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거룩의 방해물과 긍휼을 입는 법


1983년 6월 17일 금새

 

본문 : 고전4:3-5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그러면  큰 일이 따로 있다 말입니다. 주님의 판단이 크다 그말 이오.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자기도 자기를 판단할 만한 참 정확함이 없는 무지자기  때문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기 때문에 마음껏 자기  양심에 자책할 것 하나도 없이 다해서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  챘으나 자기 마음이 심히 성글고 부분적이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이제 됐다 하는 그런 절대성이나 이런 것을  가지지 못한다. 왜? 큰 분이 계시기 때문에.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주님의 심판 앞에 서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심판주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아무것도 이만하면 됐다 완성으로  완전으로 종결을 짓지 말아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  때에 그리스도 심판대에서 보상이 있으리라. 그러면 그때에 삭감도 있고 보상도  있습니다.

 우리는 비유컨대 이 우주라는 큰 넓은 밀림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울창하고 아주, 울창하다 말은 빽빽하고 아주 무성하게 강해 가지고 수풀이 꽉  차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모든 타락한 후에 악령이 인간들 속에 들어가 가지고 사람들을 그저 마음대로  혀를 놀리게, 마음대로 글을 쓰게, 마음대로 행동을 하게 이래 해 놓은 그것이  전부 우리에게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바로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이 주장이, 이 사상이, 저 주장이, 저 인생관이, 저  만물관이, 저 소망관이, 저 욕망관이, 저 비판이, 평가가 이런 것들이 가득 차  가지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올바른 것을 찾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그 넓고 아주 빽빽한 밀림 속에서 보면 한 발 밖이 보이지  안하고 전부 가리고 가려 가지고 있는 이런 밀림과 같은 이런 세상에 우리가  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당장도 삼킬라고 웅크리고 있는 이름도 모르는  굉장한 맹수떼가 가득이 차서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그런 참 무시무시한 이  밀림에다 비교 못 할 만한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다윗은 "내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그가 갈라고 하는 길을  막는 것, 또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빌드는 것, 하기 싫은 것을 강제로 시키는  것, 이렇게 저런게 꾀우고, 속이고, 달래고, 왈기고 이렇게 하는 이 뭐 원수가  천천이고 참 만만으로 비교 못 할 그런 원수 속에 들어 있고, 앞길을 가루어서  지척이 보이지 안하는 그런 밀림과 같은 이 거짓 속에 들어 있는 우리들이요, 한  뼘도 갈래길이 없지 않는 천 길도 만 길도 님은 갈래길이 가득 차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길도 많고, 가루는 것 많으니 멀리 볼 수가 없고, 길이 많으니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고, 이러기에 우리는 잡은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문서계시 이것만이 참되다 우리가 하나 인정하는 것 있고,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문서계시에 맞아서 문서계시와 같은 것이면 우리는  안심하고 그것이 아니면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고,  또 성령의 감동이 문서계시를 더 밝히 깨닫게 하고 더 심각하게 깨닫게 하고,  더 거게 대한 우리의 욕망이나 모든 경외심이나 조심이나 그런 것이 더 견고하게  강하게 하는 이 밝은 빛에 우리가 비추어지는 그 영감만이 또 우리가 참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세상에는 영감 밀림도 되어 있습니다. 영감도 바른 영감을  찾지 못하도록 별별 사이비한 거짓된 영감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저 영의 감동이라면 이는 됐다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영의  감동을 일차적으로 우리가 계시해 주신 이 문서계시로 그를 비판해 보고,  문서계시로 비판해 보지마는 내가 어두워서 그걸 잘 적용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영감이 와서 우리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고, 깨끗이 되고  자꾸 이러면 안심을 하고 또 우리에게 영감계시가 소개해 주는 주님의 이 구속의  공로와 또 구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그 모든 기업 하늘에  소망, 또 우리의 이 보증과 모든, 우리가 활용하고 이용해야 될 모든 것을 계시  말씀이 알려 주시는 그대로의 이것만을 참되다 안정하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앞에는 뭐 내가 무엇을 바로 한번 비판해 볼라 하면 바른 비판을  가루는 것이 밀림 같습니다. 바른 비판을 가루는 밀림이 있어 나는 겨우 요것을  바로 비판할라고 한 뼘을 바로 비판했으면 그 다음에는 그만 그 비판이 옆으로  삐뚤어지도록 요리 삐뚤어지게 요리 삐뚤어지게 가로막아서 도무지 바로 찾을 수  없는 이런 비판에도 가루는 이 밀립 같은 방해물과 장애물들이 잇고 평가에도  그러하고 이 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을 가리켜서 성도라, 거룩한 무리라 우리는  거룩 거룩으로만 걸어가야 합닉다. 거룩으로 걸어간다 말은 또 심사하고  심사하고 심사해서 거게서 옳고 바른 참된 것을 찾아서 가고, 그것이 거룩이고,  진실이라는 겄은 거룩은 진실을 찾는 데까지의 그 방편 과정을 말하고 진실은  찾아놓은 그 결과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조심있게 우리는 걷지 안하면  안 됩니다.

 어제까지 내가 바른 무엇을 했다고 해서 오늘도 그것 가지고 바로 되리라  도무지 생각해서 안 됩니다. 오늘도 또 거룩이라야 됩니다. 오늘도 비판하고  평가하고 또 구별하고 찾고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행사를 하나 해  놨다고 해서 이것은 완전이라 할 수 없어 그저 내가 주님이 주시는 진리와 영감  또 주님의 피의 역사 이로 인하여서 내대로는 찾기는 찾았지마는 이것이 아직도  어떤 미비점이 있으며, 어떤 그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어떤 잡된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기 때문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하나 이로 인해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이 부분적이요 다 불완전의 짓이기 때문에 그분을 향해서 가는  우리들은 자기가 문서계시나 영감의 깨달음으로써 옳다 생각되면 그 시기를  놓치지 말고 지체 말고 있는 힘 다 들여서 할 것이고, 또 했다 할지라도 한  그것이 어떻게 됐어? 하여 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항상 수정할 것이 있는가  기다리는 우리가 돼야 되겠고 깨달은 것은 또 깨달은 대로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가 이루어야 되겠고, 이러면서 다해서 이루고 또 깨닫지 못한 그 미비점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 우리는 항상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도와 주시기를  고대하면서 또 그 앞에 갈 때에 정죄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때가 이르기 전에  무엇을 좀 바로 해 주기를 간구하고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름을 성도라, 우리는 그저 수많은 방해물을 수 많은  유혹물을, 수많은 사이비한 것 이 속에 우리에게 허락된 참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인도하시지 아니하시면 주여 나는 일보도 바로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어느 하나도 바른 깨달음도 바른 비판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전부가 장애 방해 이렇게 되어 있으니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또  주님이 나를 도와서 조성한 것이 아니라면 이거는 수없는 불한당들이 많아  가지고서 그저 이렇게 달콤한 도움을 또 두려운 협박을 이래 가지고 뭐  삐뚤어져서 다 명중, 옳은 데에 명중되지 못하도록 이리저리 삐뚤어지게 그  죄되게 하는 것들이 가득 찬 것이오니 주님의 인도와 주님의 가르쳐 주심과  주님의 도와 주심이 아니면 나는 촌보도 무엇 하나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하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간구하고, 깨달으면 즉시 우리는  순종하고 이래서 참 그 날이 닥치기까지 우리는 안 떨 수 없고 두렵지 안할 수  없고 안심할 수 없는 우리들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것룩이라는 거룩한 행실과, 거룩한 행실과,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찬 데서 구별하고 구별해서 우리가 찾으면 우리를 돕는 성령이  계시고, 또 우리를 돕는 진리가 있고, 또 우리의 모든 잘못을 다 걸레처럼 다  닦아 주시는 주님의 공로가 계시고, 또 우리에게 참 주와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할 수 있는 참을 우리에게 조성해 주신 주님의 이 피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미 조성된 그것을 우리가 입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하고 구하면 우리는 가능한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언제나 안심 못 하고 거룩 거룩으로 걸어가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그말은 이제 모든 존재가 있지마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자존자시라. 모든 것은  원인이 있지마는 우리 아버지는 원인이 없다 그 우리 아버지로, 많은 지식이  있지마는 우리 아버지만이 온전한 지식을 전지한 지식을 가졌고, 전능한 능력을  가졌고 권세가 천도 억만도 넘지마는 주권자는 우리 아버지뿐이시라. 이제 이를  구별해서 이 참이신 모든 것을 탁월해 계시는 완전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이 아버지를 깨닫는 이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말은 우리가 그렇게 깨닫고 유일하신 우리 아버지를 알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구약 성경은 같은 성경이지마는 그 성경에 대해서 우리의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객관이신 성경은 정확무오한 계시 말씀이지마는 우리의  주관을 거게다 보태기 때문에, 우리의 주관을 보태기 때문에 완전하신 그 계시  말씀에 우리 주관이 보태져 가지고 그것이 발표되고 그것이 행사되기 때문에  우리 주관이 완전치 못하니 아무리 완전해도 완전치 못한 것을 보태 놓으면  그것이 그 답안은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떨면서 있을 수하에 없고  미결에 있기 때문에 그 날을 닥치기까지는 안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거요.

 다만 우리가 깨달은 대로는 '이렇게 깨달았다. 이게 옳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이것이 옳은 줄 알고 나는 이렇게 깨닫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증거할 것뿐이지. 그래서 옳은 것은 자기 깨달음대로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렇게 말하나 누가 와 가지고 '이거는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이길  절대성 있는 것이냐?' 할 때는 절대성은 '당신에게 가야 있고 그때 있지 지금  나는 절대성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이렇게 깨달아 이게 옳은 줄 알기  때문에 이짓을 말하고 증거한다.' 하는 거게서 멈추지 안하면 그게 네 주관에서  하는 말이지 그게 참으로 그 전체에 있어서 완전성 있는 그 말은 아니니까  언제든지 겸손히 삼가라는 것을 우리 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아침에 우리가 향하여 가고 있는 하늘나라, 또 우리가  우리 자체를 전설해 갈라고 하는 우리 자체 건설, 우리의 행위의 모든 나열과  장식, 이 모든 사물 만물을 다 대해 가지고 가는 데는 얼마나 복잡하고 방해물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방해물이 많다는 것. 단순히 자기의  욕심을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가지고 자기 욕심대로 됐으면 잘됐다 자기  주관을 하나님으로 삼아서 자기 주관대로 됐으면 잘됐다 하는 이 주관적인 행위,  자기의 사욕적인 행위, 이 자율적인 모든 지식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의 가는 길에는 가로막고 있는 것이 한정 없다. 또  우리가 당하는 현실 현실에는 수많은 갈래길이 있다. 거게서 '이리 오십시오  저리 오십시오' 요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마는 제가 그것을 연상해 봤습니다.

 제가 처음에 일본 갈라고 여기 부산을 오니까 그때는 일본 가는 사람들이 참  드물고 어려울 때인네 오니까 역에 내리니까, '우리 여관이 좋습니다 이리  갑시다 저리 갑시다.' 뭐 서로 당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많은지 어디로 가야 될  줄 모르겠어. 일본도 가니까 조금 적기는 적지마는 거기도 그래. 지금 가만히  연상해 보면 우리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악령은 이 사람을 시켜서 저 사건을  시켜서 조금 고급 마귀는 범위를 넓혀 가지고서, 범위를 넓혀 가지고 우리  현실에 '이 갈 길로 가야 옳습니다. 저 길로 가야 옳습니다.' 이래 가지고  고등에 속한 고등 지식에 속한 자들은 고등 지식을 가지고 범위 넓게 우리를  유혹하고, 또 좁은 자는 좁은 자로 유혹하고, 또 거게서 막는 자는 막고,  위협하는 자는 위협하고 혈박하는 자는 협박하고, 여러가지 지장을 놓으면서  담으로 가 시로 들이 막는 자는 막고 이러니까 어떻게 우리 현실을 바로 볼 수가  있으며 바로 갈 수가 있겠는가? 이는 주님이 보여 주셔야 우리가 알고, 주님이  인도하셔야 바로 가고, 주님이 이런 모든 천천도 만만도 님은 이 대적들을 다  제거해 주셔야 우리가 바로 갑니다. 우리의 육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아는 질병 그것 가지고 떨고 있지마는 우리가 모르는  질병이 우리의 그 건강을 노리고 있는 그 질병이 병균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또 우리의 세상 살이도 우리가 모르는 함정이 우리 앞에는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회사는 튼튼하다 우리 가정은 튼튼하다. 내 전강이야  튼튼하다. 내 기반이야 튼튼하다.' 말하지마는 바로 한 뼘 앞에 빠지면 무저갱에  빠져 가지고서 멸망할 수 있는 그런 함정이 어데 있는지 어떻게 있는지 우리는  그걸 모릅니다.

 참 이러한 오묘한 복잡한 위험한 이런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 세상을,  불이 섞인 유리바다인데 이 세상을 우리를 통과시켜 가지고 구원의 언덕에 서게  하실 이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순간이라도 되를, 주님의  되공로를 벗고는 우리가 살 수 었고 걸을 수 없고, 찰나라. 또 영감이 아니면  그때는 벌써 우리는 망령을 부렸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했습니다. 우리가 계시치  말씀을 준해서, 그러기에 그 말씀이 보증하지 않으면 우리는 안심 못 합니다.

우리가 말했다가도 말한 그것을 '아, 성경에 이래 있구다.' 성경 명문을  찾아놓고는 '성경에 명문이 있으너 이 명문이 나를 그때에 변호해 줄 것이고  나를 변증해 주리라.' 겨우 안심하지마는 그 안심한다는 것도 완전한 안심은 안  된다 그말이오.

 왜? 성경이 말하지마는 성경에 대 해서 깨달음은 내 주관이기 때문에, 영감도  객관 영감도 있지마는 내 주관도 있기 때문에 내 주관이 들어서 거기서 무슨  작용을 해 가지고 어떻게 삐뚤어진지 모르겠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이단자들이 다 이단인 줄 알고 이단자는 없습니다. 이단인 줄  알고 이단을 주장하는 사람은 언젠간가 위급하면 그 사람이 돌아옵니다.

이단자는 저도 몰라서 그게 옳은 줄 알고 말하는 그게 다 이단자 됐지 제가 알고  고의적으로 이단을 알면서 이단인 줄 알며 말하는 것은 그저 등따시고 배부르고  평안하니까 그러지 다급하면 그 이단을 벗어서 틔워 놓고서 바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가루어서 멀리 보지 못하게, 멀리 보지 못하게  하는, 내가 앞을 보는 봄에 대해서 지장이 이렇츰 많다 내가 걷는 데에 대해서  이렇게 지장이 많다.

 이러기 때문에 순간도 주님의 인도와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겸손히 항상 주님 앞에 물어야 되겠고,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그 기도할 때마다 안 빠지고 '주님이여, 육십육 권 도리를 다 바로  깨닫는 축복을 주시고, 영감을 소멸치 안하고 영감을 주셔서 이 짧은 한  토막이지마는 참 억억만 리도 넘은 것과 같은 이런 긴, 인생의 짧은 한  토막이나마 심히 긴 한 토막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이 여생을 주님께서 바로  인도해 주옵소서. 주님이 아니면 마치 생명이 없으면 다 썩고 없어지는 것처럼  주님이 아니면, 주님 없는 그 생각, 주님 없는 연구, 주님 없는 비판 평가, 주님  없는 욕망, 주님 없는 계획, 그거는 전부 생명 없는 것이라 했사오니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주님이 순간이라도 떠나면 안 됩니다.' 하는 걸 깨닫고  그저 참 하늘에서도 주님 외에 땅에서도 주님 외에 사모할 이가 없다는 그런  성도들이 느낀 것과 같이 지금도 주님을 잊어버리면 그 순간은 생명이 없는  시간이라. 어데에게 붙들려서 무엇이 어찌 됐는지 몰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 뒀기 때문에 순전히 주님의 그 지혜로,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속성화되는, 이 세상에 이런 수많은  것 있는데 이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하고 그것을 그걸 배격하니  거게는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뿐인 것입니다. 이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 되는  것이니까 언제든지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이라는 이 보호색을 입지 안하고는 안  되겠고 또 주님에게 간구하는 이 긴-구의 방펀을 우리는 가지지 않고는 걸어갈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조심 있게, 이 많은 것이 있다는, 아무나따나 살아도  되는 것 아니오. 아무나따나 비판해도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 이름을  성도라, 거룩한 무리라. 너는 촌보도 너는 순간도 네가 구별하고 구별하고  너에게 주신 것은 문서계시, 영감, 또 찌끄러기 잘못된 것은 주님의 피, 또  우리가 아무 권리 없지마는 우리에게 다 조성해서 법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주님의 공로, 이러기 때분에 성령과 물과 피의 이 돕는 도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자꾸 되지 못하고 된 줄 알지 말고 겸손히 당신을 바라보면서  의지하면서 간구하면서 조심 조심 구별 구별 하면 성도가 될 수 있고 거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부를 하면서도 이 거룩한 행실이, 공부하는 공부 속에서 이 거룩한  행실이 조성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경건을 이룰 수가 없어.

공부하면서도 '자존자는 아버지뿐이시다 나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았다.

모든 것이 지음받았다.' 이럴 때에 우리의 강령적인, 강령 적인 지식이 우리에게  바로 되니까 이게 바로 되면은 천인 만인의 학자들이 말한다 할지라도 이제  거게서 '그 학자도 우리 아버지가 지으신 것이라. 그 학자에게 대한 모든 것도  우리 주님이 주권하고 계신 분이라.' 이것만 알고 그분을 경외하면 제 일계명을  지키는 자이니 제 일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는 거게서 제 이계명 삼계명을 지킬  수 있고 그 사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 말은 당신이 받는다는 게 아니고 내가 그렇게 거룩하심을 나로  하여금 깨닫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이층을 저것을 이제는 도끼다시, 도끼다시라 말은 일본말인데 모두 건축  용어는 다 일본 말로 돼 가지고 있어요. 도끼다시를 지금 할라 하는데 저걸  깨끗이 소제를 하고 또 먼지가 앉았으니까 먼지를 씻어내고 닦고 이러고 나서  세멘을 발라야 그것 한 덩어리가 되지 저게 있는데 발라 놓으면 밑에 뜻뜻 불궈  다 딴걸로 되기 때문에 저것은 우리가 해야 되지 뭐 돈 주는 그 인부들이 하지는  못합니다.

 이러니까 지금도 저 치울 것을 치울 것이고 또 낮에도 시간 있는 사람은 무슨  일 해 놓고 그저 어느 시간에 와도 좋으니까 와 가지고 걸레 바께스 그런 것  하나 가져와 가기고 와서 물로 가지고 또 씻어서 내고 그래 가지고 참 우리가  혀를 대도 깨끗할 만치 그렇게 저걸 닦 아내야 또 세멘이 잘 붙습니다. 그것이  뭐이냐? 우리 정성으로 짓는 집이라. 그것이 내나 주님 위하는 것이고 이러니까  잘 그래 해서, 그래 놓으면 이렇게 주님이 만일 학생들을, 우리가 기도하기는  우선 한 만오천 명 보내 달라고 하는데 낙심한 학생들이 오면은 만오천도 오고  이만도 넘어요. 이러니까 그 학생들이 오면 당장에 앉을 자리도 없지 여름이  되면 이 수도 또 좀 복잡하지 이러니까 어찌 되나? 어서 저것이 모두 다  되어지면 다문 숨을 좀 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니까 기쁜 마음으로 주를  바라면서 우리가 사람 구원될 그 소망에서 봉사를 기쁨으로 합시다.

 그리고 또 기도하던, 과거에 기도하던 것도 계속합시다. 지금 우리는  제일어려운 문제 준공 검사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니까 기도하고 그 렇게  합시다.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 이 주시는 말씀, 우리 앞에는 바로 보지 못하도록 가루는  것이 얼마나 많다는 것, 누가 가룹니까? 가루는 것이 다 "네 친한 사람이니라"  친한 사람이 가루지 원수는 별로 가루지를 못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삼가해야 됩니다. 제가 그 사람을 접해 가지고 믿음에 손해를  본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다시 그 사람을 접하는 마귀란 놈이 '그래도 거게서  뭣이 나오는가?' 그 호기심, 마귀란 놈이 호기심 그걸 이용해 가지고 번연히  만나면 속고 있는 줄 알지마는 또 만나진다 그말이오.

 이 반사들도 그 반사를 유혹시키는, 내가 어떤 말 들으니까 '거게 그 집에  찾아가니까 내나 그 사람이 거게 있더라' 거기 뭐하러 가, 번연히 믿음에  손해보는데. 내가 그걸 간판을 붙였는데. 어쩌든지 이 반사들 쪼물쪼물하면  반사들이 거게 그만 다 설복당해 가지고 유혹됩니다. 가치가 없어. 교훈과  풍조에 흔들리지 안해야 됩니다 사람은 이렇게 요동하지 안해요.

 우리 앞에는 방해물이 이렇게 있는 줄 알고 주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바라면서 이렇게 참 겪손히 떨면서 나아가야 될 길을 제가 번연히 알면서 '이  사람 만나면 손해보지 유익 못 본다.' 그 사람 만나니까 세상만 커지고  하늘나라는 커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 만나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불평만 있지  믿어야 되겠다는 것은 없습니다.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불평 불만만 나오요.

원망 시비만 나오요, 그것 다 마귀가 주는 것 마귀에게 속한 것이지 성령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장애물이 가루고 있다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우리  앞에는 수많은 갈래길이 있기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바로 걸어왔다고 이만하면  다음도 되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제가 이 서부교회에서 인도하면서, 그때는 남반이 별로 없고 여반들만  있었습니다. 권찰님끼리, 여권찰님들끼리 만나 가지고서 죽인다 그말이오.

여권찰님이, 자기가 살리는 운동을 하는 것은 여권찰님들이 자기 식구를 만나면  살리는 운동 하는데 식구를 만나면, 식구를 만나면 살리는 운동하고, 살리는 말  하고, 주님 앞에 칭찬 받을 말하고, 상급 있는 말 하는데 자기네끼리 만나  놓으면 서로 죽인다 그거요.

 이래서 내가 금족령을 냈습니다. '아무것이하고 아무것이하고 만나지 마라.

만나지 마라.' 이러니까 만나지 말라 하니까 속으로 불평이 많지.

 그래 내가 혹 보면 다른 데 가는 척하고서, 잉어를 밥티기 가지고 낚는 것  밥티기 가지고 잉어 낚는다 말은 밥티기 한 개 그놈 먹을라고 잉어 그놈이  달라들었다가 낚시를 물어 가지고서 죽는 것입니다.

 밥티기로 잉어 낚듯이 요만한 데 뭐 그까짓 거 가치가 몇닢푼치나 될런지 뭐  음식 조그만한 것 요런 걸 가져가면서 볼까 싶어서 요 치마나 어데 요런 데다 딱  숨겨 가지고 요래 웅쳐 가지고 요래 가지고 또 갑니다. 그래 내가 보고서 '조것  또 죽이러 가고 또 죽으러 가는구나.' 내가 그러면서 '만나지 말아라.' 그래  가지고 비로소 그 어려운 마귀 장난을 제거하고 서부교회가 그때에 겨우 움이  터서 나왔습니다.

 제가 OOO교회도 한 달에 한번씩 올라갈 때에 권찰 집사들 다 금족령을  내려서 '다른 사람 만나지마는 자기네끼리는 만나지 말아라.' 그러니까 불평을  했어. 만나면 죽이는데 그럴 수가 있나? 만나 가지고서 그 말한 것을 그걸  말하니까 그때는 서로 자기네끼리 이래 가지고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조사님한테 이 고자질하고 꼬닥끼기를 누가 했는가보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이  했는갑다' 저 사람은 '이 사람이 했는가보다' 나중에 보니까 저를 했다고 하는데  저는 한 일이 없는데 조사님이 알고 하거든.

 그거는 알기 쉽습니다. 알기 쉬운 것은 뭐 개를 알았으면 그 개가 만나 가지고  뭐라 하겠소? 끙끙끙 거리는 것이고 닭을 만났으면 닭소리 했고 딴게 없다  말이오. 사람을 알면은 그 사람들이 만나면 그말 했지 하는 그걸 그래 가지고  말하니까 틀림없이 맞으니까 저거가 누구한테 고자질 했는가보다 이렇게랬다  그거요.

 이래서 그 뒤에 조금, 인제 그래 가지고 정신차려서 나가고 나니까 지금은  '권찰들끼리 만나라' 이래도 만날 시간이 없어서 안 만납니다. 또 그래도 지금도  길게 만나고, 만나도 자기 할 일이 있어 바쁜 사람이 아니고 길게 만나 가지고서  조금만 재미 붙으면 그만 헛일이라.

 어떤 사람은 보면 오 리만 같이 가면 딴 사람 돼 버려. 뭐 심부름 시켜서 한  이삼 일만 같이 있으면 그만 같이, 같이 심부름 시키면 그 사람 돼 버려. 그렇게  동화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동화되는 것이 빨라야 되고 이 세상에게  동화되는 일은 안 돼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 이 주일학교 반사들은 다 무보수로 이러기 때문에 시간이 없지마는  중간반 반사들은 몇이 안 되고 다 유보수기 때문에 다 그 일로 밤낮 만나게 되기  때문에 '이 중간반 반사들에게 금족령을 내릴까?' 지금 그걸 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누가 가니까 그 사람은 중간반 반사 하다가 지금 안 하고 있는 사람인데  내가 이름을 붙여놨어. '네가 기이하다. 이 반사들 OOO OOO OOO 자기네들은  교역자 나갈라고 이러는 사람들이지마는 만나 가지고 꼽짝꼽짝하면 그 주먹에  그만 들어 가지고서 그만 놀아 나고 만다 말이오.

 이랬는데 가니까 내나 손해 많이 본 사람이 거기 가서 앉았더래요. 거기 가서  앉았더래요. 그 사람한테 권면하러 간다고 가니까 내나 그 자리 가 앉았어. 뭐  하러 갔는지? 번연히 알면서. 그걸 고치기 전에는 제가 죽습니다. "사람을  삼가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하느니라"  이러니까 우리가 이 바른 걸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은 세상이라는  것, 우리 앞길에는 갈래길이 많아서 한 자욱 잘못 디디면 그만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갈래길 많은 세상, 가리는 장애가 많은 세상, 이러니까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안하면 짧은 세상 뻐뜩 그렇습니다. 언제 죽을지 압니까?  이러니까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거요.

 내가 어제 소문 들었는데, 우리 교회에 여게 늘 오는 머리 빡빡 깎고 OOO  목사님이라고 그분이 나이도 몇 살 안 되고 건강합니다. 아픈 것이 도무지 없어.

참 얼굴도 윤기 있게 살도 찌고 건강합니다. 아! 이런데 어제 죽었다고 전보가  왔어. 갑자기 죽었대요,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모른답니다.

 건강하다고, 젊다고, 우리가 이리 이리 살다가 오늘 딱 끝이 난다고 하면은  우리의 산 생애 가지고 어떻게 설 것인가? 어쩌든지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조심하고 조심하고, 겸손히 당신의 긍휼을 입을 수 있도록 이래 떨며  가야 되지 제가 낙관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아닌 줄 알면서면 '이게 틀렸다'  '잘못했습니다.' '이게 틀렸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 말을 평생에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한 번도 안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교만하라 말이요?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못 됐다고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깨달아서 다 고치고 있어.

 말하면 '녜, 그것은, 고맙습니다. 다 그런 걸 제가 고켰습니다.' 할 수 있도록  이래 돼져야 되지 이뭐 잘못됐으면 '녜, 그거 잘못됐습니다. 다시는 그래 안  하겠습니다.' 이거는 말 한 마디로 가지고 잘못된 것이 그것이 다 댓가가 되고  이것이 해결이 되는 줄로 이렇게 아는 그 못된 습성을 버려야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말했다가'내가 그 말이 잘못 됐습니다.'  교리와 신조도 자기가 성경 깨달음도 했다가 그 뒤에 잘못해, '그거 내가 잘못  깨달았습니다.' 이럴 수 있는 그런 것이 우리는 없도록 해도 인간이 불완전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아는 지식 가졌기 때문에 물론 그렇지마는 우리는 그렇게  조심을 해 가지고서 깨달아 나가지 안하면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고, 어쩌든지 조심합시다. 조심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반사, 남반사는 많이 청원이 들어왔는데 여반사는 별로이 들어온 분이  없습니다. OOO씨 구역에 한 분이 들어왔지요? OOO씨 구역에 한 분 들어왔는데  OOO씨,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저한테 좀 알려 주시고 또 여반사 한 분  들어왔는데 좀 뭐 생각하는 중에, 이게 주의 일이기 때문에 감당 못 할 사람이  그 일을 가지게 되면 일도 낭파되고 그 사람, 가지게 된 등용된 그 사람도  불행스러워지고 이러기 때문에 이걸 심각하게 해서 해야 되지 그저 임시 맞춰서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O선생이라 했지? O선생, 나 나중에  만나고 가요.

 봉사하실 이는 봉사하고 아침에 늦어서 못 하는 이는 아침 자시고 오고 그래  얼른 저걸 치워 가지고서 또 그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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