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선지자선교회 1980년 3월 24일 월새

 

본문: 눅 23: 39- 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예수님의 좌우 편에 강도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오른 편에도 강도가 한 사람이 함께 십자가 사형을  같이 받고 있고 왼편에도 강도가 한 사람이 십자가 사형을 같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네가 인간을  구원하러 온 자가 아니냐? 왜 그렇게 큰 소리 하더니마는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있느냐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이 십자가 형틀에서 구원하여라.'  하는 그런 조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구주라 메시아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시고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의 모든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그 바른 말씀에 달게 응하여 회개치 안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르니까 시기했고,  이렇게 해서 그들이 저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권위가 떨어지고 지위가  흔들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인정이 희미해지고 이러니까 저 예수를 저를 어쨌든지  죽여 없애 버려야 되겠다 하는 것이 그들에게 단결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무리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면 저들은 다  환영하고 기뻐하고 예수님을 인정만 하면 어느 모로 해서라도 그것을 설복을  시켜서 주님을 배반하도록 하고 또 돌이키지 안 하면 어느 모로라도 사형을 시킬  만치 그만치 예수님과 예수님의 속한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을 이 강도는  잘 압니다.

 그러기에 이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지마는 그때라도 내려놓기만 놓으면  고생은 얼마 하지마는 살아날 수 있는 그런 삶의 희망이 있는 때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입으면 그들에게 잘 보이면 '이 강도는 우리 편이니까 이 강도는  여기에서 십자가의 형틀에서 내려놓자' 이렇게 의논이 되면 그때에 그 강도가 그  형틀에서 놓이고 놓이면 저가 살아 날 그런 소망성이 있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 욕하고 대적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병정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아 동정을  입어서 생명을 구원할까 해서 이 강도가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한 편 강도가 그 말을 듣고 대항해서 하는 말이 예수님은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계시는데 예수님을 대변해서 말하기를 '너는 지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범하여 십자가의 사형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네가 여기서 이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네가 악을 행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지은 죄의 대가로  이렇게 사형 받는 것이 당연한 보응이지마는 이 예수님은 하신 일이 주에 잘못된  일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나라로 임하실 때에  무궁세계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임하실 때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 임하실 때에 만 왕의 왕으로 등장하실 때에  그때에 저를 기억해 주옵소서.' 하는 그 구원을 간청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즉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오늘 세상을 떠나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을 하셔서 그 시에  구원된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그 목적이 어디 있으며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이 두 강도는 전 인류를 표시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전  인류는 다 살인자요 강도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것을 강도 했고 인간의 것을 강도 했고 또 참  자기의 것도 강도한 자기가 자기를 자살케 하는 살해케 하는 이런 살인자요  강도라는 것을 여기에 보입니다. 전 인류는 다 이 십자가의 사형을 받은 죄수와  같은 다 강도들입니다. 또 이 강도는 벌써 붙들려서 십자가의 사형 형틀에 달려  있으니까 몇 시간 안 되면 저는 이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 인류는 살인강도와 같은 이 행악자인 것만이 아니고 벌써  하나님의 법에 정죄 돼 가지고 사형을 받아서 영은 완전히 죽었고 이 심신은  죽어 가는 죽어 가는 중에 있으니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이 심신은 완전히  죽어서 사망세계로 옮겨져 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여기에 보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강도와 이 강도로서 보여진 이 강도로서 보여 준 이 강도  같은 인간들이요 또 하나님의 법에 정죄 받아 이미 사형틀에 달려서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니 한 시간 후에 생명이 끝날지 한 달 후에 끝날지 몇 해 후에  끝날지 이제 그 시간의 장단은 말씀하지 안 했으나 전체가 다 이 사형 틀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 하는 것을 여기에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종류의 강도 속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을 박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사형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두 종류로  나눠진다. 두 종류로 나누어진 것이 표시된다.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양편에 있어서 다 같은 강도지마는 예수님이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해서 이 강도가 좌우편으로 갈라진 것처럼  인간은 두 쪽으로 갈라진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양과 염소를 나눠서 양은 오른편으로 염소는 왼편으로  이렇게 나누신 거와 같이 이렇게 인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둘로 갈라지게 된다  하는 것을 가르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는 그 강도와 꼭 같은 우리  입장이요 몰라 그렇게 우리가 꼭 같아 사형틀에 달려서 죽어가고 있는  우리들인데 여기에서 그 강도의 마음과 말과 행동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이미 사형 받아 죽어가고 있으면서 사형 받아 죽어가고 있으면서  거기에서라도 마지막 죽는 그 시간까지 자기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들의  도움을 입으려고 하는 이것이 인생들이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제사장들  바리새 교인들 로마병정들 로마 법칙들 이것이 들어서 분명히 저희를 십자가  사형에 달았는데 이것들에게 달려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움을 입을까 또 어떻게  구원을 받을까 해서 아첨하는 그 연약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강도와 같이  악령과 세상과 죄악의 이 모든 불법으로 인해서 멸망하게 된 인생이 마지막 세상  끝나는 그 시간까지 이것들로 대적을 삼지 못하고 이것들의 구원을 바래보는  이런 어리석음이 인생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욕심이 자기를 죽인 것인데 애도 자기 욕심을 의지해서 자기 욕심대로  하면 자기가 구원될 줄로 자기주장이라는 자율이 들어서 자기를 멸망을 시키는데  그래도 이 자율을 의지하고 자기 욕심을 의지하고 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자기를 죽인 것인데 이런 것들의 도움을 입어 구원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땅에 있는 것들을 의지하고 바래보고 이것을 마련하고 이것을 많게 하고 강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마치 십자가에 달인 강도가 저희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것을  끝까지 제가 의지하고 또 제가 제 주장대로 해 가지고 죽은 게 분명한 데도 제  주장을 끝까지 지금 의지해서 하다가 멸망당한다 하는 것을 여기에 보입니다.

 한 편 강도는 이렇게 사형을 받고 있는 것이 저희들의 행위에 당연하다는 사형  받고 있는 그 원인을 알았고 또 원인이 그 로마법에 정죄 받아 가지고서 사형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기의 그 과오를 자기의 그 죄가를 알았고 그 죄가로  말미암아 사형을 받는 것이 지당한 줄로 알았고 거기서 이런 죗값으로 죽는 것이  당연하여 멸망하는 이 멸망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이 예수님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에게 자기의 이 구원을 부탁을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구원을  들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강도는 자기가 그 사형틀에 달려 가지고 예수님을 훼방하는 그  사람을 대적해서 잘못을 지적해 주고 예수님을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 하는  그 증거가 불과 몇 마디 안 했고 또 불과 몇 시간 안 했습니다.

 고것은 똑똑히 기록해 있지 안 했기 때문에 여섯 시간이면 못 박힌 이후에  운명이 완전히 되는 것인데 혹은 두서너 시간 지나고 난 다음인지 혹은 너 댓  시간 지나고 난 다음인지 너 댓 시간 지나고 난 다음 같으면 한 시간 그 말  하다가 이제 세상을 떴을 것이고 그렇지 안 하면 한두 시간이나 다른 순서의  순서를 보면 마지막 바로 운명 그 직전 단계라고 그렇게 그 시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짧은 시간 간략한 이미 죽는 이것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행악자의, 예수님의 훼방을 대항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는 요것으로서 그는  영원한 지옥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의 영원한 지옥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의  영광의 나라 낙원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얼마나 작은 노력 얼마나 작은 노력 작은 시간 들여 가지고서 인생의 영원  멸망의 문제를 해결 짓고 영원구원을 얻게 된 요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이 강도와 같이 자기가 여생을 주를 위해서 산다고 해도 아주  극히 작은 양을 가지고 주의 편에 서서 주를 위하요. 주의 구원을 바래보는 아주  극히 미약하고 얼마 되지 안 하는 그 양을 가지고 주의 편으로서 주를 위하여  주를 증거하고 주의 구원을 바라볼 때에 영원한 문제가 해결 됐습니다. 한  시간으로서 영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혹은 두 시간으로서 인생의 영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얼마나 폭리를 봤습니까? 얼마나 작은 것으로서 큰 것을  얻었습니까? 이것이 막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생동안을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증거하고 주의 편에서 주의  대적인 악령과 죄악을 대적해 싸우면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주의 편에서 주를 증거하고 주의 대적을 대적하면서 하는 일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것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무궁세계의 그 영광과 상을 얻는 것을  비교하면 족히 비교 할 수가 없는 이것을 우리에게 하나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 할 수가 없다. 인생이 이미 사는 것이 다 사형 받아 가지고 있으니까 이미  죽을 것 이미 없어질 것, 이미 절단 날 것, 그것 가지고 이미 절단 거의 다  나버렸고, 얼마 남지 안한 그것 가지고 절단 날것인데 절단 나면서 주를 위하고  주를 나타내고 주의 대적을 주의 편에 서서 대적하는 이 지극히 작은 분량에  주위하고, 주의 편에서고 주를 증거 하는 지극히 작은 이 분량으로서 이 강도가  영원한 지옥을 면하고 영광의 나라를 얻은 지극히 작은 양 가지고서 크게 효력  있게 쓴 이미 죽을 것 이미 없어지는 것인데 그것 가지고 이렇게 바로 깨닫고  바로 쓴 지극히 작은 양을 가지고 인생에 영원무궁에 해결을 지운 이 강도와 꼭  같은,  이미 죽어지고 이미 없어질 자기의 저주받고 사망아래에 있는 이거 남은 얼마  되지 안 한 이 분량을 가지고 주를 나타내고 주를 대적하는 것을 대적하고 주의  편에 서서 살면 이것이 장도가 지극히 작은 양으로 지극히 큰 것을 얻은 거와  같이 지극히 작은 이 신앙행위로서 지극히 큰 무궁에 것을 얻게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에 달린 이 죄수가 이미 주를 위해서 증거 하는 그것이 어떤  재료가지고 증거 했는가? 이미 없어질 것입니다. 이미 사형 받았으니까. 몇 시간  안 남은 그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주를 위해서 살아서 그 효력을 크게  얻었습니다.

 이 강도는 한편 강도는 이미 얼마 남지 아니하고 있는 것을 저를 죽인 그  대적들에게 구원을 부탁하고 또 죽을 수 있는 원인을 제가 만들어 난 그것인데  마지막 죽음에서도 자기의 멸망의 원인을 만든 마련한 자기라는 그놈한테 자기를  부탁하고 의지하고 그것대로 나가는 이 어리석음을 우리 인생들에게 깨닫게 하려  해서 이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강도는 그가 주를 증거 한 그 증거가 있었고 주의 편에선 그것이  있었고 한 그 중량이 무거운가? 주님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주님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한 그것이 중량이 큰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소망하는 그 중량이 큰가? 이것을 우리가  분별해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강도에 대해서 주님이 크게 그 값을 치러  주셨는데 그 강도에 대해서 주님이 큰 것을 그 대가로 주셨는데 큰 대우를  했는데 강도에 행동에 대해서 주님께서 큰 대우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오늘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참 측량할 수 없는 무한의  대우를 해주셨는데 무한의 대우를 받은 이 대우받을 만한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그가 몇 마디 말한 그 그것이 양이 큰가?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이 구주라는 것을 인정한 그 양이 큰가? 나라로 임하실 때에 예수님의  나라를 인정하고 그 바래보는 것과 예수님의 나라를 인정하고 바라본 예수님과  예수님의 나라를 바라본 이것으로서 그의 강도에게 낙원의 구원을 주신 것이고  그가 예수님을 증거 할 만한 그것은 낙원에 가서 상급으로 되어 질 것이요 이  지극히 큰 구원은 이 두 가지 때문에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주를 향한 이 모든 신앙행위에 있어서  어디에 그 중량이 많이 있는가? 주님은 자기를 능히 구원할 수 있는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자기의 구주인 것을 인정하는 것 내세에도 그러하고 금생에도  하나님의 대우 하나님의 그 은총은 주님은 능히 나를 여기서 구원할 수 있는  구주시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그 사건에서 구원할 수 있는 그 현실에서  구원할 수 있는 영원에서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할 수 있는  어데서든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주님이시오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라는 것을 이것을 인정하고 소망하는 이것이 제일 큽니다. 이것이 제일  큽니다.

 또 둘째로 큰 것은 예수님의 그 무궁한 나라가 영원히 서서 있을 무궁한 세계를  소망하는 이 소망이 둘째로 큽니다. 그게 둘째로 크고 이 인정하고 바라보는  이거 두 가지가 제일 크고 셋째로 자기가 어떤 성자 성녀의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셋째로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강도에 그 형편을 생각해서 우리는 아끼지 않게 아깝지  않게 똑똑히 알고 주께 바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한편 강도와 같이 이렇게  어리석고 이렇게 간사하고 이렇게 아첨하는 속아도 또 속고 멸망을 받고도  모르는 자기라는 것이 원수라는 것과 자기를 사형한 거기서 또 뭐 들어붙어  가지고 얻으려는 칙칙한 못난 자 이런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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