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집회


선지자선교회 1981년 8월 11일 화새집회

 

본문 : 마 9: 9-13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지난밤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양심의 가책되는 그 가책 작용과 또 주님으로  말미암은 소원되는 그 욕망의 작용 이 두 가지 작용이 자기 속에 없으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이대로 살겠다고 아무리 작정을 해도 자기 혼자 날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믿음에 성공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 두 가지  뜨거운 작용이 마음에 있는 그 자에게만 주님은 찾아서 또 그 자와만 동행을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무 일없이 평안하게 지내는 그것보다 어떠한 환난을 만나서라도  이런 심정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런  별스러운 어려움을 만나지 아니하고 평안한 자리에서 자기 마음에 뜨거운 가책과  뜨거운 갈망이 있는 그것이 일등 복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아무리 미련해도 그렇지 안할 수 없는 어떠한 어려움이 임해  가지고 발버둥치는 그런 무슨 작용이라도 그런 형편으로서라도 자기에게 이 두  가지 심령 작용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일등이 안 되려면 이등이라도 돼야  되겠습니다.

 그것도 아닌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암만 불러야 동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썩어질 성공이나 하지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을 그 성공은 하지  못하게 되는 세상 성공 믿음 실패자 그런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느냐? 그저 등 따시고 배부르고 평안하여 아무런 감각이나 자극이 있을 만한  그런 현실을 가지지 못해서 시편 73편의 날마다 제 소원은 더 이루어지고  평안하기는 더 평안하고 모든 일은 튼튼한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제일 복 있는 사람은 이 공산 치하가 아닌 자유 진영에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기 속에 이 두 가지가 불붙는 그 사람이 복이 있고 6·25때에 그 마음속에  부르짖어지던 그것이 이 평안한 가운데서 있는 그 사람이 복이 있고 또 38선을  넘어올 때에 부르짖던 그것이 이 평온한 가운데에서 자기 심령 속에 있는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차라리 이북의 공산 치하에서 지금 매일 죽이려고 하는, 생명을  그들의 그 손아귀에 쥐여서 하룻밤도 편히 쉬지를 못하고 고통 가운데서 두 가지  이것이 그 심령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둘째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렇게 자유로운 데에서 이 두 가지 갈급한  그 마음이 자기 속에 없는 그 사람이 불행스러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는 참 저주의 사람이요 불행의 사람이요 행복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38선을 넘어온 사람이든지 또 자기가 6·25때 환난을 당해 본 사람이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개적으로 자기에게 어떻게 어려움을 당한 그런 때이든지  그게 지나가도 그때와 같은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평온한  가운데에서 그런 심정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평온한 가운데서 그것이 안 되면 하나님께서 어떤 징계를 주셔 가지고서  어떤 입장을 만나 가지고서라도 그러한 이 깬 마음, 이 갈급한 이 심령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구나 내가 이런 잘못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소원이 안 이루어지는구나 나의 잘못된 이것 때문에 원치 안하는 일이  이렇게 닥쳐오겠구나 나의 이런 잘못된 이것 때문에 껍데기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어 두고 갈 것 그런 것이 원하는 대로 좋은 것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원치  안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그것으로 시작해서 원치 안하는 병이 든 것도  그것이요 원치 안하는 사업이 안 되는 것도 그것이요 원치 안하는 모든 이런  저런 경제적으로나 또 자기의 어떤 그 행위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기 신체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자기의 맡은 사명감 면인  사명적으로나 모든 일에 세상을 떠날 때에 가져가지 못 할 두고 갈 것 다 썩어진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이런 것이 안 되는 것도 이것이 무엇이  잘못되어서 안 되는 것입니다.

 잘못돼서 안 되는 것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역부러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시련을 시키어 훈련시키시느라고 하시는 역사도 있지만 그것은 본인이  압니다. 본인이 그것 때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리니까 그럴 때에는 그런 것을  감당할 만한 그런 은혜를 또 주십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잘못된 그것을 인해서 생겨지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서 모든 원치 않는 잘못된 그것이 원인이 뭐이냐?  내가 그것을 받아야 될 만한 그런 원인의 잘못됨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나  사이에 잘못됨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일과 나 사이에 잘못됨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왔지 그것 없이 나온 일이 없습니다.

 잘못됨이 있어 가지고 그것이 나온 것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생겨지게 했느냐?  우리를 고생하고 절단 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아니고 모든 것을 없는  것으로 지으시고 모든 것을 당신의 것으로 가지고 계시는 분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 아니고 우리가 미워서 괘씸해서 우리에게 무슨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원치 안하는  잘못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그 원인인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인간과 나  사이에 사물과 나 사이에 잘못된 그것을 고치는 것은 영원 문제고 하늘나라  문제고 그것은 자기 구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문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보이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나타난 이것은 볼 수 없는 것, 나타나지 아니한 그것으로  인하여서 생겨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다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적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 세상을 떠날 때에 다 끝나지는 그런 원치  아니하는 것들도 또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 두고 갈 그런 좋은 것들도 이제 이  세상에 속한 좋은 것들 이 세상에 속한 아주 원치 아니하는 나쁜 것들 그것이 다  무엇이냐?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입니다. 볼 수 있는 그것은 볼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생겨진 것입니다. 볼 수 있는 그것은 볼 수 없는 그것이 원인입니다.

볼 수 없는 그것 때문에 볼 수 있는 그것을 나타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또 이것만이 아니고 이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인데 하늘나라에 속한 하늘의  것 이것을 세상 사람은 몰라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압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늘에  대해서 좋은 것 하늘에 대해서 아주 좋지 못한 것 자기가 믿음을 지키려 하다가  다 돈 때문에 믿음을 팔아 버리고 돈을 차지했고 믿음을 지키려 하다가 생명에  관계되는 일을 닥치니까 안 죽기 위해서 믿음을 팔아 버리니까 믿음은 팔았지만  목숨은 살아 남아 있는 것 이런 것은 다 하늘나라의 실패입니다. 영원한  실패입니다.

 그런 데에도 생명을 내놓고 아끼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키니까, 나는 믿음을  팔아서 이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지혜롭게 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이 죽음에서  살아났는데 이러고 난 다음에 또 뒤에 잘 믿지 이렇게 하는데 아 저 미련한  저것은 지금 이럴 때에는 안 믿는다 하고 뒤에 믿으면 될 건데 미련한 저것은  저렇게 세우다가서 이제는 이 놈은 죽인다 하고서 잡아 가지고 가 버렸으니 그만  그 사람 그래 죽었구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니엘처럼 살아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그것이 지나가고 나니까 머리를 들고 큰 소리를 하고 그만  믿음에 실패한 자는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숙이고 아무 기쁨도 없고  믿음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것들인데 자기가 어떠한 사람으로  행동해 보려고 했는데 그 행동이 안 돼 버렸어. 또 참 성령으로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 일이 안 돼 버렸어. 이런 것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실패입니다.

 같이 한자리에 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실패했는데 이 사람은 실패하지 안했어.

하늘나라에서 성공을 했어. 모두 다 신사 참배했는데 그 사람은 신사 참배를  안했어. 모두 다 6.25 때에 경거망동하고 믿음을 배반했는데 그 사람은 믿음을 꼭  지켰어 어떠한 원망 불평을 할 수 있는, 이번에도 비가 오니까 원망 불평할 수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떤 사람은 '아, 비가 온다.' 이 마음이 입에 쑥 나왔다가 그만  마음에 가책이 되어서 '비가 오고 안 오는 것은 만유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네 마음에 비가 안 오니까 마음에 걸리나 비위에 안 맞나 그러면 너는 비 안  주는 걸 원하고 원해봐라 보자 평생 내가 비를 안 줄 터이니까, 그만 비를  원하느냐 비 속에 넣어서 떠내려가 죽도록 내가 줄 수가 있다 뭐 어떻게 주면  좋겠느냐?' '주여 망상을 했습니다.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당신이 내 구원에  유익하도록 모든 것을 영원전에 작정하시고 없는 가운데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재창조도 하시고 친히 지정하셔서 친히 운영을 하셔서 하시는 일이니 모든 것이  내 지식을 초월한 사랑의 역사로 합력을 해서 구원을 이루는 것인 것을 내가  믿었습니다. 망상을 했습니다. 하면서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여 어떻게  하시든지.' 그러면 '비 온다고 어떻고 비 안 온다고 어떻고 햇빛 난다고 어떻고  햇빛 안 난다고 어떻고 요나 모양으로 그런 망령을 내가 부렸습니다' 하고서 그  기쁨에 넘치고 털끝만한 잘못도 자기 속에 가졌다가 뜨겁게 회개를 하고 이렇게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암흑 속에 파묻혀 가지고서 꼼짝 못하고 있는 그런  실패자도 있고 성공자도 있고 그렇게 이제 없어질 것들로서의 불행 없어질  것들로서의 행복 또 영원한 것들로서의 실패 영원한 것들로서의 성공 이것이 다  원인이 있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뭐이냐?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인간과 자기와의 관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이 피조물 모든 만물 만물과의 자기와의 관계 이 관계의 잘못에서  모든 원치 아니하는 것이 생겨졌고 이 관계의 잘된 데에서 모든 좋은 것이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타난 알 수 있는 이것 가지고 세상에 속한 것 신령에 속한 것 이  두 가지 종류, 땅에 속한 것 하늘에 속한 것 두 가지 종류 이 두 가지 종류를  내가 알 수 있는 이것을 가지고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을 나타내는 표적이라  이러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이것을 알려 주시는 이 표적으로 되어 있는  이것입니다. 이 표적은 뭐 하려고 이것 하겠소? 이 표적이 가르치고 있는 그 속에  있는 실상 이 실상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표적을 가지고 나타내서 원치 아니하는,  땅의 것이나 하늘나라의 것이나 원치 아니하는 것이 생겨진 것을 보이는  것이지요. 보이는 이 원치 아니하는 이것들을 생기게 하는 것이 이유가 뭐입니까?  이 이유는 자기가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자기 마음으로 깨달아 볼 수 있는 이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의 불행스러운 것을 그 사람에게 표적으로 보여줌으로  이것을 인해서 그 속에 잘못된 그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그 시간에 깨닫고 그것이 지나가기 전에 잘못된 그것을 이 보이는 이것을  인해서 이 표적을 인해서 그 실상을 자기가 찾아서 거기에 대한 보이는 것의  불행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의 불행 그것을 깨달아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로 잘 만들어 보이는 것들이 잘 회복되고 지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려는 것이요 이러니까 모르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또 그 속에 제가 궁금해서 볼 수 없는 그 세계에 잘 되어 있는 그것을 보이는  것의 좋은 표적을 인해서 그를 인해서 기뻐하고 잘됐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고  잘된 그것을 인하여 이미 보여지는 표적으로 잘된 이것을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또 새로 잘되도록 이것을 투자해 가지고 만들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일은 아무리 명철한 사람이라도 얼렁뚱땅으로 이렇게  껍데기로 생각해서 알아지는 것 아닙니다. 자기대로는 마음 다하고 성품 다하고  힘 다하고 시간 다하고 뜻 다하고 '주여 죽어도 좋으니까 어찌하든지 알려  주옵소서' 목숨 다해 어디든지 이것은 필요합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소유 다하고 이제 몸 다하지요 이제 이것을  다해야 이것을 다해서 생각해야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 되어지고 이것을 다해서  원해야 원하는 것도 되어지고 이것을 다해서 힘써야 힘쓰는 것도 되어지고  이것을 다해야 되지 이것 다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해서 자기의 소유 다하고 몸 다하고 생명 다하고 이러면 이  가운데에 다 들었어요. 시간도 이 소유 중에 다 들었어요. 지위 권세 명에 행락  쾌락 평안 사업 뭐 돈 지식 이런 것도 소유 속에 다 들었어요. 내 몸 속에 다  들었어요. 몸이라 말은 이 육이라 말인데 육은 마음하고 고깃덩어리하고 둘을  합해서 육이라 말합니다.

 오늘에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든지 가서 방송 좀 하십시오, 오늘에 필요한 것은  마음은 영인가 육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마음이 육에 붙어서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육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짐승의 마음의 차이는 있지만 짐승에게도 인간의 마음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짐승의 혼이라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마음이 영이요 영은 마음이라 이래 놨으니까, 자 마음은 육에 속한 육 속에 들은  육인데 영은 따로 있는 것인데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라 이래 놨으니 영은  빠졌습니다. 안 빠졌습니까? 빠진 줄 아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봅시다. 저 뒤에는  자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그 형상이 사람의 영입니다.

 생기를 불어넣으니 산 영이 되었다 할 때에는 영은 하나님의 모형대로 지음  받았는데 생기 불어넣는다 말은 영감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산 영되고  하나님과 연결 끊어지면 그 영은 죽은 영입니다.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도 끊어진 그걸 가지고서 얼마  동안 꾸불덩거립니다. 그것이 펄떡펄떡 뜁니다. 마치 닭을 잡을 때에 그 피를  흘리기 위해서 목을 척 끊으면 생명은 끊어졌지만 그 모든 몸에게는 아직까지도  그 살았던 힘이 남아 있기 때문에 퍼득퍼득 뛰고 막 꾸물거리고 하지만 영은  반면에 끊어지면 즉시 부동입니다. 절대 무작용입니다. 무기능입니다. 영은  하나님과 끊어지면 마치 저 뒤에 보니까 선이 끊어졌는가 전기불이 딱 꺼져  버리니까 그만 새카매져 버리더니만 금방 퍼뜩 또 이러면서 환해지네요. 이것  모양으로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을 제일 잘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과 꼭  같이 생긴 피조물인데 하나님과 꼭 같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나 이제 영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죽은 영입니다. 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영은 있지만 영의 작용은 하나도 하지 못한  죽은 영과 생명 끊어진 죽어 가고 있는 이 육과 이 둘로써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안 믿을 때의 사람입니다. 안 믿을 때는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죽어  가고 있다니,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점점 끊어져 멀어져 가고 있다 그 말입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죽은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고 이 마음은 하나님의 이 역사와 연결되어 하나님이  이 모든 피조물을 거머쥐고 역사 하는 그 역사에 충격을 받아 가지고서 피동  되는 것이 이것이 육입니다. 바람이 부니까 춥다 해가 돋으니까 덥다 이렇게  작용하는 이 마음 고깃덩어리 이것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과 연결이 되어져 가지고서 작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끊쳐졌지만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과 연결되니까 죽는 날까지 그래도 안  죽겠다고 미음을 마시고 죽는 그 시간까지 안 죽겠다고 호흡을 헉헉헉 하면서도  이 공기를 마시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육은 단일체가 아니고 종합체입니다. 육은 종합체요. 여러 면으로  합해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육이기 때문에 사람이 크면 세포도 차차 수가 많았고  이제 이 중량도 많아지고 자꾸 많아지고 그것이 죽을 때에는 몸뚱이는 그대로  있지만 자꾸 죽어 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꼬부라지고 체중도 줄고 또 키도  작아지고 몸집도 작아지고 자꾸 죽어져 그런 것이요. 또 중량이 어릴 때 중량만큼  있으니까 힘도 많이 줄어졌습니다. 그것이 벌써 부분적으로 자꾸 줄어가고 있는  것이요. 육은 단번에 죽는 게 아니고 이렇게 여러 차례를 거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육은 하나님의 창조물과 연결이 서서히 끊어집니다. 다 끊어지면 저는  죽습니다.

 또 이 육이라는 것은 구원을 얻는 것도 영은 단번에 구원이 이루지만 단일체기  때문에 단번에 구원이 되지만 이 육은 구원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수천 수만 수억 번을 통과해 가지고서 이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어떻게 되어지는가? 이 구원은 현실이라는 그 시기를 통해서  현실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썩어진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이것을 통해서  되는데 무슨 작용으로 되는가? 그 작용은 하나님이신 성령의 작용과 절대적인  전능을 가진 무인격체인 이 이치인 하나님의 뜻 요 진리와 예수님의 피 사죄와  칭의와 이 화목의 새 생명인 이 대속 이 세 가지 역사로 현실이라는 요 시기에  썩어질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이것들을 작용시켜 가지고서 이 육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의 구속 곧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구속이 되면 양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데 이 마귀라는 놈이 혼돈을 시켜 가지고 그만 영은 빼먹어 버렸소. 영은  영이라고 말하니까 성경에 있으니 영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영은 빼놨다 그  말이요. 마음이 대용됐으니까 영대용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거는 마음  고깃덩어리 이 둘이 사람이라 마음이 영이라 했으니 영은 빠져 버렸소 이러니까  이 둘을 주장하고 이 둘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뭘로  살았습니까? 저 이 목사님 한 번 대답해 보세요. 예. 안 믿을 때에는 육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영 빼놓고 지금 마음이 영이라 영이 마음이라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뭘로 살고 있습니까? 저 이 목사, 뭘로 살고 있소? 산 영? 저래 놨으니 암만  배워야 장 그거라. 여기 어린 아이 있으면 환하게 다 알고 있을 건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뭘로 살고 있지요? 영으로? 죽은 영이 뭐 사는가? 죽은 영은 가만있지.

송장 그거야 끌고 다니면 끌려 다니지 들려 다니지 메여 다니지 송장이 살기는  뭘 살아요. 죽은 것이 사요? 죽은 것이 작용이 있습니까? 산다 말은 활동한다 말  아니오? 그러면 뭘로 삽니까? 자 또 잊어 버렸어. 안 믿을 때에는 우리가 뭘로  살았느냐? 죽은 영, 죽은 영을 싣고 다니는 마음과 고깃덩어리 이 둘이 합해서  육인데 이 육이 왕이 되고 육이 주장돼서 살았습니다. 영은 죽은 시체를 영구차에  싣고 가는 것처럼 실려 돌아 다녔소. 죽은 영은 실려 돌아 다녔습니다. 아무  기능이 없어. 작용은 하나도 없어. '너희들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하는 그  말은 그 영이 죽은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움을 받았다'하는 것은 무엇이  살아났다 말이요? 그것이 성령과 진리로 중생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안  믿을 때에는 순전히 죽은 영을 싣고 다니는 이 마음 고깃덩어리 이 둘이 되어  가지고 둘로 된 그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서 뭐라고 했습니까?  겉사람 또 옛사람 또 육체의 사람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육체의 사람이  생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체의 사람이 소원 있소 없소? 육체의 사람이 비판  평가 경영 희로애락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체의 사람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에게  그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희로애락 또 모든 감정 경영 소원 욕심 그것이 고깃덩어리의 작용입니까  마음 작용입니까? 마음 작용입니까? 고깃덩어리 작용입니까? 마음 작용이지요.

그러면 육체의 생각, 육체의 사람. 육으로 살면 육 거기에 마음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예. 마음 들었지요. 그러면 거기에 산 영이 그 속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산 영이 있어도 작용은 없지요. 안 믿을 때에도 그 마음은 작용하지요.

그러나 영은 살아 역사 하는 것이 없지요. 죄로 허물로 죽었다고 말했지요.

 짐승은 사람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짐승도 사람 같은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추억이 있습니다.

계획이 있습니다. 연구가 있습니다. 짐승이 연구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과 꼭  같이 있습니다. 짐승은 영이 없다고 했는데 그 육만 있는데 몸만 있는데 그  작용은 우리 안 믿을 때의 생활과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좀 고급이고  저급일 뿐이지 좀 고급된 것 저급된 것뿐이지 다른 차가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오늘 20세기의 악령은 뭘로 수입을 보고 있느냐? 수입을 보고 있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영을 뽑아 가지고서 안 믿을 때와 꼭 같은, 중생 된  사람인데 육으로 살도록 만드는 것이 악령의 큰 역사입니다. 안 믿을 때에는 죽은  영이었는데 이제는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서 산 영이 됐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로  살라고 자꾸 이렇게 증거를 해 주는데 이 영이 주격이 되고 심신은 소유격이  되어지는 이 사람으로 사는 이것을 살지 못하게 하려고 악령은 쉬지 않는 정죄를  합니다. 이 마음이 영이 아니라고만 하면 당장 정죄요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하면 그만 당장 정죄 받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하면 정통이라고 환영을 합니다.

 이 문제가 지금 온 세계에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이 도리를 누가 밝혀 낼는지  이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입니다. 기독교를 마구 무더기 죽임을 죽이는 것이  이것이요 무더기 죽음을 죽고 있는 여기서 살려내는 구출 운동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급선무요. 뭐 도적질 말아라 살인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잔인하지 말아라 냉정하지 말아라 이것이야 불교도 있고  공산주의에도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이것 없는 줄 압니까? 그들은 이것도  철저합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을 가졌으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하나님 같이  되어지는 이런 큰 소망을 가졌으니 너희들이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렇게 했는데 도적질하지 말아라 봉사해라 섬기라 자비해라 동정해라 구제해라  범죄 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우상 숭배하지 말아라  허욕을 갖지 말아라 이거는 여러분들 어디에 속한 것이지요? 믿음에 속했소?  덕에 속했소? 지식에 속했소? 어디에 속했소? 이것은 덕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이 속에 믿음에도 속했고 지식에도 속했고 관련성은 되어 있지만 그것이  주로 속한 것은 덕입니다. 덕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보고 듣고 접하고 손해보지  않고 유익 되게 하는 그것이 덕입니다. 이건 다 덕에 속한 문제요. 덕에 속한  문제 이것이 불교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공산주의에 있소 없소? 무신론주의  유물주의 소련에서는 이거 말합니까? 해도 좋다 합니까? 이 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거기도 있습니다.

 이런데 이 제일 중요한 것이 영의 문제인데 이 문제를 정죄만 해 놓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될 이 시대의 신학자라고 하는 이 신학자들이 정죄만 해 놓고  해결은 지워주지 안하니 이로 말미암아 구원이 절단난 요 구원의 심판은  누구에게로 갈 건지 참 불쌍하고 가련하고 비참합니다.

 여러분들! 영은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영이 아닙니다. 영은 양심이 아닙니다.

양심은 영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에게 양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있어. 그들도 철두철미한 것은 믿는 사람보다도 더 철두철미 해요.

양심 있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양심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양심의 작용이  조금도 없습니까 양심의 작용이 있습니까? 이래 놓으니까 죽으면 무슨 작용 있어,  안 믿는 사람은 영이 죽었는데. 이래 놓으니까 신학자들이 구변쟁이들이 입술만  까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재끼는지 이래 놓으니까 여기에 딱 난제에 봉착되니까  말하기를 '아, 양심이 영이라 마음이 영이라' 해 놓으니까 죽었다 했는데 우리는  살았다 했는데 그들과 우리와 뭐 다를 게 있어야지 이러니까 말하기를 안 믿을  때도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은 것이 아니라 조그매 남아 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남아 있어서 그 남아 있는 그 안 죽은 영이 영 부분에 안  죽고 좀 남아 있는 것이 있어서 그게 들어서 안 믿는 사람에게도 도덕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이 다 죽지 아니하고 좀 남아 있어서 이렇다 하는 그것이  대 신학자의 주장입니다.

 여기에 신학교에서 신학한 사람들 못 배웠소? 나는 그걸 주장한 그 사람 이름은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모 신학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렇게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는가 없는가.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제일 지금 급급한 것이 영은  무엇이며 마음은 무엇이며 육은 무엇이며 이것부터 갈라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양심은 영이 아니라는 것 영은 마음의 양심이 아니라는 것, 영은 단번에  살아서 성령으로 한 덩어리입니다. 성령하고 동행합니다. 그게 로마서 몇 장에  있습니까? 예 8장 몇 절이요? 16절 내가 한 번 읽어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이랬으니까 성령과 우리 중생 된 영이  동행입니까? 동행 아닙니까?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또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또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면 우리 몸의 구속 이 몸은 양자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아직까지 안 됐습니다. 양자 될 것을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이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종의 영을  받지 안했으니까 이 종은 죄의 종을 말합니다. 종을 받지 아니하였고 또 하나님  앞에 그 권속이 되지 안하고 소속만 돼 가지고 있는 걸 말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러면 영은 지금 양자가 됐습니다. 또  영은 살았지만 그 말씀 또 어디에 있습니까? 10절입니까?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러면 몸은 아직까지 죄 아래 있고 영은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영이니'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영과 육의 문제를 이것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유력한 박사 학위를  몇 개 가진 이런 간판이면 이 세상 간판만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간판만 따라 다니지 간판 없으면 암만 말해 봤자 지금 말해야 예수님이 와서  말해도 간판 없으면 헛일입니다. 다 내쫓을 것이요. 간판이 제일이니까 간판 있는  사람들이 영과 육을 이것을 구별해서 갈라놓고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안하고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중생된 부분도 있고 아직까지 미중생된 것도 있어서 성화된  것도 있고 미성화된 것도 있으니 미성화는 성화되어서 몸의 구속을 이루도록  이것을 구별해서 밝히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것이 필요하지 그거  외에 뭐 도덕설교 암만 잘해봤자 그것 필요 없습니다. 지금 때가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육덩이로 암만 소원을 이루고 좋고 해도 그것도  얻어봤자 찍해야 두고 갈 것 없어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급선무가 영의 문제입니다. 자 답을 해봅시다. 내가 손을 들어라 하는  데 손을 드십시오. 중생 된 사람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 손 한 번  듭시다. 많이 들었네. 중생된 사람도 범죄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 손 듭시다.

많지를 못하네요 네, 놓읍시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이 범죄 안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듭시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 손  한 번 듭시다. 들어야 됩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합니다. 영혼은 영이  아닙니다. 성경에 영혼이라고 기록한 것은 영이 아니고 그 중생된 사람들의 그  마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범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만이 범죄할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 손 듭시다. 네, 이것입니다.

중생된 영만이 범죄할 수 없습니다. 범죄하■■■않습니다.

 중생 시키시기를 살리기를 뭘로 살렸소? 성령과 진리가 살렸습니다.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 셋으로  살아나서 예수님의 피로 살아날 수 있는 모든 기간이 다 뺏겨졌고 완전히 사죄  칭의 하나님과 화친 이것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졌지만 살아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것은 성령과 진리가 이 중생 된 영을 연결시켜서 책임졌습니다. 성령과  진리가 영을 책임지고 영원히 성령과 진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이 죽은  영을 살렸습니다.

 살렸는데 이 산 영이 진리와 성령과 끊어지면 이 산 영이 죽을 수 있습니까 안  죽습니까? 똑똑히 구별해요. 죽을 수 있습니다. 죽습니다. 아무리 중생 된  영이라도 성령과 진리와 그 관계가 끊어지면 죽습니다. 관계가 끊어지면  죽습니다. 억만년 살았다 할지라도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 중생 된 영이 성령과 진리와 그 관계가 끊어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목사님, 한 번 대답해 보십시요. 네, 없습니까? 끊어질 수가  없습니까? 어떻게 끊어질 수가 없습니까? 끊어지는 것은 죄로만 끊어지고  불의로만 끊어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로만 끊어집니다. 이 셋으로 끊어지는데  다시 죄와 불의와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이 성령과 진리와 우리 영과 그 사이에  이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이것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영원히 죄가 우리 영과 하나님과 그 사이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예수님이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불의가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영과 그  사이를 가로막지 못하도록 나타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영과 불목한 이 불목이 다시는 그 속에 나타나지를  못합니다. 불목 시킬 수가 없습니다. 불목을 시킬 수가 없고 또 불의로 가로막을  수가 없고 죄로 가로막을 수가 없도록 예수님께서 이것을 완전히 처리해  버렸습니다. 완전히 처리했습니다.

 이 죄와 불의 하나님을 배반한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을 처리하는 데에는  권능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능의 권능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봅시다. 순 가짜들! 권능 가지고  처리 못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가지고도 처리 못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호령이나 하나님의 뜻으로 이걸 없이 처리해 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봅시다. 네. 못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없애 버리는 데는 무엇으로만 없이 할 수 있습니까? 뭘로 없앨 수  있소? 대형을 받고 불의의 형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된 그 값을 받고 이 값을  받는 이것 하나로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거 하나로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거 외에는 처리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생 된 영은 하나님과 진리와 요렇게 딱 결합이 돼 버렸는데  결합이 되어서 한 덩어리가 되었는데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와 하나가 됐기 때문에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와 꼭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이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과 진리와, 성령은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중생 된 영과 요 결합이 된 요 결합은 무엇으로만 요 결합을 끊을 수 있습니까?  죄로만 끊을 수 있습니다. 죄가 그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또 불의로만  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이 불목으로만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죄  불의 하나님과 불목된 이 세 가지로 말하나 이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한  덩어리입니다. 이것을 다시 나타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전멸시켜 버렸어. 완전히  소멸을 시켜 버렸어. 뭘로 완성인고? 예수님이 여기에 대한 형벌을 완전히 다  받으셨어. 계약으로는 한 사람의 범죄로 정죄된 것을 한 사람의 순종의 의로  해결지웠고 이 역사에 무한한 역사를 한 사람과 완전하시고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이 하나님이 이 형벌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이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 영원한 이  생명 역사가 계속되게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완전 소멸이 됐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무슨 다른 이종교에도 있는 그런  것을 말 잘해서 눈물이 줄줄 흐르도록 이렇게 감동을 시키면 큰 은혜인 줄  알아도 그것은 껍데기 은혜요 어린 은혜입니다. 암만 이렇게 성자 성녀라고 해도  속에 교리 틀렸으면 마지막에 정죄 받아서 다 절단나 버리기 때문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 그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그것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 정죄를 받지 않을 이  교리와 신조에 근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새 정통이라 하면서 교리 교리 말해도 교리는 죽었소. 교리는 생명이  없습니다. 옛날에 영 문제가 나오기 전에는 그것도 못한 시대기 때문에 어릴 때는  됐지만 오늘은 20세기의 원자 수소가 발명된 이 때에 영이 뭐인지 이것을  발명하기 전에는 20세기를 감당 못합니다. 오늘은 교리가 영이 뭐이며 육이  뭐이며 마음이 뭐이며 고깃덩어리는 뭐이며 예수님의 대속이 어디까지며 어떻게  중생 됐으며 어떻게 이 중생이 다시 끊이지 않는 영생이 되는 이것이 중요한  교리입니다.

 이거 모르는 자는 교리는 모르는 자입니다. 땅에 말하면 이단이라고 정죄할  것이요. 얼마든지 정죄를 하십시오. 얼마든지 정죄를 하십시요. 이단이라고 정죄만  해놓고 왜 이단이라는 논문을 내지 않소?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단이라는 논문이 나오면 그 논문에 대해서 내가 밝힐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나와서 말을 해야 되지 말하기 전에 자꾸 말을 하면 그들과  대적이 되어져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와요. 이게 뭐고? 그게 빵떡이라 했다  말이요. 빵떡이라 하거들랑 그만 암말도 말고 가만히 놔두고 깨달을 수 있도록  제가 먹어보고 씹어보니까 아니거든 그럴 수 있도록 놔둬야 되지 이게 수건인데  빵떡이라 수건이다, 수건이다, 빵떡이다 하고 심한 시비를 해놓으면 그 사람이  이걸 수건이라고 하고 돌아오기는 열적고 밋밋하기 때문에 그 옳은 길을 막는다  그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중생 된 영이 어떻다는 것을 많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깨달을까 싶어서 도로 이것이 옳은 길을 방해할까 싶어서. 이러니까 누구든지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건 이단이라는 그런 논문을 내면 이제는 거기  대해서 또 많이 나와야 되겠지. 중생된 영을 가진 사람으로서도 심신은 완전히  성화가 되지 못한 것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이지만 이  심신으로 된 육이 있기 때문에 범죄를 합니다. 중생된 사람도 범죄합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를 합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이라 말은 중생된 사람의  마음이라 말입니다. 중생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말하는데 그 영혼도  범죄합니다. 그것도 내나 마음이기 때문에 범죄합니다. 중생된 영만이 범죄  안합니다.

 중생 된 영만이 범죄 안한는데 범죄 안하는 이 중생된 영이 아직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지 못한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나게  하려고 중생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이 몸의 구속입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또 23절에 이래 놨지요.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처음 익은 열매란 성령의 처음  결과 받았다 그 말이요. 성령의 처음 결실이 무엇인가? 성령의 처음 완성이  뭐입니까? 우리에게 성령의 완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령의 완성이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까? 몸에 있습니까? 우리 영으로는 성령의 완성이 됐습니다. 우리  영으로는 성령의 완성이 왔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 그 말을  결실했다 그 말이요. 이 우리 고깃덩어리가 예수 믿으면서도 이 교파가 저 교파  욕하고 저 교파가 이 교파 욕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이 사람이 저 사람하고  대립이 되고 이것 모양으로 중생된 영도 이렇게 이런 일이 중생된 영들끼리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제 말만 할 게 아니라 깨달아야 돼요. 깨달으면 불이  나와요. 무엇 때문에 예수 믿어 죽는 것이 두렵고 무엇 때문에 예수 믿는데  평안한 것을 원하고 자꾸 좋은 것만 원해 되겠습니까? 지나가는 세상에 그분  앞에 갈 걸 생각하면 다만 얼마라도 주를 위해 고생 좀 더 하는 게 낫지.

 사랑하는 자가 왔는데 그 시장에서 이 반찬을 사려고 생명을 내놓고 가서 어째  사가지고 오지 참 죽을 결심을 할,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양판치고 가야 이  반찬을 사 올 수 있지 그리 아니하면 사 올 수 없는 그런 반찬이 있는데 보통  사람 왔을 때에 그 반찬 사 올 수 있겠소? 그러면 자기가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 자가 왔다고 하면 그 사람이 그 반찬 사러 가겠소? 그 반찬 사러 안  가겠소? 사러 가는데 그렇게 사기가 어려운 반찬이 없는 게 좋소? 그렇게 사기  어려운 반찬이 있는 것이, 그런 반찬 살 수 있는 그런 시장 있는 것이 자기에게는  기쁘겠습니까? 없는 게 기쁘겠습니까?  자 이 남반들은 생전 섬김만 받아 놓으니까 그걸 잘 모를거요. 어떻게 해야  이분에게 내가 있는 성의를 다하고 참 어떻게 대접을 할꼬?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아니하고 생명도 바치고 싶은 그런 손님이 왔으면 그런 시장이 있는 게  좋겠소? 없는 게 좋겠소? 시장 보러 갈 때에 그 시장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  시장이 있는데 안 사가지고 오면 내가 생명을 바치기까지 대접을 안하는구나 이  표시가 날 터이니까 이 시장이 없었으면 좋을 건데 이 시장이 있으니까 안 살  수도 없고 참 그거 기가 차네 이렇게 되겠습니까? 그 시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겠습니까? 없으면 싶으겠습니까?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보세요. 네, 이겁니다. 이거요. 이러니까 주님 앞에 가서 만날 걸 생각하니까  세상에 예수 믿어 예수 믿는 일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이 훨씬 좋다 그 말이요.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 나만 하니까 좋다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주를 더 자기 것을 바쳐 섬기려고 하니까 더 힘들여 바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으니까 좋다 이겁니다.

 중생 된 사람은 범죄합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합니다. 성경에  영혼이라고 기록한 그것은 마음을 말한 것입니다. 중생된 영을 가지기는 가졌지만  그 마음은 내나 제 마음대로 하는 그런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고 말했고  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중생된 영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의  눈도 귀도 입도 손도 발도 마음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중생된 영만은 범죄할  수가 없습니다.

 왜 범죄를 못합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끊쳐지지를 안했기 때문에 그가 움직이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으로 움직이고 진리로만 움직이기 딴 것으로 움직이지 안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의입니까? 죄입니까? 움직인다는 그 영은 중생 된 영의  움직이는 것은 누구의 움직입니까? 하나님의 움직임 또 진리의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이 중생된 영이 하나님과 진리에 딱 붙어서, 이 수건은 말이요 이래 이래  하니까 이 수건이 움직입니까? 내가 움직이고 있습니까? 이 수건 제 힘으로  움직이요? 내 힘으로 움직이요? 내 힘으로 움직입니다. 이 수건은 영이라 말이요.

수건은 움직이고 있는 이 손은 하나님이라 말이요. 예를 들면 비유컨데 이걸 딱  잡고 있으니까 이 움직임은 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영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움직이지 독단으로 움직이는 그런 역사를 할 수 없습니다.

 실은 인간의 영은 죄 지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은 악령에게 이용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은 불의를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영이 죄를  지었습니까? 영이 소유하고 있는 그 육이 죄를 지었소? 이제 이 면장이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면직원이 죄를 지었으니까 그 면장이 범죄한 면장 됩니까 안  됩니까? 되지. 이 면직원이 의를 막 행했습니다. 유력한 모범 면직원이 됐습니다.

면장은 하나도 안했지만 그 면장이 의 행했다고 상급 받습니까? 상급 받습니다.

 영은 이 심신으로 된 이 소유가 범죄한 그 주격 책임에서 범죄 했습니다.

선악과는 누가 따먹었소? 육이 따먹었소? 영이 따 먹었소? 육이 따 먹었소. 그때  마음이 동참했소? 안했소? 동참했어. 심신으로 합한 것이 육이라. 이러니까 이  수건이 내 손에 불끈 쥐였기 때문에 바람이 와서 이 수건 뺏들려면 뺏들어 갈 수  있습니까? 나보다 약한 자가 와서 이걸 뺏들려 하면 뺏들어 갈 수 있습니까?  나보다 강한 자가 오면 뺏들어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뺏들어 갈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 중생된 영을 진리와 이 하나님이 딱 붙들고 있습니다. 붙들되  진리대로 붙들었고 하나님대로 붙들었고 하나님이 이 진리대로 딱 붙들었으면  하나님과 진리대로 딱 붙들어 놨습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과 진리의 속에서 우리의 영을 빼내야 이 마귀에게 이용되어  죄를 이용되어 죄의 종이 될 수 있지 죄가 사용할 수 있고 마귀가 사용할 수  있지 이런데 이것을 뺏들려면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와야 뺏들겠습니까?  진리보다 강하고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와야 뺏들겠습니까? 뺏들어야 되겠는데  하나님과 진리보다 강한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요. 없습니다. 이러니까  뺏을 자가 없소. 아무도 뺏들지 못해. 그러는데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뺏들지  하나님보다 강한 자 아니면 뺏들 자 없어. 여기서 뺏을 자가 없어. 하나님과 그  관계를 끊을 자가 없어.

 이런데 하나님 외에 끊을 것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보다 강하지  안해도 끊을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보다 강하지 안해도 끊을 것들이  있습니다. 끊을 것들이 있습니다. 뭣 보니까? 처음에 끊은 것 보니까 처음에  무엇이 끊었지요? 죄가 끊었지요. 또 무엇이 끊었지요? 불의가 끊었지요. 또  무엇이 끊었지요? 하나님 배반하는 것이 끊었지. 도망쳐 숨어 버렸거든. 배반하는  것이 끊었다 말이요.

 그런데 이 셋이 오면 우리 중생 된 영과 하나님 사이를 끊을 수 있는 원수가  셋이 있으니 이게 밤에 살며시 잘 때 와서 딱 끊어버리면 말 안 납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진리와 우리 영 사이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죄 불의  하나님과 불목 하나님을 배신한 것 배반한 것 이 세 가지가 끊을 수 있는데 이  세 가지가 오면 끊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면 끊을 수 있는 줄 아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나도 들어요. 오면 끊지. 오면 당장 딱 끊어버리지. 끊으려고 올  수 있는 이 죄 불의 하나님과 불목된 이 불목 이 세 가지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남아 있습니까? 소멸됐습니까? 완전 소멸됐습니다. 완전  소멸됐소.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에 완전히 소멸됐기 때문에 이 패전병같은 것들입니다.

지금 예수 안에서 예수님께서 이걸 지금 다시 시험할 때에 이용을 하십니다.

점령을 해서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이용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죄 마귀  이것이 우리에게 역사를 합니다. 역사는 하지만 지금 지성과 지공의 활용할 수  있는 끊을 수 있는 그런 세력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 세력을 가진 것은 왕권을  가진 것이요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 죄하고 마귀 이것이 주님에게 전능을 받아서  주님의 그 이용물이 됐소? 안 됐소? 주님의 이용물입니다. 주님의 이용물이 됐소.

자, 이것이 왕권을 가진 죄입니까? 이제 예수님에게 이용당하는 예수님의  소유되어 있는 죄입니까? 소유되어 있는 죄입니다. 마귀가 왕권을 가졌습니까?  지금 예수님에게 패전해서 예수님의 소유가 되어 있는 죄입니까? 소유된 종이요.

이것은 똑똑히 구별해서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완전히 소멸했는데 소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소멸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죽으심이 껍데기가 있고 알맹이가 있고 또 알맹이가  있습니다. 알겠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껍데기가 있고 알맹이 있고  알맹이 중에 알맹이가 또 있습니다. 우리의 죄 불의 하나님과 불목된 이것을  형벌로만 없앨 수 있습니다. 딴 것으로는 없앨 수 없어. 여기에 대한 값을 완전히  형벌 받아서 없앴습니다. 계약법으로는 우리 대표한 사람이 범죄 함으로 정죄  받은 것은 우리 대표가 된 한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해결됐고 또 이렇게 해결된  이것을 실효적으로 우리에게 효력을 나타내서 산 자대로 나타내는 것은 살은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여기에 같이 이 대속의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완전  대속이 되어진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것을 끊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형을 받아서  소멸시켜서 완전히 절단을 내버렸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역사 중에 알맹이 중에 알맹이입니까? 중간 알맹이입니까? 껍데기입니까?  뭐입니까? 알맹이 중에 알맹이로 아는 분 손 한 번 듭시다. 또 드네. 아닙니다.

그러면 중간 알맹이로 아는 사람 손 한 번 듭시다. 맨 껍데기로 아는 사람 손 한  번 듭시다. 뭐인지 모릅니까? 네 정직하요. 맨 껍데기입니다. 그러면 맨 껍데기로  아는 사람 손듭시다. 맨 껍데기 대속, 네 맨 껍데기 대속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값으로 죽으신 것만 항상 말하는 이것만이 대속인 줄 알고 이것만 떠드는  교리가 전부입니까? 아니오. 거기서 알맹이로 들어가야 됩니다. 이 교리도  아직까지 세계 조직 신학에 잘 나오지를 안했습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우리의 죄 우리의 불의 우리의 불목 이 값을 당신이  형벌 받는 것으로써 이것을 완전히 소멸시켰습니다. 이 형벌은 고난인데 예수님이  못 박히시고 창으로 찔리시고 피를 흘리시면서 이 우주적인 이 고난 받는 것은  우리 껍데기 대속입니다.

 그보다 진짜 더 어려운 대속이 속에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한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값을 인해서 형벌 받으신 그 형벌만이 아니오. 형벌 받으신 것은 우리에 대한  껍데기 대속이요 알맹이 대속이 또 안에 있습니다. 요건 요 다음 시간에 기회가  있으면 말하겠습니다.

 죄는 뭣이 죄지요?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근거해서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 또 법도를 어긴 것 이것이 죄입니다.

순종함에 부족한 것 어긴 것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근거한 법을 기준  해서 정죄가 된 것입니다. 불의는 원죄가 범죄한 것이 불의입니다. 불의는 벌써  자기 중심자가 됐고 자기 위주자가 됐고 자기가 왕이 됐습니다. 자기 주관, 자율,  자기 지식,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서 행동한 것이 불의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미달된 것이 죄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은 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달라붙었으면 되는데 하나님 배반한 것이 이것이 하나님과  불목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숲속에 피해서 도망친 그게 하나님 배신이요  하나님 보호가 이제 떠났으니까 무화과나무 잎사귀 입어서 우리를 호신하자 하는  그것이 하나님 배신입니다. 세 가지가 따로 있습니다. 이것도 구별하면 그게 다  죄라 어찌하든지 두루 뭉실을 좋아합니다. 어찌하든지 도매금을 좋아하요.

어찌하든지 도매금을 좋아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도매금 좋아하는 것이  마귀 역사요. 구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성령은 구별하는 걸  좋아합니다. 우리 이름이 뭐이요? 성도. 성도라 말은 구별하는 무리라 그  말입니다.

 구원이면 구원이지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그러면 건설구원 기본구원을  분리하지 아니하고 한 번 해보지 거기에까지 들어가 보지 분리 안하고 말이  되는가? 분리 안하면 알려줄 수가 있는가? 거기에 가지도 안하고 중간에서  어멀멀 하고서 머뭇머뭇하니 네가 가든지 어찌하든지 해 버리면 좋겠는데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게 머뭇거리는 거기니까 이 구원에  분리를 시킬 필요가 없지 들어가면 분리 안 시키면 안 돼. 이러니까 머뭇거리는  사람들이라. 여러분들! 하나님 따라 갑니까? 진리 따라 갑니까? 간판 따라  갑니까? 여러분들이 사람 말 따라 가요? 하나님 성경 말씀 따라 가요?  어떤 사람이 이 집회에 올려 하니까 막 가고 싶어서 이렇게 가려고 하면서 '나만  갈 게 아니라 누구도 데리고 가야 되겠다' 하고 데리러 가니까 '어라, 그 이단이라  가면 큰일난다.' 누가 그러더냐? '우리 목사가 이단이라 하더라 이단이다. 거기  가면 큰일난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그만 갈 마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만  가라앉아 버렸소.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람 말 듣는  사람이요? 성경 말씀 듣는 사람이요? 그 속에 가고 싶어 영감 받아 사는  사람이요? 인간의 충격 받아 사는 사람이요? 인간의 충격 받아 사는 사람이라.

안돼. 소용없어. 예수 믿는 사람은 잘나야 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독단으로 나갈  수 있는 이 독자성을 가진 사람이 돼야 돼. 사선을 넘어가야 돼 생명 그런 것  아끼지 안하고 이제 이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라야 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천국을 너희에게 주겠다 천국 열쇠 교회  세우겠다" 하는 반석 그게 뭐입니까? 아버지께서 너에게 가르쳐 주신 그대로 하는  그것이 반석이요 그것이 열쇠입니다. 그것이 모든 해결 다 짓습니다. 그 위에  영원히 멸망 받지 안할 것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문서 계시 외부 계시입니다. 문서 계시를 타고 들어 가면  영감계시가 있으니 이것이 속에 문서계시의 알맹이입니다. 문서계시 안에  영감계시 아무리 문서계시대로 해도 영감이 이를 쳐다보지 않으면 헛일이요.

문서계시대로 하기는 해도 행하면서 속은 흉측한 마음을 가지고서 행할 수  있습니다.

 문서 계시대로 행하면서 장가 갈 욕심 가지고서 행하는 것도 있고 시집 갈 욕심  가지고서 행하는 것들 있고 저래야 저 시아버지 될 사람 시어머니 될 사람들이  좋아서 날 며느리 볼 것이다 사위 볼 것이다 요래야 우리 전주가 날 돈을 대어  줄 거다 요래 요래야 요 일을 속에 흉측한 도둑이 들어서 성경 말씀 끄트머리에  얼마든지 행할 수 있어. 인간은 속지만 성령이 속습니까? 성령이 그때 도장을 안  쳐줘요. 성령이 인을 쳐주지 안해. 영감이 함께 하지 안해. 이러니까 진리대로  행할수록 영감이 같이 해야 돼. 외식을 떨어 버려요. 껍데기만 돼요. 간판 보고  믿는 사람은 간판쟁이지 예수 믿는 사람인가. 아무리 말해도 박사면 죽는 말을  말해도 박사가 말했는데 맞겠지 목사가 말하면 죽는 말 해도 목사가 말하니  맞겠지 전도사가 말하면 '아이, 전도사 이까짓 게' 합니다. 목사 전도사가 말해야  되지 주일학교 학생■■■말하면 학생 네까짓게 뭘 아느냐? 응? 거기도 영감과  진리가 나오면 복종해야지 외식을 떨어 버립시다.

 자, 시간이 많이 갔으니까 이제 여러분들이 배운 말씀을 기억해서 자기를  변화시켜요! 고쳐요! 이 말씀으로 사람이 고쳐지면 따라서 이 모든 것 다  되어지는데 사람 병 고치면 거기에 따른 경제병도 사업병도 활동병도 취직병도  출세병도 권세병도 지위병도 다 고쳐집니다, 사람병 고쳐지면. 이러니까 이  사람병 고치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가 깨닫고 그대로 참되다 인정을 하고  그대로 자기는 지식하고 그대로의 사람으로 그대로의 생활을 하면 요것이  변화되어지면 거기에 따라서 그 부작용으로 일어났던 모든 여파가 완전히 다  없어져 버려요 다 절단 나 버려요.

 이러니까 여기서 고깃덩어리의 소경을 못 고칠 것 없고 앉은뱅이가 못 일어설  것 없고 문둥이병 못 고칠 것 없고 암병 못 고칠 것 없는데 다른 것 잘 믿어도  그 속에 원인된 그 놈이 탁 절단이 나야 요것이 없어지는 것인데 그게 절단 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아요. 병은 대개 죄값인데 죄값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 있는 것도 있기는 있소. 있지만 대개는 죄병이라.

 이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요 배운 것을 놓지 말아요. 여기서 단단히 기억하고 살려서 꼭 잡아야 되지  나가면 마귀라는 놈들이 지금 여러분들 속에 배운 것을 막 파헤트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데 뺏겨 버리면 죽어 헛일이야. 이러니까 여기서 배운 것을 말하지  말아요. 말하면 뺏겨요. 말하지 말고 자기나 살아요. 자기나 요대로 살면 요대로의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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