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회-1계명-하나님의 속성

 

1987. 3. 25. 새벽 <수>

 

본문:출애굽기 20장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양성원 학생들 저 산으로 기도하러 갔다 하더니 갔다 왔습니까? 몇시에 돌아왔습니까? 세시 반에? 잘못 돌아왔지, 그라면. 세시 반에 돌아올 게 아니고 여게 네시 반 되거든 딱 도착하도록 그래 조절해 가지고 해야 되지. 세시 반에 돌아오면 미혹되기 쉬워. 세시 반에 돌아오면 네시 반이면 한 시간 남았거든.

남았으면 와 가지고 집에 가서 눕기 쉽다 그 말이오. 누으면 그만 실패야. 세시 반에 돌아올 게 아니라 네시 반에 여기 딱 도착하면 그만 그대로 예배 드려서 은혜받으면 낫지. 내가 더러 안 보이는 사람 있는 것 같은데.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계명이 제 일계명인데 아주 뜻이 어려운 계명입니다, 그래 쉽게 그렇게 볼 게 아니고. 대개 보면 성경에 ‘너희들이라’ `너희라' 이랬는데 `우리라' 이렇게 복수를 많이 썼었는데 여게는 단수입니다.

“너는” 개인 아닌 전체에 대한 일계명인데, 일계명은 기독자에게 대해서만 일계명이 아니고 모든 불택자에게 대해서도 일계명이오. 또 모든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전피조물들에게 대한 일계명입니다.

이 일계명으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그 전부를 구원하고 정죄하는 것을 여게서 판정합니다. 구원하고 정죄하는 것을 여게서 판정합니다. 이 계명에 합당한 자는 다 구원이 되고 이 계명에 불합당한 자는 전부 정죄가 됩니다. 그것이 혹 이해가 됩니까, 들을 때에? 그러면 이 계명은 모든 존재에게 다 해당되는 이 계명인데, 그러면 전체에 해당되는 계명인데 하필 여게는 “너는” 요래 단수 이 개인을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게는 단체가 소용 없고 개별개별로 이 계명에 범해지면 다 멸망이고 이 계명에 통일이 돼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게 복수를 쓰지 안하고 단수를 쓴 이거는 일계명을 범하고 일계명에 합당한 것은 전부 개별적이라 하는 것을 특별히 나타냅니다. 개별적이라, 개인적이요 개별적이라.

개인도 그 영은 다 여게 합당하도록 처음에 구속을 하시고 중생됐지마는 그것은 영은 하나님과 이 피소유격인 이거 심신의 범죄를 주격 위치의 심판에서 정죄받아서 영이 죽었는데 영이 죽었다고 해 가지고 영이 무슨 범죄를 하거나 마귀의 것이 되거나 그런 것 아닙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인데, 하나님의 모형인데 하나님과, 극히 작은 범죄, 자체 범죄가 아니고 소유 중에 이 소유가 하나 범죄해 가지고, 소유가 범죄해 가지고 범죄한 그 소유 범죄의 처형으로 정죄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끊겨졌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겨져서 영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뿐이지 그 자체가 뭐 변질이 됐다든지 또 어떤 것에게 속했다든지 그런 것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짐으로 죽었던 그 영이 다시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연결이 됨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 처음에도 영이 실수해 가지고 하나님과 끊겨지는 게 아니고 영의 소유인 심신이 범죄해 가지고 그 주격 책임으로서 끊어졌기 때문에 그 죄를 다 예수님께서 담당하심으로써 이 영은 하나님과 재연결이 됐습니다. 재연결이 됨으로서 이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연결될 때에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대속이 됐고 그 영감과 진리로 연결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영은 정죄받지 안하고 이 일계명을 완전 통과한 것으로 이렇게 영은 존재하지마는 우리의 심신은 영은 통과됐는데 심신은 하나도 통과 못 하는 자 있습니다.

형체는 그것은 아무런, 형체라 하는 그거는 아무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한 물질이기 때문에 아무 작용을 못 하는 것이고 다만 그 안에 있는 기능,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그것이 하나님과 배치돼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제 이 심판을 받고 또 심판을 통과하고 이렇게 되는 것인데, 공적 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통과해서 법적 심판은 통과했지마는 통과한 것이 그 부분적으로 현실 현실을 만나는데 만나는 그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을 수 있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예복을 입은 자는 다 용납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다 쫓겨났다” 하는 그렇게 예복으로 말하기도 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하는 그 흰옷을 말한 것도 그것도 예수님의 대속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대속을 성경에 이리 저리 우리에게 알려 가지고 그 효력낸 것을 많이 말했는데, 엘리야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 겉옷을 말아 가지고, 말아서 물을 치니까 요단강 물이 갈라졌습니다. 또 엘리사도 뒤에 엘리야가 두고 간 옷을 받아 가지고 그 겉옷을 가지고 다시 뚤뚤 말아 가지고 뭉쳐 가지고 요단강 물을 이렇게 치니까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그것도 다 예수님의 이 대속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의 상징인데 예수님의 대속한 그 대속으로써 사망이 깨어졌고 또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그 겉옷을 말아 가지고 요단강물을 치니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면 이거 다 예수님의 대속을 말한 것인데 예수님의 대속을 똘똘 뭉쳐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똘똘 뭉쳐서 이 대속을 믿을 때에 사망은 완전히 깨져버리고 다 박살이 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 대속을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래서 “너는”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도 영은 이 대속을 입어서 구원을 받지마는 이 심신은 이 대속을 입지 못할 수가 있고 일계명을 통과 못 할 수도 있고 또 심신 가운데서도 만분지 일은, 만분지 일의 심신 기능을 일계명을 지켜서 통과할 수 있고 만의 구천구백구십구는 일계명을 범해서 여게서 정죄받아 가지고 멸할 수 있는 요 개체, 개체의 요 개별성을 말한 것을 여게서 좀 강하게 좀 알아야 됩니다.

“너는” “너는” 이것을 그냥 예사로 이렇게 보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또 여게도 하나님이 일대 일로 직접 대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그 수많은 지체가 있는데 그 지체 중에도 “한 지체를 뽑고 온 지체가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낫다. 한 지체를 끊고 온 전체가 지옥에 던지워지지 않는 것이 낫다.” 이렇게 개체 개체의 심판을 말합니다.

“너는 나 외에” “나 외에” 그러면 하나님과 그 개인과의 상대하고, 개인과의 상대할 뿐 아니라 또 하나님과 개인의 영과 상대하고, 영이 통과했다고 해 가지고 다가 되는 게 아니고 영이 통과해도 그 심신의 기능 개별개별이 하나님과 직접 관계맺어 가지고 여게서 통과되는 것도 있고 통과 안 되는 것도 있다.

요것을 좀 알기 어렵고 자꾸 이라면 뭐 세상에 나가면 아마 이 설교록이 나가면은 많은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있으나 저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히 증거합니다.

그래서 우리 총공회로 나가는 이 교회를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걸 독립교회라, 독립교회라 하는 것은 뭣을 전제로 두고 말하는 것인고 하니 불의한 교권들이, 불의한 교권들이 그 교권 통치하에, 교권 치하에 거게 가입되지 안하면은 모든 것을 다 정죄해서 그는 멸망을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교회가 천주교회로 자꾸 타락해 나가면서 천주교에 여게 가입되지 안하면 구원이 없다, 천주교에만 구원이 있다 이래 가지고 이 구원을 단체 구원으로 이래 봐 가지고 그 단체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주장을 가지고 그 교회를 점점 타락시켰습니다.

이래서 그것을 반대하느라고 우리는 거게 가담하지 안하고 우리는 독립을, 독립으로 우리는 나간다 이래 가지고 독립교회, ○목사님 미국에 독립교회가 많이 있습니까? 우리를 독립교회인 줄 알고, 우리를 독립교회인 줄 알고 미국에 독립교회의 그 단체에서 이 동남아에 순회를 책임진 그때 그 선교사가 와 가지고 ‘독립교회로 말하면 한국에서는 부산에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그분이 독립교회의 제일 처음에 그 주도자니까 그리 가면 알 수가 있다’ 해서 소개를 받아 가지고 저한테 왔읍디다.

와 가지고 얘기하는 가운데에 그분이 여러가지로 도와 줄라고도 하고 손을 잡을라고 많이 하는데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라, 거게는 독립교회라 하는 것은 단체에 너무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그를 반대하는 것으로서 독립이라는 그런 표명을 가졌고 또 그 속에는 너무 불의한 교권이 강제로 이래 하기 때문에 신앙에 자유성, 이 자유성을 그들이 원해 가지고 독립교회로 그렇게 돼 가지고 나가는 교회입니다. 저는 대략 그전에 알기는 알았지마는 그분을 만나 가지고 얘기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똑똑히 밝혀서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게 아니고,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고 우리는 개교회입니다. 지금 우리도 우리를 독립교회로 자꾸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고 우리는 개교회입니다.

개교회라는 그 뜻은 뭐이냐? 우리가 교회가 단체 해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에게 상대하는 거, 이 옆으로 횡적으로는, 옆으로는 모든 교회가 통일되어서 역사에 교회나 이 모든 세계 교회가 다 하나다, 단일교회다, 단일교회다 하는 것을 횡적으로는 단일교회지마는 바로 종적으로는 하나님대 우리대 직접 개별개별로 상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교회다.

그러기 때문에 뭐 다른 교회가 다 그래 간다고 따라가는 게 아니고 또 그 교회 때문에 그래 안 가면 안 되는 게 아니고 자기 깨달은 대로 하나님대 자기대, 또 하나님대 자기 교회대 이렇게 교회대 하나님대, 개인대 하나님대로서 이렇게 나간다 하는 그것을 그때 그분에게 여러모로써 증거를 했습니다. 했는데, 그분들이 가는 것은 우리하고 조금 다르고 조금 넓고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면서 둘이 대조해 볼 때, 대조할 때 우리는 이래 가는데 거기는 어째 가느냐? 또 거기는 그런데 우리는 이래 간다. 이래 가지고 그분이 그때 여기 와서 우리도 참 이거 옳다고 이러면서 긍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라고 그분이 여기 서부교회 왔다가 가고 또 서울 가서도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그 교회를 방문하고 설교도 하고 그래 갔었습니다.

갔는데, 우리는 횡이라 말은 옆으로는 모든 교회들이 다 한 교회고, 한 교회고 하나님과 우리와 대하는 직접 하나님 대하는 건 바로 개별적으로 이래 대하고 있다 이래서 개교회라 그렇게 하는 뜻으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이 사람도 단수로 개체를 말하고 하나님도 또 당신이 개별적으로 이 피조물을 상대하는 걸 가리켜서 ‘나’ 요렇게, `너 나' 하는 요게 대해서 많이 생각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나 외에는” ‘내 앞에는’ 그래도 또 해 놨는데 `내 앞에라' 하는 것보다 ‘나 외에가’ 더 옳습니다, “나 외에는” `내 앞에는' 아니고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다른 신들을’ 하는 것은 `다른 하나님들을' 그러면 하나님이라고 조짜배기 하나님이 가짜 하나님이 너무 많다 그 말이오.

“하나님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하나님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들을 있게 말지니라’ 하는 이 하나님들에 대해서는 뭣을 전제로 하고 있는가? 그거는 첫째가 영원 자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에 제일 첫째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오.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또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또 불변하신 하나님이요, 또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요, 이제 그래 가지고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을 예정하신 하나님이요, 또 창조하신 하나님이라, 모든 것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이라, 또 모든 것에 대해서 개별개별에 대해서 다 주권을 가지신 주권자 하나님이시라, 또 만주의 주시라, 또 만왕의 왕이시라 하는 것은 통치면을 말해서 만왕의 왕이시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이러니까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겨졌고 또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이런데 이분은 이 한 분뿐입니다. 이 한 분뿐인데, 이 한 분뿐이신데 이 한 분을 이분으로서 상대하지 안하고 모든 것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그거 어두워서 모르니까, 예를 들어서 불신자들 가운데는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집집마다 조상 단지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조상 단지가 있어요.

자기 조상 자기 선조 그라면 아버지 위에 할아버지, 할아버지 위에 또 증조, 증조 위에 고조, 고조 위에 또 오대조 육대조 칠대조 자꾸 자꾸 자꾸 이렇게 올라가 가지고 거게서부터 저 올라가 가지고 논리적으로는 이데아주의라고 그 위에 위에 위에 해 가지고 최후에 위 그 계통을 잡아 가지고 그래 사람들이 섬깁니다.

철학에는 이데아주의라는 그 철학이 있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네들은 하나님을 말하는데 이 모두 이라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고 이래 가지고 거기까지 올라가지도 안하고, 인제 철학에서는 자꾸 철학은 궁구하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그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위에 최후에 위에 위에 더 위가 없는 그 자리를 섬긴다 그래 가지고 철학에서는 이데아주의라는 그 주의가 있습니다.

그래 또 인제 이 모든 물을 섬기는 것도, 그거 물을 섬기는 것은 물에 언뜻 ‘그 주권자가 물에 있다, 물을 주권하는 자가 있다. 그분이 세력이 있다. 산을 주권하는 자가 있다, 또 이 하늘에 별이 있다, 저 별보다도 달이 크기 때문에 달을 섬기자, 달보다도 해가 크기 때문에 해를 섬기자.’ 이래 가지고 자꾸, 그게 모두 다 하기는 이 미신이나 종교나 그 사촌간입니다. 미신이나 이 종교 유사 단체나 사촌간이오. 그러니까 미신도 자기 이상의 어떤 세력 있는 것을 찾는 것이오. 자기 이상의 어떤 세력 있는 자를 찾아 가지고 붙들라고 하는 그것이 미신이오. 모든 종교들도 자기 이상의 세력가를 찾아 가지고 그의 세력을 힘입어서 그의 도움을 받을라고 하는 것이 모든 종교들입니다.

그러니까, 요것도 잘 알아야 돼요. 철학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철학이냐? 철학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 완전이 있다, 자기 안에 완전이 있으니까 그 완전을 찾을라고 하는 그것이 철학이고, 또 종교라 하는 것은 자기 밖에 완전이 있으니까 완전을 찾아야 된다 하는 그것이 이종교들입니다. 미신이나 이종교는 다 같은 것입니다. 이래서 철학이나 종교나 조금 찾는 방편이 다르지 같습니다. 요것만 여러분들이 딱 잡아 놓으면은 뭐 철학 아무리 한다, 뭐 철학 서적이 태산같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발 아래 자끈 밟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이 자꾸 찾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자꾸 자기 안에 찾아 가지면 자기 안에 완전이 있다 하는 것이 철학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불교라 하는 것은 실은 그것이 종교라는 것보다도 그게 철학입니다. 철학인데 그게 그만 세력을 많이 가지니까 종교같이 이래 버리고 말고 그것이 타락해 가지고 지금 그것이 이거 종교가 돼 가지고 있지 그 안에 완전이 있다는 그걸 자꾸 찾아 들어가는 것이고 종교라 하는 거는 자기 밖에 뭐 완전이 있는 것을 자꾸 찾아서 가는 것, 그러면 이종교나 철학이나 미신이나 그런 것은 다 자기에게서 시발됩니다.

자기에게서 시발돼 가지고 거게서 출발해 가지고 자꾸 찾아서 올라가고 옆으로 내려가고 깊이 들어가고 하는 이것이 철학이요 이종교요 모든 미신들입니다.

그 미신이라 하는 그런 거는 그만 중간에 가다가도 찾지도 못하고 그 위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저 무지해 놓으니까 간단하게 엄컴하면 ‘여게 뭐 권리 있는 자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이래서 돌아다니니까 ‘내가 어데다가 공을 들여 볼꼬? 여기 큰 바위가 있으니까 여게 아마 뭐이 붙어 있을 것 같다. 여기 공을 들이자.’ 또 돌아다니다가 여게 큰 나무가 있으니까 이거 수백 년 된 나무, 나무도 우리 한국에도 한 육칠백 년 된 나무는 있습니다. 수명 많은 것이 대개 머래나무가 제일 수명이 긴데 저도 그러니까 오백 년 된 나무까지는 봤습니다. 오백오십 년 하는데 그거 똑똑히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족보를 해 놨는데. 그거 ‘이거는 오백 년 됐으니까 이 나무가 오래 됐으니 여게 뭐이 붙어 있겠다’ 해 가지고 섬기는 일 한다 말이오.

물도 볼 때 이상한 물 보면 ‘여게 뭐 있겠다’ 해 가지고 섬기는 거 그런 것은 다 미신이고, 이제 그것이 좀 지성적으로 발달이 됐을 때에 그걸 가리켜서 종교 단체다, 종교 유사 단체, 모든 종교의 종류들 그런 모든 종교들 유사 단체들 또 그 모든 그런 것이 하나의 사상들, 사상이 자꾸 인제 이래 거석해 가지고 나는 철학들, 사상 그것도 내나 자기 찾는 것이라, 자기 속에 있는 거, 이거 우리 속에 인간 속에는 아무것이 속에는 이게 있다 내 속에는 이게 있다 모두 다 속에 있는 그걸 주 모아 가지고 발표해 가지고 사상을 만드는 것이고 또 이것들을 찾아 들어가 가지고 철학을 만드는 것이고 종교를 만드는 것인데 종교나 철학이나 모든 것은 시발이 어데 시발이냐? 자기가 시발입니다.

자기에게서 시발돼 가지고 자꾸 찾아가는 것이 그런 것들이요 기독교는 그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누가 뭐 원해 그런 게 아니고 하늘에서 뚝 내려와 가지고 하늘에서 와 가지고 이렇다 이라니까 거게서 피동되어서, 기독교는 그 시발이 어데냐? 자존하신 그 하나님에게서 시발이 돼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밑에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인간이 자기에게서 찾아 들어가고 찾아 올라가고 찾아 나가고 하는 그것이고 기독교는 위에서 내려와서 그에게 피동돼서 되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를 계시 종교라, 하늘에서 열어 보여서 본 것이 그것이 계시 종교라, 그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계시의 말씀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셔서 받은 말씀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래서, 영원 자존하신 분에서부터 이렇게 시발돼 가지고 나온 것은 기독교밖에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기독교가 이러니까 이제 이 모든 종교 단체들도 저희들이 너무 뿌럭지가 인간이 돼 허무하니까 변경해 가지고 저거들도 변경해서 이 기독교를 닮아 가지고 기독교 비슷하이지금은 뭐 어떤 존재에서부터 돋아 나온 것같이 그런 신비성을 말하고 이래 말하나 그것은 중간에 둔갑한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인제 그 모든, 우리 나라도 뭐 우리가 이 배달의 족속은 다 단군 자손이라, 그러면 단군은 곰이라,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가? 한국 자손은 다 곰의 아들이라 이렇게 자꾸 말하고 하는 그것이 그것은 뭐냐 하면 그 신화, 상고 때부터 신화 그런 걸 말해 가지고 모르게 더듬어 말한 것인데,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홀로 하나님만이 계셨던 그 하나님,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만 계셔.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는가? 계신 때가 없습니다. 영원 전 뭐, 영원 부터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셨다 말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계셨다 하면 틀립니다. 영원에 전에 계셨어, 영원 전에.

영원 전에 계신 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홀로 계시면서 목적을 하나 정했으니 그 목적은 뭐이냐 하면 그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택함이라는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예정됐다. 그러면 하나님이 목적 정하실 그때에 우리는 없습니다. 목적을 정할 때 없는데 그 목적이 계셨고 목적이 있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을 했는데 예정할 그때부터 우리가 목적 안에서 존재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예정될 때는 목적 안에 우리가 예정됐습니다. 목적 안에 우리가 없었지만 목적 안에 예정됐고, 목적 안에 예정된 우리가 목적 안에서 창조됐고, 창조되고 난 다음에 우리가 차차 차차 이래 보존돼 가지고 이래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을 있게 하지 말지니라. 이래서 로마서 11장 33절로 36절까지에는 보면은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그렇게 말씀해서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진 것이 또 하나님으로 인하여 꾸물거리고 또 꾸물거리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이 나와 가지고 이리 이리 준비를 해 가지고 결국은 하나님 한 분 속으로 들어가서 다 통일되게 된다 그렇게 말했고, 그래서 에베소 1장 10절에는 보면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돼 가지고 움직이게 한다.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거게는 이질이 없습니다.

이질이라 말은 다를 이자 바탕 질자 다른 바탕이 없고 동질입니다. 전부 동질이요 동성입니다. 동성이라 말은 성질이 한 가지라 그 말이오. 남자는 남자끼리 동성이라 하는 그런데도 쓰이는데 그거는 이성, 성에 대해서 그거 남녀 이성, 말하자면 남녀 이성이라는 남녀끼리 성교하는 그 성 그것을 가리켜서 동성이라 이성이라 말하는데 그 말이 아니고 하늘나라는 전부 동성이라 그 말은 전부 속성이 하나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십이 속성으로 나타났고 우리 공통성이 있는 속성은 사람들에게 여덟 가지 속성으로 나타났는데 여덟 가지 사람 속성은 뭣뭐지요? 그건 다 알지요? 하나 자, 처음에? 지식, 지혜, 또? 선, 또? 사랑, 또? 거룩, 진실, 또? 의, 주권, 그라면 여덟 가지가 다 됐습니다.

하나님의, 우리가 공통성 없는 속성은 하나님의 자존성, 완전성, 영원성, 완전성은 그것으로 불변성이 다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단일성. 이래 가지고 네 가지 속성은 우리와 공통이 안 돼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앞으로 이 미래적으로는 안 돼 있지마는 회고적으로는 중생된 자는 다 돼 있습니다. 회고적으로 뒤로 돌아보는 것은, 만들어진 것은 다 이렇게 된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에 단일성이 안 된 거는 하늘나라 못 들어갑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받을 만한 변질되지 안했고 마음도 형 받을 그런 변질되지 안했고 예수님의 인성인 그 영도 형을 받을 변질되지 안했고 변질되지 안한 것이 순전히 형만 받아서 고난만 받았기 때문에 그 속에 내부에 그 실상은 더러워지지 안했고 범죄하지 안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 마음도 죽었고, 또 영도 죽었고, 몸도 죽었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또,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신성이 예수님의 그 신인양성일위의 영이 됐는가? 아니오. 이 신성은 예수님의 인성에는 영육이 다 이렇게 영혼몸이 다 있습니다, 그래 또 신성 있고. 이래서 이 양성이 합해 가지고 일위가 됐습니다.

일위가 됐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형을 받으실 때에는, 잘못하면, 받았으니까 이 육체가 형벌받았고 죄를 담당했고 형을 받았으니까 예수님의 그 심신이, 예수님의 심신이 우리 죄를 담당했으니까 죄악화됐느냐?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심신이 담당했으니까 예수님의 심신이 죄화됐느냐? 죄화되지 안하고 그 죄를 담당만 했느냐? 죄화됐느냐 죄화되지 안하고 담당만 했느냐? 저 ○○○? 담당만 어찌 할 수 있는가? 저 ○조사님이요? 담당만 했다. 담당만 했다. 자, 저게 양성원 학생들? 변질 안 됐지만 우리 죄를 담당했거든? 대신. 대신 담당해서 정죄받았고 저주받았고 저주 아래, 정죄받아 가지고 저주 아래 있었는데. 녜, 그걸,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심신이 만일 죄악화됐으면 우리를 대속할 권리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를 대속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범죄 안 하고 깨끗했기 때문에 대속이 되지 범죄했으면 대속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범죄하지 안했소. 범죄하지 안하고 다만 우리를 대신해서 형만 받아 가지고 이랬으니까 형만 받아서 이거 형을 받아서 형은 완전한 형을 받았는데 형만 받고 그 자체는 변질되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이는 다시 부활하실 수가 있다 말이오. 죽은 것을 다시 살릴 수가 있어. 이래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걸, 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이 대속이 근본인데 대속이 이 근본이고 대속보다 더 근본은 뭐이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선택이라 하는 이 선택 교리가 제일 종자요 으뜸인데 이 선택 교리가 이것이 잘못되면 기독교는 삐뚤어져 나가. 얼마든지 삐뚤어져 나가.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 막 여러 수만 가지로 이래 흔들려 가지고 있어.

또 예수님의 이 대속도 그저 간편하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했다’ 이거 따져들어간다 말이오. 마귀란 놈이 마지막 죽을 때 따져들어가요. 따져들어가기 때문에 이게 바로 되지 안하면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바로 모르는 사람은 성화 역사는 못 이루고 택한 자는 그때 성령이 와 가지고 자꾸 와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따져서 바로 알게 됩니다. 주관도 바로 알게 돼요.

이러니까 택한 자와 택하지 안한 자는 죽을 때 보면은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이 자꾸 약해질 때에는 옆에서 돕는 것은 육체의 물론 음식으로 돕는 것도 좋지마는 자꾸 영을 도와야 됩니다. 심신을 도와야, 심신의 영적면으로 그 심신을 도와서 하나님 도리를 자꾸 말해 주고 찬송도 해 주고 자꾸 이래 해 주면 그만 소생이 되고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내가 전화가 ○목사님이 그때 전화가 왔는데 자기 어머니는 안 믿는 사람이오. 안 믿는 사람이라도 평소에 전도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 나중에 시커머이 이래 가지고 있는 걸 예수님 믿으라 하니까 그래 예수님 믿겠다 하더래요. 예수님 믿겠다고 말도 못 하는데 예수님을 믿겠다고 이래 표시를 하더니마는 예수님 믿는다고 이래 찬송을 하니까 예수님 믿겠다고 하고 난 다음부터 얼굴이 환해지더니마는 찬송을 하니까 세 번 막 손뼉을 이래 뚜드리더래요, 세 번 손뼉을 막. 힘도 아무것도 없고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세 번 손뼉을 뚜드리고 그라고 가 버렸어. 그게 뭐냐? 택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일 분 믿고 떠나는 사람, 이 분 믿고 떠나는 사람, 이 택한 자라. 택하지 안한 사람은 아주 목사 노릇 했는데, 목사 노릇 했는데 마지막에 세상 뜰 때에는, 세상 뜰 때는 엉뚱한 소리 합니다. 세상 뜰 때는 엉뚱한 소리 하고서 예수 물으면 예수 모른다고. 물으면 예수 모른다, 전연히 모른다. 예수 물으며 ‘예수 아느냐?’ 하면 ‘예수님? 아, 예수 모른다’고. `예수 아느냐?' 모른다 해.

믿느냐 하면 안 믿는다 하고 아느냐 하면 모른다 해요. 아주 예수 믿는 거 아주 완전히 싹 끊어져 가지고 아주 끊어집니다.

끊어저 가지고, 누가 내게 며칠 전에 말하더라? 그 사람이 뭐 세상 떠날 때에 그 장로라던가 목사인가 뭐 그랬는데 내가 그 이름을 잊어버려 버렸어. 이랬는데 아리랑 타령하고 그랬는데 그거 누가 나한테 전해 준 사람 있는데 그분이 세상 떠날 때는 뭐 아리랑 타령을 하고 뭐 어짜고 그 말 하는데 그렇다고 해 가지고 불택자로 보지 못해. 마지막에 최후가 택한 자는 하나님의 성신이 와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주권적으로 가져 가지고, 이제 처음에 구원 건설구원 이룰 때는 제게 자꾸 감동을 시켜 자유성을 가지고 이래 하지마는 마지막에는 이 택한 자에게는 성령님이 와 가지고, 당신이 강제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다 대신 했고 대속했기 때문에 와 가지고 영감시켜서 그때는 구원에 참가하도록 이래 하고, 그러니까 마지막 세상 떠날 때에는 영감이 더 충만해지고, 충만해져 가지고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루도록 그래 하고, 또 평소에 신앙이 좋은 사람은 마지막에 성령의 충만함을 주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는 성령을 감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감해요. 성령의 역사를 감해서, 성령을 충만케 해 주지 안하고 성령의 역사를 자꾸 감해요. 감하니까 성령이 충만할 때는 막 주님으로, 주님의 이 구원의 소망으로 충만해지지만 성신의 영감을 차차 차차 감하니까 이 구원이 흐미해진다 말이오. 알겠습니다? 구원이 흐미해져요.

그 흐미해지고 자꾸 흐미해지니까 흐미해져서 자꾸 자기가 힘을 써 가지고 이 구원을 똑똑히 이렇게 생각하고 알고 이라니까 또 성신의 감화를 자꾸 제하면, 감화를 제하면은 나중에는 성령의 감화가 조그매만 해도 자기에게 있는 힘을 가지고 이래 할 수 있는 그것도 마지막에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의 힘을, 자기로서, 영감 말고 자기에게 성화된 힘을 가지고, 자기 주관이 가입된 그 힘, 자기 주관이 없는 순전히 객관 역사로만 아니고 자기 주관이 가입된 그 힘을 가지고 더 강하게 만들도록 이래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신앙이 약한 사람은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에 성령의 감화가 그를 도와줘서 자꾸 이래 감화 역사가 강해지고 또 신앙이 장성한 사람에게는 영감이 차차차 감해집니다. 차차차 영감 역사가 감해지고 저 혼자 제 힘으로 하도록 자꾸 이렇게 자꾸 만들기 때문에 더 힘이 든다 그 말이오.

힘이 드는데 이 비밀을 모르고 ‘아무것이는 신앙이 그래 어린 사람인데 세상 뜰 때 이렇던데 아무것이는 그 어른은 세상 뜰 때 신앙이 약해지더라’ 우리는 간단하게 단편만 보고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래서 어짜든지 사랑하는 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신앙 걸음을 걸어갈 때에 있는 전심 전력을 다 남은 것 없이 솔빡 다 들여서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다 솔빡 다 들여야 이 신앙 생활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 미리부터, 미리부터 자기의 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을 다 들이는 이 연습을 하는 사람은 이제 다 들인 사람은 다 들인 그것 가지고만 되어지도록 자꾸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이 세상은 무궁세계를 준비하는 세계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은 객관으로, 객관 역사로 한 것도 있고 자기 객관을 힘입어서 주관 역사로, 객관을 힘입은 주관 역사, 인간의 인적 요소가 가입된 이 요소로 하는데 인적 요소의 하나도 남기지 안하고 솔빡 먼지 하나도 남구지 안하고 솔빡 다 들여서 이 구원 준비 하는 것이 더 제일 가치 있는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구원 이루는 데에 힘을 덜 쓰면 안 돼요. 어제 묘에 갔다 했는데 어데로 갈까보냐 해서 저 양산동 갔는데 양산동 그 산에 비가 와서 절퍽절퍽 한대요. 이러니까 잔디 있는 공동묘지에 가 가지고 밤에 기도하고 오라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그리 갔읍디까? 그리 갔었는데 그걸 알아야 돼요.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갈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랬지마는 가 물으며 따라와도 오지 마라 해, 자꾸. 오지 마라. ‘오지 말고 여기 있거라. 오지 마라.’ `갈랍니다.' `오지 마라.' `갈랍니다.’ 자꾸 이라다가 나중에 요단강을 척 건너가고 난 다음에 ‘네가 나한테 뭘 구하느냐?’ 했어. 뭘 구하느냐 이라니까 영감을 구해. 그때 이제 구했어. 그걸 넘어야 돼.

모든 일을 보면성경은 다 그걸 보이고 있어. 고개가 있어요. 요만 조그만한 일에는 또 그 고개가 있고 조그만한 고개가, 어쨌든지 고개를 넘어야 주님과 접촉이 되지 고개 넘기 전에는 주님과 접촉이 안 돼요.

이러니까 바디매오 소경도 이랬지마는 나중에 뭐 옷도 버려버리고 겉옷도 버려버리고 막 뛰어 일어서 가지고 주님에게 부르짖어 주님 앞에 가니까 그제사 ‘네가 내게 뭘 구하느냐?’ `뭘 구하느냐?' 이라니까 `보기를 원하나이다’ ‘됐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라고 나니까 환하게 다 봤어.

뭐이든지 신앙의 고개가 있다는 것을, 신앙의 고개가 있는데 그것이 골고다의 고개턱입니다, 골고다의 고개턱. 십자가에 주님이 골고다에 못박혔는데 골고다의 고개 같은, 이 고개가 있으니까 이 고개를 넘어야 되지 고개를 넘기 전에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다가 그만 이 고개를, 내나 십자가의 고개인데 고개를 가다가 되니까 그만 주저앉는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요 무서운 것도 벌써 이제 생명 끊어졌다 이렇게 하고 난 다음에 고개를 넘어가야 돼.

그래 내가 언제 전화 하면서, 우리 ○○○장로님은 그만 귀가 꽉 먹어서 영 등신이 돼 버렸어. 말해도 암만 고함 질러도 못 알아듣고 이래서 이거 참 불쌍하다 이래 했는데, 귀먹은 게 좋은 것도 있지마는, 좋은 거는 아니야, 실상은.

다 들어야 돼. 듣고 구원 얻어야 되는데, 그래 내가 전화를 저 먼저께 하면서 조그만한 소리로, 이 귀가 얼마나 먹었는가 보자. ‘○장로님’ 하니까 `예?' 이래. 허, 이거, 아주 귀가 조그만하게 했는데 들어. 그래 내가 ‘뭐 보청기 귀에 댔습니까?’ 이라니까 ‘귀가 나았습니다.

치료 받았습니다.’ 그래. `그래요? 어느 병원에 가서 치료 받았습니까?’ 그라니까 그때 말하기를 ‘양산동 가 가지고 치료받았습니다.’ 이래. 귀가 나았어. 나았습니다 이라는데 그라고 나서 ‘치료비 냈습니까?’ `예, 냈습니다.' 감사 헌금 낸 모양이라.

이랬는데, 그래 인제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뭐 말이 그런 말이 있어.

호랑이가 거기 다니더라. ○○○집사도 호랑이가 다닌다 하고 그 호랑이가 다닌다 하는데 호랑이가 다니지 안하는 것이 호랑이가 안 와요. 호랑이가 아직까지, 호랑이가 거기 다니기는 다니지마는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게 아닌데. ‘그래 뭘 보고 호랑이라 합니까?’ 이라니까, ‘내가 호랑이인지는 모르는데 그 뒤에 ○○○씨가 보니까 한 발 되는, 꼬리가 한 발 되는 것이 누런 게 그렇게 생긴 게 지나가더라고 그래서 종합을 하니까 호랑인갑다.’ ‘자기는?’ 기도하다 졸았대요. 기도하다 졸으니까 막 쾅 그러는데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그만 깜짝 놀라 가지고 머리털이 쭈삣하게 이래 가지고 영 뭐 죽을 지경이니까 ‘주여,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그만 이래 가지고 달라붙었고, 이래 가지고 이라다 또 기도하다가 또 그만 졸음이 와 가지고 그만 꼬빡 졸았대.

졸으니까 뭐이 꽝, 무슨 소리인지 꽝 그라는데 어떻게 놀라놨는지 꽝 그라는데 일어나 보니까 막 겁이 나 가지고 죽을 지경이라서 막 주님에게 달라붙고 이랬더라고.

그래 내가 있다가 ‘하나님께서 꽝 그렇게 해 가지고 그때 죽을 지경이니까 하나님께 달라붙은 그때 귀가 터졌는가보다’ 내가 그렇게 했어. ‘귀가 터졌는가보다.’ 어떻게든지 고개턱을 넘어서 그래야 주님하고 딱 들어붙어요.

주님하고 딱 들어붙어야 일이 되는 거라. 알겠습니까? 교역자들도 주님하고 들어붙어야 눈이 환하게 밝아져요. 눈이 환하게 밝아져서 이래 모든 것이 알아지는데 그만 그리 안 하면 잊어버려져.

나도 십계명에 대해서 어느 한 시간 내가 거석하니까 환하게 열려서 ‘야, 이거 참 사람들이 몰랐다.’ 이래 가지고 뭐 십계명에 대해서 그 속에 오묘함을 내가 그때 알았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바빠서 그만 그걸 기록하지도 못하고 뭐 종이도 없었지 이래 가지고 그만 기록을 못 했는데 단단히 요렇게 익혀 내가 기억하겠지 이라는데 그거 지금 기억이 안 나요. 안 나서 지금 이제 일계명에 대해서 지금 말하는 것도 그때에 깨달은 그것 가지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은 것 가지고.

이러니까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는 것은 다른 신이라는 요거 “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러면 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은 어떤 뭐? 네게 자존, 무엇이든지 네가 자존자로 네가, 나 외에 자존자로 네가 믿는 걸 하지 마라, 주권자로 믿는 것, 창조주로 믿는 것, 모든 희로애락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는 주권자로, 또 대주재로, 만왕의 왕으로, 제일 크신 분으로 이렇게 인식하는 그 인식하는 그런 것을, 다른 걸 다 모두 인식하고 있거든.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하나님이야. 그리하고 있으나 너희들은, “저희의 배는 하나님이요” 식물을 하나님으로 삼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식물이 ‘이걸 먹어야 내가 살지 이거 안 먹으면 못 산다.’ 하나님께서 먹으라 하면 먹는 것이고 뜻대로 먹으면 먹어서 유익이고 뜻대로 안 먹어야 되면은 안 먹어 유익이고 이래 뭣이든지 음식에든지 생명이든지 인간에게든지 거게 내 모든 생사화복 존비귀천 흥망성쇠의 주권은 주님 한 분에게 있지 아무데도 있지 않다는 그것을 네가 믿어라 하는 그 말이오.

그걸 믿는 것이지, 그게 일계명을 믿는 사람이라. 그거 아니고 뭐 이런 거는 ‘그렇지만 이런 거는 여기 있지 않느냐? 저런 거는 저기 있지 않느냐?’ 그게 실은 그걸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다 잡탱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제일계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계명을 지키면 다른 것 다 지킨 게 돼 버리고 말아요. 자꾸 앞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어짜든지 주님을 만나야 돼요. 기도하러 가거든, 저 양산동 기도하는 사람들도 거기 지금 많이 있어요. 많이 있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냥 중얼중얼 하지 말고 어짜든지 주님을 만나야 돼요. 주님을 만나야 돼.

주님 만날라면 어데 가야 만나야 돼요? 주님 만날라면 양성원 학생들 어데 가면 만나요? 어데 가면 만나요? 저 ○○○조사님? 어데 가야 만나요? 내나 가르쳐 놔도. 어데 가 만나? 골방으로. 그거 자꾸 그런, 자꾸 고짜 자꾸 지금 하나 관련만 가지지 말고 오늘 아침에 배운 대로 어데 가 만나? 고개턱을 넘어야 돼. 고개를 넘어야 돼요. 고개 넘어야, 고개 넘어야 거기 계신다 그 말이오. 그걸 기억해요.

고개 넘도록 해야 되지 그전에 쭈물거려 가지고는 항상 뭐 조금 때나 벗기지 안 돼. 못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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