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우주의 종말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2일 토새

 

본문 : 벧후 3:8-12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우리를 대속하실려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심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그분이 마음대로  주장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데에는 이 하나님께서 전적  우리의 구원 이루는 일에 도우십니다. 이것만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어 놓으시고 버러지 한 마리가 나고 죽고 움직이는 것도  다 주님이 개별적으로 주권 섭리하시는, 개별적으로 주권 섭리하신다 그 말은  하나 하나, 한 건 한 건 개별적, 그걸 개별적이라고 말하고, 주권 섭리한다 그  말은 무슨 다른 것에게 조그만치도 피동없이 혼자 당신이 주장하시는 홀로의  주장하는 그 권세를 가지고 섭리하신다 움직이신다 그말입니다. 모든 만물을  움직이시는 거.

 그런데 우리가 구원 이루는 일을 직접 하든지 간접 하든지 구원 이루는 일을 할  때에는 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 구원 이루는 일을 돕는 일 하십니다. 전적  돕습니다. 도우나 우리 어리석은 생각으로 볼 때는 오히려 방해하는 것 같이도  보여질 때가 있지마는 그게 방해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실상은 돕는 것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6·25 때에 공산주의자들이 손목사님을 고문을 하고 고형을  하고 마지막에는 총으로 쏴서 죽였으니까 손양원목사님이 구원 이루는 일을  방해하는 것 같이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실은 방해하는 것이  아니고 손양원목사님은 그때에 그리 안 해도 세상을 떠날 그 시간이 닥쳤는데  그저 방안에서 앓다가 죽었으면 그 무슨 죽음에 대해서야 가치있을 것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나 죽는 시간에, 또 자기에게 그런 신앙이 준비되어 있었지마는  주를 위해서 죽을 때도 주를 사랑하고 죽을 때에도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고 죽어도 주님에게 사랑함이나 순종하는 것이 요동치 아니하고 이렇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그 손양원목사님에게 대해서는 주님 앞에 설 때에, 만인간  앞에 설 때에 그 영광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주님이 그  모든 것을 섭리하셔 가지고 만물을 이용해서 구원을 도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말은 구원을 이룬다 말인데, 하나님은 이것만  시키시기 때문에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인데 그것은 전적  구원 이루는 그 일만 하시게 됩니다. 나를 보내신 것이 다른 데 보낸 게 아니고  이스라엘 나라의 잃어버린 양 외에 다른 데 보내지 않았다 그말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그 일 외에는 주님이 안 하신다 그말입니다.

 '네가 믿음이 있으면 산이 옮겨져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복종하리라' 그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그 역사를 할 때에는  하나님이신 주님도 전적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구원 이룸에 전적 다  바쳐서 역사해 주시고, 또 당신만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만물들도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이 일만 하면 전체가 그 만물이 구원 이루는 이것을 위해서  이용당하려고 기다리고 있고 또 결과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해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전부가 우리가 구원을 이루려고 할 때에는 다 협조가 되고 이용이 되고,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을 아니하고 다른 일을 달리 탈선돼 나갈 때에는 실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은 우리의 대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게 잡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주의자가 내게 칼을 가지고 예수믿지 말라고 달려들었다 할지라도  내 생명이 끝나는 시간이 됐으면 이미 끝나는 데에 거저 끝나는 것보다도 주와  복음을 위해서 생명이 끊쳐지는 그런 위협을 당해도 신앙이 요동치 않고 신앙을  지켜 나갈 때에 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고, '이들이 죽어도  요동치 않는 것 보니까 이 무슨 세상에 우리 모양으로 공산주의를 무슨 소망한다  이런 것도 아니고 천국 심판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하는 것 보니까 천국과 심판이  있는가 보다.' 해서 그들에게 참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될 것이라 그거요.

 그러나 내가 그때에 생명이 끊어지지 아니할 그런 때 같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칼을 견주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또 이 사람이 아무리 신앙을  반대하려 해도 신앙을 지켜 나가도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또 구원해  주셨다, 또 그것을 증거해서 그 칼이 죽을 때가 됐으면 가치있는 그 죽음을  하도록 하니까 이미 없어지는 그 죽음을 패물을 참 보배롭게 이용한, 패물을  보배롭게 이용한 일이 되겠고,  또 죽을 때가 안 됐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그들이 말해도 그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또 이 하나님의 권능이 인간들의  죽음의 모든 형편 만들어 놓은 것을 능가하신다는 것을 또 증거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구원을 준 것이 되고 자신도 그래도 신앙이 요동치 않았으니까  인간과 주님 앞에 설 때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된다 이거요.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이 하나님은 전적 우리를 돕습니다. 또 모든 만물,  반대하는 공산주의도 내가 구원을 이루는 그 일만 하면 제가 아무리 나를  미워해도 결국은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도움만 되지 손해는 하나도 못  보입니다. 그러기에 창조주와 피조물 이 전부가, 내가 구원을 이루는 이 일을 할  때에는 그 전부가 다 돕는 것들이 되어지고 내가 이 구원을 떠나면 나를 위하는  아주 사랑하는 그 부모 형제라도, 부부라도 내가 구원 이루는 일을 떠나면  결국은 그 사람은 나를 해치는 일을 하는 그 결과가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첫째로 우리가 믿는 연습을 해서 언제나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 한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이 한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이  한가지를 잊어버리면 구원이 다 헛일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그렇게 담담한 그런 심정을 가진 게 아니고 말할 수 없는  예민하고 참 간절한 그 심정을 가지고 계시는 것.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도 일각이 여삼추, 일각이 여삼추라 말은 그 한시간이  한 3년쯤이나 멀다 그말입니다. 한시간이 3년쯤 먼 것이 마음이 더 뜨거운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쯤 되는 그것이 뜨거운 것입니다. 일각이 여삼추 그런 것  몇백 배라 그 말이오. 이런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전능자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염려하고 고대하고 있는 것. 이래서 우리가 구원만 이루려 하면 모든  만물을 다 동원 시키는 것.

 '네가 믿음이면 이 산을 바다에 옮겨지라 할지라도 그대로 된다' 그말은 네가  믿음 이루는 믿음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인데 순종하는 것은 다 믿음 이루는  것이라 말이오. 구원 이루는 것이라 말이오. 믿음을 만드는 것은 구원을 이루는  거라. 믿음은 구원 이루는 것인데, 네가 구원 이루는 일을 하면 산이 옮겨지기도  하고, 뽕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는 그거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되어진다.

그러면 네가 구원만 이루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은 네 구원 이루는 일을 위해서  전적 다 협조하고 이용되어진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둘째는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마는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만 우리 마음은 아무래도 현실 닥치면 그 현실에게 붙들리기 쉽습니다. 현실  닥치면 현실 그것만 자꾸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현실을 어떤 현실을 닥쳤었든지 닥쳤을 때에 그 현실에 관련된 사람이든지  일인든지,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아름다운 것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자기가 닥친 그 현실, 장소나 시간이나 거기에 있는 관련된 모든 것이나 그것을  생각지 말고, 그 생각이 거기에 붙들리지 말고 그것만 생각지 말고 일단 현실을  두고 네 마음은 네 종말인 예수님의 재림과 네 죽음이라는 거기에 가 가지고  네가 생각을 해라. 네 생각이 거기에 가거라.

 거기에 가 가지고 거기에서 보이는 것도 있고 들리는 것도 있고, 거기에서 보면  인간살이를 끝내고 인간살이를 끝낼 때의 그 형편을 자기가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또 인간살이를 하나님이 다 검사 하는 그 검사를 거기서 볼 수가 있고 또  인간이 영원 무궁이라는 그 무궁을 내다 볼 수가 있고,  그러면 인간의 종말 시간은 세상이 끝나는 시간이요 또 영원 무궁이 시작하는  시간이라. 세상이 끝나는 시간이요 영원 무궁이 시작하는 시간이요 영원 무궁과  이 세상살이를 하나님이 다 검사해 가지고 결정 지우는 그것이 끝나는 시간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거기에 가니까 세상살이에 후회되는 것도 있고, '참 잘 됐다'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있고, 또 무궁세계를 보니까 그때에 '아, 그리  됐으면!' 소원하는 일도 있고 후회하는 일도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거기서 네가  후회되는 것도 찾고 잘됐다 싶은 것도 찾고 소원되는 것도 찾고, 그때에  소원되는 것이 참 소원이고 그때에 후회되는 것이 참 후회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에 소원되는 것도 후회되는 것도 이 현실이라는 데에서  그것을 만들 수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네가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될거냐?'  하는 것을 현실에서 할 것을, 우주의 종말 네 개인의 종말 거기에서 네가 결정을  지워 가지고 그것을 현실에 와서 작용해라. 현실에 와서 그것을 공작해라.

그것을 네가 만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제일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과 또 만물이  우리가 믿음을 지켜 구원 이루려 할 때에 전체가 협조한다는 것, 나를 반대하는  그것도 협조하는 것. 내가 믿음을 이루어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데에는 어떤 것이라도 다 나를 돕는 것이 되고 말지 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하고. 이것을 믿는 것이 제일  어렵고,  그다음에는 자기 현실에 죽음이 닥쳤는데 이 죽음에게 붙들려서 아무리 안 하려  해도 '아, 어쩌면 내가 살겠나? 아이구, 나는 죽는다.' 거기에 내 마음이  붙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감옥에서 내가 붙들려 죽지 않는 것인데, 거기서  석방되는 것은 해방되는 것이니까 그 죽음이라도 죽음 그것을 일단 놓고 자기가  자유롭게 마지막 종말 시간을 생각하는 것, 자기 마음이 죽음이라는 현실 닥쳐도  죽음에 붙들리지 않고 마지막 시간에 가 가지고 그 시간에서 생각한다는 것 이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자기가 슬픈 일이 닥쳤으면 슬픈 그것이 현실인데, 슬픈 일을 닥쳤는데 그  슬픔에 붙들려서 마음도 슬픔의 마음, 정신도 슬픔의 정신, 감정도 슬픔의 감정,  그 모든 의지도 소욕도 전체가 슬픔에게 붙들려 가지고 슬픔의 사람이 완전히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슬픔의 사람이 되어지면 이제는 그 행동은 슬픔의 행동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슬픔을, 거기에 슬픔에 붙들리지 말고 슬픔을 탁 집어 던져버리고  슬픔을 두고 '내가 마지막 죽을 때에 어찌 되느냐?' 죽음에 가서 생각하고  마지막 우주에 종말에 가서 생각하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 슬픔에게 붙들리지 않고 종말에 가 가지고 자기가 뒤로 돌아 보면서 이  슬픔이라는 슬픔을 가진 이 현실을 생각해서 '아, 저게 저 슬픔이 있는데 슬픔은  저걸 어떻게 이용을 한다. 죽음이 있는데 죽음은 어떻게 이용해야 된다. 저기  애정이 있는데 저 애정은 어떻게 이용을 해야 된다' 그 현실에 있는 것을 자기가  그것을 이제 이용해 가지고 작용하고 잘 요리할 수가 있다 말이오. 잘 이용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것을 지극히 쉬운 데에서 연습을 해 보면 '이거 참 어렵다' 하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어려운 것을 발견하고 하니까 되어지고 이렇게 조금씩 해서  되어진다고 하면 이걸 맛을 봐서 하기를 시작해서 이걸 한다고 하면 벌써 어떤  현실이라도 먹어 들어갑니다. 먹어 들어가서 어떤 현실이라도 착 이길려면 이길  수 있는,  사형장에서도 죽음이라는 걸 딱 잊어버리고, 내가 죽음이라는 그 현실에서  마지막에 종말 시간에 '나는 죽을 사람이니' 죽음에 가서 한번 생각하니까,  현실에 죽음이라는 것이 닥쳐졌는데 마지막에 세상 끝날 하나님 심판 받을 것  무궁세계를 가서 거기에 가서 생각 해 보니까 현재 내가 죽음이 닥친 그  죽음에서 죽음에게 붙들리지 않고, 죽음에게 종이 되지 아니하고, 죽음의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내가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그 죽음을 믿음에  유익되도록 이용한다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이용만 되면 그 죽음은 자기에게 큰  구원이 됩니다.

 십자가의 강도가 그거는 뭐 변함없는 죽는 죽음입니다. 죽음이지만 그 죽음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구원을 소망하고 주님에게 자기를 부탁하고, 그 죽음에  붙들려서 지금 죽음이 두려워하라는 대로 두려워하고 죽음이 슬퍼 하라면  슬퍼하고 죽임이 지금 '네가 살길을 찾아라' 이렇게 이 죽음이 꾀우고 있는데  한편 강도는 거기에 꼬였다 말이오.

 꼬여 가지고 거기서라도 지금 주님을 욕하고 반대하면 자기에게 무슨 동정이  내려올까 해서 지금 했지만 사형에 당한 그 사람 하나는 완전히 죽음이라 하는  것을 탈피하고 이 주님을 바라보면서 죽음이라는 그 죽음도 주님을 바라보는  데에 자기 구원에 이용을 해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거 순교자입니다. 당장  순교자가 돼 버렸소. 순교자는 뭐이 순교자입니까? 죽음이 닥쳤지마는 죽음을  잊어버리기까지, 죽음에게 붙들리지 아니하고 죽음을 능가한, 주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주님에게 순종하고 주님에게 부탁한 그것이 죽음에게 제재받지  아니하고 죽음에게 붙들리지 아니하고 죽음을 완전히 초월해서 주님을 바라봐서  그거 순교자라 말이오. 순교자는 다 그겁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다 같은 입장에서 한 강도는 최고의 신앙인 순교의  구원을 이루었고 하나는 비참한 멸망을 당한 그것이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두고 인간은 두 쪽으로 갈라진다 그 말이오. 인간은 두 쪼가리로 갈라진다 그  말이오. 믿는 사람이라도 그 생활이 두 쪼가리로 갈라집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한번 더 재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믿는 것,  우리가 구원을 이루려고 할 때에는 모든 것이 나에게 직접이나 간접이나 모순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구원을 위해서 전적 협조하고 이용당한다 말이오.

이용물로 이용되기 위해서 그게 지음을 받았어.

 그러나 내가 구원 이루는 일을 두고 뭐 명예를 한다든지, 세상 지위를  한다든지, 세상살이 한다든지, 어떤 거든지 그런 것을 위하려고 그런 것을 내가  마련하는 데에 거기에 속하게 되면 하나님도 모든 피조물도 결과적으로는 내  원수가 되고 나를 해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거 믿는 것이 제일 어려워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지니' 이 한 가지 잊지  말아라. 이거 제일 어렵고 중요하고,  그다음으로 어렵고 중요한 것은 내가 현실에 붙들리면 벌써 현실은 죄 가운데  있는 것이고 악한 자 가운데 있는 것이데, 현실은 악한 자 가운데 있는 것이  현실이라 했는데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느니라' 이랬어, 요한일서 5장에.

 그러기에 이 현실에 붙들리면 벌써 그거는 자기 중심이라는 함정 속에 빠져서  희망이 없어. 죽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현실은 자기 현재라는 그  시간이니까 현재라는 시간에 붙들려서 현재만 생각 하지 장래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궁도 생각지 않는다 말이오. 현재라는 시간에 붙들려서 현재만  생각하는 자가 되어진다 그거요.

 또 장소로서는 이 자리에서 어찌 되느냐? 그 자리에서 어찌 되는 그 자리만  생각하지 그 장소밖에 영원 무궁한 세계, 영계와 물질계가 통일되는 그 세계  그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조그만한 현재, 현 장소, 자꾸 현장 이것만 자꾸  생각한다 말이오. 그 현장에 붙들리면 죽습니다.

 또 그 시간에 무슨 아주 재미있는 것이 생각이 붙었다든지, 또 미움이  닥쳤다든지, 두려움이 닥쳤다든지, 싫은 것 닥쳤다든지, 괴로운 것 닥쳤다든지  그것만 자기가 생각해서 그것만 상대하기 쉽다 그거요. 이걸 초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현실을 일단 버리고 마지막에 죽음이나 이 우주의 주님의  재림인 마지막 시간이나 거기에 가 가지고 정신차려서 이 현재라는 것을 어떻게  요리하나, 이 현재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작용하나, 이걸 어떻게 이용을 하나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에 첫째 어려운 것 둘째 어려운 것, 이제 첫째  어려운 이것을 한 자국 떼 놓습니다. 또 둘째 어려운 것도 한자국 떼 왔습니다.

떼 놓으면 그 다음에는 걸어가게 되어져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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