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할 것 8가지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25일 금야

 

본문 : 마태복음 4장 1절∼1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이 말씀을 계속해서 지금 매일 증거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하셔서 구속하신 주님이신데 성경에 예수님을 맏아들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우리를 그 다음에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이 대속 생활로 공로로써 구원을 얻은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 모든 생애를 본받아서 배워 나가야 되겠고 또 닯아가야 합니다. 이래, 예수님을 원형적 생애라고 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 생애를 닮은 모형적 생애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이 일을 기록했는데 이 일은,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마귀를 승리했다 하는,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가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 승리로 우리 구원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가 아는 것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알든지 모르든지 예수님의 이 대속의 승리로 우리 구원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알아도 되고 몰라도 우리 대속은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이 시험을 이기셨는가 예수님의 시험 이기신 것을 우리가 자세히 배워 깨달아서, 우리도 그와같은 시험을 당할 우리들이치 때문에 예수님의 승리하신 그 승리의 방편을 우리도 취해야 우리가 승리하지 그 승리의 방편을 우리가 취하지 안하면 우리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이 시험은, 시험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시험은 하나님의 공심판을 향한 시험이요, 우리는 공심판에서 예수님이 대속으로 대속을 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공심판은 다 통과 한 셈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공심판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공심판을 승리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율법의 요구를 완수한 이 공로를 우리가 입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상관이 없으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공심판이 면제된 우리들이 이제 사심판을 향해서 우리는 계속 설정하고 있습니다. 공로를 설정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승리한 것은 원형적 승리이니까 우리는 이 승리를 본받아서 예수님과 같은 그 모형적 승리를 우리가 해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된 것은 우리 영은 완전히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이 됐습니다. 다시는 거게 뭐 변동이나 그런 것이 없는 완전 구원을 얻었지만 우리의 이 심신이라는 심신의 기능은 완전 구원이 되어 있으나 완전 구원되어 있는 그 구원이 계약적으로 되어 있고, 법적으로 되어 있고, 하나님의 공심판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이제 이 실상은 언제 되는고 하니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그때에, 우리의 심신의 그 분자, 심신의 기능의 분자, 심신의 기능의 그 개별체 이런 것은 그 현실에서 완전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서 이루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단일성의 존재이지만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분자들의 종합체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도 여러 수만의 그 종합체요 또 몸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우리가, 세 가지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는 우리 심신의 기능이 이 현실 시험에서, 현실 시험에서 이 대속의 세 가지 공로를 우리가 버리지 안하면, 벗어버리지 안하면 그 현실을 통과 한 심신의 기능은 영원 완전의 구속을 받은 영생하는 그 기능으로 완성이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심신의 기능이,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 그 현실 전투에 참전한 그 심신의 기능, 부분적인 기능 그것은 그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로 살라고,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입은 자로 살라고 할 때에 온 세상과 마귀는 이 공로를 입지 말라고, 이 공로를 내어놓으라고, 이 공로를 벗으라고, 그렇게 오는 그 마귀의 역사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의 전투라 시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우리가 공심판적으로 법적으로 계약적으로 이렇게 입고 있는 이 구원을 내어놓으라고 마귀가 유혹을 가지고 우리를 내어놓으라고 하다가 안 되면 강제로 탄압해 가지고 우리를 그 공로를 내어놓으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씨름이요 우리의 싸움이요 또 우리의 전투요 그것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합격은 이 세 가지로 입고 있는 이 대속을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을 하고, 또 그 위협에 눌리지 안하고, 생명을 빼앗겨도 그 위협에 눌리지 안하고 이 대속의 공로를 입 그 있으면 그 현실에 해당된 기능은 승리했기 때문에 영생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서 그 유혹과 위협에 못 견뎌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어 놓고, 그 현실에서 내어놓게 되면 현실에 해방된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다 벗어 버렸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무효가 돼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자유권을 가지고 벗어 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 하라 말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아끼지 말고, 그게 다 뺏겨도 현실에서 네가 대속을 벗지 말아라 하는 말인데, 그렇게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의 표가 면류관인데, 저 구라파 지방에서는 무엇이든지 그 경쟁을 할 때에 이긴 사람에게는 풀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 줍니다. 그래서,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의 관이라는 뜻인데 그래 그 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이 승리한 승리를 내게 주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원형적 전투인데 하나님의 공심판을 향한, 공심판을 상대한 전투요, 우리는 예수님이 대속해서 벌써 공심판은 승리하고 났는데 대속을 받은 자를 예수님께서 사적으로 대속을 참으로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이 대속을 네가 버리지 안하고 강직하느냐 이 대속을 버리느냐 조금 어려운 일 있으면 이 대속을 버리면 앞으로 대속 받아 봤자 그게 뒤에 가서 어찌 될란지 모르기 때문에 요것이 시험입니다. 그래서, 대속을 벗지 안하고 그 시험을 이긴 자는 그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으로 완전히 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이 승리하신 이 전투법을 우리가 잘 배워 가지고 우리도 그 모형적 전투를 해야 될 터이니까 예수님의 그 승리는 원형적, 공심판을 향한 승리요, 우리는 구속받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향한 이 전투이기 때문에 이 전투에서 모형적 승리를 해야만 예수님의, 이 심신 기능이 구속을 받은 이 구속이 완전 구속이 이제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승리를 우리가 잘 배워서 알아야 되지 이걸 모르면 우리가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거게 대해서 첫째로 우리가 여기서 알 것은, 우리가 제일 알아야 될 중요한 것은 뭐이냐? 거게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에 당신이 이 마귀로 더불어 대결하지를 안했습니다. 안하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대결을 했습니다. 세 번 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이라며 '기록되었으되' 이렇게 말씀했고, 또 그 다음에 두번째 시험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느니라' 또 '기록되었으되' 또 기록된 말씀을 또 내댔습니다. 또 세번째도 천하 영광을 다 준다고 할 때에 예수님이 그 사탄을 상대해 가지고 전투할 때에 거게도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요라니까 사탄이 졌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전투할 때에 그때에 내 의지나 내 각오나 내 결심이 나 내 주관이나 내 자율이나 내 사상이나 내 무슨 지능이나 이런 것 가지고 전투를 할라고 하면 우리는 백전 백패자가 됩니다. 다 패전하고 승리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평소에 많이 앍고 단단히 준비를 해가지고 우리가 전투할 때에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은 원청 이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모형으로 우리도 "기록되었으되" 하는,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기록된 거게 해당된, 거게 해당된 성경 말씀을,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이렇게 이렇게 말했다' 하는 그 성경을 가지고 그들을 대항할 때에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권세가 있으면 반드시 그 권세가 활약하기 위해서 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권세가 법을, 권세가 있으면 반드시 거게는 법이 따라 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법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법이 행하는 데에는 그 법을 세운 권세가 동행합니다. 그러기에, 그 법을 대항하는 것은 그 권세를 대항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할지라도 그 법의 주인공인 권세가 죽어 버리면 법은 이제 힘이 없고 하나의 지식과 하나의 논리로 남아 있지 그 법은 권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자존자이신, 주권 개별 섭리자이신,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창조주이신,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그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입법해 놓은 그 법이 있으니 그 법이 곧 우리에게 선포된 신구약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이 늙어지는 분도 아니요 죽는 분도 아니기 때문에 이분의 권세는 알파와 오메가요 영원이고, 이분의 권세는 영원하기 때문에 이 법은 영원합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그 말은, 그 세세토록 있다 말은 영원히 있다 말입니다. 주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는 말씀 이 곧 너희에게 전한 신구약 육십육 권의 복음이니라' 그렇게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세가 죽으면 법이 죽고 권세가 생기면 법이 생기고 또 권세가, 법을 세워 놓은, 권세가 법을 세워 놓고 난 다음에는 그 법과 권세는 함께 합니다.

법과 동행하는 것은 입법한 권세와 동행해서, 그 법대로 법과 동행할 때에는 그 입법과 권세의 혜택을 입어서 그 권세와 동행하는 것이 되고 그 법을 반대하는 것은 그 권세를 반대해서 대항해서 싸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자유의 법이오. 법인데 이 법 배후에는 하나님의 전능이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법을 지킬라고 하는 것은 전능과 동행할라고 하는 것이요, 이 법을 어기기를, 죽었으면 죽었지 이 법을 어기지 못하는 것은 뭐 때문이냐? 이 법을 어기지 안하면 죽어도 살고, 죽어도 살고 죽일 자가 '없지만 이 법을 어기면 그는 살아도 영원히 죽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법의 배후에 전능의, 영원 주권의 그 능력을 보고 우리가 살기 때문에 이 법과 동행하고 이 법을 힘입어서 살라고 우리가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왜 이렇게 전투할 때에 사탄이 말하는 데에 예수님께서 모든 웅변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씀을 하시지 안하고, 또 이렇게 저런 방편을 쓰지 안하시고,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이 기록에, 하나님의 법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딱 이라니까 마귀가 꼼짝을 못 했습니다.

아침에도 그런 말씀을 했는데, 왜정 말년에도 자기의 의지나 각오나 결심이나 뭐 방법이나 지식이나 그런 거 가지고 신사 참배를 대항할라 하는 사람들은 다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말할 때 하나님 말씀 가지고 묻는 말마다 대답을 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들이 말하기를 '아, 성경에 그렇게 말한 걸 말하지 말고 네 대답을 좀 해라. 네 대답을 해라' '아, 여게 대해서는 나는 대답할 권리가 없습니다. 성경,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내가 대답하지 내가 조작배기로 만들어 가지고 어떻게 내가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여게 대해서는 하나님 말씀한 대로 대답밖에 못 합니다.' 성경을 말하기를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못 합니다.' 또 인제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꾸 성경 말씀 가지고 대는 사람을 왜정 말년에 일본 부장들이, 또 검사들이, 판사들이 말하기를 '성경 가지고 말하지 말고 네가 대답을 해라' 그래 가지고 그랄 때에, 그거 조울 때에, 네가 대답하라 할 때에 자기 말로 대답한 사람들은 다 패전했습니다. 자기 말로 딱 대답하고 나면 하나님 떠났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일본 나라의 권세를 이길 수가 있습니까? 죽자껏 고문과 고형 하니까 다 항복하고 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면서 말씀으로 그들을 대항하는 사람은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 그분들은 승리하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4장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뭐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사탄으로 더불어 대결할 때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기억해 가지고 있으면서 그 말씀 가지고 대결해야 된다, 그러면,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할 때에 '이 일은 해야 되나 안해야 되나' 이랄 게 할 게 아니라' 이 일은 내가 안 해야 되겠다' 그랄 게 아니라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못 한다.' 자기 혼자라도 그렇습니다. 자기 혼자라도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은 못 한다' 또 무슨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할 때에 '아,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나는 죽든지 살든지 이 일을 해야 된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앞세워 놓고 자기가 부인하는 것이라든지 실행하는 것이든지 하는 사람들은 다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말씀 가지고 사탄으로 더불어 싸우는 유일한 무기로 삼는 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데는 성경을 모르면 안 됩니다.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 6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성령의 검' 성령의 칼 말이오. 검이라 말은 칼 검(劍)자인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습니다. 원수하고 싸울 때에 성령의 검을 가지고 싸우면, 성령의 검으로 찌르면 원수가 찔립니다. 성령의 검으로 치면 원수의 목이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면 성령의 검이 뭐이냐? 하나님 말씀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성령의 검이니 우리가 죄와 사망과 악령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는 우리의 무기는 뭐이냐? 성령의, 성령의 칼,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은 좌우에 이(利)한 날선 검이라 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란 이 쪽도 날이 있고 저 쪽도 날이 있고 전부 다 뺑뺑 돌아 날이 다 있는, 좌우에 날 선 검이 뭐이냐 하면 성경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많이 읽어 가지고 자기가 마귀하고 시험을 할 때는, 아무도 없는데 자기 혼자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마귀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와 가지고, 마귀가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내게 대결할 때도 있고, 사람도 없는데 우연히 자연히, 자연을 통해 가지고 나로 하여금, 어쨌든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은 다 내게 시험입니다. 시험. 예를 들어서 아주 좋은 거, 아주 아름답고 좋은 거 요런 거를 좋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꾀워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도 시험입니다. 또 아주 무섭고 두렵고 어려워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도 마귀의 시험입니다. 그것이 하나는 꾀우는 시험이요. 하나는 우리를 협박해서 누루고 꺾고 우리를 강제로 꺾는 그 시험인데, 그런 시험을 이길 때에 그저 '아이구, 내가 아무래도 참고 견뎌야지' 예를 들어서 만일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를 한다 하는 그런 걸로 거석 하면 그럴 때 '내가 신사 참배 안 해야 되지'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거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삼 사 대까지 갚는다고 하셨다. 이러기 때문에 못 한다' 그래 가지고 이깁니다.

그때 그 제천 OO교회서 OOO목사님이 그때 국기 배례 때문에 시비를 할 때에, 그때 국기 배례 안 한다고 그래 가지고 아주 시비가 많았었습니다. 시비가 많아서 그 시비로 지방 법원에서 재판하다가 고등 법원으로 가서 재판하고 또 대법원에까지 가서 재판을 했습니다. 그 대법원에 그때 재판할 때에 그때 수고를 많이 하고 헙조한 저 서울, 서울 법학 대학원 원장으로 그때 계시면서 많이 지도하고 수고한 선생님이 저기 와 앉아 계십니다. 그때 이긴 사람들도 다 그랬어요. 제 이 계명을 내대면서, 제 이계명을 내 대면서 '이거는 이거 경배하면 우상 섬기는 게 되기 때문에 이거는 못 한다' 이계명을 내 가지고 해서 하나님이 동행 해 가지고 그때 대법원에까지 가 가지고 승리를 했습니다. 승리를 해서 국기 배례를 안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진영에서 국기 배례 때문에 대법원까지 시비를 해 가지고 그때 이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에 좋은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참 법치 국가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 학교 선생들이 무식해 가지고 국기 배례 안 한다고 아이들을 그렇츰 뚜드려 패고, 또 지방 검사가 무식해 가지고 그렇게 한 그걸 기어코라도 그걸 바로 밝혀서 그리 아니면 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가 가지고 그라면 이래 국기 배례하도록 이렇게 할 것인데 법적으로 공평된 심판을 해서, '자기네들 종교 자유를 허락했는데 종교의 계명을 따라서 국기 배례 안 할라고 하는 그런 걸 꼭 하라 할 수가 없다. 이거는, 하라 하는 거는 이거 무례다. 잘못이다. 안 한다 하는 사람들이 이겼다' 해 가지고 우리가 그때 승소를 했습니다. 그때 참, 선생님의 돕는 그런 도움도 많이 받았고,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 가지고 내댔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여러분들 요것을,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예수님은 전투하실 때에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하나님 말씀에 기록되었다" 이렇게 투쟁했기 때문에 승리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혼자 해도 그렇습니다. 혼자 해도 그 사건을 대할 때에, 그때 '내가 이거는 안 해야 되겠다' 이래 할 게 아니라 거게 대한 성구를 딱 자기가 발견하면서 '이 성경에 요렇게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나는 요 일을 안 한다' 이럴 때에 우리는 능력이 옵니다. 자, 신구약 성경은 전능자의 법인데 신구약 성경대로 하는 데에는 전능자가 동행하십니다. 책임을 집니다. 그 법대로 하는 자는 그 입법 한 권세가 그걸 책임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가지고 투쟁하는 거, 말씀대로 하는 데에는 전능자와 동행하는 것이요 전능자 의 그 협조를 받는 것이요, 만일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주장하는 사람이 패전했다면, 말씀대로 주장한다고 패전했으면 하나님이 패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패전하니까 하나님이 그 권세가 있는 한 그를 대항해서 이긴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전투하는 것은 전능자의 동행 전투가 되기 때문에 그는 백전 백승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혼자 당할 때도, 혼자 할 때도 반드시 그 일을 행할 때는 말씀을 생각해, 요 말씀, '성경에 요랬기 때문에 요건 못 한다, 성경에 요랬기 때문에 요대로 한다' 꼭 성경 말씀을 들어 가지고 그 성경 말씀을 증거하면서 자기 혼자 행해도 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해도 증거하고, 요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성경 말씀이 요래 하라 하기 때문에 나는 한다' 요라면 전능자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전능자가 책임을 져야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투에 제일 중요한 것이 '기록되었으되' 주님은 이 말씀 가지고 사단으로 더불어 대결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가 제일 중요한 전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전법이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는 많이 읽어야 되겠고 많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구를 모르면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다 알아도 알아야 되고, 그보다도 성구를 알면 더 좋습니다. '성경 몇장 몇절에 이래 있습니다.' 이라면 쉬운데 성경에 있다고 떡 해 놓으면 그러면 그때 '성경 어디 있노? 내놔 봐라' 내놔 보라 이랍니다. 내놔 보라 이라면 그때 성구를 모르면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럴 때는, 내놔 보라 하면 그만 성구를 자기가 모르니까 벌벌 떨지 말고, 그때 떨 필요가 없어 그럴 때에 '예,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몇 장 몇절에 있는지 내가 지금 외우지 못해 가지고 모르겠습니다. 몇장 몇 절에 있는지 모르나 성경에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내가 그라면 성경을 찾아 가지고 대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만 그때 성구 모른다고 벌벌 떨면서 그래 굴복하지 말아요. 성경에 있으니까.

내가 성구를 모르면 '성경에 있는 거는 내가 확실하니까 내가 그라면 찾아 대겠다' 이라면 뭐 며칠이라도, 만일 못 찾았으면 '아직 못 찾았습니다.' 이틀도 '아직 못 찾았습니다.' '이놈 뭐라 하노?' 그라면 그때 뭐 뚜드려 맞기는 맞을 거라. 맞아도 '아, 아직, 그래도 성경에 있기는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안 되거든 연락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래 물어 가지고라도 딱 물어 가지고 성경 그 몇 장 몇 절, 몇 장 몇 절이라 딱 가지고 '보십시오 성경 명장 몇 절에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내가 성경 명장 몇 절에 이렇게 하라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거 아닙니까? 성경 말씀에 하라 하는 대로 내가 합니다. 성경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안 합니다.' 성경에는 하라 하는 거 하지 말라 하는 거 둘 밖에 더 있습니까? '성경 말씀에 이렇게 하라 하기 때문에 내가 합니다. 성경 말씀에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안 합니다.' 이 성구를 딱 대면 그때는 나는 책임 없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하고 싸움을 붙이는 거라 전능하신 하나님하고 그 마귀하고 싸움 붙이기 때문에 마귀 그까짓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야 꼼짝이나 합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구를 가지고 이렇게 전투하는 것은 전능자의 그 능력을 힘입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강한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중요한 전법이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둘째는 뭐인고 하니, 거게 보니까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성령에게 이끌리어' 그러면, 예수님이 시험받을라고, 시험에 대해서 많이 말했기 때문에 다시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시험받을라고 그 말은, 자, 예수님이 지금 시험받는 것은 우리를 대표해서 지금 시험받습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느냐?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할라고 달라들고 예수님은 안 어길라 하고 이러니까, 마귀가 어기게 하는 데, 어기게 하는데 낙제가 돼 가지고 어기느냐 어기게 하는데 합격이 돼 가지고 승리해 가지고 어기지 않느냐, 이제 이 승부의 시험입니다. 이길 승(勝)자, 질 부(負)자. 승부의 시험, 이기고 지는 시험이라 말이오.

시험인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그 승부의 시험을 지금 하게 됐는데 이 승부의 시험은 예수님 당신 승부의 시험입니까? 우리를 대표한 승부의 시험입니까? 우리 대신입니까 당신 전투입니까? 예? 당신 전투가 아니 그 우리 전투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하는 전투입니다. 우리를 대신하는 전투라면 이 전투는 일차 전투입니까 재전투입니까? 자, 일차 전투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두 번째 하는 전투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두 번째 하는 전투입니다.

그러면, 한 번 졌으면 그만인데 어찌 두 번째 전투를, 한 번 졌으면 그만인데 한 번 진 것은 예수님이, 졌으니까 하나님 법을 어겼다 말이오. 어겼으니까 어긴 죄 값은, 어긴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법을 어겼으니까 사망이니까 예수님 이 법 어긴 값으로써 영원한 사망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첫째 법 어긴 것이 다 이것이 다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다, 다, 이제 이게 다 이거는 무효가 되어 이건 다 이미 한 번 형을 했기 때문에 다시 두 번 이거 형 할 수 있는, 형의 힘이 없게 됐기 때문에 이제 다시 한 번 재차 재시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둘째로 중요한 것은 뭐이 중요한고 하니,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려고 갈 때에, 시험을 받을려고 할 때에, 그 시험을 받을려고 할 때에 시험 받는 자리로 인도한 이가 누굽니까? 인도한 이가 누구지요? 누가 인도했지요? 누가 인도했습니까? 성령님이 인도했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인도했소.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런 시험 저런 시험을 받는데 우리가 시험받는 것은 어느 시간에 시험을 받습니까? 우리가 시험받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현실입니다.

현실에 시험을 받습니다. 현실에 시험 받는데, 어떨 때는 물질 시험도 오고, 어떨 때는 인권 시험도 오고, 어떨 때는 감정 시험도 오고, 어떨 때는 권세 시험도 오고 별별 수 뭐, 수백 수천의 종류의 시험이 우리에게 닥쳐오지 않습니까? 그 시험이 닥쳐오는데, 그러면, 그 시험이 닥쳐올 때에 그 시험으로 인도하는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예? 요것은 여러분들이 아무나따나 뻐뜩 대답할 게 아니고 여게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시험받도록 인도한 이가 누구지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도 매 시험을 당할 때마다, 요 시험을 한 번 치는, 요 시험을 치른다 말은, 요 시험은 뭐이냐 하면, 자, 요 시험, 요 시험에 여기서 그라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나 안 어기나 하면 거게 대한 시험입니다. 시험, 또 그거 하고 난 다음에 또 조 말씀을 어기나 안 어기나 하는 또 그 시험, 이와같이 여러가지 자꾸 이 시험 오고 저 시험 오고 자꾸 시험이 바뀌어 오지 않습니까? 바뀌어서 시험이 오는데 그 시험을 닥칠 때마다 그 시험을 우리가 닥치도록, 그 시험을 만나도록, 그 시험을 우리가 만나도록 그 시험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 누군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습니까? 그 시험으로 인도하는 분이 누굽니까? 그거 아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그 누굽니까? OOO목사님 한번 대답해 보이소. 누가 그 시험으로 우리를 인도합니까? OOO목사님. 성령님이 인도합니다.

성령님이 인도하다니? 성령님이 요 시험 치러라 조 시험 치러라, 자꾸 인제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을 치르는데 그 시험의, 시험은 승부의 시험이라 지느냐 이기느냐 승패의 시험, 승부, 이길 승 (勝)자 질 부(負)자, 승부의 시험인데 이제 우리는 이길라고 하는 우리들이 요 또 우리로 하여금 지도록 할라 하는 것은 누가 지도록 할라 합니까? 예? 마귀가 지도록 할라고 합니다. 이런데, 그러면, 요 시험 치르고 또 조 시험 치르고 차게 차게 자꾸, 요 시험 치르도록 또 인도하고 조 시험 지르도록 인도하고, 인도하는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어떻게 인도를 합니까? 성령님이 요 시험 쳐라 인도하시고, 또 조 시험 쳐라 인도하시는데,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를 하십니까?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인도를 하십니까, 우리에게 귀에 대고 소리로 인도를 하십니까, 우리에게 팔을 끌고 다니면서 인도를 하십니까? 어떻게 인도를 하십니까? 예?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인도하시는 것은 주님이, 성령님이 현실을 만드십니다. 현실을 요런 현실을 만들면 내가 또 그 시험받아야 되고, 조런 현실을 만들면 조 시험받아야 되고, 이러니까, 이제 이 현실을 만드시는 이가 주님이 현실을 만드신다는 그런 소리를 여러 수천 번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나, 자꾸 아직까지 도가 통하지 안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면, 우리에게 요런 현실을 만들어 주시면 내가 그 현실에 해당되는 성구를 지켜야 되고, 또 조 현실을 우리에게 만나게 해 주시면 조 현실에 해당되는 성구를 지켜야 되니까 조 현실에 해당된 그 성구면 그 성구에 대한 시험치요. 그 성구에 대한 시험이라 말이오. 그 성구에 대한 시험 조 성구에 대한 시험, 그런데, 그 현실에 성경 말씀은 요래 해라 하는 그 성구가 있는데 나는 그 성경에, 그 현실에서는 요 성구대로 내가 행해야 되는 것이 성경이라 말이오. 그 성구대로 행할라고 하는데 그 행할라고 할 때에 행하구로 냅둡니까, 그 성구대로 행할라고 할 때에 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성구대로 행하지 못하도록 말이오. 합니다. 못 하도록 하는, 못 하도록 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마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광야로 가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받았는데 오늘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마귀에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성령이 요리 인도해서 요거 시험 치러라 하면 그거 또 시험 치르고 또 조거 시험 치러라 하면 조거 시험 치르고 자꾸 요래 하나씩 시험을 치러서 나간다 그 말이오. 시험을 치르는데 그 인도하는 이는 성령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단단히 요동치 말고 확고하게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인도하는데 인도를 하기는 뭘로 인도합니까? 뭘로 인도하지요? 현실을 만드는 거 가지고 인도한다 말이오. 요 현실을 만들면 내가 그 성구 지켜야 되고 또 조 현실을 만들면 조 성구를 지켜야 되니까, 주님이, 주님의 영이 성령 아닙니까? 성령님이 요 현실을 만드는 그것은 또 요 성구 시험 치르라고 요 현실을 만들어 주시고 또 저 현실 만들어 주시는 것은 저 현실에 대한 성구의 시험 치르라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이 우리의 현실은, '현실이 만들어지는 데는, 그 현실이 만들어지는 요소는 사람도 들었고, 물건도 들었고, 일도 들었고, 또 거게는 사회도 들었고, 정부도 들었고, 또 지식도 들었고, 뭐 이런 모두 미도 들었고, 악도 들었고 별별 것이 주 모아 가지고 현실 아닙니까? 그렇지 않소? 여러 가지가 모아 가지고 현실 안 돼요? 현실 이 되는데, 여러 가지가 모여 가지고 현실이 되니까 사람들은, 이 여러 가지가 모여 가지고 현실이 되니까 그것들이 현실을 만든 줄로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마귀가 꼬웁니다. 그것들이 만든 거 아닙니다.

그것을 이제 주님이 요런 거 조런 거 모든 것을 다 등장시켜 가지고 현실이 되도록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현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이가 주님이시요, 또 그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건 뭣 때문에 만들어 주시느냐? 그 현실에 해당된 성구를 시험 치를라고, 그 해당된 성구를 이제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그게 전투입니다. 우리는 해당된 성경 말씀대로 그 성경을 지켜서 성경 말씀대로 행해야 되는 것이 우리요 마귀는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요, 이래 가지고 거기서 이 전투해 가지고 우리가 그 성구대로 지켰으면 마귀는 패전해 버렸고, 우리가 그 마귀가 꾀우고 위헙을 주는 데 못 견뎌서 그 성구대로 행하지 못했으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패전했고 마귀는 우리를 승리했다 그 말이오.

승리했으면 그때에 패전한 우리들의 심신의 기능은 어찌 됩니까? 심신의 기능은 어찌 됩니까? 둘째 사망의 해로 영원한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말귀를 꼭 알아들어야 돼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안 됩니다. 요 말씀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우리 현실을 만들어 주신 이는 성령님이신데 그 성령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그 현실 만들어 주시는 것은 그 현실에 해당된 그 성구 시험 칠라고, 그 성구 승부, 이기느냐 지느냐, 마귀가 이기느냐 우리 가 이기느냐, 승부 결정을 하기 위해서 인도하시는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 무슨 현실이 닥치면 왜 이런 일이 닥쳤는가 이래 가지고 원망 불평 낙망할 것이 아니고, 그러면, 그 현실을 마누라 네가 들어서 지금 이렇게 현실을 만들어 놨다 원망하고, 남편이 들어 이랬다, 아무 형제가 들어 이랬다, 이웃이 그랬다, 뭐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렇다, 그 현실이 누구 누구 때문에 됐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패전한 사람입니다. 그 현실은 누구 누구 때문이라 하는 그것은, 전능하신 성령님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내게 대해 그런 현실이 안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요게 믿어지요? 믿어집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이 보이는 현실이, 현실이 구성되는 데에 그 현실에 요소들만 보고 사람들은 그것을 상대해서 그 요소가 들어서 그와같이 그 현실을 만든 줄 알지만 요소 그것들은 그 배후에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이 섭리로, 주권 섭리를 가지고 이런 것을 역사를 해 가지고 그 현실에 요소들은 주권자의 그 섭리에 따라서 피동돼 가지고 끌려와 가지고 그 현실에 이용돼서 현실에 이용이 된 것이지 그 현실을 만드신 이는 주권 개별 섭리자이신 주님이 만드셨다 그 말이오.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예수님 인도하신 것같이 우리도 꼭 같이 지금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이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인도를 하는데, 그러면, 성령님이 뭐할라고 이렇게 현실을 만들어서 이 마귀하고 시비를 하도록 합니까? 시비를 하도록 해 가지고 마귀는 나를 하나님 말씀대로 못 살게 하고 나는 살라고 하니까 뚜드려 맞기도 하고, 싸움도 일어나기도 하고, 뭐 죽임도 당하기도 하고, 고문과 고형도 당하고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도록 이렇게 현실을 자꾸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만들어서 성령이 인도해 가지고 이런 시험을 받도록 이렇게 하십니까? 하십니까? 성령이 뭣 하는 신이지요? 뭣 하는 하나님이지요? 성령이 무엇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성령이 무슨 직책을 받았습니까? 무슨 직책을 받았는지 그 직책 받은 것을 아는 사람, 자, 저 OOO목사님, 무슨 직책 받았지요? 우리 구원의 완성을 책임진 것이 성령 아닙니까! 그래서 성령을 우리 구원의 보증자로 세웠다고 성경에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을 베풀었고 대속 베푸신 이 구원을 완성할라고 오신 하나님이 성령님이라 그 말이오 한 하나님인데 한 하나님이 대속할 때 나타나신 하나님을 성자라고 말하고, 이제 이 대속하신 이 구원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령님이라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까? 한 하나님이 그 위, 격위, 직위, 직위 책위 직위는 직분 아니오? 그 직위를 말할 때에는 삼위라 그 말이오.

이런데, 성령님이 우리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가지고 나타나시고 책임지신 분이 성령님인데, 그러면, 우리 구원을 완성시킬라고 이렇게 책임지신 성령님이 내 현실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내 현실은 뭐 할라고 만든 현실이겠습니까? 뭐 할라고 만든 현실이겠습니까? OOO목사님, 내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현실을 만드셨다는 요것을 확실히 알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실이 와도 이 현실은 내 구원을 완성 책임지신 성령님이 이 현실을 만드셨기 때문에 이 현실은 내 구원을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 현실을 만들어 주셨다 하는 요것을 알 때에 우리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 현실을 상대하자 그 말이오.

그러니까, 나를 이 전능자가 요렇게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 시간에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완성되는 그 완성을 위해서 했기 때문에, 완성은 어찌 되느냐? 예수님의 대속을 벗으면 패전되고, 대속을 벗지 않고,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을 벗지 안하고 그대로 살게 되면 우리는 그 현실에서 그 부분적인 그 심신의 기능, 그 현실에 참전, 전쟁에 참전했다 말이오.

참전한 심신의 기능, 그 분자 그 부분은 그때에 완전 승리로서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는, 자,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책임지시고, 피 흘려 주신 성자가 거게 동참하고 계시지, 구원 완성의 성령님이 동참하고 계시지, 또 이 진리가 또 거기 동참하고 있지, 그런데, 이 진리를 내가 내놓으면 나는 그만 둘째 사망의 해 받고 이 진리를 내가 내놓지 안하고 모시고 있으면 이제 나는 구원의 완성은 되는 것인데, 우리가 진리를 지키고 있으면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 진리를 우리가 지키니까 진리가 우리를 지켜 주십니까, 자, 진리가, 내가 진리를 지킬라고, 이 진리를 배반치 안하고 진리를 지킬라고 진리를 보수할라고 내가 죽자 하고 애를 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그 진리를 보수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준다, 인간이 그 진리를 보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보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하나도 없어! 인간이 그 진리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배반치 안하고 그 진리를 모시고 그 진리의 슬하에, 그 진리에 속하고 있으면 이 진리는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진리를 내가 배반치 안하고 나가면 그 진리가 진리를 배반치 안한 사람을 지켜 보호해서 피조물들이 아무 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다. 아멘! 할렐루야! 이거 신학자, 뭐 신학 박사도 이거 몰라요 신학 박사도 모르는 사람 많아. 이것도 인제 설교록에 나갈 거라.

오늘 모두 다 보수파니 무슨 파니 하면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이 생명 내놓고 지켜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만 안하고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 슬하에 속해서 이 말씀 모시고 이 말씀 배반만 안 하고 이 말씀 모시고만 있으면 이 전능하신 말씀이 그 사람을 지켜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는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패전한다 말이오.

이러기에, 아는 사람들은 다 승리했습니다. 왜정 말년에 뭐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이 있어? 왜정 말년이 무슨 상관이 있어? 아무 일 없어. 무슨 상관 있어? 일본 부장이 와 가지고 '신사 참배 안 하면, 이제 이 신사 참배, 일본 나라를 만든 신인데 신사 참배 안 하면 당장에 벌 받고 너희들이 안 된다. 이 국기는 일본 나라의 신이다 이거에 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러면, 그 국기하고 아마 데라스 오미까미, 천조 대신하고 내 손에 주어봐라. 내가 너거 앞에서 불을 태울께. 불에 태우면 나한테, 벌받으면 내가 죽을 거 아니가? 그거 내가 벌받아 죽는 거는 내가 불태웠으니까 내가 벌받아 죽는데 너거에게 무슨 상관이 있노? 도라. 내가 불에 태울께' 이렇게 할 수 있는 그것이, 그게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것은 다 우상 숭배하는 죄이기 때문에 그런 거는 다 다 멸해야 된다, 우상을 불태웠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셨거든.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우상을 불태우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불에 태운다, 이라니까 그 사람이 꼼짝을 못 하고 말도 못 하고 달라들지를 못했다 그 말이오. 성경에 우상을 다 불사르니까 하나님이 축복했거든. 우상을 불에 태우니까 하나님이 축복했는데 우상을 내가 불을 태울라 하니까, 태울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요 말씀을 의지해 가지고 내가 불을 태울라고 했습니다. 이라니까, 말씀이 달라드는데 제까짓 게 뭐라고 말할 거라? 부장이 입을 벌리지 못해. 말하지 못해. 아무 일 없었어. 아무 일 없이 지내왔어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만날 때에 어떤 시험을 만나든지, 혼자 만나든지 뭐이든지, 가정에 딱한 일, 참 가슴이 뚫어질 만한 분한, 섭섭한 일, 두려운 일, 자살해 죽을 만치 어려운 일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게 모두 다 우리 현실 아닙니까! 우리 현실 아니오? 택자들에게는 어떤 그 현실이 닥쳐도 그 현실은 누가 만들어 준 겁니까? 성령님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 현실을, 그 현실을 만든 이유는 그 현실에서 말씀 지킬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말씀 지키라고 그 현실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현실은 우리를 망칠라고 온 현실입니까 우리 구원을 완성할라고 온 현실입니까? 우리 구원을 완성할라고 온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완성합니까? 그때에 그 현실에 해당된 말씀을 내가 배반치 안하고 그 말씀을 모시고 있는 것이 이제 내 구원 완성이 되는 것입니까. 어려우니까 그 현실에 해당된 말씀을 그만 다 집어던지고 배반해 버리고 이 세상 위협하고 세상이 꾀우는 거게 꾀임에 넘어가 가지고 이제 말씀을 해반하는 것이 구원 완성이오, 죽어도 말씀을 배반치 않는 것이 구원 완성이오?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이 구원 완성이라, 구원 완성. 말씀을 떠나지 않을 때에는 그 말씀의 전능의 능력이 같이 합니다. 요걸 알아요.

이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20장에 말씀하시기를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들을 지켜 든든히 세워 거룩한 자들 가운데 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32절에 말씀이 있답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지켜 능히 든든히 세운다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대개는 믿는 사람들이 제가 들어서 이제 주님의 명령을 '이거 내가지켜야지, 진리를 보수해야지' 제까짓게 무슨 보수하겠소?, 하나님의 진리에게 보수를 받으라 그 말이오. 하나님의 법의 혜택을 받으라 그 말이오. 그 법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독자적 전능의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요 또 그뿐 아니라 그 법을 입법한 그 법의 주인공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막 전능, 전능, 전능 속에 파묻혀 있는데 어떤 자가 뭘 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 이렇게 하는 사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 승리했다 그 말이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둘째로 기억할 것은 우리가 시험당할 때에는 성령님이 그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요 현실을 만들어서 그 현실로 내가 또 닥치니까 그 현실에 지킬 성구가 있고 또 조 현실을 만들어 주니까 또 조 현실에 지킬 성구가 있고, 이러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시험받을 자리로 요 시험 조 시험으로 자꾸 인도하시더라 그 말이오 요것이 확실히 믿어집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 성령님은 우리 구원을 완성하실라 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깨트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구원을 완성시킬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현실 만날 때 이 현실은 내 구원을 하나님이 완성시켜 주실라고 했다 하니까 그 완성시켜 주실라고 했으나까 그 현실은 반갑겠소 두렵겠소? 반갑소 두렵소? 요걸 믿으면 반갑고 기쁘고 즐거워.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뭐라고 했습니까? 예?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했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알면 그 모든 시험, 야, 이거는 참 사람이 자살할 만한 어려운 일도, 몰라 그렇지 깨서 성경을 바로 알면 자살할 만한 어려운 일은 참 큰 그 어려운 시험을 닥쳤는데 그때에 합격이 되면 푹 올라가 버립니다. 자살할 수 있는 그 어려움에서 하나님의 성구 지키면 당장에 큰, 큰 복덩어리가 떨어진다 말이오. 큰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딴 근심 없어 예수가 우리를 거느리는데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시험 자리로. 요 시험 자리로 인도하고 조 시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은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하는 요 사실을 굳게 잡고 놓지를 말아야 됩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그 성령님이 현실을 만들어서 요 현실 만드니까 내가 또 그 현실에 대한 성구를 또 시험 쳐야 되겠고, 조 현실 만나니까 조 현실에 대한 성구를 시험쳐야 되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손잡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나에게 요렇게 만들어 주셔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는 그 것이 여러분들에게 믿어져야 할 것이다 그 말이오. 둘째로 그것이 중요합니다.

또, 셋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험을 다 이길라고 하면 셋째로 중요 한 것은 뭐이 중요한고 하니, 예수님께서 3장에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 대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받은 것이 우리 대신 세례를 받았어. 대신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 대신 죄를 대신 담당했으니까 또 회개의 세례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이 세례받은 것은 우리 대신 세례받으신 것입니다. 세례 받으시고 이제는 사생활 삼십 년을 은밀히 준비하시고 공생활 삼 년 사 개월 동안의 공생활 시발한 때입니다. 공생활 출발이오, 지금. 공생활 출발입니다. 공생활 출발을 할 때에 당신이 성령의 인도받아서 시험받으러 광야로 가서 한 일이 무슨 일이냐 하면 사십 일 금식 기도했습니다. 사십 일 금식 기도.

이러니까, 셋째로 우리가 여기서 배울 것은 뭐이냐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었으되' 하나님 말씀 가지고 전투해야 된다는 걸 요걸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우리가 배웠고, 둘째로는 우리에게 오는 수많은 시험은 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하는 요것을 둘째로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되겠고, 셋째로서는 예수님도 이 시험을 만날 때에 먼저 사십 일 동안 금식 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험 무슨 일이든지 일 닥칠 때에는 우리는 사전에 기도해서, 기도해서 전능자와의 그 관계가 뚜렷이, 맺어지지 안하몃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는 하나님에게 해 달라는 간구요. 해 달라 해는 간구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대형을 할라고 하실 때, 대형 대행 대화친을 하실라 할 때에 그 공로가 얼마나 설정하기가 어려운지, 뭐 죽기가 어려워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고민 된 것 아닙니다. 죽기가 어려운 것 아니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우리의 대형을 하는데, 하나님의 지공법이, 지공법은 딱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데, 우리를 대신 형벌 받을라고 할 때에 예수님의 주체성은 우리를 대신 형벌받으실라고 했지만 예수님의 주체성에 속하여 있는 한 세포라도 대신 형벌받기를 원치 않는 세포가 하나 있었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는 것은, 강제로 대형하는, 강제로 대신 한 것이 예수님의 세포 가운데에 하나라도 있었다고 하면 그 하나님의 지공에서는 '아, 뭐 너 하나쯤은 원치 안해도 돼 하고 묵살할 수가 있겠소?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아, 이 세포 하나가 반대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대형은 안 된다. 대형은 안 된다' 자, 대형이 그 부결이 되겠습니까 대형이 되겠습니까? 네? 대형은 원하고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유법에서, 원하니 어짤 수 없어 가지고 이걸, 강제해 가지고 안 된다 할 수 없아서 했지만 원해도 전채가 원해야 되지 세포 하나라도 강제가 되어지면 세포 하나라도 원치 안한 그 대형이 됐기 때문에 그건 강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허락할 수 없다 말이오. 안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세포 하나도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신경이 쪼그마치라도 거기 간다든지 세포 하나라도 이거 원하고, 대형하기를 원하고 원하는 세포가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이게 어렵다 말이오. 이게 어렵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기까지 고민하신 것입니다. 고민하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에게 이렇게 도와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힘이 없어 가지고 기진해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그 기진한 힘을 도와 가지고 마지막에 그 기도를 완성을 해서 이렇게 죽기까지 고민한 이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그것이 뭐 죽기가 어려워 그런 게 아니라 이 대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워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아버지에게 알렸고, 아버지에게 알렸고,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 또 안돼. 아버지에게 알렸고 무엇이 있음으로써 들어서 승리케 했습니까? 무엇이 있음으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아버지가 들어줄 수가 없었는데 거기다가 뭣을 첨부해서 아버지가 들어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을 완성하도록 했습니까? 예? 통회? 경외? 경외라 했구만. 통회라고 하는 줄, 경외, 네.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인해서 들었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늘나라는 지위가 정연합니다. 지위가. 이렇게 예수님도 갯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함으로써 이제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 그 모든 것이 그 힘입는 것이 됐고 도와 주신 일이 됐고 간구해서 응답한 일이 돼 가지고 승리를 했는데, 예수님이 그때도 그랬고 이 광야에서도 공생활 시작하시면서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시면서 사십 일 동안 금식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셋째로 기억할 중요한 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기도로 먼저 하고 그 뒤에 해야 되지 기도로 하지 안하고 하면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우리는 기도에서 승리를 해야 됩니다. 기도에서 승리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다가 기도로써 승리해서 기도의 관영이 돼서 그 기도를 삼위 일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기도에, 공동회의해서 기도를 들어주기로 허락을 하셔서 결재 나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나서는 이제,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안심해라, 자고 쉬라. 이제 안심하라. 이제는 됐다' 그라고 난 다음에 잠깐 쉬고 난 다음에 '일어서 가자' 하고 가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면 압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 보면 알아요 기도해 보면 기도해도 안 이루어지는 것이 있어. 기도해도 아직 까지 멀었다, 기도해도 마음 가운데 확실히 믿어지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믿어지지 않는 기도가 있어요. 믿어지지 않는 기도 믿어지지 않는 기도는 아무리 기도해도 아직까지 기도의 그릇이 차지 안했다 말이오. 차지 안한 것은, 기도의 그릇이 차면, 그 기도 할 때 확신이 옵니다. 자기,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이 오셔서 확신이 됩니다. '이는 틀림없이 된다!' 하는 그 확신이 와요. 되면 그거는 틀림없이 됩니다. 죽은 게 살아나는 것도 되고 뭐이든 다 돼요. 그러나 그 확신이 안 오는 것은 안 돼요.

그런데, 그 확신이 안 오는 그 기도는 혹 우리가 회개할 것을 회개를 안 하든지, 회개를 안 했다든지, 또 자기가 무슨, 기도하되 아직까지 자기의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는 전부를 하나님께 바쳐서 기도할 바칠 양을 바치지 안했다든지, 회개할 것을 회개를 안 했다든지, 자기가 뭐 순종할 걸 순종 안 했다든지 뭣인가 잘못된 미진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안하는 것이니까 자꾸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를 해 가지고 기도대로 안 되거든, 기도대로 안 되거든 내 기도를 주님이 듣지 안하시는가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내 기도가 아직까지 그릇이 차지를 못해, 기도가 관영이 돼야, 기도가 차야 돼요.

그릇이 차야 돼요. 기도가 차지 안하든지, 내 기도에 무엇인가 아직까지 하나님하고 가로막혀 가지고 있는 뭐 틔우지 안한 것이 있다든지, 내가 또 할 일 안 한 것이 있다든지,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내가 있는 걸 다 기울이지 안하고 기도를 한다든지, 기도하면서 네가 믿어지지 안하는, 믿지 않는 기도, 믿음이 없는 기도를 한다든지 뭐인가 부족한데, 부족하니까 그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안하니, 안 오니까 애가 터질 거 아닙니까? 애가 터지는 가운데에서 자꾸 하나님을 보면서 이와같이 하다 보면 성령님이 와서 요거 고쳐라 조거 고쳐라, 또 요렇게 기도해라 조렇게 기도해라, 우리가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성령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으로 기도해 주신다는 그 말씀이 성경 어디 있습니까? 성경 어디 있소? 로마 8장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 몇 절이고? 이십 몇 절이오? 네. 그만 찾아 볼 거 없어. 로마서 8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걸 알지 못하는 것을 성령이 와서 기도할 걸 알게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기도할 때에 '네가 요걸 고치지 안했다 요걸 고쳐라. 또 요걸 행하지 안했다. 또 네가 지금 마음을 다 들이지 안했다. 정성을 다 들이지 안했다. 네가 아직까지도,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 들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라 했는데 이와같이, 네가 지금 껍데기 기도하고 알맹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 또 그리 아니면 '네가 지금 기도가 지금 아직까지 양이 모자란다. 더 기도를 열심히 좀 많이 해라.' 하는 그런 것으로써 응답이 안 온다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기도하는데 이것은 너에게 주면 네게 해로울 것이기 때문에 주지 않는다 하는 그런 거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거는 대번 알려 줘요. 기도하면 그만 알려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 얼마 안 해서 '아, 주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거는 내게 오면 도로 손해 갈 걸 내가 몰라 그랬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거 다 취소합니다. 이런 기도가 대번 나오고, 기도하면 자꾸 이와같이 고쳐져, 그라다 보면, 기도하다 보면 우리가 자꾸 성화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를 가리켜서 향이라 이랬어.

기도를 가리켜서 향, 향내나는, 기도를 향이라 했어. 왜? 기도를 하면 우리에게 있는 썩은 내음새가 자꾸 제거됩니다. 자꾸 이 부패성의 잘못된 게 자꾸 고쳐져요.

사람이 그렇지 않소? 뉘 집에 가 가지고 뭣을 얻으러 갔으면, 얻으러 갔는데, 얻으러 가서, 얻으러 갔으면 그 사람이 얼른 주면 하지만 안 주면, 안 주면 생각이 나집니다. 안 주면, '아, 과거에 내가, 이분이, 이 분이 나한테 언제 왔을 때 내가 그거 안 주고 괄시한 일이 있지' 그분에게 잘못된 게 생각납니까 안 납니까? 예? 잘못된 게 생각나겠소 안 나겠소? 생각이 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생각이 나면 그때, 생각날 때 '아, 이거 내가 참 오늘 염치없습니다. 내가 이걸 구하러 왔는데 내가 염치없습니다. 내가 과거를 생각하니까 내가 과거에 이런 거 잘못한 일 이 있었습니다.' 형제라든지 자네라든지 친구라든지 '내가 과거에 이런 잘 못한 게 있었는데 그거 다 용서하게'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한 게 자꾸 생각해진다 말이오. 생각이 나져요. 생각이 나지고, 또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뭘 요구하는가 또 그게 생각 나져.

이제 주님을 대하는 기도도 자꾸 이래 기도하다 보면 주님이, 내가 주님 앞에 잘못된 게 생각나고, 주님이 내게 또 뭘 요구하시는 게 생각이 나고 이래 가지고 차차차 자꾸 그분을 닮아서 그분과 일치되는 그 사람으로 성화가 돼져요 이러기 때문에 기도는 향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성경에 비유한 것은 향은 악취를 다 제하는 거 아닙니까? 기도 자꾸 하게 되면 자기에게 썩은 내음새 나는 것이 다 제거돼서 깨끗해진다 그 말이오. 깨끗해질 양이 모자라도 기도의 응답이 안 와요.

깨끗해질 양이 모자랐는지, 또 그렇지 않으면 기도를 하는 그 기도의 양이 모자랐는지, 내가 기도할 때 마음이나 뜻이나 성품이나 목숨이나 바친 양이 모자라는지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그런 것이 있을 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짜든지 우리는 무슨 일 할 때에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자, 첫째는 기록되었으되 요거 기억하고, 또 둘째로는 우리에게 이떤 현실이든지 우리 구원을 완성할 책임을 지신 성령님이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현실을 만들어 내게 주신 것이다 하는 요 두 가지 요걸 의심 없이 기억을 하고, 셋째로는 우리는 일할 때에 기도하고 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면, 무슨 시험이든지 닥치면 벌써 기도해야 돼요 기도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왜정 말년 때에 신사 참배의 시험이 닥쳤을 때에, 그때 내가 그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때 교역자도 아닌 사람이오. 나는 산골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 몰랐는데, 자기네끼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여기 부산에 뭐 마산에 진주에 있는 목사님들이 다 모여 가지고 그때 하기 수양회를 하는데 그만, 수양회라던가 하기 뭐 어쨌든가 그 신사 참배 문제가 나 가지고, 이 큰 문제가 났는데, 그래 나니까, 하기 수양회 때인가 무슨 그거 내가 똑똑히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그 목사님들이 의논하는데 아이구, 이 신사 참배가 나면 큰일났는데' 신사 참배 안 하면 막 잠아 가두고 죽이고 뭐 이란다고 이라니까 그러면 이거 안 되겠다 고, 신사 참배가 나니까 안 되겠다고 어서, 어서 회의 마치고 우리 각 교회 나가서 이 교인들 좀 단속해야 된다고 교인들 단속하러 가자 한 사람 있고, 교인들 단속하러 가자 하는 사람들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신사 참배가 그라면 이거 뭐 어짜노? 이거 뭐 죽이니 살리니 하면 어짜노?' 근심이 걱정이 돼 가지고 꽉 눌려 가지고 근심 걱정 가진 사람 있고, 이래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 이거 아무래도 이거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해야 되겠다 하고 기도하러 간 사람들 있었고 이랬는데, 그때에 여기 부산 마산 거기서 있는 교역자들 가운데에 아무래도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주기철 목사님은 저 평양 있었고, 한 상동 목사님이 아무래도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고 산으로 도망쳐 버렸고, 또 손양원 목사님도 기도하러 간다고 산으로 도망쳐 버렸고, 또 OOO목사님도 따라서 아,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고 기도하러 도망치고, 기도하러 간 사람들은 다 승리했는데 교회로 가고 뭐 어짜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다 헛일하고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셋째로 우리 앞에 있는 닥친 모든 시험은 그 시험이 다 내 구원이 되는 것이요 나의 영원한 내 실력이 되는 것인데, 그 시험마다 영원한 실력을 마련하는 것인데, 그 시험을 이기면 영원한 실력이 되고 그 시험을 지면 영원한 내 실력 될 그 심신의 기능이 그만 둘째 사망의 해로써 멸망받고 마는 것이니까 우리에게 닥친 모든 시험을 이기는 데에는 셋째로 중요한 것은 기도로 준비해야 되겠다 하는 이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 많이 읽어 가지고 어디든지 성경 말씀 척 대 가지고 승리하도록 하는 이거 첫째 준비해야 되겠고, 둘째로는 내게 어떤 일이 닥치든지 나를 사랑하시는 구원 책임지신 성령님이 내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현실을 사랑의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싸울 수 있어. 그 때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할라 하면 이 말씀은 전능을 가지고 말씀을 떠나지 안하는 자에게 이 전능이 그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어? 이라면 여러분들, 성령님이 그 현실에 시험 치르라고 인도하시는 그때 그 현실에 대해서 기뻐해야 돼요 슬퍼해야 돼요? 기뻐해야 돼요 이 성령님이 완성하도록 하려 하시는데 나만 배반 안 하면 돼.

배반만 안 하면, 뭐 지킬 거 뭐 지켜? 나만 그 말씀을 떠나지만 안하면 돼. 말씀 떠나지 안하고, '아, 나는 죽어도 말씀 떠날 수 없습니다.' 나는 말씀 모시고 삽니다.' 떡 투쟁해. '아, 나는 말씀 떠날 수 없습니다.' 말씀 떠날 수 없어. 또 말씀대로 또 말씀대로 하고, '성경 말씀에 이렇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 승리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준비를 단단히 할 것, 또 성령님이 나를 구원 완성을 위해서 시험을 닥치게 하시는 현실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단단히 기억을 할 것, 셋째로는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 이제 여덟째까지 가 있는데 그걸 지금 그만 시간이 거석해서 다 못 하겠습니다.

네째는 뭐이 네째인고 하니 간단히 말합니다. 네째로는 우리가 전할 때에 시험을, 시험을 치를 때, 승부의 시험을 치르는데 승부의 시험을 치를 때에 내가 전투할 나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내 대상은 누굽니까? 그는 나를 지게 만들고 나는 안 질라 하고, 나는 이길라고 하는 그는 나를 지게 만들라고 하고, 나를 지도록 만드는 내 이 승부의 전쟁을 하는데 이 승부의 전쟁에 나와 둘이 맞붙어 가지고 서로 싸울 그 내 전쟁의 상대방은 누굽니까? 상대방은 누굽니까? 마귀. 요걸 알아야 됩니다. 마귀를 알아야 돼요 예수님은 알았어. 마귀가, 마귀가 와 가지고 이래 시험을 받고 있는 걸 마귀를 알지 안했습니까? 우리가 이 싸움의 대상을, 무슨 가정에 무슨 일 있으면 아, 이거는 뭐 부모하고 다투는 것이라, 뭐 가족하고 어떤 것이라, 이거는 누구하고 뭐 어떤 것이라 이 물질 문제라, 그 속에는 마귀가 들어 가지고 작용을 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나의 싸움은 마귀하고 싸움이기 때문에 마귀 이 놈에게 안 져야 된다는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거 지금 언제 다 말할 여가는 없고, 이러니까, 그 인제 고라면 그것이 네째인데, 그 다음에 다섯째는 떡으로 만드는 거 그거 시험, 또 여섯 째로는 그전에서 뛰어 내리는 거, 일곱째로는 또 천하 영광 차지하는 거, 여덟째로는 요 일곱을 승리하고 나니까 여덟째는 마귀는 물러가고 천사가 와서 수종을 듭니다. 천사가 와서 우리 수종을 들때 그때 모든 것이 다 승리하고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걸 꼭 배워서 잘 기억해야 되겠는데, 내일 아침에 네째로부터 또 계속해서 네째, 다섯째, 내일 아침에 다 못 할 것입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이거 배워야 시험을 이기지 시험에 합격이 돼야 우리는 영원한 실력을 갖춰 가지게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어짜든지 다 나와서 요 기회에 배워야 되지 좀 있으면 배울 기회 없어요, 지금 환난이 가까워요. 어짜든지 배워 가지고 알아서 이겨야 됩니다. 못 이기면 그때 그만 자기 영육이 다 죽고 망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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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기적과 축복은 깨끗에서/ 요한1서 3장 1절-6절/ 860102목새 선지자 2015.10.27
» 기억 할 것 8가지/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51025금야 선지자 2015.10.27
675 기쁨이 더해지는 순서/ 빌립보서 4장 4절-7절/ 871213주후 선지자 2015.10.27
674 기쁨을 취사 선택해야/ 빌립보서 4장 4절-8절/ 830328월새 선지자 2015.10.27
673 기쁨으로 삽시다/ 요한계시록 3장 2절-16절/ 850530목새 선지자 2015.10.27
672 기쁨에 대한 회개/ 빌립보서 4장 4절/ 830327주후 선지자 20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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