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삽시다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30일 목새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2절∼16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우리가 믿으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서부 교회 와서 전도지를 박을  때에 그때에 취미를 바꾸어야 한다 하는 그것을 그 전도지에 기록해서 기쁜  소식이라고 하면서 전도지를 박아서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차차 퍼져서  기쁜 소식이라는 이 어구는 온 전국에 가득 차게 지금 찼습니다. 어디든지 기쁜  소식이라 하고 다 전도지를 박아서 그렇게 냅니다 그전에는 그런 전도지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믿고 난 다음에 차차 차차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한  것으로 바꾸는 그 취미를 우리가 맛을 알아야 합니다.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한  것으로 바꾸는 취미.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그것이 죄악의 것의 취미만 못한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에 있는 취미나 기쁨이나 쾌락이나 만족이나  평강이나 하는 그것은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서, 그 심령이 어둡고 밝은 데  따라서 깨닫는 것이 좀 차이 있습니다. 심령 밝은 사람은 땅에 속한 취미는  가져만 봐도 생각만 해 봐도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불쾌한 것을 가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땅에 있는 취미는 자기가 실지로 누리고 난 다음에는 즉시 말할 수  없는 그런 후회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취미 없이는 못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철학이 말하기를 인생에게는 쾌락이 최고의 복이라 그렇게 다 결론들을  지웠습니다. 그러기에 기쁨 없는 생활을 못하고 재미없는 생활을 못하고 소망  없는 생활을 못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사람은 힘이 나고 기쁨과 재미가 있어야  힘이 나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재미가 있으면 모든 피곤이 다  그것이 완전히 회복되어서 피곤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사는  사람입니다. 또 꾸준히 인내할 수 있는. 계속, 저렇츰 어떻게 저렇게 어려움에  참고 견디는가 하는 그것은 소망과 사랑 외에는 그런 힘을 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면 그 사람은 피곤한 줄을 모르고 죽으면서도 하다가  죽습니다. 무슨 일을 하게 됩니다. 또 사랑 있는 데에는 피곤함이나 지루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늘에 속해서 온 것인데, 우리가, 그것이 타락해서 변질된 땅의  것들이 있으니까 변질돼서 땅에 있는 그 모든 것보다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주  가치있고 온전한 것입니다. 육지에 있는 모든 동물이 바다 가운데 물 가운데도  거의 다 있습니다. 있으나 바다 가운데 있는 그 모든 동물보다는 이 육지에 있는  동물이 더 견고하고 온전합니다. 바다 가운데 있는 그 모든 산림의 그 수목들도  있으나 육지에 있는 것이 더 견고하고 온전합니다. 그런 것도 다 하나님께서  세계마다 다 제 종류대로의 것이 있는데 그것도 모두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다의 것보다 육지의 것이 정상이고 또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정상이요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적은 취미보다 큰 취미를 찾아가는 것이고 또 가치가 적은 보배보다 큰 보배를  찾는 것이 인간의 계산의 다 이성 판단으로 계산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취미 없이는 못 삽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취미를 우리가 가져야 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취미는 자기가 하늘나라를  목표하고. 하늘나라는 영원 무궁하기 때문에 영원 무궁한 그 세계에 자기는  성공하는 자가 될라는 이런 소망을 가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더  기쁨과 평강과 재미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 있을 때에는 그때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성제대라고 서울의 경성제대가  사각 모자를 썼고, 또 일본에 가 보면 사람들이 모자를 쥐 뜯어 가지고 마구 주  집어 가지고 그래 사각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또 양복을 공연히 새 양복을 사  가지고 주 찢어 가지고 마구 집어 가지고 그래 입고 다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 그때에 일본 나라가 그렇게 깨지리라 생각지 안했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받아 가지고 그 정권하에서 출세하면 그는 영원하리라 그렇게 사람들이  다 오인을 가졌던 것입니다. 역사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  가졌고 역사 공부를 한 사람들은 '아, 이 나라의 권세와 같은 그런 권세가  과거에도 많이 있었으나 얼마 지나가다가 다 이후에 다 깨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 것을 짐작했지만 사학을 공부하지 안한 사람들은 그 정권은 언제든지 그래  되리라 이래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참 희망찬 사람이라  이래서 자신도 공연히 희망찬다는 그런 희망에 넘친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도 볼 때에 그렇게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의 예비과는 고보라는, 고등 보통 학교라 하는 고보라는 학교인데,  고보 학생들은 자기네들은 모든 사람 위에 올라간다고 아주 고보 학생들 높은  게다라, 높은 목신이라, 높은 나무로 만든 다까게다. 아주 높은 목신이라 하는  것은 높게 나무로 만든 게다 밑에 발이 높아서 넘어가면 다칩니다. 이래 가지고  그저 절렁절렁 흔들면서 시가를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의 주목이 다 그리  끌려집니다. 그때는 참 고보 학생들이 드물었습니다. 그거 다 '저는 유망한  희망있는 사람들이다. 저는 다 대학을 갈 사람들이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자기도 자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그렇게 우러러 봤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찢은 옷은 못 입습니다. 찢은 옷을 입었다가는 대학생들한테 혼이  납니다. 대학생들은 좋은 옷을 사 가지고 쭉쭉 찢어 가지고, 모두 다 찢어  가지고 입는 것은 '나는 공부하기 위해서 옷이니 그런 것 돌보지 안하고 다  가난한 가운데서 지금 공부하고 있다. 나는 옷 같은 것 그런 것 사치하는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안하고 그까짓 거야 떨어지거나 어짜거나 상관없이 나는  목표만 향해서 지금 성공할라고 달리고 있다.' 이러므로. 제삼자들도 그를 아주  우러러 보고 본인도 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볼 것이라 이래 가지고 높은  게다를 신고 돌아다니고, 또 '나를 우러러 보는데 내가 그까짓 것 옷을 뻔쩍뻔쩍  입어서 좋은 옷 업어 가지고 남에게 인기 끌고 우러러 보이는 것보다 나는 이  사각 모자로 우러러 보인다' 이래 가지고 사각 모자를 찢어 가지고 쓰면서도 또  '나는 그까짓 거야 헌 모자나 새 모자나 상관도 없이 다 그런 걸 돌보지 안하고  이렇게 원청 돈을 절약하고 이래 공부하기 때문에 옷도 찢어졌고 모자도  찢어졌다' 하는 그런 것이 더 매력이었었습니다. 모두 자타가 다 매력있게  그렇게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건 다 저거들의 소망이 희망이 차기 때문에. 희망에 차  '나는 이런 희망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는 것도 그이의 그  희망을 보고 아름답게 봤고 또 자신도 그렇게 '내가 지금이라지만 내가 뭐뭐  일류 대학에 있으면 앞으로 정권에 어떤 지사도 내가 할 수가 있고 뭐 군수도  내가 할 수가 있고 또 그렇게 높은 벼슬도 할 수가 있고 뭣도 할 수가 있고' 다  이렇게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가 누구보다도 큰 소망을 가졌으면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누구보다도 자기는 우월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소망이  없어지고 절망이 되어지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안해도 죽은 자와 같이  그렇게 다 모든 날개가 꺾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참 의복이 날개라고 자기는 '나는 의복을 이렇게 좋은  의복을 입었다' 이래 가지고 그렇게 활기있는 그런 사람도 있는, 그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은 아주 저급의 사람이요 그건 참 아주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뭐 새 옷 입으면 그 날은 아주 자랑을 하고 인기를  끕니다. 그래 새 옷 입으면 또 그 옷 입지 못한 사람들은 마구 줄줄 따릅니다.

그 날 멸시했다가도. 요새는 좀 또 달라요, 옷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다 새 옷 입을 수 있으니까. 옛날에는 새 옷 좋은 것 하나 입고 골목에  나오면 그 날 아주 대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뒤에 줄줄 따르면서 이렇게  자기가 아주 고자세를 부리고 하는 사람 그것은 어린것이고. 자기가 무슨 남이  모르는 희망이 있을 때에는 그 희망을 가지고 큰 욕망을 가지고 자기가 무엇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몰라줄수록 좋습니다. 몰라줄수록 좋고 자기는 숨겨  가룰수록 기쁘고 즐겁다 그거요.

 그러면,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자기가 확실히  잡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세상 어떤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 구원하는 일과 자기가  또 소망하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깨질까 싶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할까 싶어서 공연히 사람이 겸손하게도 하고 또 참기도 하고 죽어 가기도  하고 욕 얻어먹고 거석하기도 하지. 속에는 하늘같은 그런 담력이 있습니다.

담력이 있어서, 그저 부자들보고 또 사장들보고 또 고관 대작 보고 그저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내가 이래 높은 사람인데 날 알아주지  않는다' 이래서 오해를 해 가지고 섭섭해서 구원에 멀어질까 싶어서 '예예예예  참 각하여, 높은 양반이여, 귀하신 분이여' 자꾸이라고 있는 것이지 속에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 '이것 참 불쌍하고 가련한 자이니 내가 참아야 이를  구원할 것이고 내가 견뎌야 구원할 것이고 이 사람이 나를 밟을 때에 내가  고요히 말없이 밟혀야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하지' 불쌍히 여기는 데서 그런  것이지 뭐 어떤 세력에게도 눌리거나 꺾어지는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평상시는 그러하지만 어떤 환난이 닥쳐서 극단에 이르렀을 때에는  땅위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뭐 담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발 아래 밟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밟고 왜정 정권들도 밟고 그런 걸 털끝만큼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다 불쌍히 여기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담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재미를 가져야지 재미없으면 못 삽니다. 그  사람이 만일 이 재미를 맛본다면 항상 마음은 이 재미에 있고 이 재미를, 이  취미를. 이 기쁨을. 그 기쁨이 뭐이냐? 희망의 기쁨입니다. 소망에 넘치는  기쁨입니다. 소망에 무슨 넘쳐? 자기가 일 국의 장관이나 뭐이나 고관 대작 하는  그런 희망이 있어. '아, 저 사람은 앞으로 어떤 고관 대작의 후보자다' 이래도  모두 다 우쭐해질 것 아닙니까?  이런데, 우리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너희 것이 된다. 너는 다만  하나님의 것 되고. 네 위에는 하나님만 있고 모든 피조물은 너와 동동 네 아래  있다 하는 이 약속을 믿을 때, 이 약속을 믿을 때에 우리는 굉장히 평강과  담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약속과 이 소망을 믿어서 가진 사람들은 땅위의  것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암만 해 봤자 그 사람은 벌써 성신의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눈이 밝으니까 아무리 좋다 해도 좋다 하는, 사람은 껍데기만 보고, 예를  들면 모가 이렇게 요 있으면 요 모 한 모만 보고 좋아서 야단을 지기는데 벌써  눈이 밝으니 요 모 볼 때 흉측한 요 모도 봅니다. 요 모도. 그러기 때문에, '아,  저는 참 꽃 같은 미인이다' 하는. 미인이다 하는 미인을 보는 동시에 송장을  봅니다. 미인과 송장을 같이 봅니다. 미인과 늙어 쪼그라져서 아주 볼품 없는  벽에 똥 싸 붙이는 그런 자와 같이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미로 보지를  않습니다. 또 아주 천하고 약한 자 희망 없는 모든 사람이 천대하는 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주인 하나님과 같이 보기 때문에. 그 사람도 앞으로  잠시 잠깐 후면 그 사람이 제일 존귀한 사람이 될런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멸시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보는 그 시야가 폭이 너릅니다.

폭이 널러서 시간적으로도 영원이요. 공간적으로도 물질계와 영계를 같이 보고  있는 것이요, 존재계를 보는 데도 모든 피조물의 제일 작은 자와 창조주와  연결을 시켜서 같이 보기 때문에. 이가 뭐이냐? '아, 그도 내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러기 때문에, 작은 것마다 그 위에 큰 것이 붙어 있고 큰  것마다 그 밑에 작은 것이 붙어 있고 세상 것도 좋은 것마다 천한 것이 다 붙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벌써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그들이 영광 영광 하는 것이  조만간에 수치스럽고 실상 뚝 떼어 가지고 보면 아주 욕을 얻어먹을 그런 것이  영광이 돼 놨으니까 미안스러워서 부끄러워서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에 참 믿는 사람은 자기를 선전하는 그런 무슨 삐라를 붙이고 또  선전비를 들여서 선전하는 그런 일을 부끄러워서 하지를 못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와 비슷한 것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천국의 그림자요 세상은 지옥의 그림자라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성도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세상의 고통스러운 것의 실상은 지옥입니다. 지옥은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세상 고통스러운 것보다 무한히 고통스러운 그 실상인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좋은 것은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게 있다  할지라도 하늘나라는 더 좋은 것 그 실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공연히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이런 것들을  가지고 그런 것들만 보고 그런 것만 생각하다가 하면 내가 나중에 외식하는  사람이 돼 버려서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정신도 어두워지고 모두가 다 병신이 돼  버립니다. 인간 병신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는 한없는 소망, 한없는 희망, 넘치는 능력, 참 얼마든지  공부해야 될 것이 예수 안에 있고, 얼마든지 다시 고치고 고칠 것이 예수 안에  있고, 마련해야 될 것이 예수 안에 있고, 구비해야 될 것이 예수 안에 있고, 참  보배로 영원한 영광이 예수 안에 있는데 이걸 잊어버립니다. 이걸 잊어버리니까  자연히 그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되고 맙니다. 외식하는 사람이 제가 아무리 잘  살아 봤자 심령이 밝은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이 지금 자꾸 멸망을 자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 있는 부모와 믿음 없는 자식과 그 사이에는 반드시 부모는  자식을 불쌍히 여겨서 자꾸 그래 하지 마라 할 것이요, 자식은 '부모는 지금  저렇게 미신에 빠지고 지금 최면술과 같이 종교 최면에 빠져 가지고 저래 하고  있다.' 서로 자식은 부모를 '저와 같이 깜깜 어두워 가지고 이십 세기의 과학  만능 세계에 저런 소리하고 있다' 안타깝게 여길 것이고. 또 부모는 '저것이  지금 눈이 어두워 심령이 어두워 저렇게 멸망 길을 가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피차 자꾸 불쌍하다고 안타깝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만간에 주님이 오시면  참은 나타나고 거짓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이것은 껍데기 육안으로 보는데 있지 안하고  육안으로 보는 데에는 예수 믿는 행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행복은  심령의 눈으로 봐야 잘 보입니다. 그 마음의 눈으로 봐야 보입니다. 마음의 눈이  뭐이 마음의 눈인가? 그것이 이성 이 마음의 눈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봐야 예수 안에 있는 복이 보입니다. 그것보다도 더 잘 보이는 것은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더 잘 보입니다. 양심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 지식을 가지고 보면 아주 더 잘 보입니다. 자기가 이성 판단으로 이해  못 할 것도 양심 판단이 될 때에는 이해할 수도 있고 양심 판단이 이해 못 할  것도 성경 말씀은 옳다 그르다 참 되다 틀렸다 좋다 합당 찮다 이는 복이다 화다  하는 것을 환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 판단보다도 영감 판단은  더 정확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 판단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사람들이  들을 줄 몰라 그렇지 예언을 합니다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그 말을 한 대로  개인에게 대해서나 자신에게 대해서나 시대에 대해서나 그 모든 것이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낫고 난 다음에  그렇게 말했어. '너희들이 왜 기이히 여기냐' 기이히 여기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책망한 일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2절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왜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왜 기이히 여기느냐'  왜 이상스럽게 여기느냐? 너희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듣지 안했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몇 번이나 예언해서 중복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면, 세상을  구원할 세상 구주가 오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병신들을 다 고치고  이래 하신다고 하지 안했느냐?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지 안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보고 기이하다 하지 이제 선지자들의 예언을 너희가 믿는다면,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은 다 완성이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 '아,  이분이 메시야로구나' 이상히 여길 게 아니라 '아, 메시야 왔다' 이래야  너희들이 선지자의 예언을 믿는 것인데 선지자의 예언을 하나도 믿지 안하니까  '이상하다' 왜 이상하기는, 기이히 여기기는 기이히 여기며 왜 이상히 여기기는  이상히 여기느냐? 그것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지 안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된 것은 벌써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다  예언해 놓으신 것을 그 다음 시대에, 예언한 대로 때가 되면 그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역사는 보이지 않는 예언에서 다  나왔습니다. 또 예언은 모든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다 예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 있는 자기가 어떤 희망을 가졌는가 하는  이 희망을 좀 찾읍시다.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진 자이며 어떤 소망을 가진 자이며  어떤 영광스러움을 가진 자이며 어떤 존귀한 자격을 가진 자이며 어떻게 참  보배로움을 준비해서 지극히 보배로운 실력가가 될 수 있는 건가 이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예수 믿을 취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면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이것 저것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일이 될 때에 하지 예수 믿는 일이 안 되고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절대 안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런 일 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또 세상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그런 것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계약 말씀에 '됐다' 계약  말씀의 인정이라야. 또 성신의 감화가 '아, 됐다' 자기에게 감화를 줘서 '됐다'  마음에 깨달은 광명을 주셔야 이래야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모든 생활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껍데기도 생각에  있습니다. 생각은 뭐이 생각하는 것인가? 생각은 이성이 생각한다 말이오.

이성의 눈으로 봐야 예수 안에 있는 행복이 있고. 이성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고  희미한 것은 양심의 눈으로 봐야 이제 보이게 되고. 양심의 눈으로 봐도 똑똑히  보이지 안하고 판정 못하게 될 그런 것은 무슨 눈으로 보면 보입니까? 무슨  눈으로 보면 보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보입니다. 믿음의 눈이라 하는 것은  뭣을 믿음의 눈이라 하는고? 성경에 기록한 이 사실을 인정하는 그 인정의  눈으로 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네가 나는 부자라 모든 것이 구비해서  부족함이 없다 하나 네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한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무슨  안약인가? 이것은 신구약 성경 약입니다. 신약 구약이 안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네가 모든 것을 비판해라. 이 말씀에 이걸  뭐라고 했느냐? 말씀이 그건 멸망이라 했다. 말씀에 이걸 뭐라고 했느냐? 그거  죽음도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다. 이 말씀이 판단해 주는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네가 모든 걸 판단해 봐라.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의 눈,  말씀을 근거하는, 말씀대로 이해 하고 말씀대로 판정하는 그것이 믿음의 눈인데  믿음의 눈 가지고 희미해서 보이지 앉는 것은 무슨 눈 가지고 봅니까?  ○○○선생, 믿음의 눈 가지고 보지 못하는 것은 또 뭐로 봐야 되지? 그보다  고급 눈은 뭐지 고급 눈은? ○○○선생? 동생보다 형이 낫다. 동생보다 형이  낫아.

 어찌됐던 간에 그만, 내가 요번에 가서 양산동에서 날마다 일을 시키는데 나이  스물 세살 먹는 사람 스물 네살 먹는 사람 스물 다섯 살 먹는 사람 서른 살 먹는  사람 장가 안 간 사람 장가 간 사람 아이 안 낳은 사람 아이 낳은 사람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그 차이가 얼마나 뚜렷하게 있는지. 그러기 때문에, 나이도  먹어야 되겠고 또 시집 장가도 가야 되겠고 아이도 낳아야 되겠고 고생도 해야  되겠고 뭐 차이가 얼마나 많은지, 인간 중량이 얼마나 차이가 많은지. 이래서,  보면 젊은 사람들은 보면 허뚜깨비 같이 가볍고 아무리 안 믿는 사람들도 영감들  만나 보면 좀 중량이 있어요. 중량 무게가 있어요. 무게가 있으니까 그걸 말을  못 해. 하지만 젊은 사람은 막 콱콱 이래 말해 재끼니까 똑똑하다 이라는데 늙은  사람은 이 면 생각하고 저 면 생각하고 모든 면 생각하니까 말을 못해서 항상  주저 주저 한다 말이오. 속에는 있지만 말을 발표를 차마 못 한다 말이오, 차마  못 해 그게 인제 사람 중량이 있는 것이고 그래도 그게 무엇이 있는 것이 거든.

이런데, 동생보다 형이 낫고, 나는 요새 기쁩니다. 동생 ○○○또 ○○○이 둘이  회개하고 양성원에 들었다 해서. 양성원에 들었으니까 지금 자꾸 개학하기 전에  자꾸 이거 일 학년 과목을 해서 얼른 떼요, 그게 있어야 기초 지식이 있어야  성경 공부가 돼지지 기초 지식이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우리가 뭐로 봅니까? 뭐로 보고 지금 합니까? 눈으로 보고, 눈으로  보는 것을 사람들이 소망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을 소망하는데,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어떤. 어떤 눈으로,  육안으로 보고 소망 가지는 것보다 이성의 눈으로 가지고 소망 가지는 것이 더  큽니다. 이성의 눈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미래에 있는 것을 이성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성의 눈이 밝아서 이성의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사는 사람은, 육안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것은 바로  도적질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오. 은행에 가 가지고 돈을 거머쥐면 훅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걸리는 그런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적은 다 보면 육안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육안으로 사는 사람이라. 이  세상에서 뭐 공부를 하고 나타나지 안한 그 미래에 있는 그 모든 좋은 것을 보고  사는 사람도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이라.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 그것은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이지만 그 이상은 없어요. 그 이상은 불택자들에게,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눈으로 소망한다는데 양심의 눈은 멀어서  없습니다. 양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인은 불교 양심,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양심, 또 유교인은 유교인의 앙심. 자기 종교 사상마다 그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양심은 다 죽은 양심이기 때문에, 양심이 화인  맞았으니까, 벌써 하나가 됐기 때문에, 어디 귀속했기 때문에, 양심이 자유하지  못하는 양심이기 때문에 다 양심은 썩었다 그 말이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처음엔 육안으로 살다가 육안보다 더 밝은 뭐입니까?  이성의 눈으로 살다가, 이성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또 그 다음에는? 양심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양심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그보다 밝은 눈은 뭐입니까?  성경의 믿음의 눈, 성경 말씀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인정하고 보는 그것이  믿음의 눈이라. 믿음의 눈보다 더 밝은 눈은 뭡니까? 영감의 눈 영감의 눈으로  봤으면 다 봤습니다. 영감의 눈으로 보기를 얼마나 보느냐? 사람이 살아서  청년으로 있을 때에, 죽을 때에 자기가 모든 사리 판단을 보고 평가하는 그  평가를 젊을 때 하는 그 사람이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뭐  환난이 올 때에 환난이 오니까 그때 당황하는, 환난이 오기 전에 환난 왔을 때에  어떻게 되겠느냐, 환난 왔을 때에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지금 보고 떨고 당황하면서 준비하는 그 사람이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천하가 다 불타 녹아지고 할 때에 사람들은  경거망동 안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들은 벌써 그런 것을 수천 번 당했기 때문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온 세계가 불로 타서 다 원소가 다 사뤄지고 녹아진다 모든 것이 녹아진다.

모든 인간들의 비밀이 다 드러난다 이럴 때에 뜻밖에 비밀이 드러나니까 기가  막힐 것 아닙니까? 비밀이 드러나니 기가 막히지만 아예 드러날 줄 알고 단속  단속 단속 단속 단속 단속해서 깊이 깊이 묻을 것 묻어 버리고 다 씻을 것 씻어  버리고 다 해결지었기 때문에 그거 와 봤자 자기가 미리 영감으로 알고 놀라면서  준비한 그 준비와 실상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닥치고 보니까 오히려 수월하고  무르다 그 말이오. 수월하고 무르니까 뭐 더 겁낼 게 뭐 있어야지? 더 뭐이  올란가 했는데 그것으로서 끝마친다 말이오. 그러니까 웃음으로 즐거움으로  지냅니다.

 믿음의 시간들은 언제든지 현재라는 생활은 저 미래 미래에 가 살고 있습니다.

미래 것을 현재에 당겨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현재가 닥칠 때에는 그  사람은 벌써 거기에 있지 않고 벌써 앞에 미래로 지나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래를 보고 살고 미래를 준비하고 미래에 울 것을 지금 울고 미래에 놀랄 것을  지금 놀래고 미래에 좋은 것을 지금 좋아하고 이렇게 미래에서 사는 것이 다  믿음으로 사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어짜든지 나는 예수 믿는 예수 안에 한없는 기쁨과 한없는 쾌락과  한없는 취미, 한없는 희망, 뭐 아무리 미국 같은 나라에 대통령 해 봤자 사 년  동안 임기 하는데, 또 사 년 아니라 영원히 가져 봤자, 나는 미국 그까짓 것.

하나만 가지지 않습니다. 미국 억억억만도 더 되는 것 하늘과 땅의 것을 다,  당신이 계약하기를 네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 된다고 했으니까 나만 하나님의 것이 되면, 나만 하나님의 것이 되면  모든 것이 내것이 되어지는 이것은 절대 계약이요 또 이것을 믿어 보면 이것은  절대 불변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만 완전히 되면 하나님의  피조물은 내 것이 완전히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자기가 이성 비판적으로  계산적으로 확실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요동치를 않는 것입니다. 이 소망에 살지. 그러기 때문에, 한 시간 일을 해도  말을 해도 이 소망을 가지고 말할 때에 넘치고 또 이것은 세상을 압도하고 모든  마귀는 달려들지를 못하고 우리는 참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존귀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지금 탄식하면서 지금 노력하는  것은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안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덧입기 위해서, 예수님의 재림 때 그때에 내가 가질  그것을 지금 가지기 위해서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마음이 눌리는데, 미래 준비하기 위해서 마음이 눌리는 그 마음  눌림이 차차 가면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준비가 차차 준비가 되어지니까  마음에 눌리는 것이 이제 중단이 됩니다. 마음이 눌리는 마음이 차차 차차 덜  눌리게 됩니다. 그, 눌리는. 준비에 눌린 마음이 차차 차차 가벼워지고 덜  눌리게 됩니다. 덜 눌리게 된다면 그 준비 할 것이 차차 적어졌다 말입니까  많아졌다 말입니까? ○○○선생, 예? 뭐이지? 미래를 준비하는 그 마음이  눌렸는데 준비를 차차 해 나가니까 그 마음이 눌리지 안하고 차차 차차 덜  눌리면 준비할 그 준비할 것이 차차 차차 이제 준비가 되니까 준비할 것이 차차  차차 가벼워져서 적어졌다 말이요 그 준비할 것이 많단 말이오? ○○○선생, 예?  예? 똑똑히 말 해. 가벼워졌다 말이오. 가벼워졌다, 적어졌다 말이지. 예?  적어졌다 말이지.

 그러면 그 준비하는 마음이 자꾸 점점 더 무거워지면 준비할 것이 자꾸  많아진다 말이오, 적어진다 말이오. 예?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살아야  돼. 많아집니다. 자꾸 이것 준비하다가 앞으로 이것도 준비해야 되고 필요한 게  어떻게 많은지 뭐 바쁩니다. 준비할 게 많애. 준비하니까 그 준비는 영원한  것이니까 어떻게 기쁘고 즐거운지. 이런 사람이 땅 위에 없어질 그런 모는  돈이나 모든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그런 것을 탐해서 삽니까? 또 성경이 말했고  자기 양심이 말했고 판단해서 정말 정상적인 평가적의 것을 자기가 취하고  있는데 그런데 뭐 끌립니까? 그런데 끌리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게 미혹받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소망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소망을  확고히 가지기 때문에 소망을 가리켜서 소망의 방패라 했소 소망의 화살이라  했습니까? 소망의 갑옷이라 했습니까? 소망의 뭣이라 했습니까? 소망의 투구  투구는 여기 머리를 보호하는 거라. 소망의 투구. 소망이 우리가 준비하는 중에,  우리를 힘있게 하는 중에 제일 힘있게 하는 것이요 제일 요긴한 것이라 그  말입니다. 이 소망의 투구라, 소망은 갑옷보다 더 중요한 머리, 두부를. 이거  깨지면 헛일이니까, 이걸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의 소망이 자기에게 모든 갑옷  그런 것 이런 이런 것 저런 것 준비하는 것보다 더 소망의 견고한 것이 우리에겐  제일 중요하다, 그것을 가리켜서 소망의 투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짜든지 여러분들 기쁘게 사십시오. 기쁘게 사십시오. 자 안 믿을 때 보다  믿고 나서 기쁜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기쁩니다. 자 천하에 내가 제일  기쁜 사람이요 행복된 사람이다 천하에 내가 제일 기쁘고 행복 된 사람이다  그렇게 확실히 자신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자신 있습니다. 누구를  부러워하겠습니까? 예. 이 재미로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기뻐도  하고 겸손도 하고 또 속도 썩히고 천대도 받고 하는 것입니다. 양보도 하고.

알면서 속아. 알면서 속고 알면서 속아. 힘이 있으면서 져.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린 기쁨으로 삽시다. 자꾸 생각하면 거기서 나와요. 생각하면 돈은 생각하면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건 생각할 수록 자꾸 기뻐집니다.

생각할수록 자꾸 기뻐져요. 믿는 사람이 세상을 버려 놓고 그만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면 그 사람은 세상에 다시 들어가야 됩니다. 들어가 가지고 세상에  들어가 가보면 들어가 보면 '아이고 안 됐다. 나는 내버리고 와서 마음에  그리워서 이래 그랬더만 들어와 보니까 아이고 안 됐다' 이래 가지고 다시 토해  내트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이래  가지고 이제는 세상을 자기가 처음에는 배반하고 배반했다가 그 다음에는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을 이용합니다. 세상이 뭡니까? 세상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도 이용 가치 있고 조것도 이용 가치 있으니까 세상을 아끼고  사랑해서 그렇게 일 분 일 초도 허송하지 안하고 다 희망찬 영원한 준비를  마련해 가고 있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기쁨으로 삽시다. 기쁨으로 삽시다. 땅에 있는 썩어진 취미를 자꾸  바꾸십시오. 이래서, 그리스도 안에 취미를 가짐으로써 땅에 썩어진 취미는 차차  차차 잊어버리고 역부러 가질라 해도 잊어버리고, 차차 잊어 버려서 이제 순전히  하늘의 취미 하늘의 욕망에서 온 가족이 이와같이 나아가게 될 때에 그때에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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