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거룩과 경건으로 주의 날 준비

 

1989. 4. 20. 목새.

 

본문: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는 신앙 생활할 때에 교리 신조를 확정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믿든지  저렇게 믿든지 확정을 해서 교리가 하나가 되면 그 사람의 신앙 행위는 하나가  됩니다. 또 교리가 둘이 되면 그 사람 신앙 행위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기회  따라서 둘이 됩니다.

 행위가 하나된다 말은 교리가 단일 교리로 된 그 사람은 언제든지 그 교리대로  실행할 수 있다 하는 그 말이 아니오. 실행 할 수 있고 또 실행 못 하는 사람도  자기는 그와 같이 아니했기 때문에 그것은 죄로 회개를 해서 그 교리대로 행한  사람이 됩니다.

 교리대로 그대로 실행한 사람은 실행함으로 자기가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그  구원을 자기가 받을 것이요, 또 실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자기가, 행위 구원 말입니다. 받지를 못하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그대로 행하지  못한 것을, 자기가 교리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행하지 못했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잘못이라 고해서 사유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 두 교리를 가진 사람은 이런 형편에는  이렇게 살고 저런 형편에는 저렇게 살고도, 자기는 하나님의 도리를 어겼다는  주님 앞에 사죄를 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도 의가  되고, 행하지 못한 것을 주님 앞에 죄인 줄 알고 깨닫고 사유함을 구하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것이 제일 좋고, 살지 못한 것은  삐뚤어지고 잘못됐다는 그 죄라는 것을 깨달아서 주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구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못했을지라도 잘못한 것을  주님 앞에 고해 가지고 사유함을 받습니다. 사유함을 받지마는, 잘못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고하지도 안하고 사유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회개할 기회가 아직 감감합니다.

 그러기에 올바른 교리를 알고 교리 위반이 됐을 때에는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지마는, 사유함을 받으니까 그 회개가 됩니다. 회개가 되면은  새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그 사람이 대속의 공로를 입음으로써  그 은혜의 혜택을 입어서 자기가 의를 건설할 수 있지마는, 행하지 못했으니까  의는 건설하지 못하지마는 사유함은 받습니다. 그러면 다시 그 사람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행한 사람은 새로운 생활을 했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이 교리는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교리는 꼭 단일 교리를 가져야 되지, 한 교리를 가져야 되지 두 교리를 가지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한 예수 믿는 이치에 대해서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뿐입니다.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지 하나뿐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를 '백 목사님은 양극이라, 이 극이 아니면 저  극이라,'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양극이요 중은 없다' 이렇게 하는데 그게 그  사람들에게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양극이라는 그 말은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옳으면 옳고 아니면  아니고, 틀렸으면 틀렸고 옳으면 옳지 그 중간은 없는 것이 그게 바른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욕을 해서 그렇게 합니다. 또 '이는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는 그거  다 마귀 소리요 욕하는 소리입니다. 강경파도 죄요 온건파도 죄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지나면 없는 것을 더 가해서 지나면 성경에 기록한 형벌로  그에게 가해 주시겠다고 성경이 말했고, 또 감하면 성경에 기록한 구원에서  제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리에는 어누리가 없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이거 모두 전부 흐려 가지고, 흐려 가지고 쪽발로만 걸어가,  쪽발로 걸어가라 말은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은  없다는 말인데, 전부 요새는 중을 원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있다가 요러면 요리  붙고 조라면 조리 붙고 이런 아주 근본 본질상 창기입니다. 본질상 창기의 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이것은 저들의 비위에 맞습니다.

 교리라 말은 믿는 도리를 깨달은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고 말하는데, 교리라 말은  깨달음이란 말인데 깨달음도 일반적으로 교리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역사성이  있어서 그 한 때만 그런 게 아니고 언제든지 쭉 계속해서 그대로 내려오는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 해서 역사성이 있어야 되고, 또 혼자만 말할 게 아니라 여럿이  그래야 된다고 사회성을 가져야 된다 하는데, 사회성, 역사성 가지는 것은 그것은  일반들에게 선포된 것을 말하고, 혼자 깨달아도 바른 깨달음이면 그것이 바른  교리입니다. 아무리 그 시대가 전부 다 그렇다 하고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그렇다 할지라도 잘못 깨달은 것은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단일 교리를 자기는 가지고 살겠다 하는  요것을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고 그렇지 중간은  없습니다. 중은 없다는 걸 이걸 꼭 확정을 지우고, 자기는 이래 깨닫고 믿든지  저래 깨닫고 믿든지 그렇지, 거게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그 창기성 그런, 그게  유다서에 말한 음란성입니다. 그것을 행하면은 육체의 모든 음란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단일 교리에 대해서 어제 한 가지 말했는데, 여러분들이 '원 저래  해석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지, 이것을 확정지우는 것이 내게 별로이  보여지지를 안합니다.

 그러면 로마서 6장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라' 이랬으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이렇게 뚜렷이 말해 놨는데,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죄값으로 오는 질병은 없다,' '죄 값으로 드는 병은 없다' 그 말을  그라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했는데, 또 야고보서 5장에 보면은, 5장 16절에  보면은 '서로 죄를 고하면서 병낫기 위해서 기도하라' 했는데, '기독자에게는  죄값은 없다, 죄값으로 병드는 건 없다. 기독자에게는 죄값으로 병드는 일은 없다.'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믿어요 안 믿어요? 언제든지 교리는  단일 교리로 확정을 지우십시오.

 이래서 서부교회 와 가지고 뭐 수십 년을 믿어도 교리와 신조가 저와 같지 않는  사람 있고, 또 양성원에 암만 공부를 해도 같지 않는 사람 있고, 같은 사람 있고  있습니다. 있는데 요런 것도 나는 그걸 믿는 내 교리는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죄값으로 병드는 일은 없다 모든 병드는 것은  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오는 병이지,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건설을 위해서 드는 병이지 그 죄의 값으로 오는 병은 없다.' 이렇게 나는  믿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권면한다든지 그들에게 물을 때에 답을 해 주는 것은 그  깊은 교리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지마는 내가 말하는 중심과 그 사람이 귀로 들리는 거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따라서 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저 그래 하는  것이지 중생 된 자들에게는 죄의 댓가로, 그 죄 때문에, 죄의 댓가로, 죄의 삯으로  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는 것은 그것은 무슨? 성경 아닙니까? 그거는  무슨 성경 아니요? 자, 대답해 봐요. 저 양성원 학생들, OOO조사? 성경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는데. '죄값으로 오는 병은 없다'하는 그 말이 어찌 돼요? 그래  죄의 삯은 없다 말이요? 어째요? 그래 담당해서 그래? 그러니까 그만  담당하셨으면 그러면 한 죄에 담당을 두 번 해요? 한 죄에는 형벌 한 번 받으면  그만인 것이지, 또 두 번 받거나 그런 법이 없습니다. 그라면 어찌 돼요?  예수님이 담당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죄의 댓가로, 죄의 값으로. 죄의 심판으로  오는 그런 사망은 없습니다. 그런 질고도 없습니다.

 그것은 위에 절수는 불신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안할 때에는 네가  이랬는데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거게서 완전히 해방, 대신했기 때문에 해방해서  대형해 준 것으로써 이제 너에게는 형이 없게 됐다.' 그말입니다. 죄의 삯이라  하는 그것은 예수 믿기 전에 예수님의 대속이 없이는 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의 댓가는 사망인데 예수님의 대속을 네가 입었기 때문에, 은혜는 그 말은,  예수님의 공짜배기로 대신 형을 받아 준 대형 때문에 너에게는 영생이 있지  죄삯은 없다, 죄값은 없다 그말입니다.

 또 그라면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병 낫기를 위해서 죄를 서로 고하면서 기도해라.

그래야 그 기도에 웅답이 있게 된다. 그러면 그거 무슨 소리요? 그런 또 뭐요?  그것은 죄의 값이 있다 말 아니요? 어찌 돼? 그런 죄의 값이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저 양성원 학생 대답해 봐. 안 보이는 사람 더러 있다. 저 포항에  O조사님 안 보이네. 왜? 아따 충성한다. 그럴 때는 안 가는 게 좋아. 짜다라  알뜰히 하는 것 같지마는 그거 되는 게 아니라. 알뜰히 하는 것 같아도 뭐 삼일  예배 갔다가 거기 가는 것보다도 여기 한 마디라도 더 듣지. 아직까지 확정을  지우지를 못하고 있어.

 교리를 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위가 두 가지 행위하고, 그리 서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위를 세 가지 행위하고, 교리를 뭐 이래도 저래도 된다 하는  사람은 형편에 따라서 그 행위를 이래도 저래도 한다 이래 됩니다. 교리 하나  외에는 가지지 안하고, 그 하나를 가진 사람은 죽어도 이 교리대로 살아도 이  교리대로, 이 교리를 범했으면 범했고 행했으면 행했지 이리저리 한 수는 없다는  그 단일 교리를 가지되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가집니다. 왜? 생명은 교리를,  생명을 위해서 바치지는 안하지마는 자기 생명은 교리를 위해서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교리는 자기 생명보다도 더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면서 병낫기 위해 기도하라' 이랬으니까 그 성구는  어찌 되겠어? '여기 보라 이랬는데, 병낫기를 위해 죄를 고하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이랬는데 죄값은 없다. 중생된 자들에게서는 죄값으로 오는 병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거 틀리지 안했느냐?' 이 성구를 가지고 그렇게 해서 또 저희들이  죄를 지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죄를 지어.

 거게 말한 '죄를 고한다' 말은 이 기독자에게, 중생된 자에게 병이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병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자기 구원이  안 되는 것은 다 죄값입니다. 삐뚤어진 것이오. 삐뚤어진 그거 때문에 구원이 안  되니까 삐뚤어진 것을 그걸 고치기 위해서, 삐뚤어진 거 고쳐서 구원을 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죄를 서로 고하면서 병낫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지,  죄값으로 믿는 사람에게 네가 죄 지었기 때문에 죄값이 이래 온다는 그것으로  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죄값으로 와서 죄값으로 그 사람이 질병을 당했다고  하면은 죄값으로 당했으니까 그 사람은 병 앓는 그것이, 병 앓는 그것이 자기에게  병 앓은 그 효력이 있겠습니까? 벌의 댓가로 끝났습니까? 어째요? 죄의 값으로  왔으면 그 효력이 있습니까 효력이 없이 끝나 버렸습니까? 끝났어. 효력 없어.

값으로, 죄값으로 받았는데 무슨 효력이 있어? 우리에게는 절대로 질고당하는  그것이 얼마를 당했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구원되는 효력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죄의 값으로서, 과거에 지은 죄의 값으로서 이제 죄값 때문에 죄의 값으로  때우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새로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 모든 질고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고하라 말은 그 죄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네가 이런  거 저런 거 잘못된 걸 서로 고해서 건설적으로 자기에게, 그 죄를 고해서  고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새로운 수입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값으로, 이 죄의 값이라면은 그 죄값으로 있는데 그 죄를 고치면,  죄를 고치면 수입이 있습니까, 이제 죄값으로 됐으면 수입은 없고 죄의 댓가로  했기 때문에 그런 새로운 수입은 없고 이미 죄지은 그것의 댓가 내서 청산될  것뿐이지 새로운 수입은 있을 리가 없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빚진, 빚진 것 때문에 돈 갚았으면 빚진, 빚이 졌는데, 빚이 졌는데 빚이  만일 십만 원이 졌습니다. 십만 원이 졌는데 이제 그 사람이 빚을 십만 원 졌는데  돈 십만 원을 그이에게 줬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그 십만 원은 자기에게  없어졌어. 빚갚았으니까 없어졌지. 없어졌는데 그 만일 빚갚을 것이 없는데 돈을  십만 원을 줬으면은 어찌 됩니까? 그거는 없어졌습니까, 그 사람에게 지금 돈을  십만 원 줬으니까 채권이 자기가, 채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어찌  됩니까? 빚진 사람이 그 빚으로 십만 원 갚았으면 그것은 자기가 채무했던,  빚졌던 채무가 없어지는 것이고 빚진 것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자기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이 없는데 십만 원을 줬으면 그거는 채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를 고하면서 이렇게 그 죄를 고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죄에 대해서 채권자 되는 것이요, 채무를 벗는 것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죄를 고해서 죄를 하나 회개하면은 채무를 벗는 것입니까,  채권을 가지는 것입니까? 예? 채권자가 되는 것입니까, 채무를 벗는 것입니까?  이거 작정을 못 한 목사가 백 명에서 구십구 명이 이상될 거고 백 명이 다  될란지 모릅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그렇게 자꾸 시쁘게 듣지 안하고 이게 나가면 뭐 설교록이 온  세계에 다 나가는데 나가면 자기네들이 실컷 논평할 것이요. 논평하면은 '이렇게  엉터리 같은 소리 한다' 하면서 성구를 들이대면서 '이 교리는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깜짝 놀라서, '아, 참으로 이게 복음이로구나.' 하는  것을 놀래서 가지는 자도 있을 것이라. 내나 여기 우리 진영에서도 그래. 이  저거네에게 이래 가르치지마는 이 복음이 저거 복음이 안 돼요.

 내가 과거에 빚이 십만 원 졌는데 가지고 가 가지고 내가 그전에 빚진 거 내가  십만 원 가지고 왔습니다. 십만 원 갖다 줍니다. 십만 원 갖다 주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 십만 원을 받았어. 십만 원을 받고서 차용 증서를 써 줍니다. 차용 증서를  써 줘. '내가 그전에 빚진 거 내가 지금 갚는데 이거 차용 증서 뭐 차용 증서를 써  줍니까?' '내가 빚으로 준 것을 한번 받지 두 번 받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또  십만 원 자기에게 빌려 줬다가 십만 원 내가 받았는데, 또 십만 원 가지고 왔으니  내가 이거 뒤에, 날로 뒤에 내라 할 거고 내가 차용 증서 써 줘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십만 원 갚았습니까?' 그 갚았소 안 갚았소? '그전에 십만 원 갚지  안했소?' '내가 언제 갚았습니까? '내가 받았습니다.' 그래 그라면 누가 갚았소?  주님이 갚으셨어. 주님이 갚았기 때문에 죄는 두 번 받을 권리가 없어요,  우리에게. 우리가 죄의 댓가로 두 번 받을 권리가 없어. 하나님의 법이 그래.

예수님이 댓가 냈기 때문에 우리가 댓가를 내지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죄의 댓가로 우리가 질병을 걸리거나 망하거나 흥하거나 하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확정을 짓고 확신을 해야 되지 이걸 확신을  안 하면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가지를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두 마음을  품어서 정함이 없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얻기를 바라지를 말라' 이랬어.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실패 오는 것도 실패 오는 그걸 실패를 내가 노력을 해  가지고 조금 성공을 했으면 성공을 했으면 성공한 그게 잘못된 댓가를 지금 낸  빚을 갚았소, 조그매 했으면 한 그것이 저축이 됐소?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실패를 했습니다. 뭐 실패가 당했어. 실패 당했는데 그 실패 당한 데에서 그것을  조금씩 뭘 이래 좀 해서 정립을 하면은 그거 조그매씩 저축이 되면 저축된  겁니까, 빚갚는 것입니까? 빚갚는 게 아니라 저축되는 거야. 모든 게 그렇습니다.

질병이고 모든 거, 예수님이 이걸 담당하셨다는 이거 예수님의 대속을 똑똑히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이래서 언제든지 우리는 죄값은 없다. 죄값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죄값은 우리에게 없다. 그러면 의의 값은 우리에게 가득 찼다. 내가 무슨 의를  행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행했기 때문에 그 의가 우리에게 많아서 의의  댓가는 우리에게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생이라면은 의의 댓가 중에는 제일 큰 댓가가 영생인데. 의의  댓가 중에 제일 큰 게 영생인데 그러면 영생 댓가를 내가 뭐 했다고 영생 받아?  뭐 했다고 영생 받습니까? 예수님이 대신 의를 행한 예수님의 대행의 의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입술 뿐이지 분석을 해서 믿을라고 하지를 안해.

 이러기 때문에 전부 흐리멍덩한 신앙을 가지고 어짜든지 요새는 믿는 것이  하나님이냐 네냐? 뭐 백의 백을 전부 하나님과 자기와 맞설 때에는 하나님 다  배반하고 제 주장으로 해 나가면서도 이게 예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거  참 기가 찰 일입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말씀과 같은 이런 시대가 자꾸 오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은 교리를 둘을 가지지 마십시오. 한 교리를 가지십시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그래 작정해 놓고, 그렇기 때문에 교리를 작정할 때  아무나따나 듣는 대로 다 작정합니까? 아니오. 그 교리를 성경을 상고도 하고  기도도 하고 영감도 받고 이래 가지고 확실한 게 아니면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죄값으로 오는 병이나 실패나 망하는 것이나 어떤 것도  없다' 하는 그것을 지금 이렇게 선포하는 이것이, 선포하는 이것이 나중에 나가면  뭐 이거 굉장한 정죄를 하고 시비를 할 거라. 시비해도, 시비하면 하는 것만치 그  사람은 마지막에 와 가지고 영원히 내 밑에 무릎을 꿇어야 될 것이오. 옳은  사람한테 그르다고 정죄했으니까 무릎을 꿇어야 될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그저 아무나따나 이렇게 저렇게 주 붙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말이오.

책임을 지고 하는 말인데, 도무지 여기 양성원에 와 가지고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사람이 조금 아주 저 삐뚤어진 데로, 망할 길로 홱 돌아서 망할 길을 향해서 가던  이 자가 조그매 돌아와 가지고, 지금 이 한 사십오 도나 돌아와 가지고 그만  돌아서 조금 그 돌아오면 될 터인데, 요랬다가 그만 하기가 마쳐 버리면 가  가지고 그만 또 그대로 돼 버리고 이러니까, 한번도 백팔십 도의 전환으로  돌아서는 사람이 없다 그거요. 이 얼마나 중요하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이 서부교회에서 여게서 자란 양성원 학생들과 다른 교회서 한 거  여러분들의 교리와 신조가 아주 판이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거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확정을 지워야 돼요.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아, 이 백 목사님이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질병이 들어도  그거는 죄값으로 든 것은 아니라더라. 어떤 실패와 낭패가 당해도 죄값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더라. 그거는 구원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지,' 그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이라 하면 새로운 건설입니다. '새로운 건설 위해서 오는 것이지, 과거의  부채를 갚는 그런 것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더라.' 하는 것을 말해 가지고 그  교역자와 틀리면 여러분들이 자꾸 무언중에, 자꾸 말하니까 차차 차차 쑥물  먹여서 자꾸 이거 변화시켜 버건다 말이오. 옳은 이 도리를 배워 가지고 가면  그만 전부 제 복음화시켜 버려. 성경 교리화시키지 않고 진리화시키지 안하고  적화시켜 버려.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교역자 밑에 있는 교인들은 이렇고, 저런 교역자 밑에 있는  교인들은 저렇고, 우리가 총공회 산하에 있지마는. 이러니까 대 집회 때 와 가지고  이래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달라서 배치되는 게 많아. 그래 놓으니까  여게서 갈라져.

 우리 진영에 기다가 갈라지는 사람들이 보면은 집회 때 그때 교리와 신조가  가장 세밀하게 나타나니까, 그때에 가르침과 배움이 이 교리 신조가 틀린 사람은  트집을 잡고 이래 가지고 '어라 여기 교인들 데리고 왔다가는 내 교훈은 다 헛일  되겠다' 이러니까 그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집회 참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면 벌써, 그 사람은 이 진영에서 나갈 사람이요, 안 나가면 이  안에서 암초가 돼 가지고, '애연의 숨은, 애연의 숨은 암초라.' 애연의 숨은 바위라  말은 애연의 숨은 암초라 말입니다. 애연이 뭐이요? 애연이 예수님의 피잔치요.

예수님의 피잔치가 애연입니다. 예수님의 피잔치 하는 데에 예수의 피를 믿는  것같이 있지마는 겉어머리는 다른 것이 아니지마는 속에는 이 큰 바위덩어리가  있어. 그라기 때문에 배가 가면은 탁 부딪혀 가지고 그만 배가 깨진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껍데기는 같지마는 속은 다르다 그거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을라면 바로 믿으십시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심판을 받을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옳으냐 그르냐 다 조사가 있고 검사를 맡습니다. 맞아 가지고 거게 통과돼야지  거게 통과 안 된 거는 천하가 인정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공연히 헛 믿고  헛되이 안심하고 있지 말고 꼭 교리와 신조를 하나씩 확정을 지우십시오. 이  작정을 지우는 데에서 우리에게 어지러움이 없어지고 이 어누리하는 그런 못된  비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그 마귀 형상이, 이라면 이렇고 저라면 저렇고  하는 마귀 형상이 그것이,  그 사람이 흐린 것은 교리가 흐린 것이오. 그 사람이 팔방미인 모양으로 행위가  그런 사람은 교리가 그런 사람이오. 그 사람은 칼 같은 사람이라.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지 어누리가 없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그렇게 타협이라는  그런 게 없다. 그 사람은 교리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교리가 우리를 끌고 나갑니다. 단일 교리에, 옳은 단일 교리를 가진 사람은  변동을 못 합니다. 자기는 죄를 지었으면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음으로 바로  됩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바로 되는 것도 있고 잘못한 것은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으로 사함받음으로 바로 되는 것 있어. 바로 되는 게 두 가지 종류가 있어.

하나 바로되는 것은 성화구원의 구원이 이루어졌고, 잘못된 걸 사함받은 것은  정죄가 없어져 버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시간 한 십분 됐습니다. 빨리 가서 주일학생들 중간반 학생들을 보내도록  하십시오. 하루 삼십 분 기도, 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언제든지 광고한 대로  기억할 것. 어제는 권사님은 다 왔고 목사님들도 다 왔고 장로님들은 열 분이  왔습니다.

 이라면 떡 보기를 '아따 저 어짜든지 제 자랑쟁이로 이 서부교회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 자랑한다.' 요렇게 들리는 귀신이 들어 가지고 그래 들리는 건  그래 들리고, '이거 교회서는 자꾸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강조를 해서 기도하러  갔다 은 사람을 계수를 해 가지고 광고를 하고 이렇게 해서 자꾸 하는데, 우리는  여게 대해서 기도하라는 말도 없이 이래 지내니까 이거 어찌되노? 너무도 차이  있다.' 이래서 혹 보고 깨달아서 조그마치라도 고쳐 주님의 수입이 되고 자기네들  구원이 좀 될까 해서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인데 그걸 오히려 조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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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81 강도/ 본문: 누가복음 23장 39절-43절/ 800324월새 선지자 2015.10.22
680 강청신앙/ 누가복음 11장 5절-13절/ 860110금새 선지자 2015.10.22
679 강청신앙/ 누가복음 11장 5절-13절/ 860109목새 선지자 2015.10.22
678 개교회-1계명-하나님의 속성/ 출애굽기 20장 3절/ 870325수새 선지자 2015.10.22
677 개인 교회를 건축해 나가는 방편/ 에베소서 6장 10절-20절/ 880615수새 선지자 2015.10.22
676 개인신앙 성공의 요소/ 에베소서 6장10절-20절/ 880612주전 선지자 2015.10.22
675 개인과 우주의 종말/ 베드로서 3장 8절-13절/ 820101금야 선지자 2015.10.22
674 개인과 우주의 종말/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811227주전 선지자 2015.10.22
673 개인과 우주의 종말/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11227주전 선지자 2015.10.22
672 개인과 우주의 종말/ 베드로후서 3장 8절-12절/ 820102토새 선지자 2015.10.22
671 거듭남/ 요한복음 3장 3절-8절/ 880717주새 선지자 2015.10.22
670 거듭남/ 요한복음 3장 3절-8절/ 880629수야 선지자 2015.10.22
669 거룩과 경건/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30613월새 선지자 2015.10.22
668 거룩과 경건으로 주의 날 준비/ 마2장 42절-51절/ 890514주전 선지자 2015.10.22
» 거룩과 경건으로 주의 날 준비/ 이사야 53장 4절/ 890420목새 선지자 2015.10.22
666 거룩과 경건을 만들어야/ 마가복음 10장 29절-31절/ 870823주후 선지자 2015.10.22
665 거룩과 경건이 자기수입/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50816금새 선지자 2015.10.22
664 거룩과 진실/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31202금야 선지자 2015.10.22
663 거룩의 방해물과 긍휼을 입는 법/ 고린도전서 4장 3절-5절/ 830617금새 선지자 2015.10.22
662 거룩한 행실과 경건 연습/ 베드로후서 3장 6절-15절/ 870714화새 선지자 201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