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

 

1979. 11. 16. 금요일 새벽

 

본문: 요한복음 15장 1절~4절 상반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재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포도나무 비유는 잘 아는 비유입니다.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요 또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그런데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많이 맺게  하시기 위해서 깨끗케 하시고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해 버리신다  말씀하셨고 또 너희들이 과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성도가 맺는 과실, 성도가 맺는 과실, 성도가 결실 있는 생활  성도가 결과 있는 생활 아무리 잘 살아도 그 결과가 멸망이면 멸망입니다. 결과가  좋아야 되는데 아 장사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분주하게 뭐 사고 팔고 날뛰고 그날  결과 계산을 해서 수입이 있어야 되지 아무리 많이 팔고 많이 사고 했더란대도  결과적으로 밑졌으면 그날 뭐 장사 거 소용 없지 않소.

인간살이도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인간살이를 끝내고 나서 계산을 대  보니까 그 생애가 참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수입을 가졌으면 그것은 제가  인간살이를 성공을 한 것이겠고 아무리 분주하게 뭐 큰소리 하고 했더란대도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에 보니까 전부 인간 수입은 없고 후회될 거 손해 갈 거  빚진 거 벌 받을 거 그런 것만 있었다고 하면 무슨 소용 있겠소. 결과가 좋아야  되는데 이 결실을 맺는 사람에게는 결실을 더 많이 맺도록 과실을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를 깨끗게 한다.

그러면 이 깨끗 이라는 이 깨끗을 어떤 것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는가 요것을  똑똑히 잡아야 되겠습니다. 여기 분명히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는 말씀 보면 이 비유인데, 과실을 더 많이  맺도록 이렇게 할려는 그 가지를 잘 가꾸어야 할 기라 이기요. 그러면 깨끗게  한다는 이 말씀은 가꾼다. 그러면 또 가꾸는 이유가 뭐인고? 가꾸는 이유는 그  가지가 무성하게 잘 자라도록 한다. 그래야 과실을 많이 맺지요  또 과실을 많이 맺도록 할라면 그 가지를 가꾸어야 할 것이고 또 그 가지가  자라야 할 것이고 가지가 작으면 제가 암만 과실을 많이 맺을려고 해도 조그만한  가지는 한 개 맺었다가 두 개 맺으면 부러져버리고 말지 않소? 그러면 가지가 더  커져야 될기라 말이요.

또 가지가 커지도록 할라 하면 그 가지에게 진액이 많이 올라가야 될 것  아니겠소? 진액이 많이 올라가야 그 가지가 커질 게 아니겠소? 그러니까 여기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하는 이 깨끗케 한다는 말씀은 가꾸고 그 진액이 많이  가도록 진액을 많이 줘서 나무를 크게 만든다 그래 밖에는 해석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위에 어떻게 해석 있겠소. 딴 해석이 뭐 있겠소.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를 가꾸고 진액을 많이  줘서 나무가 크게 하느니라 이렇게 해석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과실을 맺는 그 성도에게 과실을 맺는다 그러면 그  과실이 무슨 과실인가? 그것은 늘 배우는대로 자체가 온전케 되는 고것이 자체의  성과요 또 행위가 온전하게 되어지는 것이 행위의 성공한 결과라 말이요. 행위의  성공이요. 또 자기 소유나 영광이 완전한 것으로 쌓여져 가면 고것이 자기의  성공한 결과라 그거요. 자기의 성과라 그거요. 그러면 이 면을 애써 가지고 이  면에 차차차차 조금씩 성공이 되어 가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셔서 깨끗케  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끗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가꾸시고 또 진액이 다른 가지에는 못  가게 하고 그 가지로 많이 가도록 이렇게 하시고 그래서 그 가지가 자꾸  무성하게 크게 자라가지고 과실을 많이 맺도록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  포도나무는 포도나무 비유인데,  이 포도나무는 자라기를 어떻게 자랍니까? 이 포도나무가 자라는 것은 꾀로  자랍니까? 배짱으로 자랍니까? 제가 왕이 되는 왕으로 자랍니까? 악으로  자랍니까? 독으로 자랍니까?  이 비유인데, 인간이 자라는 것을 말하는데, 인간이 어떤 것으로 자라는지? 자라는  것이 하나님 가꾸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악독이겠소 이기주의겠소 교만이겠소  배짱이겠소 제가 왕이 될려고 하는 그런 걸로 자라는 것이겠소 무얼로 자라면  되겠소?  여기 똑똑히 말한 대로 나무가 커져야 과실을 많이 제아무리 과실을 많이 맺는  가지라도 가지가 안 크면 과실 뭐 더 맺으면 부러져 버리고 할 터이니까 가지가  커져야 과실을 많이 맺지.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는 무엇이 커져야 과실을 많이 맺는 것을 여기  말씀했습니까? 무엇이 커져야 무엇이 커져야 과실을 많이 맺습니까? 어떤 것으로  커져야 과실을 많이 맺습니까? 자 여반에 한번 누가 대답해 보십시요. 무엇으로  커져야 과실을 많이 맺습니까? 여기 성경에 뭐라고 해 놨소? 무엇으로 커지지요?  예? 뭘로? 예?   믿음으로. 녜. 믿음이라 말은 뭐 이 그래 말하면 다 맞는데 그거는 여기서  들어볼 때 조금 어색한 답입니다. 남반에 남반에는 뭘로 똑똑히 말해요. 또 말씀  또 진액으로 또 하나님의 은혜로 아 그 바로 있는데 깨끗으로 자랍니다. 깨끗으로  자라요.

처음에 과실을 맺은 것도 이미 내가 일러준 말로 깨끗해졌다 그 말은 영감과  진리로 깨끗해졌다 그 말입니다. 하늘나라의 실력은 깨끗 입니다. 하늘나라의  실력은 깨끗이요. 세상은 실력이 무슨 실력입니까? 깨끗의 반대는 더러운 것이요.

더러운 것으로 자라는 것이 세상입니다. 깨끗으로 자라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실력은 깨끗이 실력이요. 그러면 깨끗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미  일러준 말로 깨끗해졌다. 진리와 영감으로 된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아, 저 사람이 점점 커진다 유명해진다 따르는 사람이 많다 인기가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커집니다. 그 사람이 커지는 거 아니겠소.

점점 사람이 커진다 커진다 커지는데 진리와 영감으로 커지느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커지느냐 이것을 분별 해야지요. 사람들은 혼돈하면 안됩니다. 영감과  진리로 커져야 되지 진리로만 커지면 어찌됩니까? 진리로만 커지면 이것은 내나  율법으로 커졌다 그 말이요. 은혜로 커지지 안하고 법으로 커졌다 그 말이요.

인간이 아무리 안다 할지라도 마귀보다 더 알기 어렵습니다. 진리를 마귀보다 더  알기 어렵소. 사탄은 그가 진리를 잘 알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성경에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를 구별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를 구별했소. 성신의 감동 없이 하나님의 진리만 가지고  날뛰는 그 자는 내나 자기를 정죄 받는 그 법으로만 알았지 그 사람의 구원은  하지 못합니다. 영감 없는 자가 진리 지식만 많지 알면 그 자는 배나 악한  자입니다. 진리는 옛사람도 사용할 수도 있소 공부 할 수도 있소 알 수도 있소  그러나 영감은 안됩니다. 영감은 속이지 못합니다.

역사에 보면 이단자들이 전부 진리를 이용해 가지고 이단자가 됐고 사탄이  교회를 해칠 때는 언제든지 진리 가지고 해쳤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꼭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감은 이용하지 못하고 갔소. 영감은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이용하고 했지마는 영감은 이용을 못했소. 그러기에 오늘도 진리라는 것은 왜  필요하냐? 진리는 영감을 찾아가는 등불입니다. 영감을 찾아가는 등불이요.

진리로 영감을 찾아가는 것은 진리로 자기 있던 장소를 떠나야 서울을 갈라고  하면 자기 있던 그 자리를 떠나서 오늘 걸어서 출발하면 부산을 대개 떠나고 또  걸어서 오늘 대구까지 갔습니다. 또 그 다음에 서울 갈려면 또 찾아갔던 대구도  또 꼭 거 떠나고 그래야 자꾸 떠나야 자기 향방 목적지에 도달할 거 아니겠소.

이와 같이 진리로 자기의 그 현재라는 그 자기의 현실이라는 현재의 자기라는  자기 현재의 자기 생활 현재의 자기의 모든 기능 이것을 떠나서 새 생활로 새  기능으로 새 가지로 자꾸 자기가 점점 좋게 성화 돼 나가고 모든 것이 점점  고쳐져 나가서 어제 것이라도 좋은 것도 어제 좋은 것은 두고 오늘 더 좋아지고  내일은 더 좋아지고 나쁜 것도 어제 정리한 그 나쁜 거 그 외에 오늘은 또 새로  나쁜 것을 발견해 가지고 또 새로 나쁜 그걸 또 정리하고 또 고치고 이렇게 해서  나쁜 것은 점점 하나씩 둘 자꾸 그것을 버리고 떠나고 좋은 것도 더 좋은 것으로  향해 나가고 이것이 인생이 진리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이래 가다가  영감을 만났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영감을 만났으면 하나님에게 직접 대면해서 인간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해 준 이  성경을 이용한 것이 아니고 직접 성신의 감화가 자기를 감동시켜 주신 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성령은 하나님인데 히나님을 만난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악령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대에  이단자들이 다 성경 말씀을 요렇게 저렇게 이용을 해 가지고서 교회를 넘어뜨린  이단자가 됐지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하고 이단자 된 거 없소. 여호와의 증인 우리  교회에 여기 최용택 이라고 하는 그 반사 있는데 열심은 누구보다 열심이요.

열심이지마는 고게 영감을 못 만나 봤어. 영감을 못 만나 봤기 때문에 그저 성경  진리만 생각하지 영감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받는 증거가 없어.

이러니까 이단 중에 제일 성경을 가지고 날뛰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꼭 성경만 가지고 날뛰요. 이러니까 거기 영감 받지 못하고  진리만 주장하고 하는 자들이 전부 그리로 넘어갑니다.

최용택이는 언제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한번 넘어가더니마는 또 지금은 또 아니  아니 재건 교회로 넘어 갔다 요새는 또 여호와의 증인으로 넘어갔다가 또 보니까  뭐 주일날은 오다가 힘이 다 빠져버렸어. 제가 어짜니까 하나님과 멀어지고  가까워진 그것만 만날진대 양심이 어두워 그래 영감을 못 받아서.

그러기에 진리는 악령도 전부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서 이단을 만들어 냅니다. 아  예수님에게도 심지어 악령이 달라 들 때에 뭐라고 달라 들었소? 처음부터 하는  말이 성경말씀 가지고서 예수님을 유혹시켰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성경 말씀은  이용을 해 먹어서 이용을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넘어 뜨릴려고 하다가 못  넘겨뜨렸지요. 오늘도 성도를 넘겨뜨린 것은 전부 성경 말씀 가지고  넘겨뜨립니다. 다른 것 가지고 넘겨뜨리지 않소.

그러나 영감은 이용해 먹지 못합니다. 영감은 성신의 감화인데 성경은  하나님이시기 대문에 고런 꾀쟁이에게 성신의 감화가 그에게 뺏기지 안하고 매수  당하지 안하고 끌리지 안하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 성경 말씀은 어떤 정도를  공사하느냐? 영감을 받을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 성경  말씀이요. 성경 말씀을 자기가 아무리 읽고 공부하고 증거하고 연구해도 그로  인해서 영감을 만나지 못했으면 그 사람은 귀신입니다. 그 사람 마귀요. 가장  악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악한 종입니다.

성경 연구하고 읽고 하는 것이 성경에 환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네가 이런 생각은  버려라 이런 마음은 버려라 이런 욕심은 버려라 이런 뜻은 버려라 이런 행동은  버려라 이런 성질은 버려라 이런 교만은 버려라. 네가 왕 될려고 그저 네가 높아  질려고 성경은 저는 자꾸 단점만 찾으니까 자꾸 자기는 성신의 표본 되는 바울  보면은 자기는 잘못한 것만 자꾸 찾으니까 점점 죄인만 됩니다. 점점 죄인만 되고  바라만 보니까 자꾸 죄인만 찾으니까. (            )범죄 한 사람이다 자꾸  죄인만 죄만 찾아서 자꾸 죄 진 사람으로 자꾸 내려가서 그런데 하나님은 자꾸  올리고 이래야 되는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은 말마디가 요래야 내가 올라갈까 저래야 올라갈까  요래 가면 위에 도리까 저래 위에 도리까 요 사람이 날 높여주나 좋다고  환영하고 저 사람이 날 높여주나 높여 주는 인간만 찾아가고 높아 질려고만  힘쓰고 그 면이지 뭐요. 이 천국 가는 사람입니까?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이건  지옥 가는 사람이요. 천국 이래 가지 않소. 지옥 가는 사람이요. 이 사람이 마귀요.

이게 대마귀라 그 말이요.

우리 진영 교역자들이 다 대마귀입니다. 대마귀노릇을 많이 해요. 이거 진리 배워  가지고 진리로 영감 만나도록 하라는 것인데 진리 이것만 가지고 이용해서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됩니다.

그것이 여기서 배운 진리를 가지고 그대로 증거 하니까 뭐인지 모르고  따르지마는 이래 놓으니까 교회가 좀 목회 좀 하면 마귀 마귀 덩어리가 되어  놓으니까 마귀 싸움만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서 안 된다 그거요. 교회가 안  되어집니다. 돼도 언젠가 부서지고 언젠가 부서져 좀 일찍 부서지고 늦게  부서지고 좀 많이 커져 가지고 부서지는 거 적게 커져 가지고 부서지는 거  결국은 부서집니다.

그러면 진리는 영감을 받게 하는 것이고 영감은 자기를 어떻게 합니까? 영감은  자기를 깨끗한 것으로 키웁니다. 영감은 자기를 깨끗한 것으로 키우요. 깨끗한  것이 뭐이 깨끗한 것인가? 진리로 시작해 가지고 영감에 도달했을 때에 그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감동인데 이제 하나님과 요것이 동행이요 요것이 동거요. 인간이  하나님과 어떻게 동거할 수 있소? 인간이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은 영감과 같이  있는 것이 하나님과 동거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동행할 수 있소?  영감과 함께 하는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동거 동행이 그것이요.

이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케 하셔 가지고 깨끗케 큼에 따라서 인간성과는  나옵니다. 인간 성공은 이거요. 깨끗의 힘으로 이 과실은 맺습니다. 깨끗의 힘으로  맺소. 또 자라기는 깨끗으로 자라요. 깨끗으로 자랍니다. 악독으로 자라는 게  아니요. 이기주의로 자라는 것 아니요. 교만으로 자라는 것 아니요. 배짱으로  자라는 것 아니요. 자기가 왕 될라는 것으로 자라는 거 아니요. 죄를 멸하는  힘으로 자라고 의를 건설하는 힘으로 자랍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나쁜 걸 말해주면 마구 부서져 버립니다. 이게 자란 증거요.

자기에게 나쁜 거 말하면 일년 가도 십년 가도 회개 안 합니다. 고걸 악심만 품고  있소. 그것을 꽁 하고 있소. 현저히 얼마든지 나타나서 환하게 볼 수 있어도  회개를 안 한다 그거요.

하늘나라는 깨끗의 실력입니다. 천국 백성들은 깨끗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깨끗으로 자라 가는 것이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새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깨끗으로 자라 가는 것은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 깨끗으로 자라갑니다. 당파로 자라 가는 것이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지방정실로 우리는  호남이다 우리는 경남이다 우리는 충청도다 우리는 전라도다 우리는 경기도다  우리는 서울 지방이다 자꾸 지방 정실로 자라 가는 것이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 우리는 이가다 우리는 백가다 우리는 김가다 우리는 우리 형제간이다  누구는 우리 형제간이다 이렇게 자라 가는 것이 옛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이요? 혈육으로 자라 가는 거요? 뭐이 자라 가는 거요?  여러분들이 들으면 판단할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가롯 유다가 열두 제자 속에 들었습니다. 가롯 유다가 열두 제자 속에 들었소.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느니라.

아무리 친 형제지간이라도 영감에 맞지 아니하면 나눠지고 멀어지는데 그걸  생명으로 깨닫는 자는 거기는 형제간도 신앙에 틀리면 그까짓 거 형에 혈육  정실이라 하는 것 아무 것도 아니더라. 진리로 나가더니 혈육 정실을 돌아보지 안  하더라 이래 깨달을 건데. 봐라 형제간에도 서로 나뉘는 거 봐라. 그게 무슨  진리이겠나 그거는 귀신이 깨닫게 해 주는 거요. 그런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거 뭐 아무리 삐뚤어져도 나중에 가 보면 아무리 삐뚤어져도 제 형제간은 제  형제간끼리 똘똘 뭉치고 제 지방은 제 지방끼리 똘똘 뭉치고 이렇게 진리보다  힘있는 것이 있으면 진리보다 힘있는 것이 있으면 마지막에는 그놈이 점령합니다.

진리보다 힘있는 욕심이 있으면 결국은 욕심 그놈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진리보다 강한 정이 있으면 마지막에는 정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어데 붙들려 사느냐? 세상 모든 사람이 어데 붙들려 산 줄 압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데 붙들려 살지요? 두 가지에게 붙들려 사요. 욕심에게 붙들려  살고 정예 붙들려 사요. 녜. 정에 붙들리고 욕심에 붙들린 사람을 다 추려내고  나면 세상은 한 사람도 나은 사람 없소. 한사람도 남은 사람이 없소. 잘난 사람도  그 사람이 아 정을 초월한 사람 아니요 인정을 초월한 사람 아니요 욕심에  붙들린 사람이요 욕심에 목 붙들린 사람은 그 밑에 정에 붙들려 삽니다. 정. 정.

그러기에 그 집에 가 가지고서 모든 것을 늑탈 할려면 그 집에 제일 강한 자를  결박하고 난 다음에 늑탈 한다고 하지 안 했소. 제일 강한 자 그 사람의 소유나  그 사람의 행위나 그 사람 자체를 하늘나라로 솔박 옮겨버리려고 하면은 그 사람  집에 제일 강한 자 두 놈을 결박을 해야 될 터인데 강한 자 두 놈 이름이  뭐이지? 몰라? 남반에 한번 대답해 봐요. 내 뭐 쉽지 뭐 욕심과 정 아니요. 거  그기라.

그러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돼. 이걸 죽이야 돼. 이걸 죽이지  못하고 아무리 진리 진리해도 정에 붙들리고 자기 욕심에 붙들린 자는  소용없습니다. 그 진리를 결국은 세상에 저주받아 타락한 거 이것도 제가 이용해  먹으면 버리는데 진리를 이용해 먹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먹으면 벌 위에  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늘나라의 복수는 이겁니다. 영원한 복수에 유황불 구렁텅이가 이것을 복수하요.

그러기 때문에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못 박았으니라. 이래야 성도가 됩니다.

이것이 죽는 날까지 없을 수 없지만 이놈을 자꾸 죽여. 원수는 죽여야 될텐데  이놈이 왕이 돼 가지고 흔들리는데 요동치 않소. 이놈이 왕이 돼 가지고 흔들려도  요동치 안 해. 내가 며칠 전에 말 들었는데 백 목사 죽으면 백 목사 밑에 누가 제  일인자라 누구가 일등이 누구라 이등이 누구라 삼등이 누구라 이제 서로 일등  될려고 시기하고 쟁투하고 그 싸운다 합디다.

사도들이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가 나라로 임할 때에 우리 아들 야곱과 요한을  하나는 좌의정 하나님의 우의정 삼아 달라고 이라니까 제자들은 또 좋은 자리  너거 다 차지하면 어짜라고. 제자들이 싸웠소. 싸웠소. 마태복음 20장에 있어.

싸웠어. 그래도 안될 거는 아닙니다.

그게 나중에 그러다가 회개를 하니까 쓸모 있는 사람들이 됐지. 영감을 받았을 때  그걸 돌이켜 다 회개를 했지. 이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해석하기를 멸망한 나라라  이랬소. 멸망한 나라라 이랬소. 저거는 안 그렇다 하지요. 말도 그런 말도 하지 안  했지요. 이러나 제 삼자들이 볼 때 그래 아 목사님은 어느 지방은 대우하고 어느  지방은 대우 안 한다고 그 지방 그 우리 지방은 대우 안하고 우리 호남지방은  대우 안 한다 우리 서울 이 지방은 대우 안 한다 이러니까 이 어리석은 것들이  거 죽이는 마귀인 줄 모르고 우리는 호남지방은 대우 안 한다 이라니까 그래  우리는 호남이다 호남. 이래 뭉칩니다.

그거 절 죽이는 것인 줄 모르고. 우리 서울 지방은 대우 안 한다 이러니까 서울  지방 사람은 우리 대우 안 한다 이래 가지고 인간을 붙여 가지고 저거끼리 한  덩어리가 돼요. 이게 죽일라 하는 원수인 줄 모르고 신앙 지도자라고 졸졸 따르니  참 가련하고 불쌍하기가 짝이 없소. 어리석소. 이것이 뭐 꺼트머리 나타나지  안하지요. 나타나지 안하지마는서도 눈 밝은 사람들 그걸 보고 있다 그기요.

그것을 벌써부터 말을 하고 그래 또 그 유식한 지식파는 말이요 지식파는 지식파  끼리 또 우리가 지식파 끼리 또 어울립니다. 지식파 끼리 하는 그건 또 뭐 할라고  신앙 위주로 죽도록 충성만 할라 하면은 이거와 지식과 이 둘이 대립이 돼  가지고 이놈을 꺽어서 지식파가 대가리가 돼야 될 기 아니야. 그러면 지식파가  대가리가 되면은 서이 너이 어울리자. 너이 자 네 지식이 합해 가지고 대가리 될  판이니까 나중에 대가리가 됐으면 그 다음에 무엇이 되겠지요? 네. 지식이 이제는  둘이 갈라집니다. 이 둘 저 둘 또 싸우요. 또 둘이 싸워 가지고서 이제 둘  없앱니다. 또 두 놈이 남았소. 두 놈이 남아서 이제 두 놈이 남아. 두 놈이 서로  싸우요. 그게 지옥입니다. 항상, 항상 지옥이요. 네가 어리석기가 짝이 없어.

심령이 어두워 지식파 신앙파 지방 정실파 혈육 정실파 저거끼리 친밀한 동무의  동무의 정실파 또 열심파 게을파 마귀란 놈은 요렇게 조렇게 이런 그물로 싹  쓸고 저런 그물로 싹 쓸어 가지고 자꾸 잡아 죽일라 하는데 여기 걸리면  죽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돼.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을 만나서 딱  만나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 옳은 지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쉽습니다. 왜?  첫째는 어느 낚시에 걸렸는가 고 낚시를 낚싯줄을 끌러주면 되고 또 낚시를  끌러주면 이것이 더 큰 낚시에 끌려 가지고서 안 될성 바라면 낚싯줄 그걸 끌러  주면 안됩니다. 그 그대로 둬 둬요. 어데 지금 매였는지 어데 끌렸는지 보면 잠깐  만나서 얘기하면 이 사람 어데 걸렸다 어데 걸렸다 걸린 걸 알 수가 있다 그거요.

성경에 다 말해 놨으니까 요거는 어데 걸려 있다 그러면 어데든지 그 걸려 있는  낚시를 다 풀어야 제가 자유를 하지 어떤 낚시에라도 걸렸으면 저는 자유 못해.

신앙 생활 하려고 열심히 나가보면 낚시 고놈이 딱 걸립니다. 이제는 신앙 생활  하려고 열심히 나가보면 낚시 고놈이 딱 걸립니다.

 이제는 신앙 생활을 하려고 이제는 언덕을 떠나서 떡 나갈려고 하면은 한 낚시  요놈이 간에 딱 걸어 가지고서 잡아 댕기니 아파 못 가겠다 그 말이요. 요거  모양으로 요런 줄 저런 줄 세상 줄에 걸려 가지고 못 가요. 이것을 다 끊는 것이  언덕을 떠난 것입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이 언덕 떠나는 것이 다  세상과 자기를 떠나는 것이요. 이 아, 배 라는 놈이 암만 큰 항해를 할지라도  밧줄로 딱 매놓으면 밧줄 끄르기 전에는 어떻게 배가 갈 수가 있소. 그걸 끌러야  가지.

어리석지 맙시다. 과실을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깨끗케 하시느니라. 깨끗으로  자라고 깨끗은 영감으로 된 것만이 깨끗이라. 깨끗은 삐뚤어진 것이 없는 것이  깨끗이요. 삐뚤어진 거 없는 거 잘못된 것이 없는 거 이래 점차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을려면 성경 말씀 가지고 훑을 때에 성경 말씀으로 쭉 훑어 볼 때 걸리지  안 하면은 일차적으로 깨끗한 것이요. 그 다음에는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서  이제 이것을 그 모든 것을 조사하고 훑을 때 걸릴 거 없으면은 아주 깨끗한  것이라. 깨끗한 거.

이러기 때문에 아 교인들을 보면 전부 속에는 다 욕심 정 그놈이 일하고 있소.

성신은 근방에 왔다가서 뺌을 맞고 달아나지 근방에 오지를 못 하요. 성령님은  근방에 오지도 못 하요.

욕심 이놈이 왕이 되고 정이 왕이 돼 가지고서 뭐 보면 당장에 보면 즉시 표나.

거기 끌려 가지고서 강한 욕심의 줄과 정의 줄이 딱 매고 있는데 그 사람이  어데를 자유해요. 어데를 가요 못 갑니다. 꼼짝 못합니다. 이걸 원수인 줄 알아야  돼요. 원수인 줄 모르고 이걸 말해 주면 암만 말해줘도 이걸 원수로 알아서 끊지  안하고 말해주면 말해준 것 만치 그 다음에 보강을 해 버립니다. 힘대로 끊어서  이놈을 갔다 해서 한 군데나 두 군데나 끊어주면 제가 끊어 맬텐데 한 군데나 두  군데 끊어주면은 고 다음에는 만나 가지고서 우리를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한다  이래 가지고서 이제 뚤뚤 뭉쳐 가지고서 저거끼리 그래 가지고서 밧줄을 배나  뚱뚱하게 크게 만드요.

말해주면 더 커진다 그 말이요. 얼마든지 커져 보지. 제 결과가 뭐인지. 어리석소.

모두 뭐 은혜가 있고 막 뭐 배운 거 많다 해도 이제 가는 길이 환하게  보여지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은 여러분들 우리는 눈이 밝아야 됩니다.

눈이 안 밝으면 안돼요. 눈 부터 밝아야 뭐 알지. 알아야 되지. 알아야 가지  모르면 갈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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