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준비-목회지도

 

1980. 8. 23. 토새

 

본문: 마태복음 25장 3절 - 13절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나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처녀 비유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인 그 실상을 세상의 이 부부 제도라는 이  형식을 가지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참 신랑이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부로 되어 있는 그 오묘의 존영을 그것을 세상 이 부부 제도를  가지고 나타내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부 제도는 실상이요.

하나님과의 우리와 관계는 그와 같다는 그 모형이나 그림자나 아니고 그 관계가  실상이요. 인간과의 관계는 그 사실을 나타내는 한 형식계시입니다.

자연계시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처녀 하나 같다면 결혼식이라 할 수 있지마는 부부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마는 처녀가 여럿이니까 인간법에는 한 여자와 한 남자만  결혼하라 했는데 처녀가 여럿이기 때문에 거기 뭐 들러리선다 뭐 선다 자꾸  이렇게 말을 해서 인간적으로 말하는 바로 결혼입니다. 바로 고 결혼식이요.

그런 그 사실을 인간 부부 제도로 나타낸 이 유한한 인간과 같지 않고 인간  제도와 그와 그 무한한 사실을 인간 제도로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에 맞지 않는  말도 있습니다.

호세아서 2장에 보면 본 남편이라 간부라 이랬는데 본 남편은 하나님이시오.

간부는 내나 옛사람이라면 옛사람이겠고 악령이라면 악령이겠고 세상이라면  세상입니다. 거기 보면 모든 성도를 다 신부로 이 세상 인간 제도의 신부로  비유했고 하나님 한 분을 본 남편으로 이렇게 인간 제도로 말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못 들어간 것 이것이 인간 제도를  말하면 아주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마는 처녀가 결혼하면 그만 그 부부가 됐으면  부부가 서로 버리지 아니하고 사랑한다면 남편의 모든 것이 아내의 것이요.

아내의 모든 것이 남편의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가 어데 잘못해서  잘못했으면 그 일 남편이 다 책임집니다.

그러면 우리 제도는 약하지마는 하나님과 일단 결합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우리의 나쁜 것을 다 책임지십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결혼이 됐으니까 법적으로 우리에게  나쁜 것 모든 것 다 짊어지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도 다 책임지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을 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충만은 전부다  우리의 것이 법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몸의 구속을 말합니다. 영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인간 부부제도처럼  결혼이 됐는데 결혼이 됐다는 말은 결혼하면 그 남자와 여자와 이성 교제 그것만  생각하는데 이성 교제 이것으로서 하나의 그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  보인 것이요. 하나님은 완전자이시오. 무형의 존재인데 우리는 피조물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마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신인 교제와 결합이 됩니다.

그러면 신인 교제와 결합이 되면 거기서 또 자녀가 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하나되는 거기서 한 사람을 통해서 열 사람도 나고 백 사람도 나고 천 사람도  나고 만 사람도 나고 자녀가 납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성령님과 우리와 영감과  우리의 감정이 결합되고 하나님의 뜻인 진리 하나님의 그 진리와 우리의 뜻이  결합되고 그 부부라.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 힘이 결합돼요. 우리가 시집가서  결합돼요. 이 세상은 모든 이치를 만든 이 자연 이치를 만든 것이 자연 이치를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우리와의 관계가 생겨져서 이와 같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이치, 이것을 뭣 때문에 만들었느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처음에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모든 존재들의 그 활동  활동이란 변해가는 긴데 이것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알려주기 위해서 준  것이 자연계시입니다. 자연계시, 일반계시 이런데 범죄하기 전에는 이만해도  족했는데 범죄한 후에 이것만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약속을 맺고 그때에 특별계시 문서계시 성경을 주었습니다.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도 계시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계시입니다.

그런고로 마치 결혼하는 그런 것처럼 우리의 이 심신 구속은 이것은 단일체가  아니고 이거는 종합체입니다. 종합체기 때문에 이것이 반대에 하나님과 결합되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여러 수 차례 걸친 중복적으로 해서 결합이 됩니다.

게 저는 마음과 몸의 그 기능 기능이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서 살아난다고  말했는데 이번에 그 서울에서 많이 모인데에 모인 그 영국 목사님 여기 와서  집회 중에 있는데 아마 제 생각에 이번에는 좀 은혜가 많았었는데 어찌 됐는가  해서 저는 갈라해도 시간이 늦어서 못 갔소 녹음을 해 가지고 오라해 가지고  들어봤습니다.

들어봤는데 고게서 이제까지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말 한마디했습니다. 하는  것, 그 육체의 세포 속에 하나님이 그 진리를 보내서 진리가 인간 속에 내주하게  됐다. 이것이 새창조다 인간의 세포 속에 진리가 내주하게 됐다. 아주 그 사람  우리 한국 목사님이 모르는 것 말했습니다. 세포 중에 내주하는 것이 아니고  기능 안에 내주하는 것인데 세포 내에서도 거기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것은 옛날  피조물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라. 진동되지 않을 것으로 창조한다. 그  기능으로서 됩니다.

이러니까 아주 에는 그만 한번 구원얻고 구원이면 꼭 같은 줄 아는데 한 세포  하나 한 세포 한 세포 세포는 그대로이지만 세포 안에 있는 기능 한 기능 한  기능이 살아나는데 그런 한 세포 한 세포 그 중에 진리로 새로운 창조가 된다.

그 죽지 않으니 창조된다는 말 아니오. 그같은 그와 나와 같은 깨달음입니다.

발표는 달라도 새로 창조된다는 것 나는 고 기능으로 말했고 내가 육으로 말을  할 것으로 그리 말해도 그걸로 말하면 안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육으로 말하다가  고 안에 기능이라고 말할 때 기능입니다. 기능 안에 새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 부분적으로 결혼하면 고기 하나님과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고 안에  진리가 와 가지고 새로 창조돼. 진리가 그 안에 있게 된다. 이제 이러니까 고  진리가 고 안에 생긴다. 고런 것으로 그분은 말하는데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진리가 내 속에 와 담기는 것이 아니고 고 안에 진리는 한 진리와 고  부분의 내 기능과 결합이 됩니다. 고기요. 고기 결혼입니다. 결혼. 혼인 잔치,  결혼.

그러면 고면은 하나님과 결합이 됐기 때문에 고것을 다른 데는 표현하기를  "성령의 인을 맞는다." "성령의 인을 맞는다" 고렇게 말했고 또 다른데 말하기를  "옳다 인정받은 후라" 요렇게 말했습니다. 옳다. "옳다 인정받은 후에 주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한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생명이 승리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 하나님과 우리의 심신의 고 부분이 고게 분자가 고 세포가  부분이 고것이 하나님과 결합되는 고것이 결혼이요. 결합됐으면 그것은 고  부분은 하나님과 우리와 한 덩어리입니다. 하나였소. 그에게 모든 것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 다 그의 것이 됐단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세상에서 결혼 제도 부부 제도가 이것이 실상인데 이와 같다  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성도와의 사이가 실상인데 그 실상을  오늘 이 세상에 부부 제도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이와 같은 것이다. 이걸  계시로 이용했습니다. 어느 것이 실체냐? 하나님과 우리가 실체요. 이거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면 보면 내가 여러 번 많이 그런 거 봤는데 처녀들이 좋은데 결혼하면  갑자기 커지고 갑자기 좋아지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의 모든 좋은 것은  ......

이러니까 처녀들이 좋은데 시집갈라고 마구 날뜁니다. 아! 그거는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 분명히 부부 제도로서 아무 것도 아니지마는 잘 가면 그  남편의 모든 것은 자기 것이 되기 때문에 이러니까 여자 팔자는 버드나무  팔자라. 잘 거리면 옥토에 걸리면 굉장히 무성해지고 바위 새에 떨어지면 생명은  살아 있지마는 십 년가 봤자 뭐 한 자도 자라지 못하고 그와 같다. 이러니까  잘되면 되니까 여자는 어쩌든지 허영을 가집니다. 허욕을 가집니다. 왜? 그것이  들어맞을 때 있거든.

이것은 우리가 아는데 주님과 나와 주님의 진리는 주님의 뜻인데 주님의  지능입니다. 진리는 주님의 지능이요. 주님에게서 나온 주님의 지능이요. 주님은  그 지능의 주격이요 본체시요. 이런데 하나님과 자기의 부분이 결합되는 이것이  얼마나 존영해진다는 이것을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이 되느냐? 하나님과 끊어져서 영원히 죽게 되느냐 하는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갖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된다  하는 요것은 그 뭐 해석을 하려면 한이 없겠는데 요 결혼되는 요것은 고 현실  그때에 해당된 자기의 마음과 몸의 기능 마음도 말하자면 보자기 한 가지요.

몸도 이 보자기 한 가지입니다. 보자기 속에 기능이 들어서 그 모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결합이 되면 벌써 영생이 됐고 그렇기 때문에 영생은  현재라는 현실에서 영생과 영원한 사망 그것이 결정이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고 처녀가 신랑을 맞이한 거는 결혼식인데 결혼인데 그 결혼인  하나님과 우리와 결합된다는 고 부분적인 결합 요 결합이 된다는 요걸 연구를  많이 해서 요걸 확실히 바로 잡아서 깨달아 그 시에 천하를 얻는 것보다 이분  얻는 기 낫습니다. 천하에 세력을 다 제가 의지하는 것 보다 이 지능을 지능과  결합되는게 낫습니다. 요 가치 평가를 고 현실에서 고것을 바로 하는 저 지난  수요일 날 내가 ○목사님을 설교를 시켰는데 그때 ○목사님이 고 현실에서  평가하는 요것이 위대하다. 거기서 비판하고 정평 정가하는 고것이 제일 어렵고  위대한 것이다 하는 것을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요 밤중이라 하는 고거는 현실인데 그 밤중이라고 표시한 것은 그것은  비유입니다. 밤중으로 비유했습니다. 그 밤중이라는 것은 최고로 자기가 믿음  지키기가 어려운 그때를 말하는 것인데 그때에 자기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보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하는 것이 이것이 평가적으로 높고 비판적으로  옳고 고것이 확실히 결정이 되어지고 고것이 크고 강해져서 거기 속하게 된다고  하면 그것은 그밖에 있는 천하를 다 얻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때 밤중같은 그런 때 사람들이 다 팔아 버리느냐? 팔면 그때만 파는  기 아니라. 이제까지 있던 거 다 파는 걸 말합니다. 그때만 파는 기아니라.

이제까지 있던 거 다 파는 걸 말합니다. 준비했던 것 다 헛일입니까? 그때에 고  자기가 사실을 평가를 정평 정가해 가지고 그것이 그밖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  모든 것 보다 크다 이렇게 평가가 되는 그것이 이제 권능입니다. 그것이 지혜의  능력이요. 그렇지 않소? 피조물 영계에 있는 것이나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 전체 다 뭉쳐봤자 그 피조물  다 뭉쳐봤자 피조물 그것을 창조한 그 지능만 못하지. 창조한 지능과 결합  지능이 내 것 되는 것이 그 지능이 지어 놓은 것 그거 내것 되는 것 보다 낫지.

그것을 창조한 지능뿐만 아니라 그 지능을 가지신 지능의 주인인 그분하고  결합된다면 그 이상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평가가 안된다 그거요.

안되는데 그 평가되는 것이 대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다는 말은 평소의  자기 현실에서 평가 평가해 가지고 신랑 맞이하는 그 불은 기름으로 된 것이니까  그거 비유인데 평소에 자기가 '아! 내가 이것을 취하느냐? 이것을 창조한 지능을  취하느냐? 이것들을 가진 자를 취하느냐? 이것들을 창조하신 주격자이신  주재이신 이 지능을 가지신 이분을 내가 취하느냐?' 요것이 현실 현실에서 또박  또박 이루어져 나가야 되지 현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이제는 다시 그 후는 없는 연습이 없는 결정이 되어지는 아주 실패냐  성공이냐 결정이 되어지는 고 마지막 결말 시기를 가리켜서 밤중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거 참 얼마나 알아야 되겠는데 그러기에 현실에서 요 정평 정가가  돼야 되지 고기 없으면 헛일입니다. 고 현실 현실에서 연습하고 준비해 가지고  고기 성공이 돼야 되지 거기서 못한 것을 마지막에 한몫 제가 하느라고 어려울  때 결정될 때에 그때에 하면 된다고 어리석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것은 고 진실이 없으면 계속 빈틈없이 힘써 나가는 고것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약한 자는 약한 줄 알기 때문에 계속 힘써 나가고,  잘난 자들은 잘난 자 인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일과 같은 줄 알고 못난 것은 두  시간 하는 것 보다 잘난 사람 한 시간하면 낫습니다. 십 년 가도 해결 못 짓는  그 일을 잘난 사람 가서 말 한 마디만 하면 해결된다 그 말이오.

이와 같은 이 이치가 가득히 돼 가지고 있으면 하늘나라 구원 얻는 것으로 이런  줄 아는 고로 이 방편 쓰니까 못난 사람은 다 성공인데 잘난 사람은 다  실패입니다.

요것이 안 느껴지면 헛일이요. 어느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 그 날과 그  시가 뭡니까? 이것은 다시는 없는 결정 지우는 ( ) 누가 사람이 고 현실에서  영생으로 영원한 사망으로 되어지는 것 있지마는 고것이 대번에 한번에 결정되는  것도 있고 열 번 만에 결정되는 것도 있고 일생동안에 결정되는 것도 있고  우리의 구원을 여러 가지라. 그렇지 않소. 그 사람이 단번에는 이겼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그 십 년 통계에서 결정되는 것 이거는 또 가정 구원 자기의 습성  구원 뭐 여러 수백 수만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그때가 어느 땐지 종말 시간이 어느 땐지 모른다. 예수님의 재림으로만  된다. ( )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 그러면 예수님 재림 전에 그 죽은  사람의 것에 대해서는 ( ) 개인 죽음도 재림도 그러하지마는 그 보다도 여기는  심신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신 구원을. 영접을 못해도 그 사람 지옥 가는  사람 아니요. 이외는 심신 구원이요. 자체 전체 구원이 아니고.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 결말이 있는 자기가 일생 동안 신앙 준비를 했지만 그  신앙 준비한 그 신앙 준비가 언젠가 종합적으로는 일생에서 세포적으로는 그때  그때 살지마는 그게 종합적으로는 결정이 있다 말이오. 우리가 세상 일도 지금  무슨 일을 할 때에 고 일을 따져 들고 보면 집을 지어도 고걸 또 짓고 짓고 이래  만들지마는 마지막에 그 준공이 돼서 검사에 통과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있단  말이오.

그게 세상일은 자꾸 거짓부리기 때문에 그러하지마는 내가 보니까 꼭 같은  물건인데 이거는 불합격이라. 뭐라 하더라 그게 그 뭐 등외품이라 하던가 뭐  불합격이라도 꼭 같은데 자꾸 그래 가지고 따져 나오대. 그 합격이 못 돼서  그러면 합격된 것 그 못쓰는 것 아닙니까? 이런기 다 자연계시라 그 말이오.

우리의 생애가 평안하게 십 년 살든지 이십 년 살든지 살아 가지고 그 생애의  종합적으로 전체적으로 이 사람의 생애가 실패냐 성공이냐 하는 합격이냐 아니냐  하는 그것이 마지막으로 결말짓는 그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그게 언제가 되는지 모른다 하는 이 말씀은 참 기절할 만큼 두려운  말이고 또 그때 신랑을 맞이하느냐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버림을 당하느냐?  이것도 두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되느냐? 평소에 준비해 가지고 된다. 자기는 평소에 준비  기간에 닥치는 것은 누구든지 다할 수 있고 맘만 먹으면 다할 수 있고 원하면  다할 수 있고 마지막에 밤중 그때는 인간들이 아무리 원하고 결사적으로 이제  마지막이니까 하고는 결사적으로 ( ) 그와 마찬가지로 그 날 공부시켜 놓고 그  날 바로 시험치면 그거야 합격이지마는 자기가 마지막에 뭐 입학 시험 어짜고  제가 이렇게 하지마는 평소에 공부 안해 놓으면 니도 평소에 공부 안해 놓으면  평소에 공부를 안해 놓으면 마지막 시험칠 때 제가 죽자 사자 그때는 막 눈이  들어가도록 하고 막 가슴이 떨리고 밥 맛이 없고 막 한 시간 지나면 상이  새파랗게 돼 나오고 그렇게 힘을 다 쓰지마는 합격이 됩니까? 그 합격은 그날  그날 매일 공부한 것을 시험칠 때에 그 예비시험에 전에 조금만 힘쓰면 될 수  있는 그것을 해 놓은 그 조금까지 있으면 되는 그것이 마지막에는 뭐 죽자 사자  힘써도 못하는 그것을 그 사람은 쉬이 해낼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지금 자꾸 이 증거하려 하는 것은 못합니다. 왜? 여러분들이 자꾸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안돼요. 내가 아침에 나와서 증거 하는 것은 안돼. 듣든지  안듣든지 말해. 고 현실에서 기름 준비를 하는 고 기름 준비 고거는 뭐냐? 다른  말로 살아나 가지고 이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는 그걸 말합니다. 자기   대로의 되어있는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하여 있는 이것을 속하여 지고 있는 그  제도에서 그 법칙에서 거기에서 내놔야 됩니다.

이러니까 기름 준비는 자기 현실에서 그 영을 바꾸는 것이 악령과 하나님과  바꾸는 것입니다. 고 현실에서 고게서만 바꾸지 다른데서는 못 바꿉니다. 제가  아무리 마구 단식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제가 차지하려고 아무리 해도 그거는  공중 누각 짓는 것이지 소용없습니다.

다만 자기 현실 거기서 뿐이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서 뭐  몸도 생명도 다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주장하고 뭐 눈물 흘리고 후회하고 암만  해봐야 소용없어. 그 현실을 만나는 고 현재에 그때에 하나님을 영접하느냐?  악령을 영접하느냐? 거기서 하나님 배척도 당하고 영접도 당하게 됩니다. 악령도  거기서만 배척도 당하고 영접도 당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고때 지나면 안돼.

지난밤에도 그걸 말했는데 악령이 뭐이 악령인가? 악령은 악령의 역사가 천도  만도 넘기 때문에 그러면 악령을 모릅니다. 다 그러다가는 그게야 아! 배암  장우가 예를 들면 배암 장우를 붙드는데 배암 장우 그놈을 날가지도 많고 몸티도  많으니까 거기에 거머쥐 봤자 소용이 없지. 그걸 잡을 수 있는데 잡아야 되지.

그걸 꼬리있는 것 조금 거머 잡아봤자. 달아나지 그거 잡겠소. 전체를 잡아야  되지 전체를 잡는 것을 지난밤에 간단하게 말했어. 악령은 뭐이 악령인데,  간단해. 에덴동산는 고기 뭐 고깁니다.

악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거 먹으면 죽는다 하더라. 하나님 말씀 이기면  안된다더라 이는 안 죽는다 그말이요. 안 죽는다.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 영감도리 생각지 아니하고 그대로 하지  안해도 망하지 않는다. 고기 바로 악령입니다.

하나님은 생각 아니하고 저 생각하고 하나님하고 먼 생각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것은 버리고 다른걸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그것을  버리고 다른걸 위주로 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것 버리고 다른걸 중심하고 그  하나님 취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취하고 이래도 하나님을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의 뜻인 고 영감 도리를 버려도 그게 어겨도 안 망한다. 고기  악령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 뭐인데. 인간생각, 자기 생각, 세상 하나님에 대립되는 것  그거하면 잘된다 하는 그게 악령입니다. 그게 바로 악령이요. 그것을 현실에서  살펴서 이것을 구별해 가지고 악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취하는 이것이 생명의  힘 이것이 성령의 힘이요. 이것이 전능의 힘이요.

이러니까 하나님과의 가까워지는 거 하나님은 멀어지게 만들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가까워지게 하는 그것이 악령 버려도 안 망한다 안 죽는다. 먹어도 안  죽는다. 어겨서 먹어도 안 죽는다. 내말 들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 잘된다. 이기  요 두 가지 고걸 내가 그 악성이 뭐이 악성입니까? 악성이 그만 악성이라는 것은  하나님 안보이고 이 피조물 보이는 것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아니하고  피조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고것이 악성과 중생된 영 자기입니다.

참 자기,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 고것이 참 자기로 사느냐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로 사느냐 그게라 그말이오. 고기라. 입술로는 말해도 몰라. 그걸  모르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한 자도 졸고 잤습니다. 잤습니다.

자는 자는 미련한 슬기 없는 자가 잤고 조는 것은 내나 조는 기나 자는 기나  사촌간 아니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영감 도리로만 살지 아니하고 내나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접하여 사는 것은 존다는 것입니다. 내나 자기로 살았고  세상을 사는 것 그게 조는 것이요. 완전히 그것으로만 사는 것은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사람으로 사다가 새사람으로 사다가 진리로 사다가 자유로 사다가  이래도 준비된 자는 그때가 되니까 등불 준비됐고 준비 안한 자는 헛일입니다.

네가 어제도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 너 아직 새사람 안된다. 네가 아직 유명한  목사지만 새사람 모른다. 네가 이래 가지고는 가면 갈수록 유력해 지는 게  아니라. 나제 비참해진다. 세상에 있는 목사님이 다 육체의 기운이 줄어지는데  따라서 그의 영의 역사도 다 줄어져 마지막에는 도퇴가 되서 가야돼.

○○○목사님이 목회자들 가르칠때에 젊을 때는 이렇게 힘써 목회를 하다가 나제  차차 차차 나가 많아지면 그때는 그 작은 교회로 차차 차차 밀려간다고 그것이  필연성으로 말했는데 절대 아닙니다. 왜 그게 필연성이겠습니까? 신령한 것이  늙습니까? 안 늙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를 하든지 어쩌든지 그 문제가 해결돼야 되지. 해결 안되면  이거 자꾸 말하는 이거 말하는 옛사람 이것이 자기가 깨닫고 말하는 걸 모르니까  한 고비는 넘겨야 됩니다. 여 우리 교역자들 다 옛사람이 목회를 하고 있소.

새사람이 목회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하려면 가서 산에 가서 한번 자기를 죽여  보십시오. 보름이고 열흘이고 단식 기도해요. 그대로 절제생활 하면 돼. 그  주장하던데로 그 사람의 그 사람이나 같애. 이거는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중생된 사람이요. 중생된 자기를 알고 자기를 눈으로 번연히 보면서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을 또렷이 봐서 그것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애를 쓰고서 이래도 이놈이  나서가지고 안죽는데 그걸 모르고 혼돈 돼 가지고 자기라는 것 옆에서 말해줘도  옛사람 자기 원수인 자기 그걸 자기로 원수로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소  생활에 뭐이 되겠소. 설교할 때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아니고 그 복음가지고  저 나타냅니다. 저 증거하요. 하나님 대접 아니라. 저 대접 지금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망에 속했어.

이러기 때문에 목회하는 옆에서 마귀 하나가 돼 가지고 속삭 속삭하면 그말듣고  우우 나서서 그만 한마디만 말 듣고 나면 그 사람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인정으로 정으로 육정으로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사람은 접촉하면  절대로 인정이 두꺼워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소. 다 그렇소. 하나님의 사람은  접할수록 진리가 같고 사상이 같고 주장이 같고 비판이 같고 평가가 같고 목표가  같고 그 실력이 같지 인간의 정은 더 멀어집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그것은 아니고 인정으로 인정으로 진리보다도 인정이 낫고 진리보다도 국수 한  그릇이 낫고 진리보다도 양말 한 컬레가 낫고 진리보다 돈 몇 푼이 낫고  진리보다도 절 위하고 이렇게 긁어주고 다듬어 주는 그런 게 낫고, 이래서 마귀는 딱 거석하면 살려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부득이 다른 사람 이런  거 저런 거 들어서 네가 이러니까 이기다 이런 것들이 다 저할려 하면 팩하고  요거가지고 고 사람에게 말하면 이 사람 대번에 목회하고 백 목사하고 떡  이래되고 나와 하나된다.

고 수단 방법으로 제가 망해죽어. 내가 하나님 편에서 하는 것이야. 죽어.

해보지? 여기 내 누구 누구 다 이름 들면 다 알아. 다 들어. 백 프로 그 사람  구십 프로 그 사람, 인정가지고 아 요럴때는 요 말을 가지고 말하면 그 사람이  착 되겠다 저러면 되겠다.

서울 청량리 예배당 지은 것 그 고친 것 도리어 집을 못쓰게됐고 지하실도  못쓰게 됐고 돈은 많이 들었고 실패라 하는 것을 저거끼리 말을 해 가지고  그말이 뭐이냐? 백 목사 말도 보라. 이는 뚜렷이 실패되지 않았느냐? 이러니까 들을 거는 듣고 안 들을 것은 저거 말대로는 그렇지. 이렇지만 그것은  백 프로 맞았는데 백 프로 옳은데 백 프로 옳은 것도 그게 틀렸다고 이러니 오십  프로 맞은 게야 으례 그럴 것 아니야. 죽이는 기라. 서울에 것들 그래 죽었어.

○○○목사를 저렇게 저 모양 만든 것이 ○○○, ○○○, ○○○, 세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소. 그 책임져? 아니라고 암만 변명해도 그대로 있고 하나님 심판  앞에 가봐? 아닌가? 뭣 때문에 동문교회 집회할 때 원고 설교해라. 너가 아직 성경을 모르니까 벌로  마음대로 주 대면 안되니까 그 들은 대로 원고 설교해라. 이렇게 하는 그말이  뭐이 갖다가 저 ○목사 공격하는 것이라고 이름도 들어서 말하지 안았는데 그  사람 공격이라고 밑에 교인들이 가 가지고 말해 가지고 그랬는데 그때에 거기서  대적하지 않은 자는 환영하는 자지. 그 하는 것이 틀렸는데 ○목사가 틀렸는데  그럴 때 '아! 목사님 그게 틀렸습니다.' 그 우리 원고 설교하라 하는 그 말이야  맞당하지 옳지 않습니까? 왜? 그걸 그렇게 그 오해해. 듣습니까? 그 틀렸습니까?  이래야 하나님께 속한 자지.

그러면 그 사람 아 이 사람도 말하니까 그래 말하니 이거 참 내가 공연히  곡해인가 보다 공연히 이름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추측해 말하지. 말하지  않은 것도 가서 그러지, 교인 그 틀렸습니다.

그거 그런 교인 그 아합 왕에게 이세벨 같은 교인입니다. 그거 사람 죽입니다.

이말이 뭐야? 하나님이 그 기뻐하지. 그걸 기뻐하지 않으니까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느냐? 대적하지 않았으니까 환영하는 자지. 이것은 목사님에게 가서 말해봐?  그 말하라고 슬근 슬근 목사님 뭐 알게 뭐 있는가? ○○○목사하고 한번 말하지.

말하면 그 사람이 해결될긴가? 옆에서 자기네들이 증거는 자기네들이  증거해야지. 자기가 증거할건 자기가 증거해야지.

왜, 자기 할 일 남에게 그때에 그 틀렸다. ○목사 틀렸다. 원고 설교하라 하는데  그럴 거 뭐 있느냐? 또 말도 안한 말까지 해가며 그런 교인을 되느냐? 그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기뻐하지 그랬으면 그런 사람 되지 아니하지 자꾸 이래  가지고 서울서 그 사람을 추켜 올려 가지고 ○○○목사는 거 올라가고 난  다음에는 ○목사 지도 받아서 모든 걸 했지. 여기 지도를 받지 않았다 말이오.

여기 보다 더 그랬어.

○○○목사가 ○○○목사를 저렇게 만든 책임이 많아. 내가 말하는 게 틀린 것  말했으면 틀린 건 틀렸다고 정죄 해. 나는 하나님 심판에서 그대로라 틀림없어.

고거 회개 아니하면 고만큼 어두워져 가지고 안 밝아져. 가만히 있으니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말 안하는 것 있어. 그분이 벌써부터 그래 가지고 그것을 나는  고칠까 스스로 자꾸 이래 말해도 그래 그랬는데 우리가 요것을 기름 준비하지  안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 당장 그게 돼 버려요.

그러면 그 말 ○○○목사한테 갔으면 그래 그 처음에 하던 그게 나은데 백지  뒤에 자꾸만 회개를 백 프로 회개를 해야 될터인데 위안제를 옳다고 생각할 거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 말들으면 그 사람은 제 사람에 가깝고 나와 멀어지고  은혜가 안들어가? 백 프로 잘못했어. 그거는 그대로 있으면 그거는 넘어가 바친  거 있어도 넘어가? 물구멍에 그냥 세워놨는데 되겠어? 나중에 말목을 시멘트 말목을 이런 걸 들이박고 이래 가지고 그걸 짓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고래가 짓는 죄가 어떤 죄며 미리암이 짓는 죄가 어떤 죄인가?  아말렉 족속이 지은 죄가 어떤 죄인가? 하나님은 피흘려 사람을 구원해서 만들라고 애를 쓰는데 이 일에 협조를 해서 그  사람이 어쩌든지 구원 얻는 일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간절하고  은혜받는데 간절해서 그 교인을 만나면 그 교인이 목사가 그 교회 목사가 이렇게  은혜 받는데 간절해지도록 은혜를 받도록 옳은 것이면 받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구원에 협조인데, 설설 그래해 가지고 그 은혜 기관에 흐려지도록 만들고  성글어지게 만들고 이래서 내가 그랬어. ○○○목사야. ○○목사 접하지 말아라.

그러면 죽는다. ○○목사 있는데 말했고, 여기도 보면 ○○○목사 가기 전에 ○○○목사하고 떡 자주 만나 가지고 하는 그  사람들이 살리지 아니하고 그게 뭐이냐? 저래야 되는 저래되는 그 사랑과 주장에  협조한기라. 여 있으면서 내가 말 안해도 음식 먹으러가도 같이 바깥에 가도  같이 다방에 가도 가이 내가 그것을 ○○○목사는 마지막으로 말했어. 너끼리  끼리 자꾸 사귀 가지고 이러는 데 그게 너 죽이는 것이다. 그런 사귐은 가지지  말아라. 내가 고말을 마지막에 나가기 사일 전에 여 회의실에서 쉽습니다.

이기 이 악성인지 중생 된 영인지 알기 쉬워. 자기 중심이면 벌써 하나님 안  생각해보고 진리 나부터 생각했으면 고기 그만 옛사람이라. 더듬을게 뭐 있는가?  나를 부인해야 내가 안비는데 나 안비고 하나님만 보여야 되는데 중생된 영은  하나님 밖에 모릅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맡았기 때문에 몰라. 벗을 줄을 알때에 죽었어. 죽어서 벗을 줄  알았어. 벗었는지 말았는지 죽었는지 어쨌는지 하나님밖엔 안보이요. 그때가  산영이라.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 자기 친구로 삼아 진리만 친구로 그 나라고  살고 그까짓 거 세계면 무슨 상관 있어. 그까짓 힘은 힘으로 보이지 않아.

오늘 정권이 이렇데 해도 그까짓 거 내비 둬 버리는데 우리가 의지하는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의 배경인 진리는 죽어도 내가 죽어도 그 진리는 살았소. 하나님은  살았소. 죽으면 죽는 것이 더 영광스러워져 더 존귀해져. 이분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이분의 힘으로 하는 것은 아무도 당하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담대한 기라. 간교하지 말라. 간교하면 안돼. 설근 설근 사람을  접해가지고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멀어지고 진리의 귀가 멀어지고 백 목사와  멀어지게 하는 그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기라. 그게 아말렉 족속의 범죄라.

고라의 범죄라.

그 사람에게 진리로 간절케 하나님으로 간절케 이런 것을 더 북돋아 주지  아니하고 이것을 설설 카묵캐서 뒤에 뒤퉁으로 제가 나타나기 위해서 잘나기  위해서 저 나타나기 위해서 내가 ○○목사는 지금 말하는데 거창서 집회할 때  ○○목사 이 은혜대로 하기 위해서 해도 나는 볼때 가증스러워. 그 속에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꾸 자기 위해서 그래 지금 ○○목사에게 저녁에 물어도 그걸  말해주지 안했는데 지금 말하는데 ○○목사님이 거기 있다가 미국갈 때 그때  갔다와서 또 갔다가 서울 가서 달산교회를 처음에 세울때 고 사람으로 돌아가야  되지. 고 사람이라야 되지. 지금은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라. 무슨 일에  한다고 해도 교회 어떤 교회 세운다 해도 기뻐 안해요. 아 그게야 설교 해  가지고 부흥해가지고 사람 많이 모이는 그거는 그것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 부흥시키는 것과 자기 구원과는 다릅니다. 자기 구원과 다른 사라 구원하는  거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지금 ○○목사를 사랑할려면 고만 교인이 자꾸 떨어지고 지금 교회가  자니 숫자가 줄어지고 없어지고 마구 침체가 되지고 이러면 하나님은 그  ○○목사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니까 교회가 부흥되기 때문에 지금 문제라기야.

옛사람으로 옛날 그때 은혜 생활 할때의 사람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교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목사는 옛사람이 지금 주격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새사람이 주격 안 됐있어. 옛사람이라. 자꾸 입으로 말해도 실은 옛사람이  주격이 돼 가지고 새사람이 주격이 안 돼가지고 있습니다. 꼭 그때 갈때와 같은  사람, 미국 갈때와 같은 그 사람입니다. 갈때 내가 말했소. 서울에 가 가지고  왔을때 가기 전에도 내가 말했고 그 말한후 그게 어쩐지 틀렸어.

그러기 때문에 금요일 날 사람들 모이는 것 이것도 그 억지로 오기 싫은걸 다  이래하니까 교역자들 안오면 지금 주목당하고 이럴 터이니까 내가 오기 싫은거  억지로 오고 있다. ○○목사 오기 싫어서 억지로 오는 기라.

내가 아무에게도 안들었지만 고말이 돌아다니는데 네가 요걸 몰라. 요거  ○○목사 입에서 나오지 않았나 고거 지금 내가 고런 지금 생각을 가지고 있어.

거 나는 여 이리 여기 오니까 아주 영광되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는 자는 그  자리에 안서봤기 때문에 그래.

이래 숫자를 모을라고 하면 망라해서 월요일 날 공부한다 하면 누구든지 와서  이래한다 하면 지금 오는 숫자보다 더 많이 와요. 내가 서울가서 그러고 여 와서  두군데서 그래하면 고만 몇 십 명이 아니라. 몇 백 명이 모이요. 차차 모이요.

내가 금요일날 좀 설교하지 아니하고 쉴 것도 자 이거 먼데서 기차타고 오지마는  저 산골에서 그 버스를 타고 걸어서 이래 가지고 오는데 내가 여서 오늘밤 내가  안서고 이리 되면 어찌 되느냐? 혹 어떤 경우에서 안 설때는 고 이튼날  아침이라도 왔더 그 사람에게 그 기대에 하나님 주고자 하시는 그걸 줘야 내가  되지 주지 않으면 못견뎌서 이거 참 모릅니다.

이러니까 입으로 말하고 설교하고 자기 구원하고는 다릅니다. 목회하고 자기  구원하고는 다릅니다. 남의 구원하고 자기 구원하고는 다릅니다. 요거는 꼭  자기를 기울여야지. 자기 안기울이면 헛일이야. 현실에서 알기 쉬운 악성이 고기  옛사람인데 옛사람 자기인데 악령과 자기와 생활과 셋이 합해 가지고 옛사람이  되는긴데 그 악령 악성 악습 그 명사를 지낸것도 그것도 천추만대 가도 변동  없어. 내가 지어낸 것은 아니야. 하나님이 내게 줘서 지어낸 것이라. 내가  얼마전에도 악령 악성 악습이라. 그 명사를 어떻게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셔야지 그러면 그렇게 맞을 수가 있나. 그런 것도 단어 하나도  쉬운 것도 쉬운게 아니야.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 명사를 그렇게  붙일 수가 없어.

악이라는 정의가 악이하는 정의가 이제까지 안나왔었어. 기독교 신보들이 지금  나타낼거 안나타내고 엉뚱한 것만 자꾸 나타내면 그거 지금 탄식이야. 그거  뭐이냐? 그 옛사람들이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기라. 하나님이 하시는 거는 미워.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은 뉘차지 인고. 요렇게 단어 한마디라도 기쁜구원  건설구원이라. 옛사람 새사람 그런 것 있었지마는 악령 악습 뭣이 그 정의한거  이런 것은 여기 국내 있는 사람은 한마디 증거해야 소용없어. 외국에 ○목사님이  ○○○목사님이 이 진리를 자랑하면 모두 사람이 그런가 보다. 저거 모가치야.

저거 차지라. 제가 할 일은 제가 해야지. 안하고 딴 것은 자랑하고 이거는  자랑하면 거석하지.

그러기 때문에 이거 자랑한거는 자기에게 자기네께 교리 이말은 교리 이러는데  교리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런 교리는 이런 교리보다 이기 낫다. 이  교리와 일치가 된다. 그것은 그분들이 말해서 그분들이 이 도를 전해. 이 도가  누구인데, 백 목사 자랑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한 이 도인데 이거  자랑해야 될터인데 그분들이 자랑 제가 할일 제가 아니하는 것이요.

서울에서 증거 아니하기 때문에 그렇지. 현실에서 악성은 고만 쉬운기라.

하나님,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 하나님, 하나님, 생각하는 것  하나님만이 자기 그 현실에서 생각이 되지고 봐지고 그의 뜻만 그 다음에  생각해지고 이럴 긴데 그게 아니고 뭐이든지 그만 자기가 주체되면 안다 그거요.

아 섭섭하다 분하다. 내가 모욕을 당했다. 자기명예에 지위에 영광에 권위에  그게 뭐이야? 그게 옛사람이지 옛사람을 말해줘도 그거 옹호하면서 아무리  입으로 말해도 소용없어. 고것을 현재에 척 죽이고 배반하고 중생된  새사람으로서는 요기 권위라 요기 세상을 이긴기라. 이것이 장기간 고문과 고행  천명 만명이 다 항복해도 자기는 기쁨으로 죽음으로 이룰 수 있는 그 능력이  여기 있어. 간단합니다.

지금 자기가 가서 분해가지고 있는 것 섭섭해가지고 있는 것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것 요러니까 한번 이러면 깨뜨리고 웃으로 한번 해보겠다 하는 고거 고기야  더듬어보면 확실히 옛사람인데 그 사람이 돼 가지고 제가 생각하니 생각이 다  틀린게 아닐긴가? 주장이 틀릴수가 아닐긴가? 저 도모하는 일이 다 망할 일이  아니겠는가? 고것을 구별해 가지고 고걸 착 배반할 때에 고기 뭐이냐? 중생된  새사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고기 값주고 사는 것이요. 고 값주고 사는  하나님이요. 진리입니다.

고럴 때에 새사람이 일어나지 막 물어놓고 제 입술로 새사람 새사람 뭐 속은 다  거석하면서 암만 해봐야 소용없어. 백 번 그래봐야 소용없어. 고거 없으면  소용없어. 기도가 고거 하기 위해서 있는 기도라면 필요하지만 자기 바꾸기  전에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꾸기 전에는 안 됩니다.

습성이라 하는 것은 습성이 자기 옛날 할 때 다 원치 않는 거 합니까? 그걸 할  때에 거짓말했으면 고때 그 배경이 다 있어. 사람도 들었고 돈도 들었고 재물도  들었고 권세도 들었고 재미도 들었고 정도 들었고 다 들었어. 인정도 들었고  딱한 사정도 들었고 고 구습을 버리는 것은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는 것, 구습을 버리는 것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요. 악성을 버리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요. 악령을 버리는 것은 그 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기  바꿔야 돼. 버려야 돼. 분명히 옳은 것을 말하는 데도 듣기가 싫은 그 사람이  새사람인가? 그 사람이 목사인가? 아니야. 마귀가 목사 노릇하고 있는 기라.

삯군이고 이리고 도적이고 강도라. 일하는 것은 별도요. 자기 구원이 안  이루어지면 자기 중심, 자기 구원이 안 이루어지면 봉사를 못해. 거치기만 하지.

왜 바로 되면은 열이고 백 명이고 한 덩어리 되는데 왜 안 맞아. 안 맞는 것은  옛사람 새사람 작용 그뿐이야. 악령과 성령 그 작용 뿐이라. 또한 속한 구습과  믿음과 요 둘 뿐이요. 믿음하고 구습하고 대립이 되고 하나님하고 악령하고  대립되고 새사람하고 악성하고 대립되고 거 대립이라. 간사하게 하면 못써.

그때에 자기는 고기 자기 파수꾼이라. 왜 그랬는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얻기  위해 그랬지.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일이 안되면 어짤까 걱정 염려 없었지.

자기 중심이 돼 가지고 오히려 그리되면 구경도 하겠고 좋지.

여러분들 일을 보고 살면 끄트머리 나타난 나타난 나타난 보이지는 일을 보고  살펴 안 됩니다. 그것보다 그속에 일들이 중합니다. 끄트머리 일은 많이 하면서  입술 한마디 좀 코대답 응하는거 삐쭉거리는 거 그리마라 해도 그 말 한 마디  그게 다 중한 역할하고 그보다도 마음이요. 마음보다도 양심이요. 그것보다도  새사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영입니다. 영이냐 악성이냐? 그것입니다. 이런걸  따지기 싫어합니다. 안따지면 헛일이라. 하나님의 심판은 이보다 더 세밀해.

이보다 무한히 세밀해.

인간이 말하는 논리에도 맞지 않는데 하나님의 심판에 맞겠다고 우연히 뭐  심판에 걸리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을 것 아닙니까 다 불탈 것 아니겠소.

여러분들이 요것을 고치십시오. 정실로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실의 사람이 아니라. 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하지 않았소.

죽여야지. 우린 진리로 살 사람이라. 성령으로 살 사람이라. 간사하게 말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면 좋아하고 옛사람 새사람 바꿔지면 비판이 전부가  정반대입니다. '여 ○○○목사 여 있어.' 여 기도실에 돌아다니면서 저거끼리  모이면 내나 또 그 운동해. 뭐이 진리는 저 혼자 사랑하고 저 혼자 하는데  말하는 것 마다 다 틀렸어. 그 정조사 참 그 비판이 틀렸다. 어찌 그리  생각하노. 영 반대인데 낱낱이 봐야 그래.

그러니까 교회 다스리는 것도 그래. 그걸 단단히 일 주력해서 고치지는 못하고  이래다가 본인에게 그렇게 비판이 꺼꾸로 될 수가 있느냐? 내가 그 말 한 일  있지. 잊어 버렸어. 예? 지금은 좀 달라졌어. ○○○목사 여 있어요? 요번에는  못 왔나 전에는 왔는데, ○○○목사 남해 있을때 하도 말해도 몰라. 기가 차서  그때 가서 양성원 마치는 마지막 토요일인데 다 마치고 갔는데 조금 노령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지 못해. 다 마치고 가라 하니까 못 갔다 말이오. 못 갔는데, 암만 둘이 앉아서 그걸 가르치려고 이렇고 이러면 이 비판이 어떠노 이렇지 않나  그래 내가 너는 어떻노 이거 이렇지 아니하느냐? 이 말하면은 자기가 뭐이냐  하면 이렇다 하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 이래야 된다 암만 말해야 시인을 안해. 할  수 없이 내가 데리고 남아 있는 그 양성원 학생들을 전부 ○○목사 그 모도 그래  하니 아마 여나문 남아 일 있어 죽 앉혀놓고 여기서 한번 얘기 한번 해 보자. 이  사람 다 듣는데 내가 말하는데 이 사람들은 뭐라고 평하는 가 보자. 그래 앉혀  놓고 얘길하고 여 대해서 이래야 되느냐 저래야 되느냐 하고서 그 사람한테  물으면 자긴 이래야 된다 해. 거 그러면 다른 사람 딴 사람 다 틀렸다하는 기라.

다 틀렸다. 너와 모든 사람이 다 틀리니까 나혼자만 너 꼬집을라 하는게 아니라  지금 네가 틀렸다는 것을 여서 모르겠느냐? 그렇게 한 것을 기억나요. 그때  참여한 사람 손들어 봐요.

이분들 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다 그렇게 그런 것을 등한히 여기는 기라.

○○목사도 있었어. ○목사도 있었어. 여 교학실도 있었어. 그때 누가 기억나나.

누가 정 거꾸로라 그래 노니까 남의 일에 논기 전부 인정적으로 저거 사람만  만들어 놨어.

이러니까 막 갈때 못 가구로 막 떠들고 하지만 그 다음에 ○○○목사가 가  가지고 거석하니까 아이쿠 속았어. 아이쿠 속았어. 안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거기 뭐이냐? 인정가지고 목회한다 말이오.

인정가지고 자기 교회 오면 돈 몇 푼 가지고 여비 주고 여비 주고 도시락 싸주고  양말 주고 ○목사님한테 양말하고 도시락하고 여비하고 받아 쓴 사람 손들어봐?  손들어 보라구? 와 안 들어. ○○○목사님이 그전에 교회 연보 가지고 요 사람  돈 몇 푼 대주고 저 사람 몇 푼 대주고 고거 가지고 밥 띠기로 잉어 낚겨 올라  가는기라. 낚시를 걸어 가지고 주면 고맙다 먹지마는 그 잉어가 낚여 올라가는  기라. 제가 그 사람의 사람이 돼져. ○○목사가 그렇게 목회해. 은도 금도 없을  뿐 아니라 정도 없어. 죽었는데 뭐 있어. 줄건 진리와 영감 밖에 줄게 없어.

이러니까 사귀지면 멀어져.

여러분들이 나와 사기서 나 사귀서 사귀니까 사상으로 가까워지고 비판이  가까워지고 평가로 가까워지고 행동으로 가까워지고 그런 거는 가까워지지마는  사람으로서는 그 사람과 자꾸 멀어진다. 인정이 하나도 없다. 고기 바로되는  기야. 서부교회 악평하기를 거는 사랑이 없다. 사랑 저거 사랑이 그 사랑이  뭐냐하면 사랑을 몰라. 인정을 말하는 기라. 그거는 죽이라 했는데 정신차려  하나님 믿어야 됩니다. 공연히 거 뭐 목회해 가지고 그걸로 가지고 우쭐해지면  우쭐해지고 자기 구원 이루지 못한다면 목발 두리고 대짐 지는게 낫지. 영원한  내세를 그걸로 팔아 먹어버리오.

목회자라고 구원 잘 되는 줄 압니까? 아니요. 목회 그것도 하나 직업입니다.

내나 공장에서 구원 이루는 것이나 목회자가 구원 이루는 것이나 공장에서 구원  이루는 그 노력이나 목사 구원 이루는 노력이나 그 노력은 그 노력. 이래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목회가지고는 다른 게 아니라 공장일 한 자 되고 일  잘한다고 구원이 되는가? 일 잘한 거는 딴거 있고 구원은 딴 거 있어. 설교 잘  한다고 구원이 되는가? 설교 잘 하는 건 따로 있고 구원 이루는 건 따로 있지.

거기 없으면 또 목회 되는 것도 헛일이라. 자기도 모르는데 뭐이 되는가?  자기만치 되는데 뭐 거 되기 이상이 어찌 될기라 되기를.

이러니까 목회 해놓고 보면 이걸 진리와 영감으로 길러냈는지 인정으로 길렀는지  내가 보면 다 갈라하는 거를 못 가도록 붙들고 어짜고 이래 와서 하는 것이 나는  알기 때문에 그게 뭘로 왔나 보자 따져 보면 전부 인정으로 왔어. 인정으로 내가  오면 두말하지 않아. 인정 깨뜨려 버려. 너 인정가지고 살래. 인정 그놈  그러니까 좀 진액이 빠지지만 한 시간 앉아 인정 그놈을 깨뜨려 죽여 버리고  나면 용기도 떨어져 버리고 열심도 떨어져 버리고 간절도 떨어져 버리고 목적도  떨어져 버리고 다 변해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좀 진액이 빠지지만 한시간 앉아 인정 그놈을 깨뜨려 죽여 버리고 나면  왔던 용기도 떨어져 버리고 열심도 떨어져 버리고 간절도 떨어져 버리고 목적도  떨어져 버리고 다 변해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막 죽어도 해 볼라 하든 것이 나중에 가서 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기요.

기름 준비 현실에 하나님이냐 악령이냐? 참 사람 자기냐 옛사람 자기냐?  믿음이냐 구습이냐? 요거 현실에서 구별을 해야 앞으로 밤중되는 때에 승리를  하는 것이지 현실에 요거 구별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신앙 생활 할 수 있습니다.

고때에 신 목사님이 고 말 듣고 와서 가지고 분하게 가보라 고렇게 한 고기 악성  악령 악습이라는 것을 지금도 모르면 과거를 두고도 모르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어두우냐 그게야 자기와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면 그거는 죽은 사람입니다. 다른  이종교와 기독교가 다른기 딴기 뭐 있느냐 하면 이종교는 내나 옛사람 그 사람이  종교 생활합니다. 그게 이종교요 기독교는 내가 이종교같이 그 종교 생활하는 그 사람과 새로 새로 자기를 몰랐던  사람이 속에서 나와 가지고 그 사람하고 속에서는 싸움이 나와 가지고  거트머리까지 싸와 나가는 것입니다. 이종교에는 그거 없소. 이종교는 내가 세상  사람들이 이런 생활 저런 생활하는 거와 같이 그 사람이 내나 종교라는 그런  법칙 제도로서 생활하는 것이고 기독자는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을 죽이는 생활해  그 사람을 죽이는 거. 우리가 이래 나가면 외식 껍데기 됩니다.

그러면 어쨌든지 지금은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이라 나와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대립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내가  미친 소리 같지마는 나와 멀어지면 하나님과 여러분들이 나와 멀어지면 설교가  안 될 것이요. 나와 멀어지면 하나님께 기도할라 하는데 기도가 안 될 것이요.

나와 멀어지면 심령이 어두워 질것이요. 가장 자기 이상스리 신앙 생활하고 가장  회개하고 했을 때에는 그때는 보는 나와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자기가 경험해 보면 알 터인데 왜? 내가 잘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 기관에  세워 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맹종하라는 것 아니요. 아닌 것은 아닌  것을 말해서 그게 선배를 사랑하는 것이지 되나 안되나 아닌 것을 옳다고 그대로  둬둬. 네 우리가 고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이런 말을 아무데 따나 평생 듣지  못해.

모든 사람이 자기 옛사람으로 옛사람 아닌 걸 들을라고 옛사람으로 옛사람 그 안  상할려고 아무도 말 한마디도 안해 주는데 이런 말 누가 해 주겠어. 이기 내  희생이라. 이기 내 십자가. 내가 십자가 지는 기라. 내가 번연히 손해봐.

목숨도 내가 손해 받고 정력도 내가 손해 받고 그 사람 미움 당하는 것도 손해  받고 훼방 받는 것 손해 받고 이러니까 훼방을 하고 이럴 줄 알지만서도 하는  것은 또 내가 뭐라고 싸도 이 말씀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러면 이 말씀이  역사하기 때문에 결국은 이 말씀의 능력으로 제가 죽고 언제든지 되지지 안되지  않는기라. 그걸 내가 확신한다 그말이오.

이래도 하나님께서 매여 놓으면 제까짓거 암만 갈라해도 못갈꺼 또 가는 자는  하나님이 불러 가게 보내면 가지 암만 붙들어야 소용없어. 가고 오는 걸 가는  거는 가고 오는 거는 오고 하나님이 오게 하면 오는 것이고 가게 하면 가는  것이고 그게나 교역자로 교인 오고 가는 그게나 나로서는 그가서 하나님이  전도하고 이렇게 하라 하니까 하는 것 뿐이지 그런다고 해서 온다는 것도  아니요. 그래 못 간다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오고 가는기나 그게 오고 가는  기나 한 가지라 하나님의 뜻이면 고대로만 행하는 것뿐이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거 훼방하지 말아오. 날 훼방하지 말아오. 날 훼방하면 여러분들이 고라의 죄를  저 아말렉의 죄를 져. 날 훼방하지 말아요. 훼방할 것 있으면 나한테 직면으로  대해 가지고 나한테 말해 주면 내가 달게 받을 것이요. 내가 선생님으로 모실  것이요. 여러분이 나한테 와서 말하라 하니까 옳은 것이면 옳은 것이 나한테  와서 말할때 내가 듣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 배반이요. 말한 그 사람은 하나님 종  선지자라. 하나님의 지체가 됐소. 거 딱 들어붙어.

이러니까 나한테 와서 말을 할려고 해도 이기 옳은 것이 아니라고 판정이  되어지면 거기서 벌써 자기가 아는 것이니까 그걸 고쳐야지. 앉아서 빈정빈정  이래 가지고 이 운동이 어쩌든지 여기 좀 일이 생기야 고것도 이해해요. 고것도  어릴 때 그런기라. 나는 형제간이 많아서 자랐을 때에 자랄 때에 그 형제간 중에  아픈 사람 있으면 대우가 좋거든. 평소에는 이놈들 매도 때리고 야단을 치도  하나가 아파서 꼴망 꼴망 죽을라고 하면 그 부모네들이 자녀 사랑하는 대우가  좋다 그말이오.

대우가 나으니까 안되기는 안되겠으면서도 좋아 그 모양으로 그것이  이상야릇하게 그것이 더 나하고 가까워지려 하는 것이고 반동은 원동의  소생이라. 고 반동 작용으로 나는 그런 것도 알긴 압니다.

그러나 그는 소극면을 취하지 말고 힘을 삼아야 됩니다. 옳은 것이면 얼마나  해도 일우고 원수가 말해도 옳은 것이면 얼른 그게 하나님인데 그게 하나님은  아니지마는 그게 내나 하나님의 그 하나님의 지능인데 자 왜 계산이 그렇게  그렇큼 어렵겠소.

자기에게 삐뚤어졌는데 잘됐다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요.

망치는 사람 아니요. 삐뚤어진 것은 만약에 삐뚤어져도 암말도 아니하고  삐두러진거 말해주지 아니하면 그것이 사랑입니까? 그것이 해치는 미움이  아닙니까? 삐뚤어진 걸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과 삐뚤어진 걸 말하지 않은 것과  어느 미움이 더 큽니까? 어느 미움이 더 커요. ○○○목사님 대답해봐.

삐뚤어진거 어째? 우리는 가슴을 치야 돼. 감정을 죽여야 돼.

그러기 때문에 막 불로 하는 것 소용없어. 감정을 죽여야 돼. 냉정스럽게  이성적으로 나가야 됩니다. 평가적으로 나가야 돼. 아 그거 배워 가지고 평가  평가적으로 평가적으로 말한다 하는데 업설로만 그래 가지고는 소용없어. 자기  배경이 들어가면 전부 하나님과 성경과 진리는 받은 은혜 도리는 전부 자기  높이는 기라. 그것이 도적이요 강도입니다. 그게야 삐뚤어진 거 옳다고 칭찬하는  그 사람이 지금 더 자기를 미워하는 더 원수지.

그러면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진다고 말해 주는 사람. 그 사람 어떤 사람이지요.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졌다고 책망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요.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졌다고 책망하고 이래해야 바로하고 바른 것을 저희에게 알려주는 이  사람 어떤 사람인가? 어느 게 최고의 사랑이요. 어느 게 최고 사랑입니까? 어떤  사람을 친할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찾아 다닐랍니까? 여러분들 어떤 사람을  찾아 다닐라요. 삐뚤어져도 칭찬해 주는 사람 찾아 다닐라요. 삐뚤어진 걸  책망하고 틀렸다고 말하고 책망하고 바로 하는 거 가르쳐 주는 그 사람은 찾아  갈라요. 어느 사람을 친구로 삼을랍니까? 제대로 친구는 옵니다.

사망과 음부와 그의 친구라 그래 그런 자는 그런 자만 모이지 그런 자만  모여지지 왜 목회 양성할때에 왜 방에 사람을 이리 저리 교체하는기라. 그거 좀  조절해서 아무리 해 봐도 할 수 없어. 거기 하나만 산기 있어도 죽은 역사가  일어나는 그것은 티요 마찰이 돼요. 하나만 산기 있어도 그런데 세상 지식이  666이라. 영감의 도리 고거 외에는 그 지식이 높아.

이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이 높은 자가 영감 도리 다 삼켜지는 기라. 다 삼키져.

이러니까 무식한 것이 영감의 접선이 되여질때에는 아무리 세상의 고통 지식이  어떤 지식이 말해도 저거는 틀렸다 반발이 나와. 이것이 영감 지식 없애  버렸으니까 저는 그것도 없으니까 내나 세상이니까 그 사람 666인데 저거는  333도 안됐으니까 그 정복을 당해. 종이 돼야지.

여러분들이 뭣 때문에 지식 정복을 당하겠소. 당하기를 왜 당해 당하기를 영감  없으면 당하지. 나는 무식한 사람이야. 이 사람에게 정복당하지 안해.

내가 영감을 놓기 전에는 당하지 안해. 말해도 저거는 틀렸다 지적이 된다  이거요. 666이 삼켜 집니까? 삼켜지기를 하나님은 7수인데 그걸 승리했는데 영감  도리 외에는 세상 지식 근데 그것은 죽이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게 뭐이요. 사람의 수요. 짐승  수입니다. 그 사람 사는 그것이 인본 사람을 근본으로 한 것 세상을 근본으로  사람을 근본으로 세상을 근본으로 만든 지식이라. 영감 도리는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아 천국을 근본으로 삼은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지. 그까짓  그럴진대야 세상을 사기 협작을 해도 뭐 잘 살아보지 뭐 하려고 목회하면서 그  자기 위해 살진대야 목회 다 과거를 반성해서 잘못된 것을 고쳐서 어쩌든지  사람에게 나쁜 요소 없는 사람 없고 이런데 발견했으면 옳은 대로 빨리 옮겨서야  됩니다. 두 쪼가리인데 옳은 대로 빨리 옮겨서야 돼요. 인정 가지고 살살 목회  암만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모래 위에 짓는 집이요. 인정을 죽이려고 여러분들  냉정 인정이 전혀 없어.

진리와 영감으로 하려고 애를 써도 인정을 다 죽이고 나면 그 다음에 영감이  인정이 됩니다. 영감이 인정이 돼요. 영감이 인정돼. 그거는 인정 같지만 인정이  아니라 영감이라. 인정을 가지고 사람을 붙드는 그런 그 사람 피곤해 못 견뎌.

인정을 가지고 그래 한 것 인정이 한정이 있는데 얼마든지 있습니까? 영감은  한정이 없는 것이지만 이러니까 사람을 몇 사람 붙들고 고 몇 사람 몇 사람  붙어가 이래되고 그 다음에 확대해 나간다 말이오.

내 목회가 딱 한계 그 확대해 나가지 않느냐? 그 인정으로 하는거 이러니까 인정으로 하는 것이니까 나중에 인정과 인정이 박치기하니까 그다음에는 결국은 그대로 깨지고 만다 이거요. 두어둬도 안돼. 언젠가가 깨지고 맙니다. 인정이 만물보다 거짓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데 조석으로 변한 것에서 나온 것인에 인정으로 구성된 그까짓기 몇일 가겠소. 바까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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