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우주의 종말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1일 금야

 

본문 :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산 발치가 자리를 넓게 잡아 가지고 완만하게 이렇게  올라가면 그 천여미터 되는 그런 산도 별로 높은 것 같지 않고 조금 경사된  평로와 같이 그렇게 올라가기가 수월합니다. 그러나 아주 낮은 언덕도 그것을  바로 수직으로 깎아 놓으면 대단히 높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그 순서를 따라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면 아주 쉽고 또 빨리 이룰 수 있으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저버리고 이렇게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데서 조급해 가지고 이루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어떤 역사라도 그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바꾸어지면 그 일은 성사하기가 매우 힘드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 참 세상을 이기고 잘 이용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있어 여기에 한 너덧 가지 순서로 그 순서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순서가, 첫째 순서가 첫째가 되어야 되지 그 첫째 순서가 둘째  순서와 셋째 순서와 이래 바꾸어지면 안됩니다. 또 첫째 순서 그것이 안되면  둘째 순서는 이루어지지를 못합니다. 둘째가 안되면 셋째가 안되고 셋째가  안되면 넷째가 안돼서 우리 구원은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에 우리 구원을 이루는 이 일, 온 우주와 이 세계가 다  불덩어리가 되어지는 이 무서운 일이 우리에게 조만간에 오게 돼 있고, 또  우리의 개인의 죽음이라는 이 죽음도 조만간에 우리가 다 닥치게 되어지는데 이  중대한 일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일에 있어서 8절에 이런 말씀 해놨습니다.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라' 이거 잊어버리면 안된다.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무엇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면 우리 구원은 다 실패됩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아무리 결심하고 애를 써도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아니하고 결국은  실패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한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참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또 우리의 그  죄와 책임을 대신하셔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를 대속해 주신 주님의 이  사랑이지마는 우리가 이 사랑을 믿는다는 이 믿음이 아주 흐려질 때에 우리는  넘어지고, 이 사랑을 견고히 잡을 때에 우리는 일어서게 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연단하시는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기쁘고 즐거움으로서 인도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지도 못하고 다 낙망하고 의심하고  비관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지니' 이 말씀은  주님의 이 지극한 이 사랑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은 그 사람이 참 죽음에 들어서서 죽음의 고통을 당할  때나, 또 그 죽을 병든 자를 사랑함으로 수술을 해 가지고 치료를 할 때나, 그  치료받는 것은 희망있는 치료이지마는 치료를 받아서 몹시 아파할 때에 그 옆에  있는 사람으로 아파하는 그 일에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랑의 도수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사랑이 없고 미움을 가진 사람은 그  고통하는 걸 보면 고통이 얼른 지나갈 것이 아니라 고통이 좀, 고통하는 시간이  더 길면 싶고 그만 그 고통이 끝났다면 '벌써 그 고통이 끝나 버렸나?' 이럴 수  있을 것이고, 또 사랑이 뜨거워지면 뜨거운 것만치 그 고통하는 시간이  자기에게는 마음에 길다 이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건 사랑에 따라서, 치료를 하는 고통이라든지, 그 벌을 받는 고통이라든지,  어떤 좋은 고통이나 나쁜 고통이나 그 고통받는 거기에 그걸 상대할 때에 그  시간이 길다, 짧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의 도수에 따라서 그 고통하는  시간은 짧아도 길게 보일 것이고, 또 미움이 심하면 그 고통이 길어도 짧아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 우리의 이 고통당하는 것, 우리가 멸망을 자취하는 것, 또  멸망으로 말미암아 한없는 해를 받고 있는 이것을 주님이 보실 때에는 하루가  천년 같이 그렇게 지루해서 고통스러운 것을 말씀하고,  또 '천년이 하루 같다' 우리 연약한 것이 준비를,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려  하니까 하다가 넘어지고 또 시작했다고 넘어지고 이렇게 구원 성취는 잘  되어지지 않고 구원할 수 있는 그 시간은 빨리 지나가니까 천년이 하루 같이  신속히 지나간다 이렇게 주의 심정이 우리의 고난당하는 면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데 그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해서 애쓰는 그 면에 대해서  주님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이 이렇게 여겨지는, 주님이 우리에게  대한 이렇게 사랑과 자비의 안타까움을 가지시고,  참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이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 합법적인 길만 있으면 우리를 도우실려고 애를 쓰지마는 우리가 어리석어서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래야, 은혜를 베푸실래야 베푸실 수 없는 그 불법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안타깝다 말이오.

 불법 속에서 멸망하는 걸 볼 때에 불법 속에 있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또  주님이 돕고 싶은데 합법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걸 볼 때에 시간이 빨리  빨리 지나가서 도무지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해서 마음이 안타까운 그 주의 이  마음을 알아 주고, 주님이 이렇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에게 대해서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시는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가 안됩니다.

 주님은 전지자요 전능자요 모든 것을 가지신 주재자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생명을 우리 위해서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고 또 영원히 우리를  당신의 기업이라, 당신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실려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있지마는 우리의  잘못된 어리석은 자유성을 가지고 주님이 도우실 수 없는 그런 엉뚱한 길에 자꾸  재를 저지르니까 공평된 주님이 돕지 못하니 마음에 안타까워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심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가지시고 고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합법적인 그런 입장과 그런 길만 우리가  취하면 주님의 돕는 손은 지체하지 않습니다. 즉시 돕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려고 할 때에 못 도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도와 주실 수 있는,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 합법적인 이 길을 취하지 않으리 이것이  주님에게 문제가 되지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이런 합법적인 길만  우리가 걸으면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때에는 큰 것도 문제없고, 어려운 것도  문제없고, 급한 것도 문제없고, 뭐 번개같은 그 빠른 속도에 이래서 여기에 있을  때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번개같이 빠른 재앙이라도 당신이 당장 그것을 제거할 수가 있고, 어떻게  어려운 일이라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지금 이 불법인 그 길에서 가지고  허둥거리는 걸 볼 때에, 그 불법의 길에서 가지고 날뛰는 걸 볼 때에 그 시간이  어떻게 마음에 안타깝고 하루가 천년 같고, 또 이 생명의 바른 합법적인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데, 이리 저리 더듬으면서 자꾸 애를 쓰는데 아직도 찾지  못했다 하는 그 면을 볼 때에는 그 천년이 하루 같이 그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그 안타까운 주님의 이 심정을 우리가 알아야 든든히 바라보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는 어떤 그 심정을 가지고, 어떤 지금 소원을  가지시고, 어떻게 애타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이 한 가지를 알 때에 그  사람은 모든 미혹을 다 벗어나서 든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어려워도 당신이  인도하는 이 인도를 안심하고 따라갈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은 그 어려운  어려움을 통해 가지고 대성공이 나오는 그런 이해 못할 어려운 일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든든히 따라오니까 또 하나님은 안심하고 우리를 인도하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어디서든지 사랑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깊은 가운데 빠져도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그 사랑이, 우리가 예를 들면 음식을 잘못 먹어서 체했을 때에는 그  사랑하는 것이 약을 줍니다.

 또 그 사랑하는 자가 너무 과식을 해서 병이 들었을 때에는 사랑함으로 굶기는  것입니다. 또 그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을 하고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그것이 사랑은 사랑이지마는 그 아이의 행동에 따라서 부모의 사랑이, 사랑의  역사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에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합당하게 사랑을  베푸시는 그 사랑의 역사가 다른 것이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하루가 천년 같이, 참 일각이 여삼추라 하루가 천년 같이, 우리의 이 불행  고통을 볼 때에는 하루가 천년 같이 시간이 길고, 우리가 무엇을 시간이 필요한  일을 하는 데에 일은 잘 안 되고 시간이 지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천년이 하루  같이 언제 그 시간 지나갔나 마음에 안타까운 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향하고  있는 이것을 첫째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도 보면 성령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첫째 중요하고,

 또 둘째로는 말씀하기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불에 타서  풀어지고 또 모든 체질이 녹아지고 땅에 있는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나겠는데'  너희들이 이 우주도 언제까지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우주가 불덩어리가 되는 그  끝날이 있고, 또 개인 개인도 마지막 죽는 시간이 있으니, 주의 재림이 안 됐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날마다 자기의 생애가 끝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쨌든 개인의 종말 시간이나 우주의 종말 시간이나 종말 시간이 있는데 그 때에  모든 존재들이 다 불에 타서 없어지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이거 없으면 죽겠다. 이거 있으면 되겠다.' 하는 이  모든 그 진열되어 있는 이 우주의 모든 이 조직체, 이 공간 조직체 이 지구상  조직체 이 모든 나열돼 있는 모든 존재 이런 것들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이 큰  변동이 있을 것이고, 또 모든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일생을 살았는데 일생을 산  그것이 삽시간에 전부다 없어지니, 자기의 좋아하는 것, 자기가 의지하고 바랐던  것 이 삽시간에 없어지는 걸 가리켜서 '그날이 도적같이 임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큰 중대한 문제가 있으니 '너희들인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그날을 바라보고  간절히 그 날을 사모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첫째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우리가 연구하고 느끼고  깨닫고 해서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주님도 우리를 인도하실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으니까 살길로 인도하면 그만 의심하고 달아날 것이고, 또 우리 어리석은  의견에 주관에 맞도록 멸망 길로 인도하면서 살길로 인도한다고 그렇게는 또  하나님이 하실 수 없고 이러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폴란드도 거기에도 보면 물론 좀 나쁜 놈도 있겠지마는 공산주의자들이 가  가지고 살살살살 꾀워 가지고 달콤하게 '이러면 너희에게 유익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리석은 그 모든 백성들이 꾀우는 말은 잘 듣습니다. 꾀우는 말을 잘  들어 가지고 공산주의에 다 점령당한 그 사람들이 전부 다 후회합니다. 백성들은  전체가 후회하요. 거기같이 사람의 계급 차이 있는 데가 없습니다. 아마 월남에  있는 그 사람들도 지금 후회해 봤자, 후회하는 말도 나오지 못합니다.

 굉장히 후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회한다는 말을. 사람도 보면  여기서도 그 사람에게 유익된 바른 인도는 사람들이 잘 받지 아니하고 꾀어서  망하는 그런 피우는 그런 소리는 잘 듣습니다. 사람 꾀우기는 참 쉬워도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부모가 바른 길로  인도하지마는 자식이 안 듣습니다. 저를 망치는 그 나쁜 동무가 절 인도하는  것은 순전히 망치는 길이지마는 그 말은 들을 때에 재미가 있고, 취미도 있고,  기쁘고 즐거워서 그리 끌려가는 것이 이 타락한 성령없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대범하게 사랑하는 것 아니고  세밀하게, 개별적으로 세밀히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고통하는  것을 보면 하루가 천년 같이 마음에 안타까워서 견디지 못하시고, 우리에게  필요있는 시간은 그 천년이 하루같이 빨리 지나간다 해서 안타까워하는 이런  심정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든든히 믿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출할 수가 있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도 없고 인도할 수도 없고 그 구원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이 사랑, 이  무한함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지극히  공평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런 합법적인 그 길이 없으면  우리를 못 돕습니다. 그분이 도울 수 있는 그 합법적인 길을 취하는 것이  뭐이냐? 그분이 인도하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성경으로 가르치고 영감으로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하는 그것이 전능자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그 합법의 길을  우리가 취해서 걷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것만 있으면 우리에게는 어렵고 뭐 크고 난처하고 급하고 한 아무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급해도 좋고, 어려워도 좋고, 커도 좋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도우려고 할 때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거 큰일이다, 힘이 들겠다, 이거는 급하니까  안되겠다.' 당신에게는 급한 것도 문제가 없고, 큰 것도 문제가 없고, 어려운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 길만 우리가 잡으라  그 말이오.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다음으로 둘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데,  현실은 어떤 것인고 하니 시간은 지금이요, 지금 현재 시간은 지금이오. 또  장소는 내가 지금 있는 이 장소, 장소는 내가 있는 이 장소요. 또 관련된 것은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사건이든지, 뭐 비든지, 바람이든지, 춥든지, 이 모든  만물이든지, 질병이든지, 짐승이든지, 마귀든지 어쨌든지 이 현재라는 시간에  내가 있는 이 장소에 거기에 관련되어 있는 나의 친한 사람, 나의 원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물건 저런  물건 이런 것들이 내 현재 이 현 장소에서 나와 관련되어 있는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이거는 보배로운 것이면서 또 이거는 우리에게 지극히 무서운  것입니다. 이 현실을 자기가 벗어나면, 이 현실에 갇히지 아니하고 이 현실을  벗어나면 이 현실에게 삼켜지지 않습니다. 벗어나서 이 현실을 이용한다면 이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이 됩니다. 아주 귀한 선물이 되고,  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 현실에게 파묻히면 이 현실은 우리를 삼키는  사망의 세력이 되고 또 우리를 가둬 죽이는 원수의 함정이 됩니다. 원수의  그물과 덫과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이라는 이 현실, 어떤 현실이든지 자기가 지금 사형을,  사형선고를 받아 가지고 지금 사형장에 나와서 사형집행을 당할 그 시간이라면  그것이 자기 현실입니다. 또 자기가 아주 모든 사람이 존귀히 여기는 존영한, 그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고 존영하게 아주 자기에게 참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둘러 있으면 그것도 자기 현실입니다. 좋은 현실도 있겠고 험한 현실도 있겠고,  자기를 대적하는 현실도 있겠고 자기를 환영하는 현실도 있겠고 여러 종류의  현실이 있는데 어떤 현실이 있든지 그 현실은 악한 자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현실은 그 현실을 내가 잘 사용하면 현실은 참 보배로운  현실이 되고 현실에게 삼키어지면 나는 그 현실로 인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그 영광을 마련하는 참 보배로운 이용  가치가 있는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자기를 삼켜서 영원히 멸망시키는 그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실은 같은 현실인데 그 현실을, 내가 현실에게 갇히지  않고, 현실이라는 이 감옥 속에 갇히지 않고, 현실이라는 이 원수의 진 속에  포위되지 아니하고, 이 현실을 자유로 꿰뚫고, 현실을 꿰뚫고 현실을 벗어  나와서, 현실을 벗어 나와 가지고 이 현실을 내것을 삼아서 사용할려 하면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나와서 현실을 내가 다스리고 현실을  그것을 내가 지키면 그 현실이 나에게는 대단히 귀한 이용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실을 내가 벗어나지 못하고 이 현실에게 벌써 포위돼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 안에 사로잡히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현실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든지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으면 그것은 완전히 전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둘째로 이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사형선고를 받아 가지고 사형장에 가서 지금 곧 사형을 받을 사람입니다.

사형을 받을 사람이라도 자기가, 자기를 사형을 시키니 사형이라는 그것만  보이고, 사형을 시킨 법만 보이고, 사형대만 보여지고, 자기가 사형이라는 그  현실 속에 들어서 그 현실만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현실과만 관계를 가지고 그  현실에서 제가 암만 벗어나려 해야 못 벗어납니다.

 그 현실만 생각해서, 자기가 그 현실에서 만일 그 현실 안에서 (이 아이들이 왜  이럽니까? 귀신이 왔어. 아이들 좀 단속해요 좀. 뭣하는 것입니까, 모두?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이 좋지만, 우리는 산아제한 안 해요. 이러니까  서부교회 교인들은 뭐 아이를 대개 4, 5명 다 낳습니다. 이런데 이제는 애  서이만 낳으면 벌금을 많이 매긴다 하는데 벌금 매긴 그 사람들이 상을 받을런지  벌을 받을런지 나는 그거는 발표는 않지마는 풍년 주면 마구 암만 많아도 먹을  게 많고, 흉년을 주면 아무리 식구가 적어도 다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지, 아이 많은 것도 좋지마는 아이 밴 여인들이 잘 단속하면 복이 되고 잘못  단속하면 화가 됩니다.)  사형장에 들어 있는 그 사람이라도 그 자기 현실 속에 파묻혀서 생각하는 것도  현실만 접촉하고, 현실만 생각하고, 현실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현실에 대해서만  행동하고, 현실만 상관하고 이러면 그 사람은 현실이라는 이 함정 속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은  우리의 감옥이요, 우리의 함정이오.

 그러나 이 현실에 갇히지 아니하고 현실을, 문을 깨트리고 이 현실에서 나와서  현실에 내가 주인이 돼 가지고 현실을 이걸 내가 다스려서 현실을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이용만 하면 그 현실은 우리에게 가치있는  보배로운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떤 현실 속에 살지라도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라' 간절히 사모해라 그 말은, 사모라 말은  생각이라 말인데, 전 생각이 거기만 집중 되란 말인데, 집중, 거기다  기울이는데, 간절이라 말은 그 사모를 딴데다 두고, 딴데 두고 여기도 두고  분산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이 사모에 간절을 붙인 것은 이 사모에 네  마음을 다 기울여라. 네 마음을 전부 하나님의 날, 우주의 종말 날, 네 개인의  종말 날, 네 죽음, 우주의 죽음, 이 마지막 종말이라는 거기에 네 마음이 전부다  집중되라.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그날을 간절히 사모할 때에 내 마음은 벌써 현실에서  벗어나서 거기에 날아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라고 했기 때문에,  불신자는 안되지마는, 불택자는 안되지마는, 택자들은 어떤 현실에서라도  거기에서 자기의 마지막 종말 시간인 죽음, 우주의 종말 시간 예수님의 재림  그날의 것, 그날의 것을, 그날에다가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다 기울일 수가  있습니다.

 자기만 '내가 이 현실에 지금 사형받고, 사형선고를 받아 가지고 있는 이  자리이지만 이거만 생각할 게 아니다. 마지막 날을 생각해야 되겠다. 내가 죽는  죽음이라는 그 마지막 시간, 또 주님의 재림의 마지막, 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이  마지막을 내가 생각을 해야 되겠다.' 할 때에는 하루가 천년과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의 이 사랑이 이 명령대로 합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죽는다는, 사형선고라는 그 문제는 자기에게 문제되지 않고 이것을 탈피해서,  이것을 초월해 가지고 '아, 나는 죽음이, 이 죽음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이  죽음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거기서 넉넉히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 주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의 마지막 죽는 시간, 우주의 종말 시간 그 시간이 자기  현실에서는 자기로서는 제일 거리가 먼 곳입니다. 자기로서는, 자기가 현실에서  현재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제일 시간적으로 멀고, 공간적으로 멀고,  사건적으로 제일 먼 것이 어디냐 하면 자기 마지막 죽는 시간, 우주의 종말 시간  그것이 제일 자기와 거리가 멉니다.

 거리가 머니까, 갇혀 가지고 있는 여기서 제일 거리 먼데로 갔으면 자기로서는,  자기 갇힌 데에서 자기로서는 제일 먼 곳을 왕래하니까, 제일 먼 곳을 자기가  왕래하니까 자기로서는 그 이상 없는 넓은 범위를 지금 자유할 수 있는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거기 가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거기에서 이 모든 것이 불 타서 다 불로 멸해질  것, 자기가 어떤 집 한채를 위해서 죽자 살자 노력 한다 할지라도 그 집도 다  불덩어리가 될 것, 이 모든 존재들이 다 불덩어리가 된다는 것, 그날에 가서  보니까, 예수님의 재림날에 가서 보니, 재림의 날에 가서 보니까 내가 현실에  있지마는 내 마음은 날아갈 수가 있어. 내 생각은 날아갈 수가 있어. 내 이성  비판은 날아갈 수가 있어. 내 소욕도 날아갈 수가 있어. 비록 몸은 현실에  여기에 들어 있지마는 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을 벗어나서 마지막이라는  거기에 나는 자유로 갈 수가 있다 말이오.

 가 보니 우주의 종말이면 다 불 타서 불덩어리 되는 것, 내 개인의 종말이면  세상은 그대로 있지만 내게 없는 거와 같이 돼 버려. 내게 상관없는 것 돼 버려.

세상은 그대로 있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것이 돼 버리고, 또 보니까 자기가  무엇을 마련했든지 자기 마지막 죽음이라는 종말 시간을 닥치니까 은행에 예금해  놓은 것도 다 도적맞는 것, 영광도, 존귀도, 뭐 설비도, 준비도, 구비도 그날에  도적 맞을 것이 상당히 많다 그거요.

 이러니까 '아, 이것도 도적 맞겠네! 이것도, 내가 오늘 저녁에 죽으면 이거 다  뺏기는 것이로구나! 주님이 재림하셔도 뺏기는 것이로구나!' 이러니까, '그날이  도적같이 너에게 오리니' 했으니까 내가 마지막 죽는 시간을 닥치면 도적맞을  것이 무엇 무엇인가? 다 내 소유권을 뺏긴다 그 말이오. 내 소유권을 빼앗길  것이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 자기가 생각하게 된다 그거요.

 이 모든 것이 없어지게 된다. 존재가 없어질 뿐 아니라 내가 갖추어 놓은 '이거  필요하다. 나에게는 세상 지식이 필요하다. 뭐 지위가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다.

예술이 필요하다. 건강이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하다는, 내가 필요해서 마련한  이것을 그 시간이 되니까 그날이 되니까 전부 홀빡 도둑 다 맞아버려. 다시 말해  소유권 을 다 뺏긴다 그 말이오. 그날에 가 보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현실에 있는데 현실에 사람 만나는 것, 물건 만나는 것, 자꾸 현실, 자기  현실 들고 있는 것 그것만 자꾸 보니까 자꾸 자기만 감옥 속에 갇혀서  가까와지고 어두워지고 그것만 눈에 보이는데, 여기에서 혹 뛰어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 내가 여기에서 제일 거리가 먼데가 어디냐? 내 종말 시간,  우주 종말 시간 거기로 한번 날아가 보자.' 내 마음, 생각, 비판, 평가, 소욕  이런 것이 그 날에 척 가서 보니까, 거기에 보니까 아주 그 현실 속에 들어 있을  때와 다릅니다. 거기에서 척 뒤로 현실을 들여다 돌아보니까 '아, 여기 와서  보니 저것도 도둑맞을 것, 저것도 도둑맞을 것, 저것도 도둑맞을 것, 모두 다  저거 도둑맞을 것 저거다 없어질 것.'  이것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일이 다 드러나리로다' 가 보니까 이제 모든  일이 미결로 돼 있다가, 미결로 되어 있고 또 이것이 이리 가려지고 저리  가려지고 뭐 숨어 있고 이러지마는 그날에 가 보니까 모든 인간의 옳고 그른  행위가 다 그날에는 완전히 결정이 돼 가지고 완결이 되는, 그날에는 한번  결정해 놓으면 다시는 변동이 없어. 아무리 부끄러운 일이라도 그만 그날에 딱  결정돼 버리면 그것을 영원히 없앨 도리가 없어.

 이러니 자기가 지금 이 현실에서 좋은 의로운 행위라 할지라도, 의로운 행위라  할지라도, 현실과 종말이 거리가 먼데, 현실과 종말이 거리가 먼데 그 동안에  옳은 것이 어떻게 변해서 나쁜 것이 될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가진 옳은 것 좋은 것도 이것이 아직까지 종말 시간이 시간이  있으니까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서 어떻게 변화될지 모른다 그 말이오. 그  모두 변하는 것은 내일에 변하는 것도 아니고, 모레 변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  옳은 것이 변질되는 것도 이 현실에 변질되더라 그 말이오. 옳은 것이 변질되는  것도 이 현실에서 변질이 되지, 또 영원히 후회될 것 잘못된 것 참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아주 흉측한 것 이것도 마지막 종말 시간에 딱 결정되고 난  다음에는 다시 변동을 못해.

 딱 결정이 돼 버리고 난 다음에는 변동 못하지마는 아직까지 종말 시간이 남아  있는 이 현실에서는, 현실에 그걸 얼마든지 변동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수치를  영광으로 변동할 수가 있어. 주홍같고 진홍 같은 죄를 양털과 눈과 같이 이렇게  영 반대로 아주 깨끗하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것이 뭐이냐 현실에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현실 속에 갇혀 있어서 '이 사람은 어찌할까, 이 사건은  어찌할까, 이거 물건은 어찌할까!' 현실 속에서 현실 그놈만 보고서 거기서  호덕거리다 보니까, 나는 눈이 어두워 가지고 그 현실 그것만 보고 상대하니까  아무리 해봤자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고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았다 그 말이오.

현실에게 지배를 받은 것, 현실의 종이라.

 이러기에, 현실 그놈은 악한 자 안에 있는 놈이거든. 이러니까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마련된 것이 없는데 여기에 붙들리지 말고 주님 말씀하신 대로 네가  어떤 현실에 있든지 네 마음은 네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종말이라는 이 종말에  가서, 종말에 가 봐라. 종말에 가 보니까 정신이 썩 듭니다. '야, 이거 내가  이것 있으면 살겠다고 하던 그 모든 것이 이것이 다 불덩어리가 되겠고, 내 종말  시간에는 이것이 다 없는 거와 같이 다 빼앗겨져 버리고 이것이 다 내게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어지는구나.' 이 문제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저것도 불탈 것, 저것도 없어질 것, 저것도 뺏길 것, 저것도 없어질  것, 저것도 뺏겨질 것. 도적맞을 것도 많고 없어질 것도 많다 그 말이오.

도적맞을 것도 많고 없어질 것도 많아 도적맞을 것 없어질 것이 많지, 또 내가  잘 보존해야 될 참 보배로운 영광된 그 행위도 있는데 그 영광된 행위가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영광이 변해서 수치가 되어진다 그 말이오. 영광이 수치가  돼요. 노아가 그렇게 천하의 의인으로 승리를 했지마는 노아의 그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포도주 먹고 그만 실수해 가지고 자손에게 대해서 못할 그런 저주를 해  버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야, 이 좋은 것이 마지막 종말에 와 가지고 한없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어지는 그것이 현실에서 변동이 된다.'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배로운 영광스러운 행위를 현실 단속 못하다가 그 보배로운 것이  현실에 금이 변해서 똥이 돼 버렸다 그 말이오. 영광이 변해서 한없는 수치가 돼  버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현실에 옳은 것을 버리지 않도록 이거 현실에서 이 작용을 해야  되겠다. 또 불타서 없어질 것, 다 없어질 것, 없어질 것 이놈이 현실에서  없어지지 아니할 걸로 이걸 다시 개조할 수 있으니 야, 현실 중요하다.' 또  도적맞아 뺏길 것을 이것을 영원히 자기 것의 소유로, 썩을 것을 썩지 않을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이거 모든 죄  아래 있는 걸 다 물질 안에 영원한 것으로 이렇게 현실이 왔으니까 현실에 할  일이 바쁘다 그 말이오. 모든 것이, 일들이 다, 모든 일이 들어 모든 일이  완전히 결정이 된다. 자기가 숨 끊어지면 모든 일이 그대로 결정입니다. 다시  변동 못합니다. 그대로 결정이 되고, 수치스러운 것도 그대로 결정이 되고, 만  인간에게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그것도 그대로 결정이 되고, 또 영광스러운  것도 그만 결정이 변동이 없고, 자기가 빼앗길, 도적맞을 건 다 도적맞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또 없어질 것 없어지고, 영원히 자기 것 되는 것은 자기 것 돼  버리고, 없어지지 아니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은 영원히 존재한 것으로 돼  버리고, 또 수치스러운 것도 이 현실에서 다시 이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욕  얻어 먹을 것을 오히려 영광스러운 것으로, 욕 얻어 먹을 그 일을 칭찬 받을  일로 바꿀 수 있고, 또 이 좋은 일을 단속 안 하다 보면 이 현실에서 못쓸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  이러니까 이 현실에 할 일 이 많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현실은 거기에 가서  보니까 현실에 자기 할 일을 바로 알겠다 그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보니까,  마지막에 가서 보니 이것 저것 가치있는 것이 다 많지마는 가치있는 것 중에  제일 가치있는 것이 뭐이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 거룩은, 거룩한 행실은  뭐이냐? 그 행동이 뭐 크다, 영광스럽다, 많은 사람이 칭찬한다 그것이 아니라,  보니까 인간의 행동에는 거룩, 하나님의 뜻대로 된 행동, 그 행동 속에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 속에 알맹이가 돼 있다 말이오. 그것만 가치있는 일이라. 아무리  인간들이 뭐 크다, 영광되다, 존귀있다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알맹이가  되어 있지 아니하고 인간 뜻대로, 뭐 무슨 국가 뜻대로, 사회 뜻대로, 전 인류  뜻대로 아무리 큰 무리의 뜻대로 해봤자 그거는 속이 비었기 때문에 다  썩어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러나 아무리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그 일 속에  하나님과 진리가 그 일 속에 들어 있으니까 '이것이 가치 있구나.' 비로소  알았어. '야! 거룩한 행실 이거는 우주를 자기가 뭐 쥐고 흔들고 세계를  다스리는 것보다 아무도 모르는 그 빈약한 자리에서라도 하나님이 자라 할 때  자고, 일어서라 할 때 일어서고, 하라 할 때 하고, 하지 말라 할 때 안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 이것이 거룩한 행실이구나. 이 속에는 행동은 작다  할지라도 거기에 알맹이 하나님과 진리, 내나 그분은 단일성의 하나님인데  유일의 하나님인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이 속에 들어 있구나.' 작아도  하나님과 진리가 들어 있으니까 이것은 무한이요, 아무리 커도 하나님과 진리가  그 속에 없으니까 빈 껍데기라 말이오.

 이래서 '야, 이제 거룩 이것을 마련해야 되겠구나.' 비로소 거죽의 가치를 알게  되고, 또 경건이라,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다시 이것이 자기 위해서도 할 수 있고, 인류  위해서도 할 수 있고, 뭐 교회 위해서도 할 수 있고, 자기 자신 위해서도 할 수  있고, 하나님 위해서도 할 수 있는데 하나님 위하지 않은 것이라면 거룩한  행실이라도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당신을 위한 것이라야 된다 말이오. '하아!  이거 큰 문제로구나! 행동 중에는 거룩한 행동이 이것이 참 알맹이요 가치있는  것이로구나. 아! 거룩한 행동이라도 경건이 아니면 이것이 다 소용없다.'  마지막에 나 위하지 않으면 내게는 소용없다. 암만 돌아도 당신 상관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야, 이거 거룩한 행실 경건. 이제 마지막에 그 시간에 가 보니까 할  것을 비로소 알겠다 그 말이오.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무리 사고 판다  할지라도 마지막 결산 돼 보니까 마지막에 돈이 남아야 되지 마지막에 돈 안  남으면 뭐 아무리 주고 받고 분주해 봤자 무슨 소용있습니까? 마지막에 인간의  결산, 우주의 결산, 그 결산내는 거기에 가 보니까 생각이 달라져 버렸고,  비판이 달라지고, 평가가 달라지고, 소욕이 달라졌고, 방편이 달라졌고,  수지계산이 달라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는 좋은 것이 변질되지 않아야 되겠고,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이 현실에 그것을 다, 이것을 무마해서 바꿀 수가 있다. 바꿔 줄 수가 있다.

이거 한번 도장 탁 찍어 버리면 그만인데 그 전에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으니까,  여기 보니까 고칠 것이 많구나. 여기 와서 종말 시간, 내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고 내가 죽을 때 보니까 '아이구, 젊을 때에는, 욕심있을 때에는, 불량할  때에는 다 핏기가 있으니까 그랬지마는 이거 후회다.' 해 가지고, 고칠 것이  많은데, 그 나라 보니까 고칠 것이 많은데 이거 현실에 고치면 된다 그 말이오.

주홍 같고 진홍 같아도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될 수 있다 그 말이오. 영원한  수치가 영원한 영광과 칭찬이 될 수가 있다 그거요. 아무리 좋아도 이것이  당장에 변질돼 가지고, 노아 같은 그런 사람들도, 다윗 같은 사람들도 좋은  것이지마는 그 현실에 자꾸만 변질이 돼 가지고 영원한 수치가 돼 버렸다 그  말이오. 그러나 그것을 마지막 시간을 닥치기 전에 변질해 버렸으니까 다윗은  그것이 오히려 다윗이 실수하기 이전보다 실수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내게  합당한 자라고 그 뒤에 이래 더 크고 영광이 더 커졌습니다.

 이러니까 자, 불탈 것도 알았지, 없어질 것도 알았지, 도적맞을 것도 알았지,  자기의 모든 행동이 다시는 변동없이 딱 결정되어지는, 결정으로 영원한 결정이  되어지는 이것도 알았지, 이 모든 것이 현실에만, 이 현실에서 이것을 다 요리를  해야 되겠고 이것을 다 개조를 해야 되겠고 이것을 다 작용해야 되지 현실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이러니까 현실에 할 일은 따로 있는데, 이 믿음을 가지고 그날에 네 마음을 다  기울여야, '간절히 사모하라' 거기 둬라 했는데 거기 두지 아니하고 현실에 두고  눈으로 보이는 것 자기의 접하는 것, 현실 이것만 가지고 상대하다 보니까 해  봐도 그놈에게 이용돼 가지고 결국은 죽음 속에서 죽음만 마련해 버리지 이  중요한 일온 못 한다 그거요.

 이렇게 이 감옥에서 벗어나서, 이 함정에서 벗어나서 척 가 보니까, 거기 가서  보니 이 자유성이 있는데, 감옥에 갔다고 내가 갇힐 것이 아니라. 감옥이 아니라  이건 하나님이 내게 좋은 선물이요 귀한 것을 개조할 수 있는 공장이라, 좋은  장소라, 좋은 현재라, 좋은 재료들이 꽉 있어. 마구 고쳐 재낍니다. 마구 고쳐  재끼고 준비해 재끼고, 알맹이 거룩도 거기에서 만들어야 되겠고, 경건도  거기에서 만들어야 되겠고, 나쁜 것 고친 것도 거기에서 만들어야 되겠고, 좋은  것을 보장하는 것도, 변질 안 시키는 것도 거기서 조심해야 되겠고, 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렇게 할려고 하니까 원수라는 놈이 두놈 있습니다. 두놈이 나서, 어떤 놈이?  이 땅에 있는 욕심이 나섭니다. 성령의 소욕이 아니고 땅에 있는 자기 욕심,  욕심 이놈이 들어 가지고 거기에서 네가 암만 그렇지마는 살아야 될 생애  애착욕, 물욕, 명예욕, 안일욕 이런 모든 정욕 이런 것이 나서 가지고, 나는  단순히 하면 될 줄 알고 할려고 애를 쓰니까 이 욕심이 들어 가지고 나를 괴롭혀  가지고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욕심이 들어 가지고 괴롭힌 동시에 그 다음에 뒤따라서 정이라는 놈이 나와  가지고 또 애를 먹입니다. 혈육의 정, 동류의 정, 또 이성의 정, 자정, 모정,  부정, 우정 이것이 들어서 이걸 뚝 잘라 떼지 못하고, 정 이놈이 들어 가지고  분명히 내 할 일은 이 현실에 참 중한 일이 있는데 이 일 하려 하니까 정과 욕  이놈이 들어 가지고 또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네가 성신의 감화감동으로 네게  있는 그 정을 사용을 하면 그 정은 보배인데, 네가 성신의 감화감동으로 그 정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 정에게 네가 종이 돼 가지고, 정 그놈에게 붙들려 가지고  그놈 시키는 대로 그에게 피동되면 네가 완전히 사망하고 만다. 욕심도 성령의  소욕에게 붙들린 욕심으로 네가 얼마든지 욕심을 부려도 이거는 참 영광되고  지혜있는 일인데, 성령의 소욕을 버리고 네 육체의 소욕 이놈이 왕이 돼 가지고  성령의 소욕을 막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이놈이 나에게 온 이놈 주장대로 하다  보면 전체는 사망밖에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너를 지배하는, 너를 다스리는, 너를 주장하고, 너에게  의로운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붙드는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려라. 너를 주장하는 정과 욕을 십자가 못 박아 죽여 버리고 이제는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소욕을 네 소욕으로 네 감정으로 삼아 가지고 네게 있는 모든  정서 이것을 성령의 감동에게 이용되는 도구로, 성령의 감동이 네 정을 통해서  모든 것 다 발산되고 다 활동해라. 성령의 소욕이 네 욕심을, 욕심이라는 그  욕심 그것도 한 기관인데 이것을 통해서 성령의 소욕이 마구 나타나라. 그러면  이제 그것이 살고 다 영광과 덕이 있는 가치있는 그 일을 이룰 수 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확신하는 것,  그 다음에는 내 현실이라는 현실에 갇히지 말 것, 현실의 다스림을 받지 말 것,  현실에 지배받으면 안됩니다. 현실에 지배받으면, 암만 '사형이 와도 그 사형에  내가 끌리고 사형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걸 초월해서 집어던져 버리고 나는  얼른 날아서 '그 날에 네 사모가 다 가 있거라' 말씀하는 대로 이 현실에 갇히지  말 것, 현실만 보지 말 것, 현실만 생각하지 말고, 현실에 갇히지 말고,  현실에게 자유를 뺏기지 말고, 현실에 종되지 말 것, 일단 이 현실을 벗어 날  것.

 그 다음에 셋째로는 하나님의 날, 우주의 종말 날, 그것이 아니라도 네 개인의  종말 날 거기에 네가 가 가지고 좀 구경해라. 좀 생각해라. 가 보면 어떻느냐?  첫째 보니까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없어지는구나. 네가 필요로 가진 그것이 다  도둑맞아지는구나. 다 뺏기는구나. 뺏길 것도 있고 안 뺏길 것도 있구나. 타서  없어질 것도 있고 없어지지 않을 것도 있구나.

 이날에 내가 지금 이런 것을 오늘 내일로 미루고 수치스럽지마는 오늘 내일  미루고 나가는데 이날에 와서 보니까 그날까지 와 가지고 그날에 딱 결정돼  버리면 아무리 수치스러워도 이거는 변동 못하는구나. 모든 보배로운 것이  현실에서 다 버려져 버렸구나. 이날에 와서 보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것만이  가치있고 큰 소리 칠 것이고 이것이 참 제일 보배로구나 그날에 가 보니까 할일  많다 그거요. 거기에 가서 생각해 봐라. 그러니까 거기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없어질 것, 도적맞을 것, 또 다시 변동할 수 없는 자기 행실 딱 결정이 된다  말이오. 그걸 거기 가 보니까 얼른 고치지 못해. '아이구야, 이거 못 고치고  이거 못 고치면 오늘 저녁에 숨 딱 끊어지면 어찌 되느냐? 주여, 내가  고쳤습니다. 이래 합니다.' 하고 그다음에 넘어질지라도 하고 떠나라 말이오.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려고 하니까 넷째로, 방해하는 놈이 있습니다.

정과 욕이라는 이놈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놈에게 붙들려 눈물도 흘리고,  자살도 하고, 가슴을 치고, 한없이 고생을 합니다. 정, 욕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  한없이 끌려 다니면서 고생하는 것, '이놈이 원수로구나.' 비로소 알아 이  원수를 원수로 대항해서 그것에게 내가 지배받지 아니하고, 지배받지 않고, 모든  정은 성신의 감동으로 다 사살해 버리고 모든 내 욕심은 성령의 소욕으로 그것을  완전히 다스려서 이용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는 정과 욕의 그것의 지배를 받아서  그것대로의 달성을 할려고 노력하는 자가 이놈하고 싸우는 사람이 됩니다.

 이놈하고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날에 가 보지 않으면 싸우지 못합니다.

이놈하고 암만해도 동행해 봤자 마지막은 자기는 속고 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이 자리에서 통성으로 기도할 때에 자기가 이 진리를 이치적으로 깨달아서  견고히 잡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 이치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기가 되어져야  됩니다. 자기가 되어지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이렇게 되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힘을 써서 '이렇게 살면 싶습니다.' 하는 데서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  되어야 되겠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이렇게 살겠다.' 하는 이 사람에서 '이렇게 삽니다.'  하는 것으로, 사는 것으로 시작해 가지고 여기에서 더 나는 사람이 되어져야  그때 우리는 성화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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