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회개와 고치는 수입

 

1982. 6. 11. 금새

 

본문:누가복음 16장 1절~9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어제 아침에는,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네. 이 청지기가 주인에게 청지기 직책을 빼앗기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그것을 연구한 것을 어제 아침에 말씀을 하다가 중단했습니다.

어제 아침에 한 일곱 가지만 생각해 봐라 이랬는데, 그보다도 오늘 아침에 1절에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셈하라 말은 계산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종교와 같은 그런 성질의 신앙생활을 하면 그거는 다 헛일입니다.

이종교는 자기가 잘못한 그것을 돌이켜서 세상에서 잘못된 그 값을 받는 대로  자기가 받고 앞으로는 자기가 잘못하지 아니하도록 조심을 해서 그래 도를 닦아  나가는 것이 이종교들입니다. 잘못된 그것을 자기가 벌을 받고, 벌받지, 벌을  벌로 받지 못할 것은 잘못함을 제일 권리있는 그분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한  것은 용서를 구하고 또 세상에서 갚을 것은 갚고 벌을 받을 것은 벌을 받고  앞으로는 잘못함이 없도록 그렇게 조심해서 사는 것이 이종교가들의 사상이요  주의입니다.

자기들의 잘못한 것을 벌할 수 있는 분에게, 자기 잘못한 것을 벌할 수 있는  분에게 ‘내가 이런 것을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받는 그것이 이종교입니다.

용서를 받는 것이 이종교요, 또 용서를 그냥 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어떤  예물이나 선물이나 그런 것을 드리면서, 잘 예물을 드려 가지고, 이 세상에서  뇌물 쓰듯이 예물을 드려 가지고 용서를 받고, 그래도 또 안될 것은 세상에서  벌을 받고 이래 가지고 해결을 짓는 것이 모든 이종교들입니다. 자기의 잘  잘못을 제일 권리있는 분이 이것을 다 다스릴 터이니까 잘못된 것을 그분에게  용서를 받고 또 무슨 예물을 드리듯이 대접을 해서 선한 일을 해서 그 용서를  받고 앞으로 그런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이것이 이종교의 교리요 신조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혀 반대입니다. 나는 한없이 잘못된  것도 있고, 또 대주재 앞에 해야 될 일도 있고, 또 하나님과 대주재와 원수된  것도 있고 이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내가 모든 주권을 가지신  그분과 단 둘이 이렇게 해결을 지울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단 둘이 해결을 지울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벌써 대주재되신 그분에게,  그분에게는 내 대신 해결 지운 분이 있습니다. 해결지은 분이 있어. 그분이 대신  해결을 지워야 되지 나로서는 아무리 뭐 억만인이 다 달려들어서 나 한 사람의  잘못을 그분에게 합해 가지고 해결지을려 해도, 전 인류가 다 달려들어도 한  사람의 문제도 해결을 못 짓습니다. 못 짓는데, 지을 만한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 다 죄인이기 때문에. 제 것만 해도 한 짐인데 뭘 지을 수가 있으며 또  그분의 요구는 무한한데 그것을 어떻게 요구에 다 응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데 대신 벌도 받았고 대신 행하기도 했고 대신 화친도 했고 이래서 대신 내  모든 문제를 해결지워 주신 분이 있습니다. 대신 내 모든 문제를 해결지워 주신  분이 있기 때문에 대주재에게는 문제가 다 벌써 해결이 다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다 되어 가지고 있는데 나를 대신해 주신 그분에게 대해서 내가 지금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하는 이것이 이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이종교는 자기 대 주재 대 이러는 것이요, 우리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재가 다 해결했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공심판 대주재에게는 이미 해결이  되어 있는데 나를 대신해서 해결해 주신 그분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느냐 하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와 이종교는 또 여기에서 크게 다릅니다. 근원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대속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이 대속의 법칙이 어떻게 하면 나를 대속하신 그분과 관계를 바로  가지나,-이종교는 대속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대속이 없고 직접 자기의 잘못을  주재에게 사유함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요새 이종교들이 좀 지혜있는 자는  아무래도 우리도 이 대속이라는 것이 있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대속주를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근본은 불교 같은 것도 그런 게 없습니다. 없는데  이제 중간에 와 가지고 대속이라는 것을 이렇게 꾸며 넣어 가지고 대속 도리를  만들어 넣어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짓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나를 대속하신 이 대속으로 가지고 나를 샀다, 대속으로 나를 샀다.

그러기에 주님이 대속하신 그 대속이 자기 것이 된 사람은 자기는 대속하신 주의  것이 됐다 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 입각해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을  해야 되지, 여기 입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주관대로 ‘아, 나는 예수님 믿기  때문에 내가 성의있게 해서 죄를 용서함 받고, 또 그분에게 내가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면 뭐 되겠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과 나와 상대되는데 이  상대는 우리가 해결 못 짓습니다. 이 하나님의 공심판과 나와의 직접 관계된  이것은 예수님이 다 대속해 놨습니다. 대속하시고 그 다음에 대속하신 분과  우리와의 지금 관계점입니다.

마치 말하면 저 큰 홍수가 밀려오는데, 그 홍수가 밀려오는 그 홍수를 일단은  바위돌을 가지고 막아서 물결 센 그 물을 방어하고 나니까, 방어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물은 그 다음에 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도록 뗌  하는 것처럼, 일단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가 그 모든 일을 해결짓고 이제는  중보자와 나와의 해결만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공심판에는  예수님이 대신해서 해결을 지웠고, 우리는 공심판에서 대신해서 해결지우신  그분하고 우리가 계산하는 그 계산이 우리 계산입니다. 그래 그 심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는 부자의 집에 청지기라, 부자는 주님이신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다 이것은 주의 것이라. 내라는, 내라는 이  개체, 내라는 개체 이것이 벌써 주의 것으로, 이것까지도 다 주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소유만이 아니고 그 사람도 월급에 팔렸기 때문에 총무는 벌써 그  직책을 떠나기 전에는 주인의 사람이라 그거요. 주인의 사람이요, 주인의  것이라.

우리는 이 청지기라는 이것을 바로 깨닫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대속하신 주님의 것이라. 그러기에 ‘내가 들은 이 말이 어쩐 말이냐? 네가  내것을 가지고 네 마음대로 써서 허비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어떻게 내것을, 네가  가진 전부는 다 내것인데, 네가 주인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뿐인데 내것을  네가 보관하고 있으면서, 내것은, 내가 너한테 보관시켜 놓은 것은 내가 시키는  대로 네가 그것을 써서, 내 마음대로 쓰고 내것을 내 마음대로 쓰는 이것이 바로  되는 것인데, 내것을 가지고 어찌 네 마음대로 썼노? 허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어찜이뇨? 계산하라.’  주인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으면서 주인의 뜻대로 썼으면 제가 상급을 받고  월급을 받을 것이고, 상급을 받을 것이고, 월급을 받을 것이고, 잘못됐으면,  무궁세계에서 보상받을 것이고 잘못됐으면 그거 다 계산해 가지고, 제가  없으니까 물어 내지는 못하지마는 잘못됐다는 그 구두로든지 그런 책임은 져야  됩니다. 빚은 져야 됩니다. 값은, 제가 잘못이라는 꾸중으로 듣든지 벌로 받든지  잘못의 값은 떠나기 전에 받습니다. 그리고 잘한 것이 없으니까 상받을 것은  없을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이런 것을 하나 깨닫고 믿는 것이 기본회개를 하고 믿는  사람이고, 이것을 깨닫고 애를 써서, 이렇게 하려고 애를 써 가지고 첫째는  지식적으로 자기가 알고, 그 다음에는 실감적으로 알고, 그 다음에는 사실 그런  자로 사는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기본회개를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오.

내가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나니까 말하기를 ‘그 사람은 못 믿어도, 잘 믿지를  못해도 근본 돌아서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아주 잘 믿기는 잘  믿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지마는 실은 그 사람이 돌아서지 아니하고 제가  제것 가지고 잘 믿는 사람이라.’ 그 사람 눈이 밝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기본회개라는 것은 어떤 것이 기본회개냐? 기본회개는 주님의 공로는, 대속해서  해 놓은 공로, 나를 대신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한 설정해 놓은 대속의 공로는  내것 되고, 내것 됐으니까 나는 당신의 것 됐다 요것이 기본회개입니다. 그  전에는 ‘나는 내것이라 내라.’ 나로 믿는데 이게 아니고 이제는 나는 당신의  것 된 것은 당신의 대속이 내것 됐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것이라. 내가 내것을  내가 찾을 때에는 대속의 것은 당신의 것이 된다. 우리가 이거 알아야 됩니다.

기본구원은 이것을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대속은 내것 됐고 나는 당신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인정을 하든지 말든지 벌써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공  지성의 법에서 딱 결정이 돼 버렸소.

이러니까 내가 몰라도 그러하고 반대를 해도 그러하고 나는 당신의 대속으로 값  주고 산 당신의 것이요 당신의 대속은 내것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택자들은  공심판을 다 면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뭐 아무리 행위가  더러워도 하늘나라는 가는 것입니다. 그게 기본구원이오.

그러나 내가 자기 주관적으로, 자기 주관적으로 주님이 대속하신 대속의 공로가  내것이라 하는 이 내것인 이것과, 대속의 공로가 내것이 됐으니까 나는 당신의  것이라 하는 이 둘이 이것이 바꾸어지는 이것이 동시에 됩니다.

자기가 자기의 것, 자기는 주의 것이라는 그것이 백분지 일이 주의 것이라고  인정되면 주님이 날 대속했다는 것을 아무리 자기가 인정하려고 해도 백분지  일밖에는 인정이 안 됩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법적으로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이 세상에서 실지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실지의 신앙생활을, 실 신앙생활, 이 실지의 신앙생활의 이  실상에 있어서는 자기가 백분지 일을 저를 인정하면 일이 인정되고, 그러면  주님의 대속을 자기 것으로 백분지 일을 자기가 인정을 실상으로 하면 실상으로  그 대속이 내게 실 생활에 효력을 줍니다. 효력을 주고, 이럴려면 내가, 이것이  백분지 일이 당신의 값으로 산 당신의 것이라 하는 것이 인정되는 것만치 제것도  인정이 되고 두 인정이 같이 됩니다. 두 인정이 같이 돼요. 두 인정이 같이 되고  인정된 것만치 자기의 실생활에 효력을 주는 것입니다. 입술로 암만 해도 인정이  안되는 데에는 효력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법적으로 우리가 되는 것과 실상으로 되는 이것은 우리의 실상의 생활에 현저히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기본회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이 전환시킨 그것이 기본구원에  대한 회개이고,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이 회개를 가리켜서 건설구원 이  범위 내, 건설구원 이 범위 내에 기본회개라는 이것을 가리켜서 믿음의 씨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씨라. 믿음의 씨, 믿음의 씨는 뭐이 믿음의 씨가  되는가? 당신의 대속의 공로가 내것 된 것을 인정하는 것만치 나는 당신의  것이라 하는 것을 인정하는 그것이 이 믿음의 종자입니다.

그러면 이 종자가, 이것이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참 근본적인 회개인데, 이  근본적인 회개가 없이 다른 이종교와 같이 자기가 주인이 돼 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복음을 이용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그런 자가 있다 그거요.

이것은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입니다.

이번에 이 성전 짓는 데에 이제 여러분들이 옛사람을 잡아서 잔치를 하는,  옛사람을 잡아 죽이는, 옛사람을 잡아서 잔치하는 이런 아주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러니까 큰 수입을 봐야 할 것입니다.

왜? 옛사람이 그놈이 어떤 놈인지 자기가 구별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그것이 이 면으로 그게 구별되고 저 면으로 구별이 될 때에 그때에  옛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찾아 가지고 그놈을 잡아서, 아주 그놈을 잡아 가지고  모가지를 저 철근으로 가지고 나무에 대고 통통 뚜드려 박아서 이렇게 단단히  달아 놓고 간판을 ‘요놈은 옛사람이라, 나 아닌 내라, 요놈은 날 죽이고 날  속이는 놈이라, 이놈은 나 같지만 내가 아니라.’ 그놈을 잡아 가지고 철근으로  나무에 대고 못을 박아서 여기 달아 놓는 것처럼 요렇게 단단히 이래 놓고  명패를 써서 붙여 ‘요놈은 그놈이라’ 이래도 그놈이 살아 달아나 버립니다.

그만 빼 가지고 달아나 버려. 얼마 있으면 달아나서 그 뒤에는 그놈이 숨어  가지고 나타나기는 감쪽같이 숨어 가지고 있다가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썩  그놈이 그런 기회를 가지고 있다가 나와 가지고 역사하고, 속에 숨어 가지고  구원을 버리도록 그렇게 한다 그말이오.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역사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옳은 말을 들을 때에 싫어하는 것은 뭐입니까? 옛사람이오  새사람이오? 예? 옛사람이오. 이번에 성전 지을 때에 관련되는 사람들은, 내가  왜 건축위원회에다 맡기지 아니하고 내가 ‘날, 전권을 나한테 맡겨 달라’ 하는  그걸 세워 가지고 전권을 내가 맡고, 내가 건축위원회를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할려느냐 하면 건축 위원회를 만들어 놓으면 그 사람들이 아직까지 신앙이 다  어립니다. 장로라도 어리고 뭐 누구라도 다 어려. 조사라도 어리고, 어리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여기 와 가지고 일한다고 해도 일하는 그걸 어쩌든지  칭찬이나 해 주면 좋아하지마는 칭찬받으면 또 그놈이 옛사람 그놈이 자라지  새사람이 자라기는 어렵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거 칭찬해야 되는데 절 알아 주지 않으면 이리 삐쭉 저리 삐쭉 이제  삐꾸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내가 모릅니다. 과거에 요거 지을 때도 집 짓는 그  힘보다도 집 짓는데 이거 삐꾸고 돌아가면 이것을 돌이키고, 또 삐꾸게 해 놓고  돌이키고, 또 삐꾸게 해 놓고 돌이키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사람은 치료는  되지마는, 수입은 있지마는 그게 집짓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더 많이 듭니다. 많이  들어.

○○○집사님 여기 왔어요? 손 들어 봐. 못 나왔지? 못 나왔을 거라. 그 삐꾸는  귀신이오. 내가 어제 보고, ‘철근을 여기 네 개를 빼 놓을 건데 두 개를 빼  놔서 이렇습니다.’ 그거는 잘 봤습니다. 내가, ‘이러면 이거는 이거  큰일났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여기 엉그럼이 갑니다.’ 이래서 내가 ‘엉그럼 안  가. 괜찮아.’ 이래 놨다 말이오. ‘아, 이거 집사님 참 좋은 것  발견했습니다.’ 그거 위로해 주는데, 얼마나 재료를 많이 들여서 옛사람 그런  것 살리는 것인데, 그러면 기뻐서 오늘 새벽기도 나왔을 터인데 내가 그것을  말할 때에 ‘아, 괜찮아. 엉그럼 안 가.’ 이래 놨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척  그말 하고 나서 좀 있더니마는, 내가 보니까 귀신이 들어간 게 아니라 귀신  그놈이 있다가 ‘됐다. 됐다.’ 그러니까 와서 그말 한 것이 새사람은 말했으면  새사람이 삐꿔 가지 않습니다. 새사람은 내가 몰라서 잘못되어서 그래 됐다고  하면 ‘아, 요거는 아무래도 이거 고쳐야 되겠다’ 하고 이제 달라붙지 삐꾸지를  않아.

그리고 나니까 암말도 안 하고 좀 있더니마는 모두 다 봉사하고 있는데 썩 가  버립니다. ‘아이구 날 감리라고 내놔도 내가 말하니까 말하는 걸,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고 이러니까 뭐 내가 말할 게 있는가?’ 귀신이 들어가 가지고 썩  간다 말이오. 가서 ‘저게 간다.’ 내가 간다 하는 걸 알지. 저게 가는데  제딴에는 지금 제가 들어서 새벽기도 못 나오는 줄 알아도 내일 새벽기도 제가  못 나온다. 가는 그놈이 볼끈 붙들어 가지고 새벽기도 못 나온다. 그래 오늘  아침에 못 나올 줄 내가 알아.

그게 그러면 칭찬받는 거는 어떤 놈이며 말하는 놈은 어떤 놈이며 삐꿔 달아나는  놈은 어떤 놈인가? 그놈을 역사하기 전에 그놈을 잡아 죽여야 됩니다. 죽여야  되지 죽이지 않고 그놈이 와서 교회 무슨 일 하는 것은 나중에 일해도 공로나  모든 그런 것 절 세울려고 하기 때문에 그 후 작업이 더 커. 그 부인은 왔는데  가서 그걸 단단히 말해요.

또 저 아래 제직회 때에 ○○○집사님에게 대해서, 나는 그거는 군에 다닐  때부터 그렇고 벌써 그는 파란도 많이 겪고 욕도 많이 얻어 먹었고 꾸중도 많이  당하고 이랬기 때문에, 그총중에, 장로라도 지금 모두 아직까지 실력 있어  장로된 것 아닙니다. 실력 있어 장로된 것 아니오. 믿음이, 믿음이 심히 어려요.

그러나 이 모든 면에서 대외 간판도 있고 모든 것도 있으니 이 모든 걸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이래 가지고 또 그걸 장로로 길러야 되겠고, 기르면 얼마 안  되어서 장로가 되어지고 실력이 있고, 또 길러서 안될 것 있고 기르면 될 거  있다 말이오.

그 중에 ‘○○○집사 저거는 아마 제일 나을 것이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  말해서, 그 한 사람은 그걸 들어 가지고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말하면 삐꿔서 배나 지금 마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집사  저거는, 그게 하나 걸렸기 때문에 그걸 하나 말함으로 다른 사람 다  반성하겠다’ 싶어서 이름을 들어서 딱 그걸 말하고 이랬더니마는 그만, 그럴  때는 거석한데 ‘아’ 내가 보니까 벌써 그걸 달게 받아서 그것도 자꾸 은혜되게  해 가지고 저렇게 소화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만 보니까 속으로 마귀란 놈이 그  말 할 때에 벌써 속에 들어가서 속에 안된 마음이 든다 그말이오.

안된 놈이 든다 이래서 그걸 그 자리에서 저놈을 쫓아낼까 해 가지고 내가 약간  또 쫓아내는 말을 했다 말이오. 해도 물리치지 않고 꽁꽁 이래 가지고, 그래  인제 가 가지고 ○○○집사님에게 말하니까 ○○○집사가 ‘그거는 그런 게  아니다.’ 이렇고 이렇고 그 바로 말해 주니까 ‘아, 그렇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걸 내 속에 내가 알기에는 내가 그런 게 없어서 그랬는데 그거 잘못됐으니까  목사님한테 가서 사과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고 마귀가 나가 버리고 기쁨과  즐거움이 됐는데, 그 뒤에 ○○○권찰님한테 얘기를 했던 모양이라.

얘기를 해 가지고 그 뒤에 내용은 어찌 됐는지 모르지마는, 이래 가지고 마귀가  들어가서 ‘아,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때를 따라 있다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복수한다고, 내가 목사님에게 복수해 가지고 내가 시기를 한다. 내가 이렇게  지금 돼 있었으니 목사님이 날 이 교회 못 나오게 하는 말이 아닌가? 내가  목사님을 시기하고 대적하고 복수한다 하면 내 신세가 얼마나 기가 차는고?’  이래 가지고 뭐 하루동안 밥을 안 먹었다나 어쨌다나? 이래 가지고 이래서, 여기  ○○○집사가 저번에 한번 그말 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따위 소리,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라, 어린 사람 아니라고. 공연히, ‘집사님 안 그래도 그  사람 괜찮아’ 이래 놨다 말이오.

어제 두번째 와 가지고 그말 해. ‘이거 새벽기도 나왔습니까?’ 이러니까  ‘나오던데’ 나는 나오는 줄 알았다 말이오. ‘안 나왔을 것입니다.’ 뭐  이렇다고.

그래 내가 있다가 ‘아이구 그것도 제법 자란 줄 알았더니마는 내나  그꼴이구나.’ 이러면서 그래 뭐 ‘전화 한번 해 보자.’ ‘전화를 뭘해? 그 좀  실컷 좀 곪아 가지고 그래 터져야 치료가 썩 된다. 가만히 놔 둬라.’ 이러다가  밥 먹고 나니까 자기가 전화를 걸어 가지고 ‘아이 나왔습니다.’ 이래서 할 수  없어서 얘기를 했다 말이오. 얘기를 하니까 그래 그 속에 마귀 그놈이 그만  도망을 치는 모양이라. 이제 오늘 아침에 보니까 나왔구만.

그런데 여러분들 어쩌든지 이 세상을 우리는 고치는 세상이라는 걸 요걸 가져야  됩니다. 그저 잘못함이 없는 것을 잘못했다 하면 그때는 뭘해야 됩니까? 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잘못함이 없는데 잘못했다고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생각해 보니 잘못된 게 없거든. ‘잘못된 게 없는데 이렇게 잘못됐다고 말을  듣는데 만일 이때에 잘못된 게 있었으면 어찌 되느냐? 잘못된 게 없으니까 참  마음에 든든하다.’ 잘못된 게 없을 때에 잘못됐다고 꾸지람을 들을 때는 ‘야,  잘못된 게 없으니 다행이다. 만일 잘못됐더라면 어찌 될 뻔 했느냐?’ 잘못됨이 없으면 절대로 그 마음이 거기에서 전 인격이 움직여지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잘못됨이 없을 때에는 속에 평안한 배짱이 있고 온유가 나옵니다. 온유가  나와. 하거나 말거나 자기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됩니다.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데 그 다음이 시험이 있습니다.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데, ‘뭐 잘못된 것 주님이 아시고 잘못된 게 없는 것  주님이 아시지. 내 잘못된 것 없으면 하나님께서 심판이 그리 가겠지’ 그게  잘못입니다. 그 다음에 그게 잘못이오. 그게 잘못.

‘아! 나는 잘못됨이 없지마는 그 사람이 나에게 잘못됐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내야 잘못됨이 없는데 나는 불쌍하지 않지마는 잘못됨이 없는데 잘못됐다는 그  사람이 불쌍하고 그 사람이 지금 복이 없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을 내가 이때에,  나를 잘못됐다고 책망할 때 이때에 내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구원에  손해보지 아니하고 믿음에 손해보지 않겠느냐? 내가 잘못된 척 할까, 잘못된 척  하면 거짓부리 될 것이고 이럴 때 암말도 없이 꾸중을 가만히 들으면서, 이러면,  자기가 실컷 꾸중 듣고 나면 나중에 자기가 날 위로할 것이다. 그러면 그와 나와  둘이 합치가 되고 서로 사이는 끊어지지 않을 터이니까 그래 가지고 연결되면 그  다음에 고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요걸 노려 가지고 고 수입을 합니다. 고  수입을 하고, 그러면 첫째 수입은 그럴 때 잘못됨이 나에게 없을 때는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정말로 잘못됨이 없는데 욕 얻어 먹을 때는 담대해지지 그 욕에  대해서 약발을 받지 않는다 말이오. 충격이오지 않는다 그거야. 고럴 때는 자기  속에 뭐 있다는 걸 알아야 돼.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잘못됐다면 잘못 알고 잘못됐다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 손해를 보이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그 사람 날 잘못됐다고 지금  책망하고, 복수로 말하든지 뭐뭐 미워서 말하든지 어쨌든지 말하는데, 나는  손해볼 것이 없는데 이제 그 사람에게 대해서 유익을 보고 그 사람에게 대해  구원하려고 애를 쓸 때 그때에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소?  요런 고비에서 하나님은 몽땅몽땅 자기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요럴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그는 복받는다’  요것이 예수님의 모형이 오는 것이고 예수님의 형상이 오는 거라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셋째는 그것은 어린 신앙은 그걸 가져도 어리지 않은 신앙은  그것은 생각을 안 가집니다. 뭐? ‘거짓 걸로 핍박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나라의 상급이 크니라’ 그것은 ‘뭐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내게 그런  일이 없으니까 억울한 소리니까, 억울한 소리이니 하늘나라의 상급 많겠다.’  요런 약발스럽고 요렇게 얌체스러운 그런 마음은 가지지는 못합니다. 가지지는  못하지마는 실상은 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잘못됐을 때에는 고치면 그 사람이 내 선생님 되고, 또 잘못됨이 없을  때에는 그말 듣고 참으면 하늘나라의 상급 있고, 잘못됨이 없는데 잘못됐다 했을  때에 그 사람에게 대해서 저 사람이 잘못 알고 저리 하든지 복수로 하든지 그럴  때에 나는 그 사람을 그때에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구원에 손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 붙들려고 역사할 그때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으로  몽땅 내 하나님 되고 예수님의 그 형상을 몽땅 입는 것이 되니 이것이 제일 큰  수입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처세하는 것인데, 이것은 뭐  제 비위에 다 맞춰 가지고 잘못된 걸 말해 주면 그거는 고쳐야 되고, 또  억울함을, 억울함을 들으면 그렇게 하고 또 그때는 없어도 그 다음에 있습니다.

그때는 없어도 그 다음에 들어가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권찰님들이 꾸중을 듣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막 억울하다고  시비를 나한테 합니다. 시비하면 암말도 안 하고 내가 참고 있어요. 어떨 때는  또 말도 해석도 해 줘. 해석해 줘도 안돼. 내비두면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와서 회개를 합니다. ‘아, 그때 말씀할 때는 그게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나중에 자꾸 생각하고 또 뒤에 오랫동안 사는 가운데에서 그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니까 공통적으로 들을 때는 그때는 이해가 안 되지마는  오래 지난 후에 나가면 이해가 된다 하는 것이 공동 고백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 세상을 치료받는 세상으로만 인식하면 괜찮습니다. 병원에 들어간  입원자가 여기에는 내가 병 고치려고 왔으니까, 목적이 병 고치려고 오지  않았소? 병 고치는 게 제일 위주이지 거기에서 뭐 저를 쓰다듬어 주고 칭찬해  주고 예뻐해 주고 웃어 주고 하는 그것도 좋기야 좋지마는 그까짓 거는 있어도  없어도 좋은 것입니다. 병만 치료하면 돼. 치료는 뭐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고쳐야 될세상에서 고쳐가면 된다 그거요.

이런데 이번에 집 지을 때, 내가 어제도 저 ○○○권찰님이 경리를 한 분 데리고  왔는데, 그 일하는 사람들이 대번에 나한테 하는 말이 그말이오.-나는 다  공개해요. 이래 가지고, 공개해 가지고 저거 뭐 오해가 되든지 고칠 자는 고치고  이래 가지고 지금 치료하는 기간이기 때문에,-말하기를 아, 그분은 보니까 아주  정직은 믿을 수가 있겠고, 또 깔끔하고 뭐이든지 곧고 바른 거는 믿을 수 있겠고  이런데 그 성깔이 급해서 우리가 현장에 나가면 안되면 ‘야, 이놈의 새끼야’  집사도 ‘야 이놈의 새끼야’ 할 때도 있을런지 모르고, 안 될 때는 ‘야, 이  자식아’ 이럴 때도 있고, 노가다라 하는 거는 공사할 때는 급하면 말이지, 이래  가지고 넘어가는데, 곧 넘어가는데 이걸 얼른 붙들어야 되는데 안 붙드니까  ‘붙들어라! 붙들어라! 아, 이거 붙들어라, 좀.’ 이럴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런데 그러다가는 나중에 그게 도리어 믿음에 손해보이고 상처받지 않을까 그  염려가 되는데요.’ 둘이 다 나를 두 번이나 그말 해. 이랬는데 나는 만날 때 떡  만날 때 말하기를 ‘자 뭐 할려하노? 앞으로 목회할래?’ 이러니까 목회할  소망을 가지고 어쩌든지 뭐 어려워도 목회하겠다 이러기 때문에 ‘목회할 것  같으면 이거 해라’ 목회할 것 같으면, 성이 말이니까, 소도 말이오. 부리기  좋은 놈은 성깔이 있어. 받는 성깔이 있든지 코가 세어서 코배를 잘 꿰든지 뭐  성깔이, 뭐 뒷발질 하든지 뭐 성깔이 있고 흠이 있는 놈이 부리기 좋다 말이오.

이러니까 되기는 됐는데, ‘목회자가 될 욕망을 네가 가지고 있으면 여기에서 푹  썩을 수가 있다. 너 그러면, 그러면 됐다’  이러고 나서 내가 보내 놓고 나오면서 저 중간반에 가서 ‘이제 경리는 하나  만났네. 하나님이 참 다윗을 보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가 그로라 하는 것  모양으로 이제 이 경리는 붙들었는데 이게 소화가 잘 될까 모르겠다.’ 이러니까  첫말이 그말이라. ‘그 삐꿔 돌아가지 않을 수 있나? 여기 그러면 오만 욕 다  얻어 먹고 다 그럴 것인데 감당할 수 있나?’ 이러니까 ‘해야 되겠습니다’  하는데 이제 몇번 삐꿔 돌아갈지 모르겠어. 삐꿔 돌아가거들랑, 저 ○○○집사님  ○○○장로님이 삐꿔 돌아가거들랑 같이 함께 치료할 요량을 해야 되지 이번에  가속도로 지금 만들어지는 건데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제법 좀 각오는 가지고 있는데, 이래 가지고 뭐이든지 그게 그릇이 큰  거라. 이래 되고 나면 어떤 소리가 와도 그것이 자기에게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관련이 없고 그것에게 충격받는 그 사람이 안 되고 성신의 충격받는 그 사람이  되어져야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집사님, ○○○집사님 손 들어봐. 인제 오늘 아침에는 나왔어.

왔는데 저 사람은 말이오, 우리 집 아들네들이 다 그래. 말하기를 ○장로도 ‘참  ○○○집사님은 내가 그이만 생각하면 머리가 수그러집니다. 세상에 그래도  하나도 원망없이 부인이 그래도 이제까지 그렇다. 그럴 사람은 우리 한국에는  없습니다. 참 그분이 믿는 분이오.’ 이래 쌓고 아들네도 다 그래. ○장로도  그래. 다른 사람들도 다 말하고. 우리 집의 막내 아들도 그러고, 둘은 일찍 갔기  때문에 내가 모르겠고, 나도 ‘저게 저러는데, 저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언제 하나님의 축복이  올런지 모르겠다. 오기는 올 거다.’ 오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은 그 아이들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올라가면, 막내 전화 소리가, 내 말이 나면 나한테  한번 얼굴 보고 내 말 한번 들으려고, 그게 목사를 그렇게 좋아하면 그게 나중에  목사가 되든지, 목사하고 싶으면 목사 하는 말이면 딱딱 들어가지. 이랬는데  무슨 내가 여기도 그랬구만 ‘○집사님한테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이  오려는갑다. 마귀라는 놈이 지금 그거 못 오도록 방해하구로. 삐꿀려면 삐꾸고  마음대로 해라’ 이러니까 ‘제가 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러면서 툴툴  털어지고,  그 염려는 다른 게 아니고 ‘아! 나는 목사님에게 대해서만 목사님만 바라보고,  지금 하나님 다음으로서는, 이래서 내가 가정을 이제까지 이래 가지고 근근히  유지를 해 가고 있는데 목사님과 이리 됐다면 어찌 되노?’ 그만 낙망한 거라.

목사가 ‘○○○, 너는 지옥 간다’ 이렇게 해도, 목사가 지옥 간다 하거나  말거나 그게 상관이 있는가?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요동치 않아야 되지. 그게  신앙이야.

어떤 사람이 그말 해요. ‘교회서 사람을 쓸려거든 자격없는 것을 써 가지고  만들어 키워 가지고 쓸려 하고 일 시키려고 하지 마라. 쓸려거든 두말할 것 없이  발길로 차라. 한 번 발길로 탁 차 가지고 꺼꾸러져도 요동치 않고 삐꿔 달아나지  않고 그래도 순종하거들랑 쓸모있는 줄 알고, 세 번을 발길로 차도 요동치  않거든 그거는 쓸모있는 줄 알고, 한번 차 보고 난 다음에 그 참으로써 실력을  알아 가지고 고만한 양으로 맡기고, 두 번 차 보고 양으로 맡기고 세 번 차 보고  가지고 양으로 맡기지 네가 차 보지 않고 칭찬으로 사람 쓰는 사람 돼 놓으면  나중에 네 신세 네가 간다. 칭찬으로 붙들어 쓴 그것이 뒤에 가서 다 마귀당이  되어 가지고 너를 들어내고 이제 배척해서 쫓아낸다.’  이러니까 보면 제가 이용 해 먹으려고, 나는, 그 사람 칭찬해 이용해 먹으려고  장로 세워 놓으니까 장로 그것이 전부 목사 배척했어. ○○○목사가 와 가지고  ‘아! 장로가 나를 거석한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배척을 해서 내가 지금 그  교회에서 나와야 되겠다’고 ‘배척을 해? 그 장로를 누가 세웠노?’ ‘제가  세웠습니다.’ ‘그때 세울 때에 그거 이용해 먹으려고 다른 사람 뭐라 해도 그  사람만 하나 장로 세워 놓으면 그 사람이 하나 주장하면 다른 사람 눌리고 꺾일  거다 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그래 세웠지?’ ‘네. 그때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또 당해야 되지 않느냐?’ 이러니까 ‘발길로 차고, 차 봐서 사용하라’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목회의  경험있는 사람의 말이오. 그말 들을 때에 아멘이 됐어. ‘과연 네 말이 맞다.’  함부레 여기에 일하는 사람들도 삐꿔 돌아가는 사람들, 이제 얼마 전에, 삐꿔  돌아가는 그거 치료하자면 집짓는 것보다 이제 골탕 더 먹을 거라.

나도 이것으로 큰 수입을 지금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졸아도, 졸아도  그걸 존다고 말 못합니다. 어북 존다고 불러서 말을 하면 다른 사람 보기에는  시시해도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신앙에 굳게 섰다고, ‘저거는 뭐라 해도 이제  이 한 길밖에는 못 간다. 이 한 길만 가도록 되어 가지고 있다’ 하는 그런 자인  줄 알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 뭐, 그때 많이 자는 사람이오. 지금도 진리를 말하면 안 자는 데는  여기서 연극을 하든지 하면 잠 하나도 안 자. 안 자는 게 또 좋은 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면 그게 한두 마디 듣고 난 다음에 입으로 골골 게워 내는데,  어린아이들 젖좀 많이 먹이면 입으로 게워 내는 것 모양으로 게워 내는데 그게  참 영양있는 양식을 먹으면 뭐 끝까지 제까짓 게 들어 감당 할 수가 있습니까?  게우지. 게워 내는 게 자는 거라 말이오. 이래도 잔다 소리를 못 해요.

저 ○○○권찰님 유명했습니다. ○○○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때는. 조는  사람 가운데에는 ○○○만 들어서 야단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겉은 안 그렇고 뭐  이래도, ‘감사합니다.’ 해도 속으로 하도 그래 쌓아니까 슬그머니 속으로  약발받아 가지고 그래. 그때는 ○○○밖에는 조는 사람 중에는 말할 사람이  없어. ○○○밖에는 말할 사람이 없어. 왜? ○○○이는 저게 거창서 은혜를 같이  받고 그때 뭐 생명도 내 대기로 하고 뭐 그렇게 그때부터 은혜를 받아서 이랬기  때문에 제일 내가 볼 때에는 신앙으로 친근하고 신앙에 섰다, 조는 사람 중에는  그분이 제일 낫다 그거요.

그러니까 자꾸 그분 한 분 말해 가지고 다른 조는 사람 지금 거석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 한 분 거석해 가지고 그 다음에 되면 ‘아!’ 그때 다른 사람  있다가 ‘너도 졸면 이름 부른다! 이름 부른다!’ 이렇게 울러지기면, 이름  부른다 하면 조심하는 사람 있고, 이름 부른다 하면 삐쭉하는 것 있어. 그까짓  거한테는 이름 부른다 소리도 안 해.

개에게 진주를 던지면 진주를 밟고 와서 물어 버려. 도야지에게 진주 던져도  그렇고. 이걸 알아야 되지. ‘아! 미워서 저런다.’ 미우면 그 다음에는 말을  하지 않아. 미우면 복수요 심판인데, 심판하면, ‘네가 누구에게 형제를  심판하느냐’ 말했는데 그런 거 하면 큰 정죄되고 큰일나는데 그런 말을 해요?  어리석지를 말아야 돼.

병원에 와서 치료하면 웃으면서 치료, 수술해 주든지 불뚝하이 해 가지고 수술해  주든지, ‘어쩌다가 이런 병이 들었어?’ 하며 치료해 주든지 ‘죄 지었구만’  욕을 하면서 수술해 주든지 병만 나으면 됐지, 병 낫는 게 위주이지 제 비위  맞추는 그자는 나중에 치료할 자가 없어. 병으로 지금 단단히 고생해 죽든지  그래 버려야지. 그렇지 않겠소? 자, 병원 온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병만 단단히 치료했으면 그것이 감사하고  그거 하나만을 노려야 됩니까 병을 냅두고 제 오만 대우 다 하고 하는 그것을  바라야 됩니까? 병원에 가 가지고 자기의 온갖 대우 그걸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어떻게 하든지 병이나 치료해 가지고 건강자가  되어 나오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거야! 다 알고 있지. 이거면  되지 않아요? 절대로 복수하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복수라는 그 말은 그걸 고치기 위해서,  그러면 자기 심리에 ‘아! 내가 이말 하는 것은 언제 졸 때에 와 조노? 졸 때에  물으니까 모르니까, 모르니 다른 사람한테 위사했다. 다른 사람한테 명예가  훼손됐다. 권위가 떨어진다.’ 그놈 죽여야 될 놈이지, 권위 떨어질 게 아니라,  훼손이 아니라 그놈 죽여야 될 놈 아니오? 졸아 가지고 설교해 놓고 물으니까 답  못하는 놈 그놈은 옛사람이 그렇지 새사람이 그렇겠어? 자 그거 죽여야 돼요  그저 내비둬야 돼요? ○○○조사님, 죽여야 되지. 죽여야 되는데 뭘 거석해?  이제 고것이 원인이 돼 가지고 말하는 고걸 반성할까 싶어서, ‘요걸 딱 듣기  싫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 어떤 말이 나오니까 고때 딱 한 마디 들어서 하는  요거는, 그게 복수성인데’ 그걸 달게 고치지 못하고, 그렇게 그걸 달게 받아서  치료를 받지는 않고 고걸 속에 딱 넣어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 고런 기회가  있으니까 그때 자기가 반발하는 말 딱 하는 그것은 그거 복수성의 행위다.’  그거 고치라고 그렇게 세밀히 그 치료하는 것이요 수술하는 것인데, 이걸 또  수술하는데 이 사람이 수술하니까 어만 사람이 떡, ○○○집사가 떡,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너 한다.’ 제 이름을 불렀으니까. ○○○집사님은 나한테  만일 잘못되어서 복수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으면 내가 잡아다 놓고 말을 해.

안되면 주먹으로 쥐박으면서 말할 것이오. 주먹으로 쥐박을 수도 있고 욕도 할  수가 있고, 내 아들은 아니지마는 ‘야, 이 자식아’ 이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만침 벌써 만만하고, 여기 군에 갈 그때부터 와 가지고 내가 말하는데 감화도  많이 받고 미치괭이라고, 언제는 내가, 한번 그래서 다른 사람 말하는데 여기  한번 삐뚤어진 게 나와 가지고 내가 얼마나 책망했다고. 뭐 내가 그런 속으로,  ‘저게 복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이 있으면 내가 말하지 그걸 말을 안  하고 거기 넣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자리인가?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이 요래  가지고 딱 있다가 요래 보고 ‘아! 저말 하니까 요 기회에 저 사람한테는 요걸  들고 내가 들어가면 되겠다.’ 그 말이든지 어쩌든지 뭐이든지 들고 들어가려고,  틈을 탈려고 하는 그것이 우는 사자와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말 할 때에는 마귀라는 놈이 저에게 들어갔겠다.’ 제직회 해 보면 저  사람이 딱 저말 하니까 ‘아 고만 안 했으면 좋을 건데 그말 하니까 저 마귀  저리 들어간다.’ 그만 그 마귀가 그리 들어갑니다. 들어가 가지고 그말 하니까  빼쭉거리면서 시쭉하이 ‘저거는 나한테 하는 말이다.’ 아, 너한테 하는 말이면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치면 되고 없으면 참으면 상급되고, 또 ‘저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 말을 하는데 저때에 저 사람을 어쩌든지 구원에 손해보지 않도록 어떻게  치료를 해서 구원에 유익되게 할까?’ 그러면 하나님이 네 하나님 되고, 이거는  천국을 소유로 하든지 하나님을 소유로 하든지 그리 안하면 고치든지 이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수입이 있든지 한 가지 수입이 있든지 다 수입이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왜 수입이 있는 것을 뭣 때문에 안 하느냐 그거요.

좀 폭넓게 살아요. 이러니까 그전에 나 여기 ○○교파에 핍박 많을 때인데, 나는  속으로 지금 이러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와 가지고 ‘아마 백조사 죽었을 거다.

이렇게 이리 나가니 그 사람이 그만 기절해 죽었을 것이다.’ 와 보니까 밥만 잘  먹고 번들번들하고, 오니까, 와 가지고 위로하러 왔는데 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니까 은혜를 받고 이러면서 ‘아, 참 내가 조사님 위로하러 왔다가 내가  큰 은혜 받고 갑니다.’ 여러분들, 무엇이 와도 거기에 피동되면 안됩니다. 자 우리가 환경에 피동이  되어야 돼요 환경에 피동이 안돼야 돼요? 환경에 피동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

다 안되고 싶지. 그러면 자기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막 욕을 하고 네가  잘못했다고 하는 그건 뭐인가? 그게 뭐인가? 그건 뭐이요? 그게 환경이지. 그게  환경이라. 뭐 피동될 만한 그런 데 피동 안되기가 어렵고 그래야, 안되어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무데나따나 그 환경에 피동이 안 되어야 돼? 환경에 피동  안되고 영감에만 피동되고 환경은 점령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린다 말은 자기 환경을 자기가  지배한다 말인데, 환경을 지배해서, 영감으로 인해서 환경에 대해서, 환경에게  영감대로 행하는 그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것인데, 말 한 마디만 하면,  ‘저거는 뭐라고 해 쌓아도, 진리 진리 해도 저거는 말 한 마디만 하면 저게 팩  돌아설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지금 열 가지 스무 가지 더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어. ‘저거는 암만 저렇지만 저것도 한 마디만 하면  저렇다.’ 마귀라는 놈이 그거는 시뻐봅니다. 무슨 소리를 한다 해도, 무슨  소리를 한다 해도, 무슨 소리를 한다 해도 자기는 거기에 피동되지 않고  영감에게 피동되어서 그것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되어야 이제 승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큰 지혜를 배웠어. 얼마나 보배를 배웠는지 몰라. ○○○집사님  오늘 아침에 졸면서 저랬는데 ○○○집사님 불뚝성이 있거든. 뭐라 하면 막  달려들고 불뚝성이 있거든. 있는데 그놈이 언간히 죽기는 죽었어. 요 집 지을 때  그때 그 잔토를 실어내라 했는데, 잔토 실어내는 그 숫자를 헤아리라 했다  말이오. 숫자를 헤아리라 했는데 그때 불러서 숫자 헤아린다고 헤아리는 것 잘못  헤아렸다고 뭐라 하니까 낯이 벌거이 해 가지고, 잘못되게 안 하는데, 열심히  하는데 절 칭찬 안 하고 그랬다고 와 가지고, 4층에 와 가지고 그 낯이 벌거이  그러다가 나한테 혼났지. 그리고 나서 ‘아, 잘못했습니다.’ 그랬지? ○집사  기억 나나요? 기억나? 그래.

어쩌든지 뭘 칭찬하면, 칭찬하면 좋아하는 그 사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마귀란 놈이 칭찬을 주며 멸망을 시키는 거라. 책망하는 거기에 수입이 있지  칭찬받는 데는 백해 무익이오. 유익은 한 내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옛사람은  칭찬받는 걸 좋아하고 새사람은 책망받는 걸 좋아해.

내가 처음에 ○○○장로님 혼자 장로 되고 난 다음에 억울한 소리 얼마나  했다고. 좀 거석하면 ‘아, ○집사님 장로 부인이라고 무슨 자세하려 하나?’  억울한 소리 굉장히 많이 들었지. 이래도 그런 데는 약발 안 받아. 또 내가 그리  조겨 대서 그렇지 안 조겨 대면 장로 세도를 부립니다. 안 부리는 줄 알아도 써  먹소. 굉장합니다.

그런데 이 서부교회는 장로 되어야 참 욕이나 보고 욕이나 얻어 먹고 꾸중이나  듣고 수고나 하고 이렇지 뭐 세도는 한 내끼도 부리지를 못합니다. 세도 부리면  성신의 칼로 가지고 자꾸 수술해 내니까, 세도 부리면 수술하고 세도 부리면  수술하고 이러니까, 이래서 참으로 원만한 장로가 되고 원만한 사람이 되어져야  내 수입이오. 나는 하나님 앞에 지금 의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요  이러니까 이걸 잘해야 상급될 것 아닙니까? 자, 이제는 오늘 아침에도 참 보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님 저기  지금 자기 부인이 가 가지고 치료를 해. 치료를 하되, ○집사하고 둘이 가서  치료를 하되, 치료를 해서 그 사람은 의인으로 추켜 올리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너는, 그러니까 너를 거석하지 않느냐? 그래도 널 감리로 세운 것은  그렇다고 하지 않느냐?’ 추켜 올리지 말고, 그 죄악 고놈을 가서 ‘이거  죽여라. 죽어라.’ 이걸 바로 치료해서 사람이 좀 확 고쳐지도록 그래 치료해.

치료 못 하면 내가 할 거라.

아래 대구서 온 그 사람 한 두 시간 치료하니까, 뒤에 어쩐지 몰라도 나중에  가서 낯이 벌거이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 그 사람 칭찬 하나도 안 했어. ‘네가 배은하는 인간이 아니냐? 너 그게  옛사람 아니가? 너 전부 허영쟁이고 허욕쟁이로구나.’ 이러니까 이래 치료를  받아. 그래 사람이 만나면 치료를 해야 돼.

내가 그랬어. 너 ○집사한테 기대했지? ○집사가 권찰이니까 무슨 신앙이 있는  줄 아나? 신앙은 ○○○에 비해서 ○집사는 신앙은 그밑에 있다. 여기 ○집사 와  있는데, ○○○집사님, 남권찰들 신앙 있다고 권찰 세운 것 아니오.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시작해 놨지. 내가 어제 ○○○집사님한테 말했지. ○○○집사님  여기 와 있을 거라. ‘○집사님 권찰로 세웠으니까 신앙이 너보다 나은 줄 아나?  신앙이 너 요량하면 저 밑에 어린애다. 할 사람이 없어 그런 것 아닌가? 네가  헌신하려 하면 남권찰 좋지. ○○○집사님이 지금 뭐 말해 가지고 신앙의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무슨 그런 것이 있느냐? 아직까지 인본주의다. 그 부인  ○○○집사님만 못하다. ○○○집사님도 신앙은 좋지마는 인화주의로,  인화주의로, 인본주의요 인화주의다.’  우리 ○집사님에게 ‘나한테, 다른 사람은 주고 나한테, 내게 요절 성구 하나  주십시오. 내게 성구 하나 주십시오. 내게 대한 표어는 뭐입니까? 제일 요긴한  성구가 무엇입니까?’ 오래 됐어. 한 20년 됐어. ○집사님에게 ‘○집사님은  인화주의, 사람을 상대하고 인화주의자입니다.’ 인화주의자라는 고것으로  사람을 사귀는 고걸 말하니까 자기가 그때는 좀 이해가 되면서도 ‘그래도  사람이 인간적으로 화평해야지’ 인간적으로 화평해서 참 천이면 천 백이면 백,  그 사람 다 좋도록 하려고 이래 화평주의로 나가지. 그것 때문에 신앙을 못  지켜. 지금은 그렇지 않아. 지금은 거석하고 나니까 옳은 건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딱딱 치료를 한다 그말이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그러기에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치료받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에 치료 많이 했어.

이런데, 어쩌든지 잘 고쳐 가지고 가야 돼. 이제까지 죄 지은 것도 문제가  아니고 뭐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고쳐, 고쳐진 그것만 가지고 가.

고쳐진 것, 고쳐진 것.

봉사할 수 있는 사람 딱 기다리고 있어요. 이래 가지고 소리만 나면 오고, 오늘  봉사할 것 없습니까? 저 현장 감독, 없어? 오늘 봉사할 것 없답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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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81 길가밭을 면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30719화새 선지자 2015.10.27
680 길,진리,생명/ 요한복음 14장 6절/ 800316주전 선지자 2015.10.27
679 기초적 복음 세 가지 우리 할 일 두 가지/ 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820522토새 선지자 2015.10.27
678 기초믿음, 건설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890511수새집회 선지자 2015.10.27
677 기적과 축복은 깨끗에서/ 요한1서 3장 1절-6절/ 860102목새 선지자 2015.10.27
676 기억 할 것 8가지/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51025금야 선지자 2015.10.27
675 기쁨이 더해지는 순서/ 빌립보서 4장 4절-7절/ 871213주후 선지자 2015.10.27
674 기쁨을 취사 선택해야/ 빌립보서 4장 4절-8절/ 830328월새 선지자 2015.10.27
673 기쁨으로 삽시다/ 요한계시록 3장 2절-16절/ 850530목새 선지자 2015.10.27
672 기쁨에 대한 회개/ 빌립보서 4장 4절/ 830327주후 선지자 2015.10.27
671 기쁨과 평강/ 베드로전서 1장 7절/ 820705월새 선지자 2015.10.27
670 기쁨/ 빌립보서 4장 4절/ 850227수새 선지자 2015.10.27
669 기쁨/ 베드로전서 1장 5절-6절/ 811030금새 선지자 2015.10.27
668 기본회개-회개의 기쁨/ 마태복음 4장 17절/ 870317화새 선지자 2015.10.27
667 기본회개-회개기쁨/ 요한일서 3장 1절-15절/ 870316월새 선지자 2015.10.27
666 기본회개-원죄회개/ 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860202주후 선지자 2015.10.27
» 기본회개와 고치는 수입/ 누가복음 16장 1절-9절/ 820611금새 선지자 2015.10.27
664 기본회개/ 다니엘 12장 11절-13절/ 810523토새 선지자 2015.10.27
663 기본적인 의와 건설적인 의/ 로마서 1장 17절/ 860429화새 선지자 2015.10.27
662 기본명령과 건설명령/ 신명기 28장 1절-6절/ 850121월새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