는 이 세상 부부가 원형인 줄 알았고 이와 같은 것이라  그렇게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모형적 부부로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하나  비유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알았는데 그거 아니야 지금은 차차 살아갈수록  주님과 우리와는 이 실상의 부부요 이 세상 부부는 아무리 정상적인 올바른  부부. 이십 세기의 부부는 이거는 가짜 부부야. 가짜부부 많아. 이거는 뭐 하나  상징할 수도 있어. 정상적인 부부라도 이거는 하나 모형이요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그 실상의 원형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는 하나 되는 것이오. 첫째는 하나되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 되는  것을 말하려면 그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첫째는 하나 되는 것이요 하나 되는  것인데. 이 하나되는 것을 세상으로 인해서 다 받지 못하고 하나 될 수 있는 거  하나 되는 것을 하나 되지 못 한다. 하나 되는 것을 이 세상 간부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하나 되지 못한다, 이 큰 손해를 본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부부는 이 서로 상호간에 가지고 있는 소유 이 소유가 하나  된다, 소유가 하나 된다. 주님의 모든 것도 내 것 되고 내 모든 것도 주님의 것  되고 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되니까 주님은 대속할 수밖에 없다. 내 모든  것은 당신에게 해 봤자 짐이나 되고 죽구로 만들고 애나 먹일 것뿐이지 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돼 봤자 좋을 거는 당신의 도움될 거는 하나도 없어. 당신이  희생할 것뿐이라 그 말이오. 내 모든 것은 더러운 것이요 당신의 모든 것은 좋은  것이라. 모든 좋은 것은 다 내 것 되고 내 모든 더러운 것은 다 당신의 것이  되어서 이제 소유가 하나 된다 그 말이오 소유가 하나 된다.

 또, 그 다음에는 언제든지 동거동락 동고한다 거처를 같이 한다 거처를 같이  한다.

 그분과 우리와의 모든 것을 함께 있고 함께 있고 또 함께 거처하고 또 모든  희로애락이 하나 된다. 그분과의 희로애락이 하나된다. 그 분이 소원하는 거  나도 소원하고 그분의 욕심이 내 욕심이요 내 욕심이 그분의 욕심이라. 이래서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그 말은 네 소원의 의사가 내 의사와 꼭 같기 때문에 네  의사는 내 의사이기 때문에 내 의사는 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네 의사가 다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 하나되는 거, 하나되는 거,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본체는 아니지마는 우리의 본체와 당신이 창조해 나와 가지고 창조로 내가  생겨졌기 때문에 당신의 그 창조와 내 본체와 하나되는 거 나와 하나되는 거  당신의 활동적 당신과 역사적 당신과 나와의 하나되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소유가 하나 되는 것, 또 모든 의무와 책임이 하나 되는 것, 희로애락이 하나  되는 것, 또 거처가 하나 되는 것, 모든 영광이 하나 되는 것. 가치가 하나 되는  것, 그분의 가치가 올라가면 나의 그 가치가 올라가집니다. 그렇지 안 해요?  공연히 남편이 대통령이니까 영부인이라 해 가지고 아내는 뭐 아무것도  아니면서 남편이 대통령되면 아내는 그만 대통령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권리를 가지고 있어. 그러다가 남편이 죽어 버리든지 그만 대통령 떨어져  내려오니까 그만 그 권리가 하나도 없어져 버려요.

 그 여자라는 것은 그래서 그 말도 있어요. 여자의 팔자는 버드나무 팔자라 그  말이오. 버드나무 팔자라 그말은 또 도시 사람은. 그말 암만 해석 해 줘 봤자  그말 몰라요. 버드나무 팔자라 말은 도시 사람은 암만 해야 모릅니다. 또 그  독서를 암만 해도 잘 몰라요. 또 미국도 몰라요. 저 심신 산골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산골에 있는 사람 냇가에 가면은 전부 버드나무가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려 가지고서 그 걸린 지가 십년이 돼도 요만치도 자라지 못해요.

생명만 붙어 있어요, 항상 물 내려가는데 그래 있으니 얼었다가 또 이제  얼었다가 또 그래도 고생해 살아나고 이러니까 십 년이 지나도 그게 둥치가  요만밖에 안돼요. 그게 버드나무라. 물에 떠내려가다가 걸리기를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려 놓으니까 클 수가 있습니까? 이렇지마는 이놈이 걸려 가다가 저  산태 난데 떡 묻혀 놓으면 일 년이면 이만치 커. 아, 십 년이면 이만치 이렇게  커 버려요. 버드나무 팔 자라. 잘 걸리면 잘 걸리면 굉장하고 못 걸리면 그렇다  그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여자들이 허영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 남자들은  허영과 허영심이 적어. 결혼을 말해 보면 여자는 허영심이 있어. 보면 그것이 십  원짜리의 아내가 될 사람이 억만 원짜리 아내가 되려고 또 욕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걸리면 되는 거라, 그만 거기에 걸리면 돼 버리기 때문에 그거 가지는  것이 정당하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어쨌든지 여 처녀들은 어리석지 말아요. 나한테 지혜를 배워요. 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인데 처녀들은 어떤 결혼이든지 말하거든 배짱만 내요. 자꾸  뒤로 빼고 저 배짱만 내요. 배짱만 내도 주님이 배짱 내는 것은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 배짱 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예정하신 부부가 있기 때문에 예정한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지 내가 교만해 그런 것 아닙니다.

 '어쩌든지 예정이면 제까짓게 암만 안 한다 해도 예정이면 기어코 내게 따라  붙일 터이니까 내가 뭐 저자세로 해 가지고서 평생 종질할 것이 뭐 있습니까?  내가 고자세로 쭉쭉 빼 가지고서 막 그저 뭐 굽신거리지 말고 달라붙어 죽겠다고  달라붙어야 그때 결혼하지.' 그래 좀 고자세로 좀 날뛰라 그 말이오. 고자세로  날뛰어요.

 고자세로 날뛰되 나는 이분이 좋다, 그렇게 인본적인 고자세로 날뛰면 하나님이  미워하시오. 신본적인 고자세로 날뛰면 좋은 데 가게 됩니다. 공연히 그래  가지고 어디 요새 세상에는 개방주의로 길러 가지고서 연애를 해야 시집을 잘  간다. 연애해야, 그 사람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세상을 경험이 없는 사람.

연애해 가지고서 부부돼서 이혼 안 하는 사람이 별로이 없고 또 연애해 가지고서  결혼되는 것이 없습니다. 첫째 연애는 다 몸만 더럽히고 사람만 더럽혔지  연애해도 결혼 안 됩니다. 나중에 그라고 난 다음에 외나 결혼은 그 뒤에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만 더럽혔지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러니까, 연애 결혼하지 말아라, 그저 중매 결혼해야 하는 그것이 중매  결혼하면서도 암만 결혼해 봤자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되니까 어떤 사람 내가  중매를 해 봤는데 이거는 아주 팔품짜리를 대 주어도 '예, 저는 좋습니다.' 좋다  했는데 그 남자하고 하면은 참 똥덩이 하고 금덩이 하고 만들기 때문에 남자는  똥덩이인데 이 처녀는 금덩이인데 그리 결혼을 한다 해도 '예. 나는 좋습니다.'  나중에 보면 안돼. 그 결혼이 안돼요. 아무리 좋은 여자가 나쁜 남자한테 할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뒵니다.

 이러니까, 속으로 기도해요. 하나님의 뜻대로, 뭐 내가 뭐인지 내가  선택하겠습니까? 당신이 예정했기 때문에 당신의 정한대로 내가 가는 것이지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작용을 내 독단적인 그 주관적인 행동을 안 하려고 합니다.

모두 다 중매하니까 '나는 좋습니다. 그런데 뜻이 아니거든 다 안 되게 하시고  뜻이거든 되게 하시옵소서.' 요 기도 하나로 다 일 간추려 버렸어. 이러니까 뭐  알아보려고 애쓰지 안 해. 다 갖추어 가지고 있어. 그래 가지고 이 사람도  말하면 좋다, 저 사람 말해도 좋다, 그거는 아무 데도 말하면 좋다 하네. 그  사람 속에 배짱이 있어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정한 부부 좋은 부부에게  결혼을 했어요. 앞으로 목사 될 거야.

 이렇게 우리가 요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주님과 나와의 이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결혼이 이루어지는 요 현실인데 요 현실을 간부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서 이제 주님과 나와의 이루어진 것도 그만 파괴를 시키고 앞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 큰 손해를 우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세상은 간부. 또 세상은 선물. 세상을 선물로 사용하면은 점점 그것이 많아지고  커지겠습니까. 간부로 사용하면은 커지고 많아지겠습니까? 자, 한번 대답해  봐요. 저 기둥에 기대앉은 저 선생님, 어떤 선생님이야 한번 대답해봐. 그  간부로 사용해야 그게 점점 많아지고 커질까. 선물로 사용해야 많아질까? 그래  선물로 사용하면 주님이 자꾸 많이 주시지. 자꾸 많이 주시요. 간부로 사용하면  그 주님이 전능자인데 그걸 깨트려서 없애 버립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다 선물로 주신 것을 간부 삼다가 다 뺏긴  사람. 하나님이 선물로 귀한 거 주신 것을 다 음녀 삼아 가지고 다 뺏긴 사람,  그래 가지고 뺏긴 사람이오. 예수 믿어 천한 사람 다 그래 뺏긴 사람이요, 그래  천해진 사람이라, 그래 가난해진 사람들이오.

 우리가,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성경에 간부로도 이렇게 호세아서에는  말씀하셨고, 또 음녀로도 또 이래 말씀하셨고, 이 세상은 음녀냐 간부냐  하나님의 선물이냐 요 세 가지로서 우리가 상대하고 판정해야 되니까 요것을  지난밤에도 작정했는데 오늘 아침에 요것을 다시한번 굳게 한번 작정을 합시다.

 이 세상은 내가 간부로 내가 모시고 있느냐, 또 이 음녀로 내가 애착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내가 이것을 상대하고 있느냐?  그러면 내게 있는 이 세상은 세상이 모든 아름다운 이십 세기의 문화의 매력은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간부가 되어 있느냐 음녀가 되어 있느냐. 선물이 되어  있느냐? 이걸 가만히 눈을 뜨고 생각하면은 하루도 여러 번입니다.

 이래서, 주여 주님은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내가 이것을 이 음녀의 미혹에  내가 빠졌습니다. 음녀의 미혹에 빠졌다고 제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뭐 징계가 올  필요가 없어. 음녀의 미혹에 빠졌습니다. 아 내가 이거 간부적인 이 상대로 내가  상대했습니다. 그 육체의 지조를 판 것보다도 신앙의 지조가 변해진 것은  하나님에게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이  의지해야 될 것을 그거 의지했다는 것이 어떻게 더러운지 어떻게 더럽고 추잡한  일인지, 주님 앞에 그만 낯을 들 수 없는 이 추잡하고 더럽고 어려워서 이렇게  참 간부로 더불어 이렇게 뭐 연애를 하고 그 관계는 안 해도 연애만 해도 그  생각만 가져도 더러워서 그 어려움을 느끼는 고 느낌의 강함이 주님 앞에서는  안면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간부로 음녀로 하나님의 선물로 내가 어떤  것으로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살펴서 뭐 선물로 가졌다고 그게 선물이  돼집니까? 이 시간에 선물로 가졌다가 이 시간에 음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  시간에 선물로 가졌던 것이 이 시간에 간부 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요 면에도 매일 생활에 검토를 해야  됩니다. 해서 고것을 바로 수정해서 가지는 데에 가질라 하면은 힘이 들어요.

그놈 그 음녀 그걸 뗄라 하면은 그 음녀가 들어붙는 것은 요새 뭐 무슨 고무풀이  제일 질긴가, 고무풀이 질깁니까, 본드가 제일 질깁니까? 본드가 잘 붙어.

세상을 음녀로 삼고 있는 사람은 그게 들어붙기를 본드보다 이상 들어붙습니다.

안 떨어져. 이제는 암만 뗄래야 암만 뗄레야 안 떨어져. 안 떨어지니까 그렇게  안 떨어지는 줄 알고 살아야 되지 암만 뗄라 해 봤자 안 떨어지는데 어리석게  거기에 들어붙일라고 자꾸 애를 쓰는 그런 짓을 말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걸 뗄라 하면 큰 마찰의 애로가 있어요. 또 이 간부 이것을  이별할라면 마찰이 있어요. 이러니까 고 마찰이 있을 때에 필요한 것이 뭐  이냐면 주님의 대속입니다. 주님의 대속을 들여 대 버리면 그만 스르르 녹아  버려요  아 이거 본드 그것이 짜다라 그렇게 잘 들어붙는 것 같지마는 휘발유를 부어  버리면 본드가 그만 스르르 그만 풀려 버려 아무 접착성이 하나도 없어져 버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보배피 대속의 공로를 갖다 붙여 주님이 나를  대형했고 대행했고 대화친하셨기 때문에 나는 주의 피에 팔린 주의 것이라.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하면 그만 뚝 떨어져 나가 버려. 그만 물러가 버려.

이러니까 이렇게 이것을 알고 이것을 상대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까지 간부로 음녀로 가졌던 그것을 달리 변동할 수가  있습니까, 어찌 됩니까? 음녀와 간부를 이거 선물로 그렇게 완전히 변질 시킬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변질시킬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까? 안 걸리요 당장 됩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의 선물됐던 것은 이제 간부나 그 음녀로 이렇게 변질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장 될 수 있어요. 요걸 알아야 돼요. 당장 될 수 있어요.

당장 되는데, 그것이 될 때에는 그 어떻게 됩니까? 될 때에. 그 간부 음녀가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지는 데에 당장 될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붙이면 당장 돼 버리요. 대속을 갖다 붙이면 당장 되는데 그만 내가 주의  것만 되면 그만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종만 되면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지체만 되면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성전만 돼도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제사장만 돼도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선지자만 돼도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그 파견한 왕만 돼도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나라만 돼도 당장 돼 버리요.

주님의 양만 돼도 당장 돼요.

 당장 되는데, 그것이 음녀와 간부가 하나님의 선물로 이렇게 당장 변질이 되고  변화가 됩니다. 가치도 변해지고 또 변질도 되고 변형도 되고 전부 변해져서  하나님의 귀한 선물로 되어집니다. 선물로 되어지는데 선물로 되어지는 그  방편은 어떠한고 하니 내가 대속받은 자의 정형으로 돌아가면 대속받은 자의  정상으로 돌아가면 즉시 그것들이 다 선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복종하는 자가 되면 즉시 돼요. 그 방편만 하면 즉시 되는데 그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요, 대속된 자로서 합당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해라, 흠과 점과 점과 주름  잡힘과 티가 없이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믿음의 방법을 가지면 즉시 음녀와 간부가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지는데, 이렇게 신앙으로 돌아서 신앙을 딱 가지면 그만 그것이 그래  돼지는데, 돼지면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되어지는데 그 선물로  되어지는 그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선물이 되어지는 그 형태가 선물로 되어지는  그 형태가 한 가지입니까, 두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저 뒤에  가르쳐 봐. 선물된 형태가 몇 가지? 전부 모르는구만. 여기 한번 가리켜 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요. 이래 가리켜요. 또 어떤  사람이라고, 몇 가지 형태로 돼요? 이래 한번 들어봐 이래 한번 들어봐. 어떤  사람 이래 드네. 자. 이래 들어 봐요) 두 가지, 손가락 둘 펴 봐요. 저 뒤에도  펴요. 자꾸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배워지지. 저 뒤에도 둘로 둘로 이 손을 둘로  모르거든 이 둘로 가리켜요. 이래 둘, 손가락 둘로 이래 둘로 돼요, 둘로. 다  둘로, 예 놓읍시다.

 그래 뭣 뭣 둘로 되는고 하니, 영원한 선물로 되는 것도 있고 임시 선물로 되는  것도 있습니다. 영원한 선물로 되는 것은 내가 선물 만드는 방법을 쓸 때에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그의 말씀대로 복종하는 요  믿음 생활을 딱 시작하면 그것이 즉시 선물이 돼.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 그것이  즉시 선물이 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면은 이 믿음 생활 시작하려고 할 때에 그 음녀와  간부가 가만히 있습니까, 우리에게 박해를 합니까? 가만히 있지를 안해요  박해해요.

 어떤 사람 보니까 그 간부가 안 떨어질라고 이래 가지고서, 저 부산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 여자가 그만 저 교포 재일 교포를 칭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이렇게 친해졌는데, 또 그 사람이 친하기 전에는 또 중국  사람 하나 친했어요. 중국사람 친해 가지고서 중국 사람은 이 본남편 같이 돼  가지고 있고 재일 교포는 간부같이 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간부가 '그 중국 사람  버리라. 버리고 나만 데리고 살아야 된다.' 자꾸 이래 하다가 나중에 되게 몰아  가지고 협박을 해서 '네가 오늘은 나오라 해라. 나오라 해 가지고서 그걸 네가  죽이지 안하면 내가 너 죽이겠다.' 이러니까 이 전화를 하니까 이 중국 사람은  좋아서 저 애인이 전화를 하니까 좋아서 '아무 어디로 오십시오.' 그래 오라  해서 갔다 말이오. 가니까 문에 들어오는데 그만 그 간부가 그만 그 중국 사람을  망치로 때려서 구불트려 때려 구불트리니까 이미 남편은 벌써 자기 중국 사람은  죽으니까 거기에서 같이 안 두드리면 이거 여인도 그 사람에게 맞아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 그 여인도 같이 달라 들어 가지고서 죽였다 그 말이오. 죽여  가지고서 그 사람을 중국 사람을 우물 속에다 넣어서 숨겨놓은 것을 뒤에 발견해  가지고 그 뒤에 처리는 어찌 됐는지 그 뒤에는 내가 모릅니다. 이래 그 간부가  그래 잘 떨어집니까 안 떨어진다 그 말이오. 안 떨어져. 안 떨어져 가지고서  얼마나 그렇게 그 발악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믿음의 방법을 쓸 때에는 그만 그 선물로 만들라고 간부를  선물로 만들라고, 또 음녀를 선물로 만들라고 하면 그것들이 아주 박해를 하고  반대를 해서 그만 그것이 없어지는 수가 있어요. 아주 그걸 그만 지킬라고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뜻대로 살라고 하면은 그것이 없어지고 그것을  가질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야 되고 이럴 때에 둘 중에 어느 것을 버려야  되느냐 할 때에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놓지 안하려고 할 때에 그거 아주  영영히 버려지는 수가 있습니다.

 영영히 자기 그 직장을 영영히 떨어지는 수, 그 직장을 영영히 떨어지는 수  있고, 또 그 사업을 영영히 파괴되는 수가 있고 자기가 그 형편과 제일 좋은  형편과 처지 세상 처지를 완전이 말살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또 그러고 그래  지키면 없어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있었다 그 말이오.

 다니엘은 그렇게 지켰는데 그 지위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 지위가 없어지지  안하고 여전히 총리대신이 나중에 총총리가 돼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이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물이냐 이것이 음녀냐, 또 이것이  간부이냐 이걸 하나님이 시험하셨다 그 말이오.

 그 하나님께서 이삭을 가지고서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도 이것이 간부냐 이것이  음녀냐 그렇게 그거는 간부되기도 음녀되기 쉬워요. 그래 시험했는데 아브라함이  그걸 이겼어. 척 이기니까 이제야 네가 그런 음녀에게 꼬이지 않는 것, 이삭이  너에게 음녀되지 않고 너에게 선물의 아들인 것을 내가 알았다. 이제 이삭에게  축복을 해라. 마음대로 축복을 마음껏 해 주셨다 그 말이오.

 그래서 그 간부와 음녀를 하나님의 선물로 바꾸는 방편은 이제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를 버렸던 것을 다시 하나님을 되찾고 진리를 되찾아 가지고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 복종대로 이렇게 이 둘을 잡으면 둘을 잡고 놓지  않으면 그것이 간부도 음녀도 하나님의 선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선물이 되는데, 이 둘을 잡고 놓지 아니하면 그것이 간부와 음녀가 선물로  되어질 때에 되어지는 방편이 둘이라 그 말이오. 되어지는 방편이 둘이라. 이  하나님과 진리를 내가 붙들고 내 하나님으로 내 진리로 이렇게 삼으려고 할 때에  그것이 내 간부성과 음녀성은 그것이 변질되어지는데, 변질 되어지는 동시에  그것이 없어지므로 변질되는 거 있고 없어지므로 변질되는 거 있고, 그것이  그대로 있으면서 그대로 모양은 있으면서 그 변질만 되어져서 음녀가 선물되고  간부가 선물되는 것도 있는 것이니까 없어지므로 되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영원한 선물이 된 것입니다. 그거는 영원한 선물이 됐어  또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것이 선물이 된 것은 그것은 임시 선물입니다. 임시  임시적 선물이요. 임시 선물입니다. 임시 선물 영원한 선물 영원한 선물은 다시  변동될 그런 중복성이 없는 영원 완전 선물이 된 것이고 그것이 임시 선물로 된  것은 앞으로 그것이 음녀가 될는지 간부가 될는지 또 그것을 그 선물을 완전히  뺏들어 버리고 말는지 앞으로 변동성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불완전의  선물이 됩니다. 불완전의 선물이 되는데 불완전의 선물 그것을 완전 선물로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현실을 통과해 가지고만 그것이 완전 선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때 사자 구덩이에 가서 죽었으면 그 사람은 완전 선물 받은  사람입니까, 일시 선물 받은 사람입니까? 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죽지  안하고 살아 나왔으니까 살아 나온 그것은 일시 선물로 받았습니까? 완전 선물  받았습니까? 일시 선물 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조심 있게 살아서 그것을 완전  선물을 만들라 하면 현실 현실에서 얼마나 애로의 굴곡에 모든 순서를 거쳐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기독자의 완성과 대승은 주님과 진리로 끝을 마치는 것이 완성과  대승입니다. 그러면 완성과 대승 일시에 완성 대승하는 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합니까? 이제 일시 완성 대승하는 것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기  남반에 저 뒤에 큰 소리로 좀 해 봐요. 좀. 여기 들리구로. 뭐인지 몰라요?  뭐인지 모르면 그 무지자로구만. 멍치로구만. 바보라. 그렇게 가르쳐 좋도 몰라.

단번 완성 되는 거, 영원 완성 영원 자기의 선물이 되고 완전 성공되는 것이  기독자의 단번 완전 성공이 뭣입니까? 순교, 따라합시다. 순교! 저 따라해요,  순교! 순교! 순교! 순교! 순교!  순생은 순생은 그 부분 완성이요 순생은 부분 완성이요 순교는 전부  완성입니다. 어쨌든지 주님과 진리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가 다 그걸로 인해서  없어졌으면 완성입니다. 우리는 없어지는 것으로만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된 것은 썩을 것이 심어져야 돼. 심은다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을  뿌려서 내 손에서 내놔야 되지 않습니까? 심는 것은 내가 가졌던 것을 내놔야  심겨지지 안 해요? 그런고로 일단 가졌던 것을 내놓는 그 계통을 통해 가지고서  완성이 되어진다. 내놓는 계통을 그걸 통해서 완성되어지는데 내놓는 그걸,  가리켜서 십자가라 그렇게도 성경에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요 또 중요한 것을 그러면 세상을 간부라고도  음녀라고도 선물이라고도 요렇게 했는데, 요것을 내가 세상을 간추로 내가  상대해서 간부로 내가 상대해 가지고서 세상을 살고 있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부부성적인 부부적인 부부적인 그 모든 성과를 부부적인 그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이 세상을 간부로 가지면 부부적인 성과를 가지지 못한다.

 요렇게 내가 간부로 세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에 무엇이든지 그 세상의  모든 이십 세기 문화, 모든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상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전부 사람이나 물질이나 모든 존재 이십 세기의 내게 필요한 모든  존재 그것이 내게 하나님의 선물도 될 수가 있고 내게 간부도 될 수 있고 내게  음녀도 될 수 있다. 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으면 이게 참 큰 지식을 알았습니다.

그게 뭐 이 세상에 대학에 백 개 졸업 맡은 거보다 낫다 그 말이오. 참말로  나아요. 거짓말로 나은게 아니야 참말로 나은 때가 와. 나은 때가 와. 주님  오시면 나아. 어리석지 말아요. 뭣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야단을 지기요.

지기기를.

 그것을 간부로 내가 상대하면 간부로 상대하는 것은 내가 그에게 소속해 가지고  소속해 가지고서 내가 그에게 끌려 간 것이 그것이 간부로 상대하는 것이요.

내가 그를 내가 높인게 아니라 그걸 내가 매력에 끌려서 내가 너무 좋아서 내가  내게 소속한 것으로서 애착을 가지고서 위로 끌려서 끌려서 그것에게 끌려서  돌아다니는, 위로 올리는, 저보다 높이 봐서 높여서 그에게 그 숭배성적인 요런  걸 가지고서 그에게 현혹당하는 것을 가리켜서 간부를 섬기는 것이라. 또 그것을  하나의 그 매력성에 내가 미혹을 받아가지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것을 음녀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음녀로 가지든지 간부로 가지든지 하나님의 선물로 가지든지 가지는  것이 이것이 다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세상을 간부로나 음녀로나  (참! 조니 기가 찬다 말이오. 하나도 뻔뻔히 뭐 백번이면 백번 다 질 사람들인데  다 질 사람들인데 그 죄를 물먹듯 마시고 아무 감각이 없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와서 앉았기만 하고 졸면 어찌 될 거냐 말이오. 이것을  인간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지 안해 진실을 가지면 그 여자가 못 쓰게  돼 놓으면 뭐 그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양심이 마비돼 놓으면 아무 감각성이  없다 그 말이오.) 이것을 음부로도 간부로도 그 음녀로도 또 선물로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인데. 내가 간부로 가지게 되면 그 본남편과 이혼이 돼 버리오.

간부로 가지게 되면 본남편과 이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부부적인  관계, 부부적인 권위 부부적인 그 행복, 부부적인 그 영광, 부부적인 지위, 그  부부적인 모든 그 역사 하나님과 나와의 부부적인 이 관계인 그것이 깨진다 그  말이오. 이 간부로 가지면 그게 깨져 버리오.

 또, 음녀로 가지게 되면 뭐이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유업으로 받는데 유업으로 받고 그분의 모든 형상을 자녀는 첫째 아버지의  형상을 받는 것이 자녀요, 아버지의 형상을 받는 것이 자녀요,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그 모든 권리를 상속받는 것이 아들이요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것이 아들인데. 이 상속적인 이 유전적인 이 역사가 끊어진다 그  말입니다.

 음녀로 가지면 이 역사가 끊어 져요. 간부로 가지면 이제 부부적인 역사가  끊어집니다. 이것이 끊어지니까 그러면 그 관계는 이 세상 것으로 비교 할 수  없는 그런 아주 높은 평가인데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렇게 되기 쉬운데 그것을  그리 되었으면 우리가 낙망할 것입니까? 예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낙망할 것은  없고 깨달으면 즉시 돌아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시 돌아설 수가 있으면 어떻게 돌아설 수가 있는가? 즉시 돌아설 수 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입어서, 그만 쉽게, 예수님의, 그저 쉽게 하려면  그래요. 사죄, 사죄를 줬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죄와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어겼다 하나님 말씀 안 어기는 것이 그 죄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의를 내가 놓치 않겠다. 의를 놓치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의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제일 주로 모시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화친된 것입니다.

 화친으로 생명이 오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의로서 모든 부강이 되어지고, 또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안함으로서 모든 해독을 다 치료해서 다  방어가 돼서 해독의 염려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면 다  치료가 돼요.

 그걸 모르면 그 주님을 모시고 주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복종하는 요 일만 하면 성경 말씀대로 살라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경건은 복잡하게 말고 경건은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을 위해서 말씀대로 사는 그것이 경건이요 그만 그 경건만  가지면 요 치료가 됩니다.

 치료가 되는 데에는 여기에 완전히 간부와 음녀가 하나님의 선물로  바꾸어지는데 그래 바꾸어지면 고 바꾸어지는 형태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바꾸어지는 형태가 둘로 되어집니다. 하나는 영원히 바꾸어서 다시는 변동 없는  영원한 변동 없는 바꾸어지는 변동 없는 변화 변동 없는 변화가 될 수도 있고,  또 변동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아직까지 미결의 변화를 가지고 있는 임시  선물도 되고 영원한 선물도 될 수가 있다.

 영원한 선물은 어떻게 영원한 선물이냐? 그렇게 하나님과 주님을 두 분을  상대해서 요렇게 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고것이 주님과 진리를 내가 차지하고  주님과 진리를 놓지 안하려고 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영원히 없어졌으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영원한 세계로 옮겨져서 영원히 내 것이  되어졌고 그것을 아직까지도 임시 거주처인 이 세상에서 그것이 그 형태가 남아  있으면 내 선물이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앞으로 선물로 잘 사용해야 되지  잘못하면 그 선물의 매력에 끌리면 음녀가 되어지고 그 선물의 권위성에 내가  끌려지면은 간부가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것을 가져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구별해 나가면 우리가 후회 없는 지혜 있는  걸음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음녀가  몇이나 되며 간부가 몇이나 되는가? 또 이것이 가끔 가다가 하루 몇 번씩이나  이거 변질이 되어지는가? 어떤 사람은 하루 한번 변해지고 그전에는 꼭 그  선물로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음녀와 간부로 하루 한 번 변해지는 거. 하루 두  번 변해지는 거, 또 한 달에 한 번 변해지는 거 이렇게 변해지는 것을 자기가  알고 변해지지 않을려고 노력을 해서 싸워서 이기면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당장에 변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일서에 네가 미혹  받지 말아라. 미혹 받으면 당장에 마귀 자식되고 마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당장  된다. 당장 마귀 자식이 당장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당장 하나님의 자녀가 당장  마귀 자식이 되고 이와 같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한번 되면 언제든지  오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면 오직 하나님의 자녀의 자녀지 그렇게 생각지  말라. 이 말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말 끄칠 때는 마귀의 자식으로 말을  끄칠 수가 있다. 만날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났다가 나뉠 때는 마귀의  자식으로서 나뉠 때가 있다 그렇게 이 교체가 빠릅니다. 이 교체가 아주 빨라요.

 이러니까 선물과 음녀와 이 간부로서 이렇게 바꾸어지는 교체되는 바꾸어지는  것이 아주 빠릅니다. 번개 같이 빨라요. 이러니까 이거 한번 바꾸어졌으면  그대로 바꾸워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요.

빨리 빨리 바꾸어집니다. 아주 빨리 빨리 바꾸어져요  자 따라합시다. 교체는! 번개같이 빠르다! 교체는! 번개같이 빠르다! 고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조심해서 깬 생활을 해야 됩니다.

 네 다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기에서 고 말씀을 한번 새김질하면서 자기 마음비에 각해요 자기 마음에 딱  새겨 버려요. 쓸데없는 거 생각하는 거 다 그 삭제 해 버려 버리고 우리 마음에  완전히 새겨 버려요. 우리 마음을 요것을 요 지식으로 물을 딱 들여 버려요. 요  지식으로 물을 딱 들여 버리고 완전히 하나는 탈색하고 간부 음녀를 완전히  탈색해서 무색의 마음. 무색의 마음. 무색의 육 무색의 심신을 만들어 가지고  이제 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지식으로서 딱 다시 염색을 해 버려요. 이래 이것을  가리켜서 입어라. 그 사람을 입어라 챘고, 옛 사람을 벗어 버려라 했어요.

탈색하고 염색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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