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

 

1980년 8월 24일 주전

 

본문 : 마 7:15-27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기에,“주여 주여 해도 하늘나라 못 가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하늘  나라 간다”말씀하신 것은 영과 육을 각각 나누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 할지라도 그 심신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수 있습니다.

또 그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몸이 듣지 안해서 거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 중생된 사람은 영은 다 완전히 구원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거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영은 영생이 됐습니다. 그 영이 삶을 얻은 그 근거는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로 됐습니다. 그러나 중생된 영의 사람이라도 그 심신은 그가 현실을 통해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그 심신이 현실에서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움직였으면 그 현실에 작용한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가졌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 그 움직임을 통해서 그 심신이 영생을 얻기  때문에 그 때에 얻은 심신의 기능은 천국을 가는 것이고 행함으로 그 심신의  기능을 죽인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루어 놓은 공로를 영은 입었고 이 심신도 사죄 칭의 새생명을  입으라고 하는데 이 심신의 기능 입지 아니하고 반대했으므로서 그 구속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몸의 기능은 천국에 가지 못해도 영과 마음의  기능은 천국 가는 사람 있을 수 있고 마음과 몸의 기능은 천국가지 못해도 그  영은 중생된 사람이라면 다 천국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기 사람이라는 전부를 단일체로 보고서 한 말로 들으면  안됩니다. 그 사람의 심신의 구원 하나도 얻지 못해도 영의 구원 얻은 것을  가르쳐서 그의 공적이 다 불타도 구원은 얻는다 그러나 구원은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혹 오해될까 싶어서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증거 하려고 하는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이것은 건설구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어떤 구원인고 하니" 그  마음과 몸이 구원을 얻는 이 구원을 하나씩 둘씩 중복적으로 이루어 나가므로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심신은 단일체가 아니고 종합체입니다 이래서 부분적으로 분자 적으로 세포  적으로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이 은혜를 힘입어 자기의 심신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심신이 중생된 영에게  순종해서 이 심신이 주님이 주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아드려서 그대로  살면 구속이 되는 것이고 이 심신이 현실에서 사죄주신 사죄를 벗고 범죄하고  칭의 주신 칭의를 벗고 범죄하고 하나님과 결합해 새생명 주신 생명을 벗고  하나님께 위반된 대립자로 살게 되면 이 구속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집 짓는 비유로 말씀한 것입니다 심신의 구원을 건설로  비유했는데 이 건설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말은 그 원인이 하나님 곧 그의  뜻인 진리, 영감으로 되고 영감이 근거가 되고 영감이 동기가 되고 근거가 되고  목적이 되고 방편이 됐으면 그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됐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심신의 행동이 영감이라면 하나님과 진리를 합해서 말할 때에  영감 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서 자기대로든지 어떤 인간대로든지 어떤 피조물대로 시발이 되고 또 근거가  되고 그대로의 목적과 그대로의 방편이 됐으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래는 힘이 없어. 모래는 영원성이 없어. 피조물은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이 없기 때문에 그 피조물의 사상으로 주장으로 소욕으로 된 것은  그것은 비가 오고 바람불고 창수 난다. 그것은 세대가 바꾸어지고 시간이  바꾸어지고 공간이 바꾸어지고 그 모든 존재들이 바꾸어질 때에 거기 따라서  피해를 입어서 변동되고 제거되는 것을 가르쳐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그 뜻인 진리로 인해서 된 것은 어떤 피조물이 어떻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요동치 않으면 그는 요동치 않는 것인데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영원자시요 불변자시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완성이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된 것은 세상 어떤 그 세력으로도 침노로도 또 시간이 무한히 흘러도  어떤 공간으로 변해져도 모든 존재가 어떻게 변동해도 그것은 요동치 않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심신의 구원'인데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보면 우리가 언어의 건설이  있습니다. 말로 건설하는 것 사람들은 한번하고 지나가면 그뿐인 줄 알지마는 그  말은 결단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 낱낱이 심판을 받아  가지고 그 다음 그대로 보응된 이후에 그 말은 비로소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  말에 건설, 마음 움직임에 건설, 몸에 움직임에 건설, 모든 존재 적으로 건설  다시 말하면 사람 건설, 일 건설, 물질 건설, 이런 것이 다 건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든지 지도를 하든지 자기가 주장을 하든지  비판을 하든지 비평을 하든지 평가를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책망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근거된 것이면 그는 영존 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 근거된 것이면 그는 다 영존  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떠한 능란의 광채를 가지고 많은 사람의 옹호의 존영이 있고  그때 움직임의 그 운동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인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다 파멸되고 정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 건설하는 우리 생활은 다 건설인데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다 건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심판 받을 것을 건설하는지 또 그것이 크게 파괴를  당해서 집 지은 것이 불에 탈 때에 그가 큰 해를 보는 것과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 수해를 당해서 해를 보는 이 비유와 같이 자기가 말한 것이 온 천하가 다  옹호하고 환영하고 따른다 할지라도 문제는 해결 안됩니다. 하나님으로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하나만 되는 참된 이치 진리가 아니라면 그는 다 소멸되고  정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할 때도 거기 대해서 들어  응하는 사람이 어떠하냐 하는 그것도 필요하지만 거기까지는 안 나가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이 자리에서는 무슨 말씀을 당신이 인간을 통해서 하시려고 하시는가!  이 무리들에게는 이 사건에는 이 시간에는 이 물질에는 하나님이 무슨 말을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가 그 말을 자기가 받아서 그대로 나가는 것이라면  이것은 선지 역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을 빼놓고 객관성만을 상대해서 합니다.

주관으로만 하는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폭넓고 지혜 있는 사람이지만 가장 크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기 생각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상대하는  하나님 빼놓은 물질이나 일이나 사람이나 사회나 국가나 시대나 이런 것만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라고 하는가 하는  이것을 자기배운 진리 지식과 양심을 가지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찾으면 만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건설이 반석 위에 있는 집이 되어지도록 어느 건설을  해야만 할 것인지, 또 그 다음에, 자기 마음에 그 움직임이라면 마음의  기능인데, 기능의 구속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능을 살리는 부활시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능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 마음의 움직임을 기뻐하는 것이라든지, 성내는 것이라든지,  즐거워하는 것이라든지, 슬퍼하는 것이라든지, 사랑하는 것이라든지,  화평이라든지, 자기라든지, 인내라든지, 양심이라든지, 충성이라든지,  은유라든지, 미움이라든지, 존대하는 마음이라든지, 환영하는 마음이라든지,  협동이라든지, 대립이라든지, 시기라든지, 소욕이라든지, 분노, 경영, 계획,  예산, 애정, 이런 마음의 움직임은 결단코 환경과 나와 둘이 의논해 가지고  해서는 안됩니다. 환경에 맞추어서 하는 것은 세상주의자입니다.

 또 인간들 맞춰서 하는 것은 인본주의자입니다. 자기에게 맞춰서 하는 자는  육체의 소욕의, 사욕 자입니다. 이것은 다 모래 위에 짓는 집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러기에 믿음으로 행치 않는 것은 다  죄니라 하는 그 말은 하나님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 죄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복잡한 수많은 생애를 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배우지만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에게 배우지  말라, 정상된 사람이라면 자기 속에 기름부음이 자기를 중생 시킨 성신의 감화  감동이 자기에게 옳고 참된 것을 가르쳐 주나니 그대로 존재하고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반석 위에 지은 신령  건설입니다.

 그 다음에는, 몸의 기능 건설이 되겠습니다. 열심히 움직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또는 게을리 하는 것이나  반동하는 것이나 건설하는 것이나 파괴하는 것이나 피동 하는 것이나 가담하는  것이나 그 움직임의 활동하는 것이나 계속 움직이는 것이나 큰 움직임이나 큰  목적의 움직임이나 능한 움직임이나 권능 있는 움직임이나 약한 움직임이나 기쁜  움직임이나 아름다운 움직임이나 많은 움직임이나 어떤 움직임이든지 그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한 움직임이 아니면" 다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그  세월 지나가면 다 절단 납니다. 환경이 바꿔지면 다 절단 납니다. 자기가  변해지고 세상이 변해지면 다 절단 납니다. 더욱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는  정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몸의, 자신이 움직임도 그러하고, 상대방의 움직임도 첫째는  자기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인다면 만 가지의 상대하는 움직임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왜 자기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인다면 마찰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움직임은 다 마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임은" 천이든지 만이든지 자기가 마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임의 그 몸의 기능 건설인데 이 건설도 반석 위에 건설하느냐 모래 위에  건설하느냐 하나님으로 인한 그 움직임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거기 연결된 몸의  기능을 마련하느냐?  세상 20세기의 자랑하고 있는 과학의 기능으로 인류의 기능으로 어떤 그  기능으로 어떤 그 능력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 기능이 자라느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아니라도 피조물 그것의 힘으로 말미암아 몸의 기능이 건설됐다면  그것은 다 불타지고 맙니다. 하나님 한 분의 이분의 기능으로 그 몸의 기능이  건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에 대해서도, 사람이 인격이라든지, 지능이라든지, 명예라든지,  권세라든지, 지위라든지, 소유라든지, 넓고 좁은 것이라든지, 많고 적고 크고  적은 그 인물에 대해서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다  모래 위에 건설된 인물입니다. 모래 위에 건설된 인물이요 인격이요 권위기  때문에 그는 언젠간가 비바람이 불든지 비가 오든지 저것이 부딪히든지, 부딪칠  때는 그는 절단 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인물이 건설된 인물이라면, 인격이라면 그는 온 세상이  정죄하고 세상이 바꾸어져도 그는 영존 합니다. 그는 영원히 삽니다. 반석 위에  지은 인격입니다. 일도 그러합니다. 그 일이 큰 일이든지, 적은 일이든지, 많은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아주 외모가 아름답든지, 흉하든지, 강하든지,  약하든지, 복잡하든지, 단순하든지, 세밀하든지, 둔하든지 간에 "결말은  하나님으로 인한 일이냐"  그 일이 하나님으로 인한 곧 진리의 근거 위에 있는 일이냐 그게 아니면 일시에  세계가 놀랄 만치 세계를 주먹에 쥐고 흔들고 뭐 세계 각국에 머리들이 이리  모인다 저리 모인다. 아무리 큰 소리 쳐봤자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면 다  박살이 되고 맙니다. 바람 앞에 등불 한 가지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지 못했지만 역사가 증거해 주는데 백년 전 그  모든 일들이 오늘에 종적도 없고 그것은 하나의 지극히 작은 것만치도 평가해  주지도 않습니다. 얼마전 일이 허무합니다.

 오늘 일도 또 그러합니다 그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끼어서 단둘이만  알았던 그 아벨의 투쟁한 그 시대 한 일을 그 일은 그때는 몰랐지만 오늘 세계에  아는 사람 많고 또 앞으로 그 역사는 큰 역사로 정죄 될 것인 것입니다. 모든  선지 성인들이 그 시대 사람이 몰랐기 때문에 다 죽여서 없애버렸습니다  그랬지만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는 비석도 세우고 무덤도 수축하고 수 천년  지나간 오늘에는 다 그들을 존대해서 죄인이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베드로 전각에 있는 그 베드로의 동상에는 발꿈치가 달아졌다 합니다. 모든 오는  성도들이 그 발꿈치에 입을 맞추고,  우리는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일이 있습니다. 무너질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부터 먼저 구별하고 그 다음에 그 기술에 있어서 그 조화에 있어서 피조물과  어떻게 해서 그 결말이 좀 아름답게 맺어지느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 문제지  생명은 하나님으로 인한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물질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많든지, 적든지, 크든지, 작든지, 귀한 물질이나, 천한 물질이나,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나, 욕하는 것이나, 버리는 것이나, 탐하는 것이나,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하나님으로 인한 물질이냐?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축복하는 것이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반석 위에 연결되는 물질이냐? 모래 위에 건설되는  물질이냐?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서 이것은 다 세상이 부인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이 분을 크게 여겨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 분으로 인하여 생겨졌고 실은 이분을 위해서 있고 또 이분으로 인하여  존재할 줄을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무시하지 않지만 보이는 것을 자기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자기보다 소중히 여기는 보이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은 전부의  전부인 것을 알아 하나님으로 근거를 삼고 하나님으로 결말을 지우고 시작도  마지막도 중간도 하나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세상이 모르는 기독자의 분발의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나는 이제까지 말해놓은 것이 정말 내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정죄받지 안할 말인지 취소 당하지 안할 말인지 말을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는지 모래 위에 지었는지 말로 말의 기능 건설 마음의 기능 건설 몸의 기능  건설 모든 사건 사업건설 물건의 건설, 나라는 그 인격의 건설 이것이 모래 위에 된 것이 얼마나 되며 반석 위에 된 것이 얼마가 되는지 오늘은 고칠 수 있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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