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사는 생활

 

1986. 10. 5.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어떻게 좋고 귀한 식물이라도 제가 먹어보지 안하면 그 맛을 알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 믿는 이 도리를 아무리 참된 진리를 배웠다 할지라도, 가르쳤다 할지라도 먹어보지 아니한 음식처럼 제가 행해보지 안하면 거게 대한 가치도 모르고 재미도 모릅니다. 또 제가 행하지 안하면 망한다는 것도 모릅니다.

행해봐야 진리라는 것도 알고, 또 행해봐야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고, 행해봐야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도 알고, 행해보면 ‘행하지 아니하면 망하는 것은 필연한 일이로구나’ 하는 것을 제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믿는 것은 초다듬이는 신구약 성경을 읽든지 설교 말씀을 듣든지 해서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제가 행해봐야 알지 행해보기 전에는 이 진리의 참은 모릅니다. 제가 뭐 성경 대박사라도 모릅니다. 또 성경 모르는 세상 지식 그까짓 거야 박사 백 개를 가져도 어림도 없습니다.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그걸 가질수록 하나님의 이 진리에서는 멀어집니다.

왜?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것만을 상대로 하고 가치로 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는 다 무시합니다. 하다 안 되면 뭐 전자 현미경이라도 그것으로 봐서 눈에 보여야 ‘아’ 하지 보이지 않는 건 전부 무시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우주에 가득 차 보이는 그것보다, 아무리 전자 현미경 아니라 그것보다 더 한 걸 가지고 봐도 조그만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분이 큽니다. 그런데 이 세상 지식은 보이는 것을 상대해서 보이지 않는 거는 전부 무시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안하는 것을 위해서 있고, 보이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영하다고 그렇게 평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이 아무리 있어도 그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데에는 그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인합니다. 세상 지식이 많을수록 예수 믿는 데 대해서는 무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도가 숨겨져서 모르고 어린 아이에게는 알려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뭐 주님이 하신 말씀이 틀린 말인 줄 압니까? 여게서 세상 지식 가지고 제가 예수 믿고 그것만 있으면 썩어질 마귀의 지식 아니까 산 하나님의 지식도 알 수 있다고, 내가 저보다도 세상 지식이 위에 있으니까 하나님의 지식도 위에 있으리라고 그런 망령된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성경을 읽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알고, 아나 이것은 참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입문이요 아는 준비입니다. 그거 어디 필요한가? 실행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면 실행을 해야 압니다.

실행을 안 하면 설교를 들어서 아는 것 성경을 읽어서 아는 것 암만 알아봤자 그것은 자기를 정죄해서 멸망시키고 자기를 교만케 해 가지고 넘어지게 하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성경과 설교를 들어서 준비가 되고 실행해서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은 유대인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안다” 이랬어. 내 말에 거한다 말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참제자 되다니?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행한 것만치 그 사람이 변화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입니다. 변화가 되면 변화된 것만치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암만 성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깨닫고, 설교록을 많이 읽고 재독을 많이 듣고 설교를 많이 듣고, 또 제가 설교를 많이 하고 성경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가르쳤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이 말씀을 알지는 못합니다.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알고 실행하지 안하는 것이 다 거짓 선지자요. 거짓 선지자가 멸망한다는 것을 마태복음 7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위급한 것을 여러가지를 말씀해 주셨지마는 행해보지 안하는 자는 이것을 뭐 헌신짝같이 버리고 이것이 제게 필요한 돈 얼마만치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행해보지 안하는 자는 이 말씀과 이 말씀 하신 이를 업신여기기 마련입니다. 그게 자기의 망할 쪼입니다.

이 말씀을 실행해 본 사람은 하나님도 두려워하고, 이 말씀도 두려워하고 ‘과연 이 말씀대로 행하면 구원이 되겠고 행하지 안하면 멸망을 받겠다’ 하는 것을 천번 만번 들어도 몰라도 행해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높고 크다고 하는 자라도 이 말씀을 행해보면 그 사람이 이 말씀도 알고, 하나님도 알고, 자기의 죄인이라는 것도 알고, 자기의 약자인 것도 알고, 자기의 무가치한 것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망하겠다 하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행하지 않는 자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오전에 노아 때와 같다고 이렇게 말씀했는데 앞으로 이 불탈 것이 뭐 백 년이나 천 년이나 만 년이나 남은 거 아니고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예배보다가 지금 세상이 불탈란지 모릅니다. 오늘 저녁인지도 모릅니다. ‘설마 오늘 저녁에야 온 세계가 다 불에 타겠나?’ 오늘 저녁에는 안 타겠다고 누가 보장할 사람 있습니까? 다 미련한 생각들입니다.

산도, 들도, 뭐 저 송도 앞바다도, 저 모두 우리 한국 땅덩어리도, 떠들어 쌓는 중공도, 이북도, 미국도, 일본도 바짝 불에 타서 태일 때 그때 한자리 있는데 하나는 피난시키고 하나는 버려둡니다. 그래 말하지 안했소? 한자리에 둘이 누웠는데 하나는 버려두고 하나는 데려간다고 하지 안했소?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버려두고 하나는 데려간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걸 가만히 좀 생각해봐요. 예수 믿는 구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생각해봐야 될 터인데 들어 집어던져 버리고, 만날 생각은 돈만 생각하고, 만날 생각은 제 욕심만 생각하고, 만날 생각은 제 소원 성취할 그것만 생각하니까 전부 땅의 것과 멸망할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도를 생각지 안하니까 그 사람이 땅에 속한 사람이지 하늘에 속한 사람이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 가지고 구원이 되겠습니까? 멸망받지.

오전에 이 말씀을 들었는데, 온 천하가 불탈 때에 내 남편은 데려가고 나는 불 가운데서 타버리고, 내 아내는 하나님이 피난시키고 나는 불에 타고, 우리 집에 꼬마 조그만한 어린 아이 그거는 하늘나라로 피난을 시키고, “의로운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피난시킨다” 했습니다. 피난을 시키고, 우리 가족은 다 불타면 그때 어짤 거야? 그때 뭐 가슴치면서 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수십억 되는 사람이 홍수에 매장될 때에 얼마나 아우성을 쳤겠습니까? 하나님이 눈 지끈 감고 하거나 말거나 그까짓 거 하나도 듣지도 않아. 뭐 들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안 들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 무한하시면서 잔인하기도 무한합니다. 잔인하기도 무한하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잘난 사람은 참고 견디는 것도 크고, 용서도 크고, 또 사랑도 봉사도 크고 이렇지만 딱 안 됐다 해서 탁 선을 그어 버리고 잔인하게 하면은 그 잔인이 무섭습니다. 무섭게 잔인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산도 바다도 우주의 저 별도 달도 그것 다 불타서 완전히 이런 형체 저런 형체가 다 불타 가지고 녹아져서 원소로 돼진다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그래 생각해서 보고 ‘그때 그리 되면 어찌 되겠느냐?’ 그거 한번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생각해 본 사람? 한번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게 불타면 그때 얼마나 무서울까, 어찌 될까, 불타면 그때 어떻겠노, 그 모든 게 불타면 어떻게 될까? 이거 뭐 6 5 때 전쟁을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마는 그때는 불은 그저 백 리가다가 하나 타고 천 리 가다가 하나 타고 여기 저기 하나 타고 이랬지 그렇게 많이 탄 것 아닙니다. 서울에도 불탔다 하지마는 뒤에 가보고 말하는데 그저 탄 거는 뜨문뜨문 있고 서서 있는 게 많이 있더랍니다. 그래도 야단났는데 그 산과 들이 다 불타면 어찌 될란가? 그걸 한번 실감되게 실지로 생각하는 그것이 뭐입니까? ‘앞으로 불이 타면 어떻겠다’ 실상으로 불탈 그때와 같이 생각되게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뭣이라고 배웠습니까? 그게 뭣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이게 이름이 뭐이요? 앞으로 불탈 때에 그때에 불타는 그 실상을 자기가 당할 때와 같은 그런 느낌과 그런 광경을 자기가 느껴지는, 보는, 그와 같이 실상으로, 오늘에 그와 같이 자기가 생각되고 느껴지고 알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는, 뭐라 했습니까? 뭐입니까? 저 뒤에는 뭐입니까? 따라합시다.미래적 영감!미래적 영감!미래적 영감!이 영감 없는 자는 멸망입니다.

암만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도 영이나 하늘나라 가지 고기덩어리는 다 멸망입니다. 뭐 이것으로 다 판정되는 것이오.

미래를 그때 닥칠 때와 같은 그것을 오늘에 당겨서 그 실상과 같이 자기가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거게 대해서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이 거게 따라 움직여지는 그 역사 하는 것이 예비 영감입니다. 예비케 하는 성신의 감화라 말입니다.

예비 영감이 있는 사람들은 닥치기 전에 보고 느끼고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 닥칠 때보다 더 합니다. 이러니까 닥치기 전에 거게 대해서 다 준비했으니까 그 실상이 닥칠 때는 그런 사람은 웃고 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어려움이 되겠습니까? 다니엘 같은 사람도 ‘앞으로 아무래도 미래로 지금 어떤 시험이 있으리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사람들도 ‘앞으로 어떤 시험이 있을란지 모른다’ 성경을 봐서 그렇게 생각하고 뭐 그들은 사자구덩이도 한번 해봤을 것이고, 또 불 속에도 들어가 봤을 것이고, 또 붙들어 매놓고 톱으로 쓱쓱 끊는 것도 당해 봤을 것이고, 뭐 칼로 찔리는 것도 당해 봤을 것이고, 자기 온 몸뚱이를 심지로 챙챙 얽어놓고 기름을 쳐 가지고 불을 댕겨서 타는 그것도 해봤을 거고, 오만 것 다 해보고 그 실감을 느껴서 그런 데에 그런 뜨거움 어려움 고민 고통을 다 느껴보고 그래도 주님을 힘입어서 시험을 이기고 그때에 주를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요동치 아니하려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공연히 가만히 있는데 혼자 놀래고, 혼자 두려워하고, 혼자 겁을 내고, 혼자 또 졌다고, 혼자 시험 했다고, 나는 패전자라고 이래 하는 것이 다른 사람 들으면 미친 사람 한가지요. ‘저 사람 공연히 저란다’ 싶어도 그 사람이 예비 영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실상 당할 때에 자기가 벌써 예비적으로 요만한 걸 당할 것을 이만치 알고 준비해 놨기 때문에 요만치 당하니까 ‘아직까지 멀었다, 더 큰 거 당할 거다, 큰 거 당할 거다.’ 큰 거 당할 거다 하고 보니까 벌써 시험 다 지나가 버리고 합격으로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정 말년 때도 웃으며 지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그런 이, 항상 원수들 말할 때에 두려움 가지지 안하고 항상 웃음으로 지내고 그저 기쁨으로 지내니까 그분들은 촉분지른다고, 부애 지른다고 또 아무리 악과 독을 부려도 그것도 상관이 없어.

자, 우리가 거게 대해서 생각을 해야 예비적 영감이 우리에게 앞으로 그 실상을 당하면, 미래에 있는 실상을 당하면 이런 실상을 당할 것이다 하는 것을 알려 줄 터인데 생각도 안 하는데 어떻게 영감이 가르쳐 줍니까? 생각은 돈, 땅의 것 이런 것만 가득 생각하고 거게 대해서 생각이 하나도 없는데 그 사람에게 어떻게 예비 영감이 알려 주고 감동을 시켜 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거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실상으로 받지 아니하고 전부 에누리해서 만홀히 여겨 버리고 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한, 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 말씀 업신여기고 저버리는 것은 뭘 저버리는 것이고 뭘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우리 저 ○장로님 대답 한번 해 보십시오. 예비 영감을 무시한 거라? 육십 점밖에 안 됐다. 낙제다. 육십 점 낙제는 아니지.

자, 가까이 있는 ○○○장로님?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고 만홀히 여기고 저버리는 그것이 뭐하는 겁니까? 예? 뭐요? 피와 영감과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라. 녜, 그것도 삥삥 둘러가서 그저 뭐 칠십점이나 될까.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을 만홀이 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아닙니까? 그러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겠소? 하나님이 업신여김을 당합니까? 만홀히 여김을 당합니까?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의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두리라.”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경 어데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몇 절? 6절.

자, 예수 믿는 거 자꾸 배우지 말고 하나라도, 하나 알면 다 알아요. 지금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양떼들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느냐? 미국 가서 공부하고, 일등 신학교 가 가지고 공부하고 온 신학생들, 신학박사, 목사 거게는, 그걸 기다리는 것보다, 기다리기는 인간에게 하나도 안 배우고 신구약 성경만 보고 그대로 딱딱 실행해서, 읽고 실행하는 데서 깨닫고, 읽고 실행하는 데서 깨닫고, 읽고 실행하는 데에서 점점 예수화되어서 성자로 점점 성화되고 깨닫고, 혼자 성경 말씀 읽고 그대로 실행함으로 점점 성자가 되고 그대로 실행을 함으로써 점점 깨닫고 하는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해방, 해방 전인가 해방 후인가 제가 모르겠습니다. 그때, 아따 박 무슨 목사님이지, 유명한 목사님? 박재봉, 옳지. 박재봉 목사님이 그때 나왔다고 마구 소문이 나고 굉장합디다. 굉장한데, 왜? 그분이 박사들이 모르는 걸 말하고 모든 신학자들이 모르는 것 말하고 이제까지 듣지 못한 그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뭐 박재봉 목사라면 굉장히 유명하고 온 전국이 막 들이 몰렸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가 폐병으로 죽게 돼서 금강산에 들어가 가지고 사람 아무도 없는데 그저 신구약 성경만 가지고 가 가지고 이 말씀 보고 그대로 실행을 해 보니까, 실행을 하니까 자신이 벌써 성화가 돼 가지고, 성화가 됐지, 또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이런 것을 깨닫고 저런 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능력도 깨달았고, 또 하나님의 신실함도 깨달았고, 사랑도 깨달았고 이라니까 그분이 처음에 나와 가지고는 두려운 게 하나도 없어요. 또 그분 말한 대로 다 돼요.

이래서 나도 그분을 한번 만나볼라고 하나마 그 집회에 한번도 가지 못하고 이제 내가 열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오는데 말 들으니까, ‘저게 박재봉 목사님이 이 차에 탔다’ 하는 그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박재봉 목사님이 그 차에 탔다 하니까 이 내려오는 바람에 좀 만나야 되겠다 하고서 칸칸이 가서 인제 찾습니다.

찾는데 그렇츰 유명한 사람이라면 아마 조금 다를 거다 하고서 이래 찾아보니까 아무데도 없어요. 안 보이요. 안 보이는데 이제 이 칸에서 저 칸에 나가는 데 그 사이에 옆에 변소간 옆에 거기 보면 사람들 한 두어씩 섰으면 되는데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하나 꼭 끼여 가지고 섰어. 내가 보니까 사람이 좀 달라.

‘미안하지마는물었어혹 박재봉 목사님이라 하는 목사님이 여기 탔다는데 어데 계시는지 혹 아십니까?’ 이라니까, 이라면서 ‘저입니다' 이래. 그 바로 찾았어.

찾아 가지고 그래 그분에게 내가 하나 은혜를 받았어. ‘목사님을 내가 찾은 것은 목사님에게 한 마디라도 내가 생명되는 말씀을 들을라고 찾았는데 나에게 한 마디 말해 주십시오’ 이라니까 그분이 있다가 한참 생각해서 말하기를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십시오’ 요말 한 마디 했어.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라,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라. 자기 능력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지식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기 가치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가난한 자라, 아무것도 없는 자인 것을 아는 거기에서 겸손이 자라간다 하는 그말을 들었습니다. 그말 듣고서 그래 잘 있어라 하고서 서로 이별했습니다.

그분이 그때 그렇게 유명한 것은 하나님 말씀 듣고 그대로 실행하고, 실행하는 데에서 자기가 변화되고, 변화된 것만치 새로 깨달아지고 이것을 그때 나와 가지고 설교하니까 마구 온 교인들이 굉장히 모아들었습니다. 굉장히 모아들었어.

오늘도 그런 사람 원하고 있습니다. 이거 뭐 딴데 돌아다니면서 뭐 유학이니 뭐이니, ‘박사’ 하면 짜다라 좋은 줄 알아도 `박사' 하면 시시하이 여깁니다.

`신학박사’ 하면 ‘아이구 아무 들을 것 없다' 이라요. `신학박사' 하면 뭐 `그거야 우리 다 아는 거, 켸켸묵은 것, 묵은 둥치, 거게 무슨 새 움이 나며 꽃이 피며 열매가 맺을 건가?’ 안 듣습니다.

‘그 사람은 어데서 칠십 일 동안 기도하고 왔다’ 하면은 사람들이 눈이 쫑긋해 가지고 ‘그러면 뭐이 좀 나올란가?’ 한번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 심심 산골에서 몇십 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 아무 설교도 듣지 못하고 혼자 살면서 기도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라’ 하면 막 대인기가 끌고 굉장하요.

나는 그런 사람 되지 안했는데 내가 그때 여기 고려신학교 처음 시작할 때에 여기 왔습니다. 신학교 입학하러 여기 왔는데, 내가 온 거는 다른 게 아니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자꾸 많이 따르는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노선에다 붙여야 되겠느냐, 막 왜정 말년에 이 뒤숭뒤숭 해 가지고 노선이 옳은 노선이 없으니 ‘어데다 붙여야 되겠느냐?’ 암만 봐도 보니까 그때 고려신학교 말하는 분들이 주남선 목사님도 그렇고 좀 좋다 싶어서 ‘내가 이 신학교 다니다가 말아도 내 후배들은 고신에 들이 속할 터이니까 내가 이리 가야 되겠다’ 그래 하고서 그때 금성중학교서 고려신학교 개교식 할 때 그때 제가 와서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하니까 나는 모르는데 뭐 말 들으니까 ‘여기 백영희 집사라 하는 사람이 왔다 하는데 백영희 집사가 어데 있노? 백영희 집사가 누고, 어데 있노?’ 모두 이 수군수군 수군수군 그래 쌓아. ‘이상하다. 나는 전혀 모르는데 어찌 그럴까?’ 거게 보니까 뭐 삥 돌아 가지고 있어.

그래 나중에 거석하니까, 모두 인사를 하면서 그러냐고서. 그런데 그게 여기 저 박인순 선생님이 저를 만나보고 갔고, 또 몇몇 권사들이 저를 만나보고 이래 갔는데 나는 심심 산곡에서 아무것도 배우지를 못했어요. 배우지 못했는데 그저 성경 말씀 보고 그대로 실행할라고 애를 써서 말씀 보고 그대로 실행하고 그런 가운데 깨달았어.

깨달으니까 나 깨달은 것을 다 여기 교계에 말하면 전부 이단이라고 정죄해.

이단이라고 정죄, 못 들은 말이라.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력이 있으니까 호감을 가지고 자꾸 들을라고 애를 쓰는데 얼마 지나고 나면 이단이 아니라 그게 정통이라.

제가 수영교회에서 ‘산골 집사가 와 가지고 집회 한다’ 하니까 여기 고려신학교에 있는, 그때 고려신학교 총회장, 아따 총회장 이름이 뭐이니라, 진해 있었는데? 이약신 목사, 이약신 목사인데, 약속 약자, 믿을 신자 이름은 참, 이약신 목사인데 고려신학생들이 전부 싹 다 올라왔어. 올라와 가지고 인사를 하면서 뭐 아주 겸손히 인사하고 모두 다 예물을 가져오고 다 이래 뭐, 돈봉지 가지고 이래 왔어요.

‘어찌 왔느냐?’ 이라니까, 총회장이 `이 모두 다 말라진 교리만 가지고 빼빼 말라 죽지 말고 성령 받아야 되지 뭐 여기 이래 있으면 뭐할 거냐? 성령 없는 데서 뭐할 거냐?’ 성령 받으라고 그래 인제, 성령 받을라면 여기 수영교회 지금 집회 하고 있으니까 그 백 조사라는 이한테 집회 가라고. 그래 가지고 학교서 그때 휴학을 했어요. 뭐 그때부터 휴학을 해 가지고 일주일 동안 휴학하고 학생들이 싹 다 올라왔어요.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하나님 말씀 읽고 그대로 실행하고 깨달은 거 그거 말하니까 모든 사람이 좋아서 그랬어요. 저도 그 바람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실은 왜정 말년에 뭐 신사참배 안 한다 하는 그것도 거석하지마는 저는 일본 부장 앞에서 주재소에 가 가지고, 잡혀가 가지고 ‘일본 아마다라스 오오미가미 그 천조대신 그것은 잡신이다’ 이라니까, 잡신이라 하면 그만하면 범성죄로 사형입니다. ‘너거 그 신을 나한테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불로 태울께. 국기를 나를 달라. 너거 앞에서 내가 불로 태울께.’ 이라면 그건 두말 할 것 없이 당장 칼로 목을 베어 죽여 버려야 됩니다. 이랬는데, 이라니까 하도 얼척 없고 이러니까 다시 그 뒤에 말을 안 해요, 그 사람들이.

가만히 내가 그 뒤에 지금 생각하니까 ‘그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데 가만히 있었을까?’ 그 사람이 신사참배, 나를 책임을 지고 신사참배 시킬라 하는데 그래까지 해 놓으니까 그 사람이 신사참배 하라 해 안 한다 하면 그만이지 뭐, 벌써 그전에 만나보니까 그라는 사람이니 저거 말하면 더 큰 거 나올 것이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래 괜찮은 것 같애. 그 말 한 마디가 그때 나를 구원시킨 것 같아요.

아마 그때 그걸 가지고 시비를 하면 당장 그말 했을 때 총으로, 그때 그 사람들 실탄 가지고 있으니까 총으로 탁 놔서 죽여 버렸으면 ‘잘했다’ 한층 올라갈 것이고, 살려두고 만일 뭐 시비를 하는 날이면 제 모가지 떨어지고 형을 받을 거라. 그런 놈은 당장 즉사를 시키지 살려놓고 뒀냐고 제가 당할상바르니까 그래 나한테 벌을 주지 못하고 그만 그래 있은 것 같아. 이상 묘하게 참 하나님이 시키셔.

지금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고 실행함으로써 자기가 실행한 것만치 성화되고, 성화된 것만치 보고 듣는 데에 깨달음이 달라지고 요렇게 되는 요 사람 진짜배기를 모든 성도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어데 가 가지고 은둔 생활 해 가지고 그렇게 못 한다 할지라도 목회하는 사람들이든지, 그리 안 하면 반사 노릇 하는 사람이라든지, 또 장로나 뭐 전도사나 권찰 일 모두 이런 일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는 못 해도 어짜든지 자기가 하나님만 만날 고요한 시간을 많이 두고, 하나님 말씀을 들은 대로 그대로 실행을 하고, 실행하는 데서 자신이 변화가 되고 “참 내 제자고 되고”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변화가 되고” 변화되면 다릅니다. 꼭 같은, 한 마디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이 천층 만층이기 때문에 그 말 듣는 데에 깨닫는 것과 감상은 천층 만층입니다. 사람이 되기 전에는 사람 말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 말하기를 ‘성현이라야 능지 성현이라’ 성현이 돼야 성현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의 통계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암만 들어야 소용 없소. 들은 것을 실행을 해 봐야 됩니다. 들은 걸 실행을 해 봐야 돼요.

실행은 뭘로 하는데? 첫째는 마음으로 실행해보지요. 자, 눈 감고 ‘우리 집이 불탄다. 어떨까?’ 뭐 집만 불타도 야단 아니요? ‘불탄다. 그것도 큰 일이지.

만일 부산 시내가 전부 불바다가 돼서 다 불타고, 저 구덕산도 타고, 전부 이 산이 다 타버리면은 그 가운데 불 가운데 타 들어오는데 거기 있으면은 얼마나 다급하고 어떨까? 또 이뿐 아니라 저 송도 앞바다도 전부 불이 타 가지고 바다물이 타서 전부 바짝 불이 타 가지고 새까맣게 재가 되어지고 이리 되면 어찌 될까?’ 이것도 생각해 보고, 다 생각해 보고, 이것 저것 생각해 보면 ‘이 일이 언제 있을란가? 오늘 있을란지 내일 있을란지 그날은 알지 못한다 했으니까 언제 있을지 모른다. 야, 그러면 이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나?’ 거게서 평가가 될 것이고, ‘이 문제보다 큰 문제가 있나?’ `이 문제, 지금 이런 딱한 사정이 있는데? 여게 대하면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가 이제 여게서 다 깨져 버리고 녹아 버리고 그까짓 거 아무 문제도 없어.

이 어려움에 붙들리고 저 어려움에 붙들리고 이 사정에 붙들리고 이 난제에 붙들렸다 하더라도 이것을 생각해 보면은 나중에 아무데도 붙들리지 안하고 ‘아이구 그런 거는 뭐, 참 새발의 피라 하더나 그런 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거 참 큰 일이구나?’ 큰 거 작은 것을 알 건데, 이것을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그까짓 거 아무것도 걱정할 일 아무것도 아닌 것도 거게 대해서는 막 걱정이 돼 가지고 밥맛이 없고 얼굴이 쪽 빠지는 것이 이 큰 일은 도무지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강퍅해집니다. 암만 들어봐야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어.

생각하고, 생각하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지요. 생각으로 보고 생각으로 행할 것은 생각해 보고 생각으로 모든 것 다 해 봅니다. ‘불이 탄다, 영도섬이 탄다, 부산이 탄다, 한국 땅덩어리가 탄다, 동양이 탄다, 서양이 탄다, 지구가 탄다.’ 그보다 더 큰 일 있어? 자, 그보다 더 앞설 큰 일이 어디 있겠어? 자, 그보다 큰 일이 있거든 한번 말해봐. 그보다 더 큰 일이 있거든 하나 말해 봐요. 저 ○선생 말해 봐. 그보다 더 큰 일 있어? 없어. 자, 그보다 더 큰 일 있어? 그보다 더 걱정되는 일이 어데 있어? 그보다 문제되는 일이 어데 있습니까? 이런 문제는, 하나님이 거짓말 아니하는 하나님이요, 이런 문제는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모르는데 이 큰 문제는 도무지 그까짓 거야 생각에 두지도 안하고 그까짓 거는 뭐 제게 주머니에 들은 것 돈 한푼 나가는 것만치도 크게 안 여깁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자,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이 사실을, 주님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오시면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두 인간의 비밀이 다 드러난다 하는 이 말씀을 자, 거게 대해서 걱정도 안 하고 이 사소한 이런 것만 마음에 가득차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것만 가득 생각하면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알고는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알지도 못합니까? 알기야 알지. 입으로 잘 말하는데, 설교도 잘하고 뭐. 권찰님들, 권사님들 뭐, 선생님들 가서 짜다라 중얼중얼 많이 말하는데 알지.

자,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판정되는 사람, ‘그거는 안 믿는 사람이라’ 안 믿는 사람이라고 판정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안 믿는 사람이라고 판정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이 큰 문제를 무시하고 아무 문제 큰 문제되지 않는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놓읍시다. 재림을 안 믿으면 구원이 있어요 없어요? 재림을 안 믿으면 이단자요 정통자요? 이단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가증합니다. 모두 이단자요, 거짓부리요.

‘야, 이거 불타면 어찌되노?’ 불타는 데 대해서 걱정이, 거게 대해서 걱정이 돼서 하룻밤 잠 안 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그게 걱정이 돼 가지고 하룻밤 잠 못 잔 사람 손 들어 봐요. 이것도 없어? 참 거짓부리네. 마음에 걱정이 돼서 밥맛이 없고 걱정이 돼서 발발 떨리는 꼴 그런 꼴 경험한 사람 손 들어 봐요. 그것도 경험 못 했으면 예수 믿는 사람 아니야.

다 이런 문제 가지고 밥도 굶고 근심 걱정이 돼서 뭐 집에 일이 급하고 뭐이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이제 뭐, 쌀은 뭘 쌀 싸 가지고 가? 아무것도 안 싸 가지고 그만 산으로 도망가 가지고 거기 가서 이틀이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닷새고 며칠이든지 밥을 굶고 여게 대해서 생각하고 녹아지고 거기서 비로소 하나님하고 해결을 짓고 이제 그럴 때에 모든 것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 피난시킨다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이 소망이 견고해지고야 오지 그래 안 하면 오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오.

다 그래 가지고 자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에 빛이 되고 뭐 남아서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하지 나머지기 그런 거는 다 삯군들이야. 바라다 주는 사람들, 바라다 주는 사람들. 출물꾼들.

오늘은, 실행 안 하면 다 거짓부리입니다. 뭐 많이 들을 필요가 없어. 실행 안하면 그래, 자꾸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안하니까.

오후에 중요한 거 하나 가르쳐 줄 터인데 실행할라면 가르쳐 주고 실행 안 할라면 안 가르쳐 줄랍니다. 뭐 해 봤자 헛일인데 할 게 뭐 있겠소? 실행할라면 가르쳐 주고 실행 안 하면 안 가르쳐 줘요.

‘아따 뭐 엔간히 따지고 이라네’ 여게서도 삐 삐쭉거리는 사람 있는 줄 알아.

삐쭉거리면 네 입이 삐뚤어질 것이고 네 삐쭉거림에 너를 저주하고 너를 망치는 입술이다. 어데다 삐쭉거려, 삐쭉거리기를? 호리도 거짓말 없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오늘이 그날인지 몰라.

뭣을 가지고, ‘나는 돈이 있으니까’ 야, 그까짓 놈의 돈, 네 몸뚱이도 생명도 당장 없앨라면 없애버리는데 그 돈 그게 무슨 소용 있노, 네게? 어리석은 자야, 돈이 네 구주가? 네 직장이 네 구주가? 네 기술이 네 구주가? 네 정욕이 네 구주가? 어리석어. 그런 것들은 다 정함이 없는실력 없는 것들인데 그런 것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할 짐승 같은 자라.

우리가 암만 들어도 행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자, 듣고 행하면 첫째가 뭣됩니까? 듣고 행하면, 들은 대로 읽은 대로 그대로 실행을 하면 첫째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뭣이 이루어집니까? 따라합시다.참 내 제자가 되고!듣고 읽은 대로 실행하면!자신이 예수님같이 성화되고!성화되면!진리를 알지니! 이라고 난 다음에 안 진리는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 진리가 불 앞에서도, 사자 앞에서도, 칼 앞에서도, 인민군 앞에서도, 일본 사람 앞에서도, 감옥 앞에서도 상관없이 “그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그 진리대로 산다 그말입니다.

듣고 읽고 난 다음에 그대로 실행을 하면, 읽고 듣고 그대로 실행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자신이 예수님화가 백분지 일이 되든지 천분지 일이 되든지 행한 것만치 예수님화되고, 성화되고, 된 것만치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뭐라 했습니까? 그 진리가 어떻게 합니까? 그 진리가 어떻게 합니까? 그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자유케. 그 진리가 불 앞에서도 그 진리대로 행합니다. 그 진리 자유를 꺾지 못해. 불 앞에서도, 총 앞에서도, 감옥 앞에서도, 사형 앞에서도, 온 전국민 앞에서도, 온 세계 교회가 다 달라들어도 꼼짝도 안 하고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듣고 읽어서 아는 것은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지 실행 못 하면 아무 가치 없습니다. 실행 못 하면 아무 가치 없소. 실행하는 데서 비로소 가치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실행하면 자신의 사람이 변화되고, 진리를 알고, 자기도 알고, 이러니까 하나님도 알고, 모든 사물을 바로 알아. 정상적으로 바로 알게 돼요. 이러니까, 자유해.

어데서든지 뭐 말씀을, ‘요 말씀대로 지킬라 하니까 이거 큰 문제다’ 그러니까 뭐이 와도 상관없어. 그 말씀대로 그대로 실행해요. 그 말씀대로 자유하지 그 말씀대로 어기거나 뭐 가감하거나 에누리하거나 하지 안해요.

이런 예수를 믿어야 되는데 이렇게 할라면은 이 문제는 어데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어서 지금 들어야 하는 그 문제가 문제입니까? 자,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지 못했으니까 읽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뭐 읽은 것도 안 행하는데 뭐 그게 무슨 문제라? 읽고 들어서 아니까, 읽고 듣고 알고 있으니까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알고 있으니까, 알고 있는데, 몰라서 문제입니까? 알아야 된다는 것이 문제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우리 구원이 어데서 딱 걸려 가지고 있습니까? 자, 우리가 듣고 읽어서 아는 그대로 실행하지 안하는 데에서 우리 구원은 딱 걸려 가지고 거게서 딱 중단돼 가지고 있는, 실행하지 안하는 데에서 우리 구원은 다 중단되고, 하나님의 축복은 중단되고,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건 중단되고,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있는 권능 얻는 이 권능은 다 중단되고, 우리의 승리는 다 중단되고, 면류관도 다 중단되고, 우리의 모든 영광과 존귀와 성화와 승리는 실행 안 하는 데에서 중단되어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지금 깨닫고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겁니다. 오늘 이거 고칩시다. 뭐 딴거 없어. 이거 고쳐야 됩니다.

그러면, 오후에는 하나만 가르칩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면 노아에 속한 사람이지 깨어 있는 사람은 멸망이 홀연히 오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든지 자기 죽음이든지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상관없어.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깨어 있는 사람은 죽음이 없어.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어요.

‘죽음이 없어? 아, 손 양원 목사님 같은 이도 죽었는데?’ 그건 죽은 게 아니라 혈과 육은 하늘나라 영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신령한 것으로 바꿔 입을라고 벗어놨어. 그거 죽은 게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변화받기 위해서 벗어 놓은 거야. 죽음이 없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안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죽는 게 아니라. 쭈글쭈글한 거 이거 벗어놔야 돼. 백 목사도 이거 벗어야 되지 이거 안 벗고 하늘나라 가면은, 지금도 뭐 떠벌떠벌 이리 쌓고 있는데 이거 가 가지고 만일 한 천 년이나 살면 막 쪼글쪼글해 녹아져 가지고 과연 송장될 터인데 이거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경에 있소 없소?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얻지 못하나니 썩을 것은 썩지 안할 것을 입지 못하겠고, 이러기 때문에 부득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기 위해서 벗어야 된다.” 하는 그 말씀이 성경에 있소 없소? 우리 ○목사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인제 오늘 시험친다. 어데 있습니까? 저 ○○이한테 배워. 봐. 인제 우리 ○목사님 저 배워. 선생님인 줄 알고. 그래야지.

그걸 알아야 되는 것이지 이래 자꾸 이래 가지고 안 돼. 그래. 우리는 죽는 게 아니야. 썩지 아니할 걸 입기 위해서 우리는 벗는 것입니다.

하나만 가르치는데, 하나 요것도 실행을 하면 여러분들에게 복이 되고 실행 안 하면 도로 정죄되고 맙니다.

자, 따라합시다.깨어 있으라!깨어 있으라!깨어 있으면 주님 재림도 상관없습니다.

깨어 있으면 오늘 죽음이 와도 상관없습니다. 깨어 있으면 도적 안 맞습니다.

깨어 있으면 주님 오시면 칭찬합니다. 깨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때 따라서 양식은 절로 나눠 주게 됩니다. 깨어 있는 그 생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양식 나눠 주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면 주님이 모든 소유를 깨어 있는 그 사람에게 나눠 줍니다. 그 사람에게 주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 했습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게 뭐입니까? 깨어 있는 거 이거는 한번만 가르쳐 줍니다. 깨어 있는 것 가르쳐 봤자 실행 안 하면 소용 없어. 깨어 있는 것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으니까 살았고 죽은 사람은 생명이 없으면 죽었고, 죽은 사람은 생명이 없다 그말이고 자는 사람은 생명은 있기는 있는데 생명 활동이 없다 하는 말입니다. 맞습니까? 자는 사람은 생명은 있어 코에서 솔솔 숨은 쉬는데, 생명은 있는데 생명 활동이 없다 말이오. 생명 활동이 없어. 눈도 이래 버뜩버뜩 하는데 생명 활동이 없으니까 눈도 아무것도 보이지 안하지, 손도 송장같이 이렇지, 숨만 있어. 생명만 붙어 있지 행동은 송장과 꼭 같습니다. 생명 없는 송장과 꼭 같소. 생명은 있기는 있는데 활동은 송장과 꼭 같은 사람 그 사람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자는 사람, 자는 사람.

또 깬 사람은, 깬 사람은 활동 없는 생명 있는 사람을 깬 사람이라고 합니까, 생명이 있는데 생명 활동이 없는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생명이 있는데 생명 활동 없는 사람을 뭐라고 말합니까? 자는 사람.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이 모든 전신 전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뭐라 합니까, 그 사람을?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녜, 그겁니다. 알겠습니까? 깨어 있는 사람은 생명의 활동이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자는 사람은 생명은 있는데 그 생명의 활동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서 자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 우리의 생명은 몇 가지가 우리의 생명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한번 더 들어 보십시오, 자꾸. 조게 말이지, 저 조그만한 조게 서이를 든다, 서이. 서이 들어. 백 점이라 맞았어. 서이 들고, 또 다섯 들고. 녜, 다섯도 맞고 서이도 맞습니다.

서이는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의 이 세 가지를 가리켜서 대속의 피라 이 하나로 보고, 영감과 진리 그러니까 셋이라. 서인데 피가 그것이, 피가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기 때문에 다섯입니다. 다섯 하면은 세부적으로 다 말해서 구비하고, 또 셋으로 말하면 그중에 피는 세 가지라고 해석을 덧붙여야 되고, 그러면 우리가, 우리 생명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우리 생명이 몇 가지입니까? 우리 생명은 다섯 가지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로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다섯 가지가 우리 생명.

사죄가 우리 생명이요, 칭의가 우리 생명이요, 화친이 우리 생명이요, 영감이 우리 생명이요, 진리가 우리 생명입니다. 그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죽어 버립니다.

하나라도 없으면 죽어 버려요. 사죄만 버려도 너이는, 너이가 있을 수 없어. 사죄 버리면 다 버린 것이오. 사죄 하나를 똑똑히 가졌다고 하면 다섯 다 가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다섯은 다섯이나 합하여 하나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생명, 영원히 죽지 안할 영생하는 생명, 늙지도 쇠해지지도 안하는 영생하는 생명, 전지 전능한 생명, 완전한 생명 이 생명은 몇 가지가 우리 생명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봅시다. 저 뒤에도, 양반같이 앉았지 말고. 양반같이 앉았지 말아요. 뒤에 뭐 잘났다고 뒤에 꼼뱅이로 와 가지고, 꼬랑댕이로 와 가지고, 좀 있으면 저 바깥에 나가서 다 멸망받을 터인데. 손 놔요, 이제.

뭐 교회 나와도 뒤에 나와 가지고 떡 앉은 것이 ‘나는 뭐인데’ 이래 가지고.

네가 그라면 너 멸망밖에 없어. 너는 지금 교회 나왔지마는 세상하고 가까와서 조금만 움직이면 세상에 떨어져.

이 붉은 용이 노발대발해 가지고 여인의 남은 자손들하고 싸울라고 지금 어데 가 섰습니까? 바다 모래 위에 섰어요. 그거 성경에 어데 있습니까? 요한계시 몇 장? 12장? 12장 몇 절이고? 12장 그만 끝절입니다. 끝절인데, 그래 “모래 위에 섰다” 바다 모래 위에 섰으니까, 남은 자손들로 더불어 싸울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으니까 그 싸울 대상인 여인의 자손들은 어데 있습니까? 바다에 있습니까? 바다 모래 위에 있습니까? 바다 해변가에 있어. 해변가에 있으니까 싸울라고 그리 찾아왔지. 알겠어요? 바다에 빠지지는 안했어도, 죄 가운데 빠지지는 안했지마는 근근히 근근히, 무슨 바람만 확 불면 바다에 확 들어가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오늘 예수를 근근히 믿으면서 오늘은 죄 안 짓고 그냥 뭐 주일 지킨다 하지만 조금 무슨 어려움만 있으면 다 주일날 싹 무너질 거야. 비가 와도 무너지고, 추석만 닥쳐도 무너지고, 아시안 게임에도 무너지고, 6 5같이 이 전쟁 일어났다 하면 다 무너지고 여기 몇 사람 없을 거라. 그까짓 게 무슨 예수 믿는 것이야? 여러분들이 다 그까짓 신자라. 알겠어요? ‘아이고 우리를 욕한다’ 뭐 그까짓 신자지 뭐이야? 똥신자지 그까짓 거, 죽은 신자지, 병신 신자지. 그 무슨 가치 있어? 가치 없어요.

앞으로 환난 오면은 다 그만 절절 매 가지고 귀신이 들어서 이라라 하면 이라고 저라라 하면 저라고 화냥이 모양으로, 창기 모양으로 정조 다 팔고, 그까짓 게 뭐,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 기본구원 얻어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 가서 무슨 낯빤대기 있어? 무슨 안면이 있어? 이러기 때문에 오늘도, 지나갔지마는 왜정말년에 신사참배에 절한 사람들은, 신사참배 절한 사람들은 큰소리를 못 합니다. 큰소리를 못 해요. 신사참배 이긴 사람들이 강한 말 하지요. 공산주의를 이긴 사람들이 강한 말 하지요. 거게 꺾어진 사람 큰소리 못 해요. 알겠습니까?

자,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예수 믿는 오늘에 준비를 해야 되지 준비 안 하면 오늘 오면 헛일인데 이 깨어 있는 이 사람이라야 되는데 깨어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건 어떤 게 깨어 있는 것이냐? 깨어 있는 것은 생명 있는 사람이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깨어 있는 사람이다. 자는 사람은 생명은 있는데 생명 활동은 없이 생명만 있는 사람이 자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자는 사람하고 꼭 같기는 같은데 생명이 없는 그거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보다 자는 사람이 낫고 자는 사람보다 깨어 있는 사람이 낫고, 그러면 깨어 있는 사람은 생명의 활동이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인데, 또 연습합시다.

우리의 생명이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학생들, 일학년 학생같이 자꾸 순종을 해요. 그래야 배워지지. 이라면 다른 데 저 딴데 거석하면 ‘아이구 서부교회 교인들은 등신들만 있고 다 무식한 자만 있으니까’, 우리 ○○○장로 됐는데 그때 언제 말하기를 ‘우리 서부교회는 모두 무식한 사람들이라서 목사님이 말하면 쭉쭉 다 따라가지만 이 ○○교회 같은 데는 안 그렇다’고. ○○교회보다 서부교회가 무식하지 않습니다.

이 손 들라 해 손 드니까 ‘아이구 저렇게 모두, 그뭐 모욕을 줘도 분수가 있지, 서부교회 가면 그 목사가 들어서, 꼭 뭐 머리가 허연 사람을 앉혀 놓고서, 장관들도 앉혀 놓고 박사들도 앉혀 놓고 주일학교 학생들 모양으로 그래 취급을 한다고, 아니꼽다.’고. 아니꼽거든 오지 말아라, 너는! 필요 없어! 뭐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하나님 앞에 네가 교만하면 어짤 거라? 손 들라면 들어야지. 얼마나 보배야? 저는 몰라.

자,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 영원히 불사하는 생명, 전지 전능한 생명, 그 생명이 몇 가지 생명인지 알아 봐. 손 안 들고 하는 데 알아 봐. 몰라요. 몰라, 가 물어봐. 또 여러분들이 물어보고 우쭐해 가지고 더 마귀 시험에 들지 말고. 몰라. 신학 박사라도 모르는 사람이 백의 아마 구십은 될 겁니다. 알겠습니까? 공연히 된 줄 알고 그렇게 벌로 날뛰면 안 돼요.

그러면 우리 생명이 다섯 가지라. 그러면 생명이 활동하는 활동이면은, 생명이 활동하는 활동이라. 생명이 활동하는 것이 깬 생활이라. 생명의 활동이 어떤 게 활동인가.

자, 하나씩 따져봅시다. 진리가 우리 생명이니까, 그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깬 거라 말이요? 한번 대답해 봐. ○장로님 아들 저 ○ 뭐꼬? ○○이가? 진리대로 행동하는 거야. 진리대로 행동하는 게 깬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영감대로 행동하는 것이 깬 겁니다. 알겠습니까? 사죄 공로대로 행동하는 것이 깬 생활입니다. 사죄 공로. 사죄 공로는 뭐인데? 나는 사죄 받았어. 나는 죄 없어. 죄 없는 행동 하는 게 그게 깬 생활입니다. 칭의 받았으니까, 나는 칭의 받았으니 자기는 의의 행동 하는 그게 깬 생활입니다.

이제 남은 게 몇 가지 남았습니까? 몇 가지 남았어? 한 가지 남았어, 한 가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된 거. 하나님 모시고. 생명을 뺏겨도 주님 내놓지 안해요. 주님 모시고 주님하고 같이 사는 것, 주님 모시고 사는 것, 주님 배척하지 안하고 사는 것, 요것이 깬 생활입니다. 요것만 하면 모든 것 다 돼요. 요것만 하면 다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낫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내나 다섯 가지라. 알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 하면 몇 가지 고쳐요? 일곱 가지 고쳐요. 이렇게 보배를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가르쳐 줘도 행하지 안하면 소용 없어. 행해 보면 ‘아멘, 아멘.’ 행해본 사람은 막 놀래서 자지러질 터인데, ‘옳다, 이제는 알았다, 이제는 사는 길 알았다.’ 한번 맛을 보면은 떨어지지 안하고 이거 외에는 딴거 취미가 없어.

새생명으로 사는 거 외에는 가치가 없고, 새생명으로 사는 거 외에는 재미가 없고, 새생명으로 사는 거 외에는 기쁨이 없고, 새생명으로 사는 거 외에는 더 큰 수입이 없어. 새생명으로 살아본 자는 이거 두고 지위 찾고 이거 두고 권세 찾지 안해요. 요 새생명으로 살면 돈도 오고 뭐이고 다 와요.

자, 영적 성공의 표시판, 영적 성공의 표시판은 무엇입니까? 영적 성공의 표시판은 무슨 성공입니까? 영적 성공의 표시판은 뭐라요? 크게 한번 말해 봐, 나 안 들려.

영적 성공의 표시판은 뭐이지요? 여기 모두 벙어리들 앉았어. 한번 말해 봐요.

한번 이제 한목 큰 소리로 한번 해요. 영적 성공, 영적 실패, 잘됐다 못됐다 하는 그게 그대로 정확하게 표시되는 그 표시판, 영적 성공의 표시판 영적 실패의 표시판, 그러면 영적 성패의 표시판은 무엇입니까? 자, 같이. 육의 성공? 육의 성공? 영적 성패의 표시판은 뭐입니까? 육의 성패. 틀립니까? 육의 성패.

따라합시다.영적 성패의 표시판은!육의 성패!영적 성공의 표시판은!육의 성공!영적 실패의 표시판은!육의 실패! 핑계하지 말아요, 변명하지 말아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안 그렇다’ 네가 교만해서 스스로 망한다. 내 육의 모든 것이 실패됐으면 영의 것이 실패된 것이다. 이제 그걸 보고서 육의 것이 성공이 되도록 자꾸 영의 것을 바로 해 나가면은 육의 것이 차차 차차 실패가 고쳐진다.

속에 시계가 이게 잘됐는지 안됐는지 밖에 침을 보고서 침이, 속에 단단히 고쳐 놨는데 돌리니까 침이 안 돌아갑니다. 뜯어 가지고 새로 고쳐. 또 잘 고쳐놨는데 침이 보니까 한 시간에 두 시간 돌아가 버립니다. 또 잘못 고쳐 또 뜯어 가지고 새로 고쳐요. 고쳤는데 딱 보니까 시간이 정확하게 딱 들어맞습니다. 정확하게 딱 들어맞으면 속에 내부가 잘됐어요 안됐어요? 잘됐어요. 그와 같애.

육의 모든 것은 영의 표시판인 것을 단단히 알고, 육의 뭣이 망한 걸 보고 ‘내가 영에 잘못됐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잘못됐다.’ 이 뭣이 잘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돼서 잘됐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잘된 것이 화덩어리가 왔나?’ 요거 요걸로 구별하면 다 됩니다.

자, 오늘 오후에는 이제 들은 대로 우리는 실행하기로.

따라합시다.아는 대로! 단행할 것! 아는 대로! 단행할 것! 아는 대로! 단행할 것! 단행은 만능이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굳게 잡아요. 놓지 말아요. 생명을 줘도 놓지 말아요. 그게 생명보다 귀해요.

생명보다 뭐 몇천 배 몇억만 배 귀해요. 무한히 귀해요.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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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701 깨어 살려면/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00204월새 선지자 2015.10.27
» 깨어 사는 생활/ 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861005주후 선지자 2015.10.27
699 깨어 기도하라/ 마태복음 24장 42절-47절/ 861006월새 선지자 2015.10.27
698 깨어 근신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881126토새 선지자 2015.10.27
697 깨달음의 중요성/ 사도행전 1장 4절-8절/ 860620금새 선지자 2015.10.27
696 깨달음과 실행/ 요한복음 15장 1절-4절, 9절-12절/ 830521토새 선지자 2015.10.27
695 깨달음과 발표력/ 골로새서 3장 1절-11절/ 870213금새 선지자 2015.10.27
694 깨달음-결실/ 마태복음 13장 3절-4절, 18절-19절/ 840406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693 깨달음-결실/ 히브리서 10장 26절-31절/ 840310토새 선지자 2015.10.27
692 깨달음 다섯 가지/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60506화후집회 선지자 2015.10.27
691 깨달은 대로 설교할 것/ 고린도전서 15장 33절-34절/ 881002주새 선지자 2015.10.27
690 깨끗해지는 것/ 요한복음 15장 1절-8절/ 880916금새 선지자 2015.10.27
689 깨끗한 것/ 요한일서 3장 1절-10절/ 850412금새 선지자 2015.10.27
688 깨끗케 하는 현실/ 요한 1서 3장 1절-3절/ 840820월새 선지자 2015.10.27
687 깨끗은 본질과 본성대로 된 것/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10410금새 선지자 2015.10.27
686 깨끗/ 야고보서 2장 10절-13절/ 890127금새 선지자 2015.10.27
685 깨끗/ 요한복음 15장 1절-4절/ 791116금새 선지자 2015.10.27
684 깨끗/ 요한일서 3장 1절-7절/ 820706화새 선지자 2015.10.27
683 길이 참아라/ 야고보서 5장 7절-12절/ 830724주후 선지자 2015.10.27
682 길과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315화새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