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해지는 것. 주안에 있는 것.열매

 

1988. 9. 16. 금새벽.

 

본문:요한복음 15장 1절∼8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과실을 맺으면 하나님이 깨끗케 해 주시고 또 깨끗해야 과실을 많이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서가 먼저인가? 그 순서가 먼저인 것을  여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동시입니다. 과실을 맺어야 하나님이 깨끗케 해  주시고 그러니까 깨끗해지고 또 깨끗해야 과실 맺을 수 있다. 그러면 과실을  맺어야 깨끗해지고 깨끗해져야 과실을 맺는다.

그러면, 깨끗해지는 건 어떤 게 깨끗해지는 것인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이라. 주님 안에 있는 것이 깨끗해지는데 그러면 깨끗해지는 건  뭐인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라. 주님 안에 있으면 깨끗해지는 것이라.

깨끗해지는 것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라. 깨끗해지는 것은 주님 안에 있어야  깨끗해지지 다른 데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거는 어떤 것인가?  깨끗해지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이것이 모두 동시에 되는 것을 여게  똑똑히 표시를 해 놨습니다. 시간적으로 말하면 동시에 되어지고 또 순서적으로  말하면 이것 저것이 함께 돼야 된다 하는 것을 여게서 결론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함께 되어진다.

그러면, 뭣뭐 함께 되어져야 되는가? 열매 맺는 것, 또 깨끗해지는 것, 또 주 안에  있는 것 이것이 함께 됩니다. 주 안에 있는 것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거와 같고 또 주 밖에 나가는 것이 가지가 둥치에서 끊어지는 거와 같고,  깨끗해지고 주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고 깨끗해지고 주 안에 있지 안하면 열매  못 맺습니다. 깨끗해지고 주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고 또 열매를 맺어야  깨끗해집니다. 이러니까 주 안에 있는 것, 손가락으로 쳐 보시이소. 주 안에 있는  것, 열매 맺는 것, 또 깨끗해지는 것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깨끗해지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열매 맺는 것 그라면 세 가지입니다.

깨끗해지는 것, 열매 맺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이게 돼야 저게 되고 저게  돼야 이게 되고, 이게 되면 저게 된다는 그런 순서가 아니고. 이게 돼야 저게 되고  저게 돼야 이게 되고, 그러면 어느 것이 먼저냐? 그 먼저에 순서는 여게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하면은 그런 순서가 있지마는 우리 실지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이것이 동시에 돼야 됩니다. 동시에. 깨끗해지지 안하면 주 안에  있지 못합니다. 또 주 안에 있지 아니하면 또 깨끗해지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느  게 원인이요? 깨끗해지는 것이 원인인지 주 안에 있는 게 원인인지 그 어느 게  원인이라 할 수 없어. 깨끗해져야 주 안에 있을 수 있고 또 주 안에 있어야  깨끗해집니다. 또 열매를 맺어야 깨끗해지고 또 깨끗해져야 열매를 맺고,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하고 저것 다음에 하고 그런 게 아니고 이거 동시에 할라고  힘을 써서 동시에 그것이 돼져야 됩니다.

그러면, 주 안에 있는 것 열매 맺는 것 깨끗해지는 것, 또 깨끗해지는 것 열매  맺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깨끗해지는 것 열매 맺는 것 요거  동시에 되는데 그것은 언제 되느냐? 고 현실에서 요 세 가지를 우리가 생각해야  되지 한 가지만 생각하면 그만 시험에 듭니다. 마귀의 꾀에 빠져 버렸어.

이러니까 요 세 가지를 동시에 같이 생각하고 같이 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깨끗해지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또 열매 맺는 것, 그러면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과실을 맺는 가지는 이를 가꾸어 깨끗하게 해  주신다 이라니까, 거게 보면은 과실 맺는 것이 먼저로 보여집니다. 그렇지 않소?  과실 맺지 않는 것은 끊어 버리고 과실 맺는 것은 깨끗케 하신다. 그러면 과실을  맺어야 깨끗해지는 것으로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또 깨끗해지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인데 주 안에 있어야 또 과실을 맺는다고 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동시에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 주 안에 있는 것, 열매 맺는 것,  열매 안 맺으면 주 안에 있을 수 없고 깨끗해질 수 없고, 깨끗지 안하면 열매  맺을 수 없고 주 안에 있을 수 없고, 주 안에 있지 안하면 깨끗해질 수 없고 열매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요 셋을 동시에 우리가 요 현실에서 요 셋을 생각하고 요  세 가지를 할라고 생각해야 되지 그러면 이 세 가지 할라고 노력하지 안하고  하나씩 순서를 잡아서 이거 하면 이거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은 그 순서는  있지마는 실패됩니다. 이러니까 그 셋을 한목 할라고 우리가 애를 써야 됩니다.

그러면, 깨끗해지는 것이 어떤 것이 깨끗해지는 것인가? 깨끗해지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 주 안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열매 맺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면 열매 맺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깨끗해집니다.

깨끗해지면 열매 맺습니다. 또 열매 맺으면 깨끗해집니다. 열매 맺으면 주 안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한목 생각하면서 할려고 노력할 때에  그때에 그 일이 바로 돼지고 세 가지를 한목 생각지 안하고 하나만 생각하면  자기는 생각하는 것 같고 애를 쓰는 것 같지마는서도 실은 전대 구멍 떨어진 것  한가지요. 구멍 떨어진 것 한가지이기 때문에 전대 밑구멍 떨어진 거는 암만 주  넣어 봤자 다 흘러 버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셋이 동시에  되어져야 구멍이 없는 폭탄과 같습니다.

그러면, 폭탄은 아무리 재료를 많이 넣고 잘 만들었더란대도 어데 구멍 하나만  뚫혀 있으면 그 폭탄은 힘이 없습니다. 그 폭탄은 폭발이 되면은 그저 펑 하든지  피 하든지 이렇지 그게 힘이 없습니다. 한 군데도 헛김이 새는 데가 없고 그래야  그게 폭발이 되면은 아주 큰 고함을 소리를 큰소리를 지르면서 껍질 쇠가 그게  다 전부이 산산히 깨어져 가지고서 이렇게 마구 흩어져서 이래 파편이 돼 가지고  흩어집니다. 그 모양으로, 자기는 이 열매 맺는 것, 깨끗해지는 것, 또 주 안에  있는 것, 이것이 하나로 뭉쳐져야 이 폭발이 아주 힘있게 돼서 큰 능력이  나타나는데 이 세 가지가 한목 뭉치지 안하고 그 중에 하나만 하든지 둘 하든지  이라면은 구멍 뚫어진 그 폭탄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거 할 때는 현실에 해야 되는데 현실에 자기는 주 안에 있는 것,  또 깨끗해지는 것, 열매 맺는 것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되는 것이고 이 세 가지는  하나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한1서에 말씀하시기를 성령의 은혜와,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은 하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그  셋 중에 하나 빼놓고 이렇게 하면 그것이 마치 그 폭탄이 구멍 뚫어진 거와  같아서 거게는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삼위일체를 깨닫고 내가 성부를 부를 때에 벌써 성자와 성령을  같이 부른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고, 그거 잘못하면 ‘성령님’ 해 놓고 또 너무  자꾸 성령님만 말하고 이라니까 아버지도 주님도 말하지 안해 멀어지는 것  같으니까 또 ‘주님’ 이라고 또 `성령님' `주님' 자꾸 이래 말하고 보니까  아버지는 좀 그만 잊어 버리고 멀어진 것 같아 또 ‘아버지’ 말하고 이러니까  ‘아버지 하나님’ 또 `주 예수님' 또 `성령님' 자꾸 또 이래 돼. 이러면 또  진리와 하나님은 하나인데 진리 없는데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하나님’ 해도  진리를 버렸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도 아니요 만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차차 차차 우리가 힘을 써 가지고,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십니다. 단일성의 하나님이라. 단일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여러 수백 가지를 말해도 실은 그것이 본질과 본성이 하나라. 한 말이라. 한  말씀 속에는 모든 말씀이 다 들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서, 우리는 이게 있으면 저거 모르고 자꾸 이래 범죄한  이후로 이것 생각하면 저것 못 생각하고 저것 생각하면 이것 못 생각하고 이 일  하다 보면 저 일 못 하고 저 일 하다 보면 이 일 못 하는데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서 지금부터 연습을 해 가지고서 이다음에 부활할 때는 어떤  부활을 하는고 하니 우리도 이 단일성의 부활을 하고 또 여게도 있고 저게도  있고 동시에 있을 수 있고 모든 것을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거게 열 가지 조건이 있다면은 열 가지 조건을  같이 생각해야 그 일이 되어지지 열 가지 조건 가운데에 한 가지만 안 생각해도  그것이 폭탄 구멍 뚫어진 거와 같아.

그래, 차차 차차 우리가 성화돼 나가는 것은 처음에는 하나만 생각합니다. 하나만  생각하는 그것이 뭐이냐 이리저리 치우치는 그것이 돼 가지고서 ‘너희들이  이리저리 치우쳐서 다 곁길을 걷는다’ 이랬는데 하나만 일 면만 생각하다가 또  이 면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 할 때도 이 사람의 지도는 일 면만 생각하고  지도하는 지도가 있고 두 면을 생각하며 지도하는 지도가 있고 세 면을  생각하면서 지도하는 지도가 있고 그 면은 일 면보다 이 면이 좋고 이 면보다 삼  면이 좋고 삼 면보다 사 면이 좋고 사 면보다 오 면, 오 면보다 육 면, 육 면보다  칠 면, 십 면, 그러면 십 면을,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지도할 때에 십 면을 보고  지도하는 것과 백 면을 보고 지도하는 것과 어느 것이 좋습니까? 백 면을 보고  지도하는 것이 원만하기 때문에 백 면을 보고 지도하는 것은 그것은 일 면 보고  지도하는 사람과 지도가 다르고 또 모든 건설 행위가 달라지나, 그러면, 백 면을 보고서 행하는 것과 십 면을 보고 행하는 것과 그 행함에 대해서  성공은 어느 것이 빠르겠습니까? 성공은 어느 것이 빠르겠습니까? 십 면을 보고  행하는 것이 성공이 빠릅니다. 성공이 빠르지마는서도 그 성공은 뒤에  깨어집니다. 깨어지요. 십 면을 보고 하는 것보다 백 면 보고 하는 것이 성공이  더딥니다. 더디나 그것은 십 면 보고 하는 것은 깨어져도 깨질 때라도 백 면 한  거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백 면을 보고서 한 그 일은 성공이 더디나 여물기는 십  면 보고 하는 것보다도 여뭅니다. 그러면 백 면 보고 하는 것보다도 억억만 면을  보고서 행하면 그것은 성공이 더디겠습니까 빠르겠습니까? 더딥니다. 또  견고하기는 어느 게 견고하겠습니까? 어느 게 견고하겠습니까? 억억만 면을 보고  하는 것이 그 성공이 더디지마는서도 견고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그렇게 인도하시고 우리는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일방적이고 일면적이고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속히 되는 것  같으나 그게 뭐이냐? 성공 같으나 실패입니다. 성공 같으나 실패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도하시고 이렇게 교훈하실 때에 자, 백 면을 보고  지도하십니까 천 면을 보고 지도하십니까 전체를 보고 지도하십니까, 이 셋 중에  어느 것이 맞습니까? 녜, 전체를 보고 지도하시는 그 지도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몇 면이나 보느냐 하면은 우리는 제일 어릴 때는 일 면만  보고 이 면 보고 삼 면 보고 이렇게 보는 우리에게 전체면을 보고서 전체면에,  전체면이라면은 시간적으로 전체면이라면은 어떻게 보는 것이 전체면입니까,  시간적으로 전체면이라면? 시간적으로 전체면이라면 영원을, 영원한 시간을 보고  영원한 시간에 맞추어 하는 것이 시간면으로는 전체면이 되겠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시간적으로는 어떻게 시간을 상대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전체면이  되느냐 하면은 시간적으로 말하면 천 년까지를 계산해 가지고 했다 말이오.

그러면 천 년이 끝나면 하지마는서도 천 년 후에 천 년, 천 한 해가 있습니다. 천  한 해가 있어. 천 한 해까지 계산하고 했으면은 그러면 그거는 완전합니까? 천 이  년이 있어. 그러기에 시간적으로는 영원을 보고 계산해서 영원한 시간에 실패없이  해야 그것이 완전한 것이고 그것이 시간적으로는 전체면을 보는 거라.

시간적으로는 전체가 영원이겠습니다.

모든 존재로서는 또 어떤 것이 완전이 되며 전체가 되겠습니까? 존재를 상대할  때는 뭣뭣 존재 상대하는 것이 모든 존재를 다 상대하는 완전 상대가  되겠습니까? 그거는 어떻게 하는 것이겠소? 간단하게 한번 말해 보십시오. ○ ○  집사. 창조주 피조물 그 둘 보면 또 빠진 거 뭐 있습니까, 혹? 빠진 것 하나도  없어. 창조주와 피조물 보면 다 봤어.

그런데, 땅위에 있는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고 일방적 지식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망하게 하는 지식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 지식은 그것은 전부 다 창조주 빼놓고  바벨탑을 쌓는 것 한가지라. 창조주를 다 빼놓고 피조물 저거끼리 모입니다.

피조물 저거끼리 모이면 그러면 백이 모이면 이제 강합니까 천이 모이면  강합니까? 백이 모이고 천이 모이고 있는 모든 피조물 전체가 똘똘 뭉쳤습니다.

그라면 강합니까 약합니까? 강합니까 약합니까? 강하요 안 강하요? 강하요  약하요? 피조물 전체가 똘똘 뭉쳤으면 강합니까 약합니까? 약합니까? 강합니다.

강합니까? 약합니다.

저 무슨 소리를 저런 소리를 하고 있을까? 약합니다 하는 소리는 무슨 말입니까?  창조주와 함께 뭉친 것보다는 약합니다. 또 강한 것은 뭐입니까? 강한 것, 전체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 하나 빼놓고 하는 그것보다는 하나도 안 빼놓고 전체가  뭉친 것이 어떻습니까? 강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도하시는 것이 완전한 지도를 하십니다. 전지자이기  때문에 전부를 다 보고 지도하십니다. 전체에 다 맞춰서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은 백 년 가도 실패없고 영원 가도 실패 없고 이 면도 저 면도  실패없는 이런 완전한 길을 우리에게 인도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조부랍게 일 이  면밖에는 모르는 우리들이니까 하나님의 인도가우리 의견에, 우리 이성 판단에  이해가 될 리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차차차 자라서 뭣이든지 자꾸 면을 넓혀서 여러 면을 보도록  자꾸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우리는 여러 면 볼 만한 그런 지식도 없고  이러니까 아는 대로는 이면 저면 봐야 되는데 그러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명철해서 백 면을 봤으면 굉장한 사람이오. 이렇지마는서도 백 면 봤다고 다 본  게 아니라. 억억만 면도 더 되는데 백 면 본 그것이 다가 아니라. 이러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몇 면이나 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거는 몇 면이나 보요? 전부를 보는 거라. 이러니까 우리가 자꾸 그 면으로 우리가  자라고 커져가야 돼.

이러니까, 이거 답답한 것이 말하면 ‘저거는 지금’ 그 어데서 모두 다 실패  되느냐 하면은 여러 면을 보지 안하고 한 일 면이나 그런 면을 보기 때문에 면이  적어서 실패당해.

그러면, 주장하는 것은 ‘저는 저거는 일 면만 봤다. 몇 면 봤다. 몇 면부터  빠져버렸다.’ 그것을 보고서, 여러 면을 아는 사람은 열 면을 보고서 비판하는  사람이 아홉 면 보고서 주장하는 사람에게 유혹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유혹을  받소 안 받소? 안 받아.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자기를 키워서 길러 나가야 됩니다. 하나씩 둘씩 자꾸  그래 해 나가야 돼.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도 열매 맺어야 되고 주 안에  있어야 되고 깨끗해지는 이것이 동시에 돼야 되지 이게 동시에 안 되고 열매  맺는 데만 주장을 하고 해 보면, 열매 맺는 데만 힘을 쓰면은 나중에 깨끗해지는  면이 빠졌다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깨끗해지는 면을 또 하게 되고 깨끗해지는  면을 그 면을 또 힘을 써서 자꾸 깨끗해질라고 애를 쓰다 보니까 또 주 안에  있어야 되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서 하나로 시작하면은 전체로 자꾸  이래 자라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령적으로 열매 맺는 것, 또 주 안에 있는 것, 깨끗해지는 것 이것을  동시에 할라고 애를 써야 되지 어느 일 면으로만 치우쳐 이래 하면은 그 일이 안  돼집니다. 안 돼져도 뭐 성공이 없으니까 자꾸 성공이 더디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이라든지 행함이라든지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를 행하면 복을 주시겠다, 또 기도하면 또 들어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을 약속으로 선포해 놨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이 없고 우리가 의를 행해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서 상으로 갚아 주시는  보응해 주시는 일이 없고 이렇게 보상해 주시는 일이 없고 우리가 뭐 구해도  들어 주시는 일이 없고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낙심을 해야  됩니까 아직까지도 구비하지 못해서 그러니까 구비하지 못한 그 면을 찾아  가지고서 구비하도록 해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구비하도록 해야 됩니다.

구비하도록 해서 그게 됐으면 이제 다 됐습니까? 처음에는 열 가지만 구비하도록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너는 열 가지는 구비해야 된다’ 열 가지 구비하도록  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든지 그 선을 행하든지 하면은 하나님이 상을 베풀어  주시는데 하나님이 차차 차차 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자, 가까와지는 자가 되면은 그 열 면만 행해도 되던 그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네야 뭐 사랑하기 때문에 다섯 면만 해도 된다. 아홉 면만 해도  된다.’ 그거 보고 행하는 면, 구비가, 구비의 숫자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구비면이 자꾸 많아집니까 적어집니까? 많아지는 요거 알아요.

요것도 아주 어려운 말이라. 세상에서는 왜? 사랑하는 자면, 미워하는 자면 열  가지를 다 해야지만 사랑하는 자면 열 가지가 아니라 아홉 가지만 해도 돼.

사랑할수록 그에게 대해서 흠점을 묻어 두고 또 그 사람에게 잘못된 흠점을  묻어두고 또 좋은 점은 더 과장합니다. 이래 좋은 점은 높이고 흠점은 자꾸  낮추고 이렇게 깎아나도록 이랍니다. 이렇지만 하나님은 정반대라. 사랑할수록이  흠점은 자꾸 더 돋웁니다. 흠점은 자꾸 더 높이요. 더 들레구로 해. 흠점은 못  견디구로 해. 또 좋은 점 그거는 일학년 같으면 좋은 점이라고 칭찬할 터인데  이학년이 되면은 칭찬받을 그런 데에도 책망을 받아요. 알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영원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해서 대우하는 것이 그렇게 대우한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가 기도를 하든지 행하든지 할 때에 거게 대한 그 보응의 답이  상급이 안 오면 어찌 해야 돼요? 낙망을 해야 돼요 뭐 해야 돼요? 저 뒤에 한번  대답해요. 자, 우리가 기도하든지 행하든지 해 가지고서, 행하면 복 줄라고 했고  또 기도하면 응답해 줄라고 했는데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어. 행해도 하나님이  상급을 안 줘. 그라면은 우리가 낙망을 해야 됩니까 우리가 열심히 자꾸 구해야  됩니까 또 뭐 빠진 것 있는가 살펴봐 가면서 빠진 것을 자꾸 찾아 가지고 그래  자꾸 구해야 됩니까 구하는 그것만 자꾸 구해야 됩니까 어째야 돼요? 자, 구하는 그것만 자꾸 더 열심히 구해야 됩니까 또 지금 구비한 것을 아직까지  구비가 안 돼서 뭐 빠진 게 있어서 하나님이 빠진 걸 그걸 지금 채우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지금 찾아 가지고서 모든 것이 구비되도록 하기 위해서 찾으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낙망해야 되겠습니까? 이 셋 중 어느 거 해야 돼요? 낙망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기도해도 안 되고 행해도 안 되고 아무  대답이 없고 아무 상급 보상이 없고 이러니까 낙망해야 됩니까? 낙망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러면 또 열심히 그것을 자꾸 구해야 됩니까, 자꾸 그것을  자꾸 계속해서 열심히 구하라고 또 구해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또 손  들어 봐. 빠진 게 있으니까, 뭐인가 빠진 게 있으니까 빠진 거 뭐 회개에 빠진  것이든지 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지금 그 보고할 것이 빠졌다든지 간구할 면이  빠졌다든지 빠진 것을 찾아 가면서 자꾸 열심히 구해야 됩니까 어느 것입니까?  빠진 것을 찾아 가면서 열심히 구해야 된다고 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이거야.

요렇게 구별해서 자꾸 가르쳐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열심히 해 가지고 신앙  생활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엉뚱이같이 자꾸 신앙  생활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뭣이든지 거게 대한 차차 구비 요소를 자꾸 구비해 가지고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기를 어떤 자 되기를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전지자와 같은 그  전지자 되기를 요구합니다. 전능자 되기를 요구해요. 하나님같이 완전자 되기를  요구해요.

그렇게 하나님같이 완전자 되기를 요구하니까 우리가 그 완전자가 되어지는 그  방편이 어떠합니까? 완전자가 되어지는 그 방편이 어떠하요? 그 방편이 하나씩  둘씩 자꾸 찾아서 이래 지금 구비하는 그 방편이 있고, 그거 찾을라면 뭐인지  모르니까 이제 하나님이 그저 시키시는 대로만 복종하는,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  일만 지금 자꾸 해서 뭣이든지 자기가 아는 대로는 놓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그분에게 순종하는 믿음 지킬라고 하는 그 방편이 있고 자기가  이것저것 잘못된 걸 자꾸 부지런히 찾아서 지금 구비할라 하는 그 방편이 있고,  그런데 그 방편이 둘이 있는데 어느 방편이 쉽습니까? 연결 방편이 쉽소 하나 둘  찾아서 구비하는 방편이 쉽소? 연결 방편이 쉬워. 그렇지 않아? 하나님과  연결되면 다 되지 않아? 그러니까 구비하되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 구비해야  되지 구비해야 일이 성공된다고 해 가지고 하는 것은 인본이라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인본이니 신본이니 하는 말이 과거 우리나라에는 해방 직후에  그때 ○ ○ 교파에서 이거 그때 그 ct4““교파라고 하는, 그때 장로교는  하나뿐이었는데 장로교가 그때 둘로 갈라졌어. 이 ○ ○ 교파와 또 장로교 하나와  두 갈래로 갈라질 때에 그때에 부득이 필요가 있으니까 말을 많이 했어. 인본주의  신본주의를 말했는데 그뒤에는 인본주의라는 말과 신본주의라는 말이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죽어서 없어졌어.

왜 없어졌어? 인본주의 신본주의란 말이 없어졌어. 왜? 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해가 기울어지면 그림자가 어찌 돼요? 그림자가 있어요 없어요? 해가 넘어가면  그림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깜깜해지니까 그림자가 없어. 이제 해가 기울고  그만 그림자가 없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갔기  때문에 인본주의니 신본주의니 말이 없어. 말이 없어. 이걸 알아야 돼요. 해가  있고, 이렇게 해가 있을 때 햇빛이 있을 때는 이거는 응달이다 양지다, 그림자다  이거는 빛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처럼. 요새는 인본주의 신본주의가 없습니다.

이거 인본주의 신본주의 하면은 막 욕을 해 재끼요. 그거 죽여 버려라. 그런 놈의  새끼는 죽여야 된다. 뭐 지금 이렇게 모두 다 모두 화합, 화합, 화평 화평, 화합  화합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판인데 뭐 지금 사십여 년 지금 원수가 돼 가지고  있던 이 소련하고도 지금 당장에 화친이 돼 가지고서 서로 오고 가고 소련  공중에 우리 비행기가 다닐 수 있고 이렇게 막 다 털어 놓고 그 일본 나라에서도  이북에 분해서 견딜 수 없는 복수할 그런 일도 복수 복수 있다가서 아, 이것도 다  취소하겠다 하고서 하는 이런 판에 뭐 지금 구별하고 그래 가지고서 신본이니  인본이니 그거 까다롭게 신본이니 뭐 하는 그런 놈은 죽여 버려야 된다.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평이고 서로 사랑하면 되는 거지 뭐 신본 인본 까다롭게  자꾸 쪼개고 가르고 또 깎고 뭐 이래 헐고, 그래, 그게 오늘에는 없습니다. 오늘에 없는 이유는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갔기  때문에 이제 양지니 음지니 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없는 게 아니오. 깜깜해졌기  때문에 없어졌어. 인제 없어진 것은 깜깜해졌으니까 없어집니다. 낮에 환하게  이제 전체가 지금 해로만 가득 차면 그때는 뭐 응달이 있어야지? 한낮에 밝을  때는 뭐 해 안 돋은 데도 다 환하고 다 밝아 버리니까 거기는 응달이 없지.

이거 모양으로 지금은, 요한계시 9장에 무저갱에서 뭐 올라와요? 무저갱에서 뭐  올라와요? 연기가 올라와요. 연기가 올라오니까 뭐 가려요? 햇빛 가려요. 햇빛  가리니까 깜깜해 어두워져 버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전부 하나님 빛은  가리워져서 안 보이는 때가 왔습니다.

이러니까 이 요새, 그 뭐꼬? 엊저녁에 누가 나한테 테이프를 하나 갖다 줘요.

그때 뭐 어떤 사람이라고 그 사람 뭐 그때 당뇨병을 말하던가 뭐 당뇨병  말하는데 그거 내 한번 들어 봤어요. 들어 봤는데 그 사람 말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교를 이용을 해 먹으니까 조금 더 사람들이 능하는데 그거 그런 소리는 잘  들어도 그런 소리 그거는 그런 소리는 천 년 해 봤자 그 생명은 없습니다. 천 년  해 봤자 생명은 없어. 없는데 거게는 야단이지마는서도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안해. 여게서 하는 말씀과 그런 말과는 억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거라.

거게서 내가 잠깐 들어 보니까 그말 하대요. 사랑을 먹어야 된다. 사랑을 먹어야  된다 이라는데, 사랑은 참 어데든지 들어가면 양약이라서 사랑만 들어가면 다  된다 이라는데 제일 독 많은 것이 뭐이요? 제일 생명 많은 게 뭐이요? 그는 그걸  몰라. 그걸 알아 놨으면 또 그걸 이용해 먹을 건데 그걸 이용해 먹으면, 이용해  먹으면 저 하는 말이 다 절단이 나 버려. 참 사랑, 사랑을 먹어야 된다는 건 뭐  사죄, 칭의, 화친을 말하면 그런 것이 다 싹 무너지고 깨진다 그거요.

여러분들이 저 설교는 들으면 저거는 일 면만 보고 하는 설교다, 이 면을 봤다,  저거는 전체 면을 봤다 하는 이것을 좀 볼 줄 알고 지금, 그걸 못 보거들랑  무조건 좀 순종해. 무조건 순종하면 되는데 그것 못 보거든 순종하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걸 모르면 무조건 순종해서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도록 이것만 연습해 놓으면 그 사람은 전지자 돼요 전지자 안 돼요? 전능자  돼요 전능자 안 돼요? 전능자 돼.

이러니까, 제일 쉬운 길을 말해 놨는데 그걸 모르다 보니까 ‘아이구, 저 말도  같지 않는 소리라.’ 말도 같지 않는 소리 했다고 해서 망할 자는 시시한 말로  보고 또 하늘나라에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땅위에 있는 그런 말 암만 해 봤자  시시한 말로 봅니다.

그 사람 보니까 엊저녁에 테이프 가져 왔는데 누가 테이프를 가져 왔어요. 가져  와서 이거 들으면, 아마 대단히 높이 평가가 됐든가 그 테이프를 가져 왔어. 그래  내가 ‘그래 고맙다. 테이프 가져 왔으니까 내가, 가져 왔으면은가져 온  사람에게너 하나 테이프 값 하고 내 하고 한 개 주면 내가 두 개씩을 값을 낼  터이니까그래 고마와서가져오라.’ 이랬는데 내가 그거 들어볼 시간이 있을란지  몰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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