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거창집회


1981년 8월 11일 화전집회

 

본문 : 마 9: 9-13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 후에 우리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자기가 깨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요, 또 자기가 소원하는 진리와 영감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변화하는 현실에서든지 영감과 진리를 깨달은 이대로 살고자 하는  이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요 이것이 참사람의 소원이요 이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자유요 이대로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그 불의의 길을 악령과 죄악의  세력이 우리를 강제로 행하게 할 때에 행하는 것이 종노릇입니다. 그것이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마귀와 죄에게 종노릇하던 우리를 거기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불렀습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 안에서도 왕노릇은 못합니다. 왕노릇 못한다 말은 마귀가 믿는  자 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수가 있으나 자유로 하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중생 되기 전에는 악령이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제 마음대로 자유하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 안에 왕노릇한다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왕노릇하지 못하고 왕권을 마귀가 빼앗겼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와서 왕노릇은 못하지만 이 마귀가 우리 밖에서  사람을 통하든지 어떤 물질을 통해서든지 우리를 미혹시킬 때에 우리가 그  미혹을 받아서 범죄하면 그때부터 마귀의 것이 됩니다. 마귀의 것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마귀가 종으로 잡아서 얼마든지 자유로 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마귀가 왕노릇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만 마귀를 물리치고 죄를  물리치면 죄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절대성을 가지고 내주하지는 못하고  밀려나가야 되고 쫓겨나가야 합니다.

 안 믿을 때에는 이것이 아무리 해도 밀려 나가지 아니하고 쫓겨 나가지  아니하고 있던 우리들입니다. 그때는 마귀와 죄가 우리 속에 왕노릇했고 지금은  왕노릇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 밖에서 우리를 꾀우고 달래고 돈을 줘서  꾀우고 권세를 줘서 꾀우고 친한 친구를 통해서 꾀우고 이렇게 저렇게 자꾸 이  마귀가 꾀우다가 한 번 꾀여 넘어가면 그만 그 다음에는 마귀의 것이  되어가지고서 마귀 마음대로 우리를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악령은 우리 신앙생활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도달하지 못하도록  미달되도록 방해를 하다가 안 되면 왈칵 밀어 가지고 지나가도록 방해를 합니다.

또 오른쪽으로 치우치도록 방해하다가 안 되면 왼쪽으로 치우치도록 방해하고  옆으로 흔들기도 하고 밀고 당기기도 하고 이렇게 악령은 백방으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악령이 우리에게 노력을 하고 죄가 우리에게 역사를 하는 것은 다  한정이 있습니다. 주님이 한정을 정하신 그 한정 범위 내에서 하지 그 범위를  넘어서는 우리에게 역사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렇게 악령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전부  자기의 군병으로 자기 것이 되어 가지고 자기의 일꾼으로 서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믿음 되지 못하도록 좌우로 전후로 상하고 치우치도록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불신자들의 그 움직임은 전부 악령이 주재를 해 가지고 움직여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리저리 치우치고 삐뚤어져서 안 되도록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언뜻  생각하면 마귀하고 하나님의 성령님과 둘이 서로 싸우는 싸움이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기 쉽고 또 눈에 보이는 마귀의 세력이 커지고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세력이 작아지고 적어질 때에는 마귀가 이기고 하나님의  성령이 진 것 같이 그렇게 잘못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악령과  죄는 우리에게 왕노릇을 못하도록 이제 예수님께서 승리했기 때문에 과거의  악령과 죄악이 우리 속에 왕노릇하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왕노릇하게 됐습니다. 주님과 진릭 우리 속에 십자가의 대속이 우리 속에  왕노릇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를 보증했고 또 우리 안에  왕노릇하십니다.

 그러면 악령은 지금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 악령은 우리를 구원하신  승리의 주님이 부리시는 악령이 되어 있습니다. 부리시는 악령 쓰시는 악령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악령과 죄악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명령  하에서만 움직이지 독단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좁은 범위에서 전체면을 계산하지 안하고 부분면만 계산을 하면  악령은 기독교를 방해하고 반대하는 악령과 죄악의 역사라 세상 역사라 이렇게  보여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악령과 죄악과 세상은 승리하신 주님의 것이 되어졌기  때문에 승리한 이후로는 주님의 구속을 위해서 어디까지나 이용만 당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또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용을 당하면 어떻게 기독교를 박멸을 시켜서 소련이나 중공이나  이북이나 월남이나 루마니아나 이런 데에는 전부 그 세력들이 예수교를 다 없애  버리고 그렇게 저희들의 세력이 관영하게 되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아니하는 이 거짓부리 외식된 자들을  채찍을 갈겨 가지고서 참 바로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역사도 있고 또 믿음  없는 자가 자기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본인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역사도  있고 참 믿음의 사람인데 세상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  믿음이라는 것을 한 번 보여주시기 위해서 믿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서 믿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시는 역사도 있고 또 믿음은 세상에  어떠한 일이라도 그 일이 해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죄악의  역사가 믿음 앞에서는 결국은 이용을 당해서 믿음의 능력이 위대하다는 것만  나타내고 믿음의 가치를 드러내고 믿음의 권위를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에게  보여주는 그 역사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과 죄악의 세력의 운동으로 인해서 믿음 없고 있는 그  진상을 드러내서 알리는 역사를 해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시고 또 그 믿음의  진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우하시는가 믿음의 참을 어떻게 대우하시며 믿음의  거짓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는가 하는 그런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또  하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일면을 우리가 보는데도 그 죄악의 세력이 다니엘을 해쳤지만  다니엘이 그 믿음을 배반치 아니하고 지켰을 때에 결국은 다니엘을 해하려는 그  모든 운동들은 결과적으로 다니엘만을 위하는 운동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또 모든 죄악과 악령의 세력이 요셉에게 온갖 해를 가했지만 해를 가한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 축복의 위치를 찾아가는 데에  도움만 줬지 해하지는 하나도 못했습니다. 이래서 '이 풍랑 인해서 더 빨리  간다'고 찬송을 지은 사람도 다 이런 깨달음에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전체적으로 모르면 안됩니다. 또 쓸모 있어서  정해 논 한정해 논 그 범위 속에 파묻히면 안 됩니다. 이 범위 안에서 활동할  때는 활동해도 그 범위밖에 또 범위가 있는 것을 알아 언제나 우리는 전체를  상대해 가지고 부분을 바른 관계 맺도록 해야 되지 부분에서 그 전부를 모르면  그 사람은 올바른 생애를 살 수 없습니다. 또 전부에서 부분을 몰라도 실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 진리와 성신의 감화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믿음으로 살라고 믿음을 지키는 일을 하게 하려고  역사 하시는 이 진리의 돕는 은혜와 성령의 감화 감동의 돕는 은혜와 또  성도들의 돕는 이 은혜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에 우리를 신앙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악령이 있고 모든 불법의 죄악이 있고 또 이것들의 일꾼 되어  가지고 일하는 모든 믿음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 없을 때는 마귀의  종이 됩니다. 이 두 아비 세력이 이 세상에서 지금 서로 마찰되고 충돌되고  대결하고 있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마귀의 역사가 없는 일이 없습니다. 또 죄악이  있는 데에 의가 없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데에 마귀의 뜻이 없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이 모순된 둘은 한군데에서 마찰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어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지라도 이 뜻을 이루려고 할  때에 방해자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방해자는 있습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대로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꼭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같이 옳고 바르고 참되다고 보여지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같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요  사이비한 것 요 둘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서 그대로 하려고 하면 요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 그대로 살려고 할 때에 반드시  거기는 하나님의 뜻보다도 더 옳고 바르고 좋다고 보여지는 그 비중이 같이  보이는 동등 가치 같이 보여지는 그런 것이 반드시 함께 있습니다. 내가 올바른  깨달음을 가졌을 때에 그때에 올바른 깨달음이나 꼭 같은 다른 깨달음이  우리에게는 하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 거기에 이  악령과 세상에 방해하는 방해가 꼭 그 자기에 같이 있습니다. 이 둘이  병행합니다.

 그러기에 이 면을 모르고 자기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뜻대로 살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실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에  반드시 방해하는 그 세력이 있습니다. 둘이 대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와 의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 그와 비슷한  다른 깨달음의 뜻이 꼭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 하나만 깨닫고 그것만  가지고 요대로 행하겠다 하면 제 속에서 악령이 '야, 그것도 좋지만 이것도 또  어떠냐, 그렇게도 할 수 있지만 요렇게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자기 속에서 딴 한  생각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반드시 그것을  가져옵니다.

 이러기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는 악령이 나를 미혹시키는 뜻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6수라 상징수로 말할 때 그것을 여섯째 6수라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서 7수라 그렇게 7수로 나타났습니다. 666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수는 777수인데 한 번 말하면 7, 열 번 말하면 70, 백 번 말하면 700,  천 번 말하면 7000, 한 번 말하면 6, 열 번 말하면 60, 백번 말하면 600, 요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뜻이요  제일 바르고 옳고 참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이 일등일 건데  하나님의 뜻 때문에 그것이 일등이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성령의 감동의 깨달음 오면 악령이 주는 또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 둘 다 보면 좋고 옳다 싶어서 아주 비슷합니다. 가짜하고 진짜하고 조화하고  생화하고 비슷한 것처럼 비슷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그만 거기서 뚝뚝 떨어져서 실패를 합니다. 그것은 악령이  주는 뜻은 하기 쉽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당장 칭찬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뜻은 행하면 하기 어렵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당장에 손해가 가고 해 봤자  효력은 안 나고 이러니까 소망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이 다음에 좋은 걸 바라서  신앙생활 하지 당장에 나타난 것을 보고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소망의 나라요 소망의 도입니다. 이 세상은 소망의 도가 아니고 당장의  도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가리켜 666이라 이랬는데 그게 무슨 수라고 말했습니까?  사람의 수 짐승의 수. 거기에 짐승의 수라 하는 짐승은 세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짐승의 수라 그 말은 세상이 놓고 떼고 한 계산한 수라 말이요. 세상이  계산된 그 답안입니다. 또 인간의 수라 그 말은 인간들이 계산한 그 수입니다.

인간 계산에는 맞고 세상 계산에는 맞지만 주권자이신 이 하나님의 계산에는  맞지를 안합니다. 이 7수는 인간들에게 맞지 아니하고 세상 것은 맞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의 계산에는 맞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계산에 맞은 이 성경 진리대로 자기가 깨달았다든지 또 진리  안에서 진리에서 한층 더 들어가고 한층 더 올라가서 성신의 감화대로 깨달은 요  깨달음이 있을 때에 반드시 거기에는 인간대로의 깨달은 것이 같이 따라옵니다.

진리대로 깨달은 것이 있으면 인간 지식대로 깨달음이 따라오고 하나님을 중심  해서 깨달음이 나오면 인간 중심에서 깨달음이 반드시 나오고 천국을 위주로  해서 깨달음이 나오면 거기는 반드시 세상을 위주로 해 가지고서 하는 그  깨달음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둘이 함께 있지 따로 있지를 아니합니다. 언제든지 깨달음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그 둘이 같이 온다는 것을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에스겔 1장에 보면 걸어갈 때는 쪽발로 걸어간다 영물들이 쪽발로  걸어갔습니다. 또 레위기 11장에도 쪽발로 걸어가는 그 짐승이라야 거룩하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이 한 모형으로 보인 것인데 우리 성도들이  생활하는 것을 쪽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룩한 자의 입에서 토하여 내치게  된다. 쪽발 생활이라 말은 두 쪼가리 생활이라 그 말이요. 언제든지 두 쪼가리  생활로 걸어가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이든지 행동이든지 소망이든지 능력이든지 아름다움이든지  좋아하는 것이든지 싫어하는 것이든지 꼭 이 쪽발로 되어 있는 둘로 되어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명심해야 됩니다. 하나만 보고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은 벌써  마귀에게 삼킨 사람이요 언제든지 둘이 똑같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쪽발로 걸어가라 이거냐 저거냐,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의 정반대 되는 마귀의 뜻을 알고 요거는 마귀 뜻이다 요거는  하나님의 뜻이다, 거기에 대한 마귀 뜻과 하나님 뜻을 둘이 한몫 같이 알고 요  마귀 뜻을 배제하고 하나님 뜻을 행해야 되어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하나님만  알고는 신앙 걸음이라는 것은 걸어 가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거기서는  실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쪽발로 걸어가라 이거 아니면 저거, 저거 아니면 이거, 이게  인본주의냐 신본 주의냐, 이게 천국 표준이냐 세상 표준이냐 이게 하나님의  표준이냐 인간 표준이냐 창조주를 근원 하는 것이냐 피조물을 근거로 하는  것이냐 금생이냐 내세냐 나 좋으냐 남 좋으냐 이것은 지금 좋으냐 장래 좋으냐  이것은 육에 속한 것이냐 영에 속한 것이냐 언제든지 두쪽이 있다 반드시 쌍이  있다 한 쌍이다. 외쪽은 없고 언제든지 우리 길은 한 쌍이다 둘로 되어 있다  하나는 구원이요 하나는 멸망이기 때문에 모든 생애는 이것보다 저것을  좋아하든지 저것보다 이것을 좋아하든지 둘 중에 하나지 하나뿐만이 아니하는 것  이것을 자기가 명심하고 걸음을 걸어야 되지 이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니까 이대로 하면 되지 하지만 안됩니다.

 여기도 여러분들이 가만히 이렇게 보면 마귀 운동 성령 운동이 이 가운데도  있습니다. 자기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둘을 발견해 가지고 하나는  대적해서 버려야 되고 하나는 취해야 되고 이래야 되지 하나뿐인 줄 알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실패합니다. 성령과 악령이 둘이 함께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두 가지가 언제든지 같이 있다는 요것을 순간이라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 진리를 깨달을 때도 일방적으로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그 진리에 반대되는 것을 동시에 발견해야 됩니다. 사이비한 것을  발견하면 정확하게 나아가고 반대되는 것을 발견하면 옳은 편에 굳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하나만으로 되어 있지 아니하고 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입니다. 이렇게 둘이 병행하도록 이 세상에 이 모든 것을  존재케 했고 나열시켜서 대립을 딱 시켜 놓고 이것을 움직이는 움직임으로서  둘로 가지고 움직여 나가는 세상이라 이것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둘이 움직여 나가는데 이 둘이 움직여 나가면 이 세상에는 힘이  하나입니까? 힘이 둘입니까? 힘이 둘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힘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나입니다. 그것을 또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여지지만 이  우주나 영계는 이제는 왕이 하나가 됐습니다. 과거에는 왕이 둘입니다. 이랬지만  지금은 왕이 하나가 됐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마귀가 왕권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께서 왕권을 줬기 때문에 왕권을 가졌지 왕권을 주지 않으면 왕권을 못  가집니다. 주님은 왕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런 두 가지 운동이 있지만 이 두 가지 운동의 존재 목적은 뭐이냐?  두 가지 목적이 아니고 한가지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이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뭐인가? 지옥도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용된 것들이고 또 영원히 하늘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궁 세계에 하늘나라에 그 모든 존재들은 저 음부에 있는 그 존재,  하나님을 반함으로 된 것으로 자신들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에게 응함으로 되어진  그것이 더욱 빛나고 견고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둬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이 아무리 강하지만 예수님의 부리는 신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또 예수님 부리시는 대로하는 것이지 제 단독이 하는 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구원의 전체면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잠깐 좀 증거 하겠습니다. 눈을 깨고 잘 들읍시다. 우리 구원의 유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서 왔는고 하니 제일 처음 시작이 아무 것도 없을 때에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우리 구원이 시작됐습니다. 자존하신다 그 말은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케 된 원인이 있지만 우리를 구원하신 이 하나님만은 존재케 한  원인이 없습니다. 원인 없이 홀로 스스로 계셨습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안했고 그러기에 무엇에게 제재 받거나 무엇으로 인해서 생겨지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은 이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됐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의 기쁨이 자존의 존재요  자존의 하나님이요 자존의 사랑이요 자존의 기쁨이요 자존의 온전하신 뜻입니다.

자존의 온전하신 뜻 이것도 누구로 인한 뜻이 아니고 당신 혼자 뜻이요 자존의  뜻입니다.

 이 뜻이 목적을 정했습니다. 이 목적 이것은 자존입니까? 피조입니까? 목적  정하신 이 목적은 자존 목적입니까? 이것이 피조 목적입니까? 피조 목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존이 아닙니다. 자존의 하나님 자존의 사랑 자존의 기쁨 자존의  온전하신 뜻 자존의 뜻, 여기는 전부 스스로 계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 기쁨 온전의 뜻 이 넷이 다 각각 자존하는가?  아니오 넷이 하나입니다. 단일서의 존재입니다.

 이러니까 그 자존한 것 온전한 뜻 그것이 하나님이요 자존의 온전한 사랑  그것이 하나님이요 자존한 그것이 하나님이요 자존의 하나님이 자존의 사랑이요  자존의 기쁨이요 자존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이 본체에서 움직이는  역사를 했으니 이 자존의 하나님이 역사 하신 역사가 있으니 첫째 역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째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 역사는 하나님 밖에서 됐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당신 안에서, 우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서  무슨 생각하듯이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이 목적이 하나 생겨 나왔습니다.

자존하신 이 하나님 다음으로 둘째로 존재한 것이 무엇입니까? 김○○씨.

하나님의 목적이 존재의 순위로서 둘째 순위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온전 이것은 내나 동시에 본체 자존하신  영원전 자존하신 존재입니다. 존재의 그 순위로 일위는 하나님이시고 이위는  하나님이 생산하신 조정하신 당신의 목적이 제이위로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존재 순위로 제삼위는 무엇이 차지했는가? 이 목적을 정하시고 보니까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신이 그 전지 하신 지혜, 전지 하신 지혜가  전능하신 능력이요 전지전능하신 그 능력이 내나 자존하신 사랑이요 뜻이며  기쁨이며 그러합니다. 이랬는데 이분이 일차적으로 목적을 정해 놓고 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이차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차로 하신 일이 뭐이지요? 이차로  하신 일이 예정입니다. 이차로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예정이라는 존재가 생겼는데 예정이 존재하게 됐는데 이 예정은  예정하신 그때부터 앞으로 미래에 될 것을 예정을 하셨는데 예수님 재림  때까지를 예정했습니까? 천국 갈 때까지를 예정했습니까? 영원 무한의 예정을  하셨습니다. 영원 무한의 예정입니다. 예정 없는 것이 없습니다. 믿고 싶으신 대로  믿으십시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여기에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고 하는 것도, 지난밤에 비가 와서 어떤 학생은  속으로 기도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짜증 부리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기뻐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장난 삼아 재미있다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별별 것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영원전 예정한 그대로 지금 때를 따라서 때를 찬 경륜대로, 때를 찬  경륜이라 말은 에베소 1장에 있는데 때를 찬 경륜이라 말은 그때부터 이제 그  역사 시간이 아닌 그 순위에, 역사 시간이라 하면 비로소 시간이라 하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이런데 그 시간은 없지만 그때는 때가 있다 말이요. 그때는  창조하기 전에도 때는 있어요. 그게 순위대로 딱 되어 있는 그 순위 순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날 한시에 한자리에서 어떤 사물을 접촉할 때에 그것에 대해서  우연으로 보는 사람 또 돌발로 보는 사람 어떻게 했더라면 생기지 아니할 것으로  보는 사람 누구가 들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원망 불평을 하는 사람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전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그 지혜로 예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의 만분의 일도 못되는 우리 두뇌로서는  이를 측량 못하지만 분명히 없어서는 안 될 이 순서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니  그것이 요때가 되니까 예정하신 대로 당신이 또 예정을 성취해 가지고 이게  생겨졌으니 여기에 굉장한 오묘와 굉장한 크고 높은 것이 들어 있으니 그게  뭐인지 찾아보려고 더듬어 애쓰는 사람 모르니까 가만히 두고 죄나 짓지 말고  구경하고 있자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면 심판을 면하지 못하리라' 너에게 어떤  현실이 다가와도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서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되어지는 것인데 네 조브라운 생각 가지고 이거는 없었으면 좋겠다 이거  있었으면 좋겠다 많았으면 좋겠다 어떻다 어떻다 그렇게 네가 네 조브라운  생각가지고서 측량 못할 하나님의 절대성 있는 이 모든 예정대로 된 이런  순서인데 거기에 대해서 원망 불평하면 반석에 뒷발질하면 발이 깨지지 반석이  아프다 합니까? 그것 모양으로 인간들이 공연히 하나님을 든든히 믿어서 끝없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하지 안하고 이렇게 경거망동하고 조급하면 저만 그 값을  상당해 냅니다. 얼굴이 쭈굴쭈굴 해지기도 하고 붉으락푸르락 하기도 하고 밥맛이  없기도 하고 시비하기도 하고 거기에 대한 상당한 보응과 상당한 값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예정으로 모든 곳을 예정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아 여기 뿐이 줄 아는데 어디서  보니까 그런 소문이 들려 옵니다. 아 거기도 무슨 운동이 일어났구나 그럴 때에  아 내 구원을 위한 것이 거기도 있구나 그 목적이 뭐인데 우리 구원인데 목적이  우리 구원이거든요. 우리 구원을 위한 역사가 내가 아는데 모르는 데 들리는 데  안 들리는 데 이는 뭐 얼마나 첩첩이 가득히 채였는지 이 구원 위해서 전체를  무쇠 덩어리보다도 더 총총한 것을 이와 같이 지금 역사해 논 이 속에 있는 나를  누가 어떻게 하겠소? 내 털끝만큼이라도 저희들의 마음대로 하지를 못합니다.

당신의 정하신 예정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예정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 했지만 그렇게까지 예정한 것을 성경의  어디다가 기록해 놨느냐? 기록해 놓기는 성경이 당신은 완전자라고 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없는 하나님이시라 완전자이시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후회함이 없으시고 모든 것이 완전이시니 그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해서 그 예정을 이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아 때 하나님이 후회했다 하는 그 후회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후회할 일이  있으면 그 하나님은 유한의 하나님이요 지식과 지혜에 다 유한한 하나님이요.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우리로 하여금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우리의 심정으로 당신의 예정하신 대로 노아 홍수가 이르렀고 멸망을  받았고 또 그렇게 홍수를 만든 이도 당신 멸망 받을 인간을 만든 이도 당신 하신  이도 당신 모두가 당신이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작용과 역사들을 한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그렇게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어. 이런데  하나님이 무슨 후회가 돼? 후회라는 것은 모르고 했어야 후회가 되지 잘못  됐어야 후회가 되지 하나님이 모르고 하고 잘못 됐으면 그것만하면 죄지  하나님이 정죄 받아서 하나님이 내나 마음먹을 수밖에 없지 뭐 큰 소리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속성에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성문 의지인 이 도리를 영감으로 우리에게 확실히 그  양이 얼마나 크고 권위가 얼마나 큰 것을 알게 하시고 또 영감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인해서 하나님을 아니까 그 뜻을 알 수가 있지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해석을 인간 표준으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표준으로  하되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에 표준 해서 그렇게 우리는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 내가 지금 어디로 뭐 하다가 이리로 나갔는지 모르겠네. 아 구원의 유래요.

예정을 믿어야 됩니다. 이 예정을 믿는 데에서 온전한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또 예정을 믿는 데에 믿으려고 하는 데에 온갖 미혹이 들어옵니다. 뭐 예정대로  됐으면 할 게 뭐 있는가? 예정대로 됐는데 힘 쓸 게 뭐입니까? 예정대로 됐으면  힘 쓸 필요 없지. 그 망령될 말하는 그것이 제가하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제가하는 것보다 그렇게 예정돼서 하니까 그게 더 비참하요? 덜 비참하요? 예, 더  비참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아 나는 좋게 예정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것은 제가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예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 나는 좋게 예정된 것 같다 싹수를  봤다 내가 벌써 택한 자이니까 좋게 예정됐다 예정됐으니까 예정대로 하는 데  누가 막겠느냐 의로 가자 하는 그것은 또 어찌 되겠소? 그것도 예정이요.

 이러니까 보이는 데 안 보이는데 모든 데에서 움직이는 것이 누굴 위해서  움직입니까? 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목적이 뭐인데? 자!  따라 합시다. 목적은 우리,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하나님의 기업은 우리,  하나님의 후사는 우리, 하나님의 욕망은 우리, 하나님의 전부를 투자하면  우리에게 누가 어찌 하겠소? 누가 어떻게 하겠소? 이것이 공연한 말입니까?  성경이 다 말해 놨소. 로마서 8장을 좀 읽어보세요 안 그런가. 하나님이 이렇게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을 해 놨습니다.

 또 예정만 하고 있으면 됩니까? 이제 이렇게 이루려 하니까 무엇이 만들어져야  안 되겠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계를 창조하시고 이 물질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창조해 놓으신 것을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저렇게 섭리를  해서 이걸 활용을 합니다. 활용을 하는데 여기는 무엇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활용하는 것은 부셨다가 만드는 재생도 있고 치료도 있고 재창조도 있고 파괴도  있고 하늘 나라는 부셔 가지고 새로 만들고 부셔 가지고 새로 만들고 또 치료도  하고 이래 가지고 당신이 지금 이 모든 창조한 것을 가지고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목적은 누군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가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 그러면 존재 순위로 이 목적이 몇째 순위라 했지?  둘째 순위.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이랬으니까 그리스도는 그러면  뭐인가? 그리스도는 뭐이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했다 했는데 그리스도는  뭐이요? 피조물이요? 창조주요? 그리스도는 창조주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인데 무슨 이름인지 몰랐는데 신정  국가, 하나님이 친히 예루살렘 왕이 되어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을 통치하시고 그  다음에 인계해 준 이 신정 국가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 때에 그 통치하는  역사에서 이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해석이 나왔소. 그리스도는 기름  붓는다는 뜻인데 거기서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때에 이 기름을 붓기를 제사장  선지자 왕 이 세사람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어서 그  이름을 말해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지금은 말하기를 기름  부음인데 하나님의 직명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직명이라  하나님의 직분의 이름이라 무슨 직분? 제사장 선지자 왕 직분 그 직분의  이름이라. 그러면 그분은 언제 존재했는고? 내나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그게 내나 그리스도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표현할 때에 이런 역사를 하나님이 하신다 할 때에 그리스도라 했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제사장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선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왕  역사 안에서 이것을 했다, 택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하나님의 지능  안에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하나님 다음으로 온전한 것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기로 작정하신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친 역사 속에 하나님 같은 것 이래서 그 모형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뭐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몸 하나님은 머리 또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뭐이라고 했소? 하나님의 집, 하나님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몸이라 말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행할 수 있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집이라  말은 하나님이 속에 계셔서 나오는 것은 전부 하나님입니다.

 등을 만들어 놨는데 그 위에 등불을 켜 놓으니까 그 등밖에 나오는 것은 뭐가  나옵니까? 종이가 나옵니까? 빛이 나오지요. 빛이 나오는 것 이것 모양으로  그리스도인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셔서 빛으로 나오는 건 전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다니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말입니다. 예수님이 계신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와  하나님과 중보자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결합이 계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결합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그 결합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뭘로 나옵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라니 우리가 그러면 빛입니까? 빛을 반사하는 우리입니까? 우리가 빛  본체입니까? 빛 본체로 아는 사람들 손들어 봅시다. 아니야. 그러면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빛을 대행하는 빛을 나타내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오  빛을 반사하는 것이요. 그러면 사람들의 빛이라 말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알았습니까? 사람들의 빛이라 말은 사람 빛이라 말은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이라 그 말이요. 요한은 빛이 아니라 참 빛이  나타났으니 곧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되어서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머리요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주요 우리의 구주시오 애정으로서는 우리의 신랑이시오  관계로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중보자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목적을 정하시고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해 놓으시고 예정한 대로 짓습니다. 영계 것도 지어 놓고 물질계도 지어 놓고  천사도 지어놓고, 자 천사를 누구 위해 지었습니까? 나 위해 지었지. 누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내 것이라 한다고 누가 시비를 한다고 재판에서 이겼다고  합니다. '하늘의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니라'  성경에 말하지 안했습니까? 네,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이 지으신 것을 우리 구원, 우리 위해서 보존하시고 또 우리 위해서 사용하시고  우리 위해서 깨뜨리시고 또 우리 위해서 재생시키시고 또 재창조하시고  이용하시고 이래서 '애굽을 너희의 구속물로 주셨다'고 이사야 43장에  말씀했는데, 이제 주인이 얘 너 이거 뭐이지? 그거 알밤이네요. 알밤 같으나 알밤  아니야 요걸 바싹 깨물면 그만 당장 죽는다, 어이구 아버지도 내가 장 먹던  밤인데 밤을 누가 깨 먹는다고 죽어요? 내 한 번 먹어볼테니 날 주십시오 이거는  알밤 같은데 알밤이 아니야 먹으면 죽어. 이걸 알게 하는데는 부득이 개 한 마리  희생을 해야 됩니다. 개를 부릅니다. 불러 가지고서 여기서는 안 되니까 저  먼데서 떡을 한 개 입에 넣어 가지고 훅 던져 주니까 이걸 뭅니다. 이래 가지고  꾀니까 달콤한 내가 나니까 먹습니다. 보니까 꽝 하더니만 그만 그 개의 아래턱이  다 떨어져 버리고 온 몸뚱이가 다 날라 가 버렸소. 그러니까 그 아이가 보고  아버지 이게 뭐입니까? 그래 그게 내나 원수들이 갖다 놓는 그 작약이라 하는  거라 그것 먹으면 안돼 앞으로 그런 것 먹지 말아라. 이것 모양으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 때문에 세상이 벌도 많이 받고 고통도 당하고 고생도  합니다.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것이나 냄새나는 것이나  우리 구원에 필요 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입니다. 이것을 다 깨달으면,  학교 공부도 좋기는 좋지만 그것은 저능자가 가는 것 머리가 없는 머리가  돌대가리 같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고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은  거기에 배울 것이 더 많아. 이거 전부가 글이고 전부가 지혜고 이 세상에 있는  가득찬 것이 실물 교재인데 실물을 가지고 배우면 그런 것 가지고 배우는 것보다  낫지, 안 낫겠소? 이게 제일 좋은 교재라 이렇게 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룹니다.

 야! 어깨가 올라갑니다. 제일 크신 하나님 그분이, 자존하신 그분이 자존하신 그  사랑이 누구한테 충격 받은 사랑 같으면 이 사랑이 또 충격 받으면 변해질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어떤 것으로 피동된 사랑이 아니고 영원  자존하신 사랑이기에 충격 안 받고 변동 안 됩니다. 아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하신 사랑이 날 사랑해서 자존하신 기쁨으로 누가 이렇게 하니까 기뻐서  비행기 태워 그런 게 아니고 당신의 기쁨으로 완전히 기쁨 영원자존한 기쁨 당신  기쁨으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변동될 리가 없다 말이요. 당신의 온전하신  뜻으로 '아! 이 자존하신 분으로 말미암아 내 구원이 시작됐구나 아! 이 구원이  존재로 말하면 제 이위의 순위를 가지고 있고나 내가 나기는 늦게 났지만 제  이위의 순위속에 내가 든 것이로구나 하나님 다음에 내가 존귀하다.' 잘못하면  교만 나오기 쉽지요.

 이러니까 뭐 부득부득 욕심 낼 것 없습니다. 암만 좋아도 좀 있으면 울 것.

결혼의 첫사랑이라고 좋아서 못 견뎌도 딱 꼬리표를 붙이기를 이 좋은 것이  반드시 외로움이 되고 말 것이다 하고서 해 놓으면 자 그렇게 됩니까 안 됩니까?  결혼의 첫사랑의 그 즐거운 기쁜 것이 마지막에 슬프고 울음으로 안 바꾸어진  사람 있습니까? 아직까지 안 바꾸어졌으니까 모르는 모양이지 좀 있으면 다  바꾸어집니다.

 세상에는 그 좋은 것이지만 다 그렇게 수명이 너무 짧아 좋다고 고함을  지르는데 또 울음소리가 같이 나네, 어이구 높다고 우쭐해지는데 또 탁 꺽어져  아무 것도 없는 땅속에 들어가는 것이 같이 나오네, 이러니까 뭐 요리 보면  좋은데 요쪽을 들여다 보니까 탐날 것이 하나도 없어. 이것뿐이라면 참 탄식이라  이런데 이 썩을 것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바꿀 수 있고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이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꿀 수 있고 모든 제한되고 저주  아래 있는 혈육의 것으로써 신령한 생명의 것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좋다 그거요.

모든 존재도 나 위해 존재한다 참 이게 어쩐 일인지 믿어지면 생각할수록 좋아  못 견뎌. 그러기 때문에 마귀라는 놈은 새김을 못하게 합니다. 마귀하는 놈은  그만 한 군데만 삼켰으면 다시 그 다음에 새김질을 못하게 합니다.

 이런데 여기에 보면 새김질 안하는 것은 더럽기 때문에 취하지 말라 했습니다.

쪽발로 가고 새김질하고 둘이 다 겸해야 돼. 새김질은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꾸  생각해야 된다 말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좋은데 생각을 하니까 이게 그만 좋은  것이 금이 갑니다. 이러니까 술 먹고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생각해 보니까 좋은 그것이 좋지 못한 것이 나오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자꾸  피합니다. 피해서 좋다 좋다 했는데 마지막에 좋다 안 되니까 제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는 좋지 못한 걸로 딱 바꾸어 버리니까 그때는 가슴 치고 웁니다.

 믿는 사람의 것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의 것은 어떻소? 생각해 보면  좋습니까? 얼른 보면 좋습니까? 자 믿는 사람의 모든 좋은 것은 생각해 보면  나옵니까, 갈수록 좋아집니까, 얼렁뚱땅할 때에 좋아집니까? 우리 믿는 사람의  기쁨 믿는 사람의 평강 믿는 사람의 담대 믿는 사람의 능력 믿는 사람의 존귀  믿는 사람의 행동 예 믿는 사람의 성공 이것은 생각해 볼수록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은 금괴 속에도 없어. 금괴 속에 돈 넣어 놓고  좋다 해도 그것도 헛된 웃음입니다. '너희의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어라' 금괴 속에  둔 것도 소용없고 보따리속에 사논 것도 소용없고 재판소 등기속에 떼논 것도  소용없고, 우리의 보배는 어디에 쌓아놨지요? 생각속에 싸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보따리를 척 헐면 하나님의 약속 보따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  보따리가 나와 약속 보따리를 척 헐면 하나님의 영감 나옵니다. 거기에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의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니까 이 모든 존재가 날 위해서 일어납니다. 저희끼리 나라가 전쟁이 나고  어쩌고 하나 세계의 운명이 내 장중에 달렸어. 뭐 정상회담이요? 자기들이  정상이라 합니다. 제일 만당 절정이래요. 이렇게 하면서 오고 가고 하는데 속으로  뒤에 앉아서 피 웃으면서 '주여, 내가 무엇이관데 정상회담 저것도 날 위해서  있고 강대국 약소국 서로 저희끼리 이렇게 저렇게 하는 전부가 하나님의 예정  순서입니다. 예정대로 됐고 그게 전부 내 구원 위해서 있어. 야! 이거 참  굉장하구나.' 자 그러면 이렇게 이 모든 배경은 좋고 모든 구비는 좋지만 이걸  어떻게 조화를 해서 이 실상을 만들 수가 있겠느냐? 실상을 만들 수 있는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어디서 주워 가지고 올 거요? 그 능력도 생각 속에서  나옵니다.

 가만히 성경 말씀을 생각하니까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보증하는 셋이 있으니,  보증이라 말은 책임이라 말이요, 증거라 말이 거기 보증이라 말입니다. 증거라  말은 볼 수 없는 걸 나타내는 것이 증거 아닙니까? 없는 것을 실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것이 증거요 그 책임이 보증이요.

 이런데 보증으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보증 셋이 있으니 첫째 성령 둘째 물,  물은 뭐이요? 진리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했다' 하는 그 물이  진리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밝혀 냈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닌고 영원히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됐다고서 말씀이라는 것이 내나 중생 시킨 그 물을 말씀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책임진 보증 하나는 피, 피는 뭐이요? 예수님의 대속, 죄가 떡  나오면 예수님의 대형이 들어서 딱 감춰 버립니다. 불의가 싹 나오면 대행이 싹  까뭉케 버립니다. 네가 뻔뻔스럽게 이렇게 원수된 것이 지금 주여 하면서  낯빤대기 들고 달려들려고 하니 예수님의 피가 싹 뭉케버렸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예수님의 피 이 세 가지 대속만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어 못 들어 갈 데가 없어  아무데라도 통과라 이 셋이 보증이 되어서 모든 만물을 움직여 역사 하시는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광대한 구원 이렇게 넓고 크고 세밀한 이 광대한 구원 이것을 믿는가 안  믿는가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현실을 주실 때에 그만 그 어린아이 믿음인 것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큰 구원이지만 이 구원이 자기 보기에는 아주 아무 것도  아니고 이 인간들이 이렇게 하면 공산주의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고 전도하러  갔다가 핍박을 되게 하면 아마 이 교회 안 되겠는데 이거 뭐 교단이니 신학교니  무엇이니 자꾸 이렇게 해 쌓으니 안 되겠는데 공산주의가 밀고 내려오니까  안되겠는데 합니다.

 아침에 가르쳤는데 표적은 몇 가지 표적,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이 몇  가지이지요? 두 가지. 하나는? 덕수교회의 저 안경 낀 요새 뭐 교수됐다든가 하는  분, 대답해봐요. 그것 합격이네. 워낙 눈을 똑 뜨고 있더니만 알기는 알고 있구만.

좋은 것과 나쁜 것 그게 표적입니다.

 또 좋은 것과 나쁜 것 그것이 두 가지가 아니고 네 가지인데 또 대답해 봐.

여기에 대답해 봐요. 아이들이 왔으면 잘 대답하는데. 땅의 것과 하늘의 것, 땅의  것 둘 하늘의 것 둘 그 네 가지라. 그 표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것을 공연히  안심하는 자가 정신 차리고 공연히 되지 못하고 된 줄 아는 자가 정신 차리고 또  다 같은 것인 줄 알았지만 존귀한 것도 알게 되고, 이제 하나는 이런 것 저런  것을 알리기 위해서 잘못한 것 삐뚤어지게 안 것 모르는 것을 어쨌든지 알려주기  위해서 바로 알려주기 위해서 또 하나는 바로 실상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으로야 잘 가르치지. 우리 김 목사님, 그때 교회  예배당 지을 때에 그 돈이 없다고 어쩌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돈이 없어. 왜  날 보고 그렇게 하느냐고 좀 해뒀더니만 얼떨떨합니다. 하나님 안 계시나 이래  놨더니만 그만 푹 쭈그러져서 그때 걱정하더니만 막 고통을 하더니만 이제  예배당 짓기는 지어 놓고 이사 들어 갔습니까? 예. 그래도 믿는 믿음이 모자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 구원이 이런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분으로 인한 둘째 순위의 목적인 이 우리의 구원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현재로부터 그때로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것까지 이것  위해서 예정한 것이니까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우리 믿는 사람을 두고서 고문을 해도 그것도 뭐냐?  예정이요. 공산주의의 이 방망이가 뭐이야? 그것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 사랑하는  주님이 지으신 것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 내 구원 위해서 있는 것, 위해서 쭉  이렇게 따져 내려오면 그만 그 다음에 기쁘고 즐거움밖에 없어. 모든 존재가  하나님 위해 지은 것이지 또 보증으로 성령과 진리와 피가 보증을 하시지 그저  미약하지만 나만 다 하면 나만 다 내놓으면 다 된다 하지, 이 큰 것을, 이러니까  성도들이 여기에서 기쁘고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위에서부터 우리의 구원을 자기가 새김질하면 못 이길 것이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이 없고 이용 못 할 것이 없고 유익 안 될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가 승리요 다 성공이요 전부가 구원입니다. 이렇게 보증하시고 신구약 성경  말씀 줬지 성신의 감화 감동 우리에게 약속해 줬지 하나님의 섭리를 자꾸 보여  주시지 이래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할 일은 이런 속에서 먼저 믿고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 둘 시킬 때에 그 시키시는 것을 바로 깨닫고  그만 행하면 됩니다. 시키시는 것만 바로 깨닫고 행하면 됩니다. 믿으라면 믿고  인정하라면 인정하고 긍정하라 하면 긍정하고 부인하라 하면 부인하고 바라라  하면 바라고 버리라면 버리고 그만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그만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만 따르면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는 인도가 몇 개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시는 인도가 몇 종류 있지요?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요.

전부 다 손 들어서 가리켜 보십시다. 김 집사님, 우리를 인도하는 종류가  몇이지요? 예. 5가지라.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는 이 종류를  분리하면 세 가지 종류로 분리해야 됩니다.

 하나는 문서 계시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합니다. 또 하나는 성신의 감화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영감으로 인도하시오.

또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를 가지고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문서의지 영감의 은밀의지 하나님의 섭리의지, 문서인도 영감인도 섭리인도 눈을  똑 뜨고 정신차리면 요 셋이 합해서 하나 됩니다. 처음에 끄트머리에서 살 때에는  서로 뿔뿔이 다 대립되고 다 서로 상충되는 것 같지만 모순 같은데 마지막에는  일치가 되어집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언제든지 두 가지 있는 것 우리는 쪽발로 걸어가야 된다는 것 기억해야 됩니다.

쪽발로 가야 되는 것.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1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2
»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2
639 거창집회/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810813목새집회 선지자 2015.10.22
638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5장 7절-10절/ 88061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2
637 거창집회준비/ 고린도전서 15장 42절-49절/ 880617금야 선지자 2015.10.22
636 거창집회준비/ : 이사야 26장 1절-4절/ 840630토새 선지자 2015.10.22
635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3장 1절-7절/ 84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0.22
634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22절-27절/ 800825월새 선지자 2015.10.23
633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후 선지자 2015.10.23
632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전 선지자 2015.10.23
631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19목새 선지자 2015.10.23
630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13절-17절/ 831004화새 선지자 2015.10.23
629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5수새 선지자 2015.10.23
628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20금새 선지자 2015.10.23
627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90212주후 선지자 2015.10.23
626 건설구원/ 디모데전서 6장 20절-21절/ 890719수새 선지자 2015.10.23
625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80212주전 선지자 2015.10.23
624 건설구원 새 진리/ 사도행전 1장 4절-1절/ 820410토새 선지자 2015.10.23
623 건설구원 이루는 방편/ 사도행전 1장 6절-11절/ 820407수야 선지자 2015.10.23
622 건설구원,기도제목 7가지/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9주전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