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거룩과 진실

 

1983.12. 2. 금야.

 

본문 :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제일 신앙이 건전하다고 볼 수 있는  교회입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해야 신앙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저 단절적으로만 여러분들에게  해설을 하겠습니다. 그것을 또 종합적으로 해서 이렇게 결론을 지우는 것이  좋은데 그럴 시간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문을 열고 닫고 하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이 거룩하고  진실하심을 가지고 다윗의 열쇠를 가지게 됐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대표해서 말한 것입니다. 이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거룩과  진실은 하나님의 백성의 왕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다윗의 왕권의 열쇠를 가지시고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문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천국 노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가는 그 신앙의 길을 형통케 해서, 그 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이 형통케 해 주실 때에 아무 사람도 방해 하지 못하고 또 주님이  이렇게 열린 문 곧 형통케 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인간 스스로 형통한 길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가지시고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아무도 닫지 못할 열린 문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빌라델비아 교회와같이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주님이 우리의  신앙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시온의 대로를 열어 주실 때에,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신앙 성공의 승리의 생애를 열어 주십니다.

 시편 1편에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다'고 하는 말씀도 이렇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이런 사람들은 그 모든 신앙  행위가 다 형통해진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그 걸음이 조금도 흔들리거나 어떤 것에게 방해를 받지 안하고 그대로 일관으로  나가게 된다 하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룩과 진실한 행위를 가지면 주님이 우리의 신앙 길을  열어 주시고, 또 열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윗의 열쇠를 받게 됩니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주님은 나의 신앙 길을 열어 주시고, 또 우리는 우리  후배의 신앙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다윗의 열쇠를 받아 가집니다. 이래서 거룩과  진실의 행위로 주님이 내 신앙 길을 형통하게 열어 주시고, 또 내가 거룩과  진실을 가짐으로 다윗의 열쇠를 주님에게 받아 가지고 내게 속한 내 후배들에게  열린 문을 열어 줄 수가 있습니다. 문을 열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과 진실은 신앙 성공의 열쇠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함과 진실함은 신앙 성공의 열쇠 라 신앙의 형통이라, 나만 그럴 것이  아니라 또 자기의 후배에게도 형통한 길을 열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에는 거룩과 진실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보면 8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했습니다. 작은 힘, 아주 작은 힘,  적은 힘이라고 여기에 표시한 것은, 작은 힘이라는 것과 적은 힘이라는 것은  같은 뜻이나 조금 다릅니다. 적은 힘이라는 것은 수많은 계속성의 모든 다수의  상태를 말하고, 작다고 하면 단일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작은 힘을 가지고, 아주 적은 힘을 가지고, 그 적은 힘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열  차례든지 백 차례든지 천 차례든지, 천 번이든지 만 번이든지 계속 자기에게  있는 힘을 기울여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이  생활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 생활이 거룩과 진실에서 나옵니다. 거룩하려고  진실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자기는 부지런히 자기에게 있는 힘이 적을지라도  힘있는 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자가  되게 됩니다. 여기에 '내 말을 지킨다'는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 발표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을 가르쳐서 말하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는 말은,  주님의 이름은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사죄해 주신 사죄의  주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대행으로 의를 입혀 주신 칭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큰 힘 들여서 하나님과 화친케 해 주신 이 화친의 이 주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이 주님은 어떤 위대한 권력가나 부요가나 또 명철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분은, 우리를 구속하신 분은 영원 자존하신 분이시며 또 홀로 계신  전지자시며 전능자시며 완전자시며 불변자시요 영원자시요 창조자시요  예정자시요 주권자시요 모든 개별 섭리의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배반치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지키면서도, 말씀을 지키면서도 전능의 주님은 부인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면서도 전지의 주님은 배반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을 지켜 말씀대로 행하면서도,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이 지으신 기라 주님이 지으신, 주님은 창조주시라 모든 존재를 대할 때에  창조의 주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부인하면서 만물을 대하고 자기에게 닥쳐  오는 이런 저런 모든 순서를 자기가 맞이하면서, 전지의 주님이 예정하신 그  예정의 주님을 부인하고 이런 일이 닥쳤다 저런 일이 닥쳤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기 쉽습니다. 주님의 이름이라 말은 주님이 어떠하신  주님이며 무슨 일을 하신 것을 다 총칭해서 말합니다.

 만일 자기가, 나는 주님이 나를 값 주고 사신 주의 것인데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또 자기가 모든  존재를 대할 때에, 아, 이것은 주님이 창조하신 것이라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인정치 아니하고 그때에 생각지 아니하고  잊어버리고 달리 생각하면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딱한 사정이나 어려운 그런 순서들이 닥쳐올 때에 우리는 그  모든 순서를 정하신 주님을 부인하기 쉽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이 순서라, 이  순서는 주님이 정하신 것이라, 이것은 주님이 지으신 것이라, 이것은 나의  대속을 위해서 구속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것이라 이렇게 주님의  그 크심을 내가 배반치 안하고 주님의 그 사랑을 배반치 안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그 소망을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명문 되어 있는  법칙이기 때문에 글로 똑똑 써서 요렇게 해 놓은 명문되어 있는 법칙이기 때문에  지킬 수 있지마는 지키면서도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기 쉽습니다. 전지의  전능의 주님을 배반하기 쉽습니다.

 과거 시대 시대의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 앞에서 떤 것은, 어려움  앞에서 다 떨었던 것은 전능의 주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전능의 주님을 부인  했습니다. 주권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부인하고, 다만 자기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모든 것을 상대해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는 줄로 이래 알기 때문에  왜정 말년 신사 참배를 내 가지고, 너는 전능의 주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계명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주님이 주권하셔서 네 구원 위해서 예정대로 전능의  능력으로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주권의 의지로 예정하신 것을 주권의  능력으로 단독이 성취하신 그것이 나타나신 이것을 네가 부인한 이 증거로  하나님께서 그런 시험을 일으켜 가지고서 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서 하나님을  권능을 약속을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배반하는 것을 똑똑히 표시해서 자타가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마는 그것보다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려우면 이는 아주 실력있고 간 크고 의지가 굳고 모든 면에 참 능한  그런 사람이 지킬 수 있는가? 아닙니다. 여기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킨 것을  주님이 표시할 때에 '적은' '적은능력 가지고 네가 지켰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은 능력 가지고 네가 지켰다' 그러면 적은 능력, 적은 힘을 가지고서  지켰으니까 우리는 다, 적은 힘은 다 같이 있습니다. 적은 힘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적은 힘은 다 가졌기 때문에 누구든지 다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고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능자를 부인치, 전능자의 보호 전지자의 보호 사랑의 주권자의 보호  요것을 믿으면 믿는 그 결과는 그에게 평강과 생명이 올 터인데 믿지 않기  때문에 다 이 세상 세력에게 다 꺾어지고 그들에게 붙들려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코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의 종이 돼 가지고서 어디로 끌고 가든지  끌고 가는 대로 끌려 가는 이런 수치스러운 이런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주 적은 힘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가 있는데, 이거 지키고 배반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열린 문을 주시기  때문에 그 길이 형통하니까 아무도 그 형통의 신앙 걸음을 아무도 방해하거나  제재하지 못한다 형통하다 그대로 그 앞에는 시온의 대로가 돼 가지고서 대로와  같이 자유로 얼마든지 활개 펴면서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적은 힘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므로 열린 문을 받은 그 비결의 방편이 어디 있느냐? 그 방편이 거룩과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을, 나는 거룩해야 되겠다.나는 진실해야 되겠다. 이  거룩과 진실을 무시한 사람은 절대로 주의 말씀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못 지킵니다. 절대로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거룩과 진실이 뭐인데? 거룩과 진실이 대체 뭐인데? 거룩은 하나 둘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 둘 따지는 것, 구별하는 것입니다. 구별하는 것,  구별해서, 이것이,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나 하나님 말씀에 일치가 되나?  이것이 전능자를 부인하는 것과 전능자를 영접하는 것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가 부인하는 것가? 그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것이 나오는  것이 거룩에서 나옵니다. 거룩.

 그러기에, 거룩을 버리면 그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라고 애를  쓸수도 없고 지킬 필요성도 느끼지 안하고 필연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주의 이름을 자기는 모시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마는 자꾸 자기에게 있는 대로는 구별합니다.

이것은, 이기 천국에 해당될, 천국에 유익되나 세상에 유익되나? 천국주의가  세상주의가? 이것이 하나님 위주가 내 위주가? 이것이 성령의 욕심이가 육신의  욕심이가? 이것이 인간 말 듣는 것인가 하나님 말 듣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가? 이거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가  하나님을 그라면 섬기는 것이가? 이렇게 자꾸 구별하는 구별성, 구별하는 것.

어짜든지 구별해 가지고서 -아이구 인간히 구별하다가 그만 피곤하고 괴로우니까  아이구 뭐 그렇게 자꾸 따질 게 뭐 있나 그렇게 구별 할 게 뭐 있나 그만 괴롭다  어지간이 하고 말자, 자기가 자꾸 구별하니까 구별해 들어가니까 이거는 아니라  하는기 번연히 보이는데, 구별이 되니까 아, 이거는 아니다. 아니라는 것이  보이는데, 아니라는 것은 보이고 그게라는 것은 보이지 안하니까 아니라는 것이  보이니 옳은 것 그기라는 것을 그것을 발견 할 때까지 노력을 하기가 귀찮다  말이요. 피곤하다 말이요. 피곤하니까 그만 아니라는 것이 보여져도 아이구  그만두자 이래 가지고서-구별하는 것, 구별하는 그것이 거룩의 시작이요. 거룩을  이룬 것은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수많은 사이비한 것, 이 모든 복잡한 것,  사이비한 것, 수많은 지저분하게 이렇게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거기에서 가리고  가리고 가시 가지고서 자기가 가릴라고 하는 것, 자기가 알라고 하는 것, 자기가  찾을라고 하는 것, 그것을 딱 바로 찾았을 때에 그것이 거룩이 된 것입니다.

거룩의, 거룩을 지금 이루고 있는 것과 거룩이 된 것, 거룩이 된 것은 그것을  가라쳐서 진실이라 그걸 가르쳐서 진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진실이라 말은  참이라는 것이니 그것은, 참이라는 것은 하나요. 참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에서 우리에게 나온 영감입니다. 영감은 다 진실입니다. 사랑도 진실이요  지혜도 진실이요 지식도 진실이요, 전부, 전부가 진실성을 다 가지고 진실성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들어도 그만 이 말이 옳으냐 이 말이 옳으냐? 열  사람이 열 가지 말을 다 하니 열 가지 말을 다 받아 들이느냐 열 가지 말 가운데  그것을, 자 이 말을 내가 들어야 되겠느냐 저 말을 들어야 되겠느냐? 이 말을  찬성해야 되겠느냐 저 말을 찬성해야 되겠느냐? 자꾸 이것을 구별하니까 하나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하나를 떼 낼라 하니까 힘이 듭니다. 떼  낼라 하니까 힘이 듭니다. 이러니까 한 열이 열 마디가 있는데, 열 사람이 말한  열 사람의 주장이 있는데 다섯 사람 주장은 틀렸으니까 그거는 틀렸다 하다가  그만 피곤하니까 어라 내 모르겠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고, 그것이 거룩을  이룰라고 거룩을 쓰다가 거룩을 버려 버린 것입니다. 거기에서, 오늘 못 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하면 모래 해도 자꾸만 구별해서 마지막에 요거라, 보니까  열이 다 틀렸다 열이 다 틀렸다 그 중에 하나가 맞다 열이 다 틀렸다 맞은 게  둘이 있다 둘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맞은 게 하나 있든지  그리 안하면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끝까지 옳고 참된 그  진실이라는 그 진실한 것 그것을 만나기까지 노력해서 가는 그 노력을 가르쳐서  거룩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다가 참이라는 그 참을  볼끈 붙들고 요거라 한 그것을 가르쳐서 거룩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별하는, 구별하는 구별성, 구별하는 성질, 구별하는 성품 이  사람들에게 선천적으로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고, 또 구별하는 성품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더불어 화친하는 그런 장점이 있고, 또 구별하는  그런 천성이 믿은 사람은 화평의 단점이 있고 이래서 '거룩함과 화평을 줘으라  이 둘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고 그 상극적인 것을 말했는데, 실은  거룩은 화평이요 화평은 거룩이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은 처음에 시작해서 진행  과정에서는 둘이지마는 마지막에 종착하면 그것은 단일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선천적으로 그런 거룩성이 강한 사람 약한 사람, 풍부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쨌든지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지어 주신  대로 우리는 힘껏 구별하는 것을 힘써 하면 주신 그분이, 내게 있는 걸 다해서  했으면은 주님이 칭찬하시고 그 사람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벌써, 구별, 이 구별하는 데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필연적인 행위가 나오고 또 이렇게 구별을 할라고 자꾸 구별을 하는 데에서,  내가 이라면 전능자를 믿나 안 믿나? 이라면 전지자를 내가 믿나 안 믿나?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이 주권자를 내가 인정하나 안하나?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룩을 사용치 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하니할 수도 없고 배반하고도 모르고 말씀을 어기고도 모르고  배반하고도 모르고, 모릅니다. 꼭 요 구별할라 하는 요 구별하는 요기에서 그게  알아집니다. 구별하는 거기에서, 그러기 때문에 거룩을 벌써 버린 사람은 볼일  다 봤습니다. 기독자로서 거룩을 버린 사람은 볼일 다 봤습니다.

 그러기에, 이 거룩을, 거룩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씀 다 놔두고 거룩은  그만 구별입니다. 요걸로서 정의를 가지는 것이 옳습니다. 뭐 무슨 사람이 무슨  말해도, 요렇게 거룩하고 진실하면 자연히 자기에게 있는 힘 대로는 자꾸  구별하다 보니까 아, 이것은 죄인데, 죄니까 자기 힘대로는 안 할라 그 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는 또 할라고 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그 원천이 어디 있느냐? 거룩에 있다. 또 그 모든  성공이 어디 있느냐? 진실에 있다 진실에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자기의 평소의, 평범한 평소 생활에 구별하는  이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구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구별하는 것은 온 세상이 싫어 합니다. 왜? 마귀는, 제일 마귀가 소원하고  마귀가 제일 좋은 전법은 뭐이냐? 사람들로 하여금 구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구별만 안 하면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의 제일 좋은 전법이 구별하지 안하고 마구 타는 것이요  타는 것, 종랍하자 종합을 하자 전부 화합을 하자 뭐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그만 전부 뒤타 버리자, 이것이 마귀의 전법 중에 제일 큰 전법이요, 강한  전법이요, 이러기 때문에, 온 세상은 이걸 원 합니다. 모둔 혼합을 온 세상은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기 때문에 농사 짓는 데도 구별해라 짐승을 먹이는 데도  구별해라 모든 생활을 구별해라 이렇게 구별해라 하고, 마귀는 뭐 구별하는  것보다 한테 섞이면 좋다 이래서 이제는, 요새 보면은 옷도 말이지요 알동 알롱  알롱 달롱 막 전부 이렇게 지금 섞어서, 베를 짜도 혼색을 가지고서 이렇게 짜는  이것을 점점 좋아하는 그것이 마귀 라는 놈이 주어서 모든 것을 흔합 시키는,  지금 그 마귀의 전법에 벌써 들어간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옷은  뭐 세대가 그러니까 그런 옷을 사 입을지라도,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자기 생활  전부에서 구별하는 이 구별성을 놓으면 나는 다, 말씀도 다 놓은 것이요 주의  이름을 다 배반한 것이요 구속도 다 배반한 것이요 우리는 신앙생활은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거룩과 진실을,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거룩을 가지면  진실에 도달합니다. 거룩을 가지고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노력해서 거룩으로  진실에 도달하는 자는 다윗의 열쇠를 얻게 된다 다윗의 열쇠를 얻게 된다 이  왕권의 모든 자기 앞길에 대해서 정권적인, 정권적인 그런 해결권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의 영감에게 말하기를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이렇게 말씀했어. 영감에게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는 거룩과 진실에 천국 열쇠를 준다 거룩과 진실에 주님이 그 사람에게 천국  문을 열어 주시고, 또 거룩과 진실한 사람이, 진실한 자가 천국 열쇠를 받게  된다. 이러니까, 주님이 거룩과 진실을 가진 자에게는 천국 문을 열어 주니까  서슴치 않고 막힐 것 없이 천국에 통해서 바로 형통으로 들어 갈 수가 있고,  저만 들어 갈 뿐만 아니라 거룩과 진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하늘나라를  들어가는 이 형통한 길을 다른 사람에게 열어 줄 수가 있다 열 어 줄 수가 있다  자기도 성공하고 다른 사람도 성공한다.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거룩과 진실에서  나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벌써 이렇게 무엇이든지 구별하지 안하는 사람은,  구별하지 안하는 사람이 명예에 떨어지지 아니할 수 없고 또 영광에 떨어지지  아니할 수 없고 욕심에 끌리지 안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실수하지 안할 수 없고  또 그 사람이 회개할 수 절대 없습니다. 회개도 이 거룩에서 나옵니다. 이  구별에서 나옵니다. 자꾸 구별에서 회개도 나오고 구별에서 힘도 나오고  구별에서 잘못된 것도 나오고 구별에서 바로 할 것도 나오고 구별에서 하나님도  영접하고 구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도 받고 구별에서 하나님의 은혜도 받 그  구별에서 진것도 알고 구별에서 이긴 것도 알고 구별 거기에서, '아, 나는  승리했다 이거는 승리했다. 구별 거기에서 나는 패전했다.' 구별에서 모든 옳고  그른 것을 다 알고 구별에서 바르고 삐뚤어진 것을 다 알고 구별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알고 구별에서 승리와 패전을 다 알고 모든 걸 다 알고 구별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고, 이 구별에서 소원할 것은  소원하고 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구별하지 안하는 자는 소원도 가져야 될  소원인지 버려야 될 소원인지 모릅니다. 이 구별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으로서 마귀에게서 막 살이로 막  먹고 막 살고 막 놀다가 그대로 멸망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노니 아무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능력 가지고서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말했습니다.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왜? 구별하다 보니까 자꾸 지키게 됩니다. 구별하다  보니까 지키게 됩니다. 구별하다 보니까, 자기 힘있는 대로, 아, 구별하다  보니까, 내가 이거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가 안믿는 것이가? 내가 이 사람이  지금 이와같이 지금 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주 아주 나쁜 행동인데 내게 대해서는  아주 미운 행동인데, 미운 행동인데 자꾸 구별하다 보니까, 미운 행동 이것이  누구의 예정이지? 주님의 예정이 아니냐? 그러면 이 미운 행동이 주님의  예정이라면 내가 미운 이 행동이 내 앞에 나타나는 이것은 누구나 이렇게 하지?  주님의 주권의 능력이 성취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누가 섭리하지? 아, 주님이  주권을 가지고 섭리하시는것 아닌가? 그러면 이것을 내가, 주님은 내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인데 그러면 내가 이 구원을, 내가  이것을 내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내가 감사 히 받아야 될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에 유익되도록 이용을 하며 내가 상대를 할까 해야 될  터인데 나는 무조건 미워하고 싫어하고 이랬으니까 내가 주님의 예정을 믿는  자인가? 주님의 주권의 능력 성취를 믿는 자인가? 주님의 주권의 섭리를 믿는  자인가? 나 구원 위해서 창조하심을 믿는 자인가? 아이구 안 믿는 자다 안 믿는  자다. 거기에서 주님의 말씀도 지킬 수 있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활을 가르쳐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그 말은, 인내의 말씀이라 하는 것은 계속의 말씀이라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요 말씀 지키고 나니까 또 요 말씀 지키고 요 말씀 지키고 꼬리를  꼬리를 물고서 그 말씀을 지키지 안하고 쉬어야 될 때는 없다 그 말이요. 그  말씀을 지키지 안하고 쉴 때는 없어, 잘 때도 그 말씀을 지키면서 자지, 그  말씀을 놀면서도 가면서도 오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그 말씀을 지키니 하나님  말씀은 나에게 계속하고 있는데 이 계속하는 말씀을 네가 지켰다. 이 계속하는  말씀을 어떻게 지켰느냐? 계속하는 말씀을 지킨 것은 구별하는 거기에서, 아!  자면서도 구별하고 일어나서도 구별하고 친구 만나서도 구별하고 자기가 시장에  가서도 구별하고, 자꾸 이 구별을 놓지 안하고 이 구별을 자꾸, 그 구별이  자기에게 벌써 본능이 돼 가지고서 그것이 습성이 돼 버리니까 자꾸 구별하다  보니까 알고는, 그러니까 그만 구별을 안 하면 좋겠다 이 말이요. 구별 안 하면  차라리 모르고 지으면 좋겠는데 죄를 지으면 좋겠는데 이거 구별하고 보니까  죄라고 판정이 나고 할라 하니까 도리어 그 범죄가 되니 고통스럽다 그러나  구별을 안 할라 해도 자꾸 구별이 돼진다 말이요. 구별 안 할라 해도 구별이  되어져.

 이러니까 이 구별은, 구별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지키게 된다 '내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이 이 구별에서 구별로 인해서 '인내의 말씀' 하나님의 계속의  말씀을 지키게 됐다 이 구별에서 하나님의 계속의 말씀을 지키게 됐다 또 이  구별에서 적은 힘 가지고서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됐다 이 구별에서 주의 이름을,  주님은 크신, 주님의 크신 이름, 주님은 크신 분이신데, 크신, 크심의 이름,  주님의 사랑의 이름, 주님이 나에게 큰 희생을 한 사랑의 이름, 주님이 내게 큰  소망을 주신 이 소망을 주신 이름, 나에게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름 이 이름을  제가 힘이 있어 지키는기 아니라 자꾸 구별하다 보니까 안 지킬 수 없고  구별하다가 보니까 자기로서는 힘있는 대로는 안 지킬 수 없고 힘 있는 대로  지키다 지키다 보니까 적은 힘이지마는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은, 주의 말씀을  다 지켰고 주의 이름을 다 배반치 안하고 모신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 구별에서  요것이 다 나옵니다. 구별에서 진실에서, 구별을, 구별의 목표가 진실인데  구별에서 이 진실까지로 그것을 요 둘을 가지고서 자꾸 자기가 자공하다 보니까  이 일이 됐으니 '내가 너를 지켜서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는 말은 시험 면제라 말입니다. 시험이 면제 됐소.

시험 볼 필요가, 시험을 칠 필요가 없어. 시험 볼 필요가 없어. 시험이 면제라  그 사람은 뭐 시험 볼 것이 없어. 그런데 그걸 '시험의 때를 면케 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시험하는 때다 시험 하는 때니까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때가 제일  어려울 때입니다. 그때가 제일 어려울 때고 제일 고통스러울 때고 제일 힘드는  때입니다. 힘드는 때인데 이 사람은 힘드는 때가 없다 그 말이요. 힘드는 때가  없어,  어떤 사람은 천 미터 되는 산을 한 자욱씩 한 자욱씩 밟아올라 가니까 이  사람은 마지막에 절정을 올라 가는데도 한 자욱 떼 놓으니까 올라 갑니다. 한  자욱 떼 놓으니까 올라가니까 그 사람은 어려움 없는데 어려움 있는 것은 자기가  또박 또박 걸어서 가서 열 자욱에 걸어 갈 걸음을 열 자욱에 걷지 안하고서 쉬고  놀고 있다가서 한 자욱에 열 자욱을 걸어 갈라 하니까 큰 시험이요 못 걸어 간다  그 말이요. 합격이 안돼, 합격이 안되는 건 뭣 때문에 안 되느냐 그것 때문에 안  되는 거라. 그러나 이 사람은 또박 또박 이렇게 그때 그때 지켜 나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시험하는 그런 시험의 때가 없어. 그 사람은 시험의 때가 언제가  시험의 때인지 아무 그런 시럼의 때가 없어 이러니까, 그 사람은 시험이 없는  무시험이라 무시험 통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뭐이냐? '네가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계속하는 말, 요  말씀 지키고 나니까 요 말씀 지켜야 되고 요 말씀 지키고 자꾸 계속해 나오는 그  말씀을 어떻게 다 지키느냐? 그 지키는 것이, 거룩, 이 구별을 자꾸 하다 보니까  구별하다 보니까 안 지킬 수 없어 지켰고 안 지킬 수 없어 지켰고, 또 이거  마지막에 참이라는, 아무래도 이 진실에 도달해야 되겠는데, 진실을 욕망하는,  진실 욕망 그 욕심 때문에 이렇게 지키게 됐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내가 속히 오리라' '네게 있을 것을'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아'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아' 뭘 네게 있는 걸 굳게 잡아? 네가 거룩과 진실  그것을 놓지 말아라 거룩과 진실을 놓지 말아라. 거룩과 진실을 놓지 말아라,  거룩과 진실을 놓지 안하면 뭣 하는데요? 거룩과 진실을 놓지 안함으로 네가  적은 힘 가지고서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안했다 거룩과 진실  그것을 놓지 안했으므로서 네가 내, 자꾸 꼬리를 물고 오고 오고 오고 하는 계속  오는, 계속하는 내 말을 지키게 됐다. 이러니까, 너에게는 오는 그 모든 것이 천  미터 걸음을 그때 그때 한자욱 한자욱 밟아올라 가니까 너는 힘드는 때가,  처음에 올라 갈 때보다는 나중에 가면은 좀 피곤하기야 피곤하겠지마는 하나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 왜? 한 자욱 한 자욱 또박 또박 걸어 갔으니까 아무 어려운  때고 힘드는 때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평소에 다 부인하고 지키지 안한 자가  한꺼번에 지킬라 하니까 그때는 목숨을 내놔도 안 됩니다. 또박 또박 걸어 가서,  예를 들면은 백 자욱을 걸어 가 가지고서 갈 수 있는 걸음을 제가 생명  내놓는다고 생명 내 댄다고서 걸어 갈 수 있겠습니까? 생명을 내놔도 못 걸어  갑니다. 절대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신앙생활은 요거는 다 필연성이요 전부가 필연성,  요것이 전부 과학적입니다. 요것이 절대 불변적인 진리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이것을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네가 범사에 거룩과 진실 요 두 가지를  네가 놓지 말아라 요 두 가지를 네가 놓지 안하면 다윗의 열쇠받아 네 앞길은  형통하다 네 앞길은 형통하게 된다. 어떻게 형통하게 됩니까? 네가 요 두 가지를  가지면 네가 적은 힘이지마는 내 말을 다 지킬 수 있고 내 이름을 어디서든지  모시고 살 수가 있고 또 네가 계속하는 이런 인내의 말씀, 계속의 내 말을 다  지키게 된다 그러니까 너에게는 시험이라는 특수한 때가 없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는 우리가 볼 때에는 백 세에 난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 했으니까  대단히 어려움이겠다 했지마는 아브라함에게는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는, 평생에 아브라함에게는 어렵다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왜? 그는 거룩과 진실을 가져서 또박 또박 한 걸음 한 걸음 실행해 나갔기  때문에 그는 어느 토막이라도 어려운 게 없었어. 어려움이 없는 그 믿음이 어디  생겼느냐? 그것은 평소에 그대로 계속하는 인내의 말씀을 지켜 거룩과 진실을  자기가 가지는 거기에서 다 경험하고 체험했고 했으니까 오면은 하나님이 상  주시고 어려우면 더 큰 상 나오고 적으면 적은 상 나오고 그러니까 항상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것 복 받을 것뿐이지 그에게 대해서는 낙망이나 슬픔이나 뭐  두려움이나 비관이나 그런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이러면, 네가 성전 기둥이 된다. 성전 기둥이 된다. 네가 성전 기초가 된다.

영감대로 하면은 너는 성전 기초된다 하는 것을 베드로에게 말씀했고, 네가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서 하면은 이렇게 내 말과 내 이름을 다 지키고 배반하지  안하게 되기 때문에 너는 성전 기둥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교회에  너는 줄기가 된다. 너는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는 네 힘으로 서게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네 힘으로 서게 된다. 네 토대위에 서게 된다 네 힘으로 서게  된다. 시대의 교회는 네 힘으로서 그 시대 교회는 서 있다.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네가 요 방편만, 거룩과 진실만 버리지 아니하면  필연적으로 인내의 말씀 지키게 되고 그 인내의 말씀 지키게 되고 요것만 놓지  안하면, 요것만 놓지 안하면 너는 탈선되지 안한다. 다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가지 안한다. 다시는 네게는 탈선이 없다. 마귀의 유혹이 없다 네가 요것만  가지면 마귀가 유혹하는, 마귀가 너를 유혹하는 틈을 마귀가 탈 수가 없다.

너에게는 탈선이라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하나님께로 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내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겠다' '그 위에 기록하겠다'  하나님은, 요렇게 네가 신앙생활하는 요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이 된다. 네가  요렇게 신앙생활하는 요것 가지고서 하나님의 교회는 설 수 있고 하나님의  교회는 튼튼히 설 수 있다. 요것 가지고 너는 다시는 탈선이 없다. 요것 위에,  요렇게 신앙생활하는 요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다. 전능자는 그  위에 계신다. 전능자는 그를 통해서 나타난다 전능자는 그이 위에 계신다. 그이  위에 계신다. 그이 신앙 위에 계신다. 그이를 통해서 나타난다. 파사 나라에,  파사 나라에 전능하신 그, 무시하는 파사 나라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니엘의  그 신앙 행위 위에 나타났다. 행위 위에 나타났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니엘의  행위 위에 거기에 기록돼 있다. 거게, 거게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니엘의 행위를 통해서 전국에 다 나타났다. 하늘나라에, 그  다음에는 새 이름이라 했습니다. 새 이름. 여기에 천국의 개혁, 천국이  새로와지는, 또 천국은 변하지 아니하지마는 좀 더 새로운 천국, 좀 더 깨끗한  천국, 좀 더 확실한 천국, 좀 더 영광스러운 천국, 좀 더 권위있는 천국, 좀 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일 수 있는 천국, 전부 천국에 점점 새롭게 하는  진리의 개혁과 천국의 개혁과 내 새 이름,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복음 운동,  복음의 개혁은 거기에서 나온다. 복음의 개혁이 거기에서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인간의, 인간이 아는, 인간에게, 인간이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께 대한 지식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개혁시키는 것은 거기에서 나온다. 하늘나라의 그 실상이  인간에게 개혁적으로 새롭게 그들에게, 임하는 것도 거게서 나온다. 새로운  복음도 거기에서 나온다. 그 위에 하나님은 계시고 그 위에 천국은 있고 그 위에  복음은 있고 그 위에, 복음과 천 국은 그 위에 있다. 그로 인해서 교회는 산다.

그 힘으로 교회는 산다. 네가 교회의 기둥이 된다. 다시는 탈선되지 아니한다  너에게는 시험이 없다. 어려운 때가 없다. 너는 항상, 그저 거룩과 진실 요것만  힘이 들지, 요 피곤뿐이지, 그 피곤뿐이지 아무리 다른 어려움은 너에게는  너에게는 오지 않는다 하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계속입니다. 신앙생활은 계속이요 열심이요 조심이지  신앙생활이 어떤 위대한 사람이 뭉텅 하는 것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어떤 강자가 단번에 쿡 하는 것 아닙니다. 약하든지 강하든지 계속,  끊임없는 계속으로만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이고 성공이 되어지는 것이지  계속이 없는 데는 성공은 신앙은,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이렇게 계속성을 주는 계속성을 일으키는 것이 뭐이냐?  계속성을 일으키는 것은 이 구별성과 진실성, 구별과, 구별성을 사용하고 진실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게을하면 신앙생활 못합니다. 게을한 자의 천국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천국은 힘센 사람이 얻는 게 아니라 힘쓰는 사람이 얻는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지런히 내가 힘쓸 수 있는, 필연적으로 쓸 수  있는 자가 되어지는 것은 거룩과 진실입니다. 요것을 놓지 안하고 지면  필연적으로 이거 모든 것은 계속하지 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관도 불좀 꺼 주십시요. 거기 신관에 불을 좀 꺼 주시요 그 위에 신관에 거게  불좀 꺼 주시요 거기, 어짜든지 작정합시다. 신앙은 게을하고는 안 됩니다.

계속이 없는 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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