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간부와 본부


1984년 8월 7일 화전집회

 

본문 : 호세아 2장 1절-23절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더워도 십자가의 도의 본질과 본성을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참고 견디는 연습을  자꾸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아직까지 참 호화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치를  시험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을 지금 치를 수 있는 이 준비를 하면서 뭐 조그만한  더운 거 추운 거 바쁜 거 또 배고픈 거 어려운 거 분한 거 억울한 거 이런  사소한 것을 우리가 견디지 못하면 우리는 그런 준비를 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환경을 바꾸어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집사님 댁에 가서 잠깐  만나 가지고서 얘기를 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시련을 받는데 지금 아주  견디기가 어려워서 발버둥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만났을 때에 자기로서 그 환경이 넉넉히 이해가 되고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그 깨달음을 가져서 그 환경이 자기에게 참 온전한  기쁨이라 하는 것은 그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종류적으로나 모든 면에 다,  모든 면으로 기뻐하고 즐겁고 참, -감사한 이 마음이 나는 것을 가리켜서 온전히  기쁨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기쁨을 가지게 되면 그만 그 다음에는 믿음이  썩 나와 버립니다. 그 기쁨을 발견해야 믿음이 나옵니다.

 기쁨을 발견하기 전에는 의심이 나오고 불만 불평 원망 시비가 나오고 번민  고통이 나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되면 거기서 믿음이 움터  나옵니다. 믿음이 움터 나오면 거기에서 고 믿음을 계속하면 고 단계에서 고  믿음을 고 환경에서는 믿음을 계속할 수 있는고 인내가 생겨나옵니다.

 그래서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것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은 온전한 인내를 이루어야 되고 온전한 인내를 이루려  하면은 고난이라는 고난은 오만 고난을 다 겪어야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참 꿀과 같이 달지마는 그  말씀의 실상이 이루어질라고 할 때에는 고만 뱃속에서는 아주 쓰게 됩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먹을 때는 먹었지마는 나중에는 그대로의 신앙생활 하고 나서  연단 받을 때는 다 죽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욥 같은 사람은 아주 의인이라 동방에서 욥과 같은 의인이 없다 이랬으니까  아주 욥은 의인입니다. 의인이지마는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사탄을 시켜서 시련  할 때에 마지막에는 뭐 욥 속에서 죄라 하는 거는 다 나왔습니다. 욥이 의인이라  했지마는 불만 불평 원망 시비 낙망 뭐 오만 죄악이 다 나왔어. 다 나왔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욥에게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무지하냐고서 책망할 때에 욥이 책망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나는 참  우매무지한 인간이라 하면서 자복을 하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간구를  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를 대해 가지고서 '너희들이 욥에게 대한  말이 잘못이다 너희는 전부 외식하는 말했다 진실이 없다 정직하지 안하다  너희들은 속은 실상 그렇게 돼 있지도 않으면서 말만했기 때문에 너희는  정직하지 안하지마는 욥은 그 속에 있는 대로 솔직히 그대로 말했기 때문에  정직하다.' 욥은 칭찬하고 그 세 친구는 책망을 하고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제물을, 짐승 제물을 사 가지고 와서 욥에게 와서 제사를 드리면 욥이 너희들을  위해서 죄사해 달라고서 그래 기도를 하면은 내가 사해 주겠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욥이 회개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축복을 해  줘서 그 뒤에는 참 자기 속에 있는 구정물 앉히기와 같이 가라앉은 것이 전부 다  드러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 두시고 그 속에 있는  믿지 않는 것 불신, 불신 그것이 나오도록 해서 나와야 없어집니다. 불신이  나오도록 하고 들어 있는 원망 불평이 나오도록 해 가지고서 자꾸 쪼라대고  볶아댑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기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 닥치는 그 어려움이  다 주님 그자의 작용으로 된다 하는 것을 고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대단히  유력한 지혜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주님이 주권을 가졌다, 주권을 가졌다 하는 것은 뭣이든지  거기에 대해서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안하고 혼자 독권을 가졌다, 독권을 가졌다  독권을 가져서 아무것으로도 가감하지 안하고 혼자 권리를 가졌다. 주권을  가지시고 모든 섭리를 당신 혼자 하시는데 그 섭리하실 때에 굵닥 굵닥한 강령만  섭리하시고 사소한 것은 안 하느냐? 지극히 작은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섭리하십니다. 개미 수염 하나 요리 조리 움직이고 그런 것도 다 혼자  주권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구더기가 여기 뭉텅 저기 뭉텅 나는  그것도, 구더기 한 마리 한 마리 나고 죽고 하는 것도 주님 혼자 섭리하십니다.

요렇게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창조도 하시고 섭리도 하신다,  심지어 머리털 하나까지도, 참새 한 마리 죽고 사는 것까지도 그렇게 한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신 불신자의 전부를 당신이 홀로 주권의 능력으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예정은 영원 전에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그  예정을 그 예정 할 때에도 당신 혼자의 그 지혜로 예정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권 의지의 예정입니다. 그 이루는 것도 주권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정되지 않는 일이 나타나는 게 없고 또 나타난 일은 주님이  하지 안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을 믿어서 이렇게 양쪽에 윤곽을, 집을  짓자면 이거 대들보가 있고 뭐 기둥이 있고 이 윤곽을 딱 이루어 놓으면 그  사이는 저절로 나중에 가서는 다 건너뛰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도 근본적인 그 지식을 우리가 좀 약간 배웠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했으니까 믿는 사람은 차차 차차 어려움이 적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시험 치는데 시험이 차차 또 시험이 어려운 시험 높은 시험을 자꾸 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향상과 성장과 전진이 있지마는 그만 시험이 이제 더 어려운 시험을  치르지 안하면은 거기서 그만 중단했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러서 합격이 되면 그게 좀 지위나 권세나 수입이나 대우나  모든 것이 커집니까 쉬운 시험을 치러서 합격됐을 때에 권세나 대우가 커집니까?  어떤 것입니까? 어려운 시험이지요. 그러면, 평생 동안에 시험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시험 없기를 원하는 사람. 아, 시험 없기를  원합니까? 잘못 들었겠지 시험 없기를,  그러면, 한 번 시험 있는데, 한 번만 똑 시험 치르고 그 시험 가지고서 평생  살도록 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평생 살기를 원해요? 그러면  시험을, 꼭 같은 그저 뭐 더 어렵지도 안하고 항상 그런 시험 꼭 같은 그런  수준의 시험을 치르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점점 어려운 시험 치르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다 손은 꼭  같은데, 자, 그러면, 천상천하에 역사에, 역사에 없었던 최고의 시험을 자기는  치를 각오를 가지고서 그런 시험 치르기를 원하고 그 시험에 합격되기를 원하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최고의 시험 자, 놓읍시다. 우리가  원합니다. 이거 우리 중생된 영이 원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험이 환경과 주위에서 이래 몰아오다가 마지막에 그 시험은  어데 봉착되는고 하니 자기 생명에 봉착됩니다. 시험으로서는 자기 생명 문제 또  이거 모든 육체의 생명 문제, 영도 그 시험을 받아도 그 시험을 벌써 초월했기  때문에 시험을 받지 않습니다. 또 마음도 언간하면 시험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시험하지 못합니다. 옥중에 있으나 양심은 자유 있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육체 이거는 거머쥐고 시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마귀가 시험할라 해도 딴 거는 거머쥐고 시험 할  것이 없으니까 이 육체를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예수님께  육체로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육체로 시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걸 각오하고  마귀가 마지막에는 우리의 마음을 뭐 어지럽게 괴롭게 뭐 섭섭하게 하지만  그까짓 거는 사소한 것이요, 또 영에게는 가지도 못합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할 수 없으니까 우리 몸에다가 뭐 아주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시험합니다.

우리 몸에다 시험하는데, 우리 몸에 시험할 때에 처음에는 이 지체에 이런 시험  저런 시험 고통 시험 이런 거 있다가 마지막에는 생명을 걸어 놓은 시험을  합니다. 생명 시험 전에는 고통 시험이요 고통 시험 다음에는 생명 시험입니다.

그 시험으로 점점 높아져 갑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 우리가 병들어 가지고 오래 동안 좀 고생하는 그거는,  그거는 좀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렵다 이라는데, 순교당하는 그런 것은 그 마 그  순식간에 순교 척 당해서 끝나 버리면 좋겠다. 이렇지마는 순교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안해. 순교당하는 그 시간에 아픔의 고통이라 하는 것이 굉장한  고통이라. 그것은 도무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기지 못합니다. 인간의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 거 가지고 못 이겨.

 그거는 참 하나님의 권능이라야 이기기 때문에, 불로 연단한 것이라 그 말은  세상 시험이 다 와도, 세상 것이 다 시험해도 넘길 수 없는 그런 실력을 가진 그  승리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런 것도 자주 해봐야 됩니다.

 어릴 때는 자, 배고픈 시험이 올 때의 그것도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 그 헐벗고  추운 시험이 올 때에도 그것도 또 위해서 기도하고 또 여러가지로 외로운 시험도  기도하고 어려운 고통의 시험도 기도하고, 나중에는 심해서 눈도 한번 빼여 보구  눈도 하루 한 번씩 채 보고 또 살도 하루 한 번씩 가죽을 벗겨서 한번 그렇게 해  보고 팔도 한번 끊어 보고 다리도 한 번 끊어 보고 전기로 가지고서, 전기를  몸에다 대면 그것도 대단히 심한 모양입니다. 전기 고문하는 그런 것도 한번  당해 보고 또 사람을 요 손가락 요런 거, 말초 신경, 말초 신경 요것을 딱 달아  가지고서 신경이 잡아당기면 얼마나 고통입니까? 아마 여기 이 신경이, 신경이  나와 가지고서 이 아파서 고통하는 사람, 젊은 사람 모를 거라. 이가 아파서  고통하는 사람 더러 있습니까? 저도 요번에 이가 아파서 고통을 좀 했습니다.

그런 거는 뭐 그래 거석한데, 요 손가락을, 왜정 말년 때에 그랬어요. 요 손가락  엄지손가락 둘을 전기 줄로 달아 가지고 이래 공중에 달아 놓으면 요거 두 개에  온 전신이 달려 있어 가지고 있을라 하니까 그만 나중에 얼마 안 가서 아파서  죽는다고서, 이상하게 해 가지고 죽어요. 전기 고문보다 그게 좀 더해요.

그런데, 그것도, 한번 당해보고, 또 모베기 있는, 모베기 있는 나무에다  정갱이를 거기다 딱 끓어 앉혀 가지고 하는 고것도 한번 해 보고 또 밥을 쫄쫄  굶겨서 아주 여러 날 밥을 굶겨 놨다가 아주 소금밥을 해 가지고서 먹여서  나중에 목이 말라서, 목이 말라서, 굶었다가 음식 먹으면 목이 마릅니다. 마른데  그때 물을 주지 안하고, 물을 주지 안하고 말이지 물을 주지 안하고 앞에다 물을  딱 떠놓고 '자, 물먹고 싶지? 물, 물먹으려면 네가 지금이라도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네가 항복을 해라.' 네가 주님과 진리를 배반하라 그 말이오.

 다시 말하면 주님과 진리를 배반하라 이럴 때에 배반 안 하면은 요렇게 물을 놔  놓고 안 주면서 고통을 준다 그 말이오. 그러다가 또 나중에 안 들으면 그라면  물을 먹으라 해 가지고 물을 먹이고 그때 얼마든지 자꾸 물을 들이 써 가지고서  또 물로 고통을 주고, 이렇게도 시험하고 저렇게도 시험하는데,  그 시험에 어려운 것은 죽어도 그냥 이래 죽는 것보다 신경을 건드려 죽는 것  또 어떨 때는 이 독약을 먹여서, 독약을 먹여, 안 되니까 독약을 먹여 가지고서  내 마음을 변하게 해 가지고서 내 마음과 생각과 모든 혀가 변해 가지고  변질되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을 배반할까 두렵습니다. 독약을 먹여 가지고  어떻게 되는 거, 이런 저 저런 거 저거들이 하는 거 열 가지 시험할 상바르면  나는 스무 가지 시험을 자꾸 기도한다 말이오. 열 가지 시험하는데 그 시험을  기도를 자꾸 해서 '이럴 때에 주님이 나를 도우셔서 내가 그런 것을 다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럴 때에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인내를 만들어라, 인내의 온전함을  이루라, 온전한 인내를 이루라 이것은 너희로 하여 그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거기에도 주님의 사랑함이 계속하고,  그때도 주님을 바라봄이 계속하고, 그때도 주님을 두려워함이 계속하고, 그때도  주님을 의지함이 계속하고, 그때도 주를 복종함이 계속하고 요렇게 복종하는  요것이 세상이 이래도 저래도 아무것에도 침노를 받지 않는 고 사람이 되어지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어. 요한복음 14장 끝에 보면 세상 임금이 와 가지고서 나를  이렇게 이런 시험 저런 시험 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죽으심은, 참 그 고난은 우리가 상상도 못 할 고난인데,  우리의 고난 전부를 다 대신 담당한 고난인데 그런 고난을 하러 왔지마는 주님은  딱 각오하기를 그렇게 발표했어요. '저는 내게 상관이 없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은 세상 임금이 내게 대해서야 어떻게 하든지  내가 거기에 대해서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러면, 그것도 주님이 한 것이지마는 세상 임금이 와 가지고 고문을 할는지  고행을 할란지, 나를 억울하게 매장을 할란지, 그래 아니면 나를 직장에서  쫓겨나 가지고 배고프게 할란지, 헐벗게 할는지 주위 환경 사람들이 잘못해  가지고 나를 억울하게 잡혀서 징역, 징역살이를 갈는지 어떤 고문과 고행을  당할란지, 어떤 모진 질병 암병이 들는지 무슨 병이 들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그거는 절대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시는 것이지  구원 위해서 하지 않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천만 가지 죄를 지어도  죄지은 값으로서 믿는 신자에게 해독이 오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요거 믿어야  됩니다. 성경에, 왜? 고것은 주님이 대신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거는  없습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어 가지고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왔다 하면  '이거는 죗값으로 그렇다' 아닙니다. 죗값도 아니오. 죄를 지었으니까 그 죄를  회개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건설적으로 우리에게 회개시켜서 성화시키기  위해서, 그 죄를 뿌리뽑고 고치기 위해서 한 것이지 죄의 벌로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별것이 다 있으니까 자꾸 연습을 해요. 이것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나면  주님이 '네가 그러면 실지로 한번 당해 봐라' 또 한번 당하게 할 때에 또  거기에서 처음에 빠닥거리다가 실패하면은 또 새로 힘을 써 가지고서 두 번째는  이기고 자꾸 그래 연습해서, 이 세상이 시험하기를 저거가 많이 해봤자 열  가지를 시험밖에는 못 할 터인데 이 사람은 벌써 스무 가지 시험을 해서 연습을  다 해 놨다 말이오. 준비를 다 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행여나 올까 올까 하니까 바라고 기다렸던 준비해 놓은 거 반도 안  써서 다 그만 다 지나 버리고 승리 다 해 버렸는데 뭐 그럴게 없거든.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 기독자들은 준비가 중요합니다. 준비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앉아서 오만 건 다 준비해 봐요. 그런 거 준비하면은 정신도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또 주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는 점점 강하고 담대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돼 갑니다.

 이러니까, 성령의 감동보다 우리에게 더 귀한 것이 없어요. 성령의 감화가  와서, 우리 마음을 성령이 감동돼 성령이 감화하면은 우리 마음은 옳고 바르고  참된 거 가치 있는 것만 사모하지 가치 없는 그런 것은 생각하지를 아니합니다.

성령이 떠나면 마귀 그놈이 생각해 봤자 백해무익으로 백 가지 가운데 한내끼도  유익이 없는 전부 모든 면으로 전면으로 손해 갈 것 그것만 자꾸 우리 마음에  넣어 줘 가지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 그라면 승리를 원하는 사람은 전투를 해야 승리가 있지 전투가 없으면  승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향상과 전진을 원하는 사람은 그 시험을 치러야  향상과 전진이 있지 그것이 없으면 향상과 전진이 없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다 못 해도 역사의, 역사의 최고의 시험, 최고로 어려운 시험을  치러 가지고, 최고의 어려운 시험을 치러서 그 시험에도 내가 중단 당하지  아니하고 꺾어지지 아니하고 계속할 수 있는, 천하의 악령과 악령 이 이용하는  악령의 군대 모든 것을 이용해 가지고 나를 시험할지라도 내가 그 시험에 막히지  아니하고 시험에 툭 통과하는 것이 그것이 뭐냐 하면 온전한 인내라. 온전한  인내라. 천하에 있는 시험이 다 와도 그 시험을 그저 무난히 승리로 통과하는  그것이 온전한 인내입니다. 고만 그 시험에 꺾어져서 중단 당하고 그 시험에  신앙이 계속하지 못하면 그것은 인내가 거기에 대해서 온전치 못함입니다.

인내의 온전함을 이루라 그러면 너희로 하여금 온천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 시험이, 시험이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시험 없기를  원하는 사람. 시험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저 뒤에 시험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네요. 저 학생시험 없기를 원하나? 그라면  너는 자구 저 내려가서 하늘나라 제일 밑창에 가거라, 제일 밑창 에. 그 너 갈  곳은 그곳이다.

 온갖 시험을 우리가 원하든지 안 원하든지 당신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에게 시험이 많습니다. 원한다고 주시는 것 아니오. 또 우리가  원한다고 시험이 물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무지한 우리 주관에게 제재를  받지 않는 이것들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제재 받지 안해요. 우리가 뭐  이해하고 좋아한다고 거기에 따라 우리 비위 맞추어서 그런 하나님 아니오.

우리가 어쨌든지 당신이 전지전능의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영원히 좋도록만  하십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시험을 원하는 것이나 시험에 불평이나 시험을  발길로 차는 것이나 그런 거는 저만 죽을 지경이지 아예 소용이 없어, 암 만 해  봤자. 무엇이든지 시험 닥칠 때 그 시험에 대해서 자기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해석을 해서 깨달아서 보면 이제 온전한 기쁨이 나옵니다.

 이것을 참 내 신체적으로도 그게 기쁨이오. 제일 좋은 일이오. 또 금시에도  좋은 일 내세에도 좋은 일, 또 주님에게 대해서도 좋은 일, 믿음에 대해서 좋은  일, 영광에 대해서도 좋은 일,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 좋은 일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저 깨닫고 온전히 기뻐하는 기쁨을 가지게 되면 믿음이 움터  나옵니다. 믿음이 움터 나올 때에 고 믿음을 하나씩 둘씩 계속을 하면은 차차  온전히 이제 열매 맺어집니다. 온전히 성취돼져 갑니다. 온전만 이루면 그만 다  돼요.

 호세아서 2장 모두 찾았습니까? 호세아서 2장 1절로부터 끝절까지 각각 모두  읽어봅시다. 잠깐 호세아서 2장 1절로부터 끝절까지 전장을 한번 고요히 읽어  봐요. 전장을. (각각 호세아서 2장을 읽음)  네. 대개 아마 깨달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호세아서 2장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주님이 본 남편이시오 또 이 세상은  연애하는 간부로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본남편이 있고 간부가 있고 또 주님의  아내인 이 정절 없는 이 여인이 하나 있고 또 여인에게서 생산된 자녀가 있고  그렇게 네 인물들이 거기에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고게 암미라 또 루하마라 하는데 그 뜻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모르나, 고 밑에  삼과 사에 대해서 삼은 '내 백성아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안 들려요? 안 들리거든 고함 질러요. 안 들리면 손해 갑니다.)  여기에 2절에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이  할 것이요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리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라 또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라' 이라는 것은, 요  자기만 신앙을 지킬게 아니라 그 신앙 선배에 대해서 그저 무조건, 무조건  신앙이면 위에 선배를 따라서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유전 신앙생활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삼가해야 됩니다. 물론 신앙 선배가 귀중하기는 귀중한 것이지마는  그저 신앙 선배라고 해서 따를 것이 아니라 신앙 선배가 음녀인지 음녀 아닌지  그것을 우리가 살펴보고 따라야 되지 그것도 살펴보지 안하고 따르면 안 됩니다.

 교파 가운데에 과거에 천주교에서 개혁교가 지금 나왔는데, 천주교를 지 금은  이제 천주교에 대해서 만일 달리 말하면 앞으로 지금까지는 안 그렇지마는 큰  화가 올 것입니다. 천주교가 그 교리와 신조상 이단이냐 말하면 이단이라 할  사람이 지금은 더러 있지마는 이단이라 할 사람 쳐놓고 학자 중에는 없다고 할  만치 그만치 점점 희귀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리 가속도로 타락했느냐? 어미를 살펴보지 안하고 제 에미라고  좋아하고 신앙 선배라고 좋아하는 거기에서 다 망하게 됐던 것입니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아무리 네 신앙 선배라도 그 신앙 선배가  바르지 안할 때에는 바르지 안한 것을 네가 대항해서 바르지 않는데에서  어머니도 반성하고 돌아오도록 이래 해야 되지 바르지 안한 신앙을 자기  선배라고 해서, 또 자기의 그 교계의 머리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교파와  계통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됩니다. 고 선배 자기가 소속한 교파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그걸 고치도록 해 가지고 해야 되고, 자기 선배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그걸 말해서 고쳐 가지고 해야 되지, 그 틀린 것을 그대로 자기  선배이니까, 자기 교파 소속이니까 해 가지고서 이렇게 따라가면 안 됩니다.

 왜 쟁론해야 되느냐? 쟁론해야 되는 것은, 쟁론하라 말은 서로 변론하고 또  논리하고 이래서 논쟁을 하라 말입니다.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이제 이 믿는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구속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아내인데, 이렇게 아내 노릇을  안하고 자꾸 간부하고 이래 친밀히 이래하고 하니까 그만 하나님께서 그 아내를  고만 버려 버렸다 말이오. '내 아내가 아니다. 또 나는 제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한다,  음란은 이거 간부를 좋아하는 연애성을 제하라 그 말인데, 이 간부는 무엇을  가리키는고 하니 이 세상의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문화 이 세상 그런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는 간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온 세상과 세상에 있는 문화는  간부도 될 수 있고 음녀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제 간부를 좋아하고  간부로 더불어 그렇게 친교를 맺는 그런 것을 제하게 하고,  그 이상합니다. 이번에 집회 때는 그전에 주신 이 말씀을 자꾸 주십니다. 이  말씀을 주시는데, 여러분들이 좀 깨어서 짐작을 하면, 하나님이 지금 우리 한국  교회에 이모를 치료하시고 저모를 치료하시고 치료하시는데, 지난번에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복종하라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이렇게 늘 말씀을 몇 집회했는데 이번 집회는 성도들이 세상을  대하여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하는 그 면을 자꾸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거 생각해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자꾸 하나님이 나에게 이 설교 할  때에, 내가 뭐 준비한 것도 아니고 설교할 때에 나로 통해서 말씀하게 하신 그  말씀대로 하는데, 그 말씀 한 것을 뒤에 가만히 살펴보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현재에 문화라는 이 문화와 교회가 어떻게 관계를 가지고  있나, 또 어떤 그럼으로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가 되어 있나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이 삼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과  교회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가  되어 있느냐, 그러면 우리가 이 관계되어 있는 이것을 고쳐서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것 같습니나.

 거기 대해서 생각은 가졌지마는 별로 많이 말은 안 했었습니다. 안 했는데.

이점에 있어서 많이 하나님께서 자꾸 말씀을 하시는데 말씀을 하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살펴보니까 과연 제일 중요하다 오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는 이면이  중요하다 하는 것이 자꾸 생각이 돼집니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너희 신앙의 선배, 또 상고의 교파 또 교리  신조 그런 것을 쟁론해서 자꾸 성경 말씀대로 수정을 해 가지고서 갖추어  고쳐가도록 그렇게 해라. 얼마든지 논쟁해 가지고 틀린 것을 자꾸 시정해 가도록  이렇게 하고, 그저 수가 많다고 따라가지도 말고 또 연대가 깊다고 해 가지고서  따라가지도 말고, 참 이상합니다. 이게 점점 우리에게는 참 위험성과 중요성을  가진 것은 사람들은 그만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역사성을 너무 존귀하게 여기고,  또 이렇게 모든 대중들이 말하는 이 사회성을 너무 존중하게 여기고, 고만 이  역사성과 사회성이 성경의 권위성을 완전히 박멸하고서 나가는 이런 시대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논쟁하라.' 그러면, 아무리 우리가 총공회이지마는 총공회에 대해서 틀린 것은  틀렸다고 그렇게 말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전에 우리 진영 가운데에서 우리 정치가 나쁘다 하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병입니다. 분명히 제가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병들었지 이 정치가  아직까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병들어서 인본으로 안 흘러가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고 전부 저거 좋게 하는 저거 인간 놀음 인본 놀음 인간  놀음을 안 하려고 하는 그것을 정치가 잘못됐다 하는데. 아직까지는 잘못되지  안하고 바로 가고 있습니다. 그거는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정치를  틀렸다고 하는 그 사람의 개적이나 거기 속한 사람이나 그 모든 것이 흐리게  나가는지, 속화돼 나가는지 바로 나가는지 하는 것을 그것을 보면 알 것입니다.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내 아내가 아니라 말은 그 밑에  읽어보면은 이제 간부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 아내가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이  이혼해 버렸다 말이오. 하나님이 이혼해 버리면 이거는 성전 밖마당이 돼서  하나님이 간섭하지를 안합니다.

 벌써 성도들이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고 연애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얼마 몇 번 징계도 하고 이렇게 하시다가 나중에는 안 들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만 버려 둬 버립니다. 버려두면 그 사람은 뭐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내버려둡니다. 측량을 못 하게 했습니다. 관리를 못 하게  했습니다. 간섭을 못 하게 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것과 있는 걸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회개를  얼마동안 하고서 하나님에게 참 조심해서 살면 하나님의 간섭이 세밀히 오고,  하나님의 간섭이 없기 시작하면 아주 간섭이 없어 어떻게 해도 내 버려둡니다.

그라면 일년도 허사 이년도 허사 십 년도 허사 어떤 사람은 평생 허사로서 자기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불쌍하게 가련하게 나가게 됩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아내가 아니라 말은 이것은 택자가 아니라 그런 말도  아니고 이거는 신자가 아니라 말도 아니고 간부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다  그 말이오. 요한계시 18장에 보면 '나는 과부가 아니라 나는 남편이 없는 과부가  아니라 나는 여황이라 그러기 때문에 나는 무슨 망하거나 그런 일이 없다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하루 동안에 너희에게 멸망이 이른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세에 일반 신자 일반 사람들은 뭣 때문에 망하느냐 하면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망하게 되고 거기에 따라서 물이 들어서 택함을 받은 중생된 사람도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좋게 하는 거 이것으로써 성도들이 망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나는 과부가 아니라 그 말은 나는 남편이 없지마는 나는, 과부 같으면 남편  없으면 불쌍하지마는 나는 여황이라 남편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여황이라 나는 남편이 없다 그 말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독단으로 살 수 있고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을 구차히 이렇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뭐 관련을  가지고 답답스럽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하는 그런 인간 심리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음란을 제하게 한다 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얼굴에서' 그 말은 세상이 그에게  가득 찼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그리 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니라 세상의 것은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인데,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인데 정욕도 가고 육체도 가고 모든 것이  가서 없어지는 그 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 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그 얼굴에 음란이,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러면,  얼굴에 음란이 있다 그 말은 그 사람의 안면에 음란이 있다 그 말인데, 그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순전히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그런 것의 애착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애착은 가지지 안하고 거기에  기울어져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 있다 그걸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제하기 전에는 우리가 이 주님에게 소망 두어서 그저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좋아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주님을 부러워하고, 주님을 섬기고 그 전부  내 모든 것이 주님에게 다 매달리고, 움직인다고 하면은 그 분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이것이 우리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그 반대로, 주님이 자기에게 그런 상대가 돼야 될 터인데  주님은 그 상대가 되지 안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그런  상대를 가지고 있는 이것이 뭐이냐? 그 얼굴에 음란한 얼굴이 가득 찼다,  얼굴에도 음행이 꽉 베어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알을 하는 것입니다.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하는 것은 자기가 이렇게 복음 운동을 한다든지 또 뭐 구원  운동을 한다든지 전도 운동을 한다든지 교회 운동한다든지 자기가 모든 신앙생활  하면서 다른 사람을 기르는,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기르고 이끄는 그 면을  가리켜서 여기에 유방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길러서 전도도 하고 또 선교도 하고 목회도 하고 또 설교도 하고  이러지마는 그 유방 사이에는 음란이 가득 찼다. 유방 사이에는 자기가 목회해서  후배를 기르는, 사람을 기르는 데에도 세상이 그에게 가득 찼다. 세상이 가득  찼다. 하나님 좋아하는 것보다도 세상 좋아하고 하나님 가까이 하는 것보다도  세상 가까이 하고, 그 사람의 젖을 먹으니까 그 사람의 젖을 먹고 그 유방에서  젖을 먹고 이래 지내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이 차차 가깝고, 하나님보다 세상이  똑똑히 보이고, 하나님에게 내가 동정보다 세상의 동정이 많고, 하나님에게  애착보다 세상의 애착이 많고 하나님에게 욕망보다 세상에게 욕망이 많고 차차  차차 하나님 보다 세상이 그에게 많이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보면 알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금식을 하고, 금식을 하고 철야 기도를 하고서 기도를 하고  또 기뻐하고 욕망하고 하는 것이 기껏 그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의 소망,  세상의, 세상에 있는 모든 형편과 사정의 경제면이나 지식면이나 그런 것이  좋아지는 그 면에만 욕망을 가지고 있는 그것이 그런 교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파를 보면 알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여러분들이 자세히 들으면, 그 에미는, 그 에미는 내 아내  아니다. 나는 그 남편 아니다. 그는 그 음행이 그 얼굴에 가득 찼다. 가득히  찼다. 그 유방 사이에도 음행이 가득 찼다. 이래서, 아주 지금도 교회에서 뭐  부흥사 다니는 부흥사를 봐도 그 부흥사가 기껏 이 세상이라는 수평선 이하의 것  가지고,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더불어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했는데 이 위의 것이 아니고 이 불신자와 같은 이 세상이라는 수평선  아래에, 사망이라는 수평선 아래에 이 모든 영원 완전 영원 완전 불변 이것이  아닌 그 이하에, 그 선 이하에 있는 그것 가지고 서로 '예수 믿으면 이것 좋다  이거 된다 저거 있다' 하는 모든 소망이 그것이지, 이 사망선 이 세상선 위에  있는 것 그 위의 것을 가지지 안한 그런 것이 전부 음행이오.

 이러니까, 이 젖을 먹이는 유방 사이에도 음행이 가득 찼다 그 말은 설교  속에도 전부 세상을 좋아하도록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탐하도록 만들고, 세상에  욕망이 있도록 만들고, 세상 얻는 말, 세상 취하는 말 세상이 좋게 되는 말 자꾸  이것만 자꾸 말해준다 그거요.

그런데, 그 자신이, 자신이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자라. 그 자신의 기쁨도  세상으로 기쁘고, 근심도 세상으로 근심이고, 또 담력이 전부 용기 있게 제가 큰  소리 뻥뻥하는 것도 세상 가지고 큰 소리 뻥뻥하고 또 저희가 자랑하는 것도  세상 거 자랑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간부하고 음행을 하고서 있기 때문에 그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다. 나도 저거 남편이 아니다. 요렇게 이별했다. 이별한  것을 자기가 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아, 나는 이 면에서 주님과 지금 나는 멀어졌다. 자기를 모르면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고 다른 사람을 인해서 깨달으면 잘 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2장에  말씀하시기를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둘러 있다 그 말은 네가 이 사람을 보면  참고가 되고 저 사람을 보면 참고가 되고 많은 사람을 보면 참고가 돼서 많은  사람으로 인해서 너를 알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남의 눈에 티가 보이거든 그 티로 인해서 네게 있는 것을 찾으면 그  티와 같은 그 종류가 들보만치 너에게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의 그  단점이나 잘못된 점을 네가 발견하거든 그거는 어디다가 써먹을 것이냐?  그것으로 인하여 네게는 그와 같은 것이 백 배 천 배도 더 크게 많이 있는데  그리만 써먹을 일이지 남의 단점을 보고서 그 단점으로 그 사람을 공격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는 그런 것으로 쓰면 너는 망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남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말이오.

그래 요새 모두 무슨 회니 무슨 회니 하는데 그 회 보면 전부 이 호세아서를  아는 사람들은 보면 알 것입니다. 보니까 그 하는 것이 음란에 음란에는, 음란  유방 속에 막 음행이 가득 찼어. 그 유방 속에는 음행이 가득 찼어. 그 교훈  속에는 음행이 가득 찼고 그 운동 속에는 음행이 가득 찼어. 그 사람들 자체가  벌써 세상하고 단짝 돼 가지고서 본부하고 이별한 것도 몰라요. 이별된 것도  몰라요. 본부가 어데 섭섭해서 삐꾸어 돌아가 있는지 섭섭한지 그것도 몰라요.

그러면, 세상하고 하나돼 가지고, 전부 동정하는 거나 소원하게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자기를 모르거든 교파를 보십시오. 다른 교파, '그 교파는' 눈감고 생각하면  '그 교파는 음녀로 더불어 미혹을 받고 있다, 그 교파는 간부로 더불어 음행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은 지금. 그 교파는 주님과 이혼을 당하고 있다, 주님이 지금  사랑하셔서 애를 터져 가지고서 애달아하면서 자꾸 깨우치는 그 깨우침이 있고  주님과의 관계가 지금도 잇겼다 끊겼다 잇겼다 끊겼다 자꾸 이라고 있다, 그래도  주님이 인정하고 주님과 영교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볼 수 있어. 그 입으로 나옵니다. 보는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제가 ○○○ 목사님을 여름에 한 번씩 오면 꼭 서부 교회 강단에 세웁니다.

강단에 세우는데. 그 세우는 이유는 어데 있느냐? 언제 합동 번역을 할라 할  때에 합동 번역에 이 합동 번역은 우리가 죽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 수십만 명이  죽어 가면서 순교를 당해가면서 개혁을 해 놨는데 어떻게 지금 우상 종교와  우리가 함께 성경 번역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멧세지를 내가지고 전국에  돌렸습니다. 전국에 돌리나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미개한 사람이라고 다  이렇게 말하고 정죄해 버렸는데 저는 그것을 그때 찬성하고 그것 때문에 제가  대우를 하고 존경을 합니다.

이제 지금은, 오늘이 어떤데, 공산주의 민주주의라도 다 합해지고, 아주  부수모수(父讐母讐). 부모와 원수되고 어머니와 원수되고 이렇게 원수라도 다  화평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지는 이 세대에 뭐 그런 말하는가,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러니까, 그 전부 내세운 간판, 내세운 광고, 내세운 선전 모두 운동하는 그  전부가 다 세상과 짝되어 가지고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한 덩어리 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이래도 모릅니까 여러분들이!  내가 언제 서울에 한번 갔다가 가보니까 뭐 주일학교 학생보다도 설교를 못  해요. 그 순전히 세상 운동이야. 어리석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합니다.

온 천하가 한 덩어리 됩니다. 이래야, 짐승과 일곱 줄과 열 머리가 똘똘 뭉쳐  하나 되고 하나 안 된 거는 뭐이 하나 안 됩니까? 뭐이 하나 안 됩니까? 뭐이  하나 안 됐고? 어린양 하나 안 되고, 또 진실한 자 그것만 하나 안 됐고,  어린양과 어린양에게 속한 진실한 자만이 하나 안 되고 그 나머지는 전부 하나가  돼 가지고서 어린양으로 반대되는데 그 단체가 좋기는 좋지마는 하나님과 진리  떠나서 단체 되는 것이 무엇이 좋다 말이오 좋기를?  지금은 말하지마는 나중에 그 사람 잡아 죽여요. 벧세메스로 가던 그 소가 제물  된 것 제가 율법궤를 끌고 갔기 때문에 그 수레를 태워 가지고서 제물이 됐어.

이렇게 옳은 증거를 해야 이제 순교가 돼서, 옳은 증거해야 순교하지 뭐 저거  하자는 대로 다 하는데 누가 죽여? 저거 편이니까 옹호나 하지 죽일 자가 누가  있어야지?  '어리석게 저런 소리하면 죽을 줄 모르고 저런 소리한다' 하는 또 어리석게  보는데 또 그 사람은 '이렇게 해야 홀딱 한목 완성을 해 버린다' 하는 또 그런  수입면을 보기 때문에 또 하고 있다 그거요. 서로 이 사람 무지라 저 사람  무지라 하는데 누가 무지인지 가 봐야 알지.

그런고로,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왜?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얼굴은 간판 아닙니까? 간판, 겉으머리 나타나는 것마다 겉으머리  나타나는 것마다 이 간부하고 한 덩어리 된 그것만 나타난다 그 말이오.

세상하고 짝해 가지고 권세는 세상 권세. 권세는 돈 권세도 세상 권세요, 정권  권세도 세상 권세요. 다수 권세도 세상 권세요 그는 하나님의 권세가 아닙니다.

진리의 권세, 진리의 권세 영감의 권세 성경 말씀 권세 이것만이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이러니까, 얼굴에는 음란이 가득 찼다 그 말은 얼굴은 간판을 말하는 거요.

간판을 말하는 것인데. 나타나는 것마다 전부 세상하고서 한 덩어리 되어,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이것이 이 성경을 배움으로 우리가 깨달아서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이거는 다 자기보다 큰 교파에 대해서도 말하고 또  자기들보다 위에 있는 지도층에 있는 선배들에게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얼굴에 음란이 나온다 그 말이오. 보면 그 발표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발표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세상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그렇지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더라 그  말이오. 이걸 보이지 안해요? 안 보입니까? 이래도 놀래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마구 온 세계가 홍수 밀듯이 이 세계가 울려 가지고서 지금 인간 놀음이  움직이고 인간 놀음이 앞서 가지고 이렇게 교회라 하는 교회는 간판만 붙이고  교회라는 간판을 이용해 가지고서 이 땅위에 지상 운동을 하고 있는 이런 것이  안보여집니까? 이걸 운동해 가지고 자기네들 출세나 하고 돈벌이나 하고  거기에서 이름이나 높아지고 사다리나 삼고 이게 전부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세상에서 유리해지고 세상 소망을 가지는 것이 은밀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시는 완전하신 그분을 상대하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

 얼굴에서 음란을 제해 버려라. 그러면, 이 말은, 우리는 그 얼굴에 음란이 나온  것을 보고서 그는 음녀요. 주님의 아내도 아니요 주님은 그의 남편도 아니니  거기에 따라가면 안 됩니다. 이래도 그 말이, 그것, 이 말을 똑똑히 말을 못  해요. 왜? 이름을 말하면 당장 시비해 이름을 말 못 한다 말이오. 이름을  말못해. 이렇게만 말하지 더 이상은 말하지 못해요. 그러면 자기네들이 알거라  그거요.

 설교를 해도 '저 유방에 음란이 가득 찼다' 유방에 음란이, 유방은 이게 유방  아닙니까? 유방 사이에 음란이 가득 찼오, 그러니까, 음란, 설교도 보니까 설교  속에 음란이 있다 그 말이오. 그 설교가 자꾸 세상하고 한 덩어리 만들고 세상을  갈급하게 만들고 세상을 부럽게 만들고 이러니까 세상을 부럽게 만든다 그  말이오.

 저 미국에 가 가지고 시민권 떡 얻어 놓고서 이래 와 가지고서 가끔 가다가  하번씩 시민권 척척 한번 자랑하고 또 이런 거 뭐 자랑하고, 이러니까, 자꾸  만나면, 만나면 미국 갈 행여나 운동이나 해서 미국에 갈까 싶어서, 만나면 그  사람한데 원하는 것은 혹 미국을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그런  걸 원하고 있고, 또 그런 길을 열어 줄 아무런 힘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또,  열어줄 듯이 또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래하면 거기에 따라서. 이러니까 한국에  있던 사람이 한국은 위험하니까 피난해서 미국으로 날아갔던 사람들이 시민권  얻어 놓고 미국에 오니까 그 사람은 '아, 이 사람은 뭐 총회장을 만들자  노회장을 만들자 이 사람을 뭘 만들자' 하는 것은 다 땅의 것을 탐한 데서  보니까 아주 음란한 것이 얼굴에 가득 찼고 유방에 가득 찼으니까 그 사람  만나면 간부를, 간부를 친밀하게 간부를 소개를 해서, 간부 중매를 해서  간부하고 밀접해질까 해서 그 욕망에서 하고 있다 그거요. 이런 것을 봐서,  눈으로 봐서 깨달을 때에 사람들이 확확 깨어지는 것입니다.

 '유방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나던 날과 같게 한다  말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빈손으로 나지 안했소? '벌거벗겨서'  땅위에서 저에게는 아무 소득이나 아무 이득이나 자기 수입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그 말은 뭐 이 땅의 것이 와 없어요. 땅의 것이 있는데? 음녀하고  친하면 음녀가 얼마든지 많이 주니까 많이 있눈데? 그거는 저희의 기본구원만  있지 건설구원은 털끝만치도 없다 그 말이오. 건설 구원은 털끝만치도 없다.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그러면 나중에 벌거벗기는 것은 이런 어려운 시험하면 확 뺏겨버리고 저래  시험하면 또 뺏기고 이래 가지고 믿음 다 팔아 버리고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믿음을 다 팔아서 아무것도 없어. '벌거벗기고' 나던 날과 같이 벌거숭이를  만든다 말이오. 나던 날은 아주 벌거숭이 아니소? 아무것도 안 입지 안했어?  그냥 그래 피투성이로 나오지 않아요? 물만 쓰고 나오지 안했소? 나던 날과 같이  그와 같이 되리라. 아무것도 이 세상에 와 가지고서 수입한 것을 없게 한다,  기독자의 수입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간부 것이야 많이 있지요. 간부의 것,  이래 가지고, 제가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갔었는데, 지금은 뭐 대학도 많지요.

그때는 대학이 몇 개 안 됐는데, 대학의 총장이 넷이고 총장이 넷이고 장관이  일곱이고, 그 교회 한 교회에, 그렇게 똘똘 뭉쳤어요, 보니까, 그래 집회를  하는데. 금요일까지 다른 데는 하고 마는데 그라고 나니까 자기네들이 모두 다  은혜 받았다고 이라면서 주일은 봐 주고 가라고 나도 속으로 좀 보고 싶었는데,  왜? 그 모두 그런 높은 사람들은 한번씩 가끔 가다가 뜨문 뜨문 나오지 안  나와요. 평소에 물어 보니까 주일날도 한 달에 한 주일 지키거나 말거나 그렇고,  또 이렇게 뭐 새벽기도는 전혀 없고 그래요. 그런데 그 주일은 한다 하니까 그날  보니까 대학 총장이 하나가 덜 나왔고 장관들은 다 나왔어. 그래 가지고 그때 이  음행에 대해 가지고서 강하게 해 놨습니다. 해 놔도 원첨 뚝뚝해 놓으니까 그  대패침으로 찔러야 뭐 그까짓 거 찌르거나 말거나 면역성이 많고 강해 놓으니까  약발 안 받아요. 실컷 나 딴에는 아주 열을 내가지고서 한 시간 말하고 이라니까  나중에 찾아 와서, 찾아온 사람이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웃으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도 찔러서 치료된 것이 안 보여요.

 '그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구원 이룬 거는 하나도 없다 말입니다.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광야 같게 되게 한다 그 말은 아무것도 자기의 건설은  하나도 없게 한다 그 말이오. 광야가 아니고, 자기 집안 이웃도 있고 뭐 건설도  있고 뭐 있지 않습니까? 광야에는 자기 의지할 거나 자기 소유나 또 그런  조직이나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 지금은 절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한 때가 떡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광야 같게 돼  버려요, 광야같이. 자기 한 일은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없어. 다 허무해. 정승  죽었을 때, 정승 말 죽을 때는 조문군이 많지마는 정승 죽을 때는 아무도 오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

 내가 언제 보니까 어떤 책이 나한테 왔는데, ○ 정권에 대해서 이래 썼는데  내가 그걸 두 장인가 석 장인가 읽고 그 다음 안 읽었어. 누구에게 주면서 '이거  읽고 내용을 좀 보고해라' 보고는 내가 묻기로 했어. 자기가 반성하는 것이더냐  ○ 정권을 헐어서 좀 사다리를 삼으려 하는 것이더냐 하는 서너 방면을 물었어.

물으니까 '헐어서 사다리를 삼으려 하는 그런 것이 좀 많습디다.' 그 선이  가늘고 너무 시야가 좁기 때문에 그렇지, 그 시야가 좁기 때문에 그렇지 조금  지나가서는 볼 때에 '아, 이 사람이 나도 등용하면은 배은 할 사람이로구나'  고렇게 그 결산을 대는 것입니다. 사람 이 자기를 감추지 못해요. 자기 된 대로  감추지를 못합니다.

 '광야 같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이러면 마른  땅이, 땅이 바짝 말랐는데, 곡식은 있는데 곡식이 물이 바짝없이 마른 땅이 돼  놓으면 얼마나 갈급합니까? 그 모든 거기에 속한 거는 다 갈급해. 마른 땅 물이,  수분이 없으면 거기 심기워져 있는 식물이 얼마나 갈급하며 그 땅은 얼마나  갈급하겠습니까? 이와 한 가지로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전부가 다 그는 다  고갈하게 된다 그거요.

 어떤 면이 고갈하게 되는가? 그는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은혜는 하나도 없고  세상 것뿐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말하면 그는 아주 바짝 말라서 생기가 곧  말라서 죽을 지경이지 아무 생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걸 말합니다.

 '죽게 될 것이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이러니까,  이제 신령한 은혜는 하나도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  선배가 중요합니다. 목사가 벌써 음행을 하고 간부하고 목사가 음행하고 또  설교에서도 벌써 음행 설교, 세상하고 한 덩어리 되는 거 우리는 세상을 완수  삼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이용하지 세상에 이용할 것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내가 따라가거나 섬기거나 높이거나 그를 위하거나 그럴 가치는 하나도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는 빨리 그런 걸 자기네들이 살려면 정신 차려야 되지 뭐 그래 가지고서  우선 평안하고 먹고살기 좋고 대우 좋고 평안하고 이라면 좋은 줄 알지마는  대우가 좋으면 며칠이나 살 것입니까? 오늘 끊어질지 아요? 몇 날이나  가겠습니까? 그거 뭐 소용없소. 어리석은 사람이오.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이니라'  에미가 음녀가 돼 놓으니까 낳은 자녀도 모두 음란한 자식들이라. 거기에서 전도  받아 가지고서 자란 모든 것도 전부 그것이 예수 믿는다는 것이 전부 세상에  속했고 세상 섬기고 세상에 욕망 가지고 전부 땅에 속한 인간들이지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 천국 소망이나 그런 건 없다 그 말이오.

 뭐 말을 못 하든지 다른 사람 욕을 하든지 어쨌든지 주님과 천국을 위하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말하고 천국을 말하고 부활과 심판과 무궁세계를 말을  하면은 그는 하나님의 귀한 종입니다. 아주 정절 있는 그런 어머니입니다.

 이러니까, 그 교인들을 전도해 가지고 길러 놔도 전부 세상 자식을 다 만들어  간부하고, 간부하고 낳은 것이지 주님하고 둘이 낳은 것이 아니라. 주님하고  둘이 짝짝꿍 해 가지고서 이렇게 낳은 것이 아니고 전부 이 세상하고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전도해서 얻은 모든 교인들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 그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  임이니라'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이래서, 교역자가 하나 음란해지면 그 밑의  교인들은 다 그래집니다. 교역자가 벌써 속화가 되면 그 밑에 있는 교인들도  전부 속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만 이렇게 해 나가는 가운데에서 자꾸 자기가  바꾸어집니다. 얼마 전에 그런 설교했는데, 그 제자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배타고  가라 하니까 그 사람들이 배타고 간다고 배 젓고 이라는 거 그것이 자연을  사용하는 것인데, 자연 사용하는 거 그거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사용하지마는 그 골자는 주님이 가라 해서 주님과 진리 주의 말씀 이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이 두 가지를 고만 배 노 젓고 풍랑이니까 거슬리고 하니까 가도록  하려고 이렇게 애쓰는 가운데서 차차 차차 주님은 희미해져 버리고 자기 둘만  나타나 버렸고 주의 말씀은 희미해지고 자기네들 수단 방법 기존 지식 이것만  나타나서 완전히 바꿔 버렸어. 바꿔 버리니까 그만 거기서 환난이 일어났지, 또  헛애만. 헛수고만 하게 됐지 주님을 물귀신이라고 모든 견해가 다 꺼꾸로 돼  버렸지 자기 갈 걸음은 일보도 전진하지 못했지, 그래 사람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용해야 되는데 이용을 하다가 보면 그 매력에 내가 끌리기 쉽고 이용을  하다 보면 내가 그것의 종이 돼 가지고 그것을 삼키기 쉽다 그 말이오.

 어데까지나 내 밖에 있는 세상은 내 상관이나 무엇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내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이는 내 구원을 위해서 이용할 선물이라 하는 것을  언제든지 잊어버리지 안해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어떤 높은 상관이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는 이용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행음했다 말은 교역자  또 그 교파를 지도하는 지도자 그는 행음하였고 세상과 하나가 돼 가지고서,  지금 세상하고 하나 돼 가지고 이끌고 있다 말이오. 그라면 좋아합니다. 세상과  하나 되면 좋아해요. 그라면 모든 것이 평안해져요. 알아주면 또 좋아해.

알아주면 돈도 있고 권세도 있고 이러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걸 안 할라  함으로써 가정도 파괴당하고 그 안 할라 하면 여러가지 어려움의 애로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르나 주님은 다 아시오  '음행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으니' 그러면 음 란을  '배고 음란을 행했다' 그 신앙의 자녀를 낳으면서 그 자녀를 전부 세상하고 한  덩어리 돼 가지고 그 힘으로 자꾸 전도한다 그 말이오.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그 말은 세상이 주님만 버리면은 아주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자꾸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사랑할라 하면은 세상이 마땅치 않다고 자꾸 그렇게  하고, 믿음 없는 가족들, 믿음 없는 직원들, 믿음 없는 동역자들 믿음 없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따라서 한 자욱만 몇 놓으면 좋아서  희희락락입니다. 희희락락. 설교도 음란이 들어 있는 음란 설교를 한번 하면 온  교인들이 그만 입이 벙긋 벙긋하고서 마구 화색이 돌아옵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음란의 화색이라.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면 그만 튀하이 해 가지고서 좀 잘난 사람들은, 잘 난  사람들은 그만 띠 해 가지고 돌아가서 반대를 합니다. '설교를, 나도 가기  싫다.'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목사들이 그 장로 비위를 맞추어야 될 터이니까  비위 맞추어야 될 터이니까 음란의 설교를 해야 '아, 오늘 은혜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차차 차차 목사도 음란을 음행하는 목사가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세상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삼은 길쌈하는 삼입니다.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이래서, 이러니까, 차차 이러니까 그 사람의  정신이 꺼꾸로 돼 가지고서 '아, 이것도 세상에 내가 이것 안 했으면 이거 못  찾지, 이 일은 이것도, 내가 그때 진리대로 살라 하면 면직을 당했으면 이  월급도 타 오지 못하지.' 또 이거 전부 세상 덕택이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  덕택이라, 또 세상 이 모든 토지 덕택이라. 이 모든 기술 덕택이라, 이십 세기  과학 덕택이라 이렇게 하는 모든 것이 이 세상으로 인해서 내가 먹고 입고  평안하게 살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산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이제  맞보기로 보이는 세상에 있는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얻고 편리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점점 세상을 숭배하게 되고 세상을 높이게  되고 세상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되고 세상을 가까이 하게 되고, 하나님은  떠나고 진리는 떠나도 세상은 버려서는 안 되겠다. 그거요.

 어떤 사람은 자기 직장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기술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공장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에서 자기  남편에게서, 자기 아내에게서, 자기 자녀에게서 자기 지식에서 뭐 이런 데서  저런 데서 그것이 날 먹여 주지 하나님이 날 먹여 준 것이 아니고 날 입혀 준  것이 아니라 하면 벌써 이거는 음행한지 오래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대저 저희가 말하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하나님의 사랑을 놔두고 보니까 세상이 자기에게 필요 있다 말이오.

자기에게 참 이렇게 저렇게 세상이 자기에게 필요하니까 자기에게 필요한 세상  따르겠다. 말이오. 필요한 세상 따르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따를라 하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를라 하니까 당장 닥치는 것이 미련하고 여러 가지  애로로 십자가가 닥칩니다. 하나님을 따르니까 당장 나쁘고 세상을 따르니까  당장 좋습니다.

 그러니까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과 내게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이러니까, 사람이 어떤 것이든지  '아, 이거 참 이는 사람의 덕택이다. 이는 이 사람의 덕택이요 이 사람의  은혜다. 이거는 내 기술 덕택이다. 요거는 내 활동 덕택이다.' 이제 하나님의  덕택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는 건 하지 안하고 전부 이 피조물 땅에 있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됐다 이렇게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간부하고 연애하는  것이요, 그것이 간부가 자기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은 멀리  해도 세상은 멀리 하지 못하겠고 하나님은 부인해도 세상은 부인할 수가 없고,  하나님 부인하고 물질은 부인할 수가 없고. 진리와 영감이 아무리 좋아도 그  진리와 영감이 없어도 배부른 게 좋고 평안한 게 좋고 호의호식이 좋고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좋지 이제 배고픈 진리는 싫다 그거요  5절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다 말이요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음행을 했다 말입니다. '대저' 예를 들면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왜 사랑하느냐? 왜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는 자를 따르리니' 왜 너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네가 아느냐?  저희가 내 떡도 저가 펐고 물도 저가 주고 양털도 저가 줬고 길삼하는 삼도 저가  줬고 기름도 저가 줬고 술들도 저가 줬고 모든 것을 저가 줘서 나로 하여금  흡족하고 풍성하게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곧 더러운 일 하는 것이요  그것이 음행한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신자가 하나님이 없어도 세상에 이것 저것만 하면 산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섭섭하게 해도 세상에 이것만 있으면 산다 하나님 외에  무엇으로 인해서 이것 있으면 내가 산다, 이것 있으면 의식주는 문제가 없다,  이것 있으면 된다. 하나님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없어도 세상에 이것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고것이 바로 성도로서 음행입니다. 고것이 음행이오.

 기독자들이 지난번에도 많이 말했지마는 어떤 것이라도 내게 오는 것은. 부모가  나를 낳은 것도. 부모가 나를 낳은 것도 주님이 그 부모를 사용해서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나를 남자 되고 여자 되게 한 것도 주님이 그렇게 하셨고, 나를  사람 되게 하신 것도 당신이 창조하셨고. 다만 부모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출생의 역사, 창조 역사에 부모가 거기에서 쓰여진 것뿐이지 부모가 창조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 모든 물건 자기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서 월급을 받아  오지마는 그 월급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알아야 되냐 하면 그 회사도 하나님의 회사요 그  회사의 제일 총 최고의 사장이 하나님이시오, 그는 하나님의 물건이요. 하나님의  것. 또 하나님이 크고 작은 거 다 혼자 관리하고 계시는데 인간을 통해서  관리하고 계시지, 아무라도 주님에게 거슬리면 그거는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이면은 거슬려도 그 뒤에 영원한 보응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둬  두지마는. 또 '내가 일해 벌었는데.' 내 생명도 당신이 유지를 시켰고 건강도  유지를 시켰고 나를 세상에 있게 하셨고 또 나로 하여금 그렇츰 지혜와 총명을  당신이 주셨고 전부 당신이 만든 거 그거 다 사용해 가지고서 그 월급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성도들이 모든 거 없어도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셋만 있으면 된 다 뭐  '땅이 없으면 어짤라고?' 없는 가운데 땅도 만들고 모든 거 만들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과 나와 진리와 이 셋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다. 이만하면 족하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

 여기에 떡도 하나님이 주셨고 물도 하나님이 주셨고 내 의복도 하나님이 주셨고  기름도 하나님이 주셨고, 모든 내게 시원하게 하는 모든 숨도 내게 주셨고 모든  거 다 하나님이 주셨다, 이렇게 그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그저 맹종적으로  아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 그런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안하십니다.

우리가 기독자의 것은 맹종이 아니고 무지함이 아니고 어쩌든지 지성적입니다.

기독자의 모든 행동은 성경 지식대로라야 됩니다.

 이래서, 자기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자기가 지식하고. 이래 생각하고, 또  나중에는 '어떻게 하나님이 줬노? 하나님이 안 줬지.' 하나님이 안 줬다고 자꾸  이의를 달아봅니다. 하나님이 안 주셨다고 이의를 자꾸 달고 세상이 줬다고 자꾸  이의를 답니다. 이의를 달아 자꾸 논리를 해 나가면은 '세상이 줬다는 이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걸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그저 하나님이 모든 걸 줬다  하니까 하나님이 주셨는가 보다 이래 가지고 무지의 그 맹종적인 그런 것으로  하나님의 은택이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모든 거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 현실이 어떤 좋은 그런 분위기 속에 환경 속에 있는 그것도  주님이, 내가 어떤 나쁜 분위기 속에 있는 것도 주님이 모두 다 주님이 하신  것이라. 주님이 하신 것이요 아무도 침노를 못합니다. 주권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루시기 때문에, 주권의 능력으로 이루셨다 말은 주님 혼자  하시지 환경은 아무도 털끝만큼도 침노를 못합니다. 가감을 못해요. 주님 혼자  하시오.

 혼자 하시는데, 당신이 하실 때는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물건도 이용 하기도  하고 천연도 이용하고 자연도 이용하고 모든 거 다, 마귀도 이용하고 오만 걸 다  이용하고, 공산주의도 이용하고 오만 것을 다 이용해 가지고서 현실을 만드는  것은 내 치료하려고 지금 현실을 만들고, 나를 연 단 시키려고 현실을 만들었고,  성장시키려고 현실을 만들었고 나를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라고 현실을  만들었고, 하나님과 당신의 그 결과적으로는 영과 나와의 이 진리의 법칙대로  밀접한 관제를 가지고서 하나님은 나 없으면 참 못 견디고 나는 하나님 없으면  못 견딜 만치 하나님과 나와 당신은 머리요 나는 당신의 몸이 되는 이런 밀접한  관계를 이루려는 이 목적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일을 지금 계속해서 성취시키는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현실은 주님 혼자 만들었지 다른 이는 현실을 만들지 안했어요.

 우리가 하나님과 요렇게, 본남편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간부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간부를 사랑하는 것인가? 세상이, 내게 있는  필요있는 모든 것은 세상이 내게 줬다, 이 세상의 과학이 줬다. 물질이 줬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이는 그것들이 나에게 줬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간부를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반해 버리는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이 내게 주셨다. 주님이 주시지 많으면 안 된다, 주님밖에는 나에게 주실  이가 없고, 내가 맡길 이도 그분밖에는 없 고. 의지할 이도 그분밖에 없고,  의논할 이도 그분밖에 없고, 나로 바른 지도를 받기도 그분 밖에는 없다 요런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거요.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6절에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내가 그 길을 막으며  담으로 그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 할 것이니라'  '만나지 못할 것이니라' 이러니까, 이제 간부가 뭐입니까? 간부가 주는 것.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이 간부인데, 좋은 데 취직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취직이  안 됩니다. 또 사업을 해 가지고 아무리 할라 해도 안 됩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고 자꾸 망하는 것 누가 망하게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망하게 하는 것  누가 망하게 하요?  예수 믿는 사람 망하게 하는 그것이 왜 망하느냐? 간부를 만나지 못하도록.

간부를 만나지 못하도록, 세상 혜택을 입지 못하도록 자꾸 하니까 이 혜택을  입을라고 자꾸 애를 써도 혜택을 입지 못하게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간부를  만나지 못하게 해. 지위도 권세도 직장도 뭐 좋은 거 이란 거 아무리 만날라  해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시로 담으로 막는다' 그거는 주님이 막는  것입니다. 주님이 막는 것은 그거 가지면 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그거요.

 공부도 자기 정도에 따라서 공부할 일이지 기어코, 공부는 도둑질해도 공부는  해야 된답니다. 계명을 어겨도 공부는 해야 된답니다. 또 주일을 범해도 취직은  해야 되겠답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가시로 담으로 막는 것인데. 가시로  담으로 막는 그것도 자기가 그만 제 힘으로 제해 버렸고 마구 수단 방법으로  가리지 안하고 그 일을 한번 달성해 보겠다고 이렇게 하지마는 해 봤자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시면 안돼요, 아무리 해 봤자.

 안 되니까. 이제는 만나지도. 간부를 만나지도 못했어. 못 만나게 하니까  만나지 못하니까 간부에게 뭐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을 의지해 봤자 안 된다 그거요.

 안 되니까 '그제야' '미치지 못하며 저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 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니라 할 것이니라 왜? 이제 그런 것 찾아봐도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아이구, 이거 아무래도 안 되니까 예수나 잘 믿어야 되겠다.'  하고서 이렇게 예수님께로 돌아오면서 '그래도 내가 처음에 이 예수 믿어 믿음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옛날이 그립다 말이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믿는 사람이 왜 모든 일이 안 되느냐? 안 되는 그것은 다 주님이 안 되게 해서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또 그것이 주님이 나에게 주실 때에는 그걸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간부가 줬다고 이라면 좀 있으면 그게 없어지고 화가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을 지금 내가 간부로 상대하고 있느냐,  음녀로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느냐, 또 선물로 상대하고 있느냐 그것을 자꾸  구별해 가지고서 지금이라도 바꾸어야 됩니다.

 간부를 어서 버리고 본남편으로 돌아서고 또 음녀를 이별하고 이제 아버지의  아들로 깨끗하게 이렇게 살도록 돌아올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있지마는 회개할  때에는 염려하지를 마십시오. 뭣이든지 삐뚤어진 것을 고칠라 할 때에 여러 가지  애로와 마찰이 있지마는 그런 것을 걱정하지를 말아요. 삐뚤어진 것을 고칠라 할  때에 애로가 있다고 그 애로 때문에 겁을 내지 말라 말이오.

 누가복음 15장에 회개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느냐 하면은 양이 목자를 떠나서 갈  때에는 엉겅퀴도 가시덤불에도 또 구렁텅이에도 빠지고 이라지마는 그  주인에게로 돌아올 때에는 양이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돌아을 때에는 어깨에  메고 보듬고 이렇게 돌아왔어. 돌아왔으니까, 이거 공연히 과거에 혼자 도망칠  때에 놀랜게 있어 놔서 가시덤불을 보고서 벌벌 떨고 저기 이리가 오니까 막  죽겠다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품안에 안겼기 때문에 이리가 와도  상관없어. 네가 주님 없이 너 혼자 갔을 때에 세상의 것 모든 현실들이 네게  마찰도 되고 네게 해도 끼치고 이렇게 저렇게 너를 상했지 목자의 품안에  안겼으니까, 목자의 품안에 안겼으니까, 목자의 품안에 안겼으니까 그런 것들이  상관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성도들이 회개하는 그 걸음과 또 타락하는 걸음이 다릅니다.

타락하는 걸음에는 모든 세상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해독을  끼치는 가해의 물건이 돼지지마는, 해를 끼치는 물건이 되지마는 거기에서  잘못되고 회개할 때에 내가 이 회개할라면 모가지가 달아나겠다. 회개하면 지금  내가 이혼이 되겠다. 회개하면 내가 면직을 당하겠다. 회개하면 사업이 절단  나겠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회개하는 것은 전능자의 품안에 안겼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해요. 회개에는 아무도 해하지 못해요.

그런데, 회개하려고 하지마는 너무 옆에서 제가 보기에 일어나는 파문이 크기  때문에 이게 겁이 나 가지고 회개를 못 하는데. 회개는 하나님이 목자장되신  주님이 회개하는 자를 품안에 안고 어깨에 메고 이렇게 오기 때문에 결국은  회개하는 데에는 뭐 만사가 낭파되고 되는 것 같지마는 결과적으로 보면 그  사람이 높이 들렸습니다. 높이 들려서 존귀한 자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를 보면 사람들이 울고 회개를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기뻐  즐거워 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잠깐 동안 근심하지 안 할 수가 없지마는 결국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걸음은 전지전능의 사랑의 주님의  품안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거기에 회개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동이나 파문이나 그 모든 일어나는 광풍이나 그런 걸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라, 많이 일어났으면 일어난 것이 자기를 존영하게 만들었고, 그걸  통과하고 나면 존영하게 만들었지 하나도 자기에게 해 룰 끼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본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니라' 세상을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면은 마지막에는  자기가 그 신앙에 있으면서 세상으로 돌아갈 때의 그때의 형편 이 세상으로 제가  돌아가 가지고 어떤 구비를 쳤든지 마지막 결론은 옛날만 못한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 말이오. 옛날만 못한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줄 알고 자꾸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면 자꾸  선물을 더 줘요.

 오늘 아침에 운전기사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운전기사를 두니까 자꾸 남편을  더 잘 섬기고 이러니까, '야, 이거 운전기사 하나 주니까 아주 잘 섬기고 좋은  거 보니까 이 운전기사 하나 더 들이면 될란가' 더 안 들이면 그 운전기사를  어쩌든가 자기 부인에게 잘하라고 자꾸 월급을 올려주고 자꾸 이랍니다.

이라다가 이제 고만 자기 부인이 운전기사하고 고만 조금 연애하는 기미가 보여  가지고서, 가만히 보거든요. '마음이 좀 이상 하다. 저 운전기사한테로 좀  마음이 쏠려지고 좀 기울어지는 것 같다' 그라면 어짜겠어? 그라면 운전기사  없애 버린다 그거요. 없애 버려. 떼 버려. 그 차도 팔아 버리지 뭐, 차도 팔고  전화통도 없애 버리고 집에 딱 갇혀 앉아서 남하고 전화도 못 하구로 그래  할는지 몰라요. 우리 주님은 얼마나 능하신 주님이십니까?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에서 '아, 내 직장이 좋은 직장 가졌다.' 그게  운전기사와 같아요. 또 무엇이, 돈벌이해서 회사가 커졌다 이라면 회사에  대해서. 내게 기울일 그 애정을 회사에 대해서 기울인다, 정성을 회사에 대해  기울인다 이라면은 주님이 시험하십니다.

 시험을 하셔서, 고걸 가질려면 주님을 버려야 되겠고 주님을 모실려면 고걸  버려야 되고 고 두 가지로 꼭 시험이 있을 때에 그때에 성도들은 그 시험을  어떻게 치르면은 고만 수월하게 딱 치릅니까? 고거 한번만 공부 딱 해 놓으면  고런 시험에는 틀림없이 딱딱 합격 다 해요. 언제든지 백점, 만 점을 맞아요.

고럴 때에는 우리가 고 시험 통과하는 길이 뭐이지요? 뭐이지요? 자, 한번 말해  봐 포기, 포기, 포기.

 예수 믿는 사람 포기할 줄 알아야 돼요. 뭐 있으면 이제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지 못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포기했는데 있습니다. 포기하면 더  있습니다. 포기하고 당신만 좋아하니까 자꾸 싸 주어서 '이거 이거 여보 이거  필요하요 저거 필요하요?' 자꾸 주니까 그놈만 애착하고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면  싹 없애 버려요. 요걸 하나님의 심리를 잘 알아 가지고서 이제 돌아야 돼.

아내가 그 남편 심리를 잘 알아 가지고 그 비위를 맞추어야 효력을 보지 그  비위에 거슬리면 저는 일생 동안 고생이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이 시험 만나거든. 무조건 시험 만나거든 승리 방법은  포기인줄 아십시오. 버리면 돼. 버리면. '아. 주님 당신이 제일이지 당신 한  분이면 되고. 또 당신이 나에게 법칙 주신 그 법칙이면 되는 것이지 뭐 딴게 뭐  있습니까? 그거 없어도 좋습니다.' 없어도 좋다 하면 자꾸 줍니다. 없어져도  좋아하면 주고. 그거 있는데 그것이 하나도 주님 섬기는데 필요하고 하나도  거기에 대해서 주님의 신부된 그 인격 주님의 아들된 그 인격이 요동치 아니하면  얼마든지 맡깁니다.

 앞으로 뭘 맡길 겁니까? 지극히 적은 데 충성했으니 많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겠다. 작은데, 작은 데 충성했으니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 하는 그거  뭐입니까? 이 현상 세계의 잠깐 하룻밤 나그네 같은 이것을 가지고서 주님에게  충성하니까 무궁세계 영원 불변의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그 나라의 영원한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 하는  말입니다. 이 큰 문제가 있는데 안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헛된 걸 가리지 이  세상에서 있는 것만척 믿으면 기독자들이 땅의 것을 위해서 미혹받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8절에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희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쓰는 은과 금도 내가 저희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희가 알지  못하도다' 주님이 다 주신 것인데 이게 다 세상이 줬다고 그 놈을 가지고서  섬깁니다. 주님 섬기지 안하고 그거 섬기요. 우리가 이런 현실에서 자꾸 더듬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희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희가  알지 못하도다' 이제 우리에게 준 것을 주님이 주신 것인 것을 자기가 그냥 할게  아니라 예를 들면은 우리가 쌀 한 되를 거석해도 쌀 한 되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왜? 주님이 농사를 지었으니까 주님이 주셨지.

 주님이 농사짓다니? 농사지은 그 사람을 주님이 먹였지, 입혔지, 살렸지  거처하게 했지, 또 그란다고 그 자손들까지 다 먹여 살렸지, 주님이 먹여  살렸지, 또 거기에 물이 필요하니까 물도 주님이 댔지, 바람도 주님이 댔지  햇빛도 주님이 댔지 모든 거 다 주님이. 다 주님이 댔는데 사람이 한 거는 한  백분지 일쯤이나 사람이 했을까? 왜? 그거 암만 해도 흉년들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또 제충도 하나님이 다 하셨지.

 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셨는데. 사람이 한 것은 자기가 조그매 수고했다고  수고한 댓가를 저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에게 품 다 받고, 하나님의 것 먹고 입고  마시고 저거 가족까지 다 살고 하나님 것으로 살고도 저 한 품삯은 다 받습니다.

쌀 한 되 얼마, 천 오백원? 쌀 한 되 천 오백원 하는 것은 저 농부 수고 한  것이지 쌀값은 아니오. 농부의 쌀값 천 오백 원 하는 것은 쌀값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걸 우리에게 운반 정도밖에 안 했어요. 운반한 수고라.

사람 수고비지 쌀값은 낸게 아니라. 모든게 다 그러합니다.

 그랬는데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살면서 우리가 조심할 것은. 하나님이 주셨지.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뭐 은혜 기관이야 무슨 소용이 있나? 부모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뭐  하나님이 주셨는데 남편 제가 줬나? 하나님이 주셨는데 부모가 뭐 줬나? 친구가  줬나? 누가 줬나?  은혜 기관을 멸시를 하면은 은혜의 기관을 멸시하면 하나님 다음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할 일이고. 피조물에게 대해서 할 것은 제일 은혜의 기관에  대해서 제일 대우를 크게 하라 그것을 성경에 말한 것이 제오계명을 말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이 벌써 '하나님이 주셨지' 하고서 그렇게 은혜의 기관을  알아주지 안하면 그 사람은 광신이요 미치괭이라. 결국은 다 실패하고 그 사람이  그만 안 되게 자라 버리고 맙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원에 갔었는데, 거기에 ○○○이라 하는 집사가 있었는데 그  뒤에 물으니까 장로 됐다 합디다. 이 사람은, 웃을라고 하기는 하지요. 뭐이든지  잉크고 뭐이고 상관없어. 이래 떡 갔다 쓰면 '와 남의 잉크를 쓰노?' '아버지의  것이지. 아버지의 것인데 너도 쓰고 나도 쓰고 둘이 같이 쓰지' 뭐든지 그래요.

옷도 이래 떡 입으면 '와 이거 내 옷 입노?' '네 옷이 어디 있노? 아버지의  옷이니까 아버지 옷 너도 입고 나도 입고 갈라 입지' 이래 주장을 해요. 그래  주장을 하는데, 그래서 '네가 웃을라고 그라기는 그라는지는 몰라도 그게 자꾸  그라면 연습이 돼 가지고 만일 그 은혜의 기관이라면 옷을 입으면, 아하, 이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옷을 이 사람이 받아 가지고 잠깐 빌려라도 입구로 해  주시니 감사하다 인간적인 감사를 해야 되지 그거 모르면 너는 절단난다'  그랬는데 그 뒤에 물어 보니까 장로가 됐다 해. 장로가 됐다 해.

 우리는 이렇게 우리가 귀하게 쓰는 것이나 천하게 쓰는 것이나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나 남을 위해 쓰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희에게 준 것이요' 이거는, 우리의 모든  식료품을 말합니다. 우리의 식료품.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희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저희가  알지 못하도다' 주님이 주신 것인데 주님 주신 거 가지고 오히려 주님의 원수인  그것을 위해서 쓴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맷정을 씁니까 안 씁니까? 이라면 복이  있겠소  없겠소 ? 바알을 위해서 쓰는 거 바알 위해서 쓰는 것이 그게 내나 간부  위해 쓰는 것이오. 세상 임금 위해 쓰는 것이오.

 악령의 역사 이 세상 위해 쓰는 것이니까, 주님께서 주시니까 주님이, 남편이,  남편이 필요하다고 '여보 이 시계 하나 차 보십시오.' 사랑함으로 시계 떡,  사다주었더니 고 남편이 얼마 후 보니까 시계가 없어. '시계가 어디 갔는고?'  '그만 어데 놔두고 잃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고 시계가 간부 손에 끼어  가지고 있다 말이오. 간부 팔뚝에 끼어 가지고 있어. 그라면 그 본남편이  좋아하겠소  안 하겠소 ? 자, 여기 남자 쳐 놓고 그라면 좋아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좋아할 사람. 자, 분개할 사람 손들어 봐요 다 분개하지. 자, 이런데  주님은 안 그렇겠소 ? 이래 가지고 우리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대로만 살면, 진리대로만 살면 그 사람은 얼마든지 존영하게  만듭니다. 진리대로만. 제일 처음에 하나님이 존영해 만드는 것이 진리대로 살면  물질의 부자 만든다, 삼 년만 예수 잘 믿으면 물질에는 다 풍성하게 부자가 돼  버려요. 삼 년만 바로 믿으면. 바로 믿는 사람들 없어. 저거는 보면 요면은  괜찮다 싶은데 보면 그 속에 모르게 흉측한 죄를 범하고 있다 말이오. 주면 안  되겠어. 그것 주면은 그것 가지고 죄 짓는 비용으로 쓰고 죄 짓는 운동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줄 수 없다 말이오.

 자기가 진실되게 회개하고 삼 년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보십시오. 부자 안 될  사람 없습니다. 자기는 평생 보지 못하는 형편이 열리고 형통하고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다 그래요.

 저도 그런 거 체험을 했어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자꾸 되데요. 축복하시면  모든 것이 자꾸 돼서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어데 축복해서 다 잘 될 때에  그때에 무엇이 어디로 오는 구멍을 아는 줄 압니까? 몰라요. 어디서 오는지도  몰라요.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데, 봄이 되면 전부 되고, 이 바다 앞에 가  가지고서 바다 가운데서 모래를 파 봅니다. 모래를 파면은 구멍 하나도 없어요  구멍이 하나도 없는데 암만 물을 파도 자꾸 물이 나옵니다.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고 암만 봐야, 구멍을 뚫어 봐야 바늘구멍도 없소. 바늘구멍도 없어.

모래가 탄탄히 이래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 나오는지 물이 자꾸 나와요.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이래 가지고 축복하시면 이거 어찌 생겼는지, 모든  사람이 해하는 것도 변해서 유익이 되고, 나를 대적함도 위함이 되어지고 뭐  전부가 다 이렇게 해서 분위기 공기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섭리하는 것이 천  가지 만 가지 그 전부를 당신이 다 되도록 합해 가지고서 유익 되도록 하니까  어디서 오는 줄도 모르게 자꾸 되어집니다.

 이런데 어리석게 '아, 요 요거는, 우리 재산은 요걸 잘해 요거 때문에 여기에서  돈이 나왔다.' '여기에서 돈이 나왔다' 하고서 거기 주력을 하면은 하나님께서  고거. '여기에서 돈이 나왔으니까 여기에서 잘해야 된다' 하면은 고것으로  인하여 망하도록 딱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 체험이 없습니까? 그런 경험이 없소?  저는 그런 경험 많이 있습니다. 그런 꼴 하도, 못돼서 그런 그런 일을 많이 해  가지고 많이 속은 일 있오. '아, 요거는 요거 때문에 된다 요것만 잘하면  되겠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은 생각지도 안하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은  하기는 하면서도 속으로 '요것만 잘되면, 요것만 잘하면 되겠는데 요것 하자'  고렇게 마음먹고 주력하면은 고것이 생전 상상도 못 했던 뜻밖에 다른 고장이 나  가지고 다 헛일된다 말이오. 헛일 돼. 항복을 하게 만들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어데서도 오는지도 모르게 슬슬 되니까, 그저 경제  문제는 경제문제는 삼 년이면 그만 그것은 다 부자됩니다. 삼 년이면 참으로  주의 말씀을 딱 지켜서 회개하고 모든 걸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은, 맡겨 놓은 것은 조금 요래 가지고 하나님이 시험을 해 봐요.

시험해 봐서 좀 어려움이 있어도 '내게 대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에게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잘해 주시겠지.' '야, 이 사람아 이거 낭파 당한다. 어쩔래?'  '아, 몰라. 당신에게 맡겼기 때문에 당신이 책임지시겠지.'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진다 그 말이오. '아, 이거 참말로 이 맡겼구나.

 조금 어려움을 당하니까 '아이구, 이거 안되겠습니다.' 제가 찾아 가지고 제  수단과 방법대로 하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말리다가 도로 찾아  버렸어. 맡긴 것을 도로 찾고, 의지했던 것을 변개시키고 의지하던 것을  변개시키고 복종하던 것을 변개시키고 바라보던 것을 변개시키고 변개시켰지  삼 년만 변개하지 안하고 고대로 하면은 하나님께서 물질 축복을 대번에 줘서  풍성히 될 수 있습니다. 다 부자 될 수 있어요. 삼 년이면 다 부자 될 수  있어요. 이 틀림없어요. 만 명이면 만 몇 천 명이면 천 명 다 그랬어오. 삼 년만  믿음을 지킨다고 하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풍부히 줍니다. 삼 년  지키면 사람도 자기가 변화가 돼 가지교서 그만치 여간 좀 가져도 교만하지  안하고 악용하지 안하고 선용할 수 있는 사람만 돼지면 그만 돼져요.

 이런데, 신앙을 지켜서 어북 얻는 사람도 나중에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더  늘려 주지 안해요, 더 늘려 주지 안하고 고만으로 자라지 안하고 고만 딱 한계를  딱 해 놓고 더 주지 안해. 더 주지 안하는 것은 가만히 보면 뭘 하느냐? 그라는  가운데에, 아까 배를 노를 젓다가 차차 주님과 주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저거들의  수단 방법 주관으로 자꾸 이래 변화돼 나갔던 거와 타락해 나갔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 주님이 주시면 나중에 가서 그 자꾸 가족들이 주님의 은혜라.

주님의 은혜라, 계명을 지켜서 이렇다 이라면은 이게 호주가 삐쭉하다 말이지.

속으로 '아, 듣기 싫다. 뭐 가만히 감나무 밑에 가서 드러누워 있으면 감이 입에  들어가나? 따 입에 넣어야 되지.' 절 안 알아준다 그 말이오.

 주님에게 전부 영광 돌리면 섭섭하고 싫어한다 말이오. 싫어하고 그래 가지고서  이게 용골대를 부립니다. 부리면서, 제가 제 힘으로 됐고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서 진정한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이게 변하지  않는데, 나중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제가 따먹고 제가 한 것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그게 뭐이냐? 제가 간부라, 제가 제게 대해서.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간부가 된다 그거요.

 그라든지, 그렇지 많으면 어떤 사람을 보면 또 이거 구별하지 안해. 씨와  양식을 구별해야 되는데, 씨는, 씨는 자기 사용할게 아니라. 씨는 자기 사용할  것이 아니고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그거는 심을 것이라. 의를 거두기 위해서,  의를 거두기 위해서 의의 농사를 짓는 거라. 의의 농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농사를 짓는 그것은 심을 부분인데, 자기가 얻었으면 얻은 이것은 얼마는 심을  부분이라. 또 양식은 이것은 내가 먹을 양식이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것은  씨인지 양식인지 구별해서 하지 안하고 나중에 이 욕심쟁이가 전부 다 있는 걸  양식으로 다 삼아 가지고서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 씨를 줄 수가 없다 그거요.

 이거는 또 주니까 양식은 먹도 안하고 전부 씨로 다 심어 버려요. 씨로 다  심으면 어찌 되지? 어찌 되지? 씨로 다 심어 버리면은 그것은 무슨 죄를 범하는  죄가 됩니까? 무슨 죄를 범하는 죄가 됩니까? ○○○목사님. 예? 나무?  ○○○목사님. 자살, 자살, 따라해. 자살! 자살! 그거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가 됩니다. 자살 행위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오. 하나님의 성전이오. 하나님의 지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정당하게 관리하도록 딱 씨와 양식을 주니까 씨는 심고 양식은  먹고, 그라면 씨도 더 주고 양식도 더 줘요. 차차 차차 정도에 따라서 풍성하게  더 줘요. 요것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서 실패하는 사람.

 영광을 가로 따먹는 제가 간부가 돼 가지고서 제 덕택으로 살았다고서 간부가  돼 가지고서, 온 식구들이 '아이구, 너희 아버지 덕택이다. 야. 너희 아버지  덕택이다. 야, 너희 아버지 노력이다 너희 아버지 노력이다' 이라면 벌쭉하이  좋아하고서 '하나님의 은혜다. 기도 많이 해라, 하나님의 은혜다' 이라면  실쭉하이, 자꾸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거 아버지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면 그만  뻐꾼다 말이오. 시험에 든다 그거요.

 그래 하지말고 '야야 하나님 아버지가 참 우리에게 주셨는데 너희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뻐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다. 너희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다 준 은혜의 아버지다.'  이라면, 호주도 위해 주고 또 하나님을 바로 위하기도 하고 이라면 이 모든 일이  다 잘 돼 나간다 그거요.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것인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고  여기에서. 주님이 주셨는데 주님의 원수를 섬기는 여기에다가 쓰니까 주님은  얼마나 진노할 것인가 고것을 우리가 찾아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주님이 주신  거 가지고서 간부 위해서 쓰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자기가 더 위해서 가깝게  하기 위해서 불의의 재물을 쓰는 것 아닙니까?

 '저가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당신이 찾는다 말이오. 찾고 나니까,  세상이 줬으면 하나님이 암만 관계를 뭐 고렇게 한다 해도 그걸 어짤 수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줬으면 세상의 권리인데.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으면 그만이라. 하나님이 찾으면 없어진다 말이오. 아무리 내가  세상하고 달라붙어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해도 그게 떨어지면 그만치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또 찾아간다 요걸 알아야 돼.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어느 시기에? 어느 시기에? 어느 시기입니까? 어느 시기입니까? 어느  시기지요? 간부가 주었다 하는고 말 떨어질 때에 고때에 주님이 밉상이라 입을  콕 쥐어박아 버리고 도로 찾아버린다 그 말이오. 알겠소 ? 고 시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이 세상이 줬다, 내 노력이다. 내 덕택이다 하는 고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께서 고 시기에 도로 찾아 버리는 것입니다. 도로 찾아 버려요.

 요 시기라는 말 두 번 했습니다. '그 시기에 내가 내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게 의식주를 빼앗으리라,  의식주를 빼앗으리라. 또 저희가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이 저를 알아주고  위대히 알아주고 저 알아주고 높여주는 것도 그것도 의복이 됩니다. 의복은 이  물질로 만드는 의복도 있지마는 자기가 권위도 입고 살아야 되고, 지위도 입고  살아야 되고 영광도 입고 살아야 되고 모든 사람에게 다 칭찬하는 칭찬도 입고  살아야 되고, 덕도 입고 살고 다 입고 살아야 되지 안해요? 그걸. 홀딱 벗겨  버린다 그 말이오. 자기가 덕 있는 일을 해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고  칭찬하고 하면은 그것도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인 줄 알아야 되지 이것을 모르고  자기가 신덕 있는 생활 하고,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고만 높여서  알아 줬고 어짜고 이리 할 때에, 사람이 그렇지 안해요? 옷을 갈아 입혀 줄 때  있다 말이오. 어째 보면 사람이 모두 자기를 인정하고 이렇게 높여주고  이래합니다. 이래 줄 때에 하나님이 옷을 입혀 준 줄 알아야 돼요.

 이래 평신도, 우리 교인도 그래요. 다른 사람이, 주일학교 반사라도 '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모두 인정도 하고 신임도 하고 다 진실타고 알아줍니다.

알아주면 그럴 때에 '아, 주님이여, 나에게 이렇게 의복을 입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의복을 입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제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내가 된 것이 내가 스스로 됐다고 생각할 때에는 넘어진다  그 말이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은 그러면 넘어진다  그 말이오.

 나중에 '저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수치를 좋아하는 세상에게 통통  천물이 돼 버립니다. 이래 가지고서 세상이 좋아서 세상이 제일이라고 떠들어  쌓지만 세상에게 짓밟히고 천대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이시오, 복수의 하나님. 그러기에, 하나님은 복수의  정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보수의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뭐  하나도 털끝만한 것도 밑지지 안하고 다 갚아 줘요. 행한 대로 다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오. 또 그런 동시에 하나님에게 잘못한 이것은 그 복수를 어떻게  갚는지, 아주 복수하는 정의의 성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수자라 그렇게 보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래도 감각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제가 세상 좋다고 이래 쌓다가 그만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내버리고 세상하고 짝짝이 돼 가지고서 주일 지키는 것도  지키도 안하고, 고만 새벽 예배도 나오지도 안하고 성경 보는 것도 보도 안하고,  기도도 하도 안하고 완전히 세상에 푹 빠져서 이 세상 이 절 알아주니까 아주  제가 존귀한 줄 알고, 이렇게 세상이 모두 높이 들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고  이러니까 존귀한 줄 알았지마는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홀딱 벗겨 버려요. 홀딱  벗기니까 그만 그렇게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세상에게 천대를 받고 천물이 돼  가지고서 아주 비참하게 돼집니다. 그런 꼴 우리가 한번 두번 당한게 아니라  자꾸 여러 번 당하지 앉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일 안 당하도록 해야 돼요.

 주님을 위해서 손해 본 것을, 손해보고 있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주님 위해서  손해보고, 주님 위해서 천대받고. 주님 위해서 멸시받고 주님 위해서 억울하고,  주님 위해서 못났고, 주님 위해서 벙어리 됐고 주님 위해서 소경 됐고, 주님  때문에 된 것은 그것이 당장에 효력이 안 나면 세월이 있어 갈수록 자꾸 몇 십  배의 가속도의 배가 돼 가지고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따라합시다. 저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자 가 없으리라!  누가 건져냅니까? 못 건져냅니다. 하나님이 턱 꺼꾸러뜨리면 그만이지 못  일어서요. 아무리 잘나도. 선천적으로 뭐 지능이 많아도 소용없고, 후천적으로  수양과 모든 광문 다학의 지식이 많아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공적이 많아도  소용이 없고 하나님이 홀딱 벗겨 버리니까 고만 그 사람이 천물 중에  천물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결혼할 때는 잘해 가지고서 나중에 보면 천물 되고, 한 오십  세까지는 잘되고 늙어 죽을 때는 천물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늙어 죽을 때는 잘  지냈다가 무궁세계에 가면은 천물 중에 천물이 되고 하나님의 복수는, 하나님의  복수는 쉬지 않습니다.

 내가 저를 이렇게 뻘거벗겨서 천하게 만들 터이니까 내손에서 건질 자가 없다,  하나님이 천하게 하면 천하게 됐지 누가 그 천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데에서  거기에서 건져서 구원할 자가 누가 있습니까? 이분이 이렇게 살아 있고 민첩하고  예민하고 총명 좋고 모든 걸 세밀하고 잘 알로 이렇게 열심 있고 부지런해서  자지 안하시고 이런 하나님인 줄 알기 때문에 이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두려워하고 높이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이분이 이러한 분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지금 알지 못하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갋아서 그라지는 안하지마는 우리는 아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을  위대하다 높으다 크다 그렇게 봐서는 안 됩니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봐야 되지.

 11절에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이러니까 제가 신앙생활 한다고 뭐 주일 지켜 봤자 소용없소. 기도해 봤자  소용없고 다 헛탕만 친다 그거요. 하나님과 연결이 뭐 돼져야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절기를 폐하겠고' 이러니까, 신앙 모든 형식 생활 이  제도 생활은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효력이 없다 그 말입니다.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요 말씀  보십시오. 제가 말하기를 '이거는 나를 연애하는, 나를 사랑하는 세상이 내게 준  것이라' 요라는 그 한마디 한마디 자꾸 씹었다 말이오. 주님이 자꾸 씹었어.

이렇게, 자, 다 기록할라 하면은 세상에도 둘 곳이 없는 이렇듯 많은 가운데서  두 번이나 세 번이나 말씀했으니까 그 씹은 거, 하나님이 씹은 것을 천 번  씹었오 만 번 씹었소? 천 번 만 번 억만 번도 더 씹었다 말이오.' '아, 제가.

간부가 내게 줬다? 간부가 내게 줬다? 간부가 내게 줬다? 이거는 간부가 줬다?  이놈! 간부가 주어?' 분해서 하나님이 이를 가신다 그 말이오.

 '내가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요렇게 야나지게 말을  합니다. 요렇게 포도주를 거기에 줬다 한다고 포도원을 망쳤지. 포도원을 전부  망해서 그 수풀이 되게 해 버렸지, 수풀이 되게 할 뿐아니라 들짐승이 있게  했으니까 그 집이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까? 망하고 또 망하고 또 망했오.

 아, 포도원이, 포도원이 포도나무는 없어지고 다른 잡목이 나 가지고 우하지.

또 거기에는 그 사람들 집은 없고, 집은 없고 들짐승들이 있게 되니까 그 씨족이  망했오 안 망했소?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까? 하나님은 요렇게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모든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을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세상이 줬다고 하는고  말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분개하는지 모르겠소 . 얼마나 분개하는지 몰라요.

 '이거 뭐 내가 그래도, 내가 뭐 활동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했다.' 벌써 그  호주가 제가 활동해 제 덕택으로 가족들이 먹는다 이렇게 말하면 벌써 틀렸오.

신앙은 '너희가 신앙을 지키지 안하고 이까짓 거로 하니, 그래도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자꾸 이렇게 하고 이래 하니까 날 봐서 하나님이 우리를 아주  불쌍하게 여기시지 나만 안 보면 네 까짓게 헛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건  좋지마는 제가, 하나님이 저로 인해서 저가 회개하고 이러니까 제 믿음을 보고  아직까지 불쌍히 여겨서 너희들 망치지 안한 다 이런 말은 괜찮지마는 제  덕택으로 뭣이 돼서 이랬다는 그런 말하면은 큰일납니다.

 벌써 호주가 그라거든 '저 우리 아버지 환장했다, 우리 아버지 환장했다, 우리  어머니 환장했다.' 제 힘으로써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환장한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감사하지 못하고 믿음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패역을 부리면 우리가 망할 건데, 이놈들 너희가 하는 행동  봐서는 망할 것인데 나하는 행동 보고서 지금 그란다 이러니까 우리가 다  한꺼번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들어붙자' 이라면 그 가정에 희망이 있다 그  말이오.

 '먹게 하리니 저가 귀고리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주인이 주시는 이 모든 보물을  가지고서 장식하고, 주님께서 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공부도 하게 했고. 또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출세도 하게 했고, 또 하나님이 주셔서 모든 사업도 하게  했고, 또 이 모든 부요도 하게 했고 이렇게 제가 높아서, 이런 천물이 예수님의  은혜로 이래 높아지고 커졌다 말이오.

 커지니까 그저 이래 가지고, 커 졌으니까 '내가 이만치 커졌으니 이 간부가  보고서 나를 탐할 만하겠다. 내가 이거 지위도 권세도 이만치 모든 게  커졌으니까 이 세상이 가면 날 환영하겠다.' 하고서 세상하고 연애를 한다  그거요. 알아듣겠습니까? 이렇게 해도 우리가 이거 모르면 안돼요.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사람이 커지고 난 다음에 커지고 난 다음에. 출세되고 난  다음에, 부강해지고 난 다음에, 위대해지고 난 다음에 그 위대한 그거 가지고서  주님 섬기지 안하고 그거 가지고서 세상에 나가서 내가 세상에 한번 발 내디뎌  보고서 한번 세상을 잡아 보겠다고서 세상에 나서서 세상을 위주로 세상을  소망의 대상으로 세상을 상대해서 세상에게 모든 애정이나 모든 정신이나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세상 한번 주름 잡아 보겠다. 하는 그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그래 가지고  세상을 섬긴 시일을 따라 일 년 섬겼으면 일 년 십 년 섬겼으면 십 년, '고  시일을 따라 내가 저희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약속해 놓고  영원히 불변한 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고 시일을 따라서 복수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에서  비로소 저희 포도원을 저희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답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그러면, 그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거와 같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전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나와 가지고 얼마 동안은 뭐.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  했고 하나님이면 다로 삼았고. 이렇게, 이스라엘 이 애굽에서 처음에 나올때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간섭한 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했습니다.

그때 다른 일 하지 안했어요. 그렇게 하는 그때의 것을 하나님도 사모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광야로 데리고 나가 가지고서 타일러 가지고서 회개를 시켰다, 광야로  데리고 나가 타일렀기 때문에, 그래 놓으니까 이제는 뭐 좋던 세상 무대 재물  망할 대로 망하고 천할 대로 천하고 이렇게 모두 다 다 절단 나 버리고 나는  그것을 광야로 데리고 갔다 그 말이오.

 다 절단났다. 절단을 안 내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안하고 있으면 있는 것 만치  날뛰니까, 젊은 게 젊음이 있는 것만치 날뛰니까, 아, 젊은게 젊음이 있는  것만치 날뛰니까 젊음이 늙어서 쪼글쪼글 하이 병이 들어 가지고서 기운이  하나도 없이 돼져야 이 하나님께 온다 말이오. 그러니까 말라 죽고 쪼그라지고  늙어서 병들구로 한다 그 말이오. 이라고 난 다음에사 그제야 이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거와 같이 하나님께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  말입니다.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내 남편이요, 이 세상이 내  남편이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희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그 일컬음을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장가들며' 결혼한다 말이오. 요 참 재미있습니다.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알리라' 평안으로 장가들고, 전쟁을  없앰으로 장가들고, 모든 해충이. 해충이 없도록 장가들고. 또 평안으로  장가들고, 영원한 삶으로 장가들고, 의로 장가들고 은총으로 장가들고, 긍휼로  장가들고, 진실로 장가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너와 함께 결혼을 하리라 요렇게,  회개하면 요렇게 해주신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살길은 환합니다. 김일성이 제가 오거나 말거나 그거는 상관이  없어. 우리가 이렇게 하면 다 돼 버려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요 오늘 요번에  들은 말씀을 거석해 가지고 음녀와 간부를 이것을 완전히 정리하고서 이제  주님의 선물을 그런 것을 가지고 주님을 남편으로, 주님을 남편으로 주님을  남편으로, 또 나는 주님의 만유 주의 장자로, 하나님의 장자로 주님의 아내로  이렇게 살면 모든 것은 다 해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나님이  하늘에게 응답을 하시고. '하늘에 응하고' 그러면 하나님은 하늘에게 이용을  당하시고,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땅 시킴이나 땅 소원대로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그 모든 것은 포도주와 기름에게 복종해서 포도주와 기름에게  속해서 그걸 위해서 모든 걸 베푼다 그 말이오.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라엘에 응하리라'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은 이 모든  땅에 땅 좋아하는 대로 하나님의 전력은 땅에 기울이고, 땅, 전력은 전부는  곡식과 포도주에게 기울이고, 이 곡식 전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막 기울여서  하나님과 모든 존재는 아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다 기울어지게 되어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가 이르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전지전능 완전자. 부자가 아니라. 우리가 이 결혼 말이지요, 결혼하는데,  요새 모두 결혼할라 하면 돈 많은 사람 찾고 뭐 찾고 이래 하는데 찾아 봤자,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습니까? 권세가 있으면 얼마나 있습니까? 이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주재자 모든 것의 개별 섭리자 또 죽지 안하는 것과 영생과  평강과 의와 진리가 거기에만 있는 거, 사랑이 거기에만 있는 거,  좋은 거는 그분에게만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은 그분에게 있고 그분 외 다른  자에게는 하나도 없소. 모든 좋은 거는 그분에게 있소. 딴 데는 하나도 없소.

다른 거 있는 거 같지마는 실은 없어요. 모든 것을 좋은 것을 다 가지신  이분으로 더불어 우리가 결혼한다 그거요.

 이분으로 더불어 결혼해. 그분의 신부가 되어, 그분의 아내가 되어. 그 분의  신성에 우리의 인성이 그분으로 더불어 결합이 돼 가지고서 이제 결혼되는 거  말했지요. 첫째는 뭐입니까? 하나 되는 거, 또 모든 소유가 하나 되는 거, 또 그  거처가 하나 되는 거, 모든 역사가 하나 되는 거, 모든 누리는게 하나 되는 거,  참 시집 잘 갔습니다. 참 시집 잘 갔어. 성도가 시집 잘 갔어.

 어떤 성도는 이 면에 대해서 여러 날 운 성도들이 많이 있어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된 그 밀접한 관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걸 생각할 때에 '인생이  무엇이기에 주님이 이렇게 해 주십니까' 하면서 오래 동안 눈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한 그런 사람들 많이 있어요. 여러 날을 운 사람들 많이 있어요.

 자,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몇 시간 지났는데. 이것으로서 지금 이거는 인제  끝을 내야 되겠는데. 우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화 이 모든 것을  내가 간부로 내가 상대하고 있는지. 음녀로 상대하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나에게 내 남편이 주신 선물로 상대하고 있는지, 자존자 그 분만을 내 남편으로  삼고 있는지. 모든 것을 그분이 나에게 주신 것인 것을 알고 있는지. 내가 그걸  주신 그걸 받아 가지고 이 간부를 교제하는 데에, 간부 섬기는 데에 쓰고  있는지. 내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받은 유업을 가지고서 창기로 더불어, 이  창기로 더불어. 이 창기로 더불어 지금 노름하면서 창기에게 다 허비하고  낭비하고 있는지 우리가 요것을 잘 살펴서 오늘까지 창기로 더불어 유업받는  생활을 하고 간부로 더불어 이렇게 음행하는 생활을 했을지라도 즉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그것을 바꾸어서 '간부이니까 내가 거기 매여 살지 말아야지  창기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서 유혹을 버리고 살아야 되지' 이런데,  그것을, 그것을 내가 거기에 소속해 살지도 안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내가 이용해서 살고, 선물로 삼고, 이제 그거 선물로 삼고, 하나님은 나의  남편으로 삼게 되면 그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번 집회에서 음행하는 죄를 이것을 회개하고 호세아서 그  장에 특별히 예언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전에도 우리가 읽었지 마는  우리에게 특별히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어미를 논쟁하고 논쟁해라 네 어미와  논쟁하고 논쟁해라 맹종하지 말고 논쟁해라' 그러면 이 호세아서를 가지고서  이제 배웠으니까, 이만치 배웠으니까 가서 자꾸 읽으면서 살펴보면, '눈에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이랬는데, 어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해요. 나중에  '이 보기 안경을 쓰라. 맞보기 안경을 쓰라 또 돋보기 안경을 쓰라' 안경 쓰는  것은 '이 성경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모든 것을 견해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배웠으니까 이 성경 말씀 가지고 모든 우리 한국 교회를  살펴보면 한국 교회 미래를 어떻다는 것을 환하게 다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  미래를 환하게 다 알 수 있어요. 더군다나 더 교리사와 교회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바로 연구했으면 환하게 앞으로 다음으로 나올 교리가 어떤 교리가  나오겠느냐 다음으로 교회는 어떤 교회들이 생겨 나오겠느냐 하는 것을 환하게  알 수가 있다 말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들이,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망하겠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알 수가 있어요. 이러니까 이게 다 안약입니다.

 안약이니까, 이 성경 말씀 호세아서를 보고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라 말이오. 보면 자기에게 지각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깨달아지기  때문에, 인제 맹종하는 이 말세, 맹종하는 말세에 맹종하지 말고 '네 어미로  더불어 논쟁하고 논쟁하라 논쟁하고 논쟁하라' 한번 네가 한번 논쟁하고 한번  평론을 한번 해봐라. 이거 한번 그렇게 쟁론하고 쟁론하라 호세아서에 있는  요것을 보면서 우리가 깹시다. 자, 그라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에게 안약을 발라서 보게 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참 주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이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일을 하여 주님을  노엽게 했지마는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이것인 줄도 알지도 못 하고 우리는 주님  앞에 중얼거리면서 기도하고 무엇을 의논한다고, 욕구한다고, 무엇을 묻는다고  이렇게 했던 참 철없는 저희들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님을 과연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의 남편이 되셔서.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행하시고 어떤 기대를 가지시고 어떤 애착을 가지시고  어떻게 간섭하시고 어떻게 동거동락 동행하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이 자연  계시인 부부의 정상적인 부부의 제도의 것으로 또 밝히 보여 주셨고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으로 밝혀 주셨사옴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간부를 상대하던 이 생활을 완전히 회개하고 참 영영히 본남편이신  주님을 향하여 사는 정절 지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주님에게 모든 것이  부강하오니 주님께 얻어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이 충만 충만한  부자의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깨닫고 주님을 일편단심 섬기면서 이 정절을 지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이 유혹의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선물을 저희들이 그로 인해서 주님을 잊어버리는 그  음녀로 내가 상대해서 그 음녀의 유혹을 받아서 손해 본 것이 상당히 많은  저희들입니다.

 이제 금번 이 시간을 통하여서 다시 음녀를 완전히 멸해서 이별하고 간부를  완전히 멸해서 이별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주님의 신부로 남은여생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일을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생명의  능력이 와 역사해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과 의를 위해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무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사오니 주님이 이 일을 이루어서  홀로 영광과 존귀와 영원을 받으시옵소서.

 주님, 간구합니다. 금번에 좀 깨달아서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했지마는 서도  너무 범죄 함이 많고 너무 주님과 가리워진 장벽이 많아서 뜻대로 살고 싶지마는  이제 육체가 병들고 늙고 쇠잔해 힘없어서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나 육체가  말을 듣지 않는 이런 곤고 가운데에 있는 성도들 많아 있는 줄 압니다.

 주님, 이 시간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으나 육체의 연약함을 인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던 모든 성도의 육체를 완전히 치료해 주시옵소서. 그 마음에  이제는 치료만 해 주시면 이 건강 가지고서 일편단심 주님을 위하여서 과거에  살지 못하던 것을 다 생각하면서 그것까지도 합해서 주님의 것으로, 주의  종으로, 주님의 지체로, 주님의 성전으로, 주님의 제사장으로. 주님의 선지자로.

주님의 왕으로 이 생활을 하겠사오니 건강을 주시옵소서 하는 요 간구를 하는  자들에게는 다 주시옵소서. 어떤 병이라도 다 건강의 치료를 주셔서 다  주시옵소서.

 주시고, 이렇게 작정하여 주님 앞에 얻은 건강을 가지고서 주님의 뜻대로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약속한 약속대로 살지 않는 그런 실수가 있을 때에 한두  번 주께서 용서하시고 그것이 버릇이 되어서 그것을 장기인 줄 알고 그렇게 사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뜻대로 처리하시옵소서.

 또 주님 원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주님에게  구한다고 될 것이냐 아직까지 구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희가 세상에서 불치병 난치병 모든 병 문둥병 소경 귀머거리  또 벙어리 앉은뱅이 모든 반신불수 누운뱅이 이 모든 암병 피부병 문둥병 모든  신경병 어떤 이름 다 모르지마는 어떤 병이 걸렸든지 주께서 저희들이 원하시는  소리를 들으시고 주님이 낫아 주실 것을 간구 하라고 할 때에 저들이 간구하면  저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병을 완전히 낫게 해 주셔서 과연 주님은 계시는구나  나도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나도 기도할 수 있는 아버지를 만났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남은 여생에 신앙으로 일어서서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구원 준비를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이 두 종류로 완전히 육체를  치료해 주시고, 영도 날마다 치료하는 이 치료를 해서 치료받아 옛사람은 죽어서  완전히 장사 지내고 새사람으로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서 이제는 죽지 않는  사람으로 늙지 않는 사람으로 영생을 가진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남은  세상을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기억해서, 이미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다 주실 것이오. 주셨는데, 주셨는 거 받아 가지고서  고렇게 살지 안하고 망령 부리면 다시 더 큰 증세가 발동할지 모르니까 고것도  알고, 또 처음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번에 다 그 심신의 병을 다 고쳐주실 것입니다. 사람과  육체병을 하나님이 다 고쳐 주실 것입니다.

 또 고쳐 주심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에 말하기를 제사장에게 가서, (소동 하지  말아요) 고쳐 주심을 받은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가서 알리고 예물을 드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고 써서 자기 교역 자에게 보여  줘. (어 가만히 있어 앉아요, 다 앉아. 뭐 죽을라고 그라고 있어? 마귀에게 다  끌려 가 가지고서 전부 다 산매장 당하려고 그라고 있어요? 공산주의가 오면 다  절단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이거 뭣이 병이 나았기는 나았는데 하나님 앞에는 감사를  하지마는 이 병을 나았다고 이렇게 보고하는 것은 병을 나았다 하다가 금방  도리어 병이 더 되어지면은 사람, 사람 같지 않고 이렇게 보여질라 해서 나아도  나은 것을 숨기고 그 교회의 제사장에게 보고 안 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나았으면. 나은 거는 나았으니까 그 다음에 병들지 안하도록 노력할 일 이지  나은 걸 '이다음에 병이 들는지 안들는지 모르니까 이렇게 해야 되겠다.' 또  나았는데, 나은 걸 '아무래도 나았지마는 조금 미심스러운 것이 있는 것  같으니까 이제 덜 나았다 해야 하나님께서 더 싹 낮게 해주시지' 이런 사욕을  가지고 그라는 것도 안 됩니다. 나았으면 나았다고 다 보고를 하십시오.

 그러고, 나았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이거 낫게 해 주시면 내가 나은 힘  가지고 건강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요렇게 작정을 해요. 약속을  하고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십니다. 낮게 해 주셨으면 나는  나았습니다. 하는 것을 자기 교회 교역자들에게 말을 하든지 또 여기에 말을  하든지 고 나은 그 나은 데 대해서 감사 연보도 해야 돼요.

 만일 자기가 그것을 수술해서 치료할라 하면 만일 백만 원이 들 돈이라, 백만  원 치료비가 들 것이면은, 수술해 가지고 백만 원 들어야 될 돈을 병을  하나님에게 나았으면 백만 원 연보하고. 수술해서 백만 원 들여 낮고 수술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백만 원 안 들여 나으면, 뭐 원합니까? 수술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수술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 그 다 같은 그  치료비를 하나님에게 감사 연보로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로 낫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은혜로 낫기를 원하는 사람 은혜로 낫는 것이 낫지. 다 낫지  않습니까?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공 따먹지 말아요. 왜? 하나님께 모든 게 있는  것이지마는 자기에게 감사함을 하나님께 돌리고 또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그 약속을 지켜서 신앙생활해서 바로 살기를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백 팔십 몇 건이 나았지마는 나중에는 그 소리 안하고 뒤에  엉뚱하게 뒤에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나도 나았는데' 그렇게 뒤에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고 나 같으면 당장에 고것을 '네가 낮고도 숨겨 놓고 이라면' 고 표적이라는  것은 나타내 보이라고 하는 것인데 나아도 표적으로 그런 증거해서 나 이런 병이  나았습니다. 하지 안하고 엉큼하게 숨겨 놓으니까 고거는 고 배나 병들구로 탁  해주면 좋겠지마는 주님은 또 그래 안 하신다 그 말이오. 내 심보 같으면  그랬을란지도 몰라요.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안 하시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안 하셔도 주님이 섭섭해하십니다. 고 예물도 드려야 될  것이고, 또 약속도 지켜서 고래 해야 될 것이고, 나았다고 광고도 해야 되고  그래서 어쩌든지 이번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낮아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래 기도해요. 그래 기도하기를. '나아 주시면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고렇게 말을 해도 낫기만 나으면 죄 지을라고 지금 고렇게 하나님  믿는 자라도 주님이 한번 속아서라도 좀 낫게 해주십시오. 그래 가지고 죄  짓거들랑 고만 그에게 네가 죄 지으니까 이렇다 이렇게라도 좀 해 주십시오'  이라는데, 주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실라는지.

 주님이 '아예 너는 나아 가지고 죄 짓는 것보다는 더 큰 증세를 줄 터이니까 안  낫아 주신다' 그랄란지, 어떻게 할는지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이번에 어쩌든지  믿는 사람. 몸이 약해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 하는 사람 다 낫아 달라고  하십시오. 내 믿음으로서 다 낫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습니다.

 또 몰라서.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내가 이거 참 낮게 해 주시면 하나님이  계신 줄 알지요. 그라면 이다음부터 내가 신앙을, 참 살아 계신 것을 믿고  확실한 신앙을 가지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계시면  이걸 낫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제시는 줄 알고 믿겠습니다.' 하는 그런  기도를 하라 말이오. 그런 기도하면 하나님이 낮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요번에 모든 병 낫게 해가지고 사람병 첫째 치료하고 육체병 치료해서  하나님께서 큰 치료하시는 그 치료의 기회로 삼도록 그렇게 합시다. 예. 폐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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