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갈바를 알지 못하는 현실

 

1987. 5. 24. 주일오후

 

본문:히브리서 11장 8절∼9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성경에 우리를 가리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아브라함이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신앙적 자손된 것과 아브라함이 소망하는 그 소망적 자손된 것과 우리가 모든 신앙 행위를 하는 그 생애의 방편적 자손된 것을 가리켜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우리의 신앙의 표본으로 삼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모든 약속도 우리에게 다 약속해 주신 것이고 또 아브라함에게 온갖 종별적 은혜로 구비해 주신 그 은혜도 우리에게 종별적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그 신앙 걸음을 우리가 걸어갈 신앙 노정인 것을 알고 잘 공부해서 아브라함의 신앙 걸음 걸어간 그 구비구비와 그 모든 그 구석구석에 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우리가 발자취 따라서 걸어가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성공한 그 성공을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신앙 출발할 때에 그 조카 롯이 같이 신앙 걸음을 출발해서 참 거처할 곳이 협착할 만치 아브라함과 롯은 다 같은 축복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뒤에는 아브라함과 롯이 아주 갈라져서 딴 방향으로 걸었고, 또 그 결과도 아브라함은 믿는 자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롯은 믿는 자로서 속화되고 탈선된 이 모든 속화 신앙의 조상이 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그 걸음과 롯의 걸음은 우리의 신앙 노선에 두 노선으로 이렇게 우리는 보고 조심해야 되고 또 따라가야 합니다.

롯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다가 땅에 있는 것을 크게 성공적으로 축복을 받은 뒤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던 출발의 사람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은 뒤로 두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크게 여겼고 그 축복보다도 축복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많은 사람들의 그 중론을 크게 여겼고 그 비위를 크게 여겨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롯은 처음에 성공하기 전에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순종하는 걸음으로 걸었지마는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성공된 그것에 가치를 두고 또 자기와 동역하고 있는 모든 종업자들과 가족들의 의사를 자기의 지도로 삼아 가지고서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롯이 걸어간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땅위에 보이는 축복을 롯과 같이 꼭 같은 축복을 받아서 성공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된 모든 부강 그것도 귀한 은혜이지마는 그것보다 그렇게 부강한 축복을 주신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롯은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축복 주신 그 축복을 가치로 삼아서 바라본 것이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종업자들의 중론들이 있었고 또 자기 받은 그 은혜의 기업에 대한 문제점이 극히 있었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풀이 없는 자산이라 하는 것은 그 목축업은 전멸이 되는 그런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업이 전멸되든 말든, 또 자기 가족들의 여론이 어떻게 되든 말든, 가난한 가운데에서 그렇게 부강하게 해 주신 하나님과 홀로 숙질간에 떠난 그 외로운 걸음에 많은 종업자들을 붙여서 그렇게 사람 부자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만을 끝까지 바라보고 그분을 따른 것이 아브라함의 걸음이었습니다. 거게서 아브라함과 롯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롯은 참 형편없이 전멸이 됐습니다.

그 부강했던 기업도 다 절단났고 또 자기가 대단히 가치로 여기고 권위로 여겼던 모든 종업자들과 가족들도 다 산산히 전멸이 되고 고독한 사람의 그 결과를 맺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축복의 기업보다 또 축복의 많은 인권들을 크게 여겼고, 많은 인권들보다 기업과 종업자들을 많게 해 주신 그 하나님에게 모든 가치를 두고 하나님을 소망하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일을 요동치 안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그 신앙 노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 믿기 전 형편보다 예수님 믿은 후에 형편이 좋아지면 좋아진 형편 그것을 오히려 그런 형편을 주신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롯의 탈선된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렇게 가다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낭파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명히 무식한 가운데서 유식한 지식을 얻은 사람이, 가난한 가운데서 부요함을 얻은 사람이, 또 아무 지위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이 얻어 가지고 난 다음에는 자기의 인간 실력이나 또 자기의 모든 소유의 부요나 또 자기의 높은 그런 지위나 그런 것을 오히려 하나님보다 실상은 높이 평가하는 일 되기 매우 쉽습니다.

그리 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의 모든 기거동작을 누가 주관하느냐? 자기의 업체가 주관하고, 자기의 직장이 주관하고, 또 자기의 자체의 실력이 주관해서 그것들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그것들은 상우지 안하도록 해되지 안하도록 잘 보수할라고 애를 쓰고 그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주신 하나님을 자기가 보수할라고 그렇게 힘쓰지 않는 그런 망령된 사람 되기 쉽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롯의 걸음을 걷지 안하면 아브라함의 걸음을 걷고 아브라함의 걸음을 걷지 안하면 롯의 걸음을 걷는 이 두 노선이 외에는 다른 노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노선을 주셨습니다.

이랬는데 오늘 여기 봉독한 말씀 가운데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에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는 말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여게 대해서 지금 간단하게 증거를 할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인도하는 인도를 따르면 내가 너에게 큰 축복 넷을 주겠다. 첫째는 네가 창대케 된다, 크게 번성하게 된다. 또 네 이름이 크게 유명하게 들나게 된다.

또 네가 복의 근원이 된다. 땅에 있는 모든 인류가 너로 인해서 복받게 되는 복의 근원이 네가 될 것이다.’ 그렇게 큰 축복 네 가지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했습니다.

네가 큰 민족 되고, 창대하게 되고, 네 이름이 크게 창대해서 높아지고, 모든 사람이 복받는 복의 기관이 될 것이고, 또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로 인해서 복받는 그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는 이 큰 축복 네 가지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네 가지 축복을 준다는, 천하에 전인류가 너로 인해서 복받는 복의 근원된다. 또 네 자체와 네 족속이 크게 흥왕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너로 인해서 복받는 복의 기관이 된다. 그런고로 너를 해하는 자는 내가 그를 해할 것이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시겠다 하는 요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 또 복의 근원이 되는 이 근원 이 약속을 하나님에게 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뜻을 새기면 큰 축복이지마는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바란다는 것은 이것은 참 사람 생각으로 보면 허망한 중에 허망합니다. 어떻게 지금 초리한 그런, 벌써 인간 평생을 다 지나가고 그저 초리한 그런 일개의 못난 서민으로 지내는 그 아브라함에게 천하에 있는 모든 민족이 다 너로 인해서 복받을 거라 한다는 그런 말은 이거 물에 넣어도 붇지 안할 허무한 소리로 사람이 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다는 이 축복의 소망을 굳게 잡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은 이 큰 축복의 소망 이거 하나를 받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갔던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따라가는 아브라함이 그 다음으로 받은 것은 뭐인가? 두번째 받은 것은 뭐인가? 축복의 근원, 전인류의 축복의 근원이 되겠다는 이 큰 약속을 하나님에게 받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에게 받은 것은 이해 못 할 현실이었습니다. 이해 못 할 현실입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한다 말은 자기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나갈 때 ‘이 걸음으로 가면 무슨 소망이 생기겠다, 희망이 있겠다, 무슨 유익이 있겠다, 좋은 일이 있겠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여겨지는 그런 걸음 아닙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다 말은 아브라함이 생각하기에는 이는 뭐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지 아브라함이 볼 때 ‘이것은 내 계산으로 따져보니까 좋은 걸음이다, 성공할 만한 걸음이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이해할 만한 그런 현실을 아브라함에게 주지 안했다 그 말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다 말은 하나님께서 한 현실 한 현실로 순서를 잡아서 주실 때에 주시는 그 현실을 아브라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줬다 그 말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다 말은 무슨 현실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실 큰 축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속이지 안하고 반드시 자기에게 유익되게 해줄 것을 믿고 한 자욱 한 자욱 밟아 갈 그 현실 현실을 부딪힐 때에 그 현실에 대한 것을 자기 주관으로 따지고 이해할라고 생각지를 안했습니다. 또 이해할라고 따져봐야 따져지지도 안하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참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하나님에게 비추어서 그뭐 억억만의 일도 안 되는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하나의 농부 서민으로 되어 있는 그 아브라함의 그 지능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가 이해될 리가 없고 그것을 지적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예 알라고 하지 안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현실을 주실 때마다 그 현실은 아브라함은 그 닥치는 현실은 다 이해 못 할 현실이었다 그 말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다” ‘이리 가면 어데로 가노? 이리 가면 어데로 가노? 이라면 어찌 되겠노? 이라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노?’ 그거 도무지 이해 못 하는 그런 현실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줬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은 그 현실을 주실 때에 불만 불평한 일이 없었습니다. 현실 주실 때마다 ‘나는 이해 못 하는 것은 나보다 무한히 크시고 광대하시고 능하신 분의 그 지식대로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니 어떻게 내가, 이 버러지 같은 내가 그 광대하시고 지극히 큰 계획을 이해하고 가겠느냐?’ 그저 내게 좋게 해 주시는 것이라 하는 것만 믿고 현실을 뿍뿍 걸어갔습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그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영감. 그 현실을 줘 놓고 난 다음에 이 현실에서는 너는 이렇게 하라, 또 하나님이 진리를 알려 주면서, 영감을 알려 주고 난 다음에 진리를 알려 줘서 받은 영감을 이성 비판으로 따져보니까 진리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현실과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 외에는 그의 걸음에 받은 것이 없습니다. 제일 처음에 받은 것은 지극히 큰 소망을 받았고, 지극히 큰 소망을 이루는 데에는 내가 인도함을 따라라 했기 때문에 그저 인도함을 따라가는 것뿐이지 지극히 큰 소망을 놓지 안하고 항상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이루는 걸음으로 저는 알고 그저 현실 줄 때마다 ‘이 현실은 내 소망을 이루는 순서다’ 또 현실 주고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가르쳐 주실 때는 ‘요 현실에서는 내가 요렇게 해야 내 지극히 큰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는 믿음 가지고 걸어갔습니다. 딴거 아무것도 주지도 안하고 받지도 안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가운데에 참 하나님이 가나안은 또 말씀했는데 가나안은 당대뿐 아니라 이대 삼대가 돼도 가나안을 차지하지 못했으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한 그 약속한 것이 참 의심할 만치 낙망할 만치 됐지마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해서 의심이나 낙심하는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자기가 이해 못할 그런 모든 객지에 우거하면서 말하기를 ‘내 계획이 틀렸지, 내가 이 가나안 이거 준다고 내 귀에 들을 때 가나안이라 했으니까 이것인 줄 아는데 이보다 더 좋은 터인 좋은 곳을 나에게 주시지 결단코 하나님은 나한테 거짓말하시거나 속이는 하나님이 아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에 그 가나안을 차지 못 했을 때에 ‘하나님이 더 좋은 영원 불변의 견고한 성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거게는 다시는 변동 없고 영원 무궁한 영원 불변한 그런 기업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땅에 이것을 주시지 않는다, 내가 오산해서 이것을 바랐지 하나님은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는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 가진 자들에게 영원 무궁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은 지공하신 하나님으로서 그 역사를 이루게 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라다가 그가 죽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말하기를 이는 내 벗이라, 나의 백성이라 하여 아브라함을 언제든지 자랑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또 그의 믿음을 대받아 나온 이삭의 하나님이다. 또 그 믿음을 대받아 나온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 다음에는 나는 누구의 하나님이라는 그 말씀을 쉽게 하지 안했습니다. 약간 기뻐하는 사람 있었지마는 그렇게 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그가 일생 동안 피곤치 않고 일생에 한 토막도 후회할 토막을 가지지 안하고 승리의 걸음을 걸어서 참 인간이 상상도 못 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완성했습니다. 이게 아브라함입니다.

완성한 것은 아브라함이 이 큰 축복의 소망만 푯대로 삼고, 그 소망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편인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그 현실을 달게 받았고, 현실에 어떻게 현실을 밟아나갈 것이냐 하는 것을 영감과 진리로 줄 때에 그대로 한 현실 현실을 밟아나간 그거 외에는 아브라함은 한 일이 없었습니다.

지극히 큰 소망을 하나님이 이 세 가지를 주실 때에 그 세 가지를 달게 받아서 모아 놓은 것이 아브라함의 성공입니다. 참 티끌 모아 태산 같다고 극히 사소한 그런, 인간이 이해하지도 못할 그런 뭐 지저분한 그런 현실을 주었으나 아브라함은 그 현실을 지극히 큰 소망을 이루는 유일한 방편으로 알고 한 현실도 허비하지 안했습니다. 또 한 현실도 자기의 단독으로 주관으로 처단하지 안했고 꼭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한 자욱 한 자욱 현실을 밟아 나간 것이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요 아브라함의 흠없는 완전한 성공에 도달한 그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은,ㅡ터가 있는 가난안 땅이라는 것은 진동되지 안할 하늘나라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에 완전히 소유되었고 그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소유한 무궁한 영원세계의 하늘나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이 다 그 나라를 기업으로 받아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가나안을 말한 것을 지금 우리에게는 인제 더 밝혀져서 사망 너머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심판받아서 영생하는 무궁한 하늘나라가 그것이 우리 소망이라. 이래서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땅으로 모형해서 줬고 우리에게는 이제 죽음 너머 부활, 그리스도의 심판 그 다음에 우리가 누릴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의 소망이 되어 있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들은 아브라함에게 하나의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준 이 가나안 곧 하늘나라를 우리의 소망으로 주셨으니, 우리는 하늘나라의 이 소망을 가지기를 아브라함이 땅위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다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복을 받으리라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그 약속과 같이 우리들은 하늘나라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기업으로 상속받아서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 위 하나님 한 분 아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머리요,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모든 피조물의 중보되는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들이 가지고 우리는 이 행인 걸음을 걷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한 자욱 한 자욱 걷는 것은 지극히 큰 소망 영원한 하늘나라를 지금 소망하고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거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창세기 12장에 하나님 앞에 약속 받은 그 약속이 곧 모형적으로 받았는데 그 약속을 믿음으로 달성시켜서 실상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상속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들은 첫째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가질 것이 무엇이냐?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열한 가지 구속을 받아서 무궁한 하늘나라, 무궁한 이 하늘나라에 영원한 천국을 우리가 소망하고 우리는 하루 하루를 걸어가야 됩니다.

아브라함같이 우리는 첫째 받은 것이 영원 불멸의 완전한 하늘나라, 사망과 곡하는 것과 분과 슬픈 것과 그런 모든 죄악이 없는 진리와 사랑과 생명과 평강으로만 넘치는 그 나라가 우리 나라인데 이 나라를 소망하는 이 소망을 우리가 첫째 받은 줄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의 소망을 우리가 받은 이 소망을 우리가 굳게 잡고 놓지 말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놓지 안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약속 받은 영원한 하늘나라 이 소망을 제일 먼저 하나님에게 소망으로 받은 것인 것을 알고 이 소망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 소망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데 가도 이 소망을 놓지 안하고 이 소망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제일 우리가 가질 것이 뭐이냐?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에게 제일 먼저 받은 것 제일 큰 것을 받은 것 이 받은 것을 우리가 놓지 안해야 되니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하늘나라 소망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것도 있고 앞으로 받을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사죄, 칭의, 화친,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생명.

우리가 받을 것은 무엇인가? 받을 것은 심신의 구원, 곧 우리가 이 심신이 거룩하게 성화되어서 하늘에 참 영원히 제사장, 선지자, 왕직으로 실력 있는 자 되어서 쓸모 있는, 기다리고 있는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중보,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우리에게 맡겨서 안심하고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그에게 맡기시리라” 하는 이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맡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이 기대하는 데에 만족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의 심신 성화의 건설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가치의 차이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하나로 가져야 되지 둘이나 셋으로 가져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뭐 매일도 소망, 물론 소망 매일 소망 있지요.

소망 있지만 그거는 무슨 소망이냐? 내가 하나만 되는 이 소망,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돈도 있어야 되겠고, 뭐 권세도 있어야 되겠고, 지위도 있어야 되겠고, 또 공부도 해야 되겠고, 다만 이 유일하신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이루기 위한 것으로, 이걸 이루는 데는 요런 것도 있어야 조런 것도 있어야 된다 하는 그게 소망이지 그것이 절대 우리의 소망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을 이 소망 이 한 가지를 우리 소망으로 두고 이 소망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모든 요소, 소망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이용이 될 요소 그런 것들은 이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기 위한 이용의 그 가치의 소망이지 그것이 우리의 소망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소망을 착각하고, 자기는 소망을 위한 소망은 땅위에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지마는 우리가 영원한 소망을 이것을 옮겨서 자기는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소망이다, 권세 위해 사는 것이 소망이다, 땅위에 어떤 성공하는 것이 자기의 소망이다 이런 것은 다 정신빠진 미친 자의, 신자 아닙니다.

그거는 마귀요. 가라지요. 믿는 사람이지마는 멸망할 행위입니다. 멸망할 생각이요 멸망할 행위요.

아브라함과 같이 요 소망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 이용의 것으로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 이 소망에 필요 없는 거는 우리가 취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취하는 건 뭐이냐? 모든 거 가지지만 이 소망에 필요 없는 거는 다 배설물과 같이 집어던져 버립니다. 이 소망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돈이라면 결사적으로 돈을 모웁니다. 이 소망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식이라면 결사적으로 그 지식을 갖춥니다. 이 소망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자기 지위라면 죽어서 순직으로 죽어도 그 직책을 감당합니다. 이 소망을 위해서 땅위에 이것 저것 할 일이지 이 소망에 필요 없는 그런 것은 사는 것도 필요 없고 죽는 것도 필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때마다 말하기를 ‘주님이여 내가 이 먹는 것이 주님이 축복하셔서 이 소망에 필요하다면 이거 먹는 게 필요하지마는 이 소망에 소용이 없다면 먹으면 뭣하며 소화 잘되면 뭣하며 건강 얻으면 뭐합니까? 다만 이것이 이 소망을 달성하는,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결과를 맺지 못한다면 먹는 것도 사는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사는 것도 폐단이요 죽는 것도 폐단이요 먹는 것도 폐단이요 모두가 다 거치는 것뿐이지 소용이 없습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그런 생각 가지고서 사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이 유일한 소망을 놓지 말고 이 소망을 굳게 잡고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 저것 해야 됩니다. 이루기 위해서! 이 소망을 이룰라고 하면 잘못된 것을 고치고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되는데 우리가 회개하다가 간 작기 쉽습니다. ‘내가 이거 회개하면 뭣이 폭로돼 가지고 큰 탈 나겠다. 이거 회개하다가는 당장에 사업이 절단나겠다. 무엇이 어찌 되겠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걸 회개하는 데는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에 아무도 거게 해할 자도 없고 아무도 침노할 자 없습니다. ‘야, 이 회개는 하면 마구 네 몸이 박살나겠다.’ `염려 말아라. 회개하는 걸음은, 회개하는 양은 어깨에 메고, 목자가 어깨에 메고 간다.’ 죄를 회개할라면 협박 많습니다. 죄를 회개할라 하면 별별 협박들이 많습니다.

그까짓 거 협박이 온 천하가 달라들어도 하나님 말씀에, 양이 목자를 떠났다가 목자에게로 돌아가는 걸음은 양을 아듬고 어깨에 메고 돌아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그 걸음 걸을 때에, 저 혼자 목자를 떠날 때에는 덜강 만났을 때에 찢겨서 고생한 경험이 있고, 강 건너다가 빠져서 고생한 경험이 있고, 이리 만나 가지고 죽을 지경 닥친 게 있고 이러니까, 그놈이 그게 과거에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이 있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지 회개하는 걸음에는 어떤 무엇이 와도, 덜강 와도 만왕의 왕이신 목자에게 어깨에 메여 가지고 가는데 덜강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이제 개울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리떼가 무슨 상관이 있어? 공연히 제 주관으로 놀라기만 놀라지 실상은 아무 일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잃은 양 찾는 것으로 비유해서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소망을 가지고 나갈라 하면 별별 위협이 있어. 당장에 낯에 똥칠하는 위협이 있고 파괴되는 위협이 있고, 염려하지 말아라! 안 되면 그거 죽여버린다! 네 회개하는 데 방해하면 죽여버린다! 뭉케버리면 가루가 돼 버린다! 죽일 권리도 있고 살릴 권리도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주신 이 소망을 향해서 달려야 됩니다. 걱정하지 말아야 돼요. 달려야 돼요. 그럴 때에 회개의 평강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소망을 굳게 잡고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우리는 달려야 됩니다. 모든 일이 이 소망 이루기 위해서,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더불어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라.” 말씀했습니다. 이 소망을 우리가 가진 것이 하나님에게 제일호로 받은 것인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일호로 받은 이 소망을 놓지 말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몇 가지 줬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줬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 줬습니까? 네 가지로 하는 사람도 있고 세 가지로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몇 가지인고? 대답해. 네 가지? 그거는 소망이야, 소망. 소망 그거 뚤뚤 뭉쳐서 그거 하나님의 축복의 소망 하나라. 그 소망 하나 받았고, 그 다음에는 세 가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현실 줬고 영감 줬고 진리 줬고 이 세 가지 줬습니다. 그 외에 주지 안했어. 오늘 우리에게도 똑 그와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 하기 위해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의 중보자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큰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 몇 가지 주십니까?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 줬습니까?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몇 가지 줬습니까, 저 뒤에도 손가락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도. 저 뒤에 들어보이소, 손가락으로. 셋 들었습니까, 셋? 녜, 셋 맞아요.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현실을 줬습니다. 현실을 줬는데 그 현실이 아브라함에게 이해되는 현실이었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는 현실이었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 하는 현실이라. 도무지 아브라함으로서는 측량 못하는 현실이라.

좋아도 측량 못하고 나빠도 측량 못하고 아예 거게 대해서, 이 현실은 좋겠다 나쁘겠다 거게 대해서 자기 조부라운 거 가지고서 계산을 대 볼라고 달라들지를 안했어. 무한한 분의 하시는 역사이니 유한한 제까것 게 뭘 알 것이라고? 이러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다” 그저 현실 주면 ‘이 현실도 나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이루는 한 순서이라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이 순서 이것도 놓치면 안 된다. 하나도 필요 없는 순서는 없다. 이것도 놓치면 안 되는 순서다. 현실이다.’ ‘그라면 이 현실에 어떻게 할꼬?’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영감 줬습니다. 롯하고 아브라함하고 시비할 때에 롯은 그걸 몰랐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네가 물질은 있다가도 없고 또 내가 주면 얼마든지 있는 것인데 네가 조카하고 단둘이 신앙으로 나왔다가서 네 조카에게 사람 잃지 말아라. 물질 때문에 사람 버리지 말아라. 사람을 버리지 말아라.’ 하나님이 영감 주시는 걸 받았기 때문에 그는 담대히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겠다.’ 그 물질은 바로 가나안을 차지하면 전멸되는 것인데 소유가 전멸되는 것이지마는 롯을 거슬리려고 하지 안했습니다.

가족들이 그렇게 분분했지마는 가족들의 분분한 그 대중의 의사를 따르지 안하고 세미한 음성인 ‘주님이 내게 말씀해 주시는 영감이 뭐이냐? 주님이 내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가 뭐이냐?’ 영감과 진리 따라서 그는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현실을 주실 때에 ‘이 현실은 하나도 영원한 내 소망, 지극히 큰 소망, 하나님의 신성에 동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신성의 신격과 같은 인격 존재 이것이 달성되는 데에는 하나도 뽑아서는 안 될 이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믿고 현실 하나도 무용지물로, 현실 하나도 원망하면 우리는 시비받습니다. 현실 그것은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현실인 이 사실을 확신하고, 그 다음에 셋째로 하나님에게 받을 것은 뭐인가? 현실은 주셨는데 이 현실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런지? ‘주님이 나에게 진리로 주시든지 영감으로 주시든지 이거 줘야 되겠습니다.’ 신구약 성경 가지고 나벼봅니다. 신구약 성경 가지고 나비는 것은 성경에서 요렇게 해라 딱 되면 고거 진리로 받았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게 옳습니까?’ 할 때에 영감으로서 `아멘, 옳다, 그대로 걸어가라.’ 이럴 때에 우리 이성에 확신이 들어오고, 이성에 확신이 들어오고 우리 양심에 확신이 들어옵니다. 양심에 확신 들어오는 것이 영감이요 이성에 확신 들어오는 것이 그게 진리입니다. 진리와 영감 받아 가지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몇 가지 주셨는가? 네 가지 주셨습니다.

소망 주셨고, 현실 주시고, 진리 주시고, 영감 주시고, 하나님은 네 가지만 주십니다. 이 네 가지만 주시는데 이 네 가지에는 완전이 다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완전이 다 들었어.

내가 하나님과 꼭 같이 되는 것도 이 네 가지 속에 들었고, 하늘과 땅의 것을 다 기업으로 받는 것도 네 가지 속에 들었고, 또 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 뜻을 달성하는 데도 이 네 가지 속에 다 들었고, 요셉이가 애굽 나라에 무식꾼이 총리대신 하는 그 총리대신을 제일 잘 하는 것도 이 네 가지 속에 들었고 다 들었어.

하나님이 요 네 가지를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할 일이 뭐이냐? 우리는 할 일이 뭐이냐? 우리 할 일은 뭐이냐? 믿고 순종할 것뿐이라. 그것만 해. 믿고 순종하는 거. 한 말로 말하면 믿음이라 해도 좋아. 믿고 순종하는 거.

믿다니? 하나님이 나에게 지극히 큰 소망 준 것을 항상 믿고, 이 소망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을 주신 이 현실은 이 소망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현실이요, 하나도 하나님의 선물로 사랑으로 보배로 주신 현실이니 필요 없는 현실이 없으니 자기 소망을 달성하는 데에 유일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현실로 믿고, ‘이 현실을 어떻게 내가 밟아가야 되겠느냐?’ 이 현실에 당신이 밟아나갈 것을 진리로 영감으로 틀림없이 나에게 알고자 하는 거는 가르쳐 주시니 가르쳐 주시는 대로 요 네 가지 받은 것을 믿고 나는 그대로 걸어가면 돼. 요것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걸음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고 작은 우리의 토막 토막의 성공, 크고 작은 모든 토막 토막의 우리의 문제, 길고 짧은 모든 굴곡, 모든 애로 그 모든 데에서 우리 할 일은 무엇이며 하나님 할 일은 뭐인가?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런 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생명이 되고 성공이 되고 영광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주시는 것은 셋만 주십니다. 셋만 주시오. 현실 주시고, 고게서 요런 현실 조런 현실 바꿔 가면서 주시요. 그라고 난 다음에 영감 진리 주시요.

나는 그대로 믿고 순종만 해.

그런고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약속해 놓고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는 데에는 세 가지만 주신다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 가지만 주신다.

세 가지 주실 때에 우리가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지극히 큰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다 점령하고,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고, 수족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고, 다 된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놓지 말아요. 굳게 잡아요. 우리 할 일은 믿고 순종하는 것 둘밖에 없어. 그거 있으면 만능이라. 어떤 현실이라도 제가 사사롭게 비판해서 뭐 불리하다, 행복스럽다 그렇게 조작배기 판단하다가는 저 망합니다. 심판 받습니다.

그저,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주님이 사랑의 전지의 능력으로 만들어 준 현실인 것인 것을 알고 현실을 감사히 받아서 ‘이 현실을 어떻게 밟아 나가느냐?’ 거게 대한 영감과 진리를 받아 가지고 뿍뿍 나가면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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