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순서 6 단계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16일 수새

 

본문 : 시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마지막 6절에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하는 인정한다는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의인의 뜻이 같다 그 말입니다. 인정한다 말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다르다 하시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뜻과 같다 하는 것을 표시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닌 것은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주장의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아닌 것을 사람처럼 그 사람의 안면을  봐서, 또 다른 무슨 다른 면으로 그럴 만한 무슨 이유성이 있어서, 그 사람이  두려워서, 그 사람이 커서, 그 사람에게서 내가 무엇을 아부하고 아첨해야, 또  그에게 달라붙어야 하는 무슨 그런 아무 인간 같은 조건이 하나님에게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사와 맞을 때에 인정하시고 다를 때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인정하나 안 하나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단번에는  알려지지 안하고, 일생 동안 하나님의 뜻에 어겨서 해도 영감이 없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영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어겨진 것은 모르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할 수 있으나 했으면 즉시 반성돼서 알게 되고, 그보다도 더 또 영감  있는 사람은 안 된 생각을 가졌으며 안 된 생각을 그것을 생각은 가졌어도 즉시  그것을 돌이켜서 토해 냅니다. 마치 생명이 있으면 자기 몸에 해로운 것은 토해  내는 것처럼 토해 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의 생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을 거두시면 모릅니다. 또 하나님은 영감을 받아서 하는  사람도 당신이 당신의 복음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세상에 이런 사상 저런 사상,  또 기근, 적신, 흥년 이런 저런 것들이 있어도 '기름과 포도주는 해하지 말아라'  그 말씀이 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는 해하지 말아라'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들고 쓰실 때에 그 사람이 여간 실수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실 일은 기어코라도 하시기 때문에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도구와 같이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도구와 같이 사용하시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전해 줘도 저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화를 해도  자기는 성화를 못 합니다. 하나님이 도구처럼 쓰시는 일이 있습니다. 도구처럼  쓰시는 일은, 그것은 일은 한다고 해도 물론 하나님 앞에 영감 받아서 하는  거와는 다르기는 다르지만 일은 하기는 해도 자기 실속은 하나도 없다 이거요.

주일학교 반사들도, 권찰님 들도, 또 장로님들도, 목사님들도 다 그러합니다.

자기가 일을 할 때에 영감을 받아서 일을 함으로 자기 구원이 되고 다음에 다른  사람의 구원 이 되는 이런 순서적으로 되는 그런 일도 있고, 다른 사람의 구원은  되지만 자기 구원은 되지 못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자기 구원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예언하는 영이' 예언하는 영이라면 성령인데  '예언하는 영이 예언하는 자에게 제재를 받는다.' '예언하는 자에게 제재를  받는다.' '성령이 예언하는 자에게 제재를 받는다.' 왜? 예언하는 자가 제까짓  게 뭐 죄를 범하든지 말든지, 기도를 하든지 말든지 성령님께서 그대로만,  조금도 거기에 침노를 받지 안하고 영향을 받지 안하고 당신의 복음 역사에 하실  일만 하시게 되는 그렇게 되지 안하고, 하시면 하실 수가 있는데,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니 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아니하시고 '예언하는 자에게 제재를  받는다.' 예언하는 자가 참 중성을 다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실 일을  원만히 다 하시고, 그것이 안 되게 날뛰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를 통해서  하시기는 하시지만서도 그 사람의 불충에 대한 것이나 그 사람의 불의에 대해서  성령님께서 도 복음 역사하는 데에 손해를 본다, 제재를 받는다,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그러나 또 그 사람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아주 '나쁘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름은  성령을 말했고 포도주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 피를 말했는데, '기름과 포도주는  상하지 말아라.' 그 역사는 그대로 일어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가  시대적으로 악해도 복음 역사는 어느 구석인가 그대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온 교회가 다 타락 아래서 지금은 뭐 빛을 볼 수 없는 아주 인본주의의  타락 시대라 해도, 아닙니다. 어던가 진리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막혀지지를 안하고 그대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일군이든지 일군 이  아니든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 소원이나. 비판이나',  평가나, 뜻이나, 또 희로애락이나, 뭐 취미나 어쨌든지 그 마음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과 같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을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과 성도의 마음의  움직임이 같기를 항상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또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이심에 따라서 내 마음이 움직이기를  자꾸 우리가 기도합니다. '주님이여, 내가 뭐 주님에게 뭘 구해 가지고 이렇게  얻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하나님이 마음을 가지신 그 마음이,  마치 새까만 등에다가 속에 불을 켜면 그 불빛이 등을 통해서 나오는 것처럼  주님께서 내 마음에 환하게 계셔서 주님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사랑과 지능이  나를 통해서 비춰 나오게 해 주옵소서. 주님으로 말미암은 내 마음의 움직임이  되고 또 주님으로 말미암은 내 마음의 움직임이 이제 내 몸을 움직여서 움직임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과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영이 내 마음과 함께  하고. 또 주님과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내 영과 내 마음이 이제 하나 됐으니까  내 마음이 내 몸과 어짜든지 하나 되기를 우리가 원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내 몸은, 하나되어 있습니다. 내 몸은 뉘하고 하나되어 있느냐 하면 내  몸은 주님과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마음과 내 몸이 하나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 내 몸이, 하나 되어 있는 내 몸이 내가 닥치는 일에도 하나 되게  해 주옵소서. 물건에도 하나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이래 기도하는데,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이 인정한다는 것이 아주 참 귀한  말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의인의 모든 의사가 주님의 의사와 같다 그말이오.

인정한다 말은, 주님이 당신에게 삐뚤어진 것을 당신이 옳다 하지 안하십니다.

인정하신다 말은 옳다 하는 것인데, 당신의 의사와 의인의 의사가 같을 수가  있다.

 이번에 공부할 때도 그걸 말했습니다.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있는 말씀.

'이루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고 자꾸 이래 하면 우리 마음이 변화가 돼서, 영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 마음도 변화가 돼 가지고 우리 마음과 하나님 마음이 같아서  우리 마음먹은 것은 전부 다 이루어진다 그말입니다. 우리 마음먹은 것은 전부  다 이루어졌다, 우리 마음에 소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 다 이루어지는 거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니까, 사람처럼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라든지. 사랑하는  아내라든지, 친구라든지 이런 데는 삐뚤어진 것도 그만, 사람은 참 '자기 똥은  똥인 줄 모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이 모양으로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뭐이든지 인정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소원대로 이루어진다 그 말은 삐뚤어져도 이루어진다 말이 아니고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하는 고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참 크게 느낄 것은 '소원  성처 된다' 그것만 생각하면 도적되기 쉽습니다. 도적, 그것만 생각하면 나중에  가면 도적, 절도, 강도 됩니다. 그게 아니고, '소원 성취된다.' '내 의사가 소원  성취 되는 것이 주님의 의사와 다르면 소원 성취가 될 리가 있나? 아니다.

이러니까, 그리 되면 주님의 의사와 내, 의사가 일치될 수 있다' 하는 요기에  우리가 참 욕망을 가져야 됩니다. 주님의 의사와 우리의 의사가 일치가 될 수  있다. 일치되니까 하나님의 뜻이 안 이루어진 게 뭐 있습니까? 하나님에  일치된다. 당신의 뜻을 전능의 능력으로 이루심같이 내 뜻을,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요 당신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오. 내 뜻이 당신 뜻이요 당신 뜻이  내 뜻이요. 당신 뜻이 내 뜻 되다 보니까 내 뜻이 당신의 뜻이지. 이러니까 다  이루어진다 말이오. 거기에까지 그 결과를 맺을 수가 있다.

 그러면 어제 아침에 몇 가지를 배웠습니까? 다섯 가지를 배웠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다른 각도로 우리가 해석도 했지만 이제는 그 순위를 공부해야  되겠는데, 우리 신앙생활은 마치 계란이 병아리 되고 병아리가 닭이 되고 또  닭이 또 계란되고 또 계란이 병아리되고 병아리가 닭되고 닭이 계란되고 자꾸  요래 뱅뱅 돌아가는 거라. 어느 것에 어디서 시작했는고 그거 모르겠다 말이오.

어디서 시작했느냐? 자, 병아리가 제일 처음이냐 닭이 제일 처음이냐 계란이  처음이냐? 하나님이 지을 때에 어느 걸 먼저 지었겠느냐? 어느 것이 먼저  생겼겠느냐? 그것은 불신자들은 저거가 죽자껏 해석을 해도 못 합니다. 시비를  해도, 그래도 그 시비를 언제, 끝이 없는 시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두 짐승들을 창조했다 하기 때문에 닭을 먼저  창조하셨고, 그 다음에 계란이 나왔고, 또 계란 속에서 닭이 나오고 그렇게 한  것으로 알고 있지요.

 그것 모양으로 자 우리가 성경도 봐야 되고 기도도 해야 되고, 행함도  해야되고, 날마다 자기를 새롭게 깨끗하게 씻어서 새롭게 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축복도 받아야 되겠고. 모든 일에 성공도 해야 되고 하겠는 데 어느  것을 해야 될란지, 그 순서를 어떻게 잡아야 될는지 여기에 대해서 뱅뱅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서 시작을 할까 이걸 모르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대체적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시작하는 것이 처음에 복에서  시작하면 좋습니다. 복에서. 그만 언제든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그만  복에서 시작합니다. 복에서.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셔야 영 도 잘되고  육도 잘되고, 또 복을 받아야 이 모든 가족도 잘되고 하는 일도 잘되고 모두 다  소속한 물건들도 잘되고, 하나님이 복 주신 데에 그 농사짓는 식물에도 복을  주시고, 또 떡반죽 그릇에도 복을 주시고, 모든 짐승의 새끼에도 복을 주시고.

전부, 들어가도 복을 받고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어째 보면 이 복이 너무 흔한  것 같지만 점점 깨달아지면 참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접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되지 복 안 주시면 그만 아무 실력 없는 자기  혼자, 또 아무런 사랑 없고 무책임한 이 세상을 향하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세상보다 강합니까? 그는 백프로 실패할 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 한 마디 하는 데도 복을 주셔야 되겠고, 어디 한 걸음  걷는 데도 복을 주셔야 되겠고, 무슨 일 하나 경영하는 데도 복을 주셔야 되겠고  내가 무슨 직장을 가지는 데도 복을 주셔야 되겠고, 뭐 내가 하는 생각하는 데도  복을 주셔야 그 생각이 바로 돼지지 복을 안 주시 면 돈이 좋다고 사람들은  그렇지만, 돈이 좋습니다. 돈이 좋은 것도 하나님이 그 돈에다가 복을 주셔야 그  돈이 좋지 그 돈에다가 복을 주지 안하면 돈보다 우리에게 좀 해독된 것이  없습니다. 돈으로 망하는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러면, 참 가정도 보면 돈으로  망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자기 일생을 가만히 생각하면 돈으로 망한 일  많애. 공부 안 시킬 걸 공부시켜 가지고 망하는 일 많고, 돈이 없었으면 그  사람이 그런 죄를 짓지 안하고 실수를 안 했을 터인데 돈 때문에 그런 일  많았고. 무엇이든지. 또 그라면 참 부모는 좋습니까? 부모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그 부모가 자식에게 유익이 되지 복을 주시지 않으면 부모로 말미암아  자식이 망합니다. 자식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망합니다. 이러니까, 모든 데에 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소망이,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말은  하나님만 바라본다 말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돼지지 복 안 주시면 안 된다  이거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만 의지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야 되지 뭐  하나님 안 보호해 주면 아무 소용없어. 또 그에게만 복종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크고 작은 것을 세밀히 다 빠짐없이 지도를 해 주시고 우리가 그 지도를 받아야  되지 그리 안하면 깜깜 어두운 데 소경과 같기 때문에 우리는 뭐 한 시간 후도  모를 뿐 아니라 초짓장 밖의 일도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그  지도가, 절대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안 되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그 복을 주셔야 된다. 그러니까, 그만 복 생각하는 것이, 시작을 복에서  시작하면 참 순위가 좋습니다. 무슨 오늘 출근하면서도 '아 이거 오늘  출근하는데 주님이 복 주셔야 되는데' '복 주셔야 되는데' 이것부터 먼저  생각하고, '내가 버스를 타는데, 버스 타는데 주님이 이 시간도 복을 주셔야  된다.' 복은 뭐 버스 타는데 무사고도 복이요, 또 안전 운행도 복이요. 거기서도  죽을 수도. 있고 거기서도 망할 수도 있고, 일생을 끝낼 수도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디서든지 복, 복을, 당신이 복을 주셔야 되는데 이 사실을 깨닫고  당신에게 복을 바라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 당신이 복을 주셔야  된다 하는 이걸 깨닫고 하나님의 복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고,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반대할 수 없고, 하나님을 어짜든지  기쁘시게 존귀케 하는 그 일을 안 할 수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복으로 시작합시다. 첫째, 복. 복을 생각해요. 복이  안 붙는 데 없으니까. 공부하는 데도 복이 있어야 되겠고, '오늘 아무것이를  면접하러 가는데 하나님이 여기에 복을 주셔야 된다.' 또 '내가 지금 찬물 한  모금을 마시는 데도. 찬물 한 모금을 마셔도 이것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  안 주시면 찬물 먹는 것도, 찬물에 막힌 거는 고치지를 못한답니다. 그거는 모든  신체적인 본능의, 신경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만 찬물 먹다가서 딱 걸려 놓은  그것은 모든 신체적 신경이 뒤비졌기 때문에 그것은 고치는 수가 없어.

여러면으로, 혹 우연히 고쳐져야 되지. 그 뭐 체한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피와  신경과 모든 전체가 다 깜짝놀래 가지고 갱 낀 거와 같기 때문에 안된다 그거요.

찬물 먹는 것도 그래요. 그것도 그저 자꾸.

 어제. ○○○선생이라는 선생이 복을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일, 승리를 했는데  그만 성경을 넓게 알지를 못하고, 성경을 밝히 모르기 때문에, 성경 없이 복  받는 길을 갈라고 이래 하다 보니까 너무 지나쳐 가지고 ○○교파에서 멸시를  당했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아무 흠이 없이 이래 나갔으면 얼마 안 나가서, 황거  요배 안한 사람과 한 사람, 한 사람은 신사참배 한 사람과 거의 같게 됐고, 그만  황거 요배 안한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저기 눌렸을 것입니다. 또 그리 전부 다  따라갔을 것입니다. 이런데, 모두 그럴 때 그랬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지금은  그 사람 모르지만 그 때 우리는 있었기 때문에, '자, 이거냐 저거냐?' '아,  ○○○선생 그렇게, 그게 옳다. 이거는 아무래도 이거는 죄다. 암만 자기네들이  승리해서 뭐라고 한다 해도 죄다.' 그렇게 모두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오. 이래 있었는데, 이러니까, ○○교파가 이렇게 커진 것은 '아무래도 이게  진리의 종들이요 진리의 편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편이다.' 이러니까 마구 막  그 이름 쭉 따랐고, 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 진리와 영감의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디 한 군데 가서 집회하면 뭐 참예한 사람들은 열  교회가 참예했으면 열 교회가 다 그만 힘 내가지고 그만 ○○교파로 따라오고  자꾸 이렇게 해 가지고 마구 주 모였던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그 ○○○선생이 절교하는 것, 절교하는 것 그것 하나가  대실수이고, 또, 고린도후서 6장을 가지고 그랬어. 절교하는 거 이게  대실수이고, 또 하나는 우상이라고, 자기 눈앞에 있는 우상 문제라 하는 것은  마구 다 그만 이렇게 대적해서 이것을 깨뜨리는 이런 일을 할라 하니까, 일본  나라하고 싸워서 이겨 놓으니까, 해방이 됐지 이러니까 정권으로 더불어 싸워서  해방했으니까 담력이 나오지, 그렇게 신앙이니까. 또 그때 군정, 미군 군정은  내나 또 신앙과 통하는 사람들이지 이래 놓으니까 그만 그때에 조금 치우쳐  가지고 어디든지 다니다가 우상 섬기는 것 보면 그것 다 깨 버립니다. 절에 가면  절의 그걸 다 깨고 나오지, 두드려 맞으며 깹니다. 그냥 되겠습니까? 두드려  맞아도 깨고 이라니까 좀 신앙은 신앙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안하고  지나쳤다 그거요. '의를 지나치게 행하면 기한 전에 죽는다' 그런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지나쳤다 그거요.

 이래서, 보니까 '절교 저것이 뭐이냐?' 이러고 있다가 모두 다 이거, '절교  저게 뭐인가? 저거 너무 과격하다. 저건 성경적이 아니다.' 그 뒤에 또  우상숭배에 대해서 거석할 때 '아. 저것도 과격하다. 저분은 아무래도  탈선되겠는데, 저거 좀 위험한데, 좀 지나쳤는데.' 또 십일조 드린다고 밥상이  오면 전부 젖가락으로 조매씩 다 집어 놓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집어 놔서 전부  십일조부터 떼고 밥 먹습니다. 밥도 십분지 일, 채소도 십분지 일, 기름장도  들어오면 기름장도 십분지 일. 전부 다 십분지 일 다 뗍니다. 그릇에 딱 놓고 몇  가지고, 그러면 그거는 어짜는가? 그것은 대금을 칩니다. 대금을 쳐 가지고,  그렇게 십일조에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밥 받은 것도 십일조를 떼 놓고 요렇게  딱 해서 십일조를 그래 하는 그것도 그것만 그래 하고, 다른 걸 안 하고. 절교  안 하고 우상에 대한 것 하지 안하고 십일조만 드렸으면 다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거 하나만, '저 사람들은 왜정 말년에 그렇게 승리한 사람들인데 저렇게  십일조를 떼니까. 성경에 십일조 떼라 했는데 뭐 밥먹는 데 십일조 떼지 말라  소리 어디 있느냐? 이러기 때문에 그것도 십일조 떼는 것도 성경이겠다.'  이랬는데, 그만 다른 실수가 두 가지가 있고, 십일조도 그래 되니까 '아. 다  총합을 해 보니까 '저 신앙은 지나쳤다. 치우쳤다. 저래 나가면 뒤에 가서  저거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 참 사람들이 괴이쩍게 보는 괴물 운동이지 저거 복음  운동이 되지 않겠다.' 그러니까, ○○교회 세력은 차차 차차 가라앉고 ○○교파  세력이 올라갔습니다. 만일 그것 없었으면 그 세력이 아주 쑥 올라가 버렸지 못  따라갑니다.

 그분이 참 그렇게 복을 원했는데, 복을 원하고 복 위주인데,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거기서 억세게 깨끗하게 요렇게 줄기 나왔지만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지나가 버렸다 말이오. 미달, 못 미쳐 가지고 죄가 된 게 아니라 너무  지나가서 죄가 됐어.

 우리가 이 복을 말하면 신앙생활이 열심 있어지고 깨끗해지고 발라지고  옳아진다. 옳아지는데 복을 많이 말하는 사람은 ○○○선생을 본다고 하면  성경을 잘 알아서 지나치지만 안하면 된다. 열심이나 그런 것이 지나치지만  안하면 된다. 그러니까, 미달되는것, 게을하는 것. 이렇게 모두 타협으로써 물  들은 것, 방종한 것 그런 것은 이 복을, 생각하는 사람들 은 제거하기가 쉽지만  지나치기 쉽다, 그것만 우리가 뭐 성경에 보고, 우리는 지나친 것 내두고 전부  미달이오. 전부 미달이고 전부 힘이 없어서 다 가라앉아서 죽은 거와 같이 이래  돼서 문제지 그렇게 열심이 너무 있다 너무 구별한다 그런 게 없다 말이오.

구별은 암만 해도 좋습니다. 구별을 잘 못해. 구별을 잘 못해 그래. 성경대로  구별했으면 그런 실수를 안 했어요.

 나는 그때 그런 분들과 멀어서 그런 분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저 시골 산골에  있어서, 나는 시골 산골에 있으면서 그저 주남선 목사님만 접촉했지 그런 아무  신앙적인 사람들을 접촉을 못 했어요. 그러니까 신앙계의 말을 못 들었어. 못  들으니까 신앙계의 교리나 신조 그런 것도 듣지 못했어. 난 성경만 보고 그저  그대로 보고 행하고 보고 행하고 함으로써 깨달았기 때문에 일반 교회와 떡  가까이 접촉을 할라 하니까 전부가 틀려. 이러니까 이단이라는 정죄를 많이  받았지만 그때에 내가 깨달은 것이 그것이 많은, 오래 사람들이 깨달은 것보다  옳은 것이 많았더라 말이오 이단이라고 정죄 받은 것이 그거 지금 다 옳은  것으로 다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거기서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기 때문에 성경 연구의, 성경  연구 방법이 몇이 있었다고 요번에 대구에서 공부했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성경 연구가 몇이 있다고 했소? 똑똑히 가리켜요. 저 요번에 공부한  사람들. 네, 둘이 있다 했지요. 둘이 있다.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것을 좀  가미를 하는 그것까지 말하면 고게 하나가 둘이지만, 하나 고게 둘이오.

둘이지만, 둘인데. 제일 좋은 방법은 뭐이라고 배웠습니까? 아는 대로 행하는  것. 자꾸. 나는 그거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어요. 그러니까 옳고 바르게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더라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느냐 하는 그 순서에 있어서  복에서부터 시작하자, 복에서부터 시작하자. 요것을 요 순서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요 순서가 아주 요렇게 간단명료하게 요렇게 나열돼 가지고 있는 데가  별로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에는 첫째 복을 생각합시다. 복, 복.

그분들은 복 말을 많이 하요. 복. 그러나 그만 이 마귀들이 작용하기를 복이라는  말을 자꾸 해 쌓아면 너무 천해져 보이기 때문에. 와 복이, 복이 와  천하겠습니까? 그런데 복이라는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말이오. 그게 하나님  부끄러워하는 거라. '복' 그라면서,  그거 좋겠어. 우리 서부교회는 만일 별명이 복이라고 붙었으면 좋겠어. 나는  별명이 복이라고 붙었으면 좋겠소. 그저 서부교회서 온 사람들 '야' 어짜든지  오늘 아침에 복 받도록 하자.' 차타고 저 산에 기도하러 가며 '오늘 아침에  어짜든지 복 많이 받도록 하자.' 속으로도 '주여, 오늘 아침 복을 주시옵소서.

오늘 내가 복을 받아야지.' 자꾸 이렇게 복을 생각해서 '아, 서부교회 그  사람들은 복, 복이야. 그 사람들은 복.' 뭐 핍박을 하든지 뭐이든지 복을  생각해서, 복을 생각하면서 복 받도록 하려는, 복을 받아야 된다는 이것이 그만  속에 꽉 배어서 '서부교회 교인들 복 덩어리다.' 이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복을 자꾸 생각합시다. 첫째 복을 생각하고,  둘째로는 행함의 투쟁입니다. 둘째로는 행함의 투쟁,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한다는 그것은 자기 마음과  몸의 행동의 투쟁입니다. 이렇게 할라 하면 투쟁이 자연히 생겨요.

 이렇게 하려고 하면, '악인의 꾀'는 여러분들이 다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이 아닌 그것을 하려고 하면 마찰이 와요. '그러면, 장 바쁜데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 하면 사람이 어찌 살 수 있겠노? 하나님 중심이면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이면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못할 것이 있느냐?  못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 밥 먹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일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또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길가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또 장가가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또  시집가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고, 또 가정을 이루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가 있고 모두 다 하나님 중심으로. 왜? 그것이 아니면, 그것이  아니면 신앙생활이 구비되지 안하고, 그것이 아니면 신앙생활에 지장이 있어서  안 되겠다 이거요. 돈벌이 뭐 하는 거는 돈벌이 그거 안 하면 내가 안 먹으면  신앙생활 못 하지. 또 벌이 안하면 그걸, 안 먹으면, 돈벌이 안 하면 가족들이  다 굶어 죽을 이니까 뭐 핍박이 일어나고 복음이 다 깨져 버리고 안될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분명히 직장을 하나님 중심으로 직장을 가지고, 돈 벌이를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내가 돈을 쓰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아. 이 돈을  안쓰면 이것이 직접 안 하지만 간간접으로써 이게, 돈이 있으면서 자녀의 공부  안 시킬라 하는 날이면 이거는 자꾸 다른 사고가 일어나고 여기서 모든  부조리들이 일어나 가지고 안된다.' 돈이 있으면서, 돈 없는 걸 또 공부를  시킬라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공부를,  돈도 하나님 중심으로 쓸 수 있고 안 쓰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안 쓸 수가  있고, 밥 먹는 것도 하나님 중심으로 밥 먹을 수 있고, 자는 도 하나님 중심으로  잘 수 있다 말이오. '아, 보자. 복 받는 데는, 복는 데는 내가 잠도 잘 자야  되는데 자 지금은 자야 되겠느냐? 좀 자야 되겠다. 암만 테레비가 재미는 있지만  좀 지금은 자야 또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는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겠다.'  이래서, 잠도 하나님 중심으로 잘 수 있고, 또 깨는 것도 암만 좀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지만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복 받기 위해서 내가 깨야 되겠다,' 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깨야 되겠다.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못 할  일이 없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러면서 그 마음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 중심하고. 돈벌이하는 것도 가족 위해서 돈벌이 하는 사람 도 있고,  자기가 먹기 위해서 돈벌이하는 사람도 있고, 거기서 한 걸음 나가서 '내가  먹으면, 먹으면, 하나님과 나와 관계 끊어지면 먹으면 뭐 하노? 가족들을 잘  먹여서 살을 찌우면 뭐하노? 하나님께 복 받지 못 하면 뭐하노? 하나님과  끊어지면 뭐하노?'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거기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사건과 행동과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끊어지면 망하니까. '주여, 내가  이제까지 잠깐 하나님 중심으로 내가 직장 생활 하지 안하고 내가 가족  중심으로, 뭐 내가 장가갈 중심으로, 직장이 좋아야. 그 사람이 직장 생활  잘해야 장가간다. 장가 중심으로 이렇게 내가 직장 생활했습니다. 이 썩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주님이여. 그로써 하나님과 끊어져 버렸다 말이오.

'하나님이여,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직장 생활 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입니다. 내 직장  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고 또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세상에 유지 될 수가 있고, 또 가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될 수가 있고 또 결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결혼도. 나 혼자 살면 죄  지을 터인데 이제 모든 음행을 막기 위해서 내가 결혼을 해야 되겠습니다.' 모두  다 주님 중심으로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주님 중심으로 할 수 있는 것.

 자, 주님 중심으로 다 할 수 있는데 안 되는 것 있어요. 살인을 주님 중심으로  할 수 있습니까? 주님 중심으로 할 수 있소? 그것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살인도 하나님 중심이 면 하라 했다  말이오. '그 사람을 죽이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죽이라 하기 때문에 주님 중심으로 죽이는 일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현저히 성경에 명문돼 있기를 '이거는 죄라.' 그거 안  해도 될 수 있는데, 죄되는 일을 그걸 하는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거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이 볼 때에 이거는 죄라 싶은  그것도 하나님이 그 일 하라 할 때에는 해야 된다 이거요.

 이러니까, 제단에 있는 그 음식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데 그때 제단 음식을  제사장 아닌 사람들이 먹은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누가 먹었습니까? 예?  다윗왕과 그 부하들이 먹었다 그거요. 하나님이 또 먹으라고 기뻐했다 말이오.

그때는 주를 위한 주님 중심으로, 다윗이 주님에게 붙들려 가지고 일을 해  나가다 보니까 나중에 안 먹으면 죽는데 그때는 제물밖에는 없으니까 제물을  먹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제물보다 더 크다 그말이오. 이라니까,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조그만한 것의 제물 먹지 말라 해도 그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물 먹지 말라 한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이루기  위해서 안 먹으면 안될 때에는 제물 먹은 것을 하나님이 의라 말했다 말이오.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걸 잘했다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조브랍게 생각하고 또 바로 분석을 못 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넉넉히 할 수 있는 그 일을 하나님 중심을 빼 버려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를  못하고 피조물 중심으로 해 가지고 절단 나는 그런 일이 있다 그거요. 하나님  중심으로 하면 어디 가서 그것이, 하나님이 가 끔 가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사람은 어디서 시험하느냐 하면 '보자, 네가 하나님 중심이라면 요 때에 안 해야  될 것이고. 평소에는 했지만 안 해야 될 것이고 네가 이때에 한다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다.'그런 시기를 해 가지고 시험을 하신다 그말이오. 시험을 하셔.

언제든지, 그저 직장에 충성하는 것은 좋은데, 충성하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 중심 ' 내 중심으로 직장 충성을 한다고 이렇게 하기는 하는데 내  중심인지 다른 것 중심인지 내가 널 한 번 시험해 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그  회사에서 주일날 노는 날인데 하필. 그때는 주일날 딱, 대사장이 하나님,  주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장의 대가리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그 밑의  부하 새끼 사장들에게. 명령해 가지고 요다음에 몇일 날 주일은 무슨 일을 딱  경영을 만들어 가지고 그날 주일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총동원해 가지고 이  일을 해야 된다 그렇게 하나님이 일을 만든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그 현실을  만들어요. 그래 가지고 안 하면 안 할 수 없도록 딱 만들어 가지고 '이거  미안합니다. 특별히 미안한 것은 일반 직공들에게 휴일을 일한다는 것은 돈 주고  하니까 덜 미안하지만 이 종교성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꼭 내일  주일이라도 이거 해야 되기 때문에 이거 참 미안합니다. 천상 사정이 그런  것이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내일 주일은 다 나와 주십시오.' 사장이 사정을 한다  말이오. 사장이 사정을 하지 공장장이 사정을 하지, 총무가 사정을 하지 이렇게  사정을 하는데, 그때가 뭐이냐? 하나님 중심으로 했느냐 안 했느냐 그게 표가  난다 말이오.

 그러면, 저쪽에도 사정 말하는 게 딱하기는 딱하지만, 그 사람의 사정도  딱하지마는서도 ' 내가 이제까지 모시고 있고 영원히 모실 주님의 명령인데  주님의 명령인데 주님의 명령 어기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주님이 나와  끊어지는 것인데 만유의 대주재를 내가 범하는 것이니까 내가 주님을 범하면  주님이 나에게 축복하지 안할 터이니까 이 회사도 망한다.' 해석을 자꾸 인제  그래 해 들어간다 말이오. 해 들어가니까 이제 떡 범하면서 어떤 사람은 '천상  신조가 그렇게 때문에 이 주일 범하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내일 저는 못  나오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 그라면 어찌 되나?' 막 성을 내가지고 '그러면  우리 회사를 이렇게 다 동체로 알고 이렇게 모두 했는데 자기 하나가 빠지면  우리 회사 전부 다 이거 일이 낭파되면 어찌 됩니까?'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회사에 직위에서 쫓겨나도 할 수 없지' 이래 생각하고 아예 자기는 그만 직장을  내놓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주일 지킬 때 '내가 여기 직공인데, 나 하나로 말미암아 이 회사를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도 있는데 내나 주일을 범하면 이 회사가 망하기 때문에  주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나는 이 주일을 범하면 안  되겠다.' 이 사람 속에 확신이 있다 말이오. '아 나는 주일을 못 범한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주일 못 범합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모두 주권하고 계시는데 사장위에 대 사장은 주님이신데 주님이 이 회사를  불쌍히 여겨야 이 회사가 잘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이 회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이 기쁘하시는 이 계명을 지켜서 주일을 범하지 안하고  주일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회사를 위해서 주일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이란 다 말이오. 그 속으로. 말만, 말쟁이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말이오.

 그라면, 삐쭉거리면 말이오. 성경을 찾아서, 보라고. 요셉이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요셉이 가는 보디발 집, 이방 집이니까 아무 축복 안 하지만 그  보디발 집에 하나님이 축복하지 안했느냐? 요셉이 가니까 보디발 집을 축복했고,  또 요셉이가 가니까 애굽이 멸망할 애굽인데, 그 애굽을 멸망시킬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애굽을 멸망에서 구원하지 안 했느냐? 칠 년 풍년을 줘.

칠 년 풍년을 주니까 '곡식 그까짓 거야 얼마든지 있다.' 사람이 칠 년 동안  풍년이니까 뭐 곡식에 대해서 귀중성은 하나도 모르고 마구잽이로 이래 해  버렸다가 칠 년 흉년 들면 죽지 않겠습니까? 애굽을 망칠라고 칠 년풍년 줬소,  망칠라고 그랬소 일으킬라고 풍년 줬소? 어떻게 됐소? ○선생. 생각해봐. 예?  망칠라고 하는 거지. 그런 거 아니오? 그랬는데, 요셉 하나가 떡 감으로써  망하지 안하고 그 애굽 나라가 크게 부흥됐다 말이오.

 이러니까, '나 하나가 계명 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 안할 터인데 그래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나 하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이 회사를  망하고 흥하게 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어짜든지 죄 짓지 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그러기 때문에, 내가 여기 직공 생활을 하지만 외식을 하나도  안 합니다. 양심을 속이지 안하고, 다른 사람을 속여서 그래 하지 않습니다.

내가 껍데기로 눈가림으로 그떻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고 어짜든지, 네가  진실되게 거기서 그렇게 네가 참 정성되게 나를 위해서, 내 영광을 위해서, 내  복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정성되이 직공 생활 하니까 내가 네게 감동 받아  가지고 그 회사를 복 주겠다 이렇게 하시도록 내가 하려고 지금 나는 하고  있습니다.' 이라면 그 사람들이 '이 밉상스러운 자식, 너 때문에 우리 회사  되나? 네까짓 놈 없어도 좋다. 그러면 사면해 버려라.' 이라면 '뭐 꼭 나가라  하면 나가지요. 나가라 하면 나가고, 당신들이 여기 권리가 있기 때문에 또  당신들이 하나님이 말겨 주신 권리니까 나가라 하면 나가기는 나갑니다.

나가기는 나가지만 내가 나가도 이 회사가 잘 돼야 될 터인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 나가거든 망하게 해 주옵소서' 요 마음 가지지 안하고 '잘 돼야 될  터인데' 하고 '천상 주님이여, 어쩔 수 없습니다. 이라니까, 저희들이 몰라  그러니까 이제 나는 또 주님이 딴 데로 옮기는 것인 모양이다' 주님이 옮기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지 저거 마음대로 나가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제 할 수  없어 '나가기는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를 주께서 긍휼히 여겨 복을  주시옵소서.' 이라면 주님이 그 회사에 대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말이오.

맘대로 할 수 있지만 그럴 때 '내가 나가니까 이 회사에 그걸 좀 보여 주기  위해서 그 뒤에 꽝 거리며 망하도록 해 주옵소서.' 이라면 하나님이 일을 못  합니다. 일을 하는 날이면 내가 걸리기 때문에 나를 걸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을 못 하신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공변되고 원만해서 그 털끝만치도  거리낌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되다' 계시록에 보면  마귀들도 다 찬양을 했습니다.

 그렇게 '악인의 꾀를 좋지 않으며' 그건 다 몰라도 아니까-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살 수 있어요. 죄인의 길이면,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위반 된 그 걸음  걷지 안하고 성경 말씀에 하라 하는 대로만 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지 말라는 것 얼마 안 뙈요. 몇 가지 안돼요. 그 일이 다 성경  말씀대로 할 수 있는 일인데 가다가 일 년에 한 번, 어떨 때는 평생에 한 번,  며칠 만에 한 번, 한 번 딱 걸려서 그때 그것만 하면 이제까지 하던 일이라도 고  일을 하면 성경에 위반되는 때가 있다 이거요. 이러니까, 그렇게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은 현저히 내가 명문되어 있는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일을 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그것안 하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그것 위반되게 안한  일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리 했더라면 큰 낭파 될 것이 그리 안 했으므로  잘됐다 긍말이오 그거 전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 주신 이 말씀은 성경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멸망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요렇게 저렇게 하는 것은 이 멸망 가득히 찬 요 속에서 요리 조리 요리  조리 뭐 생명 길이 꼬불 꼬불 꼬불해서 도무지 찾을 수 없는데 고 생명 길을 찾  아서 그 생명 길로만 졸졸 가 가지고 행복의 길로만 가도록 그렇게, 멸망 속에  가느리한 실라끈 같은 생명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리만 가면 그렇게 형통해지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이만 하면 됐다' 하고 교만성 낭만성. 그렇게 교만한 것.

이만하면 됐다는 고게서 망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밥 먹을 때 기도하기를 그렇게 기도하는 것 같습 디다.

'주께서 축복을 해 주소서. 구미도 생기고, 소화도 잘되고, 영양도 잘되고,  섭취도 잘되고' 그 주님이 안해 주면 안돼, 그거. '섭취도 잘되고, 건강도  잘되고. 건강을 주님에게 바쳐서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결과를 맺게 해 주시고 그라고도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여 항상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입니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살아서 주님 앞에 가증스런지  안하고. 주님을 섭섭하게 노엽게 하지 안하고, 망령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항상 하고도 부족, 부족, 부족한  그것을 이렇게 깨달아지고 이럴 때에 그게 오만한 자리에 서지 안하는 거라.

 인제 그랄라고 하면, 자, 세상에서 그랄라고 하면 술술 갑니까? 마찰이  있습니까? 이 세 가지 이 행위를 할라 하면 마찰이 있겠소 순조롭겠소? 네  마찰이 있습니다. 마찰 그게 우리, 마찰 그것이, 아무리 식물을 땅에다가 심어  놔도 거름 안 주고 안 매면 안 돼요. 거름을 주고 매야 되지. 마찰되는 그것이  뭐이냐? 거름이오. 마찰되는 그게 뭐이냐 하면 나를 겸손하게 딴딴하이  교만하게, 딴딴하게 교만해지는 것. 딴딴하이 교만해지고 견고해지는 것 요렇지  안하고 나를 매서 허불허불하게, 겸손하게, 부들부들하게 겸손하게 이렇게  만들고, 거름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마찰 그것이 없으면 우리가 안 자라요.

마찰 그게 없으면 안 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찰이나 환난이나,  어떤 사람이 자기와 대적이 돼 가지고 나갔는데, 대적이 됐는데 대적된 사람에  대해서 물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이라는데, 대적된 사람의 가족이  그만 어떻게 그만 사고가 나 가지고 병신이 됐다 이라니까 이 사람이 듣고 첫째  마음에 생각하기를 '아,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는구나. 하나님의  축복이 그 가정에 있구나. 그 가정이 망하지 안하겠다.' 병신이 됐는데 뭐 그래?  병신이 됐기 때문에 그 가정을 놓지 안했다는 증거요, 병신이 됐기 때문에 그  가족이 반드시 회개했을 것이요, 반드시 깨끗해지고, 아, 껍데기 손 하나 없으면  뭐입니까? 하나 없어도 그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붙어지고  겸손해지고 회개가 돼지는 게 희망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의인들은 다른 사람이 형통해서 잘된다 하는 이것을 들을 때에는  염려가 됩니다. 그 뒤가 저로 말미암아 교만해져서 어찌 되나 그 뒤에가 염려가  돼지고 뭣이 상했다 이랄 때에는 기쁘다 그만이오. 왜? 그 껍데기 그게  상함으로써 속에 마음이 좋아지고 심령이 좋아진다 그말이오. 좋아지지만 껍데기  그게 좋아짐으로 속이 나빠져 버리면 절단난다 그말이오. 껍데기 좋아진 데  대해서는 걱정이 돼지고, 껍데기 나빠진 데 대해서는 안심이 돼지고,  이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마찰이 있는 그것이 나쁜 게 아니고 그게 좋은  겁니다. 마찰되는 그걸, 마찰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때문에, 투쟁이  없으면 승리가 없습니다. 투쟁이 있어야 반드시 승리가 있는 것이지. 그러기에,  투쟁을 겁내지 말라 말이오.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투쟁만 오면  좋습니다. 투쟁만 오면 후퇴만 안 하면 반드시 승리가 옵니다. 투쟁이 올 때에  후퇴만 안 하면 반드시 승리가 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면, 투쟁이 온다 말이오. 자, 둘째가 이제 투쟁입니다.

첫째. 복이요, 둘째는 행함의 투쟁인데. 그러면, 셋째 뭐이옵니까? 그러면  성경을 읽으면 맛이 있고, 성경 읽은 말씀이 있고, 자기는 성경대로 자꾸 행하다  보니까 성경은 자기편이고 성경이 귀중하고, 다른 사람은 성경에 반대하니까.

성경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돼 버렸고, 성경이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성경 편이 됐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게 되고, 또 주야로 묵상하고, 자꾸  묵상한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을 하니까. 묵상하니까 그 속에 자꾸 진미가  나오거든. 진미가 나오니까. 육 년 동안 감옥에 신사참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 말을 들으니까, 그만 그 육 년이지만 그렇게 나중에 가서 세월 가는 줄을  몰랐대요. 성경 말씀을, 성경 없지만 자꾸 외우니까 성경을 외우겠더랍니다.

외우는 그 말씀을 가지고 자꾸 새김질하니까 성경 말씀 속에서 진미가 자꾸  나오는데, 바깥에 나가 가지고야 성겼을 그래 연구할 수 없고 그래 진미를  모르는데 그만 거기서 성경 연구한 사람들은 나와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그말이오. 은혜를 받아서.

 이러니까, 투쟁의 마찰이 있어야 성경의 맛이 있고, 일을 해야 밥이 맛이 있지  일 안 하면 밥이 맛이 없어요. 이거 모양으로 이제 투쟁이 있어야 성경 맛이  나고 또 성경 맛이 나야 거기서 자꾸 이제는 묵상하니까 깨달음 이 나오니까.

자꾸 양식이 나온다 말이오. 씹으니까 자꾸 양식이 나와.

 그라면 넷째로 뭣 됩니까? 예?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그러면 자신이 자꾸 새로워진다  말이오. 자신이 자꾸 새로워져. 이라다 보니까 자기가 자꾸 새로워져. 여러분도  새로운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 수원지 대신 공원이라든지 저  꽃마을이든지 가면 갈 때보다도 갔다올 때는 낫고, 기도 시작할 때보다 마칠  때는 나을 거라 말이오. 새로워진다 말이오 새로워져. 새로워지고, 그날 아침에  새로워졌으면 종일 그 새로운 것이 종일 계속하다가 또 아홉시 기도에  새로워지는 사람, 또 열두시 기도에 새로워지는 사람. 또 오후 세 시 기도에  새로워지는 사람. 밤 기도에 새로워지는 사람. 새로워지는 것이 중단이 안 되고  계속 새로워지면 일이 납니다마는서도 그만 새로워졌던 것이 조급 이래 되면 다  없어져 버리고 또 없어져 버리면 또 아주 퍼들어져 가지고 또 뒤에 새로워지고  그라면 안돼. 새로워진다 말이오.

 새로워지고 나면 그 다음에 다섯째가 뭐입니까?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제 저 밖에서부터, 봄이 돌아오니까 모두가 다, 얼음도 뭐  녹으라 할 여가 없이 얼음도 녹아 버리고 모두 다 풀뿌리가 모두 빼쪽 빼쪽  새움이, 다 올라오는 것처럼 이제 자기에게 관계된 모든 일을 제가 할 라 하면  그렇츰 구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니까 수루루루하이 모든 것이  수루루루루루하이 주욱 쭉 자꾸 이렇게 지금 모든 일이 자꾸 잘 돼진다  그말이오. 형통해진다 그거요.

 그러면 여호와가 그 길을 인정하신다, 그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와 일치가 된다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하는 그것은 제가 처음 믿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표어로 정한 말입니다. 나는  그때 표어로 정할 때에 '아, 소원 성취가 되면 그런 게 아니라 아 주님이,  주님이 당신의 의사에 죄되는 것은 암만 좋아도 우리 사람은 그렇지만 이루어  주지 안할 터인데 다 이루시는 것 보니까 그 사람의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와  일치될 수 있다는 이보단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느냐?' 당신의 의사와 우리  의사가 일치된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 속에는 오만 거 다 들었어요. 당신의 뜻 속에는 부자도 들었고  승리도 들었고, 영광도 들었고. 존귀도 들었고, 구원도 들었고 뭐 당신 뜻 속에  모든 게 다 들지 안했습니까? 그 뜻을 행하면 모든 행복이 다 돼 버려요.

 그러니까, 요 말씀을 자꾸, 시편 1편을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생활의 순서의 일,  이, 삼. 사, 오. 육은 저절로 되는 거라. 그러면 인제 그렇게 됩니다. 정확  무오한 사람이 되어진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