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회개-원죄회개

 

1986. 2. 2.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우리는 한 진리라도 꼭 바로 알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기분 좋고 흥분하고 마음이 시원하고 쾌한 그런 것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그것이 제일 큰 문제고, 둘째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정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함께 하시는 것이 그것이 둘째로 문제입니다.

함께 하신다 말은, 세상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원수의 죄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능력 있는 생활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늘 말을 해서 듣기 싫어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 그 세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동행을 안 했습니다. 같이 움틀거려서 애굽에서 나왔고 광야를 거쳤지만 항상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믿음 있는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 없는 사람들이 놀랠 때마다 그들은 기뻐했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절할 그런 때에 그들은 웃으면서 하나님의 능한 솜씨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 광야에서 시체가 되고 가나안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시대마다 참으로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대주재의 아들인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 대주재가 저의 아버지 된 것을 믿느냐, 그분의 동거 동행함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을 말로는 다 잘 믿고, 믿지 아니하면서 믿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실제로 믿지 아니하고는 그 현실을 믿음으로 통과할 수가 없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세상을 깔보고 발아래 밟고 이기는 걸음을 걸을 수가 없고 믿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그런 현실들을 하나님이 자주 주셨습니다.

그때에 믿고 안 믿는 것이 환하게 나타나서 자신도 거짓부리를 알고 다른 사람도 거짓부리를 알고 참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믿는 다는 그 사실을 그들의 모든 자체와 행동들을 통하여 환하게 나타나서 보이는 그런 일들이 있어서 그것으로써 잡것과 참을 구별한 시대가 많고 은밀히 개적으로도 그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어서 믿음의 시련이라 말합니다. 시련이라 말은 믿음을 시험한다는 말이요, '련'이라 말은 믿음 없는 것을 없는 줄 알고 잡 믿음을 잡 믿음인 줄 알아서 잡것은 타고 순진한 것만 작든지 크든지 남도록 하려는 그런 역사인 걸 가리켜서 믿음의 시련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일시에 말하는 것을 듣고 인정하는 그런 아주 너무도 어리석고 단순하고 그 시야가 짧고 좁기 때문에 만판 마귀가 배부를 수 있고 마귀의 공작이 얼마든지 유리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일이라도 시간적으로 할 수 있는 대로 길게 보는 게 좋습니다. 오늘에 의인이라도 하루 의인과, 일 년 의인과, 십 년 의인과, 이십 년 의인과 삼십 년 의인과, 오십년 의인이 다릅니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신앙 생활했으며 어떤 굴곡과 애로를 거쳤으면 그럴 때는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고 따라야 되지 잘못하면 거짓말쟁이한테 다 속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쟁이의 아비라고 말을 했습니다. 마귀가 들어가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거짓말쟁이의 아비라. 거짓말쟁이라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암의 꼬리로 상징을 했습니다. 어떻게 자주 변하는지. 아무리 나라에서 하는 것이라든지 개인이 하는 것이라든지 사회가 하는 것이라든지 시대가 하는 것이라든지 보면, 자꾸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그 경영과 계획은 변치 않습니다. 인간은 변합니다. 인간이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실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고쳐서 다시 깨끗하게 바르게 될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의 큰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주장했다가도 '이거는 잘못됐다 고치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다음에 변동하면서 '그때는 그랬지만 이때는 이래야 된다'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서 못을 박아서 밝히지 안하고 자꾸 이렇게 이리저리 변동하는 거는 순전히 마귀 행색입니다. 요사이 이 세상이 어떻게 돼 가는 것을 눈을 뜨고 보면 환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첫째가 하나님의 심판에 인정함을 받느냐 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언제나 심판은 심판대로 떼 놓고 제 행동은 행동대로 떼 놓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도, 하나님의 심판도, 내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동행을 하나 안 하나 하는 그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은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수가 있고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빠져 버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 함정을 둘러 가고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함정에 가다가 빠집니다. 이거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자기와 동행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이 문제가 둘째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인정받고 안 받는 그까짓 게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인기 끌고 많은 사람이 딿고 안 딿는 그까짓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의 그 폄론을 내가 매우 경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있는 그 자신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서 건사를 맞을 터이니까, 조사를 받을 터이니까, 심사를 할 터이니까 그저 그날까지는 또 살피고 또 심사해서 그저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조심히 그날을 가기까지 어느 때라도 잘못됐다는 것이 발견되면 즉시 없애고 지위고 권세고 체면이고가 다 문제가 아닙니다. 박살이 돼도 잘못됐으면 즉시 고쳐야 합니다.

자기가 말했던 주장이 잘못돼서 학자의 명예가 박살이 되고 권위의 명예가 박살이 돼도 틀린 줄 알면 즉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백 목사도 백 목사가 성경이나, 깨달은 그 주장하는 그 주장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잘못된 그것을 얼버무려 넘기든지 그것을 오늘에 고치지 안하고 나가면 그것은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잘못 증거한 것을 다른 사람이 듣고 구원에 실패했으면 그 보상을 다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승된 자들은 받을 심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됐으면 그거는 명성보다도 크고 이 세상 위신이나 지위나 권위보다도 크고 육체의 생명이 죽는 것보다도 더 큰 심판 문제기 때문에 그런 것을 문제시하지 안하고 즉시 잘못됐으면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줄 알고 고치지 않는 것이 성신을 훼방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과 제사장들이 그들이 교훈해 놓은 것이, 예수님이 와서 교훈을 하시니 그 교훈과 삐뚤어졌습니다. 그들이 삐뜰어진 걸 알았습니다. 알지만 예수님의 교훈을 옳다 인정하면 저희들의 교훈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부정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박살이 되지. 많은 사람들에게 책임에 추궁하는 그런 여러 가지 멸시와 대적을 받게 되지, 이러니까, 예수님의 그 모든 성경 가르침이 옳은 줄 알고도 선뜻 긍정해서 따라가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꾀를 써 가지고 머뭇거리다가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했을 때는 그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과연 부활하셨으니 말씀한 대로구나' 알았지만 그때에 만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가 메시야라고 말했으면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명예나 지위나 인정이 상할까 싶어서 알고도 회개를 못 했지만 마지막에는 알고도 육의 생명이 아까와서 회개 못 하다가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는 '이미 죽을 생명 죽어도 그때 회개할 걸, 명예나 지위나 권세가 그게 깨지면 뭐 할 건가? 그때 회개할 걸. 오늘은 옛날 회개했으면 좋을 뻔했고, 그 다음에는 점점 갈수록이 후회가 커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도 스스로 살펴서 자기가 참으로 산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거짓부리에 있는지, 제가 참으로 믿어 구원을 바라보는지, 거짓부리로 형식으로 그저 말 신자로 모양 신자로 살고 있는지, 그것을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확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첫째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인정받나 안 받나 그것은 자기가 성경을 알기 때문에 성경 가지고 비판하면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보다도 알기 쉬운 것은 하나님과 저와 동행을 하는가 안 하는가 알 수 있습니다. 평안 무사 시에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하는 평안 무사 시에는 부지런한 사람이면 다 성경 말씀대로 지킬 수 있습니다. 조심만 하는 사람이면 다 지킬 수 있습니다. 만, 조심도 필요 없고, 부지런도 필요 없고 각오도 결심도 필요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라야 그 믿음이 통과하고 그때에 진리를 보수할 수가 있지 인간의 요소나 결심 가지고는 안 된다 하는 그런 것을 개인의 개적으로 자기는 자주 만날 것입니다.

나는 결심을 이랬는데 거꾸로 됩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결심이 다 무효요, 작정이 무효요, 소원이 무효요, 이는 내게 내가 아닌 객관의 능력이 와서.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없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라 그 말이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이거는 볼 때에 나 외에 그 객관의 능력이 나를 붙들고 이 길을 건너갔지 이 능력이 아니면 이렇게 통과할 수가 없다. 자기가 봐도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건너갔다는 그것이 인정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얼마든지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둘째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나 안 해 주시나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말로 하면 다 하지만 말 가지고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말에 있지 않습니다. 권능에 있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때도 사람들은 다 신사 참배 안 할라고 각오하고 작정하고 노회마다 총회마다 다 결의했었습니다. '그거는 우상 숭배기 때문에 안 해야 된다' 결의했습니다. 만, 결의가 소용 있으며 작정이 소용 있습니까? 마지막에는 다 안 하고는 안 되는, 그것이 누구의 덕택으로 안 할 수가 있는 게 아니고 전부 개인 개인에게 다 봉착돼서 개인 문제가 되어서 개인 개인이 하나님 앞에 우상 숭배의 그 죄를 범하고 안 범하는 것을 개인 개인이 다 확정 지웠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심이나 각오가 아니고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를 붙들어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뭐 그 사람들이 그걸 싸워 볼라고 하지도 안했어. 대적하지도 안했고, 그들이 와야 웃으면서 지내 가고 그들이 와 가지고 아무리 해도, 그들에게는 자극을 충격을 어려움을 주지 안했기 때문에 웃음으로 지내 갔습니다. 상대방은 결사적으로 야단을 쳤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웃음으로 예사롭게 그렇게 그 어려운 일인 줄도 모르고 다 지나갔던 것입니다.

6.25때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갈 때에 그들 보기에만 크게 놀라고 야단이었지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 자극이 없었습니다. 그거는 의례히 저희들이 걸어갈 걸음이기 때문에 별스럽게 어렵지 안했습니다. 놀랐는데 결심을 해야 되겠다, 생명을 내놔야 되겠다 절대 그런 일 없었습니다. 생명을 내대야 된다는 그런 걸로 가지고 된 것 아닙니다. 그저 평소에 주의 말씀대로 살고 그럼으로 그리스도화되고 그럼으로 진리를 아니까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 자유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기독자의 이 신앙 생활은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개별 주권 섭리자 그분하고 함께 움직이는 생활입니다. 기독자의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 뜻을 깨닫고 알면 내나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에게 붙들려서 그분의 것이 되어서, 그분의 수족이 되어서, 그분의 몸이 되어서, 나쁘게 해석하려면 그분의 도구가 되어서, 어쨌든지 하나도 자기에게는 주권이 없고 그분이 붙들고 역사 해서 그분을 따라서 움직여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산 신앙 생활이 그것이 산 신앙 생활입니다.

이러니까 모든 존재의 개별 개별의 생사 화복을 주권하고 있는 그분하고 한 덩어리 돼서 움직이는데 피조물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셋째로 증거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버린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얻는다. 내가 너에게 축복해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 네가 인간지 천물이지만 잠시 후에는 인간 위에 대가리가 된다.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는다,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는다.

네가 하는 것을 과학에 맞추고 인력에 맞춰서가 아니고 순전히 그분의 기적과 축복으로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하시고, 너거끼리 시비해서 갑의 걸 뺏어 을에게 주고, 을의 걸 뺏어 병에게 주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하늘 보고를 열고 하늘에서, 땅에 있는 그것들은 너거끼리 갈라 살거나 말거나 냅두고 땅에 없는 거 하늘에서 새것을 내려서 너희들에게 쌓을 곳이 없이 주리라, 꾸어 줄지라도 너희들은 꾸지 안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리라.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셋째로는, 내가 신앙 생활하는 것에 이 셋째 것이 또 우리에게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게 있어야 됩니다. 셋째 것 그것보다도 둘째 것이 있어야 되고, 둘째 것 그것보다도 첫째 것이 있어야 됩니다. 첫째 것 있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고, 그다음에는 둘째 것 있는 것이 두 번째로 중대한 문제고, 셋째로는 자기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동행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 피상적인 껍데기 있다가 없어질 것, 썩어질 것, 땅의 것 이런 것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의 축복으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자타가 환하게 볼 수 있도록 되는 이것이 신자의 받는 껍데기입니다. 껍데기 이거라도 있어야 합니다.

이게 있어도, 이러므로 이것을 다 포기하고, 이게 있어도 이런 것을 가치로 처음에는 삼았지만 가치로 삼지 안하고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기를 원하는 -고기 잡아 놓고 고기 그물 다 던지고 주를 따른 베드로와 같이- 이렇게, 껍데기에서 깨닫고 그 알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이것을 잡았고, 땅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게서 하나님의 전지의 그 심판에 인정받는 그것이 영원의 시발이기 때문에 그분의 심판에서 인정받는 이것을 두고 여게 가치를 두고 노리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다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너희는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네 소망은 예수님이 재림해서 온 천하가 불탈 때에 타지 않을 거기에 가치 두고 그것을 소망 두고, 네가 비록 살기는 여게서 살지만 네 계획도 주님 구름 타고 오실 그때 어찌되느냐 거게서 계획하고, 그때에 가치 있고 그때에 내가 가지고자 하는 그것을 지금 이 세상 현재에서 가질라고 노력하는 그 사람이 되어져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지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그와 동행해 주실 수 있는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받아 하나님의 의의 후사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인데, 멸망하지 안하고 영생하게 되는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인데 이 기독자의 구원을 이 세상에서 아무나따나 해 가지고 되는 그것들보다도 더 천하게 여깁니다. 아무나따나 하는 농사 짓는 것도, 조그만한 제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이치가 있고 거게 삐뚤어지면 안 되는 것인데, 채소 한 포기를 가꿔도 나무 하나를 심어도 그 이치에 삐뚤어지면 안 되는 것인데 그런 것만치도 조심하지 안하고 마음대로 신앙 생활해도 이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뭣이 요걸 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요걸 내놨는지 모르겠소! 마귀가 분명히 내놨습니다.! 왜 이렇게 구원을 이루는 이 구원 성취의 과정을 이렇게 아주 맹물 마시듯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 놓고 이런 학설을, 이런 주장을 가지고 인간들을 유혹시켜서 구원 이루어지는 말만 하면 빌빌 돌아갑니다. 돌아가 봤자 어디로 갈 것입니까? 지옥이나 갈까! 갈 데가 없어! 이러니까, 이 구원을 정말 이루는 이 법칙은 성경이건만 성경을 바로 말하면 다 듣기 싫어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온 교인이 와 가지고 다 듣기 싫어하니까 그 비위 맞춰서 말해 줘야 되니 말 안 해 주면 그것도 안 모일 터이니까, 또 그걸 싸나 시간 걸쳐서 쉽게, 걸리지 안하도록, 거리끼지 안하도록 가르칠라고 하면 시간 걸려야 되니까 또, 한 시간 지나가면 설교 길다고 '아이고 설교 길어 거기는 가기 싫더라' 가기 싫거든 지옥을 가거라, 두말할 것 없이. 지옥을 가거라. 네 영은 구원 얻었지만 네 심신은 지옥이다.

이렇게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 것도 그걸 얻으려면 머리 싸 짜매고 몇십 년을 공을 들여야 되는데 영생의 구원 도리는 일 주일 내 가다가서 오전 예배 보는 그거 가지고 다 된 줄로 알고. 말은 외우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권능에 있어. 말은 외우는지 그 속에 권능을 네가 받아! 세상을 이기는 권능을 받아! 자기를 이기는 권능을 받고 마귀를 이기는 권능을 받아! 이렇게 쉽게 여겨서 공 먹을라고, 마구잡이로 먹을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이게 가증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 기분 좋은 걸 바랍니다.

영화관에 가고, 춤추는 자들은 춤추는 데 가고, 술 먹는 자는 술 먹는 데 가 가지고 기분 좋게 흥분 좋게 사는 거와 같이 교회와도 이 흥분과 기분을 꿈꾸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걸 다 회개를 해야 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2가지를 회개를 해야 되는데 기본 회개를 해야 되고 평생 회개를 해야 되고 2가지 회개를 해야 되는데 기본 회개는 어떤 것이 기본 회개냐? 원죄 회개하는 것이 기본 회개입니다. 원죄 회개하는 것이 기본 회개요, 원죄 회개가 어떤 게 원죄 회개인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멸망인 것을 알고 이제는 자기 중심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위주를 버리고 하나님 위주로 요것이 기본 회개입니다. 원죄 회개입니다. 이것을 회개하지 안하고, 목사가 돼도 원죄 그것이 용감스럽게 활동해서 목사 노릇하고 장로가 돼도 원죄 그것이 들어서 장로 노릇하고, 집사, 권사, 뭐 반사 노릇을 해도 원죄 그것이 그런 가장을 꾸미고 예수 믿는 가장을 꾸미고 원죄 그것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제가 예수 믿는 척 해서 무슨 봉사하고 해도 제 명예에 거리끼면, 제 자존심에 거리끼면, 제 중심에 거리끼면, 제 위주에 거리끼면 당장 반항입니다. 당장 반항이오.

예수 믿는 거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을 부인하고,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 회개입니다. 원죄 회개요. 평생 회개라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들어서 만들어 낸 모든 평소의 자기 행동 그것이 다 본죄인 것입니다. 본죄. 그것을 회개하는 것을 평생 회개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게 봉독한 말씀 가운데에, 고 전에 보면 노아 때와 같다 말씀을 하시고,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밭에서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 두 여인이 매를 가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 두 사람이 같이 누워 자는데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둔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같이 일하니까 같은 사람이 같이 일하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이 같이 누워 자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이 같이 매를 갈지 않습니까? 이런데 어떻게 살면 데려감을 당하고 어떻게 살면 버려둠을 당한다느냐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데려가고 어떤 사람은 버려둬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인가 하는 이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모르면 어떻게 우리가 합니까? 너무 성경은 사이비 하게 거짓부리가 너무 많습니다. 거짓부리의 주석들이 너무 많습니다. 참 주석도 있지만 거짓 주석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여게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이 이것이 영을 말하겠습니까 육을 말하겠습니까 어떤 걸 말하겠습니까? 요것도 지금, 요거 지금 확실히 구별이 돼 가지고 안 있습니다. 이것을 영이냐 육이냐 구별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봐서, 안 믿는 사람은 버려두고 믿는 사람은 간다, 택한 자는 가고 불택자는 안 간다 이것으로써 단정지웠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안심하고 있습니다. 다 안심하고 있소.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면 다 데려감을 당하고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이면 그 사람은 멸망 받는다 이러기 때문에 다 안심이오. 여러분들 다 안심이오. 다 안심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에 다, 버려둬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자도 있고 하늘나라 갈 자도 있습니다. 요것을 바로 구별하는 여게서 구원이냐 멸망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게서, 요게는 요래 놨지만 고 아래위를 보면 노아 때에, 그때에 그 행동이래 한 사람은 구원 얻고 저래 한 사람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또 고 밑에 보면 깨어 있는 사람은 구원 얻고 깨어 있지 않은 자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게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하는 것이 이것이 영이냐 육이냐 요것을 뭘로 판단하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중생된 영은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에 가지만 이 심신으로 된 심신은, 사람은 영도 인격성을 가졌습니다. 심신으로 된 육도 인격성을 가졌습니다. '육신으로 살면' 하는 육신으로 사는 그것이 영을 포함된 것 아닙니다. 영 두고 심신을 가리켜서 육으로 살면 사망이요, 영으로 살면' 하는 것은 성령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하는 것은 아래 위에 쭉 보면 행함을 근거해 가지고 행함을 근거해서, 행함의 근거의 결과로 이리저리 된다 하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 구원인 영의 구원이 아니고 심신의 성화구원, 행위 구원, 건설구원이라고 이거는 판명을 지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구원에 어떻게 힘을 써야 된다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래서, 껍데기는 꼭 같이, 껍데기는 꼭 같은 사람으로 같은 일 하고 같은 말하고 같은 행동을 하지만 하나는 멸망 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 이렇게 2가지로 나누어졌으니 멸망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사는 것이며 구원 얻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사는 것인가, 요것을 우리가 확실히 구별하고 판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은 직장에서 다 같은 사건을 행사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합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옛사람으로 그 직장 생활, 그 사업, 그 사건 처리 할 수도 있고 새사람으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으로 그 생활을 하는지 새사람으로 그 생활을 하는지 눈이 밝은 사람은 짐작할 수 있고 본인은 누구보다도 똑똑히 알 수 있지만 얼핏 봐 가지고는 잘 모릅니다.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은 새사람으로 사는 그 자의 심신은 다 구원으로 등용되고 옛사람으로 사는 자의 그의 심신의 기능은 다 멸망 받는 것을 가리켜서 요게 똑똑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 같이, 옛사람으로도 그 일을 다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새사람으로도 그 일을 다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으로 못 하는 것 아니고 새사람으로만 하는 것 아니오. 옛사람이나, 새사람이나 그 일은 꼭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옛사람으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옛사람으로 하는 것인가? 옛사람으로 하는 것은 성산의 감화를 받지 안하고 악령의 감화를 받은 것, 악령의 감화는 어떻게 받는가? 불신자, 안 믿는 사람들 속에는 악령의 감화가 그들을 주관한다 했습니다. 아무리 위인이라도, 아무리 대학자든지 군자든지 도덕가든지 어떤 법률가든지 어떤 현명한 정치가든지 불신자 속에는 공중의 악한 영이 그들을 주관하고 있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놓았습니다. 에베소 2장에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악령이 주관하고도 오만 사업 행동 다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일을 하는데 자기 중심으로 하든지, 어떤 피조물의 국가 중심으로 하든지, 어떤 위인의 중심으로 하든지 어쨌든지 하는 것 이, 자존자, 조물주, 대주재 그분의 중심이 아닌 그분과 배치되는, 그 피조물 중심으로 하는 그것이 옛사람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피조물에 따라서 움직여도, 다니엘이 파사 나라에서 다리오 왕에게 모든 행정을 할 때에 얼마나 다리오 왕에게 순종을 했든지 그 동역자들이 말하기를 저 다니엘은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직책이나 행정이나 이런 데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흠을 잡을 수가 없다 이랬습니다. 다리오 왕 시키는 바로 다 하니까 조그만치라도 송사하거나 고소하거나 그렇게 참소할 만한 그런 끄내끼가 없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다리오 왕 하는 대로 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다리오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그말 한 마디가 딱 떨어졌을 때에는 거게는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반대가 됐습니다. 이제까지 다리오 왕에게 순종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 다리오왕이 말했든지 누가 말했든지 그 일이 하나님 중심의 일이 되기 때문에 달게 순종했지만 하나님 중심 일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간 중심이 될 때는 즉시, 죽어도 돌아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일이 닥치기 전에는 다니엘이 그 사람인지 누가 그 사람인지 모릅니다. 꼭 같지 않습니까! 그때 그 일이 오니까 저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다르고 인간 중심이 다르고 달라졌다. 그렇지 그 전에는 모른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내나 어떤 피조물 중심, 영감, 성신의 감화 반대 악령의 감화, 악령의 감화는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악령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산다고 에베소 2장에 있지 않습니까? 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야단을 지길란지 모르겠습니다.

에베소2장 2절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역사하는 영이라.' 그 영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그 영이 주장해 가지고 산다고 여게 성경에 똑똑히 말하지 안했습니까! 내 말이 아니오. 성경이 말하고 있소.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그 영 따라 살고 모든 사람이 피조물 중심 위주로 살고 있는데 그거 누가 알 것입니까!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떠난 이런 행동, 이런 언행 심사의 이런 행동 저런 행동, 평생 하나님을 떠나 사는 그 모든 생활의 습성, 연습, 버릇 이것으로 사는 것이 버려둠을 당할 수 있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 자의 심신의 기능은 멸망을 받습니다. 이렇게 사는 자의 심신의 기능은 멸망을 받는데 하나님이 아시고 그걸 멸망을 시키지요.

같은 그 자리서 사나 다니엘이 기도를 하니까 사람들이 알기에 저거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다리오 왕 중심으로 살지 안한다 하는 것이 그때 표가 났지 그 전에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다리오 왕 중심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뭣인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소개하고 있는 신구약 성경 진리 말씀으로 사는 것, 진리의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진리의 말씀 따라 삽니다. 성경 말씀 따라 삽니다. 성경 말씀 따라 사는데 성경 말씀 따라 사는 그것보다도 한 층 더 들어가니까 양심이 살아나고, 양심이 살아나고 나니까 성경 말씀대로 사는 그 속에 성신의 감화대로 사는 그 감화에 도달해서 성신의 감화대로 삽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보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성신의 감화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명문된 성경 말씀을 보면 이것은 해서는 안 되겠다 싶으지만 영감을 받으면 안 하고는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사는데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사는 이 진리는 뭣을 하며 영감은 뭘 하는가? 진리로 사는데 진리로 사는 그것은 곧 무슨 생활로 인도를 하는가? 그러면 진리가 인도하는 거게다가 더 강한 인도, 더 정확한 인도, 영감의 인도를 받아 사니까 뭘 하는가? 진리가 영감으로 인도하고 영감은 뭣에 인도하는가? 영감은 예수님의 3가지 대속에 인도를 합니다. 영감은 사죄에 인도를 합니다. 사죄는 주님이 대신 대형 받음으로 사죄 준 이걸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게 아니지만 주님이 내 대신 했기 때문에 내가 한 것으로 믿는 그것이 사죄를 믿는 것입니다. 사죄를 믿음으로, 사죄를 믿으니 죄가 거게서 멸해집니다.

사죄를 내가 믿으니, 주님이 대형해서 사죄 주신 것을 내가 믿으니 그거는 죄가 근방에 오지 못합니다. 죄가 다 멸해졌습니다. 마귀가 거게는 접선하지를 못합니다.

사망이 접선하지 못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나를 사죄로 인도해서 사죄 공로를 믿는 자 되어, 이 공로를 믿는 자 되어 이 공로를 입음으로 이 공로 입은 자로 이 공로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이 진리와 영감입니다. 이럴 때에 죄와 마귀와 사망은 상관없는 자가 되어지는 요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오.

또, 이 진리와 영감은 뭣합니까? 대행하심으로써 칭의를 주신, 나는 아무 행동 없지만 주님이 내 대신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을 이루고, 율법의 요구에 완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해 주신 이 완전 순종의 의를 나는 하지 안했지만 내가 한 것으로 이 의를 내가 믿는 요 믿음을 가지도록 진리와 영감이 가르쳐 줍니다.

진리의 인도를 ㄸ고 보니까 영감 만났고, 영감 인도 ㄸ고 보니까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사죄와 나와 하나 되어서 사죄 입은 자로, 사죄 입은 사람으로, 사죄받은 사람으로, 사죄된 사람으로, 칭의의 사람으로 이렇게 살게 하니 칭의로써, 칭의를 입고 칭의를 모시고 칭의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살고 보니, 칭의의 사람이 되어 살고 보니 칭의의 근거인 진리가 나와 함께 하고, 영감이 나와 함께 하니 하나님의 온갖 축복이 나와 함께 합니다. 이걸 믿습니다. 공로 없는데 믿습니다.

믿어서, 진리와 영감은 없는 가운데 모은 걸 창조했기 때문에 온 천하가, 내가 진리와 영감대로 할라고 할 때에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호령을 쳐 버립니다.

무엇이, 잠잠해? 그런 것이 떠들어 호령 치면,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진리와 영감과 의와 사죄와 하나되어 살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의 반항도 반항으로 들리지 안하고 그에게 나는 복의 기관이 돼서 그를 살릴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올 때에 사당을 가지고 와도 내게서는 생명으로 그를 살려 버리고 그와 뭐 상관이 없는, 그들에게 대한 악에 충격이나 자극이나 사망의 해를 털끝만치도 보지 않는 이 사람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진리와 영감의 인도요. 이래서, 사죄로, 사죄받은 사람으로 삽니다.

사죄된 사람으로 살고 칭의된 사람으로 살고 칭의된 의인으로 살고, 이러니까 마귀가 절단 났어, 사망이 절단났어. 죄가 절단났어. 의가 나와 함께 있어. 진리와 영감이 나와 함께 있어.

이래 가지고 합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영생하는 새 생명, 하나님과 화친돼서 하나님이 동하니 동하고 정하니 정하고 하나님은 머리되고 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동하고 정해서 사는 이것이 새사람인 것입니다.

새사람. 한 자리에서 신앙 생활 일생 동안 해도 새사람으로 산, 고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됐고, 현실에 새사람으로 살지 안한 고 심신의 기능은, 엣사람으로 산 심신의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이를 갈며 타고 있습니다.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고 같이 움직였으나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요거 하나만 여러분들이 꼭 잡고 놓지 안하면 여러분들의 구원이 고만큼 자랐습니다. 요것을, 요 진리를 깨닫고 요대로 알고 요대로 믿고 요대로의 사람으로 필연적으로 이렇게 살게 되는 고것이 은혜 받은 것이요 구원 이루는 것입니다. 떠들고 감정으로 야단지기고 흥분하는 거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거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언제든지 마귀란 놈은 막 둥둥둥 이래 가지고 사람을 어지럽게 만들고 떠들게 만드는데 하나님의 도는, 지진 속에도 없고 폭풍 속에도 없고 볼 속에도 없고 세미한 음성 속에 있다 그말은 이것은 외부에 있지 안하고, 우리 구원이 껍데기는 진리에 있고 좀 들어가면 영감애 있고 좀 들어가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대형 대행해 가지고 우리에게 대속을 주신 여기에 우리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는 것을 해석을 많이 했지만 아직까지 여러분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했으니까 아버지가 가깝습니까 주님이 가깝습니까? 누구를 먼저 만났습니까?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했으니 누구를 그라면 먼저 만납니까? 누구를? 주님을 먼저 만납니까 아버지를 먼저 만납니까? 예? 네, 바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을 먼저 만납니다. '우리' 하는 데는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됩니다. 그리 아니면 아버지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는 데에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부귀 영화를 다 내어 놓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시고 다시 창조주가 피조물로 부활까지 하셔 가지고 이래 가지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 만들기 위해서 우주를 만들었고, 영계를 만들었고, 모든 걸 예정했고 이렇게, 내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아들되는 이게 되는 데에는 얼마나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큰 것을 제공했으며 이를 위해서 얼마나 큰 것을 만드셨고 얼마나 큰 계획했는가? 새기고 새기면 울고 울고 울다가 웃고 해도 모자라는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빈곤하고 천한 자로 삽니다. 우리보다 존귀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그 현실의 심신의 기능은 다 영생이 되고 옛사람으로 현실을 살면 심신의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이를 갈며 산다, 왜? 그것도 인격성이 있기 때문에 그 심신의 우리의 기능이 다 거기 가서 이를 갈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걸 알고, '보자' 알아서, 옛사람이 뭐이며 새사람이 뭐인가 이것부터 구별해서 알아야, 알고 나야 옛사람을 대적할 수가 있고 새사람으로 제가 사는 이 새생활의 자기 생활을 자기가 하지, 자기 생활을 벗어내 버리지 안하지 새사람이 뭐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새사람의 생활할 수 있겠소? 옛사람이 뭐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대적할 수가 있겠소? 요것을 구별하고 현실을 닥치면 '요놈이 옛사람 요놈이로구나. 요놈 죽여야 되겠다. 요것이 새사람 정말 내로구나.

요대로 죽어도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우리는 힘을 써 가지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한 이 구원이 이루어져 가야 되는 것인데 너무 마귀들이 이래 가지고 이 구원에 대해서 쉽게만 말해 가지고 사람들을 헛되이 좋게만, 간만 부풀지 이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자꾸 일어났다가는 자꾸 타락합니다. 교회가 자꾸 타락합니다. 왜 교회가 타락합니까? 왜 믿는 사람이 왜 타락합니까? 자꾸 올라가지 타락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그러므로, 어짜든지 사람 듣기 좋게 하는 그것이 다 마귀 놀음입니다.

이래서, 오늘 오후에는, 한 자리에서 꼭 같이 언행 심사를 했는데 하나는 멸망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 그것은 볼 수 없는 옛사람 새사람 거기에서, 그 사람의 주인공이 달라서, 그 심신의 주인공이 새사람이 주인공이 될 때는 그는 영생이 되고 옛사람이 주인공이 될 때는 멸망을 받는다 하는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우리가 현실에서 옛사람을 날마다 죽이기를 힘쓰고 새사람으로 살기를 날마다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여게 도달하기 전에 예수 믿는 맛이 없습니다.

여게 도달하지 안하면 예수 믿는 맛이 없고 여게 도달하지 안하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는 능력으로 살지는 못합니다. 요 사람으로 살면 첫째가 뭐이라 했습니까? 요 사람으로 사는 것의 증표가 몇 가지로 나타난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로 나타난다 했습니까? 요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증표가 몇 가지로 나타납니까?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한번 내 보이소, 따라와서 어짜든지 예수를 바로 믿으십시오.

바로 믿어 구원 얻어요. 사람 따라 어디 따라 그라지 말고 '바로 믿어서, 죽어도 살아도 바로 믿어요. 모가지가 끊겨도 바로 믿어요. 그라면 영원한 세계는 우리 것입니다. 여게는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네, 이 셋입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이 셋이 이루어집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둘째로는 그이의 이 재세 생활에, 세상에서 재세 생활에 지극히 큰 능력이 저를 붙들고 사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한 것도 그 사람의 결심으로 한 것 아닙니다. 그것도 빛 이 능력이 붙들고 일한 것입니다. 오늘에 교회를 이루는 것도 이 능력이 붙들고 일하는 것과 인간의 재주로 일하는 거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는 것은 그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성부 성자 성령 이 셋은 하나요 진리는 하나인데 이 능력이 그와 함께 하는가 안 하는가, 이 능력이 나와 함께 하나 나 혼자 백지 움직이나, 이 능력이 나와 함께 하나 이것은 자기가 시험해 보십시오. 셋째로는 그의 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그의 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축복 오는 것을, 기적과 축복이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적과 축복 없으면 가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전지 전능자가 동행하시는 그런 일이 없으면 가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암만 믿어 봤자 하나님의 심판에 인정해서 옳다 인정함을 받지 못하면 다 소용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한 마디라도 듣고 바로 깨닫고 확정을 지웁시다, 그러면 세상 마귀들이 이렇게 끌고 가는데 이리 끌려 돌아다니고 저리 끌려 돌아 다니고, 생명 없는 흥수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그렇게, 나무 떼 모양으로 밀려 돌아다니지를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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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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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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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81 길가밭을 면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30719화새 선지자 2015.10.27
680 길,진리,생명/ 요한복음 14장 6절/ 800316주전 선지자 2015.10.27
679 기초적 복음 세 가지 우리 할 일 두 가지/ 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820522토새 선지자 2015.10.27
678 기초믿음, 건설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890511수새집회 선지자 2015.10.27
677 기적과 축복은 깨끗에서/ 요한1서 3장 1절-6절/ 860102목새 선지자 2015.10.27
676 기억 할 것 8가지/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51025금야 선지자 2015.10.27
675 기쁨이 더해지는 순서/ 빌립보서 4장 4절-7절/ 871213주후 선지자 2015.10.27
674 기쁨을 취사 선택해야/ 빌립보서 4장 4절-8절/ 830328월새 선지자 2015.10.27
673 기쁨으로 삽시다/ 요한계시록 3장 2절-16절/ 850530목새 선지자 2015.10.27
672 기쁨에 대한 회개/ 빌립보서 4장 4절/ 830327주후 선지자 2015.10.27
671 기쁨과 평강/ 베드로전서 1장 7절/ 820705월새 선지자 2015.10.27
670 기쁨/ 빌립보서 4장 4절/ 850227수새 선지자 2015.10.27
669 기쁨/ 베드로전서 1장 5절-6절/ 811030금새 선지자 2015.10.27
668 기본회개-회개의 기쁨/ 마태복음 4장 17절/ 870317화새 선지자 2015.10.27
667 기본회개-회개기쁨/ 요한일서 3장 1절-15절/ 870316월새 선지자 2015.10.27
» 기본회개-원죄회개/ 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860202주후 선지자 2015.10.27
665 기본회개와 고치는 수입/ 누가복음 16장 1절-9절/ 820611금새 선지자 2015.10.27
664 기본회개/ 다니엘 12장 11절-13절/ 810523토새 선지자 2015.10.27
663 기본적인 의와 건설적인 의/ 로마서 1장 17절/ 860429화새 선지자 20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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