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

 

1980. 8. 25. 월새

 

본문 : 마태복음 7장 22절 - 27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선지자선교회 (기도) 이 날과 이 시간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려이 너희에게 임하면 진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요 또 주님의 모든 이  구속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게 나타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사옵고 성령님이 오시면 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를 증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성령님으로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죄악을 이 거짓된 것을 구별도 못하고 다  제거할 수도 없고 또 주의 이 뜻을 찾을 수도 행할 수도 없음을 아옵나이다.

모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데에 이용될  것들이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나를 살리는 나의  생명이 되심을 아옵나니 이 시간도 성령으로 우리들에게 충만시켜 주사 깨달으며  행하며 변화를 받아 점점 주의 형상을 갖추어 가는 저희 모든 심신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주님을 증거하는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모양으로서든지 주님을 나타내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주의 백성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강건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쫒아내고 또 여러 가지 능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주께서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이렇게 책망하시면서  용납지를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는 악령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런 신기한 일들을 할 수 있고  또 악령의 것이 되어 있는 인간들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런 능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20세기에 기독교 아닌 이종교에서도 굉장한 일들이 일어나고 또 아무  종교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이한 능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외부에 그 일 되는 것 그것만 보고 껍데기만 보고 우리가 인정하는  그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짤막하게 계산을 댑니다. 그만 그  시간 잘하면 잘됐다. 그 시간 그만 실수하면 몹쓸 사람이라 그렇게 단시일을  두고 우리는 비판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단시일로 봐서는  우리의 견해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악인도 의인으로 의인도 악인으로  그렇게 우리가 오해하기를 쉽습니다.

그러나 나타난 열매를 보아 알라. 장기간을 두고 보면 그저 몇 해를 두고 보면  열매를 알 수 있다. 그가 그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사람을 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또 그 사람이 어떤 그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세상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하늘나라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자기 사람을 만들어  내는지.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지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한  행동 한 행동 고것만 가지고 우리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선지자 구별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신앙 지도자의 구별이 심히 중한 것이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는 폭넓게 그 심사하고 시간을 길게 두고서 심사를 해라. 십  년을 두고 심사를 하면 대략 정확하게 나옵니다.

해방 이후가 벌써 30여년이 지나갔는데 30여년을 두고 그 사람의 그 열매를  우리가 살피면 그 열매를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이면을 모를지라도 열매를 보아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옆에 가까이 가는 것보다도 벌써 수십 년 겪었으면 우리는 그렇게  자주 접하지 안해도 아 그 교파는 어떤 교파다. 또 그 교회는 어떤 교회다. 또  그 목사는 어떤 목사다 하는 것을 거의 정확히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지자 구별을 어제도 간단하게 둘 로만 말했습니다. 나를 지도하는 내가  지도를 받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내가 그를 접할 수록이 점점 하늘나라가  가까와지는지 세상이 가까와지는지 내가 접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가까와지는지  그 사람과 가까와지는지 그 두 가지만 가지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로 모실 때는 그러하고 또 우리는 일면으로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또 배와서  하늘나라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서 우리에게 배워야 할 우리가 선지자 노릇을  하는 그런 입장도 있습니다. 여게 능한 일을 했다 하는 이런 능한 일을 하는  그것이 다른 성경에 보면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도 하고 모든 사람이 다  기이하다 놀래만한 그런 일들도 많이 있으니 그것만 가지고 우리가 평가하면 안  됩니다.

다만 내가 그를 접촉하니 하나님이 나와 가까와지고 하나님이 더 알아지고  자기는 점점 부인해지고 자기는 점점 부인해지고 하나님은 점점 인정이 되어지고  세상은 그 보니까 허무하다는 것이 보여지고 이래서 세상 욕심은 제거되어지고  하늘나라는 확실하고 튼튼하고 참 존영한 것이 자꾸 인식이 되어져서 하늘의  소욕이 강해지고 세상 소욕은 희미해지고 자기는 점점 부인되어지고 하나님은  점점 의지하고 바래보고 참 맡길만한 이 하나님으로 밝아지는 그 결과를 맺는지  안 맺는지 자기를 신앙 지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요것으로 구별을 해야 되지.

일시 무슨 큰 소리나 또 무슨 귀한 일이나 많은 사람들이 끌어지거나 그런 것을  위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대할때는 그런데 선지자 입장에 있는 사람은 또 하나 여게  똑똑히 알아야 될 것은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하는 것은  보면 그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그 의로운 교훈과 의로운 지도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구원이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여게서 또 배워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도 보면 그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지켜 행하라 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지켜 행하라 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지켜  행하라. 그러면 가르치기는 바로 가르쳤다는 것을 주님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가르쳤으니 가르친 것을 내가 지켜 행하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본받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어서 이 성구에서 배울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록 바로 지도하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잘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고 바른 그 신앙  행위를 하게 했다 할지라도 자기 구원은 자기가 행해야 되지 자기가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남의 구원과 자기 구원 교역자됐던 사람이 성경에 그렇게 교역자  되기를 원하지 말아라. 왜 복음 전하는 사람이 좋은데 뭣 때문에 원하지 안해야  되겠습니까? 원하지 말라는 그 말씀은 주의를 해야 되는데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파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은 이루어지게 하고 자기는 버림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해서 그 사람들이 구원도  이루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려고 가르쳤지마는 자기는 그렇게  하려고 했으니까 그것이 그 법을 자기가 이치를 아는데 그래 놓고 자기는 행하지  안했으니까 자기가 가르친 그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는 구원이 됐지마는  자기에게는 심판의 법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 했습니다. 물론 잘못 가르친  그것도 다 있지마는 가르치고 아무리 바로 가르쳤다 할지라도 가르친 그것을  행하면 구원이 되는데 가르친 그것을 가르침 받은 사람은 행해서 복음이 되고  구원이 됐지마는 자기는 가르쳤지마는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복음이 안  됩니다.

행할 때에 복음이 되는 것이지 행하지 아니하면 정죄하는 심판의 율법이 됩니다.

그런고로 교역자는 그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다 행한 주인공이 돼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이  되어져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행할려고 애를 쓰는데 자기는  가르치고 난 다음에 가르치고 자기는 그것이 자기 복음인 줄 알고 자기는 명령  위치에 있고 가르치는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될 자기의 위치를 잊어버려서 그것이  율법이 되고 정죄가 되는 이런 일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가르친 것은 다 지켜 행하되 그 행동은 본받지 말라. 왜  그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는 그 일에 대해서 그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안한다 이랬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힘을 다 들여야 행할 수 있는 그  무거운 짐을 그 어깨 위에 지워서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거기  대해서 한 손 가락도 움직이지 않는 이런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은사 교권에 있다면 권찰도 이 선지자 위치에 있는 그 역할을  많이 하고 또 집사님도 주일학교 반사들도 또 권찰들도 장로들도 조사님들도  목사님들도 이렇게 이 위치에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자기가 위대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위해서 그를 통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도  행하지 안했지만 가르치기는 바로 가르치니까 가르친 대로는 행해라.

가르치는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러나 그이의 행함을 본받지 말아라. 왜? 그는  다른 사람에게만 부담을 시키고 제가 실천은 안한다 그 말씀을 했습니다.

그와 같이 여게 능한 일 선지자 노릇 귀신 쫓아내는 이런 일을 자기가 신앙  지도를 받는 입장에 있어서는 자기 신앙을 지도하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만 보고 다인 줄 알고 그게 맹종해서는 안 됩니다. 왜?  세상도 그런 일을 합니다. 이 종교들도 그런 일 합니다. 마귀들도 그런 일  합니다.

제각각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물론 자기네들의 잘못된 관념에게  모두 종교가진 사람은 다 그 종교의 신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뭐  호랑갱교라 하는가? 그것도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자기 주관에서 병이 많이 낫습니다. 또 그들도 신비한 그런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불교는 뭐 그것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능한 일 또 그 신유의  이적 또 자기가 모르는 이런 도 저런 도를 전해 준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하늘나라에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까? 아닙니다.

이 종교에서도 이룰 수 있어. 그러기 때문에 내가 신앙 지도를 받는 그 내  지도자로 모시는 데에는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이런 역사 저런 역사가  있다고 그것을 표준해서 인정하면 안 됩니다. 다만 그로 인해서 내가 점점  성화가 되어지느냐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까와지느냐? 세상과 가까와지느냐  세상과 가까와지느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지느냐? 또 그 사람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놓고 통계를 맞춰 볼 때에 그의 신앙 걸음이나 그의 주장한  것이 십 년 이십 년 지내가면 거의 다 알아집니다. 어떠냐 그것을 살펴서 자기의  선지자를 정할 것이고 또 선지자 된 본인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많은 사람의 구원을 이루고 크게 부흥이 되어지고 또 자기가 진리를 증거하게  되어서 참 오묘하고 정확한 진리를 증거하게 됐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바로 가르쳤기 때문에 그이에 가르친 것을 네가 그대로 지켜  행하라 한 것은 바로 가르쳤다는 말 아니요. 이거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세워 놨기 때문에 바로 가르쳤다 이거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무리 바로  가르쳐도 그것이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많은 백성들을 인도해서  구역이 커지고 많아지고 교인 수가 늘어지고 자기가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하니까  부흥해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가 되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선지자  노릇은 바로 했다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노릇을 바로 했다고 해서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여게 밝히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했으니까 위에 가르친 그것이 바로  가르쳤다 할지라도 자기는 진리대로 행하지 안한 것이 여게 나타나 가지고 있고  또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위에 말씀했기 때문에 선지자 노릇을 한다 하지마는  그것이 거짓걸로 가르칠 수 도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가르침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가르치는 자를 어떻게 구별해 가지고 따를  것인가? 그만 이적 하나 행한다고 여기 박태선 전도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때 여게 뭐 목사들이 거의 다 따랐습니다. 그때에 제일 고신  목사들이 덜 따랐지 다른 그 교파의 목사들은 하나도 없이 그 따랐습니다. 딿고  뭐 다 탄복들을 모두 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얼마 후에는 다 슬슬 물러가고  정체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벌써 십 년이 되면 거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왜 그때에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느냐? 그런 것은 이적이 몇 개 나타나는 그것 보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그것 보고  또 연보 많이 나는 것 보고 이래 가지고 하이구야 그참 하나님의 종이로구나.

거기서 나도 배워 가지고 연보나 많이 나와야 되겠다. 세상 소욕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그게 다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앙 지도를 받을 때에는 지도하는 사람을 똑똑히 구별해야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별해야 참 선지자는 배척하지 안해야 제가 멸망하지  안할 것이고 거짓 선지자는 배척을 해야 멸망을 받지 안할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선지자를 모시는 데에는 그 열매를 봐서 알라. 그 열매를 봐 가지고  선지자의 구별을 해라. 또 선지자 된 자야. 선지자 된 자는 네가 선지자 노릇해  가지고 결과가 좋아지는 그 결과보고 네가 안심하지 말아라.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너는 결과 좋은 그 복음을 네가 행하지 아니해서 네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네가 이면을 주의해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신앙 지도는 자기가 그 열매도 판단해야 됩니다. 무슨 기기한 그  역사나 그런 것을 보고서 판단하지 말고 그 선지자의 지도를 받으면 자기가 점점  세상 사람이 되느냐 천국 사람이 되느냐? 자기를 점점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나님과 가까와지느냐 멀어지느냐? 요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 됩니다.

벌써 아무리 옳은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을 자기가 중심되어서 자기 사람을  만들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옳은 교훈은 절대 못합니다. 왜 인간은 부패성  옛사람이 주장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인생인데 잘못된 것을 행하는 그 잘못된  것을 그 사람에게 옳은 면을 행하는 것은 새사람이 행하지마는 책망받을 잘못된  것을 행하는 것은 다 옛사람이 행한 것인데 잘못된 것을 책망하지 잘된 걸  책망할 리가 있습니까? 잘못된 것을 책망하는 그것은 옛사람이 행한 것을 책망하기 때문에 책망하는  그것은 하나님편에 속했고 또 책망받는 그것은 세상에 속한 그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자기로 더불어 인간적으로 가까와지고 인간적으로 그 사람을  자기 사람을 만들라고 하면 그에게 잘못된 것을 책망을 못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책망한다는 그것이 그것이 선지자의 희생입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권능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을 책망하면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책망하는 것이  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자타의 구원을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람을 제 사람  만들고 그 사람을 비우 상하지 안할려고 하면 바른 교훈을 하기가 여렵습니다.

어제 오랫만에 제가 칼측 교회를 가봤습니다. 설교는 한 40분 설교를 했습니다.

됐는데 예배드리는 시간은 나중에 끝마칠 때까지 하면 약 2시간 됐습니다. 7시  반에 시작해서 9시 20분쯤 돼서 마쳤습니다.

그러면 1시간 50분이라면 40분 설교 제하고 난 다음에 1시간 10분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1시간 10분은 전부 이 사람이 또 나와서 무엇을 소개하고 저 사람이 또  나와서 무엇을 하고 이렇게 해서 모두 그것은 인간 비유가 상할까 해서 인간  대우 또 인간 나타내는 것 뭐 다 그것은 인간에게 대한 것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에 그 점은 40분 있었고 남은 것은 다 서로 인간 예의  도의 그것도 좋습니다. 예의 도의 체면 또 가다가는 자기 소개 또 누구 소개  서로 서로 높이고 올려 주는 거. 그런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를 자기가 맞이할 때는 결과를 보아서 선지자를 평가하고 또  선지자를 맞이할 때에는 자기가 바꾸어야 됩니다. 선지자를 뭣 때문에  맞이하겠습니까? 선지자를 맞이하는 것은 자기가 이제까지 행하지 못했던 것을  행하도록 하는 그것 때문에 맞이합니다. 자기가 무슨 병이 들었는지 그 진찰을  못해서 자기에게 자기 망치게 망케하는 그 멸망의 요소가 들어 있는 그것을  치료받기 위해서 선지자 모시는 것입니다.

목사를 월급을 주고 오만 자기에게 제일 음식도 제일 맛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목사님을 대접해야 되겠다 또 물건도 보기에 제일 거기에 좋은 것이면 이것은  목사님부터 먼저 대접하고 사다드리고 내가 해야 되겠다. 제일 좋은 것은  목사님에게 제일 맛있는 것은 목사님에게 제일 높여 생각하기는 목사님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합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그 목사님을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사랑하고 자기 좋아하고 자기 위하고 자기 높여주고 자기 칭찬해  주고 자기 인정해 주고 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했다면 그 사람이 멸망할  사람입니다. 그 멸망할 교인이요. 그 교인은 선지자된 사람으로서 이는  요물이라. 이는 귀신 들린 자라 삼가 조심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 사람이 그 선지자되는 자기 신앙 지도자를 한시간 데리고 얘기  했으니까 한시간 데리고 이야기 해야지. 그가 한번 데리고 어데 놀러 갔으니까  나도 한번 데리고 놀러 가야지. 어떤 자는 자기의 데리고 놀 놀음의 대상으로  어떤 자는 자기 위로자로 자기의 칭찬자로 자기 편이 되어 주는 자로 자기  친구로 자기와 누구보다도 그는 하나님 종이기 때문에 정을 통하여 인정을  붙여야 살 자로 다 멸망의 사람입니다. 받는 자도 주는 자도 바래는 자도 그의  대상이 되는 자도 다 멸망입니다.

 선지자에게는 자기가 모르는 생활 자기가 몰라 어떻게 살 줄 모르는 자기가  어떻게 살까 바른 살이의 길을 모르는 그 길을 인도받기 위해서 모시는 것이요.

자기에게 잘못된 그 흠점이 있는 것을 지적해서 치료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체는 책망이요. 왜? 이 길 걸었냐? 이리 가거라. 저는 이 길 가고  싶은데 안 된다. 그 길 안 된다. 이 길로 가야 된다 하는 이것이 선지자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것을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했으면 됩니다. 뭐 어떤 사람은  아 그게 나쁘기야 나쁘지마는 나쁘기야 나쁘지마는 서도 대중 앞에서 말하니  안됐다. 고요히 시간을 조용한 시간을 타서 고런 기회를 타 가지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 자는 노는 자요 하나님의 옳은 종이라면 그런 시간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을 어떻게 어떻게 막 그런 장소를 꾸미고 어떻게 대우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치료를 해주든지 길가 가다가 응급 치료를 해서 치료를 해 주든지 그만  좀 아프게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치료만 됐으면 그 의사로서는 바른 의사입니다.

언제 그런 기회를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데 그런 기회 가질라 하다가 고에게  단점이 그때 딱 보여서 아 요걸 요때 말해서 해 줘야 되겠다. 그때 보이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여가가 있습니까? 시간이 있습니까? 또 다른 일이  없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책망받기를 기뻐해야 되고 자기에게 비 지적하는 것을  기뻐해야 되겠고 어쩌든지 선지자는 교역자를 모시는 것은 신앙 지도자를 모시는  것은 고치기 위해서 모시는 것입니다. 고치기 위해서. 그 보담 더 적극성은 바른  길 가기 위해 바른 지도를 받기 위해서 웃으며 하든지 성내며 하든지 그 뭐 듣기  싫게 하든지 뭐라고 방편하든지 아 진찰을 바로해서 치료해 주면 되지 안했소?  아 그 의사는 친절이 없다. 친절 바라는 그 사람은 친철 바라는가? 병을 바로  치료하나 그럴 바래지.

여기 대원이라는 여기 죽었습니다. 대원 의사가면 가면 무조건 해라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오면 와 떡 이래 놓고 난 다음에 또 뭘 뭘 처먹었구만. 아무나  돼지 모양으로 자꾸 쑤셔 먹고, 약지오라. 내가 그때 병이 들어 가지고  신의사에게 구의사에게도 한의에도 신의에도 얼마나 돌아다녀도 아무도 나수지들  못해. 그 엑스레이를 암만 찍어도 병이 안나와. 이제는 그때는 죽는 판이라.

지금 숨을 모두는 판인데 그분을 누가 소개를 해서 그분이 할 수 없어. 내가 못  가니까 왕진하러 왔는데 내가 누웟는데 누웠으니까 이래 떡 와 보디마는 뭘 잘못  먹었구만 이래 뭘 잘못 먹었구만 이러면서 뭐 진찰도 하도 안하디마는 따라와  사람 보내니까 약봉지 세봉지 보냅디다. 세 봉지 보내서 마구 오늘 아침 급한데  이러면서 세 봉지를.... 한 봉지만 먹으면 오늘 저녁에 잠 잘끼야. 아 한 봉지  딱 먹으니 그 마취제 든 것 아닙니다. 한 봉지 딱 먹으니까 그만 숨을 쉬겠어.

그 세 봉지 먹고 나니까 그만 뭐 밥 먹기고 괜찮아. 그래서 얼마동안 그 약을  계속해 먹으라 해서 계속해 먹고 그분이 있을 때에는 나는 의사라고는 뭐 욕을 하든지 뭐 꾸중하든지 ( ) 하든지  어쩌든지 나는 그 의사에게 갔습니다. 아 병 낫는 기 위주지 거기 뭐 예의  차리고 나 존경받고 뭐 받고 그것도 없어. 아 병 낫으러 왔으니까 그게 환자  아니요.

자기를 신앙 지도하는 사람이 달콤하게 한다고 인정붙게 한다고 자기 정서적으로  그거 바래서 거기 안 맞으면 삐쭉 돌아가는 자는 그 자는 천국이 멀어.

건설구원은 못 이뤄. 아닌 것을 아니라고 소리만 하면 듣기 싫어.

내가 어떤 장로한테 가니까 말하기를 나는 참 내가 말하기를 장로님은 자존심  고걸 꺾어야 돼. 고 자존심 그것이 옛사람이라 원죄라. 고거 안 꺾으면 구원은  헛일이야. 고기 들어서 우상이 돼 가지고 항상 구원의 길을 가지를 못해.

이러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예 참 목사님 바로 지적을 했습니다. 나는 뭐  자존심에 걸리는 것은 죽었으면 죽었지 자존심에 걸리는 것은 못한다고 그렇게  말해. 이러니까 그 사람은 자꾸 비유 맞춰서 이래야 되니까 누가 그 짓 합니까?  옳은 의사가 하나님의 종이 틀렸다 이러지 그날 둘이 갔었는데 자존심 그걸 버려야 돼. 어데든지 장로 노릇하면 또 마귀  노릇 할기라. 사람 죽이는 노릇 해. 절대로 구원 지키든 못해. 장로 노릇하면  마귀 노릇해. 구원할려면 여게서 장로 노릇하지 말고 저 시골 교회 교역자로  나가면 자기 회개를 하고 구원을 얻을기라 고걸 버리지 아니하면 안되니까 그래  나가라면 내가 장로 노릇을 하지 말라. 장로 노릇하면 다른 사람 죽이고 자기  잃고 다 죽는다. 자존심 고걸 빼버려라. 내가 고때 고것을 말했습니다.

고것을 말했지마는 그래도 그 시간에는 그분이 좋아하고 그 말까지 하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돌이키기는 했지마는 내가 언제 그걸 자꾸가서 만내서 그칼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선지자에게서는 내가 고침받을 것 내가 바로 살아가는 지도받을  것 그 외에는 떡도 필요 없고 인정도 필요 없고 사랑도 필요 없고 존경도 필요  없고 대우도 필요 없고 고운 말도 필요 없고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고것만  해 주면 돼. 내 인격의 병 인격의 병인데 내 신앙의 병 내 신앙를 바로 해 갈 수  있는 길 그게면 족합니다.

그러고 선지자된 사람들은 선지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가르쳤다고  저 잘된 것 아닙니다. 다른 사람 바로 가르쳤다고 제 구원된 것 아닙니다.

자기가 가르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구원을 잘 이루었다고 해서 자기 구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탄식 것이. 다른 사람은 가르칠줄 알면서 나는 가르칠 줄  모른다는 그것이 참 탄식이라. 아 저는 그 사람 중에 그 사람 중에 더욱 그런  사람이 돼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개명교회에 있을 때도 산 순교자들이 많이  났어. 주님의 도와 주님을 위해서 몸과 생명을 다 바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어. 그들은 참 지행이 하나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라.

그러나 나는 그들과 같이 그렇게 행함이 없었어. 그렇게 다 바치지를 못했어.

이러니까 6.25 아닌 해방 직후에 해방 직후 토벌대들이 그 토벌하면서 공산주의  자들이 와 가지고 토벌대라고 공산주의 자들이 아군이라고 이 가장을 해 가지고  왔는데 열다섯이 몰려왔는데 그 사람들이 파견을 뭣 때문에 했는냐 하면 고제  가면 그 백영희라는 그 사람이 있으니까 집사가 있으니까 그놈을 가서 어짜든지  처치해라. 그래 가지고 파송받아 가지고 왔어.

그 사람들에게 그때 맞아서 굴지를 메왔습니다. 다른 교인들은 신앙 생활하는  게에 많은 매를 맞았지마는 나는 신앙 생활하는데 매를 못 맞아 봤어.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안한다고 반대하고 이래 거역하고 이래 해도 잡아가지도 안해.

그러니까 그때도 끌려가서 신사참배 안한다고 맞지를 안했어. 안 맞고  신사참배하는 반대하면서 지냈고 교인들도 하나도 신사참배 안했어. 그때 있는  교인들 여게 몇 사람 와 있어. 거기 교인은 하나도 신사참배 하지 안했어.

그면은 다른 면보다 유심해서 교인 하나 하나 교적부 명부를 가져 가지고 하나  하나 지서로 불러다가 그때 지서라 아니고 뭐 꼭 그게 주재소가 그때는 주재소  제.

왜정 때 주재소입니까? 주재소에다가 하나 하나 잡아다가 그래 따졌었어. 그  하나도 불려가지도 아니하고 참배도 아니하고 참 하나님의 특수한 보호를 그때  입었습니다. 그 주를 위해서 맞아 보지를 안했어.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놈 가짜야 너는 다른 사람에게는 전해서 다른 사람은  주를 위해 고난당하지만 너는 하나도 고난 안 당했다해서 하나님께서 그  공산주의자들 열다섯 명을 뽑아서 토벌대라는 그 가장을 해가지고 보내서 그때  그 사람들에게 많이 맞았어. 그런데 그래 맞은 것 같으면 앞으로 어떤 고문을  당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이 돼지요.

그분들이 여럿이 돌아서서 막대기가 뭐 참나무 그런 것은 아니지마는 대개 아매  소나무 막대기 일기라. 이만한 막대기 가지고 뚜드리는데 그 막대기가 뭐 몇이  뿔라지니까 하매 몇이 뿔라졌어. 뿔라지면 또 딴 막대기 가져와서 몇 번이나  뿔라져도 그랬는데 어쩐지 아픈 것은 생각을 못가졌어. 마음에 아픈 거는 생각지  아니하고 그저 주님이나 생각했지.

다 이렇게 이제 그 사람 죽었다 이랬는데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뚝 그쳤는데  그치자 마자 나는 일어서 가지고 그 지서로 갔어. 이것은 이 사람들은 이것은  토벌대가 아니라. 이거는 분명히 적색이다. 이걸 단속해라. 왜 너거 지서에  있으니까 단속하지 않느냐? 그분들에게 말해 가지고 그분들이 어쩌든지 그만  올라 가시이소. 이제 우리가 어째 처리하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러고나서 바로 그 이튿날 저 제주도로 그리 이송이  돼버렸어. 이송이 돼 가지고 거기 가서 한 이삼일 후에 열네 사람은 다 거기서  직사했고 한 사람은 다시 그 고제면을 돌아왔어. 돌아와 가지고 우리가 과거에  이런 죄를 지어서 다 직사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돌아와서 그 소식을 전해서  알았습니다.

그때 매를 맞아서 그게 좀 보충이 됐어. 지금도 그래요. 여기 주일학교 반사들은  이렇게 열심히 뛰어 이렇게 일할 수 있도록 가르쳐서 이래 놨는데 나는 그런  열심이 없어. 이러니까 암만 봐도 참 마태복음 23장에 있는 그 선지자 모양으로  다른 사람들은 가르쳐서 다 그 사람들은 실행도 할 수 있고 가르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 가르친 그것으로서 내 구원으로 인정하는 나는 실행이 없는 이런  사람이라. 이 말씀은 내게 적당한 말씀이라.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구원 이루는  그것이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행해야 자기 구원이 됩니다.

행하지 아니하면 자기 구원되지 안해. 자기가 행해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선지자된 사람들이 잘못하면 다른 사람의 구원은 일으키면서 제  구원은 이루지 못하는 사람되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선지자에 대해서 내 선지자를 어떻게 구별할 긴가? 선지자된  자로서 자기는 이 복음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다른 사람 구원이 자기 구원  아닙니다. 자기 구원은 자기가 실행해야 됩니다. 목사라도 실행해야 되고  권찰이라도 실행해야 되고 장로라도 실행해야 되지 자기가 실행하는 그 실행에서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실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 가르치고 다른 사람이  뭐 구원 잘 이루게 했다고 자기 구원 되는 건 아닙니다. 꼭 자기 구원은 자기가  실행해야 자기 구원이 됩니다.

요것을 잡아야 됩니다. 은사 교권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다 헛점을  치고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또 어린 교인들은 어리석게 아 저 목사님은 자기는  참 우리보다도 행함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지 말아.

그렇게만 또 생각하면 마귀가 그렇게 생각하면 헛일이라.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안한다는 것이 그것이 실행이라. 그 실행을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에 등불을  들었지 기름 준비를 안했으면 등불 못 들어요. 6.25때도 그들 인민군 속에서도  하나도 굽히지 아니하고 그들이 밤마다 잡아 가지고 와 가지고 암살시킬려고  그렇게 해도 그들에게 하나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한 것도 그것도 기름 준비가  됐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그라이만 안 됩니다.

또 내가 나로서는 내 면에 지금 가지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아 저 목사님은  참으로 실행은 아무 것도 없는 가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 보다 실행이 낫아.

나로서는 내 실행을 못하는 걸 말하는 것이지.

실행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 안 이루어집니다. 시간을 꼭 통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아는 것 가지고 구원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초상이 났는데 몇 시라 했지요. 8시까지 여기 오면 돼요. 8시까지 여기 오시면  장례차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집사님이라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도 많이  하고 하는 남 그 집사님입니다. 그 장례식에 참예할 분들은 8시까지 오면됩니다. 출상 예배에 저도 가서 참예할 것입니다.

십분 지난 뒤에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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