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개인과 우주의 종말


1981년 12월 27일 주전

 

본문 : 벧후 3:1-1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에서 천하에 있는 사람들이 다 지혜롭고 자기를 알뜰히 아끼는 줄 알고  있으나 참 어리석기가 짐승이나 다름이 없는 그 점을 여기에서 말씀합니다.

노아의 120년은, 만물을 지으신 주인이요 주재 주권자요 만왕의 왕되신 분은  120년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주실 때에 계획과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각각  자기가 어떻게 준비를 하든지 모든 만물을 보존하셔 가지고 제 마음대로 제  힘대로 모든 만물을 사용을 하면서 행동한 그 모든 행동으로 조물주의 그 법칙을  근거해서 멸망을 마련하는 일과 구원을 마련하는 일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해서  정하신 기간입니다.

 120년이 찰 때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내렸을 때에 멸망과 구원 그 두  종류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노아의 여덟식구는 120년 동안 준비한 것이 인간  보기에는 보잘 것 없었지마는 홍수 심판에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얻어 이 우주를  기업으로 상속받은 그런 성공의 걸음을 걸었고, 그 나머지기 사람들은 제각각  가장 귀중하고 요긴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련하는 데에 열중했으나, 그 뭐  종류의 많고 적고 또 그 개체의 힘 있고 약한 것을 막론하고 하나님은 이 홍수를  두고 홍수의 멸망을 받느냐 구원을 얻느냐 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120년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고 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움직이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다 자기의 지혜대로 힘껏 마련해서 '나는 권세 잡았다  나는 문화를 어떻게 했다. 나는 가장 따뜻한 재미있는 가정 인류생활 하고  있다.' 뭐 별별 종류들이 많았지마는 노아의 여덟식구 외에는 다 홍수에서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참 역사의 큰일입니다. 아주 큰일입니다.

요사이 뭐 어느 나라의 사람이 얼마 죽고 어쩌고 하지마는 노아 때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그 이후부터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만물을 다 보존하고 간수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만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그것을 또 유지시키시고 이래서 인간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이렇게 주신 그 목적이 뭐인가? 이렇게 예수님 숭천 이후로  재림때 까지 인간들은 과학 만능을 말하고 20세기의 문화를 자랑하고 떠들어  쌓는데, 이 주인되신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것들을 보존하고 인간들에게  배부르게 먹고 제 마음대로 날뛰도록 이렇게 둬두는가? 그 목적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뭐? 경건한 자들은 구원을 이루고 경건치 않는 자들은 멸망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숭천 이후 재림 때까지 모든 것을 보존해 두고 하나님은 그날에 불심판을  마련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큰 사실을 모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도 이 큰 사실을 모릅니다. 세계 국제간이 어떻다 하는 그것도  큰일이지마는 여기다 비하면 그까짓 거 참 먼지 같은 일입니다.

 전 인류가 어떻게 되나? 인류 문제를 가지고 에너지가 모자라니까 산아를  제한하자 뭐 어쩌자 떠들어 쌓는 그것도 일은 일이지마는 이 일에다 비해서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20세기의 문화 운동에 있어서 아주 공헌하는  사람들은 참 자타가 큰일 한 것으로 자부하지마는, 그것도 귀한 일은 일이지마는  여기다 비해서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고, 가담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모든 것을 지으신 주인  되신 이분이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보존해 두시는 이유와 목적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이분이 세우신 법칙을 준해서 구원을 받느냐  멸망을 받느냐? 이것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보존해 뒀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천하의 지식을 다 통달하고 천하를 자유 자제하는 권위를 가졌다  해도 조물주되신 이분이 구원의 법칙을 멸망의 법칙을 내놓으신 이것이 존재의  목적이요 주재의 목적이라는 이 사실을 모르는 자는 무식한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순전히 속는 자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이 지극히 큰일 두 가지뿐입니다. 조물주 이분의 세운 그 입법을  준해서 하나님이 동일한 말씀으로 홍수로 멸한다는 말씀대로 이번에는 불로  멸한다고 하신 이 말씀대로 불로 멸망을 시키는 이 멸망에 구원을 마련하느냐  멸망을 마련하느냐? 이 두 가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입니다. 못난 사람입니다. 천한 사람입니다. 이게 땅  위에서는 첫째로 제일 큰일입니다.

 이렇게 모든 20세기의 인구수가 많아가고 별별 그 작용의 역사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인간이 조물주 이분을 따라서 구원을 마련하느냐 멸망을 마련하느냐?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둬 두시고 있는 이 사실이 제일  큰일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이것이  첫째료 큰일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이 첫째 큰일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도 이 첫째가 되는 이 큰일을 무시하고 제가 이 세상에서  올라가 봤자 내나 홍수 속에 들어갈 것, 내려가 봤자 홍수 속에 들어갈 것을  모르고 노아 시대 사람들이 한 것처럼 한층 올라가 봤자 그거요 떨어져 봤자  그거요, 많이 끌어 모아 봤자 그거요 흩어봤자 그거요, 죽어 봤자 그것 살아  봤자 그것, 좋아봤던들 그것 근심해 봤던들 그것, 요는 하나님의 불심판을  벗어나느냐 이 불심판 속에 멸망을 받느냐 이 문제가 우리에게 당면한 첫째  문제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이날에 소망을 두고 이것을 생각지 못하고 하루 하루에 자기  어리석은 개별 생각대로 그것을 이루기에 전력하고 이루어지면 좋아하고  기뻐하고 하지마는 그것이 전체에 단일 운동으로 통일 역사가 일어날 때에  그것이 거기서 지겠습니까? 수많은 것들이 있지마는 불 속에 다 멸망받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우리가 자유하고 있는 이 모든 우주도  만물도 전부 불덩어리로 다 이것이 한번 크게 청소를 하십니다.

 인류와 모든 만물 사건 그것이 하나도 숭기지지 않고 다 드러납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한 일이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드러납니다. 드러날 때에  창조주 이분이 그때에 세력을 부립니다. 조물주 이분이 그때에 세도를 부립니다.

그때에 권세를 나타냅니다.

 지금은 당신의 법을 선포만 해놓고 무시하든지 준행을 하든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까지는 가만히 참고 계시면서 '얼마든지 먹어라. 얼마든지  써라. 얼마든지 가지고 놀아라.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한  행동 한 행동이 멸망을 마련하든지 구원을 마련하든지 이 두 가지만 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 멸망을 마련하나 구원을 마련하나? 이렇게  하면 멸망 마련이 되고, 이렇게 하면 구원 마련이 된다는 것을 문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영감으로 가르쳐 주시고, 모든 만물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다 구비해 놓으시고, 이 두 가지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이런  모든 것들을 이용하도록 둬 두신 이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세계 국제간에 어떤 일이 있다.' 네, 큰일입니다마는 이 일에다 비해서 그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목적하신 대로 하나님의 법을 준하여  인간이 멸망을 마련하느냐 구원을 마련하느냐, 이 일이 당신이 목적하신 대로  끝이 나면 불로 우주는 한번 불 살라서 갱신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뭐  강대국도 약소국도 뭐 문화도 미도 다 모조리 이 불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  법칙을 준해서 거기에 합법된 것은 사람이든지 행위든지 만물이든지 영존하도록  새롭게 하시고, 천하 인간들이 좋아서 저거 없으면 막 죽겠다고 해도 이분의  법칙에 위반된 것은 사람이고 나라고 만물이고 미고 문화고 모조리 하나님이  태우시는 이 불 속에 전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은 크게 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뭣 때문에 보존되어 있느냐? 지금 인생은 어떤 것을 마련하고 있으냐?  조물주는 정한 때에 인간살이를 심판하실려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믿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지? 이 큰일은,  이 큰일은 일같이 보지 않고, 이 큰일은 일같이 보지 아니하고 어떤 피조물인  개인이 말하는 일이라면 큰일로 알아서 아주 그 일에 가담했으면 대단히 큰  줄로, 그게 움직이면 이 지구땅덩어리 움직이면 큰일로 아나 그것도 그것  양만침은 질만침은 크고 귀한 일이지마는 이 두 가지를 위해서, 이 두 가지를  위해서 그런 것들이 이용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존재가 존재케 하신 이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존재케 하고 있느냐, 당신의 것을 먹고 마시고 입고 가지고 사용하고 당신이 내  놔서 생겨진 인간들이 그분이 주장을 세우기를 '얼마든지 네가 접해서 마음대로  자유로 사용을 해라 다만 내가 세운 법칙을 따라서 멸망을 마련하느냐 구원을  마련하느냐 이것만이 최종에 가서 간추려 판결하겠다.' 하시고 보존해 두신 이  사실을 사람들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노아 때도 홍수로 멸망하는 그날 밤까지  사람들은 무시하다가 멸망받았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이 일보다 더 큰일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선별되는 이 일이, 이 '역사가 끝나면 일단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은 불덩어리가  됩니다.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불 덩어리가 됩니다. 불덩어리가 될  때에 하나님의 법에 합한 것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떤 만물이건 사건이건 그는  노아 때에 방주 안에 보호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구원으로 영원히 보장,  어떤 만물이건 사건이건 합니다.

 지금은 나무가 났다가 수명이 길다 해도 뭐 제일 큰 수명 긴 나무가 2, 3백  년인데, 그때는 나무도 영생합니다. 죽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만물을  새롭게 한다 했습니다. 인간도 영생합니다. 그이가 해놓은 그 행위도 그 행위와  같은 그 행위를 하는 그 기능은 영원히 그의 작용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시면, 이 두 가지 하나님의 목적이 끝이 나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고 구름타고 오시면 모든 만물은 다 불에 타서 녹아지고 땅에 있는 인간들의  행위와 만물의 움직임의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서 멸망할 것은 멸망받고 구원할  것은 구원하고 요 두 가지로 구별되기를 노아 때에 노아와 남은 인간의 모든  것과 구별되어서 여덟식구 외에는 전멸이 된 것처럼 이렇게 구별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쳐진 큰일입니다.

 수많은 지식이 인간에게 약간 필요가 있지마는 모든 존재에 주인이 있어  주인되신 이분이 무엇 때문에 보존해 두느냐?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와같이  보존해 둘 것인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준해서 구원 이루는 이 생애로  자기의 일생을 마련하든지 멸망을 이루는 그 생애로 마련하든지 얼마든지 만물을  자유로 사용해 가지고 이와 같이 하지마는 이 두 가지를 하나님 목적으로 두고  이 우주는 보존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보존하고 있숩니다.

 이런 변동이, 이런 역사가, 이런 문화가, 이런 국제가, 이런 전쟁이, 이런  생사가 있는 그것이 다 이것을 접하고 사용을 해 가지고 네가 멸망을 마련하느냐  구원을 마련하느냐 이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조물주의 요구에는 이것들을 마음대로 이용해 가지고 구원을 마련하느냐  멸망을 마련하느냐 이것을 목적으로 두고 때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신 때가 차면 다시 이대로의 만물 보존은 없습니다. 인류  생애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불 가운데 불덩어리가 되어가지고 멸망할 것은  멸망하고 영원히 영생으로 새로워질 것은 새로워지고 이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될 첫째의 지식입니다. 큰 지식이오. 또 큰 문제입니다.

땅 위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은 내가 그것을 접해서 구원을 이루느냐 멸망을  이루느냐 그 두 문제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큰일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아 너희의 생각은 그날에 둬라'  이랬습니다. '너희의 생각은 그날에 둬라' 날마다 분주 복잡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치 복잡한 일들이 있으니까 네 생각이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수많은  데 나뉘어 가다 보면 일생이라 하는 것은 너는 멸망으로 끝마치고 만다. 네  생각은 그날에 둬라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해라. 그날에 둬라 네  생각은 그날에 둬라. 네가 어떤 도덕 행위를 하는데도 네 생각은 그날에 두고  도덕행위를 해라 그날에 준해서, 그날에 맞추어서 도덕행위를 해라. 그날에  맞추어서 문화 행위를 해라 그날에 맞추어서 정치 행위를 해라. 그날에 맞추어서  경제 행위를 해라. 그날에 맞추어서 네 가정 행위를 해라. 그날에 맞추어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네가 가지라. 네 생각은 그날에 둬라 말씀했습니다. 그날에!  예수님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언제 재림할지 모르니 재림하시면 이렇게 된다  하는, 재림하시는 그날에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두고 그날에 맞추어서, 예수님의  재림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자기가 죽는 날이면 곧 그날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처럼, 우주의 끝장나는 것처럼  자기에게 죽는 날이 오면 자기에게 한해서는 우주와 자기에 대한 것은 끝장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 내 개인의 죽음의 날 그날에 네 생각을 두고  경영하는 것도 소원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도 평가하는 것도 네 근심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모든 평가도 비판도 그날에 네 생각을 두고 그날에 네 마음을  두고 그날에 네 사모를 두고 해라 성경이 이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날을 생각지 아니하고 어떤 일만 생각한다면, 날을 생각지 않고  어떤 사람만 생각한다면, 그날을 생각지 않고 어떤 물건만 생각한다면, 그날을  생각지 않고 -사는 것이 크지마는 - 사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날을 생각지 않고  죽는 일만 피할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날에 생각을 두고 모든 것  할 일이지 그날에 생각을 두지 않고 제가 어떤 데에 생각을 치중한다 할지라도  그는 벌써 속았습니다. 벌써 어리석은 사람이 됐습니다. 그는 멸망 가운데  삼키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를 하고 인간 구원에 열중한다 할지라도, 인간 구원이 귀한  일이지마는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있다. 그날에 네 생각을 두고 인간 구원을  해라, 그날에 생각을 두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네 구원이 어떻게 될 건가? 네  인간 구원이라는 이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네가 죽는 날에는,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인간 구원이라는 것이 어찌 되느냐? 그날에  어찌 되겠느냐? 그날에 합격이 되겠느냐 그날에 멸망이 되겠느냐? 그날은 언변도  죄도 아부도 간사도 소용없고, 그분은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그분 앞에 설  터인데, 그분을 만날 날인데,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그분을 만날 터인데, 네  개인적으로 죽으면 그분을 만날 터인데, 그날을 생각해 가면서 너는 살아라. 네  생각 네 사모는 그날에 둬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복잡하고 분주하고 슬프고 기쁘고 분하고 억울하고 감사한 일이  있어도 그날을 우리는 근거로 해서 그날을 두고 모든 것을 비판해야, 그날에  인한 비판, 그날에 인한 평가, 그날에 인한 경영, 그날에 짓는 그 결말이  지워지는 모든 것이 아니라면 다 속는 일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무 데도 소망두지 말아라, 네가 세상 지위나 권세가  올라가는데 거기 소망두지 말아라. 네가 사는데도 죽는데도 네가 소망두지  말아라. 물질에도 소망두지 말고,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많이  있지마는 거기도 소망두지 말고 네 소망은 그날에 둬라, 그날 그날에! 왜? 모든  인간이 그날에 전부 발가벗을 것이다. 그날에 전부이 다 도적 다 맞을 것이다.

'아, 이거는 내거다' 했지마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제일 높다!'  했지마는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이게 제일 행복되다' 했지마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날이 인간의 종결이다. 그날에 모든 것을 정평정가 한다. 그날에  소망을 둬라, 그날에! 오늘에 내가 하는 것이 백방으로 실패하는 일이지마는  그날에는 수입이 있다. 그날로 보면 수입이다. 그날로 보면 성공이다. 내가  오늘에는 억울하고 애매하기가 손해감이 짝이 없지마는 그날을 생각하니까  그날에는 수입이 있다. 그러면 너는 행복되다.

 내가 오늘에는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서 누구보다도 대수입가요 성공가이지마는  그날을 생각하니 그날에는 진공이다. 그날의 수입은 아무것도 없다. 그날에  소득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너는 빈통이다. 그날에 소망을 둬라. 그날을  바라봐라. 그날에 소망을 둬라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가 있으니 3절에, 베드로후서 3장  3절에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기롱하는 자들이  일어나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인간에게 있는 정욕이라는 이것이, 정욕이라는 이것이 인간들을  혼미케 하고 어둡게 해 가지고 이 지극히 큰 사실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인간의  감정, 애정, 온갖 혈육 정실이니 지방 정실이니 동류 정실이니 이 모든 인간의  정, 하나님께서 요한계시 18장에 보면 인간들이 크게 말해서 말세에 남녀 이성의  애정, 모든 풍류, 모든 음악에 대한 감정, 모든 물질에 대한 이 물욕 몇 가지를  거기에 들어서 말씀 했습니다. 권세욕 지위욕 명예욕 안일욕 음욕 식욕 물욕  별별 욕심 이놈은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를 꾀우는 놈이라고 말했는데, 미혹의  욕이라 했는데, 미혹의 욕심이라 했는데,  정심, 욕심 이것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되는데, 말세가 되어갈수록 인간들의  정과 온갖 욕 이놈이 발동을 해 가지고, 모든 만물이 보존된 것은 인간이  멸망이냐 구원이냐 이 두 가지를 마련할 수 있는 그 기간으로 이용물로  주셨는데,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고 아무 것도 아닌 물욕 그거 하나에게 끌려  가지고, 명예욕 그거 하나에게 끌려 가지고, 지위욕 권세욕 그거 하나에게 끌려  가지고, 어떤 감정 하나에게 끌려 가지고, 어떤 애정 하나에게 끌려 가지고,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이 오시면 다 불살라지고 말 것인데, 이 자는 이 욕에  끌려서 이 자는 저 정에 끌려서, 이래 가지고 모든 만물의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 보존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만물 존재 속에 들어 있는, 내게  대해서 조물주는 무엇을 지금 보고 계시는가? 내가 할일은 무엇인가? 언제든지  이것이 보존되어 있을 것인가? 내 개인의 종말날과 우주의 종말 날이 올 때에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에 모든 행위가 다 드러날 것이고 모든 것은  불덩어리가 될 터인데, 그날에 이기고 사는 것이라야 영원하지. 내가 가진 거는  그날에 멸망받을 것인가? 내 욕의 완성을 욕대로 다 성공을 하고 내 정의 온갖  부분을 만족을 하고 했으면, 이것은 그날에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그날에  보존될 것인가 유지된 것인가? 불에 타서 멸망받을 것인가? 그날을 생각하면서  하라 네 생각을 그날에 둬라. 네 욕망을 그날에 둬라.

 이런데 이것을 생각지도 못하게 시시하게 무시하게 내게서 흐려지게 하고  그날에 불탈 것을 내게 '이거 없으면 죽겠다. 이게 제일이다' 한 시간, 하루, 한  달, 1년, 몇십년 이 욕심이 들어서 자기를 사로잡고, 이렇게 만드는 이 무서운  욕, 자기 속에 있는 욕,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욕, 자기 속에 있는 정 이놈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했는데 이놈 못박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데, 이것을 예사로  생각해서 이놈에게 사로잡혀서 이놈이 들어서 만물의 존재의 이유도 잊어 버리게  했지, 만윤의 대주재이신 그의 지금 목적도 잊어버리게 했지, 내게 봉착된 이 두  가지 큰일 이것도 잊어버리게 했지, 그날이 결말인데 그날에는 까마득하게  생각을 못하게 하지, 그날에 있는 것이라야 있는 것이지 그날에 유지, 못될 것은  있어 봤자 없는 것 한가지인데, 그날에 소망을 가지지도 못하게 하니, 이 정과  욕 이것이 들면 이 큰일을 기롱한다. 이 큰 사실을 비웃는다.

 오늘도 이 커다란 사실을 설교하고 증거할 때에 이 사실을 비웃는다. 이 사실을  비웃는다. 너는 비운어도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인생아! 너의  소망은 어데 두뇨? 너희 마음은 어디 두느냐? 그날과 그날에 소망을  잊어버렸으면 너는 두말할 것 없이 일생을 멸망으로 마련하면서도 신속히  지나가서 정신 한 번도 차리지 못하고 마지막 그 시간을 당하리라, 인자의  임함도 노아의 때와 같다. 인간의 개인의 죽음이라는 종말 시간도 그와 같다!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그날에 유지될 것이 무엇인가? 그날에 유지될 것은 둘 뿐입니다.

그날을 유지될 건 둘뿐이오. 거룩한 행실과 경건 그 둘뿐입니다. 거룩한  행실이라는 것은 사람 각각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현실 현실을 바꾸어 주시는데,  여기서는, 피 흘려 구속해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려 하면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하여 그 뜻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이게 거룩한 행실입니다.

 구속하신 주님의 뜻, 내 현실에서 내게 대한 주님의 뜻 그것 찾아서 하는  그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주의 뜻을 떠나서 세계를 다스리는 것보다도 이게  큰일입니다. 이거는 영존할 일입니다.

 하나는 경건이니 경건이라는 것은 조물주요 구속주이신 이 하나님을 위하는  살이를 하려고 하는 그 사람입니다. 그것이 경건한 사람이오. 그 행위가 경건한  행위요, 경건. 조물주며 주재자며 구속주이신 그분을 위하는 마음, 그분을  위하는 생각, 그분을 위하는 소원, 그분을 위하는 사람, 그분을 위하는 행위  이것만 추려서 영원히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영영히 당신의 충만으로 충만케  합니다. 당신 잊어버리고 만물과 인간을 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 두 가지만 하나님께서 간추리십니다.

 어떤 비참한 자리에서라도 주님이 자기에게 요구하시는 그 뜻을 찾아서 하면 그  자리는 생명의 세계입니다. 그는 모든 심판을 이기고 날 것이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무리 존귀할 자리서라도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하면 그는 영생입니다. 이 세상 형태의 존비 귀천이  상관없습니다. 다만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대로 하는 그것이  거룩한 행실이오. 거룩한 행실. 이것만, 어데서 어떤 형편에서 어떤 병신 어떤  건강한 자라도 존귀한 자라도 그 중심이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하는 중심의 사람,  하나님을 위하는 행위 요것만이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 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라" 그날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모든 존재의 보존에 대한 조물주의 목적, 인간에게 부담된 큰 두 가지, 이 일이  마치면 모든 것이 다 불덩어리로 화해서 구별될 것, 우리의 생각은 그날에,  소망도 사모도 집중해야 하는 것, 이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원수, 우리에게 있는  정과 욕 이놈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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