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집회


선지자선교회 1981년 8월 10일 월밤집회

 

 본문 : 마 9: 9-10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교인들은 당시에 자타가 가장 정통이고 열심있는 잘 믿는 교파요  사람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바리새 교파였습니다. 이 바리새 교파의 모든 신앙  선배들이 주의를 주는 가운데에 너희들은 죄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죄인들과  같이 지내지 말아라 또 세리들과도 가까이 하지 말아라 같이 지내기도 놀기도 또  생활도 먹고 마시는 일도 같이 사업하는 그런 일도 삼가서 멀리 해라 이렇게 그  선생님들이 가르쳤습니다. 랍비들이 그렇게 가르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교인들이 그 당시에 유대 나라의 죄인으로서는 세리나 다  죄인이요. 또 별별 여러 종류의 죄인들이 지금과 같이 그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교인들이 나고 난 뒤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 죄인들을 삼가는 그런 행사를  해 나왔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은 이 마태라는 그 세관 세리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는 나를 따라 내 제자가 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마태는 기뻐서 즉시 그 직장을 내어놓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그 제자의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 마태는  예수님을 딿기로 시작했고 또 예수님은 그날 마태의 집에 가 가지고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이러니까 많은 바리새 교인들이 따라와 가지고 그 좌석에 같이 있으면서 예수님  따라다니는 제자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상하다 너희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이  세리와 죄인들로 더불어 같이 먹고 마시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다 병든 자라야 의원이 쓸데 있다"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 다음으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이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는 그 성경을 너희들이 읽었는데 그 뜻이 무엇인고 가서 바로  배워라 말씀하시고 또 세번째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여기에 본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기록할만한 요긴한 일이 많아서 다 기록하면 이 세상에도 다 둘 수 없는 그런  많은 사실 중에서 이렇게 간추려서 신구약 성경의 66권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66권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은 이렇게 간추리고 간추려서  없어서는 안될 우리의 중요한 구원 도리로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지나간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전부가 우리에게 구원의 이 진리를  가르치는 구원 진리입니다. 이 구원 진리는 임시 그때에 그런 형편이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니고 영원 전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일이  그때 그때에 나타나서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이제 봉독한 이 말씀도 우연히 된 일이 아니고 영원 전 이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려고 예정된 대로 그들이 생겨났고 그곳에서 살았고 자랐고  또 그때가 되니까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 이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어난 사건도 말 한마디도 다 우연히 있는 것이나 오다 가다 보니까 그런  형편이라 그렇게 된 일이 아닌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천하에 둬도 둘 곳에 없을만큼 그렇게 중요한 사건들이 많은 중에 간추려서 이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리 구원을 바로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구원  이루는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이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 이 죄인 마태의 집에서  잡수시는 일이 생겨나도록 하셨고 또 그럴때에 이 바리새교인들이 '왜 너희  선생님은 이 죄인들로 더불어 같이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느냐' 이렇게 그들이  말하도록 예정한 대로 그는 말하게 됐고 그 말하는데 대해서 주님이 대답하신  일을 '세 가지 위원은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지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이 한마디 말씀을 하셨고 또 그다음에 '너희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는 이 말씀을 가서 잘  연구하고 배워라' 하는 말씀을 한 말씀을 하셨고 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하신 이 말씀 이 세 마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말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마태가 세관에서 앉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너 나를 따르라 하니까 요새로 말하면 뭐 국세청이나 사세청이나 뭐 무슨 세무서  있는데 아주 참 취직할라 하면 상당히 어려운 그런 자리인데 그때 돈벌이로  말하면 그 이상 돈벌이 잘 되는 직장이 없습니다. 이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즉시 일어나서 딿른 그것을 여기에 첫째로 우리에게 기록해  줬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도를 해 봐도 참 전도가 아주 잘 안 되고 하나 믿기로 할라 하면  힘이 그렇게 드는데 아 이 마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즉시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만 그 모든 것을 다 사면하고 예수님을 딿른 그 마태의 즉시 순종에서  딿른 그것을 우리에게 기록해 줬는데 이것은 어떻게 하라고 우리에게 기록해  줬는가?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마태는 어떻게 해서 주님의 말씀에 그래 즉시 순종해  가지고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연구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된 모든 것을 보면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자타가 다 생각하기를 세리는 못쓸 죄인이라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마태가 주님이 하는 말씀을 듣고 즉시 따른 것은 자타가  알기에 자기는 죄인이라는 그것을 깊히 느끼고 있는 평소에 자기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자기도 한번 의로운 사람이 되고저 하는 이런 갈망이 있었던 것인  것을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믿는 사람들의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아무리 제가  순종하고 싶다고 해도 순종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주님이 인도하심을 즉시 따른 것은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이 두 가지 요소가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는 자기의 현재 살고 있는 자기  생활이라든지 자기 사업이라든지 자기 업이라든지 자기라든지 여기에 스스로  부정하다 깨끗지 못하다 이는 참 떳떳지 못한 일이요. 이는 부끄러운 일이요.

이것은 가책되는 일이다.

자기에게 가책이라는 그 가책이 자기 속에 내포되어 있어야 하고 또 자기가  현재보다 옳고 바른 그 참된 깨끗함, 그 깨끗함을 자기가 동경하고 사모하는  그것이 자기 속에 있어야 되지 이 둘이 없으면 아무리 제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말씀대로 이제 살아 보겠다고 아무리 결심해도 그 결심은 다  헛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그 요소는 그 사람 속에 요 두  가지가 있어야 순종이 되어지지. 요 두 가지가 없이 자기가 명예심을 가지고 나도  순종해서 한번 의인이 한번 되겠다 나도 순종해서 위대한 사람이 한번 되어봐야  되겠다 뭐 어째야 되겠다 이렇게 그렇게 욕망하는 것도 괜찮지마는 그런 것  가지고는 아무리 자기가 결심을 하고 달라들어도 헛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결심하고 넘어지고 작정하고 넘어지고 금식 기도하고  넘어지고 온갖 발버둥을 치면서 주의 말씀대로 살아 보겠다고 애를 쓰고  시작하고도 그만 그것이 결실을 못 맺고 시작하다가 그만 중단돼 버리고 맙니다.

모든 성도들이 주의 말씀대로 살고저 하는 이 소원을 가지고 시작했지마는  중단되는 까닭은 요 두 가지 요소가 없이 요 두 가지 요소가 없이 모든 다른  원인을 가지고 주의 말씀대로 실행해 보려고 했기 때문에 다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양심에 가책되는 요거 주님을 생각하면서 양심에 가책되는 요거  주님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깨끗해지려는 요 욕망 요 둘이 그 속에 쌓여 있는  사람은 쌓여 있는 사람은 마치 굶주린 고기가 낚시 끝에 밥을 끼워 가지고  던져도 그만 죽을동 살동 모르고 달라들어 덜컹 삼키는 것처럼 이렇게 주의  말씀에는 달게 받아 순종을 하지마는 요 불이 없는 사람은 요 불이 없이 주로  인한 양심에 가책되는 것, 주로 인한 이 결벽의 욕망 동경 요 불이 없는  신앙생활은 그것은 항상 신앙생활을 해도 내가 예수 믿어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  부흥사가 되겠다 큰 목회자가 되겠다 개혁가가 되겠다 신학자가 되겠다 축복  받아서 부자가 되겠다 대정치가가 되겠다. 어떤 욕망을 가지고 예수를 믿던지  예수님을 그런데도 다 효력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해 줄 수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그것을 원하는  대로는 잘 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알맹이를 가지고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은  알맹이 그게 무엇인고 하니 돌작밭에 뿌린 씨라고 비유하신 그 밭에 곡식이 움이  터 나오면 뿌리를 막아서 자라지 못하게 하는 돌덩이 그놈입니다. 돌덩이 그놈  돌덩이 그놈이 어떤 놈이냐 하면 내나 원죄 그놈입니다. 원죄 그놈, 원죄  그놈이라니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사욕 그걸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내나 돌작밭에 뿌린 씨라고 하는 그 돌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돌이 크면 클수록 그 씨가 날 때에 뿌리를 더 막지 작으면 덜  막고 클수록 더 막습니다.

그런 욕망을 가지고 주의 말씀과 주의 은혜를 권능을 이용해 가지고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세상 것을 이용해 가지고도 그게 다 멸망을 받는 건데 세상 거  이용하는데다가 고급 아주 방편인 하나님까지 진리까지 예수 믿는 것까지  기도까지 성경 읽는 것까지 이것까지 이용을 해 가지고 자기라는 이 자기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돌은 잘 큽니다.

돌은 잘 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으로는 그 사람이 점점 커지고 높아집니다.

위대해집니다. 이렇지마는 진리대로 행하는 데에는 다 죽어가요. 영감대로  실행하는 데에는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거리끼든지 박해가 오든지 손해가 오든지 무슨 희생이 오든지 하면은  당장 져버려 버립니다.

주를 향한 양심의 가책과 주를 향한 그 결백의 결백의 욕망 이 두 가지 그것이  원죄를 죽이는, 원죄를 죽이는 치료제입니다, 원죄를 죽이는 아주 독약입니다,  원죄를 죽이는 독약이요, 자기 중심을 죽이는 독약이요, 자기 위주를 죽이는  독약이요, 성령의 소욕에 반대되는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그것만  자꾸 쓰면 그 속에 그것만 자꾸 사무쳐 있으면 그만 원죄 죽고 본죄 죽고 자꾸  녹아집니다. 이렇던 원죄가 차차차차 녹아집니다. 이렇게 수많은 본죄가 자꾸  녹아집니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것이 쉽고 순종하지  안하는 그것이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이것을 치료해서 뿌리 뽑기  전에는 순종하는 것은 죽기보다 어렵고 순종은 순종하는 것을 버리는 것은  안받을때 저절로 버려지고 이래 되는 것이 그것이 그 이유입니다.

마태가 마태야 날 따라라 하니까 그때 유대 나라에서는 세리된다는 것이 요새  무슨 세관장이나 뭐 사세나 국세나 그래 청장쯤이나 그만큼 그때는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만 돈을 가지고 사요. 돈 버는데는 제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니까 척 두고 주님을 따른 그 마태가 어떻게 따랐는가? 이 성경을 보고  마태는 이렇게 주님 말씀하신데 즉시 따라서 사도가 됐는데 뒤돌아보지 안하고  따랐는데 왜 우리는 이러면 나는 이런가 마태와 나와 다른 게 뭐인가? 마태가  어떻기 때문에 그렇게 따랐을까? 하필 세리라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고 다음에 또 마태의 집에 가니까 죄인들과 같이 먹는다 손가락질하며 조롱을  했습니다. 거기에 다 연결해 되면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태는 아 나는 이런  추접한 일을 이런 더러운 일을 이런 참 양심에 가책되는 일을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지 못한 일을 남에게 욕 얻어 먹을 일을 남에게 칭찬 영광 받을  일만 해도 모자라는데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그것이 자기 속에 사무친 그게  있었단 말이오.

녜 이것이 주님에게 순종하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지 못하고 이 세리가 하나님이요 나는 감사합니다. 바리새교인이 하나님이여  나는 감사합니다. 이 세리와 같이 토색도 안하고 음행도 안하고 온갖 죄도 짓지  안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 드리고 안식일을 잘 지키고 그래 한다고  자기의 좋은 장점만 촐촐 추려 가지고 자기의 장점만 촐촐 추려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내놨으니까 자기 속에 얼마나 사무쳤겠소. 그것이 주님 앞에 버림  당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다 이랬소. 그 밑에 내려가 보면 하나님에게  버림 당했다 이랬습니다.

오늘 개인을 만나봐도 만나면 요모조모로 튀어나올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자기  장점입니다. 자기 성공이요. 자기 위대요. 자기 의요. 교파도 전부 저희 교파만  좋지 남의 교파는 전부 이단이고 정죄 다합니다. 사람만 나면 언제든지 요 기회에  요것을 내 가지고 한번 간판을 내붙일까 요새 모두 세상이 모두 없는 실력을  간판을 내 붙여 가지고 나는 이렇다고 막 소개를 하고 사람들을 돈을 줘 가지고  이와 같이 하는 세상이 그와 같이 하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성도들 앞에도  그러하고 하나님 앞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을 이용하려고  진리를 이용하려고 성령을 이용하려고 복음 운동을 이용하려고 하니까 이거는 참  주님 앞에 고급 착취자입니다. 녜 고급 착취자.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순종 못합니다.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실행을 합니까? 자기 딴에는  실행하는 줄 알지마는 아니요. 하나님 앞에 가서 되면  껍데기만 실행했지  알맹이는 다 헛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으로는 어만 걸 생각하면서 겉으머리는  하나님 생각하는 그런 외식에 넘어갈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이러니까 행했다는 것도 동기 목적 방편 그때에 행할 때에 진짜 자기 속에 수지  마음 정성 자기 깊은 정 욕심은 딴데 가서 활동하고 껍데기 그저 형식으로  말씀대로 행하는 이것만 행했지 외식의 정죄받을 것만 했지 알맹이 신앙행위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고것이  믿음이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건 믿음인데 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렇게 행하게 해 주셔야 행하지 행하게 해 주시지  안하면은 아무도 행할 자 없습니다. 저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이거야 내가  했다고 하면 벌써 떨어졌소 헛일이요. 껍데기 뿐이지 알맹이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고 순종하는 것이 풀과 나무와 짚풀 나무  짚처럼 고 순종하는 것이 말이오. 풀과 나무로 짚으로 집짓는 것은 무신론  주장하고 유물주의하고 진리 반대하고 하는 그것 가지고 짓는 집 말하는 것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는데 실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소. 그 본질과 본성이 다 불탈 것들이라. 다 심판  받을 것들이라.

다같이 한 자리에서 행했는데 하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처럼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아무리 뒤져기고 정죄할라 해도 정죄 받을 수 없는 행함이니  이것은 성령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셔서  성령이 도와주셔야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많은 것이나 적은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안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 지켜 행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데에는 동행을 하시는데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처럼 불타지  않고 요 심판을 이기고 영생이 되도록 하나님이 해 주시는 데에는 뭐 있어야  됩니까? 양심의 가책이 있어야 돼요. 양심의. 가책 양심의 가책없이 이거 암만  있어야 소용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양심의 가책을 빨리 마련하십시오. 양심의 가책을  마련하십시오. 주를 바라보는 양심의 가책을 마련하십시오. 양심의 가책을 마련치  못하면 죽은 신앙입니다. 다 잠자는 신앙이요. 양심의 가책을 마련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요 결백에 동경이 있어야 됩니다.

나도 요렇게 됐으면 좋겠다 요렇게 깨끗하면 좋겠다 요렇게 곧으면 좋겠다  요렇게 정직하면 좋겠다 요렇게 진실하면 좋겠다 요렇게 거짓이 없으면 좋겠다  요렇게 책임성이 있으면 좋겠다 요렇게 좀 요동치 않는 인물 됐으면 좋겠다  예수님으로 향한 무엇인가 동경하는 요것이 있어야 가책과 주로 말미암은 욕망  주로 말미암은 욕망 요 두 가지 가책과 욕망 요 두 가지가 자기 속에 있는  것만치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있는 것만치 하나님은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소. 이것이 하나님 환영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똑똑히 말씀해 놨는데 자기는 이것이 없이  바리새교인처럼 나는 이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토색도 안하고 간음도 안하고  십일조 드리고 일주일에 두번씩 기도하고 이러니까 나는 너같은 의인 영접하러  온 것 아니다 부르러 오지 안했다 내게는 필요없다 네가 의인 이거는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보자 쫒아냈습니다. 녜 뭐 쉽습니다.

아무리 제가 대대학의 지식을 가지고 어떤 광문다학을 한 넓은 지식을가지고  선천 후천적으로 위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구원이 되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서 구원 얻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요 힘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의 도우심 요것을 받으려고 하면 요 둘이 있어야 됩니다.

학문 없어도 좋소 무식해도 좋소 어데까지 무식해도 끄올려 가지고 어데까지  유식한 사람을 만들 수 있어. 당장 만들 수가 있어. 하나님께서 이러니까 주님을  인하여 가책되는 것 주님을 인하여 욕망스러운 것 요렇게 되기를 원하는 욕망 요  두 가지 요 두 가지가 있을 때에 주의 음성에는 즉시 복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것이 요 마태에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기에서 찾아서 이것을 깨달아서 자기가 이 도로서 고쳐지면 복음이  되고 이 말씀을 이와 같이 알기만 하면 다른 사람만 가르쳐 주고 저는 거기에서  이로 인해서 구원 이루지 못하면 남 가르친 그것이 전부 자기 정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첫시간에 두 가지 배웠습니다. 배웠어. 배워 가지고 알고 실행해야 되지 모르면  소용이 없소. 요새 신학교에서 신학교 질을 높이자 막 전국이 떠들고 있는데  신학교 질을 어떻게 높이는고 인간 머리에서 나온 세상 지식 그것이 적으니까  모두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 말고 모두 다 이 높은 학문 가진 사람 그것이  낮은 것이 신학 질이 낮은거라 그것을 향상시키게 하는 것이 신학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경영하신 구원 역사와 이 구원을 이 구원에 상대가  되는 그 하나님의 백성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요 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 둘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 요 둘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 연구입니다. 이 둘을 어떻게 김가가 이런다 이가가 이런다 그  연구 아니요. 김가 그까짓 하나가 말거나 이가가 하나 무슨 상관이 있어.

하나님이 당신이 당신은 어떻다 당신의 역사는 어떻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놨기 때문에 당신이 말씀하신 당신 지식을 기준해서 당신 지식을 가지고 당신과  당신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이것이 신학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신학입니다.

신학의 질이라는 것은 영감이 낮은 것이 신학의 질이 낮은 것이고 영능 낮은  것이 신학의 질이 낮은 것이고 66권의 진리의 지식이 낮은 것이 신학의 질이  낮은 것이고 내보내 놓으니까 사람을 인본만 만들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이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이것이 신학의 질이 낮은 것이고 신학의 질이 뭐인데?  하나님 앞에 비판해 봅시다.

이거 외에 신학의 질이 있는가? 예 (석원태) 목사님이 그 신학의 유래에 대해서  좀 썼는데 요새 없는 말 했어. 그래도 보니까 그래도 모두 쭐쭐 따라 가지고 뭐  몇개로 하자 이 세상 대학처럼 신학의 구비는 집이 커야 되고 돈이 많아야 되고  권세가 있어야 되고 하나님이야 보이든지 말든지 성경이야 읽든지 말든지  영능이야 있든지 말든지 이것만 구비하면 허가해준다. 인간이 안해도 하나님이  허가하면 되지 주님과 진리 때문에 공산주의 앞에서도 다 십자가의 도는 주와  진리와 형제를 위해서 있는 것 다 버리고 하나님에게 서로 영원한 것으로 얻는  것이 십자가의 도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뭐 눈이나 깜짝거릴건가 정신차려야  됩니다. 정신차려야 되요. 공연히 간판만 가지고 주님 오실때 가까왔어.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에 서기관 바리새교인 제사장 다 물리침을 당했고 은밀히  고요히 그 시대를 탄식하면서 하나님을 호소하고 찾던 그들만 다 환영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하니까 위에부터 마른게 아니라 뿌리부터 말랐어. 그게  뭐이요? 유대인들 멸망입니다. 오늘도 그때와 같습니다. 공연히 남 정죄만 하면  잘 되는 줄 알고 이런 정죄는 안하고 아무리 여기에서 세상 것 가지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두 가지 있어야 주님에게 순종할 수 있소. 왜? 요 두 가지가 돌작밭에  뿌린 씨의 돌을 부숴 내 버립니다. 돌을 깨트려서 모래를 만들고 흙을 만들고  돌을 그걸 안된 거는 추려서 내 집어던져 버리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옥토에  뿌린 씨가 되고 만겁니다.

이것이 인간이 모두 다 저 잘난 재미로 살고 (저 잘난 재미로 살고) 어치같은간에  없어도 있는 척하고 제 나타내서 간판이나 내 걸어 가지고 들려는 그 재미로  사는데 제가 죽으니까 돌에 다 기록하고 어따 기록하고 막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 재미로 사는데 아 세상에 저 잘난 재미로 저 잘난 것들 들어내는  재미로 사는데 예수 믿는데서는 자기 못쓸 것 자기 잘못된 것 자기 더러운 것  주님 앞에서 가책되는 것 자기 못난 것 못쓸 것 나쁜 것 이것 가지고 살라  하니까 미친 소리인 줄 알지요.

다 모두 새로 납시다. 다 돌아서야 됩니다. 이게 없이는 주를 맞이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향한 이 욕망, 주님을 향한 욕망 나도 한번 공산주의 앞에서도 주님을  아노라 하고 담대히 그때 그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 내 살림살이가 다  절단나도 나도 한번 정직하게 살아 보겠다.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을 내가 당해도  주님과 진리와 그 고문하는 형제들을 내가 미워하지 않겠다 주님과 형제를  사랑하고 진리대로 살겠다 나도 깨끗하게 의롭게 거룩한 사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요 욕망 자기에게 미운 요 미운 가책된 미운 요  둘이 있어야 주를 딿습니다. 마태는 요 두 가지가 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즉시  따랐습니다.

둘째로 이 바리새교인들이 그 신앙생활한 납비들이 너 죄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세리를 가까이 하지 말아라 그들과 같이 먹고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동업도 하지 말아라 이렇게 교훈한 것은 왜 교훈했지요? 뭣 때문에 이렇게  교훈을 했겠습니까? 이렇게 교훈한 것은 그들은 악인이요, 너희들은 의인이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는 그런 말로 만일 그 선배들이 가르쳤다면은 그 선배들도  가련한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에게 가르친 것은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지도해 보면 아마 교역자로서는 다 그럴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아무것이 그 사람은 못쓸 사람이니까 그 사람 접촉하지 마라 가까이 하지 마라  거래도 하지 말라 동업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은 더럽고 이  사람은 깨끗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때묻을까 그 동무 안돼서 그래 지금 가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거기에 가면 물들까 싶어서 거기에 가면 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 될까 싶어서 못 가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나쁘고 너는 의로우니까  가지 못하게 하겠습니까? 어찌 그렇습니까? 이목사 한번 대답해 보이소. 물들까봐  못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얼마나 꺼꾸로 흘러 내려갔든지 이 바리새교인들이 이렇게 타락이  됐습니다. 자 사람이 물에 떠내려 가는데 살리기는 살리고 건지기는 건져야  되겠는데 자기는 헤험도 못치고 이러니까 들어가면 둘이 다 한몫 죽을 것이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서 건지지 못하면 밖에 서서 보고 저 뒤지는 자  가까이 하면 안된다 잘 뒤질거라. 이래야 그게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까?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 구원하지 못하니 막 동동 거리면서 마음에 안타까와서 참 물에  빠져서 죽지는 못해도 죽는 것만치나 그렇게 애가 타져야 되겠습니까? 그 죽는  사람 보고 저런 자 가까이 하면 안된다 잘 뒤질거라 이래야 되겠습니까? 어째야  되겠소? 불에 타 죽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아마도 불이 깊히 있으니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람 거석하면 둘 다 타 죽을 것이고 그 사람 또 있으니까 능력없이  구출 못 하니 마음에 안타까와서 기가 차. 지금 마구 죽지 안해. 죽는 것  만큼이나 그렇게 고통스러워져야 되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 동정심 없이 저 불에  타서 어리석게 불에 타서 뒤진다 잘 죽는다 이렇게 하는 자와 같이 그 죄인들을  보고 죄인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은 가까이 하면은 너는 구출할 능력은 없고  도리어 너까지 다 죄인되어서 다 멸방 받을 터이니까 삼가라는 이것을 이  바리새교인들은 얼마나 그들이 교만하고 이래 놨든지 이제 가까이 하지도 말라는  더러우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는 이런 것으로서 오인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인을 대할지라도 어떤 죄인을 대할지라도 그 죄인이 자기보다  근본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면 잘못 생각입니다. 자기와 꼭 같은 자요. 자기와  꼭 같은 자입니다. 요소가 꼭 같소. 하나도 다른 게 없습니다. 없는데 선천적으로  조금 차이있는 것도 조물주가 선천적으로 차이있게 만들어 그렇고 또 후천적으로  그 사람을 다르게 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해서 그런 것이지 제 스스로 된  것은 하나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하고 둘이 같이 왔는데 키도 같고 나이도  같고 지식도 같고 실력도 같고 꼭 같은 사람이 둘이 왔는데 한 사람은 아주 좋은  의복 좋은 음식 좋은 자리 주고 하나는 말할 수 없는 그 참 고통스럽고 쫄쫄  곯고 고통스럽고 아주 굶주리고 아주 천하는 고 자리, 고 자리에다가 줘  놨습니다. 줘 놨으면 이 자가 있다가 그저 나는 이런 자리 봐라 이렇지 않느냐 저  저렇게 천하게 있으니 저 천물 멸시하고 천대하고 제가 스스로 된 것처럼  교만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을 볼 때에 미안하기가 짝이 없어 다같이 같이  왔다가 꼭 같은 자인데 자기는 그런 대우를 받고 같이 왔던 그 동무는 저렇게  천대를 받으니 그 천대받는 동무를 볼 때에 교만을 해야 되겠소 미안해야  되겠소? 자 미안해야 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봅시다. 녜 미안하지요. 마음에  미안해서 그 사람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위로하는 마음이  나오겠지요. 또 자기에게 후하게 해 준 그 주인을 향해서는 무슨 소원을 가져야  되겠소? 하 감사합니다. 같이 왔는데 저 놈은 저래 버리고 나는 이렇게 해 주니  참 감사합니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래야 되겠습니까? 주인한테 뺨을  맞을지라도 이놈 아무것도 없는 놈이 내가 해 줬으면 내나 해 줬으면 감사하고  다행으로 감사하고 말 일이지 뭐 건방지게 지금 그래 이렇게 꾸중할까 싶어서  말을 못 하고 조마조마 하면서도 안됐다 어라 같이 왔다가 저는 저렇고 나는  이러니 내가 주인한테 참 욕을 얻어먹고 안되면 뭐 쫒아내면 같이 가 고생하지  같이 고생해야 내가 같이 천해져야 마음이 편치 천해 있고 나 혼자 거석하니  안됐다 꾸중 한번 들을 요량하고 내가 안되면 나도 저렇게 고만 너도 이놈  그러면 고생하고 한번 배척 당할 요량 하고 한번 말해보자.

주인 오면은 주인 어른 이거 참 입을 벌릴 수 없는 황송한 일이지마는 이거 뭐  나도 이런 놈이 전부 주인의 은혜로 이렇게 된건데 이거 입을 벌릴 수 없지마는  감히 벌리겠습니다 노하지 마십시요. 무슨 말인고 해봐라 제게 이거 주신 것 혹  저 사람에게 조금 나눠 줄 수 없습니까 나눠 줄 수 없습니까? 요 말을 해야  되겠소 멸시하고 교만해야 되겠소? 좀 나눠 줄 수 없겠습니까? 못 나눠줘 안돼  이놈아 네거야 내거지 이러면 애걸하고 간청을 하고 그러면 주인 어른은 내게  그와 같이 그와 나와 꼭 같은 자가 아닙니까? 좀 그에게 직접 어른이 좀  나한테와 같이 좀 후대를 해 줄 수가 없습니까? 그렇게 간청을 하든지 좀  나눠주도록 내 걸 나눠주도록 하자고 하든지 자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소 제가  우쭐하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이 마음이겠소? 주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겠소? 정  안되면 그래도 안들어. 좀 후하게 대접 좀 해 달라 하면 안들어. 그러면 주인  어른 참 감사하기는 하지마는 같이 왔다가 내 마음에 안되어서 안됐습니다. 내  불안해서 도무지 내 여기 있는 것이 내가 차라리 저 가 있는 것이 낫지 불안해서  안됐습니다.

그만 나도 참 이 은혜 주신 것을 이거 배은하는 거는 이거 참 뭐 죽을 죄지마는  어짜든지 그만 나하고 저 사람하고 같이 줘서 같이 가서 있도록 해 주십시요. 자  이렇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멸시 천대 조롱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어떻지요?  아 저놈은 저렇고 나는 이렇고 하니까 참 좋다 멸시하고 기뻐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 저자는 저렇게 했는데 날 이렇게 해 주니 참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감사할 사람 손들어 봅시다. 좀 뭐 조그만이라도 나눠서 조금  나눠줄 수 없습니까? 고렇게 고런 형편이면 고렇게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봅시다. 녜 나도 들겠소. 마지막으로 나눠도 못 주구로 하고 주시지도 안하려고  하고 그러면 아이구 그럴진대는 뭐 나도 가 가지고 저 사람하고 같이 있을랍니다.

같이 있을랍니다. 같이 있게 보내 주십시요. 이렇게 말 안하고는 견딜 수 없겠다  싶은 마음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참 적네. 이거는 적네. 들어야 돼 우리  그래야지 그렇지 안해요? 자 한번 듭시다. 우리 그런 사람 돼야 되요. 한번  드이소. 이게 십자가의 군병이요 십자가의 군병. 꼭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된 것이 스스로 된 것 아닙니다. 꼭 같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되게  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 보고 교만하고 사람 보고 멸시하고 사람 보고  천대하고 사람 보고 아껴서 작용하는 것 아주 이거 하나님 앞에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예 턱 그러니까 허 이러면서 아 이 내 것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라면 고래 가지고 뭐 그래도 뭐 배고프다고 찡찡거려 쌓습니다.

그 내가 이거 없다 내가 없어 그렇다 하 이거 참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 어떻게  하겠소?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소 그 해 준 게 후회가 되겠소 안되겠소?  녜 그런 것은 후에 가서 후회가 되겠소 안되겠소? 후회 되지지.

어 이놈아 시험 쳤는데 시험에 떨어졌다 시험에 떨어졌다 그러니까 뺏들어  줍니다. 저 주니까 저 사람한테 주니까 저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 이거 나  주십니까? 감사합니다. 뺏들어 주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 또 합격이요  낙제요? 합격입니까 낙제입니까? 낙제. 그러니까 아이구 이거 안됩니다. 이럴 수  없습니다. 그 형제에게 주십시요. 나는 뭐 이래도 고생을 좀 했으니까 연단이  되어서 괜찮습니다. 그 사람 갑자기 잘 살던 사람이 이러면 되겠습니까? 그를  주시고 나는 안줘도 괜찮습니다. 자꾸 안된다 너 해라 이러니까 아이구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반씩 갈라 주십시요. 안된다 다해라 그러면 제가 맡아  가지고 둘이 똑 같이 갈라서 먹을 때에는 같이 먹고 입을 때에는 입고 같이 쓰면  되겠습니까? 그걸 허락해 주십시요. 그러면 하고 그러면 내 안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그 사람 합격됐소 안됐소? 자 저 사람 합격됐습니까 안됐습니까? 저 뒤에  어찌 됐습니까? 합격됐으면 손 한번 들어보이소. 저 뒤에 녜 합격됐습니다.

이거요.

녜 오늘 "자기의 부한 것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는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 너에게 심을 씨를 주사 너의 의의 열매가 더 풍성하고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꼭 요 형편입니다. 자기에게 믿음이 있으면 믿음 있는  사람 천대하지 않고 믿음 있으니까 그 믿음 가지고 믿음 없는 자에게 같이 나눠  하려고 애를 쓰고 저 사람에게도 나와 꼭 같은 자이니까 주님이 내게 준 거 같이  그에게도 주면 저 믿음의 부자가 될 것 아닙니까? 요 심정 가지고 요 심정 가지고 믿음의 부자가 된 그 믿음을 남에게 나눠 주도록  그와 그도 나와 같이 믿음 되도록 내가 의인이면 죄인을 향하여서 그와 같은  심정으로 내가 부자면 가난한 사람을 향하여 그와 같은 심정으로 내가 건강하면  병신을 향하여 그와 같은 심정으로 내가 의인이면 악한 자를 향하여 그와 같은  심정으로 내가 벗한 자라면 그렇게 악하고 독하고 못쓸 인간을 향하여 그런 거와  같은 심정으로 이렇게 우리가 사는 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 앞에 복 받을 일입니다.

이랬는데 이 바리새교인은 이 세리를 향하여 주님이 세리를 영접해 가지고 같이  가서 먹으니까 이렇게 조롱을 하고 훼방을 하고 멸시를 합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그다음에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요 심정 가지지 못하면  안되요. 제가 능력 없어서 능력 없어 물에 건져내지 못했으면 물에서 건져내지  못했으면 그 참 제 생명을 아껴서 죽었으면 같이 죽을건데 아껴서 건져내지  못하니 그 죽는 사람 보기에 부끄럽고 인간 보기에 부끄럽고 견디지 못하고 아까  견디지 못하는 요 심정을 가져야 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 멸시 천대하고  더럽다고 어 저런 자 가까이 해 그런 자를 뭐 건지려고 애를 써 뒤지도록 내둬  버리지 이렇게 잔인해 가지고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우리는 이제 비유한 거와 같이 이런 사람이 돼야 될 터인데 이 바리새교인들은  그런 사람으로 지내가면서 그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 재미로 우쭐한 재미로  살았소. 자기의 장점으로 살았소. 자기 잘난 재미로 살았소. 자기 좋은 것  자랑함으로서 살았습니다. 고 마침은 멸망입니다.

두 가지가 있어야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어  믿음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요 두 가지가 고마운 가운데에 쌓여 있어야 믿음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만들어 가지는 믿음의 부자가 됩니다.

다음으로 바리새교인이 세리 보고 이렇게 한 이것은 주님 앞에서 물리침을  받았습니다. 주님과 정 반대 아니요. 주님이 뭐라고 말했소? 너는 의인이니까  내가 너 보고는 오지 안했다. 너는 건강한 자니까 너 보고는 내가 의원이니 오지  안했다 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가져요.

우리가 이제 첫날밤에 인간대 인간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녜  위에 하나님이 지금 우리 모든 병신 만신창 죄인의 주인되신 주님이 십자가 못  박힌 주님이신데 주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주님 앞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으며  내가 어떤 심정을 가지고 할 때에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요것을 오늘밤에 요 자리에서 간단하게 좀 배웠습니다.

요것을 기억하고 놓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요래야 그게 참 사람이요. 요래야  사람의 향기가 나옵니다. 사람의 맛이 나옵니다. 주님이 말씀했어.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다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 주님은 의원인데 주님이  자기에게 쓰여지게 하는 것 주님이 자기에게 쓰여지게 하는 것 주님이 자기에게  일하게 하는 것. 고 의사가 환자가 있으면 잠도 못 자고 자꾸 일 해야지 어짜요  일 해야지 어짜요 만병통치의 예수님 인간병 고깃덩어리 병 소유병 모든 병을  고치실 이 의원으로 오신 주님에게 일할 수 있도록 주님으로 하여금 자기 위해서  고치시는 일 완전케 하시는 일 영원케 하시는 일 주님의 전지 전능의 이 사랑에  이 실력 가지고 자기를 좋게 성심껏 힘껏 자기를 좋게 만드시도록 요렇게 하는  방법이 뭐이냐? 방법이 뭐입니까? 여 말해 보이소. 방법이 뭐이지? 방법이 뭐이요? 예 고건 또 고거는 지내왔어.

이건 새로 해야지. 자꾸 그거만 자꾸 써 먹으면 되는가? 그것도 돼요. 여 위에  있지 안해요 쉽지 안해요 뭐라고 말했어? 병든 자 병든 자 주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그 전지전능의 사랑의 완전 가지고 그 무한한 능력 가지고 성심껏 내게  와 가지고 날 좋게 해 주시도록 요렇게 하는 방편은 뭐입니까? 병든 것, 병든 것  내 놓으면 돼요.

주님은 고치고도 부정하지 안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의사라도 떡 내놓은 것  고쳐주니까 또 아픕니다. 또 고쳐주니까 아이 발꿈치 아픕니다. 또 고쳐주니까  아이 머리가 아픕니다. 또 고쳐주니까 아이 혀가 덜덜 합니다. 또 고쳐주니까  코가 찡찡합니다. 이래 놓으면 저 신박사 좋아하겠습니까 그 짜증 내겠습니까? 아  우리 신박사야 안낼지 모르지 대개는 낼거로구만 이래도 우리 주님은 내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것 좋은 것 배우십시요. 여러분들 주님 요거 고쳐 주십시요. 요거  고쳐주십시요. 또 보니까 요것도 고쳐주십시요. 아이 요것도 고쳐 주십시요. 그만  나는 의인됐다 나는 완전자다 아이 요것도 고쳐 주십시요 요것도 있습니다. 요  마음보가 나쁩니다. 욕심이 나쁩니다. 아 내게 요 취미가 나쁩니다. 아 내게  버릇이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아 내게 교만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고것으로 인하여 자기가 망한다는 것 자기에게 무엇인가 요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망쳐지는 것 자기 인격이 망쳐지고 권위가 망쳐지고 명예가  망쳐지고 지위가 망쳐지고 여러분들 모든 좋은 것이 어데 매장됐습니까? 예  우리들의 모든 좋은 것이 어데 매장됐소? 고게 매장됐소. 병든 거기에 비용 다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매장됐소. 우리가 원치 안하는 그 모든 나쁜 것들이 어데  나왔습니까? 모두 다 죄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이 일생동안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보배로운 좋은 것이 많지마는 그것은  전부 죄 속에 다 매장 다 돼버렸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눈물 흘리면서  싫어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 지기고 참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나쁜 것은  어데 나왔습니까? (응도)목사님 예 죄에서 나왔소. 이것 지금 치료받지 그 말이오.

치료 받아요.

낱낱이 주님 앞에 고걸 참으로 잘못된 걸 알고 요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망한다는  사실 확실히 알고 망함의 그 느낌을 실제로 가짐으로 망할 것인 줄 알고 망하는  고게 대한 아픔을 가지고 주님께 고침을 달라고 할 때에는 다 고쳐 주시요.

이렇게 잠깐 지나가면 치료 기간 지나가는데 잠깐 지나가면 치료 기간이 다  지나가는데 이 치료 기간이 지나가기 전에는 이 솜씨있는 주님 앞에 마구  뭐이든지 다 드려 가지고 전부 완전을 다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데 완전히 고칠  수 있는데 주님을 면접하려면 주님 만나려면 어떻게 만나요? 여러분들 기도할 때에 주님 만나야 기도가 돼요. 안만난 기도가 기도가 돼요? 자  기도할 때에 주님 만나 가지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주님  만나 가지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 주님을 딱 만나 가지고 주님하고 대화하고  우리가 다 그렇지요. 주님 만나는 방법 압니까? 뭐라고 말했소? 누구를 부르려고  왔다고 했습니까? 죄인 부르러, 죄인만 되면  척 만나줍니다. 죄인만 되면 척  만나줘요.

제가 기도한다고 심신산곡에 단식기도 가도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 만나지  죄인되지 못했으면 주님 못만납니다. 뭐 사십개를 가져 가 가지고 하루 한개씩  던지면서 사십일 단식기도를 해야 아 아무것이 사십일 단식기도했다 이 명예가  있고 좀 권위가 있고 뭐 어찌 되지 전부 원죄 그 역사로 가지고 그러면서 사십일  진짜 비타민을 가져서 먹어대면서 물 마셔 가면서 또 쫄쫄 굶고 했다 할지라도  배만 곯았지 소용없습니다. 단식기도하면서 나는 죄인 만나러 왔다 하는 주님  앞에 죄인만 됐다면 척 만나면 일 났지요.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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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 베드로후서 3장 9절-14절/ 870719주전 선지자 2015.10.22
660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방편,목적/ 벧후3장 6절-14절/ 830612주전 선지자 2015.10.22
659 거룩한 행실-예수님의 피 속으로/ 베드로후서 3장 11절-14절/ 830613월새 선지자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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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21절-24절/ 810614주후 선지자 2015.10.22
656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21절-24절/ 810615월새 선지자 2015.10.22
655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10614주전 선지자 2015.10.22
654 거짓말/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16금새 선지자 2015.10.22
653 거짓말 안하는 사람/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122목새 선지자 2015.10.22
652 거짓말 회개하자/ 마태복음 5장 29절-30절/ 870121수야 선지자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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