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케 하는 현실

 

1984. 8. 20. 월새벽 

 

본문: 요한 1서 3장 1절∼3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을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주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입니다. 첫째 아담이 되어져 있는  그대로 우리가 되어 있습니다. 첫째 아담이 눈 있고 코 있고 귀 있고 입 있고 팔  다리 있고 안에 있는 내장 그 모든 혈육이 것째 이담과 꼭 같이 우리가  생겼습니다. 뭐 조금도 다름이 없이 꼭 같이 생겼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둘째 아담 예수님의 그 신성, 예수님의 인격성, 예수님의 인격성 곧 예수님의  신성과 꼭 같은 인격성. 예수님은 신성이시며 또 이성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데, 예수님의 신성은 참하나님이시요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참사람인데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가 돼 가지고 조금도 마찰이나  무슨 모순됨이나 그런 것이 었이 일위가 돼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셨고 또 영원히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역사 하십니다.

 세상에서 남남끼리 결혼해서, 결혼해 가지고 지혜 있는 사람들은 좀 참고 견뎌서  그것을 잘 무마해 나가지마는 지혜 없는 사람들은 그만 남자와 여자의, 저 사람과  이사람의 다른 그런 것이 살 조화가 되지를 안해서 모든 충돌되는, 조화되지  안하는, 각각 다르다는 그런 표시자 나타납니다. 나타나든지 안 나타나든지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합해서 부부 됐을 때에 그 때에 다른 이질적인 그런 면이 있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나다.

 그러나, 그 한 몸 안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지마는 이 지체와 저 지체가 서로  충돌이 되기 안합니다 마찰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지체과 저 지체가 서로 뜻이  맞고 성질이 맞고 또 소원이 맞고 움직임이 다 맞기 때문에 아무런 서로  마찰됨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아무런 그렇게  마찰됨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둘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그 신인 양성 일위의 예수님과 우리와의 아무런 마찰됨이 없이 꼭 동질  동성 본질과 본성이 같고 모든 면이 다 같은 것이 되어져서 아무런 마찰이나  서로 상이점이 없는, 그렇게 하나가 되는 그런 소망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육체가 첫째 아담을 닮은 거와 같이 또 우리의 둘째 아담을  인해서 둘째 아담과 꼭 같은 그런 인격성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둘째 아담은  신성과 인성이 꼭 일위의 격위를 가진 그런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렇게 한 격위를 이룰 만치 그 만침 우리가  밀접하게 하나 될 수 있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자 인성 신인  양성 일위가 됐지마는 우리는 일위는 되지 안하지마는 신성과 인성 신성은  하나님이시요, 신인 양성 일위이신 그 예수님과 우리와의 그 관계가 아주 한 몸의  이 지체와 저 지체가 하나 되는데 아무런 모순 없이 그렇게 하나 되는 거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소망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가 될 만치 그 만치, 신성과 인성과는  아주 딴건데, 신성은 창조주요 인성은 피조물인데, 신성과 인성이 그렇게 한  격위를 이루기까지 밀접한 결합이 된 것처럼, 신인 양성 일위를 가지신 예수님과  우리와의 그렇게 밀접한 화합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표시하기를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이랬습니다. 몸에 물론 발과 손도 다 하나 되어 있지마는  머리와 몸이 하나 돼 있는 것이 더 밀접합니다. 만일 머리와 몸과의 그 하나 되어  있는 그것이 조그만치라도 서로 상충이 될 때에는 그 사람은 즉시 절단납니다.

다른 데 고장난 것보다도 두뇌의 고장이 나 가지고 있으면. 두뇌와 그 몸이  조그만치라도 서로 밀접한 화합이 없고 고 이질적인 것이 있으면은 그 사람은  당장에 큰 아주 변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과 나와의 그렇게 밀접한 하나가 되어지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우리가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가 되어 있는. 하나 되어 있는 그  면이 그저 그렇게 외부적으로 하나 되어 있지마는 이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우리가 또 죽었다가 부활하고 이라면 우리의 부활 뒤에 부활한  우리들과 주님과는 아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 된 것처럼 그렇게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가 되는 그런 결과를 맺습니다. 신인 양성 일위이나 우리는 신인  양성 일행이 되고 동거 동행이 됩니다. 신성과 인성이 같이 있고 같이 행하는  동거 동행의 그런 밀접한 관계를 가져서 머리와 몸과 같이 되어지는 것같이  이렇게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힘쓸 것은 뭐이냐 하면 3절에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제  주님과 우리와 하나 되는 이 소망, 그 가정이 평안할라면은 부부끼리 하나가  되면은 평안한데, 그 부부가 아무리 뜻이 맞아서 하나 된다고 해도 그걸 사람들이  진찰을 못 해 그렇지 그 부부의 이질적인 것이 뭐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부부라 하는데 한 두 가지만 합해서 하나 돼 가지고 있는 사람,  세 가지 합해서 하나 된 사람, 열 가지 합해서 하나 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몇십  가지가 합해서 하나 되어 있는 사람 그것이 합한 면이 양이 많고 종류가 많고  적은 데 따라서 행복이 있고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다른 면이  있어서 그 면으로 인해서 벌어지고 그 면으로 인해서 꼭 같은 희로애락을  가지지를 못하고 또 모든 의사가 동일하지를 안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앞으로 목적은 주님과 우리와의 결합되어서 하나  되어지는, 하나 되는, 첫째 아담과 우리의 육체가 꼭 모양이 같은 거, 물론 조금  뭐 다르지마는 지체적으로는 다 같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아무  것이다' 하는 것이 그 피부나 세부적인 그런 면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은  누구다 저 사람은 누구다' 알 수는 있지마는 그 지체적으로는 다 같습니다. 다  같이 간도 있고 뭐 콩팥도 있고 눈도 두 개고 코구멍도 두개고 이런 것 다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첫째 아담과 육체가 같은 거와 같이 또 우리의 그 인격성, 우리의  인격성, 모든 사상이나 그런 것도 둘째 아담과 꼭 같습니다. 육체는 첫째 아담과  꼭 같고, 우리의 이 모든 마음이나 몸이나 그 기능이나 그 모든 속성이나  사상이나 그런 것은 둘째 아담과 꼭 같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와 같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라. 주와 같이 되는 이것을  우리가 소망하고서 고쳐 나가야 되고 만들어 나가야 되고 또 주님도 그와 같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향하여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수 주님과 나와 다른 것을  지금 고쳐서 하나 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가 필요하고 또 하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자꾸 닮는 게 필요합니다. 닮아 가고, 따라가고 이래서, 주님과  다른 것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주님같이 닮아가고-본받아 가고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와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고치는 것이고 또 믿음은 주님과 같이 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지식도 같이 될 때, 지식적 믿음도 있고 또 소망적 믿음도 있고, 또  비판적 믿음도 있고 이렇게 그 믿음은 다, 주님은 원형인데 원형이신 주님을  따라서 간다 그말이오. 한문 읽을 때에, 한문 읽을 때에 글씨를 배우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글씨를 배우는 시간이 있는데 글씨 쓰는 시간은 선생님이 한 풀  이래 떡 써서 주면 그걸, 선생님이 써 준 그 체입니다. 선생님이 그 글씨 체를 한  줄 이래 써 주면 그걸 보고서 고대로 자꾸 이렇게 연습을 해서 그 종이가 다  되도록까지 그래 연습하고 나면 또 새 종이에 또 주면 또 그 체를 따라서 이래  자꾸 써 가지고서 닮아 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것은 자꾸 닯아 가는 것을 그 방편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지식이란 말은 주님의 지식을 닮아  가는 것을 믿음의 지식이라 하고, 또 믿음의 행위라 그 말은 주님의 움직이심을  닮아 가는 것을 믿음의 행위라 이라고, 또 주님의 견해를 닮아 가는 것이 견해의  믿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여게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 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이 깨끗한 면 사람이 물론 우리의 몸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도덕, 도덕면이 또 깨끗해야 됩니다. 도덕면이 깨끗해야  되겠고 또 우리의 생각이라는 사상면이 또 깨끗해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의  소원하는 소원면이 깨끗해야 되겠습니다. 아무거나따나 자꾸 소원할 것이 아니라  소원면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우리의 성질면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우리의 취미,  취미면도 깨끗해야 합니다. 취미면도 깨끗해야 되고 또 소욕하는 그 소욕면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서로 물질에 대한 경제면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언어.

말하는 언어면도 깨끗해야 하겠고 또 그 사람이 무엇을 비판하는 그 비판면도  깨끗해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보면은 다른 무슨 도덕면은 매우 깨끗할려고 애를 쓰는데  무슨 사리를 만나면 비판하는 비판면은 깨끗할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알고 할라고만, 주님이 허락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할라고 원하는 마음가지고 달라들기만 달라들면 다 됩니다. 왜?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고 성령이 있고 진리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알고 원해도 자기가 그것을 자기 힘이 있는 데까지 하지 안하고 그저  주님에게 심부름 시키는 것처럼 이래 하는 거는 안 되지마는 진정 원하게 되면은  자기 힘으로써는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하고 자기가  있는 힘대로 쓰기 만 하면 다 됩니다.

 이래서 주님이 비유컨대는 열 가지 모가 있으면은 우리도 열 가지 모가 있어야  되겠고 주님이 백 가지 모가 있으면 우리도 백 가지 모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구십 가지 모는 주님과 하나 되고 열 가지 모는 주님과 하나 되지 안한  그런 면이 있겠고, 어떤 사람은 주님과 하나 된 면은 열 가지 모는 하나 되고  구십 가지 모는 하나 되지 안한 사람도 있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모든 면으로 주님을 향하여 지금 주님과 하나 된다면  이질적이면 안 되니까 서로 다르면 안 되니까, 물과 기름은 합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공작할 때에 고게 꼭 전부 네모베기로만 다 만들어 놨으면 큰 거나  작은 거나 결국은 맞추면 딱 들어맞을 것이고 세모베기로도 되면 다 될 것이고,  그게 쪽쪽 곧은 면이 없이 되는 그런 것은 맞추면 뒤에 안 맞습니다. 둥근 거는  둥근 거는 절대 맞지 않습니다. 둥글둥글 한 거는 한테 합하면 딱 들어맞지  안하지마는 곧은 것은 다 맞습니다. 세모잽이든지 네모잽이든지 두모잽이든지 다  맞습니다. 그와 마찬사지로 주님과 우리와 지금 다른 것을 고쳐서 동질 동성을  만들어야 됩니다. 같은 속성을 만들어야 되지 같지 안한 것을 지금 가지고 있으면  영원히 다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무궁세계에 가서 부활해 가지고 있는데 주님과 같은 면이 하나  있으면 고 사람은 그만큼 행복이요 권위 있고. 같은 면이 백 가지 있으면 그만큼  행복이요 그 만침 권위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주님과 같은 면만 부활하지 주님과  같지 안한 면은 부활 못 합니다. 주님과 같은 면만 부활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부활은 꼭 같은 부활 가졌지마는 기능적으로는 주님과 같은 면이 하나  있는 사람, 둘 있는 사람, 백 있는 사람 뭐 천 있는 사람. 이렇게 같은 면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있어서, 많은 사람은 많은 부활을 합니다. 많은 부활하고 적은  사람은 적은 부활합니다. 이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몸뚱이만 이와같이 부활해  가지고 있지 그 속에 기능적으로서는 여러 수백 수 천의 각도가 있는 것이 다  각각 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츰 뭐 모가 믿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두뇌를 만드시는데 천억  컴퓨터가 천억이나 돼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천억이면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자꾸 주님과 다른 면을 고쳐서 같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회개요. 다른 면을 이것을 고치는 것이 회요, 또 하나님과 같이  이래 닮고 배우고 만들어 가는 것이 개입니다. 회는 잘못된 것을 버리는 것이  회요 또 개는 주님을 향하여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치는 것,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 양면을 가리켜서 회개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것은 아무 뜻없는. 꼭 날은  꼭 같아서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 이라지마는 실은 같은 날이 없고 같은 시간이  없고 같은 환경이 없습니다 전부 각각 다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와의 다른 면을 고치도록 위해 가지고서 현실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요  현실은 또 요 면을 고칠 것 조 면을 고칠 것 그 면고 칠 것 뭐 그 고칠 면을  따라서 현실을 주시고 또 우리가 주님과 같이 돼야 될 그 같은 면을 따라서 요  현실을 주시고 조 현실을 주시기 때문에, 고 현실 주시는 것은 전부 고칠  현실이요 주님을 닮을 현실이요 주님과 같이 될 현실입니다. 그러면, 모든 현실은  주님과 다른 것을 이것을 버리는 현실이요 주님과 같이 되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는 얼마나 존귀한 현실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시요 완전자시요 영원자시요  불변자이신데 그와 같이 자꾸 우리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리도전서  15장에 보면은 우리가 첫째 아담의 형상을 가진 거와 같이 또 둘째 아담의  형상을, 가진다. 둘째 아담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둘째 아담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 땅에서 올라온 첫째 아담의 형상을 가지는 거와 꼭 같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첫째 아담의 형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지고 있는  것은 육체의 형상입니다. 육체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둘째 아담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말은 신성이라 그말이오, 신성. 신성,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 하나님의  신성,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인성이 돼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성은 원형이요 신성과 같은 우리는 모형이라. 모형적 인격성을  가졌고 하나님은 원형적 인격성을 가진 것이 그것이 위에서부터 내려오신 위에서  오신 주님의 형상인데 그 형상을 우리가 닮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꼭 같은 그런  신성을 닮을 수 있습니다. 또 뭐 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 지혜도 주님과 꼭 같은  지혜 가질 수 있고 능력도 주님과 꼭 같은 능력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지혜도 주님과 꼭 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면이 주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주님의 모형이라. 주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주님과 꼭 닮은 우리들이라 이렇게 될 수 있는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에 말하기를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으니 뭐인가? '세상에서 썩어져 가는 모든 정욕의 것을 다  버리고 신의 성품에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이 되게 하려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 중에 지극히 큰 소망입니다. 이러니까, 그  소망을 이를려면 힘써서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자꾸 닮아 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돼 가는 것 또 덕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대해서  바로 되어 가는 것, 또 지식이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대로의 돼 가는 그런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이제 깨끗하다는 요것을 여러분들에게 오늘 아침에,  깨끗한 거는 뭐 어떤 것이 깨끗한 건가? 깨끗한 거는 우리는 언뜻 생각 하면  때가 묻었으니까 그 때를 씻으면 깨끗해진다 그것만 또 알기 쉽습니다. 그 사람이  경제면이, 깨끗하다 그 사람의 경제면이 깨끗하다 그라면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경제면이 바로 돼 있는 것이 경제면의 삐뚤어짐이 없고 정확한 것이 그것이  깨끗한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경제면에 깨끗할려고 애를 써서 고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  주는 것은 경제면을 깨끗게 하라 하는 그런 현실 주신 때도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모든 면이 다 좋은데 비판면이 흐리터벙해. 뭐 비판을 그렇게  정확히 하지 못하고 비판면이 어두워.' 그 비판면이 깨끗지 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판면이 깨끗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은 뭐 덕도 있고 화평도 있고 사랑도 있고  자비도 있고 좋은데 그 사람은 비판면이 텁텁하게 더럽다. 지저분하다. 비판면이  깨끗지를 못하다.' '그 사람은 또 비판면은 아주 깨끗한데 그 사람은 화목면이  아주 텁텁하이 더럽다.' 보면 비판면 평가면이 깨끗한 사람이 또 이 모든 화목면은  더러워질 수 있다 말이오. 화목면은 좋아서 그 사람은 참 좋은데, 무걸 호인처럼  사람은 참 좋고 은유하고 겸손하고 화평하고 좋은데 그 사람에게 무슨  경제면이나 또 비판면이나 또 그 사람의 무슨 소욕면이나 그런 면은 텁텁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소욕면도 깨끗해야 돼. 욕심도 깨끗해야 돼. 욕심 나쁜 것  아닙니다. 꼭 주님이 가진 그 욕심이 깨끗한데, 주님의 욕심으로 자기 욕심 삼으면  그 욕심은 깨끗합니다. 그래서 그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욕심이라 그래. 성령의  소욕이라. 욕심면도, 욕심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취미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지식도 깨끗해야 되겠고, 지혜도 깨끗해야 되겠고. 경영도 깨끗해야 되겠고,  방편도 깨끗해야 되겠고. 그 사람의 모든 만물관도 깨끗해야 되겠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하나님 신관도 깨끗해야 되겠고, 사람은 어떤 건가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도 깨끗 해, 인생관도 깨끗해야 되겠고, 모든 속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속죄에 대해서 꼭 바로 옳게 아는 것이 깨끗이라. 속죄관에 대해서도  깨끗해야 되겠고, 소망관에도 깨끗해야 되겠고 모든 것이 깨끗해야 되는데 그  깨끗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주님이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다, 이  현실은 요런 면이 깨끗하도록 하기 위해서 좋다 그렇게, 현실을 주신 주님이 또  우리에게 그 면에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다 몰라도  우리에게 자연의 빛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참 완전한 빛이신데 완전한  빛이 우리에게 없어도 어둠침침하게 대략 짐작을 할 수 있는 자연의 빛이  있습니다. 자연의 빛이라는 그거는 뭘 자연의 빛이라고 하는고 하니 우리 속에는  양심이라는 그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깨끗게 해야 된다'  하는 그것만 생각하고, '모든 현실은 주님이 나에게 삐뚤어진 것을 바로 잡아서  깨끗게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다고 하더라' 요걸 생각하고, '여게서는 어떻게  하면 깨끗해지는가' 그렇게 소망을 가지고 할라고 애를 쓰면 대개는 하나님의  영감같이 깨끗하지는 못해도 좀 어설피 한 그 깨끗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양심대로 깨끗하게 돼지고 나면 그 다음에 자기가 벌써 밝아졌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감 받아서 영감이 와서 또 깨끗하게 해  주신다 말이오. 영감이 와서 깨끗하게 해 주면은 더 예언의 말씀. 성경 말씀이,  문서로 기록된 그 말씀이 마지막에는 확실히 판정을 지워 줍니다. '아. 요 성경  말씀이 요래 맞으니까 요거는 됐다.' 그래 가지고 자꾸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

 그러면 모든 면이 사람으로 더불어 구제하는 면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웃음도  깨끗해야 되겠고, 또 눈물도 깨끗해야 되겠고, 눈물도 더러운 눈물 많고 웃음도  더러운 웃음 많고. 깨끗한 웃음도 또 있고. 모든 것을 다 주님을 향하여서 내가  깨끗해진다. 주님과 같이, 주님과 같이 내가 깨끗해져서 내 목적은 '우리를  부르심은'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뭐이라 했습니까? 예?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우리를 부르신 것은 또 뭐라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가 입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오늘 아침에는 깨닫고 어디서든지 나는 주님과 꼭 같아야  됩니다. 다르면 그 사이는 합해질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싸우는 것은 다른점이  있어서 싸우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에게 옳고 어느 사람에게 틀려 그런지  어짜든지 둘이 맞지 안하면 싸웁니다 나쁜 것이라도 맞으면 싸우지 않습니다.

좋은 것으로도 맞으면 싸우지 않습니다 이질이 있으면은 거게는 반드시 투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것이 있으면 투쟁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주님과 내가 다른 것이 있으면  내가 주님과 투쟁해 가지고 주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택한  자에게 있어서는 죽는 날 그 시간이 주님과 이질적인 것은 다 소탕돼 버립니다.

그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것인데, 벌써 죽을 때에 주님과 다른 것은 다  그때에 구별돼서 주님과 동질된 것만 남아 있고 나머지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가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부활할 때는 주님과 동질된 것만 부활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부활했는데, 그 사람은 공부를 했는데 기역 하나밖에 모릅니다. 기역 하나밖에  몰라. 기역 하나밖에 모르니까 기역 있는데는 기역인 줄 알지마는 그 나머지기는  하나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글자를 백 자 아는 사람 있고, 천 자  아는 사람 있고 만 자 아는 사람 있고 그 아는 것이 다 각각 다르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할 때에도 주님과 같은 것이 아주 조그매 있는 사람 있고  많이 있는 사람 있고 이래서 그것이 하늘나라의 권세요 영광이요 실력입니다.

 그러기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우리가 재미도 돈을 모으는 재미. 자기 또 욕심이 달성되는  재미, 자기의 그 계획이 달성되는 그 재미, 또 자기와 같은 사람이 만났을 때의  재미 이런 여러 가지 재미가 있는데 우리가 재미 중의 제일 좋은 재미는 무슨  재미인고 하니 주님의 그 형상을 입는 주와 같이 깨끗해지는, 요 깨끗해지는  취미를 붙여 가지고 요 깨끗해지는 요 취미를 자꾸 붙이면 깨끗해지므로 재미가  있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는 요  깨끗에 우리는 취미를 붙여야 되겠고, 깨끗에 욕심을 가져야 되겠고 이렇게 해서  나는 주와 같이된 것 만 부활하지 주님과 같이 되지 안한 거는 부활 못 한다  요것을 우리는 꼭 명심해야 됩니다. 주와 같이 된 것만 부활하지 주와 같이 되지  안한 거는 부활 못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주님의 모형, 꼭 주님과 같은 거, 예를 들면 생화가 있고 그  생화와 꼭 같은 조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림 그리는 것도 꽃을 하나 놨으면 그  꽃과 꼭 같이, 사람은 사람과 같이 그렇게 그림 그리는 거 아닙니까? 그리는 그런  것은 다 실체가 아니고 그림이요 또 그 조화요 또 그 모형이라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되는 거는 아니지마는  하나님과 꼭 같이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같이 된 것만 부활하지 같이 되지 안한 것은 부활을 못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같이 되는 그 일을 하라고 우리 현실을 자꾸 바꿔 주시는데  우리는 그 헌실을 이해하시 못하고 그 현실이 자기 비위에 자기 이미 되어져  있는, 되어져 있는 자기에게 맞으면 그 현실을 좋다 하고 맞지만, 안하면 그만  싫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되어 있는 그와 맞은 것을, 맞은 현실을  주십니까 다른 헌실을 주십니까? 다른 헌실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자기가 이미  되어 있는 자기에게 맞은 헌실 주는 것을 원하는 사람손 한 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자기에게 되어 있는 것과 다른 현실을 주시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걸 원합니다. 주님과 같이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은 쓸 필요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뒤에 있는 것은 돌아보지 않고' 그 말은 자기가 이미 되어 있는  거는 돌아볼 필요가 없어. 성화되어 있는 거는 돌아볼 필요 없어. 만들어진 것은  돌아볼 필요가 없어, 만들어진 그대로 있으니까, 자, 만들어진 그 상급은 언제  줍니까? 그래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병든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의원이 병든 자에게 필요하지 성한 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내가 온 것은 의원으로 왔다 죄인을 불러서 고치기 위해서 왔다'  그러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성화된 것 우리에게 바로 되고 옳게 된 그것을 지금  주님이 이 세상에서 자랑하고 등용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우리에게 잘못된 걸  고치러 왔습니까? '나는 의원인데 의원은 성한 자에게는 소용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 내가 온 것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기 위해서 고치기 위해서 왔다'  그랬어.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어디까지 잘 됐든지 잘 된 거게 대해서. 거게 맞은  것은 우리에게 주지 안하고 맞지 않은 걸 자꾸 줍니다. 우리에게 맞지 안하는  현실을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맞지 안하는 현실을 주시니까 그 현실을 가지고서  내가 고치면 그 현실에 딱 맞는다 말이오. 그 현실에 딱 맞아서 현실은 나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현실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현실은, 아, 이 현실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항상 '이 현실이 나에게 없었으면 어찌 될 뻔 했느냐' 그 현실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참 행복스러운, 주님에게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  현실에 딱 맞을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자꾸 만들어져야 되겠다 그거요. 그  현실을 따라가서 만든다는 말이 아니고 현실을 내게 딱 맞춰서 그렇게 하는  가운데서 주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렇게 귀중한 현실인데 그 현실을 우리가 뭐 돈벌이하는 현실로,  이 세상 무슨 자기 욕심을 달성하는 현실로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현실은 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따라합시다. 모든 현실은! 자기를! 고쳐! 깨끗게 하는 현실이다! 현실은 깨끗게  하는 현실이다! 현실은 깨끗게 하는 현실이다!  요 지식을 가지고 '아, 요 현실에는 내가 어떤 면을 깨끗게 할라고 하는가'  그래서, 현실에는 주님과 같지 안한 것이 불로 탑니다. 그래서 믿음을 연단하는  현실이라, 불로 금을 연단해서 잡철을 태우고 다 금만 남는 거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통해서 주님과 같은 것만 남고 같지 않은 것은 다 태워 버리니까, 주님과  같은 것만 남게 되고 같지 않는 것은 다 태워 버리니까 많은 연단을 받을수록이  금을 연단해서 이십 사금과 마찬가지로 이래 가지고 주님과 이질적인 것은 다 타  버리고 주님과 동질의 것만 남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요걸 하나 단단히 기억합시다. 우리 현실은 주님과 다른  이질의 것을 그것을 고쳐서 깨끗게 하는 현실이다, 요다음에 부활할 때에는  주님과 꼭 같은 그것만 부활하지 주님과 다른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사름을  받는다 그것을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하나씩 배우면 놓으면 안 됩니다. 배운 대로 그대로 자꾸 자기를 만들어  가는 그 일이 있어야 신앙 생활이 재미 있지 신앙 생활이 그만 핀트가 안 맞고  삐뚤어지면 그만 재미가 없습니다. 그만 힘이 떨어집니다. 그만, 딱 들어맞으면  굉장히 세상이 뺏들어 갈 수 없는 그런 취미를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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