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문

 

1988. 3. 15. 화새벽

 

본문 :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누가복음 13장 24절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좁은 문과 큰 문 둘로만 되어 있습니다. 좁은 문과 큰 문 이 두  문으로만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데 있든지 언제든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그 미래를 밟든지 큰 문으로 들어가는 미래를 밟든지 그 둘 중에  하나이지 자기는 좁은 문도 아니고 큰 문도 아닌 그런 데로 가는 줄로 아는  그거는 잘못 생각입니다.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  둘뿐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둘뿐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음이 걸어가는 것이고 몸으로  행동하는 것은 몸으로 걸어가는 것인데 마음이나 몸이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든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든지 자기는 둘 중에 한  길이지 다른 길은 없습니다.

 또,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길이 넓어서, 길이 넓고 평탄한 길이 있고 길이 좁고  협착한 길이 있습니다.

 자기가 현실에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갈 때에 살아 나갈 때에 자기는 넓은  길을 걷든지 좁고 험한 길을 걷든지, 넓고 아주 그 사나운 협착한 길을 걷든지  넓고 평탄한 길을 걷든지 두 길 중에 한 길을 걷는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 자리 섰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가리켜서 행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행인이라는 것은 한 자욱 한 자욱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또 나그네라고 한 것은 자기가 영원히 가서 살 자기의 영주처는 따로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영주처가 아니고 곧 옮겨 이사 갈 곳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들을 권하노니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좁은 문과 큰 문이 있다,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다. 그러면, 좁고 큰 길이 있다. 또 멸망과 생명의 길이 있다.

넓고 평탄해서 아주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고 좁고 험해서 가기  힘드는 길이 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지금 세 가지 세 가지 여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두 가지씩  세 쌍을 말했습니다.

 좁은 문 뭐 큰 문이나 넓은 문이나 괜찮습니다. 좁은 문 넓은 문, 험한 길  평탄한 길, 또 멸망과 생명, 요것이 있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사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좁고 험한 생명길은 무엇을 가리켰으며 크고 평탄하고 멸망하는 그  문과 길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정의해서 알아야 됩니다. 뭐  이것은 모든 성경학자들이 해석해 놓은 것이 각각 다릅니다. 심히 사이비하고  복잡합니다.

 제가 칼빈 주석을 한 번 내가 찾아 봤는데 거기에는 이것이 빠지고 없습니다.

그분은 대단히 겸손하고 지혜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자기가 확실히 모르는 그런  것은 다 주석하지 안하고 뽑아 놨습니다. 제가 요거 알면 필요 하다 해 가지고서  찾아 볼 때에는 그런 성구는 주해 해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 군데를 내가  혹 그럴 때마다 찾아 보면 없습니다. 요거 없지 싶어서 찾아 보면 없습니다.

 그러면, 좁고 험한 이 생명길은 무엇이며 넓고 평탄한 멸망길은 무엇인가?  여기에 문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은 자기가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당하지 못하고 자기가 한번도 겪지 못한 새 생활에 나아가는 것, 새 행동에  나아가는 것, 새 경험과 체험에 나아가는 것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문이 아닌 곳은 여기에서 내가 볼 때 저 예배당 끝에까지 쫙 보입니다.

여기에는 문이 없습니다. 문이 있으면 문이 있는 데는 반드시 막혀 있습니다.

막혀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그 다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기 일생을 환하게 다 보여지는 외통길인줄로  알지마는 첩첩이 문이 돼 있습니다. 한 첩을 바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깨닫는 것도 경험하는 것도 체험하는 것도 다릅니다.

 이래서, 내가 너희에게 열린 문을 두노니 아무도 닫지 못하리라 그렇게도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 좁고 또 험하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 문은 뭐이며 길은  무엇인가? 문이라 말이나 길이라 말이나 같습니다.

 길이라 말은 내가 한 자욱씩 밟아서 통과해 나가는 것을 가리켜 말하고.

어쨌든지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은 자기의 미래를 걸어나갔고 이제까지 살지  못하던 생활을 새로 한 것입니다. 늘 살던 생활이 아닙니다. 한 것이고, 또  거기에는 한 토막을 가리워졌던 그 세계를 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그 사람이 명철해도 스무 살 먹은 사람은 스물한 살 먹은  바보의 경험과 체험을 모릅니다. 스물한 살은 스물한 살 돼야 그때에 그 것을  알게 되고 서른 살에 경험하는 것은 서른 살이 돼야 경험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컴퓨터 세상이니까 뭐 그거 상관없다 이렇게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정치를 안하고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가지면 그 나라가 망하는 징조다  그렇게 성경은 말했습니다. 인간들은 다 말하지마는,  그래서, 아이가 정권을 잡으면 그때는 완전히 망한 세상이라 그렇게 성경은  말했습니다. 전지한 하나님은 말했는데 인간들은 뭐 통계 무슨 소리하지마는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좁은 문은 뭐인가, 넓은 문은 뭐인가? 좁은 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주신 이 신구약 성경 법도가 있습니다. 이 법도는 우리가 살아나갈 생애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구약 성경, 하나님이 주신 법칙이요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또, 넓은 문은 뭐인가? 이것은 배암이 준, 마귀가 준 그 인간들의 지식, 배암의  지식, 인간들의 지식, 인간들이 세워놓은 법도 이것을 가리켜서 큰 문이라  말했습니다.

 요것을 확고하게 잡지 안하면, 요것은 그저 뭐 좌도 우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생각하나 하나는 사망이요 하나는 생명입니다.

 자기가 ‘뭐 그래도 내가 암만 그리 그래도 내가 뻔뻔히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네가 몰랐다. 네가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그 심신의  정력은,’ 심신의 정력은 기능을 만드는 것인데,  어제 양성원에 가 가지고서 정력이 기능을 만든다. 정력은 기능화돼서 정력은  없어지고 기능만 남는다 그걸 장 가르쳤습니다.

 정력이 기능이 되는데 네가 만든 기능은 다 사망하는 기능이다 그말이오. 또  네가 만든 기능은 한 시간이나 십 분을 살았을 지라도. 십 분동안 네 정력이  만든 기능은 영생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영생도 됩니다. 요것은 지금 세계의  조직 신학에 아직 나타나지 안했습니다. 세계 학자들이 지금 요게 대해서 언급을  못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하면 전부 반대요. 그렇지마는 눈을 하나님이  가리워서 보지 못해 그렇지 눈을 뜨고 보면 전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좁은 문 큰 문, 좁은 문은 하나님의 인도하는 하나님의 인도의 하나님의  지식대로 되는, 지식으로 따라가는 그것을 말하고 큰 문은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지식뿐입니다. 그거 외에는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지식이고 또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보고 혹은 설교해 놓은 것이나 주석해 놓은 것은 수많은  책들이 있지마는 그 수많은 책들, 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과  일치된 것은 가치 있고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것은 다 죽은 것입니다.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식을 이렇게 확대해 놓고 또 그것을  더 불궈놓고 한 그것은 그것은 조불뜨리면 나중에 하나님의 지식 하나로 다  들어가서 하나님의 지식 하나라야 되지, 하나님의 지식을 펴 놓은 것이라야 되지  하나님의 지식 외에 딴것을 가한 것은 다 그것은 넓은 문이요 또 넓고 평탄한  길이요 멸망의 길입니다.

 이래서,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있으니 세상  지식은 많고 하나님의 지식은 적습니다. 세상 지식대로 사는 것은 그것은 아주  가기 쉽고 수월하고 넓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것은 아주 길이 좁고 험합니다. 요라다  보면은 하나님의 지식 어겼고 저라다 보면 하나님의 지식 어겼고 이러니까  이리저리 하나님의 지식을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나아가는 것은 좁고  길이 험해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또, 세상 지식은 수많은 지식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행동해도 세상 지식에는  맞습니다. 세상 지식 많기 때문에 이 지식에 안 맞으면 저 지식에 맞고 저  지식에 안 맞으면 이 지식에 맞고 민주주의 지식에 안 맞으면 공산주의 지식에  맞고 또 그뭐 방탕자의 지식에 안 맞으면 세상에서 무슨 도덕가나 경건한 사람의  그런 사람의 지식에 맞고 어짜든지 세상 지식에는 다 맞는데, 세상 지식은 요 면  지식에 안 맞으면 요 면에 맞고 요 면에 맞고 다 맞는데 하나님의 지식에는  맞출라 하면 힘이 듭니다. 좁습니다. 좁으니까 힘이 듭니다.

 또 길이 협착하다, 길이 험하다,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라 하면 험합니다.

얼마나 험하냐? 네가 있는 것 다 버려야 가지 있는 것 다 버리지 않으면 못  간다. 이렇게 험한 길입니다. 험한 길이오.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가지고는 못  갑니다.

 그런데, 넓은 길은 자기의 필요한 것 다 가지고 죽는 날까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 또 마련하고, 마련하고 마련해서 처음에는 열 됐다가 백 됐다가 천 됐다가 만  됐다가 어쨌든지 죽는 날까지 자기의 필요한 것을 마련하다가 갑니다.

이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자기의 가진 것을 처음에는 열 가지를 가지고 갈라  하니까 열 가지 중에 한 가지가 걸립니다. 이 걸려 못 가니까 또 그거 내 놔야  되겠습니다. 또 나중에 보니까 다섯 가지가 걸립니다. 나중에 다 보니 하나가  걸리는데, 생명만 걸리는데 ‘사람이 죽고야 뭐할 수 있나? 생명은 내가 가지고  가야 되겠다.’ ‘안 된다. 생명도 내 놔야 된다.’ 있는 것 다 버리지 않으면  안 돼.

 이러기 때문에, 이 길은 협착한 길이요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아주길이 넓고  평탄합니다. 그 길은 아무라도 찾기 쉬워. 아무나 따나 가도 세상 지식대로는 다  돼. 이 지식에 안 맞으면 이 지식에 맞고 이 지식에안 맞으면 이 지식에 맞고 다  맞지 그거는 조심할 것 없이 아무나 따나 가도 세상 지식대로는 가지는  것입니다. 또 수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하나는 영생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가치를 보고서 사람들이 생명길로 졸은 문으로 가는 것이지  그 결과의 가치를 안 본다면은 누가 그 고행주의로 이 좁은 길을 갈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가 획 하나라도  순종 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거기에 복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나보다 무한히 위에 있습니다.

진리기 때문에 나는 복종해야 됩니다. 세상 지식은 어떤 지식이든지 인간 위에  있습니까 인간 밑에 있습니까? 인간 밑에 있어. 그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은  그것은 내가 세상 지식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 어떤 모든, 크게 말하면 세상에 지식 중에는 제일 큰? 지식을 가리켜서  과학이라 그렇게 말을 하겠고, 또 세상 모든 지식은 다 도덕이라 그렇게  다음에는 도덕이 크다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도덕이 크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에만 순종해야 되지 세상 도덕 지식에 순종한 것은 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알겠습니까?   부모에게 효성하라는 것도 오계명을 지켜 효성하는 것과 세상에 각모든 종교  단체 사상에서 부모에게 효성하라는 그것 보고 효성하는 것은 다 멸망입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지 안해. 하나님의 계명 지키기 위해서 효성한 것은 갚아  주시고 효(孝)지마는 다른 것은 갚아 주지 안해요. 요걸 알아야 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멸망이냐 구원이냐? 멸망으로 나를 인도하느냐 생명으로  인도하느냐?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라면 원수지. 암만 밥먹이고 옷 입히고  달콤하게 해 좋도 원수지. 생명으로 인도하면 그는 내 은인이라 할 수 있고 나의  참된 스승이라 할 수 있지.

 생명으로 인도하는 게 뭐인데? 험해도 찾기 어려워도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  하는 것은 내가 스승으로 내 은인으로 영접해야지.

 아무리 좋아도 나를, 요 좁은 길로 갈라 하는 요 신조와 교리, 요 정신, 요  사상, 요 주장, 자기 이념, 요놈을 그렇게 갈 것 없이 넓은 길로 가라 했으면  그것이 나에게 전멸을 주는 원수인 줄 알아야 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게서 죽고 사는 것이 판정나는 것이오

 이러니까, 뭐 알고 행해야 되고 그대로 믿어야 되는 것이지 알고 행치안하고.

그러면 이 길은 힘이 듭니다. 협착해서 힘이 듭니다. 찾기가 어렵습니다.

좁습니다. 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저 길은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계시 11장에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아라 말은 상관하지 말라 말입니다.

그것도 성전이오. ‘그 안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만 측량하라. 성전  밖마당은 마흔 두 달 동안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택한 자면 구원은 다 얻습니다. 구원은 얻어 하늘나라는 가지마는 짓밟히게  한다, 이 방인에게 짓밟히게 한다. 무슨 말이요? 신약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있으나 성전 밖마당에 있는 그 껍데기 외식 신자 그런 자들은, 마흔 두 달  동안이라 말은 신약 시대 전부를 말합니다. 신약 시대. 마흔 두 달이면 삼 년  반입니다.

 그러는데, 신약 시대 전부를 말하는데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는 네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성전 밖마당이 있고 성전이 있고 제단이 있고 경배하는 자가  있다. 이 종류를 나누어서 상징적으로 말했는데 넷으로 그렇게 상징할 수 있다.

 상징하는데, 제일 많은 부분이 되어 있는 성전 밖마당은 예수님 승천이후로부터  재림 때까지, 이거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로  부르지마는 ‘마흔 두 달 동안’ 예수님 승천이후로 재림 때까지 ‘세상에게  짓밟히게 했다’ 세상의 종입니다. 세상의 종이요 세상에 밟혀 살지 세상을  꿰뚫고 이기고 살지 못합니다.

지난주일 여기 손명복 목사님께서 와서 설교했는데 그때에 왜정 말년 때에  그때에 그분은 신사참배를 꿰뚫고 세상에게 짓밟히지 안하고 세상을 꿰뚫어  이기고 세상을 깨뜨린 사람들이 서른 명밖에 없었다고 말하는데 그 입감한 그  성도들만 가리켜 말합니다.

 제일 제가 생각해도 위대한 사람은 오행선 장로님이라는 그분은 그 신사참배  때문에 감옥에 갇혀 가지고서 처음에 삼십 일 단식기도하니까 그 사람들이  죽는다고 병보석으로 내 보냈습니다.

 다시 돌아다니면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하고 돌아다니니까 다시 잡아넣었습니다.

다시 잡아넣어서 기도하다가 삼십 구 일을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사십 일  단식기도 했는데 내가 사십 일 단식기도하면 교만해지고 주님과 같이 했다는  교만해지니까 나는 하루 왜서, 삼십 구 일 단식기도 했습니다. 삼십 구 일  단식기도 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들이 내 놨습니다.’  내 놓고 난 다음에는 죽는 날까지 신사참배 반대 운동하고 돌아다니지만 아무도  말도 안 하고 잡아 넣지도 안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종종 숨어 있었습니다.

 저도 해방 그날까지 일본 부장하고 매일 신사참배 때문에 싸웠지마는 그들이  나를 잡아 가지도 못했고 내가 그때 시무하는 개명교회 교인은 주일학생 하나도  신사참배 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이겼습니다. 그래 다니며 신사참배 반대해도  누가 왜 신사참배 안 하느냐 그거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딱 기간이 지나갈  때까지는 거석했지마는,   그때 마지막에 한 육 개월 동안은, 그 안에는 늘 매일 싸우고 매일  신강했지마는 마지막에 육 개월 동안은 제가 그날은 화산날망이라는 그 날망에  가 가지고서 기도했습니다. 단식기도 할 때에 그때에 공중에서 고함이 큰 소리가  세 번 나기를 ‘인내로 구원 얻으라’ 하는 그것을 주께서, ‘참고 견디는 걸로  구원 얻으라. 주의 재림이 가까왔다. 인내로 구원 얻으라.’ 하는 그 음성을 세  번 듣고 그때 거기에서 기뻐서 내려왔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 사람이 나를 그 후에는 만나기는 자주 만났습니다. 만났으나  내게 대해서 신사참배 어떻게 합니까, 묻는 소리는 다시없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김천으로 대구로 다니다가 역에서 모양이 좀 다른가? 나를 요  시찰인이라 해 가지고서 이상하게 잡혀 들어가 가지고서 온갖 심문을 다  당했지마는 내가 기독자라 했고 나는 예수 믿는다 했지마는 신사참배 어째  했느냐 그래 묻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루니까.

 그래서. 오행선 장로님 그분도 그만 그 다음에 나오고 난 다음에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검거하지 안 했습니다. 그대로 있다가서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렇게 마흔 두 달 동안 세상에게 짓밟히게 했다 하는  그 말은 예수 믿지마는 세상에게 밟히는 자 있고, 밟히는 자가 뭐입니까? 세상  지식을 제 위에 두터쓰고 세상 지식 밑에서 세상 지식을 따라서 움 직이면  세상에게 밟힌 자 아닙니까?   또, 세상에 모든 범죄케 하는 것, 범죄케 할 때에 범죄하면 세상에게 짓밟힌 것  아닙니까? 하나님 의를 팔라고 할 때에 팔아 버리면 세상에게 짓밟힌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살라 했는데 예수님의 구속을 벗으라 할 때에  홀딱 벗었으면 그 사람은 세상에게 짓밟힌 자 아닙니까!   요게서 죽고 사는 것, 여기에서, 이거는 뭐입니까? 이것은 지옥 가는 것  아니오. 하늘나라 갑니다. 가나 그의 심신의 기능은 다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서 쓸 심신의 기능은 없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차이는 사람은 사람인데 그 기능의 차이로써 인간의 가치 차이를  둡니다. 알겠어요?  한 시간 살았으면 그 정력이 변해서 뭣 됩니까? 정력이 변해서 춤추는 기능으로  화하기도 합니다. 정력이 변해서 자기의 행락의 기능으로 화해지기도 합니다.

정력이 변해서 범죄한 죄의 기능으로 화해지기도 합니다. 정력이 변해서  진리화도 됩니다. 진리의 기능으로, 진리를 지킨 기능으로, 영감대로 복종한  기능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사는 기능으로. 이거는 영생입니다. 이거는  과학적인데,  이러기 때문에 제가 일찍부터 ‘공부를 할라면 법을 공부해라’ 법을 공부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논리를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법은 질서정연, 조직. 논리가  정연하기 때문에 법을 한 사람들은 이걸 좀 아는데 법을 안 한 사람들은 몰라.

 칼빈은 법학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가를 구별했소, 뭐  철학자들은 잘 아는 줄 알아도 철학자들은 혼돈 돼. 또 이 모든 실업 계통  사람들은 그들은 물질이 돼지고 기계가 되지 사람은 되지 못해. 컴퓨터가 그렇츰  아주 뭐 위대하지마는 그거는 절대로 거기에 연구라는 것은 털끝만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씩 그 써놓으면 기계기 때문에 기계 고정이지 딴 거는 없어, 알고  살아야 돼요.

 좁은 문은, 이제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또  내일 아침에는 또 그 다음을 말할 것입니다.

 어제 양성원에 가 가지고 누가복음 13장 말씀을 했는데 잘 들어야 돼. 이  진리를 들으면 절대 죽어도 딴 데 못 갑니다. 이 진리를 버리고 딴데 가는  사람은 이 진리를 그 사람이 하나님이 가루어서 그 사람이 제 복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이오. 이 복음을 제 복음으로 받고 깨달은 사람은 죽었으면 죽었지 이  길 외에 딴 길 못 갑니다.

 서부교회 암만 오래 다녀도, 암만 이 진영에 있어도 그 사람이 가는 것은 이  진리를 그저. 좋다 해서 이용만 해 먹었지 여기에 생사가 결정되는 영생이요  멸망이라 하는 걸 그 사람은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모르기 때문에 그와같이  다 요동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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