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간부 음녀 음행의 포도주 하나님의 선물

 

1984. 8. 15. 수밤 

 

본문: 호세아 2장 1절∼23절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 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 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 말씀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예언의 말씀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졌고, 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무슨 해석을 해 가지고 어떻게 한다는 것보다도 무슨 말인지 무엇을  가르친 것인지 그것을 모르면 여게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간략하게 호세아  2장을 읽으면 그 안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지금 잘 읽어보고 또 집에 가서도 읽고  지난번 산에서도 이 말씀을 가지고 증거를 했습니다. 본문을 읽어 내려 가면서  간단하게 그 무슨 말인가 모르는 그런 것만 좀 해석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 다 호세아 2장 1절로부터 봉독합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이 말씀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많은 사랑과 긍휼을 입은 자들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 택함을 받고 또 중생함을 입고 또 부름을 입어서 예수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십자가에 죽기까지 또  사랑하시고 영원히 창조주가, 이 피조물의 걸거치고 아주 불완전한 속에서, 영원히  영주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반역에 또 우리의 패역에 또 우리가 배은하는 배은의  거게 충격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당신에게 잘못하면 그라면 그만 당신이 얼마  동안은 참으시고 이래 하다가 우리에게 '아, 이거는 쓸데 없다 이러니 그만  포기해라' 이렇게 버릴 수 있는 그런 정도 같으면 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지극한  이렇게 크게 희생을 아낌없이 하신 사랑이요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만 아무나따나 하나님 배반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만 선섭해서 포기하고 '너야 네 갈 데로 가든지 망하든지 해라' 이렇게 놓아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놓아주지 못합니다.

 왜? 큰 대속을 이루고 큰 희생을 했습니다. 근본 하나님은 부요하시더니 그 부요  하심을 내어 놓아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 다 우리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셨는데 우리 구원이 안 된다고 당신이 능력을 둬 두지 않습니다. 또 당신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기어코라도 구원하고야 맙니다.

 그런데 우리를 강제로 그만 구원할라고 하면 쉽지마는 강제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깨닫고 유기적으로 이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렇게 크고 이래  사랑이 크니까 내가 하나님을 섬겨야 되지 하나님에게 배반하는 배은하는 이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스스로 깨닫고 신앙 생활을 하도록, 요것이 인격  존재인데 이것이 제일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강제로는 하지 안하시나 당신이  이런 징계로 저런 징계로 해 가지고 기어코라도 오그라 붙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는 몇 번이든지 징계한다고 했어. 몇번이든지. 몇 번 뭐 녹아서 녹아서 없어질  때까지 징계합니다.

 이러니까 참 이 세상에도 보면 혹 내가 그런 사람 봤는데 요새 뭐 이혼율이  심해서 어떤 사람은 그만 이혼하고 싶으면 제 마음대로 하고 이렇지 마는 되기  사랑하는데는 이혼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뭐 아무리 어떤 짓을 한다 해도 나는  너를 놓지 않겠다. 이러니까 권세 있는 것도 소용 없고 생명 내놓고 죽어도  달라드니까 뭐 이혼을 하고 도망을 가도 소용이 있습니까? 도망을 가도 또 어째  쫓아 다녀도 또 찾아갑니다.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가난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망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안하고 어짜든지 자기 아내를  기어코 놓지 안하고 자기의 사랑의 아내로 삼겠다고 이렇게 달라 드는데는 이  법이 소용이 없습니다. 또 무기도 소용 없어요. 이북으로 도망쳐 봤자 이북에 또  따라갑니다. 따라가서 목 숨이 죽으면 죽었지 안 놓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게 정상인데 그러기에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산 놈의 계집은 호랑이도 안  물어간다' 그 말이 있어 산 놈의 계집은 호랑이 안 물어간다 참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그 남자의 아내는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여게 1절은 그  뜻을 가르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놓지를 못하시고 잊지를  못하시고 당신의 전부를 다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그렇게 하신 이  지극한 사랑이기 때문에 그만 그 사랑을 떠나서 어데 숨을래야 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광선의 속도를 가지고 네가 어데까지 가도 내가 거게 따라 가겠고 거게  먼저 가 있겠다' 이랬습니다. 이 참 뭐 알면 요새로 말 하면 뗄 수 없는 남자를  얻었소. 뗄수 없는 남편을 얻었어. 못 떨어져. 암만해야 안 떨어집니다. 어떻게  골탕을 쥐 먹이서라도 기어코라도 당신의 욕심대로 이루고야 말지 우리를 놓지  않는다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공연히 당신에게 삐뚤어져 가지고 하면 저만 곯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뭐 우리가 조그만 낙심이 나고 죄나 짓고 이래 망령되고 이라면  하나님이 버릴 줄 압니까? 안 버립니다. 죽는 그 시간까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징계를 해서라도 기어코 당신에게 들어 붙도록 만들지, 놓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참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기쁘고 즐겁고 이렇게 지극히 큰 행복이  없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참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 떠나고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그거는 하나님이 일부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지 않는다는 것을 에스겔서에 읽어 쓰면은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놓지 않습니다.

 사냥꾼이 자기가 발견한 그 짐승을 자기 힘을 두고는 그 짐승을 놓치지 안하고  기어코라도 따라가 가지고서 그 짐승을 잡는 것처럼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놓지 안하고 기어코라도 잡아서 붙들어 맵니다.

 이러니까, 떼어 버릴래야 떼어 버릴 수도 없어. 이거 뭐 사람이야 동. 서양으로  피하면 되지마는 동, 서양으로 피해도 안 되고 이 광선의 속도로 달아나도 안되고.

요새 뭐 원자력이라지만 그런 거 가지고 억억만 배의 속도를 가지고 어데가  숨어도 안 되고 달아나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떼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이 이렇게 우리를 놓지 안하니까 아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성경을  보고 깨달아서 당신에게 들어 붙을 일이지 뭐 달아난다고 놓을 줄 압니까? 저만  곯지 안 놓습니다. 놓지 안해요. 우리가 좀 나쁜 행동이 있고 하나님을 욕이나  하고 반대하고 하면 하나님께서 '에히 그라면 집어 던져 버리라' 이럴 것이지마는  어떻게 한다 해도 놓지 안합니다. 1절에 그것을 말합니다. '암미라 하고 루하마라  하라' 하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그것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첫째는 요거 알고.

 2절에,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이제 지금 생 이별을 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본남편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인데 교회는 하나님의 신부인데 이 신부된 교회가 하나님 앞에  패역을 부리고 간부로 더불어 사귀는 이 음행-간부는 세상을 간부라고  이랬습니다. 아내라 말은 그 배우자라 말이요 짝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짝으로 삼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상대 짝으로 삼지 안하고  세상을 자기의 짝으로 삼은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네 어미와' 하는 그 말은 신앙의 선배들. 신앙의 선배들, 그 저 후배는  무조건하고 맹종적으로 선배에게 따를 것이 아니고. 주일학교 학생들은 무조건  선생님이라고 반사 선생에게 따를 거 아니고, 또 평신도는 권찰이라고 무조건  권찰에게 따를 거 아니고, 교인은 또 그 권사 장로 목사라고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너희 선배에게 이렇게 음란스러운 더러운 것을 고치도록 너희들이  쟁론해라. 안 고치면 뭐 죽든지 살든지 이것을 결말을 지워라 하는 이런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얼굴의 음란이 가득 찼고. 이 유방 사이에 음란이 가득 찼다. 네가  거게서 받아 먹고 있는 받아 먹고 사는 그 진리의 은혜에도 음란이 가득 차 있다.

또 너를 전도해서 구출해 낸 그가 감사하지마는 그의 얼굴에 음란이 가득 찼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너희들이 말해 가지고서 그걸 벗겨야 되지 벗기지 안하면  그는 비참하게 된다.

 그러면 음란은 뭐이 음란인데? '음행하는 여인들이여 세상화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했습니다. 여게 본 간부는 세상을  간부로 말했습러다. 이러니까 너희 신앙 선배에게 그 신앙의 은혜 기관되는 그  모든 너희들의 신앙을 인도하고 있는 그들에게 음란이 가득 찼다. 그들이 전부  세상주의다 육신주의다.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하고 세상을 소망하고 세상을  상대했기 때문에 그걸 너희들이 어짜든지 부르짖어서 제가 못 고치니까 후배가  들어서라도 말해 가지고 고쳐야 되지 그걸 안 고치면 그도 망하고 너희들도  망한다 이걸 말합니다.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퐈 같게 할 것이요' 그 나던 날은 벌거쟁이로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저희에게  있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모든 면으로 은혜면이나 지혜면이나  사업면이나 행복면이나 형통면이나 기쁨면이나 쾌락면이나 평안면이나 그런 모든  행복이 하나도 없이 그래 만들겠다. 하나님은 복수성이 무섭습니다.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광야같이 되게 하며' 여기 광야에 대해서는 에스겔  20장 35절 이하에 보면은 있습니다.

 그 광야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지  안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좀 강대국이 되고 이래 되면 그만 저거  힘으로 그런 줄 알고 하나님 배반하고서 저거가 뭐 이 세상의 국제 무대 나가  가지고서 이런 나라 저런 나라로 더불어 연맹이나 맺고 이렇게 동맹이나 하고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이 또 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존귀케 했습니까?  요셉이를 통해 가지고 존귀케 했기 때문에 요셉의 그 부형들이 애굽에 내려 갔을  때에 애굽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요셉의 그 부형들에게 대해서 요새 말로 하면  뭐 이북에 모양으로 어버이라든가 아버지라든가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라  했오. 야곱도 아버지라 했고 그 형제들도 아버지라 했습니다. 그렇게 존귀히  여겼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은 목축하는데 뭐 우리 애굽에는 땅이 넓으니까  어데든지 좋은 데 마음대로 택해서 하라고서. 뭐이든지,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고  그렇게 존대함을 받았습니다. 애굽 나라 백성, 애굽 나라는 저거 본국이고  이스라엘은 이방에서 포로되어 온 것이 하나 나와 가지고 뒤에 가서 그 가족들이  왔는데, 온 전 국의 권세를 다 가졌고 존귀를 다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이스라엘이 저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인 줄은 모르고  슬슬 저거 저거, 힘으로 그래 놓든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안 하고 영광을  저거가 받고 저거, 힘으로 그렇다 제자랑이나 하고 하나님 자랑은 하지  안했습니다. 이라다가 마지막에 남자는 몰살을 시키고 아이를 날 때에 남자  낳으면 다 죽이고 여자는 나면은 그까짓 거야 뭐 애굽 사람들이 그만 장가 들어  살면 저거가 뭐 속화 안 될래야 안 될수 없고 종자는 애굽 종자요, 그러니까  여자는 남겨 두고 남자는 전부이 다 죽여라 이랬습니다. 그 뭐 죽인 것이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과거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 당시에 그들이 다  타락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하고 바라보지 안하고 의지하지 안하고  하나님 명령 복종하지 안하고 저거 생각대로 이와같이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열국에서 흩어 가지고서 참 비참하게 천대받고 압제받고 그렇츰  상상도 못 할 그런 아주 학대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금 이 호세아 2장에 있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저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복종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이 잘해 주실 것이다 맡겨 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에게만 복종한 사람이 누굽니까?  요셉이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의 그 신앙을 인해서 요셉의 그 모든 친족들을  애굽으로 인도했을 때 애굽에 있는 사람들이 다 저희들의 아버지라 했어.

어머니라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신앙으로 그 전 민족이  그렇게 존귀해졌다가, 존귀해지고 나니까 저희들의 하나님은 저버려 버리고. 저거  인간 힘으로 되는 것처럼 해 가지고서 뭐 뭐라면 무슨 일이 나면 하나님 앞에  범죄했는가 이걸 살펴서 회개 할라고는 하지 안하고, '아 우리가 이런 것은  지혜롭게 해야 된다' 이 사람이 제가 지혜롭게 나선다 해 가지고서 애굽 정복하고  무슨 타결을 보고 무슨 교제를 하고 이란다고 또 그거 안 되면 저 사람이 나서고  전부이 다 저거 힘으로 하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와같이 되고도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지 안하고 그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비참하게  됐습니다.

 히스기야왕 때도 앗수르 나라에 전멸을 당하게 됐는데 히스기야왕이 이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다른 것을 믿고 하나님을 공경치 안한 그 죄를 회개하고  모두 다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서 애통하면서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 그 대군이니까 이스라엘은 당장 전멸이지 뭐 서로  전투할 만한 그런 형편이 못 됩니다. 이랬는데 회개한 그 때에 십 팔만 오천 명을  하나님께서 무기 하나도 이스라엘이 쓰지 안하고 그대로 다 그만 몰사했습니다.

뭐 하나 칼이나 활이나 맞은 거 아니라 맞도 안하고 그만 그대로 몰사해 버렸어.

 이러니까 온 세계가 그때 그걸 보고서 그때는 바벨론 나라가 세계에 제일  강대국인데 바벨론 나라에서 '야, 이스라엘이라 하는 나라가 이렇고 이렇고 해  가지고서 앗수르 나라로 더불어 싸워서 이렇게 됐으니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그  나라와 서로 대립이 되는 날이면 우리나라가 망할 터이니까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해야 되겠다' 하고서 사신을 보냈다 말이오.

 사신을 보내니까 히스기야 왕이 그 동안에 또 또 망령되게 또 범죄했어. 바벨론  사람들이 오니까 '아, 이렇게 참 앗수르 나라로 더불어 전쟁해서 이렇게 승리를  했으니 참 영광입니다. 축하를 합니다.' 이렇게 예물을 가지고 오니까 떡 말하기를  '예, 우리나라가 그렇게 약한 나라 아닙니다. 와 보십시오.' 우리 무기가 이렇게  많고. 또 군대가 이렇츰 많고. 뭐 많고 많고 좋고 부요하고 이걸 보이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하나도 자랑해 가지고 나타나지 안했습니다. 이라니까  바벨론의 사람이 가만히 와서 보니까 이사람들이 우리는 하나님 가지고 어떻게  됐는가, 싶어 겁이 나서 뻘뻘 뻘고 왔더마는 그게 아니고 이거 찍해야 무기 이런  거 봐 가지고서 하는 것이니까 이거로 말하면 인간 실력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이까짓 거야 하루아침 해장거리도 안 된다 요래 딱 봤다 말이오. 그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아, 참 이렇게 승리한' '아, 우리가 승리한 것 아닙니다. 앗수르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뭐 칼도 없고  활도 없고 뭐 훈련병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 해 봐야 그것도 뭐 하나  그저 도적이나 지키고 그랄까 아무 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전지  전능하신 계약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안했을 때에 우리를 해하는 나라가 있으면 전멸이 됩니다. 또 우리를 축하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축복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렇게 말을 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만 그 바벨론 나라도 '아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해하면 안 된다.' 다시는 그런 전쟁도 오지 안할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 받을 터인데 망하다가 망할 지경이 되면은 하나님 찾아 가지고서  하나님 은혜로 잘 되고 잘되고 나면은 저거가 잘해서 잘됐는양 하고서 교만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버리는 요것 때문에 구약의 모든 역대기나 열왕기나 보면은  요것 때문에 다 망했습니다.

 여게도 그말입니다. '안면에 음란이 가득 찼다. 유방 사이에 음란을 제하라. 안  제하면 내가 그를 망치겠다.' 그 말은 음란은 뭐이냐?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어서 우리가 평강으로도 살고 이것 저것 모두다 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강하게  사는 것인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을 생각지 안 하고 세상이 하나님이 그  세상은 도구로 삼고 은혜 기관으로 삼아 가지고 그런 걸 통해서 주는 것인데  세상이 그걸 준다 하고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치 안하고 그럼으로써 다  망했습니다. 그걸 가리켜서 음란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에 그 가정에 호주가 우리 믿는 사람이 뭐이든지 잘되면 그저 무조건 그래  말할 거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래 은혜 주셔서 우리  가정이 건강하게 산다, 평안하게 산다. 이번에 이런 것도 하나님이 주셨다, 또  하나님 말씀 어기면 안 된다. 법대호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그 가정에 에미와  애비가 이런 사람이 되면 그 자손은 행복됩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세상으로  인해서 살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서 사는 거 아니라 오늘도 내가 어떤 사람보니까  이종교를 믿는 사람인데 그 종교의 불교가 들어서 우리를 행복되게 했다 하기  때문에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는지 모릅니다. '그래.

그러면 그런가 보자.' 그러기 때문에 그 뒤가 뭐 됩니까? 그 뒤에 불교 믿어  가지고 다른 이종교 믿어 가지고서 당대로 그 다음 대는 다 절단나지 않습니까?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 말이 아니요 성경 말씀입니다.

 회개치 안하면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리라' 광야에  광야에 인간의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지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는 자 만들겠다. 무의 무탁의 사람을 만들겠다 하는 말입니다.

 '마른 땅같이 해서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리니' 그 자녀도 긍휼히 여기지 안한다.

왜? 그 부모가 세상하고 짝해서 세상 간부하고 음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자녀를 복되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거 꼭 회개 해야 됩니다.

이래서 이 죄를 범한 자를 다 망치고 이 죄를 범하지 안 한 자를 약하든지  못났든지 이 사람을 높이 들어서 하나님이 구원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예언으로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이니라' 세상하고 짝이 된 그 신앙의 자손들이라  그말입니다. 세상하고 짝한 신앙의 자손들이라. 하나님하고 짝하지 안하고  세상하고 짝이 된 그 사람의 자녀들이라. 그렇기 때문에 그 자녀를 내가 좋아하지  안하고 내게 기쁘지 않다, 그들에게 복을 줄 수가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의 어미는' 저를 낳은 신앙의 선배는 세상하고  세상이라는 그 간부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제 애정은 전부이 세상에 기울이지  하나님에게 기울이지 안해. 애정이나 정성이나 모든 것은 세상에 기울여서 거게  다 기울여 놔 두고 일심 정력을 다 거게다 기울여 가지고 그라고 하나님에게는  그렇게 기울이지를 않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래 가지고  전도하고 전도한 자손, 육신으로 낳아 가지고서 또 낳은 자손 그 자손들 전부의  낳은 그 부모는 세상하고 짝이 돼 가지고 세상하고 연애하고 하나님하고는  이렇게 연연한 이 하나님이 우리를 생명까지 다 해서 사랑해 주셨는데, 또 이분이  나를 나게 했고 이분이 우리를 길렀고 먹이고 입히고 지금도 이분이 아니면은 십  분도 못 사는데. 이분 아니면 십 분 못 삽니다. 십 분을 못 사는데 이분은  멸시하고 세상 것들을 이리 하기 때문에 다 음란의 자식들이라.

 '대저 저가 말하기를' 이런 거는 말이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저'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거는 내비두고 또 말입니다.-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세상을 따르리 그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딿지  안하고 나를 사랑하는 세상을 따르리니, 제게는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할 것 없고  하나님 없어도 좋고 세상 그거는 없으면 안 되겠다고서 요렇게 생각하는 것,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이래 가지고서 세상이 '아, 세상이 우리밥 먹게 하지. 농장이 밥  먹게 하지, 공장이 밥 먹게 하지, 내 직장이 밥 먹게 하지. 내 지식이 날 밥 먹게  하지 대속하신 주님이 날 밥 먹고 웃 입고 평안하게 살게 하는 것 아니라.'  주님에게는 그 하나도 은혜가 주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 주님에게 감사도 없고  참 주님에게 이렇게 감사히 섬기는 일도 하나도 없고 전부이 세상이 줬다 하고서  주님이 줬다 하지 안하니까 그 사람을 하나님이 냅두겠습니까? 요게 앞으로 지금  우리에게 닥아 올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북을 뺏기고 있습니다. 이북을 뺏기고 있는데 이북을 와  뺏겼는지? 제가 지금은 그런 말을 잘 안합니다. 처음에 삼팔선이 이래 되고 나서  이 많은 형제들이 월남할 그때는 제가 많이 말을 했습니다. 저도 팔월 십 오 일날  해방이 되는데 사 월달에 해방될 것 봤습니다. 보고 제가 교인들에게 사뭇 '넉달만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반 동가리 돼 가지고 이북에는 전부이 암흑의 지옥의  세계가 될 것이고 이남에는 광명의 세계가 될 것이다.' 그때 몇 가지를  말했습니다.

 말했는데 왜 이북에 교회가 그렇게 숫자가 많은데 왜 이북을 저래 둘까?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말 듣기에 이북에서는 표어가 무슨 표어가 아니라 '예수 믿은지 십  년만에 십 년만에 부자 안 되면 예수 잘못 믿었다' '예수 믿은지 십 년만에 부자  안 되면 잘못 믿었다' 그래 말하고 남한에서는 '예수 믿어 예수님 때문에 거지 안  돼 봤으면 잘못 믿었다' 정 반대요. '예수 믿어 거지 안 돼 봤으면 그 사람 잘못  믿었다' 주를 위해서 있는 것도 거지되고 주를 위해서 고통당하고 하는 그것이 참  신앙인데 전부 그라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걸 소망하고 그것만 바라보니까 다  내 수단으로 지혜로 능력으로 이렇게 됐다 이렇게 하니까 이북 그 신앙들이  이남에 보다도 세상으로 더불어 음행하는 세상을 간부로 삼아 가지고서 음행해서  세상하고 한 덩어리. 예수 믿어도 땅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 믿으니까  세상하고 한 덩어리 되고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와 같이 만든  것이 아닌가 이렇게도 성경에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거는 뭐 나는 꼭 그렇다는 말 아닌데. 나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이북이  유물주의기 때문에 유물주의에게 죽었다 망했다 저는 그래 말합니다. 이북에  월남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한다 해도, 목사들 보고 내가 다 말했습니다. '이북이  신앙 위주가 아니고 유물주의다. 유물주의니까 새끼 유물주의는 대 유물주의에게  삼켜질 수 밖에 더 있느냐? 공산주의는 대유물주의다. 유물주의의 에미요 애비다.'  이러니까 새끼는 그 앞에 점령을 당할 수 밖에 더 있습니까? 이남도 꼭 같이  예수 믿는다 하지마는 하늘의 소망과 하나님에게 소망 두지 안하고 물질이  제일로 이제 유물주의. 하나님 믿는다고 하지마는 무신론주의 하나님 믿는다  하지마는 하나님이 없어 참 하나님이 전능자가 제 아버지 같으면 대통령은 저거  아버지가 돼도 배짱이 나오고 뭐 든든한데 하나님이 전능자가 아버지라 하는 것  참으로 믿으면 뭣 때문에 그렇게 궁핍하고 그렇게 옹졸하고 비겁하고 그럴 턱이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앞으로 하나님께서 기독교 무신론자, 입술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 진정은 하나님 부인하고 있는 자, 천국 천국 말하지 마는 실지로는  이 세상에 소망을 가지고 믿는 자, 기독교 유물주의자 기독교 무신론자를 앞으로  하나님께서 복수하지 않나 하는 그것을 저는 봅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 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여러분들이 듣고 혹 월남한  사람이나 호 이남에 있는 사람들이나 유물주의자들은 다 가슴이 뜨끔 하든지  그래 안 하면 그 설교하는 저 목사가 미워서 만날 우리를 유물주의라고  무신론자라 하고 저 욕한다 해도 끌어다 여기 내려다 죽이면 그만 그길로 승리요  끌어다가 달아서 그만 죽여버리면 그걸로 그만 승리라. 완전 승리라. 나는 그걸  바라는 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6·25 때도 그들에게 꼼짝, 안 했고 왜정  말년에도 그들에게 눌리지 안했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 그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신데 저 거가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그게 신앙의 사람들의 다  표어입니다.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가 내 뭐과 내 물화 내 양털과 -내 삼이라 말은 길쌈하는 겁니다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이 세상이 날 줬다 직장이 날  줬다. 내 지식이 내게 줬다, 내 기술이 내게 줬다, 내 회사가 내게 줬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거는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은 비위를 상해도 되고 하나님과 멀어져도  되고 이 세상이 줬기 때문에 이거는 안 되면 안 된다. 주일을 범해서 하나님을  노엽게 해도 주일 범해서 직장 떨어지면 안 된다 또 계명은 어겨도 이 사업은  기어코 살려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다 세상이 세상 덕으로 자기가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을 그렇게 모든 자기를 살려 주는 그 은총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은 공연히 자기에게 주는 것이 없는데 억지로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한 번씩만 불러 줘도 다행이지 뭐 하나님이 날 줬나 어데? 세상이  내게 줬지, 내 기술이 그랬지 우리 남편이 날 살렸지. 우리 자녀가 살렸지, 우리  부모가 날 이렇게 했지, 내 기술이 이렇게 했지, 나라가 이렇게 했지.' 아니오.

우리에게 주시는 이는 나라도 우리에게 못 줍니다. 사회도 못 줍니다. 부모도 못  줍니다. 형제도 못 줍니다. 나도 내게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니까 그 분이 주신 것을 알고 그분에게 은혜의 주인줄 알고 그분을  그분으로 합당한 대우를 하면서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그러 대우가 없는 것을  지금 참고 있지마는 유대인들에게 오래참았지마는 마지막에 칼을 들었을 때에는  유대인들이 참 역사에 비참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다른 민족 같으면  그 박해의 십분지 일의 박해만 당해도 그 민족이 싹 전멸이 되는데 이스라엘은  측량도 못 할 그런 박해를 당했지마는 이게 멸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게  기이합니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세상에다가 소망 두고 세상이 저거 살리는  줄 알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자들이 따라 갈지라도, 이제  세상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준다고 이렇게 인정하고 세상이 자기에게 주니까  그 세상을 자기 주는 세상을 자꾸 만들어서 자기 주는 세상을 크게. 자기 주는  세상을 강하게 이렇게 할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연애하는 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니까 세상이 통통 망하게 돼 버립니다. 만나지 못한다 했어.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세상 덕으로 살았다고  이랬는데 마지막에는 세상덕으로 살았다 하는 그 세상이 제게 없다 말이오.

'회사로 먹고 살았는데' 했는데 회사를 절단 내버리니까 뭐 회사로 먹고 살 회사가  있습니까? '내가 이 직장으로 내가 이와같이 잘 산다' 이랬는데 직장을 획 없애  버리니까 직장이 있습니까? '아, 나는 내 기능을 가지고 잘 산다' 했는데  하나님쩨서 머리를 팩 틀어 버리니까 그 뭐 기능이 있습니까? 또 머리를 안  틀어서 기능이 아무리 충족하지마는 하나님께서 쓰이지 못하도록 하면 써 주는  사람이 없어. 이용할 뎨가 없어. 아무 무용지물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걸 다 말해요.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하고 믿을  때 그러다가 그만 하나님 버려 버리고 세상으로 기어 나갑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뭐 새벽 기도를 나와. 나 같은 사람이 뭐 수요일을 가고 금요일 나가.' 이래  가지고 교만해 가지고 하나님 멀리하고 세상 거기에 의식주와 생사 화복이 다  달렸다고 이렇게 하고서 뻐드러져 나갈 그 때가 지금보다 낫다. 왜? 하나님이  망쳐 놨기 때문에 망치는 게 있다가 옛날 주여 주여 하면서 그래 믿을 그때가  지금보다 낫다 하기까지 망쳐 놓겠다 그말이오. 이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8절에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이제 여기 몇 가지 말합니다. 모든 물질이나 건강이나 형통이나 가정의  평강이나 이런 성공이나 저런 성공이나 이런 출세나 저런 출세나 이 모든 것 다  내가 저희에게 준 것인데,  '내가 저희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이래 가지고서 이 하나님  배반하고 제 욕심대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위해서, 세상이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행복되게만 하면 할 줄로 알고. 이 세상하고 짝짝하는 그 모든 드는 비용  그것도 내가 준 것인데 나 섬기라고 준 그 비용 가지고서 세상 섬기고 세상 한  덩어리 된다. 이 하나님이 이렇게 역역히 분히 여기십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바알을 위하다가, 바알은 우상을 말합니다. 귀신. '바알을 위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섬기는 그 세상은 그 속에 귀신이 들었습니다.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서 죄 짓습니다. 하나님 주신 것  가지고 세상하고 짝이 됩니다. 하나님이 벌거벗겨 버리면 세상이 절 보지도  안할라 하고 가까이 하지도 안 할라 하고 탐하지도 안 할 건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여러 가지를 줘서 지식도 주고 총명도 주고 뭐 진실도 주고 돈도 주고  권세도 주고 또 건강도 주고 이라니까 세상이 절 알아주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래 주셔서 이러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안하고 제가 잘나서 그래 된 줄 알고  망령을 부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가둬 버립니다. 내가 준 건데  저희들이 이것 가지고서 귀신 심기고 세상을 간부로 삼아 가지고 이래 섬기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은혜를 도로 찾는다 말이오. 예수 믿어서 형통해 가지고 왜 망합니까? 여러분들이  안 봅니까? 왜 비참한 자가 예수 믿어 가지고 잘 돼 가고 나 다음에 잘되고 나서  제 잘돼 그런 줄 알고 세상으로 뻐드러져 나가 가지고 망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뭐 내가 세아리라고 해도 다 셉니다. 안 그런 사람이 없어.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곡식 날 때에 하나님께서  찾으니까 하나님이 뭐 내놓은 곡식을 가져 갑니까? 생산이 안 되게 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생산되도록 당신이 생산되도록 해 주니까 생산이 되는데,  이러니까 도로 찾는다 말은 생산이 안 되게 하니까 당신이 도로 가져 간다  그말이오. 은혜를 안 주니까 그 뭐 됩니까?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틀 도로 찾으며' 하나님께서 이 포도주나  곡식이나 하는 거, 인간의 생활의 필수품을 말한 것인데 모든 걸 다 여게  포함시켜 대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찾으여,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벌거벗은 몸을'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저를 덮어 가리는 것, 사람이 아무리 못나도  좋은 옷을 입히면은 번들번들하지 않습니까? 장석으로 꾸미면 번쩍번쩍 하지  않습니까? 이걸 하나님께서 다 찾아 버리니까 그렇게 자랑하던 낯빤대기도 참  문둥이 상같이 되고, 그렇게 번들번들 한 의복도 없으니까 제가 떨어진 옷  입어야지 어짤 겁니까? 하나님이 줘서 스타일이 좋아도 아랫도리가 쭉 빠지고  키가 멀쿰하지마는 하나님 그거 뺏드니 굽어지고 삐뚤어지고 병신되니까 뭐 볼  게 뭐 있겠습니까?  '빼앗으리라 이제' 10절, '이제 내가 그 수치를 벌거벗기고' 다 참 험하고 천하고  가련하게 그렇게 아주 모든 사람이 보면 더럽다고 침을 뱉고 할 만치 이렇게  천하게 만들어,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이제 세상을 사랑하고  좋아해서 세상한테 세상은 걸 좋아하고 저는 세상하고 좋아했는데 하나님이 쏵  벗겨 버리니까 세상이 더럽다고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세상이 그렇츰 좋아하던  그 사람을 하나님 벗기고 나면 세상이 더럽다고 만나지도 안할라 해요. 안 믿는  사람도 술을 먹다가도 그만 그 사람보면 '저 아무 것이 온다, 술 치워라.' 그 전에  그렇츰 좋아하던 뭐 말하면 '그저 내 힘써 보지' 속으로는 '힘쓰기는 뭐 힘써'  여게도 놀리고 제까짓 게 암만해도 아무것도 안 됩니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다  헛일이라. 요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드러내니리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주님이 이렇게 치실 때에  누가 주님이 치시는 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못 구원합니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그러니까  나중에는 저가 신앙 생활 할라 해야 하지 못합니다. 이북에서 이것 다 폐하지  아니했습니까? 이북에는 지금 신앙 생활 못 합니다. 중공에도 신앙 생활한다 해도  그 신앙 생활이 보잘 것 없소. 거기서 잘 믿는 사람들은 잘 믿겠지마는 이거 다  하나님이 지금 저주 준 것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신앙의 자유를 못 사질란지  몰라요. 신앙의 자유를 다 없애 버릴 것이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세상이 이렇게 나에게 이거 줬다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이 복수해서 그거 다  망쳐서 수풀이 돼 가고 맹수들이 살고 사람들이 가지도 못 해. 사람이 망하니까  그 맹수가 살 거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 죽이고 살리고 병들고 사랑하고 당장  이 땅을 옥토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 들 수 있고 당장에 이 땅을 아주  멸망의 황무지로 만들 수가 있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모든 것 다  가지고 있어. 천하 인간을 그분이 한 시간에 딸칵하면 전인간이 일시에 다 죽을  수 있어. 그분이십니다. 왜 이 분을 우리가 멸시를 합니까, 학대를 합니까, 멸시를  합니까? 그분이 멸시를 당할 것입니까?  따라 합시다.

 스스로 속지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은!  무엇으로 심으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행위를! 자기가 먹으리라! 이것이  성경입니다.

 13절에,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아주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귀고리도 하고 패물도 하고 이렇게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세상을 따라가서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니까 이거  가지고 세상에서 자랑하고 잘난 체 하고서 이라니까 세상이 절 좋아하고  짝짝쿵이 됐지요.

 이래 가지고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아주 향내를 솔솔 내면서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요래 가지고서 세상이 제일이라 세상 좋다 하고서  세상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고 날짜를 따라서 날짜를 따라서.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철두 철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멸시를 당하십니까 그 분이?  우리만 망합니다. 기어코 놓지 않이요. 참 '산 놈의 계집은 뭐 호랑이도 안 물어  간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계집을 누가 뺏들어 갈겁니까? 못 뺏들어 갑니다.

 14절 요거 똑똑히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요 광야에서 거친 들로  데리고 가 가지고 거기서 말로 개유한다. 개유한다.

 요 같은 뜻은 에스겔 20장 35절 이하에 보면 있습니다 요 광야라 하는 것이  거게 보면 모든 열국을 광야라 했어 사기를 배척해서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유대인들을 배척하는 열국들을 가리켜서 광야라 이랬습니다. 발붙 일 곳이 없어.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비참하게 학대를 당하지 안했습니까? 광야로 데리고  가서. 요렇게 학대를 해서 이제 죽을 지경 되면은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라 그  말이오.

 우리가 이래 가지고서 양 사방 천대받고 멸시받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존귀할  때는 하나님 배반하다가 멸시 천대받게 되니까 그제야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을 맞이하지 안했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시고  우리를 좋아하실 때 지금 하나님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고 모든 걸 형통케 해 줄 건데 우리가지 금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이 날  살렸다고 세상 하면은 세상에게 매를 통통 맞고 세상의 천대를 받고 세상에게  죽임을 당하되 그냥 죽임당합니까? 자녀를 다 나일 강에 다 죽이지 안했습니까?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에 얼마나 어떻게 학살을 했습니까? 역사에 없는 비참한  학살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학살을 하되 자기 자녀를 자기가 잡아 먹도록  고렇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고렇게 만들었어. 세상 좋다 하고 하나님 버리면  세상에서 요렇게 전멸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수하겠다는 그말이오.

 요 14절 요거 단단히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요게 무섭습니다.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거친들이라니? 학대하는 민족에게  데리고 갑니다. 유대인이 독일 가 가지고 학대를 그렇츰 받았지요. 소련에 가  가지고 그렇츰 학대를 받았지요, 중공에 가 가지고 그렇츰 학대를 받았지요. 이래  가지고 뭐 비참하게 이래 끌고 다니면서 그러니까 나중에 그만 입에서 '아이구,  세상이 원수가 되고 세상에게 연애가 다 떨어졌습니다. 세상을 사랑치 않습니다.

세상 바라봤던 죄를 사해 주옵소서. 세상이 이렇게 나한테 이렇게 냉정하고 이  세상이 날 들어서 이렇게 박대하고 학대하는 줄 나는 몰랐습니다. 세상이 날  죽입니다. 나는 세상에 정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이 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말이 입에서 항복이 활활 나오고 이래 만듭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지냈습니까? 이스라엘이 나라를 뺏긴지 천 이삼백 년 동안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학대를 받고 이래 천대해서 그들의 입에서 그만 얼마나  거석했던지 누구하고 인사하면 그 전에는 하나님으로 인사하며 떡 말하기를 처음  만내도 '나는 유대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저거 입으로 하나님  백성이라는 말이 그 인사 할 때에 입에 떨어지지 않도록 요렇게 딱 오글트려서  항복을 딱 시켜 가지고서 '하나님. 나는 하나님 아니면 죽겠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벌써 수백 년 동안을 부르짖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노를  풀으시고 유대인들을 지금 독립을 시켰지마는 지금도 유대인들이 하나님  의지하지 안해요. 그렇츰 독실히 의지 안해. 안 하면 저거만 골만 빠집니다.

전쟁은 계속되고 비참하고 고통스럽소. 그 유대인들이 지금도 하나님 의지하지  안해요. 예수님을 믿지 안 해요.

 그렇게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요게 무섭습니다.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하는  거친 들인데 요것이 에스겔 20장 35절 이하에 보면은 그 이스라엘이 학대당할  것이 거게 있습니다.

 '데리고 가서' 거게서 인제 그렇게 고생하는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어 죽겠다고 하면은 위로도 하시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 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같이 하리라' 그때와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부르짖고 의지하고 바라보는고 사람을 기어코 만들고야 맙니다.

우리도 이 사람 만나면 몇 해가 되든지 우리만 골 빠지고 진액만 빠지지  기어코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만 바라보고 당신에게만 소속하도록 만듭니다. 안  만들면 저는 그런 자는 저만 곯고 대대로 망하고 골탕만 집어 먹지 기어코라도  하나님이 놓지 않습니다. 아, 피로 값주고 샀는데 당신이 놓겠습니까? 당신이 또  지어 놓은 것인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그때야 하나님은  우리 남편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상대다 우리가  바라볼 자다, 우리가 의지할 자다, 믿을 자다, 맡길 자다. 복종할 자다. 섬길 자다  이렇게 말 하리라.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다시는 이 세상 말 하지 안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다시는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세상이 나를 살렸다, 세상 좋다 이  세상에게 애정을 기울여서 세상 제일주의로 세상 그 연애자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정신에 쏵 뽑아서 그 정신에 하나도 없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만듭니다.

지금 그라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얼마든지 받을 터인데 우리가 그렇게 뭐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안 남았으면 우리가 그렇게 원수들 손에 가 가지고서 눈을  빼이면서 그 가죽을 벗기면서 자녀들을 다 우리 눈 앞에서 죽이며 이런 꼴을  당하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을 거 뭐 있습니까? 지금 부르짖지 왜 하루 삼십 분씩  이 기도하는 거 안 합니까 우리가, 그 꼴을 꼭 당하고 우리가 부르짖을 겁니까?  하나님은 그래 만듭니다. 이거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때는 이 세상에 징글나고  하나님만이 우리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부르짖도록 만들겠다 그말이오  '일컬으리라' 17절에,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만 다시는 세상이 겁이 나고 신물나서  정이 떨어져서 마음에 세상의 미련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내가 기어코  만들고 말겠다.' 하나님이 이라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 보다 약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능가합니까? 아야 우리는 손을 들어야 됩니다. 회개를 해야 됩니다.

 18절에 '그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그렇게 되면 그렇게 이 세상 간부적인 이  연애를 다 끊고 하나님을 본남편으로 따라서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그  분을 믿고 의지하고 든든히 바라보고 그분에게 복종하여 그분만이 자기의 전  소망으로 삼아서 이렇게 상대하게 될 때에 요 버르쟁이를 고쳐서 요런 사람이 될  때에,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꺼냈지마는 애굽에 벌써 습관이 있어  가지고 구습이 있어서 그들이 회개할래야 회개를 똑똑히 안하고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항상 애굽에서 하던 그 버릇이 들어 가지고서 조그매라도 끼어 있습니다.

끼어 있으나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온 사람은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 외에는  전부이 광야에서 다 죽여 버렸어. 다 죽이고 고게서 그런 관련없이 하나님만 전적  바라보고 의지하는고 사람들만 가나안으로 끌고 간 것이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거울로 줬어.

 '그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이제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말이요, 동물이나 무생물이나 또  생물이나 뭐이든지 다 이스라엘 위해라. 이스라엘 위해라, 이스라엘 도우라  이라니까 짐승도 도울 것이요 원수도 도울 것이고 공산주의도 도울 것이요  공산주의를 '네가 서부 교인들을 도우라. 서부 교인들을 어깨에 메고 네가 다니라.'  하면 메고 다니야지 어짤 것입니까? 남한에 있는 신자들의 발의 티끌을 네가  해아라 하면 김일성이도 남한에 있는 그 기독자의 발의 그 발새의 때를 다  입으로 핥아라 하면 핥지 어짤 겁니까? 하나님이 이런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당신이 말하면 못할 게 없어.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이분 우리가 섬기고 이분을 바라보면 이렇게 모든 만물이 다 우리를  위하게 만들고 평안하게 살게 하는데 왜 우리가 이분을 배반해 가지고 맷정을  쓰고 망할 일로 걸어 갈 게 뭐 있습니까? 지금 매일 삼십 분 기도하라 하는데  교만해 가지고서 그 교만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안 하고 이라는 거 그게 얼마나  큽니까? 꺾어 놓으면 비참하게 꺾어집니다. 그 생명만 끊어져도 그리되고 병신만  하나 돼도 그렇고 재물만 없어도 그렇고, 당신에게 다 있는데 조그만한 하나만  없어도 다 비참하게 될 것 아닙니까? 이런데 우리가 이분을 업신 여겨서 맷정  쓰는 이런 망령된 짓을 하지 맙시다.

 19절에, '내가 네게 장가들어' '내가 네게 장가 들어' 그때야 장가 들어,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가 됩니다.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영원히 살되' '영원히 살되' 뭘로 장가 드는가? 장가 드는 걸 남자가, 남자  가지고 여자에게 장가 가는 거 아니야 여게는.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장가 들며'  주님이 우리에게 뭐 가지고 장가 들어? 나는 남자니까 남자는 남자라고 남자  가지고 장가 듭니까? 그게 육신의 장가들 거 아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가  들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되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께서 의, 당신은 의로 장가  든다. 당신의 의를 우리 의로 삼고 당신의 의를 우리 의로 삼고, 당신의 공평을  우리 공평으로 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은총으로 우리에게 은총으로 장가 들고  남자로 장가 드는 거 아니요.

 이라면, 이 계시로 형식 계시로 해놓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밀접한 유별한  것을 알리기 위해사 형식으로 그 모양 비슷하게 해 가지고서 인간 부부 이거 이  제도를 세워 놓으니까 이게 근본이요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그걸 무슨  이와 비슷하다고 인간 부부가 원형이고 하나님과 성도의 부부가 모형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게는 장가 드는 게 남자 가지고 장가 온 게 아니라. 남자로 남자라는 그 이성  가지고 장가 온 게 아니라. 의로 내가 네게 장가 들었고 의, 의로 장가 들었고,  그러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옳은 것을 우리에게 다 주는 걸로 장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장가 들으니까 그 의는 내 의가 돼 버렸어.

의는 내 의가 돼. 하나님의 의로 우리에게 장가 들고 하나님의 공변됨으로  우리에게 장가 들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장가 들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으로 우리에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진실 가지고, 남자 남성 가지고 장가 들면 이성,  이성 관계 성교가 있지만 그거 아니라. 진실하고 장가 들었기 때문에 이게 둘이  모으면은 진실 가지고 교제해. 진실 가지고. 의로 가지고 교제하고 거룩 가지고  교제하고 긍휼 가지고 교제하고 모든 은총 가지고 교제하고 이거 가지고  은총으로 은총으로 부부 생활하고, 진실로 부부 생활해. 둘이 진실로 부부해 둘이  진실을 가지고 자꾸 새끼 낳아. 진실을 가지고. 진실을 가지고서 모두 후배를  낳아. 의로 후배를 낳아. 거룩으로 후배를 낳아.

 '장가 들니리 네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네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계약은 이렇게 참 인간이 하나님의 계약을 볼 때에 세상에 그렇츰 어찌 우리가  될까? 우리가 무엇이건데 그렇게 존영해져? 하나님 말씀 안 믿습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걸, 우리는 그 죄 밖에 없는데  우리 거 통틀어 가지고 당신의 좋은 것 전부가 우리 것 되고 우리의 나쁜 것 다  당신이 다 책임 맡아 가지고 다 하는 이렇게 당신의 의와 우리의 블의와  결혼한다 말이오. 당신의 지공 지성과 우리의 편벽되고 거짓될 이것으로 더불어  결혼해서 우리의 거짓된 거는 당신이 책임지고 당신의 완전한 걸 우리에게 줘서  결혼한다 그말이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지옥 밖에 갈 것이 없는데 당신의 그  무한한 충만한 은혜로 우리와 결혼한다 그말이오 이렇게 되면 네가 그때사 참  하나님의 계약은 털끝 만치도 가간이 없이 그대로구나 하는 것을 그때야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계약하고 계약 이행에 추호도 가감이 없는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는 것을 네가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는 이제' 그렇게 회개하면 '그날에는 내가  응답하리라' 내가 너거에게 모든 말로 부르짖는 걸 다 응답을 하리라. 요 응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리라 나는' 요거 잘 들으십시오. '하늘에 응하고'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은 이 하늘에 응하고, 하늘시키는 대로 하고 하나님은 하늘  시키는 대로 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하늘은 땅 요구대로 소원대로 창에  응하고, 창 시키는 대로 땅의 요구대로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곡식이 원하는 대로 땅은 곡식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해 줍니다. 이러니까  곡식이 잘 될 것 아니요. 모든 거 다 풍성할 거 아니요?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런 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이 모든 것이 이스르엘의 소원에 다 응해서 이스르엘의 소원을 다 들어 주라.

이러니까 전부가 이스르엘을 위해서 하겠다 이랬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지금 삼십 분씩 기도하는 것과 지금 회개의 기간으로 두고  회개하는 것 이거 하면 이렇게 하나님이 멸망하는 그런 우리와 자손이 멸망하지  안하고 이런 그 축복을 받게 될 터인데 우리가 기어코 세상의 연애를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 아니면 못 살겠다' 세상하고 자기 정성과 마음과 중심과  애모는 다 세상에다 두고 세상에 있는 것에 두고 하나님은 등한시 하고 이라다가  우리가 망할 거 뭐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함으로 하나님에게 기울이고  당신의 법에 복종하는 그것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때문에 만물이  우리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그 말씀 아니요?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게 응하리라' '이스르엘에게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땅에 심어'  이땅에 뿌리 박게, 어데서든지 튼튼하게 뿌리 박게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시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요래야  요 바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흥하고 우리의 망하는 것이 요게 매였는데 우리가 존귀해지고  부강해지고 평강해지는 것이 이 하나님에게 매였는데 왜 우리가 이 세상에게  매여서 세상이 우리를 준다고서 이렇게 간부를 가집니까? 이 세상을 간부로  가지는 자, 음녀로 가지는 자, 이 세상 모든 교훈들을 음행의 포도주로 가지는 자,  하나님의 선물로 가지는 자, 하나님의 선물로 가지면 우리 복 되고 그 만물 좋고  다 좋은데 하필 이 세상으로 인해서 하나님 멀리하고 배반하는 이런 죄를 지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우리 회개해야 합니다.

 하루 삼십분 기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이래 기도 하면 우리가  요번에 가서도 공부했지마는 우리가 준비할 때 당장에 한목 몽땅 내가지고서  준비하는 길이 있는데 자기가 흠뻑 몽땅 내어 봤자 다 해 봤자 힘 전부를 해도  열 근도 안 되는데 백 근이나 해야 승리를 할 터인데 한목 몽땅 다 내 봤자 열  근 밖에 안 되니까 우리가 한목 내놔서 몽땅 준비 하는 거는 열 근 밖에 우리  실력이 안 되니까 다 내 봤자 안 되고, 제일 좋은 지혜 있는 앞으로 환난이기는  환난을 통과하는 승리하는 그 방편을 무슨 방편으로 우리가 배웠습니까? 무슨  방편입니까? 한 번 한목 말해 보이소. 진합 태산. 티끌모아 태산되는 방법으로  우리가 모아야 됩니다.

 하루 삼십 분씩이라도 자꾸 이라면은 하루 삼십 분씩이면 얼마입니까?  삼십 분이면 반 시간이가? 며칠하면 하루되지? 한 번 계산해 봐. 며칠하면 하루  돼? 마흔 여드레 하면 하루 안 됩니까? 마흔 여드레 되면 하루 되지? 마흔  여드레면 하루 되니까 이래이래 모아서 티끌모아 태산으로 이렇게 삼십 분 모아  가지고 이다음에는 우리가 그 환난을 때에 그때에 후르르르 날아서 넘어 갈 거라  말이오. 환난이 두렵지 안하고. 인민군이 왔을 때에 암만 큰 소리 해 봤자 그들이  꼼짝을 못 해.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때문에 말해도 '신사 참배 안 한다' 이래  하고서 '천조 대신을 내놔라. 불에 내가 사를께.' 일본 국기 내 놔라. 불에 사를께  해도 아무일이 없어. 이런 티끌모아 태산 방법으로 우리가 준비할 것을 요번에  배웠습니다.

 이래서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하자 하는데 왜 우리가 삼십 분씩 이래 기도하지  안하고 패역을 부립니까? 꼭 우리와 자손이 이렇게 망하고 난 다음에 그때 죽을  지경에서 나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기를 뭐 한 당대에 됩니까? 몇 해 내려 가서  몇 대를 가서 이래 부르짖어 가지고서 회복이 되니까 이런 거 할 거 뭐 있어?  여기 청년들 정신 차리라고요. 맷정 쓰지 말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 기도 후에 철야하실 분은 철야하시고 어짜든지 기도에 힘씁시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이라면 우리  앞길은 평탄하고 모든 것이 다 생명과 평강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가 세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달렸다고 해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세상에만 애착하고 나가면  우리와 우리 자손은 비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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