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믿음, 건설믿음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11일 수새집회

 

본문 : 히 11 : 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의 비밀, 또 믿음의 신기, 믿음의 위력 그것을 우리가 여러 시간  공부했습니다. 믿음은 기초적인 믿음 일반적인 믿음이 있고 또 그 기초 위에  건설되는 건설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섬겨 제사드렸는데 가인의 신앙은  기초적인 신앙이요 일반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또 그를 섬기는  그런 믿음은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그 건설에 있어서는 그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믿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믿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 섬기는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주관적이었고  하나님을 따라 섬기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했고, 아벨은 그는 같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섬겼는데 그는 제맘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겼으므로 아벨의 신앙은 하나님이 인정을  하셨고 가인의 신앙은 인정하지 안했습니다.

 또, 창세기 5장에도 보면 아담의 자손들이 거게 많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들은 다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등은 그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고 살기는 저희들의 소원대로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거게 에녹은 그는 다 같이 하나님 알고 바라보고 섬기고 이라는 중에 그  일반적인 신앙과 달리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

동행했음으로써 그는 산 채로 승전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를  보이는 하나의 계시 기관입니다.

 이 성구를 보고 죽음을 보지 안하고 하늘나라 갈 그런생각을 가지는 그런  유혹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박태선씨가 천년 성이라 하는 것도 거게  들어가면 안 죽고 주님 맞이해서 하늘나라 간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써 유혹을  했고, 또 여호와의 중인들도 그와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고, 안식교도 실은  십사만사천 인의 구원에 제한돼 있다 그렇게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 기관으로서 '하나님과 동행은 영생이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준 하나의  계시 기관입니다. 또,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를 보고도  사람들은 그런 유혹을 받고 있지마는 엘리야도 하나의 계시 기관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내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따르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믿음의 사람이라, 믿음은 다 영생하고 죽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또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는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고 또 노아의 여덟 식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반적인 신앙과 기초적인  신앙은 다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거 마음대로 저거 좋아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셔서  좋게 인도하시는 인도하심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잘 인도하시는  것을 믿고 따라서 갔기 때문에 그는 신앙의 성공을 했습니다.

 또, 노아의 자손 중에도 셈, 함, 야벳 이 셋이 있었는데 다 그들은 기초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는 그런 신앙들을 가졌고 함은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그런 신앙들을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또, 창세기 l3장 l0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전기가 기록돼 있는데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롯도 하나님을 기초적으로 다 심기는 사람들이요 바라보는 사람들이요  또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으로 더불어 자기의 소유 다툼을  할 때에 그때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사람들의 소원하는 사람들의 중론도  있었고 하나님의 뜻도 있었고, 또 자기를 위하는 그 점을 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점을 택할 수도 있었던 그런 여러가지 문제로 갈랫길이  되어 있는 그런 기로를 만났습니다.

 만났을 때에 아브라함은 자가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또 인간들의 모든 중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또 땅위에 있는 보이는 모든 조건들 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그렇게 바라는 데에서 그 신앙이 갈라졌습니다. 갈라져서 롯은  의인이지마는, 그는 의인입니다. 의인이지마는 그 건설이 다 멸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의인인 동시에 건설들이 다 생명 건설을 다 했고 멸망 건설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또, 믿음의 조상 에서와 야곱이 있었는데 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바라보는 사람이요 또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모든 신경과 정신과  마음을 자기 욕심대로 가울이고 살았고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이라다가 마지막에 그 된 경우가 에서는 사냥을 좋아해서 사냥  갔다가, 내나 아버지 시키는 대로 사냥 갔었는데 사냥 갔다가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다시 장자의 기업을 받는 그것을 축복을 받지를 못하고 야곱이  받았습니다. 야곱은 이는 기초와 건설을 잘한 신앙이요 에서는 기초만 가지고.

건설을 잘못한 신앙으로 이렇게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두 다 유대 교인들이 다 하나님을 섬기고  바랐습니다. 그러나 거게는 바리새교와 사두개교가 있어 가지고 사두개교는  하나님을 섬기고 바라고 그랬으나 그들은 소망하는 것이 땅의 것만 소망했지 이  영생을 소망하지 안했습니다. 또 바리새 교인들은 다 하나님을 소망하고 섬기고  믿고 영생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 온전한  건설을 하지 못하고 시험에 떨어져서 실패했습니다. 이런 것을 신약에도 와  가지고 많이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l9절에 보면은 '하나님을,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떠나'  그것을 가리켜서 귀신들이 믿는 귀신 신앙이라 이랬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알고, 그분이 지극히 큰 것도 알고, 또 그분이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 것도 이렇게 잘 알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지  안하고 이렇게 그저 하나님을 위대하심과 그분이 주권 가지신 것만 알고 믿는  그런 신앙들을 나타내서 귀신이 믿는 신앙이라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또, 마태복음 3장 l2절에 보면은 타작 마당에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데 알곡은  곡간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다 불에 태운다 이래서 이 기초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나님 믿고 바라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합격되는 요소는 적고 다 불합격으로서 그 건설은 다 불타 버리고 만다  하는 것을 또 우리에게 가르쳐서 말씀해 놨습니다.

 또, 마태복음 7장 22절에 보면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그러면 다 주를  믿는 신앙을 가졌지마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피동되는 그것만이 다 천국에  들어가고 그 외의 것은 다 멸망받는다는 것으로서 건설에 대해서 그것을 말씀을  해 놨습나다.

 또, 마태복음 23장 28절에, 보면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외식하고 불법을 행하는 신자들아. 이 외식하고 불법하는 자들아.

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아' 그렇게 하나님께서 화 있을 것이라고  정죄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게 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섬기는  것인데 기초적으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초를 가지고 난 다음에는  건설을 해야 되는데, 그러면 기초는 오늘 우리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기본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본구원을 가지고 있으나 그 건설을 잘못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 있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되는  것이요 구원 얻은 자들의 그 영광은 다 건설에 있다. 기본구원 얻은 자들이  기본구원의 확신과 효력을 힘입어 가지고 구원 이루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외식 신앙들이 있습니다.

 또, 계시록 3장 l절에 보면은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이렇게 이름 신앙들 있습니다. 이름은, 이것도 다 기초 신앙인데 기초 신앙은  가지고 있지마는 건설을 다 실패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l l장 2절에는 보면은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사람들은  낱낱이 조사해서 측량을 하고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마흔 두 달 동안을  이방인에게 짓밟히도록 둬 둬라' 그렇게 또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기초적인 신앙은  가지고 있지마는 활동적인 신앙, 건설적인 신앙은 없는 그런 사람들은 다  세상에게 짓밟히도록 내비둬라 하는 그것은 세상에 이용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세상 앞잡이가 되고 세상 이용물로서  그렇게 신앙 생활 하는 신앙들도 있고 또 세상을 이용하는 것, 세상이 어떻게  무슨 방편으로 오든지 그것을 자기 신앙 생활에 다 이용을 하기를 마치 음식처럼  이용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점점 온전해지고 강해지고 깨끗해지고 자기  구원이 달성되어 가는 것으로서 그렇게 사는 신앙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러가지 종류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이거 말하고 있는 이 신앙은 사람들이 '너무 치우치다' 다 이래 가지고  조롱을 하니까 '너무 그 신앙은 치우치다. 너무 지나치다.' 그래 가지고, 그 이름을  뭐라고 한다더라? '그거는 백 목사는, 백영희 목사는 강경파라, 아주 강하게  나가는, 그렇게 나가는 거기 때문에 그런 건 다 뿔라지지 온건파가 성공했지 다  강경파는 성공하지 못했다.' 또 이렇게 그 이름을 붙인다고.

 이러니까 따라오다가는 다 모두 배신하고 '너무 이래 가지고 치우쳐서 이래  가니까 이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효력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래 가지고 불평을  가진 것이 다 '기독교는 민주주의로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이렇게 협동에서  이렇게 나가야 되지 자꾸 성경이라고만 해 가지고 성경에, 성경대로만 자꾸 이래  나갈라 하면은 너무 좁고 치우쳐서 안 된다.' 그렇게들 말을 해서 많은 유혹을  받고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넓은 문 넓은 길 평탄한 길이  있고, 좁은 문 또 길이 협착하고 험한 길 이 두 가지 신앙길이 있는데 저는 좁은  문을 택하고 좁은 문으로 자꾸 인도할라고 이렇게 힘쓰고 있는 이것이 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고신에서 나오게 된 것도 이런 종류에서 다 서로  맞지를 안해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어제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증거했는데, 우리는 성경이  어데까지든지 성경이 가라 하는 데까지는 가야 합니다. 또 성경이 그 이상은 가지  말라고 하는 데까지는 안 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가라고 하는 그 명령이  있는 한은 우리는 죽어도 그곳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게서 우리 주관에  맞는다 안 맞는다, 또 고생이 된다 덜 된다 하는 이런 것을 다 부인해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이래서, 일반적인 기초 신앙은 '신구약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주 좋은 신앙입니다. 이것이 다 기본적인 신앙이요 기초  신앙입니다. 또 하나님은 지극히 크심을 믿는 것도 이것도 좋은 신앙이요 다  기본적인 신앙이요 기초적인 다 신앙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유일한 법칙으로, 신앙 법칙으로 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준해서 우리가 신앙 생활  해야 된다, 하는 그것도 아주 좋은 신앙이요 신앙 기초가 되는 신앙입니다. 이런데  이제 이 모든 이런 것이 다 일반적인 신앙이요 다 기초적인 신앙인데, 건설적인  신앙이라 하는 것은 어데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실생활에 있다. 우리 실생활에서  신앙 구원이 건설되고 안 되는 것은 우리 신앙 생활에 있다. 이래서 우리 신앙  생활은 상관없이 순전히 구원 얻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본구원이라고 하는  것인데 기본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얻습니다. 이거는 '사람의 행함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순전히 은혜로 주시는 구원이요 거저 주시는 구원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악령은 이것을 가지고 우리들을 혼잡시키고 혼돈시켜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명령 이 말씀들이  서로 체계적으로 맞지를 아니하고 이리저리 치우쳐서 어떤 사람은 이 면만 믿고  저 면을 믿지 안하고, 또 저 면만 믿고 이 면을 믿지 않는 데에서 실패를 합니다.

그러면 실패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은 두 가지, 기본구원 건설구원 구원이 두 가지  있는데 기본구원의 실패자, 기본구원의 실패자가 몇이나 됩니까? 기본구원의  실패자가 얼마나 됩니까? 기본구원의 실패자가 없어요? 기본구원에는 실패자가  없습니다. 기본구원은 실패를 할라 해도 피조물의 능력으로는 실패를 시키지를  못하는 절대성을 가진 그 완성을 해 놓은, 예수님이 설정해 놓은 구원이기 때문에  이는 완성자니다. 기본구원에는 실패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뭐 선지 사도들이나 오늘 기본구원받은 사람이 그 행위로는 일생 동안  마귀의 행위 하는 사람이나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본구원 터 위에다가 건설구원을 이루는 건설구원은 이것은 참 그  차이가 많습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l5장에 보면은 건설구원은 그 차이를 비할  때에 어떤 것을 인용해 가지고 비유했는고 하니 하늘에 있는 형체가 있으니 해도  형체요 별도 형체요 달도 형체라. 땅에도 형체들이 많이 있다. 땅에 형체는 뭐  그거는 돌자갈도 형체요, 돌덩이리도 형체요, 산덩어리도 형체요. 또 무슨  곡식알도 형체요, 이 바닷가에 그렇게 자잔하게 많은 모래 그런 것들도 다 제대로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총칭해서 땅에 있는 형체들도 있고 하늘에 있는  형체들도 있는데 하늘에 있는 형체들은 해 달 별 이렇게 형체를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다 형체는 제각각 가지고 있지마는 그 형체의 영광은 다르다. 해의  영괭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땅에 있는 것도  금강산 영광이 다르고, 한국이라는 땅덩어리 영광이 다르고, 또 이거 뭐 소련이나  미국이나 그런 땅덩어리의 영광이 다르고,  또 어떤 아름다운 그런 보석덩어리의 영광도 다르고, 바다에 있는 모래 그런 것도  다 형체기 때문에 그것도 영광이 다릅니다. 그것이야 다 많이 모여 있으면은  '백사장이 좋다' 이렇게 그것을 평가하지마는 그 하나 하나로서야 그렇게 사람들이  가치있다고나 생각합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건설구원은 이렇게 그 차이가 많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는고 하니 우리는 기본구원을  얻을라고 애쓰지 안하고, 그것은 벗을래야 벗을 수 없고, 차라리 자기 비위에  맞도록, 지옥 가는 자들은 지옥이 그 비위에 맞지마는 택자들은 지옥을 못 갑니다.

사람들이 마구잽이로 사는 사람은 마구잽이가 좋지 그렇게 아주 진실되고  거룩하게 사는 그 자리는 가 놓으면 죽을 지경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입신 가운데 있었는데 보니까 하늘 나라는 보니  환하게 빛이 있고 거게는 다 거룩한 자들이 있는데 거기 가면 죽을 지경이라서  얼른 문을 닫고 도망을 쳐 가지고 그래 지옥에는 가보니까 거게 가니까 자기들과  성미가 맞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거게 그래 들어가다가 다시 호출만나 가지고  끌려 나왔다는 그런 무슨 전기 기록한 것을 제가 들었는가 내가 실지로 읽었던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하늘나라는 그렇게 빛의 나라요 생명의 나라요 완전의  나라인데 그 나라에는 어떤 사람은 가면 기쁘고 즐겁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이  됩니다. 이래서 암만 고통이 돼도 그 자리를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그 교리와 신조는 하나님의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다.

이래서 기본구원은 순전히 거저 받은 것이요, 은혜로 받은 것이요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이래서 어떤 사람 말하기를 이 기본구원도 그래도 우리 행함이 조그마치라도  들어야 되지 하고, 예를 들어서 만일 하늘나라 들어가는 예복에 실밥 하나가 인간  행위가 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다 거기서 쫓겨나가고 못 들어간다. 순전히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대형 대행 대화친 대부활 이 대속의 은혜로만 들어가는  것이지 인간 행위는 거게는 붙일 수가 없다. 그러면 행함으로가 아니고 순전히  은혜라 하는 것은 그 구원의 가치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구원은 너무  완전하고 완전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아무리 잘해봤자 그것이 참  욥이 말하듯이 때묻은 옷과 같고 그런 것은 기본구원을 근거하는 근방에는 가지  못한다. 그게 가면 전부 더러워집니다. 아무리 성자의 행위라도 우리 기본구원에  그걸 붙이면 더럽히고 더러워져서 안 뒵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데 얻은 자들이 기본구원을 얼마나 확실히 인정하고 그  구원을 힘입느냐, 또 그 구원을 얼마나 성의 있게 모시고 강직하느냐, 또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이 얼마나 감사하며 거게 순종하느냐 하는 인간적인 인간선,  인간 수평선 이하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 건설구원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에는 거게는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기본구원은 너무 가치가 크고 깨끗하고 온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할라 해 봐도 인간은 인간의 노력과 열심이나 그런 성의 가지고는 기본구원의  근거에는 근방에 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것은 자격이 없어서 그 댓가를 낼 수가  없어서 공짜배기요 은혜로 되는 것이지 가본구원이 나빠 그런 것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건설구원을 잘 이루었다 할지라도 기본구원과는 비교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가는데 하늘나라 그 구원은  굉장히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인데 구원 얻은 자들과, 기본구원 얻은 자들의  그 차이점이 뭐이냐 하면은 그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천한 사람이라 귀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비교를 해서  존비귀천을 말하는 것이지 그 밑에 짐승에다 비교를 한다면은 그거는 그뭐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잘난 짐승보다는 낫습니다. 짐승은 짐승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그 비판을 하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뭐  아주 병신 중에 병신이라도 그것이 개가 그렇게 한다든지 또 뭐 어떤 짐승이  그와같이 한다면은 그 짐승 가격이 가치가 굉장할 것이오. 그게 말을 들을 줄  알아, 또 뭣을 이성으로 비판할 줄 알아, 발표를 할 줄 알아 그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그 차이점을 말하는데 기본구원은 꼭  같은데 기본구원 얻은 사람들과 얻은 사람의 그 영광 차이, 대우 차이, 권위 차이,  환영 차이,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 차이 이런 차이가 그렇게 심히 크다 하는  그것을 우리들이 분류해 가지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걸 분류하지 안하면 성경에는 '회개하고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 또  '네가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  얻는다' 이 건설구원에 관한 모든 말씀을 기본 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하지  안하고 구원은 하나라 이렇게 큰소리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라고 뭐 정죄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성경에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고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을 기본구원에다가 붙여 놓으니까 죽는 날까지  근심으로 발발 떨면서 '이거는 구원을 얻었나 못 얻었나?' 얻었다고 생각하고  보니까 그 다음에 보니 죄가 하나 나오니까 또 헛일 했구나. 또 헛일 했구나.

이러니까 마지막까지 그 사람은 의심으로서 구원을 의심하고 비통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일반 기독자들이라 그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기본구원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의  여하가 거게 조금도 침노하지 못합니다. 얻기는 얻지마는 그 사람이 좋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를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이렇게 힘입어서 살 수 있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데 요것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하지  안했기 때문에 실은 평강의 생활을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성자라고 할지라도 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자지지 못하고 어째 그만 '구원 얻었다' 이라고 성경  가지고 따져들어가면 또 근심 걱정이 나옵니다. 성경 가지고 따져서 따져서 '내  구원은 확실하다' 하는 기본구원에 확신을 가지고 그 기본구원의 은택의 그  효력을 자기가 누리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따지기를  싫어합니다.

 이래서, 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그것을 분류해 놓지 안하는 사람들은 제가  아무리 대신학자고 뭐 대성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따져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네가 그러면 이 성구는 네가 어떻게 할 것이고? 이 성구는 네가  지켰나 안 지켰나? 이 성구는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하든지. 이거는 제거할 것이냐?  어떻게 하고 갈 것이냐?' 이렇게 하기를 싫어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녜, 그거 좋기는 좋지마는 마귀의 유혹을  받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저울질하는 불로  연단하는 불연단 그런 불시험이 올 때에는 그런 사람들이 다 뚝뚝 떨어지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분리해 가지고 기본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그런 시험들을 대개 이깁니다.

 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과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 그렇게 예수 믿는다는 표가 없이 그저 말하기를 '나는  평생 죄만 지어서 하나님이 이 죄인도 받아 주실까?' 이런 마지막 결론으로써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거의 다 그래 봤습니다.

 이랬는데 지금 서부교회서 예수 믿는다는 그거 뭐 믿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 사람들은 다 떠날 때마다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세상 떠난 사람들 많습니다. 일주일에 하나씩은 거의 되다시피  돼요. 공동묘지가, 큰 공동묘지가 거의 다 차가요. 이라는데 떠나는 사람마다 다  마지막에 떠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뭐 찬송 불러 달라 하고 감사하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평생 동안에 신앙 생활 옳게 하지 못했다는 그것은 이제  처음에 죽음이 시작될 때에 그런 말해서 지금 살려 주시면 좀 살겠다 이랬지마는  이제 안됐다 싶으고 난 그 단계를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전부 그거는 하나도  없고 주님의 그 대속의 사랑에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러니까 세상  떠나는 걸 옆에 사람이 보고 '참 천국이 있구나'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뭐  다 같이 가고 싶어해요.

 나도 그 어떤 사람 하나 세상을 떠날 때 하도 와서 지금 소원한다고 쌓아서  내가 한번 가봐야 되겠다 하고 갔는데, 그 사람은 좀 눈이 좀 어둡고 한 그런  처녀입니다. 이랬는데 그 가서 보니까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것을 동경하고 사모하고 뭐 이렇게 하는지 어떻게 좋은지 그만 나도 거기  따라가면 싶으더라고요, 따라가면 싶어. 서부교회에서 믿는 이 교인들은 세상을  떠날 때에 제가 과거에 이 복음을 전하기 전 모든 믿는 사람들 떠날 때에 보는  거와 이제 지금 서부교회 교인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 보는 거와 다르다는 것을  요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세상 떠났다 하면 죽었다 하면  그걸 내가 가 볼 뭐 그런 힘도 없고 이래서 못 가보나 묻기만 묻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어땠느냐?' '아, 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해 달라 하고  어떻게 기쁜지, 얼굴이 아주 희희만만의 얼굴을 가지고 그 얼굴이 어떻게 좋고  어떻게 기쁨이 충만한지.' 다 이렇다고 그런 보고를 제가 듣고 있습니다.

 그거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우리, 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언행심사의  행동은 지식을 따라서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심지어 양심까지도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오. 이렇는데 그 지식이 항상 구원이 미결로 되어 있고, 이거는  구원 얻었다 했는데 또 낭패당했고 낭패당하니까 그 사람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 지식을 가졌으니까 좋은 구원이 있기는 있는데 가면 다행이지마는, 마치  노름하는 사람이 이렇게 쪼우면서 이게 일자가 나오면 때이가 되는데 이거  나오나 안 나오나 요래 쪼우며 지금 가슴이 도근도근하는 것 모양으로 세상을 뜰  때에 도근도근하지 그거 평강이 있을 리가 없는 거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기본구원의 이 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날  때에 안심하고 떠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걱정은 다른 사람은 '구원 얻나 못  얻나? 네가 회개 안 하면 천국 못 간다. 회개해야 천국 간다.' 어떤 사람이  '회개하면 천국 간다, 회개 안 하면 못 간다.' 하기 때문에 회개하고 또 그래도 또  뒤에 보니까 안 됐어서 '내 이래도 또 죄가 있고 또 안 되니까 어찌 됩니까?'  '네가 간증 안 해서 그렇다' 하기에 간증한다 하고. 자기 지은 죄를 남한테  들어가면 뭐 가정이 불화가 나오고 지금 뭐 이 사회서 매장이 될 수 있는  그것까지 간증을 다했더래요.

 간증을 다 해도 그 다음 집회 가니까 또 이런 죄를 회개 안 하면 안 된다  하니까 이거 죄가 끝도 없으니까 번민 고민 가운데에서 일생을 지내다가 가는데  요것을 똑똑히 갈라서 구별하기 위해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입니다. 요거 다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조롱하고 있지마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이것이 인간이, 모든 이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던 사람들이  기본구원의 것은 다 떼내서 근심 걱정 하나도 없고 거게다간 신경 쓸 것 하나도  쓰지 안하고 기본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얻은 자의 이 구원의 차이, 영광의 차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차이니까 여게만 전력을 기울이자. 둘로 나눴던 것을  한테로 외통목으로 되니까 얼마나 힘이 있고 좋을 것입니까? 이래서 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번에 이 공부한 데에 지금 그라면 두 시간째지요? 히브리서 11장  1절이? 두 시간째인데, 두 시간째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이 말씀을 그 뭐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말해도. 믿는  것은, 믿는 것을 분류해서 해석을 했습니다. 믿는 그 믿음은 몇 가지 요소가  합해서 믿음입니까? 세 가지 요소가 합해서 믿음입니다. 첫째 요소가 뭐입니까?  아는 것이라. 뭐 대학 공부해서 아는 것입니까? 신구약 성경을 아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뭐인데? 신구약 성경에는 첫째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하는 것이  바로 정확하게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내 뜻은 이렇다' 당신의 이제  기록할 때 그 과거의 뜻은 이랬고 현재 뜻은 이렇고 앞으로 내가 할 뜻은 내  계획의 뜻은 이렇다. 당신의 뜻이 거게 우리가 알아서 필요한 것은 다 기록돼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 다라고는 할 수가 없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은 다 기록이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도 영원히 가도 우리가 모를 면 있으나 우리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은  낱낱이 '나는 이런 하나님이다' 하는 것을 다 나타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게 다 기록돼 있어,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어, 하나님의 구원이 다 기록되어  있어. 이런데 '구원은 이리 이리 하면 구원이 된다' '내 심판은 이리 이리 심판이  있다' '이래서 이 세상은 영원 무궁을 준비하는 것이니까 이 세상 준비한 대로 그  보응의 대우의 댓가는 영원 무궁하다.' 이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기록돼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안다 말은 뭐 그거  자꾸 안다 안다 하니까 '뭐 이거 뭐 박사 공부해야 되겠다, 이거 석사 공부해야  되겠다, 학사 공부해야 되겠다, 뭐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이, 배암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둘뿐인데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배암  지식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오.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건데,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인정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뭐이 들어 있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하나님의 지식 속이라 말은 하나님의 말씀 속,  하나님의 지식 속인데 지식 속에는 이제 그 지식이 발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라, 하나님의 뜻과, 또 우리의 구원과, 또 심판과, 영원 무궁의 보응의  이것이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이 다 기록돼 있는데 이것을 '이는 참되다' 알고  인정하는 것이 그게, 인정하는 그것이 믿음 요소의 둘째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데 아는데, 어제 말씀했는데 그 안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요,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지식으로 발표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데 기초적으로 아는 것은 우리가 '신구약  성경은 정확 무오하다.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요  공의와 정의를 가지시고 사랑을 가지시고 또 하나님은 공변된 보응을 가지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이런 상식적으로 이렇게 알고 있는 이것이  기초적으로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기본구원 얻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건설구원에서 아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게 건설구원에서 아는 것이냐  하면은, 건설구원에서 아는 것은 고 현실에만 담겨 있지 딴데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아무리 통달하고 외운다 할지라도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인 그것을 자기가 아는 것이 그것이 자기 건설구원에 생명이요  능력으로 되는 것이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것은 기본구원에 관한  믿음입니까,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입니까?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반드시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복 주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한다는 요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그 믿음도 건설적인  믿음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했지마는 그 현실에서 틀렸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로 받았고 이  건설적으로서는 현실 현실마다 내가 하나님을 배척해 버리든지 환영하든지,  하나님을 환영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 있습니다. 딴데 있지  않습니다. 현실에 있는데 그 현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명령이 있고  명령이라면 명령이요, 교훈이라면 교훈이요, 지도라면 지도요, 지시라면 지시요,  하나님의 요구라면 요구요.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도 있고 명령도 있고 또  하나님의 인도도 있고 하나님의 교훈도 있고 한 것인데 그것은 현실에 있으니까  현실에 그것으로 하는 젓이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도 요 현실에 담겨 있는 그것이 믿음인데 믿음은 현실에만  담겨 있지 현실 너머 다른 데 담겨 있는 그것은 기초적인 믿음, 가인이 믿듯이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듯이 이렇게 일반적으로 믿지마는 그만 그라다가  일반적으로 믿다가 정말로 하나님이 당신을 아는지 섬기는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현실에 가 가지고는 그만 하나님 배반해 버렸다 말이오. 가인이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어. 하나님의 아들들도 하나님 배반해 버렸어. 노아의 세  아들도 하나는 또 하나님 배반해 버렸어. 롯도 아브라함하고 그렇게 믿어가다가  그만 하나님 배반해 버렸어.

 하나님을 배반해 버린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는데 배반해  버리기를 뭘로 배반해 버렸습니까? 배반해 버린 그 골자가 뭐입니까? 배반해  버린 골자가 뭐이지요? 배반해 버린, 하나님을 배반한 그 골자가 뭐입니까? 예!  골자가 뭐이요? O목사님 예! 배반해 버린 것이 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이라.

하나님은 이제까지 꼬우고 달래고 이용할 줄 알고 그렇게 알고 있고 실상  당면하니까 자기 주장이요 하나님은 배척해 버렸습니다.

 이러기에 믿음과 믿음을 구별해서, 믿음은 현실에만 들어 있다. 현 실에 들어  있는데 그 현실에 들어 있는 그것이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은  만능이라고 말한 것이 건설구원에 속한 믿음이요 그 현실에 담겨 있는  믿음입니다. 현실에 담겨 있는 믿음인데 현실 속에 담겨 있는 믿음은 몇 가지  요소가 되어 있느냐! 아는 것, 인정하는 것, 행하는 것.

 이런데 그게 뭐라서 그 믿음이 전능이고 만능이고 능치 못할 게 없는가? 그것은  아는 것,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 하나님이 지식하는 대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아는 것이라. 현실에서 아는 것이라. 아는 것,  말씀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요, 명령을 아는 것이요, 요구를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도를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교훈을 아는 것인데 그러면  그게 다 한가지라. 교훈이나 인도나 명형이나 요구나 지도나 한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겉어머리로 나타나기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은 하나라. 이래서 속은  하나라. 겉은 천으로 만으로 나타나지만 속에 알맹이는 하나라. 완전 하나라. 완전  하나가 이렇게 막 발산돼 가지고 이렇게 빛이 나와서 막 이래 가지고 이렇게  비추어 있는 거라.

 속에 알맹이는 하나인데 알맹이 하나인 그것을 가리켜서워라고 우리가 표현을  했습니까? 그것을 뭐라고 표현했지요? 속에 알맹이는 하나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무슨 속성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단일성이라고 우리가 배워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인데 그 하나가 이런 사람에게는 이리  나타나고 저런 사람에게 저래 나타나고 천으로 만으로도 넘게 하나님의 이 뜻이  나타나고 있지마는 그 뜻을 차차 차차 좁혀 들어가 보면은 하나요. 완전이라는 그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단일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라는데 우리가 믿음은 세 가지 요소인데, 그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아는 걸 말하는 것이지 배암 지식 아는 그까짓 건 다  멸망이오. 배암 지식은 멸망이요 하나님의 지식 따라서 아는 것인데 아는 그것이  뭐이기에 그렇츰 능력 있는가? 하나님의 지식 속에 뭐 들었소? 하나님의 지식  속에 뭐이 들었소? 지식 속에는,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들어 있습니다.

 이 피라 말은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우리는 이거 참 못난 것인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을 시키는 그 중보가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그 하나님과  얼마든지 만만하게 지성소에 뭐 마음대로 뛰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 속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고 아버지! 아버지! 막 뛰어 들어갈 수도 있고 이렇게  들어갈 수 있는 이 권세를 예수님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들었지, 거게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계시지, 또  그분에게는 뭐 전지 전능자시지 완전자시지 이러니까 껍데기는, 우리 현실에 와  가지고 부딪혀 있는 껍데기는 하나님의 뜻이 뭐꼬? 하나님의 이 말씀이 뭐꼬?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찾을라 하면은 껍데기는 사람들이 믿음 없이  보면은 하나님의 뜻은 이라라 하는데 또 옆에 박사가 와 가지고 이라라 하니까  또 다르고. 또 하나님 뜻은 이라는데 총장이 와 가지고 저거 다르고, 하나님의  뜻은 이런테 이 세상에 대통령이 말하니까 또 다르고, 하나님의 뜻 이래 볼 때는  하나님의 뜻은 이거 뭐 가치가 없는 걸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주 가치  없게 보이고 세상에서 자기 아는 대로 자기 나름대로의 존경하는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말은 가치있게 보이는데 이 말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뭐이 들어 있소? 자, 첫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활로 설성해 놓은 이 설정하신 공로가, 이 보든 것에 완성이라는 판성  공로가 들어 있습니다. 또 그 안에는 또 뭣 들어 있소? 완성 공로를 가지고, 이래  보니까 완션 공로에 무엇이 접해 가지고 있습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접해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전지 전능이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라고 하는  영원 무궁의 충만을 가지고 들고 서서 계십니다. 들고 서서 계셔.

 빌립보서 3장에도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주님이 손에 들고, 손에 붙들고 잡고  계시는 바 그것이라고 말을 했고, 스데반은 주님이 지금 그것을 들고 서서 지금  스데반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입니다. 이런 보배가  들은 것을 자기가 이 껍데기 눈으로 보입니까? 보이지 안해. 보이지 않는데 자꾸  또 요래 보니까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다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 살아난다 그렇게 말했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는, 먹는다는 건 입으로 먹어요? 성경에 사람들이  모르는 먹는 게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음식이 있는데 모르는 음식은 입으로  먹어요 뭘로 먹어요? 만날 배워야 장, 배울 때만 있지 마음은 딴데 갖다 놓으니까  그만 다 잊어버려. 뭘로 먹어요? 입으로 먹어요? 녜, 행함으로 먹어요. 행함으로  먹는데 행함으로 먹을라 하면 얹혀요. 뭘로 먹어요, 그 안에? 씹어야 돼요. 씹어야  돼. 씹어야 되지 그냥 꿀떡꿀떡 넘어 삼키면 큰일 나요. 생각으로 먹어요,  생각으로. 생각으로 먹고 행함으로 먹습니다. 생각으로 씹어 가지고 이제  행함으로 먹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피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고 이라면  생각하니까 그 배후에 뭐이 보이는고 하니 참위일체의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는데 또 생각하고 보니까 그분이 지극히 크시고 무섭기도 제일  무서운 분이요, 참 지극히 크신 분이요, 사랑도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요 뭐  그걸 보고 이 바깥에 세상의 이렇게 사람들의 말을 보니까 그거는 뭐 가치가 그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요게 믿음의 사람들이오.

 이러니까 요거 비교를 하니까 땅위에 무슨 말 뭐 청문회에서 한참 청문회  세월이 났는데 청문회 하니까 청문회, 서울 사람들은 전부 청문회 문자 다  쓰더구만요. 교역자들 보니까. 청문회 이런데 이 모두 '자, 대답하시오.' '자,  증거하시오.' 이게 다 청문회에서 나왔다 하는 그걸 나도 짐작은 해요. 참 뭐  아이들 말로 가재가 물이 높으니까 물이 친다 하는 것 모양으로 나이가 많으면  그런 것 짐작을 해요. 저거 어데서 흘러 나왔다 하는 그거 안다 그거요. 그런  무엇을 본 받을 게 없어. 하나님의 지식 이 외에는 다 죽은 지식이요 다 이거는  죽이는 지식이요 마귀의 지식이오. 요거 하나도, 이것이 총공회 교리 신조입니다.

다른 데서는 그런 말 하지 안해요.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이 있다. 세상에는  지식 둘뿐이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자기 지식인데 자기 지식은 마귀  지식으로 가지고 둘이 합작돼 가지고 생산한 거 있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더불어  합작해 가지고 생산한 거 있다. 그거는 산 자를 낳고 하나는 죽은 자를 낳았다.

산 지식, 하나님의 지식. 그렇게 이것을 비교해서 보니까 자꾸 생각해 보니까 세상  모든 지식을 그것은 다 죽은 지식으로 그거는 멸시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라. 이게 무슨 사전을 찾아봐요? 독서를 해요? 안 해요. 생각해 보고  나왔어요. 많이 생각해서 나왔는데 이 말을 들으니까 듣는 사람들이야 뭐 산 지식  죽은 지식 살리는 지식 죽이는 지식이라 해 봤자 그거 원 그래 하는 가보다  이렇지 저희들이 체험하지를 안하기 때문에 만날 들어봤자 그거는 소용이 없어.

 이 믿음 속에는 이렇게 어마어마 큰 것이 있으니 인정 안 할 수 있어요? 인정도  필연적입니다. 알고 나면은 인정 안 할 수 없어요. 인정도 필연적으로 인정이  돼져요. 또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그 무엇이 거리낀다고 세상에게 마찰이 된다고  행하지 못해요? 행함도 필연성입니다. 필연적으로 행해요.

 그러면 행하게 되면은, 이제 그라면 그 실상이 어떤 것은 한 시간 걸려서  조성되고 어떤 것은 일 년 걸려서 조성되고 어떤 것은 십 년 걸려서 조성되고 그  실상이 조성되는 데에 시간이 걸립니까, 하나님의 말씀한 그것이 바로  실상입니까? 말씀과 실상이 하나입니다. 요거 믿여야 돼, 요거 믿기 어려워요!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게 말뿐 아니라 말씀이면 바로 실상이라. 신구약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한 그대로 말씀이면 다 그대로 돼 가지고 있어.

 다만 인간들이 인정하고 행하는 것은 무엇이라고요? 인정은 뭐입니까? 아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무한한 충만한 이 행복 생명과 평강 이 무한한 것을  자기가 이제 발견한 것이고, 발견한 것이고, 아는 것은 무한한 것을 발견한  것이고, 인정하는 것은? 인정하는 것은? 내가 잡았어. 인정하면 그거는 내것 됐어.

인정하면 누구하고 합작돼요? 하나님은 나하고 합작이 됐어. 하나가 됐어.

하나님은 나의 머리와 같고 나는 그 몸과 같이 이렇게 합작이 돼졌어. 그라고 난  다음에 행하는 거는 뭐이요? 행함은 행하니까, '좀 있다가 줄께 아직까지 좀  시간이 있으니까 좀 기다려' 이리 됩니까? 행하면 그 실상을 자기가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사용하는 것이오. 이제 그러면 지금 자기가  아는 것은 밥을 발견한 것이요, 아는 것은 밥을 발견한 것이요 인정하는 것은  밥을 지금 받았습니다. 밥을 받았어. 행하는 것은? 행하는 것은 먹는 거라. 먹으면  돼. 먹으면 돼. 요것이 총공회 교리 신조입니다.

 이라면 뭐 '거기만 그런가? 딴데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거  책에 보지.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 많이 있지마는 그런 사람들 다  매장당했어. 다 그들이, 칼빈이, 루터와 칼빈이 개혁 주의자인 줄 압니까? 아니오.

그들은 마지막에 결말한 것이지 그 안에 개혁하다가 죽은 사람 많습니다. 여러  수십만 명 돼요, 바른 소리 하다가 죽은 사람. 그들의 그 교리 신조, 설교  준비한다고 쪼가리 한 마디씩 두 마디씩 그래 기적거려 놓은 그것을 주 모두 다  종합해 가지고 이 편집자가 칼빈이오. 알겠습니까?  이래서, 우리의 믿음에는 믿음에는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과 행하는 것인데 아는  속에는 그 알면 그거는 산 지식이요 그 안에는 아는 데에는 뭐이냐? 예수님의  피가 들어 있어. 예수님의 피는 이 말씀과 진리와 떠나 있지를 못해요.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다 뭘 말하고 있는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뭐이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이오.

예수님의 대속이 중심이요 그 중심에 이제 속해 가지고 성부 성자 성령 지극히  크심과 위대하심이 거게 뒤에 연결돼 가지고 있어. 그 위대하심에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아니면 보지도 못해요. 만나지도 못해요. 암만 불러도 대답 안 해요.

어림도 없어. 부르면 죽어요. 가까이 가면 죽어요. 어데 저 지성소에 들어가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성소에 들어가면 대번 직사했는데 어데라고 이제 실상의  지성소에 어찌 들어간다 말이오? 예수님의 피로 들어가요. '담대히 지성소에  나아갈 지니라' 했어요, 히브리서에.

 이러니까 이렇게 그 믿음의 이 오묘, 믿음의 비밀, 이 믿음에는 그 속에 알맹이  실상이 있다. 이러니까 이 알맹이 실상이 있는 것은 무엇으로 볼 수 있느냐? 이제  생각으로 볼 수 있다. 자꾸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연구하고, 사모하고 사모하고  하는 이 가운데에서 비로소 자기가 먹을 수 있어. 자꾸 생각하는 것이 씹는  것이라. 씹는, 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씹어 가지고 꿀떡 넘어 삼켜야 돼요. 이거  자꾸 생각하면 그대로 행하게 돼요. 행하는 것은 이것은 뭐이냐? 참된 양식이라.

이것은 영생을 힘있게 해, 양식이라 하는 거는 골케골케 한 것을 힘있게 만드는  게 양식 아니요? 어린 것을 자꾸 키우는 것이 양식 아니요? 이러기 때문에 '참된  양식이요 찬된 음료로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독자의 행복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보이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이러기 때문에 이 행복을 모든 껍데기 이 피조물들에게서 구할라 하지 않는다.

제가 존경하고 있는 한상동 목사님이 그런 말을, 언제 한번 목회학을 가르치면서  그런 소리를 한번 합디다. '이 교인들 가운데에, 교역자들이나 교인들을 보면은  이거 자꾸 사람 붙들고 날뛰고 무슨 사건이 나게되면 이 사람한테 붙들고 저  사람 붙들고 자꾸 돌아다니며 사람 찾아다니는 그거 하면 못 쓴다.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모든 것을 그때 그런 말은 다 구비하게 안 했지마는 은밀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을 찾고 사람하고 의논할 것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사람에게 물을 것 하나님에게 묻고, 사람에게 도움 받을 거 하나님께  도움받고 요런 말은, 세밀히 하지 안하지마는 의논을 사람 붙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말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하고 의논하십시오.' 하는 그 말을  한번 하는데 어떻게 내게 은혜가 되고 보배로운지.

 그렇지. 사람하고 의논할 것 없어. 사람에게 뭐 지도받을 자가 어데, 지도받을  사람이 어데 있어요? 나를, 우리를 지도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우리에게 선도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선도할 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어요? 몰라요.

초지장 너머 것도 몰라요. 요다음 것도 아무것도 몰라요. 아주 무식하고 이거는  아주 유치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가 뭘 지도를 받겠습니까? 능력 없는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받겠소? 능력도 아무것도 없어. 옳은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거 아무것도 없어.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인간에게는 있는 거  뭐입니까? 인간에게는 뭐이 있소? 마귀 있고, 죽음 있고, 거짓 있고, 속이는 거  있고 그것밖에 없어. 인간이 어릴 때부터 아주 성의 있게 죽는 날까지 이  세상학을 연구하다가 갔습니다. 그러면 그 학 연구한 그 학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맡이 맞아요 안 맞아요? 속이는 말이라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공연히  '맞습니다' 자꾸, 왜 속이는 말이라 하는 말이 맞아요? 왜 속이는 말이라 말이  맞아요? 이 세상에 모두 다 대학 졸업한 사람들,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 중퇴했어.

이 자랑을 이 무식을 자란한다고, 나는 무식을 자랑하는 것이 뭐 하나님 자랑이라.

나는 무식한데 하나님이 주시니까 나는 좋아요.

 왜 속이는 말뿐이요? 전체가 속이는 말, 도서실에 가득찬 게 전부 속이는 말이요  다 거짓말이요 속이는 말입니다. 왜 속이는 말이요, 거짓말입니까? 한번 대 봐요.

이제 저 미국에서 온 O목사님이 대 봐. 왜 그게 속이는 말이요, 거짓말이라?  결과에 보니까? 고거 겨우 합격이나 될란가 몰라. 어? 그런데 왜 속이는 말이냐?  모든 학문은, 모든 학문은 사람들에게 선전하기를 '너를 행복되게 해 주마'  이랍니다. 모든 말은 전부 사람을 행복되게 해 준다 하니까 행복되게 해 줄 줄  알고 그거 다 배우고 듣고 실행하는데 나중에 결론을 보니까 행복 하나도 없고  사망뿐이거든. 그거 속였소 안 속였소? 속였소 안 속였소? 속혔소 안 속혔소?  속혔어. 이러기 때문에 다 거짓말이라. 성경이 말했어.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쟁이의  애비라. 그러니까 거짓 말쟁이를 낳았다 그 말이오. 마귀란 놈이 뭐이냐 하면  전부 거짓말 내 놨기 때문에, 왜 거짓말이라? 이거는 '네가 이 학문을 배워야  행복되다' 이래 가지고 전부 학교 공부 배우는 거 다 행복 얻을라고 행복  만든다고 다 공부 하는데 행복 만드는 게 정반대로 불행을 만들고 다 사망을  만들고 마니까 아까 그 O목사님 말에 '결과를 보니까' 결과를 보니까, 나중에 돼  보니까 다 사망뿐이오. 자, 예수님위 피 없이 세상의 모든 학문으로써 이제 멸망을  안 받은 사람 있소, 없소? 영생과 부활을 받았소, 안 받았소? 못 받았어. 하나도  없어.

 우리가 아무리 욕심쟁이가 '나 이런 복 있었으면 좋겠다. 저런 복 있었으면  좋겠다.' 암만 제가 말한다고 해도 세상에 자, 하나님의 아들되는 것보다도 더  우리가 큰 걸 뭐 포부하겠소? 그 위에는 하나님 되는 거나 한까 그리 안 하면,  하나님은 뭐 자존자시요 그분은 벌써 공력이 있고 완전자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가 꺾어 내루고 내가 하나님 되지는 못할 것이고 이러니까 우리로서 될 수  있는데 제일 큰 행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됐지.

 또 우리가 이제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은 보고 시뻐 보지마는 우리는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는 죽는 생명 받았고, 죽어가는 생명. 둘째  아담에게는 영생하는 생명 받았기 때문에 이제 죽는 생명이냐 영생하는 생명이냐,  네가 어느 생명으로 사느냐? 어느 생명으로 사느냐? 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죽는  생명으로 살면 아버지도 좋아하고, 남편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하고, 친척도  좋아하고 '예수를 믿어도 이래 믿으면 좋아. 이러면 우리 다 믿겠다.'이라지.

저거와 같이 있어. 세상대로 살면. 죽은 생명으로 살면.

 이러니까 저 내가 위천교회 가니까 거기 어떤 분이 한 분 있는데 그분이 양반의  집에서 와서 다 황산 O씨넨 집에서 다 아무 할머니 아무 할머니 뭐 뭐 이래  존대를 하고, 참 예수 믿어도 양반이라고. 그래 믿으면 우리가 다 믿을 거라고.

이러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죽은 생명으로 살았고 또 마귀 따라서 살고  이라니까 나중에 집사는 집사 인데, 돈 집사요. 집사인데 죽을 때에 이래 보니까  예수 하나도 속에 없어. 하나도 없고 뭐 모두 다 그뭐, 자손들이 옆에 있으니까  부끄러워. 자손들이 옆에 있으면 딱 물으면 '야, 어짜든지 예수 믿어야 된다.' 이  말 한 마디만 해도 내가 호상이라고 장사를 치뤄 줬을 터인데 이거 사흘 동안을  말문을 닫고 있어.

 이랬는데 내가 거의 한나절을 그날 기도했는데 자꾸 이거 좀 말 좀 하라고 자꾸  이래 하니까 '푸 푸 푸' 그래. 그래 내가 그걸 보고 '이놈의 할마이 이거는 마귀  새끼로구나, 이거는. 내가 여게서 시간을 뺏기고 할 필요가 없다. 그래 가서 너거  여기서 뒤에 가 죽으면 장사지내든지 해라. 그라고 만일 뒤에 마지막 죽을 때라도  다 이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 하는, 예수 믿으라는 전도의 유언이라도 한 마디  있거들랑 속히, 내가 그 집회 가 있으며, 전보하라. 내가 쫓아와 가지고 내가  장례식을 내가 인도하겠다. 출상 예배를 내가 보겠다,'  나중에 물어 보니까 OOO 지금 목사인데 그 집사라요. 그거 집사인데 물어  보니까 나중에 '푸 푸 푸'이라다가 아무 말 없이 그만 세상 떠났대요. 이러니까 그  집사지마는 그 가족에게 하나도 안 믿어. 안 믿는데 언제 내가 말 들으니까 그  손자 가운데에 하나 믿는 사람이 뭐 하나 지금 생겼다든가 안 생겼다든가?  OO교회 교역자 누고? OO교회 누가 있지? OOO? 있는가 몰라. 그거 내가 그런  말 어찌 하도 내가 답답해서 물어 봤어.

 이래서, 이게 아무나따나 말한 것 아니오, 아무나따나. 사람들이 얼마든지 신구약  성경을 들고 똑똑한 사람들이 꽉 찼는데 말 잘못했으면 정죄해 가지고  정죄받으면 굉장합니다. 만일 정죄할 게 있어 보십시요, 어찌 되는가? 그저  아무나따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무나따나 자꾸 말해 재끼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대적들이 있는 줄 알고, 또 이것을 오용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 줄 알고, 그래서 많이 더듬고 더듬어 가지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세상에는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라. 이 얼마나 큰 말입니까?  이랬는데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진 것인데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이오.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렇게  아는 것은 기초적인 신앙이오. 일반적인 신앙이오. 이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요 아는 것은, 요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아는  것인데 요 아는 지식은 어데 담겨 가지고 있습니까? 여기 한번 말해 봐요. 어데  담겨 있어? 어데 담겨 있어? 금그릇에? 은그릇에? 어데 담겨 있어? 뭐? 성경에  담겨 있어? 여기는 어데 담겨 있어? 다 어데 담겨 있어? 모이기는 많이 모여서  빽빽이 앉았지마는 모르면 무슨 소용 있어? 모르면 아무 소용 없어. 가르치는 걸  말도 모르면서 현재에 어떻게 알겠소? 현실에 담겨 있어. 능치 못함이 없는 그  믿음의 요소인 아는 것은 현실에 담겨 있습니다.

 따라해요.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을 아는 것!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을 아는 것!)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을 아는 것! (현실에 담겨 있는 말씀을 아는 것!) 이 말씀은  전능이요 만능이라.

 이렇게 여기 들은 게 전능이요 만능인데 이 말씀 안에는, 자기가 아는 이 말씀  안에는 첫째 뭐이 들어 있어요?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가, 피가 들어 있어요.

사활의 대속이 들어 있어요. 그 다음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온갖 충만이 다 거게 하나님이 우리 주실라고 들고 계시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이렇게 찾을라고 애를 쓰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나  요 뜻대로 행하는 데에는 소유를 다 내놔야 될 때도 있고, 또 자기 몸뚱이를  내놔야 될 때도 있고, 생명을 내놔야 될 때도 있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은 찾기는  찾았지마는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인정하는 건 자기가 행할 수 있도록 자기가 '이렇다'하는 것을 자기가 단정을  지워서 자기의 이성이나 모든 심신이 다 요것을 참되다, 전체가 다 합동해서  동의하고 찬성하고 하나가 단결이 돼 가지고 요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인정하는 것인데, 그 인정하는 그 인정을 만드는 데에는, 만드는 데에는, 그거  자꾸 알고, 아는 것이 인제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인정으로 나가야 되는데  인정으로 나가야 되는데 알고 인정하는 것은, 인정하는 건 새로 새로운 일이라  했소, 알면 필연적으로 인정이 된다고 필연성을 말했소? 아는 것은 필연성을  말했소, 또 아는 것 또 새로 만들어야 돼요? 그러니까 인정되는 것은 어데서 지금  인정되는 것을 찾아야 됩니까? 아는 데서 찾아야 돼. 아는 데서 인정되는 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다음에는 '요대로는 이제 요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다' 요렇게 요 인정되고 인정되면 단행하는 요 믿음이 산 믿음인데, 참 믿음이요  산 믿음인데 요 인정되는 것을 찾는 데에는 아는 데서 찾아야 됩니다. 아는 데서  찾는데 자꾸 들여다 보니까 그 속에 뭣 들었어요? 그 속에 뭣 들었어요? 자꾸  생각해 보니까 그 속에 뭣 들었어? 예수님의 도성인신이 들었고 사활의 대속이  들었어요. 예수님의 대속이 들었어요. 예수님의 대속은 삼위일체의 하나님하고  나하고 합작시키기 위해서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도 부활하신 것도  하나님과 나와의 합작시키기 위해서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오. 하나님의  충만을 나 줄라고 대속을 베푸신 것이라. 이것 때문에 사람되어 오셨어요. 이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어요. 이것 때문에 영원히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셨어요. 이것을 자꾸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자꾸 이래 생각하니  신기해요. 예수님의 대속을 자꾸 생각하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이분은 천상 천하에 예수 안에 있는 나를 제일 자랑하신다는  것이 믿어져요. 또 이분만이 주권하고 계시는 것을 점점 알아져요.

 이분이 주권하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람들은 이분의 주권을 찾아서  알았어요. 이라니까 '너 불미에 넣어 가지고 불에 태워 죽억 버리면, 사자구덩이  집어넣어 죽이면 네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너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구원하실  수도 있고 또 내가 구원하기만 원하는 게 아니라 그분에게 다 맡겨 놨습니다.

구원하실 수도 있는데 구원하시고 안 하시는 것은 당신의 뜻이기 때문에  구원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불타는 것으로 여게서 나오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그 너머 무한함이 있습니다. 무한함이 있기 때문에 불타는 이것이 좋을  수도 있고 또 안 타고 거기서 튀어 나오는 것이 나쁠 수도 있고 이러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믿으니까 모든 것 맡겨 놓습니다.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의 주권을 그러기 때문에 비웃었어. 나중에 하도 그래 쌓아니까  '왕이여 내가 왕이 말하는 대로 절하지 안할 줄 아십시오. 왕의 말을 듣지 안할 줄  아십시오. 왜 그리 답답하게 말하고 있습니까? 말해도.' 그것으로 마지막 결론을  지우지 안했소? 그것이 다 어데서 나왔어? 그것이 자꾸 생각에서 나왔어. 그들은  미래에 중보자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그 믿었기 때문에. 예표, 하나의  예표 예약으로 되어 있는 짐승의 대속을 예수님의 대속을 그림자 한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 영감받은 사람들은 다 믿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또  앞으로 남아, 실상은 남아 있다는 것을 예언했기 때문에 믿었어.

 이러니까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았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걸  알았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고 가지고 우리에게 주실라는 그 충만한 은혜는  무한한 것을 알았지 이래 놓으니까 거게 그 우상에게 금우상에게 절할 리가  있습니까? 신사참배 절을 할 리가 있습니까? 신사참배 하라 하는 데 거게 떨  리가 있습니까? '아마데라스 오오이 가미라는 그 신상 내 손에 쥐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불 태울께.' '그러면 국기는 어떻게 하느냐?' '국기도 나라의 하나의 표시지  그게 무슨 신이냐? 신 같으면 나한테 달라 내가 불사를게. 그라면 내가 여기서  너거 앞에서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라 하는 그 신하고 국기하고 불 태워서  벌받아서 내가 너거 앞에 죽는가 안 죽는가 봐라. 안 죽거들랑 너거가 나를  따라라. 죽으면 너거 신이 효력 있고.' 내가 일본 부장 앞에서, 또 순경들이 둘인가  있고 부부장인가 뭐인가 있는데 그 사람도 일본 사람이고, 일본 사람 둘 한국  사람, 우리 조선 사람이라. 그때 조선 사람이라. 조선 사람 하나 있는데서 '그걸  달라. 그라면 내가 너거 앞에 불 살라 볼께.' 하니까 안 줘. 안 주고 거게 대해서  말 안 해. 암말도 안 해요, 그만. 그때 주재소 가 가지고. 호출 만나가 가지고.

 그게 뭐이냐? 이 믿음이라는 것은 그 속에 자꾸 하나님의, 예수님의 대속 보고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고 하나님의 능력 보고, 그러니까 여러분들 아이들도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도 그게 아버지가 세력이 있는상 바르면은 아버지에게 붙고  어머니가 세력이 있는상 바르면 어머니에게 붙고 그렇게 붙은 것 봤소 안 봤소?  다 그래. 그런 것들도. 개도 그렇소. 개를 키워도 개 그것도 모르는 줄 알아도  보면 이 가정에는 누가 제일 권세가 있다. 또 그 다음에 둘째 권세가 있다. 이래  호주가 오기 전에는 그 주부에게 뭐 이래 살살 이라지마는 호주가 오면은 호주를  막 꼬리 흔들고 호주에게 먼저 달려든다 말이오. 그것도 알아. 우리가 어짜든지  요게 배우는 이 교리와 신조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놓지 안해야 돼요.

 이번에 믿음에 대해서 지금 잠깐 배우는데, 이 믿음이 뭐이기 때문에 자꾸 이  믿음을 가르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말은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된다고 해 놓은 것은 거짓말로 지금 '에, 너거 그거 하면 내가 뒤에 나는  솜씨가 있기 때문에 퍼뜩 만들어 주시지.' 하는 게 아니라 말씀이면 실상입니다.

말씀한 건 다 실상이오. 실상인데 이것은 우리가 믿으면 다 실상이 내것 돼.

실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상이 내것 돼. 말씀한 것은 다 실상이라. 실상이 돼  가지고 있어.

 실상인데 그 실상으로,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해 그렇지, 보지못해 그렇지 다  실상으로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을 내가 믿음이면 다 그 실상이 내것이 되어지는,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그 우리의 소망하는 그것을 내가 소망하는 그 실상  그것을 내가 가질 수 있는 거,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의 그 실상을 내것 삼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 이러기 때문에 믿음이 보배 아닙니까? 이러기에 믿음을  자꾸 공부를 하는 것이지.

 '보지 못한 것의 증거라' 안 본 거,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고,  하나님의 책임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고 모든 것 다 하나님이 이래 말씀해  놓은 것은 그 이상 더 유에 바랄 것이 없어. 이랬는데 이것을 다 못 봤거든.

'거짓말인지 알겠나? 참말로 그리 될지 알겠나?' 이런데 믿음은 보지 못한 것의  증거라 보지 못하는 걸 다 볼 수 있어요. 믿음은 우리의 육안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하는 깊숙히 들어 있는 것을 우리가 믿으면,  요 세 가지로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하고 보니까 환하게 보여요. 하나님 능력을  환하게 보여요. 하나님의 보호도 환하게 보여요.

 하나님의 주권을 뭘로 봐요? 하나님이 주권자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개별  섭리의 주권을 믿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병드는 것도 골케 하는 것도 죽는 것도,  악어가 날뛰는 것도 죽는 것도 다 그게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데 하나도 주권  없는 게 없어. 그러니까 마구, 쇠도 먹으면 녹아요. 입에서 불이 펄펄 나와요,  악어는 외나 진짜 악어는 그래요. 이래도 하나님이 딱 생명을 중단하면 쭉  뻐드러져 가지고 그만 개미가 와서 뜯어먹어.

 하나님의 이 주권의 그 개별 섭리를 어떻게 볼 수 있소? 이거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개별 섭리를 어떻게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의 개별 섭리를, 하나님의 그  축복을, 하나님의 보호를, 하나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도 보호하는 그 보호를  다니엘은 뮐로 봤어요? 믿음으로 봤어. 알고 인정하고 '나는 기도하겠습니다'  이라니까 '정말로 할래?' 기도하겠습니다. '그라면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집어넣어도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사자구덩이 훅 던져 버렸으니까 그라니까 이제  이 세 가지가 다 구비했어요 안 했어요? 세 가지가 다 구비됐어요 안 됐어요? 세  가지가 구비됐어. 구비되고 나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다니엘은 봤어요 못 봤어요?  봤어요. 하나님의 능력도 봤어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도 봤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에게 책임지시는 것도 봤어요.

 이러기 때문에 '불로 나를 태워 죽일 줄 압니까? 하나님이, 죽이고 살리는 건  당신에 주권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게 하시면 불로 태워서도 죽고 가만히  누웠다가도 죽고 이렇지마는, 그분께 내 생명이 주권돼 있지 아무도 불이 내 주권  못 합니다. 사자가 주권 못 합니다.' 요게 믿는 것이라.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어.

요걸 자꾸 읽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의 증거라' 자꾸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자꾸 말하면 얼마나 거게는 막 생명 양식이 막 들이  쏟아져 나와.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지 못해 그래요.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것을 이 모든 오만 약속이 다 있고,  오만 보배 축복 평강 영광이 다 있고, 승리 성공이 다 있고, 부자가 다 있는데  그걸 못 본 사람, 못 본 사람은 왜 못 봤어요? 왜 못 봤어요? 못 본 사람은 왜 못  봤어요? 믿음이 없어서 못 봤어.

 믿음이 없어서 못 봤다는 요 믿음이라는 것을 요거 유혹을 받기 쉬워. '그 사실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 줄 알면 되는 건데.' 그런 줄만 알았지. 그게 되는 게  아니라. '믿사옵나이다' 하는 거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순서가 내적으로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데는 아는 순서를 거쳐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는 순서 거쳐야 되고, 아는 순서는 인정의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 앎이 앎이고, 인정하는 것은 그 실행이 으례히 필연적으로 되는 그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 인정이 인정이라야 된다 그거요. 그거 어데서 나와요, 다? 그거  생각에서 나와요.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자꾸 생각해요. 생각하고 들여다 보니까, 자꾸 생각해서  들여다 보니까 그 말씀 속에는 뭐이 들었어요?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중보자가 들었어요. 그라고 나면 그 중보자 배후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들었어요. 그 위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모든 선포해 놓은 약속의 실상들이 다 거게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인정하고 그만 먹으면 돼. 아는 것은 뭘 하는  거라고? 밥으로 말하면 아는 거는 뭐하는 거라고요? 밥을 만난 거 밥상 받은 거,  아는 거. 밥을 받은 거. 그 마음에 인정하는 것은 뭐이라요? 인정하는 거는? 밥을  받은 거? 너? 인정하는 거 뭐이요? 아는 것은? 밥을 받은 것이 아는 것이 밥을  받은 거라. 인정하는 건 뭐이지? 씹어. 꾹꾹꾹 씹어. 또 행하는 건 뭐이라? 팔떡  삼켜 버리면 돼 버려, 그만. 그렇게 다 돼 가지고 있어요.

 이러니까 그걸 그거 뭐 더 해석할 거 없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우리가 소망하는 전부 그것을 실상으로 되어, 하나님이  거짓말하지 안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선포해 놓은 것은 그 실상이지  거짓이 아니라. 다 그거 실상이 다 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볼 수, 믿음이  아니고는 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도록 요 믿음이면 다 가질 수 있도록 요렇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으면 그 실상을 내가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혜택을 볼 수 있어요.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모든 소망은 이 믿음이면은 다  자기가 실상으로 자기 것으로 가지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혜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소망은 이 믿음이면 그 실상을 자기가 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소망을 실상으로 자기가 가지는 거, 실상으로 사용하는 거, 실상으로 누리는 거,  실상으로 그 혜택을 보는 거 이것은 다 믿음이오. 믿음이면 성경에 기록돼 있는  소망을 다 실상으로 가질 수 있어. 또 보지 못하는 것도 믿으면 전부 다 볼 수  있어.

 그러기 때문에 '보자, 뭣이든지 그러면 실상이 이루어지는가 안 이루어지는가? 이  성경이 거짓말 하는 게 하나 있으면,' 그래 믿어요. '성경에 만일 거짓말 한 게  하나 있으면 하나님 보자.' 거짓말 한 게 있으면은 하나님이 송사하면 송사 받아요  안 받아요? 받아야 돼요. 하나님은 누군데? 하나님은 가장 법을 주장하는 분인데  어떻게 안 받을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실상이 되나 안 되나?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실상이 되나 안 되나  그거 시험해서 실상이 되나 안 되나 하는 걸 시험해 볼라면 어쩌 보면 알아요?  어째 보면 알아요? 또 모르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우리가 소망하는 거 이런 소망  저런 소망 '이걸 소망해라.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하는 그런 모든 소망을  우리에게 많이 말했는데 그 소망이 거짓말인가 참말인가 그걸 자기가 알아볼라면  어찌 알아봐야 돼요? 믿으면 알아. 믿음으로 알아봐요. 믿으면 '봐라!' 하고  우리에게 딱 내서 실상이 보여진다 말이오.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모든 소망을  자기가 실상을 만지고 실상을 가지고 실상을 취해 볼라고 할라면 믿어요. 믿으면  실상이 돼져요 또 신구약 성경에 우리가 모르는 것 많이 있는데,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모르는 것 있는데 그거 그것을 자기가 모르는 거, 보지 못한 거 '그게  봐야 알지, 봐야 알지 뭐.' 그거 봐야 알지 하는 그 모든 보지 못하는 것은 뭘로  보면 됩니까? 믿음으로 보는 거, 믿음으로 보면 된다는 요 믿음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 '그저 우리가 따라서 인정해야지' 인정으로 보는 것입니까, 세 가지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까? 세 가지 믿음으로 봐야 돼요. 씨 가지 믿음이면 똑똑히 봐요.

하나님이 사자 입에도 구원하고, '하나님이 불속에도 불내음새도 안나게  구원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그것을 뭘로 봤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음으로 봤어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역사들에게  묶여서 불미 속에 훅 집어 넣을 때에 그때 '아이고 나는 이제 죽는다' 이라면  그것이 믿음이요 믿음 아니요? 믿음 아니라. 처음에 밖에서 믿은 거와 꼭 같이  믿었어. 이랬는데 나중에 나와서 보니까 불내음새도 안 나고 나왔거든. 그러면  그게 뭐이냐? 실상을 본 것이요 또 실상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그 사람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실상을 입었어. 요걸 자꾸 뭐 다른 말 할 것  없이 자꾸 이걸 알아서 이러면 앞으로 공산주의나 뭐이나 이거 올 때에 그때  어떤 일이 와도, 무슨 시험 날지 믈라요. 공산주의가 오면 똑 시험납니까?  공산주의 아니라도 과거에도 뭐 단군신사니 뭐이니 이래 가지고, 국기 배례니  이것 가지고도 많이 맞고 상한 사람들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시험할라 하면  뭘로도 시험해요. 자기 아버지로도 아들을 시험해요. 죽인다 시험해요.

 여게 왔는지 몰라도 제가 그때, 제 밑에 있었는데 이북에서 월남할 때에 딸  둘하고 아버지하고 왔는데 이거 그걸 참 바라고 왔는데 그만 예수 믿는다고  이라고 하니까 마음에 거석해서 큰딸에게 '네가, 예수 믿으면 너 죽고 나 죽자.

이래 가지고 안되겠다.' 이라면서 '네가 그라면 내가 너를 여기까지 같이 와  가지고 내가 너하고 같이 살았는데 네가 신앙 생활 한다 하고 이래 버리니까 너  하나가 삐끄러져서 사람이 못쓰게 돼지니 내가 어떻게 이걸 볼 수가 있느냐?  내가 너를 거석 하겠다'고, 작두를 시퍼렇게, 작두 알아요? 갈아 가지고 떡 갖다  놓고 술은 자뿍 취해서 부러 막 자빠지고 이라면서 '너 여기 와서 모가지 대라'  모가지 대라 이라니까 안 댈라 하니, 안 대고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너 이거는  아버지 명령 순종하라 하는 건 성경이 아니가? 네가 순종해야지.' 모가지를 떡  걸쳐댔다 말이오. 걸쳐대고,  '자, 이제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뭐 술이 취해 가지고 헐떡헐떡헐떡 이래  쌓으며 '믿을래 안 믿을래? 믿으면 너 그라면 내가 너 죽이고 내가 또 너만  죽이는 게 아니라 나도 죽을란다.'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래 쌓아니까 거게서 썸벅  누르면 그거 뭐 썸벅 두 동가리 나는 것 아니요? 거게서 울면서 '아버지 내가  모든 것은 아버지의 명령에 내가 여게 모가지를 대라 하는 건 대고 내가  순종했지마는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예수님은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이라니까  그래 그만 막, 이거 막 신강해 쌓다가 나중에 잘못하면 다칠 터이니까 작두를 확  하면서 잡아 끌어내며 '야 이년아 네년하고 나하고 평생 원수다' 그래 하면서  끌어내 버렸어. 그라니까 하나님이 작두 속에 들어가도 당신이 주권을 가지시고  누르라 해야 누르지 누르지 못 하게 하니까 누르지 못해. 그거 하나님 주권을  봤소 안 봤소? 봤어.

 이래서, 하나님의 주권은 공간계를 그분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이 공간 공간계를  그분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모든 시간 세계를 그분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모든  생사 세계를 그분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의 심리 세계를 그분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인간들의 움직이는 모든 움직임의 그 세계를 그분이 주권,  그분이 주권 안 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분이 주권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허락해야  되지 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주권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다니엘 신앙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도 그런 신앙이라. 우리가 첫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그  의뢰하는 걸 그것을 가지고 개봉을 했는데 그것은 모든 존재관입니다. 모든  존재관. 우리가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 그 존재관이 이렇게 바로 되어 있으면,  바로 돼 있으면 그 사람이 저절로 의로운 자가 되고, 깨끗한 자가 되고, 겸손한  자가 되고, 진실한 자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화평한 자가 되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이와같이 동정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그 사람이 겸손하고  진실되고 다 정직하고 순박하고, 사치하고 남용하고 그렇게 하는 게 안 돼. 모든  존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다는 요게서 모든 죄악은 다 나옵니다. 요것이  어떤 피조물에서 나온다는 거. 이 존재관이 바로 되지 안하면 다 멸망이오.

 이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자, 그라면  성경에 '보자, 내가 요걸 좀 봤으면 좋겠는데' '고거 보고 싶으냐? 고거 보고  싶거든 고게 관한 믿음 가져봐라. 그라면 보인다.'  또 바라는 것을 요걸 '성경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하는데 이걸 되나 안  되나 한번 시험해 봐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고 했는데 사험해 봐라.

뛰어날라면 모든 게 뛰어나야 되지. 경제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모든 전투력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모든 그 판단력도 비판력도, 사고력도 모든 지식도 뛰어나고  모든 게 뛰어나야 될 것 아닙니까? 모든 게 뛰어나야 돼.

 공부도 안 한 게 뭐 어째 뛰어나게 돼? 이런데 뛰어나는 방법이 있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그 현실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전지라. 전능이라.

'정말로 그렇게 되는가 보자. 그래 하면 되는가?' 그 결심하고 누가 좀 한번  시작할 사람 있으면 좋겠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축복 받을 거,  '목사님도 받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뭐 그라는가?' 나는 받았어 나는 받았어. 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것은 나는 모든 돈보다 뛰어나는 거, 그 권세보다  뛰어나는 거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성경 아는 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 축복은 축복 중에 제일 뛰어난 축복이라. 아무 축복도 내가  비교해 볼 때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어요. 자랑하면 저 교만할 거라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그래. 속으로는 그래도 배짱이 있습니다.

 뭐 세계 뭐 대국 수상들이 수뇌들이 이렇다 저렇다 어짜고 할 때 속으로  아무말도 안 하고 웃고 있어요. '너거는 철이 없어 하고 있지마는 너거를 하나님이  붙들고 이리저리 할 때는 하지마는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가는 것도 그분이 가게  하니까 가는 것이고 오는 것도 오게 하니까 오는 것이고,'  그러니까 모든 죄도 그분의 역사요 모든 의도 그분의 역사요 모든 김일성이도  너는, 너는 주님에게 붙들려서 똑 그대로 불들려 이용당하고 있고 너는 사망에  불들려 이용당하고 있고 나는 생명에 붙들려 내가 이용하고 있고 다 같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가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해? 하나님  아는 게 제일 중요해요. 하나님 알고 그 다음에 자기 알면 그 다음에 모든 만물을  알 것 없어. 다 알아요, 그만 그거는.

 이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요 말씀을  굳게 잡습시다. 그래서 믿음은 세 가지 요소라. 세 가지 요소비는, 요소인데, 첫째,  아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니까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니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것은 요래 하라, 조래 하라 한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인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명중해서 바로 알면 그 말씀  안에는 뭐이 들었어요? 이걸 모르면 안 돼. 이걸 모르면 마귀란 놈이 그만 자꾸  협박을 줘요. 그 말씀 안에 뭣 들었어요? 예수님의 피가 들어 있어요.

 '네까짓 게 이런 죄도 짓고 이런 실수도 하고 이렇게 변질되는 것이 뭐 네가  지금 하나님의 뜻? 그러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네가 순종 못한 거 많지  않느냐? 하나님 배반한 거 많지 않으냐?' 그렇게 말할 때 뭣이면 해결 대번에 싹  다 돼 버려? 예수님의 피면 해결 다 돼. '야 이놈아 건방지게 그러지 마. 예수님이  다 대형한 대형의 사죄가 있어. 또 말해 봐.' '네까짓 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게  뭐 있느냐?' '대행의 의가 있어.' '네까짓 놈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랬는데,'  '대화친의 화목 제물의 화친이 있어.' 이라면 그놈은 그만 달아나 버려. 자, 마귀  달아나면 누구 와요? '마귀는 떠나가고 어? 천사는 와서 수종들어. 거게서부터  권능 생활이 나오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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